이 파일 표지에는 도장이 두 개 겹쳐 찍혀 있다.
한쪽에는 “DESTROY(폐기)” 도장. 바로 옆에는 “DO NOT DESTROY(폐기 금지)” 도장. 한때 없애야 할 것으로 분류됐다가 보존으로 결정이 뒤집혔다는 흔적이다. 사건 파일 62-HQ-83894, 시리얼 53번부터 100번까지, 단수 2번. 단수 1번에서 이어지는 묶음이다.
단수 1번이 1947년 7월의 소동 — 아놀드의 보도, 로즈웰 직후의 혼란, 후버의 첫 번째 방침 결정 — 을 담고 있다면, 이 단수 2번은 그 이후의 기록이다. 지부들이 계속 보내온 것들. 8월로 넘어가면서 신고는 줄지 않았고, 파일은 계속 두꺼워졌다.
미시간 다우 케미컬의 녹아붙은 모래
1947년 8월 5일 오후 5시 8분, FBI 디트로이트 지부가 본부에 긴급 텔레타이프를 보냈다.
미시간 미들랜드의 다우 케미컬에서 1922년부터 일해 온 직원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이 7월 10일 회사 물리학 연구소에 어떤 물질을 들고 왔다. 전날인 7월 9일 저녁 5시 15분, 그는 아내 로라와 함께 다우 소유 들판을 걷다가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퍽’ 하는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부셸 바구니만 한 흰 불덩이가 땅에서 30센티미터쯤 떠서 타고 있었다. 곧 꺼졌다. 레인은 나중에 그 자리로 가서 녹아붙은 모래 조각을 깡통에 담아 연구소로 가져왔다.
다우 측 책임자들은 이야기를 황당하다고 보면서도 물질을 분석했다. 결과는 이렇다. 대부분은 평범한 모래, 방사능 없음, 다만 암모니아 가스를 뿜는다. 모래에 섞인 거의 순은에 가까운 은 덩어리 하나, 방사능 없음. 녹아붙은 모래 안에는 작은 은 방울들이 들어 있고, 거기에 함께 있는 회색 물질에서 방사능이 낮은 수준으로 검출됐다. 과거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에 있었던 직원은 이 융착 모래가 로스앨러모스 모래와 비슷한 특성을 일부 갖고 있다고 했지만, 같은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FBI가 파악한 레인의 신원은 이렇다. 방사성 야광 도료를 소량 보유하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 화학과 물리에 어느 정도 안다. 무뚝뚝하고 회사 보안 담당자들에게 적대적이며, 사진과 전기에 관심이 많다. 동료들은 그를 매우 별난 인물로 묘사했다. 1924년 절도죄로 60일을 살았다는 기록도 있다.
레인 부부 모두 이 이야기가 장난이라고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확한 장소를 두 사람 모두 짚어내지 못했다. 디트로이트 지부는 미시간 셀프리지 비행장의 육군 항공대 정보부에 통보했다. 물질은 군으로 넘어갔다.
해켄색의 저녁, 트윈폴스의 밤
뉴저지 해켄색에서는 다른 종류의 신고가 들어왔다.
1947년 8월 3일 저녁 7시 45분, 찰스 카셀라 주니어와 군인 윌리엄 트루엑스가 한 주택 2층 옥상의 햄 무선 안테나를 구경하다가 하늘에서 이상한 것을 봤다. 검고 둥근 물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시먼스 가와 서밋 가가 만나는 언덕 꼭대기에서 약 200야드 상공을 수평으로 가로질렀다. 속도가 빨랐다. 두 사람이 시선을 계속 돌려야 따라갈 수 있을 정도였다. 약 15초 뒤 트루엑스의 여자친구 조이스 맥팔랜드가 합류해 함께 봤다. 그녀는 물체가 “수평선 위의 새처럼 작게 보였다”고 묘사했다.
트루엑스의 묘사는 조금 달랐다. 지름이 두세 피트쯤 됐고, 모양은 아이들이 쓰는 큼지막하고 납작한 컵을 가장 닮았다. 위쪽은 타원형, 아래쪽은 한 점으로 모이는 형태였다. 배기가 없었고 소음도 없었다. 일정한 직선 경로로 북쪽을 향해 이동했다.
두 사람 모두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카셀라는 길 건너편 베란다에 있던 남자도 그 물체를 가리켰다고 말했다. 그 남자는 흥분한 듯했지만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
같은 시기, 아이다호 트윈폴스에서는 여러 차례 목격 신고가 올라왔다.
1947년 8월 19일 밤 9시 30분에서 45분 사이, H. H. 헤드스트롬 부부와 이웃 헨리 슐츠 부인이 현관에 앉아 있다가 하늘을 가리키는 물체 무리를 봤다. 이후 20분 뒤 비슷한 물체들이 다시 나타나 남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세 개, 다섯 개, 일곱 개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고 했다. 뷰트 지부의 배니스터 SAC는 텔레타이프에서 이런 현상의 공식 해명이 없으면 대중이 패닉에 빠질 수 있다고 적었다.
8월 25일, 후버 FBI 국장은 뷰트 지부에 답했다. 육군 항공대에 광범위하게 문의한 결과, 8월 19일 무렵 트윈폴스 인근에서 어떤 연구나 실험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위스콘신 상공의 숫자들
단수 2번 파일에는 군이 직접 작성한 목격 통계 보고서도 들어 있다.
1947년 7월 7일, AAF-CAF 연락장교 존 D. 신들러 소령이 워싱턴 볼링 필드 제3 AAF 기지 사령관 앞으로 보고를 올렸다. 비행기 두 대에 탑승한 조종사 네 명의 목격을 정리한 것이다.
첫 번째 목격은 중부 표준시 11시 45분. 위스콘신 카슈코농에서 처음 포착됐다. 관측자들은 지상 600피트, 원반은 해발 8천 피트에 있었다. 원반은 25마일을 15초 만에 가로질렀다. 시속으로 환산하면 6천 마일이다.
두 번째 목격은 같은 날 14시 30분. 원반은 이스트트로이에서 머스키고까지 22마일을 20초에 비행했다. 시속 3천960마일에 해당한다.
비행 양상도 자세하다. 첫 관측에서 원반은 적운 사이를 옆날 방향으로 수직 하강하다 4천 피트에서 멈추고 수평 자세를 잡은 뒤, 15초 동안 25마일을 직진했다. 두 번째 관측에서는 조종사가 글러브 박스에서 카메라를 꺼내려는 사이 사라졌다가 진로 방향으로 10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이 목격을 한 사람들 중에는 해군 중위, 비행 교관, 공군 보급장교가 포함됐다. 보고서와 함께 일리노이주 북동부 항공도 한 장이 파일에 편철됐다. 지도 위에는 파란 펜으로 화살표와 선이 그어져 있고, 미시간 호수 쪽에 “LEV LAB”이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다.
셰이버라는 이름
파일 안에는 비행 원반의 기원에 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사람에 관한 조회 건도 들어 있다.
전쟁부는 7월 5일자 뉴욕발 무서명 전보 한 통을 FBI에 넘겼다. “비행 원반에 관한 추가 정보를 원한다면 일리노이주 릴리레이크의 리처드 F. 셰이버 씨에게 즉시 연락하라.” 전보에는 발신자 이름이 없었다. 전쟁부는 이 전보를 7월 5일에 받았고, 목격 사건들이 같은 시기 릴리레이크 인근에서 일어났다는 점을 들어 FBI에 확인을 요청했다.
FBI 본부는 시카고 지부에 지시를 내렸다. 셰이버를 조사하고, 조사 결과 면담에 지장이 없다면 직접 만나 비행 원반에 대해 아는 바를 파악하라.
1947년 9월 20일, 시카고 지부가 결과를 보고했다. 맥헨리 카운티 보안관은 릴리레이크 지역에서 비행 원반 신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셰이버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기록도 없었다. 시카고 지부는 이 건에서 더 이상 조사할 내용을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파일에 적힌 것은 거기까지였다.
오리건과 캐니언빌, 그리고 피닉스의 사진
1947년 8월 12일, 오리건주 캐니언빌과 머틀크릭에서 포틀랜드 지부 요원이 현장 조사를 벌였다.
트라이시티 공항을 운영하는 비행 교관 레이 버질 햇필드는 8월 6일 오후 6시 15분경 학생에게 이착륙을 가르치던 중 머틀크릭 동쪽 상공에서 구형의 은빛 물체를 봤다. 자신이 탄 항공기를 가까이 대보려 했지만 물체의 상승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동시에 훈련 중인 학생기가 물체와 같은 고도인 5천 피트에 있었고, 학생 노블 엘리슨도 같은 것을 봤다. 엘리슨은 자신이 본 물체가 지름 약 9미터, 알루미늄이나 그와 비슷한 재질로 보였고 시속 1천 마일 정도로 추정한다고 진술했다.
포틀랜드 지부는 인근에서 이 물체를 함께 본 다른 목격자를 찾지 못했다. 추가 조사는 없었다.
같은 시기, 피닉스에서는 다른 종류의 신고가 들어왔다. 파노라믹 리서치 래버러토리를 운영하는 윌리엄 앨버트 로즈가 7월 7일 오후 폭풍이 지나간 직후 집 근처에서 비행 원반을 봤다. 그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었다. 1947년 8월 30일, 로즈는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피닉스 FBI 지부를 찾아갔다. 지부 요원은 그에게 필름을 군 항공정보부에 넘기면 돌려받기 어렵다고 미리 알렸다. 로즈는 그 조건을 수락하고 필름을 내놨다.
세이브룩의 원반 사진들
파일에는 물리적으로 회수된 물체의 사진도 여러 장 들어 있다.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원반 형태의 장치가 발견됐다. 스프링필드 지부가 조사해 본부에 보고했다. 지부 요원이 직접 살펴보니 발견자인 준 앤더슨 부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장치 자체는 사진으로 찍어 본부에 올렸다.
파일에 남은 사진 두 장을 보면 둥글고 평평한 금속 원반이다. 위에서 찍은 사진에는 중앙에 코일과 스프링 부품이 놓여 있고, “INSIDE”라는 라벨이 붙어 있다. 옆에서 찍은 사진에는 중앙 부품에 “RUSSI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와 함께 놓여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FBI는 이 장치를 군 측에 넘겼다. 군이 이것을 비행 원반의 파편이라고 보았는지, 아니면 장난이라고 보았는지, 이 파일에는 기록이 없다.
마우리 섬의 끝
단수 1번에서 이어지는 마우리 섬 건이 이 파일에서도 계속된다.
타코마의 달과 크리스먼이 가져왔다고 한 비행 원반 파편 이야기는 1947년 8월 초 결말을 맞았다.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에밀 스미스는 FBI 심문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7월 31일 회동 자리에서 달과 크리스먼은 파편이 비행 원반에서 온 것이라는 거짓 이야기를 되풀이했고, 그 이야기가 날조였다는 사실을 달이 인정한 것은 8월 2일 토요일 밤이었다.
8월 14일, 후버는 시애틀 SAC에게 텔레타이프를 보냈다. 스미스의 진술에 따르면, 달과 크리스먼이 군 장교들에게 파편이 비행 원반에서 왔다는 거짓 이야기를 했고, 익명 제보 전화를 건 사람은 스미스 아니면 아놀드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후버는 달과 크리스먼을 직접 재면담해 이 점을 확인해야 하며, 그것이 확인되면 더 이상 수사할 것이 없다고 지시했다.
파일에서 마우리 섬 건의 기록은 거기서 끊긴다.
아놀드가 직접 쓴 것들
파일 뒤쪽에는 케네스 아놀드가 직접 쓴 자료들이 들어 있다.
아놀드는 자신의 목격담을 1인칭으로 풀어썼다. CONFIDENTIAL 도장이 위아래에 찍힌 서류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자신은 유명해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어떤 조종사라도 보고할 일을 보고했을 뿐이다. 시력이나 판단력이 보통 조종사보다 예민하지도 않다. 1947년 6월 24일 화요일 오후, 워싱턴주 셔할리스 공항에서 야키마로 향하다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그 물체들을 봤다.
아놀드와 같은 날 목격을 보고한 아이다호 스테이츠먼 신문 항공 담당 편집자 데이비드 N. 존슨도 진술서를 남겼다. 존슨은 7월 7일 신문사 항공기로 비행 원반을 찾기 위한 수색 비행을 했다. 그가 직접 그린 비행체 이동 도표가 파일에 있다. 다섯 위치가 점선으로 연결돼 있다. 물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검게 보였고, 특정 위치에서 굴러 가장자리를 보였다고 했다.
공군은 없다, 그러므로 FBI도 없다
1947년 9월에 들어오면서 파일의 성격이 바뀐다. 조사 종료를 향한 기록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9월 5일, 육군항공대 슐겐 준장이 FBI 국장에게 공식 서한을 보냈다. 연락과 레이놀즈 요원이 구두로 요청한 사안에 대한 답이었다. “연구 활동 전반을 조사한 결과, 육군항공대에는 비행 디스크와 관련된 특성을 갖는 프로젝트가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직전, 9월 16일자 내부 메모에는 다른 내용이 있다. 공군 정보부 개럿 중령이 레이놀즈와 만나 “비행 원반이 육군항공대 자체 프로젝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처음에는 인정했다는 것이다. 레이놀즈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FBI가 조사에 개입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반박하자, 개럿은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두 문서는 각각 며칠 차이로 파일에 들어와 있다. 한쪽은 공군의 공식 입장, 다른 쪽은 면담에서 나온 인정과 부인의 흔적이다.
그리고 9월 27일, 후버는 공군 부참모장보 맥도널드 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공군의 지침을 보니 책임 있는 목격자 면담은 공군이 맡고, 지상에서 발견된 원반 사건만 FBI가 떠맡는 식으로 분담이 돼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FBI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후버는 현장 지부에 수사 활동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회보 제54호
파일 185페이지에는 노란 종이가 붙어 있다.
1947년 10월 1일자 FBI 회보 제54호 발췌다. 내용은 한 단락이다.
“(D) 비행 원반 — 즉시, FBI 본부는 1947년 7월 30일자 회보 제42호 B항에 명시된 수사 활동을 중단한다. 앞으로 비행 디스크 관련 보고는 모두 공군으로 이관하며, 본 국 요원은 어떠한 수사 행위도 하지 않는다.”
7월 30일 회보 제42호가 수사 시작을 알렸다면, 이 회보 제54호가 수사 종료를 알렸다. 단수 1번에서 시작한 FBI의 비행 원반 수사는, 이 단수 2번에서 석 달 만에 공식으로 끝났다.
그 이후의 파일은 다음 단수들로 이어진다.
출처: FBI, “62-HQ-83894, Section 2” (1947). 미국 전쟁부 공개, war.gov/UFO. 원문 PDF —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