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 FBI · PDF (194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2 — 1947년 여름, 지부들이 보내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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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1

    FBI 중앙기록보관소가 보관해 온 사건 파일의 표지다. 라벨에는 본부(HQ) 사건번호 53894, 2권, 시리얼 53부터 100까지, 섹션 2로 분류되어 있고, 별도 바코드 라벨에는 사건 식별자 62-HQ-83894와 같은 번호 범위가 다시 적혀 있다. 표지 한쪽 구석에는 "DESTROY(폐기)" 도장이 찍혀 있지만 그 옆에는 다시 "DO NOT DESTROY(폐기 금지)" 도장이 덧찍혀 있어, 한 차례 폐기 대상으로 분류되었다가 보존으로 뒤집힌 흐름을 그대로 드러낸다. "COPIED FOR FOIPA — MAY 14 1971"(정보공개·프라이버시법 대응용 복사, 1971년 5월 14일) 도장이 여러 군데 찍혀 있어, 이 파일이 FOIA 청구 처리를 위해 복제된 사본임을 알 수 있다. FOIPA 번호 993087과 함께 "이 파일을 다룰 때 주의할 것", "피켓 스트리트 — 이송 시 3421번으로 연락"이라는 취급 지시가 큰 빨간 글자로 적혀 있다. 파란색 스티커에는 비밀해제 근거가 2007년 5월 24일 발행된 FBI 자동 비밀해제 가이드라고 명시되어 있다.

  2. p.2

    1947년 8월 8일, 샌프란시스코 지부 특별수사관(SAC)이 FBI 본부의 래드(D. M. Ladd) 차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cs)". 발신인은 같은 해 7월 28일 본부에 보낸 이전 편지를 다시 환기한다. 그 편지에는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제4공군 정보참모부(A-2) 도널드 스프링거 중령이 보내온 보고서 사본이 들어 있었고, 그의 부서가 비행 원반 목격 신고에 대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가 정리되어 있었다.

    이번 메모에는 추가로 "비행 원반 조사(Investigation of Flying Discs)"라는 제목의 1947년 8월 4일자 편지 세 통의 사진 복사본을 동봉했다. 스프링거가 자리를 비운 동안 그를 대신해 같은 부서의 부참모(Deputy AC of S, A-2)를 맡고 있는 윌리엄 그레이엄(William E. Graham) 소령이 보내온 자료다. 오리건과 애리조나에서 들어온 비행 원반 목격 신고와, 군이 그에 대해 수행한 조사 결과를 함께 담고 있다.

    발신인은 이 군 조사가 FBI가 자체적으로 비행 원반 목격을 조사하라는 본부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 이미 수행된 것이라는 점을 짚어 둔다. 마지막으로, 이 보고서 사본을 각각 포틀랜드 지부와 피닉스 지부로 보내 해당 지부의 파일을 보강하도록 했다고 적는다.

    페이지 우측 상단에는 본부 수뇌부(톨슨·태머 등)에게 회람할 인덱스 박스가 인쇄되어 있고, 하단 여백에는 "RECORDED / INDEXED / 1947년 8월 14일" 접수 도장과 다양한 손글씨 정리 표식이 남아 있다 — 이 문서가 FBI 본부 기록 체계에 정식 등록되었음을 보여 준다.

  3. p.3

    타자기로 친 한 페이지의 뒷면이다. 앞면 글자가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일 뿐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푸른 잉크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47년 8월 19일 오후 5시 10분, 다른 하나는 1947년 8월 12일 오후 4시 49분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받았다고 표시한다. 위쪽에는 서류철용 펀치 구멍 두 개가, 왼쪽 아래에는 종이 손상과 얼룩이 있다.

  4. p.4

    1947년 8월 13일, 뉴어크 지부 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1947년 8월 3일 뉴저지 해켄색에서 보고된 비행 원반 — 잡건".

    메모는 먼저 8월 4일 뉴어크 지부가 본부에 보낸 텔레타이프를 다시 끌어온다. 그 텔레타이프는 8월 3일 해켄색에서 찰스 카셀라 주니어와 윌리엄 트루엑스 두 사람이 "비행 원반"을 보았다고 신고했다는 내용이었다.

    해켄색 유클리드 가 287번지에 사는 찰스 카셀라 주니어는 본 지부 특수요원 아서 F. 윌리엄스의 면담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8월 3일 저녁, 카셀라는 포트 딕스에 주둔하는 군인 윌리엄 트루엑스와 함께 해켄색 시먼스 가의 한 2층 주택 옥상에 올라간 햄 무전 안테나를 구경하고 있었다. 시각은 약 오후 7시 45분. 두 사람이 그 동네에 있던 이유는 트루엑스의 여자친구 조이스 맥팔랜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트루엑스가 "어떤 아이가 풍선을 놓친 모양"이라고 말을 건넸다. 카셀라가 그 방향을 보니, 한 블록 내지 반 블록쯤 떨어진 곳에서 둥글고 검은 물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그리고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의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카셀라가 보기에 그 속도는 보통 풍선의 속도가 아니었다. 다만 그 형태가 구형인지 원반형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가 추정한 크기는 직경 30~40인치 정도. 시먼스 가와 서밋 가가 만나는 언덕 꼭대기에서 약 200야드 상공을 수평으로 북쪽으로 가로질렀다고 했다. 등속이었고, 광선 같은 것은 뿜지 않았으며, 두 사람이 시선을 계속 돌려야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빨랐다. 첫 목격 후 약 15초 뒤 트루엑스의 여자친구가 합류해 함께 그 물체를 보았는데, 그녀는 "수평선 위의 새처럼 작게 보였다"라고 묘사했다. 곧이어 물체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카셀라는 그 비행 궤적을 직선으로 이으면 뉴저지 벤딕스 부근에서 웨스트우드 서쪽 어느 지점까지 이어진다고 말했다.

    또한 카셀라는 길 건너편 베란다에 있던 남자도 그 물체를 보고 여자들에게 가리켰으며, 그 남자는 흥분한 듯했지만 별다른 후속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카셀라는 그것이 결코 착시가 아니었다고 단언했다. 해를 마주 보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물체를 분명히 보았다는 것이다. 다만 속도만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만한 광경이었다고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8월 27일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SE 62-83814-53, 그리고 1964년 11월 18일자 복사본 배포 표시(270부)가 보인다. 좌측 여백에는 "Flying Discs" 등 손글씨 분류 표시가 적혀 있다.

  5. p.5

    타자기로 작성된 편지의 뒷면 스캔으로, 앞면 글자가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일 뿐 별도의 본문은 없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내부보안과의 접수 도장이 오후 2시 4분으로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보안 부서에 정식 접수되었다는 행정 흔적만 남아 있다.

  6. p.6

    1947년 8월 13일 자, 본부(Bureau)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이 면담 내용은 사이먼스 애비뉴 476번지에 사는 조이스 맥팔랜드 양이 윌리엄스 특별요원에게 진술한 것이다. 그녀는 문제의 사건이 8월 3일 일요일 저녁 7시 30분쯤 일어났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카셀라나 트루엑스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집 밖으로 나갔는데, 두 사람이 가리킨 곳에 그 물체가 있었다. 물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보았지만, 약 1분 동안 시야에 머물러 있었다고 했다. 둥글고 은청색이었으며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것이 새가 아닐까 하는 말은 한 적이 없으며, 무엇인지도 짐작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거리 때문에 직경이 6인치 정도로 보였지만, 가까이서 봤다면 훨씬 컸을 것이라고 했다. 전에 그런 물체를 본 적은 없었다.

    맥팔랜드 양은 길 건너편에 앉아 있던 사람은 부스 모녀뿐이었고, 누군가가 그 물체를 가리키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녀가 알기로 근처에 있던 사람은 윌리엄 트루엑스의 누이 클라리아 트루엑스뿐이었는데, 그녀는 집 안에 머물렀고 물체를 전혀 보지 못했다.

    사이먼스 애비뉴 459번지의 윈필드 S. 부스 부인도 진술했다. 그녀는 그날 저녁 어머니와 함께 포치에 있었지만,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지 못했고, 누군가가 와서 그런 물체를 가리켜 준 적도 없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T. 하워드 월드론 특별요원이 트루엑스와 면담한 결과다. 트루엑스 일병(이등병 윌리엄 A. 트루엑스, 군번 RA 12282003, 9사단 47보병연대 2대대 G중대, 포트 딕스 소속)은 1930년 4월 12일 뉴저지 저지시티에서 태어났고 8년 반 동안 학교를 다닌 뒤 1947년 5월 29일 미군에 입대했다고 밝혔다. 어머니는 뉴저지 버건 카운티 리버에지 웨일스 애비뉴 82번지에 사는 그레이스 필즈 부인이다. 트루엑스의 진술에 따르면, 1947년 8월 3일 일요일 오후 8시, 그는 여자친구인 조이스 맥팔랜드 양의 집(뉴저지 해켄색 사이먼스 애비뉴 478번지) 앞에 서 있었다. 동행은 누이의 약혼자인 찰스 카셀라(해켄색 유클리드 애비뉴 287번지)였다. 두 사람은 478번지 인근 어느 집의 라디오 안테나를 보고 있다가 한 물체를 발견했다고 한다.

  7. p.7

    1947년 8월 13일 자 국(局)으로 보낸 보고 서한의 세 번째 장이다. 앞 장에서 이어지는 트루엑스(TRUEX)의 진술로 시작한다. 그가 본 물체는 지름 두세 피트(60~90센티미터)쯤 되었고 지상에서 약 200야드(180미터)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에는 아이들 풍선인 줄 알았지만 바람도 없고 줄도 달려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다른 무언가라고 판단했다. 물체는 일정한 직선 경로로 북쪽을 향해 움직였고, 추진 장치를 짐작케 하는 배기나 동력원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트루엑스와 일행이 물체를 본 시간은 15초에서 20초쯤이었다. 색이나 재질은 설명하지 못했지만, 모양만은 아이들이 쓰는 큼지막하고 납작한 컵을 가장 닮았다고 했다. 위쪽은 타원형이고 아래쪽은 한 점으로 모아진 형태였다. 트루엑스는 동행한 카셀라(CASELLA)가 "하늘을 나는 접시 같은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루엑스 본인도 지금까지 공중에서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물체를 본 적이 없고, 어디서 왔는지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트루엑스는 자기와 카셀라 둘 다 술을 마신 상태가 아니었고, 물체를 또렷이 보기에 빛도 충분했다고 강조했다.

    이 "비행 원반"을 처음 신고한 사람은 카셀라였다. 그는 해켄색(Hackensack) 경찰서의 제임스 페로니(JAMES PERONE) 경사에게 알렸다. 페로니 경사는 작성자에게, 자기 부서는 이 건에 대해 더 이상의 조처를 하지 않았고 다른 경로로도 추가 보고가 들어온 적이 없다고 답했다. 작성자는 인근 어느 경찰서도 본 분국에 관련 정보를 올린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8. p.8

    1947년 8월 5일 오후 5시 8분, FBI 디트로이트 지부가 FBI 본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사건명은 플라잉 디스크 — 미상 용의자,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 로라 레인 여사, 정보 제공자. 디트로이트 지부는 미시간주 미들랜드의 다우 케미컬에서 입수한 정보를 그대로 전한다. 1922년부터 다우와 그 자회사에서 일해 온 직원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이 7월 10일 회사 물리학 연구소에 어떤 물질을 들고 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는 것이다. 전날인 7월 9일 오후 5시 15분경, 그는 아내 로라 레인과 함께 다우 소유의 들판을 걷고 있었는데, 약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부셸 바구니만 한 흰 빛의 공이 지면에서 30센티미터쯤 떠올라 타고 있었다. 불은 곧바로 꺼졌고, 레인은 나중에 그 자리로 가 녹아붙은 모래 7~8센티미터 둘레를 깡통에 담아 물리학 연구소로 가져왔다. 회사 측은 부부를 모두 면담했다. 레이먼드는 같은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반복했으나, 아내는 입을 무겁게 닫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매우 모호하게만 답했다. 부부의 진술 사이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었다. 다우 측 책임자들은 이야기 자체가 황당하다고 보았지만, 가져온 물질은 분석해 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이렇다. 내용물 대부분은 평범한 모래이며 방사능은 없으나 암모니아 가스를 낸다. 모래가 섞인 거의 순수한 작은 은 덩어리 한 점이 있었고 방사능은 없었다. 녹은 모래에서도 암모니아 냄새가 났다. 그 안에 녹은 은의 작은 방울들이 박혀 있었고, 회색을 띤 다른 성분 일부는 방사능을 보였다. 방사능 수치는 매우 낮았다. 이전에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에서 정부 일을 했다는 한 직원은, 이 녹아붙은 모래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 페이지는 그 문장 중간에서 끝난다. 여백에는 FBI 본부 회람 명단(톨슨·태머·래드·닉콜스 등)이 찍혀 있고, 8월 5일자 통신과 접수 도장과 62-83894-54 파일 번호, RECORDED 표시가 함께 남아 있다.

  9. p.9

    분홍빛 종이 표지 한 장으로, 본문은 없고 1947년 8월 초중순 사이 FBI 내부 부서들이 같은 문건을 차례로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도장만 여럿 찍혀 있다. 위쪽에는 거꾸로 찍힌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 텔레타이프 접수 도장이 1947년 8월 5일 자로 남아 있고, 아래쪽에는 같은 날 오후 6시 42분 내부보안과, 다음 날 오전 9시 26분 TAFM, 8월 28일 오후 3시 25분 실험실 계열, 8월 30일 오후 1시 29분 내부보안과가 차례로 동일 문건을 받아 들였다는 도장이 겹쳐 있다. 분홍색은 FBI 파일에서 자료 묶음의 표지·라우팅 슬립으로 흔히 쓰이는 색지로, 이 페이지 자체는 내용 페이지가 아니라 한 건의 텔레타이프가 부서 간을 어떻게 돌았는지 보여주는 회람 흔적이다.

  10. p.10

    디트로이트 현장사무소 오코너 특별수사관이 보낸 전문의 두 번째 면이다. 발신자는 로스앨러모스에서 나온 모래와 유사하나 동일하지는 않다고 보았다. 레이먼드 랜드는 소량의 야광 도료를 보유하고 있고 방사성을 띤다고 알려졌으며, 아마추어 사진가이자 다우에서 일한 경력 덕분에 화학과 물리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고 적었다. 동료들은 그를 매우 별난 인물로, 무뚝뚝하고 공장 경비원들에게 적대적이며 사진과 전기에 관심이 많다고 묘사했다. 신원 정보로는 백인 남성, 1902년 5월 7일 미시간 프리소일 출생, 키 5피트 9.5인치, 몸무게 145파운드, 짙은 갈색 머리에 약간 벗겨졌고, 1918년부터 1923년까지 미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1924년 미시간 미들랜드 카운티에서 절도로 유죄 판결을 받아 60일을 살았다고 밝혔다. 양측 모두 이 일을 장난이라 인정하지는 않지만, 랜드는 비행 원반과 로켓을 언급해 왔다고 한다. 면담에서 랜드는 사안을 논의하기를 꺼렸고, 본인과 아내 모두 물질이 발견된 정확한 지점을 짚어내지 못했다.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미시간 셀프리지 필드의 육군 항공대 정보부서에 이미 통보했고, 본부가 물질을 FBI 연구소로 송부해 분석하길 원한다면 회신해 달라고 요청하며 본문을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에는 "수정: 한 줄 한 단어 네 번째는 LANE으로 읽어야 함"이라는 정정과 "END", 그리고 워싱턴 본부 야간 접수 표시 "6-16 PM OK FBI WASH DC WJR"이 이어진다. 우측에는 "United Laboratory"라는 도장 비슷한 표기와 서명 두 줄이 보이고, 좌하단에는 빨간 "RECORDED" 도장이 찍혀 있다.

  11. p.11

    분홍색 텔레타입 용지의 뒷면 스캔으로, 본문 내용은 비치는 정도이고 정면 식별이 어렵다. 상단과 하단 여백에 미국 법무부 접수 도장 세 개가 찍혀 있다. 위쪽은 "RECEIVED TELETYPE UNIT, AUG 5 6:18 PM ’47, U.S. Dept. of Justice"로 텔레타입 접수 표시이고, 아래쪽에는 FBI 내부안전과(Internal Security) 접수 도장 두 개가 1947년 7월 30일 오후 1시 24분과 8월 6일 오후 4시 42분 시각으로 각각 찍혀 있다.

  12. p.12

    1947년 8월 8일, FBI 워싱턴 본부의 J. P. 코인이 래드 차장에게 올린 사무 메모다. 제목 줄에는 "미상의 인물들; 정보원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과 로라 레인 부인; 비행 원반; 기타"라고 사건 분류가 줄줄이 붙어 있다. 본문은 짧다. 디트로이트 사무소가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과 로라 레인 부인으로부터 "비행 원반"에 관해 받은 관련 정보를 정리한 별첨 메모를 함께 올린다는 보고이고, 권고 사항은 한 줄로 "이 자료를 연락과(Liaison Section)가 직접 전쟁부의 적절한 담당자에게 전달할 것"이다. 종이 곳곳에는 1947년 8월 12일과 9월 30일의 빨간 접수 도장, "RECORDED 62-83894 / 55" 사건 번호 도장, 그리고 8월 11일 자 손글씨 회람 메모가 함께 찍혀 있어, 이 자료가 부서 안을 어떻게 흘러 다녔는지를 그대로 보여 준다.

  13. p.13

    이 페이지는 1947년 8월 1일 자 FBI 내부 오피스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타이핑 잉크가 종이 뒤로 번져 거꾸로 비치고, 그 위에 두 개의 수신 도장이 찍혀 있다. 비쳐 보이는 본문은 디트로이트 사무소가 라이먼 에드워드 레인(Lyman Edward Lane) 부부로부터 받은 플라잉 디스크 관련 정보를 정리한 첨부 메모를 라드(Ladd) 앞으로 보고하면서, 이를 국방 부처 쪽에 연락관 경로로 전달하자고 권고하는 내용이다. 도장 두 개는 문서가 FBI 본부 연락 섹션에서 1947년 8월 11일 오전 9시 51분에 한 번, 8월 26일 오후 12시 23분에 다시 한 번 접수됐음을 보여준다. 페이지 윗부분에는 두 줄 묶음용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14. p.14

    1947년 8월 8일자 FBI 내부 보고서 '플라잉 디스크'. 미시간 미들랜드의 다우 케미컬에서 1947년 7월 10일 정보가 들어왔다. 1922년경부터 다우 케미컬 직원으로 일해온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이라는 사람이 회사 물리연구실에 어떤 물질을 가져왔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 7월 7일 밤 9시 15분쯤 아내 로라와 들판을 걷고 있었는데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풉' 하는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부셸 바구니 크기만 한 흰 불덩이가 땅에서 30센티 정도 떠서 타고 있었다. 불은 곧 꺼졌고 레인은 녹아 굳은 모래 한 조각, 약 7~8센티 길이의 호를 깡통에 담아 회사 연구소로 가져왔다.

    FBI 요원이 면담했을 때 레이먼드는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부인 로라는 입을 잘 열지 않았고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두루뭉술했다. 두 사람의 진술 사이에는 어긋나는 부분이 뚜렷이 있었다.

    다우 측 책임자들은 이야기 자체는 황당하다고 보면서도 물질은 분석했다. 결과는 이렇다 — 평범한 모래, 방사능 없음, 다만 암모니아 가스를 내뿜음. 모래가 섞이긴 했지만 거의 순은에 가까운 작은 은 덩어리 하나, 방사능 없음. 그리고 녹았다 굳은 모래로 암모니아 냄새가 나고 그 속에 작은 은 방울들이 박혀 있으며 회색을 띤 어떤 물질이 함께 있는데 이 회색 물질에서만 방사능이 검출됐다. 다만 그 강도는 극히 낮다. 다우 직원 중 과거 정부의 로스앨러모스 프로젝트에 있었던 사람은 이 융착 모래가 로스앨러모스 모래와 비슷한 특성을 일부 갖고 있다고 했지만 같은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FBI가 파악한 레이먼드 레인의 신원은 이렇다. 방사능을 띤 야광 도료를 소량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고, 아마추어 사진가이며, 화학과 물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안다. 성격은 매우 별나고 무뚝뚝하며 회사 보안 담당자들에게 적대적이고, 사진과 전기에 관심이 많다. 백인, 1902년 5월 7일 미시간 프리소일 출생. 키 175센티, 체중 66킬로, 짙은 갈색 머리에 정수리는 일부 벗겨졌다. 1918년부터 1923년까지 미 육군 복무. 1924년 미시간 미들랜드 카운티에서 절도로 체포돼 60일을 살았다.

    레이먼드 본인도 부인도 자기들 이야기가 장난이라고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사건이 일어났다는 정확한 위치를 짚어내지 못한다.

    미시간 셀프리지 비행장의 육군 항공대 정보부에 통보됐고 물질도 그쪽으로 넘겼다. 작성자는 디피로(DiPirro). 페이지 하단에는 붉은 색인 스탬프가 찍혀 있다.

  15. p.15

    1947년 8월 8일 저녁 8시, FBI 시카고 사무소가 워싱턴 본부 국장 앞으로 "긴급" 표시를 달아 송신한 텔레미터다. 그날치 시카고 헤럴드 아메리칸 보도를 그대로 옮긴 내용으로, 같은 날 새벽 3시 30분 미시즈 로버트 리틀이 잭슨 파크 비치 앞 미시간 호수 위에서 비행 원반 하나가 떠가는 모습을 봤다고 신문에 진술했다는 것이다. 주소는 시카고 하퍼 애비뉴 6327번지. 시카고 사무소는 그날 리틀과 직접 접촉하지 못했고, 같은 집에 사는 시아버지 조지프 라이너가 대신 한 달쯤 전에도 며느리가 원반을 봤다고 말했으며 며느리 나이는 열여덟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추가 조사 계획이 없다고 명시하고 끝난다. 발신자는 시카고 사무소의 MC SWAIN. 상단에는 FBI 통신과 8월 8일 접수 도장, 우측에는 톨슨·E.A. 태먼·클레그·글래빈·래드·니콜스 등 본부 고위 간부 회람 명단이 인쇄된 박스가 함께 들어가, 이 한 장이 본부 내부로 어떻게 돌았는지 단서를 남긴다. 하단 인덱스 도장은 8월 12일 등재, 사건번호는 62-83894로 찍었다. 한쪽 여백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굵은 손글씨 "FLETCHER" 도 눈에 띈다.

  16. p.16

    분홍색 카본 복사 용지의 뒷면이다. 앞면 텔레타이프 본문이 종이를 뚫고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판독은 어렵고, 대신 두 개의 접수 도장이 또렷이 남았다. 위쪽에는 1947년 8월 9일 오후 9시 28분 법무부 텔레타이프실로 들어왔다는 접수 도장이, 왼쪽 아래에는 1947년 8월 11일 오전 10시 28분 FBI 국내보안과로 다시 접수됐다는 도장이 옆으로 누운 채 찍혔다. 아래쪽 여백에는 손글씨로 "C.F.D" 같은 머리글자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본문 한 통이 법무부 텔레타이프실을 거쳐 FBI 국내보안과까지 이틀 만에 회람된 흐름이 도장만으로 드러나는 페이지다.

  17. p.17

    1947년 7월 21일, 연방수사국 연락 담당관 E. G. 피치가 D. M. 래드에게 올린 내부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소서." 피치는 전쟁부 정보국의 카를 골드브랜슨 대령이 연락과 특별요원 S. W. 레이놀즈에게 전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한다.

    전쟁부는 7월 5일자 뉴욕발 전보 한 통을 받았다. 전문은 "플라잉 디스크에 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원한다면, 일리노이주 릴리 레이크의 리처드 F. 셰이버 씨에게 즉시 연락하라. 그가 원반의 기원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라는 한 문장이었다. 발신자 이름은 적혀 있지 않다.

    골드브랜슨 대령은 레이놀즈에게 별도의 문서도 건넸다. 1947년 7월 7일자로 워싱턴 D.C. 볼링 필드의 제13공군기지 사령관 앞으로 작성된 "플라잉 소서에 관한 보고"라는 메모로, 작성자는 존 D. 시믈러 주니어다. 이 메모에는 플라잉 디스크 목격 사건 두 건의 정보와 통계가 정리되어 있고, 일리노이 강 일대를 그린 지도도 함께 붙어 있다. 골드브랜슨은 이 지도에 표시된 두 목격 사건의 위치가 셰이버의 주소로 적힌 릴리 레이크 부근이라고 설명했다.

    골드브랜슨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FBI의 조사를 요청한다. 목격은 7월 7일에 일어났고, 이름 없는 전보는 7월 5일에 도착했으며, 릴리 레이크는 목격 지점과 가깝다. 그는 셰이버가 플라잉 소서의 기원에 관해 어떤 정보라도 가지고 있는지 FBI가 확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레이놀즈는 이 요청을 상부에 보고하고 조사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메모 끝의 권고는 분명하다. 현장 사무소에 셰이버에 관한 조회를 지시하고, 필요하다면 직접 면담해서 플라잉 디스크에 관해 그가 아는 바를 확인할 것. 결과는 연락과를 거쳐 전쟁부 정보국에 전달한다. 문서 하단에는 1947년 9월 30일 접수 도장과 손글씨 메모, 빨간 연필 표시가 남아 있다.

  18. p.18

    1947년 8월 8일 FBI 본부장이 시카고 지부장(SAC)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본문은 전쟁부(War Department)가 FBI에 7월 5일자 뉴욕발 전보 한 통을 넘겼다는 사실로 시작한다. 전보 내용은 대문자로 적혀 있는데, 플라잉 디스크에 대한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일리노이 릴리 레이크(Lily Lake)에 사는 리처드 F. 셰이버(Richard F. Shaver)에게 즉시 접촉해 보라는 권고다. 셰이버가 디스크의 기원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본문은 전쟁부가 같은 건과 관련해 또 다른 자료를 함께 넘겼다고 알린다. 1947년 7월 7일자 '플라잉 소서에 관한 보고(Report on Flying Saucers)'라는 메모로, 워싱턴 D.C. 볼링 필드에 있는 제33 AAF 기지 사령관 앞으로 존 D. 신들러 주니어(John D. Schindler, Jr.)가 보낸 문서다. 두 부를 첨부했다고 적었다. 전쟁부는 이 메모에 나오는 목격 사건들이 모두 릴리 레이크 인근에서 일어났고, 이 지역이 전보가 가리킨 셰이버의 거주지와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단락이 시카고 지부에 내리는 실제 지시다. 셰이버에 대해 적절한 조사를 벌이고, 조사 결과 그를 인터뷰해서는 안 될 사유가 드러나지 않는다면, 플라잉 디스크에 관해 그가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을 신문하라는 것이다. 본부는 이 사안을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하고 결과를 신속히 보고하라고 못 박았다. 끝에는 첨부물(Enclosure) 표시와 작성자 이니셜 'BJF:nco'가 붙어 있다. 페이지 상단에는 'RECORDED 62-3?4458' 기록 번호와 함께 손으로 적은 붉은 표시, 전보 인용부 일부를 가린 검은 redaction 띠가 보이고, 하단에는 1947년 우편 처리 도장과 라우팅 슬립, 두 개의 손서명이 남아 있다.

  19. p.19

    1947년 7월 16일, 미 육군 전쟁부 작전참모부(WDGS) 미국지부가 FBI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 제목은 "리처드 F. 셰이버(Richard F. Shaver)"다. 메모는 동봉 자료 세 가지를 정리한다. 첫째, 1947년 7월 9일 육군항공대 본부가 받은 무서명 전보 사본인데, 일리노이 릴리 레이크에 사는 리처드 F. 셰이버가 "비행 원반(Flying saucers)"의 기원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둘째, 위스콘신 남부 상공에서 비행기 두 대에 탑승한 목격자 네 명이 본 비행 원반에 관한 보고서 사본. 셋째, 비행 원반이 목격된 지점들과 릴리 레이크의 위치 관계를 표시한 지도. 메모는 비행 원반 목격 시점이 무서명 전보가 들어온 날짜와 가깝고, 릴리 레이크가 목격 지점과 가까운 점을 들어, 셰이버가 비행 원반의 기원에 관한 정보를 가졌는지 조사해 달라고 FBI에 요청한다. 페이지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162-83894, 1947년 8월 18일 기록·색인)과 EX-66 도장이 찍혀 있고, 왼쪽 여백에 손글씨로 "X encl X", 아래쪽에 "memo to add SWR 7/21/47" 라는 처리 메모가 남아 있다.

  20. p.20

    1947년 7월 5일 뉴욕에서 워싱턴 D.C. 미 육군항공대 본부의 폴 게이너 소령 앞으로 보낸 야간 전보다. 발신자는 "비행 원반에 관한 추가 정보를 원하면 일리노이주 릴리 레이크에 사는 리처드 F. 셰이버 씨에게 즉시 연락할 것을 권한다. 그는 비행 원반의 기원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적었다. 전문 끝에는 서명 없이 발신 시각 651P 만 남아 있다. 우상단에는 푸른 잉크로 "AFBIR-CO 1947년 7월 9일 접수"라는 수기 메모가, 본문 위에는 수신인 이름 "PAUL"을 빨간 줄로 두 번 그어 강조한 흔적이 보인다. 좌상단의 "20778"과 하단의 "ENCLOSURE 62" 표시는 문서 정리용 일련번호다.

  21. p.21

    1947년 7월 7일, 워싱턴 볼링 필드의 제3 AAF 기지 사령관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보고서'다. 작성자는 AAF-CAF 연락장교 존 D. 신들러 소령. 비행기 두 대에 타고 있던 목격자 네 명의 진술을 정리해 통계 형식으로 보고하고 있다. 당시 기상은 CAVU, 가시거리는 예외적으로 양호했고 고도 6000피트에 적운이 흩어져 있었다.

    첫 번째 목격은 중부 표준시 11시 45분. 관측자들은 지상 600피트, 원반은 해발 8000피트에 있었다. 위스콘신주 카슈코농에서 처음 포착되어 엘크혼까지 25마일을 15초 만에 가로질렀고, 시속으로 환산하면 6000마일에 해당한다.

    두 번째 목격은 같은 날 14시 30분. 관측자들은 해발 3500피트, 원반은 2500피트에 있었다. 위스콘신주 이스트트로이에 있던 이들은 원반이 이글에서 머스키고까지 22마일을 20초에 주파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는 시속 3960마일에 해당한다.

    비행 양상도 자세하다. 첫 관측에서는 원반이 적운 사이를 옆날 방향으로 수직 하강하다 4000피트에서 멈추고 수평 자세를 잡은 뒤, 15초 동안 25마일을 직진해 다시 정지하고 사라졌다. 두 번째 관측에서는 수평 자세로 20초 동안 22마일을 비행했고, 조종사가 글러브 박스에서 카메라를 꺼내려는 사이 사라졌다가 진로 방향으로 10마일쯤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나타나 6초 만에 최종적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첫 두 목격자는 엘크혼 공항에서 막 이륙한 비행 교관과 학생이었고, 두 번째 두 사람은 비행단 보급장교 R. J. 사우디 대위와 동승자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로 보이는 '62-83594-58'이 빨간색으로 찍혀 있어 이 보고서가 수사기록의 일부임을 가늠하게 한다.

  22. p.22

    일리노이주 북동부와 미시간호 일대를 담은 항공도(World Aeronautical Chart, ILLINOIS RIVER 1390번 도엽)다. 시카고 도심과 호수 위쪽으로 파란 펜으로 화살표와 선이 그어져 있고, 호수 쪽에는 손글씨로 "LEV LAB"이라는 표기가 적혀 있다. 지도 위 표시는 관측 경로나 위치를 지도에 직접 그어 가며 추적한 흔적으로 보이며, 항공도 자체는 표준 인쇄본이다.

  23. p.23

    한 장짜리 세계 항공도 인덱스 시트다. 가운데에는 메르카토르 도법 비슷한 세계 지도가 깔려 있고, 그 위에 격자 모양으로 권역별 항공도 번호가 배열되어 있다. 좌측 여백에는 두 단으로 나뉜 항공 기호 범례 (Aeronautical Symbols / Aerodrome Facilities) 가 늘어서 있고, 지도 하단에는 'World Aeronautical Chart Index' 라는 제목 블록과 함께 투영법 다이어그램, 축척 다이어그램, 주요 다이어그램 (Principal Diagram) 같은 보조 그림이 배치돼 있다. 스캔 해상도가 낮아 본문이나 범례 글자는 대부분 식별이 어렵고, 페이지 자체는 보고서 본문이 아니라 항공도 인덱스 도면 한 장이 통째로 들어간 페이지다.

  24. p.24

    1947년 8월 6일 오후 7시 13분(태평양 표준시), FBI 시애틀 지국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보고다. 사안은 "FLYING DISCS" — 비행 원반 — 으로 분류되어 있고, 8월 5일자 포틀랜드 발 회신 전문에 대한 추가 보고다.

    시애틀 지국은 워싱턴주 맥코드 비행장의 정보 장교들이 자체 조사 끝에 다음과 같이 판단했다고 알린다. 8월 1일 새벽 2시 50분경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한 B-25 폭격기는 사보타주 — 의도적 파괴 공작 — 의 결과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조사 결과 왼쪽 엔진에서 배기관 하나가 타들어 갔고, 그 불이 왼쪽 날개로 옮겨붙어 날개가 부러져 떨어졌으며, 떨어지는 날개가 꼬리를 뜯어내면서 기체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이 사고로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사망했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해밀턴 비행장 소속 제4공군 정보 장교였고, 사고 당시 맥코드 비행장에서 해밀턴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정비 책임자와 동승하던 히치하이커 한 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해 살아남았다. 기내 인원은 총 네 명뿐이었고, 조종간을 잡고 있던 데이비드슨과 브라운은 날개가 부러진 시점에 빠져나갈 시간이 없었다.

    이어 해밀턴 비행장 제4공군 A-2 — 정보 — 담당관인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의 진술이 나온다.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해밀턴에서 워싱턴주 타코마로 파견되어, 해럴드 A.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 두 사람을 만나러 가던 길이었다. 달과 크리스먼은 워싱턴주 모리 섬 상공에서 비행 원반들을 보았다고 신고했고, 그 원반 조각 일부를 손에 넣었다고 주장한 인물들이다. 두 사람은 타코마에서 함께 목재업을 하는 동업자다.

    전문 상단에는 FBI 통신과 접수 도장(1947년 8월 6일)이 찍혀 있고, 톨슨·태머·클렉·글래빈·래드·니콜스 등 워싱턴 FBI 본부 고위 간부 회람 체크리스트가 우측에 늘어서 있다. 좌측 여백에는 "Fletcher" 등 서명·확인 표시와 1964년 11월 18일자 복사본 폐기 도장("212 COPIES DESTROYED")이 함께 남아 있어, 이 전문이 17년 뒤까지 본부 보관철에 살아 있다가 정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25. p.25

    분홍색 용지 한 장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본문은 앞면에서 비쳐 들어온 잉크 자국으로만 남아 거꾸로 뒤집힌 상태이고, 글자를 또렷이 알아볼 만한 부분이 거의 없다. 상단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오른쪽 위에는 거꾸로 찍힌 통신과 접수 도장이 보인다 — "COMMUNICATIONS SECTION / MAR 6 1947 / TELETYPE". 아래쪽에는 같은 면에 두 번 찍힌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이 있다. 한쪽은 오전 9시 1분, 다른 한쪽은 오전 10시 5분 22분으로 시간만 다르고 모두 "INTERNAL SECURITY / F.B.I. / DEPT OF JUST" 라인을 공유한다. 즉 이 페이지는 본문이 아니라, 1947년 3월 6일 FBI 통신과로 들어온 텔레타입 한 장의 뒷면 — 같은 문서를 같은 날 두 시각에 내부보안과가 두 번 받아 접수 처리했음을 보여주는 라우팅 면이다.

  26. p.26

    전문 두 번째 쪽이다.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7월 31일 목요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 — 플라잉 디스크를 처음 목격했다고 보고한 사람 중 하나 — 와 시애틀의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에밀 H. 스미스 — 역시 디스크를 목격했다고 보고한 사람 — 에게서 달과 크리스만을 함께 면담했다. 면담 장소는 같은 날 오후 윈스롭 호텔이었고, 두 장교는 공군의 날 행사를 위해 해밀턴 기지로 복귀하는 길에 달과 크리스만이 제출한 디스크 파편 일부를 들고 있었다. 한편 타코마 타임스의 폴 랜츠 기자와 UPI 전신기자 테드 모렐로는 7월 31일과 8월 1일에 익명 전화를 받았다. 윈스롭 호텔에서 디스크 파편을 두고 가진 면담, 그리고 8월 1일 아침 추락한 B-25기가 사보타주 또는 격추를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정보지만, 사건 전체가 달과 크리스만이 메이리 섬 자갈 채취장에서 주운 광재를 팔아넘기려고 꾸며냈을 가능성을 가리켰다. 익명 전화를 건 인물의 신원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으며, 달과 크리스만은 가능한 한 빨리 다시 면담할 예정이다. 수사는 계속된다. 발신자는 윌콕스. 페이지 하단에 '11-33 PM OK FBI WA CH'와 손글씨로 쓴 숫자 2가 보이는데, 각각 송수신 확인과 페이지 번호로 보인다.

  27. p.27

    FBI 텔레타이프 접수실이 1947년 8월 6일 오후 11시 34분에 받은 전문의 뒷면이다. 분홍색 얇은 종이라 앞면 타이프 글자가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정독은 어렵다. 아래쪽에는 같은 문서가 8월 15일 오전 9시 1분과 8월 22일 오전 10시 9분에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로 다시 접수되었다는 도장이 두 번 더 찍혀 있어, 한 통의 전문이 부서 안에서 며칠에 걸쳐 옮겨다닌 동선이 남아 있다.

  28. p.28

    1947년 8월 14일자로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시애틀 특별수사관(SAC)에게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후버는 에밀 스미스를 심문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스미스는 7월 31일 회동 자리에서 달과 크리스먼이 자신들이 가져온 물체가 비행 원반의 파편이라는 거짓 이야기를 그대로 되풀이했고, 그 이야기가 날조였음을 달이 인정한 것은 8월 2일 토요일 밤이 되어서였다고 주장한다. 만약 스미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익명의 제보 전화를 건 사람은 스미스 본인 아니면 아놀드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당시 두 사람은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에게 넘긴 물질이 실제로 비행 원반 조각이라고 믿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달과 크리스먼이 육군 정보장교들 앞에서 날조 사실을 밝히지 않은 정황도 드러난다. 그들이 사실을 털어놓았다면 두 장교가 그 파편을 들고 사고로 이어진 비행에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버는 달과 크리스먼을 다시 면담해 이 부분을 명확히 정리하고, 그 시점에서 더 이상의 수사는 필요 없다고 지시한다. 하단에는 1947년 8월 18일 접수 도장과 사건 번호 162-80877-60이 찍혀 있다.

  29. p.29

    1947년 7월 9일, 펜실베이니아 체스터의 스프링헤이븐 메드버리로 16번지에 사는 아서 부인이 워싱턴 D.C. FBI 앞으로 손글씨 편지를 보냈다. 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로 학생들이 우편이나 메시지를 보낸다는 그 로켓이 요즘 말하는 '플라잉 소서(Flying Saucers)'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고 묻는 짧은 문의다. 페이지 가운데에는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 분류번호 EX-34가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 파일로 정식 등록됐음을 보여 준다.

  30. p.30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본문은 없다. 종이 아래쪽 가운데에 1949년 1월 14일 오후 1시 36분 FBI 내사부 (Internal Security) 접수 도장이 옆으로 누워 찍혀 있고, 왼쪽 아래에는 짧은 푸른 잉크 손글씨 흔적과 서명으로 보이는 표시가 남아 있다. 가운데 가로 접힘선과 군데군데 얼룩이 보인다.

  31. p.31

    1947년 8월 1일자로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펜실베이니아주 체스터의 스프링헤이븐, 메드버리 로드 16번지에 사는 아서 더글러스 앤더슨 부인 앞으로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7월 9일자로 받은 부인의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린 뒤, 편지 내용을 신중히 검토한 결과 그 안에 담긴 정보가 전쟁부에 흥미로울 듯하여 자신이 임의로 해당 기관에 넘겼다고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편지를 보내준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본문 아래쪽 괄호 안에는 편지를 쓴 사람에 관해 FBI 파일에 식별 가능한 정보가 없다는 메모가 따로 적혀 있고, 그 아래 한 줄로 이 편지는 flying saucers 에 관한 것이라고 분류 단서가 붙어 있다. 좌측 하단의 빨간색 통신과 우편 발송 도장은 1947년 8월 1일 오후에 실제로 발송 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32. p.32

    이 페이지는 앞면 편지가 비쳐 보이는 뒷면 스캔이다. 비친 글자는 좌우가 뒤집힌 채로 흐릿하게 읽히고, 매사추세츠 웰즐리 힐스에 사는 에드워드 호튼 웨더럴에게 1947년 8월 18일자로 보낸 답신의 흔적이 보인다. 8월 9일자 편지를 잘 받았다는 인사, 그리고 미확인 공중 물체 건에 대한 그의 의견을 검토했으나 FBI 가 직접 처리할 사안은 아니라는 취지의 문장이 흐리게 비친다. 뒷면에 또렷하게 찍혀 있는 자국은 두 가지로, 하나는 FBI 우편실에서 1947년 8월 24일 오후 4시 42분에 접수했다는 도장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달 25일자로 발송 처리됐다는 빨간색 "MAILED" 도장이다. 본문 자체는 앞면에 있고 이 페이지는 그 발수신 흐름을 보여주는 행정 흔적이다.

  33. p.33

    1947년 7월 10일 누군가가 FBI에 보낸 손편지다. "여러분께"로 시작해, 봉투에 신문 기사 스크랩을 같이 넣어 보낸다고 말한다. 발신자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 농담 삼아 그 기사를 해독해 봤다"며, 자신의 해독이 맞다면 한 번 읽어 봐 달라고 청한다. 종이에는 FBI 본부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 1947년 7월 14일 "기록·색인 완료" 도장, 파일 번호 62-83894-61X, 동봉물 1점 표시, 그리고 "1947년 7월 31일, WVE, 상부 사본으로 회신 처리"라고 적힌 직원 메모. 1947년 여름 미 전역에 퍼진 비행 원반 보도에 대해 일반 시민이 FBI 앞으로 보낸 비공식 "제보" 중 하나로, 본문 자체보다 FBI가 이런 종류의 편지까지 일일이 기록·색인했다는 사실이 더 두드러진다.

  34. p.34

    뉴욕 힉스빌의 밀드레드 사르바니스가 보낸 손글씨 편지 한 장이다. 내용은 짧고 격앙되어 있다. "인간들의 헛소리에 지쳤다. 원자전쟁을 기다리지 마라. 누군가 태양계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가? 그래서 그들이 비행 원반을 보냈고, 올해 안에 새로운 세계 질서를 세울 것이다. 조언을 부탁한다." 발신자는 "매우 진심으로(Very sincerely) 밀드레드 사르바니스"라고 서명한 뒤, 주소란에 "A.G. 사르바니스 부인, 노트르담가 66번지, 힉스빌, 롱아일랜드, 뉴욕"과 전화번호 "힉스빌 15281 (등재되지 않음)"을 적었다. 발신자 이름은 두 가지 색 잉크로 두 번 적혀 있고, 단어 곳곳을 가위표로 지운 흔적이 남아 있어 흥분 상태에서 쓴 편지로 보인다.

  35. p.35

    문서의 뒷면 스캔으로, 본문은 없고 두 개의 접수 도장만 거꾸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47년 7월 16일 오후 4시 56분에 육군 기술정보부서가 접수했음을 보여 주고, 다른 하나는 같은 날 오후 2시 44분에 FBI 내부보안 현장사무소가 접수했음을 보여 준다. 같은 날 FBI 가 먼저 받고 두 시간 뒤에 육군 쪽으로 넘어간 회람 흐름을 짐작하게 한다.

  36. p.36

    FBI 연구소가 1947년 7월 17일자로 돌린 사내 라우팅 슬립이다. 하르보·롱·파슨스·보그먼·콘래드·다우닝·시주 등 요원과 프레이즐리·키오·밀스 등 여직원 이름이 내선번호와 함께 줄지어 있고, 4층 행정기록실(Administrative Records)과 인사기록실(Personnel Records 6633) 항목도 인쇄돼 있다. 글래빈(M. Glavin, 내선 1732) 칸에 체크 표시와 수령 서명이 들어가, 이 문건이 글래빈 앞으로 회람되었음을 보여 준다. 아래쪽 손글씨로 "No comments because is substantially the [as] set forth in letter"라는 짧은 회신이 달려 있는데, 별도 의견 없이 첨부 편지 내용과 사실상 같다는 뜻이다. 맨 아래 라우팅 종착점은 "CRYPTANALYSIS SECTION ROOM 7630" 암호분석과로 표시되어 있다.

  37. p.37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힌 종이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텍스트는 앞면에서 비쳐 보이는 잉크 자국뿐이고, 식별 가능한 정보는 RECEIVED — INTERNAL SECURITY — F.B.I. 접수 도장과 1953년 무렵의 시각 표기 정도다.

  38. p.38

    1947년 7월 16일자로 FBI 보안과 내부보안실에서 돌린 라우팅 슬립이다. 스트릭랜드와 디폰드 앞으로 보내며, 그 아래 슈퍼바이저 명단(애커먼·바움가드너·블레이클리·일리·브라운·캐스퍼·콜리어·코스텔로·도노휴·플레처·하비·헤이든·로우·제닝스·존스·맥앤드루스·미한·밀너스·파워스·매낸드·스미스·터너·웰슨·윈터먼)과 콘래드·웰치·아놀드·니에지엘스키·타이피스트 같은 담당자의 방 번호가 적힌다. 오른쪽에는 파일 송부, 최신화, 기록 보관, 색인 참조 등 처리 옵션 체크리스트가 붙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손글씨로 “첨부물이 정리되기 전에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오”라는 메모가 서명과 함께 남고, 슈퍼바이저란에는 맥팔랜드의 서명과 방 1932가 들어간다. 우측 상단에는 굵은 사선 손글씨가 비스듬히 페이지를 가로지른다.

  39. p.39

    노란 마닐라 봉투를 스캔한 페이지다. 봉투 윗부분에 손글씨로 "X19"와 사건 번호로 보이는 "62-83894"가 적혀 있고, 본문은 없다.

  40. p.40

    노란 격자 노트 한 장에 파란 잉크로 쓴 손글씨 풀이판이다. 윗줄에는 글자가 뒤섞인 영문 단어, 그 위에는 각 글자의 자리 번호가 매겨져 있고, 아랫줄에는 같은 글자들을 번호 순서대로 재배열한 평문 영문이 적혀 있다. 풀이된 평문을 이어 읽으면 "인류의 헛짓에 지친다, 질서를 흩는 핵전쟁을 기다린다, 태양계가 비행접시들을 보냈다, 그리고 화성인들 아래 세계 질서를 세우려 한다 — 올해 안에" 라는 문장이 된다. 페이지 아래 왼쪽 여백에는 "RAW 7/7/47" 로 보이는 짧은 날짜 메모, 오른쪽 아래에는 풀이자 서명으로 보이는 이니셜과 날짜가 흘려 적혀 있다.

  41. p.41

    사실상 빈 모눈종이 페이지로, 오른쪽 아래 여백에 붉은 색연필로 휘갈겨 쓴 FBI 파일 번호 62-83594-61X 만 보인다. 본문은 없고, 같은 사건철 안에서 다음 묶음의 첫 장 또는 뒷면을 표시하기 위한 라우팅용 표지로 보인다.

  42. p.42

    지역 신문 'County Irritant' 의 독자 투고란 'from our Mail Box' 에 실린 짧은 글이다. 'Calling for Decoders' 라는 제목 아래, Bellmore 에서 보낸 한 단파 무선 애호가의 사연이 담겨 있다. 7월 4일 밤 9시쯤 출처를 알 수 없는 암호 메시지를 단파로 수신했고, 한 시간쯤 뒤 같은 메시지가 글자 그대로 반복되었다.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일단 옮겨 적어 보낸다며 'DITER FO NUHMA SOESNENN TWON LATWA MOTCIA WRA RUSPIDGNIT DREOR LASOR STEYMS SO STEN XLFNIG SKIDS DAN WLIL EST UP WLORD DREOR NERUD TIRMANAS TEAL HIST ARYE' 라는 알 수 없는 문자열을 그대로 전한다. 발신자 이름은 'Radio Ham'. 편집자는 짧게 덧붙인다 — 우리도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부디 합법적인 내용이길 바란다.

  43. p.43

    신문 칼럼의 오른쪽 모서리만 잘려 나온 조각이다. 위쪽에 영문 머리글자 "REER" 의 끝부분이 보이고, 그 아래로 세 단락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첫 단락은 어떤 패턴을 다른 곳에서도 따라 할 만하다는 내용으로, 사진으로 소개되며 어느 조직의 회장인 "Dr." 누군가가 마네킹 인형의 의상을 직접 만들었고, 컬렉션이 특별한 관심을 모았다는 흐름이다. 두 번째 단락은 다양한 출처에서 모인 자료를 연구하고 역사적으로 다루었다는 식으로 끊겨 있고, 세 번째 단락은 어느 유행 감각이 있는 여성이 공들여 머리 모양을 손질해 어떤 스타일에 맞췄다는 묘사로 이어진다. 본문 왼쪽 모서리가 잘려 있어 단어 앞머리가 사라졌고, 오른쪽 여백에는 빨간 잉크로 무언가 휘갈겨 쓴 손글씨가 세로로 적혀 있지만 판독되지 않는다.

  44. p.44

    1947년 7월 21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뉴욕 롱아일랜드 힉스빌의 A. C. 바르바니스 부인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7월 10일자 편지와 동봉물을 잘 받았다고 알리고, 뉴욕 지국 특별수사관 책임자에게 지시해 특별수사관을 보내 추가 정보를 받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끝으로 이 정보를 자기에게 알려준 관심에 감사한다고 맺었다. 편지 아래쪽에는 뉴욕 지국에 보내는 사본 지시가 길게 붙어 있는데, 본문보다 이 부분이 사실상 더 핵심이다. 국에는 이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한 식별 정보가 남아 있지 않으며, 편지에 들어 있던 신문 스크랩의 암호 해독은 연구소로 넘겨졌고 연구소는 작성자의 해독이 대체로 맞다고 회신했다. 연구소가 풀어낸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지쳤다. 핵전쟁이 태양계 질서를 어지럽히기를 기다릴 수 없어 비행 원반들을 보냈으며, 올해 안으로 화성인의 지배 아래 새 세계 질서를 세울 것이다." 뉴욕 지국은 편지 작성자를 면담해 그 신문 스크랩이 어느 신문에서 나왔는지 확인하고, 이어 그 신문사를 접촉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신원을 알아내야 한다. 그 인물은 암호 메시지를 받게 된 경위를 끌어낼 수 있도록 철저히 신문해야 하며, 결과는 즉시 본부에 보고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좌측 여백의 빨간 통신과 접수 도장은 1947년 7월 22일 오후에 발송된 문서임을 보여 준다.

  45. p.45

    문서 뒷면을 찍은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종이를 통과해 비치는 형태로 좌우가 뒤집힌 채 희미하게 보일 뿐이고, 페이지 자체에는 새로 적힌 내용이 없다. 아래쪽에는 FBI 통신부 발송 도장과 메일룸 접수 도장이 보라색 잉크로 찍혀 있는데, 발송 표시는 1947년 7월 23일 오후, 접수 표시는 같은 해 7월 22일 오전 11시 54분으로 읽힌다. 위쪽 가장자리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46. p.46

    1947년 8월 15일 FBI 내부 메모. D. M. 래드 차장이 E. A. 탬 차장에게 보낸 문서로, 후버 국장이 전날 받은 보고와 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정리한 보고서다. 후버 국장은 8월 14일, 로스앤젤레스 신문들이 "소련 첩보원들이 비행 원반의 실체를 알아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헤드라인을 싣고 있다고 알려왔다. 워싱턴 송고로 된 그 기사는, 소련 첩보원들이 비행 원반의 정체를 풀라는 명령을 받았고, 러시아 측은 그것이 미군이 내놓은 새로운 방어 수단의 일종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기사는 최근 전쟁 중 적국이 사용하는 레이더의 효과를 떨어뜨리려고 양철 박편을 공중에 뿌리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 알루미늄 원반이 같은 계열의 새 발전일 수 있다고 적었다. 후버 국장은 FBI가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래드는 소련 첩보원들이 그런 지시를 받았다는 어떤 정보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육군 정보국(G-2), 해군 정보국(ONI), 육군 항공정보국에 확인한 결과 어느 쪽도 해당 기사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됐다. 래드는 국장의 지시에 따라 니콜스에게, 만약 이 기사에 관한 문의가 들어오면 FBI 차원에서는 이야기 자체를 단호히 부인하도록 알렸다. 문서 하단에는 "RECORDED 62-83894-62", "EX-42 32 AUG 19 1947", "63 OCT 2 1947" 등의 접수·기록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여백에는 톨슨·탬·래드·니콜스 등 FBI 수뇌부 회람 명단이 인쇄돼 있다.

  47. p.47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상단에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머리띠가 거꾸로 비쳐 보이고, 본문 활자도 뒷면을 통해 어렴풋이 비친다. 오른쪽 아래에는 "INTERNAL SECURITY 1949년 2월 5일"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이 페이지가 1949년 2월 5일자 FBI 내부보안 부서 접수 메모의 뒷면임을 알려 준다. 페이지 자체에 새로 쓰인 내용은 없다.

  48. p.48

    1947년 8월 18일자 FBI 내부 메모. 발신자는 E. G. 피치, 수신자는 D. M. 래드다. 피치는 지난주 수요일 국장과의 통화를 참조한다며 운을 뗀다. 그때 국장이 전한 내용은 이렇다. 로스앤젤레스 신문들이 워싱턴발 기사를 실었는데, 그 기사는 미국 내 소련 첩보원들이 비행 원반의 정체를 알아내라는 지시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 지시의 근거는 비행 원반이 미 육군 또는 해군의 비밀 병기라는 가정에서 나왔다는 것이고, 기사는 정보원으로 한 연방 수사기관을 지목했다고 한다. 국장의 지시에 따라 연락 담당자들은 군사정보부, 공군정보부, 해군정보국, 그리고 CIG 본부에 일일이 접촉했다. 네 기관 모두 비행 원반에 대해서도, 이 기사의 근거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우하단에 1947년 8월 20일자 FBI 접수 도장과 분류번호 162-83894-63, 같은 해 10월 2일 추가 접수 도장이 함께 보인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이엇 탬·클렉·글래빈·래드 등 국장실 회람 명단이 체크 표시와 함께 줄지어 있다.

  49. p.49

    문서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로, FBI 내부에서 이 문건이 거쳐 간 접수 도장 세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1947년 8월 18일 오후 5시 22분에 법무부 FBI의 레드뉴-니콜스(Ledew-Nichols) 자리에서 한 번, 같은 달 25일 오후 1시 12분에 FBI 연락 부서(Liaison Section)에서 한 번 접수됐고, 별도로 "MR JONES" 앞으로 8월 19일 오전 9시 23분에 들어온 접수 흔적도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문건이 FBI 내부에서 어느 손을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라우팅 흔적만 남아 있다.

  50. p.50

    1947년 8월 14일, FBI 내부에서 코인(J. P. Coyne)이 래드(D. M. Ladd) 앞으로 보낸 사내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CS)". 본문은 짧다 — 비행 원반 신고를 조사하던 미 육군 항공대(AAF) 장교 두 명의 항공기 추락 사고에 관한 사실관계를 정리한 익명 메모(blind memorandum) 사본 두 부를 첨부한다는 것이다. 권고 사항으로는 이 메모 사본 한 부를 연락과(Liaison Section)를 통해 공군 정보부(Air Force Intelligence)에 전달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같은 해 8월 15일 첨부물을 G. G. 젠킨스에게 넘겼다는 손글씨 메모와 FBI 접수 도장(1947년 8월 19일), 사건 파일 번호 62-93894-64가 함께 찍혀 있어, 비행 원반 관련 추락 사고가 FBI 본부 차원에서 공식 파일로 등록되어 공군 정보부와 공유되는 절차를 거쳤음을 보여 준다.

  51. p.51

    어떤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타자기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지만 읽을 수 없고, 여백 아래쪽에는 FBI 접수 도장이 여러 개 거꾸로 찍혀 있다. 1947년 8월 25일 접수, 같은 달 28일 FBI 부국장 태머(Tamm) 앞으로 수령, 그리고 8월 14일과 15일 법무부 FBI 연락과(Liaison Section)에서 수령했다는 도장이다. 도장 옆 손글씨 서명과 ‘8-3’ 같은 짧은 메모가 함께 남아 있다. 본문 자체는 이 페이지에 없고, 문서의 유통 경로를 보여주는 라우팅 흔적만 남은 면이다.

  52. p.52

    1947년 8월 23일 포틀랜드 FBI 지부장(SAC)이 본부로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 보안 사안 X’. 8월 12일 오리건주 캐니언빌과 머틀크릭에서 진행한 조사 내용을 정리한 보고다.

    트라이시티 공항을 운영하는 레이 버질 햇필드는 8월 6일 오후 6시 15분경 학생에게 이착륙을 가르치던 중, 머틀크릭 동쪽 상공에서 고도 5천에서 8천 피트 사이로 보이는 물체를 발견했다고 진술했다. 하늘은 완전히 맑았고 시야도 좋았다. 물체는 알루미늄판처럼 번쩍였다. 햇필드는 곧바로 학생에게서 조종간을 넘겨받아 — 당시 비행기는 400피트 고도였다 — 동쪽으로 따라가며 관찰을 시도했다. 물체는 빠르게 상승하면서 동쪽으로 이동했고, 햇필드가 기내 계산기로 추정한 속도는 시속 1천 마일이었다. 모양은 구형으로 보였고, 처음 봤을 때 오른쪽에 더 어두운 또 다른 물체가 함께 있었다고 기억했다. 비행운이나 소음은 없었다. 약 10분간 주변을 수색한 뒤 햇필드는 학생 노블 엘리슨과 공항으로 돌아와 다시 이착륙을 했고, 거의 같은 400피트 고도에서 두 사람 모두 앞서 본 위치에 떠 있는 같은 물체를 다시 목격했다. 햇필드는 그 구체의 지름을 30피트로 추정했고, 처음 봤을 땐 곧장 다가가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워 보였다고 말했다. 두 번째 목격한 물체도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사라졌다.

    보고서는 햇필드가 미 해군 항공대에서 약 3년 반 동안 중위(JG)로 복무하며 대서양 잠수함 초계 비행을 꾸준히 수행했고, 더글러스 카운티에서 평판 좋은 시민이며 자격을 갖춘 조종사로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동승자였던 노블 엘리슨은 햇필드의 진술을 확인해 줬다. 첫 번째 목격은 햇필드가 조종간을 넘겨받은 뒤 자신에게 알려 줘 알게 됐지만, 두 번째 이륙 때는 두 사람이 동시에 봤다고 했다. 엘리슨은 그 물체를 ‘은빛 공 혹은 풍선’으로 묘사했고, 머틀크릭에서 동쪽으로 약 8마일 거리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매우 빠르게 상승하다 약 45초 만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구체의 지름을 50피트로 추정했고, 두 번째 물체는 곧장 수직으로 상승해 올라간 것 같다고 의견을 보탰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9월 FBI 접수·색인 도장과 함께 1964년 11월 18일 사본 폐기 표시가 남아 있다.

  53. p.53

    FBI 양식의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메모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반대편에서 비쳐 나오는 잉크 자국만 거꾸로 보이고, 글자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와 연락과(Liaison Section)의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고, 둘 다 1947년 9월 3일 오후에 들어온 문건임을 알려 준다.

  54. p.54

    보고서 2쪽 이어지는 본문이다. 목격자는 비행체에서 증기나 비행운 같은 움직임의 흔적을 보지 못했고, 자신이 탄 항공기 소음 때문에 다른 소리도 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오리건주 머틀크리크 인근에서 추가 조사를 벌였지만, 햇필드와 엘리슨이 신고한 물체를 함께 본 다른 목격자는 찾지 못했고, 더 이상의 조사는 진행하지 않는다. 페이지 하단 좌측에 작성자 이니셜로 보이는 FJG:MEB와 파일 번호 62-1331이 들어가 있다. 가운데에는 옅게 비치는 기관 인장이 워터마크처럼 깔려 있다.

  55. p.55

    FBI 내부 라우팅 슬립 양식이다. 1947년 표시 외에 구체적 날짜는 없고, 상단에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1947' 머리글이 인쇄돼 있다. 왼쪽 열에는 디렉터(후버)부터 톨슨·래드·로젠·클렉·글래빈·니콜스·트레이시·해보·캐럴·코인·플레처·러플린·맥케이브·모어·니즈·페닝턴·퀸 탬·타일러 같은 FBI 수뇌부 명단이, 오른쪽에는 간디·그레이·라이언·아틀리 등 비서진 이름과 'Records Section / Stamp and mail / Prepare tickler / Call file / See Me / Call me re this / Note and return' 같은 처리 지시 항목이 늘어선다. 이 슬립에서는 'Mr. R G' 칸에 손글씨 서명이 들어가 있고, 하단에는 같은 손글씨로 'Check with Army / Air Force' 라고 적어 두었다. 슬립을 돌린 사람은 맨 아래 인쇄된 'Edward A. Tamm' — 당시 FBI 부국장 — 으로, 번호 5724 가 함께 찍혀 있다. 즉 탬이 어떤 문서를 처리하면서 '육군·공군에 확인할 것' 이라는 지시를 붙여 내부에 회람시킨 흔적이다.

  56. p.56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1949년 12월 21일 오전 11시 1분에 접수했다는 도장이 상단에 찍힌 문서 뒷면이다. 본문 글자는 없고, 앞면 타자기 글의 잉크가 종이 뒤로 비쳐 흐릿한 거울상으로만 보인다.

  57. p.57

    1947년 8월 20일 오후 3시 22분, FBI 뷰트 지국이 후버 국장에게 'URGENT' 등급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보고다. 제목은 'FLYING DISCS', 즉 플라잉 디스크 목격 사건. 1947년 8월 19일 밤 9시 30분에서 9시 45분 사이에 아이다호주 트윈 폴스 시 서드 애비뉴 노스에 사는 H. H. 헤드스트롬 부부가 헨리 슐츠 부인과 함께 집 앞 현관에 앉아 있다가, 플라잉 소서를 닮은 물체 하나가 도시의 남서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약 10분 뒤 같은 사람들이 똑같이 생긴 물체 열 개가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 열 개가 삼각형 대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 무리가 흐린 하늘 속으로 사라지려는 순간, 왼쪽 측면의 세 개가 떨어져 나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남은 물체들은 대형을 좁히며 계속 북동쪽으로 향했다. 3~5분 뒤 같은 목격자들이 다시 세 개의 물체가 또 한 번 삼각형 모양으로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보았고, 또 3~5분 뒤에는 다섯에서 여섯 개로 이루어진 또 다른 무리가 역시 삼각 대형으로 빠르게 북동쪽으로 지나갔다. 잠시 후에는 서른다섯에서 쉰 개로 추정되는 큰 무리가 같은 방향으로 도시 상공을 지나갔다(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페이지 상단에는 1947년 8월 20일 자 법무부 통신과 접수 도장과 'TELETYPE' 표시가 찍혀 있고, 우측에는 후버 등 수신자에게 회람된 흔적인 손글씨 서명과 'cc: M. Ladd' 메모가 남아 있어, 이 보고가 FBI 본부 최상층까지 곧장 올라갔음을 보여준다.

  58. p.58

    분홍색 라우팅 카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없이 FBI 접수 도장 세 개만 거꾸로 찍혀 있다. 1947년 8월 21일 오전 8시 52분 미 법무부 FBI(TAHM 데스크)가 처음 접수했고, 같은 날 오전 11시 2분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받았으며, 8월 29일 오후 3시 16분에 같은 부서가 한 번 더 접수 표시를 남겼다. 상단에는 바인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59. p.59

    FBI 전문의 둘째 쪽으로, 아이다호 트윈폴스 상공에서 관측된 비행 물체 신고 내용을 이어 적고 있다. 마지막 무리가 사라지고 20~25분 뒤 비슷한 물체들이 도시 상공에 다시 나타나 매우 빠른 속도로 남서 방향으로 이동했고, 신고자들은 이 물체가 세 개·다섯 개·일곱 개씩 무리를 지어 다녔다고 말했다. 이 시점에 헤드스트롬 부인이 옆집에 사는 트윈폴스 경찰서 형사 리처드 프레이저에게 연락했고, 프레이저는 같은 경찰서의 M. E. 라운드트리와 리처드 스콧과 함께 헤드스트롬의 집으로 향해 열두 개의 물체가 편대를 이뤄 도시 위를 남서쪽으로 지나가는 모습을 함께 보았다. 신고자들은 모두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좋은 시민들로, 물체의 고도나 속도는 가늠하지 못했지만 빛나는 비행접시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이 비행기 착륙등도, 유성도 아니라고 보았다. 어떤 물체도 트윈폴스 근처에 내려앉지 않았고, 호를 그리며 나는 것도 아니었으며, 머리 위를 지나갈 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사는 7월 30일자 국 회보 42호 B항 지침에 따라 계속 진행 중이며, 본부가 실험적 활동에 관한 어떠한 정보라도 가지고 있다면 알려달라는 요청으로 다음 쪽이 이어진다.

  60. p.60

    분홍색 라우팅 폴더 표지 뒷면이다. 가운데 아래쪽에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고, 위쪽에 또 다른 접수 도장의 흐릿한 흔적이 같이 남아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61. p.61

    전문 세 번째 장이다. 배니스터는 이 현상을 설명할 만한 육군 항공대 쪽 단서가 있다면 알려 주기를 바란다며, 이런 물체가 공식 해명 없이 계속 나타나면 대중이 패닉에 빠질 수 있다고 적었다. 발신지는 아이다호주 트윈폴스. 끝에는 본부의 수신 확인을 요청하는 한 줄과, FBI 워싱턴 본부에서 5시 31분 PM 에 접수했다는 표시가 붙어 있다.

  62. p.62

    분홍색 라우팅 슬립의 뒷면이다. 1947년 8월 20일 오후 6시 11분에 미 법무부가 텔레타이프를 접수했다는 도장과, 같은 날 오후 5시 34분에 텔레타이프 부서가 받았다는 도장이 위쪽에 찍혀 있다. 좌측에는 "내부 보안 (Internal Security) F.B.I." 가 11시 20분에 접수했다는 도장이, 아래쪽에는 같은 부서가 또 다른 날짜의 오후 3시 16분에 접수했다는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앞장 텍스트가 비쳐 보이는 정도다.

  63. p.63

    1947년 8월 25일자 긴급 전문으로, 후버 FBI 국장이 뷰트(Butte) 지부장(SAC) 앞으로 보낸 짧은 지시다. 후버는 비행 원반(flying discs) 건과 관련해 육군 항공대(Army Air Forces) 측에 광범위하게 문의한 결과, 8월 19일 무렵 아이다호 트윈폴스 인근에서 항공대가 어떤 연구나 실험도 진행하지 않았다는 답을 받았다고 알린다. 그러면서 만약 뷰트 지부가 육군·해군·공군 쪽 정보원에게서 이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즉시 본부에 보고하라고 지시한다. 문서 좌측 하단에는 통신과 접수 도장(1947년 8월 25일)과 함께 COPIES DESTROYED, 270, 1954년 11월 18일 이라는 사본 폐기 기록이 찍혀 있어, 원본만 남기고 사본을 폐기한 흔적이 남아 있다.

  64. p.64

    1947년 8월 22일 자 FBI 내부 메모로, E. G. 피치(서명)가 D. M. 래드 앞으로 보낸 "플라잉 디스크" 건이다. 8월 20일 뷰트(Butte) 지국에서 올라온 텔레타이프를 받고 요청에 따라 사안을 확인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다.

    육군 항공대 측에 직접 문의했고, 조지 D. 개럿 중령이 특수요원 F. P. 그리프스에게 답을 줬다. 광범위하게 알아본 결과, 1947년 8월 19일 무렵 아이다호 트윈폴스 인근에서 육군 항공대가 어떤 연구나 실험도 수행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개럿 중령은 텔레타이프에 보고된 사안을 해명할 수 있는 정보를 자신은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조치 항목으로, 이 메모를 내부 보안과 플레처 감독관 앞으로 회람할 것을 제안한다.

    하단에는 기록 번호 62-83894-64와 EX-30 정리 표시가 남아 있다.

  65. p.65

    FBI 내부 보안 부서가 1947년 12월 28일 오후 5시에 문서를 접수했다는 수령 도장 두 개가 찍힌 빈 페이지다. 본문 텍스트 없이 접수 기록만 남은 라우팅용 뒷면 스캔으로 보인다.

  66. p.66

    1947년 8월 30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명의로 통신과를 통해 샌프란시스코·피닉스 지국장(SACs)에게 보낸 긴급 전문이다. 같은 달 28일자 샌프란시스코 지국 메모에서 다룬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윌리엄 로즈(William Rhodes) 면담 — 비행 원반(flying discs) 보고 관련 — 에 대한 지침이다. 후버는 샌프란시스코 지국에 “A-2 공군 정보부가 피닉스 일정에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으며, FBI가 원하면 단독으로 면담을 진행하되 합동 조사는 불필요하다”고 통보하라고 지시한다. 그럼에도 피닉스 측 공군이 합동 조사를 강행하려 하면, “당신은 합동 조사를 수행할 권한이 없고 피닉스 측이 로즈 면담에 배석하는 것도 불가하다”고 분명히 알리라는 지시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8월 30일 통신과 접수 도장, 9월 8일 접수·색인 도장, 사건번호 62-83894-68, 그리고 1964년 11월 18일 사본 270부 폐기 표시가 함께 남아 있다.

  67. p.67

    FBI 본부에서 발신한 TWX 텔레타이프 한 장의 뒷면이다. 이 면에는 본문 글이 거의 보이지 않고, 앞면의 잉크가 누렇게 변색된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비쳐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다. 페이지 상단 가장자리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본문이 비쳐 보이는 부분 위쪽으로는 "VIA TWX", "TELETYPE", "FROM: BUREAU DIRECTOR", 그리고 미 법무부 텔레타이프 양식 머리글에 해당하는 "UNITED STATES DEPARTMENT OF JUSTICE — Transmit the following message to: COMMUNICATIONS SECTION" 행이 거꾸로 찍혀 있다. 페이지 아래쪽 (정방향으로 보면 위쪽 가장자리) 에는 1947년 9월 25일 오후 2시 28분, 같은 날 오후 2시 55분에 법무부와 FBI 통신과가 각각 접수한 두 개의 수신 도장과, 9월 26일자 FBI 통신과 수신 도장이 겹쳐 찍혀 있다. 본문 내용은 이 면에서는 읽을 수 없고, 앞면의 메시지를 확인해야 알 수 있다.

  68. p.68

    1947년 9월 5일 포틀랜드 SAC가 FBI 국장에게 올린 사무 메모로, 제목은 "비행 원반 — 보안 사안 X"다. 8월 15일 텔레타이프 보고에 이어, 오리건 애게이트 비치에 살던 존 바틀(원래 보고서에는 바틀렛으로 잘못 적힌 인물, 현재 뉴포트 거주)을 특별수사관 로버트 J. 페티존이 직접 만나 진술을 받았다.

    바틀의 진술은 이렇다. 8월 7일 새벽 0시 30분쯤 그는 애게이트 비치 해변 바로 옆 집에서 자고 있었고, 아들이 들어오는 소리에 깼다. 깬 김에 바깥을 보니 바다 위 하늘을 가로질러 환한 빛이 보였다. 그는 곧바로 "비행 원반"을 떠올렸고, 자신이 본 것이 그 원반 중 하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체의 모양이나 크기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다만 바다 위로 약 5마일(8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15~30초가량 지켜볼 수 있었다. 어두워서 속도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본 어떤 비행기보다도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빛이 가끔 하늘에 나타나는 "북극광"과 비슷했지만 그만큼 크지는 않았으며, 위아래로 흔들리듯 고도를 바꾸며 이동하다가 서쪽에서 사라졌다고 — 바다로 떨어졌거나 수평선 너머로 넘어간 듯하다고 — 말했다. 그 이상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메모는 바틀이 뉴포트에서 애게이트·머틀우드 가게를 운영한다는 신원 정보로 끝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1947년 9월 9일), 색인 번호 62-83894-69, 그리고 9월 17일자 추가 회람 표시가 함께 남아 있다.

  69. p.69

    FBI 사무용 메모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인쇄 글자와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다만 같은 종이 아래쪽에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있어 이 메모가 1947년 9월 15일 오전 10시 50분에 국장실 연락과로, 같은 날 오후 1시 20분에 내부보안과로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70. p.70

    1947년 9월 2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앨라배마주 플로렌스의 F. P. 윌리엄스 부인에게 보낸 답장이다. 후버는 8월 10일 자 편지를 잘 받았다며, 자신에게 연락해 준 마음을 고맙게 여긴다고 적는다. 다만 "플라잉 소서"의 위치를 알려주는 사람에게 어떤 미국 정부 기관도 포상금을 내건 적이 없으므로, 이번에는 도움을 드릴 수 없어 유감이라고 전한다. 문서 상단의 빨간 펜으로 적힌 사건번호 62-83894-78과 좌측 하단의 1947년 9월 2일자 통신과 발송 도장이, 이 회신이 실제로 그 날 발송 처리된 공식 문서임을 보여준다.

  71. p.71

    타자된 편지 한 장의 뒷면이다. 앞면에서 비쳐 나온 활자 그림자만 보일 뿐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종이 위쪽에는 끈 구멍과 보강 라벨이 남아 있어 한때 묶음 자료의 일부였다는 흔적을 보여 준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이 두 개 있다. 하나는 "U.S. ATTORNEY'S OFFICE — FILED — JUL 2 4 59 PM '47" 로, 1947년 7월 2일 오후 4시 59분에 미 연방검사실에 접수된 사실을 알린다. 다른 하나는 옆에 같이 찍힌 미 보안관실 (U.S. Marshal's Office) 접수 도장이다. F.B.I. 수령실(Received Room) 표시도 함께 보여, 이 문서가 FBI → 검사실 → 보안관실 라인을 거쳐 정리된 행정 흔적을 남기고 있다.

  72. p.72

    1947년 8월 18일자로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손글씨 편지의 첫 장이다. 발신인은 자신이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후버가 바쁜 사람이라는 점을 알지만 편지를 끝까지 읽어 주길 바란다고 말문을 연다. 본론은 약 5주 전 자신이 사는 집 앞마당에 사람들이 "플라잉 소서"라 부르는 물체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자신이 서 있던 자리에서 1.5미터 남짓 떨어진 지점에 하늘에서 곧장 내려와 엄청난 속도로 추락하더니 폭발했고, 발신인은 그 파편을 지역 경찰서장 아이작 댄리에게 넘겼다고 적는다. 페이지에는 FBI 접수 도장("RECORDED 62-83894-?")과 답신 처리 표시("ANSWERED AUG…"), 1947년 9월자 처리 도장, 그리고 우상단에 원으로 둘러싼 정리 번호 "31"이 함께 들어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에서 정식 사건 번호를 받고 분류되었음을 보여준다.

  73. p.73

    앨라배마 플로렌스 스티븐슨가 417번지에 사는 W. H. 윌리엄스 부인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손편지다. 발신인은 자기 마당에 떨어진 그것 을 — 무엇이라 부르든 — 경찰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자신은 모른다고 적는다. 후버 쪽에서는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 짐작한다고 덧붙인다. 자기는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했고, 곧바로 경찰에 신고해 물건을 넘겼다고 한다. 사흘이나 나흘이 지난 뒤에는 이웃과 함께 근처 풀밭에서 같은 물건 조각을 더 발견해 그것 역시 경찰서로 가져갔다고 쓴다. 그러고는 본론을 꺼낸다 — 만약 포상금이 있다면, 자기가 받을 수 있도록 후버 국장이 직접 챙겨 줄 수 없겠느냐고, 도와 달라고 부탁한다. 끝에는 Very truly yours 로 서명한다. 편지 오른쪽 여백에는 FBI 내부보안과의 7월 9일 오후 2시 접수 도장이 세로로 찍혀 있어, 이 편지가 실제로 후버의 사무실 라인을 타고 접수됐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74. p.74

    손글씨로 이어지는 진술서의 한 쪽이다. 필자는 자신이 주운 "플라잉 소서"를 플로렌스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그것을 다시 워싱턴의 FBI 로 송부했다고 밝힌다. 그 뒤로는 그 물건에 대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다고 적는다. 한편 라디오에서는 플라잉 소서를 찾아내는 사람에게 포상금이 걸려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고, 같은 내용을 버밍햄(B'ham) 신문에서도 읽었다고 한다. 플라잉 소서 이야기는 누구나 들어 보았고 실제로 본 사람도 많지만, 경찰 말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것을 직접 손에 넣어 보관하게 된 사람은 자기 하나뿐이라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그 물건이 누군가의 머리에 맞았다면 그 사람을 죽이거나 심하게 다치게 했을 거라고 덧붙인다.

  75. p.75

    1947년 8월 20일 스프링필드 지부 SAC 가 FBI 국장에게 올린 메모로, 주제는 '비행 원반' 이다. 7월 30일자 국 회보 42호의 연장선이다.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 사는 준 앤더슨 부인이 7월 26일 새벽 6시 자기 집 앞마당에서 비행 원반을 발견했다고 신고했다고 스프링필드 측은 보고한다. 다만 지부 요원이 직접 조사해 본 결과 앤더슨 부인의 정신 상태부터가 미덥지 못했고, 원반 자체도 동네 청소년 몇 명이 장난삼아 만들어 낸 물건으로 보였다. 낡은 나무 접시에 은쟁반, 점화 플러그, 타이머, 오래된 황동관 토막을 얹어 조립한 형태였다고 한다. 같은 물건을 여섯 각도로 찍은 사진을 동봉했다.

    누가 봐도 장난질이라는 결론이지만, 스프링필드 지부는 원반을 곧장 처분하지 않고 일단 보관 중이라고 알린다. 본부가 신기한 자료로서 워싱턴으로 송부받기를 원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처분 지시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메모 하단에는 작성자 약어 JBP:hg 와 파일번호 62-0-1445, 동봉물 여섯 점 표기가 따른다. 본부 접수 도장 (RECORDED · INDEXED · EX 56 · 62-83594) 과 8월 25일자 손글씨 메모가 같이 남았다.

  76. p.76

    본문이 없는 빈 페이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아래쪽 모서리에 누렇게 변색된 테이프 자국과 알아보기 힘든 손글씨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고, 위쪽 가장자리에는 파일 바인딩에 쓰인 펀치 구멍이 뚫려 있다.

  77. p.77

    FBI 파일 봉투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로, 본문 텍스트는 없다. 상단에 빨간 글씨로 사건 파일 번호 62-33898-71만 적혀 있고, 봉투의 가장자리에 테이프 자국과 펀치 구멍이 남아 있다.

  78. p.78

    본부로 송부하는 첨부물의 표지로,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된 "비행 원반"의 사진이 들어 있다는 안내가 타자로 찍혀 있다. 하단에는 SI 파일 번호 62-0-1445와, 손글씨로 적힌 본부 파일 번호 62-83894-71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79. p.79

    원반 형태의 금속 물체를 위에서 내려다본 흑백 사진이다. 둥글고 평평한 본체 중앙에 움푹 들어간 구조가 있고, 그 안에 검은 부품과 코일·스프링처럼 보이는 기계 부속이 놓여 있다. 한쪽 부품에는 "INSIDE"라는 영문 라벨이 보인다. 사진 좌측에는 어두운 직사각형 그림자가 함께 잡혀 있어, 실내에서 조명 아래 두고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80. p.80

    FBI 인덱스 카드 한 장으로,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1947년 7월 26일 발견된 "비행 원반(Flying Disc)" 건을 가리키는 짧은 분류 표시만 남아 있다. 왼쪽에는 번호 8 1 5 가 도장 형태로 찍혀 있고, 오른쪽에는 사건 제목과 장소·날짜가 타자로 한 줄씩 적혀 있다. 본문이라 할 만한 진술은 없고, 카드 자체가 색인 항목이다.

  81. p.81

    원반 모양의 금속 물체를 실내에서 촬영한 흑백 사진이다. 어두운 받침대 위에 원형 디스크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고 뒤쪽에는 회색 배경판이 받쳐져 있다. 디스크 표면은 여러 갈래의 긁힌 자국과 얼룩이 보이며 가장자리는 둥글게 마감되어 있다. 사진 하단 흰 바닥에는 작은 직사각형 라벨이 놓여 있는데 식별 번호로 보이는 표시가 들어 있다.

  82. p.82

    FBI 색인 카드 한 장이다. 카드 상단에는 일련번호로 보이는 515 가 찍혀 있고, 그 옆에 "Flying Disc" 라는 제목과 "Found Saybrook, Ill. 7-26-47" — 즉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된 사건이라는 메모가 타자로 적혀 있다. 카드 하단에는 붉은 잉크로 사건 파일 번호 62-83894-71 이 손으로 적혀 있다. 본문이 없는 색인용 카드이며, 1947년 여름 미 전역에서 쏟아진 "플라잉 디스크" 신고 가운데 일리노이 세이브룩 건을 FBI 본부 파일에 묶어 두기 위한 한 줄짜리 표지다.

  83. p.83

    흑백 사진 한 장이다. 둥근 받침대 위에 작은 금속 장치가 놓여 있고, 가운데 사각형 본체에서 가느다란 전선과 부품들이 위와 옆으로 뻗어 나와 있다. 받침대 왼쪽에는 작은 상자 혹은 책자 같은 물체가 놓여 있고, 오른쪽 위에서 강한 조명이 비춰 장치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캡션이나 라벨, 문서 텍스트는 보이지 않는다.

  84. p.84

    FBI 색인 카드로, 사건번호 819번 항목이다.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된 "비행 원반" 건을 짧게 기록해 둔 한 줄짜리 메모다.

  85. p.85

    원반 형태의 금속 장치를 위에서 내려다본 흑백 사진이다. 가운데에 작은 프로펠러처럼 보이는 회전 부품이 있고, 그 둘레로 배선과 부속 모터가 매달려 있다. 아래쪽 부속에는 'RUSSIA'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미확인 비행 물체로 신고된 잔해를 조사하면서 그 출처를 러시아로 추정해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아래에는 크기를 가늠하도록 자가 함께 놓여 있다.

  86. p.86

    FBI 자료철의 인덱스 카드로, 일련번호 518번.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된 "플라잉 디스크" 사건을 가리키는 한 줄짜리 색인이다. 본문이나 추가 설명은 없고, 카드 좌측에 번호, 우측에 사건 제목과 발견 장소·날짜만 타자기로 짧게 적혀 있다.

  87. p.87

    흑백 사진 한 장으로, 텍스트는 없다. 책상 위에 원반 모양의 작은 물체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세워둔 흰 판이 배경 역할을 한다. 원반 가운데에 둥근 부품이 박혀 있고, 측면에는 막대 같은 부속이 보인다. 책상 아래쪽에는 작은 직사각형 표시가 같이 찍혀 있어, 물체의 크기를 가늠하게 해주는 용도로 보인다. 사건 자료에 끼워 넣은 증거 사진의 인상이 강하다.

  88. p.88

    타자로 친 짧은 색인 카드다. 가운데에 "Flying Disc"라고 따옴표를 둘러 적고, 그 아래 줄에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됨이라는 한 줄짜리 메모가 따라온다. 왼쪽 상단에는 정리 번호로 보이는 819 숫자가 따로 찍혀 있다.

  89. p.89

    원형 받침 위에 작은 전기 부품들이 올라가 있는 장치를 가까이서 찍은 흑백 사진이다. 가운데 둥근 금속 디스크 위로 코일과 진공관처럼 보이는 유리관, 전선이 얽힌 작은 변압기 모양 부품, 모서리 부분의 부속물이 함께 놓여 있다. 사진은 책상 위에 올려둔 상태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며, 사진 자체에는 캡션이나 라벨, 도장 같은 식별 표시가 보이지 않는다.

  90. p.90

    인덱스 카드 한 장에 타자기로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c)" 라는 제목과 함께 1947년 7월 26일 일리노이주 세이브룩에서 발견되었다는 짧은 설명이 적혀 있다. 사건 자체에 대한 본문 서술은 없고, 자료 분류용 표제 카드에 가깝다.

  91. p.91

    1947년 9월 5일 FBI 본부 디렉터가 스프링필드 지부장(SAC)에게 보낸 〈FLYING DISC〉 건 회신이다. 본문은 한 문단으로 짧다. 1947년 8월 20일자 스프링필드 지부의 보고에 대한 답으로, 해당 사안을 적절한 육군 측과 접촉해 처리하고, 만약 육군이 이 비행 원반이라 일컬어지는 물건(alleged flying disc) 의 인수에 관심이 없다면 그대로 폐기해도 좋다고 지시한다. 본문 좌측 상단에 RECORDED 62-83894-71, EX-56 의 사건 번호가 손글씨로 매겨져 있고, 좌측 하단에는 1947년 9월 6일 오후 우편 발송을 찍은 FBI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 의 붉은 도장이 들어가 있어, 이 한 줄 회신이 정식 본부 발신 전문으로 회람·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92. p.92

    1947년 9월 4일 오후 3시 42분, FBI 포틀랜드 지부가 본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발신자 보빗(Bobbitt)은 "비행 원반" 건을 보고한다. 오리건주 오스위고에 사는 레이먼드 듀푸이 부인이 9월 3일 낮 12시 15분에 오스위고 상공에서 동네 비행기가 지나가는 것을 보던 중, 높은 고도에 둥글고 은빛인 물체 열두 개에서 열다섯 개를 보았다고 신고했고, 곧 인터뷰가 진행될 예정이라는 내용이다. 전문은 같은 날 오후 7시 45분에 워싱턴 본부에 접수됐고, 9월 16일 "INDEXED / RECORDED" 도장과 함께 사건번호 62-83894-72로 정리됐다. 윗단에는 톨슨·태머·래드 등 본부 고위 간부 회람 목록이 인쇄돼 있고, 그 옆 여백에는 "M. Ladd" 회람 표시와 플레처(Fletcher) 서명, 손글씨 이니셜 여럿이 어지럽게 적혀 있어 이 한 장이 본부 내부를 한 바퀴 돌았음을 보여준다.

  93. p.93

    FBI 내부 라우팅 슬립의 뒷면 스캔이다. 분홍빛 종이 위에 1947년 9월 초 며칠 사이 같은 문서가 텔레타이프 유닛·국장실·내부보안과·연락 부서 등 여러 부서를 도는 동안 찍힌 접수 도장이 사방으로 겹쳐 있다. 도장은 모두 같은 문서를 추적한 흔적으로, 본문 텍스트는 없고 접수 시각과 부서명만 반복된다. 위쪽 두 구멍은 서류철에 끼웠던 자국이다.

  94. p.94

    1947년 9월 13일, 포틀랜드 지부 특별수사책임자(SAC)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 보안 사안 X"로, 9월 4일자 텔레타이프에서 보고했던 오리건주 오스위고의 레이먼드 듀퓌 부인 목격담을 직접 면담해 정리한 후속 보고다.

    9월 3일 정오 무렵, 듀퓌 부인은 일곱 살 아들과 이웃집 열 살 아이를 앞마당에서 돌보고 있었다. 그때 아이 하나가 "비행기가 하늘에 글씨를 쓴다"고 외쳐 듀퓌 부인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하늘 높이 둥근 은빛 물체 스무 개가량이 떠 있었다. 듀퓌 부인은 그것들이 구형이라기보다 접시 모양에 가깝고, 같은 시각 하늘 다른 쪽을 지나가던 컵(Cub) 기종 경비행기보다 훨씬 컸다고 진술했다. 거리는 아주 멀어 보였고, 표면은 흰 금속성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물체들은 태양과 거의 같은 높이에서 그 왼편으로 호를 그리며 무리지어 있었다. 3~4분간 지켜보는 동안 위치는 바뀌지 않았으나, 그중 큰 것 몇은 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는 듯 보였다. 본 무리에서 한참 떨어져 있던 하나는 듀퓌 부인이 보고 있던 도중 떨어지기 시작해, 지평선의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활강했다.

    남은 물체들은 계속 관찰했으나 하늘이 너무 밝아 눈이 부셔 더 보지 못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문서 하단에는 1947년 9월 17일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73이 찍혀 있다.

  95. p.95

    앞면 텍스트가 비쳐 보이는 빈 뒷면 스캔이다. 상단에 펀치 구멍 두 개, 우하단에 거꾸로 비치는 'RECEIVED' 접수 도장 자국이 남아 있다. 본문 자체는 이 면에 없다.

  96. p.96

    1947년 9월 8일, FBI 내부 회람용 메모. 발신은 E. G. 피치, 수신은 D. M. 래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피치는 앞서 8월 22일 자 메모를 다시 언급한다. 그 메모에서 연락부 소속 특수요원 그리피가 공군 정보부의 G. D. 개럿 중령 주니어와 접촉했고, 그 자리에서 개럿 중령은 1947년 8월 19일 무렵 아이다호 트윈폴스 인근에서 미 육군 항공대가 어떤 연구나 실험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개럿 중령은 그리피에게,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측에 직접 확인해 그 무렵 그쪽에서 실험을 진행했는지 여부를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번 메모의 본론은 그 후속 확인 결과다. 개럿 중령이 이후 레이놀즈에게 전한 바에 따르면, 관할 육군으로부터도 1947년 8월 19일 무렵 트윈폴스 일대에서는 텔레타이프로 보고된 사안을 설명할 만한 어떤 실험도 진행한 적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피치는 이 메모를 내부보안부 플레처에게 회람할 것을 권고한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 태머, 클렉, 글래빈, 래드, 니콜스, 로젠 등 후버 시대 FBI 본부 핵심 라인이 그대로 라우팅 명단으로 나열돼 있고, 하단에는 9월 16일 접수와 9월 22일 처리 스탬프, 그리고 사건번호 62-83894-74가 붉은 잉크로 찍혀 있다.

  97. p.97

    메모 용지의 뒷면을 찍은 스캔이다. 앞면 글자가 비쳐 보이지만 거꾸로 뒤집힌 상태라 본문은 읽을 수 없고, 뒷면 자체에는 새 내용이 없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가운데 부근에 FBI 내부 보안과 접수 도장과 FBI 연구소 접수 도장이 옆으로 누운 채 찍혀 있다. 두 도장은 1947년 9월 9일 오후 3시 1분에 연구소가 먼저 받고, 다음 날인 9월 10일 오전 9시 1분에 내부 보안과로 넘어갔다는 처리 흐름을 보여 준다. 아래쪽 가장자리에는 작은 회색 보정 패치가 한 군데 덧대어 있다.

  98. p.98

    1947년 9월 25일자로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버몬트주 사우스로열턴 학교 교육감 A. 코트니 파커에게 보낸 회신 편지다. 후버는 파커가 9월 17일에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리며, 가까운 시일 안에 뉴욕 올버니 지부 요원이 직접 찾아가 파커가 가지고 있는 추가 정보를 청취할 것이라고 전한다. 이어 이 사안을 자신에게 알려준 호의와 관심에 감사한다고 짧게 맺는다. 편지 아래에는 올버니 지부에 사본을 별도 발송한다는 메모와 사건 번호 62-63804, 정리 번호 75, 작성자 이니셜 RGF:cmw가 적혀 있다. 좌측 하단의 COMMUNICATIONS SECTION 도장은 1947년 9월 26일 오후에 FBI 통신과를 통해 발송 처리되었음을 알려준다.

  99. p.99

    1947년 9월 25일 FBI 본부 국장이 올버니 지부 특수요원 책임자(SAC)에게 보낸 한 쪽짜리 회람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 정보 제공자 A. 코트니 파커". 본문은 두 단락으로, 버몬트주 사우스 로열턴 교육감 A. 코트니 파커가 보낸 편지 사본과 그 수신 확인 회신 사본을 첨부한다고 알리고, 올버니 지부의 요원이 파커를 직접 방문해 플라잉 디스크에 관해 그가 가진 추가 정보를 받아오라고 지시한다. 문서 하단에는 1947년 9월 26일자 FBI 통신과 발송 도장과 9월 25일 오후 4시 16분 접수 표시, 그리고 "62-83894-75" 사건 번호가 붉은 글씨로 적혀 있어, 이 회람이 FBI 내 플라잉 디스크 사건 파일에 그대로 편철되었음을 보여준다. 왼쪽 여백에는 톨슨, 태머, 래드, 니콜스 등 본부 고위 간부 회람 목록이 인쇄돼 있다.

  100. p.100

    1947년 9월 17일, 버몬트 주 교육부 오렌지-윈저 학구 교육감 A. 코트니 파커가 워싱턴 D.C. 연방수사국 앞으로 보낸 편지다. 같은 날 오후 3시 40분, 뉴햄프셔 주 레바논 북쪽 릭스 레지스 중턱을 오르던 그는 벌집을 떠나 하늘 한 자락을 맴도는 꿀벌들을 유심히 보던 중, 동쪽에서 빠르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떠다니는 물체를 목격했다. 크기는 테니스공만 했고 색은 솜처럼 희었다. 곧이어 비슷한 크기에 접시 모양을 한 또 다른 물체가 뒤따라왔는데, 앞 물체와 일정한 기울기와 거리를 유지하며 함께 날았다. 두 물체는 그의 시선과 약 5도 각도를 이루었고, 1분 넘게 시야에 머물다가 햇빛에 가려 사라졌다. 그는 만약 밤하늘에서 자신의 6인치 망원경으로 같은 광경을 봤다면 금성과 토성이 갑자기 합쳐져 지구 가까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FBI 접수 도장은 1947년 9월 19일자이며, 문서번호 62-83894-75로 정리되어 있다.

  101. p.101

    타자기로 친 편지의 뒷면 스캔. 앞면 본문이 종이를 통과해 거꾸로 비쳐 보일 뿐, 뒷면 자체에는 별도 본문이 없다. 아래쪽에 FBI 내부 보안(Internal Security) 부서의 접수 도장 — 오후 5시 5분 수령 — 만 또렷하게 남아 있다. 상단의 검은 얼룩 두 개는 펀치 구멍 자국이거나 종이 손상으로 보인다.

  102. p.102

    1947년 9월 8일 자 FBI 국장실 내부 회람 메모다. 라디오·신문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이 국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고, 그 편지에 "수신 확인 후 FBI로"라는 메모와 "급해서 죄송합니다 — 서부행 항공우편에 맞추려고 합니다"라는 짧은 손글씨가 함께 적혀 있었다고 전한다. 메모는 그 편지의 작성자인 매들린 그윈 머천트 부인에 대해 FBI 내부에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오른쪽 여백에는 톨슨·태머·클레그·래드·니콜스 등 국장실 핵심 간부 19명의 회람 명단이 인쇄돼 있고, 왼쪽 여백에 누군가가 손으로 "flying discs"라고 적어 두어 이 편지가 비행 원반 관련 제보였음을 가리킨다. 하단에는 문서번호 62-83894-76 과 1947년 9월 18일 자 FBI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103. p.103

    문서 뒷면 스캔으로, 앞면에 찍힌 도장이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보인다. "U.S. DEPT. OF JUSTICE" 와 1947년 9월 8일 오후 5시 09분, 같은 날 오전 9시 45분 두 차례의 접수 시각, "RECEIVED — LADD, FBI" 라벨이 확인된다. 본문은 없고 라우팅·접수 기록만 남은 면이다.

  104. p.104

    1947년 7월 13일, 뉴멕시코 산타페에 사는 매들린 그윈 머천트(Madeleine Gwynne Merchant) 부인이 로스앤젤레스의 우체국으로 라디오 방송인 월터 윈첼(Walter Winchell) 앞으로 보낸 편지다. 머천트는 동봉한 편지가 요즘 "discs(원반)"라고 불리는 것에 관한 내용이라며, 이 편지의 내용을 방송으로 언급하지 말고, 전쟁부 관리·FBI 요원·자신만큼 애국심이 있고 "discs"에 관한 현장 데이터를 계속 수집할 수 있도록 1만 달러 이상 후원할 의향이 있는 미국인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정중한 응대를 받은 이들로 로스앨러모스 원자력 프로젝트 통신장교 허버트 C. 지(Herbert C. Gee) 대령, 같은 프로젝트의 보안 담당 시드니 뉴버거(Sidney Newburger) 소령, 산타페에 있는 군 정보부 윌러드 짐머(Willard Zimmer)를 들면서도 "수표도, 경비 처리도 아직 한 푼 없다"라고 괄호 안에 덧붙인다. 편지 상단에는 빨간 글씨로 "Ack + FBI(접수 + FBI)"라는 처리 메모가, 오른쪽 여백에는 "급히 쓰느라 양해 바람 — 항공우편으로 부치려고"라는 자필 메모가 적혀 있다. 하단 "62-83894-76"는 FBI 파일 번호이며 "ENCLOSURE(동봉물)" 표시도 함께 찍혀 있다.

  105. p.105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의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힌 빈 뒷면이다. 도장에는 7월 9일 오후 3시 36분 접수 기록이 보인다. 앞면 글씨가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고, 상단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106. p.106

    편지 두 번째 장이다. 발신자는 자신이 지난 넉 달간 접촉한 사람들의 명단을 이어서 적는다. 산타페 FBI 책임자 프랜시스 핀리, 워싱턴 AAF 자재사령부에서 너새니얼 트와이닝 중장을 보좌하는 S.R. 브레놀트 장군, 앨버커키 커틀랜드 기지의 벙커 대령 밑에 있는 에뮤올트 대령, 전 주중대사 패트릭 헐리 장군 — 워싱턴 쇼어햄 빌딩 1210호와 산타페에 거처를 두고 있다 — 그리고 헐리 장군의 주선으로 받은 전쟁부 장관 로버트 패터슨의 서한까지 줄줄이 나열한다. 발신자는 이들 모두가 큰 관심을 보였고 한결같이 "좋다, 그대로 진행하라"는 식으로 응했다고 전한다. 그러면서 정작 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자금 때문이라고 털어놓는다. 어느 예산 항목도 이 종잡을 수 없는 "디스크"를 다룰 비용을 허용하지 않았고, 뉴멕시코 민주당 상원의원 칼 해치에게 따로 예산 배정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으나 일주일만 더 지체되면 늦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지난 넉 달간 자신이 로스앨러모스의 과학 책임자 노리스 브래드버리 박사와 지(Gee) 대령 등에게 이 비행 "디스크"가 실재한다고 직접 보고해 왔으며, 위에 나열한 인물 누구에게든 사실 확인을 요청해도 좋다고 적는다.

  107. p.107

    편지 5쪽째에서 발신자는 이 자료가 기밀로 분류되어 있고 지금도 그렇다고 못 박는다. 그는 지(Gee) 대령으로부터 언론에 이미 공개된 내용 이상으로는 말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 자신의 작업을 더 진전시켜 줄 만한 상대를 빼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한다. 수신자에게는 위에 언급한 사람들에게 자신이 과학적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했는지, 조치가 빨리 이어진다면 머지않아 나라를 크게 구할 수 있는지 조용히, 그러나 가능한 한 빨리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다. 자기 혼자라도 추측은 하지 말고 그저 움직여 달라고 거듭 요청한다. 전쟁부가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는 위의 사람들이나 적절한 정부 관계자, 또는 기부할 사람에게가 아니라면 이 편지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어떤 식으로도 입에 올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는 그곳 FBI에 전화해서 그쪽에서 다시 이쪽의 프랜시스 핀리(Francis Finley)에게 확인 전화를 걸도록 하라고 권한다. 전쟁부가 자료를 전국적으로 공개하게 되면 막후 사정을 담은 단독 기사를 약속하면서, 지금 움직이는 일이 수신자 자신의 목숨과 "디스크(disc)"가 무엇인지 궁금해해 온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끝부분에서 그는 필요한 과학적·정부 측 인맥은 모두 갖추고 있고, 남은 것은 그 일을 실행할 수단뿐이며, 주제를 다루고 추가 현장 조사를 확보할 만한 배경도 갖추고 있다고 자신한다.

  108. p.108

    편지의 마지막 장으로, 발신인 매들린 그윈 머천트(Madeline Gwynne Merchant) 부인이 본인의 이름과 서명으로 마무리한 면이다. 그는 자신이 지금 필요한 자료를 기술적으로 설명하고 적절한 조치를 끌어낼 수 있다고 말하면서, 단 그 일을 해낼 수단이 주어져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지금 시점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어 유감이지만 국가에 대한 의무가 그 위에 있다고 적는다. 이어 그는 "뭐? 여자가 이런 자료를 다룬다고?" 하는 반응을 이전에도 마주한 적이 있고 자신의 서명이 수신자에게도 비슷한 반응을 일으킬 거라고 예상한다고 쓴다. 그래도 분명히 해두자며, 정보를 들고 들어오는 쪽이 여자가 맞고, 그 정보는 남자들이 찾아 나섰던 바로 그 정보이며, 자신은 그에 합당한 일을 하고 있다고 못 박는다. 끝맺음은 "가장 정중하게(Most respectfully)" 이고, 그 아래 손글씨 서명과 타자로 친 이름이 함께 들어간다. 추신에서는 자신이 전직 신문기자였고 그 점이 자랑스럽다는 것, 나이는 서른아홉이지만 옷차림과 느낌은 좀 더 젊은 편이라는 것을 덧붙인다. 그러고는 다시 한 번, 이 편지가 발송된 도시 이름조차 언급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이유다. 자신의 기여분을 그저 확인하고, 약간의 돈을 자기에게 보내준 뒤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괄호 안에는 프랜시스 핀리(Francis Finley)가 사정이 그렇게 빠듯하지만 않다면 자신에게 휘발유값 정도는 대줬을 것이라는 사적인 한 줄을 덧붙인다. 좌상단에는 페이지 번호 (4) 가, 하단 여백에는 손으로 쓴 숫자 4 가 보인다.

  109. p.109

    1947년 9월 14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에스틸에서 누군가 FBI 앞으로 손글씨 편지를 보냈다. 본인이 "하늘로 올라간" 직후 주워 모은 파이프 두 개를 동봉해 우편으로 부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며, 비행 접시(Flying Saucers) 라는 표현이 본문 옆 여백에 그대로 적혀 있다. 잉크가 번지고 일부 글자가 손상되어 끝부분 문장은 단어 단위로만 읽을 수 있다. 페이지 위쪽에는 FBI 사건 번호 7407, 아래쪽에는 1947년 9월 18일 접수 인덱스 도장과 같은 해 10월 22일 자 "5 20 OCT 22 1947" 라우팅 인장, 그리고 본 문서가 후일 62-83894-77 번으로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주는 RECORDED 도장이 함께 남아 있어 비행 접시 관련 일반 시민 제보를 FBI 가 어떻게 사건철에 묶어 처리했는지가 한눈에 드러난다.

  110. p.110

    줄이 그어진 노트 용지의 뒷면 스캔이다. 위쪽 가장자리에 구멍 세 개가 뚫려 있고 본문은 비어 있으며, 아래쪽에 누런 테이프 자국과 함께 FBI 내부보안과의 1949년 2월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종이가 원래 어떻게 철해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뒷면 흔적이다.

  111. p.111

    1947년 8월 28일 자 미 정부 표준 양식 64호 사내 메모로, 발신자는 T. F. Baughman, 수신자는 H. T. Harbo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보틀리(Route 1, Box 30)에 사는 믹슨 부인(Mrs. J. E. Mixon)이 보내온 편지와 물건의 처리를 묻는 내용이다.

    메모는 이렇게 적는다. 믹슨 부인이 보낸 1947년 8월 14일 자 편지와, 본인이 "비행접시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물질이 8월 19일 연구소(Laboratory)에 도착했다. 분석 결과 그 물질은 분말 형태의 비누석(soap stone)으로 확인되었다.

    Baughman은 이 건이 수사부(Investigative Division)와 보안부(Security Division)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제출된 물질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그리고 믹슨 부인에게 어떤 식으로 회신할지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페이지 왼쪽 여백에 큰 손글씨로 "FLYING SAUCER"라는 표기가 세로로 들어가 있어, 이 메모가 1947년 비행접시 관련 일반 시민 제보 처리 흐름에 들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단에는 "RECORDED & INDEXED" 도장과 FBI 파일번호 62-83894, 1947년 9월 18일 자 접수 표시가 찍혀 있다.

  112. p.112

    문서 뒷면 스캔이다. 본문 없이 두 개의 접수 도장만 찍혀 있다. 하나는 FBI 연구소 분과(FBI Laboratory Division) 의 1949년 2월 5일 오후 3시 30분 접수 도장, 다른 하나는 내부보안(Internal Security) 부서의 푸른 잉크 접수 도장이다. 상단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종이 왼쪽 가장자리가 약간 찢긴 상태다.

  113. p.113

    1947년 9월 4일자 미 정부 부처 내부 메모로, J. P. 코인이 D. M. 래드에게 보낸 "비행접시" 건이다. 8월 28일자 보엄(Baughman)이 하보(Harbo)에게 보낸 메모를 참조한다고 적은 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에스틸의 J. H. 믹슨 부인이 제출한 물질의 최종 처리 방향을 정리한다. 믹슨 부인은 이것을 비행접시 조각이라고 신고했지만, 분석 결과 가루로 부서진 비누석(soap stone)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이다. 코인은 해당 물질을 부인에게 돌려보내되, 비누석 가루로 확인되었다는 안내 편지를 함께 보내자고 권고한다. 하단에는 9월 8일과 11일자로 "편지 발송 완료" 라는 짧은 손글씨 메모가 있고, 보엄·하보의 이름이 여백에 적혀 있다. RECORDED & INDEXED 도장과 사건번호 162-83894-79, 1947년 9월 18일 접수 표시가 함께 찍혀 있어, FBI 내부 파일로 정식 등록된 문서임을 알 수 있다.

  114. p.114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페이지 아래쪽 (스캔 방향에서는 거꾸로) 에 FBI 실험부 (Laboratory Division) 접수 도장 두 개가 파란 잉크로 찍혀 있다. 두 도장 모두 1947년 9월 5일 오후, 한 시간 남짓 차이로 접수된 기록을 남긴다. 종이 반대쪽에 타자로 친 본문이 비쳐 보이지만 거꾸로 뒤집힌 상태라 별도 읽을거리는 아니다. 페이지 상단에는 보관용 펀치 구멍 두 개와 갈색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다.

  115. p.115

    1947년 9월 4일 피닉스 지국 SAC 가 FBI 국장 앞으로, 부국장 D. M. 래드의 주의 환기 표시를 달아 보낸 〈비행 원반 관련 보고〉 부내 메모다. 8월 28일자 샌프란시스코 지국 서한과 8월 30일자 본부 텔레타입을 참조하면서, 샌프란시스코 측 서한이 9월 2일에야 피닉스에 도착했음을 먼저 짚는다. 본문 사정은 이렇다. 8월 29일에 조지 퓨게이트 주니어라는 인물이 피닉스 지국을 찾아왔다. 그는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제4공군 A-2 (정보참모부) 소속을 증명하는 신분증과, 같은 부서 도널드 스프링거 대령 명의의 명령서를 제시했다. 명령서는 그를 즉시 피닉스로 보내 FBI 사무소에 접촉하라는 것이었고, 도착 시 FBI 특수요원 한 명이 동행해 함께 윌리엄 로즈를 면담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로즈는 앞서 비행 원반을 촬영했다고 신고한 인물이다. 명령서는 샌프란시스코 FBI 지국이 퓨게이트의 임무에 관한 추가 정보를 별도로 전달할 것이라는 점도 적었다. 피닉스의 ASAC 리버 M. 클레그는 샌프란시스코 SAC 해리 킴볼과 통화로 위 내용을 확인했다. 킴볼은 A-2 측 인원이 피닉스에 도착해 로즈 신문에 협조 요청을 해 오면 지원해 달라는 서한을 이미 보냈다고 말했고, 비행 원반 건에서 스프링거 대령과 긴밀히 협력해 왔으며 샌프란시스코 지국에 다수의 비행 원반 신고가 들어와 그 결과를 스프링거와 충분히 논의했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또한 본부 정책에 따라 본 사안을 처리해 왔고 본부와도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종합해 피닉스 지국은 특수요원 J. 베일리 브라우어가 퓨게이트와 함께 윌리엄 앨버트 로즈 면담에 참여하도록 했다. 면담 결과는 본 메모 뒤에 이어진다고 끝맺는다. 페이지 하단과 여백에는 "RECORDED", "INDEXED", 사건번호 "162-83894",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54" 같은 FBI 접수·등록·사본 폐기 도장들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정식 접수·인덱싱된 뒤 1954년에 사본이 폐기 처리된 행정 흔적을 함께 보여 준다.

  116. p.116

    본문이 없는 페이지다. 종이 뒷면 스캔으로, 반대편에 찍힌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비쳐 보일 뿐이다. 좌측과 우측 가장자리에는 보존용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고, 상단 모서리는 일부 찢겨 나갔다.

  117. p.117

    피닉스 파일 62-213호. 윌리엄 앨버트 로즈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노스 14번가 4333번지에 살며 같은 주소에서 파노라믹 리서치 래버러토리와 하비숍을 운영하는 인물로, 그는 1947년 7월 7일 오후에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그날 오후 피닉스에는 폭풍이 지나갔고 5천 피트 상공에는 짙은 적운 모양의 회색 구름이 깔려 있었다. 시속 15마일의 바람이 불었다. 오후 5시쯤 로즈는 집에서 하비숍으로 걸어가던 길에 P-80 항공기 같은 소리를 들었는데, 소리는 서쪽에서 다가오는 듯했다. 하늘을 살피던 그는 북동쪽에서 어떤 모양의 비행체를 보았다고 진술했다. 지름은 20~30피트가량, 추정 속도는 시속 100마일이었고, 비행체는 반지름 0.5~0.75마일 정도의 작은 원을 그리며 나선을 그리는 듯 보였다. 처음 들리던 소리는 어느새 사라졌고, 그는 가게에서 브라우니 120 박스 카메라를 급히 가져와 비행체가 첫 번째 원을 마칠 때 한 장을 찍었다. 비행체가 두 번째 회전을 시작하면서 자기 자리에서 북서쪽으로 옮겨 갔을 때 그는 다시 한 장을 찍었고, 이 두 번째 사진이 첫 번째 사진보다 비행체의 모양을 더 잘 보여 준다고 했다. 이 사진은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A-2 정보 참모차장실이 1947년 8월 4일자로 보낸 공문과 함께 FBI에 제출되었고 증거물 II로 지정됐다. 로즈는 비행체가 왼쪽 아래로 도는 나선을 마치지 않고 오른쪽으로 기울며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고 설명했고, 두 번째 사진은 비행체가 기우는 바로 그 순간에 찍었다고 덧붙였다.

    비행체가 마지막으로 회전을 그리던 그 지점에서 로즈는 비행체의 고도를 1천에서 2천 피트 사이로 추정했다. 그는 비행체의 모양이 1947년 5월호 〈머캐닉스 일러스트레이티드〉 표지 그림과 거의 비슷했으며 다만 그 그림과 달리 자기가 본 비행체는 뒤로 가는 모양새였다고 했다.

    로즈는 자기가 본 비행체를 당시 쏟아지던 ‘플라잉 디스크’ 목격담과는 별개로 보았다고 했다. 다만 신문기자와 3분짜리 인터뷰를 한 뒤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는 자기가 한 말을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부풀려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말한 크기와 거리는 모두 추정치라고 했고, 그동안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가까운 수치를 잡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실험 작업을 해 왔다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워싱턴 D.C.의 해군 병기연구소에서 일했고 1942년 초에 그곳을 떠났다. 피닉스로 돌아온 뒤에는 영국 정부가 훈련용으로 임차해 운영하던 피닉스 인근의 팔콘 필드에서 일했고, 그곳에서 계기 비행 훈련, 항공기 식별, 사격 훈련을 가르쳤다. 취미는 과학과 물리, 무선, 전자공학, 천문학이라고 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라디오 조종 비행기 모형을 보여 주었다. 작업의 대부분은 변압기 제작이지만, 생계를 위해 음악 실력에도 의지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118. p.118

    피닉스 파일 62-213, 3쪽. 비행체를 촬영한 결과를 설명하면서 로즈는 물체가 밝은 배경 위에 어둡게 찍힌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어두운 배경 위에 밝게 찍힐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사진 한가운데 (전시물 II) 보이는 밝은 점은 온실 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로즈는 비행체가 귀에 들리는 어떤 소음도 내지 않았고 프로펠러의 존재도 감지할 수 없었다고 거듭 말했다. 또 KTAR 라디오 방송국에서 보도가 나간 뒤 — 자신이 육군 관계자들이 사진을 분석 중이며 이것이 일급 비밀이라고 말했다는 내용 — 출처를 추적해 봤더니 방송국은 그 보도가 워싱턴 D.C. 발 UP 통신 기사였다고 알려 줬다고 말했다.

    관찰과 심문을 통해 얻은 로즈의 인상착의는 다음과 같다. 나이 30세, 생년월일 1916년 12월 29일, 출생지 캔자스주 가든시티, 키 6피트 3인치, 몸무게 155파운드, 눈은 파란색, 머리는 갈색, 학력은 피닉스 유니언 고등학교, 결혼해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로즈를 면담할 때 브라워는 자신을 연방수사국 요원이라 밝히고 신분증도 제시했다. 다만 퓨게이트의 요청에 따라 형식상 그저 미국 정부 대표로만 소개됐고, 정확한 소속은 로즈에게 알리지 않았다. 브라워는 절차가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자기가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적었다. 면담이 끝날 무렵 퓨게이트는 로즈에게 네거티브 필름을 넘겨 달라고 요청했고, 로즈는 흔쾌히 응했지만 지금 갖고 있지 않으니 다음 날 아침에 FBI에 직접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로즈가 그 필름을 다시 돌려받기를 원한다고 하자 퓨게이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브라워는 면담장을 나온 뒤 퓨게이트에게 필름이 로즈에게 반환되겠느냐고 물었고, 퓨게이트는 반환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답했다. 그러자 브라워는 자신이 그 네거티브를 받으려면 로즈에게 퓨게이트의 신원을 알려야 하며, 또 네거티브가 일단 퓨게이트에게 넘어가면 돌려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함께 고지해야 한다고 말해 두었다.

  119. p.119

    피닉스 지부 파일 62-213, 보고서 4쪽이다. 1947년 8월 30일 아침, 로즈가 네거티브 필름을 들고 피닉스 지부에 들렀을 때 FBI 측은 곧바로 필름을 받지 않고 먼저 한 가지 사실을 알렸다. 이 필름은 미 육군 항공정보부 소속 푸게이트에게 넘어갈 예정이며, 일단 넘기면 돌려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로즈는 이 조건을 모두 이해한 상태에서 필름을 피닉스 지부에 넘겼고, 군에 인도된다는 점, 그리고 본인이 다시 받지 못한다는 점에 동의했다. 피닉스 지부는 해당 사안이 처리되기 전까지는 합동 수사를 진행하지 말라 는 본부 텔레타이프 지시를 받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군 당국이 로즈 면담 결과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므로, 이 보고서 사본은 A-2 (육군 항공정보부) 로 별도 송부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하단에 작성자 약호 JBB-kb, 샌프란시스코 지부 사본 표시, 파일 번호 62-213 이 다시 들어가 있다.

  120. p.120

    1947년 9월 13일 오후 8시 8분, FBI 포틀랜드 지부가 본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전문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포틀랜드 경찰청장 레온 V. 젱킨스가 9월 11일 오후 5시 15분경 직접 목격한 사항을 진술했다고 전한다. 그가 본 물체는 기상관측 기구만 한 크기에 알루미늄이나 그와 비슷한 밝은 금속으로 보였고, 포틀랜드 상공을 약 1만 피트 높이에서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빠르게 가로질렀다. 물체는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약 1분 만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같은 장면을 젱킨스 차량을 운전하던 순경 H. S. 레이니가 함께 봤고, 다른 포틀랜드 경찰관들도 본 것으로 추정된다. 12일자 포틀랜드 신문 《오레고니언》에 짤막한 관련 기사가 실렸으며,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마무리한다. 문서 우측 상단에는 후버 국장실 회람용 라우팅 칸이 찍혀 있고, 우측 하단의 분류번호 62-83894-81 과 SEP 19 1947 접수 도장이 FBI 중앙 색인에 정식 편철된 자료임을 보여준다.

  121. p.121

    분홍빛 접수 슬립의 뒷면이다. 위쪽에는 1947년 9월 14일 0시 10분 FBI 법무부 텔레타이프 수신반(Received Teletype Unit)에서 찍은 접수 도장이 똑바로 찍혀 있고, 아래쪽에는 9월 15일 오전 10시 3분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접수 도장, 9월 16일 오후 2시 25분 연락반(Liaison Section) 접수 도장, 그리고 9월 24일 오전 9시 30분의 또 다른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종이 위쪽에는 바인더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본문 텍스트는 없으며, 한 통의 텔레타이프가 14일 자정 직후 FBI에 들어와 며칠에 걸쳐 부서 사이를 돌며 도장으로만 흔적을 남긴 라우팅 슬립이다.

  122. p.122

    1947년 9월 13일 오후 4시 15분, FBI 노퍽 지국이 본부장(디렉터)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입 전문이다. 비행 원반 사건. 버지니아주 오션뷰 A뷰 애비뉴 169번지의 스톡턴 여사가 테네시주 셔운스에서 비행 원반을 목격했다고 신고했다. 사위 휴 제닝스(벨그레이브 111번지, 오션뷰 거주)가 같은 물체를 함께 봤다고 확인했다. 제닝스의 묘사로는 물체는 풋볼 모양이었고, 약 2천 피트 고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채 남쪽으로 이동했으며, 공중에서 앞뒤로 회전했다. 속도는 컵 비행기 정도였다.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약 5분간 보였고, 세부 형태는 식별할 수 없었다. 제닝스 본인은 이 물체가 원반은 아니었고, 풀려 날아간 기상관측 풍선이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봤다. 노퍽 지국은 추가 조사 없이 종결(RUC) 처리하고, 작성자 로비(Robey)의 이름으로 송신을 마쳤다. 본부 통신과는 9월 15일 노스다코타 지국 경유로 접수 도장을 찍고 사건번호 62-83894-82로 분류했다.

  123. p.123

    텔레타이프 접수 도장이 여러 개 찍힌 분홍색 종이의 뒷면이다. 위쪽에는 미 법무부 FBI 텔레타이프 접수반이 1947년 9월 13일 오후 5시 29분에 받았다는 도장이 있고, 아래쪽에는 같은 전문이 여러 부서를 거쳐 간 흔적이 거꾸로 찍혀 있다 — 9월 13일 오전 9시 법무부 접수, 9월 13일 오전 5시 29분 내부보안과 접수, 9월 15일 오후 12시 29분 FBI 내부보안과 재접수. 본문은 따로 없고, 앞면 잉크가 비쳐 보이는 정도다.

  124. p.124

    1947년 9월 5일, 미 육군항공대 본부의 공군참모차장보 슐겐(Geo. F. Schulgen) 준장이 워싱턴의 연방수사국장 앞으로 보낸 회신 편지다. FBI 연락과(Liaison Section) 의 레이놀즈(S. W. Reynolds) 가 구두로 요청한 사안에 대한 답이며, 슐겐은 "연구활동 전반을 조사한 결과, 육군항공대에는 플라잉 디스크와 관련된 특성을 가진 어떤 프로젝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해 답한다. 편지지에는 "CONFIDENTIAL" 헤더가 상단·하단에 찍혀 있고,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83 가 우측 하단에 따로 기재되어 있어 FBI 측 정식 파일로 편입된 회신임을 알 수 있다. NND 90986 권한으로 기밀해제 처리된 사본이다.

  125. p.125

    1947년 9월 16일자 FBI 내부 메모로, E. G. 피치가 D. M. 래드에게 보낸 "FLYING DISCS" 건이다. 연락반 소속 특별수사관 S. W. 레이놀즈가 공군 정보부의 조지 개럿 중령과 만나, 비행 원반 혹은 비행 접시가 사실은 육군 항공대 자체의 프로젝트일 가능성을 논의했다. 개럿 중령은 이 가능성을 인정했고, 레이놀즈가 "만약 정말 그렇다면 비행 원반 조사에 FBI 도움을 요청해 둔 공군 정보부 입장이 곤란해질 수 있다"고 짚자 더더욱 그렇게 보였다. 개럿 중령은 추가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약속했고, 이후 공군 정보부장 맥도널드 소장 그리고 공군 연구개발과 앞으로 문의 서한을 보냈다고 알려왔다. 메모에는 1947년 9월 5일자로 준장 조지 F. 슐겐이 정보부장에게 보낸 서한이 첨부되어 있는데, 그 서한은 육군 항공대 전 부문의 연구 활동을 훑어본 결과 비행 원반에서 보고된 특성과 비슷한 프로젝트는 어디에도 없다고 결론짓고 있다. 메모 말미에서 피치는 이 문건을 국내보안과로 회람해 참고하도록 권고한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태머·클레그·글래빈·래드·니콜스·로즌 등 FBI 고위 간부 회람 명단이 인쇄되어 있고, 하단에는 1947년 9월 30일 접수 도장과 정식 파일 번호 62-83894가 찍혀 있다.

  126. p.126

    1947년 9월 FBI 내부로 흘러간 어떤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은 카본 카피 용지여서, 앞면에 타이핑된 본문이 거꾸로 비쳐 보이는 상태로만 남아 있다. 본문 자체는 이 면에서는 판독되지 않는다. 페이지가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는 아래쪽에 줄지어 찍힌 FBI 접수 도장 세 개로 드러난다. 9월 16일 오후 4시 6분에 법무부 FBI 국내보안 부문에서 처음 접수했고, 다음 날인 9월 17일 오전 9시 11분에 같은 부서가 다시 한 번 접수 처리했으며, 일주일 뒤인 9월 23일 오전 9시 48분에는 FBI 입법부문에서 받아 도장을 찍었다. 상단의 펀치 구멍 세 개로 보아 한동안 바인더에 묶여 보관되던 문서로 보인다. 헤더 한 귀퉁이에 "Mr. Tamm" 이라는 수신자 이름 흔적이 어렴풋이 비친다 — 당시 FBI 부국장 에드워드 탬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127. p.127

    이 페이지는 자동 vision OCR 단계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안전 필터). 원문 PDF 에서 직접 확인 권장.

  128. p.128

    타이핑된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앞면 잉크가 비쳐 보이는 정도로만 흐릿하게 잡혀 글자를 읽을 수 없고, 페이지 아래쪽에 FBI 내부보안과의 보라색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들어왔다. 도장은 "RECEIVED", 시각 "2:08 PM", "F.B.I. INTERNAL SECURITY" 를 보여 주는, 문서가 FBI 에 들어온 시점을 표시하는 접수 표시다.

  129. p.129

    1947년 8월 19일 FBI 내부에서 D. M. 래드 앞으로 보낸 E. G. 피치의 'Office Memorandum' 이다. 제목은 "Flying Discs(비행 원반)". 본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연락 부서의 특수요원 S. W. 레이놀즈가 공군 정보부 개릿(Garrett) 중령과 비행 원반 현상을 논의하던 중, 이 물체들이 사실은 육군이나 해군의 극비 실험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개릿 중령은 이 가능성에 동의했을 뿐 아니라, 본인의 개인적 견해로는 그것이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거의 확실하다고 비공식적으로 답했다. 개릿은 공군 정보부에 소속된 과학자 캐럴(Carroll)도 같은 의견이라고 귀띔했다.

    개릿이 이런 결론에 이른 근거는 두 가지였다. 첫째, 스웨덴 상공에서 비행 물체가 목격됐을 때 전쟁부 수뇌부가 공군 정보부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며 조사와 정보 수집을 다그쳤다. 그런데 미국 본토 상공에서 미확인 물체 목격이 보고됐을 때는, 같은 수뇌부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개릿은 이 차이가 곧 "수뇌부가 이미 그 정체를 충분히 알고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읽힌다고 했다. 둘째, 항공기 조종사 같은 "훈련된 관찰자"들이 이 물체를 다수 목격했고, 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신뢰받는 사람들이다. 즉 누군가는 실제로 무언가를 봤다는 결론이 나온다. 종합하면 개릿은, 정부 안 누군가는 이 물체의 정체를 다 알고 있다고 본다.

    레이놀즈는 만약 이것이 미국 정부의 자체 실험이라면, FBI가 돈과 시간을 들여 따로 조사하라고 요청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개릿은 이에 동의했고, 만약 비행 원반이 사실은 미국 정부의 실험이었음이 나중에 드러난다면 공군 정보부는 매우 난처해질 것이라고 했다.

    레이놀즈는 같은 사안을 전쟁부 정보국의 포니(L. R. Forney) 중령과도 논의했다. 포니는 이미 챔벌린(Chamberlin) 장군과 이 문제를 상의한 바 있다고 말했고, 자신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장군의 보증을 받고 있다고 레이놀즈에게 전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파일번호 62-83884-86, 색인 1947년 9월 23일,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64" (1964년 11월 18일 사본 270부 폐기) 표시가 찍혀 있어, 이 문서가 FBI 정식 파일에 편철되고 일부 사본은 1964년에 폐기된 자료임을 보여 준다.

  130. p.130

    이 페이지는 앞면 본문이 비쳐 보이는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거꾸로 비쳐 읽을 수 없고, 윗부분에 'United States Government' 레터헤드 글자가 거울처럼 뒤집혀 나타난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접수 도장이 여러 개 정상 방향으로 찍혀 있는데, 1947년 8월 21일에 미 법무부와 FBI 내부보안(Internal Security) 라인이 같은 문서를 오전 10시 무렵과 오후 2시 55분에 걸쳐 차례로 받았음을 보여 준다.

  131. p.131

    FBI 내부 메모 MEMORANDUM FOR MR. LADD 의 두 번째 쪽이다. 앞쪽에서 이어지는 문장으로, 챔벌린과 토드 장군이 육군은 비행 원반으로 오인될 만한 어떤 실험도 진행하고 있지 않다 고 확인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 공군 정보부 소속 개럿 대령이 레이놀즈에게 연락해 이 사안을 육군 항공대의 슐겐 장군과 논의했음을 알린다. 슐겐 장군은 자신이 아는 한 정부가 비행 원반으로 오인될 만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레이놀즈와 개럿 양쪽에 이미 확언했고, 개럿 대령은 공군 정보부와 FBI 사이에 난처한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슐겐 장군에게 지적했다고 전한다. 슐겐 장군은 개럿 대령과 합의해, A-2 의 맥도널드 장군 명의로 항공대 연구개발 책임자인 르메이 장군 앞으로 메모를 작성하기로 한다. 이 메모에는 신뢰할 만한 목격자들이 본 물체의 특성을 정리해 넣고, 그 현상과 연결될 수 있는 실험이 공군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르메이 장군이 직접 답하도록 요청한다. 르메이 장군에게서 답이 오면 그 결과를 FBI 앞으로 통보하기로 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레이놀즈가 개럿 대령·슐겐 장군과 함께 사안을 계속 추적해, 비행 원반에 관한 정보, 특히 그것이 사실은 정부 어느 기관의 실험일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보가 들어오면 FBI 에 즉시 알리겠다고 밝힌다. 페이지 하단에 - 2 - 쪽수가 매겨져 있다.

  132. p.132

    1947년 8월 8일, FBI 내부에서 J. P. 코인이 D. M. 래드에게 올린 「플라잉 소서 또는 플라잉 디스크」 사무 메모다. 코인은 먼저 7월 21일자 연락과(Liaison Section) 메모를 환기한다. 전쟁부 정보국의 골브랜슨 대령이 FBI에 플라잉 디스크의 정체를 규명하는 조사를 맡아 달라고 요청한 건이다.

    관찰 부분에서 코인은 지금 상황이 지난 전쟁 때 일본 풍선 폭탄 신고를 처리하던 때와 매우 닮았다고 본다. 당시 FBI는 육군을 돕는 협조 차원에서 상당한 조사 인력을 들여 풍선 여러 개를 찾아냈는데, 일을 다 해 놓고 보니 육군이 뒤늦게 “이건 군용 무기다, 우리가 맡겠다”며 사건을 가져가 버렸고, 곧이어 “육군이 일본 풍선을 멋지게 찾아냈다”는 거창한 보도자료까지 직접 냈다는 것이다. 코인이 보기에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만으로는 플라잉 디스크 역시 군용 무기로 다루지 않을 이유가 없다. FBI에는 육군과 해군이 무슨 실험을 하는지, 그 실험에서 나온 부산물이 디스크 목격담의 원인인지 확인할 길이 없고, 러시아군이 어떤 실험을 어디까지 진척시켰고 디스크가 그 결과물인지 알 수단도 없다. 결국 이건 군 사안이며 군 당국이 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 연장선에서 코인은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포틀랜드 건도 언급한다. 그 건이 FBI 손에 들어온 이유 자체가, 플라잉 디스크를 봤다는 두 명을 인터뷰하고 돌아오던 육군 정보부 장교 두 명에게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육군 정보부가 이런 인터뷰의 일부를 직접 처리하고 있다면 전부 육군이 처리해야 옳고, FBI가 러시아 첩보 사안과 아무 연결도 없는 신고에 귀한 인력을 쓸 이유가 없다고 본다. 군 당국이 자기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더 잘 알고, 디스크 잔해라며 들어오는 물건을 검사할 시설도 더 잘 갖추고 있다. 코인은 “FBI는 사실상 육군의 사냥개 노릇만 하고 있다”고 못 박는다.

    조치 항목에서는 그럼에도 1947년 7월 30일자 국 회보 42호가 내려와 있으니, 이번 건은 시카고 사무소에 조사 요청서를 첨부해 내려보낸다고 적었다. 문서 하단에는 EX-34, 기록 번호 162-83894-89가 찍혀 있고, 1947년 접수 도장과 여백의 손글씨 표기들이 보인다.

  133. p.133

    이 페이지는 앞면 타자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보일 뿐이고, 실제로 읽을 수 있는 것은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의 접수 도장 두 개뿐이다. 한 도장은 1949년 7월 25일 오후 2시 57분 접수, 다른 도장은 1949년 8월 12일 오전 9시 7분 접수로 시간이 찍혀 있다. 같은 문서가 FBI 내부보안 라인에 두 차례 접수된 흔적이다.

  134. p.134

    1947년 10월 3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캘리포니아 비버에 사는 조지프 E. 라이언 부인에게 보낸 짧은 답신이다. 후버는 부인이 9월 19일자로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리며, 그 편지가 "플라잉 소서 미스터리"의 정체에 관한 정보를 요청하는 내용이었음을 확인한다. 이어 그는 FBI가 오래 유지해 온 정책상 수사 결과를 정부 기관 이외의 외부에 제공할 수 없으므로, 질문에 답해 줄 수 없어 유감이라고 답한다. 다만 이 사안에 관심을 가지고 편지를 보내 준 점은 고맙다고 덧붙이고 끝맺는다. 좌측 상단에는 문서번호 62-83894-88과 EX-89, RECORDED 표시가 있고, 하단에는 1947년 10월 4일 오후 발송 처리된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답신이 실제로 발송 절차를 거쳤음을 보여 준다.

  135. p.135

    1947년 10월 8일자 편지의 뒷면 또는 카본 카피 이면으로 보이는 페이지다. 본문 글씨는 잉크가 종이 반대편에서 비쳐 거꾸로 뒤집힌 채 흐릿하게 남아 있어 대부분 판독이 어렵다. 그래도 윤곽으로 보면 캘리포니아의 어느 시민이 1947년 9월 10일자 FBI 문의에 답해 이른바 비행접시의 기원에 관한 정보를 동봉한다고 적은 도입부, 1942년 12월을 거론하며 우주선·동력·지구 자재 운반 같은 단어가 흩어진 본문, 그리고 마지막의 "Sincerely yours"와 서명 자리가 식별된다. 페이지 오른쪽에는 1947년 10월 8일 오후 4시 21분 FBI 국내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접수한 보라색 수령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고, 같은 날 저녁 7시 30분 FBI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가 처리한 빨간 발송 도장(NR 8045)이 우측 하단에 따로 남아 같은 편지가 그날 안에 접수와 내부 발송 절차를 동시에 거쳤음을 보여 준다.

  136. p.136

    1947년 9월 19일, 캘리포니아 비버의 라이언 장례식장 편지지에 손으로 쓴 한 편지가 워싱턴 D.C. FBI 앞으로 보내진다. 발신인은 최근 자신에게 건네진 작은 인쇄물 한 부를 신고하는 중이다. 제목은 《킹덤 보이스 — 더 마치 어헤드 오브 타임》, 로스앤젤레스의 메트로폴리탄 스테이션 사서함 6450, 사우스 힐 스트리트 1204번지에서 발행하는 〈여호와의 성전〉이라는 단체의 공식 간행물이라고 한다. 이 간행물에 〈비행접시 미스터리〉라는 글이 실렸는데, 그 글은 비행접시들이 러시아인들이 독일의 도움을 받아 보낸 것이며, 일부는 북극에서 날아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주 높이 나는 UAV 비행기들이고, 조종사들에게는 강한 진정제를 투여한다는 식의 서술이 이어진다는 내용이다. 편지 위쪽에는 FBI 접수 스탬프 “RECORDED 162-23794- · SEP 29 1947”이 남아 있어, 신고 약 열흘 뒤 파일 번호가 부여됐음을 알 수 있다.

  137. p.137

    라이언 여사가 직접 손으로 적어 보낸 편지의 마지막 장이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컬트가 만연한 데다 자기 눈에 미심쩍어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다고 적은 뒤, 이런 이야기가 대중에게 읽히도록 공개된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토로한다. 본인도 믿기지 않아 그저 한번 물어보고 싶었다고 덧붙이며, 이미 점령군의 감시 아래 놓인 독일과 일본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끝에 "Mrs Jos H. Ryan" 이라고 서명한 뒤, 본인이 1차 세계대전 당시 해외에서 3년간 간호장교로 복무했고 지역 미국재향군인회 지부 회원이라는 사실을 작은 글씨로 적어 신원을 밝힌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내부보안 부서의 빨간 접수 도장이 비스듬히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본부에 정식 접수된 민원이라는 점을 보여 준다.

  138. p.138

    1947년 8월 7일 오후 5시 20분(태평양 표준시), FBI 시애틀 지부가 본부 디렉터와 시카고·뷰트 특별수사관 책임자(SAC)에게 보낸 긴급 텔레타입 전문이다. 8월 1일 FBI 통신과 접수 도장이 윗부분에 찍혀 있고, 워싱턴 본부 회람 명단(톨슨, 태머, 클렉, 래드, 니콜스 등)이 우측 여백에 있다.

    전문 내용을 풀어 쓰면 이렇다. 워싱턴 타코마의 해럴드 A.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이 같은 날 서명한 진술서에서, 두 사람은 6월 초 워싱턴주 모리 섬(Maury Island, 전문에는 'Mauri' 로 오타)의 자갈 채취장에서 이상한 암석 조각들을 주웠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시가 상자 하나 분량의 그 암석을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벤처(Venture)》 매거진을 편집하던 레이 파머에게 보냈다. 파머는 시카고에서 발행되던 《판타지(Fantasy)》 매거진의 편집자이기도 했다. 달과 크리스먼은 파머에게 그저 암석의 화학 분석을 부탁한 것뿐이라고 말한다.

    파머는 나중에 분석이 불가능했다며 추가 시료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러다 6월 말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k) 보도가 터진 며칠 뒤, 파머는 타코마로 전화를 걸어 ― 만약 보낸 그 물질이 플라잉 디스크의 파편이라면 독점 기사 대가로 돈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달은 그 말을 듣고 파머에게 답신을 보냈는데, 편지에서 그 물질이 비행 원반의 일부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러나 달과 크리스먼은 이 진술이 완전한 거짓이었음을 인정한다.

    두 사람은 이어 케네스 아놀드(아이다호 보이즈 거주)로부터 연락을 받고 7월 31일 타코마 윈스럽 호텔에서 만났다고 진술한다. 아놀드는 그 자리에 육군 정보장교들을 불렀다는 내용까지 이어지며, 전문은 다음 페이지로 계속된다.

  139. p.139

    분홍빛 종이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텔레타이프 머리글이 비쳐 거꾸로 어렴풋이 읽힐 뿐, 별도의 본문은 없다. 아래쪽에는 FBI 의 접수 도장 세 개가 위아래로 뒤집힌 채 찍혀 있는데, 1947년 8월 8일 오전 9시 56분 톰(Tamm) 앞 접수, 같은 날 오전 11시 27분 내부보안과 접수, 그리고 라드(Ladd) 앞 오후 2시 36분 접수 자국이다. 같은 한 장의 전문이 FBI 본부 안에서 부서별로 어떤 순서로 돌았는지만 보여주는 라우팅 페이지에 해당한다.

  140. p.140

    보고서 2쪽이다. 시애틀의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 에밀 H. 스미스 기장도 같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로 불려 왔다. 달과 크리스먼은 정보장교인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 그리고 케네스 아놀드와 에밀 스미스에게 그 돌 조각들을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것이 비행 원반과 아무 관련도 없다는 사실까지 정확히 다 털어놓았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은 그 돌 조각 일부를 정보장교들에게 샘플로 넘기기도 했다.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워싱턴 타코마에서 B-25를 몰고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로 복귀하다가 지난 8월 1일 새벽 2시 30분경 워싱턴 켈소 부근에서 추락해 숨졌다. 좌측 엔진의 배기관이 타들어 가면서 왼쪽 날개에 불이 옮겨붙었고, 날개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정비반장과 다른 장교는 낙하산으로 탈출해 무사했다. 타코마 AP통신 무선기자 어니 보겔은, 비행 원반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지 이삼 일 뒤 달에게 연락해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젠서가 하버의 소방서장에게서 들었다는 제보, 즉 달이 비행 원반 파편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고 했다. 그때 달은 보겔에게 이야기 전체가 거짓이라고 시인했다. 달과 크리스먼은 아놀드가 판타지 매거진의 레이 파머와 어쩌면 보이시 스테이츠먼 신문사로부터 돈을 받고 타코마로 와서 비행 원반 파편 이야기를 받아 가게 됐다고 진술한다. 두 사람은 이어 에밀 H. 스미스 역시— 라고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본문 곳곳에는 누군가 이름들에 손으로 X 표시를 해 둔 흔적이 보이고, 페이지 하단에는 빨갛게 동그라미 친 2가 찍혀 있어 쪽 번호를 표시하고 있다.

  141. p.141

    분홍색 라우팅 슬립 뒷면으로, 본문은 비어 있고 하단에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만 거꾸로 들어가 있다. 도장은 1949년 어느 달 27일 오후 2시 36분, 법무부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문서를 받았음을 가리킨다.

  142. p.142

    보고서 3쪽은 케네스 아놀드가 묵었던 타코마의 윈스롭 호텔 통화 기록과 익명 제보 전화를 정리한다. 호텔 기록을 확인하니 7월 31일에 아놀드가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팔머에게 수신자부담으로 전화를 걸었고, 같은 날 아이다호주 보이시로도 수신자부담 통화를 했다. 8월 1일에는 아놀드가 다시 시카고 디어본 번호로 팔머에게 걸었고, 에밀 스미스도 디어본의 다른 번호로 전화를 했다. 7월 31일과 8월 1일 사이에 타코마 타임스 기자와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원에게는 익명의 전화 다섯 통이 걸려 왔는데, 모두 윈스롭 호텔에서 열린 디스크 파편 관련 회의를 알리는 내용이었고,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탔던 B-25 가 격추되거나 사보타주를 당했으며 그 이유는 두 정보장교가 디스크 파편을 비행기에 싣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식의 추측을 흘렸다. 달과 크리스만은 이 전화들이 자기들 자신이나 스미스, 아놀드 가운데 누군가가 한 것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은 걸지 않았다고 부인한다. 아놀드의 호텔 방에서 그 전화가 걸려 나갔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달과 크리스만은 자신들이 레이 팔머에게 전화나 편지로 정확히 무엇을 넘겼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흐린다. 타코마의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원 어니 보걸은 보이시 스테이츠먼지(紙)와 케네스 아놀드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진술을 이어 간다 — 본문은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본문 위에는 손으로 그은 빨간 X 표시가 군데군데 박혀 있어, 누군가 통화 항목들을 따로 짚어 둔 흔적으로 보인다.

  143. p.143

    분홍색 라우팅 슬립 또는 폴더 뒷면으로 보이는 페이지다. 본문은 비어 있고, 하단 여백에 거꾸로 찍힌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만 남아 있다. 도장에는 'RECEIVED', '27 2:36 PM', 'INTERNAL SECURITY', 'F.B.I.', 'DEPT OF JUST'(법무부) 표기가 보인다. 상단에는 바인더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144. p.144

    FBI 텔레타이프 4쪽에는 모리 아일랜드 비행 원반 사건을 각 지부가 어떻게 분담해 조사할지 정리되어 있다. 보겔은 아놀드가 비행 원반을 봤다고 처음 주장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말하고, 달과 크리스먼은 아놀드가 레이 파머에게 돈을 받고 디스크 이야기를 확인하러 타코마로 왔다고 진술했다. 본부에서 별다른 지시가 없으면 부트 지부가 아이다호 보이시에 머물면서 보이시 스테이츠맨지와 케네스 아놀드의 관계 정보를 모두 모으고, 보이시 마운틴뷰 드라이브 1번지에 사는 아놀드를 직접 만나 위 사실들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레이 파머와 보이시 스테이츠맨지에 타코마 회동과 B-25 사보타주에 대해 어떤 정보를 넘겼는지 캐묻겠다고 밝힌다. 시카고 지부는 판타지지 편집장 레이 파머를 만나 달·크리스먼·아놀드와 어떤 관계이고 각각 무엇을 그에게 알려 줬는지 묻고, 에밀 H. 스미스 대위가 시카고 타임스에 무엇을 흘렸는지도 함께 파악할 예정이다. 시애틀 지부는 웨스트 로렐허스트 드라이브 3027번지에 사는 에밀 H. 스미스를 같은 방향으로 면담하고, 워싱턴주 한 항구 — 지명은 한 줄로 지워져 있다 — 의 소방서장이 달과 크리스먼에게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도 알아본다. 발신자 윌콕스의 서명 아래에 워싱턴·시카고·부트 사무소의 송수신 확인 코드가 이어지고, 페이지 오른쪽에는 FBI 중앙기록부 접수 도장과 함께 D. M. 라드 앞으로 회람하라는 붉은 손글씨가 적혀 있다.

  145. p.145

    분홍색 종이의 뒷면 또는 라우팅용 표지로, 본문 텍스트는 없고 FBI·법무부의 접수 도장 세 개만 찍혀 있다. 첫 도장은 1947년 8월 7일 오후 9시 39분 타이프 부서 접수, 두 번째는 8월 8일 오전 5시 37분 법무부 디렉터 접수, 세 번째는 8월 27일 오후 2시 36분 FBI 내부보안 접수로, 같은 문서가 8월 초 FBI 내부에서 디렉터까지 올라갔다가 약 3주 뒤 내부보안 라인으로 다시 회람된 흐름을 보여 준다.

  146. p.146

    1947년 8월 12일 오후, FBI 시애틀 지부가 본부 국장과 시카고·뷰트 지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입이다.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프레드 크리스먼과 해럴드 A. 달이 봤다는 비행 원반 건을 다룬 8월 7일자 보고의 후속이다.

    시애틀 지부는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에밀 J. 스미스를 불러, 7월 31일부터 8월 3일까지 타코마에서 달·크리스먼·케네스 아놀드와 어떤 식으로 어울렸는지 물었다. 스미스는 본인도 7월 4일 부조종사 랄프 스티븐스와 보이즈발 정기편을 몰다가 비행 원반 비슷한 물체를 봤다고 이미 언론에 나온 인물이다.

    스미스의 진술 요지는 이렇다. 7월 31일 목요일, 아놀드의 전화를 받고 시애틀에서 타코마로 갔다. 아놀드와는 그전에 두 번 만났다. 첫 번째는 7월 5일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 사무실에서 둘 다 비행 원반 목격담으로 인터뷰를 받던 자리, 두 번째는 약 3주 전 보이즈에서 정기편으로 들렀을 때다. 두 번째 자리에 아놀드는 육군 정보장교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 그리고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지 기자 존슨과 함께 있었다. 달이나 크리스먼은 그전에 본 적이 없다.

    7월 31일 밤 타코마에서, 달과 크리스먼이 스미스·아놀드·데이비드슨·브라운에게 자기들이 겪었다는 비행 원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사람은 나중에 그 이야기 전체가 거짓이었다고 인정한다. 그 자리가 끝나고 크리스먼은 데이비드슨과 브라운에게 원반 잔해라는 상자를 건넸고, 두 장교는 그것을 들고 비행기에 올랐다가 추락사한다.

    8월 2일 토요일, 데이비드슨·브라운의 추락과 사망 소식을 들은 아놀드는 일리노이 에반스턴의 페이트 프레스 편집장 레이 팔머에게 전화했다. 팔머는 아놀드에게 달-크리스먼 건 조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말고 자기가 보낸 돈을 돌려달라고 했다 — 본문은 여기서 페이지 하단에 잘려 끝난다.

    페이지 상단 우측에는 1947년 8월 12일 접수 도장이, 우측 여백에는 FBI 내부 회람용 이름과 체크 표시가 줄지어 있다.

  147. p.147

    분홍색 파일 폴더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본문은 없고, 아래쪽에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과 날짜 표시 몇 개, 그리고 폴더를 보강했던 흔적인 테이프 자국 두 개가 남아 있다. 문서 자체의 내용이 아니라 보관·이관 과정에서 생긴 행정 흔적만 보이는 표지 뒷면이다.

  148. p.148

    1947년 8월 시애틀 FBI 가 본부로 보낸 전문의 두 번째 장이다. 스미스는 자신과 아놀드가 8월 1·2·3일 금·토·일 사흘 동안 크리스먼·달과 함께 마우리 섬으로 다시 나가려 했지만, 두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계속 미뤘다고 진술한다. 타코마 타임스의 랜츠 기자와 UP 타코마 지국의 모렐로가 스미스·아놀드 쪽에 익명 전화 건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렸고, 전달된 정보의 정확도로 미루어 스미스는 그 전화를 건 사람이 달 아니면 크리스먼이라고 본다. 스미스는 8월 1일 금요일 시카고 타임스 항공 담당 편집자이자 개인 친구인 모리스 하디에게 전화해 타코마 사건을 알렸다고 인정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비행 원반 관련 건을 잡으면 서로 알려주기로 한 사전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스미스는 8월 2일 토요일 밤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의 존슨 기자와 통화하면서, 데이비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추락 비행 때 파편 일부를 휴대하고 있었다고 말했다고 인정했다. 달은 8월 2일 토요일 밤 스미스에게, 만약 육군이나 다른 당국이 자신에게 접촉해 오면 이 사건 전체가 거짓이었다고 진술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스미스는 8월 3일 일요일 아침 타코마 맥코드 비행장의 샌더스 소령에게 자기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았고, 아놀드는 타코마를 떠났다. 별도 지시가 없는 한, 위에서 언급한 타코마 신문기자 랜츠와 모렐로에게 스미스 진술의 사실 확인을 위해 따로 접촉하지는 않을 것이다. 워싱턴 주 하버의 소방서장과는 연락이 닿지 않아, 그가 달·크리스먼에게서 들었다는 정보는 확인하지 못했다. 데일리 보도 자체가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에서 출발했으므로, 별도 지시가 없으면 이 단서는 더 추적하지 않는다. 달·크리스먼과 마친 인터뷰 완본을 담은 서한은 별도로 발송될 예정이다. 발신자는 윌콕스. 하단에는 송수신 확인 코드와 함께, 시애틀 지부장이 래드 씨 앞으로 보낸 전문임을 알리는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다.

  149. p.149

    분홍색 파일 폴더의 뒷면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1947년 12월 17일 자 미 육군 항공대 기록관리부 접수 도장이 두 개 찍혀 있다. 하나는 페이지 위쪽에 거꾸로 찍혀 있고 다른 하나는 가운데 오른쪽에 정상 방향으로 찍혀 있어, 이 문서철이 같은 날 오전과 오후에 두 차례 기록관리부를 거쳤음을 알려준다. 아래쪽 모서리에는 누렇게 변색된 테이프 조각과 알아보기 힘든 손글씨 라벨이 붙어 있다.

  150. p.150

    1947년 8월 6일 낮 12시 9분,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워싱턴 본부 국장에게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발신자는 킴볼, 사안 코드는 "FLYING DISCS, SM-X". 전날 오후 1시 래드 부국장이 본부에서 건 전화와 포틀랜드 지부의 앞선 텔레타이프를 받아 작성한 회신 형식이다.

    샌프란시스코 측은 해당 사안을 자체적으로 확인하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육군 정보부(A-2) 조사를 지휘하는 해밀턴 필드 소속 도널드 스프링거 중령이 워싱턴주 켈소 지역에서 곧 복귀할 것으로 A-2가 보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스프링거가 켈소로 간 이유는 앞선 텔레타이프에 언급된 미 육군항공대(AAF) 조사관들의 사망 소식 때문이며, 출발 당시 그는 AAF 조사관들의 조사 결과를 입수하거나 텔레타이프에 언급된 인물들을 다시 면담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지부는 스프링거가 돌아오는 대로 접촉해 본부에 결과를 보고하겠다고 마무리한다.

    상단의 "AUG 6 1947 TELEMETER" 도장과 오른쪽의 회람자 명단(톨슨·태임·래드·니컬스 등 FBI 고위 간부)은 이 전문이 본부 핵심 라인에 곧장 회람됐음을 보여준다. 하단 "RECORDED 62-83894-91" 도장은 이 자료가 FBI 사건 파일 62-83894의 91번째 문서로 편철됐다는 표시다.

  151. p.151

    분홍색 텔레타이프 용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앞면에서 비쳐 좌우 반전된 상태로 흐릿하게 보이고, 정작 뒷면에서 또렷한 것은 FBI 가 수신 시각마다 찍은 도장 네 개다. 1947년 8월 6일 오후 4시 22분 FBI 법무부 텔레타이프실 접수, 같은 날 오전 11시 9분과 오후 5시 29분 내부보안과 접수, 8월 7일 오전 10시 26분 내부보안과 재접수가 차례로 찍혔다. 한 장의 전문이 FBI 청사 안을 하루 반 사이에 여러 부서로 돌며 시각을 갱신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면이다.

  152. p.152

    솔트레이크시티 FBI 지국이 1947년 9월 10일 오전 9시 55분(산악표준시)에 본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통신과 접수 도장은 같은 날 9월 10일, 9월 19일 자 RECORDED 162-83894-92 번호가 다시 찍혀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톨슨·태머·글래빈·래드·니컬스 등 본부 간부들에게 회람할 수신자 목록이 인쇄돼 있다.

    본문은 짧다. 솔트레이크 트리뷴 9월 10일 자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면서, 유타주 로건에서 서로 다른 여덟 명이 9월 8일 월요일 밤 열 시부터 열한 시 십 분 사이에 비행 원반 편대 세 차례를 보았다고 신고했다고 보고한다. 지국은 조사에 착수했으며 본부에 추후 결과를 알리겠다고 끝맺는다. 워싱턴 DC 본부 통신실은 같은 날 오후 12시 55분에 수신 확인을 회신했다.

  153. p.153

    분홍색 라우팅 슬립 한 장으로, 1947년 9월 10일과 11일에 걸쳐 FBI 내부 부서들이 같은 문서를 차례로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도장만 찍혀 있다. 같은 날 오후 12시 56분에 텔레타이프 수신부가 받았고, 1시 8분 연구실, 2시 TWX, 4시 59분 연락과를 거쳐 다음 날 오전 9시 24분 내부보안부에 도착하는 식으로 시간순 접수 흔적이 남았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같은 문서가 법무부 FBI 내부에서 어느 경로로 돌았는지를 보여주는 행정 기록으로만 기능한다.

  154. p.154

    1947년 9월 4일, FBI 뉴욕 지부의 특수요원책임자 에드워드 샤이트가 FBI 본부 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수신처에는 "FBI 연구소 주의"가 붙어 있고, 사안은 정보원 사르바니스 부인 건이다. 7월 21일 본부가 롱아일랜드 힉스빌 노트르담가 66번지의 사르바니스 부인 앞으로 보낸 서한에 대한 회신 형식이다.

    특수요원 윌리엄 A. 존슨이 8월 12일 사르바니스 부인을 직접 면담했다. 그녀는 문제의 암호 메시지가 롱아일랜드 나소·서퍽 카운티 지역 신문 《뉴스데이》의 "카운티 이리턴트" 코너에 실렸으며 "라디오 햄"이라는 서명이 붙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같은 신문의 시 편집장 잭 알트슐도 면담했다. 알트슐은 그 글이 "라디오 햄" 서명의 편지로 신문사에 들어왔으며, 작성자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알트슐 본인의 견해로는, 그 무렵 비행 원반에 관한 신문 보도가 쏟아지던 분위기에 휩쓸린 동네의 어느 "머리 이상한 사람"이 만들어낸 암호일 거라고 했다.

    《뉴스데이》 7월 12일자에 실린 해당 기사 한 부를 동봉한다. 본부에서 별도 지시가 없는 한, "라디오 햄"이라 자칭한 작성자의 신원을 더 추적할 계획은 없다.

    좌측 여백에는 "I do not — Maybe a piece work out"으로 보이는 작은 손글씨 메모가 있고, 하단에는 9월 26일자 접수 도장과 "62-83894-93" 파일 번호가 기록되어 있다.

  155. p.155

    이 페이지는 1947년 11월 8일자 FBI 내부 메모 — 수신은 FBI 국장, 주제는 "비행 원반"으로 보이는 — 의 뒷면이다. 본문 텍스트 자체는 앞면에서 잉크가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비치기만 할 뿐 이쪽 면에서는 직접 읽을 수 없다. 대신 이 뒷면에는 문서가 사내에서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보여주는 접수 도장이 여러 개 찍혀 있다. 법무부 검열 접수 도장, FBI 실험실 디비전(Laboratory Division) 접수 도장, 내부보안(I.D. Unit / Internal Security) 유닛 접수 도장, 그리고 "SEP 8 5 27 PM '47" 식 날짜·시각 표기 도장이 함께 보인다. 즉 페이지 자체는 본문보다는 라우팅 슬립에 가까운 면이고, 메모가 1947년 9월(또는 11월) 사이에 FBI 실험실과 내부보안 부서를 거쳤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행정 흔적이 핵심이다.

  156. p.156

    1947년 7월 12일 화요일자 신문 칼럼 'COUNTY IRRITANT — from our Mail Box' 의 오려낸 스크랩을 FBI 가 파일에 첨부한 페이지다. 칼럼은 독자 투고 두 건을 가벼운 농담조로 싣고 있다. 첫 번째 'Coming His Way' 에서는 메릭에 사는 한 독자가 하루 종일 셋집을 찾아 헤매다 허탕을 치고 술집에 들어가 만취해 집에 돌아왔더니 침대에서 비행접시를 봤다고 너스레를 떤다. 두 번째 'Gables' 에서는 웨스트버리-볼티모어의 한 아마추어 무선사가 받았다는 전문을 소개한다. 전문 내용은 '인류의 어리석음에 신물이 났다. 원자전쟁이 태양계를 어지럽히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비행접시를 보냈으며 올해 안으로 화성인이 다스리는 세상을 세우겠다' 는 식의 협박조 메시지로, 발신자는 자신을 올림포스 산정에 사는 인물로 자처한다. 칼럼 작성자 스티븐 슈니러는 단순한 글자 치환 장난이라며 독자에게 적당히 경계하라고 농을 친다. 편집자가 덧붙인 후기에는 다른 무선사들이 같은 전문에서 'await' 을 'outlaw' 로, 'disturbing' 을 'perspiring' 으로 잘못 받아 적었고, 포트워싱턴의 리타 플러드 양은 경고 명령이 'Indices' 항목 아래에 정리될 것으로 본다는 내용이 덧붙는다. 스크랩 오른쪽 아래에는 ENCLOSURE 라벨과 함께 파일 번호 62-83894-22 가 빨간 잉크로 적혀 있고, 그 옆에 FBI 도장과 RECORDED · 15 SEP 8 접수 표시가 찍혀 있어 이 신문 조각이 FBI 사건철의 첨부물로 정리됐음을 보여 준다.

  157. p.157

    1947년 9월 17일자 FBI 내부 메모. 발신자 W. V. 클리블랜드가 J. P. 코인 앞으로 보낸 보고로, 사르바니스 부인이라는 제보자 건을 정리한 것이다.

    사르바니스 부인은 1947년 7월 10일자 편지에 "라디오 햄"이라는 서명이 달린 신문 스크랩을 동봉해 보내왔다. 그 스크랩에는 암호화된 메시지가 있었고, 사르바니스 부인이 직접 해독해 보낸 것이다. FBI 연구소가 그 해독을 검증한 결과 거의 맞는다고 판정했고, 연구소가 풀어낸 메시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들의 헛소리에 질렸다. 원자력 전쟁이 태양계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것을 더는 기다리지 않겠다. 그래서 비행 원반들을 보냈다. 올해 안에 화성인 주도의 세계 질서를 세울 것이다."

    FBI는 뉴욕 지부에 사르바니스 부인을 직접 만나 어느 신문에서 오린 스크랩인지 확인하고, 그 신문사에 접촉해 암호 메시지를 투고한 사람의 신원을 알아내라고 지시했다.

    9월 4일자 뉴욕 지부 답신에 따르면, 문제의 스크랩은 롱아일랜드 나소·서퍽 카운티 지역지인 〈뉴스데이〉에 실린 것이었다. 〈뉴스데이〉 시티 에디터는 원본에 "라디오 햄"이라는 서명만 있었을 뿐 투고자의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 암호는 "플라잉 디스크" 관련 신문 보도들에 영향을 받은 동네 "별난 사람"이 만들어낸 장난일 거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한편 FBI 연구소는 FCC가 아마추어 무선 기록을 호출부호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분류해 두고 있어, 만약 추가 신원 확인을 시도하려면 롱아일랜드 벨모어 일대 아마추어 무선사 명단을 받아낼 수도 있다고 알려왔다.

    메모는 〈뉴스데이〉 시티 에디터가 "동네 별난 사람"의 장난으로 본 만큼 더 이상 조사하지 말 것을 권고하며 끝난다.

    오른쪽 상단에 1947년 9월 27일자 접수 도장이, 하단에는 파일 번호 62-83894-91이 보인다.

  158. p.158

    문서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잉크와 도장·메모가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지만, 좌우 반전된 상태라 거의 판독할 수 없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도장 자국이 흐릿하게 남아 있고, 본문은 비어 있다.

  159. p.159

    1947년 7월 28일,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장이 본부의 D. M. 래드 부국장 보좌관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cs)'. 발신자는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A-2)의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보내온 보고서를 본부에 동봉해 전달한다고 알린다. 이 보고서에는 플라잉 디스크 목격 사건에 대해 스프링거 사무실에서 진행한 조사 결과가 담겨 있다. 여러 명의 목격자가 보았다고 주장하는 물체의 상세 설명 외에, 메모는 특히 첫 번째 비망록을 본부가 주목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 비망록은 제4공군 방첩대(CIC) 소속 프랭크 M. 브라운 요원이 아이다호주 보이시 사서함 387번지에 사는 케네스 아놀드와 진행한 인터뷰 메모를 정리한 것으로, 아놀드는 1947년 7월 12일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기이한 물체 아홉 개가 비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브라운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아놀드 본인은 미 육군 항공대 지휘부와 FBI가 이 사안을 더 일찍 조사하지 않은 것을 두고 매우 노골적이며 다소 격앙된 태도로 비판했다고 한다. 발신자는 본부가 원한다면 뷰트 지부 요원을 시켜 아놀드와 접촉하게 하고, FBI가 이런 사안에 대한 관할권이 없음을 설명해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메모를 맺는다. 좌측 하단의 'DECLASSIFIED' 도장은 이 문서가 NND 90986 권한으로 기밀 해제되었음을 알린다.

  160. p.160

    1947년 7월 18일 자, 미 공군 정보참모부 A-2 산하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사무소가 작성한 "플라잉 디스크" 수사 보고 표지다. 문서번호는 D333.5 ID(4AF-1308-I), 분류 등급은 비밀(CONFIDENTIAL), 처리 상태는 미결로 적혀 있다. 수사는 7월 7일 자 항공방어사령부 본부 요청으로 시작되었고, 팜스프링스·보이시·해밀턴 필드 일대에서 7월 10일부터 18일 사이를 다룬다.

    요약에 따르면, 플라잉 디스크가 이 지역에서 처음 보고된 것은 1947년 6월 24일 워싱턴주 레이니어산 부근에서 케네스 N. 아놀드가 목격한 사례다. 이어 7월 9일에는 아이다호 데일리 스테이츠맨의 항공 담당 편집장 데이비드 N. 존슨이 보이시 인근에서 미확인 비행체를 보고했고, 같은 달 4일에는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E. J. 스미스 기장이 보이시 이륙 8분 뒤 비행 중 같은 현상을 목격해 신고했다. 한편 팜스프링스의 법집행기관·공공시설·지역 주민 조회 결과 리처드 랭킨이라는 인물의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7월 8일 낮 12시 45분에는 해밀턴 필드 상공을 북동쪽으로 가로지른 미확인 비행체를 공군 부사관 에드워드 R. 베이커가 보고했고, 같은 날 애리조나 그랜드캐니언 상공에서는 해군 중위 W. C. 매긴티가, 미드호 부근에서는 텍사스 브룩스 필드 제10공군 본부 소속 E. S. 암스트롱 중위가 추가 목격담을 남겼다. 보고서는 마지막에 신문 보도로 본 사건의 외부 노출 정도가 거의 없다고 적는다. 사본은 육군항공대(AAF) 2부, 항공방어사령부(ADC) 1부, 제4공군 파일 1부로 배포되었고, 결재자는 GSC 중령 도널드 L. 스프링거다. 표지 오른쪽 아래에는 1947년 7월 24일 자 FBI 샌프란시스코 지국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95가 같이 남는다.

  161.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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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2. p.162

    이 페이지는 4공군(4th AF) 방첩대(CIC) 소속 프랭크 M. 브라운 중위가 작성한 사건 보고서 "4AF 1208 I"의 마지막 장이다. 앞 페이지에서 이어진 진술의 끝부분으로, 목격자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무언가를 봤다 해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적혀 있다. 이유는 단순한데, 언론이 목격자를 비웃어 미국인 대다수의 눈에는 사실상 정신 나간 사람으로 보일 정도라는 것이다. 보고서에는 첨부물로 "부속서 A" 한 건이 동봉되어 있고, 문서 상단과 하단에는 기밀(CONFIDENTIAL) 표시, 우측 상단에는 사본(COPY) 표시가 따로 찍혀 있다.

  163. p.163

    케네스 아놀드 본인이 작성한 이력 진술서다. 문서 상단·하단에 CONFIDENTIAL 도장, 우상단에 COPY 표기. 아놀드는 1915년 3월 29일 미네소타주 수베카에서 태어났다고 적는다. 아버지는 에드워드 에르브 아놀드,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은 바사 R. 하든. 여섯 살 무렵 가족이 몬태나주 스코비로 이주해 정착했고, 할아버지 롤랜드 C. 아놀드도 같은 곳에 정착해 몬태나 상원의원 버튼 K. 휠러와 함께 지역 정치권에서 이름을 알렸다.

    초·중·고등학교는 노스다코타주 마이놋에서 다녔다. 열두 살에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 열네 살이 되기 전 이글 스카우트 등급에 올랐다. 당시 스카우트 책임자 H. E. 프레스콧은 글 작성 시점 캔자스시티 보이스카우트 지역 위원이라고 적는다. 스포츠 쪽 이력으로는 1932·1933년 노스다코타 주 대표, 1932년 미국 올림픽 다이빙 선발전 출전, 1932~1934년 적십자 인명구조 시험관 자격, 마이놋 스카우트 캠프와 시립 수영장에서 수영·다이빙 강사 경력을 든다. 미네소타 대학에서는 닐스 소프 코치 아래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버니 비어먼 감독 아래 미식축구를 뛰었지만, 입학 후 무릎 부상으로 미식축구 경력은 이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는 글렌 L. 자렛으로 당시 노스다코타 대학 미식축구 헤드코치라고 밝힌다. 학자금 사정이 빠듯해 운동 특기로 학업을 이어가려 했다는 점, 마이놋 시절 개썰매 경주에 열심이었고 1930년 라이언스 클럽 도그 더비에서 1위를 했다는 점도 적어 둔다.

    직업 이력은 1938년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자동 소화 장비 제조사 레드 코멧에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1939년 서부 일부 주를 맡는 지구 매니저가 되고, 1940년에는 직접 그레이트 웨스턴 파이어 컨트롤 서플라이라는 소화 설비 사업체를 차린다. 이후 독립 소화 설비 엔지니어로 서부 다섯 개 주 농촌 지역에 자동·수동 소화 장비를 다룬다고 적는다.

    비행 이력은 노스다코타 마이놋 소년 시절 어니 T. 밴스에게 처음 배웠으나 비용 문제로 한동안 본격적인 비행은 못했고, 1943년에야 포틀랜드의 CAA 선임 검사관 에드 리치에게 조종사 자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3년 동안 본인 비행기로 영업 구역 전체를 돌며 한 달 40~100시간을 비행해왔다고 적는다. 작성 연도 1월에는 고고도 이착륙과 짧고 거친 활주로용으로 설계된 신형 칼레어 비행기를 새로 구입했다. 본인이 다니는 곳 활주로가 짧고 고도가 높아 어느 소 목초지에든 내리고 다시 뜰 수 있어야 한다며, 이날까지 산악 초지 소 목초지 823곳에 착륙했고, 1천 시간 넘는 비행 동안 가장 큰 사고는 펑크 난 타이어가 전부였다고 마무리한다.

  164. p.164

    케네스 아놀드 본인이 쓴 진술서다. 1947년 6월 24일 화요일 오후, 워싱턴 주 셔할리스 공항에서 야키마로 향하던 중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본 것을 그가 직접 적은 것이다. 그는 이 일로 유명해질 생각이 전혀 없었고, 조종사라면 누구나 보고했을 일을 보고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자기 시력이나 판단력이 일반 조종사보다 특별히 예민하지도 않다고 덧붙인다.

    그날 오후 두 시쯤 셔할리스에서 이륙한 그는 야키마로 곧장 갈 계획이었지만, 레이니어 산 남서쪽 어딘가에서 실종된 해병대 수송기를 찾는 데 한 시간을 더 썼다고 한다. 그 수송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고도 9,500피트 정도까지 올라가 레이니어 산 쪽으로 직진하면서 한 차례 고원 서쪽을 훑었고, 워싱턴 주 애시포드 부근 협곡 능선까지 내려갔다가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하자 미네랄이라는 작은 마을 위에서 360도 선회한 뒤 다시 레이니어 산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고도는 약 9,200피트.

    공기가 너무 잔잔해서 비행이 즐거웠다고 그는 적는다. 조종사들이 흔히 그러듯 야키마 방향으로 트림을 맞춰 두고 하늘과 지형을 살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의 왼쪽 뒤편 약 15마일 거리에 DC-4 한 대가 1만 4천 피트 고도에서 비행하고 있었다.

    하늘은 수정처럼 맑았고, 2~3분쯤 그렇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비행기 위로 밝은 섬광이 비쳤다. 다른 비행기가 너무 가까이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라 사방을 둘러봤지만 반사광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 그러다 레이니어 산 왼쪽, 그러니까 북쪽을 봤을 때 그는 정체불명의 비행체 아홉 대가 일렬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170도 방향으로, 9,500피트 고도쯤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레이니어 산을 향해 매우 빠른 속도로 다가오던 그것들을, 그는 처음엔 그냥 제트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중 두세 대가 몇 초 간격으로 살짝 기울거나 진로를 살짝 바꿀 때마다 햇빛이 강하게 반사돼 그의 비행기까지 비쳤고, 아까 본 섬광의 출처가 이쪽이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처음엔 거리가 멀어서 모양이나 편대 형태를 분간할 수 없었지만, 곧 그것들이 레이니어 산에 가까워지자 눈 덮인 산 능선을 배경으로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고 한다. 이상한 것은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지만 그래도 어떤 종류의 제트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두 개의 분명한 기준점이 있었기 때문에 속도를 재 보기로 했다. 그날은 약 50마일 떨어진 물체의 대략적인 모양과 크기까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시야가 맑았다.

    계기판에 달린 8일짜리 시계의 초침이 정확히 2시 59분을 가리켰을 때, 편대의 첫 번째 물체가 레이니어 산 남쪽 가장자리를 통과하고 있었다고 그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렇게 그는 자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물체들을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시작한다. 페이지 상단에는 CONFIDENTIAL 표시, 우상단에는 COPY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도 CONFIDENTIAL 표시가 다시 들어가 있어, 이 진술서가 공식 사본으로 회람된 문건임을 알 수 있다.

  165. p.165

    기밀 등급으로 분류된 진술서 사본의 한 페이지로, 목격자가 비행 물체 무리를 관찰한 경위를 1인칭으로 자세히 적은 부분이다. 목격자는 그 비행체들이 산봉우리에 매우 가까이, 산맥의 능선을 따라 남남동 방향으로 곧장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말한다. 고도는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평선 부근이었고, 위아래로 천 피트 정도 차이가 날 수는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행 대형은 마치 서로 묶인 것처럼 거위 떼가 사선으로 늘어서서 나는 모습과 흡사했다.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봉우리 사이를 들락날락 휘저으며 지나갔다. 속도 자체는 당시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미군 육군과 공군에 매우 빠른 비행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햇빛에 번쩍이며 뒤집히듯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꼬리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떤 조종사라도 그런 비행기를 보면 한 번 더 눈을 돌려 다시 살펴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자신과의 거리는 거의 직각 방향으로 32~40킬로미터 정도였다고 추정한다. 그 정도 거리에서 형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컸다는 뜻이다. 주머니에 있던 작은 공구를 들어 비행체와 자신의 왼쪽에 떨어져 있던 DC-4 여객기와 견주어 보았다. 비행체는 DC-4보다 작아 보였지만, 폭은 DC-4 동체 양쪽 가장 바깥쪽 엔진까지의 너비만큼은 되어 보였다.

    계속 지켜볼수록 점점 불안해졌다. 그는 지상이든 고공이든 거의 모든 비행체를 익히 보아온 사람이었다. 비행체 무리가 레이니어산과 애덤스산 사이의 또 다른 눈 덮인 능선을 가로지르는 모습도 관찰했다. 첫 번째 물체가 능선 남쪽 정상을 지날 무렵 마지막 물체는 능선 북쪽 정상에 진입하고 있었다.

    자신이 그 능선 방향으로 비행 중이었기에 직접 거리를 재 보았더니 약 5마일이었다. 따라서 그 비행체 무리의 전체 길이가 적어도 5마일은 된다고 안전하게 추정할 수 있었다. 비행 경로 양쪽으로 봉우리들이 있어 위치를 꽤 정확히 잡을 수 있었다.

    대형의 마지막 물체가 애덤스산의 가장 남쪽 눈 덮인 정상을 통과하는 순간 손목시계의 초침을 보니 1분 42초가 지나 있었다. 당시에는 그 시간 측정값이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다. 착륙하면 무엇을 본 것인지 설명이 따라 나올 것이라 자신했기 때문이다.

    여러 기자와 전문가는 그가 본 것이 반사광이거나 신기루였을 수 있다고 시사했다. 그는 그것이 명백히 틀렸다고 단언한다. 비행체를 비행기 유리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기체를 옆으로 기울인 뒤 창문을 열고 막힘 없는 시야로, 선글라스도 없이 직접 관찰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2분은 매우 짧지만, 공중에서 조종사는 같은 시간 안에 시야 속의 한 사물을 60번도 넘게 살펴볼 수 있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 뒤에도 실종된 해병대 소속 비행기를 20분 더 수색했고, 본 것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점점 더 불안해졌다. 마지막으로 티튼 저수지를 한 번 더 살펴본 뒤 야키마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상단 모서리에는 'COPY' 표시가 있다.

  166. p.166

    비밀(CONFIDENTIAL) 도장이 위아래에 찍힌 진술서의 한 쪽으로, 케네스 아놀드가 자신의 목격담을 1인칭으로 풀어 놓은 본문이다. 글쓴이는 우선 자신이 본 물체들이 마운트 애덤스를 지나갈 때까지 섬광을 따라가며 약 2분 30초에서 3분 동안 계속 관찰했다고 적는다. 마운트 애덤스에 닿을 무렵에는 너무 멀어져 형태까지는 분간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햇빛이 한두 개, 또는 세 개의 기체에 반사될 때는 완전히 둥글게 보였고, 자신이 본 모양을 따로 그림으로 그려 동봉했다고 밝힌다. 눈 덮인 능선과 마운트 레이니어를 지나갈 때의 형태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한다.

    물체들이 거의 직선으로 수평 비행할 때는 가느다란 검은 선처럼만 보였고, 휙 뒤집힐 때에야 비로소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도는 거의 일정하게 유지됐는데, 로켓이나 포탄처럼 위로 솟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은 없었다. 자신이 아는 일반적인 항공기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지만, 어쨌든 어떤 종류의 비행체임은 분명하다고 단언한다.

    같은 종류의 목격담이 미국 전역에서 보고되었고, 그 가운데 여섯에서 일곱 건은 자신이 본 것과 동일한 대상임이 분명하다고 본다. 서부 항공사 소속 세 명, 오클라호마시티의 한 남성, 일리노이주의 기관사, 그리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미스 기장과 부조종사 스티븐스의 증언이 그 예다. 다만 지상에서 본 목격담은 물체가 아주 높이 떠 있지 않은 한 정확하기 어렵고, 보이는 시간도 4~5초밖에 되지 않으며, 지면 부근의 수분이나 먼지가 시야를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고 단서를 단다.

    글쓴이는 미국 전역에서 온 편지를 가지고 있으며, 스웨덴·버뮤다·캘리포니아 등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물체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한다. 그날 망원렌즈가 달린 무비 카메라가 있었다면 무엇이든 내주었을 거라며, 앞으로는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겠다고 다짐한다. 그날 야키마 공항에 착륙한 뒤 친구 알 백스터에게 본 것을 말했지만, 백스터는 끈기 있게 들어주면서도 농담조로 믿지 않았다고 한다.

    두 산 사이의 거리를 제대로 가늠한 것은 같은 날 오리건주 펜들턴에 내려서 조종사 친구들에게 이야기한 뒤였다. 그들은 비웃지 않고 유도탄이나 신형 장비일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전직 육군 조종사 여러 명은 해외 전투 파견 전 브리핑에서 자신이 묘사한 것과 비슷한 형태·설계의 물체를 보게 될 수 있다고 들었다며, 헛것을 본 것도 정신이 나간 것도 아니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펜들턴에서 농약 살포 사업을 하는 전직 미 육군항공대 조종사 소니 로빈슨의 말도 직접 인용한다. "당신이 본 것은 분명 어떤 종류의 제트 또는 로켓 추진 기체이며, 우리 정부가 시험 중이거나 혹은 외국 정부가 시험 중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다.

    자신이 본 것이 알려지자 그날 밤이 가기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전화가 걸려왔고, 지금까지 비웃거나 의심하는 전화나 편지는 한 통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아는 한 유일한 불신은 신문 보도뿐이었다. 글쓴이는 일부 사람들이 우스개로 만든 이 사건을 우스개로 보지 않으며, 자신에게는 매우 심각한 일이라고 못 박는다. 본문은 "그리고 내가 분명히…"라는 미완 문장에서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167. p.167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가 자신의 목격담 끝에 붙인 진술의 마지막 장이다. 그는 길모퉁이의 존 도(John Doe)나 목장의 피트 앤드루스(Pete Andrews)가 들어본 적 없는 것을 자기가 봤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라고 적는다. 자기 이야기의 진위나 자신의 정신·신체 상태에 대한 조사를 육군과 FBI에 공개적으로 요청했지만, 두 보호 기관 모두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이 United Press와 Associated Press에 두 차례 제공한 보고와 라디오 방송이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는데도 군 정보부가 자신이 본 것을 모르고 있다면, 그쪽 사람들이 가장 먼저 자기를 찾아왔어야 마땅하지 않냐고 묻는다. 많은 사람이 마구 추측해 보라고 요청해 왔지만, 자기는 확인 가능한 사실만 적었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추측에 관한 한 자기에게도 다른 모든 사람에게나 똑같이 미스터리라고 말한다. 끝에는 자기 비행사 면허번호가 33487이고, 와이오밍 애프턴(Afton)에서 제작된 고성능·고고도용 단발 3인승 산악 비행기 Callair를 몬다고 밝히고, 항공기 등록번호가 33385라고 덧붙인다. 서명은 아이다호 보이시 387번 사서함의 케네스 아놀드. 페이지 아래쪽에는 그가 그린 비행체 스케치 두 개가 있다. 위쪽 그림은 진행 방향이 표시된 다각형으로 한쪽 끝에 "Tip"이라고 적혀 있고, 아래쪽 그림은 측면도 격으로 더 가는 형태다. 그 옆에는 "길이가 너비보다 길어 보였고, 두께는 너비의 약 1/20 정도였다", "거울처럼 밝았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다. 마지막 줄에서 아놀드는 비행체가 빙글빙글 돌거나 회전하지는 않았고 자기가 그린 그림처럼 일정한 자세로 비행했다고 다시 한 번 서명까지 곁들여 못 박는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COPY"라는 표시도 있다.

  168. p.168

    1947년 7월 16일자 4AF 1208 1 보고서. 작성자는 미 공군 제4공군 방첩대(CIC 4th AF) 특별요원 프랭크 M. 브라운(Frank M. Brown), 수신처는 책임 장교다.

    브라운은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신문사 'Idaho Daily Statesman' 사무실을 찾아갔다. 이 신문의 항공 담당 편집자 데이비드 N. 존슨(David N. Johnson)을 만나, 같은 보이시에 사는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를 얼마나 잘 아는지, 또 아놀드의 말을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지 물었다. 아놀드는 1947년 6월 26일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 위로 9개의 물체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여러 통신사에 진술했고 — 이 물체들이 곧 '비행접시'·'비행 원반'으로 불리게 된다 — 브라운의 면담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존슨은 아놀드를 오래 알고 지냈다고 했다. 둘 다 개인 비행사라 자주 만나 비행 얘기를 나눴고, 자신은 아놀드의 말이라면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아놀드가 정말로 그 비행 원반을 보았다고 믿는다고 답했다. 아놀드의 보도 이후 신문사 편집장은 존슨에게 사내 비행기를 몰고 북서부 일대를 직접 뒤져 비행 원반이 실제로 목격되는지 확인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 결과 존슨이 본 것은 본인이 직접 서명한 선서 진술서로 본 보고서에 부속서 'B'로 첨부됐다.

    요원 메모에서 브라운은 존슨을 33~35세가량의 매우 과묵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다발 엔진기까지 다양한 기종으로 비행시간 2,900시간을 기록했고, 전쟁 중에는 티니안 섬에 주둔한 제20 미 육군항공대에서 B-29의 정조종사로 복무했다. 브라운은 존슨이 진술서대로 실제로 무언가를 보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했고, 존슨처럼 신중한 사람이 이런 보고로 따라올 비웃음을 무릅쓰고 나서려면 잃을 것이 얻을 것보다 훨씬 많은 만큼 정말로 본 것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첨부물은 부속서 'B' 한 건. 페이지 상단에 'CONFIDENTIAL' 도장과 'COPY'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문서가 기밀로 분류된 사본임을 보여준다.

  169. p.169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데이비드 N. 존슨이 작성한 진술서다. 존슨은 7월 6일 스테이츠먼 신문사의 총괄책임자 제임스 L. 브라운으로부터 "북서부 주들 상공을 비행하며 비행 원반을 찾아 사진을 찍어 오라, 합리적이라 판단되는 시간 동안 또는 원반을 볼 때까지 수색을 계속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다음 날인 7월 7일 그는 신문사 항공기에 케네스 아놀드를 동승시켜 일곱 시간 반 동안 워싱턴주 핸퍼드 공장 일대와 아놀드가 처음 원반을 목격한 레이니어산·애덤스산 인근을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7월 8일에는 자신이 소속된 아이다호 주방위공군 제190전투비행대대의 AT-6을 몰고 북부 아이다호·몬태나 북서부·워싱턴 스포캔을 거쳐 월라월라와 펜들턴을 경유해 보이시로 돌아왔으나 역시 성과가 없었다. 7월 9일 세 번째 비행에서는 보이시 서남쪽 오와이히 산맥과 마운틴홈 사막, 소투스 산맥, 셰이퍼 뷰트 산림감시초소 북쪽, 호스슈 벤드 지역을 약 두 시간 반에 걸쳐 훑은 뒤 보이시와 메리디언 마을 사이로 돌아왔다. 비행 도중 보이시 동쪽 케인스 프레리 상공에서 빠르게 형성되는 적운 구름을 위아래로 통과했고, 구름은 보이시에서 직선거리 75마일 동쪽 페어필드 마을 근처에 있었다. 이때까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메리디언과 보이시 사이 지점에 도달했을 때 그는 해발고도 1만 4천 피트—지상 약 1만 1천 피트—를 비행하고 있었으며, 기압 변화나 고고도 기온에 따른 고도계 오차는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동쪽 가우언 비행장 쪽으로 기수를 돌려 약 1분쯤 비행하던 중, 시야 왼쪽에 검고 둥근 물체가 갑자기 나타났다. 즉시 그 물체에 시선을 집중했으나 움직임이 불규칙해 처음에는 기상관측 기구라고 생각했다. 그는 보이시의 민간항공국(CAA) 통신소에 무전으로 기구를 띄운 적이 있는지 물었고, 통신사 앨버트슨은 "몇 시간 전에는 띄우지 않았다" 또는 "이전 발사 시각은 그날 06시 30분경이었다"는 취지로 답했다. 페이지 상단 오른쪽에 "COPY"라는 스탬프가, 상하단에 "CONFIDENTIAL"이 찍혀 있어 사본임을 명시한다.

  170. p.170

    목격자가 항공기에서 물체를 본 순간의 진술이다. 응답을 듣자마자 항공기 측면을 물체 쪽으로 돌려, 왜곡을 피하려고 플렉시글라스 덮개를 뒤로 젖히고 지도 케이스에서 카메라를 꺼내 8밀리미터 영화 필름으로 약 10초 분량을 촬영했다. 카메라가 눈높이에 있는 동안에는 카메라에 장착된 F1.9 이스트만의 광학 뷰파인더가 만든 미세한 스코프 탓에 물체가 보이지 않았다. 카메라를 내리고 다시 시선을 물체에 맞추자, 물체가 모서리를 자신 쪽으로 돌리듯 회전했고, 그 순간 햇빛에 한 번 번쩍였다. 이어 가는 검은 선처럼 보이더니, 슬로우 롤이나 배럴 롤을 시작하는 듯한 기동을 했다가 끝까지 마치지 않고 180도 지점에서 끊어, 그 꼭대기에서 빠져나간 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전 과정은 가마스 프레리 상공에 미리 형성되어 있던 구름을 배경으로 일어났다. 물체는 25센트 동전 정도 크기로 보였고,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속도도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비행기는 아니었고, 만약 거리가 멀었다면 속도는 매우 빨랐을 것이라고 본다. 멀리 있는 물체는 보는 사람에게 속도가 줄어 보이기 때문이다. 시계를 보지 못해 정확한 시각은 모르지만, 민간항공국 무선 교신 기록에는 첫 교신이 12시 17분이라고 남아 있다. 다만 처음 본 시점과 민간항공국에 무전을 건 시점 사이에 몇 초의 시차가 있었다. 이후 무전으로 본 것을 묘사해 앨버트슨에게 전했고, 관제탑에 녹음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무전을 친 이유는 신문사에 빨리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자신은 임무 중이었고, 이후 모든 노력을 (1) 정보 전달과 (2) 추가 수색에 쏟았다. 착륙해 연료를 채우고 전화 몇 통을 걸고 난 뒤, 30분 안에 두 번째 수색을 시작해 두 시간을 더 썼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처음 물체를 본 지역을 샅샅이 훑은 것이다. 목격 직후 다른 항공기가 있는지 물었다. 쿠마 인근에서 190비행대대 소속 F-51 한 대가 기동 훈련 중이었지만 자신 뒤쪽이었고, 보이즈 상공을 지나간 C-82 한 대는 약 2,000피트 아래로 빠져나간 것을 직접 확인했다. 자신의 요청으로 쿠마 인근의 F-51이 목격 지점으로 가 수색을 했지만 결과는 없었다. 오후에는 다시 F-51 편대들이 그 지역을 덮으러 출격했고, 일부는 산소 호흡 장비를 달고 고고도 임무를 수행했지만 역시 빈손이었다. 이후 가운필드의 유나이티드 항공 측과 주방위공군 측 인원들이 같은 구름대 앞에서 검은 물체가 기동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 사이 구름은 평균 해수면 기준 13,500 또는 14,000피트 저변에서 13,000 또는 20,000피트 높이까지 커진 상태였다. 이 가운데 세 명은 주방위공군 소속이었고, 자신이 직접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페이지 상단에 'CONFIDENTIAL' 분류 표시와 'COPY' 표기가 함께 보이며, 아래에도 동일한 분류 표시가 반복된다.

  171. p.171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데이비드 N. 존슨이 작성한 진술서의 마지막 장이다. 존슨은 이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브라운 씨와 데이비슨 대위의 요청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밝힌다. 진술서 아래에는 본인의 서명이 들어가 있고, 아이다호주 에이다 카운티의 공증인 조지 L. 플래허티가 같은 날 이를 공증했다. 플래허티 공증인의 임기는 1949년 1월 2일까지로 적혀 있다. 문서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과 함께 'COPY' 라는 별도 표시가 있어, 이 페이지가 원본이 아닌 사본 형태로 보존되어 온 군 정보 문서임을 알려준다.

  172. p.172

    데이비드 N. 존슨의 진술서 6쪽에 언급된 도표다. 작성자는 직접 본 비행체의 움직임을 손으로 그려 설명한다. 점선을 따라 다섯 개의 위치가 번호로 표시돼 있고, 도형 아래에는 짧은 설명이 붙는다. 설명에 따르면 비행체는 처음부터 끝까지 검게 보였다. 1·2·3번 위치에서는 위로 올라가는 동작이 끊기듯 튀어 올랐고, 4번 위치에서는 비행체가 옆으로 돌면서 가장자리를 관찰자에게 보였다. 그 후 점선을 따라 기동의 정점을 굴러 넘어가다가 5번 위치에서 사라졌다고 적는다. 종이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COPY 표시가 함께 보인다.

  173. p.173

    비행 경험 진술서의 한 페이지로, 목격자가 자신이 관찰한 비행 물체에 대해 직접 작성한 보고서다. 작성자는 다른 목격자들에게 먼저 자신이 본 것을 말하기 전에 그들이 본 것을 묘사하도록 했다고 설명한다. 유도 질문이 되지 않도록 한 조치였다. 그 목격자들은 두 번째 수색 비행 중에 지상에서 그 물체를 보았고, 시간은 오후 두 시쯤이었다고 했다. 자기가 본 것과 같은 식으로 불규칙하게 움직였다는 진술이었다.

    다음으로 작성자는 자신의 이력을 밝힌다. 초등 훈련기부터 B-29 폭격기까지 다양한 기종에서 약 2800시간을 비행했다. 비행 경력이 관찰력을 특별히 키워주지는 않지만, 조종사로서 매일 단련하는 정도의 시력과 주의력은 갖췄다고 적는다.

    그날의 비행은 원반을 찾아 가능하면 사진으로 담는 임무였고, 사건 직전까지 열네 시간 반을 비행한 상태였다. 작성자는 솔직히 자신이 피곤했다는 사실, 산소 부족의 영향을 약간 받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물체를 보기 직전에는 이미 수색을 계속해봐야 소용없겠다고, 아놀드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스미스 기장이 말한 원반 모양 물체를 자신은 보지 못할 거라고 결론 내린 참이었다.

    수색 기간 내내, 특히 아놀드와 함께한 사흘 동안 작성자는 스스로에게 거듭 다짐했다고 한다. 임무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강한 욕망 때문에 암시나 자기최면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머릿속에 끊임없이 새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암시나 최면의 희생자였다고 보지는 않는다. 한 점을 오래 응시하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시각적 착각도 익숙하게 알고 있으며, 야간 편대비행을 하며 눈이 어떤 장난을 거는지도 배워 안다고 한다.

    물체는 갑자기 나타났다. 만약 그 물체가 처음처럼 끝까지 발작적으로 움직이는 모습만 보여줬다면, 자기가 본 것이 항공기도, 기구도, 망막 위를 가로지르는 미세 입자도 아니었다고 단언하지 못했을 거라고 작성자는 적는다. 다만 물체가 측면을 자신 쪽으로 보이면서 보여준 기동 때문에, 실제로 어떤 물체가 불규칙한 비행 경로를 그리며 움직였다고 확신한다.

    남은 문제는 그것이 영상에 잡혔느냐다. 샌프란시스코 배터리가 241번지에 있는 이스트맨 연구소의 H. W. 스토어가 직접 현상하고 처리한 영화 필름에는 어떤 물체의 흔적도 남지 않았다. 스토어 말로는 작성자가 묘사한 크기로 약 1.6킬로미터보다 더 멀리 있었다면 필름에 충분히 기록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망원 장비도 달지 않은 데다 필름 크기 자체의 한계 때문에 네거티브를 크게 확대해도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이었다. 노출은 조리개 f.16, 초점은 무한대, 초당 16프레임이었다.

    작성자는 그 일을 본 뒤로 줄곧 마음에 걸려 했다고 한다. "존슨, 정신 차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하고 스스로 다그쳐도 봤지만, 자기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는 도저히 결론 낼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그 순간의 인상이 너무 생생하고 사실적이었고, 부분적인 슬로 롤이나 배럴 롤 같은 기동을 공중에서 직접 본 이상 자신이 환영의 희생자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성자는 이 진술이 비행 원반 현상을 조사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고, 물체의 움직임을 그린 도표를 첨부했다고 밝힌다.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우상단에는 사본임을 나타내는 COPY 표시가 보인다.

  174. p.174

    1947년 7월 16일 자로 제4공군 방첩대(CIC) 특수요원 프랭크 M. 브라운이 담당관에게 올린 메모랜덤이다. 사건 번호는 4AF 1206 I, 문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상단에는 'COPY' 표시가 있다. 브라운은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주 보이시 시영공항에서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미스 기장을 면담했다고 적었다. 스미스 기장은 정기 운항편으로 보이시를 거치는 중이었고 20분 정도 머무를 예정이었으며, 자신이 7월 4일 늦은 저녁 보이시에서 시애틀로 가는 항로에 들어선 지 8분 만에 목격한 장면을 언론에 처음 진술한 내용 그대로 다시 확인했다. 면담자는 스미스 기장의 직책을 감안할 때 이런 종류의 보고에 따르는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스로 나선 것을 보면 본인이 실제로 비행 원반을 보았다고 강하게 확신하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했다.

  175. p.175

    1947년 7월 14일 작성된 제4공군 방첩대(CIC) 특수요원 프랭크 M. 브라운의 메모로, 사건번호 4AF 1208 I 담당관에게 올리는 보고다. 리처드 랭킨이라는 인물의 소재를 확인하기 위한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 현지 조사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7월 10일, 요원은 팜스프링스 경찰서, 지역 신문 〈더 데저트 선〉, 팜스프링스 수도회사, 서던캘리포니아 가스, 전화회사, 직업소개소, 상공회의소, 로열팜스 호텔, 부동산 사무소 다섯 곳, 그리고 폐기물·수리권·세무 기록을 포함한 시청 부서들을 차례로 조회했지만 랭킨에 관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7월 11일에는 14년간 팜스프링스 우체국장을 맡아온 라일런드 M. 고램을 면담했다. 고램은 자신이 24년째 팜스프링스에 거주해 왔지만 리처드 랭킨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다만 팜스프링스가 휴양지라 여름철 거주자가 3천~5천 명, 겨울철에는 1만~1만 2천 명으로 크게 늘어나는 도시인 만큼, 비상주 형태로 머물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모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반우편 보관 기록을 확인하던 중, 인디애나주 시세로에서 1947년 7월 오후 5시에 발송돼 팜스프링스의 리처드 랭킨 앞으로 도착한 편지 한 통이 발견됐다. 봉투에 적힌 발신지 주소는 "인디애나주 시세로 루트 1, 가스펠 트랙트 워커"였다. 제3종 우편물이고 봉투가 봉인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고램의 허락을 얻어 내용물을 살펴봤는데, 미국 내 비신앙자들의 안타까운 처지와 그리스도 재림 같은 종교적 내용을 다룬 인쇄물이었다. 고램이 우편 책임자를 호출해 확인한 결과, 팜스프링스 우체국 일반우편 창구로 리처드 랭킨 앞 우편물을 받아 가던 인물이 실제로 있었지만, 이번 편지를 빼면 마지막 우편물은 약 2년 전이었다. 우편 책임자는 기억이 흐릿한 가운데, 마지막 우편물이 팜스프링스의 한 트레일러 캠프 주소로 발송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해당 캠프 사무실에 문의해 보니 랭킨이 그곳에 거주한 사실은 맞지만 2년 전쯤 떠나면서 다음 주소를 남기지 않은 상태였다. 보고서는 랭킨의 소재 파악과 진술 확보를 위한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며 마무리된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우측 상단에는 "COPY" 도장이, 하단에는 "UNCLASSIFIED"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사본이 사후에 비밀해제됐음을 보여준다.

  176. p.176

    1947년 7월 15일자 4AF-1208-1 메모랜덤으로,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467 AAF BU 소속 에드워드 R. 베이커 하사가 담당 장교에게 진술한 내용을 4AF 방첩대 책임장교 윌리엄 L. 데이비드슨 대위가 정리한 보고서다.

    베이커 하사는 육군에서 10년 2개월을 복무했고 그 중 26개월을 유럽 전구에 파견되었으며, 항공대로 옮긴 지는 약 10개월 됐다. 그는 1947년 7월 8일 사무실에서 기지 세탁소로 가던 중 ORD 막사 근처 보도를 지나다가 다섯 여섯 명이 하늘을 가리키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공군기지에서는 흔한 광경이라 처음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앞쪽의 중위와 대위가 멈춰 서서 같은 방향을 가리키자 그제야 위를 올려다봤다.

    하늘에는 세 개의 물체가 북동쪽으로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그 중 둘은 P-80 전투기의 일반 비행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였고, 고도는 약 8000~10000 피트, 거리는 7~10 마일쯤으로 가늠됐다. 앞선 두 물체는 둥글고 옅은 회색이었으며, 뒤따르는 물체는 다른 두 개 뒤에서 회전하거나 굴러가는 듯 보였다. 베이커 하사는 거리가 멀어 그 굴러가는 물체의 정확한 모양은 알 수 없었고 평평한 형태인지도 단정하지 못했다. 다만 굴러가는 듯한 움직임에 따라 밝기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는 것이 식별의 유일한 단서였다고 진술했다.

    물체는 약 4초가량 시야에 머물렀다. 그는 바쁜 와중이라 다른 목격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누군가가 "뒤쪽 놈은 정말 빨리 굴러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다른 목격자들의 신원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베이커 하사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물체였으며 자신도 착시였다고 믿어보려 애썼지만, 그럼에도 진술한 그대로의 물체를 분명히 봤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데이비드슨 대위는 별도 메모로 베이커 하사가 지적이고 신중한 사람이며, 비웃음을 살까 봐 처음에는 화제를 꺼리는 듯 망설였다고 적었다. 그러나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정직하고 진솔하게 말했고, 솔직히 이 일에 자신도 어리둥절하다고 털어놨다는 것이다. 베이커 하사의 서명 진술서는 첨부 서류 한 부 (Exhibit I) 로 함께 제출됐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 우측 상단에 "COPY" 표기, 좌측 하단에 FBI 파일번호 62-83894-95 가 함께 보인다.

  177. p.177

    1947년 9월 2일, 뷰트 지부 특별수사관(SAC)이 FBI 국장에게 보낸 "플라잉 디스크" 제목의 사무 메모로, 8월 20일자 전문 후속 보고다. 주 정보원은 아이다호 트윈폴스 시영주택공사 사무국장 H. H. 헤드스트롬이다. 그는 1947년 8월 19일 밤 9시 30분경 아내와 이웃 헨리 슐츠 부인과 함께 자택 현관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하늘을 가리키며 북동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물체 하나를 봤다고 외쳤다. 헤드스트롬 본인과 슐츠 부인이 미처 시선을 돌리기 전에 물체는 사라졌다.

    방금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약 10분 뒤 세 사람 모두 비슷한 물체 열 개가 삼각형 대형을 이루고 같은 북동 방향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봤다. 대형이 시야에서 사라지려 할 때 왼쪽 측면의 세 개가 떨어져 나와 좀 더 북쪽으로 향했고, 나머지는 다시 대오를 좁혀 북동쪽으로 계속 갔다.

    3~5분 뒤 같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또 다른 삼각 대형 세 개짜리 무리를 봤다. 다시 3~5분 뒤에는 다섯 또는 여섯 개로 이루어진 삼각 대형 한 무리가 같은 방향으로 지나갔다.

    그 직후에는 35~50개로 추정되는 큰 무리가 같은 방향으로 삼각 대형을 이뤄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큰 무리를 본 지 약 20~25분 뒤에는 비슷한 물체들이 이번에는 도시 상공을 남서쪽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이 관측됐다. 보통 3개, 5개, 7개씩 묶여 약 5분 간격으로 뒤따랐다.

    헤드스트롬 부인은 옆집 이웃이자 트윈폴스 경찰서 형사인 리처드 A. 프레이저에게 연락했고, 그는 같은 경찰서 소속 M. E. 라운트리, 리처드 스콧과 함께 현장에 합류했다. 세 경관은 잠시 지켜보던 중 약 열두 개의 물체가 대형을 이뤄 도시 상공을 남서쪽으로 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경찰관들은 더는 관측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프레이저는 이후 또 다른 무리를 봤고 헤드스트롬 부부와 슐츠 부인도 같은 무리를 봤다. 슐츠 부인이 남편에게도 알려, 남편 역시 일부를 봤다.

    페이지 우측 상단에 "Fletcher"라는 손글씨 서명이 보이고,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62-83894-96, 1947년 9월 8일), 1964년 11월 사본 폐기 표시가 함께 남아 있어 본 메모가 FBI 본부 파일에 정식 등록된 보고임을 보여준다.

  178. p.178

    FBI 내부보안과로 접수된 미국 정부 공식 서한의 한 장이다. 본문은 타자로 친 여러 단락이지만 스캔본이 거꾸로 들어가 있고 잉크가 흐릿해 본문을 그대로 옮기기는 어렵다. 페이지 아래쪽에 FBI Internal Security 부서의 접수 도장이 두 개 찍혀 있는데, 하나는 9월 27일 오후 1시 59분, 다른 하나는 같은 부서가 오후 5시 9분에 다시 접수한 표시다. 여백에는 손으로 "Copy 9/5" 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본문 자체보다 이 서한이 FBI 내부보안 라인을 따라 같은 날 두 번 접수된 사실, 그리고 별도 사본이 9월 5일자로 따로 관리되었다는 행정 흔적이 페이지에서 읽히는 핵심이다.

  179. p.179

    사건 번호 BT 65-481 보고서의 2쪽이다. 그날 밤 하늘은 흐렸고 물체는 가까이 볼 수 없었지만, 모든 목격자가 공중을 지나가는 빛으로 인식할 만큼은 또렷했다. 목격자들은 물체가 안쪽에서 빛나는 것 같았고 일반 전등과 비슷한 색이었다고 진술했다. 프레이저 형사와 헤드스트롬은 둘 다 그것이 유성이나 혜성일 수 없으며, 수평으로 날아갔고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엄청난 속도로 잠시 동안만 보였고, 거위나 오리도 아니었으며 도심 불빛이 어떤 물체에 반사된 것도 아니라고 했다. 인터뷰 대상자 중 누구도 불꽃이나 다른 현상은 보지 못했고 빛의 발광만 보았으며, 목격 당시 음주 상태였던 사람은 없었다. 트윈폴스의 다른 사람들은 같은 물체를 보고하지 않았으나, 헤드스트롬과 프레이저는 우연히 본 것이며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다면 속도 때문에 놓쳤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흐린 하늘 탓에 물체의 크기나 비행 고도는 가늠하지 못했다. 결론으로, 뷰트 사무소는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본 건을 종결한다고 명시한다. 보고서 작성자 표기는 RJG:FO'S.

  180. p.180

    1947년 9월 4일,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장(SAC)이 FBI 본부장에게 항공우편 특급으로 보낸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 보고서"다. 메모는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A-2 소속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1947년 8월 28일 보낸 편지 사본을 동봉한다고 밝힌다. 편지에는 알래스카 베델 인근에서 잭 펙 기장과 부조종사 빈스 데일리가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는 내용이 첨부되어 있다. 샌프란시스코 지부는 이 편지와 첨부물의 사진 복사본을 앵커리지 지부로 보내고 있으며, 1947년 7월 30일자 FBI 회보 42호에 따라 앵커리지 지부에 펙 기장과 데일리 부조종사를 가능하면 따로 면담해, 1947년 8월 4일 보고된 목격담의 모든 세부를 확보하라고 요청한다. 면담 결과 사본 두 부는 샌프란시스코 지부로 보내 제6군 정보처에 회람할 수 있게 하라는 지시도 함께 들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접수·색인 도장과 문서번호 62-83894, 1947년 9월 23일 접수 표시가 찍혀 있다.

  181. p.181

    이 페이지는 앞면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읽을 만한 내용은 거의 없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이 있고, F.B.I. 국내안보 부서가 1952년 2월 27일 오후 1시 52분에 이 문서를 받았다는 정보를 담고 있다. 도장 옆에는 법무부(DEPT OF JUSTICE)를 가리키는 문구가 있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누군가의 손글씨 이니셜이 작게 적혀 있다.

  182. p.182

    1947년 8월 19일, 시애틀에 있는 알래스카 통신체계 신호단(Alaska Communication System, Signal Corps) 본부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주둔 제4공군 사령관 앞으로 보낸 비밀(Confidential) 등급 공문이다. 제목은 "국가적 관심사(Matters of National Interest)". 본문은 짧다. 알래스카 베델(Bethel) 주재 통신소 부사관(NCOIC)에게서 첨부 편지를 받았으며, 참고용으로 송부한다는 내용이다. 사령관을 대신해 신호단 대위 스벤드 C. 한센(Svend C. Hansen) 대리 집행관이 서명했고, 베델 주재 부사관이 시애틀 본부에 보낸 편지 사본 1부가 첨부되어 있다고 적었다.

    같은 문서 아래쪽에는 사흘 뒤인 8월 22일자 1차 회람(1st Indorsement)이 이어진다.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제4공군 사령부가 같은 첨부 자료를 그대로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 특수요원 책임자(Special Agent In Charge) 앞으로 다시 넘기며 "참고용으로 송부함"이라고만 덧붙였다. 작전·정보참모부(A-2) 참모장보 도널드 L. 스프링거(Donald L. Springer) 중령이 서명했다.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의 1947년 9월 2일자 접수 도장과 "NND 90986" 권한으로 비밀 해제됐다는 라벨이 함께 찍혀 있어, 이 한 장이 군 통신단 → 공군 → FBI 로 차례차례 넘어간 경로를 그대로 보여 준다.

  183. p.183

    1947년 8월 5일 알래스카 베델에서 시애틀 알래스카통신시스템 사령관 앞으로 올린 "국가적 관심 사안(Matters of National Interest)" 보고. 작성자는 7/4 통신대 운영책임자 해럴드 P. 존스턴(Harold P. Johnston)이다. 보고 내용은 이렇다. 1947년 8월 4일, 알 존스 항공사(Al Jones flying service)의 수석 조종사 잭 펙(Jack Peck) 대위와 부조종사 빈스 데일리(Vince Daly)는 베델 북서쪽 상공에서 비행접시 한 대를 목격하고 추적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더글러스 DC-3을 몰고 있었는데, 문제의 물체는 그 DC-3보다 컸고 고도 1천 피트에서 자신들의 항로를 직각으로 가로질러 갔다. 두 조종사는 물체 뒤로 붙어 시속 170마일로 따라붙었지만 4분 만에 시야에서 놓쳤다. 물체는 표면이 매끈하고 유선형이었으며 추진 장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보고서 작성자는 제4공군이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은 안다고 적은 뒤, 펙 대위는 평판이 매우 좋고 과장하는 사람이 아니며 현지에서 그가 실제로 그 물체를 보았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사령관 측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취하도록 본 보고를 올린다고 마무리한다. 페이지 상하단에 CONFIDENTIAL 표기가 찍혀 있고 우측 상단에는 COPY 표시가 있으며, 하단에는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1947년 9월 2일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84. p.184

    1947년 8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지부장(SAC)이 FBI 본부 국장과 부국장 D. M. 래드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보고" 건의 사무 메모다. 발신자는 먼저 1947년 8월 8일에 보낸 자기 편지를 상기시킨다. 그 편지에는 "비행 원반 조사"라는 제목으로 1947년 8월 4일자 편지 세 통의 사진 복사본이 동봉돼 있었다. 이번에는 사안을 본부에 계속 알리기 위해 1947년 7월 25일자 "미확인 물체"라는 제목의 편지를 함께 보낸다고 말한다. 그 편지는 육군 참모부 정보참모(A-2) 보좌관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발신자에게 직접 건넨 것이고, 그 안에는 1947년 7월 15일자로 ASC 방첩단(CIC) 특별요원 로런스 H. 킹 주니어가 담당 장교 앞으로 쓴 별도의 각서가 들어 있었다. 스프링거 중령은 또 한 건의 문서를 직접 손으로 전달했다. 1947년 8월 8일자 "AF 1206-17 사건"이라는 제목의 각서로, 제4공군(4AF) 방첩단 특별요원 제임스 A. 넬슨이 작성했다. 발신자는 앞으로 이 사안에 관해 새 정보가 들어오면 곧바로 본부에 보고하겠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 오른쪽에는 'Fletcher'로 읽히는 서명이 있고, 여백과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 162-23394-98, 1947년 9월 28일과 10월 6일자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85. p.185

    타이핑된 편지 한 통의 뒷면이다. 앞면 글자가 종이를 비치며 거꾸로 어렴풋이 드러나지만 읽을 수는 없다. 페이지 위쪽 두 곳에는 바인더에 끼웠던 작은 펀치 구멍이 남아 있고, 아래쪽에는 FBI 접수 도장이 다섯 번 겹쳐 찍혔다. 가장 위에 자리한 도장은 1947년 9월 4일 오전 10시 7분 리에종 섹션 접수, 그 옆과 아래로 같은 날 오후 4시 36분 내사 보안 접수, 9월 5일 오후 3시 54분 래드 부국장 라인 접수, 9월 10일 오후 2시 41분 내사 보안 재접수, 9월 27일 오후 1시 29분 내사 보안 최종 접수가 이어진다. 한 장의 편지가 9월 한 달 동안 FBI 안에서 몇 차례나 손을 옮겨 다녔다는 사실을 도장만으로 보여주는 페이지다.

  186. p.186

    1947년 8월 5일자 CIC 제4공군 요원의 보고 메모로,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제412 미 육군 항공대 작전부의 부작전관 윌리엄 A. 스파드 대위(ASN 0-94130)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당 장교에게 올리는 문서다. 스파드 대위는 제412 훈련대 교관 조종사로, 1947년 7월 28일 14시 10분 학생 워드 L. 스튜어트 중위와 함께 비행을 마치고 88번 격납고 옆에 착륙해 예비작전실 쪽으로 걸어가던 중, 격납고 너머 서쪽 하늘에서 P-80 한 대가 오클랜드 방면으로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 위 약 8천~1만 피트 고도에 같은 방향으로 비행하는 비행 물체 두 개가 있었고, 단단해 보이는 흰색 초승달 모양에 지름 25~30피트 정도로 추정했다. 거리가 가까웠다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모양은 공이나 그 밑면처럼 둥글되 완전히 원형은 아니었고, 비행기는 분명 아니라고 못 박았다. 첫 번째 물체는 직선 수평으로 진행했고, 두 번째 물체는 그 바로 뒤에서 좀 더 비스듬한 자세로 좌우를 오가며 마치 편대 호위기처럼 따라갔다. 두 물체의 속도는 P-80을 공중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늘이 맑아 스파드와 스튜어트는 두 물체가 오클랜드 상공을 지나 바다 쪽으로 사라질 때까지 시야에 두고 지켜보았다. P-80 엔진 소음 때문이기는 하지만 두 물체 자체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증기·연기·항적 같은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스파드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요원에게 털어놓았다. 보고를 작성한 CIC 제4공군 요원 제임스 A. 윌슨은 인터뷰 내내 스파드 대위가 모든 질문에 솔직하고 확신 있는 태도로 답했으며 진지함이 분명했다고 덧붙였다. 페이지 상단에 "CONFIDENTIAL / COPY" 도장과 사건번호 AAF 1108-J가 찍혀 있고, 하단에는 1947년 8월 12일자 접수 도장, 후일 NND 90986 권한으로 기밀해제되었다는 라벨이 붙어 있다.

  187. p.187

    거의 비어 있는 페이지 뒷면 스캔이다. 상단 여백에 손글씨로 휘갈긴 식별 번호 비슷한 표기 하나만 보이고, 하단에는 바인더 구멍 두 개가 검게 찍혀 있다.

  188. p.188

    1947년 7월 25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서터가 111번지의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Special Agent In Charge) 앞으로 보낸 송부서다. 제목은 "식별 불가 물체(Unidentifiable Objects)". 본문은 한 문단뿐이다 — 같은 제목으로 7월 15일에 작성된 정보장교(MOIC) 보고서 사본을 동봉해 보낸다는 것이다. 서명은 정보참모부 차장 도널드 L. 스프링어(Donald L. Springer) 중령. 우측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이 7월 30일자로 찍혀 있고 그 아래 담당자 약식 서명이 남아 있다. 송부서 자체에는 식별 불가 물체의 내용은 적혀 있지 않고, 동봉된 7월 15일자 MOIC 사본이 본 자료의 핵심임을 알려주는 표지에 가까운 한 장이다.

  189. p.189

    1947년 7월 15일 애리조나 챈들러의 윌리엄스 비행장에서 "미확인 물체 (UNIDENTIFIABLE OBJECTS)"라는 제목으로 담당 장교에게 올라간 메모다. 작성자는 방첩대(CIC) 특별 요원 로런스 H. 킹 주니어, 진본 사본 인증은 항공대 소령 R. D. 스티븐스가 맡았다.

    메모에 따르면 1947년 7월 14일, 텍사스 샌안토니오 브룩스 비행장의 170 AAF 기지 부대 페리 부서 소속 에릭 B. 암스트롱 중위(군번 O-2059709)를 면담해 다음 진술을 받았다. 암스트롱 중위는 1947년 6월 28일 14시 00분(중부 표준시)에 애리조나 윌리엄스 비행장을 P-51 한 대로 떠나 오리건 메드퍼드를 거쳐 포틀랜드로 향했다. 15시 15분 무렵, 침로 300도·대지속도 285·고도 1만 피트로 비행 중이었고 위치는 네바다 미드 호 북서쪽 약 48 km 지점이었다. 그때 4시 방향에서 흰색 원형 물체 다섯 또는 여섯 개를 봤다. 고도는 약 6,000 피트, 침로는 약 120도, 추정 속도는 시속 285 마일이었다. 물체들은 아주 매끄럽게 밀집 편대로 비행했고, 지름은 약 36 인치로 보였다. 암스트롱은 접근 속도가 매우 빨라 새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제트기와 재래식 항공기 양쪽을 다 몰아본 경험으로 이 흰 물체들이 그 어느 쪽도 아니라고 단언했다.

    요원 메모란에서 킹은 암스트롱이 설명에 매우 진지했으며 과장하는 부류가 아니라고 적었다. 본 것을 그대로 진술했을 뿐, 그 흰 물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는 평이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1947년 7월 30일자 FBI 샌프란시스코 사무소 접수 도장과 손글씨 사건 번호 62-2938-11이 함께 남아 있어, 이 메모가 공군 내부 문서에서 FBI로 전달된 경로를 보여 준다.

  190. p.190

    1947년 8월 27일, 샌프란시스코 지부 특수요원 책임자(SAC)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로, 부국장 D. M. 래드에게 같이 회람되었다. 같은 날 오전 10시 40분,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제4공군 소속 스프링어 대령이 특수요원 마이클 J. 캐신에게 전화로 알려온 내용을 보고하는 글이다. 시애틀 타임스 시 편집국장 헨리 매클라우드가 스프링어의 부대로 직접 편지를 한 통 보냈다는 것이다. 매클라우드는 편지에서 비행 원반과 그 주변 사안을 둘러싼 이야기가 워낙 많이 돌고 있어 자신의 기자들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으려 애쓰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부 기관이 이 비행 원반 상황에 관해 공식 입장을 낼 계획이 있는지 묻고, 자신의 기자들이 아널드와 달, 스미스를 만나 취재해도 되는지도 함께 문의했다.

    스프링어 대령에 따르면, 이 편지에는 헤일 장군이 8월 25일 직접 답신을 보냈다. 헤일은 매클라우드에게 육군 항공군 측에는 이 상황을 명확히 정리해 줄 만한 정보가 없다고 했고, 인물 취재에 대해서는 지금은 어떠한 검열도 없으니 누구든 자유롭게 만나 취재해도 좋다고 답했다. 다만 비용 문제도 있어 제4공군 본부는 비행 원반에 관한 모든 제보와 신고를 일일이 쫓아다니지는 않을 것이고, 다만 근거가 단단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가 들어오면 그때는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 덧붙였다.

    이 편지의 사본은 시애틀 현장 지부로도 함께 전달되어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하도록 할 예정이다. 문서 하단에는 발신자 서명(플레처), 통제 번호 62-73894-99, 1947년 9월 23일과 10월 1일 자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어 문서가 본부에 정식 등록되었음을 보여 준다.

  191. p.191

    편지지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에 찍힌 타자 본문과 레터헤드가 종이를 투과해 거꾸로 비치지만 글씨는 거의 읽히지 않는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1947년 12월에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찍은 접수 도장 세 개가 거꾸로 남아 있다 — 12월 2일 오전 11시 06분, 12월 29일 오후 1시 27분, 12월 29일 오후 4시 50분의 세 차례 접수 기록이다. 본문 자체는 다른 페이지에서 읽어야 한다.

  192. p.192

    1947년 7월 8일자 델라웨어 신문 기사를 첨부해 보고한 FBI 내부 메모다. 기사에 따르면 로호보스 비치 거주 항공기 조종사 호레이스 P. 웬튼이 지난 두 달 사이 두 번 '플라잉 디스크' — 그의 표현으로는 '날아다니는 마요네즈 병' — 를 목격했다고 공개했다. 첫 목격은 1946년 9월, 두 번째는 1947년 6월 2일이었다. 웬튼은 FBI 에 전화를 걸었지만 관심 없다는 답을 받았고, 이어 이스턴 항공과 민간항공국에 알렸다. 두 기관 모두 조사하겠다고 응답했지만 답신은 오지 않았다고 했다. 윌밍턴 주재 요원실에서 이 기사를 메모 작성자에게 올려보내며, 윌밍턴 측 어느 요원도 웬튼과 접촉한 적이 없다는 점을 함께 보고했다. 이에 작성자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웬튼 직접 인터뷰를 지시했다. 인터뷰에서 웬튼은 약 30년 경력 조종사이며, 1946년 9월 로호보스 비치 남쪽 2~3마일 상공 1,000피트에서 비행 중 직경 약 15인치 정도의 발사체가 자신의 항로를 직각으로 가로질러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발사체에서는 여러 갈래 화염이 뿜어져 나왔고 속도는 시속 1,000~1,200마일에 달했다고 했다. 1946년 10월에도 1,400피트 상공에서 비슷한 발사체가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것을 다시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웬튼은 자신이 본 것이 일종의 시험 중인 로켓이라고 거의 확신하며, 최근 잇따른 항공기 추락이 자신이 본 현상과 일부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어 적절한 당국에 알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문단은 페이지 하단에서 잘려 윌밍턴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 내용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는 1964년 8월 18일 기밀해제 도장이 찍혀 있다.

  193. p.193

    1947년 9월 4일 FBI 본부장에게 보낸 "플라잉 디스크 / 기타" 항목 보고서의 두 번째 장이다. 목격자 WENTON 은 자기가 본 물체가 속도가 너무 빨라 묘사하기 어려웠다고 진술했고, "플라잉 마요네즈 병"이라는 표현은 신문기자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작성자는 이번 건은 신문 기사에 기반한 예비 조사에 그쳤고 WENTON 의 진술에서 얻은 사실 외에는 추가된 것이 없기 때문에 육군 측에 알리지 않았다고 적었다. 본부에서 다른 지시가 없는 한 이 사무소는 이 사안에 대해 더는 조치를 취하지 않을 예정이다. 하단에 작성자 이니셜 SB:arf, 파일 번호 62-0, 첨부물 표시가 따라붙는다.

  194. p.194

    1947년 9월 4일 자로 접수 도장이 찍히고 SUBJECT 칸에 "FLYING DISCS"라고 적힌 파일 첨부물이다. 본체는 신문에서 오려 붙인 한 단짜리 기사로, 헤드라인은 "레호보스 조종사가 보고한 비행 마요네즈 병 — 포레스트 웨니언, 미스터리 원반이 제트 추진으로 메모리얼 데이 대형 비행기 추락을 일으켰을 수 있다고 본다"이다.

    델라웨어주 레호보스비치 레호보스가 129번지에 사는 조종사 포레스트 웨니언은 어젯밤, 지난 10개월 사이에 자신이 본 물체들이 지금 세간에서 "플라잉 소서"라고 부르는 것들과 같다고 밝혔다. 웨니언 본인은 그것들을 "플라잉 마요네즈 병"이라고 부른다.

    기사는 웨니언이 본 물체가 다른 지역에서 보고된 "소서"들과 다른 점은 조종사 가까이에서 함께 비행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보고들에서는 소서가 변덕스럽게 움직인다고 묘사된 반면, 웨니언의 사례는 일정한 진로로 따라붙다 빠져나가는 양상이다.

    웨니언은 작년 9월 어느 오후 약 1,000피트 상공에서 북쪽으로 비행하던 중 처음으로 "플라잉 마요네즈 병" 비슷한 것을 봤다고 했다. 자기 비행기 앞 2,000피트쯤 거리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지나가는 "병"을 봤고, 잠깐이지만 몇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웨니언이 설명할 수 있는 한에서 가장 중요한 관찰은, 그 "병"이 일종의 로켓 연소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는 점이다. 긴 불꽃 줄기가 한참을 따라붙으며 추진력을 만들어내는 모양이었고, 꼬리 부분은 마치 구멍이 뚫린 뚜껑처럼 생겨서 그 구멍들에서 불꽃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한다. 2~3초 만에 물체는 동쪽 숲 너머로 사라졌고, 착륙했는지는 보지 못했다.

    그 후 6월 3일에도 1,640피트 상공에서 비행하던 중 "병"을 또 한 번 봤다. 웨니언은 레호보스 공항 직원들에게는 별로 말하지 않다가 자기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국가수사국(FBI에 해당하는 표현)에 전화를 걸었는데, 짐작대로 응대가 시원치 않았다고 한다. 이어서 이스턴 비행장과 민간항공국에 연락했고, 두 곳 모두 정중히 들어주며 조사해 보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어느 쪽에서도 답변을 받지 못했다.

    웨니언의 이론은, 메모리얼 데이에 메릴랜드주 포트디포짓 인근에서 일어나 50명이 숨진 이스턴 항공기 추락 사고가 바로 이 소서 중 하나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고 당시 그 지역 상공에 그런 물체가 떠 있었으리라고 본다.

    뒷면으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다른 가설들이 같이 소개된다. 이 원반들이 미군이 소련 영토 쪽으로 날려 보낸 무선 조종 비행 미사일일 수 있다는 설, 단순히 제트 추진 부류에 속하는 가벼운 물체일 뿐이라는 설 등이다.

    그 밖에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14세 시계공 S. R. 크로스가 1943년에 "플라잉 소서"를 발명해 전쟁부에 제출했지만 당시에는 실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는 이야기, 자신이 본 원반이 다섯 칸짜리 집만큼 컸다고 주장한 S. 스펜서 와트라는 여성과 그를 변호한 클리어워터의 변호사 찰스 라이트 사례 등이 이어진다. 끝 부분에는 "해군과 원자력"(원자력위원회로 추정) 언급이 잘려 들어가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별도로 "UNCLASSIFIED" 도장이 찍혀 있어, 이 신문 스크랩이 정부 파일에 첨부된 형태로 보존되었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