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 FBI · PDF (190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3 — 잔해 사진, 손 그림, 그리고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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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3번이다. 190페이지. 시리얼 101번부터 130번까지를 묶은 이 묶음은 1947년 여름과 가을, FBI와 미 제4공군 사이의 실무 조율 기록과 마우리 섬 사건의 물리 증거 사진, 케네스 아놀드의 자술서, 그리고 FBI의 비행 원반 수사 공식 종결까지를 담고 있다.

파일 안에는 제4공군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FBI에 보낸 비밀·기밀 등급 공문 다발, 마우리 섬 사건 잔해의 기밀 등급 증거 사진 세트, 프레드 크리스먼과 해럴드 달의 자발적 진술서, 에밀 J. 스미스 선장의 선서 진술서, 케네스 아놀드가 손으로 쓴 캐스케이드 목격 진술과 약력, 그리고 A. C. 유리가 직접 그린 손 스케치가 들어 있다.

파일 끝부분에서는 두 개의 결정이 서로를 지지한다. 1947년 8월 25일 라이트 필드 항공자재사령부가 마우리 섬 잔해를 분석해 내놓은 결론 — "이 표본들은 비행접시와 아무 관련이 없으며, 장난을 꾸미려는 자의 소행으로 간주된다" — 과, 1947년 9월 27일 후버 국장이 공군 부참모장보 맥도널드 소장에게 보낸 편지 — "이 조직의 인원과 시간을 이 방식으로 낭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FBI는 그 나흘 뒤 회보 제54호로 비행 원반 수사를 공식 종료했다.

FBI 중앙기록보존소가 보관해온 누런 봉투 표지에는 도장이 여럿이다. “DO NOT DESTROY”, “USE CARE IN HANDLING THESE”, “COPIED FOR FOIPA” — 오래 두고 보라는 것인지, 이제 꺼내도 된다는 것인지, 도장들이 이미 그 자체로 이 파일의 성격을 말해준다. 시리얼 101번부터 130번까지를 묶은 이 묶음은 1947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FBI와 미 공군이 비행 원반이라는 사안을 두고 공조하고, 수사하고, 결국 FBI가 손을 빼는 과정을 담고 있다.

제4공군 A-2가 보내온 공문들

파일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있던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422호 FBI 특별수사관 앞으로 보낸 공문들이다. 발신자는 매번 부참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고, 날짜는 1947년 8월 26일에서 9월 초순에 걸쳐 있다.

공문 가운데 하나는 SECRET 등급이다. 1947년 8월 27일자. 본문에는 괌 바넘 필드에서 미 공군 제147항공수송전대와 항공통신수리전대 소속 사병 세 명이 1947년 8월 14일 오전 10시 40분에 초승달 모양 물체 두 개를 목격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물체의 이동 속도는 전투기의 두 배로 추정되었고 시속으로 환산하면 약 1천 마일이었다. 물체들은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잠시 뒤 같은 것으로 보이는 물체 하나가 구름에서 나와 서쪽으로 나아갔다. 보고는 항공수송사령부 주간 정보 요약지에서 발췌한 것이며, “더 이상의 세부 사항은 보고되지 않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같은 날 A-2는 시애틀 FBI에도 별개 공문을 보냈다. 제목은 동일하게 “비행 원반 조사”, 표시는 CONFIDENTIAL, 본문은 한 문장 — “참고용으로 첨부 요약을 송부함.” F. W. 존슨이라는 광물 탐사자가 1947년 6월 24일 세인트 애덤스 산 근처에서 아홉 개의 원반 편대를 목격했다는 편지가 첨부물로 따라왔다. 존슨의 편지는 A-2의 부참모장이 직접 친필로 진본 서명했다.

마우리 섬의 표본들

파일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워싱턴주 타코마 앞바다 마우리 섬 사건이다. 1947년 6월 21일 선박 순찰 중 비행 원반 여섯 대를 보았고 그중 하나에서 암흑 금속 파편이 쏟아졌다고 주장한 해럴드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의 이야기다.

파일 안에는 두 사람이 FBI 특별수사관 맥컬록 앞에서 자발적으로 작성한 1947년 8월 8일자 진술서, 에밀 J. 스미스 선장의 선서 진술서, 그리고 제4공군 사령부 방첩대(CIC) 브라이든 K. 문 요원이 각지에서 작성한 조사 메모가 들어 있다. 스미스는 아놀드와 함께 타코마 윈스럽 호텔에서 달과 크리스먼을 만났고, 두 사람이 직접 모리섬 이야기를 꺼냈다고 진술했다.

보다 직접적인 자료는 사진들이다. 흰 배경 위에 검고 거친 조각들을 올려두고 찍은 흑백 사진 여러 장. 위아래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위에 가로줄로 취소선이 그어져 있다. Lot #, Incl #4, Incl #5, Level #6, Incl #9 — 각 조각마다 첨부 번호가 손글씨로 적혔다. 사진 뒷면에는 미 육군 항공대 공식 사진 도장이 찍혀 있다. 부대 번호 401,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1947년 8월 19일 FBI 시애틀 지부장 잭 B. 윌콕스가 작성한 조사 보고서는 14쪽에 걸쳐 달과 크리스먼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조목조목 정리했다. 두 사람은 비행 원반 이야기를 자신들이 먼저 꺼낸 게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스미스는 7월 31일 호텔 방에서 두 사람이 자기 입으로 직접 이야기를 꺼냈다고 진술했다. 문 요원은 달과 크리스먼이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조종사의 신임을 얻어 이야기를 키워나갔다고 분석했다.

아놀드가 직접 쓴 것들

파일 중반부에는 케네스 아놀드가 직접 작성한 자료들이 여러 건 들어 있다. 먼저 1947년 7월 29일 아놀드가 일리노이 에번스턴의 벤처프레스 편집장 레이먼드 A. 파머에게 보낸 편지 사본 — “요청하신 자료, 사진, 약력 스케치를 동봉합니다” — 과 파머에게 자료가 배달되었음을 보여주는 등기우편 반송 카드.

그리고 아놀드가 직접 작성한 신상 진술서 “Some Life Data on Kenneth Arnold”가 이어진다. 1915년 미네소타 세베카 출생, 여섯 살 때 몬태나 이주, 소방 장비 공급 회사 운영, 산악 지형 이착륙 전문 조종사로의 성장 과정. 복사본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COPY’ 표시가 함께 들어가 있다.

목격 진술서는 따로 있다. 제목 없이 “By Kenneth Arnold”로 시작하는 7쪽짜리 타자 문서. 아놀드는 첫 문장에 이렇게 적었다. “내가 캐스케이드 산맥 위에서 관찰한 다음 이야기는 믿기 어렵게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이다. 나는 유명세를 원하여 우연히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게 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은 어떤 조종사라도 했을 보고를 했을 뿐이라고 적었다.

1947년 6월 24일 화요일, 워싱턴주 체할리스 공항에서 정오 무렵 출발해 야키마로 향하던 중이었다. 마운트 레이니어 방향으로 불빛이 번쩍였고, 처음에는 다른 항공기와 충돌할 뻔한 줄 알았다. 고도 9천 5백 피트에서 수정처럼 맑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물체들은 마치 서로 연결된 것처럼 비스듬한 사슬을 이루며 날아갔고, 거위 떼와 비슷했다고 적었다. 1분 42초 동안 편대의 마지막 기체가 마운트 레이니어에서 마운트 애덤스까지 거리를 가로지르는 것을 시계로 쟀다. 나중에 이 거리를 지도에서 재어 보니 시속 약 1,700마일이었다.

아놀드는 목격 뒤 2주가 지나서야 군 정보부가 관심을 보였다고 적었다. 그 사이 자신은 UPI, AP, 그리고 두 번의 라디오 방송으로 이미 세상에 이야기를 알렸다.

파머가 부른 것

파일에는 레이먼드 A. 파머와 아놀드 사이의 편지들도 들어 있다. 파머는 1947년 6월 26일 — 아놀드의 최초 목격 불과 이틀 뒤 — 편지를 보내 자신이 시카고 트리뷴에서 기사를 읽었다고 운을 뗐다. 파머는 이미 ‘쉐이버 미스터리’ 특집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아놀드에게 200달러를 제시하며 타코마로 가서 크리스먼과 달의 이야기를 직접 취재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사에 따르면 아놀드는 7월 31일 호텔 방에서 파머에게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고, 같은 날 브라운 중위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전화 기록은 호텔 교환원의 확인으로 남았다.

유리가 그린 원반

파일에서 가장 독특한 자료는 A. C. 유리가 직접 그린 비행 원반 스케치다. 아이다호 트윈폴스 스네이크 강 협곡에서 송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유리는 1947년 8월 13일 오후 1시, 여덟 살 아들 키스와 다른 아들과 함께 원반을 목격했다고 신고했다. FBI 뷰트 지부의 배니스터 요원이 그 신고를 받아 8월 15일 오후 5시 45분 긴급 텔레타이프로 본부에 올렸다.

유리는 이후 직접 종이에 스케치를 그려 제출했다. 파란 볼펜으로 그린 세 방향 도면 — 위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보면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돔 — 높이 10피트, 길이 20피트. 아래에서 보면 길쭉한 캡슐 — 너비 10피트, 길이 20피트. 그림 아래 손글씨로 상황을 적고 서명했다. “The bottom and side view of the flying disc going down Snake River canyon at 1 PM Thursday at a distance of about 75 ft. up from ground. Speed about 1000 mph. Very little noise, just a swish.” 서명은 “A. C. Urie — (Urie’s Trout Farm)”.

1947년 8월 20일 자 보고서에 따르면 비행체가 지나갈 때 협곡 언저리의 노먼 포플러 나무들이 바람에 휘청이는 것이 아니라 꼭대기가 빙글빙글 돌았다고 유리는 진술했다. 여덟 살 키스도 비행체가 협곡을 따라 동에서 서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필라델피아의 밤

파일 중반에는 필라델피아 사건도 들어 있다. 1947년 8월 6일 밤 10시 45분, 필라델피아 상공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가 목격됐다. 필라델피아 지부는 8월 7일 밤 9시 30분 긴급 텔레타이프를 쳤다. 분류는 “사보타주”, 목격자에 전직 육군 항공단 조종사 포함.

9월 15일 필라델피아 지부가 본부에 올린 후속 면담 보고에는 여러 명의 진술이 담겼다. 엘리너 내들 양은 밤 10시 30분에서 45분 사이에 친구와 함께 밖에 있다가 물체를 보았다고 했다. 존 J. 켈리 전 경관은 집 계단에 앉아 있다가 거대한 폭죽 같은 물체가 소리 없이 남쪽으로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물체가 약 30미터 불꼬리를 끌었다고 했다. 육군과 해군 정보부가 조사에 들어갔고, 필라델피아 사무소는 인근에서 새로운 항공기를 시험 운용 중인지 양 군에 확인 요청을 보냈다.

오클라호마의 RCA 엔지니어

파일에는 바이런 R. 새비지(36세, 텍사스 댈러스 RCA 현장 엔지니어, 오클라호마시티 NW 29번가 416번지 거주) 관련 메모도 포함됐다. 1947년 7월 23일 조사관이 그의 자택을 방문해 면담했다. 새비지는 원반에 돌출부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고, 물체가 지나간 뒤 쉭 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자신의 상상이었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언론에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도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는 표현을 썼는데, 이유는 언론이 너무 심하게 조롱해서 이미 멍청이로 찍혔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이트 필드의 결론

1947년 8월 25일, 라이트 필드 항공자재사령부(AMC) 문서번호 TSDAD-22/AC/bk가 워싱턴 육군항공대 사령관 앞으로, 정보참모부 소속 조지 개럿 중령을 경유해 올라갔다. 보고서의 핵심은 세 번째 문단이다.

표본들은 라이트 필드 분석국(Analysis Division)과 전자공학 분과(Electronics Sub-Division)가 함께 검사했다. 결론은 두 가지였다. 첫째, “이 표본들은 비행접시와 아무 관련이 없다.” 둘째, “이 표본들은 비행접시 또는 디스크와 관련된 주목을 받기 위해 장난을 꾸미려는 자의 소행으로 간주된다.” 표본의 구성 내역도 사진과 함께 정리됐다. 자석 스피커 다이어프램 —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나다니엘 볼드윈 사의 알루미늄 합금 제품 — 과 바클라이트 코일 두 점, 플라스터 파리 또는 유사 도자기 조각들, 그리고 한때는 솜씨 좋게 만들어졌다가 코일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손으로 조잡하게 다시 감긴 에나멜 동선 코일이었다.

후버가 보낸 편지

1947년 9월 25일, FBI 부국장 D. M. 래드가 후버 국장 앞으로 내부 메모를 올렸다. 공군이 비행 원반 목격담 조사에 FBI 협조를 요청했고,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개인들이 소련 무기에 대한 공포로 집단 히스테리를 조장하려는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래드는 FBI의 협조 중단을 건의했다.

나흘 뒤인 1947년 9월 27일, 후버 국장이 펜타곤에 있는 공군 부참모장보 (정보 담당) 조지 C. 맥도널드 소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후버는 공군 내부에 돌고 있다는 지침을 언급했다. 그 지침에 따르면 책임 있는 목격자 면담은 공군이 맡고, 지상에서 발견된 원반 사건은 FBI가 처리하는 식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넘어오는 사건들의 상당수는 “ash can covers, toilet seats and whatnot” — 쓰레기통 뚜껑, 변기 시트, 그런 것들 — 이었다고 후버는 적었다. “이 조직의 인원과 시간을 이 방식으로 낭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는 현장 부서 전체에 비행 원반 관련 모든 수사 활동을 중단하고 앞으로 이 주제의 민원은 해당 지역 공군 담당자에게 넘기라고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회보 제54호

파일 끝에서 두 번째 페이지, 다른 종이들과 달리 노란 용지 스트립 한 장이 들어 있다. 글자는 작고, 종이가 가늘다.

FBI 회보 제54호, 1947년 10월 1일. “(D) 비행 디스크 — 본 국은 1947년 7월 30일자 회보 제42호 B항에 명시된 수사 활동을 즉시 중단한다. 앞으로 비행 디스크 관련 보고는 모두 공군으로 이관하며, 본 국 요원은 어떠한 수사 행위도 하지 않는다.”

종이 아래쪽에는 1947년 10월 14일 접수 도장과 “62-83894 미등록 1947년 10월 6일”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7월 30일에 시작해 10월 1일에 끝났다. 석 달짜리 수사였다.


외부 원문: 65_HS1-834228961_62-HQ-83894_Section_3 — war.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