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 · FBI · PDF (190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3 — 잔해 사진, 손 그림, 그리고 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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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1

    FBI 중앙기록보존소가 보관해온 사건 봉투의 표지로, 사건 분류번호는 62-HQ-63894, 시리얼 101부터 130까지를 묶은 섹션 3이다. 표지 곳곳에는 "DO NOT DESTROY (폐기 금지)", "USE CARE IN HANDLING THESE (취급 주의)" 같은 빨간 도장이 큼직하게 찍혀 있고, 1976년 1월과 1977년 5월에 정보공개법 요청 건(FOIPA #389136, #993047)에 따라 복사가 이루어졌다는 "COPIED FOR FOIPA" 스탬프가 여러 차례 겹쳐 있다. 좌측 상단 라벨에는 분류·권·시리얼 정보가 적혀 있고, 우측 상단에는 사건번호와 섹션 정보가 큰 글자로 다시 한 번 적혀 있다. 표지 상단에는 "2007년 5월 24일 발행된 FBI 자동 비밀해제 가이드에 따라 비밀해제 권한을 적용했다"는 라인이 작은 글씨로 인쇄되어 있다. 하단의 "Transfer-Call 421"과 "PICKETT STREET"는 이 파일이 거쳐온 보관·이송 경로를 보여주는 표시다.

  2. p.2

    1947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SAC)가 FBI 국장에게 항공우편 특별배송으로 올린 사무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보고”다. 메모는 두 가지를 전한다. 첫째,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A-2 소속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1947년 8월 25일 자로 보낸 편지와 첨부 자료의 사본을 동봉한다. 스프링거 중령은 존슨 씨가 자신의 주장 일부를 신문에서 읽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F. M. 존슨 씨를 이 사안에 대해 직접 면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1947년 7월 30일 자 국 회보(Bureau Bulletin) 제42호에 따라, 포틀랜드 사무소가 오리건주 포틀랜드 N.W. First Ave. 106번지에 거주하는 F. M. 존슨 씨를 철저히 면담할 것을 요청한다. 면담 대상은 그가 1947년 6월 24일에 목격했다고 주장한 “플라잉 디스크” 건이다. 면담 결과 사본은 샌프란시스코 현장사무소로 보내, 그곳에서 다시 제6군 정보부(6th Army Intelligence)로 배포한다. 메모 하단에는 작성자 이니셜 DWK:MR, 첨부 2건, 사건번호 62-2938이 적혀 있고, 포틀랜드 앞으로 첨부 4건이 사본 발송된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1947년 9월 23일 자 접수·색인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가 찍혀 있고, 여백에는 “Major Carter, M.I.D.(군사정보국)에게 통보”라는 손글씨 주석과 여러 담당자 이니셜·체크 표시가 남아 있어, 이 건이 FBI 내부뿐 아니라 군 정보 라인으로도 곧장 이첩되었음을 보여준다.

  3. p.3

    1947년 8월 26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자리한 미 제4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A-2) 부참모장실이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422호 FBI 특별수사관 앞으로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c)". 작성자는 부참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다.

    공문은 세 가지를 전한다. 첫째, 이 사무실은 1947년 8월 22일에 F. M. 존슨 씨가 보낸 편지의 진본 사본 한 부를 받았으며, 그 사본을 함께 동봉한다. 둘째, 케네스 아널드가 초기에 내놓은 목격담과 이번 존슨 씨의 보고가 서로 닮아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 달라 — 아널드 사건이 신문에 크게 다뤄질 무렵 존슨 씨가 관련 기사를 읽었을 가능성도 있다. 셋째, 본 사령부는 이 건을 직접 조사할 의사가 없으니, FBI 쪽에서 면담을 진행하게 되면 그 결과를 사령부로 알려 달라.

    첨부물은 F. M. 존슨이 보낸 편지의 진본 사본 한 부다. 문서 상단에는 "DECLASSIFIED — Authority NND 90986" 기밀해제 라벨이, 상단·하단 가운데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함께 보이고, 하단에는 1947년 8월 27일자 수신 도장이 찍혀 있다.

  4. p.4

    1947년 8월 2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F. W. 존슨이 보좌참모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에게 보낸 편지로, 같은 해 8월 27일 군 측에 접수되었고 스프링거 본인이 사본의 진본 인증 서명을 더해 회람된 문서다. 본문에서 존슨은 자신이 광물을 찾아다니는 탐사꾼이며, 케네스 아놀드가 비행 원반 편대를 목격했다는 6월 24일 바로 그날 세인트 애덤스 지역에 있었다고 밝힌다. 그는 마침 망원경을 들고 있었고, 자기 위 약 1000피트 높이를 지나가는 물체들을 직접 봤다고 한다. 형태는 지름 30피트가량의 둥근 모양이며 머리 쪽이 한 점으로 날카롭게 좁아지는 타원형이고, 윗면이 밝게 빛났다고 묘사한다. 비행기 같은 소음은 들리지 않았지만 꼬리 쪽에 큰 자석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덩어리 같은 부위가 붙어 있었다고 적었다. 속도는 자신이 본 어떤 것보다 빨랐고, 마지막 순간에는 물체들이 옆으로 비스듬히 선 채 구름 속으로 기울어 들어가는 모습이었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하단에는 군이 사후에 찍은 'CONFIDENTIAL' 도장이 사선으로 가로지르고 있어, 민간 목격담이 군 내부에서 비공개 자료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5. p.5

    1947년 9월 4일 샌프란시스코 SAC가 FBI 국장 (래드 부국장 주의) 앞으로 항공우편으로 보낸 "플라잉 디스크 보고" 제목의 사무 메모다.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A-2 소속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1947년 8월 27일 자로 보낸 편지 두 통 사본을 동봉했는데, 거기에는 괌에서 "플라잉 디스크"가 목격된 건과 워싱턴주 타코마·켈소 일대 A-2 조사 결과를 다룬 첨부 자료가 함께 묶여 있다. 메모 아래쪽에는 FBI 접수번호 162-83894-112와 1947년 9월 24일·10월 3일 자 접수 도장, 그리고 1964년 11월 18일 사본 270부 폐기 기록이 함께 찍혀 있어, 1947년 당시 FBI 본부 라인을 거쳐 군과 정보 교환이 이루어졌고 십수 년 뒤 사본 정리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

  6. p.6

    1947년 8월 27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자리한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422호의 FBI 특별수사관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건" 문건이다. 문서 번호는 4AFOA 333.5/1208-I, 위와 아래에 SECRET 도장이 찍혀 있고 손글씨로 62-29387이라는 접수 번호가 적혀 있다.

    본문은 두 단락이다. 첫째, 1947년 8월 20일자 항공수송사령부 주간 정보 요약(워싱턴 25, D.C., 120호 1면 I항)에서 발췌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인용 부분은 다음과 같다. "괌의 비행 물체. 괌 하먼 비행장에 주둔한 제147 항로·항공통신부대 소속 미군 사병 세 명이 미확인 비행 물체를 관측했다. 이들의 보고에 따르면 1947년 8월 14일 10시 40분, 작고 초승달 모양에 전투기의 두 배 속도로 날아가는 두 개의 물체가 약 1,200피트 고도에서 지그재그 궤적을 그리며 서쪽으로 그들 머리 위를 지나갔다. 물체는 구름 속으로 사라졌고, 몇 초 뒤 앞서 본 것 중 하나로 추정되는 비슷한 물체가 구름에서 다시 나타나 서쪽으로 향했다. 이 외 다른 세부 사항은 보고되지 않았다." 둘째 단락은 "참고용"이라는 한 줄이다.

    끝에는 부참모장(A-2)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GSC)의 서명이 있다.

  7. p.7

    FBI 파일 62-83894 시리얼 112번에 해당하는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상단 여백에 빨간색 손글씨로 파일 번호만 적혀 있고, 본문은 비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 두 개의 천공 자국이 보이는 일반적인 FBI 파일링용 백지다.

  8. p.8

    1947년 8월 27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있던 미 공군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 (A-2) 가 샌프란시스코 연방 청사 422호에 있던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 앞으로 보낸 1쪽짜리 공문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수사 (Investigation of Flying Disc)", 문서번호는 4AFDA 333.5/1208-I. 본문은 단 한 줄로, 별첨 요약본을 참고용으로 발송한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서명자는 제4공군 정보참모 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Donald L. Springer) 중령. 페이지 하단에는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1947년 8월 30일 접수했음을 알리는 도장과 FBI 사건번호 62-83894-152, 그리고 위·아래 양쪽에 "CONFIDENTIAL" 기밀 표기가 보인다.

  9. p.9

    1947년 8월 27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주둔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시애틀 FBI 특수요원 책임자 앞으로 보낸 한 장짜리 송부장이다. 문서번호는 4AFEM 333.5/1208-I, 제목은 “비행 원반 조사”. 본문은 단 한 문장으로 “참고용으로 첨부 요약을 송부함”이라 적고, 첨부로 정보 요약서 한 부가 동봉됐다고 밝힌다. 서명은 정보참모 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GSC) 명의다. 상·하단에 CONFIDENTIAL 표시가 찍혀 있고, 우측 하단에는 1947년 9월 2일 자 접수 도장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10. p.10

    1947년 8월 4일자, 워싱턴주 매코드 필드의 항공구조대 8분견대가 플로리다 맥딜 필드의 항공구조대 사령관에게 보낸 "39호 임무 최종 보고서"다. 8월 1일 새벽 4시(태평양 표준시), 육군 비행서비스가 워싱턴주 켈소 남쪽 13마일 지점에서 비행기 한 대가 추락해 불탔다는 목격을 분견대에 통보하면서 시작된 사건이다. 곧이어 켈소 보안관 O. C. 클락이 추가 정보를 보내왔다. 추락 현장은 켈소 동쪽 15~20마일, 쿨 크릭 인근이다. 켈소 경찰서장이 직접 도심 상공으로 낮게 날아간 항공기가 동쪽에서 추락해 불타는 모습을 봤고, 시각은 새벽 2시 36분쯤이었다. 인근에 있던 한 항공기 정보를 확인한 결과, B-25 #5116 한 대가 2시 12분에 매코드 필드를 출발해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로 향했다. 날씨는 시계비행이 가능한 상태였고 보름달 덕에 시야는 매우 좋았다. 기장은 W. C. 데이비드슨 대위였으며, 추가로 세 명이 더 타고 있었다. 분견대는 기지 작전장교와 공보관에 즉시 통보했고, 5시 정각에는 경찰서장 측 수색대를 보강할 기지 인원을 모으기 시작했다. 6시쯤 켈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계곡에 깔린 안개 때문에 지상 수색대가 비행기를 찾지 못하고 있고, B-25 #5116에서도 통신이 끊긴 상태라 추락기가 이 기체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분견대는 C-47 한 대를 켈소까지 지상 인력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사전 점검까지 마쳤지만, 현장 활주로 사정을 감안하면 더 작은 기체가 낫다고 판단했다. 가용한 C-45 두 대 가운데 분견대 소속 한 대는 야간 비행 직후라 정비가 안 끝났고, 다른 한 대는 AACS 소속이어서 비행을 결재할 책임 장교가 없었지만 결국 그쪽을 띄우기로 했다. 켈소의 일정 때문에 이륙은 7시까지 늦춰졌다. 지상대는 W. L. 리트렐 대위와 T. M. 포레스봉 대위가 인솔했고, 의무병과 사진병을 포함해 여섯 명으로 구성됐다. 같은 6시, 켈소 경찰서장은 추락기에 타고 있던 한 사람이 자기 사무실에 있고 신원을 확인했다고 분견대에 알려왔다 — 페이지는 여기서 끊긴다. 본문 아래에는 빨간 "DECLASSIFIED" 도장이 찍혀 있고, 상하단에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남아 있다.

  11. p.11

    1947년 8월 4일자 최종 임무 보고서. 사고기는 미신고 B-25 로 추정되었다. 동승자였던 시애틀 포트 로턴 소속 M. L. 태프 병장은 부상이 없었으나, 사고 현장 근처 농가에 부상당한 W. G. 매튜스 기술하사가 있다고 알렸다. 태프 병장은 구급차를 매튜스 하사에게 안내했고, 매튜스는 곧장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같은 날 오전 8시 10분 태평양 표준시에는 해밀턴 비행장 3대대로 전화를 걸었으나 응답이 없었다. 다만 해밀턴 공군기지가 이미 사건을 인지하고 3대대에 통보할 것이라는 사실은 확인된 상태였다. 오전 7시에는 리트렐 대위가 C-45 기를 타고 KMLSO 로 출발했고, 7시 45분에는 B 대대에 전화로 속보가 전달되었다. 9시 5분 리트렐 대위는 다시 전화로 포스버그 대위에게 사고 현장으로 향하는 육군 인력 지휘를 맡겼다고 보고했다. 인근 주민들이 사고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잔해 속에서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고 신고했기 때문에, 공중 수색은 따로 필요하지 않았다. 리트렐 대위는 태프와 매튜스 두 사람을 메드포드 비행장으로 후송할 준비를 마쳤고, 9시 45분에 도착했다. 생존자들은 조종사와 부조종사 모두 낙하산으로 탈출하지 못한 것 같다고 진술했다. 이 시점까지 파악된 사고 원인은 좌측 엔진 화재였다. 태프 병장은 기내에 기밀 문서가 실려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리트렐 대위에게 알렸고, 이에 따라 포스버그 대위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메드워드 비행장에서는 구급차가 두 생존자를 받아 병원으로 데려갔다. 이후 심문에서 좌측 엔진 동력부에 불이 붙은 뒤 화염과 연기가 거의 즉시 조종실까지 번졌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매튜스 하사는 태프가 흉부 낙하산을 채우는 것을 도왔고, 태프는 약 1만 피트 고도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항공기를 이탈했다. 이 고도는 의심스럽다고 적혀 있지만 결정적인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매튜스는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흉부 낙하산을 차는 것까지 도왔고 — 전원이 이미 하니스를 착용한 상태였다 — 본인이 빠져나갈 때 부조종사가 뒤따라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조종사도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참이었고, 매튜스의 기억으로는 왼손으로 조종간을 잡은 채 반쯤 일어선 자세였다. 매튜스의 진술에 따르면 정해진 비상 절차는 모두 이행됐지만 화염이 좌측 전체를 거의 동시에 휩쓸어버렸다. 태프는 항공기 전방 시야가 충분했기 때문에 매튜스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봤고, 항공기가 추락하는 궤적을 끝까지 따라갔으며 그 외에 탈출한 사람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항공기는 화염에 휩싸인 채 공중에서 분해되기 시작했고, 태프가 착지한 지점에서 약 1마일 떨어진 곳에 떨어져 폭발하고 불탔다. 태프는 나무 위로 떨어졌는데, 자기 낙하산이 빠른 분리식이라는 사실을 몰라 주머니칼로 하니스 줄을 직접 끊어냈다. 나뭇가지를 발로 차고 몸부림친 끝에 결국 땅으로 뛰어내렸고, 충격은 받았지만 자기가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지는 가늠하지 못했다. 그는 약 2마일가량 소가 다닌 길을 따라가 농가에 도달했고, 매튜스보다 늦게 도착했다. 한편 매튜스는 항공기에서 빠져나온 직후 몸을 돌려, 항공기가 지면에 부딪혀 폭발하고 불타는 장면을 목격했다. 충돌 직전이나 충돌 순간에 그는 불붙은 물체 하나가 기체에서 튕겨 나오는 것을 봤지만, 그것이 사람이었는지 기체 일부였는지는 알지 못했다. 매튜스 역시 나무 위에 떨어졌고, 하니스에서 빠져나오자 땅으로 떨어지면서 등을 다쳤다. 그는 잠시 의식을 잃었다가 깨어난 뒤 약 50…(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거리의 불타는 항공기 쪽으로 향했다.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는 페이지 번호 2 가 표기되어 있다.

  12. p.12

    1947년 8월 4일자 최종 임무 보고서의 한 페이지로, 추락 사고 발생부터 사흘 동안의 현장 처리 경위를 정리한다.

    조명탄이 50야드쯤 떨어진 지점에서 계속 터지자, 한 명은 현장을 벗어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인근 시내 소리를 따라가 민가에 닿았고 거주민을 깨웠다. 곧이어 TAFB도 같은 집에 도착했고, 부상이 없어 마을로 이동했다. 이후 TAFB는 구급차를 이끌고 MATHEWS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 사이 민간인들이 추락 현장에 도달해 시신 한 구를 발견했다.

    0850 PST, B 하사는 항법사 키트 안에 일급기밀 자료가 있다고 알리며, MCCHORD FIELD 사령관이 HAMILTON FIELD 사령관에게 가용 정보를 신속히 전송할 것을 요청한다는 전문을 보냈다. CAPT FORSBERG와 사병 네 명은 0830 PST에 KELSO를 출발해 현장으로 향했다. 항공기 정확한 좌표 (북위 46°20', 서경 122°45') 를 파악하고 있던 워싱턴주 경찰이 이들을 호송했다. 도착해 보니 잔해 안에 시신이 두 구 있었다. 정황상 부조종사는 충돌 직전 기체에서 빠져나갔던 것으로 보였고, 조종사의 유해는 잔해 안에서 그대로 나왔다.

    CAPT FORSBERG의 1차 조사는 좌익의 위치를 짚어 냈다. 흩어진 본체 잔해에서 약 125야드 떨어진 곳에 좌익이 따로 떨어져 있었다. 좌익 자체는 온전했고, 좌측 엔진 바로 안쪽 지점에서 충돌 전에 분리된 듯했다. 날개 앞부분에는 녹은 흔적이 있었지만, 뒤쪽 3분의 2 구간은 안쪽에서 찢겨 나간 모습을 보였다. 앞날 가장자리는 멀쩡했고 항법등과 착륙등도 손상이 없었다. 보조익은 무사했지만 플랩 구간은 부서진 상태였고, 이는 날개가 꼬리 부위와 부딪쳤음을 시사했다. 이를 종합하면 MATHEWS가 기체를 이탈한 직후 날개가 떨어져 나갔고, 그로 인해 발생한 스핀이 나머지 승무원의 탈출을 막았다고 본다. 다만 부조종사는 해치 안에 머물러 있었을 가능성을 남긴다.

    FORSBERG가 도착했을 당시 인근에 민간인 몇 명이 있었으나, 그는 이들이 잔해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1157 PST에 CAPT LITTRELL은 의무관 RICK 대위를 KELSO로 태워 왔다. MCCHORD FIELD에서 출동한 구급차가 KELSO에서 합류했고, 주 경찰의 안내로 현장에 도착해 시신을 수습한 뒤 MCCHORD FIELD로 옮겼다. CAPT LITTRELL은 MCCHORD FIELD로 돌아가 지상팀에 떨어뜨릴 야영 장비를 준비했고, 해질 무렵 지상팀이 피운 신호용 모닥불을 표적 삼아 성공적으로 투하했다. 지상팀은 사고 현장에 야영지를 차렸고, 1800 PST 무렵 도착한 CIO 요원에게 회수 문서 일체에 대한 책임을 넘겼다.

    8월 2일에는 지상팀이 사건의 공식 종결 절차가 마무리될 때까지 현장에 남았고, 별도 항공 활동은 없었다. 8월 3일 1000 PST에 MCCHORD FIELD 작전 장교가 사고 조사와 CAPT FORSBERG 교대를 위해 출발했고, FORSBERG는 1600 PST에 복귀했다. 이로써 사건을 종결한다.

    페이지 위·아래로 CONFIDENTIAL 도장이 함께 들어가, 1947년 당시 이 보고서를 기밀로 다뤘음을 알려 준다.

  13. p.13

    1947년 8월 4일자 최종 임무 보고서의 두 번째 면이다.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사본임을 알리는 'COPY' 표시가 보인다.

    보고서 5번 항목은 통계 요약이다. 지상 활동에서는 항공기지 인원이 72시간, 그 외 육군 인원이 약 300시간, 민간 인원이 약 150시간을 현장에 투입했다. 육군 차량 주행거리는 약 500마일이었다. 공중 활동에서는 출격 3회, 육군 항공기 비행시간 6시간을 기록했다. 현지 구매 항목은 없었다.

    6번 항목 코멘트에서는 관련 민간 기관들의 협조가 완전하고 탁월했다고 적고 있다. 7번 권고사항은 없음으로 마무리한다.

    서명자는 항공대 대위이자 지휘관인 로버트 R. 배로클러프(Robert R. Barrowclough)이며, 첨부물로 사진 1매가 동봉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 본문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 흐린 잉크 자국이 남아 있다.

  14. p.14

    1947년 8월 12일자 미 제4공군 정보참모부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가 작성한 "플라잉 디스크 조사" 보고서다. 사건번호 4AF-1208-I, 조사 기간 1947년 7월 31일부터 8월 7일까지, 조사 장소는 워싱턴주 타코마와 켈소, 분류는 "사건(Incident)", 상태는 "미결"로 올라 있다. 조사를 의뢰한 곳은 미첼 필드의 항공방어사령부다.

    조사 경위는 이렇다. 7월 31일, 아이다호 데일리 스테이츠먼의 항공 담당 편집장 케네스 아놀드가 브라운 중위에게 전화해 "플라잉 디스크에 관한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다"며 타코마로 다시 와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날 밤,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는 타코마의 윈스럽 호텔에서 프레드 L. 크리스먼, 해럴드 A. 달, 유나이티드 에어라인의 스미스 기장, 그리고 아놀드를 만나 면담했다.

    그러나 그 면담 내용은 보고서 작성자("this officer")가 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 아놀드와 스미스 기장이 미첼 필드 공보장교 샌더 소령에게 결과를 전달했고, 샌더가 자신의 메모를 바탕으로 작성자에게 그 내용을 다시 들려준 것이다. 작성자가 타코마에 머무는 동안 달과 크리스먼은 끝내 만날 수 없었다. 모든 접촉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이 사건의 후속 조사는 타코마 FBI 상주 요원 브래디에게 넘겼다.

    신문 스크랩과 작성자에게 걸려 온 전화, 샌더 소령과의 대화를 종합하면, 사건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든 인물은 타코마 타임스의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원이었다. 작성자는 자신이 신문에 여러 차례 인용되었음에도 보고 기간 중에는 언론과 이 사안을 일절 논의하지 않았다고 적어 두었다. 마지막 한 줄은 가설이다 — 타코마에서 익명으로 전화를 걸어 온 "미스터리 콜러"가 크리스먼 본인일 가능성을 열어 둔다.

    배포처는 미 육군항공대 2부, 항공방어사령부, 6군 G-2, 시애틀 FBI, 샌프란시스코 FBI, 그리고 자체 파일 각 1부씩. 결재는 정보참모(A-2)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 친필 서명이다. 페이지 우하단에는 1947년 8월 30일자 샌프란시스코 FBI 접수 도장과 빨간 잉크 손글씨 사건번호 62-83894-16x가 같이 찍혀 있어, 이 보고서가 공군 내부 문서이자 동시에 FBI 파일로 흘러 들어간 경로를 보여 준다. 좌우 상단에는 "CONFIDENTIAL" 비밀 표기.

  15. p.15

    이 페이지는 미 4공군 사령부 방첩대(CIC)가 작성한 CONFIDENTIAL 등급 CI-R1 보고서로, 1947년 모리 섬 비행 원반 사건의 조사 경위를 정리한다.

    1947년 7월 21일 오후, 아이다호 데일리 스테이츠먼의 항공 담당 편집자 케네스 아놀드는 4공군 사령부 CIC 분견대장 브라운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과 스미스 대위가 6월 21일 발생한 수상 항공기 비행 원반 폭발 사건을 조사하러 워싱턴 주 타코마에 와 있다고 알렸다. 이 조사는 일리노이 주 에반스턴 셔먼 애비뉴 1715번지 스튜디오 빌딩 306호에 있는 벤처 프레스의 R. A. 파머가 요청했고 비용도 부담했다.

    요원 메모로 보고서는 첨부 1·2를 참조하라고 안내한다. 첨부 2 서명자 데이브 존슨은 아이다호 데일리 스테이츠먼 편집장으로 전직 육군 항공대 장교이며, 보고 요원이 보기에 매우 애국적인 미국인이다. 4공군 사령부가 첨부 2를 받은 뒤 보고 요원은 샌프란시스코 FBI 사무소에 파머와 벤처 프레스를 시카고 FBI 사무소에서 조회해 달라고 요청했고, 시카고 FBI 색인·시카고 경찰·신용정보국 모두 파머나 벤처 프레스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회신을 전화로 받았다.

    같은 날 오후,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슨 대위는 맥코드 비행장에 도착해 기내에서 군복을 사복으로 갈아입었다. 운항 부서가 타코마행 수송을 요청한 이유를 묻자 두 사람은 연설을 하러 간다고 답했다. 요원 메모는 이 행동이 1947년 7월 7일 자 AMC 사령부 서신 MEMO.319 4항, 주제 '비행 원반 조사'에 따른 조치라고 밝힌다.

    맥코드 비행장의 공보 장교 조지 샌더 소령에 따르면, 타코마 타임스에는 아놀드와 스미스가 윈스럽 호텔에서 비행 원반 조사를 하고 있다는 익명 전화가 걸려 왔다. 신문사가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고, 정작 아놀드와 스미스가 놀랐다.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슨 대위는 윈스럽 호텔 객실에서 아놀드와 스미스 대위가 동석한 가운데 해럴드 A. 달과 프레드 L. 크리스만을 면담했다. 면담 메모가 있었다 해도 이후 항공기 사고로 모두 소실됐다. 아놀드는 샌더 소령에게, 브라운 중위가 달과 크리스만에게서 받은 미상 물질 시료가 첨부 3~7에 실린 사진 속 시료와 동일하다고 진술했다. 첨부 3~7의 시료는 달과 크리스만이 브라운 중위에게 건넨 그 상자에서 아놀드가 따로 꺼낸 것이다. 추락한 B-25기의 수석 정비사 매튜스 기술 중사는 본 조사관의 심문에서, 후방 격실에 무거운 골판지 상자를 실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지도, 내용물에 관한 브라운·데이비슨의 언급을 듣지도 못했다고 답했다.

    페이지 끝에서는 아놀드와 스미스가 샌더 소령에게 전한 면담 요지가 시작된다. 1947년 6월 21일 달은 크리스만의 동력 예인선을 타고 모리 섬 남쪽을 항행하던 중, 구름 사이로 비행 원반들이 내려와 만 위를 천천히 선회하며 약 500피트(150미터) 고도까지 하강하는 것을 보았다는 진술이다. 원반들의 모양 묘사는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가로줄과 함께 들어가 있고, 좌측 상단에는 'CI-R1 Report', 좌측 하단에는 V.D., P.M.G. Form No. 110 양식 번호가 인쇄되어 있다.

  16. p.16

    CI-RI 리포트로 분류된 이 방첩 보고서는 1947년 머라이 아일랜드 사건을 정리한 본문 한 페이지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양식 번호는 W.D., P.M.G. Form No. 110 이다.

    증인 달은 자신이 본 비행 원반을 바람 빠진 자동차 튜브가 납작해진 모양으로 묘사하며, 지름은 약 100피트, 가운데 구멍은 약 25피트, 바깥 가장자리에는 둥근 창이, 안쪽 고리에는 네모난 창이 줄지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원반은 소리가 전혀 없었고, 추진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다섯 대 가운데 한 대가 공중에서 흔들리자 다른 한 대가 가까이 내려와 그 원반을 부딪혔고, 그 충격으로 동봉물 3번 또는 7번 사진에 보이는 물질이 "수 톤" 쏟아져 달의 배 위로 떨어졌다. 배의 난간과 경적이 부서지고 전체 손해가 200달러에 달했으며, 달의 개도 죽었다.

    이어지는 요원 메모는 이 진술을 정면으로 의심한다. 1947년 8월 6일 요원은 새너 소령과 함께 타코마 항에 정박해 있던 그 배에 직접 올랐다. 난간 한 쪽이 사라져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에는 여러 겹의 페인트가 이미 덧칠돼 있었고 작업자들 손에 눌려 뭉개진 흔적뿐이었다. 선실 갑판과 지붕은 매우 얇은 재료로 만들어졌고 앞면과 옆면에 유리가 있어서, 달이 "원반에서 떨어진 물질"이라며 내놓은 무거운 조각이 정말로 이 배에 떨어졌다면 갑판과 선실 지붕을 통째로 갈아야 했을 것이라는 게 요원의 판단이다. 그러나 두 부위 모두 여러 겹 페인트가 두텁게 묻어 있고 깊은 풍화 균열이 가 있었으며, 그런 상태는 한 해 만에 생길 수 없는 것이었다.

    또 다른 등장인물 크리스먼은 이 배의 소유주이자 인근 기업들의 해안 순찰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으로, 달의 이야기를 확인하려 머라이 아일랜드 현장을 직접 다녀왔다고 한다. 그는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에게 건넨 시료를 사건 현장 근처의 모래 구덩이에서 주웠다고 진술했고, 자신이 현장에 있을 때도 구름 사이에서 비행 원반 한 대가 나타나 앞서 묘사된 것과 비슷한 동작을 보였다고 덧붙였다.

    요원은 두 번째 메모에서 이 이야기 자체에도 의문을 던진다. 타코마 시 인근 수 마일 범위 안에서, 한낮에, 그렇게 크고 또렷한 물체가 두 차례나 나타났다면 달과 크리스먼 말고도 누군가가 목격해 신고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6월 21일 이후 신문 기사를 훑어봐도 타코마 항 상공의 수상한 물체를 다룬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크리스먼은 자신이 모래 구덩이에서 주운 시료를 시카고 대학교의 친구에게 분석을 부탁해 보냈다고 했지만, 분석 결과는 받지 못한 상태였다. 요원은 이 대목에서 동봉물 1번·2번에서 언급된 E. A. 파머 박사가 시카고 대학교를 통해 이 사건을 알게 됐을 가능성을 따로 적어 둔다.

    브라운 중위가 달과 크리스먼을 신문한 시점은 7월 31일과 8월 1일 사이 자정 무렵이었다. 신문이 끝난 뒤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는 매코드 비행장으로 돌아가 해밀턴 비행장까지 야간 비행을 준비했다. 그날 밤은 달이 밝게 뜬 맑은 날씨였고, 두 사람은 새벽 2시쯤 이륙해 약 30분 뒤인 1947년 8월 1일 새벽 2시 30분경 추락했다 — 동봉물 5번 참조라고만 적혀 있다.

    페이지 맨 아래 6번 항목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새 단락의 도입이다. 1947년 8월 6일 이 요원은 매코드 비행장의 새너 소령, 그리고 타코마 연방수사국 상주 요원 브래디 씨와 함께 무엇인가를 시도했다고 적기 시작한다.

  17. p.17

    CI-21 보고서로 분류된 이 기밀 페이지는 1947년 8월 타코마 일대에서 진행된 메이커리 사건 후속 조사 보고의 마지막 부분이다. 작성 요원은 달과 크리스먼 어느 쪽과도 연락이 닿지 않았고, 스미스 대위와 아놀드는 8월 3일 이미 타코마를 떠난 뒤라 직접 대화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고 적는다. 브래디 요원이 시애틀 FBI 현장사무소에 전화로 조회한 결과 크리스먼에 관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으나, 해럴드 달이라는 인물은 군복 무단 착용 두 건과 국유재산 절도 한 건으로 입건된 전력이 있었고, 다만 이 인물이 사건 당사자인 해럴드 A. 달과 동일인인지는 당시로선 확정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다음 항목에서는 크리스먼이 스미스 대위 등에게 자신을 전직 전투기 조종사이자 공군 예비역 대위라고 소개했다고 옮긴다. 8월 6일 이 요원이 4505 AAF BU 부대 기록을 직접 확인해 보니 프레드 L. 크리스먼은 군번 0-735551, 타코마 우드랜드 125번지 거주의 예비역 대위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는 1942년 워싱턴주 범죄수사국에 근무했고 그 전에는 유니언 퍼시픽 철도의 정유 기술자였다. 1942년 사병으로 입대해 17개월을 복무한 뒤 1943년 비행학교 졸업과 동시에 임관해 총 29개월간 복무한 이력이 확인됐다. 해럴드 A. 달은 타코마 시 주소록에서 자택 N. 케이브 가 2903번지(프록터 7117), 사무실 미들 워터웨이 235번지(브로드웨이 7732)로 확인됐다. 결론에서 작성자는 두 가지를 권고한다. 첫째, 이 사건에 대한 육군 항공대 차원의 추가 조사를 중단할 것. 둘째, 크리스먼의 진술 행태를 볼 때 그의 공군 예비역 직위와 비행 자격을 부적격·신뢰 불가 장교로서 박탈하는 안을 검토할 것. 첨부물로는 R. A. 파머의 편지 사진본, 데이브 존슨이 보낸 전보 사진본, 미확인 물질 사진 다섯 장, 그리고 항공예비대 최종 임무보고서가 따라붙는다. 상하단에 CONFIDENTIAL 표기가 박혀 있다.

  18. p.18

    1947년 7월 22일,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출판사 벤처 프레스(Venture Press) 의 R. A. 파머가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에게 보낸 편지다. 문서 위아래로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상단에 손글씨로 "Project 7116" 이 적혀 있다.

    파머는 먼저, 아놀드가 비행접시 이야기로 하도 시달려 잊고 싶어 할 것을 안다고 운을 뗀다. 그래도 본인 입으로 풀어주는 사연과 비행기 사진 등을 받고 싶다고 다시 요청한다. 신문과 "전문가" 들이 떠들어 댄 것 이상의 무엇이 있으니, 우습게 보이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안심시킨다.

    이어 본격적인 제안을 꺼낸다. 워싱턴주 타코마로 한 번 다녀와 줄 수 있다면 경비에 더해 수고비도 후하게 치르겠다는 것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두 명이다. 한 명은 타코마 펀힐 스테이션 사서함 154번지의 해럴드 A. 달, 다른 한 명은 타코마 하버 패트롤(Tacoma Harbor Patrol, Inc.) 의 대표 프레드 L. 크리스먼이다.

    달은 타코마 앞바다 모리섬(Maury Island) 근처를 다른 선원 두 명과 함께 순찰하던 중 원반 여섯 대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중 한 대가 이상을 일으켜 폭발이 일어났고, 그때 떨어진 잔해가 배의 조타실과 탐조등을 박살내고 해변에까지 쌓였다는 것이다. 달이 보내온 시료를 시카고대학(Chicago U) 에 분석 의뢰했으나 결과를 내지 못한 상태다.

    파머는 아놀드가 그 해변과 떨어졌다는 약 20톤 분량의 잔해를 직접 사진으로 찍고, 이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는지 확인해 주기를 바란다. 그 일이라면 아놀드가 적임이라는 것이다. 동의한다면 답장을 달라, 사업 이야기를 해 보자고 마무리하며, 어쨌든 그 기사는 계속 원한다고 덧붙인다. 끝에는 R. A. 파머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19. p.19

    1947년 7월 29일 오후 2시 55분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데이브 존슨이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제4공군 사무실의 프랭크 M. 브라운 중위(A-2)에게 보낸 웨스턴 유니언 전보다. 상단에 CONFIDENTIAL 표기가 있다. 존슨은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셔먼 애비뉴 1718번지 스튜디오 빌딩 305호에 있는 벤처 프레스의 RA 파머가 아놀드에게 200달러를 보내 타코마의 비행 원반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는 사실을 보고한다. 그는 이 사안이 현재의 대중적 관심을 넘어선 선을 벗어난 일이라고 보며, 자신이 브라운 중위가 방문했을 때 시사한 대로 벤처 프레스를 조사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20. p.20

    페이지 전체가 한 장의 흑백 사진이다. 위아래 여백에 'CONFIDENTIAL' 도장이 한 줄씩 가로로 찍혀 있고, 위쪽 줄에는 사선으로 가로 그은 취소선이 함께 그어져 있다. 사진 자체는 어두운 배경 위에 놓인 두 개의 검고 거친 덩어리를 클로즈업한 모습으로, 위쪽 덩어리는 가늘고 옆으로 길게 뻗은 판 모양이고 그 아래에 더 부피가 큰 사각에 가까운 덩어리가 놓여 있어, 광물성 잔해나 슬래그 또는 회수된 물질의 견본을 정면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 왼쪽 아래 모서리에 손글씨로 'Lot #'에 해당하는 표기가 흐릿하게 적혀 있다.

  21. p.21

    사진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왼쪽 상단에 손글씨로 정리 번호 62-13192/12 가 적혀 있고, 가운데에는 미 육군 항공대(U.S. Army Air Force) 의 공식 사진 도장이 찍혀 있다. 도장에는 부대 번호 401 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Hamilton Field) 라는 발행지가 함께 들어가 있다. 사진 본체는 반대쪽 면에 있고, 이 면은 출처와 분류 번호를 식별하기 위한 행정용 표시만 남은 뒷면이다.

  22. p.22

    사진 한 장이 페이지 전체를 차지한다. 흰 배경 위에 검게 그을리고 뒤틀린 금속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고, 표면은 거품처럼 부풀어 굳은 슬래그 같은 질감이다. 위아래 가운데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줄로 그어 해제 처리되어 있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손글씨로 "Incl #4" 라고 적혀 있어 어느 보고서의 네 번째 첨부 자료임을 알려 준다. 상단에는 묶음용 펀치 구멍이 두 개 뚫려 있다.

  23. p.23

    검은색 광물질 또는 금속질로 보이는 파편 두 조각과 작은 알갱이 하나를 흰 배경 위에 놓고 찍은 증거 사진이다. 위아래 여백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들어가 있고, 왼쪽 아래 손글씨로 "Ind #5" 라는 식별 번호가 적혀 있다. 본문 텍스트가 따로 없는 증거물 촬영 페이지로, 사진 자체가 자료의 핵심이다.

  24. p.24

    사진 한 장이 페이지를 거의 다 채운다. 흰 배경 위에 검고 거친 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는데,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가장자리가 찢긴 듯 들쭉날쭉해 금속이 녹았다가 굳은 슬래그나 광물 파편처럼 보인다. 사진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글자에 가로줄을 그어 등급 해제를 표시했고, 아래쪽 라벨 옆에는 손으로 "Level #6"이라고 적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페이지 자체가 어떤 잔해물의 증거 사진 한 장이다.

  25. p.25

    사진 한 장이 카드처럼 붙어 있는 페이지다. 위아래 여백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두 글자 모두 가로줄로 그어 기밀 해제 표시를 해 두었다.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손글씨로 Incl #9, 즉 첨부 9번이라는 표시가 있어 어떤 보고서의 부속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사진 속에는 표면이 거칠고 광택이 도는 검은색 덩어리 두 조각이 위아래로 놓여 있고, 그 옆에 크기 비교용으로 보이는 작고 검은 타원형 물체가 함께 찍혀 있다. 위쪽 조각은 표면이 끓어오르다 굳은 것처럼 울퉁불퉁하며 곳곳에 기포 흔적이 보이고, 아래쪽 조각은 비교적 평평하고 결정이 깨진 듯한 단면을 보인다.

  26. p.26

    1947년 7월 29일 보스턴 지부 책임자(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메모로, 같은 해 7월 7일 뉴햄프셔주 웨스트리지에서 발견된 금속 파편 분석 결과를 보고한다. 7월 18일 보스턴이 본부로 보낸 텔레타이프의 후속이다.

    최초 제보자인 존 M. 벙커 학장은 문제의 금속 파편에 대한 분광 분석이 끝났다고 전했다. 분석 결과 파편은 매우 높은 열을 받은 평범한 주철로 판명됐고, 처음에 어떤 금속 합금처럼 보였던 표면은 그 열 때문에 생긴 비늘 모양 산화층이었다.

    파편을 살펴본 과학자는 만약 이렇게 작은 조각으로 부서진 채 높은 고도에서 떨어졌다면, 땅에 닿을 때쯤이면 열이 거의 빠져 화재로 이어지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파편이 떨어진 지점은 철도 선로에서 약 700피트 떨어진 곳이었고, MIT는 파편이 굴뚝 라이너나 증기기관 부품의 일부일 가능성을 따로 조사했지만, 기차나 기관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분석한 네 조각의 치수를 재 보니, 원래는 지름 8인치, 두께 16분의 3인치짜리 속이 빈 원통 하나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 정도 크기의 조각이 높은 곳에서 떨어졌다면 상당한 열이 남아 있었을 것이고, 땅에 부딪히는 순간 산산조각이 났을 거라는 평가도 함께 나왔다.

    벙커 학장은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과학자가 비슷한 치수의 주철 원통이 뉴멕시코에서 진행된 유도탄 연구에 쓰였던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고 전했다. 다만 이 과학자도 다른 가능성을 모두 배제한 단정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흥미로운 점은, MIT에서 실제 검사를 맡은 인물(이름은 가려져 있다)이 보스턴 지부에 비공식 보고서를 따로 보내 왔다는 사실이다. 그 내용은 벙커 학장이 전한 보고와 주요 항목이 거의 같았다. MIT 측은 친지들을 통해 같은 원통에서 떨어져 나온 다른 조각들을 더 모아 보스턴 지부에 넘길 예정이며, 추가 검사나 원통 복원 작업은 더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보스턴 지부는 1947년 8월 15일까지 본부의 다른 지시가 없으면 이 시료를 폐기할 계획이며, 그 사이에는 본부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을 때만 송부하겠다고 마무리한다.

    좌측 상단의 발신·수신란에는 손글씨 서명("Gney", "Fletcher")이, 하단에는 1947년 9월 22일자 "SEARCHED / INDEXED / SERIALIZED / FILED" 접수 도장과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64", FBI 파일번호 "62-83894-103"이 함께 남아 있다.

  27. p.27

    FBI 내부 양식인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용지에 작성된 메모다. 스캔본이 거꾸로 들어가 본문 단락은 거의 판독되지 않는다. 상단에 수신·발신·주제·일자 칸이 비어 있고, 본문 오른쪽 아래에 FBI 자료 공개 시 사용하는 (b)(7)(D) 비공개 코드가 따로 표기되어 있다. 페이지 하단 가장자리에는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접수일을 찍은 'RECEIVED' 도장이 여러 개 겹쳐 있고, 왼쪽 여백에는 손글씨 표기가 있다. 종이 위쪽 가장자리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어 파일 묶음에서 분리된 사본임을 알 수 있다.

  28. p.28

    보스턴 사무소가 본부에 보낸 보고의 후반부다. 처음 보스턴에서 보낸 전문은 이번 조사가 MIT 안에서 "비밀" 사안으로 다뤄지고 있다고 적었는데, 정보원의 말을 빌리면 여름철 MIT에 남아 있던 연구진은 수가 적어 모두 이번 사건과 연구 결과를 알고 있다고 했다. 다만 외부에 알려진 바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MIT 과학자들은 FBI가 이 사안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외국에서 발사된 유도 미사일이 뉴햄프셔에 떨어졌다는 식의 추측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론은 본부가 추가 수사를 따로 지시하지 않는 한 보스턴 사무소는 이 사건을 종결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작성자 이니셜 BBD와 타자수 vad, 파일 번호 100-20696이 붙어 있다. 정보원 이름은 가려져 있다.

  29. p.29

    1947년 8월 15일 오후 5시 45분, FBI 뷰트(Butte) 지부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전문이다. 발신자는 배니스터(Banister), 분류는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cs)". 내용은 이렇다. 같은 날, 아이다호주 트윈폴스에 사는 A. C. 유리(Urie)라는 사람이 지역 신문사에 다음과 같이 신고했다. 지난 수요일인 8월 13일 오후 1시, 자신과 열 살짜리 아들 빌리, 여덟 살짜리 아들 키스가 트윈폴스 북서쪽 9마일 지점에서 플라잉 디스크처럼 생긴 물체 하나를 봤다는 것이다. 유리는 그 물체가 시속 1천 마일에 달하는 엄청난 속도로 새먼강(Salmon River)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유리 부자는 그 물체를 신문사에 길이 20피트, 너비 10피트, 두께 10피트의 옅은 하늘색 물체로 묘사했고, 옆면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오는 것도 함께 봤다고 했다. 물체를 본 순간 세 사람 모두 큰 "쉭" 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직후 물체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뷰트 지부는 1947년 7월 30일자 뷰로 회보(Bureau Bulletin) 42호 하위항목 B에 따라 유리 부자를 지금 면담하고 있으며, 관련 사항이 나오는 대로 본부에 신속히 보고하겠다고 끝맺는다. 전문 우측 여백에는 톨슨, 태머 등 후버 국장실 핵심 간부들의 회람 체크리스트가, 하단에는 8월 24일자 "기록·색인"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104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30. p.30

    분홍색 종이의 뒷면을 찍은 스캔이다. 앞면 타자기 본문이 카본 사본 결로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직접 읽기는 어렵다. 상단에는 1947년 8월 15일 오후 7시 50분 법무부 FBI 접수 도장이 찍혔고, 하단에는 같은 8월 15일 오후 8시 36분, 8월 19일 오전 10시 36분, 8월 23일 오후 2시 29분, 8월 30일 오전 11시 17분에 걸쳐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같은 문건을 순차로 접수한 도장이 한꺼번에 찍혀 있다. 본문은 다음 페이지에 이어진다.

  31. p.31

    1947년 8월 14일자 FBI 내부 메모로, D. M. 래드가 후버 국장에게 올린 "비행 원반" 건 보고다. 포틀랜드 지국이 보내온 사실관계를 그대로 정리해 옮기고 있다.

    포틀랜드의 〈오리거니언〉 항공 담당 기자 레버릿 G. 리처즈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제4 미 육군항공대 사령부 소속 윌리엄 L. 데이비드슨 대위와 프랭크 M. 브라운 중위는 1947년 7월 27일 포틀랜드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베테랑 조종사 딕 젱킨을 인터뷰했는데, 젱킨은 6월 21일 캘리포니아 베이커즈필드 상공에서 비행 원반 편대를 봤다고 보고한 인물이었다. 데이비드슨과 브라운은 이어 처음으로 원반 목격을 보고한 베테랑 조종사 네 명 — 아이다호 보이시의 사업가 케네스 아놀드, 부조종사 E. J. 스미스 대위, 유나이티드 항공의 랠프 스티븐스,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의 항공 담당 기자 데이브 존슨 — 까지 만났다. 리처즈는 이 인터뷰의 목적을 알아보려고 라이트 필드의 트와이닝 소장에게 직접 연락했고, 그 대화에서 "육군항공대는 이 원반 보고들이 자기네 소관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서 보고들을 털어내려고 조사를 시작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 뒤 8월 1일 금요일,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탄 비행기가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해 두 사람 모두 사망했다. 잔해는 매코드 기지 소속 AAF 정보부가 통제했다. 〈터코마 뉴스 트리뷴〉이 — 그리고 그 기사를 받은 UP 통신이 — 이 비행기가 해럴드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 소유의 배에 떨어졌다는 원반 파편을 싣고 가던 중이었다는 기사를 냈고, 그 파편 검사를 막으려고 비행기가 사보타주를 당했다는 추측까지 흘러나왔다.

    래드는 "상태(STATUS)" 항목에서 FBI 자체 조사 결과 그 비행기는 원반 파편을 싣고 있지 않았으며 사보타주 주장도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추락 조사 세부 내용은 별도의 무기명 메모로 첨부했고, 더 이상의 조사는 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조치(ACTION)" 항목에는 FBI 조사 결과를 공군 정보부에 통보했다고만 짧게 쓰여 있다.

    메모 하단에는 정리 번호 62-83194-105, 1964년 11월 18일자 "COPIES DESTROYED 270" 도장이 같이 남아 있다.

  32. p.32

    편지지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본문 글자는 앞면 잉크가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고, 실제 내용은 오른쪽 아래에 거꾸로 찍힌 FBI 접수 도장 세 개다. 1947년 8월 14일 오후 4시 20분에 미 법무부 FBI 본부가 접수, 다음 날인 8월 15일 오전 9시에 인디애나폴리스 지부가 접수했다는 표시가 함께 찍혔다. 왼쪽 아래에는 "Mr. Jones" 앞으로 보내라는 손글씨 라우팅 메모가 있다.

  33. p.33

    1947년 8월 14일 자 FBI 내부 보고는 〈Tacoma News Tribune〉과 그 기사를 받은 United Press가 보도한 사건을 정리한다. 두 매체는 해럴드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이 소유한 보트에 부딪힌 비행 원반의 조각을 운반하던 군용기가 1947년 8월 1일 추락해, 원반을 봤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조사 중이던 공군 정보장교 두 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달과 크리스먼은 1947년 8월 7일 FBI 요원들과 면담하며 서명 진술서를 냈다. 이들은 1947년 6월 초 워싱턴주 모리섬의 자갈 채취장에서 이상한 암석 조각을 주웠다고 말했다. 시가 상자에 담은 그 조각을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Venture〉 잡지를, 시카고에서 〈Fantasy〉 잡지를 편집하던 레이 파머에게 보냈다. 두 사람은 화학 분석만 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파머는 분석이 안 된다며 시료를 더 보내 달라고 답장을 보냈다. 6월 말 비행 원반 보도가 쏟아지자 파머가 전화로 다시 연락해, 보낸 시료가 비행 원반의 파편이라면 단독 보도값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달은 시료를 비행 원반의 일부라고 적은 편지를 파머에게 써 보냈다고 인정했다. 달과 크리스먼은 이 진술 자체가 완전히 거짓이었다고 시인했다.

    이후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사는 케네스 아놀드가 두 사람에게 전화해 1947년 7월 31일 타코마 윈스럽 호텔에서 만나자고 했다. 두 사람의 말에 따르면, 아놀드는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서 온 육군 정보장교들과 시애틀 유나이티드 항공의 에밀 H. 스미스 기장을 그 자리로 불렀다. 달과 크리스먼은 그 자리에서 정보장교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 그리고 아놀드와 스미스에게 암석을 어떻게 주웠는지 그대로 말했고, 비행 원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진술했다. 그 자리에서 정보장교들에게 시료 일부를 넘겼다.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해밀턴 필드로 돌아가기 위해 1947년 8월 1일 오전 2시 30분경 B-25 편으로 타코마를 떠났고,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좌측 엔진 배기관에서 불이 나면서 왼쪽 날개로 옮겨붙어 날개가 부러진 것이 원인이었다. 정비장과 다른 장교 한 명은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타코마의 AP 무선 기자 어니 보겔은 비행 원반 기사가 나간 지 이삼일 뒤 달에게 직접 전화해 사실관계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본문 마지막 줄에서 이야기가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64" 도장과 "ENCLOSURE 62-83894-105" 라는 파일 번호가 남아 있다. 이 보고서가 1964년 11월 18일 일부 사본을 폐기 처분했고, FBI 파일 62-83894 안에 105번 첨부 문서로 보관되었다는 흔적이다.

  34. p.34

    보고서 2쪽이다.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젠서가 워싱턴주 하버의 소방서장에게서 "달이 비행 원반 조각 일부를 갖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대목으로 페이지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달은 보겔에게 그 이야기 전체가 거짓이었다고 시인한다. 아놀드에 관해서는 달과 크리스먼이 이렇게 진술한다 — 아놀드는 판타지 매거진의 레이 파머와 보이시 스테이츠먼으로부터 돈을 받고 타코마로 와서 비행 원반 조각에 관한 기사거리를 자기들에게서 받아낸 사람이라고. 7월 31일과 8월 1일 이틀에 걸쳐 타코마 타임스 기자와 타코마 주재 유나이티드 프레스 무선통신원에게 익명 전화가 모두 다섯 통 걸려왔다. 전화 내용은 윈트롭 호텔에서 비행 원반 조각을 두고 만난 회동 정황을 알리는 것이었고, 동시에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탄 B-25기가 격추되었거나 누군가에 의해 사보타주를 당했으며 그 이유는 두 정보장교가 비행 원반 조각을 비행기에 싣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달과 크리스먼은 이런 전화는 자기들 아니면 아놀드, 또는 스미스에게서밖에 나올 수 없다고 했고, 스미스에게는 시카고 타임스에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를 통해 기사를 시카고 타임스에 팔아넘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단, 그 전화는 자기들이 건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스미스를 따로 면담한 결과, 스미스는 타코마 타임스의 랜츠 기자와 타코마 유나이티드 프레스 사무실의 모렐로에게서 아놀드 쪽에도 같은 익명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전화로 흘러나온 정보의 정확성으로 보아 그 전화는 달이나 크리스먼 둘 중 하나가 건 것으로 본다고 진술했다.

  35. p.35

    1947년 8월 18일, FBI 시애틀 지부가 본부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제목은 워싱턴주 타코마의 프레드 크리스먼과 해럴드 A. 달이 보았다고 주장한 플라잉 디스크 건. 사건 번호는 SM-X로 매겨져 있다.

    보고서는 크리스먼과 달이 퍼뜨린 플라잉 디스크 이야기의 전말을 정리한다. 이 이야기는 타코마 타임스, 보이시 스테이츠먼, 시카고 타임스 기사로 번지면서, 1947년 8월 1일 워싱턴주 켈소 상공에서 추락한 B-25 — 디스크 파편을 싣고 있었다는 — 가 사보타주로 격추됐다는 소문까지 낳았다.

    원래 이야기는 이렇다. 달은 워싱턴주 모리섬 부근에서 배를 몰고 순찰하다가 플라잉 디스크 여섯 대를 봤다고 한다. 그중 한 대가 흔들리며 떨어져 공중분해됐고, 그 파편이 배 위로 쏟아져 배가 망가지고 키우던 개가 죽었다는 것. 달은 시카고에서 모험·괴기 잡지를 내는 클리프-데이비스(지프-데이비스로 추정)의 레이 A. 파머에게 편지를 써서 디스크 파편을 함께 보내고 위 이야기를 전했다. 파머는 시카고의 트랜스-라디오 뉴스에 사실 확인을 의뢰했고, 트랜스-라디오 측은 달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했다고 답해 왔다. 파머는 그러자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를 끌어들였다. 아놀드는 플라잉 디스크를 처음 목격 보고한 인물이자 파머와 이미 디스크 관련 기사 계약을 맺어 둔 사이였다. 파머는 아놀드를 타코마로 보내 크리스먼과 달의 이야기를 검증하도록 했다.

    아놀드는 1947년 7월 30일 타코마에 도착했고, 다음 날인 7월 31일 윈스럽 호텔 502호에서 크리스먼·달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놀드는 그 자리에 디스크 파편을 봤다고 보고한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스미스 기장과 육군 정보 측도 부르려고 했다. (이 페이지에서 본문은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는 'RECORDED & INDEXED' 도장과 함께 1947년 10월 1일 접수 표시, 1964년 11월 18일 사본 폐기 표시(COPIES DESTROYED 278 NOV 18 1964)가 같이 찍혀 있다. 인물 이름에는 일부 검정 줄 가림 처리가 들어가 있다.

  36. p.36

    1947년 8월 19일자 문건의 두 번째 면이다. 7월 31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케네스 아놀드, 에밀 J. 스미스 대위, 프레드 크리스먼, 해롤드 달, 그리고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육군 A-2 정보국 소속 데이비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아놀드의 호텔 방을 들락거리며 만났다. 자리에서 다룬 것은 크리스먼과 달이 풀어놓은 "비행 원반" 이야기였다. 두 정보 장교 데이비슨과 브라운은 8월 1일 새벽 2시쯤 공군의 날 행사를 위해 B-25 폭격기로 해밀턴 필드로 돌아가려 했고, 보고된 원반 파편 일부를 함께 싣고 있었다. B-25의 좌측 엔진 배기관에 불이 붙어 좌측 날개로 옮겨붙었고, 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꼬리부도 함께 뜯겨 나갔다. 비행기는 추락했고 데이비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다만 항공기 기관장과 동승한 히치하이커는 낙하산으로 빠져나와 살아남았다. 워싱턴 매코드 필드의 정보 장교들은 사보타주 정황은 없다고 알렸다. 추락 지점은 워싱턴 켈소, 시각은 8월 1일 새벽 2시 30분 무렵이다.

    같은 기간 동안 타코마 타임스 기자와 타코마 주재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원에게는 익명 전화 다섯 통이 걸려왔다. 첫 통화는 7월 31일 오전 11시 30분경 타코마 타임스로 들어왔는데, 발신자는 그 시각 윈스롭 호텔 502호에서 모리 섬에서 발견된 원반 파편을 두고 회합이 진행 중이라고 알려왔다. 두 번째 통화는 8월 1일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에 같은 신문사로 걸려왔고, 발신자는 지금 502호 아놀드의 방에서 큰 회합이 열리고 있다, 추락한 B-25가 원반 파편을 싣고 있었으며 매코드 필드 측이 격추되었거나 사보타주를 당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세 번째 통화는 8월 1일 금요일 오후 5시 30분, 유나이티드 프레스 통신원에게 들어왔고, 켈소에서 추락한 B-25에 비행 원반 파편이 실려 있었으며 사망자는 해밀턴 필드 A-2 정보국 소속 데이비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라고 짚었다. 이 통화는 군 당국이 사망자 이름을 공식 발표하기 전이었고, 발신자는 이름이 공개되면 자기 정보의 진위가 확인될 거라고 말했다. 네 번째 통화는 같은 날 저녁 6시 45분경 유나이티드 프레스로 다시 들어왔다. 발신자는 B-25가 분명히 격추된 것이며 군 정보 장교에게 묻더라도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다섯 번째 통화는 8월 2일 오후 5시 30분, 유나이티드 프레스로 들어와 B-25는 20밀리 기관포로 공중에서 격추된 것이며, 최근 레이니어 산에서 발견된 해병대 항공기도 같은 식으로 격추되었고 스미스 대위는 화요일 아침 라이트 필드로 이송될 거라는 식으로 이어졌다.

    군 당국이 사망 정보 장교들의 이름을 공식 공개하면서 익명 제보자의 정보가 사실로 확인되었고, 타코마 타임스는 8월 2일 이 이야기를 기사화한 뒤로도 B-25가 원반 파편을 싣고 있어서 격추되었거나 사보타주를 당했다는 식의 추측 기사를 잇따라 실었다. 그러나 달과 크리스먼은 자기들이 레이 파머에게 보낸 그 물질이 비행 원반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인정했고, 그 취지의 서명 진술서도 제출한 상태다 — 본문이 다음 면으로 이어지면서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 2 -" 라는 면수가 박혀 있다.

  37. p.37

    1947년 8월 19일자 FBI 보고서 3쪽이다. 본문 머리에서는 달과 크리스먼 두 사람이 비행 원반 이야기를 자신들이 처음 꺼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유나이티드항공 조종사 에밀 J. 스미스는 두 사람이 1947년 7월 31일에 원반 파편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처음 들려줬다고 진술한다. 수사관은 익명 제보 전화 역시 시카고의 레이 파머에게 이 이야기를 비싸게 팔아넘기려고 프레드 크리스먼이 직접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정황상 크리스먼이 가장 유력한 발신자라는 판단이다.

    이어지는 부분은 특수요원 데이비드 A. 맥컬록이 1947년 8월 6일과 7일 워싱턴주 터코마에서 진행한 조사 내용이다. 면담자는 AP 통신 소속 기자 보겔(이름 부분은 검게 가려져 있다)이다. 보겔의 진술은 이렇게 흐른다. 1947년 6월 초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 데스크가 보겔에게 한 가지 제보를 확인해 보라고 시켰다. 워싱턴주 하퍼의 소방서장에게서 흘러나온 이야기였고, 원래 출처는 프레드 크리스먼이라고 했다. 내용은 달이 머우리섬 근처에서 보트를 몰고 있다가 비행 원반 다섯 내지 여섯 대를 보았는데 그중 한 대가 펄럭이며 내려오다 산산조각 났고, 파편이 달의 보트에 쏟아져 배가 파손되고 키우던 개까지 죽었다는 줄거리였다.

    보겔은 이 이야기를 확인하려고 터코마 노스코브가 3903번지에 있는 해럴드 달의 집을 찾아갔다. 첫 비행 원반 기사가 신문에 실린 지 며칠 안 된 일요일 저녁이었고, 6월 초였다고 기억한다. 달은 보겔을 부엌으로 데려가더니 낮고 잠긴 목소리로 원반 이야기를 풀어놨다. 태도가 어딘가 수상쩍었다. 곧 달의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단단히 화가 난 아내는 남편에게 이 이야기 전부가 네가 머릿속으로 지어낸 공상에 불과하다고, 사실대로 말하라고 다그쳤다. 아내의 추궁이 이어지자 달은 결국 그 이야기에는 아무것도 없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가짜였다고 자백했다.

    보겔은 아내가 격분한 상태라 곧바로 자리를 떴고,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에 전 이야기가 조작이니 절대 기사로 내지 말라고 보고했다. 덧붙여 달은 정신적으로 정상이 아니니 그의 말을 기사 분량으로 다뤄선 안 된다고도 알렸다. 그 뒤로 보이즈 스테이츠먼 쪽이 크리스먼과 달의 비행 원반 이야기를 받으려 보겔을 끈질기게 압박해 왔다. 보겔은 자기 기자 경력 통틀어 이런 압력은 처음이라고, 그리고 두 사람이 원반을 봤다는 이야기는 완전한 날조라고 보이즈 쪽에 거듭 못 박았다고 진술한다. 마지막 단어 fabri-에서 잘리며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본문 검게 칠해진 한 부분은 면담자의 이름(보겔의 first name)이다.

  38. p.38

    1947년 8월 19일자 FBI 보고서의 네 번째 쪽으로, 타코마 타임스 기자 폴 랜츠(Paul Lantz)에게서 받은 진술을 정리한 대목이다. 랜츠는 타코마 사우스 7번가 4513번지에 살았고 전화번호는 프록터 8416. 도입부는 이 일을 뉴스 기사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가 보이즈를 떠나 타코마로 와 달(Dahl)·크리스먼(Crisman)과 함께 플라잉 디스크 사건을 확인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오지 말라, 전체가 날조다"라고 보이즈 스테이츠먼 측에 미리 알렸다는 정보원 진술이 끝나는 부분으로 시작한다.

    이어 랜츠 진술이 펼쳐진다. 1947년 8월 2일에 타코마 타임스가 처음으로 그해 8월 1일 새벽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한 B-25 폭격기가 플라잉 디스크 파편을 싣고 있어 누군가 격추하거나 사보타주한 것이라는 의혹 기사를 실었다. 그 직전 7월 31일 목요일 오전 11시 30분쯤 랜츠에게 익명 전화가 걸려 와 "케네스 아놀드와 육군 정보장교들이 모리 아일랜드에서 수거한 플라잉 디스크 조각을 검토하려고 윈스럽 호텔 502호에서 만나고 있다"고 알렸다. 랜츠가 잠깐 편집장에게 말을 돌렸다가 수화기를 다시 들었을 때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익명 제보자는 마침 자리를 비웠던 같은 신문 기자 버트 맥머티스(Burt McMurtis)를 찾았고, 맥머티스는 뒤늦게 윈스럽 호텔 502호로 직접 아놀드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아놀드는 "정부 임무로 와 있어 알려 줄 수 없다"고만 답했다.

    다음날인 8월 1일 금요일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 같은 익명 제보자가 다시 맥머티스를 찾는 전화를 걸어 왔다. 랜츠가 "어제 그 사람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제보자는 "지금 이 순간 아놀드의 502호에서 큰 회합이 진행 중이며, 같은 날 아침 켈소에서 추락한 B-25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져오던 플라잉 디스크 파편을 싣고 있었고, 맥코드 비행장 당국자들은 그 비행기가 사보타주됐거나 격추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고는 자신은 호텔 교환수라는 식의 말을 흘리며 끊었다. 랜츠가 그날 점심께 윈스럽 호텔로 직접 가 봤더니 교환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502호로 올라가니 아놀드가 직접 문을 열어 줬고 방 안에서는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에밀 J. 스미스(Emil J. Smith) 대위가 전화 통화 중이었다. 스미스가 "이 정보는 절대로 외부에 새 나가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말하는 게 들렸다. 방 안에는 스미스와 아놀드 말고도 한두 명이 더 있었지만 랜츠는 누군지 확인하지 못했다. 아놀드는 "공식 발언은 할 수 없다, 모리 아일랜드 쪽 사람들에게 사실 확인을 시도했지만 모두 부정적인 답만 돌아왔다"고만 했다.

    그날 오후 3시 30분쯤 랜츠는 익명 제보자에 대한 기사를 써서 호텔로 전화해 아놀드에게 "기사를 써 둘 테니 확인해 보라"고 알려 줬다. 또 타코마 주재 유나이티드 프레스 기자 테드 모렐로(Ted Morrello)에게도 이야기를 했는데, 모렐로는 "이야기가 환상적으로 들린다"고 반응했다. 그리고 같은 8월 1일 금요일 오후 5시 30분쯤, 같은 익명 제보자가 이번에는 테드 모렐로에게도 전화를 걸어 왔다는 대목에서 이 쪽은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쪽 번호 "- 4 -".

  39. p.39

    1947년 8월 19일 자 보고서의 5쪽이다. 유나이티드 프레스 와이어 기자가 진술한 익명 전화 내용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익명 전화는 B-25 추락 사고로 사망한 정보장교가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였고, 육군이 잔해 주변에서 민간인과 보안관을 막아내며 직접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이름이 아직 육군에서 공식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사실이 자기 진술의 신빙성을 입증해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폴 랜츠의 진술에 따르면, 다음 날 토요일 8월 2일 육군이 사망한 두 사람이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 이틀 뒤에는 두 사람이 육군 정보장교였다는 점까지 확인해 주었다.

    익명 전화는 이후 테드 모렐로에게도 다시 걸려 왔다. 전화 건 사람은 모렐로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자기는 타코마 뉴스 트리뷴이나 AP 통신에 전화한 적이 없고 폴 랜츠나 버트 맥커티에게도 전화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신 좋으라고 이러는 줄 알지 마라." 그는 기사가 이미 전선을 탔는지 물었고, 모렐로가 그렇다고 답하자 "이제는 뉴저지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같은 통화에서 그는 B-25가 20밀리 기관포에 격추당했다고 주장했고, 최근 레이니어산 측면에서 발견된 해병대 비행기 역시 수개월 전부터 행방불명 상태였다가 같은 식으로 격추당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모렐로에게 유나이티드 항공의 파일럿 달이라는 사람과 연락해 보라고 권했는데, 달은 스미스 대위와 함께 몬태나 상공을 날다가 공격받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화요일에 보자,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끊었다.

    랜츠는 이 진술을 받고 유나이티드 항공의 에밀 스미스 대위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스미스는 모를린이라는 이름의 파일럿을 안 적이 없고, 몬태나 상공을 비행한 적도 없다고 부인했다. 랜츠는 스미스가 화요일에 라이트 기지로 갈 예정이며, 토요일에는 비행 원반 파편을 발견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알래스카로 이송될 것이라는 사실도 전했다.

    랜츠는 B-25에 탑승했던 정보장교에 대한 정보가 익명 전화 측에서 먼저 나오고 이후 육군이 그것을 확인해 준 점을 들어, B-25가 비행 원반 파편을 캘리포니아 해밀턴 기지로 운반하던 중이었으며 따라서 누군가가 비행기를 사보타주하거나 격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식의 기사가 결국 외부에 풀려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랜츠는 8월 3일 일요일 저녁 8시쯤 시애틀의 자택 — 3027 웨스트 로렐허스트 드라이브 — 에 있던 에밀 스미스 대위와 통화한 내용을 진술했다. 스미스는 자신이 시애틀의 포스트 인텔리전서에 어떤 이야기도 흘리지 않았으며, 보이시에 있는 한 번호로 전화를 걸어 달라는 전보를 받고 걸어 보았더니 보이시 스테이츠맨이라서 그냥 끊어 버렸다고 말했다. 그 뒤 보이시 스테이츠맨 쪽에서 다시 자신에게 연락해 왔고, 그때는 자기가 원반 파편을 본 것은 인정했지만 파편을 가져온 적은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번 통화에서 스미스는 그날 오후 3시 45분까지 맥코드 기지의 공보장교 조지 샌더스 소령과 줄곧 같이 있었다고 랜츠에게 알려 주었다. 또한 케네스 아놀드가 아이다호 보이시를 떠나고 자신이 시애틀을 떠난 시점부터 두 사람이 비행 원반 파편 건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내용을 육군 당국에 다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 통화에서 스미스는 아놀드가 묵던 하이타워 호텔 방에 문제의 원반 파편 일부가 있었고, 목요일 오후에 치즈먼과 달이 그 방에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까지 인정했다. 월요일에는 랜츠가 해럴드 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달은 만약 이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지 않는다는 조건이 보장된다면 자신과 프레드…에 대해 이야기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본문은 여기서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40. p.40

    1947년 8월 19일자 FBI 보고서 6쪽으로, 마우리섬 사건 진술이 이어진다.

    폴 란츠 기자는 8월 1일 정오 무렵 달과 크리스먼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진술했다. 달은 아들과 함께 마우리섬의 자갈 채취장을 살피다가 이상한 암석 조각을 주웠고, 나중에 프레드 크리스먼이 함께 다시 가서 추가 표본을 얻었다고 했다. 크리스먼이 그 표본을 시카고 대학교에 있는 지인에게 분석을 맡겼는데, 부탁받은 친구가 어느 신문기자에게 표본 출처를 캐묻기 시작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두 사람은 첫 비행 원반 기사가 나간 뒤 시카고의 트랜스오션 프레스로부터 비행 원반 파편 정보를 요청하는 전보를 받았다고도 말했다. 다만 크리스먼은 그 암석이 비행 원반의 일부라고 어디에서도 말한 적이 없으며, 스미스 대위와 케네스 아놀드 역시 암석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자기들이 두 사람에게 표본을 넘긴 일도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같은 보고서에는 타코마의 통신원 테드 모렐로의 진술도 함께 들어 있다. 모렐로가 받은 익명 전화의 내용은 타코마 타임스 기자 폴 란츠의 것과 거의 일치한다. 첫 전화는 8월 1일 금요일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통화자는 켈소에서 추락한 B-25 폭격기가 비행 원반 파편을 싣고 있었고, 사망한 두 장교는 해밀턴 기지 육군 A-2 정보과 소속 데이비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이며, 파편은 최고 기밀 자료였다고 알렸다. 군이 사망자 명단을 공개하면 자기가 흘린 정보의 진위가 자연히 드러날 거라고도 덧붙였다.

    같은 날 오후 6시 45분경 두 번째 전화에서 통화자는 그 B-25가 명백히 격추당했고, 육군 A-2 정보과에 확인을 요청하면 책임자가 부인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모렐로는 처음에는 통화자가 책임자 이름을 ‘커츠 대령’이라고 부른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가, 실제 육군 A-2 정보과 책임자는 그렉 대령이라고 정정했다. 통화자는 보안관실 인원이 사고 현장에 접근하지 못했고 민간인도 비행기 근처에 다가가지 못했다고 알렸다.

    세 번째 전화는 8월 2일 오후 5시 30분에 걸려왔다. 통화자는 스미스 대위 및 케네스 아놀드와 만난 사람 중 한 명이 그날 알래스카로 옮겨졌다고 전했다. B-25는 20밀리미터 기관포로 공중에서 격추됐고, 최근 레이니어산에서 발견된 해병대 비행기도 같은 방식으로 격추됐다고 주장했다. 화요일 아침에는 스미스 대위가 라이트 기지로 이동할 예정이며, 몬태나 상공에서 함께 사격을 받은 노먼 플로라는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가 그와 동행했다고도 덧붙였다. 통화자는 자기는 샌프란시스코로 떠나며 화요일에 돌아오겠다고 통보했다.

    란츠와 모렐로는 익명 통화자의 정체를 캐낼 시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어차피 헛수고일 거라 봤고, 만일 캐묻기 시작하면 통화자가 어떻게 나올지 — 문장은 다음 쪽으로 끊긴다.

  41. p.41

    1947년 8월 19일자 FBI 보고서의 중간 페이지로, 모리 섬(Maury Island) 사건 관련 면담 경위를 정리한 부분이다. 앞 문장은 "추가 정보를 제공하기를 거부했다"로 끝나 있는, 앞 페이지에서 이어진 마무리다.

    보고서에 따르면 1947년 8월 5일, 프레드 크리스먼이 워싱턴주 터코마 거점 사무소로 데이비드 A. 매컬록 특별수사관을 직접 찾아왔다. 크리스먼은 시애틀 사무소가 B-25기 추락 사건을 조사 중인지 물었고, 매컬록은 시애틀 쪽에서 별도의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크리스먼은 이 자리에서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는데, 자기가 주워온 이상한 암석 조각을 분석을 받으려 시카고대학교의 지인에게 보냈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그것이 비행 원반의 파편이라고 보도되기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이어 8월 7일, FBI는 같은 사무소에서 크리스먼과 해럴드 달 두 사람을 함께 면담했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자신들이 가져와 분석을 의뢰했다는 그 암석이 어떻게 비행 원반 이야기와 엮이게 됐는지 전혀 모른다고 잡아뗐다. 누구에게도 이 돌이 원반 파편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면담 초반부터 두 사람이 사건과의 진짜 연관을 다 털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났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했고 무슨 행동을 했기에 비행 원반 사건에 휘말리게 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기를 거부했고, 자기들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답변만 반복했다.

    계속 추궁한 끝에야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6월 초쯤 두 사람은 모리 섬에서 주워온 암석 조각 일부를, 시카고에서 잡지 〈팬터지(Fantasy)〉를,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서 〈벤처(Venture)〉를 펴내던 지프-데이비스 출판사의 레이 파머에게 보냈다. 분석을 부탁한다는 명목이었다. 이후 파머가 분석에 실패했다며 시료를 더 보내달라고 편지를 보냈지만, 두 사람은 추가 시료를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 뒤 다시 소식이 닿은 것은 파머가 해럴드 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돌이 비행 원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달은 그 자리에서 "비행 원반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식의 말을 흘렸고, 6월 하순쯤 곧장 파머에게 편지를 써서 그 물질이 비행 원반의 파편일 수 있다는 내용을 적어 보냈다. 달은 전화 통화에서는 그 돌을 자기 배 위에서 주웠다는 식의 이야기도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정작 편지에 무엇을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고, 이 일 전체를 농담으로 흘려보냈다고 주장했다.

    FBI는 두 사람이 각자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길게 추궁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자기들이 한 일이라곤 레이 파머에게 "그 돌이 비행 원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고 말해준 것뿐이라며, 그것도 "파머가 그렇게 말해주기를 원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답했을 뿐이라고 했다. 결국 FBI는 달과 크리스먼 중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비행 원반 이야기를 처음 띄웠는지 어느 쪽으로부터도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페이지는 "크리스먼과 [다음 인물]로부터 받은 서명 진술서는—"이라는 문장이 시작되며 끊긴다.

  42. p.42

    1947년 8월 19일 자 FBI 보고서의 7쪽으로, 마우리섬 사건 후속 조사가 이어진다. 도입은 DAHL이 바위 조각과 비행 원반 사이에 아무 관련이 없다고 인정한 진술서를 본부로 함께 송부하지만, 그 진술서에 별 가치 있는 내용이 없어 본문에는 옮기지 않는다고 정리한다.

    7월 31일 목요일 윈스럽 호텔 회동에 대해 CRISMAN과 DAHL은 둘 다 오후 1시쯤 KENNETH ARNOLD를 만났고, 셋 모두 오후 3시쯤 ARNOLD의 방을 떠났다고 진술했다. CRISMAN이 ARNOLD를 타코마의 Berry's Airport까지 데려다 줬고, ARNOLD는 자기 비행기로 시애틀까지 날아가 EMIL SMITH 대위를 태웠다. CRISMAN은 오후 5시쯤 Berry's Airport에서 ARNOLD와 SMITH를 다시 픽업했고, HAROLD DAHL은 오후 7시쯤 ARNOLD의 방으로 왔다. 오후 8시 30분쯤 CRISMAN은 SMITH를 시애틀로 데려다 차를 찾게 했고, DAHL은 이때 귀가했다. 11시 30분쯤 CRISMAN이 호텔로 돌아왔을 때 ARNOLD의 방에는 이미 육군 정보장교들이 와 있었고, CRISMAN은 자정 무렵 자리를 떴다. 다음 날인 금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3시까지 30분 정도 다시 들렀을 때 ARNOLD와 SMITH는 여전히 그 방에 있었지만, 둘 다 8월 1일 금요일에 DAHL이 그 방에 있었는지를 기억해 내지 못했다. CRISMAN과 DAHL에게서 끌어낼 수 있었던 핵심은 — ARNOLD의 방에서 오간 대화 대부분이 비행 자체에 대한 것이었고, 누구도 바위 조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들도 이 조각을 비행 원반과 연결짓지 않았다는 정도다. CRISMAN은 ARNOLD가 바위 조각이 나온 장소의 사진을 원했지만 육군 정보장교들은 그쪽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HAROLD DAHL은 워싱턴주 타코마 Stillwater Avenue 235번지의 Commercial Lumber Company를 운영하고, FRED CRISMAN은 최근 거기서 목재 매입을 돕고 있었다. 둘은 또 타코마 Harbor Patrol Association과도 엮여 있는데, 이 조직은 타코마 경찰이나 보안관 사무소가 순찰하지 않는 항구 일부 구역에 자체 순찰·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다. CRISMAN의 주소는 타코마 Woodland 123번지, 군 일련번호는 O-798-931, 전쟁 중에는 조종사였고 현재 대위 계급의 예비역 임관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DAVIDSON 대위와 BROWN 중위가 숨진 B-25 추락 건에 대해서는 McChord 필드의 A-2 정보장교 ROBERT G. BACKNING 대위가 다음과 같이 알려왔다. 조사 결과 좌측 엔진의 배기관이 타들어가 좌측 날개에 불이 붙었고, 좌측 날개가 떨어져 나가면서 꼬리까지 함께 부러져 나갔다는 것이다. 추락 당시 기체에는 DAVIDSON 대위, BROWN 중위 외에 한 명의 히치하이커와 정비반장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정비반장과 히치하이커는 낙하산으로 탈출해 살아남았지만 두 장교는 사망했다. BACKNING 대위는 어떤 사보타주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타코마 윈스럽 호텔 투숙 기록 확인에서, KENNETH ARNOLD는 주소를 아이다호 보이시의 Route #1, Mountainview Drive로 적고 7월 30일 오후 7시 45분부터 502호를 빌렸다는 사실까지 확인된다. 본문은 이 문장 중간에서 끊겨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본문 중반 Harbor Patrol Association 항목 옆에는 누군가 빨간 잉크로 동그란 표시를 둘러 둔 흔적이 남아 있어, 후대 독자가 이 단서에 주목한 자취를 보여 준다.

  43. p.43

    1947년 8월 19일 자 보고서 6쪽으로, FBI 시애틀 사무소가 작성한 것이다. 8월 3일에는 사라 샌더스 양이 같은 기간 502호실에서 걸려나간 전화 기록을 정리했다. 이 기록을 보면 케네스 아놀드는 7월 31일에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파머에게 수신자 부담으로 전화를 걸었고, 같은 날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브라운 중위에게도 수신자 부담으로 통화했다. 아이다호주 보이시 0109-J 번호로도 같은 날 통화했다. 8월 1일에는 포틀랜드 LON-4936, 시카고 디어본 5300의 파머에게 걸었고, 스미스는 시카고 디어본 2323의 로디에게 걸었다. 시카고로 건 두 통은 모두 수신자 부담이었다. 나머지 통화는 사적 용도로 보여 본문에 옮기지 않았으며, 전체 통화 기록은 시애틀 사무소가 증거물로 보관 중이다.

    이어 특별수사관 피에르 H. 린코가 8월 12일 유나이티드 항공 파일럿 에밀 J. 스미스 기장과 면담한 내용이 정리되어 있다. 주소는 웨스트 로렐허스트 드라이브 3027번지. 스미스는 7월 4일 아이다호 보이시발 정기 비행 도중 부조종사 랄프 스티븐스와 함께 비행 원반 또는 유사 물체를 목격한 일로 이미 언론에 노출된 바 있다. 스미스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 보이시를 오후 8시 12분에 이륙해 북서 방향 300도로 향했고, 8천 피트까지 상승하던 중 스티븐스가 좌측 약 10도 앞쪽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물체를 가리켰다. 두 사람 모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스미스는 오리건 온타리오의 민간항공국 무선 통신사에게 무선으로 연락해 통신실 밖으로 나가 머리 위에 그런 물체가 보이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통신사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답했다.

    스미스는 케네스 아놀드를 7월 5일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 사무실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두 사람 다 비행 원반 목격 건으로 인터뷰를 받으러 와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약 3주 전 보이시에서 만났는데, 스미스가 보이시를 경유하는 또 다른 비행 중 10분 동안 머무는 사이였다. 그때 아놀드는 육군 정보장교 윌리엄 L. 데이비슨 대위와 프랭크 브라운 중위, 그리고 보이시 스테이츠먼지 기자 존슨과 함께 있었다. 세 번째 접촉은 7월 31일 목요일 이른 오후로, 아놀드가 타코마에서 스미스에게 전화를 걸어 "동부의 누군가"를 위해 비행 원반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데 관련 잔해가 나왔으니 와서 보지 않겠냐고 권했다. 스미스는 합류하기로 했고, 아놀드는 오후 4시에 보잉 공항으로 직접 비행기를 몰고 가 그를 태우겠다고 했다. 약속 시각 무렵 보잉 필드에서 만난 두 사람은 워싱턴 타코마의 베리 공항으로 날아갔고, 그곳에서 프레드 크리스맨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일행은 크리스맨의 차를 타고 아놀드가 502호실을 잡고 있던 윈스롭 호텔로 갔다. 아놀드가 식사를 주문했고, 그사이 아놀드 혹은 크리스맨이 해롤드 달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방으로 올라오라고 청했다. 이쯤에서야 스미스는 크리스맨과 달이 최근 비행 원반 사건의 당사자라는 사실을 아놀드를 통해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날 타코마에서 만나기 전까지 두 사람 모두와 일면식이 없었다. 호텔 방에 있는 동안 아놀드는 시카고 벤처 프레스의 레이먼드 파머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스미스에게 보여 줬는데, 그 편지는 아놀드에게 조사를 의뢰하는 내용이었다.

  44. p.44

    1947년 8월 19일자 보고서의 9쪽이다. 타코마에서 진행된 크리스먼-달 사건 조사 내용을 이어간다. 케네스 아놀드는 스미스에게 자신이 호텔 방에서 받은 편지 이후 시카고의 팔머에게 전화를 걸었고, 팔머가 취재 경비로 200달러를 송금해 왔다고 알렸다. 곧이어 저녁 7시 반쯤 해럴드 달이 호텔 방에 도착하면서 네 사람 사이에 달과 크리스먼이 모리섬에서 무엇을 보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달은 처음에는 이야기를 꺼리며, 비행 원반을 본 뒤로 좋지 않은 일이 잇따라 일어났고 그 사건 전체가 자신에게 불운을 가져왔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비행 원반을 목격하고 나흘이나 닷새 뒤에 한 남자가 그의 집을 찾아왔고, 대화 도중에 모리섬 근처에서 보고 들은 모든 일을 잊으라는 경고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그 사건 직후 열여섯 살 된 아들이 집을 나갔다가 몬태나주 어딘가에서 경찰에 발견된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달은 추가 논의 끝에 스미스에게 적어도 2주 동안은 이 사안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 뒤에야 사건을 털어놓기로 했다. 다만 이 이야기는 이미 아놀드와 크리스먼에게 전한 적이 있었다. 달은 사건이 6월 23일이나 24일 무렵에 일어났다고 했고, 비행 원반의 사진을 찍었지만 인화된 필름에 흰 반점이 가득해 흉하게 망가져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다.

    달이 이야기를 마치자 크리스먼이 이어 받았다. 그는 다음 날 모리섬으로 직접 건너가 달이 말한 파편의 존재를 확인했고, 그때 파편 몇 개를 챙겨 가지고 돌아왔다고 했다. 같은 자리에서 비행 원반 한 대가 섬 위를 떠다니다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광경도 보았다고 말했다.

    달과 크리스먼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놀드는 그날 저녁 일찍 육군 정보장교인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에게 연락해 두었으며 두 사람이 호텔 방으로 오는 길이라고 알렸다. 달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겠다고 항의했고, 스미스는 그렇다면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자리를 떠도 좋다고 권했다. 결국 크리스먼과 달, 스미스는 방을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달은 혼자 떠났다. 크리스먼은 스미스를 시애틀 인근 보잉 필드까지 태워다 주었고, 스미스는 그곳에 둔 자기 차를 찾았다. 두 사람이 호텔로 돌아왔을 때 502호에는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 그리고 케네스 아놀드가 함께 있었다.

    문 앞에서 두 사람을 맞은 아놀드는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는 데이비드슨 대위가 방금 막 그린 한 장의 그림을 스미스에게 보여 주며, 애리조나의 한 여성이 보았다는 기이한 원반의 모습이 자신이 몇 주 전 레이니어산 부근에서 본 비행 원반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스미스에 따르면 그 직후 크리스먼은 자신과 달의 이야기를 두 육군 장교에게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다만 그 전에 스미스는 브라운 중위와 따로 대화하면서, 달에게 2주 동안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알리고, 만약 크리스먼이 지금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브라운과 데이비드슨도 한 달 동안은 이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두 장교가 이에 동의하자 크리스먼은 비로소 모리섬 비행 원반 사건에 관한 자신과 달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45. p.45

    1947년 8월 19일 자 보고서 10쪽으로,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메리 아일랜드 사건 진술의 연장이다.

    호텔 방에서 크리스먼과 달이 메리 아일랜드 이야기를 마치자, 스미스의 질문에 답하면서 브라운 중위는 자신과 데이비드슨 대위는 이전의 비행 원반 이야기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을 수 있다고 보지만, 직속 상관 — 아마도 해밀턴 비행장 A-2 정보참모부 — 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 장교는 그날 밤 안에 맥코드 비행장으로 돌아갈지 잠시 의논한 뒤 그러기로 한다. 다섯 사람이 로비로 내려간 자리에서 브라운은 일행과 떨어져 전화 부스에 들어가 맥코드 비행장에 차를 요청하고, 스미스도 따라 나가 부스 바깥에서 브라운과 짧게 이야기를 나눈다. 둘은 크리스먼과 달의 진술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고, 브라운은 스미스에게 이 이야기가 진짜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도 다음 날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한다. 일행이 호텔 앞으로 나오자 크리스먼이 자기 차를 호텔 앞에 대고 트렁크에서 메리 아일랜드에서 주웠다는 비행 원반 파편 상자를 꺼낸다. 그는 이 상자를 브라운과 데이비드슨에게 건네고, 맥코드 비행장에서 도착한 군용차에 두 장교와 함께 상자가 실린다. 크리스먼은 혼자 떠나고, 아놀드와 스미스는 식사를 하러 나갔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와 그 밤을 묵는다.

    다음 날인 8월 1일 금요일 아침, 아놀드는 크리스먼으로부터 간밤에 B-25 폭격기 한 대가 추락했는데 브라운과 데이비드슨이 타고 있던 그 기체로 추정된다는 전화를 받는다. 곧이어 크리스먼과 달이 호텔 방으로 찾아와, 그 방에서 크리스먼이 다시 맥코드 비행장에 전화해 추락 사고 정보를 캐묻는다. 스미스가 크리스먼에게서 수화기를 받아 그레고 대령과 통화하면서 신분을 밝히고, 추락한 B-25가 그 전날 밤 맥코드를 이륙한 유일한 기체였는지 묻자 그레고는 그렇다고 답한다. 이어 아놀드는 시카고의 레이먼드 파머에게 전화해 전날 밤 호텔에서 오간 대화와 데이비드슨·브라운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알린다. 파머는 아놀드에게 이 사건 조사를 중단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스미스가 아놀드에게서 수화기를 넘겨받아 파머에게 사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느냐고 묻지만, 파머가 크리스먼에게 어떻게 답했는지 스미스는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통화를 마친 뒤 스미스는 시카고 타임스의 항공 담당 편집자이자 자기 개인적 친구라는 모리시오 무디에게 전화를 건다. 그는 시카고에서 패디라는 인물과 미리 합의를 봐 두었다고 진술하는데, 기삿거리가 될 만한 비행 원반 이야기를 만나면 무디에게 알리기로 한 합의이며, 이번 전화도 그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잠시 뒤 그레고 대령이 맥코드 비행장에서 다시 전화해, 해밀턴 비행장이 향후 있을 군 조사를 위해 아놀드·스미스·크리스먼·달의 주소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한다. 통화 후 네 사람은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가고, 그 자리에서 스미스는 자리를 비워 포틀랜드 연방수사국 현장사무소의 맥 도빗 — 스미스가 안면이 있다고 말하는 인물 — 에게 전화를 시도하지만 도빗이 자리를 비워 통화는 끝맺지 못한다.

  46. p.46

    1947년 8월 19일 자 보고서 11쪽이다. 호텔 방으로 돌아온 뒤 스미스에게 정보를 캐려는 타코마 타임스 기자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스미스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잠시 뒤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모렐로라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와 스미스가 통화했지만 역시 함구했다. 네 사람이 방에 있는 동안 문 밑으로 봉투 하나가 들이밀어졌고, 스미스가 그것을 주워 들자 크리스먼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스미스가 서명 없는 쪽지를 펴 보니 호텔 직원 파업이 임박했으니 객실 및 전화 서비스를 더 오래 기대하지 말라는 알림이었다. 곧 달과 크리스먼은 다음 날 아침(토요일)에 스미스와 아놀드를 모리섬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고 방을 떠났다. 스미스와 아놀드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우편함에 특정 번호로 연락해달라는 쪽지가 있었다. 방에서 그 번호로 걸자 타코마 타임스 기자 랜츠가 받았고, 랜츠는 스미스에게 공중전화로 다시 걸어달라고 했다. 스미스가 항의하자 랜츠는 익명의 제보 전화 두 통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윈스럽 호텔 502호에서 비행 원반을 두고 육군 정보부 장교들이 회의를 벌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랜츠가 회의장에서 오간 구체적인 발언까지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스미스는 익명의 제보자가 그 방 안에 있었던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스미스는 랜츠에게 더 이상 정보를 주지 않고 통화를 끝낸 뒤 방으로 돌아와 아놀드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토요일인 8월 2일 아침, 스미스는 시카고의 모리스 리디에게서 전화를 받았지만 별다른 정보를 전해주지는 못했고, 오후 2시 반에 다시 걸겠다고 했다. 곧이어 근처 커피숍에서 달이 전화를 걸어왔고, 스미스와 아놀드는 그곳에서 달·크리스먼·신원 미상의 한 사람과 합류해 아침식사를 했다. 그 미상의 인물은 달과 목재 사업 얘기를 나누다가 식사 후 자리를 떴다. 커피숍을 나서며 스미스는 달에게 그가 비행 원반을 찍었다고 주장한 사진의 음화를 보여달라고 했다. 달은 음화가 자기 차의 글러브 박스에 있다고 답했지만, 막상 확인해 보니 아무 것도 없었다. 네 사람은 크리스먼의 차로 모리섬으로 출발할 부두까지 갔지만 배 시동이 걸리지 않아 출항은 그날 늦은 시간으로 미뤄졌다. 부두에서 스미스는 모리섬에서 파편이 쏟아져 내릴 때 입었다는 배의 손상을 보여달라고 했다. 크리스먼은 앞 유리와 등을 손본 흔적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가리켰지만, 스미스는 그 수리가 정말 그 사건 때문에 이루어졌다고는 믿지 못했다. 크리스먼과 달은 오전 10시 15분쯤 스미스와 아놀드를 호텔까지 다시 데려다 주면서, 나중에 다시 연락해 모리섬으로 가자고 했다. 호텔로 돌아온 스미스는 타코마 타임스의 랜츠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결과 스미스와 아놀드는 호텔 길 건너편 커피숍에서 랜츠를 만났다.

  47. p.47

    1947년 8월 19일 자 보고 12쪽. 스미스는 윈스럽 호텔에서의 그날 모임이 란츠가 언급한 익명 전화의 정체를 더 캐보려는 자리였다고 진술한다. 스미스와 아놀드는 목요일 저녁 회동의 내용을 란츠에게 끝내 알려주지 않았고, 란츠는 타코마 타임스가 이 건을 다른 매체에 빼앗길까봐 그날 안으로 기사를 내려 한다고 두 사람에게 전했다. 호텔로 돌아온 두 사람에게 곧 크리스만의 전화가 걸려왔지만 응급 통화가 아니라는 이유로 교환원이 끊어버렸다. 다시 로비로 내려간 두 사람은 댈에게서 온 전보를 발견한다. 브로드웨이 또는 프록터 7733번으로 전화해 달라는 내용이었는데, 어느 쪽 교환국인지는 스미스도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스미스가 그 번호로 걸어보았지만 댈은 자리에 없었다. 이후 스미스는 웨스턴유니언 전신국으로 가서 시카고 타임스의 모리스 무디 앞으로 수신자 부담 전보를 보냈다.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요약한 뒤, 오후 4시 이후 무디에게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부탁이었다. 그 직후 스미스와 아놀드가 올림픽 호텔 로비에 앉아 있을 때 란츠가 들어와 그날 자 타코마 타임스 최신판을 한 부씩 건넸다. 거기에는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숨진 육군 B-25 추락이 사보타주일 가능성을 비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호텔 직원들이 파업 중이라 객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수 없었던 탓에 두 사람은 오후 내내 로비에 머물렀다. 늦은 오후 란츠가 다시 전화를 걸어와 익명 전화에 관한 새 정보가 있으니 저녁 6시 30분 이후 자기에게 다시 전화하라고 알렸다. 비슷한 시각 스미스에게 보이시 6000번으로 전화해 달라는 전보도 와서 걸어보니 보이시 스테이츠맨의 존슨이었다. 스미스는 이 시점에는 존슨에게 더 이상 정보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존슨이 다시 보이시에서 전화를 걸어와, 육군이 슈람 준장을 통해 브라운과 데이비드슨이 수행 중이던 비밀 임무를 공식 발표했다고 알린다. 이 발표를 근거로 존슨은 스미스에게 단 한 가지만 답해달라고 청한다. "그들이 비행기에 이른바 원반 파편을 싣고 있었습니까?" 스미스는 "그렇다"고 답했다. 통화를 마친 스미스는 약속대로 란츠에게 전화했고, 란츠는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슈르펠로에게 또 다른 익명 전화가 걸려왔다고 전한다. "그 목소리"는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탄 육군 B-25가 20밀리 포탄에 격추되었으며, 레이니어 산에서 발견된 해병대 항공기도 같은 20밀리 포탄에 격추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스미스가 화요일에 나이트 필드로 다시 호출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슈르펠로가 왜 이런 정보를 흘리느냐고 묻자 그 목소리는 신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실이 뉴저지까지 전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나아가 "그 목소리"는 아놀드와 스미스를 만나고 다닌 두 사람 중 한 명이 이미 알래스카로 떠났다고 말했다. 이 마지막 단서에 자극받아 스미스는 크리스만이나 댈이 실제로 마을을 떴는지 확인하려 한다. 댈은 선셋 극장에서 찾아내 호텔로 불러 스미스와 아놀드와 만났다. 크리스만은 전화로 잡을 수 없었고, 댈은 크리스만의 행방을 알아보겠다며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일요일에 다시 연락해 그때 함께 모리 섬으로 나가자고 약속했다.

  48. p.48

    1947년 8월 19일자 보고서의 13쪽으로, 스미스와 아놀드가 타코마에서 사흘에 걸쳐 움직인 동선을 시간 순으로 따라간다. 두 사람은 타코마 타임스 사무실에 들렀다가 기자의 안내로 유나이티드 프레스 사무실의 모렐로에게 갔다. 그 자리에서 최신 보도자료를 함께 훑고, 익명으로 걸려 온 전화 건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렐로는 이 대화 중에 매코드 비행장 공보장교 조지 샌더스 소령의 이름을 꺼내며 그가 이번 조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장교 가운데 한 명이라고 알려 준다. 스미스는 그 자리에서도 더 이상의 정보는 내놓지 않았다고 진술하며,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가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인 8월 3일 일요일 아침, 달이 호텔 방으로 찾아와 크리스만에게서 편지를 받았다고 전한다. 편지의 요지는 "내 일을 잘 봐 줘. 사흘이나 나흘쯤 자리를 비울 거야"였다. 달은 편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스미스와 아놀드에게는 보여 주지 않았다. 세 사람은 남타코마에 있는 달의 비서 집으로 차를 몰아 비서를 태운 뒤, 남타코마 도로변 식당에서 넷이 함께 아침을 먹는다. 식사 도중 스미스는 자리를 빠져 매코드 비행장으로 전화를 걸어 샌더스 소령과 오전 11시 호텔 로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식사 후 비서를 집에 내려준 다음, 달은 타자기를 챙겨서 스미스와 아놀드를 호텔로 다시 데려다 준다. 두 사람이 "오늘 모리 섬으로 데려갈 거냐"고 묻자 달은 그러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이 모든 일에 신물이 났다며, 만약 군이나 당국이 자기를 찾아오면 아무것도 본 적 없다고 잡아떼고 "역사상 가장 큰 거짓말쟁이"를 자처하겠다고까지 말한다.

    호텔로 돌아온 직후 스미스는 로비에서 샌더스 소령을 만나, 자신의 차로 남타코마의 한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긴다. 거기서 스미스는 목요일 오후 이후 타코마에서 크리스만과 달과 관련해 벌어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풀어 놓는다. 이야기가 끝나자 스미스는 샌더스를 호텔로 데리고 와 아놀드에게 소개하고, 아놀드에게도 그동안의 일을 그대로 다시 들려주라고 권한다. 아놀드는 그렇게 한다. 샌더스 소령은 방에 그대로 남아 있던 금속 파편을 살펴본 뒤, 타코마 인근 제련소의 슬래그가 이 파편과 꼭 닮았을 거라며 함께 가 보자고 제안한다. 세 사람이 제련소로 가서 비교해 보니, 슬래그는 크리스만과 달이 호텔 방에 두고 간 파편과 분명히 비슷해 보였다. 일행은 호텔로 돌아오고 샌더스 소령은 거기서 헤어진다. 짐을 챙긴 스미스는 아놀드를 그의 비행기가 세워져 있는 베리 비행장까지 데려다 주고, 자신은 시애틀로 차를 몰아 돌아간다.

    시애틀에 도착한 지 한 시간쯤 지난 저녁 7시 30분 무렵, 타코마 타임스의 단테 기자가 스미스의 집에 신문을 들고 나타난다. 그 신문에는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나간 AP 통신 기사가 실려 있었고, 거기에는 존슨이 스미스에게서 들어 적은 짧은 진술 — 추락한 B-25기에 탔던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가 그 파편을 싣고 있었다는 — 이 함께 붙어 있었다. 스미스는 이 시점에서도 언론에는 어떤 진술도 내놓지 않겠다고 거듭 거절하면서, 단테에게는 자신이 이미 그 파편을 어디엔가 맡겨 두었다고 말한다(문장이 페이지 끝에서 끊긴다).

  49. p.49

    1947년 8월 19일자 FBI 시애틀 사무소장 잭 B. 윌콕스(Jack B. Wilcox) 특별수사관이 본부에 보낸 보고서의 마지막 장이다. 윌콕스는 정보원 스미스(SMITH)의 진술을 이어 정리한다. 스미스는 며칠 뒤 맥코드 비행장의 샌더스(SANDERS) 소령에게 전화해 사건 관련 추가 정보가 있는지 물었고, 샌더스 소령은 치즈먼(CHISMAN)과는 아직 접촉하지 못했지만 FBI가 그를 잡기 위한 "덫을 놓고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스미스는 또 1947년 8월 8일 금요일 시애틀 카운티-시티 빌딩에서 변호사 존 놀란(John Nolan) 앞에 출석해 7월 31일 목요일 오후부터 8월 3일 일요일 아침까지 타코마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한 진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윌콕스는 그 진술서 사본을 자신이 보관 중이며 이번 보고와 함께 본부로 송부한다고 적는다. 다만 이 진술서는 자신이 직접 받은 진술만큼 완전하지는 않으니, 이 통신문에 그 내용을 옮겨 적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인다.

    이 통신문 사본은 단순 정보 공유 차원에서 뷰트,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사무소에도 발송한다. 본부에서 별다른 지시가 없는 한 이번 수사는 이 사무소에서 종결된 것으로 본다고 한다.

    참고 사항으로,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 맥코드 비행장의 정보장교 R. C. 비요닝(Bjorning) 대위가 주간 해군정보국-육군정보부-FBI 합동 정보회의에서 보고한 내용도 전한다. 맥코드 비행장의 공보장교가 워싱턴 D.C. 육군항공대 본부의 한 인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 통화에서 공보장교에게 달(Dahl)과 치즈먼으로부터 서명된 진술서를 받아 이를 공개해 사건을 공식적으로 종결시키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요닝 대위는 이 건에 대해 추가 정보는 없으며 자신이 직접 다루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단에는 윌콕스의 친필 서명과 "특별수사관"이라는 직함이 들어가 있고, 동봉물 표시와 함께 사건번호 100-18945, 그리고 사본 발송지 네 곳(뷰트·포틀랜드·샌프란시스코·시카고)이 정리돼 있다. 페이지 번호는 14쪽이다.

  50. p.50

    갈색 마닐라 봉투의 앞면을 찍은 스캔이다. 위쪽 양 끝에 빨간 글씨로 ENCLOSURE 라는 라벨이 두 번 인쇄되어 있고, 그 사이에 손글씨로 62-4115 로 보이는 파일 번호가 적혀 있다. 봉투 본체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고, 위쪽 봉인부가 한 번 뜯겼다가 다시 봉해진 흔적이 보인다. 자료 묶음을 감싸는 외피로, 안의 자료가 별도 첨부물임을 표시하는 역할이다.

  51. p.51

    1947년 8월 8일 해럴드 A.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이 연방수사국 데이비드 A. 맥컬러크 수사관 앞에서 자발적으로 남긴 진술서다. 두 사람은 1947년 6월 초 워싱턴주 모리섬의 자갈 채취장에서 이상한 암석 조각을 주웠고, 그 일부를 시가 상자에 담아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 있는 벤처 매거진의 레이 파머에게 분석을 의뢰했다고 진술한다. 파머는 처음 보낸 시료 분석에 실패했다며 추가 시료를 요청했고, 6월 말 첫 비행 원반 기사들이 나돈 직후에는 전화로 연락해 신문사에는 알리지 말 것, 만약 그 조각이 비행 원반에서 나온 것이라면 독점 기사료를 지불하겠다고 제안했다. 둘 중 한 사람은 파머에게 그 조각들이 비행 원반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고 답했다. 통화 직후 해럴드 달은 파머에게 조각에 관한 메모와 함께 비행 원반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을 적은 편지를 썼다. 7월 초쯤에는 시카고의 트랜스오션 프레스에서 이 비행 원반 조각에 관해 묻는 전보가 왔고, 두 사람은 사건 전체를 잊으라고 답했다. 그다음 소식은 7월 31일 케네스 아놀드가 윈스럽 호텔에서 만나자고 부른 일이었고, 두 사람은 조각을 어떻게 발견해 파머에게 분석을 위해 보냈는지 그대로 말해 주었다. 진술 말미에서 두 사람은 비행 원반 사건과 관련된 자신들의 연결 고리는 분석을 의뢰한 광석 시료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전부이며 사실이라고 못 박는다. 진술서 하단에는 프레드 L. 크리스먼과 해럴드 달의 친필 서명, 그 아래 1947년 8월 7일 시애틀에서 진술을 받은 FBI 수사관 데이비드 A. 맥컬러크의 서명이 있다.

  52. p.52

    워싱턴주 킹 카운티에서 J. E. 스미스가 정식으로 선서한 뒤 진술한 서면이다. 7월 31일 목요일부터 8월 3일 일요일까지 타코마에서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풀어 놓은 것이다.

    목요일에 그는 케네스 아놀드라는 사람에게서 타코마발 전화를 받았다. 용건은 타코마로 와서 프레드 크림슨과 해럴드 달이라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 보라는 권유였다. 스미스는 아놀드를 두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한 번은 7월 5일 시애틀의 FBI 사무실에서 잠깐, 또 한 번은 출장 길에 보이시(아이다호)를 지나가던 중이었다.

    전화에서 스미스는 다음 날 솔트레이크시티로 떠나야 하니 타코마에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아놀드는 자기가 타코마에서 비행기를 몰고 와서 보잉 필드로 데리러 오겠다고 제안했다. 스미스는 받아들였다. 4시에 보잉 필드에서 아놀드를 만났고, 함께 타코마 쪽 배리스 공항으로 비행해 착륙했다. 공항에는 프레드 크림슨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그가 두 사람을 윈스럽 호텔까지 태워다 주었다. 셋은 502호로 올라갔다.

    크림슨이 해럴드 달에게 전화를 걸어 방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30분쯤 뒤 달이 도착하면서 방 안에는 크림슨, 달, 아놀드, 스미스 네 사람이 모였다. 아놀드가 6월 24일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이야기해 달라고 청했지만 달은 스미스에게 털어놓기를 망설였다. 아놀드와 크림슨은 달이 전에 한 진술을 이미 들어 알고 있는 상태였다. 달은 스미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자기가 하는 이야기를 2주 동안 비밀로 지켜 달라는 것이었고, 그렇게 들으면 스미스도 결국 그 일을 잊고 싶어질 거라고 했다. 스미스는 적어도 2주 동안은 비밀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시작된 달의 진술은 이렇다. 6월 24일(날짜는 다시 확인해야 한다), 달은 프레드 크림슨이 운영하는 타코마의 하버 패트롤 소속 배에 타고 있었다. 함께 있던 사람은 나이트라는 남자, 그리고 달의 열여섯 살 아들이었다. 셋은 모리섬 주변을 돌며 통나무 묶음에서 떨어져 나온 통나무를 찾고 있었다. 모리섬 해안에 비교적 가까이 있을 때, 하늘 위 약 1500피트 높이에서 네다섯 개의 물체가 보였다. 달은 그 물체들이…

  53. p.53

    보고서 2쪽이다. 목격된 물체는 지름이 약 30미터에 원반 모양이었고, 각 원반 중앙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그 너머로 하늘이 보였다. 원반 안쪽 면에는 둥근 창문이 줄지어 나 있었고, 속도는 거의 없이 한 지점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 한 대가 이상이 생긴 듯 보였고, 다른 한 대가 다가와 약 2분간 접촉한 뒤 다시 원래 고도로 올라갔다. 그 직후 이상이 있던 원반의 창문 한 곳에서 잔해가 쏟아져 내렸고, 잔해 일부가 배의 조타실과 탐조등을 부쉈으며 키우던 개와 갈매기 한 마리를 죽였다. 개의 사체는 어떻게 처리했느냐는 질문에 달은 그냥 물에 던졌다고 답했다. 이 이야기를 다음 날 들은 크림슨이라는 인물이 직접 섬에 가서 배의 파손과 해변에 흩어진 암석 혹은 금속 조각들을 확인했고, 그 자신도 같은 모양의 원반 한 대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이 시점에서 아놀드가 자신이 왜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됐는지 설명했다.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에 있는 벤처 프레스의 편집장이라는 레이먼드 파머가 아놀드에게 편지를 보내, 달과 크림슨이 모리섬에서 주운 잔해를 분석해 달라고 시카고대학교에 보냈으나 거절당했으니 대신 조사해 달라고 부탁했고, 경비조로 200달러짜리 웨스턴 유니언 수표까지 동봉했다는 것이다. 아놀드는 해밀턴 비행장의 A-2 정보부 소속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에게 전화를 걸어 타코마로 와서 직접 달과 크림슨의 진술을 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놀드가 달 앞에서 전화한 사실을 작성자에게 알리자, 달은 육군 정보부 사람에게는 이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작성자는 그렇다면 두 정보 장교가 도착할 때 달이 방에 없는 편이 낫겠다고 했고, 달도 그 편이 좋겠다고 동의했다.

  54. p.54

    진술서 3쪽이다. 진술자는 달과 크리스먼, 그리고 자신이 함께 호텔 방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고 적는다. 크리스먼이 자기 차 뒷자리에 모리섬에서 주워 온 금속 조각을 넣어 두었고, 그걸 호텔 방으로 가져오려 했기 때문이다. 아놀드와 달은 이 자리에서 빠진다. 진술자는 시애틀에 두고 온 자기 차를 찾고 싶다고 크리스먼에게 말했고, 크리스먼이 시애틀의 보잉 필드까지 차로 데려다 준다. 보잉 필드에서 진술자를 내려준 크리스먼은 다시 타코마로 돌아갔고, 진술자도 자기 차를 몰아 타코마로 돌아왔다. 차를 차고에 넣은 뒤 윈드롭 호텔로 올라가 보니 방에는 아놀드, 크리스먼, 그리고 육군 정보부 데이비드슨 대위가 있었다. 브라운 중위는 1층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지러 내려간 상태였다. 브라운이 돌아오자 같은 이야기를 다시 풀었고, 브라운은 이 이야기의 모든 사실을 달이 직접 공개를 허락할 때까지 가장 엄격한 비밀로 다루겠다고 말한다. 크리스먼이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달의 이야기까지 모두 풀어놓은 뒤, 두 장교의 의견을 물었다. 브라운 중위는 이 조각 일부를 해밀턴 필드로 가져가고 싶다고 답한다. 이즈음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타코마에서 하룻밤 더 묵을지, 곧장 해밀턴 필드로 떠날지를 두고 의논한다. 두 사람이 타고 온 B-25 폭격기가 다음 날 해밀턴 필드의 에어쇼에 등장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섯 사람은 함께 호텔 방을 나와 1층 로비로 내려갔고, 브라운이 매코드 필드에 전화를 걸어 두 장교를 태우러 올 운전병을 요청한다. 그러고는 진술자에게 따로 다가와, 자신과 데이비드슨은 일단 해밀턴 필드로 돌아가지만 내일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한다. 진술자가 모리섬에 가서 조각들을 직접 확인한 뒤 진짜라고 판단하면, 두 사람은 즉시 해밀턴 필드를 떠나 다시 돌아오겠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이 약속은 달·크리스먼·아놀드 세 사람에게는 가장 엄격한 비밀로 지켜 달라고 부탁받는다. 곧 일행은 거리로 내려갔고, 크리스먼이 자기 차를 호텔 앞으로 몰고 와 조각이 담긴 상자 하나를 꺼내 데이비드슨과 브라운에게 건넨다. 매코드 필드의 운전병을 기다리는 동안 진술자는 브라운과 이 일과 무관한 태평양 작전 이야기를 잠시 나눈다.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는 새벽 0시 45분쯤 떠났고, 진술자와 아놀드는 늦은 밤 간식을 먹은 뒤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55. p.55

    보고서 4쪽이다. 금요일 오전 8시쯤 크림슨이 호텔 방으로 전화를 걸어 B-25가 추락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크림슨은 매코드 비행장에도 연락해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였고, 그 외에 기관사와 동승자 한 명이 더 있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했다. 아놀드와 진술자 본인 모두 깊이 동요했다. 한 시간쯤 뒤 크림슨과 달이 호텔 방으로 찾아왔는데, 진술자는 아직도 이 비행기가 어젯밤 두 정보장교가 타고 떠난 그 B-25가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크림슨이 다시 매코드 비행장의 그레그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종사가 데이비드슨과 브라운이라는 사실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한 시간쯤 더 지나 크림슨과 달이 호텔 방을 나섰고, 네 사람이 다음 날 토요일 아침에 다시 만나 식사를 한 뒤 모리섬으로 가기로 했다.

    같은 금요일 저녁, 진술자에게 특정 전화번호로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그 번호로 전화하자 상대는 유료 공중전화로 다시 걸어 달라고 부탁했다. 상대는 타코마 타임스의 기자 랜츠였다. 랜츠는 "좋은 기사거리를 내 손으로 날리는 셈이지만, 누군가가 우리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와 당신이 호텔에 도착한 이후 방 안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일거수일투족 알려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려드려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랜츠는 진술자가 호텔 방 안에서만 오갔다고 생각하던 대화 내용을 그대로 되짚어 주었다.

    랜츠는 또 호텔 교환원 쪽에서 정보가 새고 있거나, 진술자의 방에 도청기가 설치되어 있는 둘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진술자가 왜 이런 정보를 알려주느냐고 묻자, 랜츠는 진술자가 흘리는 정보를 자기에게 넘겨주기만 한다면 이 정도 귀띔은 해줄 수 있다고 답했다. 통화를 마친 진술자는 방으로 돌아가 아놀드에게 전화에서 오간 내용을 그대로 전했다.

    토요일 아침, 아놀드와 진술자는 달과 프레드 크림슨을 만나 함께 아침을 먹고 섬으로 가기 위해 보트로 향했다. 그러나 보트가 정비 불량 상태여서 그대로 호텔로 돌아왔다. 크림슨은 그날 안에 다시 연락해 보트 수리 상황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진술자가 크림슨을 본 마지막 순간이었다.

    토요일 오전 11시쯤 크림슨이 다시 전화를 걸어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고 알려 왔다. 호텔 교환원은 이 통화를 응급 통화로 분류하지 않아 도중에 끊어 버렸다. 끊긴 이유는 당시 타코마의 모든 호텔에서 일어난 파업 때문이었다.

  56. p.56

    1947년 8월 어느 날 워싱턴주 시애틀 주재 공증인 앞에서 작성된 진술서의 다섯 번째 장이다. 진술자는 그날 저녁 랜츠에게서 8시 30분에 다시 전화를 달라는 연락을 받고 약속한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랜츠는 익명의 제보자가 이번에는 유나이티드 프레스의 마릴로에게 다시 전화해, 아놀드와 진술자가 만나러 내려간 인물들 가운데 한 명이 알래스카로 옮겨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익명 제보자는 또 스미스가 화요일에 라이트 필드로 호출될 것이라고 했고, 문제의 B-25기는 격추된 것이라고 마릴로에게 말했다. 마릴로가 왜 그런 일에 관심을 갖느냐고 묻자, 제보자는 “신문에 내려는 게 아닙니다. 내 관심사는 오직 이 정보가 뉴저지로 전달되는 것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진술자는 랜츠와의 통화를 마친 뒤 직접 유나이티드 프레스로 찾아가 마릴로를 만나, 그가 익명 제보자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다시 들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는 진술자도 마릴로도 어떤 판단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진술자는 맥코드 비행장 S-2의 샌더 소령에게 전화해 윈트롭 호텔에서 11시에 만나기로 했고, 약속대로 만난 두 사람은 타코마 고속도로변의 작은 커피숍으로 옮겨가 진술자가 사건 전말을 들려줬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 뒤 진술자는 샌더 소령을 아놀드에게 소개했고, 소령은 아놀드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었다. 진술자는 아놀드와 함께 그날 오후 4시 30분쯤 윈트롭 호텔을 떠났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공증 문구가 이어진다. 진술인이 공증인 앞에서 먼저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선서를 한 뒤 진술 내용을 받아쓰고 서명했음을 확인하는 정형 문구이며, 8월의 정확한 일자는 비워둔 채 “1947년 8월 ___일”로 남아 있고 마지막에는 시애틀에 거주하는 워싱턴주 공증인의 서명란이 따라온다.

  57. p.57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보이는 거의 빈 페이지다. 중앙 아래쪽에 손글씨로 파일 번호 62-83874-106 이 남아 있어, 이 종이가 FBI 본부 파일 62-83874 의 106번 문서임을 알려 준다.

  58. p.58

    에밀 J. 스미스의 진술서로, 사안은 프레드 크리스먼과 해롤드 A. 달이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목격한 플라잉 디스크 건이다. 파일 분류 표시는 SM-X, 문서번호 62-87894-106.

  59. p.59

    프레드 L. 크리스먼과 해럴드 A. 달의 서명 진술서임을 알리는 표지 카드다. 워싱턴주 터코마에서 두 사람이 목격한 비행 원반 건이 주제이며, 사건 분류는 OR-I로 기재돼 있다. 아래에는 손글씨로 사건 파일번호 62-83894-106이 적혀 있다.

  60. p.60

    1947년 8월 26일, 샌프란시스코 지부 특별수사관 책임자(SAC)가 FBI 국장 앞으로 항공우편으로 보낸 "비행 원반 보고서"라는 제목의 내부 메모다. 발신자는 햄튼 필드 주둔 제4공군 정보참모부(A-2) 도널드 스프링어 중령에게서 받은 세 건의 비행 원반 목격 보고서를 사진 복사본으로 동봉해 본부에 송부한다고 알린다. 로스앤젤레스 지부에는 캘리포니아 뮤록 비행시험장에서 진행한 조사를 다룬 8월 18일자 스프링어 보고서 사본을, 뷰트 지부에는 몬태나 헬레나의 퍼시픽 텔레폰 앤드 텔레그래프 사 지구 시설 엔지니어 R. J. 매든이 보낸 편지를 정리한 8월 20일자 스프링어 보고서 사본을 각각 따로 보낸다고 적었다. 끝으로 샌프란시스코 지부는 스프링어 중령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면서, 새크라멘토의 레이 A. 스위처가 1947년 8월 14일 캘리포니아 플레이서빌에서 비행 원반과 관련 있어 보인다고 본인이 판단한 관찰을 신고한 건에 대해서도 후속 보고서를 본부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하단에는 동봉물 3건과 로스앤젤레스·뷰트 사본 송부 표시, FBI 본부 접수·색인 도장(파일번호 162-83894-107, 1947년 10월 30일 접수), 그리고 발신자 "Fletcher"의 자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61. p.61

    1947년 8월 18일 제4공군 정보참모부(A-2)가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서 작성한 "비행 원반 조사" 보고서(파일 번호 1208-I)다. 조사는 7월 7일자 방공사령부(ADC) 공문 요청에 따라 무록 육군비행장(Muroc AAF)에서 진행했고, 통제 기관은 미첼 필드의 방공사령부, 사건 분류는 "사건(Incident)", 처리 상태는 "심리 중(Pending)"으로 올렸다. 요약은 짧다 — 1947년 7월 8일 약 10시경 무록 비행시험기지 인근에서 두 건의 사건이 발생했으며, 본 사령부에서는 추가 조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한 문장이다. 결재란에는 참모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의 서명이 있고, 배포처는 육군항공대, 방공사령부, 제6군,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 제4공군 파일에 한 부씩이다. 페이지 상단에는 "기밀(CONFIDENTIAL)" 표시와 "기밀 해제(DECLASSIFIED) — 권한 NND 90886" 라벨, 하단에는 1947년 8월 21일자 FBI 샌프란시스코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62. p.62

    거의 비어 있는 페이지로, 상단에 손글씨로 "6"과 빨간색 문서 식별번호 "62-83894-107"이 적혀 있다. 하단에는 바인더용 펀치 구멍 두 개가 있고, 다른 본문 내용은 없다. 앞면 스캔의 뒷면 혹은 분리지로 보인다.

  63. p.63

    1947년 8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컨카운티에서 정보장교 해리 G. 블랙 대위가 받아 적은 진술서다. 진술자는 캘리포니아 뮤록 육군 항공기지 사령관 길키 대령. 길키 대령은 자신이 본 물체가 당시에는 종이 조각 같아서 의미가 없다고 여겼고, 보고할 만큼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다고 진술한다. 더 보고를 올릴 만큼 분명하게 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취지다. 진술은 협박이나 회유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졌고, 1쪽으로 끝난다는 점, 자신이 아는 한 진실이라는 점을 블랙 대위가 마지막에 확인한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우측 상단에는 COPY 도장이 함께 보인다.

  64. p.64

    1947년 7월 11일 캘리포니아주 컨카운티에서 작성된 진술서로, 무록 육군 비행장 기술공학부 책임자실 소속 리처드 R. 슈프 소령이 직접 한 진술이다. 슈프 소령은 1947년 7월 8일 정오 무렵 길키 대령이 공중의 한 물체를 가리켜 자신의 주의를 끌었다고 말한다. 북쪽으로 5마일에서 8마일 떨어진 거리에 얇은 금속성 물체가 보였고, 비행 방식 때문에 햇빛이 알루미늄 같은 표면에 반사되는 것처럼 보여 금속이라고 판단했다. 물체는 중간 고도에서 진동하듯 움직이며 거의 지면에 닿을 듯 내려왔다가 다시 상승했고, 꽤 높은 고도까지 올라간 다음 천천히 멀어졌다. 크기는 추격기 정도였지만 통상적인 비행기 형태는 아니었다. 약 8분 동안 시야에 있었고, 같은 시간에 슈프 소령의 부인도 같은 물체를 목격했다. 진술은 협박이나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한 것이며, 한 쪽 분량으로, 본인이 아는 한 진실이고, 필요한 수정 사항에는 모두 자필 서명으로 표시했다고 명시한다. 진술 아래에는 슈프 소령의 서명과 함께 입회인 토머스 A. 맥밀런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우상단에는 'COPY' 표시가 보인다.

  65. p.65

    1947년 7월 14일 캘리포니아 머록 육군 항공기지에서 4144 AAFBU 소속 조셉 루볼로(Joseph Ruvolo) 기술하사(T/Sgt.)가 숙영장교 J. C. 매커너리 중위 앞으로 작성한 진술서다. 루볼로는 본인이 이 기지 숙영실 책임 부사관이며, 매커너리 중위가 숙영 담당 장교라고 밝힌다. 1947년 7월 8일 아침 8시 45분경, 매커너리 중위는 매점에서 돌아오던 길에 루볼로를 밖으로 불러내 손가락으로 가리킨 하늘을 보라고 했다. 루볼로가 위를 올려다보니 은색 원반 또는 접시 모양의 비행 물체 두 개가 시속 350~400마일 속도로 7,000~8,000피트 고도에서 북서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군기에서 나는 엔진 굉음은 들리지 않았고, 기구일 가능성도 없다고 그는 단언한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심신이 멀쩡한 상태였고 환각이 아니었다고 못 박고, 이 진술이 강요 없이 자발적으로 한 장에 정리된 것이라 덧붙이며 서명했다. 증인란에는 토머스 A. 맥밀란(Thomas A. McMillan)이 서명했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우측 상단에는 COPY 도장이 찍혀 있어 사본임을 알린다.

  66. p.66

    캘리포니아주 컨 카운티에서 1947년 7월 11일 작성된 진술서다. 머록 육군 항공기지 숙소 담당 장교 조셉 C. 맥헨리 중위가 같은 기지의 방첩대 특수요원 토머스 A. 맥밀런에게 직접 자신이 본 것을 진술한 내용이다. 맥헨리는 진술 머리에 자신은 심신 모두 완전히 건강한 상태에서 이른바 "플라잉 디스크" 혹은 "플라잉 소서"라고 불리는 물체를 직접 보았다고 못박는다.

    사건은 1947년 7월 8일 화요일 오전 9시 30분에 일어났다. 그 시각 맥헨리는 기지 매점 사무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자기 입으로 "누가 이 디스크라는 걸 하나 보여주기 전에는 못 믿겠다"고 말한 참이었다.

    매점을 나와 자기 사무실로 향하던 중 머리 위로 기지 항공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늘 그러듯 고개를 든 맥헨리는 그 비행기를 보다가 시선을 살짝 왼쪽으로 옮겼고, 그 순간 은색 물체 두 개를 발견했다. 구형인지 원반형인지 분간이 어려운 모양이었고, 시속 약 300마일, 고도 약 8000피트로 북쪽 320도 방향을 향해 날고 있었다.

    혼자 본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두기 위해 맥헨리는 곧장 인근에 있던 보먼 상사, 부롤로 중사, 그리고 자넷 마리 스코티 양을 불러세웠다. 자신의 판단을 미리 흘리지 않으려고 그저 "저 위에 뭐가 보이는지 말해보라"고만 물었고, 세 사람 모두 "플라잉 디스크다"라고 답했다. 한 번 더 확인하려고 진행 방향도 물었더니 역시 세 사람 모두 일치하게 캘리포니아 모하비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답했다.

    맥헨리는 눈을 여러 번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물체를 보는 식으로 눈의 피로나 착시 가능성을 직접 검증했다. 그 결과 이 물체는 항공기가 아니며, 그 기지에서 띄운 기상관측 기구도 아니라고 단정한다. 당시 기구가 향해야 할 바람 방향과 정반대로 움직였고, 속도와 수평 비행 방향 모두 기상관측 기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우측 상단에 COPY 표시가 있어 이 문서가 사본임을 보여준다.

  67. p.67

    조지프 C. 맥헨리 1중위가 동료들과 함께 비행 물체를 목격한 직후 상황을 기록한 진술서의 둘째 장이다. 맥헨리는 현상을 본 뒤 증인을 더 확보하고 싶어 곧장 의무실로 달려가 의무 장교들을 데려오려 했는데, 의무실 뒷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등록 간호사 A. C. 샤움 부인과 일곱 명 가량의 인원이 이미 함께 나와 있었지만, 그 사이 물체는 워낙 빠른 속도로 이동하느라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고 적었다. 이어 추가 관측에서는 두 사람이 동시에 다른 물체를 보았는데, 은빛 구형이거나 원반형으로 보였고 고도는 약 8천 피트, 북쪽 끝 상공에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맥헨리는 이를 나움 부인과 곁의 다른 인원에게 알렸고, 일곱 명 중 두 명을 제외한 모두가 그 물체를 함께 보았다고 밝혔다. 착시인지 확인하려고 여러 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가 다시 보았다는 점도 함께 적었다. 그는 물체가 자신이 아는 어떤 항공기로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좁은 원과 가파른 평면으로 돌았고, 일정 고도에서 반사광을 일으키는 모습이 새일 수 없으며, 같은 고도에서 그렇게 오래 일관되게 원을 그리는 일은 기상 관측 기구로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강한 빛이나 태양을 오래 보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착시도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이번 관측은 실제 대상이었음을 확언하고 싶다고 적었다. 진술은 협박이나 회유 없이 자유 의지로 작성되었고 전체 2쪽 분량이며, 본인이 알고 믿는 한 진실이라고 명시한다. 본문 아래에는 진술자 조지프 C. 맥헨리 1중위(공군 항공대)의 서명과 증인 토머스 A. 맥밀런의 서명이 함께 있다.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상단에 COPY 표기가 보인다.

  68. p.68

    1947년 8월 15일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에서 마르코 육군 비행장 시험비행 조종사 J. C. 와이즈 소령이 같은 기지의 방첩단(CIC) 요원 토머스 A. 맥밀렌에게 진술한 선서 진술서다. 와이즈는 1947년 7월 7일 약 10시 10분, 지상에서 XP-84 시제기를 시운전하던 중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보았다고 적었다. 북쪽 상공 약 1만에서 1만 2천 피트 고도에 물체가 하나 떠 있었는데, 처음에는 기상관측 기구로 짐작했지만 한참 지켜보니 고도를 잃지 않은 채 앞쪽으로 회전 운동을 하며 진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속도는 시속 200에서 225마일 정도, 진행 방향은 서에서 동쪽이었다. 색은 누런빛이 도는 흰색이었고 지름 5에서 10피트가량의 구체로 추정했다. 그는 P-80으로 추격할 시간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진술은 위협이나 약속 없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졌고, 본인이 아는 한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와이즈 소령이 서명했고, 맥밀렌이 입회 서명했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기밀(CONFIDENTIAL) 표시와 우상단 COPY 라벨이 함께 들어가 있다.

  69. p.69

    캘리포니아주 컨 카운티에서 작성된 진술서다. 1947년 8월 12일, 무록 육군비행장 비행시험단 소속의 존 폴 스트랩 대위가 같은 기지의 CIC 특수요원 토머스 A. 맥밀런에게 진술한 내용을, 같은 해 7월 8일에 본인이 직접 목격한 장면으로 풀어 적었다.

    그날 오전 11시 50분, 스트랩 대위는 로저스 드라이 레이크 2구역의 관측 트럭에 앉아 P-82 사출좌석 실험을 지켜보던 중이었다. 위쪽 상공에서는 P-82 두 대와 A-26 한 대가 약 2만 피트 고도로 편대를 이루며 사출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둥근 형태의 흰색 알루미늄 빛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낙하산 캐노피처럼 보였고, 사출좌석에 매단 더미가 미리 빠져나온 것 아닌가 싶었다.

    물체는 2만 피트보다 낮은 고도에 있었으며, 30분 뒤에 실제로 사출된 낙하산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동안에는 맞바람을 거슬러 정서에서 약간 북쪽으로, 무록 미러 호수 방향으로 드리프트했다. 수평 이동 속도는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지만 시속 50~80마일 항공기의 최대 속도보다는 느려 보였다고 적었다.

    물체가 측면 윤곽을 알아볼 만큼 가까운 고도까지 내려오자, 뚜렷한 타원형 실루엣이 보였다. 윗면에는 얇은 지느러미 또는 돌기 두 개가 솟아 있었고, 일정 간격으로 서로 교차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회전이거나 느린 진동으로 보였다.

    연기, 화염, 프로펠러 호광, 엔진 소음 등 추진 수단으로 추정될 만한 흔적은 전혀 없었다. 색깔은 알루미늄 페인트를 칠한 천처럼 은빛이었고, 낙하산 캐노피만큼 빽빽해 보이지도 않았다. 물체가 산등성이 능선 높이까지 내려간 뒤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야에 머문 시간은 약 30초로 추정했다. 같은 관측 트럭에 있던 다섯 명 가운데 네 명이 물체를 함께 보고 의견을 나눴고, 그중 한 명으로 오하이오주 데이턴 라이트 필드의 민간인 렌즈 씨를 명시했다. 나머지 이름은 적지 않았다.

    진술서 끝에는 본인의 개인 의견이라며 한 항목을 적어 두었다. 윤곽과 기능적인 모양으로 미루어 사람이 만든 물체라고 본다는 내용이다. 본문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오른쪽 위에는 COPY 도장이 찍혀 있다.

  70. p.70

    존 폴 스트랩 대위가 직접 서명한 진술서의 두 번째 장이다. 머리와 발치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위에는 "COPY" 표시가 있다. 본문은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항목 번호 2, 3으로 시작한다. 스트랩은 자신이 본 물체의 크기가 낙하산 캐노피와 함께 약 25피트 정도였다고 적었다. 이어 물체가 그리는 궤적이 마치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는 자신이 본 광경이 환각이나 감각의 착각이 아니었다고 못 박는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이 진술이 어떠한 위협이나 강압적 약속 없이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총 두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자신의 지식과 믿음의 범위 안에서 진실이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수정에는 자필로 머리글자를 남겼다고 밝힌다. 끝에 "존 폴 스트랩 대위, AC"의 자필 서명이 들어가고, 그 아래에는 증인으로 토머스 A. 맥밀란이 서명했다.

  71. p.71

    1947년 7월 14일 캘리포니아 컨 카운티에서 작성된 진술서다. 진술자는 캘리포니아 마르코 육군 항공기지의 빌리팅 장교 J. C. 맥헨리 중위 비서 자넷 마리 스콧이고, 그는 자신의 시민·헌법상 권리를 인지한 상태로 진술한다고 밝혔다.

    1947년 7월 8일 화요일 오전 10시경, 스콧은 카드를 타자치며 평소 업무를 보고 있던 중 맥헨리 중위가 자신과 조셉 마볼로 기술병장, 제럴드 R. 나우만 병장을 S.O.Q. A 건물 앞으로 불러냈다. 중위는 머리 바로 위를 가리키며 무엇이 보이는지 설명해 보라고 했다. 거기에는 은빛 원반 모양 물체 두 개가 캘리포니아 모하비 방향으로, 하나가 다른 하나 뒤에 붙은 채 날아가고 있었다. 속도는 시속 320~640km, 고도는 약 2,400미터로 가늠됐다. 스콧은 몇 분간 귀를 기울였지만 항공기라면 들렸을 엔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시선을 잠깐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가 같은 자리로 되돌리니 같은 물체가 다시 보였다. 눈의 착시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수평으로 비행하는 자세를 보아 기상관측 풍선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햇빛에 또렷이 반사되는 빛 때문에 새 종류일 가능성도 배제했다.

    스콧은 자신이 6개월의 공백을 포함해 이 기지에서 약 18개월 근무했고 모든 기종의 항공기에 익숙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본 비행체들이 거의 사라진 뒤 3~4분쯤 지나서, 스콧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비슷한 비행체 하나를 더 보았다. 이번 물체도 은빛 원반 모양이었는데, 고도 약 2,400미터에서 고도 변화 없이 좁은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기상관측 풍선도 아니고, 그렇게 좁은 원을 그리는 것은 어떤 항공기도 불가능하다고 스콧은 확신했다.

    진술서는 위협이나 회유 없이 자발적으로 작성됐다고 명시했고, 한 장 분량이며 자신이 아는 한 진실이고 필요한 정정 부분에는 머리글자를 표시했다는 문구가 이어진다. 마지막에 자넷 마리 스콧이 직접 서명했고, 증인 토머스 A. 맥밀런의 서명이 함께 들어가 있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 우측 상단에 COPY 표시가 들어가 있다.

  72. p.72

    캘리포니아주 컨 카운티에서 작성된 진술서다. 표지 위쪽과 아래쪽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오른쪽 위에는 COPY 도장이 찍혀 있다. 진술서 도입부는 1947년 7월 14일 캘리포니아 뮤록 육군 비행장 4144 AAFBU 소속 제럴드 R. 나우만 하사가 숙영 담당관 J. C. 매케너리 중위에게 한 진술이라고 밝히지만, 정작 서명란에는 L. E. 로빈슨 일병의 이름이 들어 있다.

    진술자는 1947년 7월 8일 오전 10시에 비행 원반 두 개를 직접 보았다고 한다. 두 원반은 북서쪽으로 약 7천에서 8천 피트 상공을 시속 3백에서 4백 마일 정도 속도로 날아갔다. 잠깐 전에는 숙영실 안에 있었는데, 조셉 C. 매케너리 중위가 자신과 다른 두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 무엇을 봤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진술자는 자기 두 눈으로 두 물체를 확실히 봤고, 몸 상태도 정상이었으며 시력도 20-20이라 그것이 항공기나 기상 관측 풍선이나 새일 리 없다고 단언한다. 비행 고도 때문에 햇빛이 분명하게 반사되어 보였다는 설명이다.

    두 원반이 사라지고 몇 분 뒤에는 같은 고도에서 또 다른 물체 하나가 아주 좁은 원을 그리며 도는 기동을 했다고 한다. 진술자는 1943년부터 온갖 항공기를 타고 또 옆에서 봐 왔지만 그렇게 좁은 선회 기동을 하는 비행기는 아니라고 말한다. 평생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으며 필요하다면 선서까지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마지막 단락은 형식 조항이다. 협박이나 회유 없이 자발적으로 한 진술이며, 한 페이지짜리이고, 자기 지식과 믿음의 범위 안에서 사실이며, 필요한 수정에는 모두 머리글자로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진술자 서명란에는 L. E. 로빈슨 일병이, 입회인 서명란에는 토머스 A. 맥밀런이 들어 있다.

  73. p.73

    1947년 8월 20일자 4공군 방첩대 메모 「미확인 물체 4AF-1208-I」다. 작성자는 특수요원 브라이든 K. 문(Bryden K. Moon)이고, 같은 날 허버드 특수요원과 함께 보험조사관 레이 A. 스위처를 새크라멘토 자택에서 면담한 내용을 정리해 담당 장교에게 보고하는 형식이다.

    스위처는 1947년 8월 14일 오후 캘리포니아 플레이서빌에서 시더 라빈 로드를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고 있었다. 조수석에는 아내가, 뒷좌석에는 장모와 두 자녀가 타고 있었다. 오후 6시쯤 플레이서빌 남서쪽 약 8킬로미터 지점을 지나던 중 시야 한쪽으로 하얀 연기 자국이 들어왔다. PBJ 로켓기인가 싶어 살피던 그는 길이 1.2~1.8미터, 폭 25~35센티미터쯤 되는 물체를 보았다. 금속 빛깔로, 잘 닦은 크롬처럼 밝게 빛났다.

    자동차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물체는 처음 10시 20분 방향에서 보였고, 12시 방향에 이르렀을 때 직경 3미터쯤 되는 짙은 회색 연기 덩어리에 휩싸였다. 물체는 굉장한 속도로 매우 얕은 각도로 내려가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오른 뒤 물체는 완전히 사라졌고, 연기에서 떨어지는 입자도 보이지 않았다. 연기에 휩싸인 지점은 스위처 정면으로 약 730미터 떨어진 곳이었고, 식생이나 지형이 시야를 가린 흔적은 없었다. 형태는 대체로 직사각형이었지만, 아주 짧은 한순간만 윗면이 약간 휘어 보이기도 했다. 스위처가 아내에게 말을 걸려고 돌아보자 아내는 이미 입을 벌리고 손가락으로 물체가 사라진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체는 지형에서 그리 높지 않은 위치에서 협곡의 윤곽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별도로 진행한 아내 진술에서도 거의 같은 내용이 확인됐다. 다만 아내는 연기 자국과 물체를 휩싼 연기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짙은 회색이었다고 했고, 물체 크기는 길이 약 1.5미터, 폭 30센티미터 정도로, 윗면이 살짝 휘어 있고 뒤쪽보다 앞쪽이 다소 더 크게 보였다고 했다.

    요원 노트에는 관측 당시 해가 스위처 일행의 등 뒤에 있었고 하늘은 맑았으며 물체는 매우 강한 반사광을 냈다고 적혀 있다. 스위처는 18년간 보험조사 분야에서 일해온 사람으로, 공개적으로 주목받기를 원하는 인물은 아니라고 평가됐다. 같은 차에 탔던 다른 동승자들은 물체를 보지 못했다. 스위처는 플레이서빌 인근 목장으로 이사 중이라 새 주소(Box 48, Aukum, Eldorado County, Calif.)가 함께 기재됐다. 8월 26일 오후 2시 플레이서빌의 라펠 호텔에서 다시 만나 시더 라빈 로드를 함께 따라가며 물체가 사라진 지점을 확인하기로 약속이 잡혔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좌우 가장자리에 보관용 펀치 구멍과 손글씨로 보이는 작은 주석이 보인다.

  74. p.74

    1947년 8월 20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비행장에 있는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422호에 있는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에게 보낸 비밀 문건이다. 문서번호는 4AFOA 333.5/1208-I,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c)"이다. 정보참모부는 첨부한 편지를 8월 15일 퍼시픽 텔레폰 앤 텔레그래프 회사의 지부 시설 기사 R. J. 매든으로부터 받았다고 알리면서, 이 사령부에서는 해당 신고 건에 대해 더 이상 조사하지 않겠다고 통보한다. 서명자는 정보참모부 부참모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GSC)이다. 첨부는 한 건이며, 배포는 미 육군항공대(AAF) 2부, 방공사령부(ADC) 1부, 제6군 1부, FBI 1부로 명시되어 있다. 페이지 상하단에 "CONFIDENTIAL" 표시가 있고, 우하단에 FBI 샌프란시스코 지국이 8월 21일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도장이 찍혀 있다.

  75. p.75

    1947년 8월 8일 워싱턴주 스포캔 W. 3번가 427번지에서 태평양전화전신회사(Pac. Tel. & Tel. Co.) 지구 설비 엔지니어 E. J. 매든(E. J. Madden)이 워싱턴주 매코드 비행장(McChord Field) 미군 군사정보부(Military Intelligence Division) 앞으로 보낸 편지다. 매든은 1947년 8월 7일자 스포크스맨 리뷰(Spokesman Review)에 실린 아이다호 보이시 거주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의 방문 기사를 읽고, 동봉한 "플라잉 소서" 목격 진술이 군 측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해 보낸다고 밝힌다. 이 진술은 아직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 제공한 적이 없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과 COPY 표시가, 하단에는 1947년 8월 21일자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76. p.76

    태평양전화전신회사 분과 시설 책임자 R. J. 매든이 1947년 7월 28일 직접 겪은 일을 사내 보고서 「비행 원반에 관한 보고」로 정리한 문서다. 위아래에 CONFIDENTIAL 도장을 찍어 기밀로 분류했다.

    매든은 그날 낮 12시 5분쯤 스티브 헤르만이 모는 세단을 타고 캐년 페리에서 요크로 가는 길을 북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앞자리에 매든, 뒷자리에 칼 헤르만이 함께 탔고, 두 마을 모두 헬레나에서 북동쪽 약 25마일 떨어진 몬태나 지역이다.

    캐년 페리에서 북서쪽으로 5마일쯤 지난 지점, 산림청 지도 기준 T10N R1W 10호 구역의 북동 4분의 1 안 남동 4분의 1에 해당하는 곳에서 칼이 갑자기 “저거 봐, 저거 봐, 비행 원반이야!” 하고 외쳤다. 스티브는 곧장 속도를 줄여 차를 세웠고, 그 사이 매든과 스티브는 칼이 가리키는 하늘을 살폈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칼이 남서쪽 지평선에서 빠른 속도로 솟아 북서쪽으로 날아가는 “원반”을 — 처음에는 유성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 보았다고 외친 시점부터 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10초였다.

    차가 멈추자 스티브, 칼, 매든 셋 모두 동시에 북서쪽 2~3마일 거리, 지상 약 3천 피트 상공에서 떠 있는 밝은 원반을 보았다. 원반은 약 5초 동안 50~100피트 폭 안에서 위아래로 떨며 솟구치다가, 상승 정점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북서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200피트 이내 거리에서 맑은 공기 속으로 사라졌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 뒤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른 나머지 “공기 속에 녹아 사라진” 모양이었다고 매든은 적었다.

    관측자들 시점에서 원반은 지름 약 3피트, 두께는 2~4인치 정도로 얇고 둥근 모양이었다. 하늘은 푸르고 작은 구름이 흩어져 있었으며, 햇빛 아래 잘 닦은 니켈을 입힌 듯 반짝이고 일렁였다.

    원반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 세단은 같은 방향으로 계속 달렸지만, 원반의 흔적도, 그것을 따라온 다른 어떤 것도 길 위나 주변에서 찾을 수 없었다. 매든은 마지막에, 위 수치는 2~3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본 인상이므로 실제 크기는 훨씬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77. p.77

    1947년 9월 15일, 샌프란시스코 지부장(SAC)이 FBI 국장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보고" 사내 메모다. 발신자는 앞서 1947년 8월 26일 보낸 자기 편지를 다시 끌어와, 거기 동봉한 문서들을 정리한다. 첫째, A2의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1947년 9월 9일 자로 보낸 편지, 그리고 제4 공군 CIC의 브라이든 N. 문이 8월 20일과 8월 26일 두 차례 작성한 메모랜덤. 이 메모랜덤은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에 사는 레이 A. 스위처의 목격 진술을 담는다. 둘째, 같은 스프링거 대령이 9월 10일 자로 보낸 또 다른 편지에, 9월 9일 자 첨부물이 붙어 있다. 마지막으로 발신자는 국 본부에 한 가지를 더 알린다.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 — A2가 이 사안으로 거듭 인터뷰해 온 인물 — 가 자기 비행 원반 조사 기록을 출판용으로 팔겠다는 의사를 A2 측에 밝혀 왔다는 것이다. 우측 여백에는 레이놀즈와 플레처의 서명, 하단에는 9월 24일 자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108이 찍혀 있다.

  78. p.78

    1947년 9월 8일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의 FBI 특별수사책임자에게 보낸 한 장짜리 송부 공문이다. 문서번호는 4AFEA 322.5/1208-1, 제목은 "비행 원반 조사(Investigation of Flying Discs)"이며, 8월 20일자 MCIC 메모 한 부를 "참고용으로" 동봉한다고 짧게 알린다. 발신자는 부참모장 대리 직함의 공군 중령이며 서명이 들어가 있다. 우측 하단에는 FBI가 9월 12일 접수해 분류·편철했음을 보여주는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기밀 표시가 들어가 있다.

  79. p.79

    1947년 8월 18일 오전 10시 80분, 오클랜드 트리뷴 시티 에디터 앨 맥(Al Mack)이 전화로 다음 사건을 전했다.

    새크라멘토의 보험회사 매과이어 앤드 웰스(McGuire and Wells)의 임원이자 새크라멘토 7구역 데이비드 웨이 3431번지에 사는 레이 A. 스위처(Ray A. Switzer)가 신고한 내용이다.

    8월 14일 오후 4시, 스위처는 아내와 함께 캘리포니아 플레이서빌에서 남동쪽으로 6~8마일 떨어진 시더 라빈 로드(Cedar Ravine Road)를 차로 달리다가 북쪽에서 남쪽으로 움직이는 "수증기" 같은 흔적을 보았다. 더 가까이 살펴보니 800~1000피트 고도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반짝이는 금속" 조각이었다. 원반보다는 "로켓" 모양에 가까웠고, 길이는 약 5피트, "반원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물체는 관찰자가 탄 자동차 앞쪽 약 750피트 거리, 어느 언덕 정상에서 100피트쯤 아래 지점에 "검은 연기 한 줄기"를 내며 떨어졌다. 사이에 협곡이 가로막혀 추락 지점을 직접 조사할 수는 없었다. 다만 스위처는 그 위치를 다시 짚어낼 수 있다고 했다.

    괄호 안 부기로 스위처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졸업생이며 오클랜드 트리뷴 직원들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이고, 남부 캘리포니아 해병 병원 그레이(Gray) 대령의 처남이라는 신원 보증이 덧붙어 있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표시가, 오른쪽 위에는 COPY 표시가 있다.

  80. p.80

    1947년 8월 20일자 4공군 CIC 특수요원 드라이든 A. 분이 "미확인 물체 4AF-1208-I" 사건으로 담당 장교에게 올린 비밀 등급 메모다.

    8월 26일 분 요원은 동료 허버드 특수요원과 함께 보험 손해사정사 레이 A. 스위처를 새크라멘토 데이비드웨이 3431번지 자택에서 면담했다. 스위처의 진술에 따르면 1947년 8월 14일 오후, 그는 자기 차로 캘리포니아 플레이서빌의 시더 라빈 로드를 달리고 있었다. 앞좌석에는 아내가, 뒷좌석에는 장모와 두 자녀가 함께 있었다. 16시 30분경, 플레이서빌에서 남서쪽으로 약 8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스위처는 시야 한쪽으로 흰 연기 자국을 봤다. 로켓이 아닌가 싶어 하늘을 살피던 그는 어떤 물체 하나를 봤다. 길이 1.2~1.8미터, 폭 25~35센티미터의 금속색 물체였고, 윤이 잘 난 크롬처럼 환했다.

    차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물체는 12시 30분 방향에서 처음 보였다가, 12시 방향에 이르렀을 무렵 직경 60센티미터 가량의 짙은 회색 연기에 휩싸였다. 속도는 어마어마했고 매우 얕은 강하 자세였다. 연기가 피어오른 순간 물체는 흔적 없이 사라졌고, 떨어진 파편 같은 것도 없었다. 연기에 휩싸인 지점은 스위처의 차에서 약 730미터 앞쪽이었고, 식생이나 지형에 가려졌을 가능성도 없었다. 물체는 직사각형으로 보였지만 아주 짧은 한 순간 윗면이 살짝 휘어 보였다. 스위처가 아내에게 알리려고 돌아봤을 때, 아내는 이미 입을 벌린 채 손으로 물체가 사라진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물체는 지형에 비해 그리 높이 떠 있지 않았고, 협곡 윤곽을 따라 움직이는 듯 보였다.

    별도로 진행한 아내 면담에서도 진술은 거의 일치했다. 다만 아내는 연기 자국과 물체를 감싼 연기 모두 짙은 회색으로 봤고 색 변화는 없었다고 했다. 크기는 길이 약 1.5미터에 폭 30센티미터쯤이며 윗면이 살짝 휘었고, 앞쪽이 뒤쪽보다 약간 더 컸다고 추정했다.

    요원 노트에 따르면 목격 당시 해는 스위처 등 뒤에 있었고 하늘은 맑았으며 물체는 매우 강한 반사광을 냈다. 스위처는 18년 경력의 보험 조사 분야 종사자로, 세간에 알리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차에 함께 탄 다른 사람들은 물체를 보지 못했다. 스위처는 곧 플레이서빌 근처 농장으로 이사할 예정이고 새 주소는 엘도라도 카운티 오커 사서함 42번이라고 했다. 8월 26일 14시에 플레이서빌의 라펠스 호텔에서 스위처를 다시 만나, 시더 라빈 로드를 함께 따라가며 물체가 사라진 지점을 특정하기로 일정을 잡아 두었다고 적었다.

  81. p.81

    4공군 CIC 특수요원 드라이든 W. 문이 작성한 사건 파일 4AF-1208-I 의 한 페이지로, 상단·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힌 "미확인 물체(UNIDENTIFIED OBJECT)" 보고서다. 요원 노트 항목은 이렇게 적는다 — 포레스터 영(Forrester Young)이 해당 지역에서 항공기 잔해에 관한 정보가 확인될 경우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AC of S, A-2)에 직접 연락하기로 한다. 영에게는 이번 임무의 실제 목적을 알리지 않았으며, 단지 해당 지역에서 항공기 잔해가 있을 가능성을 찾는 임무라고 믿게끔 했다.

  82. p.82

    1947년 8월 26일자 제4공군 방첩대(4AF CIC) 특수요원 브라이든 E. 문(Bryden E. Moon) 의 후속 조사 보고서다. 같은 날 허버드 요원과 이 요원은 캘리포니아 플레이서빌의 래펄스 호텔에서 보험 손해사정인 레이 스위처를 만나, 시더 라빈 로드를 따라 플레이서빌에서 남동쪽으로 9마일 떨어진 멍크스 바까지 동행했다. 스위처는 8월 14일 자신이 물체를 목격한 지점이 이보다 플레이서빌에 더 가깝다고 정정했고, 도로를 다시 점검한 끝에 웨버 크릭 바로 북쪽 능선, 도로가 정상을 넘어가는 지점에서 보았다고 결론을 내렸다. 호텔에서 시더 라빈 로드를 따라 2마일 떨어진 곳이며, 좌표는 북위 38도 48분 45초, 서경 120도 47분 15초, 해발 2,000피트다. 도로가 정상에 다다르며 왼쪽으로 휘기 때문에 자동차에서 협곡과 웨버 크릭 남쪽 지평선을 90도에 걸쳐 훑어볼 수 있는 자리다. 남쪽 지평선은 스쿼 할로 크릭 건너편 약 4마일 거리, 해발 2,300~2,500피트 산봉우리들이 잇따라 만든다. 스위처는 시야 어느 쪽에서 물체를 봤는지 정확히 짚지는 못했고 지평선 끝까지 갔을 수 있다고만 답했다. 그가 본 것이 만약 시야 안 지면에 떨어졌다면 협곡과 골짜기가 가득한 약 6제곱마일 산악 숲지대 안 어딘가일 것이다. 요원 메모에서 문은 스위처가 본 것이 알루미늄 표면의 통상형 항공기였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거리가 멀고 관측 시간이 짧아 식별 특징이 보이지 않았으며, 밝은 반사광과 스위처가 왼쪽으로 차를 돌리던 동작이 겹쳐 실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느껴졌으리라는 추정이다. 다만 스위처가 본 연기 자국에 대해서는 자신도 설명할 길이 없다고 적었다. 지상 잔해 정찰이 필요하다면 L-4 정도의 소형기로 11시부터 13시 사이 저고도 비행을 권한다고도 덧붙였다. 같은 날 캐미노의 주 산림청 레인저 딕슨, 플레이서빌의 연방 산림청 산림관 조지 B. 영을 확인한 결과, 지난 한 달 동안 해당 지역에서 산불이나 항공기 추락 신고는 없었다.

  83. p.83

    1947년 9월 10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있는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연방청사 422호 FBI 특수요원 책임자(Special Agent in Charge)에게 보낸 비밀 등급 공문이다. 문서번호는 4AFDA 352.5/1898-I, 제목은 "비행 원반 조사(Investigation of Flying Disc)". 본문은 짧게 "참고하시도록 MOIC를 동봉한다"고만 적고, 동봉물은 1947년 9월 9일자 허버드(Hubbard) 관련 MOIC 한 건이라고 명시한다. 서명자는 정보참모부 부참모장 도널드 L. 스프링거(Donald L. Springer) 공군 중령. 하단 FBI 접수 스탬프에는 1947년 9월 12일 날짜가 찍혀 있어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이틀 뒤 문서를 정식으로 접수했음을 보여 준다.

  84. p.84

    1947년 9월 9일자로 작성된 LAF-1208-X 사건 메모로, 책임 장교 앞으로 올라간 보고서다. 1947년 9월 8일 캘리포니아 버클리 밀비아 가 1242번지에 거주하는 워드 L. 스튜어트를 그의 근무지인 캘리포니아대학 허스트 광산 건물에서 면담한 내용을 정리했다. 스튜어트는 예비역 1중위로, 1947년 7월 29일 415 AAF BU(NT) 소속 윌리엄 M. 라이허드 대위와 함께 비행 중 목격한 비행 물체에 관해 진술했다. 그가 말한 바를 요약하면 이렇다. 7월 27일 정오 직후, 라이허드 대위와 함께 일상적인 훈련 비행을 마치고 막 착륙한 직후였다. 라이허드 대위가 스튜어트에게 한 가지를 가리켰는데, P-80 한 대를 굉장한 속도로 뒤따르는 미확인 비행 물체였다. 스튜어트는 그 P-80이 해밀턴 비행장에 착륙하기 위한 사전 진입 단계에서 시속 약 250마일로 비행 중이었다고 추정했다. 그가 보기에 P-80을 뒤따르던 물체는 그 항공기의 서너 배 속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뒤 두 번째 물체가 나타나, 처음 본 물체 위쪽에서 좌우로 움직였다. 이는 큰 함선을 호위하는 전투기의 기동과 비슷한 양상이었다고 한다. 이 기동은 두 물체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이어졌으며, 시간은 약 15초, 진행 방향은 약 120도였다고 추정했다. 물체의 크기나 실제 고도는 가늠하지 못했으나, 6천 피트를 넘지는 않았다고 봤다. 물체는 빛나는 흰색이었고, 그가 그동안 본 어떤 재래식 항공기와도 달랐다. 해군의 "플랩잭"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알고 있다고 답했고, 자신이 본 물체는 그런 종류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요원 메모에는 스튜어트가 미 육군항공대 전직 장교이자 B-29 조종 경력이 상당한 인물이며, 환각을 꾸며낼 사람도, 언론에 나설 의도가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평이 덧붙어 있다. 그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기계공작실 책임자다. 작성자는 LAF 지역 CIC ADC 소속 C/A 레슬리 S. 노먼드이며, 상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다.

  85. p.85

    1947년 8월 15일 오후 5시 50분, 뷰트(Butte) FBI 지국이 FBI 본부로 보낸 긴급 전문이다. 발신자는 배니스터(Banister). 내용은 비행 원반 목격 보고다. 트윈폴스(Twin Falls, 아이다호)의 카운티 위원이자 전직 보안관 앨 W. 호킨스(Al W. Hawkins)와 같은 지역 아이다호주 창고 검사관 J. H. 브라운(J. H. Brown)이 알려오기를, 지난 8월 13일 수요일 오전 9시 30분경 트윈폴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40마일 떨어진 외딴 지역의 강에서 낚시를 하던 중 공중을 매우 높이 날아가는 물체 두 개를 보았다고 한다. 물체는 원반처럼 보였고, 동시에 모터 트럭이 내는 것과 비슷한 굉음이 들렸다. 두 사람은 물체가 매우 빠르게 움직였으며 각각 지름이 약 6피트 정도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물체는 곧 시야에서 사라졌고 그 뒤로 다시 목격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더 자세한 묘사는 확보되지 않았다. 뷰트 지국은 1947년 7월 30일 발행된 본부 회보 제22호 B항에 따라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며, 진전이 있는 대로 본부에 즉시 보고하겠다고 끝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9월 24일 접수, 9월 29일자 처리 도장과 함께 사건 번호 62-83894-109가 적혀 있다.

  86. p.86

    분홍색 카본 종이의 뒷면 스캔이다. 페이지 상단에는 1947년 8월 15일 오후 7시 55분 전쟁부 관계국(REC'D DEPT. RELATIONS UNIT)이 문서를 접수했다는 도장이, 하단에는 같은 날 오후 8시 35분과 8월 19일 오전 10시 36분에 FBI가 같은 문서를 두 차례 접수했다는 도장이 찍혀 있다. 본문 글자는 앞면 타이핑이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는 거울상으로만 보여 그 자체로는 읽을 수 없고, 이 페이지는 사실상 앞면 문서의 행정 라우팅 기록 역할만 한다.

  87. p.87

    1947년 8월 28일 샌프란시스코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부국장 D. M. 래드 앞으로 회람되었다. 제목은 비행 원반 보고. 8월 27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 제4공군 A-2 소속 도널드 스프링어 중령이, A-2 본부 부참모장실 산하 지역정보요구처가 1947년 7월 7일 비행 원반으로 보이는 물체를 목격했다고 신고한 애리조나 피닉스의 윌리엄 로즈를 전면 면담할 것을 요청했다고 알려왔다. 로즈는 620 박스 카메라로 원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고 한다. 이 목격 건에 대한 앞선 보고는 8월 8일자로 이미 본부에 올라갔다. 스프링어 중령은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배치된 A-2 정보요원 조지 F. 퓨게이트 주니어가 9월 2일 전후로 피닉스에 도착해 피닉스 지부에 연락하도록 지시받을 것이라고 했다. 1947년 시리즈 국 회보 42호에 따라, 로즈가 아직 면담되지 않았다면 피닉스 지부 요원이 노스 14번가 4333번지의 윌리엄 로즈를 면담해야 한다고 본 메모는 적시한다. 스프링어는 가능하면 퓨게이트가 이 면담에 동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8월 4일자 A-2 보고서 사본 한 부와 로즈가 찍었다는 사진 인화본 세 장을 피닉스 지부에 동봉해 보낸다. 발송 방식은 항공우편 속달이며, 우측 하단에 9월 24일과 10월 2일 두 차례 접수 도장이 찍혔다.

  88. p.88

    앞면의 잉크가 비쳐 보이는 뒷면 스캔이다. 종이 위쪽에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 머리글이 거꾸로 비치고, 본문 단락 몇 개의 윤곽도 뒤집힌 형태로 흐릿하게 드러난다. 왼쪽 아래에는 "RECEIVED FEB 28 2 50 PM INTERNAL SECURITY F.B.I." 라고 찍힌 파란 접수 도장이 옆으로 누운 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본문은 앞면에서 읽어야 하고, 이 면은 FBI 내부보안과가 문서를 접수한 시각을 보여주는 행정 흔적만 의미가 있다.

  89. p.89

    1947년 8월 27일 부치(Butte) 특별수사관 책임자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 제목은 워싱턴주 타코마의 프레드 크리스먼과 해럴드 A. 달이 목격했다는 '플라잉 디스크' 건, 보안 분류는 'Security Matter - X'다.

    메모는 1947년 8월 7일과 12일자 시애틀 지부 전문에 이어지는 후속 보고로 시작한다.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를 8월 19일 보이시 상주사무소에서 조지프 E. 제트 특별수사관이 면담했다. 아놀드는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벤처프레스 편집자 레이먼드 A. 파머에게서 1947년 6월 26일자 편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파머는 아놀드가 6월 24일 레이니어산 근처에서 본 비행 원반에 관한 기사를 자기 잡지에 싣고 싶다고 했고, 이 편지는 본 보고에 동봉되어 FBI 본부로 보낸다.

    아놀드는 처음에는 이 편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파머가 다시 편지를 보내 타코마의 크리스먼과 달이 비행 원반 파편을 자기에게 보냈다고 알리며, 아놀드에게 타코마로 직접 가서 두 사람을 만나 그 파편 이야기가 사실인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놀드는 답장하지 않은 채 친구 몇 명에게 의견을 물었고, 다들 파머가 경비를 대 준다면 타코마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7월 25일 보이시 AD 클럽에서 아놀드는 자기가 본 플라잉 디스크 이야기와 함께, 파머가 부탁한 타코마 출장 의뢰까지 강연에서 언급했다. 강연이 끝나자 한 사람이 다가와 크리스먼과 달 두 사람을 모두 알며 매우 믿을 만한 인물들이라고 일러주었다. 아놀드는 고민 끝에 파머에게 전화를 걸어 경비 200달러를 보내 주면 크리스먼과 달을 직접 만나 파편 건을 조사해 보겠다고 했고, 다음 날 아침 웨스턴유니언으로 200달러를 받았다.

    7월 30일 아놀드는 자기 비행기로 타코마로 떠났다. 가는 길에 오리건주 펜들턴에 들러 포틀랜드 소속 민간항공국(CAA) 검사관 에드 리건에게 사정을 이야기했고, 리건은 그대로 조사를 진행하라고 권했다. 타코마의 배리 비행장에 착륙한 아놀드는 곧장 윈스럽 호텔에 방을 잡고 전화를 걸어 면담을 잡았다. 달은 즉시 호텔로 오겠다고 했고, 아놀드의 방에 도착한 달은 자기는 그 원반 이야기를 잊고 싶다며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아놀드도 집으로 돌아가 잊으라고 권했다. 아놀드는 그래도 모든 사실을 듣고 싶다고 말했고 — 페이지는 여기서 끊긴다.

    메모 여백에는 사건 번호 'X-3', 기록부 'Recorded 62-83894-111',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64', 1947년 9월 30일 접수 도장 등이 남아 있다. 1964년에 부수가 폐기됐다는 표시가 함께 찍혀 있어 문서 자체의 보존·관리 흔적을 짐작하게 한다.

  90. p.90

    문서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로, 본문은 비어 있고 종이 너머로 앞면 타자 글자가 거꾸로 비쳐 보인다. 아래쪽에는 법무부 산하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이 거꾸로 두 번 찍혀 있어, 이 서신이 FBI 내부보안 라인으로 들어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91. p.91

    1947년 8월 27일자, FBI 국장 앞으로 올라온 "비행 원반 — 워싱턴주 터코마" 사건 메모 두 번째 장이다. 디스크 파편에 관한 정보를 두고, 달(DAHL)이 언론에 그 이야기가 가짜라고 했다는 점은 자신도 알고 있다는 식으로 운을 뗐다. 달은 곧바로 자신의 이야기가 거짓이나 사기가 아니라고 받아쳤다 — 다만 자신이 본 것과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환상 같아서 디스크 파편 자체를 잊고 싶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달은 자기 이름과 항만 순찰대(Harbor Patrol)는 빼주는 조건으로 아놀드(ARNOLD)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기로 했다.

    달의 진술에 따르면, 자기 개가 죽었고 아들이 다쳤으며 자신이 모는 항만 순찰선의 휠 마운트가 디스크 파편에 맞았다고 한다. 이 물질이 약 20톤가량 마우리(Mauri) 섬 해변과 만에 떨어졌다. 사건 다음 날, 마흔 살쯤 되어 보이는 한 남자가 달에게 접근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마우리 섬에서 뭘 봤는지 안다. 좋게 말할 때 잊어버리고 입 다물고 있어라." 달은 파편을 다량 수거해 집으로 가져갔지만, 상관인 피어스 도먼(PIERCE DOEMAN)이 시카고의 레이먼드 파머(RAYMOND PALMER)에게 파편을 보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파머가 그 표본을 무상으로 분석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달은 이어, 1947년 6월 21일 오후 자신의 아들과 개, 두 명의 선원과 함께 마우리 섬 동쪽 해안의 만 부근에서 순찰 중이었다고 했다. 보트 앞 유리 너머로 위를 올려다보니, 약 1,000피트 높이에 회색 원반 모양 물체 여섯 개가 떠 있었다. 큼지막한 튜브를 살짝 눌러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각 물체는 지름이 약 100피트, 중앙에는 25피트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달은 처음에 일종의 풍선이라고 짐작했다. 가운데 물체가 다른 다섯 개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고, 나머지 다섯이 그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가운데 물체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고 나머지도 뒤따라 내려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달은 물체 안쪽으로 둘러 난 현창과 유리창처럼 보이는 부분을 보았다. 가운데 물체는 약 500피트까지 내려왔고, 그 순간 주위를 돌던 물체 하나가 내려와 가운데 물체에 닿더니 몇 분간 그대로 머물렀다. 그동안 나머지 물체들은 계속 위에서 원을 그렸다. 닿아 있던 물체는 다시 올라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 후 여섯 물체 모두 상승하기 시작했고, 가운데 물체의 중앙에서 신문지 같은 것이 쏟아져 나왔다. 곧이어 하늘에서 용암 같은 것이 비처럼 떨어졌다. 용암은 가운데 물체에서 흘러나왔고, 달은 보트를 해안 쪽으로 돌렸다. 가운데 물체에서 떨어진 용암은 하얀 금속처럼 보였고, 바다에 닿자 수증기 구름이 솟아올랐다. 일부는 해변에까지 떨어졌다. 달은 자기 개와 갈매기 한 마리가 그 용암에 죽었고, 아들도 떨어지는 용암에 부상을 입었다고 다시 강조했다. 아놀드는 이어, 달이 그 물체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으며 자신이 원한다면 그 음화(negatives)를 넘겨주겠다고 했다고 진술했다. 그날 저녁 달은 아놀드를 자기 비서의 집으로 데려가 직접 주워 온 디스크 파편 몇 점을 보여 주었는데, 한쪽 면은 매끄럽고 다른 쪽 면은 거칠었다는 것이 아놀드의 설명이다.

  92. p.92

    1947년 8월 27일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워싱턴주 타코마 플라잉 디스크 보고서의 3쪽이다. 케네스 아널드가 진술한 내용을 요약한 부분이다.

    아널드는 호텔 방에 돌아오니 언론에서 전화가 와 있었다고 말한다. 기자들은 비행 원반 파편 이야기를 캐묻고 있었고, 아널드는 직접 확인되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가 타코마에 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달을 만났다는 사실을 언론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튿날인 7월 31일 오전 9시 30분, 달과 크리스먼이 다시 아널드의 호텔 방을 찾아왔다. 달은 또 한 번 그만 집으로 돌아가서 원반 이야기는 잊으라 고 부탁했다. 자기 이야기가 거짓은 아니지만 이미 충분히 시달렸다는 것이다. 달은 아들이 어느 아침에 사라졌다가 몬태나주 러스트의 한 카페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아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도 모르고,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때 달과 크리스먼은 파편을 한 아름 안고 들어왔고, 크리스먼은 자기도 달이 본 것과 비슷한 물체를 봤다고 털어놓았다. 크리스먼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7월 23일에 순찰선을 타고 모리 섬에 갔다가 해변에 용암 같은 파편이 흩어져 있는 것을 봤다. 그러다 위쪽을 올려다보니 현창과 창문이 달린 풍선 같은 물체가 보였고, 그 물체는 곧 커다란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아널드는 달에게 원반 사진을 다시 한 번 보여 달라고 요청했고, 달은 이번에도 보여주겠다고 했다. 또 아널드는 두 사람에게, 본인이 비행 원반을 직접 본 동료 스미스 대위를 부르고 그에게 파편을 보여주고 달의 이야기를 듣게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달은 망설였지만 크리스먼은 즉시 동의했다. 아널드는 그밖에도 해밀턴 필드의 육군 정보 장교인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에게 전화를 걸어 호텔로 와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두 사람이 평소부터 비행 원반 관련해 이상한 일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라 고 일러둔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널드는 시애틀로 가서 스미스 대위를 데리고 돌아왔고,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는 오후 4시쯤 호텔 방에 합류했다. 아널드는 브라운에게 원반에 관해 무엇을 알아냈는지 물었다. 브라운은 진짜로 보이는 원반 사진을 한 장 입수했다 고 비공식으로 알려주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남성이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브라운의 설명대로라면, 사진에는 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원형 물체와, 비행 날개 처럼 생긴 또 다른 물체가 찍혀 있었다. 아널드는 이 말을 듣고 바로 달이 봤다는 물체를 떠올렸다.

    그런데 달의 이야기를 듣고 난 직후, 브라운과 데이비드슨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졌다고 아널드는 진술한다. 두 장교는 흥미를 잃은 것처럼 굴었다. 일행 가운데 누군가가 함께 모리 섬에 가서 원반 파편을 찾아보자고 제안했지만, 브라운과 데이비드슨은 곧장 해밀턴 필드로 복귀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널드의 진술에서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인데, 두 장교는 달과 크리스먼이 호텔 방으로 가져온 파편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가져갔다는 것이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페이지 번호 -3- 이 찍혀 있다.

  93. p.93

    1947년 8월 27일자로 FBI 국장에게 올린 사무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 워싱턴주 타코마'. 진술자는 케네스 아널드로, 직전 진술에 이어 사건의 다음 날 아침부터 일어난 일을 설명한다.

    다음 날 아침 아널드는 크리스먼에게서 전화를 받았는데,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슨 대위가 B-25 추락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아널드는 크리스먼이 어떻게 누구보다 먼저 탑승자 명단을 알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같은 회의 자리에는 언론사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회의 안에서 오간 말이 매일 그대로 언론에 새어 나갔다고 했다. 타코마의 UP 통신 기자인 폴 레인과 모렐로는 회의의 모든 내용은 물론, 군이 공식 발표하기 전부터 B-25 추락과 탑승자까지 알고 있었다. 아널드는 추락 소식을 듣고 자신과 스미스 대위가 브라운·데이비슨과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사람이니 당연히 육군 정보부가 연락해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정보부 쪽에서는 끝까지 연락이 없었다고 진술했다.

    이후 아널드와 스미스는 UP 통신 사무실로 직접 찾아가 사고 생존자들이 어떻게 진술했는지 확인했다. 그 자리에서 모렐로는 자신에게 정체불명의 정보원이 전화를 걸어와 'B-25는 추락한 것이 아니라 격추당했다'고 알려 줬다고 말했다. 같은 정보원은 켈소(워싱턴주)에서 한 목격자가 두 생존자가 비행기에서 뛰어내린 뒤 비행기가 신호용 조명탄을 떨어뜨리고 가파르게 급강하해 산비탈에 처박혔으며, 엔진 한쪽에 불이 붙었지만 엔진을 보호하는 소화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그 직후 달이 아널드와 스미스를 찾아와 '집에 돌아가서 디스크는 잊으라, B-25 같은 사고는 자기한테는 늘 따라다니던 일'이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아널드는 그 길로 시카고의 팔머에게 전화를 걸어 거래를 취소하겠다고 말했다. 팔머가 보내 준 200달러를 돌려받고 싶으면 받아 가도 좋다, 두 사람이 죽었고 이 전체 일이 무섭다고 했다. 팔머는 200달러는 그대로 가져도 좋고, 수고비로 별도 수표를 추가로 보내겠다고 답했다. 이 통화 직전, 스미스 대위는 시카고 타임스의 친구 마킨 로디에게 전화를 걸어 '육군 정보부는 더 이상 믿을 수 없으니, 팔머와 이 디스크 공장의 정체를 직접 파헤쳐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아널드는 또 두 통의 전화에 앞서 언론에 팔머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해 둔 상태였다고 했다. 육군 정보부 쪽은 팔머라는 인물을 찾을 수 없고 아는 것도 없으며 별로 관심도 없어 보이는데, 정작 팔머는 누구보다 플라잉 디스크에 대해 많이 아는 듯했기 때문이다.

    아널드는 개인적으로 팔머의 사업이 무언가를 위한 위장이라고 보고 있으며, 달과 크리스먼은 팔머가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하고 팔머가 허락하기 전에는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디스크 파편 이야기의 진상은 여전히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에, 자신과 스미스 대위는 8월 3일 일요일에 마우리섬으로 가기로 결정했다고 진술했다. 페이지 아래 표시는 4쪽.

  94. p.94

    1947년 8월 27일 자, FBI 국장 앞으로 올린 "플라잉 디스크 — 워싱턴주 타코마" 건 메모의 다섯 번째 쪽이다. 아놀드의 진술을 정리한 보고서로, 크리스만·달·아놀드·스미스 대위·샌더스 소령이 등장한다.

    아놀드는 크리스만을 추궁하러 그가 배를 대 두는 보트하우스에 함께 갔다. 그런데 크리스만은 배 시동을 거는 데 자꾸 실패했고, 사무실에 잠깐 다녀와야 한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한 시간쯤 뒤 정비공이 배를 고쳐 놓을 테니 그때 다 같이 모리섬으로 가자고 둘러댔다. 아놀드는 크리스만이 그 뒤로 돌아오지 않았고, 그가 알려 준 어느 전화번호로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들은 영화관에 있던 달을 찾아냈다. 달은 크리스만을 수소문해 보더니, 크리스만이 며칠간 시내를 떠나 있다고 알렸다.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 쪽에서도 연락이 와, 어떤 제보자가 크리스만이 육군기를 타고 알래스카로 향하고 있다고 알려 왔다고 전했다.

    아놀드는 스미스 대위에게서 매코드 비행장의 샌더스 소령과 약속을 잡았고 자초지종을 다 털어놓을 작정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그날 오후 스미스 대위와 샌더스 소령이 호텔 방으로 왔고, 회담이 끝난 뒤 달이 아놀드의 방에 가져온 파편 일부를 샌더스 소령에게 보여 주었다. 샌더스 소령은 파편을 살펴보더니 구리 제련소에서 나온 광재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방을 나서기 전에 방 안의 파편을 하나도 빠짐없이 챙겨 들고 가지고 갔다고 아놀드는 진술했다. 그 뒤 아놀드는 아이다호주 보이시로 향했다.

    아놀드는 1947년 8월 5일 자 파머의 편지도 내놓았다. 파머가 아놀드에게 플라잉 디스크 조사를 계속하라고 부추기는 내용이었고, 이 편지는 함께 동봉해 FBI 본부로 올린다. 또한 아놀드는 1947년 6월 24일 레이니어산 부근에서 목격한 디스크 아홉 개에 관해 파머와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 비행장 사령관에게 보낸 기사 원고를 SA 제트에게 넘겼고, 이 글도 같이 동봉한다. 아놀드는 이 사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플라잉 디스크 이야기에는 분명히 무엇인가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FBI를 돕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또한 보이시 스테이츠먼과는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신문사가 자신에게 정보 대가를 지급한 적도 없다고 했다. 다만 이 신문사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플라잉 디스크 사건의 진상을 캐려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아놀드는 위 진술을 육군 정보부와 샌더스 소령, 그리고 SA 제트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보이시 스테이츠먼 측 데이브 존슨은 신문사가 아놀드에게 어떤 기사 정보에도 대가를 치른 적이 없으며, 그런 식으로 그에게 접근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보이시 스테이츠먼은 플라잉 디스크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에 이른 시점에서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95. p.95

    1947년 8월 27일 FBI 국장 앞으로 발송된 사건 보고의 둘째 장이다. 제목은 워싱턴주 타코마의 플라잉 디스크 사건. 발신자는 디스크 이야기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사람들이 디스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으며, 디스크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고 확신한다고 보고한다. 군 측은 정보 문의를 받을 때마다 아는 바가 없다고만 답한다. 또한 정보 제공자 존슨은 1947년 7월 30일 아이다호주 보이시에서 브라운 중위와 데이비드슨 대위가 자신을 접촉했고,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밝혔다. 별도 지시가 없는 한 이 사안에 대한 추가 수사는 진행하지 않으며, 시애틀 지국에 사건 완결 후 이첩하는 형태로 처리할 예정이라고 마무리한다. 하단에는 작성자 이니셜 JSL:FPBs, 첨부물 등기 발송 표기, 항공우편·특별배달 지시, 시애틀 사본 송부 표시가 차례로 적혀 있다.

  96. p.96

    FBI 파일 봉투 한 장이다. 오렌지색 큰 서류 봉투 윗부분에 빨간 손글씨로 사건번호 62-83894-111이 적혀 있고, 봉투 상하단에 펀치 구멍 세 개가 보인다. 본문 내용은 없고 봉투 자체가 한 페이지로 스캔된 형태다.

  97. p.97

    FBI 뷰트 지부가 본부로 보낸 봉투의 앞면이다. 발신지는 몬태나주 뷰트 사서함 308번이고, 봉투에는 본부 앞으로 보내는 동봉물이며 비행 원반 건이라고 적혀 있고, 지부 사건번호 65-477과 본부 색인번호 62-83874-111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98. p.98

    1947년 8월 5일 시카고 소인이 찍힌 항공우편 봉투로, 일리노이주 에번스턴 셔먼 애비뉴 1718번지 스튜디오 빌딩 305호 "엔처 프레스(Enture Press)"가 아이다호주 보이시 사서함 387호의 케네스 아놀드 앞으로 보낸 편지다. 좌측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로 보이는 "62-83894-111"이 손글씨로 적혀 있고, 우측 여백에는 발신인이 직접 "AIR MAIL"이라고 표시했다. 보라색 3센트 우표 두 장이 붙어 있다.

  99. p.99

    1947년 8월 5일,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벤처프레스가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에게 보낸 편지다. 발신자는 시카고 타임스의 모리스 로디 기자가 스미스를 통해 이야기를 알아내고 자신에게도 전화를 걸어 기사를 내겠다고 알렸다고 전한다. 자신이 아는 것은 아놀드가 전화로 들려준 내용뿐인데, 신문사들이 관련자 모두를 들들 볶고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먼이 어떻게 응대할지 물어왔길래 신문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일러두었다고 한다. 군이 이번 일을 "유성" 같은 것으로 설명해버리면 멍청해 보일 테니 그렇다는 것이다.

    발신자는 아놀드가 불안해하는 것을 탓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자고 말한다. 끔찍한 음모 같은 것은 없다. 죽은 두 사람은 단순한 사고였을 가능성이 높고, 사고가 아니었다 해도 디스크나 머레이 섬에서 나온 물질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임무 보고와 진술서 작성은 계속 진행해 달라고 부탁한다. 거기에는 사례비도 따라오니 굳이 창밖으로 던져버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이 너무 커 보여서 육군 정보부까지 부른 것이 안타깝지만, 자기가 이 디스크 수수께끼에서 도달한 지점까지 군이 따라오려면 한참 걸릴 것이라고 한다. 아놀드 이전에도 디스크 목격은 거의 사십 년 전부터 있었고 자신은 그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아놀드의 경험이야말로 해답으로 가는 첫 진짜 돌파구라고 평가한다. 보고서 한 장만 자신에게 보내주면 되는데 여기서 손을 떼겠다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크리스먼은 자기 몫을 해줄 의향이 있으니 아놀드도 함께해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이 일은 묻혀서도 잊혀서도 안 되며 미국, 나아가 세계에 너무 중요하다. 검열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니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안심시킨다. 아놀드가 6월 24일 경험에 관해 쓴 글이 자신이 본 것 중 최고였다며, 이번 건도 같은 수준으로 써달라고 요청한다. 죽은 두 사람에 대한 도리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놀드가 "디스크" 라고 부르는 그것을 찍은 사진은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덧붙인다.

  100. p.100

    편지 둘째 장이다. 발신자 R. A. 파머는 상대에게 앞으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새로 알게 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자기도 곧 터뜨릴 준비를 마친 전모를 — 신문 지면이 아닌 다른 경로로 —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상대가 의심하는 만큼 정말로 위험한 일이었다면 자신은 이미 오래전에 시체가 됐을 거라고 농을 친다. 그러면서 본론을 못 박는다. 그 원반들은 안구의 적혈구 같은 헛것이 아니며, 모래에 머리를 박는 타조 같은 태도로 잊고 지나갈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이 히스테리에 빠지든 말든 풀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히스테리라고 부를 만한 반응은 자기가 본 한에서는 웃어넘기는 정도뿐이었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그동안의 작업에 감사를 표하고,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고 칭찬한 뒤, 이제 쉬운 부분 — 보고서를 종이에 옮기는 일 — 만 마무리해 달라고 청한다. 6월 24일자 기사에 대한 원고료 수표는 곧 발송된다고 알린다. 끝에는 "Sincerely yours"라는 맺음말과 함께 R. A. 파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101. p.101

    타자기로 친 편지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글자가 종이 너머로 비쳐 두 단락 분량의 텍스트와 한 줄짜리 서명이 거꾸로 어렴풋이 드러나지만,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페이지 아래쪽 여백에 손글씨로 파일 식별번호 '111-76828-C9' 가 적혀 있어, 이 편지가 FBI 파일 111-76828 시리즈의 일부임을 보여 준다.

  102. p.102

    1947년 6월 26일, 일리노이주 에번스턴의 벤처 프레스 편집자 레이먼드 A. 파머가 아이다호주 보이즈의 케네스 아놀드에게 보낸 편지다. 파머는 시카고 트리뷴에서 아놀드가 마운트 레이니어 근처를 비행하다 목격한 사건 — 파이 접시 모양에 은빛이고 시속 1200마일로 날아가는 9기 이상의 비행 편대 — 에 관한 기사를 막 읽었다고 운을 뗀다. 파머는 이미 비슷한 목격담을 여러 건 독립적으로 확보하고 있지만 아놀드의 설명만큼 상세한 것은 없다며, 자기 잡지에 아놀드 본인 명의로 일인칭 기사를 실고 싶다고 제안한다. 본인 사진, 비행기 사진, 그리고 본인이 그린 거친 스케치를 함께 실어 달라는 요청이다. 보수는 잡지의 통상 원고료인 단어당 2센트, 사진 한 장당 5달러, 잡지 미술팀이 활용할 스케치 한 장당 같은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적었다. 기사에는 "저자 소개"용 짧은 약력도 함께 넣고, 바이라인은 아놀드 이름으로 나간다. 만약 응할 생각이 없다면 적어도 신문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는 확인 편지만이라도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줄에서는 회신을 항공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왼쪽 여백에는 파머의 자택 주소로 보이는 손글씨 메모가 흐릿하게 적혀 있다.

  103. p.103

    케네스 아널드 본인이 직접 작성한 약력 메모다. 1915년 3월 29일 미네소타주 세베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에드워드 밥 아널드, 어머니의 처녀 시절 이름은 버사 E. 하든이라고 밝힌다. 여섯 살까지 미네소타에 살다가 가족이 몬태나주 스코비로 옮겨 농지를 일궜고, 할아버지 롤런드 C. 아널드도 같은 곳에 정착해 전 몬태나 상원의원 버튼 K. 휠러와 함께 지역 정계에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적는다.

    학교는 노스다코타주 마이놋에서 다녔고, 열두 살에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 열네 살이 되기 전에 이글 스카우트에 올랐다. 당시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H. H. 프레스콧은 지금 캔자스시티에서 보이스카우트 지역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어린 시절에는 운동에 빠져 있었다. 1932년과 1933년 노스다코타주 풋볼 올스테이트 엔드로 뽑혔고, 1932년 미국 올림픽 다이빙 선발전에 출전했으며, 1932년부터 1934년까지 적십자 인명구조 시험관으로 활동했다. 스카우트 캠프와 마이놋 시영 수영장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치기도 했다. 미네소타 대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닐스 소프 코치 밑에서 다이빙을 했고, 버니 비어먼 코치 밑에서 풋볼을 뛰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풋볼 선수 생활은 중단했다. 고등학교 시절 코치였던 글렌 L. 자렛은 현재 노스다코타 대학 풋볼 감독이라고 밝힌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대학 학업을 운동으로 이어가려 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마이놋 시절에는 개썰매 경주에도 열심이어서 1930년 라이언스 클럽 도그 더비에서 우승했다고 회상한다.

    1938년부터는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한 소화 장비 제조 회사에 입사했고, 1939년에는 서부 일부 지역의 지구 영업 책임자로 승진했다. 다음 해의 일을 이야기하려는 대목에서 페이지가 끊긴다. 본문 아래쪽에는 사본임을 알리는 큼지막한 "COPY" 도장이 비스듬히 찍혀 있다.

  104. p.104

    케네스 아놀드 본인이 자기 이력을 정리해 진술한 문서 "Some life data on Kenneth Arnold" 의 2쪽이다. 아놀드는 우선 자신이 그레이트 웨스턴 파이어 컨트롤 서플라이라는 소방 장비 공급 회사를 차렸고, 그때부터 독립 소방 엔지니어로 서부 5개 주의 농촌 지역을 돌며 자동·수동 소방 장비를 직접 취급하고 유통하고 판매하고 설치해 왔다고 적는다. 비행 경력은 어린 시절 노스다코타 마이놋에서 시작했다. 첫 비행 교습은 본래 몬태나 그레이트폴스 출신인 얼 T. 밴스에게 받았다. 다만 당시에는 비용 부담이 커서 비행을 이어가지 못했고, 본격적으로 다시 날기 시작한 것은 1943년부터다. 오리건 포틀랜드의 CAA(민간항공국) 선임 검사관 에드 리치에게서 조종사 자격증을 받았고, 지난 3년간은 자기 비행기를 직접 보유하며 그 비행기로 자기 영업 권역 전체를 돌아다녔는데 한 달에 40시간에서 100시간씩 비행해 왔다고 한다. 일 자체를 비행기로만 처리하기 때문에 올해 1월에는 고고도 이착륙과 짧고 거친 활주로용으로 설계된 신형 콜에어(Callair) 한 대를 새로 들였다. 자기가 하는 종류의 비행은 처음 보는 목초지에 내렸다가 기체를 망가뜨리지 않고 다시 떠야 해서 상당한 숙련과 판단이 필요하다고 아놀드는 강조한다. 일 때문에 들어가야 하는 들판과 장소는 활주 거리가 매우 짧고 고도가 매우 높다. 지금까지 산악 목초지의 소 방목지에 823번 착지했고, 천 시간 넘는 비행 동안 가장 큰 사고가 펑크 난 타이어 한 번에 그쳤다고 마무리한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빨간색으로 "COPY" 라는 사본 표식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다.

  105. p.105

    케네스 아놀드가 직접 쓴 진술서의 첫 장이다. 그는 자신이 캐스케이드 산맥 위에서 본 것을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라며, 그저 우연히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을 뿐 유명세를 바란 적은 없다고 못박는다. 자신은 어떤 조종사라도 보고할 일을 보고했을 뿐이며, 시력이나 판단력이 보통 조종사 이상으로 예민한 것도 아니라고 덧붙인다.

    1947년 6월 24일 화요일, 아놀드는 워싱턴주 셔헤일리스의 센트럴 에어 서비스에서 일을 끝낸 뒤 오후 두 시쯤 셔헤일리스 공항을 이륙해 워싱턴주 야키마로 향했다. 출발은 한 시간쯤 늦어졌는데, 워싱턴주 레이니어산 남서쪽 부근에 추락했다고 알려진 대형 해병대 수송기를 찾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쓰는 1947년 7월 29일 시점에는 이 수송기가 이미 발견됐다고 괄호로 덧붙인다.

    아놀드는 곧장 레이니어산 쪽으로 기수를 잡고 약 9,500피트까지 올라갔다. 레이니어산이 솟아오르는 고원과 거의 같은 높이였다. 그는 고원 위를 한 차례 서쪽으로 훑으며 능선을 따라 수송기를 찾았고, 워싱턴주 애시퍼드가 자리한 협곡 쪽으로 내려가 그 능선 가까이까지 날았다.

    잃어버린 수송기처럼 보이는 것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미네럴이라는 작은 도시 상공에서 오른쪽으로 360도 선회한 뒤 다시 레이니어산을 향해 기수를 돌렸고, 9,200피트 정도까지 다시 고도를 올렸다.

    그날 공기는 흔들림이 거의 없어 비행 자체가 즐거울 만큼 매끄러웠다. 조종사라면 보통 그런 상황에서 그러듯, 아놀드는 야키마 방향으로 기체를 트림한 채 활강에 들어갔다 — 여기서 페이지가 끊긴다. 본문 아래쪽에는 붉은색으로 "COPY"라고 크게 찍혀 있어, 이 자료가 원본이 아닌 사본임을 알려 준다.

  106. p.106

    목격자가 직접 쓴 진술서 2쪽이다. 자신의 위치 바로 동쪽 상공에 머무르며 하늘과 지형을 살피고 있었다고 적는다. 왼쪽 후방 약 15마일 거리, 고도 1만 4천 피트쯤에 DC-4 한 대가 보였다. 하늘과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다. 항로에 오른 지 2~3분 지났을 때 비행기에 밝은 섬광이 반사됐다. 다른 항공기와 너무 가까운 줄 알고 놀라 사방을 살폈지만 반사가 어디서 왔는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 왼쪽, 레이니어산 북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모양이 이상한 항공기 아홉 대가 한 줄로 늘어서 북에서 남으로 약 9,500피트 고도에서 170도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무리는 레이니어산 쪽으로 빠르게 접근했고, 처음에는 제트기일 거라고 짐작했다. 섬광은 바로 이 무리에서 온 것이었다 — 두세 대씩 몇 초 간격으로 살짝 기울거나 진로를 바꿔, 햇빛이 그 표면에 부딪혀 비행기 쪽으로 환하게 튕겨 돌아왔다. 거리가 멀어 처음 몇 초 동안은 모양도, 대형도 분간할 수 없었다. 곧 무리가 레이니어산 가까이 다가왔고,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윤곽이 또렷이 드러났다. 꼬리날개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 이상했지만 어떤 종류의 제트기겠거니 했다. 속도를 재 보기로 마음먹었다 — 레이니어산과 애덤스산이라는 두 지점이 있었고, 공기가 워낙 맑아 약 50마일 떨어진 물체의 대략적인 모양과 크기까지 가늠할 수 있었다. 계기판의 8일짜리 시계 초침이 오후 3시 1분 전을 가리키던 순간, 첫 번째 물체가 레이니어산 남쪽 가장자리를 지나가는 것을 또렷이 기억한다. 항공기가 산 정상에 그토록 바짝 붙어 나는 모습은 그 전에 본 적이 없었기에, 그는 큰 관심을 두고 무리를 계속 지켜봤다 — 문장이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페이지에는 COPY 워터마크가 비스듬히 찍혀 있어 사본임을 알 수 있다.

  107. p.107

    케네스 아놀드 진술서 3쪽으로 추정되는 페이지다. 그는 비행 물체들이 산등성이를 따라 남남동 방향으로 이동했고, 고도는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며 위아래로 천 피트 정도 차이가 있었을 거라고 적는다. 물체들은 마치 서로 연결된 것처럼 비스듬한 사슬 형태로 날아갔고, 거위 떼가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방향은 분명히 유지하면서도 높은 산봉우리들 사이를 들락거렸다. 속도 자체는 처음에는 그다지 놀랍지 않았는데, 미 육군과 공군이 빠른 비행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그를 신경 쓰이게 한 것은 햇빛에 반짝이며 지나가는 동안 꼬리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떤 조종사라도 그런 비행기를 보면 두 번은 다시 쳐다볼 거라고 그는 적는다. 거리는 거의 직각 방향으로 약 20에서 25마일 떨어져 있었다고 추정한다. 그 정도 거리에서 형체가 식별될 정도라면 물체가 상당히 컸을 거라고 본다. 주머니에 있던 코카콜라 병따개 같은 작은 도구를 들어서 자신이 타고 있던 DC-4 항공기와 비교해 봤는데, 물체들은 DC-4보다는 작아 보였지만 폭은 DC-4 동체 양쪽 가장 바깥쪽 엔진을 잇는 너비 정도는 됐을 거라고 추정한다. 관찰을 이어갈수록 그는 점점 더 놀랐는데, 자신은 지상에서든 고고도에서든 거의 모든 비행체에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체들은 레이니어 산과 애덤스 산 사이의 또 다른 눈 덮인 능선을 지나갔고, 맨 앞 물체가 능선의 남쪽 봉우리를 지날 때 맨 뒤 물체가 능선의 북쪽 봉우리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능선 방향으로 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능선의 길이를 가늠해 봤고 약 5마일 정도라고 측정했다. 따라서 이 접시 모양 물체들의 행렬이 적어도 5마일 이상 늘어서 있었다고 본인은 안전하게 가정한다. 페이지 하단을 가로질러 사본 표시가 크게 찍혀 원본이 아닌 복사본임을 드러낸다.

  108. p.108

    케네스 아놀드의 진술서 4쪽이다. 아놀드는 비행 편대의 항로를 정확히 짚을 수 있었다고 적는다. 그쪽 가까이에 약간 낮은 봉우리들이 있었고 반대쪽에는 더 높은 봉우리들이 있어서 그 사이를 지나가는 경로가 분명히 보였다는 것이다. 편대 마지막 기체가 마운트 애덤스 북단의 눈 덮인 능선을 지날 때 그는 시계 초침을 봤고, 1분 42초 만에 그 거리를 통과했음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이 시간 측정이 자신을 동요시키지 않았다고 적는다. 착륙하면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설명을 어떻게든 얻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다수의 기자와 전문가들이 그가 반사광이나 신기루를 봤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아놀드는 그것이 절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비행기 유리창 너머로만 관찰한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옆으로 기울여 창을 열고 아무것도 시야를 가리지 않는 상태로 직접 봤다고 설명한다. 또한 지상에서는 2분이 짧게 느껴지지만 공중에서 10분 동안 조종사는 시야 안의 대상을 50~60번까지 관찰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그는 잃어버린 해병대 수송기를 찾는 수색을 15~20분 더 이어갔고, 그동안 방금 본 광경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적는다. 점점 동요가 커져 빈튼 저수지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살핀 뒤 야키마로 기수를 돌렸다.

    마지막으로 아놀드는 자신이 본 편대 관측의 총 시간이 약 2분 30초에서 3분 정도였다고 적는다. 마운트 애덤스에 도달했을 때쯤에는 이미 형체나 모양을 판별할 수 있는 시야 범위를 벗어났다. 햇빛이 한두 대 또는 세 대의 동체에 반사될 때는 완전히 원형으로 보였지만, 그가 따로 그려 첨부한 그림은 눈 덮인 능선과 마운트 레이니어를 지날 때 관찰한 실제 모양을 자기 능력껏 재현한 것이라고 명시한다. 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사본임을 알리는 COPY 도장이 보인다.

  109. p.109

    1947년 7월 케네스 아놀드가 자신의 목격담을 정리한 진술서의 5쪽이다. 아놀드는 자신이 본 물체들이 거의 수평으로 날 때는 검고 가느다란 선처럼만 보였고, 물체가 뒤집힐 때에야 비로소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이 물체들은 로켓이나 포탄처럼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움직임 없이 거의 일정한 고도를 유지했고, 자신이 아는 일반 항공기와는 다른 형태였지만 어쨌든 일종의 비행기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자신과 비슷한 목격을 한 사람들로 시더시티의 웨스턴 에어라인 직원 세 명, 오클라호마시티의 조종사, 일리노이의 기관사, 보이시의 UP 통신 특파원 존 코를렛, 보이시 데일리 스테이츠먼 뉴스 편집장 데이브 존슨,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소속의 스미스 기장과 부조종사 스티븐스, 마티 모로, 그리고 바로 전날인 1947년 7월 28일 보이시발 서행 105편에서 목격한 찰스 F. 고비언 기장과 잭 하비를 차례로 거명했다. 아놀드는 지상에서 본 묘사는 디스크 모양 물체가 매우 높은 고도에 있지 않은 한 정확하기 어렵고, 4~5초 이상 관찰하기 힘들며 지면 부근의 수분과 먼지가 시야를 왜곡할 수 있는 반면, 공중 관찰자의 묘사는 매우 정확할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미국과 유럽 각지에서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고, 스웨덴과 버뮤다를 비롯한 세계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물체가 목격되어 왔다고 이어간다. 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사본임을 나타내는 큰 도장이 비스듬히 찍혀 있다.

  110. p.110

    캐스케이드산맥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직접 서술하는 진술서 6쪽이다. 글쓴이는 그날 망원렌즈 달린 영상 카메라가 있었으면 무엇이든 내주었을 거라 적고, 앞으로는 그런 카메라를 늘 들고 다니겠다고 말한다. 워싱턴주 야키마(Hariem로 표기) 공항에 착륙한 뒤 친한 친구이자 센트럴 에어크래프트사의 총괄 매니저 알 헌터에게 자기가 본 것을 들려주었더니, 헌터는 차분히 들어 주었지만 농담조로 믿지는 않더라고 적는다. 같은 날 오리건주 펜들턴에 착륙하기 전까지는 두 산봉우리 사이의 거리를 정확히 재 보지 못했고, 펜들턴에서 만난 조종사 친구들에게 본 것을 말했을 때는 비웃거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몇몇은 유도탄이거나 새로운 무기일 수 있다고 말해 주었고, 해외 전투지로 나가기 전 비슷한 모양과 설계의 물체를 볼 수 있다는 브리핑을 받은 적이 있다는 전직 육군 조종사들도 있어서, 글쓴이가 꿈을 꾸거나 미친 게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다고 적는다. 글쓴이는 펜들턴에서 전세 운항을 하는 전직 미 육군 항공대 조종사 헨리 로빈슨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데, 로빈슨은 “당신이 본 것은 우리 정부가 시험 중인 제트나 로켓 추진 비행체이거나, 외국 정부가 시험 중인 것일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목격담은 그날 밤이 다 가기 전 세계 곳곳에서 전화가 걸려올 만큼 빠르게 퍼졌고, 지금까지 비웃거나 못 믿겠다는 전화나 편지는 한 통도 받지 못했으며, 자신이 아는 한 유일한 불신은 신문 지면에 실린 것뿐이라고 한다. 끝부분에서는 이 일을 일부 사람들이 우스갯거리로 만든 것과 달리 자기는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적으면서, 자신이 분명히 무언가를 보았고 그 무엇이 길모퉁이의 존 도나 농장의 피트 앤드루스가 들어 보지 못한 것이라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마지막 줄은 자신이 공개적으로 육군 측에 조사를 요청했음에도 — 으로 끝나며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 빨간 잉크 도장으로 ‘COPY’ 가 찍혀 있어 사본임을 표시한다.

  111. p.111

    타자기로 친 어떤 편지의 7쪽. 글쓴이는 자기 목격담을 FBI나 군에 진지하게 받아들여 달라고 했지만, 관찰한 지 2주가 지나서야 비로소 두 보호 기관 어느 쪽에서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적는다. 글쓴이는 자기가 본 것을 UPI와 AP, 그리고 두 차례 라디오 방송으로 알렸고 그것이 전국적인 추적 소동을 일으켰는데, 그럼에도 군 정보부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군 정보부야말로 그 비행체의 정체로 가장 먼저 의심해 봐야 할 대상이라고까지 말한다. 또한 사람들이 자기에게 온갖 무모한 추측을 해달라고 졸라왔지만, 자기는 이 글에서 확실한 사실에만 근거해서 썼고 그것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자기에게도 세상 다른 누구만큼이나 수수께끼라고 못 박는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자기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를 남긴다. 조종사 면허번호는 333487이며, 자기가 모는 비행기는 와이오밍주 애프턴에서 산악 비행용으로 만들어진 캘에어(Callair) 3인승 단발 고성능·고고도 기종이고, 기체 등록번호는 33355다. 본문 아래에는 글쓴이가 직접 그린 손스케치 네 점이 따로 붙어 있다. 팔각형 윗면이 거울이나 은처럼 매우 밝게 빛났다는 메모, 연기나 수증기 흔적은 없었다는 메모, 편대의 끝에서 두 번째 기체는 약간 작아 보였고 그 모양은 옆으로 길쭉한 형태였다는 메모, 옆에서 본 모습은 검정색이었으며 레이니어 산의 눈을 배경으로 검은 윤곽으로 보였다는 메모다. 문서 전체에 비스듬히 찍힌 빨간 ‘COPY’ 도장은 이 종이가 원본이 아니라 사본임을 알려 준다.

  112. p.112

    1947년 7월 29일, 케네스 아놀드가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의 벤처 프레스 편집장 레이먼드 A. 파머에게 항공우편으로 보낸 편지의 사본이다. 아놀드는 파머가 요청한 자료와 사진, 그리고 자기 약력 스케치를 함께 동봉한다고 짧게 알린다. 편지 위쪽 여백에는 같은 글을 라이트필드 사령관에게도 보냈다는 손글씨 메모가, 아래쪽에는 이 사본이 파머에게 보낸 것과 동일하다는 아놀드의 자필 확인이 적혀 있고, 페이지 하단에는 붉은색으로 COPY 라벨이 찍혀 사본임을 표시한다.

  113. p.113

    미 우정청이 발행한 등기·보험우편 수령 확인 카드(서식 3811)다. 발신인에게 되돌아가는 반송 영수증으로, 우체국이 등기·보험으로 보낸 우편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수신인 서명란에는 레이먼드 A. 파머(Raymond A. Palmer)의 이름이, 대리 서명란에는 로저 P. 그레이엄(Roger P. Graham)의 이름이 손글씨로 들어가 있다. 배달 일자는 1947년 7월 31일이다. 카드 오른쪽 여백에는 우편물 일련번호로 보이는 111-4828172가 적혀 있다.

  114. p.114

    미국 우정성 공식 업무용 등기 우편 회신 카드다. 수신지는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사서함 387, 수취인은 K. 아놀드이며, 등기 번호 1240번으로 처리되었다. 일리노이주 에반스턴 우체국에서 1947년 7월 31일 오후 5시에 소인이 찍혔다. 카드 오른쪽에는 배달 우체국장이 도장을 찍을 자리가 마련돼 있고, 사적 용도로 사용하면 300달러 벌금이라는 경고 문구가 인쇄돼 있다.

  115. p.115

    1947년 8월 14일 오후 5시 18분, FBI 시애틀 지부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루틴 등급 전문이다. 사건명은 브루스 암스트롱과 M. A. 니콜스의 비행 원반 목격, 분류는 내부 보안-X. 8월 12일자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젠서가 보잉 항공기 회사의 브루스 암스트롱과, 시애틀 사우스웨스트 102번가 1125번지의 M. A. 니콜스가 비행 원반을 봤다는 기사를 실었다고 전한다. 시애틀 지부가 두 사람의 목격을 조사한 결과, 암스트롱이 본 것은 보잉 필드 관제탑에서도 함께 목격된 불에 탄 종잇조각이었고, 니콜스가 본 것은 기상 관측 기구로 확인됐다. 자세한 내용은 후속 서한으로 보고하겠다고 적었다. 발신자는 윌콕스. 상단에는 8월 14일 통신과 접수 도장과 텔레타이프 표시가, 하단에는 사건 색인 번호 162-83894-112가 손글씨로 더해져 있다.

  116. p.116

    분홍색 텔레타이프 용지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타자 글자가 뒤로 비쳐 보이지만 읽을 수는 없고, 상단에는 1947년 8월 14일 오후 6시 20분에 법무부 텔레타이프실에 접수되었다는 도장이, 좌측에는 8월 15일 오전 9시 31분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과 9월 27일 오후 3시 55분 법무부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이 회전된 채로 찍혀 있다. 본문이 담긴 면이 아니라 라우팅 흔적만 남은 뒷면이다.

  117. p.117

    1947년 8월 15일 오후 1시 48분, 포틀랜드 FBI 지국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한 통이다. 제목은 〈비행 원반 — 보안 사안 DASH X〉. 오리건주 오션 레이크 인근 애게이트 비치에 사는 존 바틀릿이라는 남성이 8월 7일 밤 11시 30분에 색이 밝은 원반 같은 물체를 봤다고 신고했고, 속도가 너무 빨라 짧은 순간밖에 관찰하지 못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다. 바틀릿은 추후 인터뷰 대상으로 분류됐다. 발신자는 보비트(Bobbitt). FBI 본부 통신과는 같은 날 접수 도장을 찍었고, 사건 파일번호 162-83894로 9월 30일까지 색인·기록 처리했다. 상단 라우팅 칸에는 톨슨·태머·클렉·라드·니컬스·로젠 등 후버 직속 라인 16명의 이름이 인쇄돼 있고, 여백에는 회람 과정에서 남긴 손글씨 머리글자와 결재 표시가 어지럽게 겹쳐 있다.

  118. p.118

    FBI 텔레타이프 수신 슬립의 뒷면으로 보이는 분홍색 종이에, 1947년 8월 15일 오후 5시 53분 FBI 법무부 수신 텔레타이프 부서 도장과 같은 날 오후 6시 48분 LADD 앞으로 접수된 도장이 함께 찍혀 있고, 그 옆에는 27일 오후 4시 30분 내부보안 부서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비스듬히 놓인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라우팅 슬립의 접수·전달 흔적만 남은 페이지다.

  119. p.119

    1947년 8월 7일 밤 9시 30분, 필라델피아 지부가 워싱턴 FBI 본부에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제목은 '필라델피아 상공에서 보고된 비행 물체, 1947년 8월 6일 — 사보타주' 다. 필라델피아 지부는 8월 7일자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가 전날 저녁 시내 상공에서 관측된 비행 물체 기사를 다루었다고 보고하면서, 그 기사에 등장한 목격자들을 직접 면담해 받은 진술을 본부에 전달한다. 진술에 따르면 1947년 8월 6일 오후 10시 45분, 푸르스름한 흰빛으로 타오르는 물체가 필라델피아 상공 약 1천 피트 이상의 고도에서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물체는 약 2초간 지속되는 연기 자국을 남겼고, 통과한 뒤에는 쉭쉭거리거나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격자들은 책임감 있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며, 그 가운데에는 전직 육군 항공대 조종사가 한 명 포함되어 있다. 이 조종사는 동반된 소리가 제트 추진기 항공기가 내는 소리보다 작았다는 이유로 해당 물체가 일반 추진기 항공기는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는 또한 물체의 이동 속도를 추정했는데, 그 부분에서 1쪽이 끝난다. 페이지 상단에는 1947년 8월 7일자 FBI 통신과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본부 간부 회람용 체크 슬립이 그대로 붙어 있다. 하단의 손글씨 'cc: Mr. Ladd / Mr. Baumgardner' 는 사본을 받을 간부 두 사람을 지정한 흔적이다.

  120. p.120

    분홍색 파일 백킹 시트의 뒷면이다. 본문은 없고 FBI 접수 도장 여러 개와 손으로 쓴 접수 메모가 윗부분에 모여 있다. 가장 위 도장은 1947년 8월 8일 오전 9시 56분 법무부 FBI TAMM 앞으로 접수되었음을 가리키고, 그 아래 도장은 같은 해 9월 29일 오전 10시 56분 FBI 내부보안과로 다시 접수되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9월 29일 오전 11시 30분에 접수했다는 손글씨 메모와 약식 서명이 함께 적혀 있다. 오른쪽 위에는 8월 8일 오전 11시 37분 접수를 표시하는 또 다른 도장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페이지 아래쪽으로 핀을 끼운 구멍 두 개와 분홍 종이를 통해 비치는 흐릿한 타이핑 흔적이 보일 뿐, 판독 가능한 본문은 없다.

  121. p.121

    전문(電文)의 두 번째 장이다.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보고로, 문제의 비행체가 시속 약 400~500마일로 움직이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적는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육군·해군 정보 부서가 조사에 들어갔으며, 필라델피아 사무소가 양 군에 새로운 형태의 항공기를 필라델피아 인근에서 시험 운용 중인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해 둔 상태다. 회신은 며칠 안에 올 예정이고, 자세한 내용은 별도의 서한으로 보내겠다고 마무리한다. 발신자는 보드먼(BOARDMAN)이며, 맨 아래에는 "HOLD PLS(보류 바람)"라는 처리 지시가 따로 붙어 있다.

  122. p.122

    FBI 내부 라우팅용 분홍색 슬립의 뒷면이다. 본문은 없고, FBI 텔레타이프 유닛이 1947년 8월 7일 오후 9시 35분에 전문을 받은 시각, 다음 날인 8월 8일 새벽 5시 37분 미 법무부로 넘긴 시각, 그리고 9월 29일 오전 10시 56분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다시 접수한 시각이 차례로 찍혀 있다. 1947년 여름 플라잉 디스크 보고가 FBI 텔레타이프 라인을 통해 법무부와 내부보안과로 어떤 순서로 흘러갔는지 보여주는 라우팅 흔적이다.

  123. p.123

    1947년 8월 20일, 뷰트 지부 SAC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FLYING DISCS' 제목의 부내 메모다. 8월 15일자 본부 텔레타이프에 대한 회신으로, 트윈폴스 'Times News' 8월 18일자 기사와 목격자 A. C. 유리(URIE)가 자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물체를 그린 스케치 한 장을 동봉한다고 알린다.

    유리의 스케치를 보면, 그는 물체의 말려 올라간 바깥 가장자리 두께를 약 1피트로 봤다고 한다. 물체 뒤로 뻗어 나오던 관 모양의 분사 화염도 두께가 약 1피트였고, 적어도 기체 뒷부분까지 이어졌다. 화염은 뒤로 갈수록 가늘어지거나 넓어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유리의 아들 빌리와 키스는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기체 옆면에 매듭처럼 생긴 부분이 있었고, 분사 화염과 기체 옆면 사이로 햇빛이 새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고 진술했다. 화염에서는 연기도 냄새도 나지 않았다.

    유리의 두 아들은 "옆에서 본" 스케치가 물체를 아래에서 위로 더 날카롭게 각진 형태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유리 본인은 더 매끈하고 둥근 곡선이었다고 봤다. 유리는 물체 윗부분이 뾰족하거나 둥근 형태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유리는 처음에 목격일을 목요일이라고 기록했지만, 면담 때는 실제로는 1947년 8월 13일 수요일 오후 1시쯤이었다고 정정했다. 그날 유리는 아들들을 강가에 보내 보트에서 밧줄을 가져오게 했는데, 너무 늦어진다고 느껴 공구창고 밖으로 나가 아들들을 살피러 갔다. 약 300피트 떨어진 곳에서 아들들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유리도 따라 올려다봤다가 자신이 '플라잉 디스크'라 부른 그 물체를 봤다. 잠시 본 뒤 물체는 시야를 가리는 언덕 뒤로 사라졌다고 했다.

    물체는 지상 약 75피트 높이에 떠 있었다. 유리의 집은 스네이크 리버 캐니언 깊은 곳에 있었는데, 그 지점의 협곡은 깊이 약 400피트, 폭 약 1200피트였다. 물체는 협곡 가장자리에서 약 300피트 아래 지점에 있었고, 유리는 협곡 반대쪽 가파른 벽을 배경으로 그 물체를 봤다. 색깔은 하늘색이었고, 그래서 하늘을 배경으로 했더라면 알아보기 어려웠을 거라고 그는 덧붙였다. 봤다는 것 자체가 순전히 우연이었고, 팽이처럼 회전하지는 않았다고도 말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RECORDED', '62-83894 115' 색인 번호, '34 SEP 24 1947' 접수 도장이 남아 있어 본부가 이 보고를 정식 파일에 편입했음을 보여준다.

  124. p.124

    타자로 친 편지의 뒷면이다. 앞면에서 비쳐 보이는 글자가 거울 상으로 흐릿하게 떠 있어 본문은 직접 읽을 수 없다. 상단에는 같은 방식으로 비친 회사 레터헤드 흔적이 남아 있다. 오른쪽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이 여러 개 겹쳐 찍혔는데, 1947년 7월 20일 오전 10시 25분과 오후 1시, 다른 날짜의 오전 9시 12분에 내부 보안 부서가 받았다는 기록이다. 왼쪽 아래에는 연필로 짧은 메모와 날짜가 손으로 쓰여 있다. 페이지 위쪽 두 개의 펀치 구멍은 서류 철에 묶여 있던 흔적이다.

  125. p.125

    사건번호 BT 65-480 보고서의 둘째 장이다. 비행체가 유리(URIE) 농가 위를 지나갈 때, 거의 바로 위를 스쳐 간 노먼 포플러 나무들이 비행기가 지나갈 때처럼 바람에 휘청이는 것이 아니라, 유리의 표현으로 "진공 속에 있는 것처럼 꼭대기가 빙글빙글 돌았다"고 한다.

    여덟 살 키스 유리는 비행체가 협곡을 따라 동에서 서로, 지면 윤곽을 따라 내려오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한다. 열 살 빌리도 거의 동시에 보았다. 두 아이는 비행체가 잠깐 사이에 나무 뒤로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본 뒤 아버지에게 달려갔고, 아버지 역시 그 비행체를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리는 사건을 진술하면서 진지해 보였다. 아내와 딸은 그 시간에 집 안에 있어서 비행체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같은 협곡에 사는 형제에게도 물어보았지만, 그 형제는 식사 중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유리와 두 아들 모두 그 디스크 같은 물체를 이전에 본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했다. 면담 당시 유리는 술에 취하지 않은 중년 남성으로 보였다.

    이 사건을 처음 특별수사관들에게 알린 "타임스 뉴스" 기자 존 브로스난도 유리의 진술이 진지해 보였다고 말했다.

    L. W. 호킨스에 대해서는 추가로 접촉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호킨스와 함께 있던 J. H. 브라운을 이미 면담했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에서 브라운의 이름이 빠진 것은, 호킨스와 브라운이 새먼 댐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시각에 브라운은 트윈폴스에서 근무 중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의 진술은 단순했다. 호킨스와 함께 굉음을 들었고 위를 올려다보니 매우 높은 고도에서 비행하는 비행체 두 대가 보였다는 것이다. 브라운은 고도를 4,000피트에서 6,000피트 사이쯤으로 추정했지만, 비행체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실제로는 수 마일 떨어져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호킨스와 자신이 무언가를 보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비행기 두 대였다고는 도무지 믿기 어렵다고 진술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작성자 식별자 P.JG:FO'S 와 첨부물 표기 Enc. (2) 가 있다.

  126. p.126

    텍스트 없는 황갈색 봉투 또는 폴더의 빈 면이다. 상단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보이고 하단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으로 잘려 있다. 문서철의 표지나 간지로 추정된다.

  127. p.127

    FBI 파일 안에 들어 있던 동봉물(enclosure) 식별 태그다. 노란 봉투 또는 봉투 라벨 형태로, 양쪽 상단에 빨간 글씨로 'ENCLOSURE' 가 인쇄되어 있고, 가운데 위쪽에는 끈을 묶기 위한 둥근 구멍이 뚫려 있다. 그 아래 손글씨로 사건번호 '62-83894-115' 가 적혀 있어, 이 동봉물이 FBI 파일 62-83894 의 115번 항목임을 알린다.

  128. p.128

    1947년 8월 15일자 트윈폴스 타임스 1면 기사다. 매직밸리와 전국이 한바탕 비행접시 보도에 휘청이다 막 정신을 차리려는 참에, 트윈폴스 카운티 주민 두 명이 또다시 원반을 봤다며 생생한 증언을 내놓았다. 가장 자세한 증언은 블루레이크 목장에서 서쪽으로 6마일 떨어진 스네이크강 협곡에서 송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A. C. 유리에게서 나왔다. 8월 13일 수요일 오후 1시, 유리는 협곡 바닥에서 약 75피트 높이로 스네이크강 협곡을 따라 시속 약 1,000마일로 미끄러지듯 날아가는 비행접시를 봤다고 말한다. 같은 날 오전 8시 30분, 트윈폴스 카운티 위원이자 파일러 출신 전직 보안관 L. W. 호킨스도 트윈폴스 남서쪽 50마일 지점 새먼댐 인근에서 비슷한 원반 두 개가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 유리는 두 아들 키스(8세)와 빌리(10세)가 강 북쪽에서 보트로 건너오는 중이었고, 늦어지는 게 걱정돼 강가로 내려간 순간 약 300피트 거리에서 거의 같은 높이로 옆모습을 봤다고 했다. 두 아들도 아래쪽에서 약 45도 각도로 같은 물체를 봤다. 기사에는 화가 빅 괴르첸이 그린 비행접시 상상도가 실려 있는데, 측면도·저면도·정면도 세 각도로 폭 20피트, 두께 10피트 크기에 양옆에서 불꽃을 뿜는 형태로 묘사돼 있다.

  129. p.129

    아이다호주 트윈폴스의 지역지 〈Times-News〉 한 면을 잘라낸 신문 스크랩이다. 가운데 "Twin Falls News in Brief" 단신 묶음에 마을 사람들의 짧은 소식이 늘어선다. 포틀랜드의 오렐리아 스택이 필 A. 쇼 부부 집을 찾는다는 방문 예고, 루디 와그먼 파이퍼 부부에게 딸이 태어났다는 출산 알림, 모스크바 아이다호대학교 여름학기를 마친 밴 엥겔런 형제의 귀향 소식이 이어진다. 트윈폴스 고교의 스페인어 교사였다가 캘리포니아 사우스패서디나로 옮긴 캐슬린 페이비의 방문, 리전홀 근처에서 차를 도난당했다고 신고했다가 18분 만에 되찾은 클리퍼드 J. 로스의 사건, 도널드 스펜서 장례식에 모인 잉글우드·오클리·솔트레이크시티 등 타지 조문객 명단도 함께 실린다. 켄네스 미라클과 에리아 제이 피어슨이 카운티 청사에서 혼인신고서를 받았다는 한 줄, 휴가에서 돌아온 성공회 사제 E. 레슬리 롤스 부부 소식, 캔자스시티로 돌아간 호프먼 가족, 보스턴과 뉴욕으로 떠난 존 호스 부인과 조카, 자매를 만나러 덴버에서 온 로버트 스완 부인 이야기까지 같은 단신 묶음에 들어 있다. 같은 면 오른쪽 위 "Four Parleys Set on Cassia School Plan" 기사는 카시아 카운티의 학교 통합안을 설명한다. 14개 지구를 네 개 학교구로 묶어 다섯 명의 수탁자를 두고, 1구는 오버랜드 도로와 벌리-오클리 도로 서쪽 벌리 학교구, 2구는 그 동쪽, 3구는 데클로·앨비언·스프링데일·뷰, 4구는 오클리·베이슨·몬디언, 5구는 알모·헤이즐·말타·엘바·서블렛·앨보·브리지와 미편입 지역을 묶는 구도다. 그 아래에는 71세의 벌 지역 배관공 해리 실베스터 파이퍼의 부고가 실렸다. 응급 수술 합병증으로 카운티 종합병원에서 숨졌고, 캔자스 엠포리아 출신으로 1926년 아이다호로 이주했다는 약력, 유족 명단이 따라온다. 웬델에서는 출생 직후 사망한 영아 마리안 케이 엔즈의 매장식이 목요일 아침 묘지에서 치러졌다는 짧은 부고가 붙고, 그 옆에는 세계 장거리 자동차 속도 기록 보유자 앱 젠킨스가 보너빌 소금사막에서 새 모빌 스페셜 차량으로 기록 도전을 준비 중이라는 웬도버발 AP 단신이 함께 자리한다. 좌측 하단에는 38세 윌리엄 H. 멍거의 사망 소식이 실리기 시작하고, 우측 맨 아래는 "Traffic Fines" 코너의 머리만 보인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The Hospital" 이라는 별도 단신 코너 제목도 남아 있다.

  130. p.130

    FBI 봉투 겉면이다. 왼쪽 위에 미 법무부 연방수사국의 발신 표시와 "공무용" 문구가 인쇄되어 있고, 가운데에는 "본부 회부 동봉물 / 뷰트 파일 65-480"이라는 라우팅 도장이 찍혀 있다. 그 아래에는 붉은 색연필로 "62-83894-115"라는 본부 측 파일 번호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본문이 들어 있는 문서가 아니라, 뷰트 지국이 본부로 자료를 동봉해 보낼 때 사용한 봉투 자체다.

  131. p.131

    신문 스크랩 한 컷이다. 헤드라인은 "'Saucer' Seen Flying Down Snake Gorge" — 누군가 스네이크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비행접시를 봤다는 목격담을 짧게 다룬 기사다. 본문은 좁은 단 한 줄짜리 칼럼으로, 해상도가 낮아 단어 단위로는 옮겨 적기 어렵다. 목격 시각, 목격자 이름, 비행체의 속도와 진로 같은 표준적인 1940~50년대 UFO 목격 기사의 요소들이 단편적으로 보인다.

  132. p.132

    신문 만화 지면을 세로로 길게 오려낸 스크랩이다. 위에서부터 'OUT OUR WAY', 'SIDE GLANCES', 'CARNIVAL' 세 편의 한 컷 만화가 나란히 실려 있고, 가운데 'SIDE GLANCES' 컷에는 "귀로 운전하는 버릇만 버리면, 엔진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들릴 거야"라는 캡션이 달려 있다. UAP 자료 묶음에 섞여 들어온 같은 신문 지면의 만화 칼럼으로, 본문 사건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부속 이미지다.

  133. p.133

    FBI 파일 62-83874-115 에 편철된 한 페이지에는 목격자가 직접 그린 비행접시 스케치와 짧은 진술이 함께 들어 있다. 스케치 위에는 "비행접시 근접도 — 테이블러 · 맥엘하니" 라고 적혀 있고, 접시 모양 옆으로 길이 약 6m, 높이 약 2m, 그리고 접시 표면의 "움푹 들어간 자국 또는 음향 장치" 라는 메모가 달려 있다. 본문에서 목격자는 "이거 헬리콥터 부대" 가 스네이크 강 협곡을 따라 고도 약 30m, 시속 약 160km 로 내려가는 장면을 바라본 거리 약 90m 지점에서 접시의 측면을 보았다고 적었다. 자기 아래쪽 강가에 있던 동행 키스 비 브리어리 등 두 사람도 같은 장면을 약 45도 각도로 올려보면서 접시의 바닥과 옆면을 함께 보았고, 일행 모두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접시는 협곡 위쪽 약 400m 거리에서 처음 나타나 일행이 있던 지점에서 약 1.6km 떨어진 곳까지 지나갔으며, 색은 옅은 하늘색 한 가지에 동체 옆면의 "테이블러" 부분만 붉게 타오르듯 빛났다고 묘사한다. 접시는 협곡 바닥의 굴곡을 따라 오르내리며 비행했고, 목격자는 "기계로 조종되는 게 분명하고, 동력은 원자력이리라 — 지나갈 때 소리는 거의 없이 휙 하는 정도였으니까" 라는 자기 추측으로 진술을 닫는다. 왼쪽 여백에는 "동행한 두 사람은 강 왼쪽에서 보트로 강을 건너오는 중이었다" 라는 짧은 메모가 세로로 적혀 있다.

  134. p.134

    A.C. 유리가 직접 그린 비행 원반 스케치다. 위에서 본 모습, 옆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을 각각 파란 펜으로 그렸고 크기를 함께 적어 놓았다. 옆모습은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돔 형태로 높이 10피트, 길이 20피트로 표시했고, 아래에서 본 모습은 길쭉한 캡슐 형태에 너비 10피트, 길이 20피트로 표시했다. 그림 아래에는 손글씨로 사건 정황을 적었다. 목요일 오후 1시에 스네이크강 협곡을 따라 내려가는 비행 원반을 지상에서 약 75피트 위 거리에서 보았으며, 속도는 시속 1000 정도였고 소음은 거의 없이 휙 하는 소리만 내며 지나갔다고 적었다. 마지막 줄에 "A.C. URIE — (owns Farm)"이라 자필 서명과 신분을 함께 남겼다.

  135. p.135

    1947년 8월 20일 FBI 본부 안에서 E. G. 피치가 D. M. 래드에게 올린 사무 메모다. 피치는 7월 24일자와 7월 16일자 메모 사본 두 건을 함께 붙인다고 알린다. 두 메모는 텍사스 댈러스 RCA 현장 엔지니어인 바이런 새비지(주소 오클라호마시티 N.W. 29번가 416번지)와 아이다호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사서함 387)에 관한 것이다. 두 자료는 육군 항공정보부 슐겐 장군이 연락계 특수요원 S. W. 레이놀즈에게 직접 건넨 것이라고 한다. 슐겐은 두 사람이 이른바 '비행 원반' 을 처음 목격한 인물 축에 든다며 FBI 가 이들의 배경을 조사해 주기를 요청했다. 조사 방향은 두 가지로 잡아 달라는 주문이다. 첫째, 둘 중 누구라도 체제 전복적 배경이 있는지. 둘째, 목격담을 신고한 데 다른 숨은 동기가 있었는지. 피치는 이 사안을 국내안보부서로 넘기자고 권고하며 메모를 맺는다. 우측 여백의 배포 명단에는 톨슨·E. A. 탬·래드·니콜스를 비롯한 FBI 본부 고위 간부 이름이 줄지어 적혀 있고, 하단에는 9월 23일자 FILE 스탬프와 함께 사건 번호 62-83894-116 이 빨간 잉크로 굵게 새겨져 있다.

  136. p.136

    1947년 7월 24일, 오클라호마시티의 팅커필드 OCAMA 보안담당관 앞으로 보낸 사본 메모(문건번호 #5724-I)다. 주제는 댈러스 RCA 현장 엔지니어 바이런 R. 새비지가 오클라호마시티 상공에서 봤다고 주장한 비행 원반 건이다.

    조사관은 7월 23일 새비지의 자택(오클라호마시티 NW 29번가 416번지)을 찾아가 그를 면담했다. 새비지는 36세 기혼이고 자녀 한 명을 두었으며, 단발 육상기 자격의 자가용 조종사 면허(39101번)를 갖고 있다. 본인 진술로는 전자공학·음향공학·항공학을 깊이 공부해 왔고, 현재 직업은 댈러스 RCA의 현장 엔지니어로 극장 음향설비 설치 일을 맡고 있다.

    새비지는 1947년 5월 17일에서 21일 사이 어느 날 해 진 직후 남쪽 하늘에서 작은 비행기로 보이는 물체를 봤다고 진술했다. 그때 해는 막 졌고 달은 아직 뜨지 않았다. 그와 아내가 NW 29번가 416번지 자택을 막 나와 진입로의 차에 올라타려던 참이었고, 시간은 저녁 8시 30분에서 9시 사이로 짐작된다. 오클라호마시티 시내의 불빛이 그 물체에 반사되어 보였다. 처음 봤을 때 물체는 남쪽 약 160도 방향에 있었고,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 아내에게 “큰 흰 비행기가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물체가 45도 각도까지 들어왔을 때 새비지는 그것이 통상의 비행기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처음에는 타원형이었다가 가까워질수록 완벽한 원형으로 보였고, 납작했다. 본인이 보기엔 원반 형태였고 구체로 보이지는 않았다. 지름 대 두께 비율은 대략 10대 1로, 가운데가 더 두꺼워 보였지만 확언하지는 못했다. 고도는 1만에서 1만 8천 피트 사이로 추정했고, 꼬리 자국은 남기지 않았다. 부피는 같은 고도의 B-29 폭격기 여섯 대를 합친 정도였다고 했다. 시야에 머문 시간은 약 15~20초였고, 속도는 제트추진 항공기의 세 배쯤으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FBI 사건 번호 62-83894-116과 ENCLOSURE 도장이 있어, 이 문서가 별건 파일에 부속물로 편철된 사본임을 보여준다.

  137. p.137

    1947년 7월 24일 오클라호마시티 항공자재구역(OCAMA) 팅커 비행장 보안관에게 보낸 메모(파일번호 3784-1)의 본문이다. 목격자 새비지는 비행 물체에 돌출부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물체가 지나간 뒤 공기가 빠르게 흐르는 듯한 쉭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지만, 소리가 크지도 길지도 않아 자신의 상상이나 기대였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아내를 불러 함께 보려 했으나 아내가 초점을 맞추기 전에 물체는 이미 사라졌다. 새비지는 물체가 멀어지면서 크기와 속도가 줄어들었고, 진북 기준 350도 방향으로 이동했으며, 줄곧 서리 같은 백색을 띠었다고 했다. 그는 1924년부터 조종사 자격을 보유했고 1929년부터 비행을 해 왔으며, 추가 조사에 어떤 식으로든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그가 본 물체는 절대 유성이 아니었고, 급진적으로 설계되어 동력원이 원자력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새비지 본인의 결론이었다. 메모는 미 육군 방첩대 소속 칼만 D. 사이먼(Kalman D. Simon)의 이름으로 작성되었다.

  138.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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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 p.139

    보고서 마지막 장이다. 첫 단락은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인용을 마무리하며, 진술자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도 한마디도 하지 않겠다"고 한 이유를 설명한다 — 언론이 그를 너무 심하게 조롱한 탓에 미국 국민 대다수의 눈에 그가 사실상 멍청이로 비치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아래로 별첨 1건 — Exhibit "A" — 이 함께 간다고 표시한 뒤, 작성자 서명란에 제4공군 방첩대 특별요원 프랭크 M. 브라운(Frank M. Brown, S/A, CIC 4th AF)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의 빨간 CONFIDENTIAL 도장, 우상단의 사건 번호 4AF 1206 I, 하단의 FBI 파일 번호 64-83894-116 정도가 메타 정보로 함께 보인다.

  140. p.140

    표지에 COPY 도장과 CONFIDENTIAL 빨간 도장이 찍힌 케네스 아널드(Kenneth Arnold) 본인 작성 신상 진술 첫 장이다. 제목은 "SOME LIFE DATA ON KENNETH ARNOLD". 아널드는 1915년 3월 29일 미네소타 수베카에서 태어났다고 적는다. 아버지는 에드워드 어브 아널드, 어머니는 결혼 전 성이 버사 E. 바든. 여섯 살 때 가족이 몬태나 스코비로 이주해 자작농장을 일궜고, 할아버지 롤런드 C. 아널드 역시 같은 스코비에서 자작농을 했으며 몬태나 상원의원 버튼 K. 휠러와 함께 정계에서 꽤 알려진 인물이었다고 한다. 학교는 노스다코타 마이놋에서 초·중·고를 다녔다. 열두 살에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 열네 살이 되기 전 이글 스카우트까지 올랐고, 당시 스카우트 책임자였던 H. H. 프레스콧은 이후 캔자스 캔자스시티에서 보이스카우트 지역 커미셔너를 맡았다. 운동 쪽에서는 1932년과 1933년 노스다코타 주 올스테이트 엔드로 뽑혔고, 1932년에는 미국 올림픽 다이빙 트라이얼에 출전했다. 1932~34년 동안은 적십자 라이프세이빙 시험관으로 활동하면서 스카우트 캠프와 마이놋 시영 수영장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쳤다. 미네소타 대학교에 진학해 닐스 소프 코치 아래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버니 비어먼 감독 아래에서 풋볼을 뛰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풋볼은 더 이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풋볼 코치였던 글렌 L. 자렛은 그 시점 노스다코타 대학교 풋볼 감독으로 있었다. 학비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그래도 학업을 이어가려는 의지가 있었다 — 페이지 끝에서 문장이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FBI 문서번호 62-83894-116이 손으로 적혀 있다.

  141. p.141

    케네스 아널드 본인의 신상 진술서 두 번째 쪽이다. 위·아래에 빨간 도장 결로 CONFIDENTIAL 이 찍혀 있고 왼쪽 위에 COPY 표시가 보인다. 아널드는 어릴 적 노스다코타 미놋에서 운동을 했고, 1930년에는 라이언스 클럽 도그 더비에서 자기 개와 함께 1등을 했다고 적었다. 1938년에는 콜로라도 리틀턴의 자동 소방장비 제조사 레드 코멧에 입사했고, 1939년 서부 일부 지역 지구 매니저로 승진했으며, 1940년에는 자체 회사인 그레이트 웨스턴 파이어 컨트롤 서플라이를 차렸다고 한다. 이후 독립 소방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서부 5개 주 농촌 지역에 자동·수동 소방장비를 직접 취급·유통·판매·설치해 왔다고 진술한다. 비행 이력은 미놋 시절 얼 T. 밴스에게 첫 비행 교습을 받으면서 시작됐는데, 당시 비용이 비싸 한동안 본격적으로 날지 못했고 1943년에야 다시 비행을 이어갔다. 조종사 자격은 포틀랜드 CAA 선임 검사관 에드 리치로부터 받았으며, 지난 3년간 자기 비행기를 직접 보유한 채 담당 권역을 한 달에 40~100시간씩 날아왔다고 했다. 1947년 1월에는 고고도 이륙과 짧고 거친 활주로 운용을 염두에 둔 신형 캘에어 항공기를 새로 샀다고 적었고, 본인이 하는 비행 방식에는 상당한 (다음 쪽으로 이어지는 서술이 잘림) 능력이 필요하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142. p.142

    사본으로 표시된 「케네스 아놀드 생애 자료」 2쪽 단편. 상단과 하단에 빨간색으로 CONFIDENTIAL 도장이 가로줄로 찍혀 있다. 아놀드 본인이 자신의 비행 이력을 설명하는 대목으로, 자기 일터의 비행 환경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다음과 같이 전한다. 비행기를 다치지 않고 어지간한 소 방목지에 내렸다 다시 뜨려면 상당한 숙련과 판단력이 필요하다. 일하는 지역의 활주로는 매우 제한적이고, 들판과 착륙 지점의 고도도 매우 높다. 지금까지 산악 초원의 소 방목지에 823번 착륙했고, 1천 시간이 넘는 비행 동안 가장 큰 사고는 타이어 펑크 한 번이었다고 적는다.

  143. p.143

    1947년 8월 14일 오후 5시 21분, FBI 시애틀 지국이 본부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제목은 "L. R. 브러멧, 시드 데커. 플라잉 디스크. 국가안보-X." 시애틀 포스트인텔리전서가 같은 날 보도한 기사를 그대로 옮겨 정리한 내용이다. 워싱턴주 레드먼드의 L. R. 브러멧과 시드니 데커가 8월 13일 오전 9시쯤 비행 원반 두 개를 봤다는 이야기다. 데커는 레드먼드 우체국 근처에 서 있다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밝은 물체 두 개를 봤다고 진술했다. 날개와 꼬리가 없고 양 끝이 가늘어지는 모양이었고, 비행기 보조연료탱크와 닮았으며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두 물체는 매우 밝은 빛을 내며 레드먼드 상공을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살짝 뒤쪽, 살짝 위쪽에 자리잡은 채 같은 속도로 약 8초간 비행하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반 항공기가 다니는 고도보다 높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브러멧은 자신이 먼저 물체를 발견해 데커에게 알리고 마미 잉글리시 부인에게도 가리켜 보였다고 했다. 브러멧은 두 물체가 레드먼드 상공 북동쪽 45도 각도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고, 본문은 여기서 끊긴다. 상단에는 통신과 접수 도장과 함께 손글씨 라우팅 표시가 있고, 하단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와 9월 접수·등록 도장이 찍혀 있다.

  144. p.144

    분홍빛 표지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페이지 아래쪽에 거꾸로 찍힌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접수 도장 두 개만 보인다. 하나는 1950년 9월 15일 오전 9시 31분, 다른 하나는 9월 27일 오후 4시 19분 접수 표시다. 윗쪽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145. p.145

    FBI 전문 두 번째 장으로, 발신자는 윌콕스(WILCOX), 수신은 워싱턴 본부이며 접수 표시는 오후 9시 28분이다. 브러멧은 물체가 비행기보다 최소 세 배 빠르게 이동했다고 진술했고, 자신은 그 물체를 5초에서 8초가량 지켜보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그의 묘사에 따르면 두 물체는 소리가 없었고 날개나 꼬리가 없었으며 알루미늄보다 가벼워 보였고 양쪽 끝이 가늘어지는 모양이었다.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조금 뒤, 조금 위에 있었고 둘은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다만 그는 물체가 납작한 형태인지 둥근 형태인지는 판단하지 못했다. 옆에 있던 마미 잉글리시(Mamie English) 부인은 브러멧이 가리킨 뒤에야 하늘을 잠깐 올려다봤다고 진술했고, 빠르게 움직이는 은색 공 두 개로 보였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묘사를 내놓지 못했다. 전문은 "END / SHOLD PLS"로 마무리되며 워싱턴 FBI 본부 회신을 요청한다.

  146. p.146

    1947년 8월 14일 오후 9시 29분 수신 텔레타이프의 뒷면 스캔이다. 상단에 "RECEIVER TELETYPE UNIT" 수신 스탬프와 날짜·시각이 찍혀 있고, 왼쪽 여백에는 90도 돌아간 두 번째 접수 스탬프 — 8월 15일 오전 9시 37분, FBI 내부보안 (Internal Security) 라인 — 가 보인다. 분홍색 박엽지 두 구멍이 뚫린 사본 용지이며, 본문이라 부를 만한 텍스트는 없다. 핑크 종이 너머로 앞면 텔레타이프 본문이 거울상으로 비쳐 보이지만 알아볼 만큼 선명하지 않다. 즉 이 페이지 자체는 같은 전문의 라우팅·접수 흔적을 보여주는 행정 슬립에 해당한다.

  147. p.147

    1947년 9월 20일자로 시카고 FBI 특별수사책임자(SAC)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주제는 비행 원반과 정보원 리처드 셰이버. 8월 11일자 본부 지시에 따라 일리노이 릴리레이크 일대를 조사한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맥헨리 카운티 보안관 프레드 메이는 릴리레이크 지역에서 비행 원반 신고를 접수한 적이 없고, 셰이버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기록이나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같은 동네 부보안관 프랭크 켈러는 셰이버를 개인적으로 안다며, 그를 "미스터리 소설로 성공한 작가"라고 표현했다. 정신 이상이라는 소문은 들은 바 없고, 자신은 셰이버를 멀쩡한 시민으로 본다고 진술했다. 릴리레이크 부동산회사 직원 R. 라운스는 셰이버 부부에게 두 차례 부동산을 매매한 적이 있어 잘 아는 사이라고 했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정보는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셰이버 본인 면담에서 그는 자신이 시카고의 지프-데이비스 출판사가 내는 잡지 「어메이징」의 간판 미스터리 작가이며, 편집장은 레이먼드 파머라고 밝혔다. 면담을 시작하자마자 셰이버는 "파머가 이미 FBI가 비행 원반 건으로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고 말해줬다"고 먼저 말했다.

    셰이버는 육군성에 전보를 보낸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잡지의 수많은 독자 중 누군가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소설관을 설명한다 — 지구 내부에는 거대한 동굴들이 있고, 그 동굴은 한때 초인적 종족이 살았던 곳이며, 그들은 이미 다른 행성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그는 이 동굴 영역을 "레무리아"라고 부른다. 동굴 안에는 아직 가치 있는 기계와 자원이 남아 있고, 비행 원반은 사실 그 레무리아인들이 다른 행성에서 돌아와 자기 기계를 회수하려고 타고 다니는 "우주선"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셰이버는 이 이론이 「어메이징」 독자층 사이에서 폭넓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고 덧붙였다.

    그는 면담 중 1947년 8월 5일자 「시카고 타임스」 기사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기사에 따르면 1947년 6월 24일 워싱턴 주 해안에서 떨어진 머리(Murray) 섬에서 정체불명의 폭발이 일어났고, 당국은 유도탄 또는 로켓이 원인일 것으로 추정했다는 것이다. 셰이버는 그 폭발 날짜가 민간 파일럿 케네스 아널드가 아이다호 보이시에서 "세계 최초의 비행 원반"을 목격한 날과 같은 날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페이지 좌측 하단의 "COPIES DESTROYED 270 NOV 18 1964" 도장은 이 사본이 1964년에 폐기 처리되었음을 알린다. 우측 하단 접수 도장 "62-3824-118"은 FBI 본부 파일 번호다.

  148. p.148

    본문이 없는 빈 문서 뒷면 스캔이다. 종이 위쪽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아래쪽에는 거꾸로 찍힌 FBI 파일 도장이 비쳐 보인다. 도장에는 "INTERNAL SECURITY" 분류와 파일 번호 64-44191, DE 14- 등이 들어가 있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연필로 흘려 쓴 손글씨 메모와 날짜로 보이는 표시가 남아 있다.

  149. p.149

    1947년 9월 20일 FBI 국장에게 보내는 "비행 원반" 건 보고서의 둘째 장이다. 보고서는 기사 내용을 이어 정리한다. 당시에는 비행 원반과 머레이섬 폭발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다고 여겨졌고, 시카고의 잡지 편집자 레이먼드 파머가 아놀드를 고용해 그 폭발을 조사하고 "덮도록" 시켰다고 한다. 또 1947년 8월 1일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육군과 해군 관계자들이 모여 머레이섬 폭발과 비행 원반 출현 사이의 관계 가능성을 논의했고, 아놀드도 이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되어 있다. 회의에서는 머레이섬 폭발 현장에서 가져왔다고 하는 용암산화 금속 표본이 제출되었다. 회의 직후 조종사 두 명이 그 금속 표본을 싣고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로 향했는데, 비행기가 해밀턴 필드 근처에서 추락했고, 싣고 있던 용암산화 금속이 연소를 일으켜 폭발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보고서는 이 기사를 근거로, 셰이버의 고용주인 파머가 처음부터 비행 원반 출현을 "이용"해 셰이버 이야기의 매력을 키우려 했을 가능성을 지적하며, 비행 원반 이론 자체가 파머와 셰이버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 있다고 적는다. 문서 하단에는 작성자 이니셜 OAG:slb 와 파일 번호 100-18996 이 보인다.

  150. p.150

    1947년 9월 17일, 앵커리지 FBI 특별수사관(SAC)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ks)'이고, 1947년 7월 30일자 본부 회람 42호에 대한 회신이다.

    알래스카 포트 리처드슨의 알래스카 사령부 정보국장실로 미 육군 장교 두 명이 찾아와, 시속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가로지르는 물체를 목격했다고 신고했다는 내용이다.

    첫 번째 장교는 자신이 먼저 이 비행 물체를 발견하고 두 번째 장교에게 가리켜 보였다고 진술했다. 물체의 모양은 원반이나 디스크라기보다는 구체에 가까웠고, 세부까지 묘사하기는 불가능하지만 지름은 2~3피트(약 60~90cm)쯤으로 보였으며, 하늘에 증기 자국 같은 것은 남기지 않았다.

    두 장교는 함께 물체의 고도를 추정해 보려 했는데, 인근에 배치된 기상반의 자료로는 당시 구름이 1만 피트 이상에 흩어져 있었고, 문제의 물체는 그 구름층 아래로 날아가고 있었다. 첫 번째 장교는 물체가 금속성으로 보였으며 흔한 항공기처럼 은색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장교의 진술도 대체로 같았다. 다만 그는 물체가 시야에 머문 시간이 15~20초가량이었고, 발견 당시 어떤 항공기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로 정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장교는 물체의 지름을 약 10피트(약 3미터)로, 보통 밤하늘의 보름달 절반 크기쯤으로 추정했다. 고도는 첫 장교와 비슷하게 보았으나, 자신이 본 크기를 감안하면 3,000~4,000피트(약 900~1,200미터)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고 보았다. 물체는 옆면을 보이며 지나갔고, 회전하거나 빛을 반사하는 흔적은 없었다. 색은 광택 없는 무광 금속처럼 보였다고 했다.

    문서 하단에는 'RECORDED 62-83894-119' 도장과 '1964년 11월 18일 사본 파기(COPIES DESTROYED)'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우측 여백에는 'Majors Carlon[?] 9/23/47 통보'라고 적은 손글씨가 있어, 보고를 받은 지 엿새 뒤 관련 소령들에게 내용이 전달됐음을 보여 준다.

  151. p.151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앞면에 찍힌 FBI 접수 도장과 "INTERNAL SECURITY" 라벨, 시각 표시가 종이 너머로 비쳐 좌우가 뒤집힌 채 흐릿하게 드러난다. 상단에는 철 구멍 두 개와 잉크 얼룩이 보인다.

  152. p.152

    1947년 9월 17일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플라잉 디스크" 건 보고서의 한 페이지다. 결론부에서 작성자는, 두 번째 목격 장교가 이 물체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로 "분명히 바람을 거슬러 비행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적는다. 이어서, 이 물체가 목격된 정확한 날짜는 자기 사무실로 통보되지 않았고, 사건이 본부의 관련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본부에서 별도로 요청하지 않는 한 이 사무실에서 더 이상의 조사는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문서 하단에는 사건 번호 100-1493 과 작성·타이핑 담당자 약자 NES:DEW 가 붙어 있다.

  153. p.153

    필라델피아 SAC 가 1947년 9월 15일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실 메모로, 표제는 "필라델피아 상공에서 보고된 비행 물체, 1947년 8월 6일, 사보타주" 다. 8월 7일 전문에 대한 회신이다.

    필라델피아 호바트 가 2114번지에 살며 체스트넛 가 1524번지의 조지 H. 그린월트 제조 회사에 다니는 엘리너 내들 양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47년 8월 6일 오후 10시 30분에서 10시 45분 사이, 그는 셀레시아 파인 양과 함께 집 계단에 앉아 있었다. 북쪽을 보고 있던 중 크고 하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남쪽을 향해 가는 것을 보았다. 물체가 공중을 지나간 직후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아주 크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들렸다. 이 흰 물체는 지나간 자리에 회색빛이 도는 가느다란 연기 줄을 남겼다.

    알링턴 가 5617번지에 살며 P.S.F.S. 빌딩 1140호의 프레스먼 앤드 거트먼 사에 다니는 셀레시아 파인 양은 1947년 8월 6일 저녁 10시 45분경 내들 양의 집 계단에 앉아 그와 대화 중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내들 양이 말을 갑자기 멈추고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파인 양은 남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내들 양의 표정 변화를 알아챈 뒤에도 하늘에서 아무 물체도 보지 못했다. 다만 약한 윙윙거리는 소리는 들었다고 한다.

    밴커크 가 1440번지에 사는 보험 설계사 존 스나이더는 과거 육군 항공대에서 B-24 조종사로 복무했던 인물로,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1947년 8월 6일 오후 10시 45분경 그는 아내와 함께 집 계단에 앉아 있었고, 이웃인 켈리 가족이 방문 중이었다. 모두 동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스나이더는 푸르스름한 흰 화염을 내뿜으며 공중을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를 보았다. 물체는 북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육군 항공대 경험을 토대로 그는 물체가 1,000피트에서 3,000피트 사이 상공에서, 시속 400마일에서 500마일 사이의 속도로 움직였다고 추정했다. 물체는 공중을 지나는 동안 고도를 잃지 않았고, 지나간 자리에 연기 또는 응결 흔적을 남겼는데 약 2초 동안 유지되었다. 통과할 때는 쉭쉭거리는 소리가 동반되었으며, 이 소리는 적당한 크기로 로켓이 지나갈 때 동반되는 소음만큼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페이지 우상단에는 "Flying Saucer" 라는 손글씨가 추가되어 있고, 하단에는 1947년 9월 접수·색인 도장과 함께 "COPIES DESTROYED NOV 18 1964" 라는 사본 폐기 표시가 보인다.

  154. p.154

    어떤 FBI 비망록의 뒷면이다. 앞면에 친 타자 본문이 종이를 통해 거울상으로 비쳐 보이고, 직접 읽을 수 있는 것은 이 뒷면에 따로 찍힌 접수 도장 세 개뿐이다. 세 개 모두 F.B.I. INTERNAL SECURITY 의 RECEIVED 도장으로, 같은 문서가 FBI 국내보안부서를 거치며 여러 차례 접수되었음을 보여 준다. 날짜는 흐릿하지만 1947년 8월~9월 구간으로 읽히며, 각 도장에는 시각도 같이 찍혀 있다. 왼쪽 아래에는 손글씨 서명 또는 머리글자가 한 줄 있다.

  155. p.155

    1947년 9월 18일자로 FBI 국장에게 올라간 보고서 두 번째 장이다. 필라델피아 경찰청 퇴직 경관 존 J. 켈리(1442 Vankirk Street) 의 진술이 먼저 실린다. 1947년 8월 6일 밤 10시 45분쯤, 켈리와 아내는 집 계단에 앉아 있다가 거대한 폭죽 같은 물체가 공중을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본다. 소리는 없었고, 남쪽 방향으로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약 30미터(100피트) 정도 불꼬리를 끌었다. 그날 밤은 맑았고 폭풍 기미도 없었다. 켈리는 자신이 본 것이 별똥별이 아니라고 했고, 떨어지는 게 아니라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갔다고 덧붙였다. 스나이더 부인과 켈리 부인은 남편들의 진술을 그대로 확인해 주었다.

    보고서는 이어서 목격자들의 거리 관계를 정리한다. 스나이더 가족과 켈리 가족은 필라델피아 북동부 옥스퍼드 서클 근처에 사는데, 같은 시각 별도로 목격담을 낸 내들 양의 집(필라델피아 서부) 과는 약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두 그룹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그런데도 내들 양·켈리 부부·스나이더 부부의 관찰 내용이 대체로 일치하며, 모두 신뢰할 만하고 화제를 부르려 떠벌리는 부류가 아니라고 적혀 있다.

    내들 양과 존 켈리는 필라델피아 일간지 인콰이어러 에 전화해 자기들이 본 것에 대한 설명을 구했다. 신문사 측은 인근 정유시설이나 화학회사에서 나온 무언가일 수 있다고 답해 주었다. 이에 필라델피아 지부는 해군정보국과 육군정보국 양쪽에 필라델피아 일대에서 새 항공기나 장비 실험이 진행 중인지 조회를 넣었지만 모두 부정적 답이 돌아왔다. 다만 해군정보국은 1947년 8월 6일 찰스 레닉 화학회사에서 폭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페이지 끝에서 보고서는 그 화학회사 안전부의 S. A. 김벨(주소 5000 Richmond Street) 진술로 넘어간다. 이 회사는 화학물질 제조·유통 업체로, 1947년 8월 6일 회사 내 폐기물 더미에서 화재가 났지만 곧 진압되었고, 화재가 회사 부지 밖에서 보일 만한 규모도 아니었다고 한다. 진술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156. p.156

    1947년 9월 18일 FBI 국장에게 올린 보고서의 세 번째 장이다. 레닉 컴퍼니(LENNIG COMPANY)는 옥스퍼드 서클에서 남동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져 있는데, 화재 정황은 앞서 언급한 비행 물체의 일반적 이동 양상과 잘 맞지 않는다고 적었다. 비행 물체는 필라델피아에서 옥스퍼드 서클 북동쪽 지점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동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진셀(GINSEL)은 자신이 아는 한 옥스퍼드 서클 주변이나 그 북쪽에 정유 시설이나 화학 회사는 없고, 그런 업종의 회사들은 모두 옥스퍼드 서클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모여 있다고 지적했다. 합리적 조사를 모두 마쳤으므로 본부의 별도 지시가 없는 한 이 건에 추가 조치는 하지 않겠다고 마무리한다. 문서 하단에는 작성자 이니셜 FFB/ctg와 문서 번호 98-1762가 함께 적혀 있다.

  157. p.157

    1947년 9월 27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의 공군 부참모장보(정보 담당) 조지 C. 맥도널드 소장에게 보낸 편지다. 후버는 먼저 공군이 FBI에 비행 원반 목격 사건 조사를 요청해 왔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나 공군 내부에 돌고 있다는 지침을 보니, 책임 있는 목격자 면담은 공군이 맡고, 지상에서 발견된 원반 사건은 FBI가 떠맡는 식으로 일이 나뉘어 있다고 적는다. 후버가 보기에 그렇게 떨어지는 사건의 상당수는 "쓰레기통 뚜껑, 변기 시트, 그 밖의 잡동사니"로 판명 나는 것들이고, 결국 공군이 귀찮은 잡무를 FBI 쪽으로 떠넘기는 구도라는 인식이다. 후버는 공군이 FBI의 역할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이상, 자신의 조직 인력과 시간을 그런 방식으로 흩뿌릴 수 없다고 못박는다. 그래서 FBI 각 지역 사무소(Field Divisions)에 비행 원반 목격 관련 수사 활동 일체를 중단하라고 지시했고, 들어오는 신고는 모두 해당 지역의 공군 담당자에게 넘기도록 했다고 통보한다. 본문 아래에는 후버의 친필 서명과 타자친 직함 "국장(Director)"이 있고, 좌측 하단에는 "통신과 발송 1947년 9월 29일 오후"를 알리는 FBI 붉은 발송 도장이 찍혀 있어 편지가 실제로 사흘 뒤 발송 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상단 여백의 "RECORDED 62-83-...-121" 수기 표기는 FBI 내부 사건철 번호로 보인다.

  158. p.158

    타자기로 친 편지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종이가 얇아 앞면 본문이 좌우 반전 결로 비쳐 보이지만 직접 판독은 어렵다. 뒷면 자체에는 FBI 가 우편물을 접수할 때 찍은 도장 두 개가 남아 있다. 하나는 "RECEIVED ... 3 4 26 PM" 결로 시각과 함께 접수 사실을 표시했고, 또 하나는 "F.B.I. INTERNAL SECURITY" — 즉 FBI 내부보안과로 분류해 처리했다는 도장이다. 그 아래에는 항공우편 (AIR MAIL) 관련 우편 처리 도장이 같이 찍혀 있다. 페이지에 자체 본문은 없고, 앞면 편지가 FBI 내부보안 라인으로 들어갔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주는 뒷면이다.

  159. p.159

    FBI의 D. M. 래드가 1947년 9월 25일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래드는 공군 정보부가 플라잉 디스크 목격담의 정체를 밝히려고 FBI에 협조를 요청한 경위를 보고한다. 공군 측은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개인들이 미국 내에 비밀 소련 무기에 대한 공포로 집단 히스테리를 일으키려고 목격담을 꾸며냈을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한다. FBI는 협조에 동의했고, 1947년 7월 30일자 국장 회보 제42호 시리즈로 각 현장 사무소에 목격담이 들어올 때마다 그것이 실제 목격인지, 상상인지, 장난인지 판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현장 사무소의 조사 결과 어느 사례에서도 체제 전복 성향의 인물이 관여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어 래드는 샌프란시스코 특별수사관 책임자가 1947년 9월 19일 보낸 통신문을 언급한다. 여기에는 햄튼 필드(캘리포니아) 육군 항공대 정보참모(A-2)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이 샌프란시스코 책임자에게 비밀리에 건넨 '제한' 등급 서한이 첨부돼 있었고, 사본도 이 메모에 함께 붙였다. 그 서한은 1947년 9월 3일자이며, 미첼 필드(뉴욕) 방공사령부 정보참모 차장 R. H. 스미스 대령이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의 명령으로 서명해 각 항공군 사령관 앞으로 보낸 것으로, 제목은 'FBI와 육군 항공대의 플라잉 디스크 사건 조사 협조'다.

    그 서한의 요지는 이렇다. 본래 육군 항공대 정보참모 차장실(AC/AS-2)의 의도는, 책임 있는 목격자에 대한 면담은 방공사령부 측이 맡고, 지상에서 발견된 디스크 잔해 사건은 FBI가 맡는 분담 체제였다. 그리고 FBI를 끌어들인 이유는, 결국 '재떨이 뚜껑이나 변기 시트 따위'로 판명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일선 항공군이 일일이 추적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명시돼 있다.

    래드는 마지막 권고에서, FBI가 항공참모 차장(Air Staff-2)에게 강력히 항의할 것, 그리고 FBI는 이 분야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현장 사무소도 조사를 그만두고 들어오는 모든 신고를 공군에 넘기도록 지시할 것을 건의한다. 승인을 위한 회보안이 첨부됐다고 적었다. 메모 하단의 빨간 펜으로 'I agree 9-26'이라고 적은 결재 메모와 'RECORDED 62-83894-121' 표시는 후버 또는 상부가 9월 26일 이 권고에 동의해 처리·기록했음을 보여준다.

  160. p.160

    타이프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를 비쳐 거꾸로 읽히고, 하단에는 법무부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다. 하나는 'RECEIVED-FAIM, U.S. DEP'T OF JUSTICE, 1947년 9월 26일 오전 9시 01분', 다른 하나는 '1947년 9월 2일 오후 2시 24분' 으로 읽힌다. 페이지 자체에는 새로운 본문 정보가 없고, 문서가 법무부에 두 차례에 걸쳐 접수되었다는 행정 흔적만 남아 있다.

  161. p.161

    뉴욕 미첼 필드의 미 방공사령부(Air Defense Command) 본부가 1947년 9월 3일자로 제1·2·4·10·11·14 공군 사령관에게 보낸 사본 메모다. 문서번호는 D 333.5EX, 제목은 "'비행 원반' 사건 조사에서 FBI와 육군항공대(AAF)의 협력"이고, 수신처 첨부는 각 사령부의 정보참모(A-2)이다.

    메모는 먼저 FBI가 공군 정보요원의 '비행 원반' 사건 조사를 돕기로 했다고 알린다. 장난질을 빠르고 확실하게 가려내, 진짜 사건으로 보이는 건에 인력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이어서 원래 육군항공대 본부 정보참모차장(AC/AS-2)이 생각한 분담을 정리한다. 방공사령부 휘하 공군은 AAF가 이름을 넘겨준 신뢰할 만한 목격자를 직접 면담하고, FBI는 땅에 떨어졌다는 이른바 '원반'을 조사한다. 알고 보면 쓰레기통 뚜껑이나 변기 시트 같은 잡동사니로 밝혀지는 수많은 신고를 일일이 추적하느라 번호 공군 부대들이 시간을 쓰지 않도록, FBI를 끌어들였다는 설명이다.

    끝으로 각 부대 A-2 정보참모에게 FBI와 비공식적으로 손발을 맞추라고 지시한다. 정보요원이 이 사안으로 접촉할 일이 있으면 FBI에도 미리 알려야 한다. 곧 육군항공대가 전쟁부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A-2와 FBI 특별수사관 사이의 연락 방식을 명문화한 정식 정책이 나올 예정이라, 지금 임시 정책을 공식 공표해 봐야 한두 달 만에 새 정책으로 갈아엎게 될 테니 임시 정책은 두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서명은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 명의로, 정보참모차장 R. H. 스미스 대령이 대신했다. 오른쪽 아래에는 FBI 사건파일 번호 62-83894-121이 빨간 필기로 적혀 있다.

  162. p.162

    1947년 9월 25일 자 미국 정부 내부 메모. 발신은 E. G. 피치, 수신은 래드 씨, 제목은 일리노이주 댄포스 인근 농장에서 발견된 기구(機具) — Flying Discs. 메모는 9월 3일 자 보맨이 하버에게 보낸 선행 메모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메모에 따르면 문제의 기구는 연구소가 검사를 마쳤고, 연구소는 육군 공병의 휘던 부인과 접촉했으며, 휘던은 기구가 공군의 극비 등급 시험에 사용된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으로 연락 담당 부서의 특별요원 S. W. 레이놀즈가 공군 정보부와 접촉했고, 휘던이 이 기구를 모굴 작전에 사용된 것으로 언급했다는 점이 추가됐다. 기구는 공군 정보부에 대여되어 다시 라이트 필드로 이송됐는데, 라이트 필드에서 온 보고서는 모굴 작전 또는 라이트 필드의 어떤 작전과도 무관하다고 결론지었다. 휘던 진술과 공군 정보부 회신 사이의 모순을 근거로 라이트 필드는 이 사건을 날조로 분류했고, 메모는 FBI가 이 사안을 더 추궁할지 검토하라고 본다. 이어 기술연구소의 짐머스가 레이놀즈에게 전한 바, 휘던은 워싱턴 측 시험 연락을 홉킨스 소령이 맡았다고 말했다. 공군 정보부의 조지 개럿 중령은 홉킨스 소령과 직접 접촉한 결과를 레이놀즈에게 통보했다. 홉킨스는 무선과 기술 분야 경력이 깊은 인물로, 이 기구가 모굴 작전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진과 회수된 잔해를 본 그의 판단은 구형 라디오 확성기의 부품 일부라는 것이었다. 개럿 중령은 홉킨스의 의견을 받아들여, 휘던이 기구와 모굴 작전에 대해 자신이 아는 것을 과장해 잘못된 인상을 줬을 가능성 외에는 그녀의 행동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라이트 필드의 보고와 홉킨스의 진술을 종합하면, 이 기구가 공군 측 기밀 사업에 쓰였다는 증거는 충분치 않고 그저 날조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결론이다. 마지막으로 피치는 이 메모를 기술연구소에 추가 정보를 위해 회람하도록 권고한다. 페이지 하단과 여백에는 FBI 접수 도장(1947년 10월 8일·10일)과 사건 번호 62-63894-122가 함께 남아 있어, 이 메모가 FBI 비행 원반 파일에 정식 편철된 문서임을 알려준다.

  163. p.163

    FBI 문서의 뒷면 또는 접수 처리 페이지로, 본문이 거의 판독되지 않을 만큼 흐려져 있다. 상단에 FBI 실험실 부서가 1947년 9월 25일 오전 10시 33분에 받았다는 접수 도장과, 같은 날 오전 10시 25분 무렵 사법부 산하 연구소로 보이는 곳에서 받은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왼쪽 위에는 FBI 연락 담당부의 접수 도장이, 1947년 어느 날 오전 1시 2분에 들어왔다고 적혀 있다. 본문 부분은 잉크가 번지고 종이가 변색되어 타자 단락의 자취만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 구체적인 문장을 옮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결국 이 페이지는 한 통의 문서가 1947년 9월 말 FBI 내부의 여러 부서를 통과한 접수 기록만이 사실상 유일하게 읽히는 정보다.

  164. p.164

    1947년 8월 25일자 항공자재사령부(AMC) 문건번호 TSDAD-22/AC/bk. 라이트 필드의 사령부가 워싱턴 육군항공대 사령관 앞으로, 정보참모부(AC/AS-2) 소속 조지 개럿(George Garrett) 중령을 거쳐 보낸 보고서다. 개럿이 받아 사령부로 가져온 '비행접시' 의심 표본을 사령부가 조사한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사령부는 먼저 표본의 출처와 절차를 정리한다. 문제의 표본은 H. M. 매코이(McCoy) 대령이 이 사령부로 가져온 것이고, 원래 FBI가 입수해 개럿 중령에게 넘긴 것이다. 사령부는 라이트 필드의 분석분과(T-2)와 전자분야 분과(T-3) 양쪽 기술자에게 표본을 면밀히 검사하게 했다. 전자분야 분과는 이 표본들이 '모굴(Mogul) 프로젝트'를 비롯해 사령부가 진행하는 어떤 연구개발 프로젝트와도 일절 관련이 없다고 명확히 밝혔다.

    사령부의 결론도 같은 방향이다. 이 표본들은 '비행접시'나 '디스크'라 불리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으며, 명성을 노리든 다른 이유에서든 누군가가 꾸며낼 수 있는 장난(hoax)의 일부로 보는 것이 사령부의 판단이라고 못 박는다.

    이어 첨부 사진에 찍힌 표본 자체를 항목별로 설명한다. 사진 속 파편들은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조각으로, 파리석고나 유사 세라믹으로 만들어졌고 안에 측정용이나 발열용으로 쓰일 만한 전기 저항선이 들어 있다. 세라믹의 상태로 미루어 보면 저항선이 한 차례 이상 전기로 가열된 적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파편 역시 사령부의 어떤 프로젝트와도 연결되지 않는다. 사진 윗줄에 놓인 다른 물건들은 왼쪽부터 차례로 두 가지로 식별된다. 첫째는 구식 자기 스피커용 알루미늄 합금 다이어프램으로, 1910년 5월 1일에 처음 특허를 받은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의 너새니얼 볼드윈 컴퍼니 제품이며 역시 사령부 프로젝트와는 무관하다. 둘째와 셋째 항목은 베이클라이트 코일 폼이다(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왼쪽 여백의 손글씨 메모는 이 문서가 1947년 8월 27일 개럿 중령으로부터 인계된 사본임을 표시하고, 하단의 'RECORDED 162-83894-123'와 8월 27일·10월 16일 접수 도장은 FBI 파일에 같은 사건 번호로 편철된 경로를 보여 준다.

  165. p.165

    1947년 8월 25일, 워싱턴 D.C. 미 육군항공대 사령관 앞으로 "플라잉 소서" 라는 제목의 보고가 올라간다. 발신자는 항공자재사령부(AMC) 정보부 부사령관 H. M. 매코이 대령. 보고는 수집된 다섯 점 파편을 하나씩 짚어 나가는 중간 대목에서 시작한다. 셋째 항목은 평범한 에나멜 동선으로 감긴 코일인데, 한때는 솜씨 좋게 만들어졌다가 코일 제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 손으로 조잡하게 다시 감겼다고 본다. AMC 가 진행 중인 어떤 사업과도 무관하다. 넷째 항목은 금속 상자인데, 뉴욕주 뉴욕에 있는 폴리메트 매뉴팩처링이 만든 전자식 필터 콘덴서 잔해다. 이것 역시 AMC 사업과 무관하다. 다섯째 항목은 금속 자석 고리의 잔해로, 이 사령부가 쓰는 어떤 장비의 부품으로도 식별되지 않는다. 매코이 대령은 이어 이 정보와 첨부 사진을 FBI 에 넘겨, 비슷한 표본이 또 발견될 경우 미국 각지의 관련 기관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릴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한다. 문서 하단에는 첨부물 한 건 — 사진 한 장(S-1/Exhl, "플라잉 소서") — 이 명시되어 있고,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다.

  166. p.166

    FBI 파일에서 첨부물을 담아두는 마닐라 봉투의 뒷면 스캔이다. 봉투 아래쪽에 'ENCLOSURE' 라벨이 양쪽으로 인쇄되어 있고, 그 아래 여백에 손으로 '62-83794 123' 이라는 파일 번호와 첨부 일련번호가 빨간 잉크로 적혀 있다. 봉투 위쪽에는 바인더에 묶기 위한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가운데에는 봉인 자국으로 보이는 작은 비닐 테이프 흔적이 남아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는, 첨부물 보관용 봉투 그 자체다.

  167. p.167

    "비행접시"라고 주장된 잔해를 촬영한 흑백 증거 사진이다. 사진 윗부분에 손글씨로 "FLYING SAUCER" ALLEGED SPECIMENS 라는 캡션이 적혀 있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 사진 번호 233138 과 CONFIDENTIAL 표시가 함께 찍혀 있다. 사진 안에는 평평한 바닥 위에 부서진 조각들이 배열되어 있다. 위쪽 줄에는 둥근 원반형 금속 부품, 코일 모양의 작은 부속, 사각형 모듈, 갈고리 형태의 금속 조각 등 인공물로 보이는 작은 기계 부품들이 놓여 있고, 그 아래로는 검게 그을린 듯한 광물 또는 슬래그 형태의 큰 파편들과 흰색에 가까운 작은 파편들이 흩어져 있다. 사진 자체가 페이지의 본문 역할을 하고, 별도의 설명문은 캡션 한 줄과 일련번호·기밀 도장 외에는 없다.

  168. p.168

    사진 뒷면이다. 가운데에 라이트필드(오하이오) 공식 사진실 다이아몬드형 스탬프가 찍혀 있고,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세로로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들어가 있다. 오른쪽 상단에 페이지 번호 76이 손으로 쓰여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앞면 사진의 출처와 분류 등급을 식별하기 위한 뒷면 슬립이다.

  169. p.169

    1947년 9월 15일 솔트레이크시티 FBI 특별수사책임자(SAC)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같은 달 10일 솔트레이크 트리뷴이 보도한 유타주 로건의 비행접시 목격담을 현장 요원이 직접 인터뷰해 확인한 결과를 정리하고 있다.

    신문 보도에 등장한 게일런 콜드웰 부부와 리처드 앤더슨 부부는 그날 함께 브리지 카드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9월 8일 밤 10시 30분 게임이 끝나고 두 부부가 현관으로 나갔을 때, 2~3천 피트 상공을 무리 지어 날아가는 물체 열두 개가량을 봤다고 진술했다. 첫 비행은 10시 40분, 두 번째와 세 번째 비행은 11시 10분 이전에 이어졌다. 물체는 비둘기만 한 크기에 희끄무레하게 빛을 내고 있었고, 새일 가능성도 있어 보였지만 새보다 훨씬 빨라 1~2분 만에 도시 상공을 한 바퀴 돌고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날개를 움직이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자기들이 본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단정 짓지 못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콜드웰 부부는 인터뷰 시점에 이미 네브래스카주의 어느 도시로 이동 중이라 만나지 못했다.

    신문에 같이 이름이 실린 키스 휴스와 조앤 크롬프스턴은 자기들 이름이 어떻게 기사에 들어갔는지 모르겠다며, 비행접시는 본 적이 없고 보도 내용도 틀렸다고 답했다.

    반면 프레드 더넬의 아내는 자기 부부와 다른 다섯 명이 함께 비행 물체를 봤다고 진술했다. 9월 8일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 작은 물체 35~60개가 한 무리를 이뤄 다섯 무리가 도시 상공을 빠르게 선회했다는 것이다. 색은 누르스름한 흰빛, 고도는 수천 피트, 거리와 속도와 흐린 날씨 탓에 크기는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현장에는 더넬 부부, H.P. 앤더슨 부부, 셸비 디벨론스 부부가 함께 있었으나 그 물체가 무엇이었는지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메모 우측 상단에는 "기록 색인 완료(Recorded Indexed)"라는 처리 표시와 함께 담당자 서명, 우측 여백에는 손글씨로 "124"가 들어가 있어, 본부에서 사건 번호로 정리된 정식 접수 문서임을 보여 준다.

  170. p.170

    FBI 내부 라우팅 접수 도장이 여러 겹 찍힌 사무 메모의 뒷면이다. 앞면의 타자 본문이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지만 읽을 수 있는 글자는 없다. 페이지 하단을 가로질러 "RECEIVED — INTERNAL SECURITY — F.B.I." 도장이 시간차를 두고 다섯 번 찍혀 있고, 그중 둘은 1947년 접수 라벨인 "LIAISON SECTION" 으로 표시된다. 왼쪽 아래 여백에 손글씨 서명과 "9-17", "KSL" 같은 처리자 메모가 남아 있어 같은 문서가 FBI 내부 부서들을 차례로 거쳐 회람된 흔적을 보여 준다.

  171. p.171

    유타주 로건에 사는 뉴먼 홀(NEWMAN HALL) 부부는 1947년 9월 8일 저녁 10시 30분경 도시 상공에서 시계 방향으로 움직이는 비행 물체들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비행기 불빛으로 여겼지만, 물체들이 대형을 바꾸며 마치 움직이는 별 무리처럼 보였다고 덧붙였다. 홀 부부는 이 물체들이 새보다 훨씬 빠르게 이동했다고 믿었다. H. F. 앤더슨(ANDERSON) 부부와 베시 헨드릭스(BESSIE HENDRICKS)는 면담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포트 더글러스의 군 정보부 소속 B. E. 메이슨(MASON) 대위에게는 이번 조사 결과를 서면으로 통보할 예정이다. 제공된 정보가 불확실한 점을 감안해 이 사무소는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문서 하단에는 작성자·타이피스트 이니셜인 SMK:LMS와 AMSD가 남아 있다.

  172. p.172

    1947년 8월 8일, 워싱턴주 스포캔 W 3가 427번지에 사는 태평양전화전신회사(Pac. Tel. & Tel. Co.) 지부 시설 엔지니어 R. J. 매든(R. J. Madden)이 워싱턴주 맥코드 비행장의 미 육군 군사정보부(Military Intelligence Division, U.S.A.)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다. 매든은 1947년 8월 7일자 스포크스맨 리뷰(Spokesman Review)에 실린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 방문 기사를 읽은 뒤, 자기 쪽에서 직접 목격한 "비행 접시(flying saucer)" 관측 사례를 함께 보내는 것이 군 쪽에도 흥미로울 것이라 판단해 동봉한다고 밝힌다. 이어 자신의 목격담은 아직 어떤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도 제공한 적이 없다고 덧붙인다. 매든은 본인 서명 대신 타이프 사본임을 표시하는 /s/ 표기와 함께 이름·직책을 적어 마무리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사본(COPY)임을 알리는 밑줄 글자와 함께, 빨간 글씨로 FBI 문서번호 62-28894-125 와 ENCLOSURE 라는 표시가 따로 찍혀 있다.

  173. p.173

    1947년 7월 29일자 "비행 원반에 관한 보고"라는 제목의 타자 문서로, 태평양 전화전신 회사(Pacific Telephone & Telegraph)의 지구 시설 관리자 N. J. 매든이 직접 작성하고 서명했다.

    그날 낮 12시 5분경, 매든은 운전자 스티브 헤르만, 뒷좌석에 앉은 얼 헤르만과 함께 세단을 타고 몬태나주 헬레나에서 북동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캐년 페리에서 요크로 향하는 길을 북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캐년 페리에서 북서쪽으로 약 4분의 1마일 지점, 산림청 지도상 10번 구역 T10N R1W의 북서쪽 사분면에 해당하는 지점에서, 얼이 갑자기 "저거 봐! 저거 봐! 비행 원반이야!"라고 외쳤다. 스티브는 곧장 속도를 늦춰 차를 세웠고, 그동안 매든과 스티브는 얼이 가리킨 방향의 하늘을 살폈지만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얼이 "원반"을 발견한 순간부터 차가 완전히 멈추기까지는 약 10초가 걸렸다. 얼은 처음에 그것을 유성으로 생각했고, 북서쪽 지평선 위로 빠르게 솟아올라 북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차가 멈춘 순간, 세 사람은 동시에 같은 것을 봤다. 정면 북동쪽으로 2~3마일 떨어진 지점, 지상에서 약 3,000피트 상공에 밝은 원반 하나가 떠서 흔들리고 있었다. 약 5초간 50~100피트 정도의 폭으로 오르내리던 원반은 상승의 정점에서 갑자기 북동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가더니, 약 200피트를 가는 사이에 맑은 하늘 속으로 사라졌다.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 뒤로 넘어간 것이 아니라, 마치 속도가 너무 빨라서 "공기 속으로 녹아 들어가듯" 사라졌다는 것이다.

    관찰자들의 시점에서 그 원반은 지름이 약 3피트, 두께는 3~4인치 정도의 얇고 둥근 모양이었다. 그날 하늘은 푸르고 작은 구름이 흩어져 있었으며, 햇빛이 강하게 비치는 가운데 원반은 잘 닦은 니켈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원반이 사라진 뒤 일행은 같은 길을 따라 계속 북서쪽으로 나아갔지만, 길가나 그 주변 어디에서도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매든은 보고 말미에서, 위에 적은 치수는 어디까지나 2~3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본 인상이며 실제 크기는 훨씬 더 클 것이라는 단서를 단다.

  174. p.174

    1947년 9월 19일, 시카고 7구 우정청 수석감찰관실의 T. H. Barkow 감찰관이 워싱턴 D.C.의 연방수사국에 보낸 조회 서한이다. 사건번호는 56114-F이며, 일리노이주 레이크 포레스트에서 Arc Foundation이 비행 원반 관련 정보를 판매하면서 우편법 P. L. & R. 제2380조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다룬다. Barkow 감찰관은 이 사건의 당사자가 한때 레이크 포레스트에 거주했고 시카고 주소도 사용한 적이 있는 C. H. Stevens라고 밝히고, 연방수사국이 이 인물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는지, 있다면 사본을 송부해 달라고 요청한다. 본문 하단에는 1947년 9월 27일자 접수 도장과 함께 FBI 파일번호 62-83894-126이 적혀 있어, 이 서한이 FBI 내부 파일로 정리되어 들어갔음을 보여 준다.

  175. p.175

    1947년 9월 13일, 시애틀 FBI 특별수사관(SAC)이 FBI 국장에게 보낸 내부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목격 — 1947년 7월 29일 몬태나 캐년 페리 인근, 칼 헤르만·스티브 헤르만·R. J. (밥) 매든에 의함, 보안 사안 X". 본문에서 시애틀은 1947년 9월 2일 워싱턴 맥코드 필드의 제4공군 정보부(S-2) H. R. 피터슨으로부터 받은 자료 사본을 본부와 뷰트 지부에 참고용으로 동봉한다고 알린다. 첨부물은 스포캔의 R. J. 매든이 1947년 8월 8일 자로 맥코드 필드 미 육군 군사정보부에 보낸 편지이며, 매든이 직접 작성한 "플라잉 소서 보고서"가 함께 들어 있다. 시애틀 지부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10월 3일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23894-125, 그리고 "육군 카린 소령에게 정보 전달, 9/19/47"이라는 손글씨 라우팅 메모가 남아 있다.

  176. p.176

    문서 뒷면에 찍힌 FBI 접수 도장이 세 개 보인다. 가장 먼저 1947년 9월 10일 오후 2시 19분 법무부 FBI 연락과(Liaison Section)가 접수했고, 9월 18일 오전 10시 17분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다시 받았으며, 9월 24일 오후 3시 19분 같은 부서가 한 번 더 접수 표시를 남겼다. 왼쪽 아래에는 9월 11일경으로 보이는 손글씨 메모가 적혀 있다. 문서 본문은 종이 앞면에 있고 이 면에는 접수 처리 흔적만 남아 있다.

  177. p.177

    1947년 9월 24일 FBI가 시카고 우정청 검사관 T. H. 바코우(T. H. Barkow)에게 보낸 회신이다. 바코우는 9월 19일 자 편지에서, 데스아크 재단(des Arc Foundation)이 "비행 원반" 정보 판매로 우편법 제3380조를 위반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C. W. 스티븐스(C. W. Stevens, 우정청 사건번호 6114-F)라는 인물의 신원 정보를 요청한 상태였다. FBI 신원확인국(Identification Division)은 이름만으로는 효과적인 조회가 불가능하다고 답하면서, 신체 특징이나 등록번호 같은 추가 식별 정보를 제공하면 조회를 시도하겠다고 알린다. 문서번호 62-33854-126, 발신자 식별기호 RMG:jb. 좌하단 우편 처리 도장은 1947년 9월 25일 오후 발송으로 표시되어 있다.

  178. p.178

    1947년 9월 12일 시애틀 FBI 지부장이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브루스 암스트롱과 M. A. 니콜스가 시애틀에서 보고한 비행 원반, 1947년 8월 12일, 보안 사안 X".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는 8월 13일 조간 5면에 "원반에서 푸른 삼각형 번개를 보다"라는 제목으로 비행 원반 목격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보잉 항공의 전자기술자 브루스 암스트롱과 다른 엔지니어 여럿이 8월 11일 오후 2시 20분경 정체불명의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 신문 보도는 그 물체가 나뭇잎처럼 흔들리면서 떨어지는 듯했고, 검거나 짙은 청색을 띤 삼각형 물질로 보였다고 전했다. 같은 기사에는 시애틀 사우스웨스트 102번가 1125번지에 사는 M. A. 니콜스가 보았다는 또 다른 원반 목격담도 실렸는데, 니콜스는 그것을 빛을 반사하면서 자줏빛이 도는 큰 공 모양으로 묘사했다.

    8월 13일 암스트롱을 직접 면담해 보니, 그는 보잉 항공 공장 D 구역 앞에 다른 연구 엔지니어 약 열 명과 함께 서 있다가 보잉 비행장 활주로 위로 남쪽을 향해 약 200피트 고도로 날아가는 작은 검은 물체를 봤다고 진술했다. 암스트롱은 그 물체가 삼각형이었고 나뭇잎처럼 공중을 떠다녔다고 했으며, 속도는 시속 15마일쯤으로 추정했다. 자신과 물체 사이의 거리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그가 목격했다고 한 보잉 비행장 반대편에서 D 구역까지의 거리는 약 0.5마일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면담할 수 있는 보잉 연구 엔지니어는 존 M. 스토너, 조지 M. 스토너, 벤 하거, 르로이 퍼킨스, 댄 헤이지 등이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비행 중인 검은 종이 같았고, 무엇보다 타르 종이 한 조각을 닮았다는 것. 물체는 보잉 비행장 활주로 끝에 이르러 남서 방향으로 하늘로 올라가 사라졌다.

    뒤이어 노스웨스트 항공 관제탑 운영자 켄 그랜트에게도 확인했다. 그랜트는 비행장 인근에서 목격된 물체 보고를 모두 검토하고 기록을 남긴다고 밝혔지만, 자신의 기록에서는 해당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사건 시각에 근무 중이었던 본 록우드와 접촉해, 록우드가 그날 오후 2시경 (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어떤 진술을 했다는 것까지 확인했다.

    문서 우상단과 본문 곳곳에는 "Reynolds" 라는 수기 서명과 함께 "기록·색인" 도장, 사건번호 74 162-82394, 그리고 1964년 11월 18일자 "사본 폐기" 표시가 남아 있어, 이 문서가 정식 FBI 본부 파일로 접수·등록되었다가 사본만 폐기된 행정 경로를 보여 준다.

  179. p.179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페이지 자체에 본문은 없고, 앞면의 활자가 비쳐 거꾸로 보이는 정도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연락과(Liaison Section)의 푸른색 접수 도장이 위아래가 뒤집힌 채 찍혀 있는데, 1947년 9월 18일 오후 2시 15분에 내부보안 담당으로 접수되었음을 가리킨다. 왼쪽 여백에는 회전된 손글씨 약자가 짧게 보인다.

  180. p.180

    1947년 8월 26일 FBI 국장에게 올라간 '하늘을 나는 원반(Flying Disks)' 보고서의 한 페이지다. 그날 오후 활주로 위로 불에 탄 종이 조각이 여러 장 날아왔고, 그중 하나는 바람을 타고 활주로를 가로질러 남쪽 끝까지 굴러갔다. 록우드는 그 종이가 약 90센티미터쯤 됐다고 말했고, 그랜트 씨는 문제의 '물체'가 바로 이 종이였을 거라며, 관제탑에서 그 일대를 완전히 내려다보는 만큼 다른 것이 있었다면 기록에 남았을 거라고 진술했다.

    이어 SW 102번가 1119번지에 사는 M. A. 니콜스를 면담했다. 그는 8월 12일 오후 4시쯤 자기 집 위로 남서쪽을 향해 날아가는 물체를 봤다고 보고했고, 고도를 약 1만 700미터로 추정했다. 이웃 레이 스탠리도 같은 물체를 쌍안경으로 관찰했는데, 흰색에 원통형으로 움직이고 햇빛을 받아 자줏빛으로 반사됐다고 묘사했다. SW 102번가 1113번지의 조지 크노스타트 부부도 같은 시각에 그 물체를 봤고, 묘사가 니콜스·스탠리 쪽과 일치했다.

    보잉 필드의 시애틀 기상국 사무소 토마스 R. 저메인에 대한 접촉에서는, 이 사무소가 새벽 1시 30분부터 여섯 시간 간격으로 기상관측 풍선을 띄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저메인은 풍선이 흰 껌 같은 색이라 고고도에서 햇빛을 반사한다며, 오후 4시에 풍선이 보였다는 점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목격자들이 묘사한 물체는 자기 사무소나 인근에서 띄운 풍선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단언했다.

    사무소 차원의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는다는 한 줄로 보고는 마무리된다. 좌하단의 'JJS:JG / 62-'는 작성자 이니셜과 파일 번호다.

  181.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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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2. p.182

    FBI 문서철에 포함된 한 페이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종이 반대편에서 비쳐 보이는 거울상 글자만 흐릿하게 잡히고, 상단의 FBI·법무부 레터헤드와 본문 타자 텍스트가 모두 좌우 반전된 상태라 직접 읽을 수 없다. 페이지 자체에 적힌 정보는 하단의 접수 도장 — 1950년 10월 6일 오후 4시 29분, FBI 내부보안과 5640호실에서 접수했다는 표시 — 와 좌측 여백의 손글씨 이니셜 정도다. 즉 이 페이지는 앞면 편지의 뒷장으로, 접수 처리 흔적을 보여주는 역할에 가깝다.

  183. p.183

    1947년 9월 19일자로 FBI 국장 앞으로 올라간 "비행 원반 보고서" 건 메모의 마지막 장이다. 발신자는 특수요원 책임자 해리 M. 킴벌(Harry M. Kimball)로, 다음과 같이 끝맺는다. 만약 국이 이 사안을 육군 항공대(Army Air Forces)와 더 논의하기로 한다면, 이 건이 스프링거(Springer) 중령을 통해 자신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내비치지 말 것을 권고한다. 그렇게 되면 스프링거 중령이 심각한 곤란을 겪을 것이 분명하고, 또 그와 이 사무실 사이에 쌓아 온 좋은 개인적 관계도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본문 아래에는 "Very truly yours"라는 맺음말과 함께 킴벌의 친필 서명, 그리고 사건 번호 61-2932가 붙어 있다.

  184. p.184

    1947년 9월 3일자로 뉴욕 미첼 필드의 항공방위사령부 본부가 제1·2·4·10·11·14 항공군 사령관 앞으로 보낸 사본 문서로, 수신처는 각 항공군의 정보참모(A-2)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사건 조사에서 FBI와 육군항공대(AAF)의 협력’이다. 문서는 FBI가 공군 정보 인력의 ‘플라잉 디스크’ 사건 조사에 협조하기로 합의했으며, 그 목적은 장난성 신고를 빠르고 효과적으로 걸러내고 진짜 사건으로 보이는 건에 인력을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밝힌다. 이어서 원래 육군항공대 정보참모부(AC/AS-2)의 의도는, 신뢰할 만한 목격자 면담은 항공방위사령부 산하 항공군이 맡고 AAF가 명단을 넘기되, 땅에 떨어졌다는 이른바 ‘디스크’ 자체의 조사는 FBI가 맡는 구도였다고 설명한다. FBI를 끌어들인 이유는 결국 재떨이 뚜껑이나 변기 시트 같은 잡동사니로 판명나는 수많은 사례를 일일이 추적하는 부담에서 각 항공군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끝으로 각 A-2가 FBI와 비공식적으로 조율하며 정보 인력이 이 사안으로 외부와 접촉할 계획을 FBI에 대체로 통보해 줄 것을 당부한다. 곧 AAF가 전쟁부에서 분리되면 A-2와 FBI 특별수사관 사이의 연락 체계를 명확히 하는 정식 방침이 마련될 예정이므로, 한 달쯤 뒤 곧 교체될 임시 방침을 정식으로 공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적었다. 문서는 스트레이트마이어 중장의 명에 따라 정보참모 차장 E. H. 스미스 대령이 서명했고, 하단 오른쪽 아래에는 FBI 파일 일련번호로 보이는 ‘62-83894-128’과 ‘ENCLOSURE’ 도장이 찍혀 있다.

  185. p.185

    1947년 10월 1일자 FBI 회보(Bureau Bulletin) 제54호에서 잘라낸 한 문단이다. "플라잉 디스크 — 본 국은 1947년 7월 30일자 회보 제42호 B항에 명시된 수사 활동을 즉시 중단한다. 앞으로 플라잉 디스크 관련 보고는 모두 공군으로 이관하며, 본 국 요원은 어떠한 수사 행위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종이 아래쪽에는 1947년 10월 14일 접수 도장과 "62-83894 미등록 1947년 10월 6일" 도장, 오른쪽 여백에는 원본이 62-83894 파일에 편철됐다는 표시가 있다.

  186. p.186

    1947년 9월 27일자 FBI 뷰트 지국장이 후버 국장 앞으로 올린 사무 메모로, 제목은 "1947년 5월 5일 워싱턴주 엘런스버그–시애틀 구간 비행 원반 목격"이다. 몬태나주 디어로지의 몬태나 주립교도소 소장 존 헨리(John Henry)가 직접 진술한 내용을 요약한다. 헨리는 1947년 5월 5일 오후 5시 50분경 엘런스버그와 시애틀 사이를 차로 이동하던 중 은빛 물체가 하늘을 가르며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재소자 운전기사 밀번 맥길(Milbourne McGill)과 헨리 부인도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물체는 곧장 급강하했고 일행은 추락할 것이라 생각했으나, 땅에 닿기 전에 공중에서 부서져 사라졌고 그 자리에 긴 "가스" 기둥이 하늘에 남았다. 이 기둥은 흩어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한 채 그대로 떠 있었다는 점이 특히 이상했다고 한다. 일행이 20~30마일을 달리는 동안에도 그 연기 같은 기둥은 멀리 높은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헨리 소장은 그 은빛 물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부서질 때도 아직 지상에서 한참 떨어진 높이였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제트추진 항공기인가 했지만, 움직임이 불규칙해서 그렇게 단정하기 어려웠다. 신고하지 않고 있다가 신문에 비행 원반 기사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서야 알린 것이며, 세 사람이 같이 본 일임에도 자기들끼리는 "헛것을 본 것 아닌가" 하고 넘기고 있었다고 한다. 뷰트 지국은 시애틀 지국에 워싱턴 매코드 비행장 제4공군 S-2의 H. N. 피터슨에게 이 내용을 통보하도록 요청했고, 본인 측은 목격과 신고 사이 시간차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겠다고 적었다. 문서 하단에는 "62-83794-129" 사건 번호와 1947년 10월 18일 접수·색인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87. p.187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종이 위쪽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있고, 앞면 타자기 본문이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인다. 아래쪽 여백에는 FBI 내부 보안과(Internal Security)의 "RECEIVED JUL 30 3 55 PM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이 문서가 7월 30일 오후 3시 55분에 FBI 내부 보안 부서로 들어왔음을 보여준다.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손글씨 메모도 거꾸로 적혀 있다.

  188. p.188

    1947년 10월 2일 자 FBI 내부 메모. 수신은 래드(Ladd),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본문은 공군이 받은 여러 보고서에 딸린 사진들이 첨부되어 있으며, 이 사진들은 공군 정보부의 K. L. 개럿(Garrett) 중령이 연락 담당 특별요원 C. W. 레이놀즈(Reynolds)에게 국(Bureau) 파일을 보완하라고 넘긴 것이라고 알린다. 이어서, 이 메모를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Section)의 플레처(Fletcher) 감독관에게 회람시켜 참고하도록 권고한다. 여백에는 "색인 처리 불필요(no indexing necessary)", 첨부물을 파일 뒤에 끼웠다(11월 12일자)는 손글씨 메모가 있고, 1947년 10월 18일·24일 접수 도장과 "RECORDED 62-83894-120" 파일 번호 도장이 찍혀 있다.

  189. p.189

    문서의 뒷면이다. 종이는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스캔되어 있고, 앞면에 찍혀 있던 타자기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지만 거울상이라 읽히지 않는다. 왼쪽 아래 모서리에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47년 10월 10일 오전 9시 3분 내부보안과 접수, 다른 하나는 1947년 10월 9일 오후 12시 46분 미 법무부 FBI 연구실 접수다. 두 도장의 시각이 어긋나 있어, 같은 문건이 FBI 안에서 부서 사이를 옮겨 다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위쪽 가장자리에는 누렇게 변색된 보존 테이프가 붙어 있고, 그 위에 다른 문서의 머리글이 거꾸로 묻어 있다.

  190. p.190

    갈색 마닐라 봉투 또는 파일 폴더의 앞면을 찍은 사진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 손글씨로 "FA92 / 11-23-70 / 08" 정도의 식별 번호와 1970년 11월 23일 날짜가 적혀 있다. 사건 자료를 보관한 봉투 표지로 보이며, 안에 든 문서를 식별하기 위한 사무용 표식 외에 다른 내용은 담겨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