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수 3 의 마지막 묶음은 두 개의 결정이었다. 1947년 9월 27일 후버 국장이 펜타곤 맥도널드 소장 앞으로 보낸 “이 조직의 인원과 시간을 이 방식으로 낭비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라는 편지, 그리고 그 나흘 뒤 1947년 10월 1일자 FBI 회보 제54호 — “즉시 수사 활동을 중단하고 앞으로 비행 디스크 관련 보고는 모두 공군으로 이관한다.” FBI 의 비행 원반 수사는 그 두 문서로 공식 종료됐다.
단수 4 (Serials 145–185) 는 그 직후 1년 9개월의 자료다. 214 페이지. 1947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까지, 본부 책상으로 다시 흘러 들어온 것들 — 시민 손편지, 의원실 송부, 공군 정식 요청, 라이트-패터슨 항공자재사령부가 FBI 연구소에 보낸 흙 한 봉지, 휴스턴 사업가의 16mm 필름과 알루미늄 표본, 뉴멕시코 원자력 시설 일대에서 올라온 100건 분량의 unknown aerial phenomena, 메인주 작가 부인의 손편지 — 가 같은 봉투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시민들의 편지다. 1947년 가을부터 1948년 초까지, 글렌데일·뉴욕·엘리자베스·코빙턴·위스콘신·노스다코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후버 앞으로 직접 손편지를 보낸다. 글렌데일의 매클라우드 부인은 두 달 전부터 사람들이 비행 원반을 봤다고 말하는데 신문은 모두 상상이라고 하니, FBI 가 답을 줄 수 있는지 묻는다. 엘리자베스타운의 듀랜드 부인은 메인주와 서부 곳곳에서 산불이 계속 나는데, 혹시 비행 원반이 일종의 인화 장치 같은 게 아니냐고 묻는다. 위스콘신 메노머니 폴스의 매리언 보이셔는 1948년 1월호 Amazing Stories 167쪽에 자기 사연이 ‘Flying Saucer Witness’ 라는 제목으로 실렸다며 다섯 장짜리 편지를 보낸다. 후버의 답신은 점점 같은 모양으로 굳는다 — “당신의 편지를 잘 받았습니다. 본 사안은 FBI 권한 밖이지만, 글을 보내 주신 데 감사합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흐름이 옆에서 같이 들어온다. 1948년 3월 22일 네브래스카 출신 미 상원의원 케네스 S. 훼리(상원 세출위원회) 가 후버 앞으로 짧은 송부장을 보낸다. 자기 지역구민 케네스 L. 프레이저의 편지를 동봉했다는 것이다. 프레이저는 콜로라도, 혹은 그보다 약간 남쪽에 살고 있다고 적으면서, 자기에게서 정동쪽으로 약 160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본 비행체에 대한 진술서를 함께 보냈다. 후버는 의원과 시민 각각에게 같은 어조의 짧은 답신을 보낸다 — “받았다. 본 사안은 FBI 의 직접적 관할 밖이다.”
본격적으로 자세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공군이 다시 정보를 요청하면서다. 1948년 2월 4일, 뉴욕 미첼 공군기지의 방공사령부 본부가 예하 제1·2·4·10·11·14 항공군 사령관(정보참모 A-2 앞)에게 ‘비행 원반 사건의 조사·보고’ 라는 메모를 내려보낸다. 일주일 뒤인 2월 12일, 샌프란시스코 FBI 지국장 해리 M. 킴벌이 부국장 D. M. 래드 앞으로 항공우편 한 통을 보낸다. 사안은 ‘비행 원반 — 보안 사안 X’. 킴벌은 1947년 10월 27일 자기 지부가 본부로 올렸던 보고서를 다시 첨부한다. 제목란에 ‘FLYING DISCS — SPECIAL INQUIRY’ 가 그대로 적혀 있다. 1947년 여름부터 본부가 굴려 왔던 그 자료가, 공식 종료 4개월 만에 공군의 직접 요청 이라는 새 이유로 본부 책상에 다시 올라오는 흐름이다.
해가 바뀌고 1948년 9월 9일, 오하이오 데이턴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 항공자재사령부가 FBI 본부 연구소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제목은 두 단어다 — Project “SIGN”. 발신자는 공군 정보부 기술정보과장 W. R. 클링거맨 대령. 동봉물은 흙 한 봉지다. 본문은 길지 않다. 지름 약 2피트, 두께 약 1피트의 ‘비행접시’ 가 지면에 부드럽게 내려앉아 약 20피트 튀어 오른 뒤 다시 진행 방향으로 갔다고 알려진 지점에서 채취한 표본이라고 한다. 함몰부는 큰 빨래통으로 덮여 있었지만, 큰비가 함몰부의 약 3분의 1을 채운 뒤에야 흙을 떠올 수 있었다. 데이턴 지부의 책임자가 FBI 연구소에서 필요한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확인했고, 이상 원소나 합금이 있는지, 입자 표면에 고열로 인한 흔적이 있는지, 방사성 물질이 있는지 살펴봐 달라는 게 요지였다. 비교용 주변 흙은 같이 채취되지 않았고, 다른 기관에서도 검사된 적이 없다고 적혀 있다. FBI 연구소는 그 흙을 받아 사건번호 62-83894-146 으로 처리한다. 1948년 10월 7일 라이트-패터슨 앞으로 한 차례 보고서가 나가고, 이듬해 9월에는 PC-23142 GO 라는 실험실 번호로 후속 토양 검사 작업지가 다시 만들어진다. 손을 뗐다고 통보한 조직이, 1년이 지난 시점에 흙을 분석하고 있는 모양새다.
1948년 12월 28일 오후, 그 흐름 한가운데로 한 사건이 들어온다. 그날 오후 1시 12분(중부 표준시), FBI 휴스턴 지부가 본부장과 신시내티·로스앤젤레스 SAC 앞으로 ‘URGENT’ 표시를 단 텔레타이프를 친다. 수신인은 검사관 하워드 플레처(Howard Fletcher). 사건명 ‘비행 원반’. 진정인은 로니 에드워드 노악(Lonnie Edward Noack), 텍사스 휴스턴 시카고가 2921번지 거주, 험블 오일 컴퍼니(Humble Oil Company) 기계공이다. 노악은 1948년 12월 5일 사업차 LA 로 출장을 갔다가, 12월 6일 LA 어밴런 대로 4416번지의 한 사업가(전문에는 PERSON 으로만 표기) 에게서 비행접시 비슷한 것을 사막에서 봤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12월 7일, 노악·PERSON 부부·사우스 패서디나 폰 패서디나 애비뉴 105번지의 네이선 스미스 부부가 자동차 한 대에 함께 타고, 패서디나 북동 약 150마일·론 파인 북동 약 20마일 떨어진 사막 한가운데에서 ‘디스크’ 를 찾아낸다. 지름 약 7피트. PERSON 이 소유한 9만 9천 에이커 사유 비행장 부지 안이다. 일행은 노악의 8mm 레비어(Revere) 카메라로 디스크를 촬영하고, 필름을 LA 라스 팔마스가의 이스트먼 코닥 현상소에 맡긴다.
같은 날 저녁 7시 47분과 9시 7분, 두 번째·세 번째 후속 텔레타이프가 들어온다. 휴스턴 발 발신자는 윌리스 SAC. 같은 날 본부에서 LA 지부와 신시내티 지부로 사건 추적이 떨어진다. OSI 엘링턴 필드 파견대 특별요원 로버트 B. 플레밍·크리스토퍼 R. 브래들리, FBI 휴스턴 지부 그레이엄 요원이 함께 동석해 노악의 자필 진술을 받는다. 5쪽 분량. 회수된 디스크 조각 세 점은 1948년 12월 28일 노악이 LA 의 네이선 스미스에게 넘긴다. 1949년 1월 25일, FBI 본부장 발신·휴스턴 SAC 수신의 회신 메모가 사건번호 62-83894-154 로 떨어진다. 1949년 3월 말, 로스앤젤레스 지부의 W. 네이선 프로빈스 특별요원이 휴스턴에서 시작된 사건 파일 105-1A5 — 내부 안보 R 분류 — 의 보고서를 정리해 올린다.
해가 바뀐 1949년 1월 31일, 뉴멕시코 커틀랜드 공군기지(Kirtland AFB) 사령관이 미 공군참모총장에게 우선·기밀 전문을 친다. 사건번호 24-8. 발신번호 OSI-1-9C. 본문은 짧지만 단어가 묵직하다. 1949년 1월 30일 22시 52분(Z), 약 30명이 동일 물체를 동시에 목격했다. 이전 보고를 합하면 누적 목격은 ‘최소 100건’ 으로 추정된다. AEC(원자력위원회)·AFSWP(미군 특수무기 프로젝트)·제4군 사령관·지역 사령관 들이 모두 그 의미에 동요(perturbed) 하고 있다. 보고된 지점은 엘파소·앨버커키·알라모고도·로즈웰·소코로 — 뉴멕시코 원자력 시설을 둘러싼 도시들이다. 같은 물체가 궤적의 서로 다른 지점에서 목격된 것으로 보인다. 별도 지시가 없는 한 이 사무실이 전면 조사를 진행해 충돌점을 찾을 예정이라는 짧은 통보로 끝난다. 회신 요청.
같은 묶음은 두 달 뒤 다시 들린다. 1949년 3월 22일 샌안토니오 SAC 가 후버 앞으로 ‘Protection of Vital Installations’ 라는 제목의 메모를 보낸다. 사건번호 65-58300. 1948년 12월 5일 이후로 앞서 언급한 녹색 화구(green fireballs) 와 같은 사건이 10건이 넘고, 세부만 조금 다른 사례가 다시 20건쯤 더 있었다고 한다. 로스앨러모스·샌디아·캠프 후드 일대 — 핵 관련 시설을 둘러싼 같은 지점이다. 4월 4일, 같은 SAC 는 본부에 같은 제목의 후속 메모를 보낸다.
1949년 3월, 후버는 본부 간부와 전국 지부장 앞으로 1949년도 SAC Letter 38호 — 제목 ‘Flying Discs’ — 를 내려보낸다. 후버는 1947년 10월 1일자 Bureau Bulletin — 단수 3 마지막의 회보 제54호 — 를 다시 인용하면서 자세가 바뀌지 않았음을 한 번 더 분명히 한다. 지부 SAC 들은 비행 원반 보고를 공군에 이관만 한다. 회보 54호가 1년 반 만에 본부 사내 회람으로 다시 한 번 되울리는 흐름이다.
그러나 자료가 들어오는 흐름은 그대로 이어진다. 4월 5일 솔트레이크시티 SAC 가 유타 오그덴 종합 보급창 사건을, 같은 날 멕시코시티 미국대사관 법무관 존 N. 스피크스가 멕시코에서 들은 비행 원반 정보를 본부에 알린다. 4월 16일 아칸소 포트스미스 우체국 직원 웨이드 H. 해리슨이 토요일에 본 것을 신고하고, 그 신고는 Southwest-Times Record 의 지역 기사로 나갔다. 4월 27일에는 캘리포니아 엘몬테의 프랭크 가드너 부인이 후버에게 ‘비행 원반’ 이라는 제목으로 손편지를 보낸다. 1943년이나 1944년경 자기에게 직접 전해 들었던 ‘수천 개의 로켓’ 이야기, 즉 이미 전쟁 막바지에 누군가가 작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편지다. 5월 4일 Believe-It-or-Not 의 로버트 리플리는 마이애미 비치의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에게, 자기가 가진 미국 안에서 회수된 단 하나의 진짜 일본 풍선폭탄 자료를 후버에게 전해 달라는 전보를 친다. 5월 13일에는 캘리포니아 머시드의 캐슬 공군기지 정보장교 스탠리 패럿(Stanley Parrott) 소령이 LA 지부 특수요원 말린 W. 존슨에게 직접 진술한다 — 자기가 본 물체는 무광 빛깔 금속이었다고.
자료의 한쪽에는 신문 스크랩이 함께 묶인다. 1948년 7월 25일자 Atlanta Journal 일요판에 실린 윌리엄 키 기자의 르포 — 토요일 새벽 휴스턴–애틀랜타–보스턴 노선을 몰던 이스턴 항공 조종사 두 명이 본 그것을 묻는 글, 1948년 7월 27일자 같은 신문에 찰스 푸가 쓴 ‘또 나타난 플라잉 플로어 램프’, 1948년 7월 26일자 ‘큰 불덩이’ 기사. 단수 4 한가운데 신문 스크랩이 그대로 끼워져 있는 모양새다. 시민의 손편지·언론의 칼럼·지부의 보고가 같은 봉투 안에서 같은 두께로 쌓여 간다.
마지막 묶음은 메인주에서 온다. 1949년 5월 14일 노블보로 마을, 1번 국도 북서쪽 약 1마일, 다마리스코타 폰드 가의 치미니 팜(Chimney Farm). 그날 오후는 짙은 안개와 소나기로 시작했다가, 일몰 무렵 맑게 갰고, 가벼운 남서풍이 불었다. 오후 7시 45분, 동쪽 하늘의 구름 띠는 분홍색이었다. 천정 쪽을 흘끗 본 사람은 한 여성. 가장 작은 구름의 절반쯤 되는 크기의, 둥글지 않고 살짝 각진 작고 밝게 빛나는 무언가가 허공에 떠 있었다. 양 끝에 무언가 매달려 있어서, 팔 없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끊임없이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었다. 쌍안경으로 보니 가운데 부분이 가끔 콩 모양처럼 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일몰 효과인가 했지만, 점점 작고 어두워지면서 땅에 수직인 선 하나가 계속 보였다. 편지를 쓴 사람은 작가 헨리 베스턴 — The Outermost House — 의 부인 엘리자베스 C. 베스턴이다. 1949년 5월 25일, 후버는 같은 양식의 짧은 답신을 보낸다 — “5월 16일 소인이 찍힌 편지를 잘 받았다. 글로 전해 준 친절에 감사한다.”
단수 4 의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다시 본부 안 내부 메모로 돌아온다. 1949년 6월 15일 필라델피아 지부가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튼 인근 화재 사건의 후속을, 7월 14일 오마하 지부가 본부에 ‘비행 원반에 관한 정보’ 라는 제목의 긴급 전문을, 7월 20일 D. M. 래드가 후버 앞으로 ‘어니스트 큐네오 제보 후속’ 의 내부 메모를 올린다. 같은 봉투 안에서 시민·의원·공군·연구소·OSI·신문기자·라디오 칼럼니스트·작가 부인의 자료가 함께 묶인다.
회보 제54호는 그대로 살아 있다. FBI 는 비행 원반 사안을 직접 다루지 않는다, 공군에 이관한다 는 자세는 1949년 3월 SAC Letter 38호로 한 번 더 확인된다. 그러나 자료의 흐름 자체가 막힌 적은 단 하루도 없다. 단수 4 는 1947년 가을부터 1949년 여름까지의 1년 9개월을, 빠진 페이지 없이 정직하게 보존한 묶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