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7번이다. 205페이지. 시리얼 302번부터 343번까지를 묶은 이 단수는 1952년 8월부터 1954년 6월 사이에 본부 책상으로 올라온 자료들이다. 표지는 낡은 갈색 마닐라 폴더이고, 그 위에 COPIED FOR FOIPA 라는 빨간 사각 도장이 네댓 차례 중첩되어 찍혀 있다. 단수 한복판에는 시민의 손편지·신문사 제보·오컬트 단체 보고·민간 UFO 회보·국제 우편·정보자문위원회 메모가 같은 폴더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끝에 가서는 사건 파일 번호 자체가 다른 시리즈로 옮겨가는 CHANGED TO 도장이 본문 직전에 등장한다.
단수의 시작점은 1952년 8월 9일 저녁이다. 그날 오후 6시 46분 FBI 사바나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긴급 텔레타이프 한 통을 친다. 본문은 짧다. AEC 보안실이 이날 통보해 오기를, 듀폰사 직원 두 명이 사바나 강 핵단지 400 구역 상공에서 비행접시 모양의 물체를 봤다. 푸른빛에 가까운 발광체였다고 한다. 텔레타이프 본문 아래에는 사건번호 62-83894 와 1952년 8월 14일자 RECORDED-68 도장이 가로질러 찍히면서, AEC 와 듀폰과 핵시설이라는 키워드가 한 페이지 안에서 FBI 사건철로 흡수된다.
같은 한 주 동안 본부에는 비행접시 손편지가 적어도 다섯 통 도착한다. 위스콘신 마우스턴의 32년차 재향군인회 회원, 인디애나 뉴팰리스타인의 타이그렛 부인, 미시간 폰티악의 제닝스, 웨스트버지니아 페어몬트의 마우페 부인, 뉴욕 브루클린의 갤러웨이. 후버는 같은 양식의 답장 다섯 통을 써서 보낸다 — “보내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정보를 알려 주신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다만 비행접시 사안은 공군부 관할이라, 보내주신 자료의 사본을 공군 감찰감실 특별조사국 앞으로 직접 송부했습니다.” 시리얼 309·310·311·312 가 며칠 사이에 줄지어 매겨지면서, 단수 6번에서 회보 제54호로 명문화됐던 시민 → 후버 → 공군 OSI 라우팅이 한 페이지마다 그대로 반복된다.
손편지만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8월 8일자 FBI 내부 메모 한 통이,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신문사가 독일어로 적힌 비행접시 제보 한 편을 받아 본부에 넘겼다고 짚는다. 통신과 번역원 프리드리히 G. 노이하우저가 영어로 옮긴 번역본은 두 페이지로 된다. 제보자 M. SCH. 는 1944년 자신이 비행접시 시제 부품 제작에 관여했다며 기술 명세를 자세히 적는다 — 지름 45~50미터의 원반, 노즐 45~50개, 조종석은 플렉시글라스 구체, 사거리 3만~3만5천 킬로미터, 페네뮌데의 리델 박사 진술. 페이지 하단에는 COPIES DESTROYED 270 NOV 19 1964 도장이 빨간 사건번호 62-83894-308 옆에 따로 찍혀 있어, 이 보고서가 12년 뒤 일부 사본이 폐기된 흔적까지 같이 남는다.
비슷한 시기 샌디에이고 SAC 가 1952년 8월 5일자로 본부에 보낸 보고서가 도착한다. 제목은 Borderland Sciences Research Associates — 미드 레인 디렉터, 맥스 프리덤 롱. 보더랜드 사이언스는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본부를 둔 오컬트 계열 단체이고, 미드 레인과 맥스 프리덤 롱은 1940년대 후반부터 비행접시를 에테르적 존재 와 연결지어 풀이해 온 연구자들이다. 보고서 본문에는 OHM 이라는 가명의 인물이 비행접시는 적성 국가 산물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 라고 진술한 대목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FBI 가 1950년대 초에 오컬트 단체의 비행접시 해석까지 사건철에 흡수하고 있었다는 흔적이 이 보고서로 직접 드러난다.
8월 18일 W. A. 브래니건이 A. H. 벨몬트 앞으로 올린 또 다른 내부 메모는, 야간 당직 감독관들에게 비행접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정리한다. 같은 달 29일자 SAC 회보 제83호는 1947년 10월 1일자 회보 제57호 D항과 1949년 3월 25일자 SAC 회보 제38호를 다시 인용하면서, 일부 현장 사무소가 본부 지침과 어긋난 방식으로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고 짚는다. 단수 6번에서 회보 제54호의 한 줄로 명문화됐던 라우팅 지침이, 이 단수 7번에서는 회보 제57호·제38호·제83호로 차례차례 다시 호명된다. 며칠 뒤 공군 OSI 디건 대위가 FBI 야간 당직 라인에 직접 핫라인을 요구한다는 메모가 같은 폴더 안에 들어와 앉는다.
8월 후반의 한 페이지는 미네소타주 잭슨의 농부 William Hoffmeyer 가 후버 국장에게 보낸 손편지로 채워진다. 발신자는 분석을 의뢰할 만한 물건의 표본 을 곧 동봉할 생각이라며 운을 떼고, 자기 삼촌이 목초지에서 발견한 둥글게 쌓인 무더기와 그 옆의 삼각형 탄 자국에 대해 적는다. 무더기와 자국이 어떤 비행체가 잠시 내려앉은 흔적일 수 있다고 의심하는 어투다. 후버의 답장은 두 줄로 짧고, 자료는 공군부로 넘겼다는 안내로 마무리된다.
9월 초에 도착한 또 다른 손편지는 뉴저지 로즈타운의 로이 엘웰이 보낸 11쪽짜리 푸른 잉크 노트다. 엘웰은 자석의 인력과 반발력을 가지고 자기만의 중력 모델을 풀어쓴다. 어떤 G 단위는 끌어당기는 힘(Pull) 보다 밀어내는 힘(Push) 이 더 크다고 설명하고, 별이 우주에서 달아나려는 듯 보이는 것도 그래서라고 적는다. 그는 자기가 만든 약어 P&P.G. 를 본문에 반복해서 쓰면서, 어떤 작은 G 단위 들은 모래 한 알보다도 작은 채로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한다. 11쪽이 다 끝난 뒤 마지막 장에 Roy Elwell 이라는 친필 서명이 한 줄 들어가고, 그 손편지가 그대로 사건 파일 62-83894 안에 편철된다.
9월 19일자 메모는 몬태나 뷰트 ASAC 가 본부에 보고한 한 페이지짜리 비행 물체 신고이고, 본문 끝에는 FBI 는 이 사안을 조사하지 않았고, 조사할 계획도 없다 라는 표준 문장이 들어간다. 9월 30일에는 미 공군 본부 정책·관리과장 C. M. 영 대령이 FBI 콕스 앞으로 메모 한 통을 보낸다. 영 대령은 그날 오후 1시 30분 공군기술정보센터(ATIC) 의 루펠트 대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1952년 9월 6일자 〈New Yorker〉 에 실린 대니얼 랭의 비행접시 기사를 확인했고, ATIC 측은 FBI 가 비행접시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고 짚었다고 적는다. 곧이어 같은 폴더에 국방부 공보실이 같은 해 10월 6일자로 발신한 안내문이 따라 들어와 앉는다 — 공군이 1947년 가을부터 약 1500건의 미확인 비행체 보고를 분석했으며, 그중 약 80퍼센트는 아군 항공기·기상 현상·광학 착시·장난으로 종결됐고, 나머지 20퍼센트가 끝내 익명의 미확인 으로 남았다는 통계다. 그 가운데 약 6퍼센트가 민간 항공사 조종사, 약 25퍼센트가 군인 보고라는 비율도 같이 들어간다.
10월 후반에는 워싱턴 D.C. 의 호텔 포토맥 편지지에 손글씨로 쓴 마블 W. 리스의 비행접시 사진 제보 편지가 들어오고, 후버는 그 자료의 사본을 공군 감찰감실 보그스 소령 앞으로 곧장 넘긴다(62-83894-321). 비슷한 시기 V. P. 키가 A. H. 벨몬트 앞으로 올린 두 통의 내부 메모는, 공군 정보부의 공식 입장이 여전히 광학 착시 또는 대기 현상 이라고 짚으면서도, 영 대령의 전언으로 일부 군 관계자는 행성 간 비행체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는 단서 한 줄을 같은 페이지에 덧붙인다. 한 메모의 두 문단 안에서 공식 입장과 내부 균열이 같이 노출되는 셈이다.
12월 초 정보자문위원회(IAC) 가 비행접시 사안을 다루기 시작한다. 1952년 12월 5일자 메모는 12월 4일 회의에 FBI 측 연락관 N. W. 쿠르츠가 대신 참석했다고 적는다. 12월 23일 메모(시리얼 326 직전, p.104)는 이 흐름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린다. CIA 의 채드웰 박사가 IAC 안에서 비행접시 현상을 광학·기상 현상이 아닌 적국이 통제하는 과학적 산물 가능성 으로 격상해서 다뤄야 한다고 제안했다는 보고다. 같은 메모에는 영국·독일 과학자와 아프리카에서 보고된 폭발 사건도 같이 호명된다. 본문 좌우 여백에는 FOIA b(3)(A)·b(3)(B) 차단 코드가 회색 박스와 함께 들어가 있고, 하단에는 1984년 5월 11일자 비밀해제 서명이 ALL INFORMATION CONTAINED HEREIN IS UNCLASSIFIED 도장 옆에 따로 적힌다. 한 달 뒤인 1953년 1월, CIA 가 직접 소집하는 로버트슨 패널이 같은 사안을 닫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데, 그 회의의 출발선이 바로 이 메모다.
1953년 1월에는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존슨카운티 민방위국장 로버트 D. 울프가 후버 앞으로 직접 편지를 보낸다. 동봉된 자료는 코네티컷 브리지포트 우편함 241호를 본부로 둔 인터내셔널 플라잉소서 뷰로(IFSB) 가 펴낸 회보 《Space Review》 1953년 1월호 한 부다. 회보 1면에는 회장 앨버트 K. 벤더가 결성한 영국 지부 소식과, 아인슈타인이 벤더에게 보낸 비행접시 관련 정보 제공을 사양한다 는 짧은 답장이 한 단짜리 단신으로 실린다. 표어는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안쪽 면에는 회원 다섯 명이 보낸 비행접시 자작 이론 (코네티컷 회원 바버라 노어의 지구 외부 기원 부정 이론 포함), 인디애나 대표 딕 캠벨의 근황, 영국 대표 에드거 L. 플렁킷 대위의 새해 인사가 줄지어 들어간다. FBI 는 1면 우상단에 orig. returned 1-26-53 이라고 손글씨를 적은 뒤 회보를 사건철 62-83894-326 으로 편철한다. 1년 뒤 벤더가 자신의 단체를 해산하면서 세 명의 검은 양복 차림 남자에게 위협받았다 고 발표하게 되는 Men in Black 도시 전설의 출발 지점이, 이 단수 안에 회보 한 부로 먼저 놓이는 셈이다.
해를 넘긴 흐름은 국제 우편으로 이어진다. 1953년 2월 17일 런던 주재 미국 대사관의 FBI 법무관이 후버 앞으로 보고서 한 통을 보낸다. 영국 밀던홀 미 공군기지의 헌병대장 E. 워커스 소령이 1946~47년 뉴욕 지방신문의 비행접시 기사 한 건을 가지고 과거 동부 해안 일대에 추락 사례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 고 질의했다는 내용이다. 후버는 3월 6일 그 보고서를 그대로 공군 감찰감실 앞으로 넘긴다. 같은 달 4일에는 칠레 발파라이소의 프란시스코 트론코소 실바가 비행접시 사건 연관 가능성 인물 — 린케 박사 라는 제목의 스페인어 편지를 후버 앞으로 부친다. 트론코소는 칠레 경찰 잡지 〈Escape Perfecto〉 의 한 기사와 우주적 진화로 가득한 좋은 미래를 바라는 인류의 진보와 존엄 을 같이 호명하면서, 자신은 국제 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강력한 기관 인 FBI 에 이 일을 알리고 싶다고 적는다. 후버는 3월 23일자로 짧은 감사 답신을 보낸다.
봄 끝부터 여름 초까지는 시민의 손편지와 군의 합동 목격이 같은 폴더 안에서 어깨를 맞춘다. 4월 28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SAC 의 보고서 한 페이지는 4월 8일 오전 11시 30분 포트 부캐넌 상공에서 미 육군 대위 3명·부사관 1명·민간인 1명이 동시에 RB-36 두 대와 함께 미확인 비행 물체를 봤다고 짚는다. 5월 9일 매사추세츠 워터타운의 데이비슨 부인은 MIT 교정에서 학교 옆 주차장으로 들어서며 비행접시를 봤다고 후버에게 손편지를 보내고, 후버는 닷새 뒤 표준 답신을 발송한다. 6월 30일 미시간 매키낙섬 그랜드 호텔의 사장 W. S. 우드필은 호텔 편지지에 서클빌 인근 한 농부가 FBI 요원에게 정부가 비행접시를 여러 대 노획했고 캘리포니아에 화성인 한 명을 포로로 잡아 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는 도시 전설을 옮겨 적어 본부로 보낸다.
7월 8일 새벽, 메이블턴 헛소동이 단수 7 한가운데로 들어온다. 그날 새벽 3시 45분 〈Atlanta Constitution〉 기자 톰 매크레이가 FBI 애틀랜타 지부 야간 라인으로 전화를 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미국 78번 국도에서 이발사 두 명과 정육점 주인 한 명이 맥주 한 병씩 마신 뒤 비행접시와 작은 외계인 세 명을 봤다고 주장하며, 21인치짜리 사체 한 점을 가지고 있다는 제보였다. 애틀랜타 지부 카슨 요원이 새벽에 현장 수의사에게 의뢰한 소견은 한 줄로 정리된다 — 원숭이과 동물 가운데 이 사체처럼 털이 전혀 없고 죽어도 창백해지지 않는 개체는 본 적이 없다. 입 주변에 사람 피처럼 보이는 피가 묻어 있다. 꼬리가 잘려 나갔다. 워싱턴 데일리 뉴스 1953년 7월 9일자에 실린 「있지도 않았던 작은 사람」 기사 스크랩이 같은 단수에 그대로 편철되는데, 사진 안에서 한 어린 남성이 머리에 천을 두른 외계인 을 안고 있다. 그 외계인 의 정체는 결국 털 깎인 원숭이로 판명된다. 사건번호 62-83894-334.
7월 후반의 메모 한 통은 같은 메이블턴 사건에 따라붙은 민간인 UFO 자칭조사자 잭 W. 그랜트 건이다. 그랜트는 목격자를 직접 찾아가 FBI 요원에 준하는 인상을 남기고 책 출간을 예고했다고 한다. 후버는 7월 24일자 답신에서 FBI 는 비행접시 사안에 관여하지 않는다 는 표준 문장을 짚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그랜트 추적을 별도로 진행한다는 짧은 NOTE 를 같은 페이지에 남긴다.
해를 넘긴 단수 후반에서는 다시 국제 우편이 들어온다. 1954년 1월 12일 뉴저지 이스트오렌지의 알로이스 피베츠가 뉴어크 FBI 사무소를 직접 찾아온다. 그는 1953년 12월 20일 무렵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바이트만스도르퍼슈트라세 80번지의 아돌프 도르니히가 자기 앞으로 보낸 편지 한 통을 가지고 와서, FBI 측에 그 내용을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1954년 5월 6일 프리드리히 G. 노이하우저 주니어가 그 독일어 편지를 영어로 옮긴 번역본이 같은 폴더에 따라 들어간다 — 도르니히는 1938~39년 시속 2600~2800킬로미터를 내는 비행 장치를 자기가 시험했다고 주장하고, 전쟁이 끝난 뒤 다시 그를 찾아온 동료들이 시험 비행의 60퍼센트 정도가 사망 사고로 끝났다고 사정을 털어놓았다고 적는다. 도르니히는 라이선스나 사례금에 관한 계약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야 동료들의 이름을 공개하겠다는 조건도 같이 적어 둔다. 1952년 8월 노이하우저가 같은 손으로 옮긴 M. SCH. 의 1944년 V-무기 번역본과, 1954년 5월 노이하우저 주니어가 옮긴 도르니히의 V-7 비행 장치 번역본이 같은 사건철에 18개월 간격을 두고 들어가 앉는다.
같은 봄 켄터키주 밀턴의 7학년 학생 린다 버틀러는 학급에서 비행접시를 공부하고 있으니 FBI 의 의견을 듣고 싶다 는 한 줄짜리 손편지를 워싱턴 D.C. 앞으로 부친다. 후버는 4월 27일자 답장에서 문의해 주신 주제가 FBI 관할 사항이 아닙니다 라는 표준 문장을 짚고, 본문 옆 NOTE 에 그녀는 국장의 의견을 요청했음 이라는 한 줄을 따로 남긴다. 같은 4월 22일 본부 기록과(Records Section) 에는 SUBJECT: Flying Saucers 라고 정자체로 적힌 자료 조회 슬립이 양식 6524호실 칸에 Service Unit 만 체크된 채 들어와 있다. 비행접시 관련 본부 검색이, 별도의 정식 사건 분류가 아니라 일상 행정 업무처럼 양식화된 흔적이다.
단수 끝쪽 시리얼 339·340 부근에 같은 보라색 도장이 두 번 따라붙는다 — CHANGED TO. 1954년 5월 5일자 접수 도장 아래로, 옛 파일번호 62-83894-339 가 새 파일번호 62-101030-4 로 옮겨갔다는 표시다. 같은 양식이 -340 → -101030-5 로 한 번 더 반복된다. 미 정부 인장 워터마크가 옅게 인쇄된 종이 위에, 파란 손글씨로 옛 번호, 빨간 손글씨로 새 끝번호 강조, 보라색 CHANGED TO 도장, 녹색 C 분류 표시, 그리고 RS 라는 담당자 이니셜 서명이 차곡차곡 한 페이지 안으로 모인다. 단수 6번 끝에서 Project Bluebook 라벨이 한 메모 안에 처음 등장한 것에 이어, 단수 7번 끝에서는 비행접시 사건철 자체가 다른 시리즈로 옮겨가는 시각적 표지가 본문 직전에 놓인다.
마지막 묶음은 다시 신시내티다. 6월 8일자 신시내티 SAC 보고서는, 그 도시 니브 빌딩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토머스 아이코프가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진술한 내용을 옮긴다. 아이코프는 6월 4일 머데이라는 인물과 통화한 지 10분 만에 조지 헌트 윌리엄슨 과 맨스피커 라는 두 사람에게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두 사람은 잡지 〈Valor〉 에 실린 트루먼 베서럼의 비행접시 체험담 을 가지고 — 베서럼은 네바다 사막에서 한 여성 사령관이 이끄는 우주 탐사대를 만났다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 신시내티에서 6월 11일 전국 단위 강연 시리즈를 시작하려 했다. 본부장은 6월 22일 답장에서 비행 원반 관할은 공군이며, 정보는 OSI 로 넘기라 는 지시를 신시내티 SAC 앞으로 다시 한 번 명시한다. 며칠 뒤 시카고 노스 루 카사스의 조셉 건더슨이라는 시민이 데즈먼드 레슬리·조지 아담스키의 「Flying Saucers Have Landed」 가 사실이냐 허구냐 를 묻는 짧은 문의 편지를 후버 앞으로 보내고, 후버는 6월 25일 정책상 그 책에 대해서는 논평할 수 없다 는 답신을 발송한다(시리얼 343).
단수 7번이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는 그 시카고 시민의 편지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보라색 JUN 28 3:26 PM ‘54 접수 도장 하나가 거꾸로 비친 타이프 글자 위에 남아 있다. 단수 6번 끝에서 회보 제54호의 한 줄로 본부가 비행접시 자료를 OSI 로 라우팅한다 는 정책을 명문화했던 그 흐름은, 단수 7번 안에서 회보 제57호·제38호·제83호로 차례차례 다시 호명되다가, 결국 사건 파일 번호 자체가 62-101030 으로 옮겨 가는 CHANGED TO 도장 위에 멈춘다. 사바나 강 핵단지 텔레타이프 한 통으로 열린 단수가, 도르니히의 1938년 비행 장치와 7학년 학생의 친필 한 줄을 같은 폴더 안에 묶어둔 채로, 다른 사건번호로 옮겨앉으면서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