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7 — 사바나 강 핵단지, IAC 격상, IFSB, 메이블턴 가짜 외계 동물, 62-101030 으로의 이동, 1952-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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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중앙기록보관소가 보관하던 본부 사건 파일 62-HQ-83894의 7번째 단(섹션 7) 표지다. 이 단에는 일련번호 302번부터 343번까지의 문서가 묶여 있다. 표지 한가운데에는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이라는 큰 글씨가 박혀 있고, 그 위로 정보자유법(FOIPA) 청구에 대응해 사본을 떴다는 빨간 도장이 1977년 4월과 1978년 1월 등 여러 차례 찍혔다. 청구번호는 993087번. 아래쪽에는 "이 파일을 다룰 때 전신(케이블)을 쓰지 말 것" 이라는 취급 경고와 "Transfer-Call 421" 이라는 이송 표시가 함께 적혔다. 오른쪽 아래 작은 라벨은 2007년 5월 24일자 FBI 자동기밀해제 지침에 따라 기밀이 해제되었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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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파일 폴더의 뒷면이나 속표지로 보이는 누런 종이 한 장이다. 가운데에 "COPIED FOR FOIPA"라는 빨간 도장 양식이 찍혀 있고, 그 아래 표 칸에 두 줄의 손글씨 기록이 들어가 있다. 첫 줄은 시리얼 242, 담당자 "Richard Brunt"로 읽히는 이름, 분량 267,191쪽 가량, 완료일 9월 2일, 처리자 약자 CL로 보인다. 둘째 줄은 시리얼 322, 이름 "Rosenfeld", 분량 287/189, 일자 19/5/24, 코드 13으로 적혀 있다. 정보공개 청구(FOIPA)에 따라 이 파일을 누가 언제 얼마나 복사해 갔는지를 기록해 두는 사무용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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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9일 저녁 6시 46분, FBI 사바나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본문은 짧다. AEC 보안실이 이날 통보하기로, 듀폰사 직원 두 명이 사바나 강 핵단지 400구역 상공에서 비행접시 모양의 물체를 봤다. 푸른빛에 가장자리가 주황색이었고, 8월 8일 밤 9시 30분 무렵 빠른 속도로 북동쪽으로 날아갔다. 송신자는 슐렌커(Schlenker), 수신 확인은 7시 48분에 FBI WA NRB가 처리했다. 문서 하단에는 8월 14일자 접수 도장과 함께 사건번호 62-83894가 찍혔고, 여백에는 8월 11일자로 다른 부서에 라우팅된 흔적과 5건짜리 모스버그(MOSSBURG) 묶음으로 분류됐다는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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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면은 어떤 전문(電文)의 뒷면으로, 1952년 8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FBI 내부를 거친 접수 도장이 여러 차례 찍혀 있는 routing 면이다. 8월 9일 오후 7시 6분 FBI 통신부(Communications)가 먼저 받았고, 같은 날 저녁 8시 39분 벨몬트(Belmont, 당시 FBI 국내정보 담당 차장보) 사무실이 다시 접수했다. 이후 8월 11일 오전 9시 39분과 오후 1시 32분에 법무부(U.S. Dept. of Justice) 와 FBI 방첩(Espionage) 라인을 거쳐 갔다. 좌하단에는 손글씨로 "Rec'd noon 8/11/52"라고 같은 날 정오에 받았다는 메모가 적혀 있다. 본문 텍스트는 앞면 잉크가 뒷면으로 비쳐 흐릿하게만 보이고, 이 면 자체는 문서가 FBI 본부 → 벨몬트 사무실 → 법무부 → 방첩 데스크 순으로 흘러간 경로를 보여 주는 행정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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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1일 후버 국장 명의로 위스콘신 주 모스턴(Mauston)의 에드먼드 J. 레인(Edmund J. Lane)에게 보낸 답장이다. 8월 1일자로 보낸 편지는 잘 받았고, 관찰 내용을 알려준 관심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다만 비행접시 문제는 미국 공군이 조사하고 있는 사안이므로, 레인의 편지 사본을 공군부 감찰관실 산하 특별조사국 국장에게 (펜타곤, 워싱턴 D.C.)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추가로 관찰한 내용이 있으면 그쪽에 직접 연락하는 편이 좋겠다고 권한다. 서명은 존 에드거 후버 국장. 하단에는 공군 정보부에도 사본을 보낸다는 메모와 함께, 미니애폴리스에 배정된 새뮤얼 하디 특별요원 (EOD 1928-3-28, GS-12, 연봉 9,760달러) 과 II 부서에 감독관으로 배정된 클린턴 M. 스타인 특별요원 (EOD 1931-4-5, GS-15, 연봉 10,800달러) 의 인사 정보가 짧게 붙어 있다. 왼쪽 여백에는 FBI 파일 번호 62-(일부 가림)774-303 과 RECORDED·INDEXED 라우팅 표시, 아래쪽에는 1952년 8월 20일자 접수 도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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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핑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글자가 종이를 투과해 거꾸로 비쳐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새로 적힌 본문이 없다. 상단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고,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희미한 날짜 도장 자국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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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일, 위스콘신주 마우스턴에서 에드먼드 J. 케인이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보낸 편지다. 케인은 자신을 세인트폴 경찰 출신 퇴직 경관이자 1·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32년 경력의 미국재향군인회 회원 — 마우스턴 버튼-코팡 포스트 81지부 소속 — 으로 소개한다. 그는 클린턴 요원, 그리고 샘 하디와 여러 차례 친분 있게 만난 사이라고 운을 뗀 다음, 본론으로 들어간다. 요지는 한 가지다. 요즘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비행접시 소동이 사실은 그동안 터뜨린 원자폭탄에서 풀려난 에너지가 대기 중을 떠다니는 현상일 수 있다는 것. 케인은 이 추정이 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다며, 후버가 이 생각을 적절한 기관에 전달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는다. 만약 이 추측이 소동의 출처를 추적하는 데 도움이 되어 미국 사회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지금 한 번 따라가 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그는 본다. 마지막으로 협조와 검토에 감사한다는 인사, 그리고 자신의 의견에 대해 회신해 달라는 부탁을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 — 1952년 8월 18일, 사건번호 62-83894, 일련번호 303 — 이 함께 찍혀 있고, 본문 위로는 누군가가 파란 펜으로 'Flying Saucers' 라는 제목과 핵심 가설 문장에 밑줄을 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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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 타자 글자가 거꾸로 비쳐 보이고, 아래쪽 여백에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도장에는 1952년 8월 6일 오후 2시 35분에 미 법무부 FBI 가 접수했다는 기록과 함께 "MR. JONES" 라는 라우팅 메모, 그리고 1952년 8월 9일 자 별도 날짜 표시가 함께 보인다. 본문은 모두 앞면에 있고, 이 페이지 자체에는 따로 옮길 내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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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2일 자,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인디애나 뉴팰리스타인의 오라 K. 타이그렛 부인에게 보낸 답장이다. 후버는 부인이 7월 31일 자로 전쟁부 앞 FBI 경유 우편으로 보낸 편지가 도착했음을 알리고, 관찰 내용을 알려준 데 감사를 표한 뒤, 같은 내용이 공군에도 관심사로 보여 편지 사본을 공군 측에 전달했다고 말한다. 본문 위쪽 여백에 누군가 파란 펜으로 "Flying Saucers" 라고 적어두어, FBI 내부에서 이 편지를 비행접시 관련 민원으로 분류했음을 보여준다. 아래쪽에는 사건번호 62-83894-304 와 1952년 8월 14일 자 RECORDED·INDEXED 도장, 8월 22일 자 발송 표시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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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한 통의 편지를 뒤집어 스캔한 면이다. 앞면 본문은 종이 너머로 비쳐 나와 거울처럼 뒤집힌 상태라 그대로 읽히지 않고, 대신 뒷면에 찍힌 FBI 접수·발송 도장들이 또렷이 남아 있다. 워싱턴 D.C. 법무부 FBI 본부 우편실은 1962년 8월 2일 오후 5시 38분에 이 편지를 받았고, 같은 달 17일에 다시 외부로 발송 처리되었다. 8월 23일 자로 한 번 더 정리 도장이 찍혔다. 봉투에 같이 꽂혔던 흔적인 듯 페이지 상단에는 서류 묶음 구멍 두 개와 약간의 찢김 자국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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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3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에 있는 공군성 감찰감실 특별수사국장 앞으로 보낸 한 쪽짜리 공문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후버는 미시간주 폰티악의 W. E. 제닝스가 8월 5일자로 보내온 편지의 사본을 동봉한다고 알린다. 제닝스의 주소는 폰티악 17지구 무젤메리 가 3056번지. 편지 내용은 동봉본 자체가 설명한다고만 적고, FBI 는 제닝스에게 편지를 잘 받았으며 사본을 공군 측에 넘겼다는 답신을 보냈다고 덧붙인다. 마지막 줄에서 후버는 FBI 가 이 건을 더 다루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본문 아래 '비고'에는 제닝스라는 인물에 대해 FBI 파일 내에 식별 가능한 기록이 없다는 메모가 붙어 있다. 우측 여백의 RECORDED 도장이 이 공문을 62-83894 시리얼 305번으로 등록했고, 8월 15일자로 접수, 8월 20일자로 재처리된 흔적이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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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앞면 타이프 글씨가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일 뿐이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우편실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모서리에는 1953년 8월 4일자 빨간 날짜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상단에는 서류철에 끼우려고 뚫은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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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3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워싱턴 펜타곤의 공군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ks)"이고, 상단에는 "보안 정보(Security Information)" 표시가 찍혀 있다.
후버는 뉴욕시 파크 애비뉴 1647번지에 사는 베네딕토 로메로(Benedicto Romero)라는 인물이 1952년 7월 31일 FBI로 보낸 "내용이 자명한(self explanatory)" 편지 한 부를 첨부해 공군에 넘긴다고 알린다. 로메로 본인에게는 편지를 잘 받았으며, 적절히 다루어 주십사 사본을 공군 측에 넘겼다고 회신해 두었다. FBI 자체로는 이 건에 더 이상의 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본문 아래 메모란에는 "FBI 파일에는 로메로 씨를 식별할 만한 어떤 정보도 남아 있지 않다"는 한 줄이 덧붙어 있다. 작성자 이니셜은 EJM:kc.
본문 우측 여백에는 사건 번호 62-83894-306이 손글씨로 적혀 있고, 가운데에는 RECORDED-11과 1952년 8월 15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하단에는 1952년 8월 26일자 붉은 접수 인장과 "MAILED ... AUG 1952 COMM. FBI" 발송 도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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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의 타자기 본문이 누렇게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힌 상태라 그대로 읽기는 어렵다. 페이지 하단에는 미 법무부 접수 도장이 1949년 3월 13일 오후 5시 자로 남아 있고, 오른쪽 아래에 붉은 잉크로 짧은 식별 표기가 더 있다. 페이지 위쪽 가장자리에는 서류철에 꽂혔던 두 개의 펀치 구멍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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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4일, 후버 FBI 국장이 펜타곤의 공군 감찰감실 특별수사국장에게 보낸 메모로, 제목은 '비행원반(FLYING DISKS)'이다. 후버는 웨스트버지니아주 페어몬트 월넛가 606번지의 프레드 마우페 여사가 8월 1일자로 FBI에 보낸 자기 설명적 편지의 사본을 동봉한다고 알린다. 마우페 여사에게는 편지 수신을 알렸고, 사본을 공군 측으로 넘겼으니 그쪽에서 적절히 처리해 달라고 통보했다고 적는다. FBI는 이 건에 더 이상 조치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는다. 마지막 줄에서는 FBI 파일에 마우페 여사와 동일 인물로 식별할 만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우측 여백에는 사건번호 62-83894-307과 1952년 8월 15일 등록·8월 26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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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페이지 타자 본문이 뒷면 종이 결로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거꾸로 뒤집혀 있어 직접 읽히지 않고, 아래쪽에 FBI 우편실 접수 도장 — 1952년 8월 14일 오후 5시 25분, 미국 법무부 FBI — 과 오른쪽 가장자리에 빨간 잉크로 찍힌 8월 26일 일자 도장만 또렷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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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내부 서비스 유닛이 사용하는 색인 검색 슬립이다. 양식 상단에는 감독관 서명과 5708호실이 적혀 있고, 검색 대상은 손글씨로 "Mrs. ◯◯ Staufe"라는 인물 이름이 들어가 있다. 검색 옵션 가운데 정확한 철자·전체 참조·체제전복 관련 참조·메인 파일·지역 한정 가운데 어느 것에도 체크 표시는 없고, 검색자 이니셜과 5월 1일 자 날짜만 기입돼 있다. 파일 번호 칸에는 "NR"(No Record, 기록 없음)이라고만 쓰여 있어, 이 인물에 대해 FBI 색인에 등록된 자료가 없다는 결과를 보여 준다. 하단에는 작업자 이니셜 서명이 한 차례 더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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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8일, C. F. 다우닝이 R. T. 하보에게 보낸 FBI 내부 메모다. 문서번호는 62-83894, 보안 분류는 "Security Matter - X". 신시내티 인콰이어러(Cincinnati Enquirer) 신문사가 받은 독일어로 작성된 익명 편지가 "하늘을 나는 원반(flying saucers)"에 관한 내용이라 FBI 신시내티 지부가 본부로 올린 건이다.
다우닝은 신시내티 지부가 1952년 8월 6일자 공문으로 이 독일어 익명 편지를 송부해 온 사실을 적시한 뒤, 본부 암호분석·번역 섹션(Cryptanalysis-Translation Section)이 준비한 번역본 7부를 첨부한다고 보고한다. 8월 6일자 신시내티 공문에는 아직 본부 차원의 회신을 보내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권고 사항으로는, 국내정보부(Domestic Intelligence Division)가 신시내티 지부의 송부 자료와 본부 번역본을 함께 검토해 적절히 처리하되, 특히 신시내티 편지 마지막 단락에 담긴 제안 — 이 정보를 타 정부 기관과도 공유하는 방안을 고려할 것 — 을 눈여겨봐 달라고 한다.
메모 좌하단에는 1952년 8월 20일 접수 도장과 9월 2일 받은 또 다른 도장이 찍혔고, 우측 여백에는 톨슨·래드 등 후버 측근들 이름이 줄지어 라우팅 칸으로 인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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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건철의 한 페이지 뒷면이다. 잉크가 비쳐 보일 뿐 본문은 없고, 접수 도장만 거꾸로 찍혀 있다. 1952년 8월 11일 오전 9시 56분 법무부 방첩과(Espionage)가 받았고, 같은 달 18일 오전 10시 2분 FBI 연구소(Laboratory Division)로 넘어갔으며, 'RECEIVED-HARBO' 표시와 함께 8월 18일과 9월 8일 두 번 더 접수 처리됐다. 본문 메모는 앞면에 있고, 이 페이지는 그 메모가 부서 사이를 오간 경로를 도장으로만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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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원문을 영어로 옮긴 번역본이다. 제보자 M. SCH. 가 "비행접시 (Flying Saucer)" 에 관해 쓴 글을 1952년 8월 8일 프리드리히 G. 노이하우저 (Friedrich G. Neuhauser) 가 옮겼다. 제보자는 1944년에 시험된 무기가 지금 양산에 들어간 듯하며 큰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적었다. 이 V-무기는 지름 약 45~50미터의 원반 모양 본체를 가졌고, 바깥쪽 고리에 자동 원형 노즐이 45~50개 달려 있어 점화되면 중앙의 플렉시글라스 구체 둘레를 회전한다. 그 구체 안에는 장거리 조종을 위한 계측·제어 장치가 있고, 원자폭탄을 실을 공간까지 남아 있다고 했다. 이 무기는 현재 러시아 손에 있으며 유효 사거리는 3만~3만 5천 킬로미터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독일의 V-무기 개발자 리델 (RIEDEL) 이 자기가 직접 작업했던 전형적인 V-무기라고 진술했다고 덧붙였다. 글의 마지막에서 제보자는 무지한 사람들의 공포보다는 진실이 낫다고 단언했다. 페이지 아래에는 1964년 11월 19일자 "COPIES DESTROYED" 도장과 사건 번호 62-83894-308 이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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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20일, 후버 FBI 국장이 펜타곤의 공군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 앞으로 보낸 "비행접시" 건 공문이다. 1952년 7월 29일 뉴욕 브루클린 클리프턴 플레이스 17번지의 존 갤러웨이가 보낸 편지에 동봉된 문서를 첨부해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후버는 갤러웨이에게 편지를 받았다고 회신했고, 그가 보낸 자료는 적절한 조치를 위해 공군 쪽으로 넘겼으며, FBI 차원에서 더 이상의 후속 조치는 예정에 없다고 짧게 끝낸다. 우편 발송을 확인하는 1952년 8월 21일 FBI 우편 도장, 8월 25일 접수 도장, 9월 3일 국장실 수신 도장이 함께 찍혀 있고, 우상단에는 1977년 8월 8일자 "관계 기관·현장 사무소에 라우팅 슬립으로 통보" 도장이 후일 공개·재배포 절차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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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본부의 빈 페이지 뒷면 스캔이다. 종이를 통해 앞면의 도장과 메모가 거꾸로 비쳐 보인다. 법무부 파일 권한 부여 도장, 1952년 8월 21일 오전 8시 우편실 접수 도장, 그리고 알아보기 힘든 손글씨 서명이 역상으로 드러나 있다. 페이지 자체에는 별도의 본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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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18일, 샌디에이고 지부 특수요원 책임자(SAC)가 FBI 국장 후버에게 보낸 보고 메모다. 사건번호는 100-8565, 표제는 "보더랜드 사이언스 리서치 어소시에이츠 —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 미드 레인 디렉터, 맥스 프리덤 롱 디렉터 — 플라잉 소서". 8월 6일자 샌디에이고 보고에 이어 본부에 추가 자료를 송부한다는 내용이다. 자료는 단체 회원인 프랜시스 오엠이 제공한 두 가지로, 하나는 미합중국 대통령에게 보낸 네 쪽짜리 등사 인쇄 서한, 다른 하나는 "공공의 정보를 위하여 — 그리고 기록을 위하여 — 중요 자료 개요"라는 제목의 세 쪽짜리 등사 인쇄 공고문이다. 페이지 하단의 NOT RECORDED 도장과 1952년 9월 10일자 접수 도장, 그리고 여백의 손글씨 "62-83894"는 이 메모가 FBI 본부 사건 파일 62-83894 아래로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준다. 우측 여백에는 ORIGINAL FILED IN 62-83894-3 라는 표시도 함께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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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
이 페이지는 앞 장 타자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잉크가 종이를 비쳐 글자들이 좌우 반전된 채 흐릿하게 드러나고, 본문 내용은 앞면에서 이미 읽힌 그 편지다. 종이 자체에는 새 본문이 없다. 다만 뒷면에 행정 처리 흔적이 몇 개 찍혀 있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1952년 9월 10일 접수 도장이 세로로 찍혀 있고, 페이지 아래쪽에는 "NOT RECORDED" 도장과 함께 1952년 10월 8일자 표시가 보인다. 왼쪽 아래에는 연필로 "Chief of Bur." 와 62- 로 시작하는 파일 번호를 적어 둔 메모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본문 그 자체보다는, 이 편지가 FBI 안에서 언제 들어오고 어떤 파일로 분류 시도되었는지를 보여 주는 행정 흔적이 담긴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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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1952년 8월 22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미네소타주 잭슨에 사는 윌리엄 호프마이어에게 보낸 회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310. 후버는 8월 15일 소인이 찍힌 호프마이어의 편지와 동봉물을 받았다며, 이 일을 알려준 데 감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이 FBI 관할의 위반 사항을 담고 있지 않아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힌다. 대신 후버는 호프마이어의 편지와 원본 동봉물 사본을 워싱턴 D.C. 펜타곤에 있는 공군부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에게 전달하겠다고 알린다 — 그 기관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라는 이유다. 끝에 붙은 내부 메모는, 호프마이어가 자신의 농장 위를 도는 "꾸준한 흰 빛"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편지를 이런 유형의 사안을 다루는 공군 부서로 넘긴다고 적는다. 호프마이어가 동봉한 것은 잘게 찢은 주석박 비슷한 물건의 표본이었다고 한다. 좌측 여백에는 빨간색으로 문서번호 310이 강조되어 있고, 하단에는 1952년 8월 22일과 9월 8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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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에서 비쳐 들어온 타자 본문 윤곽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판독 가능한 텍스트는 없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거꾸로 찍힌 FBI 우편실 접수 도장이 하나 남아 있는데, 1952년 8월 22일 오후 5시 59분에 미 법무부 FBI 우편실로 들어왔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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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2일, 미네소타주 잭슨 R.R. 3에 사는 윌리엄 헤핑거(Wm Heffinger)가 후버 FBI 국장에게 "비행접시(Flying Saucers)" 건으로 보낸 손글씨 편지의 첫 장이다. 헤핑거는 FBI가 물체를 분석해 주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견본을 동봉해 보낸다고 운을 뗀다. 자기 삼촌이 목초지에서 둥글게 쌓인, 반짝이 같은(tinsel) 물질을 발견했고 그 밑의 클로버가 탄 듯 보였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탄 자국이 삼각형 모양으로 세 군데 더 있었다고 적는다. 토요일 아침에는 이웃집 부인이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자기네 농장 위를 흰 빛 하나가 빙빙 도는 것을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일요일 아침 삼촌이 소를 보러 나갔다가 풀밭 위에서 반짝이는 그 물질을 발견했다는 순서다. 헤핑거는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것 같지는 않다고, 흩어져 있었고 용기에 담겨 있지도 않았으며 발견 지점이 (이웃집) 농장에서 약 반 마일 떨어진 곳이라고 적는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뭔지 알고 싶어 편지를 쓴다며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우측에는 "RECORDED 88-…", "ELECTRONICALLY PROCESSED AUG 14 1952", "310" 도장이 겹쳐 찍혀 있고 페이지 하단 여백에는 후버 사무실 직원이 답신 처리를 기록한 듯한 "ack. ltr. 8/22/52 LH" 메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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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손편지의 마지막 장이다. 윗부분에 푸른 잉크 필기체로 "분석해 보시고 알려 주십시오 — 안녕히, Wm Hoffmeyer" 라고 마무리 인사와 서명이 이어진다. 나머지 본문은 비어 있고, 페이지 아래쪽에 거꾸로 찍힌 FBI 접수 도장이 보인다. 1952년 8월 19일 오후 12시 33분에 미 법무부 FBI 가 접수했고, 옆에는 손글씨로 "MR JONES" 라고 라우팅 표시가 같이 적혀 있다. 그 위쪽 여백에는 "AUG 20 1952" 로 추정되는 희미한 메모가 한 줄 더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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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8월 2일 미네소타 잭슨에서 Wm Hoffsuger 라는 시민이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의 사본이다. 글쓴이는 분석을 의뢰할 만한 물건의 표본을 동봉할 생각이라고 운을 뗀다. 자기 삼촌이 목초지에서 둥글게 쌓인 무더기로 무언가를 발견했는데 모양이 꼭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틴셀 같았다고 한다. 그 무더기 밑은 클로버가 타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것 말고도 비슷한 식으로 탄 자국 세 개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이웃집 부인이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농장 위를 천천히 빙빙 도는 흰 불빛 하나를 봤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다 같은 일요일 아침 삼촌이 소를 데리러 나갔다가 그 물체가 햇빛에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글쓴이가 보기에 그 물건은 비행기에서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어디 용기에 담겨 있지도 않고 그대로 흩어져 있었으며, 가장 가까운 길에서도 반 마일이나 떨어진 풀밭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니 후버 쪽에서 한번 분석해 달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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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
1952년 8월 20일 자,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로스앤젤레스 사우스 버몬트 1413번지의 존 E. 랭에게 보낸 답장이다. 후버는 랭이 8월 12일에 보낸 편지를 잘 받았으며, 자신의 관찰을 알려준 그 관심에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사안이 미 공군 당국의 관심사인 만큼, 랭의 서신을 한 부 복사해 워싱턴 D.C. 펜타곤의 공군 장관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문서 상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311과 RECORDED·INDEXED 126이라는 처리 번호가, 좌측 여백에는 EX. 73 표시가 보인다. 하단의 COMM-FBI 발송 도장은 8월 20일 접수·30일 발송으로 찍혀 있어, 후버 명의 답장이 며칠 안에 외부로 나갔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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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타자기로 친 편지 한 장의 뒷면이다. 잉크가 종이 반대편으로 배어 글자가 거울상으로 희미하게 비쳐 나오지만, 문장은 거의 알아볼 수 없다. 하단 왼쪽에는 1952년 3월 4일 오후 12시에 FBI 우편실이 이 문서를 접수했다는 일자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옆 우측 하단에는 붉은 잉크의 작은 도장 자국이 함께 남아 있다. 페이지 자체에는 새 본문이 없고, 앞장 편지가 우편으로 들어와 분류된 시점을 알려 주는 행정 흔적만 남은 뒷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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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1952년 8월 18일, 로스앤젤레스의 시민 존 K. 랭(John K. Lang)이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랭은 지난 일요일 아내와 함께 본 영화에서 비행접시가 한 점의 빛처럼 보이는 장면을 보고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고 적는다. 하늘 위에 비행기가 한 대 떠 있고, 그 비행기에서 스포트라이트나 서치라이트를 아래로 비추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아군 비행기가 확인하러 올라가면 그 순간 불을 끄고 빠른 속도로 자기 비행장이나 다른 곳으로 도망쳐 대중을 속이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다. 그는 이를 증명할 방법까지 제안한다. 아군 비행기가 정체를 확인하러 올라갈 때는 모든 불을 끄고 멀리 떨어진 채로, 상대 비행기 위쪽으로 돌아 접근하면 잡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다만 필요하면 격추할 준비도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더 확실한 검증은 우리 비행기 한 대를 직접 띄워 스포트라이트나 서치라이트를 비춰 보는 것이라고 제안하며, 이 의견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고 자기 생각이 그렇게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닐 거라고 마무리한다. 서명 아래에는 발신인 주소(1413 So. Vermont, 로스앤젤레스)가 적혀 있고, 우측에는 FBI 접수 도장 RECORDED · 126과 AUG 27 1952 날짜 스탬프, 그리고 빨간 잉크로 사건 번호 62-83894-311이 손으로 적혀 있어 이 편지가 후버의 UAP 파일에 정식 편입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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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1952년 8월 5일, 샌디에이고 SAC 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제목은 "BORDERLAND SCIENCES, RESEARCH ASSOCIATES —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미드 레인(Mead Layne) 소장; 맥스 프리덤 롱(Max Freedom Long) 소장". 발신 SAC 는 요즘 "비행접시"를 둘러싼 히스테리를 감안할 때, 국 본부가 이 단체에 관한 정보에 관심이 있을 것 같아 보고한다고 운을 뗀다. 동봉한 자료는 FBI 와 같은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Businessmens Assurance Company 를 운영하는 프랜시스 옴(Francis Ohm) 이 직접 전달해 준 것이다. 옴은 이 단체의 회원이기도 하다. 1952년 8월 1일 금요일 정오 무렵 옴은 SAC 에게 급히 면담을 요청했고, 같은 날 오후 1시에 단체 회의가 잡혀 있다고 알려 왔다. 매우 중요한 정보를 논의할 자리라는 것이다. 옴의 설명에 따르면 이 단체가 사용하는 방법은 동봉 자료에서도 드러나듯 오컬트에 가까운데, 그 방법으로 최근 캘리포니아 테하차피(Tehachapi) 에서 일어난 지진을 한참 앞서 예측해 냈다고 한다. 같은 방법으로 다음 정보도 얻었다고 SAC 에게 전했다. 첫째,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태평양에 매우 강한 해일이 닥쳐 일본 열도 대부분이 쓸려 사라질 것이다. 둘째, 일본 근해의 비늘 있는 어류는 곧 그 해역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셋째, 이 해일은 하와이 제도까지 휩쓸 것이다. 넷째, 미국 서해안 역시 이 해일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다섯째, 지난 한 주 사이 신문 보도로 알려진 태평양의 새 섬 출현 또한 자신들이 미리 예측한 것이다. 페이지 하단에는 작성자 이니셜 "JPS:hs", 1952년 9월 11일 접수 도장, "NOT RECORDED" 표시가 함께 보인다. 좌측 상단에는 테이프로 보강한 자국, 좌측 여백에는 "4 ENCL." 등 손글씨 메모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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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1952년 8월 5일 FBI 국장에게 올린 보고서 두 번째 장으로, 샌디에이고의 단체 '보더랜드 사이언스 리서치 어소시에이츠'(원장 미드 레인, 맥스 프리덤 롱)와 관련된 OHM 이라는 인물의 진술을 정리한 대목이다.
여섯 번째 항목에서 그는 플라잉 소서가 환상이 아니라 실재이며, 자신이 속한 단체의 동료들이 그 비행체를 조종하는 자들과 직접 대화를 나눠 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미국 정부 고위층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자기네는 지구에 평화의 임무로 와 있을 뿐 적대적 의도가 없다. 둘째, 그럼에도 미국 정부가 계속 비행기를 띄워 자신들을 추격하고 사격까지 한다면, 보유한 '디인티그레이터' 무기로 그 비행기들을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분해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어 OHM 은 보고자에게 오후 1시 회합에 본인이 직접 참석하거나 속기사라도 보내 회의 내용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고자는 통보가 너무 급박하고 다른 일정이 있는 데다 속기사들도 일정이 차 있다며 거절했고, OHM 은 회합에서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다만 8월 2일자 시점까지 OHM 으로부터 추가 연락은 들어오지 않았다.
보고자는 OHM 이 정신적으로 완전히 멀쩡한 사람이며 샌디에이고에서 큰 보험 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본인 스스로는 이 단체의 활동이 효과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이 사안에 대한 별도 수사는 진행하고 있지 않으며, 본인도 이 단체의 어떤 모임에도 참석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는다.
오른쪽 여백 상단에는 종이를 보수한 듯한 투명 테이프 자국이 길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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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1952년 8월 25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미주리주 코슈코농의 C. A. 초인스키에게 보낸 답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312. 후버는 초인스키가 8월 14일에 보낸 편지를 잘 받았으며, 관찰 내용을 알려준 데 감사한다고 짧게 인사한다. 이어서 그 사안이 다른 정부 기관의 관심사이므로, 편지 사본을 워싱턴 D.C. 펜타곤에 있는 공군부 감찰감실 산하 특별조사국장에게 전달하겠다고 알린다. 말미에는 동일한 사본을 정형화된 양식 편지로 공군부 특별조사국장에게 함께 발송했다는 내부 처리 메모가 붙어 있다. 좌측 여백의 RECORDED·INDEXED 도장과 하단의 8월 25일 발송 도장, 9월 8일 회람 도장은 이 답신이 FBI 내부 기록 체계를 정상적으로 통과해 발송된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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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
1952년 8월 14일자 손편지. 줄친 노트지에 연필로 쓰여 있고, 수신은 "Mr Hoover" — 즉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다. 머리에 "FLYING SAUCERS" 라는 주제 라벨이 밑줄과 함께 따로 적혀 있다.
발신자는 자기가 4년 동안 같은 주장을 해왔다고 운을 뗀다. 플라잉 소서가 사실은 "공기 중에 띄워둔 사악한 질병 매개 장치" 이며, 그 장치 수천 대가 러시아인들에 의해 미국 상공으로 발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장 곳곳에 줄을 긋고 고쳐 쓴 흔적이 있고, 본문은 "대부분은" 에서 끊긴 채 다음 면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가운데에는 FBI 의 접수 도장이 본문 위에 겹쳐 찍혀 있다. RECORDED-14, EX-32, 그리고 빨간 잉크로 62-83894-317 이라는 직렬 번호가 부여돼 있다. 접수일은 1952년 9월 18일. 즉 편지가 도착한 뒤 FBI 의 플라잉 소서 통합 파일에 한 항목으로 편입됐다는 뜻이다. 페이지 하단 여백에는 "Mail ack 9-22-52 JH" 라고 적어 둬, 9월 22일에 형식적인 회신을 보냈음을 직원이 짧게 표시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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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
노란 줄 노트 한 장의 뒷면. 본문 글은 없고, 아래쪽 여백에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1947년 8월 19일 오후 3시 49분과 4시 52분에 찍혔다. 위에 "MR JONES"와 "MR. LADD" 라우팅 표시,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손으로 "8/19"라고 적었다. 앞면 메모를 부서 안에서 돌리며 접수 시간을 기록한 행정용 뒷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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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노란 괘선 노트의 두 번째 장에 손으로 쓴 메모다. 새벽이 되기 전에 보고가 두 건 들어왔고, 그중 일부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단순한 수증기일 뿐이라고 말한다는 취지가 적혀 있다. 발신인은 "출처를 입증하면 당신네 부서가 또 한 번의 개가를 올릴 것"이라며 격려한 뒤 감사 인사로 마무리한다. 서명은 C. S. Chrominski, 지명은 위스콘신의 Koshkonong, 마지막 줄에는 2220 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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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1952년 8월 22일자 FBI 내부 메모로, W. A. 브래니건이 A. H. 벨몬트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건이다. 브래니건은 현장에서 들어온 통신을 검토한 결과, 일선 사무소들이 이미 내려간 지침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는 1947년 10월 1일자 Bureau Bulletin 제57호 D항, 그리고 1948년 3월 25일자 SAC Letter 제38호가 비행 접시 관련 민원을 현지 OSI(공군 특별수사대)로 넘기라고 정해 둔 지침인데, 현장에서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브래니건은 첨부한 새 SAC Letter를 발부해 현장에 다시 한 번 같은 지시를 환기시키자고 건의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사건 번호 62-83894-313과 1952년 9월 5일·10일 접수 도장이 같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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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이 페이지에는 본문이 없다. 앞면에서 찍힌 도장과 라벨이 종이를 통해 뒤로 비쳐 보이는 빈 뒷면 스캔이다. 1952년 9월 9일 오후 4시 23분, 미 법무부 부국장실, FBI 접수·색인 도장 자국이 뒤집힌 채 희미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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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1952년 8월 18일자 FBI 내부 메모로, W. A. 브래니건이 A. H. 벨몬트 앞으로 비행접시 건을 보고하는 문건이다. 야간 당직 감독관들에게, 비행접시 관련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지 지시를 전달하기 위해 작성됐다. 배경 부분은 이렇게 적혀 있다 — 볼링필드 4 공군기지 OSI 소속 윌리엄 디건 대위가, 비행접시(소서 등) 목격 정보를 받는 즉시 주야 구분 없이 자신에게 전화로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연락처는 코드 1261, 내선 309 번이다. 디건 대위는 공군이 이 사안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으며, FBI 가 즉각 협조해 접수된 신고 내용을 공유해 주면 감사하겠다고 전했다. 메모는 끝부분에서, 이 사본을 각 사무실 야간·주말 감독관 비치본에 끼워 두라고 권고한다. 우측 하단에는 사건 번호 62-83894 와 일련번호 314, 1952년 9월 5일 / 18일자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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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이 장은 앞면 타자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빈 종이 위로 앞면 글자가 거꾸로 비쳐 보이고, 상단에는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라고 적힌 양식 머리띠가 뒤집힌 채 어렴풋이 드러난다. 본문 내용은 이 면에서 직접 읽히지 않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내부 접수 도장 두 개가 남아 있는데, 하나는 'RECD BELMONT SEP 15 10:33 AM '49'로 1949년 9월 15일 오전 10시 33분에 벨몬트 라인이 접수했음을 가리키고, 다른 하나는 'RECD E. SPINRADE — F.B.I. — DEPT. OF JUSTICE'로 같은 시점 또 다른 접수 담당자가 사본을 받았다는 흔적이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SEP 14 1953'(혹은 1955) 식 후속 날짜 도장이 한 번 더 찍혀 있어, 이 종이가 시간 차를 두고 다시 한 번 파일 순환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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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1952년 8월 29일자 SAC 회보 제83호의 일부분이다. 첫머리는 1947년 10월 1일자 회보 회보 제57호 D항과 1949년 3월 25일자 SAC 회보 제38호를 가리키며, 현재 일부 FBI 현장 사무소가 비행접시 관련 민원을 기존 본부 지침대로 현지 OSI(공군 특별수사대)에 넘기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어 각 사무소장에게, 비행접시 목격 정보가 들어오면 SAC 회보 제38호에 첨부된 공군 메모가 정한 항목을 신고자에게 직접 캐물어 정리한 뒤 곧바로 현지 OSI에 넘기라고 지시한다. 마지막 문장은 이른바 비행접시 조사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공군 소관임을 다시 못 박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1983년 6월 28일자 "모든 정보 비밀해제" 도장과 "62-83894 / NOT RECORDED / 1952년 9월 3일" 접수 표시가 같이 찍혀 있는데, 이 회보가 후일 비행접시 본 파일에 흡수된 경로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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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
1952년 8월 29일자로 FBI 내부에서 오간 메모다. 발신자는 D. J. 파슨스, 수신자는 하보. 제목은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의 D. S. 데스버저스가 봤다고 주장한 미확인 비행물체"다.
공군은 8월 26일자 공문으로 데스버저스의 모자를 검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데스버저스는 웨스트팜비치의 스카우트 단장으로, 인적이 드문 지역에서 미확인 비행물체를 봤다고 진술했다. 진술에 따르면 그가 현장을 살피러 다가가자 지름 9미터 가량의 물체가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다가 "붉은 덩어리"를 쏘아 그가 의식을 잃었다. 모자에는 불에 탄 구멍이 몇 개 나 있었고, 데스버저스의 팔에 난 털도 그을렸다고 한다. 공군은 모자에 남은 잔여물이 있다면 그 성분을 밝혀 달라고 요청했다.
공군은 그날 밤 안에 구두 보고를 원했다. 파슨스는 검사를 마쳤고 다음과 같이 통보할 준비를 했다고 적었다.
첫째, 모자에 화상을 입힌 물질의 성분을 판정할 만한 잔여물은 남아 있지 않다. 눈에 띄는 탄 자국 말고도 아주 작은 탄 부위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작은 불씨가 떨어져 생긴 것으로 보인다.
둘째, 모자챙과 가장자리의 상당 부분이 그을려 있지만 그을림이 한결같지 않다. 한 번의 불꽃으로 동시에 생긴 화상이라면 그렇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모자챙 앞쪽이 다른 부분보다 더 심하게 그을려 있는데, 불꽃이 정말로 머리 바로 위에서 내려왔다면 이런 양상은 나오지 않는다.
셋째, 모자를 정면에서 보면 휘장 왼쪽과 푸른 천의 접힌 부분 아래에는 그을린 흔적이 없다. 즉 그을림이 생긴 시점에 모자를 쓰고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접힌 부분은 모자를 머리에 쓰면 펴진다.
결론적으로 파슨스는 공군 프리 대령에게 위 내용을 구두로 알리라고 권고했다. 우측 하단 손글씨에는 "1952년 8월 29일 18시 30분, 전화로 OSI 프리 중령에게 보고"라고 적혀 있고, 사건번호 62-83894-315와 9월 11일자 접수 스탬프가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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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이 페이지는 앞면 사무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종이를 뚫고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이고, 실제 읽을 수 있는 것은 뒷면에 찍힌 접수 도장들이다. FBI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가 9월 3일 오후 12시 29분, 같은 부서가 9월 3일 오전 9시 49분, 실험실 분과(Laboratory Division)가 8월 29일 오전 9시 9분, 글래빈(Glavin)이 9월 2일 오후 5시 10분, 충성도 심사부(Loyalty Unit)가 9월 7일 오후 9시 56분에 각각 접수했다는 흐름이 도장 순서로 남아 있다. 한 장의 사무 메모가 1952년 늦여름 FBI 내부 여러 부서를 거쳐 돌아간 라우팅 기록 자체가 이 페이지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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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6
1952년 9월 11일, 후버 국장이 뉴저지 로드스타운의 로이 엘웰에게 보낸 회신이다. 9월 8일자로 부친 편지를 잘 받았고, 직접 관찰한 내용을 알려준 그 관심에 고맙다고 인사한다. 다만 편지 내용이 다른 정부 기관에도 의미가 있을 수 있어, 사본을 상무부 산하 민간항공국 행정관과 국방장관에게 전달하겠다고 알린다. 서명은 존 에드거 후버 국장. 하단에는 민간항공국과 국방장관에게 사본을 정식 양식으로 발송했다는 표시가 붙어 있고, 좌측 여백에 손글씨로 "Mossburg"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9월 12일 발송, 9월 25일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엘웰의 목격담이 FBI에서 끝나지 않고 항공·국방 라인으로 흘러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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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페이지 자체에 새로 적힌 본문은 없고, 다른 면(앞쪽)의 타자 본문이 뒷면으로 비쳐 보이는 상태다. 종이 위쪽에는 FBI 메일룸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1955년 9월 16일 낮 12시 13분에 법무부 FBI 메일룸으로 들어온 문서임을 알 수 있고, 그 옆에는 1955년 9월 1일 발송 도장과 9월 26일자 또 다른 처리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상단에는 프라이스(Price)의 사무실로 회람되었음을 표시한 라우팅 스탬프 흔적이 보인다. 비쳐 보이는 본문 글자는 거울상이라 정확한 문장을 옮기기는 어렵지만, 항공 행정 기관과의 협조에 관한 내용 일부가 단편적으로 식별된다. 페이지 자체는 발송·접수·회람 경로를 기록한 행정 흔적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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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1952년 8월, 뉴저지주 로즈타운(Roadstown)의 한 시민이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손으로 쓴 편지를 보냈다. 발신인은 "비행접시와 하늘의 다른 물체들에 대해 너무 많이 읽다 보니, 1917년부터 자신이 믿게 된 한 가지 이론을 후버에게 알리려 결심했다"고 운을 뗀다. 그는 어느 날 저녁 10시쯤 남서쪽 하늘에서 한 물체가 약 50도 각도로 지면을 향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한다. 그 각도대로라면 자신들이 있는 곳의 남쪽 어딘가에 부딪혔어야 한다. 물체는 건물 뒤로 사라졌고, 그가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려 뛰쳐나갔을 때는 이미 지표면과 수평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즉시 상승하기 시작해, 점점 더 빠르게 위로 솟구쳤다는 묘사에서 한 페이지가 끝난다. 페이지에는 FBI의 접수 도장 "RECORDED 126"과 1952년 7월 16일자로 보이는 날짜 스탬프, 빨간 잉크로 적힌 "FLYING SAUCERS" 라벨이 함께 보인다 — 시민 제보를 FBI 내부 파일에 정식 등록했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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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FBI 내부 라우팅 슬립의 뒷면이다. 1957년 9월 8일 오후 4시 57분에 미 법무부 FBI 본부 접수 도장이 찍혔고, 수신자로 존스(Mr. Jones)가 지정됐다. 같은 문서를 9월 16일 오후 4시 26분에 FBI 방첩(Espionage) 부서가 다시 접수한 도장이 옆에 겹쳐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두 차례에 걸친 부서 간 회람 기록만 남아 있는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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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0
손글씨 진술서의 두 번째 장이다. 목격자는 그 물체가 점점 더 곧게 날아가다가 남동쪽 하늘로 사라졌다고 적는다. 크기는 달의 절반 정도로 보였고 옅은 노란빛이었지만, 훨씬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작은 물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같이 있던 일흔 넘은 남성도 그 장면을 함께 봤는데, 자기 조상들도 여러 세대에 걸쳐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고 그것을 "전조(Omens)" 혹은 "잭 오 랜턴(Jack O Lanterns)"이라 불러왔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목격자는 그 물체가 지구를 향해 절반쯤 떨어져 내려오다가 — 자신이 처음 본 그 자리에서부터 — 다시 솟아올라 우주 공간으로 사라졌다는 점이 무척 신경 쓰였다고 적는다. 지구 중력에 너무 깊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태양이나 달의 중력이 끌어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고, 더구나 태양과 달은 모두 지구 반대편에 있었다. 그 물체는 그 둘 어느 쪽과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고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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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푸른 잉크로 쓴 손글씨 진술서의 세 번째 장이다. 작성자는 당시 자석을 연구하던 중이었다고 회상한다. 자석은 매우 단순한 장치로 보였고,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졌다. 철을 끌어당기고, 자석끼리도 서로를 끌어당기며, 또 서로를 밀어내기도 한다. 어떤 자석은 당기는 힘도 미는 힘도 강했고, 어떤 자석은 당기는 힘은 강한데 미는 힘은 약했으며, 그 반대도 있었고, 둘 다 약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자석을 이용해 철광석 덩어리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그 광석을 녹여 불순물을 떨어뜨려 순수한 철만 남기는 방법이 쓰인다고 적는다. 자석을 연구하던 중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그 뒤로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시를 들겠다며, G는 중력(Gravity), P&P는 중력의 밀고 당김(Push & Pull of Gravity)이라는 약식 표기를 도입한다. 오른쪽 위에는 페이지 번호 (3)이 작게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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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푸른 잉크로 적은 손글씨 페이지로, 오른쪽 위에 (4) 라는 번호가 붙어 있다. 글쓴이는 중력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풀어 설명한다. 지구처럼 완성된 하나의 'G 단위'는 모든 물체를 자기 중심으로 끌어당기는 힘과, 자석과 비슷하게 모든 물체를 중심에서 밀어내는 힘을 동시에 품고 있다고 본다. 우리가 알고 느끼는 중력은 이 끌어당기는 힘에서 밀어내는 힘을 뺀 나머지라는 것이다. 지구라는 단위 전체는 이 당김과 밀어냄(P+P)을 모두 갖지만, 지구를 이루는 돌 하나하나에는 그 힘이 들어 있지 않다고 덧붙인다. 자석은 특정 금속만 끌고 자석만 밀어내지만, G 단위는 다른 모든 G 단위를 그 P+P 크기에 비례해 끌고 밀며, 자기 중심을 갖지 못한 떠도는 물체까지 모두 끌거나 밀어낸다. 그래서 당김이 밀어냄보다 큰 지구는 모든 물체를 끌어당기고, 중심을 갖지 못한 것들은 지표면에 떨어지거나 상층 대기에서 유성과 별똥별로 타버린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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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5쪽으로 매겨진 손글씨 노트로, 우주의 중력을 Push 와 Pull 두 성분으로 나눠 설명하는 글이다. 어떤 G 단위는 Pull 보다 Push 가 더 크다고 적었다. 예를 들어 별은 우주에서 달아나려는 듯 보이는데, Push 가 Pull 보다 훨씬 커서 표면의 헐거운 물체를 모두 우주 밖으로 밀어낸다. 그 강도는 Push 와 Pull 의 차이에 비례한다고 한다. 반대로 태양과 그 행성들은 Push 보다 Pull 이 더 크다. 태양에 가장 가까운 행성은 다른 어떤 행성보다 Push 대비 Pull 이 크고, 가장 먼 행성은 Push 대비 Pull 이 가장 작다. 각 행성이 지구와 같은 대기를 갖고 있다면, 한 사람이 태양에 가까울수록 더 무겁게 느껴지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가벼워진다고 풀이한다. 마지막으로 화성의 Pull G 는 지구의 Pull G 보다 훨씬 클 수 있지만, 그렇다면 화성의 Push 또한 그만큼 더 크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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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푸른 잉크로 쓴 손글씨 편지의 여섯 번째 장이다. 작성자는 작은 G 유닛이라 부르는 물체가 수백 개씩 P와 P.C.의 적절한 비율을 갖춘 채 지구보다 작은 궤도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설명한다. 크기는 모래 한 알보다 작은 것부터 언젠가 발견되어 궤도가 추적될 만큼 큰 것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어떤 것은 전부 가스로 되어 있고, 어떤 것은 전부 고체이며, 또 어떤 것은 가스에 둘러싸인 고체라고 한다. 전부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도 있는데, 고속으로 공기와 부딪치면 그 금속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때의 색을 띠게 되고, 가스가 타면 또 다른 색을 보인다고 덧붙인다. 어떤 유닛은 지구와 가까운 궤도를 돌고, 어떤 것은 달처럼 지구 주위에 묶여 있는 궤도를 돈다고 말한다. 이 작은 G 유닛들은 단독으로 다니기도 하고 다양한 수와 대형을 이루어 무리로 움직이기도 하며, 어떤 하나 또는 어떤 무리든 — 하고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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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필자는 중력을 밀어내는 힘(Push)과 끌어당기는 힘(Pull) 두 가지의 균형으로 설명한다. 지구에 가까이 끌려와 사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대개 적도 부근을 따라 돈다고 적는다. 행성이나 태양에 붙들리기에는 미는 힘이 너무 큰 작은 중력 단위(G Unit)들은 행성에서 행성으로 떠밀려 다니며, 목격되더라도 방향과 속도가 제각각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이 작은 단위들은 지구로 떨어지지 않고 자신들의 밀고-당기는 힘을 지구의 그것과 합쳐 우주 저편으로 빠져나간다고 본다. 지구 중력의 가장 큰 끌어당김은 적도에 모여 있어 적도면이 늘 태양을 향하게 만들고, 가장 큰 밀어냄은 극 지방에 있다는 식이다. 그래서 사람은 극보다 적도에서 더 무겁고, 비행기는 한계 고도에서 미는 힘이 양력 손실을 메워 더 빨리 날며, 나침반 바늘이 북쪽을 가리키는 것을 보면 자석과 중력은 서로 연결돼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종이 오른쪽 위에 (7) 이라고 페이지 번호가 매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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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푸른 잉크로 빼곡히 적힌 손글씨 메모의 8쪽이다. 작성자는 달이 지구에 미치는 중력(G의 Pull)이 그 반대 방향의 밀어내는 힘(Push)보다 훨씬 크고, 그래서 태양보다도 지구에 더 큰 조수를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태양의 인력이 절대값으로는 달보다 몇 배나 클 수 있지만, 비율로 따지면 달의 Pull 대 Push 비율이 훨씬 커서 지구에 미치는 효과가 더 강하다는 논리다. 달의 가장 강한 Pull은 지구를 향한 면에 집중되어 있어 달이 자전하지 않고 한 면만 지구를 향하게 하며, 적도 부근 지구 중력과 맞물려 달이 우리 적도 위쪽에 걸려 있게 된다. 동시에 지구의 Push가 달의 Push와 결합해 두 천체가 서로 붙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다고 적는다. 이어서 우주에서 다른 달이나 혜성, 작은 중력체가 적절한 각도와 적절한 Pull/Push 비율을 가지고 태양계로 들어오면 태양이나 그 행성들 중 하나에 결합할 수 있다고 가설을 펼친다. 만약 그 대상이 지구라면 우리 주위를 도는 궤도에 들어갈 것이라는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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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파란 잉크로 쓴 손글씨 편지가 이어진다. 글쓴이는 자기만의 우주론을 펼치고 있다. 적도에서 중력이 더 강한 이유, 태양의 "P&P.G."(글쓴이가 만든 개념인 듯한 끌어당김·밀어내는 중력)가 가장 먼 행성을 붙들고 그 행성의 P&P.G.가 다시 태양에 닿아 태양계가 서로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거리에 묶여 있다는 설명이 나온다. 두 개의 중력 단위가 서로 부딪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부딪친다면 한쪽이 먼저 P&P.G.를 잃었을 때라고 말한다. 자석 두 개를 맞붙이면 비틀리는 힘으로 서로 밀어내듯, 이 원리가 지구가 축을 도는 이유일 수 있고, 적도에서의 큰 끌어당김과 극지방에서의 더 큰 밀어냄이 계절을 만드는 답일지 모른다고 적었다. 마지막으로 알맞은 기관을 가진 생물은 자기 환경 안에서 살 수 있으므로, 어떤 행성이든 어떤 위성이든 거기에 맞게 만들어진 생물이라면 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생물들이 이쪽 지구의 공기 속에서도 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페이지 우측 상단에 "19"라는 페이지 번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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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손편지 10쪽이다. 발신자는 중력 중심을 제어하는 우주선이라면 어느 공간이든 거의 무한한 속도로 다닐 수 있고 정지도 가능하며, 탑승자는 속도감이나 급격한 방향 전환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적는다. 지구가 공기에 둘러싸여 있듯 그 우주선도 자기가 만들어진 행성이나 항성과 같은 종류의 기체층을 두르고 다닐 텐데, 이 기체층이 완충재 역할을 하면서 선체 온도를 낮춰 줄 것이라고 한다. 다만 발신자 본인은 우주에서 온 방문객이 실제로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목격하는 것은 지구와 태양 주위를 도는 작은 ☉ 단위들이고,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인류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견해다. 발신자는 또 그 비행접시들 가운데 일부가 사람이 만든 ☉ 단위일 가능성도 있겠다고 짚는다. 원자력 분야를 비롯해 여러 분야에 무한에 가까운 가능성을 지닌 과학자들이 일하고 있으니, 어쩌면 어떤 형태의 풍선이…(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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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파란 잉크 손글씨로 빼곡히 채워진 편지의 11쪽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본 비행 물체가 사이클로트론에 들어간 듯한 가속 운동을 보였다고 주장한다. 더 빨리, 더 높이 올라간 것이라면, 그것은 어쩌면 인간이 만든 최초의 O 유니트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전하려는 생각은 단순하다고 덧붙인다. 모든 행성과 모래 한 알에는 중력의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은 끌어당기는 힘만이 아니라 밀어내는 힘도 함께 내보낸다는 것이다. 이 두 힘이 지구와 태양을 서로 묶어 두기에, 지구가 어느 날은 태양에 수 마일 더 가까이 당겨졌다가 다음 날은 다시 수 마일 밀려나기를 반복하면서도, 일정 거리 이상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는 못한다고 설명한다. 같은 원리로 모든 O 유니트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대체로 정해진 O 궤도에 묶여 있다고 본다. 글쓴이는 이 발상이 미국 곳곳에서 목격된 비행접시 현상을 잘 설명해 준다고 여겨, 자신이 이 편지를 쓰게 되었다고 이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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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뉴저지 로즈타운의 로이 엘웰이 푸른 잉크 손글씨로 쓴 편지의 마무리 장이다. 그는 지금 사건 흐름을 보면 자신이 제안한 아이디어가 조사해 볼 가치가 있다고 느껴 편지를 쓴다고 말하고, 수신자가 이 내용을 적임자나 적임 부서에 전달해 주리라 믿는다고 적는다. 마지막에는 수신자와 그 부서에 깊은 경의를 표하며 친절한 응대에 감사한다는 인사로 닫고, 서명 자리에 본인 이름 로이 엘웰과 거주지 뉴저지 로즈타운을 적어 두었다. 우측 상단 모서리에는 페이지 번호로 보이는 12가 동그라미 안에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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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1952년 9월 20일자 FBI 내부 메모로, C. E. 헨리치가 A. H. 벨몬트에게 보낸 한 쪽짜리 보고이다. 제목은 “1952년 9월 19일 몬태나 상공에서 목격된 이상한 흰 물체”. 헨리치는 9월 20일 뷰트(Butte) 지부의 ASAC 플락시코와 통화한 내용을 옮긴다. 첨부된 언론 보도는 “FBI가 몬태나 하늘을 약 100마일에 걸쳐 가로질러 날아간 이상한 흰 물체를 조사 중”이라고 전하지만, 플락시코는 “해당 물체에 관한 보고가 뷰트 지부에 접수된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해 어떠한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고, 앞으로 진행할 계획도 없다”고 못 박았다. 조치란에는 단지 “참고용”이라고만 적혀 있다. 메모 본문에는 “조사하지 않았고 할 계획도 없다”는 문장에 굵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왼쪽 여백에는 “FLYING SAUCERS”라는 손글씨 라벨이 세로로 적혀 있어 이 건이 비행접시 파일로 분류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단에는 62-83894-317 일련번호와 1952년 9월 23일 접수 도장, 10월 6일 수령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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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2
이 페이지는 앞면 타자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의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머리글과 본문 일부가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뒷면 자체에 새로운 본문은 없다. 대신 하단에 FBI 부서 접수 도장 네 개가 찍혀 있다. 1952년 9월 20일 오후 3시 47분 LAD 접수, 9월 22일 오전 10시 28분 섹션 접수, 같은 날 오후 1시 16분 니콜스 데스크 접수, 그리고 10월 2일 오전 11시 5분 코퍼레이트(Records) 접수 순으로 사무실을 도는 동안 찍힌 라우팅 자국이다. 같은 한 장의 메모가 FBI 내부에서 약 12일에 걸쳐 여러 부서를 거쳤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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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
1952년 10월 3일, FBI 뉴어크 지부장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특별조사 — 미확인 비행체 / 공군 감찰감, 제2지구 특별수사실, 뉴욕 브로드가 67번지」이고, 우측 상단에 누군가 파란 펜으로 “Flying Discs”라고 적어 두었다.
뉴어크 지부는 1952년 8월 27일 미 공군 감찰감 산하 제2지구 특별수사실(OSI)로부터 한 가지 요청을 받았다. 1952년 7월 31일 미확인 비행체를 직접 보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주장하는 두 민간인 — 뉴저지 패터슨 메인가 571번지의 사진사 존 J. 라일리와 패세이익 브룩스가 221번지의 조지 세크 — 의 신원과 신뢰도를 조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뉴어크 지부는 두 사람에 대해 신용·범죄 기록을 조회하고 이웃 탐문도 조용히 진행했다. 결과는 깨끗했다. 둘 모두 사기 전과나 그런 평판이 없었다.
사실관계도 확인됐다. 사진을 찍은 쪽은 세크였고, 라일리는 현장에서 그것을 같이 목격한 뒤 노출된 필름을 직접 현상·인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은 패세이익 The Herald News의 기자 찰스 그레그를 통해 오하이오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의 항공기술정보센터(ATIC) 산하 제5지구 OSI로 이미 넘어가 있었다.
공군 측은 사진의 진위를 가리기 위해 촬영자와 목격자를 직접 신문하고 같은 지역에서 다른 목격자를 찾아 달라고 추가로 요청했지만, 뉴어크 지부는 이 영역의 조사는 하지 않았다고 분명히 한다. 1952년 8월 29일자 SAC 회보 제83호의 지침대로, 신용·범죄·이웃 조사 결과만 뉴욕 시 OSI 지부로 넘기고 그 이상은 손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서 하단에는 FBI 중앙 파일번호 62-83894-318이 빨간 글씨로 적혀 있고, 1952년 10월 13일 접수 도장, 그리고 1977년 9월 11일 누군가가 “declassified”라고 적어 둔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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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
이 페이지는 앞면 인쇄가 비쳐 보이는 빈 뒷면이다. 상단에는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머리글의 윤곽이 거꾸로 비치고, 본문 자리에는 타자 흔적과 도장 자국이 흐릿하게 비쳐 올라온다. 페이지 하단 오른쪽에는 1952년 10월 10일 오전 11시 45분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 그 옆에 10월 13일 오전 9시 12분 "RECD & ROUTED" 라우팅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좌측 하단에도 같은 종류의 접수 / 라우팅 도장 흔적이 보인다. 본문은 없고, 라우팅·접수 처리를 거친 메모의 백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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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네덜란드 헤이그의 변호사 프레드 J. 에이크하우트가 1953년 10월 6일 워싱턴 D.C. 법무부 FBI 본부의 베일리 요원 앞으로 보낸 편지다. 봉투 상단에는 누군가 빨간 글씨로 Flying Saucers 라고 적어 두었다.
에이크하우트는 같은 해 5월 5일 오후 2시 15분에 FBI 사무실로 베일리를 직접 찾아갔다고 적는다. 그 자리에서 어떤 주제에 관한 세부 사항을 베일리에게 털어놓았고, 대화 끝에 해당 당국이 관심을 보이는지 아닌지 회신을 받기 전까지 이 일을 입에 올리지 않겠다 고 약속했다. 답이 오는 데 몇 달 정도 걸릴 수 있다는 점은 양해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다섯 달이 지났고, 유럽에서도 같은 주제가 활발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기다리기 어렵다고 쓴다. 그동안 자기 나름대로 가설을 여러 측면에서 검증해 보았고, 보완적인 사실과 본질적인 세부 사항을 여럿 새로 찾아냈다고 한다. 이제는 전문가와 직접 논의해야 할 단계에 이르렀으며, 따라서 두 사람 사이의 완전한 침묵 합의가 여전히 유효한지 알고 싶다는 것이 편지의 핵심 요청이다.
그는 베일리가 너무 바빠 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당국이 관심이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짚는다. 더 귀찮게 굴 생각은 없으니, 이달 말까지 반대되는 회신이 오지 않으면 자신의 침묵 의무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통보한다. 강제로 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과학자 친구들과 이 주제를 논의하고 싶은데 베일리에게 한 약속에 묶여 그것을 못 하고 있다는 사정을 덧붙인다.
편지 하단에는 FBI 접수 처리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1953년 10월 14일 접수 도장, RECORDED - 76·INDEXED - 76·EX-115 같은 색인·접수 라벨, 그리고 사건 파일 번호 62-83894-379 가 빨간 글씨로 적혀 있어 이 편지가 FBI 의 비행접시 마스터 파일 62-HQ-83894 의 379번째 시리얼로 편철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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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1950년 10월 9일 오후 10시 FBI 본부가 접수한 한 통의 편지다. 발신인은 후버 국장 앞으로 짧은 사신을 보냈다. 1945년 또는 1946년 무렵 비행접시 관련 정보를 알게 됐다며, 국장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이라고 적었다. 본문 상당 부분은 카본지 흐림과 우측 가장자리 찢김, 그리고 페이지가 거꾸로 스캔된 탓에 또렷이 읽히지 않는다. 하단 여백에는 푸른 잉크 서명, 그리고 FBI 내셔널 아카데미 라우팅으로 보내진 흔적의 도장과 손글씨 이니셜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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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1952년 10월 10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네덜란드 헤이그 스타드하우데르스란 45번지에 사는 프레드 J. 에크하우트에게 항공우편으로 보낸 답신이다. 후버는 에크하우트가 10월 6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에크하우트가 워싱턴의 FBI 본부를 직접 방문했을 때 이미 안내한 대로 그가 가져온 사안은 FBI 관할이 아니라고 다시 알린다. 다만 에크하우트가 곧 워싱턴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FBI 측이 일단 자료를 받아 두었다가 해당 사안을 다룰 적절한 기관에 넘겨 두었고, 그 기관이 관심이 있으면 직접 연락할 거라고 설명했었다고 후버는 적는다. 후버는 이어서, 당시 그 자료의 전모가 공군부에 넘겨져 평가와 검토를 받도록 했다고 알리고, 에크하우트와 공군 사이에 별도의 약속이 없다면 그 사실들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본인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끝맺는다. 본문 아래쪽에는 노란 메모 형식의 사내 주석이 따라붙는데, 1952년 5월 7일에 FBI가 공군 OSI에 보낸 공문이 5월 2일 에크하우트가 FBI에 가져온 〈작동 가능한 비행접시 설계안〉 자료를 그쪽으로 넘긴 건이라고 기록한다. 메모는 또 에크하우트에게 추가 연락은 FBI가 아니라 그 자료를 받은 정부 기관 쪽에서 갈 거라고 안내했고, FBI나 공군의 회신이 올 때까지 비밀을 지키라는 식의 요청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못박는다. 문서 좌측에는 62-83899-319 라는 사건 파일 번호가 적색 잉크로 적혀 있고, RECORDED·INDEXED·EX-111·MAILED·COMM-FBI 같은 접수 도장과 10월 10일·16일·20일자 날짜 도장이 여백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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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앞장의 잉크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는 뒷면이다. 본문 활자와 도장이 모두 좌우 반전된 흐릿한 그림자로만 남아 있어 직접 읽을 만한 글은 없다. 가장 또렷하게 비쳐 나오는 것은 가운데 아래쪽 "RECEIVED-LAB / F B I / DEPARTMENT OF JUSTICE" 인장과 "Oct 10 2 12 PM '52" 접수 시각, 그리고 그 오른쪽의 붉은 "20 OCT 30 1952" 도장이다. 윗부분 본문 영역에는 타자기 글줄의 윤곽만 그림자처럼 비치고, 손글씨 한 줄도 함께 나타나지만 거꾸로 읽혀 알아볼 수 없다. 종이 자체는 누런빛이 도는 얇은 용지이고, 위쪽 가장자리에는 보존 파일에 꽂혀 있었음을 보여주는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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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1952년 9월 30일, 미 공군 본부 정책·관리과장 C. M. 영 대령이 FBI 콕스 씨에게 보낸 메모다. 영 대령은 같은 날 13시 30분에 공군기술정보센터(ATIC)의 루펠트 대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첨부된 뉴요커 기사에 대해 확인했다고 적었다. 루펠트 대위의 답은 두 가지였다. 첫째, ATIC는 기자 랭에게 FBI가 비행접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한 적이 전혀 없으며, 자기가 아는 한 FBI가 비행접시 관련 보고를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는 것. ATIC 쪽 짐작으로는 랭이 그 이야기를 이전의 어떤 잡지나 신문 기사에서 가져온 것 같은데, 그 기사도 ATIC와는 무관했다고 한다. 둘째, 더 알고 싶다면 공보실의 앨 찹 씨에게 문의해 보라는 권고였다. 첨부 자료는 1952년 9월 6일자 뉴요커 기사 한 부. 문서 우측 여백에는 "94-3-4-230"의 미정리 사본이 보관되어 있다는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 62-83894-320이 빨간 글씨로 적혀 있다. 좌측 여백에는 "reporter at large / according to the story"라는 손글씨가 세로로 흘려져 있어, FBI 쪽에서 기사를 읽고 출처와 화자를 직접 따라간 흔적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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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문서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타자기 본문이 얇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힌 상태라 읽을 수 없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둥근 정부 인장이 찍혀 있다. 이 면에서 실제로 의미 있는 것은 하단에 모인 접수·처리 도장들이다 — "RECEIVED" 와 함께 "Oct 70 5:15 PM" 시각 도장, 그리고 "FBI / INTERNAL SECURITY" 라벨, 그 옆에 "Oct 28" 자 또 다른 접수 도장, "12:40" 시각 표기, 그리고 잉크로 흘려 쓴 서명이 함께 남아 있다. 문서가 FBI 내부 보안 부서를 거쳐 정식 접수되었음을 보여주는 처리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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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국방부 공보실이 1952년 10월 6일자로 발신한 안내문이다. 어떤 요청에 답하는 형식으로, 공군이 미확인 비행 현상을 어떻게 조사해 왔는지 단계별로 설명한다.
공군은 1947년 가을 시민들이 "플라잉 소서"라고 부른 보고가 공군의 본토 방공 책임과 연결될 수 있다고 판단해 공식 검토에 들어갔다. 같은 해 12월 30일에는 오하이오 데이턴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 항공물자사령부에 사실 수집·평가 프로젝트를 세우라고 지시했고, 사령부는 민간과 군의 천문학자·심리학자·전자장비 전문가·기상학자·항공공학자·물리학자를 끌어모았다.
1949년 12월 27일, 보고 375건을 조사한 끝에 공군은 육군·해군의 동의를 받아 프로젝트 결론을 발표했다. 미확인 비행 물체로 보고된 사례 대부분은 일반적인 비행체 오인, 가벼운 집단 흥분, 기상 현상, 광학적 착시, 장난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다만 설명이 닿지 않는 사례도 일부 남았고, 본토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공중 현상을 식별·분석하는 일은 공군의 책무이므로 조사는 계속됐다. 1949년 12월 이후로는 별도 프로젝트가 아니라 라이트-패터슨 기지 공군기술정보센터의 통상 정보 업무로 다뤄지고 있다.
페이지 우측 상단의 손글씨 메모는 이 문서가 1952년 10월 6일 국방부 공보실의 앨버트 클레이로 추정되는 인물 쪽에서 접수됐음을 표시하고, 하단의 빨간 도장 "62-83894-320 ENCLOSURE"는 이 페이지가 FBI 파일 62-HQ-83894의 첨부물로 편철됐음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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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2
공군이 지금까지 조사·분석한 사례는 약 1500건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아군 항공기를 잘못 본 경우, 알려진 전자·기상 현상, 빛의 왜곡, 장난, 그 밖의 자연 현상이나 인공물로 식별돼 종결됐다. 다만 전체의 20퍼센트 정도는 끝내 이런 익숙한 것들과 연결 짓지 못한 채 미식별 으로 남아 있다.
보고를 평가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 이라는 소제목 아래, 공군은 이 미식별 사례들을 처리하기 어려운 이유를 짚는다. 크기·형태·구성 같은 기본 데이터와 속도·가속도·고도·정확한 기동 패턴 같은 비행 특성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정확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계측 장비가 일부 있긴 하지만, 그런 장비로 잡힌 사례는 전체에서 극히 적고 그조차 필요한 정보가 다 담겨 있지 않다.
공군은 그동안 이 부족한 데이터를 가지고 우선 한 가지에 집중했다 — 미식별 사례들이 미국에 위협이 되는지 판단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보고가 충분히 쌓이면 어떤 패턴이 드러날 것이라 봤지만, 지금까지 목적이나 일관성을 시사하거나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할 만한 패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식별 보고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조사는 이어진다. 다만 충분히 주의는 기울이되 과민하게 매달리지는 않는 선 에서 다룬다는 게 공군의 입장이다.
공군은 이제 항공 관측에 훈련과 경험을 갖춘 사람들의 보고만이 체계적 분석에 쓸 만한 자료가 된다고 본다. 이런 관측자들이 필요한 기본 데이터를 얻을 수 있도록 추가 도구를 마련할 계획이다.
비슷한 현상에 대한 보고는 성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여러 세기에 걸쳐 간헐적으로 몰려 나타났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일련의 목격담은 대체로 1946년부터 시작됐다. 최근 몇 년 사이 보고량이 크게 늘어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항공 활동 자체가 늘었고, 사람들의 호기심도 그만큼 커졌다. 효율적인 통신망과 언론도 흔하지 않은 관측을 보고하고 알리고 기록하도록 부추긴다. 다만 이 현상을 측정하는 능력은 관측 기회만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공군은 상층 대기에서 일어나는 일이 더 밝혀짐에 따라 대부분의 현상이 차차 이해될 것이라고 본다.
페이지 하단에는 -2- 페이지 번호가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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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3
공중 현상에 관한 보고는 대부분 민간인이 올린 것이다. 약 6퍼센트는 민간 항공사 조종사가, 약 25퍼센트는 군인이 보고한다. 잘 훈련된 과학자가 직접 올린 보고도 있다. 자격 있는 관측자의 보고를 가장 중요하게 다루지만, 그렇다고 일반인의 관측을 깎아내릴 뜻은 없다.
레이더 화면에 잡힌 이상한 영상에 관한 보고도 공군에 많이 들어와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지상 물체가 따뜻한 공기층에 반사돼 화면에 다시 나타난 것 — 이른바 기온 역전 현상 — 임이 어느 정도 확인되어 있다.
기온 역전으로 생긴 반사 신호는 실제 항공기에서 돌아온 신호만큼 또렷하게 잡힌다. 속도는 0에서 어마어마한 값까지 들쭉날쭉하고, 이 "물체"는 모든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레이더 탐지를 따라 출격한 요격 시도는 수백 차례 헛걸음으로 끝났다.
한 과학자 가설은 빛도 같은 방식으로 따뜻한 공기층에 반사될 수 있다고 본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일부 육안 목격 사례도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1951년 1월 테네시 주 오크리지 인근에서 있었다. 공군 항공기 두 대가 미확인 "물체"를 요격하려다가 실제로 레이더 록온까지 잡았다. 항공기 고도는 7,000피트였고, 레이더에 따르면 그 물체는 지상에서 10도에서 25도 사이 각도에 떠 있는 것으로 잡혔다. 조종사들은 물체에 접근하려고 세 차례 시도했는데, 매번 레이더가 자기들을 일단 위로 끌어올린 다음 다시 지상의 특정한 한 지점으로 끌어내렸다고 보고했다.
전리 구름도 미확인 레이더 반사 신호 일부를 만들어내는 원인으로 본다. 뇌우 활동은 레이더로 식별이 가능해서 오히려 뇌우를 피하는 데 레이더를 쓴다. 또 처음에는 "미확인 현상"으로 보고됐다가 나중에 항공기·새·기구·상공의 얼음 결정, 그 밖에 이미 알려진 공중 물체나 자연 현상으로 밝혀진 사례도 레이더에 많이 잡혔다.
방공사령부는 휘하 전투기 부대에 미확인 공중 현상을 향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방공사령부가 맡은 임무는 미국 본토 방어, 즉 적대적으로 알려졌거나 적대적으로 보이는 비행 물체를 공격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자국 조종사들이 하늘에 떠 있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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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공군 레이더에 미확인 영상이 잠깐 잡힐 때마다 매번 요격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현재 공군 요격기는 단거리·단시간·고속 기체이기 때문에, 시각이나 레이더로 표적을 추적해 가까운 미래의 위치를 어느 정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때라야 가장 효과적으로 투입할 수 있다.
평가 방법 항목에서는, 이상 공중 현상 목격을 평가하는 첫 단계가 가능한 모든 자료를 모은 다음 풍선·항공기·미사일·유성·기상 현상처럼 이미 알려진 공중 물체와 대조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도 설명이 안 되고,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서 충분한 세부 정보를 갖춘 보고가 들어오면 여러 과학 분야의 전문가에게 넘겨 추가 분석을 맡긴다.
앞으로의 평가 계획 항목에서는, 앞서 말한 대로 훈련된 관측자가 적절한 장비로 보내오는 더 나은 보고가 필요하며, 공군은 가능한 경우 현재 연구에 계측 장비를 함께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최근에 개발된 특수 촬영 장비는 일반 사진 기법으로는 얻을 수 없던 자료를 모을 가능성을 연다. 이 장비는 회절격자 카메라로, 빛을 성분별로 분리해 (스펙트럼) 필름에 기록한다. 천문학자들이 별의 구성을 알아낼 때 쓰는 원리와 같다. 이런 방식으로 공군 과학자들은 현상의 특성을 파악해 그 출처를 식별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한다.
또 다른 안은 카메라가 달린 슈미트 망원경을 끊임없이 돌리는 것이다. 이 망원경은 넓은 구경의 렌즈를 갖추고 있어 150도 원뿔 — 사실상 지평선에서 지평선까지의 하늘 거의 전체 — 를 담아낼 수 있다. 이 장비를 쓰면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을 연속된 사진 건판으로 빠짐없이 기록할 수 있다.
그리고 "접시"가 아닌 것 항목에서는, 공군이 과거에도 말했고 지금도 다시 확인한다며, 이 미확인 공중 현상은 미국이 개발한 비밀 무기나 미사일, 항공기가 아니라고 못박는다. 육·해·공 어느 부처도, 정부의 어떤 다른 기관도, 보고된 현상의 근거가 될 만한 비행 물체로 실험을 — 기밀이든 아니든 — 진행하고 있지 않다. 알려진 한, 다른 나라가 미국을 겨냥해 보낸 물체나 다른 행성에서 온 물체와 연결할 만한 단서도 들어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관심에 감사한다며, 더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달라는 인사로 답신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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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5
1952년 9월 6일자 뉴요커에 실린 “A Reporter at Large: Something in the Sky” 기사에서 발췌한 페이지로, 1947년 여름 이후 미국 공군이 이른바 비행접시 문제를 어떻게 다루기 시작했는지 설명한다.
1947년 한여름, 미국 공군은 유도미사일과 초음속 항공기 개발, 레이더망 구축, 해군과의 통합 논쟁 같은 문제를 이미 떠안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골칫거리인 비행접시까지 마주하게 되었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하늘을 엄청난 속도로 가로지르는 이상한 물체를 보았다고 말했고, 비행기 조종사나 농부, 아이다호 부지사처럼 하늘을 자주 살피는 사람들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생생하게 묘사했다. 신문들은 처음 보고된 물체를 목격자의 표현을 따라 비행접시라고 불렀고, 이후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크롬 허브캡, 동전, 물방울, 가스등, 아이스크림 콘, 파이 접시 같은 것들을 보았다고 해도 그 이름은 그대로 굳어졌다.
하늘에서 이상한 물체가 계속 목격되자 신문 사설들은 조심스럽게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고, 대통령과 의원들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편지가 쏟아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 물체들이 러시아인이 조종하는 것이라고 믿었고, 정찰을 충분히 마치면 원자폭탄을 싣고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외계 행성의 우주선이 지구를 찾아왔다고 보았다. 또 다른 사람들은 미 공군이 새로운 항공기를 비밀리에 시험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어쨌든 모두가 하늘의 관리자인 공군이 이 물체들을 설명하고 필요하다면 격퇴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 결과 공군은 1948년 1월 22일 특별 조사를 시작했으며, 이 조사는 여러 결론에 이르렀음에도 아직 진행 중이고 대중의 불안을 완전히 가라앉히지 못했다.
공군은 불안해진 대중을 안심시키려는 목적 말고도 몇 가지 의도를 품고 있었던 듯하다. 러시아가 이 현상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는 민간의 우려를 공군도 공유했을 수 있고, 철저한 조사를 위해 잠시나마 행성 간 여행의 시대가 열렸고 지구가 태양계 다른 곳에서 온 여행의 목표가 되었다고 가정해도 손해가 없다고 보았을 수 있다. 또는 국가 안보를 위해 공군 내부의 극소수만 아는 실험 비행체의 비밀을 감추려는 연막을 만들고 있었을 수도 있다. 무엇이 목적이었든, 필자가 때때로 접촉해 온 이 조사는 상당히 광범위했다. 처음 배정된 공군 인력에 더해 천문학자, 심리학자, 물리학자, 기상학자, 의사, FBI 관계자들이 참여했다. 곧 ‘프로젝트 소서’로 널리 알려진 이 조사는 처음에 항공물자사령부 사령관 벤저민 W. 치들로 중장이 지휘했고, 거점은 오하이오 데이턴의 라이트 필드였다. 이 프로젝트의 임무는 전통적인 수사, 과학 분석, 대중 홍보, 그리고 널리 퍼진 심리 상태의 연구가 뒤섞인 일이 되었다.
1949년 12월, 공군은 2년에 걸쳐 하늘의 침입자에 관한 보고 375건을 검토한 뒤 공개적으로 조사를 끝낸다고 발표했지만, 프로젝트 소서는 실제로 해체되지 않았다. 공군은 당시 국가 안보가 위협받지 않았으며 비행접시는 모두 일반 물체를 알아보지 못한 경우, 장난, 또는 가벼운 집단 히스테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군은 이 문제를 그대로 덮지 않았다. 프로젝트 소서가 겉으로 사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필자는 워싱턴에서 당시 공군 정보 책임자였던 어니스트 무어 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는 필자가 보기에 이미 여러 차례 했을 법한 네 가지 단정적인 발언을 했다. 페이지는 그 대목에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하단에는 이 기사가 뉴요커 1952년 9월 6일호 64쪽부터 82쪽까지에서 오려낸 것이라는 타자 라벨과 페이지 번호, 붉은 손글씨 보관 번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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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잡지 64쪽으로 보이는 페이지다. 앞 단락 끝에서 한 관계자가 네 가지를 못 박는다. 러시아는 이른바 '소서리(saucery)' 와 무관하고, 그 소동을 일으킬 만한 비밀 신형 항공기를 자기들도 갖고 있지 않으며, 다른 행성에서 온 비행체를 목격한 사람은 아는 한 없고, 조사관들이 알아낸 모든 내용은 이미 공개됐다는 얘기다. 성경에 손이라도 얹고 맹세하겠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이어서 사건의 시작점이 나온다. 첫 비행접시 목격은 1947년 6월 24일 오후에 일어난다. 아이다호 보이시에 있는 사격 통제 장비 제조업체의 출장으로, 케네스 아놀드가 단발기를 몰고 워싱턴주 셔할리스에서 야키마로 날아가던 중이다. 한쪽 날개에서 번쩍이는 섬광이 시야를 끌어, 오른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곳을 돌아보니 꼬리 없는 항공기 아홉 대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레이니어산 쪽으로 날고 있었다. 공군 정보부에 그가 전한 진술은 이렇다.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윤곽이 또렷이 보였고, 산정 바로 위 능선을 따라 남남동 방향으로, 마치 기러기 떼처럼 사선의 사슬을 이뤄, 서로 연결된 듯이 날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5마일 길이의 접시 같은 사슬이 봉우리들 사이를 누비며 들고 났고, 모양은 납작했으며, 햇빛을 거울처럼 되쏘아 낼 만큼 반짝였다고 한다. 아놀드는 3분간 관찰했고 속도를 시속 1,200마일 정도로 어림잡았다.
신문기자들이 공군 기술자들에게 의견을 묻자, 그 거리에서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맨눈에 잡히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언론은 아놀드의 얘기를 비웃었고, 본인은 분개했다. 그는 "10층짜리 건물이 하늘을 날아간다고 해도 다시는 입을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보이시로 돌아간 뒤 'Fate' 라는 잡지에 자신의 경험을 연재 기사로 풀어놓았다.
회의적인 신문 보도가 나가자마자, 비슷한 목격담이 줄을 이었다. 같은 보이시 주민 한 명은 도시 상공에서 "햇빛을 받은 거울처럼 환하게 빛나는, 망토에 매달린 듯한 반원형" 원반을 봤다고 했다. 아이다호 부지사 도널드 모씨는 주(州) 서부 상공으로 혜성처럼 생긴 물체가 날아 결국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공표했다 — 훗날 프로젝트 소서 인력은 그가 본 것이 토성이나 수성이었다고 결론짓는다. 오리건 포틀랜드의 경관 네 명은 "흔들리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원반 무리를 봤다고 신고했다.
다른 현상도 거의 매일 신문에 실렸다. 알래스카 포트 리처드슨의 육군 장교 둘은 흔적 없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비행하는 구형 물체를, 뉴펀들랜드 앞바다 어부들은 은빛에서 붉은빛까지 변하는 공중 섬광 연쇄를 봤다고 했다. 와이오밍 샤이엔의 한 여성은 비행접시 몇 대가 "?-t-r-t-?" 라는 글자를 그리는 것을 보고, 외국 첩자들이 하늘에서 비밀 부호를 연습한다며 이웃에 경고했다. 오클라호마시티의 한 남성은 "B-29 여섯 대를 합친 부피" 의 접시를, 오리건 캐스케이드 산맥의 한 광부는 햇볕을 쬐듯 모여 있는 "둥글고 조용하며 대형도 짓지 않은" 여섯 대의 접시를 봤다고 했다. 7월 4일 독립기념일에는 미국 곳곳에서 열두 건의 접시 보고가 쏟아졌다. 그중 뉴저지 트렌턴에서 목격된 한 건은 추적해 보니 폭죽 쇼였다.
오하이오 주립대 심리학자 폴 피츠 박사는 한동안 프로젝트 소서에 합류했는데, 그는 휴일 하늘의 이런 혼잡을 집단 암시의 산물로 본다. 1차 대전 전후로 미국인들에게 하늘에 체펠린 비행선이 떠 있다고 보게 만든 바로 그 신경증과 같은 결이라는 것이다. 본인의 말로는 "보도가 나가면 접시 목격 사건은 항상 극적으로 늘어난다" 며, 하늘은 오래전부터 흥분과 환상의 원천이었고, 신경이 곤두선 시절에는 그 끌림이 특히 강해진다고 했다.
프로젝트 소서를 맡은 장교들은 처음부터 자기 임무의 특수한 난점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보지도 않았고 목격자도 충분히 묘사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어떻게 입증하거나 반증하느냐는 문제다. 페이지는 그 발언이 이어지는 중간에 끊긴다.
페이지 가운데 아래쪽에는 머리에 상자 같은 물건을 올린 인물의 작은 펜화 한 컷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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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이 페이지는 잡지 기사 일부로, ‘Project Saucer’가 끝난 뒤 Major Boggs가 비행접시 보고를 어떻게 판단했는지 설명하는 대목이다. Boggs 소령은 비행접시가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었다면 목격 증거를 모아 확률과 출현 이유를 따질 수 있었겠지만, 비행접시가 없고 사람들이 본 적도 없다는 이중 부정을 논리적으로 최종 입증하기는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사관들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목격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과 모든 목격담을 그럴듯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을 바탕으로, 사람들이 실제로 비행접시를 보지 않았을 가능성을 추론하는 것이었다. 반대로 설명이 적고 설득력이 떨어질수록 사람들이 무언가를 보았을 의심이 커졌다고 그는 말한다.
화자는 Boggs 소령에게 왜 이상한 천체 목격 보고가 유행처럼 늘어났는지 묻는다. Boggs는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면 대개 이상하게 보이는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고, 전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하늘을 본다고 답한다. 아이들은 화물차 대신 비행기를 세고, 전쟁 중 항공 감시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계속 관찰을 이어가며, 대중은 원자폭탄이 3년 동안 비밀로 유지됐던 사실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 하늘을 본다는 것이다. 그는 예전에는 별똥별을 보면 소원을 빌었지만, 이제는 공군에 전화를 건다고 한탄한다.
잠시 침묵한 뒤 Boggs 소령은 조사관들이 마주한 현실적인 문제로 돌아간다. 그들이 붙잡을 수 있었던 유일한 확실한 사실은 하늘에 온갖 물체가 가득하다는 점이었다. 어느 순간 하늘에 떠 있는 민간·군용 항공기의 수조차 가늠하기 어렵고, 때때로 풍선을 띄우는 기관도 500곳이 넘는다고 그는 설명한다. 페이지는 단순한 기상 관측용 풍선도 포함된다는 말에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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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동부항공 여객기 옆을 스쳐 지나간 물체가 평범한 비행기처럼 시야 끝으로 사라졌다는 진술 다음부터, 전문가들이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보려 했는지가 이어진다. Project Saucer 팀은 이 건이야말로 정체불명 비행체 미스터리 전체를 설명할 단서가 될지 모른다고 기대했다. 우선 정체불명 물체가 사실은 구름에 가려진 비행기였거나 폭풍우 때문에 형상이 왜곡된 다른 항공기였는지부터 확인하기로 한다. 민간과 군의 비행 일정 225건을 대조해 보니, 사건 시각 이스턴 여객기 근처에 미 공군 C-47 한 대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만 Macon 지상 근무자들이 Chiles 와 Whitted 의 진술 — 시속 200마일보다 훨씬 빠른 속도 — 에 동의하면서, C-47 가설은 곧 의미를 잃는다. 시속 200마일짜리 C-47 로는 Macon 에서 Montgomery 까지 한 시간 안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천문학자가 투입된다. J. Allen Hynek 박사는 밝게 천천히 흐르는 유성이 답일 수 있다고 봤다. 목격담에 등장한 "오렌지빛 붉은 불꽃", "시가 모양", "엄청난 화염 폭발" 같은 묘사가 그 가설과 맞물렸다. 문제는 유성에는 비행 일정표가 없다는 점이었다. Hynek 은 자기 가설을 직접 검증할 수단이 없다고 인정하며, "밝은 유성의 직후 잔상이 불 켜진 창문이 달린 비행체라는 주관적 인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심리학자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그 뒤를 이어 심리학자들이 의견을 낸다. 유성을 우주선으로 착각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Ohio State 대학의 Fitts 박사는 Chiles 와 Whitted 역시 인간인 이상 집단 암시에 휘둘릴 수 있다고 본다. Fitts 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심리학자들은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도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자주 오인한다는 사실에 익숙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 가지 단서를 단다 — 조종사는 계기에 의존하도록 훈련받는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은 계기에 매우 의존하는데, 그것이 곧 외부 관측에서 더 정확하다는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공군 복무 시절 봤던 조종사들은 임무 중 본 것에 대해 꽤 이상한 보고를 자주 올리곤 했습니다." Chiles 와 Whitted 자신도, 자신들의 보고가 오인일 가능성을 흔쾌히 인정했다 — 페이지가 여기서 끊긴다.
오른쪽에는 Nye-Wait 카펫 광고가 통째로 들어가 있다 — 1948년 무렵의 카펫 광고이며, 본문과는 무관한 잡지 레이아웃의 일부다. 페이지 하단에 "page 69, 70" 이라는 손글씨 표시가 있어, 어느 잡지 두 페이지 스크랩이 한 장에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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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
이 페이지의 본문은 잡지나 책에서 오려 붙인 것으로 보이는 기사 일부이며, 노스다코타 주 방위군 조종사 고먼이 파고 시립공항 부근에서 정체불명의 빛을 추격한 사건을 다룬다. 고먼은 착륙 허가를 요청하던 중 약 1,000야드 떨어진 곳에서 다른 비행기의 미등처럼 보이는 빛을 보았다. 관제탑은 당시 현장 상공의 다른 항공기는 파이퍼 컵 한 대뿐이라고 알렸고, 고먼은 그 항공기를 아래쪽에서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는 호기심에 빛을 향해 날아갔다. 고먼은 나중에 조사관들에게 그 빛이 지름 6~8인치 정도이고, 맑은 흰색의 완전한 원형이며, 가장자리가 약간 흐릿했고 주변에 어떤 윤곽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깜박였지만, 접근하자 갑자기 계속 켜진 상태가 되어 급격히 좌선회했다.
고먼은 급강하해 추격하며 엔진 출력을 높였지만 따라잡지 못했다. 빛은 고도를 높이며 다시 좌선회했고, 고먼은 F-51을 급선회시켜 빛의 회전을 가로막으려 했다. 고도 약 7,000피트에서 빛은 갑자기 급우회전했고, 두 물체는 정면으로 마주 달려드는 상황이 되었다. 충돌 직전 고먼은 겁이 나 급강하했고, 빛은 조종석 덮개 위 약 500피트를 지나갔다. 이어 빛은 약 1,000피트 위에서 좌측 원을 그렸고, 고먼은 다시 추격했다. 그는 빛을 14,000피트까지 따라갔지만, 또 한 번의 근접 충돌 뒤 그의 기체가 파워 스톨에 빠졌고 빛은 북서쪽으로 사라졌다. 고먼은 소리나 배기가스 냄새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시속 400마일까지 속도를 냈지만 빛에 가까워지지 못했고, 그 빛은 공군 전투기보다 훨씬 가파른 상승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고먼은 그 빛과 함께 선회하려 할 때 과도한 속도 때문에 잠시 의식을 잃었으며, 자신은 신체 상태가 좋은 편인데도 그런 회전과 속도를 견디고 의식을 유지할 조종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단락은 프로젝트 사우서가 고먼이 기상 관측 풍선을 상대했을 가능성을 의심했다고 설명한다. 파고 기상관측소가 고먼의 순찰이 비일상적인 상황으로 바뀌기 10분 전에 조명이 달린 풍선을 띄웠고, 물체가 꾸준히 거의 수직으로 상승한 점도 풍선의 행동과 맞아 보였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사우서에서 일했던 한 기술자는 최근 필자에게 비행기로 기상 풍선을 추격하는 일은 속이 빈 고무 물체를 따라 수영장 바닥으로 잠수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페이지 왼쪽에는 침실 가구와 담요 광고가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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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
FBI 파일에 첨부된 잡지 기사 클리핑이다. 우하단에 손글씨로 '페이지 73, 74'라고 적혀 있다. 본문은 미 공군과 FBI가 비행접시 신고를 어떻게 다뤘는지를 풀어쓴 기사로, 광고 (칼링 레드캡 맥주, 매트리스, 엑서터 양말) 와 같은 면에 인쇄돼 있다.
기사 첫 부분은 라이트 필드로 옮겨진 어느 잔해 이야기다. 신고를 받은 목장주가 보낸 그 잔해는, 전쟁 중 일본이 산불을 일으키려 태평양 너머로 띄워 보낸 소이 풍선의 잔해로 확인됐다.
다음 사례는 애리조나 피닉스의 한 남자가 시속 400~500마일로 하늘에서 나선을 그리며 오르내리는 평평한 회색 물체를 봤다고 신고한 건이다. 그는 브라우니 카메라로 사진 두 장을 찍었고, 인화된 사진은 곧장 프로젝트 소서로 보내졌다.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어빙 랭뮤어가 사진 분석을 맡았는데, 그는 사진을 찍기 직전 그 지역에 뇌우가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이건 바람에 휘날리는 종잇조각을 흐릿하게 찍은 사진 두 장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래도 신고가 끊이지 않자 펜타곤은 조사 범위를 넓혔다. 전국 모든 공군 기지 사령관에게 정보 장교를 배정해 관할 지역의 목격 신고를 직접 들여다보라는 명령이 내려갔다. 정보 장교들에게는 지역 경찰의 협조를 구해 신고자의 평판을 확인하라는 지시가 함께 떨어졌다.
FBI도 이 일에 동원됐다. 디스크를 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FBI 요원이 맡았고, 공군 정보국이 만든 표준 질문지 — 크기·속도·색·기동 패턴 — 를 들고 다녔다. 결과는 보통 라이트 필드로 올라갔다. 그러나 신고 중에는 누가 봐도 거짓이거나 증거가 우스울 만큼 빈약해서, 요원들이 질문지조차 채우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시애틀에서는 어느 여성이 불타는 디스크가 자기 집 지붕에 떨어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는데, 막상 가보니 합판으로 만든 속이 빈 드럼통 모양 물체에 'USSR'이라는 글자가 페인트로 거칠게 칠해져 있었다. 불꽃은 테레빈유에 적신 천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이라는 게 요원의 결론이었다. 일리노이 댄포스 근처에서는 한 농부가 자기 밭에 비행접시가 추락해 잡초밭에서 불탔다고 신고했고, 거기서 기사는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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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1
이 잡지 또는 기사 스크랩 본문은 비행접시 문제를 설명하려는 과학자들의 검토 내용을 다룬다. MIT의 핵물리학자 조지 밸리 박사, 랜드 코퍼레이션 연구진, 성층권과 우주 공간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와 공기역학자, 케임브리지 필드 스테이션의 전자공학 전문가들은 심리적 설명보다 물리적 설명을 찾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외계 생물이 지구 대기로 날아들었다는 식의 기묘한 가설도 검토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비행접시가 적대 항공기라는 이론도 신중히 살폈으나 배척했다. 한 과학자는 비행접시의 성능이 현재 과학의 발전 수준뿐 아니라 공상과학 작가들의 상상까지 뛰어넘는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원반이 어떤 빔이나 광선을 타고 공중을 이동한다는 생각도 검토한 뒤 받아들이지 않았다. H. G. 웰스가 달 세계 여행 소설에서 상상한 반중력 차폐가 작동할지도 따져 보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일반인 사이에서 인기 있던 행성 간 우주선 가설도 신뢰를 잃었다. 과학자들은 우주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너무 크고 다루기 어려워 보고된 비행접시처럼 가볍게 지그재그로 움직일 수 없으며, 크기와 상관없이 지구의 조밀한 대기권에 오래 머물 만큼 충분한 연료를 실을 수도 없다고 보았다. 또한 이른바 우주인들이 세계의 다른 지역에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유독 미국만 보려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 과학자는 원반 목격이 좁은 지역에 집중된다는 사실이 그 비행 물체들이 물리적이든 심리적이든 지구에서 비롯되었다는 믿음을 강하게 뒷받침한다고 보고했다.
이어 필자는 천문학자들의 보고서를 통해, 그들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본 물체들 가운데 혜성, 유성, 화구, 에이콘드라이트를 걸러냈을 뿐 아니라 태양계의 이웃 행성들도 검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이라는 오래된 질문은 새로운 긴급성과 새로운 부속 질문을 얻었다. 만약 화성에 살아 있는 생물이 있다면, 그들이 우주선을 만들 능력이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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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
잡지 한 페이지를 통째로 스캔한 자료다. 왼쪽 좁은 단에 본문 기사가 흐르고, 오른쪽에는 Southwick 신사복 광고와 Black Starr 보석 광고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페이지 하단 오른쪽 여백에는 연필로 'pages 77, 79' 가 적혀 있어, 이 클리핑이 잡지 77쪽과 79쪽에 걸쳐 있는 기사를 한 컷에 모아 잘라낸 것임을 알려준다.
본문 기사는 미 공군의 비행접시 조사 책임자 러펠트(Ruppelt) 대위 인터뷰로 흐른다. 러펠트는 자기에게 정보를 주는 사람의 이름은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고 단언한 뒤, 자기 부서가 면담한 목격자 가운데 약 80퍼센트는 풍선·비행기·유성 같은 평범한 것에 속은 경우였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약 20퍼센트는 어떤 설명도 붙일 수 없는 잔여물로 남았고, 이런 사건들은 '미식별 (Unidentified)' 이라는 오래 묵은 칸에 그대로 들어간다. 기사는 그 예로 인디애나 주 테러호트의 민간항공국 검사관이 머리 위에서 본 '뭔가 은빛 물체', 미시간 주 배틀크릭 상공에서 민간 조종사가 본 '타원형 은색 물체', 그리고 뉴저지 주 레이크허스트 비행선 기지에 배치된 해군 장교가 쌍안경으로 좇았다는, 어떤 항공기도 따라잡을 수 없는 급격한 선회를 보인 밝은 물체 등을 든다.
이어 러펠트는 자기 부서의 통계도 공개한다. 지난 2년 반 동안 면담한 목격자의 25퍼센트는 군 조종사, 8퍼센트는 20년 가까운 비행 경력을 가진 민간 조종사였다. 한때는 로스앨러모스의 물리학자들까지 면담 대상이 됐는데, 이들은 객관성을 자랑으로 삼는 사람들이면서도 자기네 핵 연구소 위에 떠 있는 이상한 불빛을 봤다고 보고했다. 러펠트는 "한 건만 떼어놓으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정보 제공자의 수와 수준을 보면 그 진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고 말한다.
기사는 1951년 2월의 한 일화로 넘어간다. 워싱턴 해군연구청 소속 핵물리학자 어너 리들 (Urner Liddel) 박사가 일부 보안 제한이 풀린 덕에 마침내 비행접시 미스터리의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리들은 그 정체가 해군이 지난 4년간 우주선 연구 목적으로 띄워온 직경 100피트짜리 기구, 이른바 '스카이훅' 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곧바로 앤서니 미라르키 (Anthony O. Mirarchi) 박사가 반박에 나섰다. 미라르키는 공군 대기조성국 (Atmospheric Composition Bureau) 의 책임자로 일하며 Project Saucer 보고서 분석에 참여한 인물이고, 그는 진짜 답은 외국에서 날아온 미사일일 수 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 다음 문장에서 본문이 잘려, 미라르키의 가설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오른쪽 단의 광고 두 개는 본문 내용과 직접 관계가 없다. 위쪽은 SUPERFLEX 원단을 쓴 Southwick 신사복 (정장 70달러부터, 캐주얼 55달러부터) 을 뉴욕·볼티모어·밀워키 등의 매장에서 판다고 안내하고, 아래쪽은 5번가 48번가에 있는 Black Starr 보석상이 14K 금 액세서리·17석 무브먼트 시계·푸들 모양 참 등을 우편 주문으로 받는다는 광고다. 두 광고는 본문이 1950년대 초 미국 잡지에 실린 기사라는 시대적 배경만 보조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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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이 페이지는 잡지나 신문 기사 일부를 스크랩한 것으로, 워싱턴 상공에서 레이더와 조종사들이 포착한 미확인 물체 사건을 다룬 본문 가운데 한 페이지다. 본문은 7월 20일 새벽 워싱턴 상공에서 몇 시간 동안 레이더에 여러 개의 이상한 점들이 나타났고, 일부 조종사들이 떨어지는 별처럼 보이지만 수평으로 움직이는 밝은 빛을 보았다고 설명한다. 관제사 Barnes는 그날 아침 여섯 시간 동안 워싱턴 상공에 적어도 열 개의 식별 불가능한 물체가 움직였으며, 그것들이 보통 항공기도 아니고 유성, 전기적 교란, 구름 같은 자연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이어 7월 26일 오후 9시 8분에도 워싱턴 상공의 항공로 교통관제센터 레이더와 앤드루스 공군기지 레이더에 다시 미확인 물체들이 나타났다. 뉴캐슬 인근 기지에서 시속 600마일로 비행할 수 있는 제트 요격기 두 대가 출격했고, 레이더 유도를 받아 물체 쪽으로 접근했다. 한 조종사는 자신의 전방 약 10마일, 조금 위쪽에서 네 개의 빛을 보았지만 추적하려는 동안 사라졌고, 20분 뒤에는 일정한 흰빛 하나를 보았으나 그것도 1분 안에 없어졌다. 공군 관계자는 그것들이 비행접시였다는 증거도 없고, 비행접시가 아니었다는 증거도 없으며 정체를 모른다고 말했다.
이 두 사건, 특히 요격기가 동원된 사건 때문에 대중의 불안과 관심은 크게 높아졌다. 공군에는 정보를 요구하거나 조언을 제공하는 편지, 전화, 전보가 쇄도했다. 한 소규모 항공사는 승무원들에게 카메라를 지급하고 비행접시를 만나면 촬영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민간인은 자신에게 대령 계급을 주면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공군에 썼고, 로스앤젤레스의 한 목사는 아인슈타인에게 사건을 밝혀 달라고 호소했다. 왼쪽 여백에는 셔츠, 장난감 백파이프, 세탁소 광고가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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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4
샌포드 소장 인터뷰의 뒷부분이다. 소장은 "다른 곳에서 온 방문자"를 감시하기 위해 하늘을 끊임없이 사진으로 찍어 온 "최고의 조언자들"이 있지만, 그들조차 접시 모양 물체를 한 건도 보고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가장 인상적인 목격담을 들려준 사람들이 가장 신뢰할 만하다고 평가된다는 지적에, 소장은 그 사람들의 신뢰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지만 그 누구도 과학자가 쓸 만한 측정 데이터를 함께 내놓지 못했다고 답한다. 본인이 직접 아는, 유능한 목격자로 인정하는 공군 장교 한 명이 중동에서 접시를 봤다고 자신에게 말했지만 그 장교 역시 정확한 측정값을 얻지 못했다. "신뢰할 만한 관측자가 신뢰할 수 없는 것을 봤다는 보고가 우리에게 너무 많다"라고 소장은 말한다.
프로젝트 소서 시절의 전임자 무어 소장이 그랬듯, 샌포드 소장 역시 공군이 비밀 실험을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을 부정한다. 접시가 외국이 운용하는 유도 미사일일 가능성에 대해 그는 그 기괴한 비행 성능을 보면 그럴 수 없다고 답한다. 누군가 "꿈도 못 꿀 만한 동력", 즉 이론적으로 한계가 없을 정도여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동력을 개발하고, 더구나 그것을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조건에서 운용하지 않는 한 그런 비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장은 기자들 앞에서 웃음을 끌어내며 덧붙인다.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은 결국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샌포드의 인터뷰는 공군이 여전히 손을 놓고 있지 않다는 신호로 대중을 안심시켰을지 모르지만, 접시 열풍 자체는 조금도 가라앉히지 못한다. 기자들이 소장에게 인사를 마치기도 전인 8월 1일, 한 해안경비대 사진사가 매사추세츠 세일럼 상공을 찍었다며 대낮 하늘에 환하게 타오르는 기괴한 빛 네 개를 담은 사진을 공개한다. 다음 날 하버드의 한 천체물리학자는 온도 분포·고도 같은 과학적 데이터가 함께 제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사진을 가치 없는 자료라고 평한다. 8월 6일에는 버지니아주 포트 벨보어의 한 육군 물리학자가 뜨거운 항아리 속 부분 진공 안에 이온화한 공기 분자를 주입해 실험실 안에서 비행접시와 같은 빛 덩어리를 재현해 보인다. 사흘 뒤 국제적으로 알려진 한 대기 조건 권위자는 그 실험에 대해 "지구 대기 어떤 높이의 어떤 조건도 이를 그대로 재현할 만한 환경을 만들지는 못한다"라고 말한다. (페이지 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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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1952년 10월 6일자로 FBI 워싱턴 본부 특수수사국이 작성한 발송 명세서다. 수신처는 펜타곤 공군부 감찰감실의 길버트 R. 레비 앞. 사건 참조란에는 "미확인 비행 물체 가능성에 대한 수사"라고 적혀 있고, 내용물 목록 번호는 FC-33951DE. 동봉물은 Q1부터 Q6까지의 자료와 K1부터 K3까지의 자료다. 우측에는 회람 대상자로 하르보, 콘래드, 다우닝, 보울스, 파슨스 다섯 명의 이름과 내선번호가 나란히 있다. 등기우편으로 1952년 10월 28일 발송 완료 도장이 찍혔고, 사건 번호 62-83894가 손글씨로 추가됐다. 좌측 하단에는 1953년 3월 9일자 등기우편 접수 번호 68도 보인다. 양식 하단에는 우편실과 발송실의 처리 절차, 그리고 명세서를 행정 파일에 보관하라는 지시문이 인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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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6
1952년 10월 28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의 공군 특수조사국장(감찰감실) 앞으로 보낸 "비행접시" 건 서한이다. 사건번호 62-83894-321, RECORDED-143으로 정리되어 있다. 후버는 마셀 W. 리스(Marsel W. Reece) 라는 인물이 보낸 1952년 10월 21일자 자기설명적 서한과 그 첨부물 사본을 공군에 참고용으로 넘긴다고 통보한다. 리스에게는 그의 편지가 공군으로 이송되었음을 이미 알렸으며, FBI는 이 건에 대해 더 이상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는다. 좌측 하단의 빨간 "MAILED" 도장은 1952년 10월 20일자로, 본문 작성일과 어긋난다 — 발송 처리 일자가 작성일보다 앞서 찍힌 행정 흔적이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1952년 11월 5일 접수 도장이 따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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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
메모지의 뒷면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 내용이 거꾸로 비쳐 보이는데, 수신처가 FBI 국장으로 시작해 미 공군성 특별조사부 감찰감 — 워싱턴 D.C., 제레미아 보그스 소령 앞 — 으로 향하는 짧은 본문 메모의 윤곽이 잡힌다.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고, 하단에 FBI 우편실 접수 도장 (1952년 10월 29일 오전 11시 56분) 과 등록 도장 (1952년 10월 30일) 이 거꾸로 찍혀 있으며, 우측 상단에는 11월 5일자 빨간 라우팅 표기가 같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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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1952년 10월 21일, 워싱턴 D.C. 18번가와 H 스트리트 모퉁이의 호텔 포토맥 편지지에 손글씨로 적힌 마블 W. 리스(Marvel W. Reese)의 편지다. 제목 줄에 "비행접시(Flying Saucers)"라고 적어 두고 FBI에 보냈다. 내용은 두 단락으로 정리되어 있다. 첫째, 10월 5일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쪽으로 걸어가던 중 사진을 찍었는데, 그 순간에는 아무것도 이상한 것을 보지 못했다. 만약 네거티브와 인화된 사진에 나타난 "점"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체였다면 분명 자기 눈에도 띄었을 것이라고 적었다. 둘째, 요즘 떠도는 "것들"과 "물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면 굳이 이 사진을 보내지도 않았을 것이지만, 점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무엇일 수도 있으니 안전한 편이 낫겠다고 덧붙였다. 편지 아래쪽 여백에 FBI 측에서 적은 듯한 접수 표시 "RECORDED-47 INDEXED-47"과 사건 번호 "62-83894-321"이 보이고, 1952년 11월 5일 자 모스버그(MOSSBURG)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FBI가 이 편지를 후버국장 관할 사건 파일에 정식 편철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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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9
편지 뒷면이다. 위쪽에 발신자 주소가 손글씨로 적혀 있고 —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31, 밴 ○○ 로드, W. 리스 ○○ 씨 — 그 아래 추신 한 줄이 이어진다. 추신은 "가능하다면 그리고 편하다면, 음화나 사진을 돌려주시거나 수령 사실을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짧은 요청이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1949년 12월 2일과 12월 5일 두 차례의 접수·등재 표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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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0
1952년 10월 6일, FBI 본부 내부 메모. 발신은 V. P. 키 (V. P. Keay), 수신은 A. H. 벨몬트 (A. H. Belmont), 주제는 "플라잉 소서". 1952년 9월 6일자 「뉴요커」에 실린 대니얼 랭 (Daniel Lang) 의 기사가 발단이다.
키는 먼저 랭의 기사가 FBI 에 대해 부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짚는다. 기사는 FBI 가 공군의 요청을 받아 플라잉 소서 관련 조사를 직접 수행한다는 식으로 적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키는 메모에서 FBI 가 한때 플라잉 소서 관련 조사를 일부 수행한 적은 있으나, 지금은 공군과의 합의로 모든 조사를 공군이 맡는다고 정리한다. FBI 는 민원이 들어오면 공군 특별조사실 (OSI) 에 그대로 넘기고, OSI 는 다시 공군 정보국 (Air Intelligence) 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공군 정보국은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 공군 기술정보센터 (Air Technical Intelligence Center) 를 두고 플라잉 소서 관련 연구와 자료를 한곳에서 다루도록 했다.
다음으로 키는 랭이 기사 정보를 어디서 얻었는지 추적한 과정을 보고한다. OSI 의 방첩과 첩보지부장 L. L. 프리 중령은 OSI 안에서는 누구도 랭의 접촉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고, 공군 정보국 쪽에 직접 문의해 보라고 권했다. 공군 정보국장 존 A. 샌퍼드 소장의 비서실장 C. M. 영 대령은 랭이 샌퍼드 소장 사무실에도 접촉해 온 적이 없다고 확인했다. 영 대령은 9월 30일에 라이트-패터슨의 러펠트 (Ruppelt) 대위에게 직접 전화로 확인했는데, 러펠트 대위 역시 랭에게 FBI 가 플라잉 소서에 관심이 있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자기가 아는 한 FBI 가 플라잉 소서 관련 보고서를 요청받은 적도 없다는 것이다. 러펠트 대위는 랭이 이 부분을 지어냈거나, 예전에 어디 잡지나 신문에서 본 내용을 옮겨 쓴 것 같다고 본다. 영 대령과 러펠트 대위 모두 플라잉 소서에 관한 FBI 의 입장은 잘 알고 있다고 메모는 덧붙인다.
하단에는 첨부 두 건, 그리고 1952년 10월 8일자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 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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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앞 페이지로 비치는 타자 본문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거울상으로 흐릿하게 읽히고, 페이지 자체의 정보는 네 귀퉁이에 거꾸로 찍힌 FBI 접수 도장들이다. 1952년 10월 8일 벨몬트(REC'D BELMONT), 10월 9일 LAC 와 또 다른 부서, 10월 10일 니컬스(Nichols), 10월 22일 리에종(Liaison) 순으로 같은 문서가 본부 각 라인을 차례로 통과한 자취가 남아 있고, 왼쪽 아래에는 OCT 23 1952 라는 최종 접수 마크가 보인다. 본문 내용은 이 페이지가 아니라 앞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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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1952년 10월 8일 A. H. 벨몬트에게 보내는 메모로, 영 대령이 추가 접촉 상대로 국방장관실 공보처의 앨버트 촙을 지목했다는 보고다. 촙은 비행접시 사안에 관해 공군을 대변해 언론을 상대하는 인물이다.
촙에게 연락해 보니, 첨부된 뉴요커 기사 내용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촙의 설명에 따르면 기사를 쓴 랭은 약 2년 전 비행접시 보도가 신문을 도배할 무렵 자료의 대부분을 모았는데,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신문 기사 같은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비행접시 보도가 다시 늘자 랭은 관심을 되살려 기사를 최신 내용으로 손보려 했고, 그러던 차에 촙에게 다시 접촉했다. 촙은 비행접시 민원과 공군 조사에 관해 일상적인 자료 몇 가지를 건넨 뒤, 추가 정보를 얻으려면 공군 기술정보센터에는 가지 말라고 랭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촙은 자신이 랭과 대화할 때 FBI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으며, 랭이 기사에 적은 FBI 조사 관련 내용을 어디서 얻었는지 짐작조차 못 한다고 했다. 자신은 FBI가 비행접시 사안을 조사한다고 어느 기자에게도 비친 적이 없으며, FBI의 입장은 잘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FBI가 원한다면 자기가 직접 랭에게 슬쩍 접근해 정보 출처를 알아봐 줄 수 있고, FBI가 자기에게 부탁했다는 흔적은 전혀 남기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FBI 측은 호의에는 감사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조회를 부탁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메모에는 촙이 건넨, 비행접시 사안 전반에 관한 최신 정보가 담긴 현행 등사물 한 부가 첨부되어 있다고 적혀 있고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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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1952년 10월 8일자로 벨몬트(A. H. Belmont) 앞으로 올린 메모의 둘째 장이다. 앞 장에서 이어지는 문장은, 해당 정보가 공보실(Office of Public Information)에 문의해 오는 신문기자나 필자들에게 통상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그 아래 ACTION 항목에는 별도 조치 없이 참고용이라고만 적혀 있다. 우측 하단에 짧은 이니셜 두 개가 손으로 더해져 있고, 페이지 하단에는 쪽 번호 2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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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1952년 10월 27일자 FBI 내부 메모로, V. P. 키이가 A. H. 벨몬트에게 보낸 Office Memorandum 이다. 제목은 Flying Saucers. 공군 정보국(Air Intelligence)이 또 한 건의 신뢰할 만한, 설명 불가능한 비행접시 목격 사건을 FBI에 전했다는 내용이다. 공군 정보국 측은 여전히 비행접시가 광학 착시거나 대기 현상이라고 보지만, 일부 군 고위 인사들은 행성 간 비행선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메모는 짚는다.
배경 단락은 그동안의 보고 라인을 정리한다. 공군 정보국은 그간 비행접시 문제 연구 동향을 FBI에 전해 왔으며, 모든 조사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의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 있는 항공기술정보센터(Air Technical Intelligence Center)에서 담당한다. 신고된 목격의 약 90퍼센트는 상상의 산물이거나 기상관측 기구 같은 설명 가능한 물체로 처리되지만, 극히 일부 매우 신뢰도 높은 사례는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세부 내용은 한 사건에 집중한다. 공군 정보국장 존 A. 샘포드 소장의 실무 책임자인 C. M. 영 대령이 10월 23일에 알려 온 새 사례다. 미 해군 소속 사진사가 자신의 차를 몰고 미국을 횡단하다가 하늘에서 비행접시로 보이는 다수의 물체를 발견했고, 약 35피트 분량의 동영상 필름을 직접 촬영했다. 그는 이 필름을 자발적으로 공군 정보국에 제출했고, 항공기술정보센터가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센터 전문가들은 필름에 최대 열두 개에서 열여섯 개의 비행 물체가 기록돼 있으며, 기상관측 기구·구름·기타 설명 가능한 물체일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됐다고 보고했다. 이번 신뢰도 높은 목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들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이다. 광학 착시라는 해석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못 박는다. 광학 착시는 필름에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사건 번호 62-83894-323과 1952년 10월 30일, 11월 7일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메모가 후버 국장실 단계의 Flying Saucers 사건철로 정식 편철됐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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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5
1952년 10월 28일 자 FBI 내부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 글자가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이고, 그 위로 같은 날짜의 접수·라우팅 스탬프 네 개가 찍혀 있다. 오전 9시 34분 벨몬트(Belmont) 보좌관실 접수, 오후 1시 법무부 내 FBI 본관 접수, 오후 5시 53분 라이슨(Liaison) 부서 접수, 오후 7시 21분 다시 법무부 FBI 청사 접수 순으로, 같은 문서가 후버 국장 라인 안 여러 책상을 같은 날 안에 돌았음을 보여준다. 본문 자체는 이 페이지에서 읽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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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6
벨몬트 앞으로 V. P. 키가 보낸 비행접시 관련 메모의 두 번째 장이다. 키는 영 대령의 전언을 옮긴다. 공군 정보부는 여전히 이른바 비행접시를 광학적 착시거나 대기 현상으로 본다는 입장이다. 다만 영 대령은 한 가지를 짚었다 — 일부 군 관계자는 행성 간 비행체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 조치 항목은 없다. 참고용 보고로 끝난다. 본문 핵심 문장 — 공군 정보부는 비행접시를 광학 착시 / 대기 현상으로 보지만, 일부 군 관계자는 행성 간 비행체 가능성을 진지하게 검토 중 — 에는 타자 후 가는 밑줄이 그어져 있어, 읽는 사람의 시선을 그 두 줄에 묶어두려는 표시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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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7
1952년 10월 28일, 후버 국장이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마블 W. 리스에게 보낸 회신이다. 리스가 보낸 편지와 동봉물 잘 받았다고 인사한 뒤, 해당 사안이 공군부 관할에 속하므로 편지와 동봉물 사본을 공군부로 넘겼다고 알린다. 짧은 의례적 회신이다. 본문 아래 사무 메모에는 기록부에서 '마블 우드로 리스'라는 이름으로 교차색인을 찾지 못했고, 파일번호 64-32001-1 의 정보를 볼 때 해당 색인은 이번 건에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답신을 빠르게 보내기 위해 그대로 처리했다고 적혀 있다. 같은 파일은 이름 조회 요청과 관련된 건이라는 설명도 덧붙는다. 우측에는 손글씨로 'Flying Showers'(비행접시·하늘에서 떨어진 것을 뜻하는 듯한 메모)와 파일번호 62-83894-324 가 들어가 있고, FBI 발신 도장과 1952년 10월 28일·10월 30일·11월 9일·11월 10일 등 여러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회신이 UFO 관련 파일에 색인되어 들어갔다는 정황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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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8
1952년 12월 22일자 FBI 발신 서한의 파일 사본이다. 페이지가 거꾸로 스캔되어 본문 자체는 부분적으로만 읽힌다. 윗부분에 수신자 주소 블록이 있고, 본문은 상대가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는 인사와 함께 요청에 응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짧은 답신으로 이어진다. 아래쪽에는 "Sincerely yours,"와 "ENCLOSURE" 표시, 그리고 발송자가 파일에 남긴 "NOTE:" 메모가 붙어 있다. 메모는 국 파일을 검색했지만 해당 인물과 일치하는 기록을 찾지 못했다는 내용과 함께 사건번호 62-83894 계열의 파일 참조를 단다. 페이지 한쪽에는 1952년 12월 26일 오전 11시 14분, 국장실 액티브 메일룸에서 접수했다는 "RECD BELMONT" 도장이 선명하게 찍혀 있어, 이 사본이 국장실까지 회람된 흔적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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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9
FBI 본부 검색계가 사용한 numerical reference search slip 양식이다. 감독자란에 Friedenberg, 방 번호 7308 이 적혀 있고, 조회 대상은 Warren W. Penn 으로 기재됐다. 검색 옵션 (정확한 철자 / 전체 참조 / 전복 활동 참조 / 우편 파일 / 지역 한정) 은 모두 비어 있다. 파일 번호 칸에는 62-7200 계열로 보이는 번호와 시리얼 13564, 17 이 손글씨로 들어가 있고, 그 아래로 추가 번호 몇 개가 더 적혀 있으나 일부는 흐릿하다. 검색자 이니셜과 날짜 칸은 채워졌지만 판독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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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0
1953년 1월 2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누군가가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 앞으로 손편지를 보낸다. 제목은 '플라잉 소서'. 발신인은 후버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면 이 편지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며, 전달 과정에서 정보가 새지 않도록 보안을 지켜 달라고 덧붙인다.
편지의 목적은 한 가지다. '일본 등 세계 각지에서 목격된 이 이상한 비행체 중 하나를 격추한 뒤 우리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게 하자.' 그러기 위해 필요한 장비를 두 가지로 나눠 적는다. 첫째는 유도 미사일이다. 지상이나 모선에서 유도할 수 있어야 하고, 레이더나 무선을 통해 이 비행체를 추적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는 일종의 미끼 장치다. 지상이나 공중에서 황혼이나 어둠 속에 봤을 때 형태, 크기, 불빛, 비행 특성 모두 그 비행체의 날개와 닮아 보여야 한다. 미끼를 띄우기 위해서는 고고도 제퍼나 기구, 제트기, 헬리콥터 같은 운반체가 필요할 수 있다고도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1953년 2월 9일 접수 도장과 함께 사건 파일 번호 62-78394 가 찍히고, 'Next Sheet' 라는 손글씨로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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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본문 없이 여백만 보인다. 우측 하단에 1953년 1월 28일 오전 11시 09분 FBI 미국 법무부가 접수했다는 도장과 "MR. JONES" 수신자 표기가 거꾸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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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2
샘 T. 캔터가 직접 손으로 쓴 편지의 두 번째 장으로, 첫 장에서 시작한 "필요 장비" 목록의 3번과 4번 항목, 그리고 작전 계획을 이어 적은 부분이다. 3번 항목으로 미끼 아래에는 정밀한 총·대포·필수 무기를 두고 미끼 또는 인접 구역에 늘 조준을 맞춰 둬야 한다고 적었다. 4번 항목으로는 계획이 새지 않도록 고도로 비밀이 보장된 숙련 인력이 필요하며, 가능하면 첫 시도에서 작전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작전 계획 항목에서 캔터는 이 정체 모를 물체가 꾸준히 목격되어 온 구역으로 미끼를 띄우고, 미리 정한 고도와 비행 패턴을 따르게 해 아래에 배치한 사격조가 이상 비행체가 미끼를 살피러 접근하는 순간 즉시 발사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한다. 미끼와 지상 요원은 격추된 물체를 회수할 수 있는 지역에 배치돼야 한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물체들이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므로 한 대를 격추하는 일이 당장 시급한 것은 아니라고 단서를 단 뒤, 적절하다고 판단하시면 상부에 전달해 달라는 인사로 편지를 맺는다. 끝에는 캔터의 서명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9번가 2009번지, 할리우드 칼리지 76호라는 발신 주소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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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3
1952년 12월 5일 V. P. 키이가 A. H. 벨몬트에게 올린 메모로, 인텔리전스 자문위원회(IAC)가 12월 4일 다룬 "비행접시" 현상 연구 제안을 보고한다. 이날 회의에는 지시에 따라 연락과 감독관 N. W. 쿠르츠가 대신 참석했다.
안건 가운데 FBI가 직접 챙길 만한 항목은 없었으나, CIA의 H. M. 채드웰 박사가 위원들의 주의를 비행접시 현상의 몇 가지 측면에 돌렸다. 채드웰은 최근 한 독일 과학자가 비행접시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고, 그 사실 때문에 영국이 이 사안에 상당한 정보 활동을 투입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CIA는 그 독일 과학자의 논문을 입수하려 움직이고 있다. 또한 최근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비행접시 목격 사례는, 공군이 지금까지 견지해 온 기상 현상 가설과 어긋나는 증거를 일부 보여 주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오히려 비행접시가 어떤 과학적 산물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아프리카 목격 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회의에서 공개되지 않아, FBI 연락과가 공군과 직접 접촉해 상세를 파악하기로 했다.
이를 바탕으로 군 소속 위원들은 새로 들어온 비행접시 자료를 과학자 그룹에 넘겨 현상의 정체를 식별하게 하자는 접근을 제안했다. 만약 과학자들이 정체를 규명해 이것이 과학적 산물임이 드러나면, IAC가 미국 정부 차원의 다음 대응을 정하면 된다는 논리다. 다만 IAC가 이 문제에 개입하는 근거는 단 하나, 적국의 통제 아래 놓인 과학적 산물일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는 점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채드웰 박사가 IAC 심의를 위한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도록 지시받았으며, 초안이 오면 FBI 차원의 권고안을 정리해 IAC 승인 전에 제출하기로 했다. 후속 조치로 연락과가 공군에게서 아프리카 목격 건의 세부를 받아오기로 정해졌다.
본문 옆 여백에 사건 번호 62-83894와 "NOT RECORDED 14 JAN 6 1953" 표시가 손글씨와 도장으로 남아 있어, 이 메모가 정식 등록을 거치지 않고 1953년 1월에 보관 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하단의 "ALL INFORMATION CONTAINED HEREIN IS UNCLASSIFIED" 도장은 1989년 5월 14일자 기밀해제 처리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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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1952년 12월 23일, V. P. 키가 A. H. 벨먼트에게 보낸 메모다. 제목은 "비행접시 현상에 관한 제안된 연구 — 정보자문위원회"다.
키는 자신이 같은 달 5일에 보낸 이전 메모를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12월 4일에 열린 정보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CIA의 H. M. 채드웰 박사가 위원들의 주의를 비행접시 현상의 몇 가지 측면으로 돌렸다. 채드웰은 한 독일인 원자과학자가 비행접시에 관한 이론을 발표했다는 사실을 언급했고, 이 발표가 영국으로 하여금 상당한 정보 활동을 시작하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한 최근 아프리카에서 있었던 비행접시 목격담도 짧게 언급했으나, 아프리카 관측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내놓지 않았다.
연락 담당관은 아프리카에서 보고된 비행접시 사건의 추가 정보를 얻기 위해 CIA의 랠프 클락, 리처드 헬름스, 그리고 한 사람(이름은 가려져 있다)을 만났다. 이들은 몇 주 전 큰 규모의 폭발이 여러 지진계에 잡혔으며, 폭발의 진원이 중앙아프리카 일대였다고 알려 주었다. 헬름스와 클락에 따르면, 신뢰성을 확인하기 어려운 보고들이 들어왔고, 그 가운데 이 폭발이 비행접시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지목하는 내용도 있었다. 다만 더 최근에 들어온 보고에서는 폭발이 운석에 의한 것이라는 정황이 잡혔다.
연락 담당관은 독일 원자과학자가 발표했다는 비행접시 이론에 관해서도 따로 물어보았으나, 클락은 그 과학자에 대한 보고서가 아직 CIA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조치란에는 연락 담당관이 이 사안을 계속 추적해 독일 과학자의 이론에 관한 추가 정보를 얻을 것이라고 적혀 있다. 좌측 하단에는 1984년 5월 11일에 모든 정보가 비밀 해제되었다는 도장이 손으로 덧붙인 서명과 함께 남아 있고, 우측 상단에는 1953년 1월 6일과 18일 자 접수 표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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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5
1953년 2월 11일, 후버 FBI 국장이 공군부 감찰감실 산하 특별조사국장에게 보낸 발송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 — 잡건 정보 송부”. 본문은 짧다. 1953년 1월 20일자로 인디애나주 프랭클린 노스 포사이스가 19번지에 사는 로버트 B. 울프가 FBI 앞으로 보낸 편지의 사진 사본을, 그 편지에 딸린 첨부물과 FBI 측의 답신 사본까지 함께 동봉해 정보 차원에서 보낸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 줄을 덧붙인다 — 이 사안에 대해 FBI는 어떠한 조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다. 좌상단에는 빨간 잉크로 사건 번호 62-93874-326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고, 하단에는 1953년 2월 11일 발송 처리, 2월 19일 접수 도장이 같이 찍혀 있어 워싱턴 내부에서 사안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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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6
1953년 1월 27일 후버 국장이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로버트 D. 울프에게 보낸 회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326. 후버는 1월 20일자 편지와 동봉 자료를 잘 받았다고 알린 뒤, 도와주고 싶지만 FBI는 어디까지나 사실 확인 기관이며 어떤 단체나 개인의 성격이나 진실성을 평가하거나 판단을 내리는 일은 권한 밖이라고 못 박는다. 울프가 보낸 인쇄물과 편지는 돌려보낸다고 덧붙인다. 말미에는 동봉물 두 점과 함께, 앨버트 K. 벤더가 서명한 편지의 사본을 들어오는 문서와 함께 인디애나폴리스·뉴헤이븐 지부로 따로 전달한다는 사본 분배 메모가 붙어 있다. 좌측 여백의 COMM-FBI 1953년 1월 28일 발송 도장이 회신이 실제로 다음 날 발송됐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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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7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뒤편에서 본문 타자가 비쳐 보이지만 거꾸로 뒤집혀 있어 읽을 수 없다. 오른쪽 아래에는 1953년 1월 8일 발송을 가리키는 빨간색 "MAILED 20 / JAN 8 1953 / COMM-FBI" 사각 도장이, 아래쪽 가운데에는 1955년 1월 25일 오후 5시 4분 FBI 법무부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본문 페이지에 딸린 뒷면이라 별도의 텍스트 내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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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이 페이지는 특별수사관(SAC) 들에게 보내는 짧은 안내 메모다. 제보자가 1953년 1월 19일자 〈Space Review〉 한 부를 동봉했고, 이 잡지는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 우편함 241호를 주소로 둔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I.F.S.B.) 에서 펴내는 매체라고 설명한다. 잡지는 미국과 영국 각지의 I.F.S.B. 지부 소식과 비행접시 관련 기사를 싣는 소규모 정기간행물이다. FBI 자체 파일(Bufiles) 에서는 I.F.S.B., 〈Space Review〉, 앨버트 K. 벤더에 대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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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
1953년 1월 20일,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존슨카운티 민방위국 국장 로버트 D. 울프가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보낸 편지다.
울프는 먼저 직접 편지를 보내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오늘 아침 주 단위 책임자와 상의했고 이 방식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았다고 밝힌다. 카운티 안에는 지상관측대 초소가 네 곳 운영 중이고, 성과도 괜찮다고 전한다.
이어 본론으로 들어간다. 지난 가을 지역 사업가 한 명이 울프에게 "국제 비행접시국(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이라는 단체에 가입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왔다. 울프는 가입하겠다고 답했고 실제로 가입했다. 비행접시에 관심 있는 지역 주민을 자기네 민방위 프로그램으로 끌어들이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는 프랭클린이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32킬로미터, 4차선 31번 국도 변에 자리한다는 위치도 덧붙인다.
울프는 그 단체에서 작년 10월에 받은 편지 한 통과 잡지 〈스페이스 리뷰(Space Review)〉 최신호를 동봉한다며, 한 가지를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이 단체가 검증이 끝난 곳인지, 아니면 체제 전복 성격을 띠는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답이 빨리 오면 관심자를 어떻게 더 끌어모을지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이고, 동봉물이 필요 없으면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편지 아래쪽에는 발신인 자택 주소(프랭클린 노스 포사이스가 19번지)와 서명, 그리고 FBI가 찍은 접수 도장과 사건 번호(62-83894-326), 그 옆 여백에 "Mr. Coyne" 등 라우팅용 손글씨 메모가 함께 들어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에서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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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0
페이지는 한 통의 편지를 뒷면에서 스캔한 것으로, 본문 글자가 종이를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 읽을 수 있는 분량은 없다. 왼쪽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1947년 7월 11일 미스터 존스 앞으로 들어왔다는 사실만 알려 준다. 상단에는 두 개의 펀치 구멍과 "DEPARTMENT OF JUSTICE" 머릿글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법무부 계열 문서가 FBI 본부로 라우팅된 흔적임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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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1
FBI 사건 파일 62-HQ-83894 안에 끼어 있는 누런 마닐라 봉투의 앞면이다. 본문은 없고, 봉투 윗단에 빨간 손글씨로 사건 파일 번호와 시리얼 번호 "62-3894-326"이 적혀 있을 뿐이다. 다음 문서를 담아 두기 위한 사건철 내부의 격납 봉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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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2
1952년 10월 26일, 인터내셔널 플라잉소서 뷰로(IFSB) 본부가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L. H. 프람에게 보낸 회신 편지다. 편지지 상단에는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단체 표어와 코네티컷 브리지포트 본부 주소, 영국 브리스톨 지부 주소가 박혀 있고, 왼쪽 여백에는 회장 앨버트 K. 벤더를 비롯해 부회장 맥스 크레슬, 서기 앨런 C. 리브먼, 역사 담당 프레드 J. 벤더, 그리고 "Fate" 잡지 편집장 로버트 N. 웹스터, SF 작가 윌슨 "밥" 터커 등으로 구성된 국제 위원회 명단이 인쇄되어 있다.
본문에서 발신자는 프람에게 "당신과 당신이 우리 조직을 더 크고 강하게 키우기 위해 해 준 훌륭한 일에 대해 다시 한번 기쁘게 편지를 쓴다"고 인사한 뒤, 지난번 편지에서 프람이 "우리 클럽이 IFSB와 관련해 어떤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느냐"고 물었던 데 대해 일곱 가지를 권한다. 1) 프랭클린에 IFSB 지역 의장, 그리고 지역 회계와 서기를 임명할 것. 2) 한 달에 최소 두 번 모임을 열어 비행접시 관련 사건과 클럽 활동을 논의할 것. 지역 회관을 빌려도 되지만 회원들 집을 돌아가며 쓰는 편이 더 낫다. 3) 자체 도시 단위 그룹을 꾸리게 되면 회비의 일정 비율을 그 그룹이 가져가 운영에 쓸 수 있다. 4) 닉 캠벨 씨는 IFSB의 국제 임원이니 모든 모임에서 그에 합당한 예우를 갖출 것. 5) 명함이나 비슷한 크기의 카드 인쇄는 본부가 도와준다. 6) 클럽 활동은 기관지 "Space Review"에 실을 수 있다. 7) 회원들에게 기부를 받아 양식을 갖추는 데 보탤 것.
오른쪽 위 손글씨로 "Original Replied to correspondent(원본은 발신인에게 회신함)"라고 적혀 있어, 이 편지가 어떤 경로로 별도로 보관·복사되어 다른 기관 파일로 넘어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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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3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 (IFSB) 의 회장 앨버트 K. 벤더가 지역 대표에게 보낸 안내문의 두 번째 장이다. 레터헤드에는 "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단체 표어와 코네티컷 브리지포트 사서함 341번지 주소, 그리고 부회장 맥스 크렌젤, 서기 앨런 C. 리브먼의 이름이 인쇄돼 있다. 본문은 8번부터 10번 항목으로 이어진다. 8번에서 벤더는 지역의 모든 보고와 목격 사례를 IFSB 본부로 보내달라고 부탁하면서, 우선 자기 그룹에서 그 목격담이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한 뒤에 올려달라고 덧붙인다. 9번은 지역 회원 명단과 활동 내역을 IFSB 와 관련된 한도 안에서 기록으로 남겨두라는 당부다. 10번은 가능하면 녹음기를 한 대 마련해 달라는 제안인데, 그러면 회장인 자신이 본부에서 직접 음성 메시지를 보내 지역 모임에서 틀 수 있고, 앞으로 도시를 방문해 모임에 참석할 수도 있다는 구상이다. 항목을 마무리하면서 벤더는 이 모든 것이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며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하면 먼저 인디애나 대표인 캠벨 씨와 상의한 뒤 자신에게 곧장 연락해 달라고 적는다. 끝은 "이 제안들이 지역 그룹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는 인사와 "영원히 하늘을 올려다보며" 라는 단체 특유의 맺음말, 그리고 손으로 쓴 서명이 잇따른다. 하단 왼쪽 모서리의 AKB/akb 는 구술자와 타이핑한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표시한 사무용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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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
1953년 1월에 나온 IFSB 회보 《스페이스 리뷰(Space Review)》 제2권 1호 1면이다. 발행처는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 저작권자는 알버트 K. 벤더로 적혀 있다. 1면에는 네 꼭지가 실려 있다. 첫 꼭지는 영국 지부 결성 소식이다. 8군 출신 퇴역 대위 E. L. 플런켓이 영국 대표로 임명되었고, 브리스톨 인근 자택 주소가 회보에 그대로 실려 있다. 플런켓은 영국 신문에 IFSB 관련 기사를 여러 차례 실어 왔고, 지역 강당과 회관을 빌려 환등기로 강연과 사진 상영을 할 계획이며, 자택에서 매주 회합을 열어 IFSB와 비행접시 일반을 토론한다고 한다. 영국에서 그에게 연락해 온 사람들 가운데에는 영국 행성간학회 회원, 항공공학 종사자, 신문기자, 군 장교들이 포함된다고 회보는 강조한다. 두 번째 꼭지는 인디애나주 프랭클린 시가 단체로 IFSB에 가입했다는 소식이다. 사업가 루이스 프램, 경찰관 잭 W. 무어, 민방위 책임자 로버트 울프, 인디애나 대표 딕 캠벨이 주도해 도시 회원 20명과 인근 마을 10명을 모았다. 프램은 자체 임원진을 갖춘 시 지부를 따로 만들 계획이고, 충분한 배율의 망원경과 15x35 코덱스 카메라에 광학식 망원렌즈를 단 추적 장비를 갖추려 한다. 필요하면 휴대용 레이더까지 만든다는 구상이다. 지난여름 이 일대에서 목격된 네 건 가운데 두 건은 프램과 무어가 직접 본 것이며, 같은 호 안쪽에 그 보고가 실려 있다. 세 번째 꼭지는 푸에르토리코 푼타 산티아고의 루이스 루링이 푸에르토리코 대표로 임명되었다는 짧은 소식이다. 마지막 꼭지가 가장 짧고 가장 화제성이 크다. 회장 알버트 K. 벤더가 비행접시에 대한 의견을 묻는 편지를 보냈고, 아인슈타인 교수에게서 답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회보는 답장 본문을 한 문장 그대로 옮긴다. "이 분야에 경험도 없고 표면적 지식밖에 없어 귀하의 요청에 응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정중한 거절 한 줄이 회보 1면의 헤드라인 자리에 그대로 박혀 있다. 1면 윗부분에는 FBI 측 손글씨로 'orig. returned 1-26-53'이라는 메모가, 아래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326'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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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민간 UFO 회보 〈스페이스 리뷰(Space Review)〉의 한 페이지로, 1952년 가을 세계 각지에서 들어온 비행접시 목격 단신을 "뉴스 속 비행접시(Saucers in the News)"라는 제목으로 모아 놓았다. 푸에르토리코 마야게스에서 두 사람이 동서로 오가는 색 있는 물체를 봤다는 10월 3일자 보고, 노르웨이 정부가 10월 중 비행접시를 닮은 물체가 자국 영토에 착륙했다고 발표했고 독일 전문가들은 이것이 소련제라고 주장한다는 10월 13일자 보고, 호주 멜버른에서 한 젊은 여성이 비행기나 유성보다 빠르게 날아간 소리 없는 녹색 공을 봤고 썩은 달걀 냄새가 났다고 진술한 9월 13일 보고가 이어진다. 11월 1일에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열린 제3차 국제천문학회에 모인 12개국 과학자 200명이 비행접시는 화성이나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단순한 광학·대기 착시라고 결론지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뉴욕 롱아일랜드에서는 10월 중 비행기가 없는 시각에 굉음과 함께 공중 폭발이 일어나 창문이 깨지고 보도가 갈라졌고, 10월 16일에는 뉴욕 국제공항 상공으로 7시 33분에 푸른 화염이 지나갔는데 헤이든 천문관 측에서 유성의 머리 부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는 9월 20일 NATO 합동훈련 "메인브레이스(Mainbrace)" 중 영국 공군 조종사들이 1만 5천 피트 상공에서 은색 원형 물체를 봤고, 이 물체는 추를 흔들 듯 천천히 하강하다 항공기를 뒤따라오며 제자리에서 회전한 뒤 떠나갔다. 같은 10월 16일 워싱턴에서는 미 해군이 북자기극(北磁氣極) 상공에서 10층 건물만 한 거대 풍선을 띄워 거기서 40마일 고도까지 로켓을 쏘아 올렸다고 발표했다. 10월 7일 프랑스 남부 상공에서 에어프랑스 조종사 두 명이 비행접시를 봤고, 10월 29일 한국 서부전선에서는 미군 병사들이 직경 18인치짜리 "불꽃을 튀기는 수레바퀴" 같은 물체 여섯 개가 4.5미터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을 목격했다. 같은 날 프랑스 남부 가야크(Gaillac)에서는 2주 만에 두 번째로 마을 사람 20명이 가운데가 약간 부푼 흰 원반들을 봤는데, 두 개씩 짝지어 거대한 시가형 모선 주위를 돌며 하늘을 가로질렀다고 한다. 머리 위를 지나가면서 이 물체들은 가느다란 흰 실타래 같은 것을 늘어뜨렸고, 그것이 나무와 전화선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주민들이 집어 들려고 하자 얼음처럼 녹아버렸고, 실 한 가닥을 집은 경찰관은 "유리 솜처럼 보였고, 손에 닿자마자 거의 즉시 녹아 사라졌다"고 말했다. 10월 17일 프랑스 올로롱에서는 교사 한 명을 포함한 십여 명이 6천 피트 상공에서 길쭉한 시가 모양 물체를 둘러싼 비행접시들을 봤다. 마지막 항목인 뉴질랜드 단신에서 편집부는 "뉴질랜드에서 오는 기사와 제보가 사무실을 뒤덮을 정도라 4월호에 한 페이지를 통째로 할애하겠다"고 알린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하면 IFSB(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로 편지를 보내고, 보내는 기사 스크랩에는 반드시 날짜와 출처를 적어 달라는 안내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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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6
잡지 「스페이스 리뷰(Space Review)」 3쪽에 실린 두 편의 기사다. 첫 번째 기사는 IFSB(국제비행접시국)의 워싱턴 D.C. 대표 S. L. 다우 목사가 쓴 「서튼, 웨스트버지니아의 괴물은 콜리어스(Collier's) 잡지의 로켓일지도 모른다!」라는 글이다.
다우 목사는 자신이 직접 비행접시를 여섯 번 촬영했고,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턴에 한 대가 착륙한 자리도 직접 찍었다고 밝힌다. 목격자 두 명과 대화했고, 휠링에서 비행접시에 화상을 입은 경찰관과도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경찰관을 치료한 의사가 자신의 사촌이었다는 것이다. 블루리지 산맥의 멜리사 패스 5000피트 상공을 지나가는 한 대를 촬영하려 했고, 자신은 멜리사 패스 맞은편 와할라 글렌의 2500피트 지점에 있었다고 한다. 사진은 산속 안개 탓에 잘 나오지 않았다.
다우 목사는 찰스턴에 착륙한 물체가 흰빛을 뿜는 큰 금속 공 모양이었고, 빨간 옷을 입은 작은 사람 둘이 꼭대기 문에서 나와 나무에 올라가 주위를 둘러본 뒤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자 다시 안으로 들어가 떠났다는 묘사를 전한다. 이어 그는 이 현상의 정체를 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달로 로켓을 쏘려는 시도 가운데 날개에 모터가 달리고 본체는 제트 추진 장치인 기기가 있는데, 거기서 큰 금속 원반이 떨어져 나오고 그 원반의 중심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 반사된 모습이 작은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1952년 10월 11일자 콜리어스 잡지에 실렸다고 한다.
다우 목사는 「워싱턴 데일리 뉴스」를 인용해 서튼에서 목격된 괴물이 콜리어스에 실린 그 로켓일 수 있다고 본다. 잡지 표지에는 머리는 구형, 바닥은 넓은 로켓이 히드라진과 질산을 태우며 달 표면에 꼬리부터 착륙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한편 웨스트버지니아에서 본 물체는 키가 약 10피트, 바닥 너비가 4피트인 사람 모양으로, 양쪽으로 불빛이 번쩍였고 가스 새는 소리가 났으며 날카롭고 역한 냄새가 났다고 진술됐다. 다우 목사는 두 묘사가 어딘가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미국이 대중이 모르는 어떤 실험을 하면서 그것을 비밀로 지키려 하고 있을지 모르며, 로켓 시대가 코앞에 와 있다고 결론짓는다.
두 번째 기사는 「뉴질랜드 민간 비행접시 조사단(CSI of NZ)이 IFSB에 연락해 왔다」는 짧은 소식이다. 1952년 10월 13일 뉴질랜드에서 설립된 이 단체는 비행접시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반증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정부나 군, 회원들이 속한 어떤 단체와도 관계가 없다. 회원 대부분은 최소 5년 동안 비행접시 보고를 연구해 왔으며, 천문학자·과학자·항공인·일반 시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위원회는 뉴질랜드 공군 공병 부사관이자 회장인 H. H. 풀턴, 영토방위공군 소속이자 사무국장인 B. J. 라바린, 항공공학 검사관 G. H. 길모어, 과학 전공 학생 D. 라바라스, 그리고 천문학자이자 강연자인 E. J. 그리거로 구성된다. 단체의 목표는 해외의 유사 단체와 교류하면서 결국 비행접시의 기원과 구성을 밝히는 것이다. 풀턴과 라바린은 이미 IFSB 국제이사회 회원이었고, IFSB 측은 뉴질랜드에 자기 대표를 두고 친선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CSI는 뉴질랜드에서 비행접시가 목격된 모든 지점과 각 목격의 내력을 표시한 큰 지도를 IFSB로 보냈고, 다음 호에서 그에 대한 자세한 보고가 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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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7
IFSB(국제 비행접시국)가 발행하는 계간지 《Space Review》의 4쪽 — 편집장 앨버트 K. 벤더 명의의 사설과 부편집장의 칼럼이 실린 면이다. 사설은 1492년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이 이를 어리석은 짓이라며 비웃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콜럼버스에게는 작은 배 세 척과 항해를 버텨낼 만큼의 식량밖에 없었고, 바다에는 괴물이 우글거리며 세상은 평평해 어느 지점에서 떨어진다고 회의론자들이 떠들던 시대였지만, 그가 서인도제도에 도착하면서 그 통념이 모두 틀렸음이 드러났다고 말한다. 사설은 곧 비슷한 모험이 다시 펼쳐질 것이라고 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느 지정된 장소에 모여, 콜럼버스 시대의 배와는 전혀 다른 배 — 로켓선 — 에 올라 우주라는 광활한 바다로 날아가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변경을 찾으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를 비웃고 조롱하며 지상 최대의 어리석은 짓이라 부르겠지만, 자동차와 비행기, 라디오와 전화, 전신과 텔레비전, 원자 분열이 모두 불가능에서 현실이 되었듯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자신은 굳건한 신자라고 끝맺는다. 이어지는 부편집장 칼럼은 우주의 신비가 오래도록 사람들을 사로잡아 왔다는 말로 운을 띄운다. 별을 보려고 굳이 천문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것. 우주의 광대함은 천문학자들조차 설명하기 어려워서 거리는 마일 대신 '광년'으로 말하고, 별의 수는 수백만에서 그 이상이라고 어림짐작할 뿐이라고 적는다. 글쓴이는 이 거대한 우주의 한 조각 잿더미 위에 사는 우리가 지적 생명체는 오직 여기에만 있다고 순진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며, 모든 일에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수백만 개의 천체에도 단지 맑은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것 이상의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단의 발행 정보로 보아 이 잡지는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의 릴라이어블 프레스가 인쇄하며, 회원 구독료는 연 4호에 1달러, 비회원은 1.40달러, 낱권은 35센트, IFSB의 공식 간행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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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8
IFSB 회보 〈Space Review〉의 "Science Fiction News" 코너로, 앨런 C. 라이브먼이 회원들에게 SF·접시 관련 출판물 정보를 모아 알리는 페이지다. 일리노이 지부의 빅터 루트가 SF 잡지를 소액 또는 교환 조건으로 처분한다는 안내로 시작해, 1952년 12월호 〈Fate〉에 실린 커티스 풀러의 "Let's Get Straight About the Saucers"를 추천한다. 지난 1월호에서 다뤘던 스카우트 단장 사건이 그 글에 사진과 함께 자세히 실렸다며, 회원들에게 〈Fate〉를 정기구독해 접시 동향을 따라잡으라고 권한다. 이어 델 포켓북 〈When Worlds Collide〉와 포켓북스 〈New Tales of Space and Time〉, 바이킹 프레스의 〈Across the Space Frontier〉, 랜덤하우스의 〈By Space Ship to the Moon〉 같은 신간을 소개한다. 회원 활동도 함께 적었다. 평의원 "밥" 터커가 내는 〈Science Fiction News Letter〉, 미국 로켓 협회, 또 다른 평의원 엘리엇 록모어가 운영하는 〈Saucer Review〉, 그리고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있는 보더랜드 사이언스 연구회가 IFSB 회원의 가입을 환영한다는 안내가 이어진다. 할리우드에서는 〈World of the Worlds〉와 〈The Conquest of Space〉 두 편이 곧 나온다고 전한다. 가장 길게 다루는 소식은 IFSB가 내년에 12쪽짜리 별도 책자 〈IFSB REPORTS ON THE SAUCERS〉를 50센트에 발행할 예정이며, 그동안 모은 모든 접시 보고를 정리하고 회장 벤더가 머리말을, 임원들이 본문 코멘트를 맡는다는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회원들이 자기 사진을 보내 두면 추후 지면에 실을 수 있다고 안내하고, 이 페이지는 다음 호부터 사라지고 그 자리에 본격적인 접시 기사가 들어갈 것이라고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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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9
《스페이스 리뷰》 6쪽, 〈MY THEORY〉 코너에는 IFSB 회원들이 직접 보내온 비행접시 이론 다섯 편이 6번부터 10번까지 차례로 실려 있다. 코네티컷 회원 바버라 노어(이론 6)는 모두가 접시들이 태양계 안에서 온다고 믿지만 자신은 지구 외 다른 행성에 인간 같은 지적 생명이 살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른 태양계에는 가능할 수 있지만, 만약 그들이 우리를 파괴하려 했다면 진작에 했을 거라고 덧붙인다. 미네소타의 루이 메이소닉 주니어 의원(이론 7)은 회원 다수와 같은 견해로 비행접시들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본다. 정부 기관이 나서서 정체를 모르겠다거나 위협일지 모른다고 발표하는 방식은 옳지 않으며, 차라리 IFSB 같은 동호회가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게 지능이 있고 단지 우리를 관찰 중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코네티컷 의원 앨런 리브먼(이론 8)은 비행접시가 실재하며 우리 태양계 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본다. 그 이웃들이 원래는 지구에 지적 생명이 없다고 여겼다가 최근 핵폭발을 보고 마음을 바꿨을 수도 있다는 추측을 덧붙인다. 만약 지구 것이라면 비밀이 유지될 리 없고, 외국 정부 것이라면 격추당해 정체가 드러날 위험을 무릅쓰고 미국 상공을 날아다닐 리 없다고 말한다. 일리노이 의원 빅터 루트(이론 9)는 비행접시가 지능 생명체가 조종하는 유인선이며 지구를 정찰 중이라고 본다. 그들이 접촉을 피하는 이유는 우리가 너무 호전적이고 감정적이며, 또 우리에게 그들을 해치거나 죽일 수 있는 질병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캘리포니아 회원 앨런 스테이저(이론 10)는 비행접시가 알파 또는 프록시마 켄타우리 항성계의 세 번째나 네 번째 행성에서 왔으며 그 행성의 지름이 약 4000마일에 지구의 3분의 2 크기일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추정한다. 편집자는 이 이론 끝에 "WOW!"라는 짧은 코멘트를 달았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모든 이론은 IFSB의 자산이 되며 반환되지 않는다"는 안내가 이탤릭체로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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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
IFSB 회보 《Space Review》 7쪽의 "대표들 소식" 코너로, 각 주·지역 대표 한 명씩 짧은 근황을 묶어 소개하는 페이지다. 인디애나 대표 딕 캠벨은 자기 고향 프랭클린을 회원 20명이 넘는 세계 최대 IFSB 회원 보유 도시로 만들었고, 루이스 프람과 잭 무어가 도왔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J. 로널드 앨버트는 "캐나다 전국 대표"로 임명될 예정이며 더 많은 캐나다인 가입을 바란다. 일리노이 대표 빅터 루트는 미국에서 비행접시가 목격된 지점을 표시한 지도를 IFSB에 기증했고 시도 쓰는데 이번 호에 그의 시가 실렸다. 다만 곧 캘리포니아로 이주할 가능성이 있어 후임자를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켄터키 대표 얼 D. 브로더스는 신규 회원 두 명을 데려왔고, 그중 글렌 C. 풀러 부인은 직접 비행접시를 목격했으며 그 보고가 다음 호에 실린다. 아이오와의 다이앤 뷰캐넌은 신규 회원 한 명과 함께 보낼 스크랩 기사를 모으고 있다. 위스콘신의 게일 스프라그는 만화 솜씨로 본부 직원들을 웃겼는데, 현관문이 열린 집 안에 진흙 발자국을 남기며 들어온 이상한 생물과 잔디밭에 주차된 비행접시를 그린 뒤 주부가 "어디서 왔든 상관없어요. 내 깨끗한 양탄자를 보라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메인 대표 앨런 레빈스키는 메인에선 비행접시를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어 회원 모집에 고전 중이고, 테네시의 로버트 R. 리터는 또 한 명을 가입시켰다. 푸에르토리코 대표 루이스 루링은 현지 비행접시 기사를 다수 보내며 푸에르토리코에서도 비행접시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 곳 못지않다고 전한다. 워싱턴 D.C. 대표 S. L. 도는 IFSB 최초의 성직자 회원이며, 본인이 직접 찍었다는 비행접시 사진 공개를 본부도 기다리고 있다. 뉴욕의 로널드 키니어는 자비로 엽서 50장을 인쇄해 주 안에 발송할 계획이다. 마지막 단락에서 본부는 보고를 보내지 않는 대표들에게 월간 보고를 제때 보내달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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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1
Space Review 8쪽. 지난 호 이후로 새로 합류한 지역 대표 명단과, 비행접시 관련 기사를 실은 잡지 목록을 한꺼번에 알리는 회보 페이지다. 영국 대표는 브리스톨 호필드의 에드거 L. 플렁킷이며 부대표는 데니스 플렁킷, 푸에르토리코는 푼타 산티아고의 루이스 라이투, 콜로라도는 덴버의 베르나 M. 햄턴, 메인은 포틀랜드의 앨런 레빈스키, 미주리는 세인트루이스의 랠프 헤첼, 뉴저지는 저지시티의 어거스트 C. 로버츠, 노스캐롤라이나는 그린빌의 데이비드 T. 벤턴, 오하이오는 신시내티의 로버트 C. 슈엘 시니어, 오리건은 브루킹스의 G. L. 매콜리, 워싱턴 D.C.는 S. L. 도 목사, 그리고 웨스트버지니아 클락스버그의 그레이 바커가 이름을 올렸다. 위 이름들은 다시 싣지 않을 것이며, 추가 명단은 다음 호에 이어진다고 안내한다. 다른 대표와 서신을 주고받고 싶다면 이름과 주소를 상대에게 알려도 좋다는 허락을 보내달라고, 회원 명단은 본인 허락 없이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아래쪽 "잡지를 살펴보자" 코너에서는 1952년 7월호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우주에서 온 방문자"·"비행접시, 이름만 새롭다" 두 기사부터 시작해, True 매거진 9·10·12월호의 비행접시·미스터리한 작은 인간·레이더 분석 기사, Look 10월 20일자 "문바운드", Life 10월 18·25일자 달 탐사 기사, PM 11월호 "비행접시는 어떻게 나는가", Sir 12월호 "비행접시와 주변 대기", Mr. 1953년 1월호 "워싱턴은 비행접시를 두려워하는가", Man to Man 1월호 "비행접시는 새 이야기가 아니다"까지 한 호 한 호 짚는다. 마지막으로 Fawcett 페이퍼백 166호 "다른 세계의 미스터리"를 별 네 개짜리 추천작으로 꼽으며, 우주 여행·비행접시·로켓 개발 소식이 모두 담긴 75센트짜리 좋은 자료라고 평한다. 이 잡지들은 IFSB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고 문의가 오면 추가 자료를 보내주겠다고, 4월호에는 영국 존 아미티지의 "소서리티스"가 실릴 예정이라고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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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2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IFSB)의 1950년대 회보 Space Review 9쪽이다. 영국 측 대표 에드거 L. 플렁킷 대위가 회원들에게 보낸 새해 인사 형식의 기고문과, 게일 스프레이그·빅터 루트 두 사람의 짧은 시 두 편이 같은 면에 실려 있다. 플렁킷은 "우리가 숨막히는 발견의 문턱에 와 있는가? 그렇다고 본다"라며 글을 연다. 그러면서 에디 리켄배커 대위의 말을 끌어와, 너무 많은 훌륭한 사람들이 플라잉 소서를 보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볍게 환각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고 못박는다. 이어 플렁킷은 19세기와 20세기가 원자폭탄을 비롯한 놀라운 발견들을 내놓은 시대였고, 동시에 "물질은 파괴되지 않는다" 같은 기존 확신들을 여러 차례 폐기해야 했던 시대라고 정리한다. 오늘날 보통 사람조차 교육 기회가 늘고 다양한 문헌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생명을 비롯한 모든 형태가 결국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 에너지가 우주 전체를 닮은 미세한 박동 구조와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다는 감각 정도는 갖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 어딘가의 누군가가 이 에너지—에테르, 전자기, 무엇으로 부르든—의 비밀을 풀었다는 것도 충분히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플렁킷의 논리는 그 다음으로 이어진다. 거대한 응력과 변형을 견디는 소재만 확보되면, 사람들이 "플라잉 소서"라고 부르는 비행체의 추진 자체가 가능해진다. 태양, 달, 지구 사이에는 자기력선이 흐르고 있고, 다른 행성 사이나 별 사이에도 그 비슷한 것이 있다고 봐도 좋은데, 만약 어떤 비행체가 인력과 척력을 다룰 줄 안다면, 서로 닿지 않고 흐르는 이 자기력선들이 곧 빛의 속도, 혹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완벽한 고속도로가 된다. 자기파가 사방으로 뻗는 성질을 떠올리면, 소서가 직각으로 꺾는다는 보고들도 이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하게 생각하는 거리의 사람들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는 플라잉 소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으며, 다가올 몇 년이 맨텔 대위, 케네스 아놀드 같은 이 분야의 개척자들을 정당하게 평가하리라 본다"라고 단언한다. 글의 끝은 회원들을 향한 격려다. 국내외 IFSB 회원 모두 좋은 일을 계속하고, 무엇보다도 "무지한 다수"의 조롱과 빈정거림에 실망하거나 낙담하거나 휘둘리지 말라는 당부, 그리고 새해 인사로 마무리한다. 같은 면 오른쪽 절반은 두 편의 시다. 게일 스프레이그의 「Mysterious Craft」는 어두운 우주 깊은 곳에서 "세 번째 행성"을 향해 달려온 정체불명의 비행체와 24시간 안에 돌아오라는 지휘관의 명령, 임무를 마치고 떠나는 장면, 그리고 전쟁과 부패, 편견과 탐욕 때문에 "모든 행성 중 가장 나쁜" 이 작은 별에는 다시는 착륙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줄거리를 짧게 들려준다. 빅터 루트의 「Out There」는 자신의 운명이 "별들 사이, 저 바깥"에 있다고 반복하면서, 바람도 사람도 닿지 않은 곳, 밤이 영원히 다스리고 고독이 위안이 되는 곳을 그리워하는 화자의 목소리를 담고, 그곳까지 데려다줄 "은빛 배"를 달라는 마지막 연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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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스페이스 리뷰』 10쪽에 실린 「IFSB 회원들의 비행접시 목격담 — 인디애나주 프랭클린과 인근 마을에서 보내온 단독 기사」다. 세 건의 목격담을 차례로 옮긴다.
목격 4번. 1952년 7월 28일 아침, 인디애나주 프랭클린 남동쪽 하늘과 때로는 마을 바로 위 상공에 이상한 물체 세 개가 나타났다. 정신이 멀쩡하고 신원이 분명한 다수의 남자들이 비행을 지켜봤다. 다음은 프랭클린 경찰서의 리 슬론 경위, 잭 W. 무어 순경, 케네스 런드 순경이 7월 28일 월요일 오전 6시에 작성한 보고서를 정리한 것이다. 경찰관과 민간 관계자, 그리고 미 육군 인원이 함께 목격했고, 관계 당국에 모두 통보했지만 어느 쪽도 명확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보고서 내용은 이렇다. 물체는 세 개였는데, 그중 하나가 다른 두 개보다 크고 밝았다. 큰 쪽은 누런 흰빛을 뿜었고 원을 그리며 도는 비행 패턴을 보였으며, 작은 두 개를 계속 따라다니는 듯했다. 작은 두 개는 각각 주황색과 붉은색의 독특한 빛을 냈고, 자기들끼리 공중전을 벌이듯 배럴 롤과 루프, 스핀을 연달아 했다. 속도를 잃지 않은 채 90도, 45도 회전을 했고, 누가 거대한 요요를 가지고 노는 것처럼 위아래로 출렁였다. 남쪽으로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만큼 멀리 갔다가 곧장 돌아와 다시 회전과 루프, 스핀을 거의 끊김 없이 이어갔다. 높이는 약 1만 5천 피트, 속도는 시속 1,500마일에서 18마일까지 들쭉날쭉했다. 쌍안경으로도 정확한 모양은 잡기 어려웠지만, 둥글고 접시처럼 납작해 보였다는 것은 분명했다. 관측 시간은 4시간 15분이었다. 새벽 4시 48분에 동이 텄고 5시 무렵 별이 모두 사라졌으며, 5시 5분에는 완전히 밝아졌는데도 물체 세 개는 여전히 보였다. 햇빛 아래에서도 색은 변하지 않았다. 5시 11분, 큰 물체가 작은 두 개를 다시 만났고, 작은 것이 차례로 큰 물체 위로 사라지면서 주황색, 이어 붉은색이 꺼졌다. 큰 물체는 작은 둘을 감싼 듯 보이더니 서쪽 위로 올라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세 물체를 함께 본 뒤 사라지기까지 정확히 40초가 걸렸다. 이 관측은 에딘버그 경찰서, 인디애나주 캠프 애터버리, 콜럼버스 경찰서, 시모어 주경찰서, 그린즈버그 경찰서, 노스버넌 경찰서, 코너스빌 경찰서, 코너스빌 주경찰 지서, 포트웨인, 매디슨 등이 함께 확인했다. 무어와 런드 두 순경은 이제 IFSB 회원이다.
목격 5번. 미네소타주 대표 루이 마세닉 주니어는 4월 20일 오후 2시 30분쯤 미네소타주 롱프레리 북동쪽 상공에서 둥근 물체를 봤다. 칙칙한 회색에 시속 250마일로 날았고, 올라갈 때 낮은 굉음이 났다. 고도는 약 5천 피트, 가시 시간은 45초, 비행 방향은 동에서 서였다.
목격 6번. 캘리포니아 회원 앨런 K. 스테이미는 1952년 9월 22일 밤 9시 8분쯤 로스앤젤레스 동쪽 상공에서 원반형 물체를 봤다. 노란빛 도는 흰색이었고 약 4초간 한 자리에 멈춰 있었다. 지평선에서 45도 위, 지름 약 50피트, 정북 방향으로 이동했다.
페이지 맨 아래에는 목격 보고를 보낼 때 작성 날짜를 함께 적어 달라는 편집자 안내가 짧게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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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4
Space Review 11쪽에 실린 「5년간의 비행접시 조사 요약 발췌(Excerpts from a Summary of a Five-Year Flying Saucer Investigation)」다. 필자는 IFSB 국제평의회 소속 조지 D. 포셋(George D. Fawcett). 그는 5년 남짓 매달려 온 비행접시 조사 활동을 그만두기로 했다고 운을 뗀다. 1947년 여름 미국에서 첫 접시 소동이 터진 뒤로 자신은 시간과 돈, 에너지를 이 수수께끼 푸는 데 쏟아부었고, 그동안 해설가·과학자·조종사·유도무기 전문가 등 접시를 직접 봤거나 조사·연구해 온 사람들을 사적으로 만나 인터뷰했으며, 미국 전역의 목격자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설문지를 우편으로 보냈다고 적는다. 5년치 게시판과 스크랩북을 모아 왔고, 대학 재학 중에는 친구·교수·동급생을 위해 「The Flying Saucer Phenomena」라는 6쪽짜리 소책자를 써서 린치버그(Lynchburg)에서 여러 단체를 상대로 강연도 했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1951년 7월 6일 아침 버지니아주 린치버그 대학 본관 위에서 4분간 자신을 가려 비행한 오렌지빛 오크 모양 구체를 직접 본 일이 관심을 세 배로 키웠다고 쓴다. 그러면서 "이 일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엔 너무 크다"고 손을 들고, 자신이 모은 보고들이 그 환상적인 동시에 매혹적인 성격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인다. 최근 든 생각으로는 머지않아 접시들이 착륙할지도 모른다는 것 — 접시가 점점 더 오래, 그리고 단독이 아닌 무리를 지어 곳곳에서 목격되고 거대한 접시·로켓선 보고도 늘고 있으며, 마음대로 오가는 듯한 양상이 마치 위성처럼 배치된 것 같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는 분명 뭔가 알고 있다"고 적는다. 바로 이 순간에도 정부가 행성 간 여행과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게 자기 의견이며, 다른 행성에서 온 우주선이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종교적 논란이나 패닉을 막으려 그러든 다른 동기든, 미국 정부는 보고들을 일정 간격으로 "공개하고, 부인하고, 억압하고, 심지어 떠넘기는"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쓴다. 끝에서 그는 린치버그 대학 학생 찰리 로커티(Charlie Lockerty)의 "things are really looking up"이라는 말을 빌려 인용하면서, 어떤 것들은 오히려 "내려다보고 있는(looking DOWN)" 것 아니냐고 받아친다. "조만간 우리는 알게 될 것이고, 그러니 빠를수록 좋다"는 말로 글을 맺는다. 편집자 주에는 포셋의 논의와 의견이 앞으로의 Space Review 호에서도 이어진다고 안내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회원·임원용 공지가 함께 실려 있는데, 마룬색 바탕에 IFSB 글자를 새긴 클럽 엠블럼을 옷깃에 달고 싶은 회원이 충분하면 약 1달러에 주문하겠다는 안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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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5
잡지 《SPACE REVIEW》 12쪽 "WE WANT YOU TO MEET" 코너는 영국 대표 에드가 L. 플렁켓을 소개한다. 1905년 12월 26일 영국 브리스톨에서 태어났고, 1922년부터 1956년까지 무선 통신사로 세계 곳곳을 다녔다. 미국에서는 뉴욕·보스턴·볼티모어·노포크·뉴포트뉴스·탬파·모빌 같은 항구를 거쳤다. 금주법 시대와 갱스터 시대, 잭 뎀시·베이브 루스·루 게릭 같은 인물에 얽힌 추억이 많다고 한다. 오랫동안 영미 우호를 위해 활동했고 미국 친구들과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는다. 1939년 입대했고 1940년 6월 1일 프랑스 구축함 랭콩포아즈에 의해 됭케르크 해변에서 구조되었다. 1941년 중동으로 가 영국 제8군과 함께 서부 사막 전역 세 차례를 치렀고, 튀니스 함락 뒤 팔레스타인에서 임관해 이집트에 배치되었다. 종전 후 대위 신분으로 영국에 돌아왔고 지금은 옛 직장에서 사무직으로 일한다. 아내와 세 자녀가 있다 — 영국 공군에 복무 중인 21살 데니스, 18살 다이애나, 14살 마이클. 취미는 글쓰기·독서·시작(詩作)을 비롯한 저널리즘 활동, 그리고 식지 않는 여행욕이다. 1년쯤 전 민방위가 창설된 뒤로는 자격을 갖춘 강사로 매주 세 번 저녁 산업체 인력을 가르치고 있다. 글을 마무리하며 부편집장은 플렁켓이 IFSB 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고 분명 가장 유능한 해외 대표가 될 것이라고 평한다. 끝에 다음 호 발행일을 1953년 4월 1일로 안내한다. 페이지 아래쪽은 잡지의 발송용 뒷면이다 — 발신 주소는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 사서함 241호이고, 수신인은 인디애나주 프랭클린 N. 포사이스가 19번지의 로버트 D. 울프. 우표가 붙어 있고 소인이 찍혀 있어 실제로 발송된 호의 뒷면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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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6
1953년 2월 17일, 런던 주재 미국 대사관의 FBI 법무관(Legal Attache)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발신지는 런던 그로스베너 광장 1번지의 미국 대사관이고, 주제는 "비행접시"로 표기되어 있다. 영국 밀든홀 미 공군기지의 헌병 책임자(Provo Marshall) E. P. 워커스 소령이 2월 14일 작성자에게 전화로 연락해, 최근 다시 일고 있는 "비행접시" 관심과 관련해 새로운 정보는 없지만 몇 년 전 일어난 한 사건을 FBI가 점검해보면 좋겠다며 알려왔다는 내용이다. 워커스 소령에 따르면 이 사건은 뉴욕주 설리번 카운티 델라웨어 타운십의 제퍼슨빌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발행 부수가 적은 한 지방 신문에 실린 "비행접시" 기사다. 신문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지역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신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고 했다. 기사는 1947년 초반의 어느 호, 혹은 1946년 마지막 석 달 중 한 호에 실렸으며, 작성자는 미군 소속 인물이었다. 의미심장한 점은 같은 신문이 이후 호에서 비행접시 관련 후속 기사를 전혀 싣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기사가 사실상 무명에 가까운 작은 신문에 한 번만 실렸다는 사실이라고 워커스 소령은 짚었다. 자신은 참고가 될지 모르겠지만 보고만 해두는 것이라며, 적절한 조치는 FBI 본부 판단에 맡긴다고 마무리한다. 페이지 우상단에는 항공 우편(Air Courier)으로 보낸 문서이며 1997년 3월 1일자로 기밀해제되었다는 손글씨 표기가, 하단에는 1953년 2월 26일자 접수번호 162-83894-327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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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7
페이지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타자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아래쪽에는 두 개의 접수 도장만 남아 있다. 하나는 1953년 1월 3일 오후 4시 9분에 법무부 산하 FBI 연락과 (Liaison Section) 가 찍은 접수 도장이고, 다른 하나는 1953년 1월 4일 오전 10시 11분에 찍힌 회신 접수 (RECD RESPONSE) 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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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8
1953년 3월 6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공군 감찰감실 산하 특수조사국장 앞으로 보낸 비망록이다. 제목은 그대로 "플라잉 소서". 후버는 런던 주재 FBI 대표를 통해 들어온 정보라며 운을 뗀다. 영국 밀덴홀 미 공군기지의 헌병대장 E. P. 워커스 소령이 1953년 2월 14일 발신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최근 다시 일고 있는 "플라잉 소서" 관심에 대해 새로 보고할 정보는 없지만 몇 년 전 한 사건이 떠올라 FBI가 확인해 볼 만하다고 알려 왔다는 것이다. 워커스 소령이 말한 사건은 뉴욕주 설리번 카운티 델라웨어 타운십 제퍼슨빌에서 발행되던 작은 지방신문에 실린 "플라잉 소서" 관련 기사 또는 이야기와 관련된다. 신문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지역에서 발행되는 유일한 신문이라고 단언했다. 해당 기사는 1947년 초기 호수 중 하나, 혹은 1946년 마지막 석 달의 어느 호에 실렸고, 미군 구성원이 작성한 글이었다고 한다. 후버가 짚는 핵심은 이어지는 호에서 후속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 문장은 페이지 하단에서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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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9
이 페이지는 앞면 문서가 뒷면으로 비쳐 보이는 스캔이다. 글자가 거울처럼 좌우 반전된 채 잉크가 종이를 뚫고 올라와, 본문 내용은 거의 읽을 수 없다. 식별되는 것은 두 개의 우편 접수 도장뿐이다. 보라색 도장은 FBI 우편실이 1953년 3월 9일 오후 3시 51분에 이 문서를 접수했다는 표시이고, 그 옆에 빨간색으로 “MARCO” 도장이 한 번 더 찍혀 있다. 비쳐 보이는 머리말 일부에서 수신처가 FBI 국장, 주제가 ‘FLYING SAUCERS’ 라는 점만 겨우 가늠된다. 문서 자체의 본문은 다음 페이지에서 정상 방향으로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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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0
보고서 둘째 쪽 상단은 앞 쪽에서 이어지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해당 신문이 "비행접시" 관련 기사를 추가로 싣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신문이 발행 부수가 작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매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적는다. 이어 워커스 소령은 자기가 가치 판단을 보태지 않고 들은 그대로 보고하는 것뿐이라고 밝힌다. 마지막 문단에서는 위 정보를 단지 참고용으로 전달하며, 본 부서는 표제 사안과 관련해 어떤 조사도 진행하고 있지 않으니, 받는 쪽에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는 직접 취하기 바란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하단 가운데에 페이지 번호 2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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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1
1953년 3월 10일자 FBI 내부 메모. L. H. 마틴이 A. H. 벨몬트에게 보내며, 제목은 "비행접시 — 정보 제공자 존 베일리".
전날인 3월 9일 밤 9시 5분, 존 베일리라는 사람이 메릴랜드주 보위에서 전화를 걸어 방금 그 도시 근처에서 비행접시를 봤다고 알려 왔다. 그러나 베일리는 세부 사항에 대해 모호하게 답했고, 어디서 전화를 거는지, 어디에 사는지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필요하면 공군이 면담할 수 있도록 오늘 밤 어디 머물 예정이냐고 묻자, 베일리는 "기자(writer) 가 너무 많이 알려 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구체적 정보가 없었고 장난 전화일 가능성도 있어 공군에는 통보하지 않았다. 신원을 알 수 있는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FBI 자체 기록 조회도 하지 않았다.
권고 사항은 한 단어, "보관(File)". 페이지 하단에는 접수·색인 도장과 사건 번호 62-83894-328, 1953년 3월 접수 날짜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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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2
타이핑된 메모의 뒷면이다. 앞면 글자가 종이를 투과해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읽을 수 있는 본문은 없다. 왼쪽 아래에 1953년 5월 10일 오전 9시 30분 미국 법무부 방첩(Espionage) 부서가 접수했다는 보라색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이 문서가 그 시점 법무부 방첩 라인으로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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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3
1953년 3월 12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공군부 감찰감실 특별수사국장에게 보낸 메모다. 문서번호는 62-83894-328, 주제는 "비행접시(FLYING SAUCERS)"로 잡혀 있다. 사흘 전인 3월 9일 밤 9시 5분, 존 베일리라는 이름을 댄 한 남성이 FBI에 전화를 걸어 메릴랜드 보위 근처에서 방금 비행접시를 봤다고 알려 왔다. 베일리는 사건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고, 자신의 거주지나 전화를 거는 장소에 대해서도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 외에 사건과 관련해 의미 있는 정보는 더 나오지 않았다. 후버는 이 내용을 공군 측에 "참고와 협조" 차원에서 전달한다고 적었고, FBI 자체적으로는 이 건을 조사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1953년 3월 12일·13일자 FBI 발송·접수 도장과 1977년 9월 1일 비밀해제 표시("Declassified 2040 9/1/77")가 함께 찍혀, 이 메모가 약 24년 뒤 공개됐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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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4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보이는 페이지다. 반대편에 인쇄된 본문 텍스트가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보이지만 판독은 어렵다. 아래쪽에는 1952년 3월 13일 오후 4시 33분 FBI 법무부 수신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옆에 붉은색 도장 일부와 손으로 적은 메모가 남아 있다. 본문 자체보다는 이 페이지가 언제 FBI에 접수되어 보관 절차를 거쳤는지를 보여주는 행정 기록의 흔적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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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5
1953년 3월 4일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발신인이 FBI 국장에게 보낸 편지다. 제목은 "비행접시와 연관 가능성이 있는 인물". 발신인은 국제적 연결망을 가진 FBI 국장에게 다음 내용을 알리고 싶다며 편지를 연다. 칠레의 한 경찰 잡지 "완벽한 탈출" 코너에서 링케 박사의 탈출 사건을 읽었다는 것이다. 링케는 42세 홀아비로 1950년경 런던의 한 관청 건물 8층에서 체포된 인물이다. 체포 사유는 블라디미르 블라사프와 함께 외국 정부에 영국 항공 기밀을 누설하는 데 협조한 혐의였다.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 탈출을 시도하던 중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경찰이 8층 가까이 다가오자 건물 전체가 어두워졌고, 엘리베이터가 멈췄으며, 전화와 확성기가 침묵했다. 경찰이 손전등을 들고 8층에 도착하자 손전등마저 즉시 꺼졌다. 그럼에도 링케는 새벽 6시에 체포됐다. 두 번째 사건은 켄트 교도소 탈출이다. 수감 며칠 뒤, 새벽 12시에서 2시 사이 비 오는 날씨에 율리우스 링케 박사는 같은 방식으로 사라졌다. 전기, 엘리베이터, 전화, 간수들의 손전등이 모두 작동을 멈춘 상황이었다. 편지 하단에는 1953년 3월 12일 만티 아포스톨리의 번역이라는 표기와, 3월 26일 FBI 접수 도장(62-83894-329)이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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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6
타이핑된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좌우가 뒤집힌 채 흐릿하게 보일 뿐,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대신 페이지 하단에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 1953년 3월 16일 오전 10시 47분의 빨간 접수 도장과, 같은 날 오후 12시 1분에 "MR. JONES" 앞으로 들어왔다는 FBI 법무부 보라색 접수 도장이다. 좌측 하단 연필 메모는 "2/2"로 보이는 페이지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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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7
기고자가 베를린에서 직접 들었거나 신문에서 읽은 사례 세 가지를 정리한 보고서의 두 번째 쪽이다. 첫 사례는 경비병들의 진술로, 자정과 새벽 두 시 사이 폭우가 쏟아지고 잠시 동안 조명이 꺼져 완전한 암흑이 되었다고 한다. 한 경비병이 사이렌을 울리려고 비상벨을 눌렀으나 작동하지 않았고, 동료에게 소리쳐 불러도 대답이 없었으며 자신의 목소리도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상관에게 직접 알리려 했지만 뛰지도, 빨리 걷지도 못해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베를린 함락 직전의 일로, 자동차와 트럭의 엔진이 아무 까닭 없이 일제히 멈추었고 한 시간이 지나서야 다시 시동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 "대기 중에 무언가 드문 일이 일어났다"는 말이 돌았다고 적었다. 세 번째 사례는 약 석 달 전 지역 신문에서 읽은 비행접시 기사로, 한 장교와 동승자가 비행 중 비행접시를 목격해 추격했으나 접시는 이전 사례들처럼 빠르게 선회해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뒤 접시는 아주 높이 올라갔다가 급강하해 장교의 비행기 위에 몇 초간 정지했고, 그 사이 비행기 엔진이 마비되었다는 조종사들의 진술도 함께 옮겼다. 접시가 다시 높이 올라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엔진은 다시 돌기 시작했다고 한다. 기고자는 이 진술들이 상상처럼 들릴 수 있지만 여러 목격자의 증언으로 뒷받침되므로 "과학적" 사실이라고 본다고 적었다. 그리고 두 차례의 전기 마비와 경비병들의 "생명 기능 마비"에 "한 사람의 개입"으로 링케 박사가 거론된다면, 나머지 두 사례에도 같은 인물이 연결될 가능성을 묻는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들이 서로 무관하고 비행접시가 이미 알려진 과학적 설명으로 충분히 풀린다 해도, 조상들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전하지 않은 "기묘한 힘"의 존재는 부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에 "- 2 -" 쪽 번호가 있고, 상단에는 짙은 식별 마크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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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8
발신자가 편지를 끝맺는 마지막 장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말을 전부 다시 한번 검토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동기는 오직 "인류 문제에 대한 인간적인 관심"이며, 인류의 진보와 존엄과 우주적 진화로 가득한 좋은 미래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밝힌다. 더 보탤 말은 없다며 인사를 맺고, 칠레 발파라이소 사서함 1857번지의 프란시스코 트론코소 실바라는 이름으로 서명한다. 추신으로 이 편지를 받았다는 회신을 꼭 보내 달라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3쪽이라는 쪽수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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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9
1953년 3월 칠레 발파라이소에서 누군가가 워싱턴의 FBI 국장에게 보낸 편지다. 제목은 비행접시(Discos Voladores) 사건에 관여 가능성이 있는 인물. 발신인은 자기가 국제 범죄 수사를 지휘하는 강력한 기관에 편지를 쓴다는 인사로 시작해서, 세 가지 일화를 차례로 늘어놓는다.
첫째, 칠레의 한 잡지 완벽한 탈주(Fuga Perfecta) 코너에서 린케 박사의 탈주(Fuga del Dr. Linke) 라는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린케 박사는 40세 홀아비 법학자로, 1950년 중반 런던의 한 아파트 건물에서 체포됐다. 블라디미르 클라세르라는 인물과 공모해 외국 정부에 영국 국가기밀을 누설했다는 혐의다. 구금 중 1~2파운드 정도의 뇌물 시도와 짧은 진술서, 변호인 입회 같은 흐름이 있었고, 새벽 6시에 체포됐다.
둘째, 린케 박사는 18개월 동안 수감돼 있다가 유치장에서 탈주했다. 기사에 따르면 자정에서 새벽 6시 사이, 비가 내리던 시간에 사라졌으며, 호위 경관·전화·손전등 점검 같은 정황을 적고 있다. 발신인은 이 탈주의 디테일이 어딘가 어색하다고 본다.
셋째, 약 3개월 전 지역 신문에서 비행접시 기사를 읽었다. 칠레의 한 조종사와 동승자가 비행 중 비행접시를 목격해 추격했는데, 비행접시는 매우 높은 고도에서 큰 속도로 날아갔고, 다른 비행체들이 조종사의 항공기 위쪽에 자리잡았다가, 비행접시는 결국 빠른 속도로 솟아 사라졌다. 그동안 항공기 엔진은 비정상적으로 거칠게 돌아갔다.
발신인의 결론은 이렇다 — 비행접시 목격담이 여러 증인에 의해 여러 정황에서 반복되고 있으므로 과학적 사실로 다뤄야 한다. 그리고 베를린에서의 탈출 정황, 비행 중 전기력이 마비된 사건, 린케 박사 사건을 연결지어 누군가의 관여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두 번째·세 번째 사건에 린케 박사가 관여했을 가능성은 본인이 보기에 없다고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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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0
칠레 발파라이소의 프란시스코 트론코소 실바가 보낸 편지의 둘째 장이다. 그는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서로 관련이 없을 수 있고, 비행 원반도 일부 과학자들이 설명한 그 이상은 아닐 수 있지만, 우리 조상들이 역사 속에서 전한 "이상한 힘"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고 적는다. 이어 그는 자신이 한 말을 수신자의 판단에 온전히 맡긴다고 밝히며, 자신을 움직이는 동기는 "인간 일에 대한 인간적 관심" 뿐이고, 인류의 넓은 진보와 존엄·우주적 진화의 자비로운 미래를 바란다고 덧붙인다. 마지막 인사 다음에는 본인의 서명과 함께 주소 — Casilla 1657, 발파라이소, 칠레, 남아메리카 — 가 이어지고, 추신에는 편지를 받았다는 회신을 부탁한다고 짧게 한 줄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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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1
1953년 3월 23일자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칠레 발파라이소 카시야 1857번지의 프란시스코 트론코소에게 보낸 짧은 감사 편지다. 후버는 트론코소의 3월 4일자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리고, 관찰 내용을 자신에게 보내준 관심에 감사를 표한다. 이어 그 내용이 다른 정부 기관에도 관심거리일 수 있다며 워싱턴 D.C. 펜타곤의 공군장관 앞으로 사본 한 부를 전달하겠다고 통보한다. 편지 하단에는 외국 연락 데스크에도 수신본 사본을 보내고, 공군장관에게는 양식 사본을 별도로 보낸다는 발송 메모가 붙는다. 좌측 여백에는 톨슨·래드·니콜스 이하 FBI 본부 간부 회람 명단이 인쇄되어 있고, 우측 상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329 가 들어간 RECORDED·INDEXED 도장이, 하단에는 1953년 3월 24일 발송 처리 도장과 4월 7일 접수 일자 도장이 찍혀 칠레발 목격 제보가 본부 정식 사건 기록과 공군 라우팅 양쪽에 함께 흘러간 흔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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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2
1953년 4월 28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FBI 지부장(SAC)이 FBI 국장 앞으로 올린 사무 메모다. 제목은 4월 8일 오전 11시 30분 포트 부캐넌에서 관측된 미확인 비행 물체로, MISCELLANEOUS 항목으로 분류되어 있고 손글씨로 FLYING SAUCERS 가 덧붙어 있다.
본문에 따르면 4월 27일 라미 공군기지의 윙 정보장교 브래드포드 F. 슈란 소령이 보고를 보내왔고, 산후안 지부는 그 내용을 그대로 본부로 옮긴다. 4월 8일 오전 11시 30분 포트 부캐넌에서 다섯 사람이 미확인 비행 물체를 봤다. 다섯 사람의 진술이 전부 확보되었으며, 그중 셋은 미 육군 대위, 한 명은 부사관, 한 명은 민간인이었다. 이들은 그 물체를 밝은 별 또는 밝은 불덩이 로 묘사했고, 매우 높은 고도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말한다.
다섯 사람은 같은 시각 그 지역을 날고 있던 RB-36 한 대도 함께 봤다. 윙 정보장교 측은 같은 시각 RB-36 두 대가 해당 공역에 있었고, 각각 1만 2천 피트와 2만 1천 피트 고도로 비행 중이었다고 보고했다. 진술자 누구도 물체의 정체를 위의 묘사 이상으로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메모는 이 건을 단지 본부에 정보 차원에서 보고하는 것이라고 못 박고, CLOSED 로 마무리한다. 오른쪽 여백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와 330, 4월 28일 접수 도장이 따로 찍혀 있어 이 메모가 본 시리즈의 메인 파일로 편철된 흐름을 짧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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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3
1953년 5월 14일자로 매사추세츠 워터타운 올컷가 26번지의 데이비슨 부인 앞으로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보낸 답장이다. 후버는 데이비슨 부인이 5월 9일자로 보내온 편지와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받아 보았으며, 정보를 알려준 데에 감사한다고 적었다. 다만 편지 안의 사안은 공군부 관할에 속하기 때문에, 적절한 처리를 위해 편지 사본을 공군부 측에 넘겼다고 통보한다. 끝에는 "Bureau files are negative" — 즉 FBI 자체 파일에는 데이비슨 부인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내부 메모가 NOTE 로 붙어 있다. 좌측 하단의 빨간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331 은 이 편지가 UAP/비행접시 관련 사건 파일 단수에 정식 편철됐다는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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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4
문서 뒷면 스캔이다. 앞면 글씨가 비쳐 보이지만 거꾸로 뒤집혀 읽을 수 없고, 아래쪽에는 FBI 수신·접수 도장 여러 개가 거꾸로 찍힌 채 남아 있다. 도장은 1953년 5월 14일 오후 1시 35분 벨몬트 수신과 그보다 앞선 3월 28일 접수, 그리고 미국 법무부 FBI 라는 표시를 담고 있다. 본문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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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5
1953년 5월 14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의 공군부 감찰감실 산하 특별조사국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FLYING SAUCERS. 후버는 1953년 5월 9일자로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올컷가 26번지 거주 로버트 H. 데이비즌 부인이 FBI 앞으로 보내온 편지 한 부를 첨부해 보낸다고 알린다. 편지 자체는 자체 설명이 되는 내용이라 별도 해설은 붙이지 않는다. FBI 측은 데이비즌 부인에게 수신 확인을 통지했고, 편지 사본을 공군부로 적절한 조치를 위해 이관했다는 사실까지 함께 알렸다. 보스턴 지부로 사본 한 부가 별송 처리됐다. 하단 NOTE 에는 FBI 내부 기록상 데이비즌 부인 관련 자료는 없다고 짧게 덧붙어 있다. 좌측 여백에는 톨슨·래드·니콜스 등 FBI 고위 간부 회람 명단이 인쇄돼 있고, 우상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332 와 함께 declassified 2040 9/1/47 라우팅 표기, 하단에는 1953년 5월 15일·27일 접수 도장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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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6
이 페이지는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너머로 앞면 본문과 도장이 거꾸로 비쳐 보일 뿐 자체 본문은 없다. 뒷면 자체에 남은 것은 두 개의 접수 도장 — 1953년 5월 10일 오후 12시 23분 미 법무부 접수, 1953년 5월 14일 오후 1시 55분 FBI 법무부 접수 — 과 손글씨로 적힌 정리 번호 2640, 그리고 알아보기 어려운 라우팅 머리글뿐이다. 같은 문서가 법무부에서 FBI 쪽으로 나흘에 걸쳐 넘어간 흐름을 보여 주는 라우팅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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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7
1953년 5월 9일, 매사추세츠주 워터타운 올컷가 26번지에서 누군가가 FBI에 보낸 손편지다. 발신자는 5월 7일 목요일 저녁 9시 25분에 MIT 교정을 나와 학교 옆 주차장으로 들어서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흔히 비행접시라 불리는 것으로 보이는 물체를 봤다고 적는다. 비행기도, 탐조등도, 떨어지는 별도 아니었다는 것이 본인의 판단이다. 모양은 둥글고 색은 다소 주황빛이었으며, 꽤 느린 속도로 몇 초 동안 수평으로 이동하다 그대로 사라졌다. 당시 혼자가 아니라 다른 학생 한 명이 같이 있었고 함께 목격했으니 그 학생의 이름도 알려줄 수 있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여백에는 'MRS. R. H. DAVIDSON'이라는 이름과 'Thanks'가 세로로 적혀 있고,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 'RECORDED-98 INDEXED-99'와 사건번호 62-83894, 1953년 5월 12일·14일자 처리 표시가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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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8
데이비슨 부인이 손글씨로 적은 편지의 뒷면이다. 집에 도착한 뒤 약 30분 동안 민방위(C.D.)와 공군 지상 관제 등 여기저기로 전화를 돌렸지만 아무도 받지 않아 결국 워터타운 경찰에 연락했고, 경찰은 자기들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고만 답했다고 적었다. 부인은 항상 누군가 감시를 하고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이런 응답이 의외였다고 쓴다. 어디로 글을 보내야 할지 몰라 답답한 마음에 수신인에게 직접 편지를 쓰게 됐다며, 자신을 대신해 적절한 당국에 이 사건을 보고해 달라고 부탁한다. 또 지역 민방위에도 이런 목격담을 신고할 수 있는 창구나 담당자를 두도록 건의해 달라고 청한다. 답장을 꼭 받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본 미확인 물체가 무엇이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그런 것은 난생처음 봤다며,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얼마든지 더 알려 주겠다는 뜻을 밝히고 “감사드리며, 진심을 담아 — Mrs. Robert W. Davisson”으로 마무리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보스턴 지부가 1952년 11월 25일 오전 11시 52분에 접수했다는 도장이, 그 아래 거꾸로 찍힌 도장에는 법무부 방첩 부문(DEPT. OF JUSTICE / RECD ESPIONAGE)이 보스턴 매사추세츠에서 같은 시기에 접수했다는 표시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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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9
1953년 7월 9일, 후버의 비서 헬렌 W. 갠디(Helen W. Gandy)가 미시간 매키낵 아일랜드 그랜드 호텔의 W. S. 우드필(Woodfill) 사장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다. 갠디는 우드필이 6월 30일에 보낸 편지를 후버가 출타 중인 동안 자기가 대신 받았고, 후버가 워싱턴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전해 보고하겠다고 알린다.
같은 페이지 아래쪽에는 디트로이트와 신시내티 지부에 사본을 보낸다는 메모와 함께, FBI 내부 라우팅 지시가 따로 붙어 있다. 담당 특수요원(SAC)에게 내려보낸 지시는 이렇다 — 우드필이 편지에서 언급한 "스티븐슨(Stevenson)"이라는 인물이 너희 사무실 요원과 면담한 적이 있는지 파일을 샅샅이 확인하고, 우드필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정리하는 데 도움될 정보를 본부로 보내라. 보고 기한은 7월 16일까지로 못박았고, 사건 표제는 "Mr. W. S. Woodfill, President, Grand Hotel, Mackinac Island, Michigan, Research (Crime Records)"로 통일하라고 적었다.
맨 아래 NOTE는 이 처리의 속사정을 드러낸다. 이런 현상에 대한 문의는 현재 공군이 다루고 있지만, 일단 소문의 출처는 확인해 둘 필요가 있고, 신시내티에서 회신이 오는 대로 우드필의 문의 자체는 공군으로 넘긴다는 방침이다. 1939년과 1949년에 우드필이 후버를 미시간 호텔 협회 행사에 초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는 내력, 그리고 매키낵 아일랜드의 도박이 그랜드 호텔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정보원의 보고가 짧게 함께 적혀 있다.
왼쪽 여백에는 "7월 9일 트레이시에게 전화함"이라는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고, 하단에는 7월 10일 자 COMM-FBI 접수 도장과 빨간 "MAILED 27" 도장이 찍혀 발송 기록으로 마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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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0
타자기로 친 메모의 뒷면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 텍스트가 좌우 뒤집힌 채로 비쳐 보이고, 아래쪽 가장자리에는 1953년 7월 10일자 접수 도장과 통신·라디오 계열 라우팅 표시가 거꾸로 비친다. 이 면 자체에는 새로 적힌 본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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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1
미시간 매키낙섬 그랜드 호텔의 사장 W.S. 우드필이 1953년 6월 30일 호텔 편지지에 써서 워싱턴 FBI 본부로 부친 편지다. 오하이오 서클빌에 사는 친척에게서 들은 한 농부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다.
2년 전 서클빌 인근의 한 농부가 늦은 밤 자기 목초지 위로 떠다니며 춤추듯 움직이는 빛나는 물체 — 비행접시 — 를 보았고, 이 이야기가 동네에 퍼져 1년쯤 전 서클빌 지역 신문에도 실렸다고 한다. 이후 FBI 요원들이 농부를 찾아왔고, 세 주쯤 전에는 다시 찾아와 정부가 그동안 확보해 둔 여러 종류의 비행접시 사진을 농부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농부는 그 가운데 한 장이 2년 전 자기가 본 바로 그 물체라고 짚어냈다.
이야기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FBI 요원이 농부에게 직접 말하기를, 그가 짚어낸 비행접시는 화성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려진 기종이며, 비슷한 우주선들도 여러 차례 포획했고, 그 가운데 화성인 한 명을 캘리포니아에 산 채로 붙들어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 화성인은 지금 캘리포니아에서 영어를 배우는 중이며 미국식 관습도 익히고 있고, 자신들의 문명이 지구보다 훨씬 더 발전한 곳에서 왔음이 분명하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가 일반 상식처럼 돌고 있다는 보고다.
우드필은 마지막 단락에서 이 농부의 신원을 짚는다. 성은 스티븐슨, 동네에서 평판 좋고 부유하며 보수적이고 정신 상태도 멀쩡한 사람으로 통한다. 이름 한 부분은 검은 줄이 가린다.
여백을 FBI 내부 라우팅 도장이 채운다 — 톨슨·래드 등 고위층 송부 목록, RECORDED 68 / INDEXED 68 사건 정리 표시, 사건 번호 62-13494-353, 1953년 7월 13일 접수 도장. 손글씨 OK 사인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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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2
어떤 문건의 뒷면. 본문이라 할 만한 글은 없고, FBI 국장실의 접수 도장이 1953년 7월 초·중순에 걸쳐 여섯 차례 찍혀 있다. 7월 3일 12시 49분 오후와 1시 31분 오후, 7월 6일 12시 23분 오후, 7월 8일 오전 9시 34분과 오후 1시 39분, 7월 10일 오전 9시 36분 — 모두 "RECEIVED-DIRECTOR / FBI / U.S. DEPT OF JUSTICE" 형식의 자주색 도장. 도장 옆 손글씨로 "Director, 7-3-53, Rebecca N. Holmes", "MR JONES" 같은 라우팅 표시와 "REC'D RECORDS SEC" 도장도 함께 보인다. 한 통의 편지나 보고서가 국장 비서실과 기록 부서, 담당관 사이를 며칠에 걸쳐 돌아다닌 자취가 남은 뒷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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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3
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글쓴이는 앞 장에서 전한 이야기 — FBI가 한 농부에게 정부가 '비행접시' 여러 대를 노획했고, 그것들은 화성에서 왔으며, 캘리포니아에 화성인 한 명을 포로로 잡아두고 있다고 말했다는 — 가 한낱 헛소리라고 본다고 말한다. 정부가 정말 그런 정보를 쥐고 있다면 농부에게 그런 말을 흘릴 리 없고, 사실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너무 황당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농부가 본 것은 정부가 늘 말해 온 대로 빛의 반사나 다른 광학 현상이지, 화성이나 우주 어디에서 온 우주선은 아닐 거라고 글쓴이는 덧붙인다. 이어서 글쓴이는 이 사안의 진상을 시민으로서 공개적으로 답해 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알려 달라고 부탁한다. 친척에게 똑바로 설명해 주고 싶고, 오하이오주 서클빌 인근의 스티븐슨이라는 농부에 관한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본인도 궁금하다고 적었다. 마지막에 "Respectfully yours"라는 인사와 함께 회장(President) 직함을 단 W. E. Woodfield의 큰 파란색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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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4
1953년 7월 8일 새벽, FBI 애틀랜타 지부가 FBI 본부 디렉터 앞으로 '긴급(URGENT)' 등급의 텔레타이프 한 통을 친다. 제목은 '비행접시(FLYING SAUCERS), 토마스 매크레이 씨 — 애틀랜타 컨스티튜션 기자, 신고인'. 그날 새벽 3시 45분, 매크레이 기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환상적인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매크레이는 본인이나 컨스티튜션지 직원 누구도 음주 상태가 아니었으며 실제로 이 장면을 목격했다고 보증했다.
매크레이의 설명에 따르면, 노스이스트 피치트리로(路) 1855번지에 사는 에드워드 E. 워터스라는 사람이 신문사 사무실로 그를 찾아왔다. 워터스는 동행 두 명과 함께 자동차로 조지아주 메이블턴 인근 뱅크헤드 하이웨이를 달리던 중, 작은 동물 세 마리와 마주쳤다고 말했다. 워터스 일행은 이 동물들이 비행접시를 타고 어딘가에서 내려온 존재라고 믿었다. 일행이 다가서자 세 마리는 워터스가 비행접시라고 본 물체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두 마리는 그 비행접시 안으로 도망쳤지만 세 번째는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는 것이다.
워터스는 그 사체(또는 물체)를 신문사 사무실로 가져와 매크레이에게 보여 주었다. 매크레이는 자기가 그때까지 본 어떤 생물과도 닮지 않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원숭이과(科)에 가까워 보였다고 진술했다. 길이를 재 보니 약 21인치(약 53센티미터), 머리는 다소 뾰족하고 귀가 컸으며 피부는 분홍빛이 돌았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 매크레이는 검사해 줄 과학자를 찾지 못했지만, 애틀랜타 시내의 유력 수의사 한 명을 불러 동물을 살펴보게는 했다.
페이지 상단에는 FBI 본부 통신과의 '1953년 7월 8일' 접수 도장이, 우측 여백에는 톨슨·래드·니콜스·벨몬트 등 본부 고위 간부 십수 명의 이름이 적힌 인계 명단이 함께 인쇄돼 있다. 하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 라인의 기록 도장(EX-103, RECORDED-124)과 7월 9일 접수 표시가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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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5
FBI 본부 안에서 한 통의 문서가 여러 부서를 거치며 접수 도장을 받아 남긴 뒷면이다. 1953년 7월 8일 오후 3시 36분 국장실(Director) 접수를 시작으로, 같은 날 오후 시간대에 연구소(Laboratory)가 두 차례 — 4시 16분, 5시 52분 — 받아들였고, 7월 9일 오전 11시 56분에는 방첩 부서(Espionage), 오후 5시 51분에는 벨몬트 차장실(Belmont)이 이어 접수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도장만으로 한 문건이 국장실에서 출발해 연구소·방첩·차장실까지 어떻게 회람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라우팅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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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6
분홍 텔레타이프 용지에 찍혀 들어온 FBI 전문의 둘째 장. 발신자는 카슨(CARSON), 본문은 매크레이(McRae) 요원이 수의사를 만난 뒤 보고한 내용이다.
수의사는 단정적인 의견은 피하면서도, 원숭이과 동물 가운데 이 사체처럼 털이 전혀 없는 개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죽은 뒤에 색이 바래지 않는 동물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체에는 원래 꼬리가 있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없어진 상태였다. 매크레이가 이 점을 워터스(Waters)에게 묻자 워터스는 다소 놀란 기색을 보이더니, 사고로 잘려나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매크레이는 사체의 입 주변에 있던 피가 사고로 흘러나온 것이며 사람 피와 비슷해 보였다고 덧붙였다.
매크레이는 처음에는 최근 신문 기사 분위기를 타고 워터스가 언론용 자작극을 벌이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다만 진짜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신문사가 자정 이후라도 얼마든지 기사를 받아 실을 수 있는 만큼, 워터스가 방문 시점을 더 잘 골랐을 것이라고 보았다. 매크레이는 위 사실들을 바탕으로 신문에서 오늘 안에 기사가 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애틀랜타 사무소의 인물 색인에서는 워터스 관련 기록이 나오지 않았고, 이 보고는 오늘 중 보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 사무소에서는 UCAB 명목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사건은 오늘 동부표준시 오전 9시에 OSI 사무소로 이첩되었다고 매듭짓는다.
전문 말미에는 "END AND ACK"에 이어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짧은 정정 대화가 따라붙는다. 6번째 줄 마지막 세 단어는 "THERE WAS BLOOD"로, 10번째 줄은 "THEY WERE UNABLE"로 고쳐 읽으라는 확인이고, 그것으로 통신을 마친 뒤 오후 12시 11분에 FBI 워싱턴 본부와 회선이 끊겼다는 표시(12-11 PM OK FBI WA RD)가 남아 있다. 우측 하단에는 벨몬트(Belmont) 부국장 책상으로 라우팅되었음을 보여주는 작은 도장이 희미하게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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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7
1953년 7월 8일 새벽, FBI 애틀랜타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발신 시각은 같은 날 오전 11시 2분이고, 통신과 접수 도장에는 같은 날짜가 찍혀 있다.
주제는 비행접시. 신고자는 〈애틀랜타 콘스티튜션〉 기자 톰 맥레이(Tom McRae)다. 새벽 3시 45분에 맥레이가 전화로 다음과 같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전달했고, 본인도 신문사 직원 누구도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목격한 일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맥레이의 진술에 따르면, 에드워드 E. 워터스(Edward E. Waters, 주소: 1855 Peachtree Rd, NE, 전화: Elgin 9-5-6-2)가 신문사 사무실로 찾아왔다. 워터스는 두 명의 동행과 함께 자동차로 조지아주 메이블턴(Mableton) 부근 뱅크헤드 하이웨이를 달리던 중 작은 동물 세 마리를 마주쳤다. 일행은 이 동물들이 비행접시를 타고 어딘가에서 내려왔다고 믿었다. 일행이 다가가자 세 마리는 워터스가 비행접시라고 본 물체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 가운데 두 마리는 접시 안으로 도망쳤지만 세 번째는 일행의 자동차에 치여 죽었다.
워터스는 그 사체(혹은 물체)를 신문사로 가져와 맥레이에게 보여 주었다. 맥레이는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물이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원숭이과에 가까워 보였다고 말했다. 길이는 약 21인치, 머리는 다소 뾰족하고 귀가 크며 살갗은 분홍빛이었다. 새벽 시간이라 과학자를 부르지는 못했지만, 시내의 저명한 수의사 한 사람을 불러 사체를 살피게 했다.
오른쪽 위 라우팅 슬립에는 톨슨, 래드, 니콜스, 벨몬트 등 본부 고위 간부 이름 옆에 체크 표시가 줄지어 있어, 이 전문이 사건 직후 곧바로 위층까지 회람되었음을 보여 준다. 왼쪽 여백의 손글씨는 같은 날 OSI(공군 특별수사단)에 사본을 넘겼다는 처리 메모이고, 하단의 "OSI 7/9/53" 도장은 그 이튿날의 후속 처리를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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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8
전문은 매크레이 요원이 수의사와 나눈 대화를 이어 전한다. 수의사는 단정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원숭이과 동물 중에 이 사체처럼 털이 없는 개체를 본 적이 없고, 죽은 뒤에 이렇게 창백해지지 않은 동물도 본 적이 없다고 짚었다. 수의사는 동물에게 원래 꼬리가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잘려 나갔다고 했고, 매크레이가 이 부분을 워터스에게 묻자 워터스는 다소 놀라더니 사고로 잘려 나간 것 같다고 답했다. 매크레이는 동물 입 주변에 사람 피처럼 보이는 피가 묻어 있었는데 이것도 사고로 생긴 것이라고 전했다. 매크레이는 처음에 워터스가 최근 신문 기사들을 보고 홍보 장난을 치려는 줄 알았지만, 그럴 작정이었다면 자정이 지난 시각이 아니라 신문이 기사를 실을 수 있는 시간대를 골라 찾아왔을 것이라며 그 의심을 거두었다. 매크레이는 신문이 오늘 이 사실들을 보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애틀랜타 색인에서 워터스에 관한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이상은 오늘 보도가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고한 것이며, 본 사무소에서는 별도 지시가 없는 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사안은 동부 표준시 오전 9시에 OSI 사무소로 이첩했다고 매듭짓는다. 발신자는 카슨. 전문 아래쪽에는 송수신자가 줄 단위로 오자를 확인한 짧은 대화, 종료 시각인 오후 12시 11분 표시, 그리고 빨간 잉크로 ORIGINAL — DIRECTOR 라고 적힌 라우팅 표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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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9
워싱턴 데일리 뉴스 1953년 7월 9일자에 실린 「있지도 않았던 작은 사람」 기사 스크랩이다.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 미국 78번 국도에서 에드워드 워터스와 친구 두 명이 비행접시를 봤다고 주장하며, 외계 생명체가 자기들 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찍었다고 내놓은 사진이 함께 실렸다. 셋은 외계인을 붙잡았다가 풀어줬다고 했지만, 사진 속 존재는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가 아니라 털을 깎은 원숭이로 드러났다. 스크랩 아래쪽에는 빨간색 손글씨로 FBI 파일 번호 62-83894-334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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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0
페이지에는 누런 종이에 잘라 붙인 통신 기사 클리핑 한 장이 있다. 표제는 "(SAUCER)". 애틀랜타발 기사로, 이발사 두 명과 정육점 주인 한 명이 맥주 한 병씩 마신 뒤 비행접시와 작은 외계인 세 명을 봤다고 주장하며 21인치짜리 "생물" 사체를 증거로 내놓았다는 내용이다. 28세 이발사 에드워드 와터스는 자정 무렵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다 도로 한가운데 붉게 빛나는 물체와 마주쳤고, 그 옆에서 작은 사람 세 명이 달려가다 그중 둘은 비행접시에 올라탔고 자기는 나머지 하나를 차로 쳤다고 진술했다. 동승자였던 정육점 주인 아놀드 페인과 이발사 토머스 윌슨도 같은 이야기를 했고, 비행접시는 다시 떠올라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나 에모리 대학 해부학 교수 W. A. 미클은 사체를 살펴본 뒤 털이 없을 뿐 붉은털원숭이류로 보인다고 했다. 와터스는 그 "것"을 드라이아이스로 얼려 전시하기로 했다. 클리핑 아래 여백에는 손글씨 메모와 서명이 보이고, 페이지 하단에는 빨간색 인쇄로 "ENCLOSURE 62-83894-334" 라는 FBI 사건 파일 식별자가 들어가 있어 이 기사가 해당 파일의 첨부물로 묶여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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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1
1953년 7월 10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펜타곤 공군성 감찰감실 산하 특별조사국장 앞으로 보낸 메모다. 제목은 비행접시(FLYING SAUCERS). 후버는 전날인 7월 9일 애틀랜타 지국이 받은 제보를 그대로 전달한다고 밝힌다. 제보자는 애틀랜타 컨스티튜션 기자 톰 맥키이고, 맥키에게 직접 사연을 가져온 사람은 애틀랜타 피치트리 로드 1855번지에 사는 에드워드 H. 워터스라는 남자다.
워터스의 진술은 이렇다. 동행 두 명과 함께 자동차로 조지아주 메이블턴 인근 뱅크헤드 하이웨이를 달리다 작은 동물 세 마리와 마주쳤다. 워터스 일행은 이 동물들이 비행접시에서 내려온 것이라 믿었다. 일행이 다가가자 세 마리는 비행접시로 보이는 물체 쪽으로 황급히 되돌아갔고, 두 마리는 그 안으로 도망쳤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워터스 일행이 탄 차에 치여 죽었다.
맥키는 워터스가 그 죽은 동물을 애틀랜타 컨스티튜션 사무실로 들고 와 직접 보여주었다고 했다. 맥키는 이런 동물을 본 적이 없다며, 굳이 비슷한 것을 꼽자면 원숭이과 같은 인상이라고 적었다. 길이는 약 30cm, 머리는 다소 뾰족하고 귀가 크며 살색은 분홍빛이었다. 이른 새벽이라 과학자는 부르지 못했지만 애틀랜타의 저명한 수의사 한 명에게는 사체를 검사받도록 했다고 한다.
메모 하단에는 1953년 7월 10일자 FBI 발송 도장과 MAILED 27 표기가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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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2
이 페이지는 문서의 뒷면이 비쳐 보이는 스캔이다. 본문 글자들이 모두 좌우반전된 채 종이 너머로 어렴풋이 비치고 있어 정상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페이지 자체에 새로 인쇄된 내용은 없고, 우측 상단의 RECORDED-124 / INDEXED-124 / EX-103 라벨과 하단의 FBI 우편실 접수 도장 — 1953년 7월 10일 오후 5시 24분 접수, 7월 10일 등록, 7월 23일 발송 표시 — 만 이 면에 직접 찍혀 있다. 즉 본문이 인쇄된 종이의 반대쪽이며, FBI 내부 행정 처리 흔적만 남은 라우팅용 뒷면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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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3
맥레이 본인은 수의사가 단정짓지는 않았다고 전했지만, 그 수의사는 털 없는 원숭이과 동물을 본 적도, 죽은 동물이 창백해지지 않는 경우를 본 적도 없다고 짚어주었다. 맥레이에 따르면 수의사는 동물의 꼬리가 없었다고 말했고, 워터스에게 꼬리가 어디 갔는지 묻자 워터스는 다소 놀란 기색을 보이며 사고 때 잘려나간 것 같다고 답했다. 맥레이는 동물의 입가에 사람 피와 닮은 피가 묻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맥레이는 위 내용을 FBI 애틀랜타 사무소에 전달하던 시점에 자신과 "애틀랜타 컨스티튜션" 신문사 직원 누구도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로 직접 목격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워터스가 신문 노출을 노린 장난을 친 것 아닌가 의심했지만, 그게 목적이었다면 신문사 방문을 더 잘 준비했을 거라는 게 맥레이의 판단이었다. 자정이 지나 신문사가 기사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맥레이는 "애틀랜타 컨스티튜션"이 위 내용을 기사로 다룰 가능성이 높다고 같은 사무소에 알렸다. 1953년 7월 9일 아침 FBI 연락 담당자가 위 건으로 귀 사무소에 전화로 접촉한 사실이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이 내용은 참고용으로 송부하는 것이고 FBI는 이 사안을 별도로 조사하지 않는다고 문서는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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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4
1953년 7월 24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미시간주 매키낙섬에 있는 그랜드 호텔 사장 W. S. 우드필에게 보낸 답신이다. 후버는 우드필이 6월 30일자로 보낸 편지가 자신이 시내로 돌아온 뒤에 전달되었다며, 정보를 알려준 데 대해 감사를 전한다. 이어 후버는 우드필이 편지에서 다룬 사안이 FBI의 수사 관할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우드필이 묘사한 '비행접시' 관련 스티븐슨 씨 인터뷰는 FBI 측 인물이 진행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본문 아래 NOTE는 사건 경위를 정리한다. 우드필의 6월 30일자 편지는 오하이오주 서클빌에 사는 농부 스티븐슨이 비행접시를 목격했고 이후 FBI 측 인물의 인터뷰를 받았다고 전했다. 후버는 7월 9일 신시내티 지부에 사실 확인을 지시했고, 신시내티가 7월 15일 보낸 답신에 따르면 스티븐슨은 7월 14일에 면담을 받았다. 면담에서 스티븐슨은 같은 사안으로 컬럼버스의 잭 A. 그랜트라는 인물에게 인터뷰를 받았다고 진술했고, 그랜트 본인이 과거 FBI에 의해 '목 졸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신시내티 파일에는 그 농부 — 서클빌 농촌도로 2번지의 브루스 스티븐슨 — 에 대한 사전 면담 기록이 없다. 좌측 여백에는 톨슨·래드·니콜스 등 후버의 측근 라우팅 명단이 찍혀 있고, 문서 좌하단의 RECORDED-34 도장 옆에 사건 파일 번호 62-83894-335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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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5
페이지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앞면에서 비쳐 보이는 흐릿한 글자 자국만 남아 있어 읽을 수 없고, 대신 두 개의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53년 7월 28일 오후 5시 51분 FBI 우편실 접수 도장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날인 1953년 7월 29일자 FBI 통신실 발송 도장이다. 이 페이지 자체는 문서 본문이라기보다 해당 자료가 후버 본부의 우편·통신 절차를 거쳤다는 처리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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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6
1953년 7월 15일 신시내티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내부 메모로, 7월 9일자 본부 회보에 대한 답신이다. 주제는 매키낙섬 그랜드 호텔의 W. 우드필 사장 관련 조회로 적혀 있지만, 본문은 오하이오 피카웨이 카운티의 비행접시 목격담을 다룬다.
서클빌의 찰스 래드클리프 보안관은 같은 카운티 농장주 브루스 스티븐슨이 자기 농장에 접시 모양 물체가 내려앉았다고 보고했고 그 이야기가 지역 신문까지 흘러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1953년 6월 누군가가 그 일을 두고 스티븐슨을 찾아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보안관이 아는 한 그 사람은 자기를 FBI 요원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보안관은 스티븐슨을 평생 알아 왔고, 그는 부유하고 평판 좋은 농민이며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신시내티 사무소는 7월 14일 스티븐슨을 직접 면담했다. 스티븐슨은 접시형 물체를 봤다는 보도가 나간 직후 콜럼버스 트라이빌리지 역 사서함 511호 주소를 댄 잭 W. 그랜트라는 인물이 자기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랜트는 자신이 텔레비전 안테나 판매원이며 6년 넘게 취미로 비행접시 사건을 조사해 왔다고 소개했고, 정부 어느 부처와도 공식 연관은 없지만 한 번은 FBI 의 체크 를 받은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랜트는 자기가 찍었다는 비행접시 사진을 보여 주고, 곧 출간될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메모 끝줄에서 신시내티 사무소는 자체 색인에서 스티븐슨과 그랜트 어느 쪽에 대한 식별 정보도 찾지 못했다고 보고한다. 좌우 여백과 하단에는 접수·색인 도장과 빨간색 파일 번호 62-83894-335 가 함께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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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7
이 페이지는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거의 비어 있고, 종이를 통과해 비쳐 보이는 앞면 글씨가 좌우 반전된 채로 흐릿하게 드러난다. 페이지 아래쪽에 거꾸로 찍힌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보이는데, 하나는 1953년 7월 23일 오전 11시 52분 미 법무부 FBI 접수, 또 하나는 1953년 7월 27일 오후 12시 32분 디렉터 사무실(S.O.S.) 접수 표시다. 즉 같은 문서가 일반 접수 창구에서 후버 디렉터 사무실 라인으로 며칠 사이에 다시 한 번 회람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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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8
FBI 파일 라우팅 페이지로, 사건 번호가 62-83894의 336·337 시리얼에서 62-101030의 17 시리얼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손글씨와 'CHANGED TO' 스탬프로 기록한다. 1954년 5월 5일 자 접수 도장과 담당자의 이니셜 서명이 남아 있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4-528이라는 페이지·문서 식별 번호가 작게 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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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9
1954년 4월 12일, 뉴어크 FBI 사무소 특별수사책임자(SAC)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새로운 공기역학 원리 관련 정보 — 정보원 알로이스 피벡(ALOIS PIVEC)"이고, 제목 옆에는 누군가 손글씨로 "FLYING SAUCERS"라고 크게 적어 두었다. 뉴저지 이스트오렌지 홀스테드가 164번지에 사는 알로이스 피벡과 그의 아내 올가 피벡이 제공한 편지 두 통의 사진사본 일부를 동봉한다고 밝힌다. 두 사진사본은 모두 독일어로 되어 있고, 공기역학의 새로운 원리 개발과 그 정보를 오스트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이 입수하려 시도했다는 주장에 관한 내용이다. 편지 내용을 요약하고 정보 입수 정황을 정리한 익명 메모(blind memo)도 함께 동봉했다. 뉴어크 사무소는 이 정보를 본부가 적절히 판단해 활용하도록 송부하며, 알로이스 피벡·올가 피벡·아돌프 도르닉(ADOLPH DORNIG)에 대해서는 뉴어크 색인에 아무런 기록도 없다고 덧붙인다. 동봉물 7건, 등기우편으로 발송. 하단에는 "RECORDED 62-83894-338 / INDEXED 43"이라는 본부 접수 표시와 1954년 4월 30일자 접수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62-HQ-83894 파일 338번째 항목으로 정식 등재됐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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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0
1954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의 한 시민(서명자 표기는 상단 주소란에 작게 있음)이 미국 쪽 수신인에게 보낸 독일어 친필 편지다. 옛 독일 필기체(쿠렌트·쥐털린 계열)로 한 면을 빽빽이 채웠고, 문맥상 미국 대통령 아이젠하워, 피츠버그, 사진 자료, 케른텐 지역 헌병대(Gendarmerie), 오스트리아 정부의 명령 체계, 첩보(Nachrichtenwesen), 그리고 FBI에 대한 문의가 차례로 언급된다. 편지 전체의 정확한 문장은 이 필기체 특성상 한 페이지 OCR만으로는 옮기기 어렵다 — UFO 또는 외계 현상 관련 민원·문의가 미국으로 흘러들어가 FBI 파일에 편입된 외국발 서신의 전형으로 보인다. 상단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어 파일에 철해진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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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1
1954년 5월 12일, 뷔르츠부르크 뉘른베르거 슈트라세 35번지에 사는 카를 다비트라는 사람이 누군가에게 보낸 손편지 한 장이다. 검게 변색된 종이 위에 독일어 필기체로 빽빽이 적혀 있어 본문 대부분은 이 스캔만으로는 한 줄씩 옮겨 적기 어렵다. 페이지 오른쪽 위에 발신인 이름과 주소, 날짜가 적혀 있고, 그 아래로 인사말부터 시작하는 긴 편지 본문이 페이지를 가득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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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2
독일어 필기체로 빽빽이 적힌 한 통의 편지 첫 장이다. 왼쪽 상단에 발신자 주소처럼 보이는 짧은 블록이 있고 (Frau Wagner / Helene Powlek 류의 이름과 Bad Godesberg 인근 주소로 읽힌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후대에 보라색 연필로 'Page 1' 이라고 적어 두었다. 본문은 'Sehr geehrter Herr Powlek' 으로 시작하는 독일어 손글씨로, 옛 쥐털린(Sütterlin) 풍의 필기체라 거의 판독하기 어렵다. 중간 부분에 'Pilot', 'Motor', 'Flugzeug' 같은 단어와 1928~29년·1908년·1930년대 같은 연도 표기가 흩어져 있어, 비행기·엔진·비행 속도 (시속 4,600~4,800km 비슷한 수치) 관련 회상을 적어 보낸 편지로 보인다. 마지막 줄과 서명은 종이 아랫부분의 갈색 얼룩과 변색에 묻혀 알아보기 어렵다. 상단 중앙에는 철해 두었던 펀치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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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3
손글씨 영문 편지로 보이는 한 장이다. 종이 위에 산악 풍경 사진이 이중 노출처럼 겹쳐 있어 본문 대부분이 알아볼 수 없다. 윗단 가운데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왼쪽 상단에 "Doc 2" 정도로 보이는 메모가 한 줄 들어가 있다. 글씨는 흘림체 영문 한 단으로 페이지 전체를 채우고 있지만, 풍경 사진의 어두운 톤이 본문 중하단을 거의 다 덮어 단어 하나하나를 또렷이 옮기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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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4
1953년 12월 21일자로 뉴저지주 할스테드 가 164번지의 알로이스 피베츠 앞으로 보낸 독일어 편지를, 1954년 5월 6일 프리드리히 G. 노이하우저 주니어가 영어로 옮긴 번역본이다. 글머리에는 "독일어에서 번역", "항목 #1"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고, 페이지 하단 여백에는 "사본 폐기 / 270 / 1954년 11월 19일"이라는 처리 기록이 남아 있다.
발신인은 피베츠의 동생을 통해 자신을 소개한다. 두 사람은 어느 공사 현장에서 알게 된 사이로, 발신인은 그때 동생에게 자신의 발명과 그 활용에 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갑작스럽게 연락하는 무례를 용서해 달라고 청한다. 자기 아내가 외국으로 나가기를 원하지 않아 오래 망설였지만, 결국 발명 두 가지의 아이디어를 동봉해 보내니 한쪽이든 양쪽이든 혹은 어느 것도 쓸 만하지 않다고 판단되든 수신인이 직접 가늠해 달라고 말한다. 만약 수익성이 있어 보이면 수신인 본인 이름으로 특허를 출원하고, 순이익의 45퍼센트씩을 발신인과 수신인이 나누어 갖고 나머지 10퍼센트는 수신인의 형제 몫으로 돌리자고 제안한다. 가능한 한 큰 이익을 끌어내야 하니 모든 권한은 수신인에게 일임한다고 덧붙인다.
그다음으로 발신인은 "온 세상이 가지고 싶어 할 발명"에 관해 이야기를 꺼낸다. 핵심만 적겠다는 단서를 달고서, 전쟁 전에 비행하는 장난감을 만들려다가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공기역학 법칙을 우연히 발견했다고 전한다. 실험을 거듭하며 동료 몇 사람에게 알렸고, 그들은 열광한 끝에 남미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동료들은 자기들끼리 시험해 보다가 사람이 죽는 사고를 냈고, 미완성 발명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실패했다. 결국 그들이 다시 발신인에게 도움을 청해 왔다. 동료들은 장인 수준에 불과해 비행 기계도 조잡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는데, 모터사이클 엔진으로 처음 시험한 결과는 시속 250~300킬로미터였다. 1938~39년 당시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다. 더 강한 엔진을 달자 시속 2600~2800킬로미터를 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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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5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와 사정을 털어놓았다. 시험 비행의 60퍼센트 정도가 사망 사고로 끝났다는 이야기였다. 요점은 분명했다. 내가 비행 장치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람 목숨을 위협하는 물건을 공개 자리에 들고 나올 수는 없으니, 이 모든 일은 여전히 사적인 비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이 비행 장치를 "플라잉 소서"라고 부르고, 옛 동료들 사이에 다툼이 벌어져 서로 불신하고 있고, 이 발명이 요구하는 수준의 지력을 갖춘 사람도 그쪽에는 없어서 진전이 없다고 했다.
내 짐작으로는 그들이 어떤 설계 하나에 고집스럽게 매달리다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제 비행기가 안전하게 날 수 있다고 설계 도면을 두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를 보냈다. 그 대신 속도는 좀 잃었지만, 그래도 안전이 확보된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기계는 구조가 매우 단순해서, 엔지니어와 전문가 한 명씩만 붙여 준다면 최대 5~6주 안에 시험기 한 대를 만들 수 있다. 1~3인용 시험기 한정이다. 자동차 엔진 80~120마력으로 시속 700~1,000킬로미터에 도달한다. 비용을 꺼리지 않는 회사가 있다면, 구조가 단순한 덕분에 시속 2,000킬로미터를 넘는 기계를 첫 대부터 곧장 만들어 낼 수 있다.
새로운 공기역학 원리 덕분에 프로펠러 없이도 그 정도 속도가 어렵지 않게 나온다. 그래서 나는 자동차보다 더 싼 대중용 비행기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활주로가 필요 없고 시속 500~700킬로미터로 날 수 있는 기계다. 이런 일을 펼치기에 미국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발명에 큰 관심을 가질 만한 회사와 닿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만 영어를 전혀 모르니 처음부터 일 자체가 어그러질 수밖에 없다. 친애하는 FIRST 씨, 당신이 이 일을 운만 떼어 주신다면 헛수고는 아닐 것이다. 나는 돈을 아끼는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거기에 더 큰 사업을 하나 더 펼치고 싶다. 그쪽에는 동료가 더 필요하다. 그 큰일을 굴릴 자금은 원반형 비행기에서 나올 텐데, 내 모델대로라면 추락 위험이 0퍼센트인 대중용 비행기는 거대한 사업이 될 것이다. 미국의 거물들은 모르지만, 어쩌면 헨리 포드, 항공기 회사, 혹은 헬리콥터 회사 정도가 흥미를 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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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6
한 독일어권 발신인이 미국에 있는 지인 피레츠 씨에게 보낸 편지의 셋째 장이다. 발신인은 자신이 미국에 도착해 라이선스나 사례금에 관한 계약을 받은 뒤에야 동료들의 이름을 공개하겠다고 말한다. 다만 어느 회사가 자신을 비행 기계 제작에 받아들이더라도 항해 비용은 자기 돈으로 내지 않겠다는 조건을 단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에 살고 영어를 아는 사람이 한 명 필요한데, 바로 피레츠 씨에게 미국식으로 말해 '매니저' 역할을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매니저는 보수를 받게 되며, 자신이 미국에 건너간 뒤 함께 발명 작업을 하면 즐거울 거라고 덧붙인다. 자신은 화학자 과정도 이수했고, 훗날 '안개 미사일' 혹은 '로켓 미사일'로 불리게 된 '데(De)' 장치를 비롯해 여러 발명품이 자기 손에서 나왔다고 적는다. 자기 글씨가 상형문자처럼 보일 수 있다고 양해를 구한 뒤, 과장이 아님을 맹세하면서 '비행접시'라 불리는 발명품이 자기 것이며 남미에서 그 기계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알고 있고, 자기 손으로 같은 기계를 만들어 최소 시속 2000킬로미터를 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끝에는 답신을 기다린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아돌프 도르닉(A. DORNIG)'이라는 서명이 두 차례 들어간다. 페이지 하단에는 페이지 번호 -3-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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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7
1954년 1월 21일, 클라겐푸르트-베스트 바이트만스도르퍼슈트라세 80번지의 아돌프 도흐니히가 피베츠 씨에게 보낸 편지다. 도흐니히는 1월 12일자 편지를 1월 19일에 받았다고 답하며, 피베츠가 자신의 발명을 두고 미국 당국과 이미 접촉해 준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그러나 큰 기대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미국 쪽도 영국 쪽도 똑같이 엉망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은 한참 전에 잘츠부르크의 미국 당국에 편지를 두세 통 보냈고 지난해 직접 잘츠부르크에 가기까지 했지만 모두 헛수고였다고 한다. 편지에 대한 응답이라고 와 본 것은 기껏해야 러시아 첩보원이었다는 말도 덧붙인다. 스위스에 머물 때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그다음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공식 기관을 거쳐 편지를 보냈지만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고, 결국 나타나는 것은 늘 러시아 첩보원이라고 한다. 1953년 5월에는 더러운 돼지 같은 자가 찾아와 스위스의 오스트리아인 이민 사무소로 자동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자신을 속이려 했다고 적는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지만 일행도 있었고 어떻게 끝났는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땅바닥에 누워 있었고 모두 사라진 뒤였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작업장에 한 남자가 다가와 손가락질을 하며 "너!"라고 외치고는 자신이 쳐다보자 재빨리 도망쳤다고도 적는다.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자기를 아는 사람 같았다는 설명이다. 영국 쪽은 더 한심하다고 이어 간다. 발명에 관해 현지 시 사령관 사무실에도 편지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 캐나다"를 듣게 되었는데, 그 방송에서 자기 진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누군가가 (아마도 스코틀랜드 야드가) 마침내 독일 비행접시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를 손에 넣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영국 전문가들과 함께 캐나다에 연구소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도흐니히는 이게 무슨 미친 세상이냐고 한탄한다. 자신은 발명을 팔겠다고 내놓는데 정작 저들은 그것을 두고 소란만 피운다는 것이다. 자기 데이터 없이는 기계를 완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박는다. 끝으로 자기가 1937년 이래 이곳에서 평판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린다. "우리의 독수리, 불행이라고도 불리는 그것" 때문이라며 — 우리 문장(紋章)인 그 새 — 라는 말까지 쓰다가 페이지가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 -4-가 매겨져 있어 더 긴 편지의 한 장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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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8
오스트리아 국장의 발톱에 망치와 낫이 박혀 있다고, 193(?)7년에 공산주의 상징이 우리 돈에도 등장한다고 공개 선언했더니 헌병대가 자신을 체포하고 미쳤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부 안에 "빨간 개"가 비밀리에 자리 잡고 있다고 반복해서 외쳐도 모두 묵살되었고, 그 뒤로 자신에 관한 정보가 항상 "미친 사람" 한 단어를 근거로 처리되어 왔지만 그렇게 믿지 않는다, 다만 공산주의자들이 자신을 매우 엄격히 감시해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1933년 이후로 미국에 들어가려던 모든 시도가 좌절되었고, 그 나라로는 갈 수 없다. 자신과 친척들이 가장 비밀스러운 러시아의 통신 방법과 장치, 그 시스템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미국과 자신이 접촉하는 것을 막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다시는 비행기에 오르지 않겠다고도 말한다. 미국인들은 자기들 사이에 러시아 첩보원이 얼마나 많이 들어와 있는지 모른다. 자신의 발명을 펜타곤에 편지로 알렸을 때 거절 답신이 왔고, 잘츠부르크에서는 아예 답이 없었으며, 영국인들은 자기 주소를 잃어버린 듯하다. 현지 FBS에 러시아 장치를 만들 수 있다고 신고했더니 받은 답신이… 여기서 진술이 끊긴다. 페이지 하단의 조사관 주석은 이 통신이 미완이라고 짧게 적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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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9
1954년 1월 12일 뉴저지 이스트오렌지 홀스테드가 164번지에 사는 알로이스 피베츠가 뉴어크 사무소를 직접 찾아왔다. 그는 1953년 12월 20일 무렵 오스트리아 클라겐푸르트 바이트만스도르퍼슈트라세 80번지의 아돌프 도르니히라는 인물한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편지는 도르니히가 개발했다는 여러 발명품을 미국 항공기 회사와 재봉틀 회사에 가져가 팔아달라는 부탁이었고, 도르니히는 정부 기관에는 일절 접촉하지 말아 달라고 못 박았다. 발명품은 새로운 방식의 재봉틀과 비행접시였다. 피베츠는 비행접시가 미국 국방에 어느 정도 중요할 수 있다고 판단해 사무소를 찾았다고 밝혔다.
피베츠는 도르니히를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도르니히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에 사는 피베츠의 형 프리츠를 통해 그의 이름을 알게 됐다. 프리츠는 그라츠의 지멘스-할스케 벨기에 가세 11번지에서 일하고 있고, 한때 도르니히와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피베츠가 보기에 도르니히는 화학자거나 어떤 종류의 엔지니어다. 그는 편지 내용이 너무 황당해서, 글이 이렇게 지적으로 쓰여 있지만 않았다면 도르니히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의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르니히는 자신이 새로운 공기역학 원리를 팔았고, 그 원리로 실제 작동하는 비행접시를 만들 수 있으며, 자기가 만든 모델은 보통의 위험 없이 비행한다고 주장했다. 편지는 또한 도르니히가 전 세계에서 비행접시 개발을 시도해 온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 왔고, 자기가 처음으로 진짜 성공을 거뒀다고 적고 있다고 한다.
신원 배경으로, 피베츠는 1925년 오스트리아 레오벤 인근에서 태어났고 1952년 3월 29일 독일 브레머하펜을 거쳐 뉴욕에 도착했다. 현재 뉴저지 메이플우드의 퍼블릭 서비스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1954년 1월 30일에는 알로이스 피베츠의 부인 올가 피베츠가 같은 주소로 뉴어크 사무소를 찾아왔다. 그녀는 남편 알로이스 앞으로 도르니히한테서 또 한 통의 편지가 왔는데, 남편이 그 내용을 FBI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정보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남편이 모르고 있으니 면담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1964년 11월 19일자로 사본이 폐기됐다는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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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0
피벡 부인의 진술이 이어진다. 최근 남편이 도르니그에게서 받은 편지에는, 오스트리아의 공산주의자들이 도르니그에게 접촉해 그를 스위스로 데려가 새 공기역학 원리를 더 발전시키게 하려 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편지에 따르면 도르니그는 공산주의자들의 제안을 계속 거절했고, 피벡에게 도르니그의 새 발명을 미국에 파는 노력을 더 강하게 이어 달라고 부탁했다. 배경을 말하자면, 올다 피벡 본인은 남러시아의 독일계 가정에서 태어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러시아를 침공할 무렵 가족과 함께 독일로 이주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알로이스 피벡과 결혼해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다. 본문 중간에는 진술자 이름 옆에 손글씨 메모와 라우팅 표시로 보이는 흘려 쓴 글자, 그리고 오른쪽 아래에 페이지 정리 번호로 보이는 숫자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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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1
1954년 5월 13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 공군부 감찰감실 특수조사국장에게 보낸 '비행접시 — 잡건, 정보 통보' 건 서신이다. 후버는 4월 12일자 메모 한 부를 첨부하는데, 그 메모는 뉴저지주 이스트오렌지 핼스테드가 142번지에 사는 알로이스 피벡과 부인 올가 피벡 부부가 뉴어크 지부에 알린 '아돌프 도르니히' 관련 정보를 담고 있다. 두 사람이 제출한 편지 두 통의 독일어 일부를 번역한 사본도 함께 붙였다. 후버는 이어서 FBI 기록상 아돌프 도르니히·알로이스 피벡·올가 피벡 누구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한 적이 없으며, 첨부 메모와 번역 내용을 검토한 결과 이번 건에 대해서도 조사를 개시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는다. 하단에는 기록관리과 형사부에 사본 한 부를 같은 날 0-6 양식으로 보낸다는 처리 지시가 적혀 있다. 우측·하단 여백에는 1954년 5월 13일과 17일자 FBI 접수·발송 도장과 라우팅 이니셜이 빼곡히 찍혀 있어, 이 서신이 FBI 내부 표준 경로를 정상적으로 거쳤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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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2
1954년 9월 2일자 FBI 기록과(Records Section) 검색 요청 양식이다. 양식 상단의 체크박스 가운데 "Service Unit-Room 6524" 항목만 선택되어 있고, 검색 대상(SUBJECT)란에는 "Flying Saucers(비행접시)"라고 적혀 있다. 주소·소재지·생년월일/출생지 칸은 비어 있고, 하단 파일 번호·시리얼 표도 채워지지 않은 채 검색자 이니셜만 남아 있다. 즉 1954년 9월 2일 누군가가 FBI 기록과에 "비행접시" 키워드 검색을 의뢰한 빈 요청 슬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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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3
1954년 9월 22일자 FBI 기록부(Records Section)의 내부 라우팅 슬립이다. 양식 번호는 4-22. 담당자는 인명 조회 요청을 'Mr. Frank, 5706호실'로 회송하라고 표시했다. 'All References' 등 조회 범위 옵션은 모두 비어 있고, 대상자 이름 칸에는 'Albert'와 함께 판독이 어려운 서명체 글씨가 적혀 있다. 주소·지역·생년월일 칸은 비었다. 하단에는 9월 23일자 처리 표시와 함께 'TK', 'A', '28 K' 같은 짧은 분류 메모가 손글씨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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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4
1954년 4월 22일 FBI 기록과(Records Section)가 발급한 자료 조회 요청 슬립이다. 양식 상단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 RECORDS SECTION 인쇄 머리 아래에 날짜 4/22, 1954가 손글씨로 들어가 있고, 조회 옵션 체크박스 (Name Check Division 6522 / Service Unit-Room 6524 / Forward to File Review / All References / Main References Only / Exact Name Only / Exact Spelling 등) 가 항목별로 늘어서 있다. 본문 가운데 SUBJECT 칸에 손글씨로 "Flying Saucers" 한 줄만 적혀 있어, 이 슬립이 1954년 4월 22일자 Flying Saucers 주제 파일을 끌어내기 위해 기록과에 들어간 내부 검색 요청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주소·소재지·생년월일 칸은 비어 있고, FILE NUMBER / SERIAL 칸도 채워지지 않은 채 검색자(Searcher) 이니셜과 짧은 손글씨 메모 정도만 여백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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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5
FBI 내부 파일 분류를 바꾸는 라우팅 표지다. 가운데에 파란 손글씨로 옛 파일번호 62-83894-339 를 적어두고 그 아래 "CHANGED TO" 라는 보라색 도장을 찍은 뒤, 새 파일번호 62-101030-4 를 다시 손으로 써넣었다. 끝의 -339 와 -4 는 빨간색으로 강조해 일련번호가 새 파일에서 4번째 문서로 다시 매겨졌음을 표시한다. 왼쪽 아래에는 1954년 5월 5일 날짜 도장과 담당자 이니셜 서명, 그리고 녹색 잉크로 쓴 분류 코드 "C" 가 있다. 우측 상단의 4-528 은 페이지 정리번호. 즉 1954년 5월, 본래 "플라잉 디스크" 파일(62-83894) 안에 묶여 있던 한 문서가 새로 만들어진 별도 파일(62-101030)로 옮겨졌고, 이 표지는 그 이동을 기록하기 위해 남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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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6
FBI 내부 파일 라우팅 슬립이다. 원래 62-83894-340 으로 매겨졌던 문서가 62-101030-5 로 재분류되었다는 표시를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적어 두었고, 1958년 5월 28일자 접수 도장과 담당자 이니셜로 보이는 "RS" 가 아래쪽에 남아 있다. 오른쪽 상단의 "4-528" 은 양식 번호, 왼쪽 하단의 "C" 는 분류 표시로 보인다. 본문이 없는 행정용 표지에 가까운 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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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7
1954년 4월 27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켄터키주 밀턴의 사서함 63호에 사는 린다 버틀러 양에게 보낸 답장이다. 4월 21일에 받은 편지 잘 보았다며 운을 뗀 후버는,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린다가 문의한 주제는 FBI 관할 사항이 아니어서 의견을 표명할 수 없다고 적었다. 다만 원한다면 워싱턴 D.C. 펜타곤의 공군 장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안내했다. 본문 아래 NOTE 에는 이 편지가 왜 이름만으로 부르는 인사말 (Dear Linda) 을 쓰는지 설명해두었다 — 발신인 본인이 7학년 학생이라고 밝혔고, 비행접시에 관한 국장의 의견을 물어왔기 때문이다. 좌측 여백에 사건 번호 62-83894-341 이 손으로 적혀 있고, 하단에는 FBI 통신실 발송 도장 (APR 28 1954, MAILED 31) 과 4월 27일 오후 3시 45분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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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8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반대편 면에서 비쳐 보이는 잉크 자국으로 거꾸로 흐릿하게 남아 있어 읽을 수 없다. 페이지 아래쪽에 거꾸로 찍힌 FBI 우편실 접수 도장 두 개가 보인다 — 하나는 1954년 4월 28일 오전 11시 54분 FBI 우편실 접수 도장, 다른 하나는 1954년 4월 21일자 접수 도장이며 그 옆에 "MAILED" 발송 도장 일부가 함께 찍혀 있다. 페이지 상단에는 종이를 묶었던 클립 자국과 "ROC" 또는 비슷한 짧은 라벨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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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9
1954년 4월 21일 켄터키 밀턴에서 한 학생이 워싱턴 D.C. 연방수사국 앞으로 보낸 친필 편지다. 보낸 사람은 린다 버틀러로, 자신을 밀턴의 7학년 학생이라고 소개한 뒤 학급에서 비행접시를 공부하고 있으니 FBI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짧게 요청한다. 편지 상단 한 줄에는 "Flying Saucers" 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좌측 하단에는 "Mail / ack 4-27-54 / G-E-M" 이라는 접수 처리 메모가 따라붙어 4월 27일에 회신 처리되었음을 보여준다. 우측 하단에는 "RECORDED - 79 / 19 APR 29 1954 / EX-123" 와 사건번호 62-[redacted]-341 이 함께 찍혀 이 편지가 FBI 사건 파일에 정식 편입되었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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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0
괘선이 인쇄된 노트 용지의 뒷면 스캔으로, 본문 글씨는 없고 좌·우 하단에 흐릿한 접수 도장이 두 개 찍혀 있다. 양쪽 도장 모두 5월 17일자 접수 표시로 읽히고, 좌측 아래에는 작은 서명 또는 이니셜이 남아 있다. 종이 윗부분에는 펀치 구멍과 얼룩이 보일 뿐, 페이지 자체에는 별다른 내용이 적혀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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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1
1954년 4월 21일, 켄터키주 밀턴의 한 7학년 학생이 워싱턴 D.C.의 FBI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의 사본이다. 보낸 사람은 린다 버틀러로, 자기 학년이 학교에서 비행접시(Flying Saucers)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라며 FBI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적었다. 편지 아래에는 봉투에 적혀 있던 주소 "Box 63, Milton, Ky." 가 메모처럼 덧붙는다. 페이지 오른쪽 위 "TRUE COPY" 표시는 이 문서가 원본이 아니라 FBI 내부에서 만든 정식 사본임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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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2
1954년 6월 8일 신시내티 FBI 지부장이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용 메모다. 신시내티 지부장은, 6월 7일 두 시민이 지부 사무실로 직접 찾아와 진술한 내용을 보고한다고 적었다. 한 명은 신시내티 니브 빌딩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토머스 키크호프, 다른 한 명은 신시내티 짐머만 패킹 컴퍼니 사장 랠프 짐머만이었고, 말은 키크호프 쪽에서 도맡아 했다.
키크호프가 전한 사연은 이렇다. 6월 3일 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에 광고 하나가 실렸다. 같은 달 11일 신시내티 태프트 오디토리엄에서 The Real Flying Saucer Story 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다. 키크호프가 직접 본 그 광고에는 주최자가 표시되지 않았고, 입장권은 1인당 2달러, 신시내티 센트럴 티켓 오피스에서 판매한다고만 적혀 있었다.
키크호프는 자신이 비행접시 관련 단체에 소속된 적은 없지만 평소 이 주제에 관심이 있어, 누가 프로그램을 주관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센트럴 티켓 오피스에 문의해, 광고를 낸 사람이 미시건주 펀데일의 헨리 머데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6월 3일 머데이에게 직접 전화를 걸자, 머데이는 자신은 강당을 빌리는 대리인일 뿐이고 실제로는 토머스 베스럼과 조지 헌트 윌리엄슨을 대신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다음 날인 6월 4일 머데이가 다시 전화를 걸어, 표 판매 방식과 강당 임차 문제를 두고 자신과 베스럼·윌리엄슨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고 알렸다.
키크호프는, 이때 머데이가 베스럼이나 윌리엄슨을 깎아내릴 만한 말은 하지 않았고, 의견 충돌은 어디까지나 신시내티에 입장권이 풀리기 전에 미리 광고를 낸 절차 문제에 한정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메모 하단에는 사본을 로스앤젤레스와 인디애나폴리스 지부로 보낸다는 표시, 등기·항공·특별 배달이라는 발송 방식, FBI 파일번호 62-23894, 1954년 6월 11일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왼쪽 위에는 1964년 11월 19일자로 사본을 폐기했다는 표시가 따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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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3
FBI 표준 양식인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앞면에서 비쳐 보이는 그림자 정도로만 남아 있어 그대로 읽어내기 어렵다. 페이지에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하단의 FBI 접수 도장 두 개로, 하나는 1954년 6월 15일 오후 3시 47분, 다른 하나는 1954년 6월 17일 오전 11시 24분에 내부보안과 (Internal Security Section) 가 문서를 받았음을 표시한다. 즉 같은 문서가 이틀 간격으로 두 번 접수 처리된 흔적이 남은 메모의 뒷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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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4
1954년 6월 8일자로 디렉터에게 올린 보고서의 둘째 장이다. 아이크호프가 FBI에 진술한 내용이 이어진다. 그는 6월 4일 금요일 머데이와 통화한 지 10분 만에 조지 헌트 윌리엄슨과 맨스피커라는 인물에게서 다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머데이가 더 이상 자기들과 관계가 없다고 확인하면서, 6월 7일 테라스 플라자 호텔 오찬에서 만나자고 청했다고 한다.
아이크호프는 자신이 이 사안에 왜 관심을 갖게 됐는지도 설명했다. 그는 해병대 퇴역 소령 도널드 키호가 쓴 『외계에서 온 비행접시 Flying Saucers From Outer Space』(하퍼스 출판)와 조지 애덤스키의 『비행접시는 착륙했다 Flying Saucers Have Landed』(영국 베르너-라우리사 발행, 뉴욕 브리티시 북 센터 배포) 같은 책을 읽었고, 월터 윈첼·풀턴 루이스 주니어·프랭크 에드워즈처럼 자신이 신뢰할 만하다고 보는 뉴스 해설자들이 방송에서 멀쩡한 사람들이 비행접시를 봤다고 보도한 것을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미 공군은 비행접시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는 점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트루먼 베스럼이나 조지 헌트 윌리엄슨 같은 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거나 사기꾼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는 정리했다. 만약 그들에게 진짜 이야기가 있다면 가능한 한 널리 알려져야 사람들이 비행접시에 관한 진실을 알 수 있고, 반대로 그들의 이야기가 거짓이라면 이런 모임을 여는 것은 대중을 상대로 한 사기라는 것이다. 그는 신시내티에서 그런 집회를 열면 2천 명이 모일 수 있고, 입장료가 2달러씩이라면 주최자에게 4천 달러가 떨어진다고 추산했다.
그는 트루먼 베스럼을 가리키기 위해 베스럼에게서 받았다는 잡지 『밸러 Valor』 두 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잡지는 자체적으로는 인디애나주 노블스빌 사서함 192호 소울 크래프트 채플스가 펴내는 『골든 타임스 위클리 Golden Times Weekly』로 표시돼 있었다. 아이크호프가 가져온 것은 6권 15호와 16호로, 15호는 1954년 2월 6일, 16호는 2월 13일자였다. 15호에는 트루먼 베스럼을 다룬 기사가 실려 있는데, 그는 캘리포니아주 레돈도비치 출신 트럭 운전사로 소개돼 있고, 1953년 12월 31일자 레돈도비치 지역지 『데일리 브리즈 Daily Breeze』 기사를 인용한다고 한다. 그 신문 기사는 베스럼이 겪었다는 어떤 조우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상단·우측 여백에는 손글씨 이니셜과 표시가 몇 개 끼적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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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5
1954년 6월 8일자로 국장에게 보내는 보고서의 세 번째 쪽이다. EICKHOFF 가 잡지 Valor 에 실린 트루먼 베두럼의 비행접시 체험담을 FBI 측에 옮긴 대목이 이어진다. 베두럼은 네바다 사막에서 한 여성 사령관이 이끄는 우주 탐사대를 만나 비행접시에 열한 번 올라탔다고 주장했다. EICKHOFF 의 진술에 따르면, 잡지 15호 첫 쪽 하단에는 베두럼이 직접 자필로 이것은 진짜 이야기이며 직접 겪은 경험이다 — 트루먼 베두럼 이라고 썼다. 같은 기사가 베두럼을 55세로, 거주지를 캘리포니아 리던도 비치 노스 거트루다 가 519번지로 소개했다.
EICKHOFF 는 윌리엄 길로이가 베두럼에게 보낸 편지도 함께 가져왔다. Saucers Research Foundation 이 1954년 6월 4·5·6일 사흘간 로스앤젤레스 카르타이 서클 극장에서 컨벤션을 여는데, 베두럼이 와서 자신의 경험을 짧게 이야기해 주길 요청하는 편지였다. 길로이는 헐리우드 노스 하이랜드 1922번지 Criswell Predicts Your World of Tomorrow 의 비즈니스 매니저였다.
EICKHOFF 는 베두럼 이야기가 사실이면 널리 알려야 하고 거짓이면 사기로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다시 강조했다. 그는 이 정보를 먼저 공군에 가지고 갔다. 오하이오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의 존 오마라 중령을 찾아갔고, 6월 6일 일요일에는 페어본의 오마라 자택까지 직접 방문했다. EICKHOFF 가 비행접시가 실재하는지, 베두럼의 이야기가 사실일 수 있는지 묻자 오마라는 비행접시 같은 것은 없다고 잘랐다. 그러면서 Flying Saucers in Outer Space 를 쓴 도널드 키호도 사기꾼이며 그 사실은 워싱턴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공군은 베두럼이나 윌리엄슨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다는 답까지 덧붙였다.
이어서 EICKHOFF 는 신시내티에서 베두럼 모임을 여는 일을 자기가 돕겠다고 말했다. 6월 11일로 잡혀 있던 원래 모임은 취소됐지만, 이 정보가 대중에게 너무 중요해서 모임을 전국 규모로 키워 보겠다고 했다.
페이지 하단에 -3- 페이지 표시. 본문 두 군데 — 오마라 중령과 라이트-패터슨 기지를 거론하는 대목, EICKHOFF 가 6월 6일 일요일에 오마라 자택을 방문했다는 대목 — 에 누군가 손으로 밑줄을 그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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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6
1954년 6월 8일 FBI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 4쪽이다. 제보자 키크호프(Kickhoff)는, 본인이 전국 단위 대중 집회를 열어 베서럼(Bethurum)의 이야기를 알리려 하며, 이를 위해 전국 유명 뉴스 해설자들을 초청하고 라디오 광고도 추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만 보안 규정을 위반하거나 베서럼 일행이 사기꾼으로 드러날 경우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6월 7일 신시내티 테라스 플라자 호텔 점심 회동에서 베서럼, 윌리엄슨, 맨스피커에게 본인의 입장을 전했고, 세 사람은 수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베서럼의 이야기는 사실이고 키크호프가 정부 당국에 알리는 것에 이의가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키크호프는 본인이 FBI에 신고한 것이 베서럼의 활동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한 모든 연방기관에 알리겠다는 계획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6월 7일 저녁에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브리튼가 7017번지 스트링필드(L. W. Stringfield) 자택에서 또 다른 회동이 예정되어 있으며, 스트링필드, 윌리엄슨, 맨스피커, 베서럼, 랄프 짐머만, 본인이 모여 운영 방식과 본 대회 준비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회 일자를 충분히 앞당겨 잡아, 만약 정부기관이 사기 정황을 확인할 경우 대회 개최 전에 조치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또한 이 모임의 모든 행위를 상세히 기록해 FBI에 자발적으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키크호프는 위 사건 이전에는 베서럼, 윌리엄슨, 맨스피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고 만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조지 헌트 윌리엄슨(George Hunt Williamson)은 본인을 인디애나주 노블스빌에 사는 고고학자이자 잡지 《밸러(Valor)》의 기고자라고 소개했다. 맨스피커는 이름은 모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같은 《밸러》 잡지와 연결된 인물이라고 했다.
《밸러》 잡지가 베서럼에게 어떤 관심을 두고 있는지, 베서럼이 다른 단체의 후원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키크호프는 잡지의 이해관계는 모른다고 답했고, 자신이 아는 한 베서럼은 단독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소속 단체나 후원처는 없다고 말했다. 대규모 집회의 수익이 어떻게 처분될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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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7
1954년 6월 8일자로 신시내티 지부가 후버 국장에게 올린 보고서 5쪽이다. 베스럼은 한동안 순회 강연 중이었고, 원래 6월 11일 신시내티에서 열기로 했던 모임이 새 연속 모임 시리즈의 출발점이 될 예정이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신시내티 지부 파일에는 토머스 아이크호프, 트루먼 베스럼, 조지 헌트 윌리엄슨, J. H. 스트링필드, 존 오마라 중령 다섯 사람을 식별할 만한 정보가 없었다. 인덱스를 보면 1952년 2월 7일자 인디애나폴리스 파일 61-5호 공문이 한 건 확인된다. 인디애나폴리스 지부가 신시내티 지부에 보낸 그 공문 제목은 '미국 실버 셔츠 군단 주식회사; 내부보안 - X' 였고, 윌리엄 더들리 펠리가 이끄는 미국 실버 셔츠 군단이 당시 인디애나주 노블스빌에 본부와 인쇄 시설을 둔 솔 크래프트 프레스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사람 랠프 지머만에 대해서는, 1942년 7월 시점에 신시내티 웨스트 포스 스트리트 139-141번지에 있는 기계 패킹 회사 지머만 패킹 컴퍼니의 총괄 책임자였다는 기록만 남아 있었다. 신시내티 지부는 이 사안에 더 이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본 보고는 본부와 로스앤젤레스 지부, 인디애나폴리스 지부의 참고용이라고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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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8
1954년 6월 22일, FBI 본부장이 신시내티 지부장(SAC)에게 보낸 지시 서한이다. 제목은 "트루먼 베서럼; 비행 원반; 기타 — 정보 사항(첩보)"이고, 6월 8일자 신시내티 지부 보고에 대한 응답이다. 본부장은 신시내티 지부에 토머스 아이코프(Thomas Eickhoff)를 다시 만나 다음을 전달하라고 지시한다. 첫째, FBI는 비행 원반 관련 사안에 수사 관할권이 없으며 그 관할은 미 공군에 있다. 둘째, FBI는 아이코프의 활동을 승인하거나 반대할 입장이 아니며, 그가 FBI에 자기 활동을 미리 알렸다는 사실만으로 향후 사기나 범죄 행위에 휘말렸을 때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신시내티 지부는 보고서에 담긴 정보를 현지 공군 특별수사대(OSI)에 직접 전달하고, 동시에 본부에도 메모 형식으로 올려 본부가 OSI 본부에 회람할 수 있게 하라고 한다. 하단의 "노트"는 사건의 배경을 정리한다. 신시내티의 토머스 아이코프는 신시내티 지부에 자신이 비행 원반에 관심이 있으며, 최근 비행 원반을 직접 겪었다고 주장하는 여러 인물을 만났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람들을 모아 신시내티에서 비행 원반을 주제로 한 공개 모임을 열 계획이며, 모임으로 "4천 달러 정도의 수익"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본인은 그들의 경험담을 사실로 믿고 있고 그들도 모임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고 한다. 다만 공군 측은 이미 그에게 이 사람들의 비행 원반 경험담이 허위라는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아이코프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이 모임을 막을 수 있도록 모든 연방기관에 사전에 통지해 두고 싶다고 말했다. 본문 아래에는 6월 22일자 FBI 발송 도장과 6월 25일자 접수 도장, 그리고 톨슨·니콜스·벨몬트 등 본부 고위 라우팅 리스트가 함께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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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9
1954년 6월 2일, 시애틀 SAC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제목은 “잠수함·낙하산 강하·번쩍이는 불빛 등 목격 보고에 관하여 — 간첩 활동(ESPIONAGE)”인데, 누군가 왼쪽 위 여백에 굵은 펜으로 “Flying Saucers”라는 손글씨를 덧붙였다. 사건의 실제 카테고리가 무엇인지를 본부 안에서 다시 정정한 흔적이다.
시애틀 SAC는 매년 이맘때부터 겨울까지 잠수함·번쩍이는 불빛·낙하산 강하·비행접시 목격 보고가 상당수 들어온다고 본부에 알린다. 그런 보고가 들어올 때마다 13해군관구 해군정보국(ONI), 공군특별수사대(OSI), 육군 정보참모부 G-2로 즉시 그대로 넘긴다고 설명한다.
시애틀이 태평양 북서부 정보기관 지구본부이기 때문에, 오리건주 사건은 보통 미 해안경비대(USCG)로부터 먼저 들어오고, 그 즉시 해당 지부와 정보기관 양쪽으로 보고한다.
다만 들어오는 보고의 대부분은 모호하고, 교차 확인이 불가능하며, 신빙성도 의심스럽다. 어떤 것은 사전 조사와 평가 단계에서 근거 없음으로 판명된다. 그런데도 이 종류의 보고는 평가 절차 없이 정보기관에 우선 넘기고, 추가 정보가 들어오면 그때 따라 붙여 보낸다는 것이 시애틀 SAC의 입장이다.
SAC는 이어서, 지역 정보기관 사무소가 워싱턴 본부로 즉석에서 같은 보고를 올려 버리는 흐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고 짚는다. 그러면서 군 정보기관들이 1953년 3월 13일자 “공산당 동원 호출로 해석된 무전 메시지”(1953년 3월 31일자 SAC Letter 23호) 건을 광범위하게 퍼뜨렸던 일을 본부도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인다. 한 지역에서 올린 거친 보고가 그대로 워싱턴까지 퍼져 나가 사건 자체보다 더 큰 소동이 됐던 사례를 끌어와, 그래도 시애틀은 그 통제 책임을 떠안고 있다는 뜻이다.
편지의 진짜 목적은 마지막 두 단락에 있다. 군사적 의미가 있어 보이는 이례적 사건은 즉시 전파하고 있으며, 시애틀 사무소가 모든 보고를 조율해 관련 기관이 빠짐없이 인지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본부에 확인시켜 두는 것이다. 다만 사소한 사건 하나하나로 본부를 귀찮게 하지는 않을 것이며, 별도 지시가 없는 한 그 선을 유지하겠다고 마무리한다.
편지 아래쪽 행정 흔적도 한 줄짜리 메시지다. 1954년 7월 9일과 19일 접수 도장이 두 차례 찍혔지만 본부는 “NOT RECORDED” 처리를 했고, 정식 사건번호 대신 누군가 손글씨로 “1/2 — 93894”라는 임시 번호를 적어 넣었다. 오른쪽 여백의 빨간 도장은 “ORIGINAL FILED IN 65-2793-57-137”, 즉 간첩 활동 파일 쪽으로 원본이 들어갔음을 알려 준다. 비행접시 보고를 정식 사건으로 등록하지 않은 채 다른 파일 곁가지에 끼워 두는, 이 시기 FBI의 전형적 처리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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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0
1954년 6월 18일, 시애틀 지부 SAC 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의 두 번째 장이다. 사안은 잠수함·낙하산 착륙·섬광 등 의심 신고와 관련한 첩보 가능성이다.
시애틀 OSI 측은 이런 사안에 자신들은 일절 관심이 없으며, 공군 운용 부서도 자신들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는다고 알려 왔다. OSI 지구 사령관 S. W. 레이너 대령은, 자료 분석은 라이트-패터슨 기지에서 이뤄지고 공군이 그곳까지 보고를 통상 절차대로 넘기는 데 그친다고 했다. OSI 는 이 사안에 어떤 신빙성도 두지 않는데, 과거 이 같은 일에서 비롯된 어떤 경험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보고서에는 "CONFIDENTIAL" 표기가 붙은 통신문 사본 한 부가 첨부됐는데, 해당 상황에 관한 자료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공군이 자체로 낸 것을 포함한 최근 간행물 몇 종도 함께 동봉됐다. 레이너 대령 본인은 이런 공개 자료들이 "형편없는 물건이고 대중적 히스테리를 만들어 낼 뿐"이라고 보지만, 이 사안 자체와는 자신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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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1
1953년 1월 29일 자로 손글씨가 적힌 작은 라우팅 슬립이다. 윗줄에 "No Ack" — 즉 수신 확인 회신을 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밑줄과 함께 올라가 있고, 그 아래에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전달하라(Request forwarding only if deemed advisable)"는 단서가 붙어 있다. 좌측 하단에 날짜 1-29-53, 우측 하단에 담당자의 짧은 서명이 들어가 있다. 슬립 윗변은 종이가 일부 떨어져 나가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손상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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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
후버 FBI 국장이 1954년 6월 25일자로 시카고 노스 루 카사스 5077번지에 사는 조셉 건더슨에게 보낸 답신이다. 후버는 1954년 6월 21일자 건더슨의 편지에 관심을 보내준 데 감사한다고 운을 떼면서도, 정책상 그가 언급한 책에 대해서는 논평할 입장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 그 책이 FBI 관할 사안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후버는 대신 워싱턴 D.C. 펜타곤의 공군장관 앞으로 같은 문의를 보내 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한다. 편지 아래 NOTE 단락에서 FBI 내부 처리 담당자는 건더슨이 원했던 정보가 데스먼드 레슬리와 조지 애덤스키가 쓴 책 『Flying Saucers Have Landed』에 관한 것이었음을 명시한다. 페이지 우상단에는 발송 통제번호 22513, 좌측에 사건 파일번호 62-83894-343, EX-112 가 함께 찍혀 있고, 하단의 COMM-FBI 우편 발송 스탬프(1954년 6월 25일 발송, MAILED 31)와 7월 7일 접수 스탬프가 이 답신이 실제로 발송·기록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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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3
페이지가 거꾸로 스캔된 문서 뒷면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에 타이핑된 편지 본문이 거울처럼 비쳐 보이고, 그 위에 FBI 우편실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다. 하나는 'FBI RECEIVED-MAIL ROOM, U.S. DEPT. OF JUSTICE, JUN 25 4:30 PM '54' 라는 1954년 6월 25일 오후 4시 30분 접수 표시, 다른 하나는 'JUN 9 1954' 날짜 표시다. 여백에는 'NOTE: Correspondence dated June 23...' 로 시작하는 라우팅 메모와 'EX-113' 정리 번호가 함께 적혀 있어, 이 페이지가 별도 본문이 있는 면이 아니라 1954년 6월 23일자 서신을 6월 25일에 FBI 우편실이 접수해 분류한 흔적을 남긴 라우팅 면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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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4
1954년 6월 21일, 시카고에 사는 조지프 건더슨이라는 시민이 워싱턴 D.C. FBI 앞으로 보낸 짧은 문의 편지다. 건더슨은 1953년에 데즈먼드 레슬리와 조지 아담스키가 함께 펴낸 《Flying Saucers Have Landed》(영국 북 센터, 뉴욕 시) 라는 책을 언급하며, 이 책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FBI 측에 직접 묻는다. 다른 행성에서 온 비행접시가 지구에 착륙하고 있는지, 아담스키가 금성에서 온 사람과 접촉했다고 한 이야기에 사실적 근거가 있는지 답을 달라고 청한다. 발신인 주소는 시카고 5677 N. Las Casas Avenue. 페이지 하단에는 RECORDED-88, INDEXED-88, EX-112 라는 접수 표시, 사건번호 62-A3894 옆에 빨간 글씨로 343, 1954년 6월 접수 스탬프, 그리고 라우팅 슬립처럼 보이는 손글씨 메모와 서명이 여백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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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5
편지지 뒷면 스캔이다. 본문 자체는 없고, 앞면 타이핑이 종이를 통해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빈 여백에는 접수 도장이 두 개 찍혀 있다. 오른쪽 위에 "JUN 28 3:26 PM '54" 날짜·시각 도장이 보라색으로 찍혀 있고, 그 아래 한 단 정도 내려와서 "MR. JONES" 라고 적힌 라우팅 표식과 함께 "JUN 23 3:47 PM '54" 접수 도장이 한 번 더 찍혀 있다. 1954년 6월 23일에 한 번 접수되어 존스 앞으로 라우팅된 뒤, 닷새 뒤인 6월 28일에 한 번 더 접수 처리된 문서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