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 FBI · PDF (290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9 — 키호의 면담 요청 거절, 벤더 어페어와 *검은 양복의 세 남자*, 그랜드 블랑 피자가게의 망원경 사진, 소코로의 로니 자모라, *FBI 는 다른 행성 탑승자를 보관한 적이 없다*, 1957-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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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9번이다. 290페이지. 시리얼 385번부터 447번까지를 묶은 이 단수는 1957년 11월 NSC 코인 후속 라우팅으로 열려서 1966년 7월 FBI 는 다른 행성에서 온 탑승자를 신병으로 확보한 적이 없다 는 후버의 친필 서명 회신으로 닫힌다. 9년에 걸친 흐름 한복판에는, 아바나 해군 무관 분실이 알려온 1947년 멕시코시티 비행접시 필름, NICAP 책임자 도널드 키호 소령의 면담 요청을 후버가 정면 거절한 1958년 9월 26일 회신, FBI 본부가 직접 Bender Affair검은 양복의 세 남자 를 사건 파일에 처음 호명하면서 그레이 바커의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한 부를 입수하라고 시카고 SAC 에 지시한 1959년 1월 메모, 그랜드 블랑의 피자가게 주인 조셉 페리가 자작 망원경으로 찍은 비행접시 슬라이드 두 장의 행방을 직접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물은 1960년 사건, 1960년 4월 덴버 시티 파크 필립스 강당에서 열린 조지 W. 밴 태셀의 강연에 FBI 가 잠입 보고를 올린 메모, 1960년 8월 23일자 CHANGED TO 도장 — 사건 파일 번호 62-83894-420 가 62-6127-X 로 옮겨진 표지, 1961년 9월 신시내티의 레너드 H. 스트링필드가 받은 익명 전화 사건, 1962년 10월·1963년 10월 W. R. 워널 → W. C. 설리번 비망록이 FBI 의 연례 비행접시 검토 관행을 종료한다 고 명문화한 페이지, 그리고 1964년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 경찰관 로니 자모라가 자기 순찰차에서 200피트 떨어진 협곡에서 본 타원형 20피트 길이의 물체와 두 명의 작은 사람 사건을 다음 날 앨버커키 SAC 가 후버 앞으로 URGENT 등급으로 친 텔레타이프가 차례로 들어와 앉는다.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9번이다. 290페이지. 시리얼 385번부터 447번까지를 묶은 이 단수는 1957년 11월부터 1966년 7월 사이에 본부 책상으로 올라온 자료들이다. 표지는 1975년 1월 21일 법무부 접수 자국과 1974년 3월부터 1979년 4월까지 네 차례에 걸친 COPIED FOR FOIPA 도장, 그리고 DO NOT DESTROY 표시가 한 면에 같이 남아 있다. 약 9년에 걸친 흐름 한복판에는 멕시코시티 비행접시 필름, NICAP 책임자 도널드 키호의 면담 요청 거절, Bender Affair검은 양복의 세 남자 가 본부 메모에 처음으로 정식 호명되는 1958년 12월 페이지, 미시간 그랜드 블랑의 피자가게 주인이 자작 망원경으로 찍어 본부에 가져온 비행접시 슬라이드 두 장, 덴버 시티 파크 필립스 강당의 컨택티 강연 잠입 보고, 그리고 1964년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 경찰관 한 사람이 본 타원형 20피트짜리 물체와 작은 사람 두 명에 대한 URGENT 등급 텔레타이프가 차례로 들어와 앉는다.

단수의 출발점은 단수 8번 마지막 NSC 코인 친전 직후의 잔여 흐름이다. 1957년 11월 14일 댈러스 SAC 는 캔자스시티 발신 비행접시 자료를 기존 지침대로 별도 조사 없이 공군 OSI 로 이관했다고 본부에 통보한다(시리얼 385). 며칠 뒤인 11월 30일 아바나 SAC 가 후버 앞으로 올린 한 페이지짜리 메모는, 아바나의 미 해군 무관 분실이 1947년 비행접시 조사 당시 멕시코시티 주재 미 해군 항공 무관이 받았던 한 정보를 알려왔다고 짚는다. 정보의 핵심은 짧다 — 그때 멕시코시티에서 찍힌 비행접시 필름이 한 편 존재한다. 단수 8번에서 1944년 독일 포로 캠프 회상이 본부 파일로 들어왔던 흐름이, 단수 9번 초입에서 1947년 멕시코시티 필름 보고로 한 번 더 호명되는 셈이다.

해를 넘긴 1958년 1월 23일 후버 명의로 한 통의 공문이 공군 감찰감실 앞으로 발송된다. 사건은 미주리주 한니발의 〈한니발 쿠리어-포스트〉 시 편집자 B. B. 왓슨이 그해 1957년 12월 20일 한니발 주재 FBI 요원에게 가지고 온 한 통의 편지 — 발신자 R. T. 스톤, 단체명 Inter-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ICARF). 단체는 미주리 필터 센터 를 자처하며 1957년 1월 1일 이후 미확인 비행 물체를 본 사람·목격자를 아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즉시 단체 본부로 알려달라고 신문 1면 게재를 요청하는 모두에게 (Form OF-2) 라는 공개 호소문을 같이 동봉했다. 단체의 활동 거점으로는 미국 전역과 캐나다·유럽·알래스카·호주·일본·영국·아프리카가 한 줄로 같이 호명된다. 정부 비행접시 조사가 지하로 들어갔다는 비판이 호소문 본문에 들어 있다.

같은 봄 미시간 시골 농장에 사는 한 여성이 손글씨 손편지 한 통을 본부 앞으로 부친다. 1958년 3월 10일 접수 도장이 찍힌 그 손편지는 많은 사람이 다른 세계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는 문장으로 시작해서, 자신이 5, 6년 전 우주에서 온 방문객 을 직접 봤다는 1인칭 진술로 곧장 들어간다. 본문에는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돔 모양 (에스키모 오두막 같은), 안쪽에는 냅킨 고리 같은 커다란 링, 보고 있는 사이 링 전체가 색색으로 빛나며 안쪽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됐다 는 묘사가 한 페이지 가득 들어간다. 진술의 다음 장에는 발신자가 직접 그린 외계 문자 ooo 격자 도해가 따로 한 면을 차지한다. 차가 자기 집까지 따라왔고, 매일 밤 개가 짖었으며, 신문 잡지가 사라졌고, 그들은 영원 그 자체에서 왔다 는 문장이 본문 끝쪽에 들어간다.

9월 22일 NICAP 책임자 도널드 E. 키호 소령이 워싱턴 D.C. 본부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키호의 질문은 짧다 — FBI 가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FBI 측 관계자와 면담을 요청한다. 4일 뒤인 9월 26일 후버는 직접 회신을 보낸다. 본문은 두 페이지에 걸쳐 다섯 가지 입장을 한 줄씩 정리한다. FBI 는 미확인 비행 물체를 직접 조사하지 않는다. 비행 물체가 외계 기원임을 입증하는 일은 FBI 의 직무가 아니다. 다만 미국 내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FBI 도 당연히 관심을 둔다. FBI 파일 내부 정보는 기밀이며 공식 용도에만 공개한다. 그러므로 면담 요청은 정중히 거절한다. 같은 1958년 10월 13일 E. S. 샌더스가 S. B. 도나호 앞으로 올린 후속 메모는 1947년 7월 30일자 회보 제42호 — 모든 비행 원반 사례를 현장 사무소가 조사하라 — 부터 1958년 시점까지의 FBI 비행접시 정책 연혁을 한 페이지로 정리한다. 이 정책 요약 한 장이 그 다음 9년의 본부 회신을 모두 받쳐 준다.

해가 끝나갈 무렵 단수 9번 한가운데에 새로운 thread 한 줄이 들어온다. 12월 7일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의 클로드 해럴드 마크 주니어 (Claude Harold Marck, Jr.) 가 한 통의 편지를 보내, 벤더 사건 (Bender Affair) 에 관해 FBI 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달라 고 요청한다. 마크의 설명에 따르면 1953년 코네티컷 브리지포트의 인터내셔널 플라잉소서 뷰로(IFSB) 회장 앨버트 K. 벤더가 세 명의 검은 양복 차림의 남자 에게 위협을 받은 뒤 단체를 갑자기 해산했다는 이야기가 1958년 시점 민간 UFO 커뮤니티에 떠돌고 있었다. 12월 16일 후버는 직접 피닉스 SAC 앞으로 지시 메모를 보낸다(사건번호 62-83894-398) — 마크의 편지 두 번째 문단에 나오는 인물·사건에 관해 FBI 파일을 확인하고, 마크를 직접 면담해 12월 23일까지 보고하라. 단수 7번에서 회보 한 부로 처음 호명된 IFSB 의 벤더는, 단수 9번에서는 검은 양복의 세 남자 라는 도시 전설의 시작점으로 본부 메모 안에 정식 입력된다. 12월 19일 피닉스 SAC 가 같은 마크를 직접 면담한 결과가 본부 앞으로 다시 올라오고, 12월 30일 본부는 그레이 바커(Gray Barker)가 쓴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University Books 출판) 한 부를 정부 청사 안 참고 서가가 아닌 다른 경로로 입수하라 는 지시를 따로 따라 보낸다. 1959년 1월 22일 본부 → 시카고 SAC 메모(시리얼 401) 가 같은 책 입수 지시를 한 번 더 반복한다. 본 시리즈에서 FBI 가 민간 UFO 단행본 한 권을 본부 파일용으로 따로 구해 두라 는 지시를 직접 내린 페이지는 이 두 장이 처음이다.

같은 1959년 봄부터 1963년 가을까지 단수 9번에는 한 시민의 이름이 반복해서 따라붙는다.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 이어 포트 유스티스 미 육군 수송학교 편집 사무원 래리 W. 브라이언트. 1959년 2월 1일 그가 후버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에 후버는 FBI 파일은 기밀이며 가지고 있다·없다는 식의 추론은 하지 말아 달라 는 답신을 보낸다(시리얼 402, 2월 9일). 1963년 9월 27일자로 후버의 비서 헬렌 W. 갠디가 같은 브라이언트에게 후버가 사무실로 돌아와 9월 17일자 편지를 읽었으나 파일이 비밀로 묶여 있어 요청에 응할 수 없다 는 한 줄짜리 답장을 보내고, 같은 페이지의 내부 메모는 브라이언트가 UFO 관련 문의를 여러 기관에 동시 발송하고 있음 을 따로 기록한다. 1963년 9월 30일 노퍽 SAC 가 본부 앞으로 올린 에어텔에는 브라이언트가 1958년부터 1963년에 걸쳐 다수 군·법집행 기관에 동일한 UFO 문의를 반복 송부했다 는 요약과 함께 9월 25일까지 브라이언트 파일 요약을 제출하라 는 후버 사무실 지시가 같이 적힌다.

해를 넘긴 1960년 2월 21일 새벽 한 시쯤, 미시간 그랜드 블랑 에드워즈가 3079번지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는 30년 경력의 전문 사진가 조셉 페리가 자작 망원경으로 달을 촬영한다. 사흘 뒤 현상한 필름 한 컷에 달과 함께 비행접시 모양 물체 가 같이 잡혀 있다. 페리는 3월 5일 자기 요청으로 디트로이트 FBI 사무실 요원과 접촉하고, 3월 9일 디트로이트 SAC 는 페리 인터뷰 보고서 다섯 부와 〈디트로이트 타임스〉 당일자 신문 기사 한 부, 그리고 35mm 컬러 슬라이드 두 장을 본부 앞으로 동봉한다 (사건번호 65-2677 / 62-83894-410). 슬라이드 한 부는 미시간 마운트 클레먼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 OSI 분견대로 직접 이관된다. 페리는 3월 21일 다른 누구에게서도 답을 들을 수 없어 직접 대통령에게 쓴다 며 아이젠하워 앞으로 손편지를 보내고, 4월 6일 후버는 NICAP 의 리처드 홀에게 FBI 의 UFO 정책에는 변경이 없다 — FBI 는 UFO 를 직접 조사하지 않는다 는 짧은 메모를 보낸다. 5월 20일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자 제리 키아페타가 플린트 FBI 사무소로 전화를 걸어 항공현상조사회 데이브 다우니 의 제보를 옮긴다. 디트로이트 SAC 는 같은 날 후버 앞으로 FBI 가 페리에게서 사진을 낚아채 갔다 는 NICAP 측 비관적 답신까지 통째로 옮긴 보고서를 다시 올린다.

페리 사건의 라우팅이 끝나갈 무렵, 1960년 4월 17일 콜로라도 덴버 시티 파크 필립스 강당에서 조지 W. 밴 태셀이 강연을 한다. 광고 문구는 비행접시 조사 단체 후원 / 미확인 비행물체 토론과 영화 상영. 청중은 나이가 많은 사람과 여성이 다수이고 가족 단위도 일부 보였다고 4월 25일 덴버 FBI 사무소 메모가 본부 앞으로 올린다. 5월 4일 덴버 SAC 는 같은 보고서 사본 한 부를 로리 공군기지 OSI 앞으로 별도 발송한다. 정보용 사본은 본부와 로스앤젤레스·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 지부로 동시에 회람된다. 단수 7번에서 1953년 시민 UFO 동호회 회보가 원본 회수 표시와 함께 본부 파일로 들어왔던 흐름은, 단수 9번에서는 1960년 컨택티 강연장에 본부가 직접 잠입 요원을 보내는 페이지로 한 단계 더 진행한다.

같은 해 8월 23일 단수 9번 한가운데에 CHANGED TO 보라색 도장이 한 번 더 따라붙는다. 가운데에 손글씨로 62-83894-420, 421 이라는 기존 사건번호를 적어 둔 다음, 그 아래에 보라색 CHANGED TO 라벨을 끼우고, 다시 62-6127-X, X1 이라는 새 번호를 손글씨로 적어 둔 라우팅 카드 한 장이다. 단수 7번 끝에서 62-83894 → 62-101030 으로 옮겨갔던 흐름이, 단수 9번 한복판에서는 같은 형식으로 62-6127 시리즈로 한 번 더 분기한다.

1961년 9월 25일 신시내티 듀보이스 화학회사 광고 매니저 레너드 H. 스트링필드 — 단수 7번·8번에서 CRIFO 디렉터로 거듭 호명됐던 인물 — 가 자기가 받은 한 통의 익명 전화에 대해 FBI 에 알려 온다. 10월 17일 신시내티 FBI 지부가 정리한 한 페이지짜리 보고서 (파일번호 100-11671) 는 민간 연구, 행성간 비행체, 신시내티 오하이오의 디렉터 레너드 H. 스트링필드 건 이라는 표제로 시작해서, 그가 미확인 비행체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으며, 관련 회보를 발간하고 있다 는 한 줄 자기 소개와 함께, 9월 25일 익명의 발신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는 사실을 옮긴다. 보고서 상단에는 LOANED BY FBI 라는 빨간 도장이 따로 따라붙어 있다.

1962년 10월 2일 W. R. 워널이 W. C. 설리번 앞으로 올린 한 페이지짜리 비망록은 지금 단계에서 비행접시 관련 추가 지침을 현장에 내리거나 FBI 핸드북·매뉴얼에 새로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 는 한 줄로 결론을 먼저 적는다. 1년 뒤인 1963년 10월 4일자 후속 비망록은 1958년부터 FBI 가 비행접시 관련 민원을 1년에 한 번씩 모아 살펴 온 자체 연례 검토 관행을 더 이어갈 이유가 없다 는 결정을 따로 명문화한다. 1947년 회보 제42호에서 시작해 1957년 공군 약속까지 줄지어 이어지던 본부 정책 사슬은, 단수 9번 한복판에서 그 자체로 연례 검토를 종료한다 는 결정 한 줄을 받는다(시리얼 432, 62-83894-432).

그러나 검토 관행이 종료된 1963년 10월의 결정은 1964년 4월 한복판에 한 번 더 시험된다. 4월 24일 오후 5시 45분쯤 뉴멕시코주 소코로의 경찰관 로니 자모라 — 차분하고 신뢰할 만하며 공상에 빠지는 성격이 아닌 인물로 평가된다 고 앨버커키 SAC 가 별도로 기록한 인물 — 가 자기 순찰차에서 약 200피트 떨어진 협곡 비탈에서 타원형의, 길이 약 20피트짜리, 표면에 붉은 표식이 있는 (가로 30인치 × 세로 2피트) 정지 물체 한 대와, 그 옆에 서 있는 작고 흰 옷을 입은 두 사람 을 본다. 자모라가 차로 다가가자 물체는 화염을 뿜으며 수직 상승해 사라진다. 다음 날인 4월 25일 오후 5시 37분 (MST) 앨버커키 SAC 는 후버 앞으로 URGENT 등급 텔레타이프 한 통을 친다 (앨버커키 62-NEW). 본문은 자모라 경관의 1인칭 진술 — 화염·붉은 표식·두 사람·정지 상태에서의 수직 상승 — 을 verbatim 으로 그대로 옮긴다. 4월 28일 본부는 앨버커키 SAC 앞으로 한 줄짜리 에어텔로 답한다 (62-83894-436) — 현지 공군에 사실을 통보하고, 레터헤드 메모란덤을 본부로 제출할 것. 5월 8일 앨버커키 지부장이 본부 앞으로 올린 후속 메모는 인근 스탤리언 사격장(Stallion Range Center)의 업레인지(Uprange) 책임자 와의 협의 결과를 같이 옮긴다. 사건은 공군 외국기술국과 OSI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고 1차 보고에서 분명히 적어 둔 사례다. 본 시리즈에서 미 공군이 unidentified 라벨을 본문에 정식으로 새긴 사건이 본부 사건철에 그대로 편철되는 장면은 이 다섯 페이지에 있다.

소코로 직후의 같은 1964년에는 라마데라 사건도 같은 단수에 따라 들어온다. 1965년 1월 20일 런던 사우스켄싱턴 맨슨 플레이스 10번지에 사무실을 둔 영국 UFO 조사관 J. A. 헤네시 (NICAP 회원) 는 FBI 앞으로 보낸 한 통의 편지에서 FBI 요원이 미확인비행물체 — 특히 지상에 내려앉았다는 신고 — 를 조사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냐 고 묻고, 1964년 라마데라 착륙 사건에서 FBI 번스 요원이 커틀랜드 공군기지 소령과 동행해 현장 조사했다 는 사실을 자기 편지 본문에 적어 둔다. 영국 측 NICAP 회원이 1964년 사건의 FBI 동행 사실을 1965년 시점에 본부 앞으로 직접 통보해 오는 페이지다.

같은 1964년 11월 9일 텍사스 오렌지의 사서함 594번지에 사는 찰스 E. 빌보는 후버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 해롤드 T. 윌킨스의 책 《공격 중인 비행접시 (Flying Saucers On The Attack)》 에서 발췌한 외계에서 왔다는 방문자 두 명 — 키 6피트 6인치, 푸른… — 에 대한 압축된 사실 을 본문에 동봉한다. 1965년 1월 26일 후버는 친필 서명 회신에서 FBI 가 헨네시 사건조사를 벌인 적이 없다 고 명시적으로 부인하는 답장을 보낸다.

단수 9번을 닫는 마지막 두 페이지는 거의 같은 문장이 두 번 적힌 답신이다. 1966년 7월 20일 후버는 캘리포니아 포모나의 로니 폭스에게, 그리고 7월 21일 텍사스 클레번의 스티븐 C. 그레이에게, 각자가 보낸 Real 잡지의 외계인 옆 FBI 요원 사진 진위 문의 에 대해 친필 서명 답신 한 통씩을 보낸다. 본문은 단호하고 동일하다 — 미확인비행물체 수사는 FBI 의 관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다. 보내주신 사진 속 인물들은 FBI 직원이 아니다. FBI 는 다른 행성에서 온 탑승자를 신병으로 확보한 적이 없다 (FBI has never had custody of any visitors from another planet). 1966년 7월 21일자 답신의 사건번호는 62-83894-449. 단수 6번 끝에서 회보 제54호의 한 줄로 비행접시 자료는 OSI 로 라우팅한다 가 본부 정책으로 명문화된 그 흐름은, 단수 7번에서 회보 제57호·제38호·제83호, 단수 8번에서 1955년 후버 에어텔로 한 번 더 압축됐고, 단수 9번 한복판에서 1958년 키호 회신과 1962-63년 워널 비망록으로 FBI 는 직접 수사하지 않는다 라는 한 줄까지 정리됐다. 그 다음 한 단계로 단수 9번이 닫는 페이지는 FBI 는 다른 행성에서 온 탑승자를 보관한 적이 없다 는 후버의 친필 서명 한 줄이다. 단수 7번 끝 CHANGED TO 도장과 단수 9번 한복판 같은 도장으로 사건 파일이 두 차례 옮겨앉은 뒤, 시리얼 449 빨간 도장이 마지막 페이지에 한 번 더 따라붙으면서 단수 9번이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