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 FBI · PDF (290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9 — 키호의 면담 요청 거절, 벤더 어페어와 *검은 양복의 세 남자*, 그랜드 블랑 피자가게의 망원경 사진, 소코로의 로니 자모라, *FBI 는 다른 행성 탑승자를 보관한 적이 없다*, 1957-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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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1

    FBI 본부 중앙기록센터의 파일 폴더 표지다. 사건번호 62-HQ-83894, 단수 9, 시리얼 385-447 구간을 담은 단수로, 1975년 1월 21일 법무부에서 접수했다. 폴더 곳곳에 1974년 3월부터 1979년 4월까지 FOIPA 요청 처리 과정에서 찍힌 "COPIED FOR FOIPA" 도장이 네 군데 남아 있고, 시리얼 426 같은 메모도 손글씨로 적혀 있다. 표지 아래쪽에는 "DO NOT DESTROY", "USE CARE IN HANDLING THIS FILE", "Transfer-Call 3421" 같은 보존·취급 지시가 큼직하게 들어가 있으며, FOIPA 번호는 995087이다. 별도 라벨로는 2007년 5월 24일 발표된 FBI 자동기밀해제 지침에 따라 비밀이 풀렸음을 알리는 안내가 붙어 있다.

  2. p.2

    댈러스 SAC 가 1957년 11월 14일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11월 8일자 캔자스시티 발신 서한에 대한 후속 조치를 보고한다. 비행접시 관련 정보를 다룬 이 건은 기존 지침에 따라 별도 조사 없이 OSI 로 이관했고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고 통보한다. 사본 배포는 본부 2부, 캔자스시티 (66-2995) 1부, 댈러스 1부로 정리한다. 하단 빨간 도장 62-83894-385 와 11월 18일·11월 27일 1957년 접수 표시, 여백의 빨간 글씨 E·ESP, 그리고 EX-139 표기는 이 메모가 본부 비행접시 통합 파일 62-HQ-83894 로 흡수되는 경로를 알려준다.

  3. p.3

    이 페이지는 앞면 메모의 뒷면이다. 얇은 종이 너머로 앞면의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과 본문 일부가 거꾸로 비쳐 보이며, 워싱턴 필드와 디트로이트 지국이 주고받은 비행접시 관련 문건의 흔적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본문이 따로 이 면에 실리지는 않았고, 종이는 보존을 위해 위쪽과 왼쪽에 갈색 테이프로 보강해 두었다. 오른쪽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1957년 11월 18일 오후 4시 16분과 5시 7분으로 시간차를 두고 찍혀 있어, 같은 날 두 부서를 거쳐 들어왔음을 보여 준다. "RECD ESPIONAGE" 라는 또 하나의 도장도 같은 날짜로 확인되며, 손으로 빨간 펜으로 적은 파일 번호 "BK 130" 이 그 아래 남아 있다.

  4. p.4

    1957년 11월 20일, 아바나 주재 FBI 리갈 어태셰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비행접시 보고 — 외국 잡건. 메모는 비행접시 보고가 여전히 관심사라면 참고하라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 뒤, 11월 12일 아바나 일간지 디아리오 데 라 마리나 가 전날인 11일자 피나르 델 리오발 기사를 실었다고 전한다. 기사에 따르면 피나르 델 리오 주 마타암브레 광산에서 막 마을로 내려온 호세 마리아 니에토와 카르멜로 구스만은 마타암브레 일대 상공에서 사람 모자 모양의 비행접시가 수 분간 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둘은 그 원반이 그 지역에서 평소 보이는 일반 비행기보다 크고, 비행 중 완전히 무음이었으며, 매우 빠른 속도로 바다 쪽으로 사라졌다고 진술했다. 신문 기사에 다른 묘사는 더 없었다. 마타암브레는 아바나 서쪽 약 90마일에 위치한다고 메모는 덧붙이며, 이 건을 뒷받침하는 다른 보고는 받지 못했고 사무소 차원의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위 손글씨로 Informant Informant Cuba 가 끼어 있어, 출처 처리의 흔적을 남긴다. 우측에는 굵은 빨간 글씨로 사건번호 62-83894-386 이 매겨졌고, RECORDED 46 · INDEXED 46 도장과 1957년 11월 25일 · 27일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본부 정식 등록을 표시한다.

  5. p.5

    1957년 11월 30일, 아바나 SAC 가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용 메모. 제목은 멕시코 시티 비행접시의 출처 다. 발신자는 비행접시 보고가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알아둘 만한 정보라며 본론을 연다.

    아바나의 미 해군 무관 분실(Branch Naval Attaché) 은 1947년 비행접시 조사 당시 멕시코 D.F. 의 미 해군 항공 무관이 받았던 정보를 알려왔다. 그 정보에 따르면 문제의 비행접시를 찍은 필름이 몇 편 있는데, 그 물체들은 어느 시점에도 추락한 적이 없고 비행 중인 상태로만 촬영되었다고 한다. 정보원 측은 이 물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고 주장하며, 이를 부정하는 보고가 있다면 그것까지 받아보고 싶다는 입장이다.

    해군 무관 분실은 이 사안을 FBI 본부로 이첩해 참고하도록 요청했다. 메모 말미에는 아바나 동쪽 약 32킬로미터 지점과 다른 출처에서 소련 측이 무언가를 포착·획득했다는 부수적 언급이 짧게 덧붙는데, 자세한 내용까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페이지는 180도 뒤집힌 채 스캔되어 있고, 좌측 하단에는 1957년 11월 22일자 RECORDED / INDEXED FBI 접수 도장과 62-83894 계열의 사건 파일 번호 도장이 찍혀 있다. 우측 여백에는 사무국이 쓴 빨간 색연필 표식이 남아 있어, 본부 접수 후 분류·라우팅을 거친 문서임을 보여준다.

  6. p.6

    1957년 11월 12일, R. R. 로치가 A. H. 벨몬트 앞으로 보낸 FBI 내부 메모로,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UFO·플라잉 소서)다. 메모는 소련이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이후 미국 전역에서 '플라잉 소서'와 그 밖의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담이 급격히 늘었다는 관찰로 시작한다. 1957년 10월 10일에는 공군 쪽으로 신고 전화가 쏟아졌고, 신문은 '달 모양으로 휘어 있고 심장처럼 박동하는 푸른 불꽃을 끌고 다닌' 정체불명의 물체가 유타주 버널 인근에 떨어졌다는 보도로 가득 찼다. 공군은 즉시 조사에 들어갔지만 어떤 물체도 발견되지 않았고, 유타에서 무엇이 떨어졌다는 증거 역시 나오지 않았다.

    로치는 이어 지난 2주 동안 신고 건수가 더 폭증했으며, 그 가운데 비교적 무게 있는 사례 몇 건을 정리해 보고한다. 네브래스카에 여섯 명이 탄 물체가 착륙해 농부와 대화를 나눈 뒤 우주로 떠났다는 보고, 조지아주 올버니에서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이르는 남부 하늘을 비행 물체가 가로질렀다는 보고, 멕시코만 상공에서 해안경비대 함정이 거대한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는 보고, 남서부 각 주에서 차를 몰던 사람들이 엔진을 정지시키는 UFO를 봤다는 주장 등이다. FBI 연락관이 이 사건들을 공군 정보 담당자들과 검토한 결과, 위에 적힌 사례는 모두 사실상 비진정 사건이거나 애초에 근거가 없는 신고로 정리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장 조사 인력이 아직 최종 보고를 제출하지 않은 건도 있지만, 대체로 부정적 결론으로 모이고 있다고 한다.

    공군은 이 신고들을 계속 추적하고 있으며, 모든 보고는 오하이오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 있는 공군 기술정보센터(ATIC)로 송부돼 평가·분석된다. 향후 신고 중 진위가 인정될 만한 사례가 나오면, FBI가 특히 관심을 두는 간첩·사보타주 사안과 관련해 공군이 즉각 FBI에 통보하기로 했다.

    메모 하단에는 벨몬트·브래니건·바움가드너·왓슨·연락과로 사본 배포가 표기돼 있고, 'RECORDED-94 62-83894-387', 1957년 11월 26일자 접수 도장, LIAISON 도장, 우측 여백의 수기 이니셜과 빨간 체크 표시가 함께 보인다.

  7. p.7

    이 페이지는 본문이 비어 있고, 한 장의 FBI 내부 문서 뒷면에 여러 부서의 접수 도장이 사방으로 찍혀 누적된 라우팅 슬립이다. 도장은 위아래·좌우가 뒤집힌 채 겹쳐 있어, 같은 한 통의 문서가 1957년 11월 12일부터 26일까지 약 2주 동안 FBI 본부 여러 창구를 차례로 거쳤음을 보여준다. 가장 이른 11월 12일 저녁 7시 29분과 같은 날 5시 42분 도장이 벨몬트(Belmont) 라인의 FBI–법무부 접수창구에서 시작하고, 다음 날인 11월 13일에는 오전·저녁으로 여러 차례 다시 접수된다. 11월 19일에는 파슨스(Parsons) 부서가, 20일에는 FBI 기술연구소(Technical Laboratory)가, 26일에는 또 다른 부서가 같은 문서를 받아들고 도장을 찍는다.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누런 셀로판 보강 테이프가 길게 붙어 있다. 페이지 본문에는 어떤 서술도 적혀 있지 않다.

  8. p.8

    로치(Roach)가 벨몬트(Belmont)에게 보낸 메모의 둘째 장으로,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비행접시)'다. 액션 항목에는 단 한 줄, '참고용(For information)'이라고만 적혀 있다. 본문은 더 이어지지 않고 페이지 하단에 쪽수 -2- 만 남는다. 여백에는 손으로 휘갈긴 서명·이니셜 몇 개가 흩어져 있어, 이 메모가 여러 사람의 책상을 거쳐 회람됐음을 보여준다. 종이 가운데에는 뒷장에서 비쳐 보이는 FBI 인장 도안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떠 있다.

  9. p.9

    1958년 1월 23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공군 감찰감실 산하 특별수사국장 앞으로 보낸 통지문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388, 제목은 “로버트 T. 스톤; 대륙간 항공 연구재단 — 잡건 정보 통지”다. 후버는 1957년 12월 20일, 미주리주 한니발의 《한니발 쿠리어-포스트》 시 편집자 B. B. 왓슨이 한니발 주재 FBI 요원에게 전달한 사실을 알렸다. 왓슨은 R. T. 스톤이 서명한 날짜 미상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편지지 윗머리에는 “Inter-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이라는 단체명이,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MISSOURI FILTER CENTER, 로버트 T. 스톤, 디렉터, 10717 E. 27th Terr., 인디펜던스, 미주리”가 타이핑되어 있다. 편지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편집자께. 동봉한 통지문 자체로 설명이 충분합니다. 우리 위대한 국가들의 신문이 자부심을 갖고 옹호하고 지키는 ‘진실’의 이름으로 이 공공 봉사를 요청드리고자 합니다.” 사본은 세인트루이스와 캔자스시티 지국에 각 1부씩 발송되었고, 캔자스시티 SAC 앞 노트는 1958년 1월 6일자 세인트루이스 지국 발신 편지를 참조해 색인 조회 결과만 본부에 보고하고 수사는 진행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좌측 여백 라우팅 명단(톨슨·니콜스·보드먼·벨몬트·모어·파슨스·로젠·태머·트로터·니즈·전화실·홀로먼·갠디)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고, 상단에는 “RECORDED-65”와 사건번호 62-83894-388이 빨간 도장으로, 하단에는 1958년 1월 29일 접수 표시가 남는다.

  10. p.10

    이 페이지는 앞 장 타자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종이 반대편에서 비쳐 들어와 거울상으로 흐릿하게 보이고, 그 위에 FBI 처리 라인을 지나면서 찍힌 접수·라우팅 도장 여러 개가 겹쳐 있다. 1958년 1월 21일 오후 1시 19분, 1월 22일 오전 10시 32분, 1월 23일 오후 12시 35분 등 세 차례의 접수 시각이 확인되고, 방첩(Espionage) 데스크, FBI 법무 분실(BE-MIN), 행정 라인(RDADM) 을 차례로 거친 흔적이 남는다. 상단에는 "RECORDED-89" 라벨과 빨간색 손글씨 번호 765 가, 하단에는 "RE-RECORDED"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문서가 한 번 등록된 뒤 재등록 절차를 다시 밟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11. p.11

    FBI 보고서가 인용한 R. T. 스톤의 편지 두 번째 쪽으로, 수신자는 특수조사국장이다. 스톤은 자기 단체를 민간 조사자들의 모임이라 소개하면서, 신문과 일반 대중의 협조를 받아 UFO 문제를 둘러싼 혼란을 풀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동봉한 호소문을 신문 1면에 눈에 띄게 실어 달라고 요청한다. 대중이 충분히 조직되어 협력해 준다면 비행접시의 수수께끼에 답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서 행정 안내가 붙는다. 각 주나 도에 필터 센터가 설립되어 있는 경우, 이 편지에 그 주소가 적혀 있으니 동봉한 공고문의 본부 주소를 그 주소로 바꿔 쓰면 된다. 필터 센터 주소가 없는 경우에는 원래 본부 주소를 그대로 쓰면 된다. 도와주는 신문사에는 감사 인사를 전하고, 앞으로 필터 센터 주소가 추가로 잡히는 대로 보내 주겠다고 약속한다. 끝에는 "Respectfully," 와 함께 "For the 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의 R. T. 스톤이라는 서명이 붙어 있다. 보고서는 이 편지에 동봉되어 신문에 게재해 달라고 요청된 공고문이 뒤따른다고 덧붙인다.

  12. p.12

    특별조사국장 앞으로 보낸 문서의 한 페이지로, 우상단에 "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이라는 단체명이 박혀 있고, 본문은 "공지! 관계자 여러분께" 로 시작하는 회람문 형식이다.

    회람문은 1957년 1월 1일 이후로 미확인 비행 물체 — 비행접시라고도 불리는 것 — 를 본 적이 있거나 본 사람을 아는 이가 있다면, 목격자의 이름과 주소를 전부 적어 즉시 연락해 달라고 요청한다.

    이어서 단체는 미국, 캐나다, 유럽, 알래스카, 호주, 일본, 영국, 아프리카, 남미 전역에 UFO 관측 초소를 세우고 있다고 밝힌다. 각 주와 도, 지역마다 자체 "필터 센터" 를 두어 모든 UFO 보고와 관련 자료를 받는 수신소이자 본부 자료를 배포하는 거점, 그리고 ICAARF 의 지역 사무국 역할을 맡게 한다는 구상이다.

    관측망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목표에는 아직 멀었다고 적는다.

    공군 조사는 지하로 숨었거나 아니면 이미 답을 알고도 대중에게 감추고 있다고 단체는 주장한다. 수백만 명이 여전히 UFO 를 보고 있는데 대중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단체가 ICAARF 를 조직한 목적은 UFO 의 정체를 밝혀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는 데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관계된 모든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특히 영화 카메라와 사진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필요한데, 사진 자료에 무게를 둔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쌍안경과 망원경을 동원한 목격, 음향 탐지기와 아마추어 무선국을 활용한 관측도 연구에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13. p.13

    특수조사국장 앞으로 보내는 보고서의 네 번째 쪽이다. 인용된 모집 문구는 이렇게 이어진다. 하늘 감시에 하루 한 시간에서 세 시간을 쓸 수 있고, 카메라를 장전해 두었다가 이 물체들을 즉시 촬영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에게 연락해 자세한 정보를 받으라. 성인 스카이워치 클럽, 고등학교 동아리, 과학 클럽, 산업체 모임, 그리고 개인 누구든 UFO 의 답을 찾는 이 수색에 동참해 달라. 위 주소로 연락 바람. 인용 끝에는 "인터컨티넨탈 항공연구재단"이라는 단체명과 "FORM OP-2"라는 양식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자료에는 가로 5인치 세로 3인치짜리 무지 카드 한 장이 함께 붙어 있었는데, 손글씨로 "발행을 확인하거나, 거절 사유와 함께 양식을 반송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서명은 "미주리 필터 센터; ICAFP"였다.

    왓슨은 이번 요청이 기이하다며, 이 단체의 진의를 의심해 FBI 의 주의를 환기하려고 이 자료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본 국은 이 사안에 대해 더 이상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다만 추가 정보가 들어오면 즉시 귀하에게 전달하겠다. 본 국 파일에는 로버트 T. 스톤이나 인터컨티넨탈 항공연구재단과 연결될 만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다.

  14. p.14

    1958년 1월 6일 세인트루이스 SAC 가 FBI 본부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로버트 T. 스톤, 인터콘티넨털 항공 연구 재단, 관련 정보" 다.

    해니벌 쿠리어-포스트 시 편집자 B. B. 왓슨이 1957년 12월 20일 해니벌 주재 요원에게 알린 바에 따르면, 왓슨은 R. T. 스톤이 서명한 날짜 없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편지지 상단에는 인터콘티넨털 항공 연구 재단 레터헤드가, 오른쪽 위에는 "미주리 필터 센터, 로버트 T. 스톤 디렉터, 미주리주 인디펜던스 27번 가 동 10717번지" 라는 타자 글이 들어 있었다. 왓슨은 그 아래 연필로 "방공 식별 구역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ing)" 이라고 메모해 두었다.

    편지 전문은 다음과 같다.

    "편집자 귀하. 동봉한 공지문은 그 자체로 내용이 분명합니다. 우리 위대한 국가의 신문들이 자랑스럽게 옹호하고 지켜온 진실의 이름으로, 이 공익 서비스를 요청드립니다.

    민간 조사자 단체로서 우리는 UFO 문제를 둘러싼 엉킨 혼란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신문과 대중의 도움이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실패할 수 있겠습니까?

    동봉한 호소문을 귀지의 1면에, 누구도 놓치지 않을 만큼 눈에 띄는 방식으로 게재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철저한 조직화는 결국 대중에 의지할 수밖에 없으며, 이 협력이 있다면 우리는 '비행접시'의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귀하의 주 또는 도에 필터 센터가 설치되어 있다면, 이 양식 편지에 그 주소가 들어가 본부 주소를 대체할 것입니다. 만약 그런" — 본문은 페이지 하단에서 잘려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 라우팅 블록에는 본부 2부 (동봉물 포함), 캔자스시티 1부, 세인트루이스 1부 배포가 적혀 있고, 사건 번호 62-83894, EX-144 접수 도장 (1958년 1월 24일) 이 함께 찍혀 있다. 오른쪽 여백을 따라 "EXP. PROC." 라는 빨간 세로 표시와 여러 손글씨 메모, 서명, 추후 정리 표시가 빽빽이 들어가 있어 이 한 장이 여러 단계의 검토를 거쳤음을 보여 준다.

  15. p.15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본문 텍스트는 비치는 흔적만 보이고 직접 읽을 만한 내용은 없다. 여백 아래쪽에 FBI 방첩(ESPIONAGE) 부서 접수 도장이 1950년 1월 10일 오후 10시 52분과 오후 12시 32분 두 시각으로 찍혀 있고, 왼쪽 가장자리에는 EXPUNGED 라벨이 세로로 길게 보인다.

  16. p.16

    FBI 가 받은 ICARF 편지 2쪽이다. 좌상단에 사건번호 SL 62-0 가 붙어 있다. 1쪽의 마지막 단락을 받아 이어가는 부분으로, 필터 센터 주소가 정해진 곳은 그 주소를, 정해지지 않은 지역은 본부 주소를 쓰라는 안내로 시작한다. 이어서 "이런 협조에 미리 감사드린다. 새 필터 센터 주소가 정해지는 대로 통보할 테니, 비정상적인 목격이 접수되면 일반인이 그쪽으로 연락하도록 안내해달라"고 적은 뒤, R. T. 스톤이 "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을 대표하여" 서명한다. 그 아래 본문은 "이 편지에는 공시를 부탁하는 안내문이 함께 붙어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넘어가 ICARF 의 공식 공고문 전문을 인용한다. 공고는 "관계자 여러분께"로 열리며, 1957년 1월 1일 이후 미확인 비행물체 — 일명 비행접시 — 를 직접 본 사람, 혹은 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즉시 ICARF 에 목격자 전원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이어서 ICARF 는 미국·캐나다·유럽·알래스카·호주·일본·영국·아프리카·남미 전역에 UFO 관측소를 설치하는 중이며, 각 주·도·지역마다 자체 필터 센터를 두어 모든 UFO 보고와 부수 자료의 접수 창구이자 본부 자료의 배포 거점, 그리고 ICARF 의 지역 사무국 역할을 맡기겠다는 조직 구상을 밝힌다. 다음 단락은 "우리 필터-관측자 망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아직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적고, 마지막 단락은 "공군 조사는 지하로 숨었거나, 혹은 답을 이미 알면서 그 사실을 — "이라며 다음 쪽으로 문장이 잘린다. 페이지 하단에는 "- 2 -" 쪽수가 있다.

  17. p.17

    세인트루이스 지국이 FBI 본부로 보낸 보고서의 한 면이다. 수백만 명이 여전히 UFO를 목격하는데도 대중은 그 정체를 모른다는 점을 지적하며, 자신들이 ICARF(국제 항공 연구 재단)를 조직하는 이유는 UFO의 정체를 밝혀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시민의 도움이 필요하고, 특히 영화·스틸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망원경·쌍안경·음향 탐지기·아마추어 무선국으로 관측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게는 사진 자료에 둔다. 하루 1~3시간 하늘을 감시할 수 있고 카메라를 항상 장전해 둘 수 있는 사람은 'FORM OP-2'를 통해 자신들에게 연락하라고 안내한다. 성인 스카이워치 동호회, 고등학교, 과학 동아리, 산업체, 일반 시민 모두에게 합류를 요청한다. 인용문 끝에는 '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과 'FORM OP-2'라는 표기가 붙어 있다. 첨부물 가운데 3×5인치 흰 카드 한 장이 있는데, 손글씨로 '게재 여부를 확인하시거나 거절 사유와 함께 양식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쓰여 있고 'Missouri Filter Center; ICARF' 서명이 들어 있다. 왓슨 씨는 이 요청이 이상하다고 보고, 이 단체의 의도가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FBI에 알렸다. 원본 편지는 국장에게 송부되며, 캔자스시티 지국이 로버트 T. 스톤과 ICARF에 대한 색인을 조회하고 필요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도록 요청된다. 세인트루이스 지역에서는 더 이상의 조사가 없으므로 캔자스시티가 출처 사무소로 지정된다. 페이지 끝에는 'RUC'(통상 추가 조치 없음) 표기가 붙어 있다.

  18. p.18

    라우팅 슬립의 뒷면으로 보이는 작은 카드. 위쪽에 "called 3:15 9/27" 이라는 손글씨가 있고, 아래쪽에는 누군가 "file" 이라고 적은 뒤 서명을 남겼다. 9월 27일 오후 3시 15분에 전화가 왔다는 것을 기록한 뒤 파일로 보내라는 처리 지시를 남긴 메모로 읽힌다.

  19. p.19

    FBI 사건 파일 안에 끼워 둔 작업용 인덱스 카드 한 장이다. 카드에는 사건 번호 277, 대상자 로버트 N. 스토크와 그가 속한 단체 "인터컨티넨털 항공 연구재단(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이 적혀 있고, 분류는 "INFORMATION CONCERNING". 카드 아래쪽에는 이 재단에서 온 편지에 관한 내용이며 "IMPORTANT MATTER"라는 표시가 보인다. 카드 상단에는 세인트루이스에서 온 편지의 작업 문서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카드가 누런 종이 파일 표지에 마스킹 테이프로 고정되어 있다.

  20. p.20

    민간 UFO 단체 인터컨티넨털 에어리얼 리서치 파운데이션(ICARF)이 "관계자 모두에게" 라는 제목으로 돌린 공개 호소문이다. 양식 번호는 OF-2.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1957년 1월 1일 이후 미확인 비행 물체 — 일명 비행접시 — 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을 알고 있다면 즉시 단체로 연락해 달라, 목격자의 성명과 주소를 함께 알려달라는 요청이다. 단체는 지금 미국 전역과 캐나다·유럽·알래스카·호주·일본·영국·아프리카·남미에 UFO 관측 거점을 세우는 중이며, 각 주·도·지역마다 자체 필터 센터를 두어 모든 UFO 보고와 관련 자료를 받는 수신소로 운영하고, 본부에서 배포하는 자료를 나누는 거점이자 ICARF의 일반 사무처 역할까지 맡길 계획이라고 밝힌다. 필터-관측망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목표에는 한참 못 미친다고 솔직하게 적었다. 그 다음 문단에서 단체는 공군 조사에 대해 강한 의심을 드러낸다. 공군 조사가 지하로 숨었거나, 답을 알면서도 대중에게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명이 계속 UFO를 보고 있는데도 대중은 여전히 그 정체를 모른다고 지적한다. ICARF를 조직한 목적은 UFO 미스터리의 답을 찾아 대중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며, 이를 위해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필요한 사람은 영화 카메라와 스틸 카메라를 가진 사람이다. 단체는 사진 자료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다만 쌍안경과 망원경을 통한 목격, 음향 탐지기와 햄 라디오 관측국의 활동도 연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끝으로 하루 한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 스카이워치에 시간을 낼 수 있고, 카메라를 항상 장전해 둘 수 있는 사람이라면 즉시 연락해 정보를 받아가라고 호소한다. 성인 스카이워치 클럽, 고등학교 그룹, 과학 클럽, 산업계 그룹, 개인 가리지 않고 UFO의 답을 찾는 자기 단체에 합류해 달라는 부탁으로 마무리된다. 상단의 단체 주소로 연락하라는 안내 뒤, 발신 명의 인터컨티넨털 에어리얼 리서치 파운데이션 명칭이 다시 한 번 박혀 있다. 오른쪽 아래 여백에는 FBI 파일 번호로 보이는 손글씨가 적혀 있다.

  21. p.21

    타자기로 작성된 편지나 메모의 뒷면 스캔으로 보인다. 종이 반대편의 텍스트가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반전되어 있어 내용을 읽을 수 없다. 종이 가운데에 가로 접힘 자국이 두 줄 보이고, 오른쪽 아래에 작은 손글씨나 접수 표시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그 자체로는 본문 정보가 없는, 앞 페이지의 뒷면에 해당하는 스캔이다.

  22. p.22

    Inter-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가 신문 편집자 앞으로 보낸 회람 편지로, 발신처는 미주리 인디펜던스의 미주리 필터 센터 (디렉터 로버트 E. 스톤, 10712 E. 27th Terr.) 이다. 편지는 동봉한 공지가 그 자체로 설명이 된다며, 진실의 이름으로 이 공공 서비스를 요청한다고 운을 뗀다. 자신들은 민간 조사자 단체이며 UFO 문제를 둘러싼 혼란을 풀어보려 하는데, 신문과 대중의 도움이 있다면 실패할 리가 없다고 말한다. 동봉한 호소문을 신문 1면에, 누구도 놓치지 않을 만큼 눈에 띄게 실어 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철저히 조직될 사람은 대중이며, 그 협조로 "비행접시" 수수께끼의 답을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는 것이다. 만약 해당 주나 자치주에 필터 센터가 이미 설치돼 있다면 이 회람 편지에 그 주소가 적혀 있을 것이고, 그 주소가 동봉한 공지의 본부 주소를 대체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그런 필터 센터 주소가 없으면 원래 본부 주소를 그대로 쓰면 된다. 끝으로 도움에 미리 감사하며, 추후 새로 설치되는 필터 센터 주소는 이상 목격 사례가 들어왔을 때 공개용으로 보내겠다고 적는다. 서명은 R. T. 로 시작하는 손글씨이며 직책은 Inter 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대표. 우측 상단 여백에는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ing" 이라는 손글씨 주석이 달려 있어, 이 회람을 받은 쪽이 방공식별구역과 연관 지어 분류했음을 시사한다. 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 62-?3894-388 이 적혀 있다.

  23. p.23

    문서 한 장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잉크가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는데, 본문은 모두 좌우가 뒤집힌 상태라 그대로 읽히지 않는다. 오른쪽 위에 FBI 인장의 윤곽이 흐릿하게 비치고, 가운데 아래쪽에는 "REX FRANKLAND"라는 타자 글씨와 그 아래 "COTTON"이 같은 방향으로 비쳐 나온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1/7/0/15"로 보이는 연필 손글씨가 적혀 있다. 본문 자체의 내용은 이 면에서는 확인할 수 없고, 앞면 스캔과 짝을 이루는 보존용 뒷면 이미지로 보인다.

  24. p.24

    누렇게 변색된 카드 한 장에 푸른 잉크로 손글씨가 적혀 있다. 발신인은 자신을 "Missouri Filter Center / ICARF" 라고 밝히고, 수신처에 게재 여부를 확인해 주거나, 거절한다면 사유와 함께 양식을 돌려 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에는 감사 인사로 마무리한다.

  25. p.25

    작은 카드 또는 슬립의 뒷면 스캔이다. 손으로 쓴 서명과 1957년 10월 10일 날짜만 보이고, 위쪽에 앞면이 비쳐 보이는 글자가 희미하게 드러난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26. p.26

    1958년 1월 30일 캔자스시티 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다. 사건번호는 62-7386, 주제는 로버트 T. 스톤과 그가 대표한다는 인터콘티넨탈 항공연구재단(Inter-Continental Aerial Research Foundation), 분류는 잡건 - 참고용 정보다. 누군가 여백에 U.S.A.비행접시의(of Flying Saucers) 라고 손으로 적어 넣어, 이 재단의 정체가 비행접시 관련 단체임을 표시해 두었다. 메모는 1958년 1월 6일 세인트루이스 지국이 본부에 보낸 편지, 그리고 1958년 1월 23일 본부가 공군 특별조사국장에게 보낸 편지를 받아 후속 조회한 결과 보고다. 결론은 두 줄로 간단하다. 캔자스시티 지국 파일에는 로버트 T. 스톤이나 인터콘티넨탈 항공연구재단으로 식별 가능한 정보가 전혀 없다. 다만 1957년 인디펜던스 주소록을 뒤져 보니, 비슷한 이름의 인물로 테렐 O. 스톤(Terrell O. Stone) 이 한 명 나오는데, 아내 이바와 함께 인디펜던스 시 27번가 테라스 10717번지에 살고 있고 벨벳 프리즈라는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제조 일을 한다. 이 인물 역시 파일에는 아무 기록이 없다. 따라서 추가 조치 없이 사건 종결(RUC, Referred Upon Completion). 사본은 본부 2부, 세인트루이스 지국 1부(참고용), 캔자스시티 지국 1부로 배포되었다. 페이지 하단에는 62-83894-389 라는 본부 사건번호가 손글씨로 적혀 들어가 있고, 1958년 2월 4일과 2월 7일 접수 스탬프가 함께 찍혀 본부 메인 케이스 파일에 편입된 흔적을 남기고 있다.

  27. p.27

    이 페이지는 앞면에 타자된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는 타자 흔적 외에 본문 텍스트는 없고, 아래쪽에 붉은 잉크 도장 하나와 직사각형 접수 도장 흔적, 왼쪽 아래 손글씨 파일 표시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28. p.28

    1958년 3월 17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공군 감찰감실 특수조사국장에게 보낸 "하늘을 나는 접시 - 잡건, 정보 참고용" 건의 짧은 회람 공문이다. 인디애나주 엘크하트의 해럴드 퍼거슨 부인이 FBI로 보낸 편지 사본을 첨부하니 참고하라는 내용이며, FBI 차원에서는 별도의 조치를 취할 계획이 없다고 명시한다. 같은 사본은 해군 정보국장, 육군 정보참모차장(보안과장 앞), 그리고 인디애나폴리스 지부에도 한 부씩 발송한다. 페이지 아래 NOTE 란에는 사건 배경을 정리해 두었다 — 퍼거슨 부인은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말하면서 외계인들이 자기 집 근처에 착륙했고 신문사와 잡지사가 자신을 위해 일부 자료를 빼놓고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FBI는 별도 조치 없이 단순 회람만 진행하며, 그녀에 관한 사전 파일은 없고, 답신은 보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적는다. 이유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며, 이런 종류의 신고는 공군이 따로 검토 부서를 운영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좌측 여백에는 후버 직속 임원 회람 명단(톨슨, 니콜스, 보드맨, 벨몬트 등)이 인쇄되어 있고, 상단에 "62-83894-390" 파일번호가 적색으로 적혀 있다.

  29. p.29

    이 페이지는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를 뒤집은 상태라 앞면의 타자 본문이 거꾸로 비쳐 보이고, 뒷면에는 FBI 내부의 접수 도장이 여러 개 찍혀 있다. 가장 먼저 찍힌 도장은 1958년 3월 11일 오전 11시 52분에 메일룸이 받아본 자국이고,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ESPIONAGE-MAIL" 라인이 다시 받는다. 그 뒤로 벨몬트 사무실이 같은 문서를 3월 13일 오전 9시 31분, 3월 14일 오후 3시 39분, 3월 14일 오후 10시 06분에 차례로 접수한다. 도장 자체가 본문은 아니지만, 한 통의 우편물이 FBI 안에서 어느 책상을 거쳐 어디로 흘러갔는지 보여주는 단서다.

  30. p.30

    1958년 3월 10일 FBI 접수 도장이 찍힌 손편지의 첫 페이지다. 발신자는 미시간 시골 농장에 남편과 세 딸과 함께 살던 여성이고, 본인이 직접 겪었다는 "5, 6년 전 우주에서 온 방문객"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여성은 도입을 이렇게 연다. 많은 사람이 다른 세계에 사람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어떤 이들은 확실하게 알고 싶어 하며, 또 어떤 이들은 그들과 연락이 닿기를 바란다. 본인 생각에는 다른 세계에 사람이 사는 것은 분명하고, 아마 그런 세계는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을 꺼낸다. 큰딸이 그해 여름방학에 대학 학비를 보태려고 농장에서 11km쯤 떨어진 컨트리클럽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었고, 본인은 자정에 큰딸을 데리러 가서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컨트리클럽을 나와 큰길을 막 벗어났을 때 길 옆을 따라 조금 앞쪽에서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다. 작은 불빛들이 깜빡거리며 켜졌다 꺼졌다 했고, 불빛이 꺼지는 그 짧은 순간에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 정확히는 어떤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지만, 본인은 그 안에서 사람 같은 존재가 그것을 직접 몰고 있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고 적는다. 그 거리는 약 3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다는 대목에서 페이지가 끊긴다.

    왼쪽 여백에는 사건 번호로 보이는 손글씨 정리가 세로로 적혀 있고,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는 페이지 번호 378이 도장 결로 찍혀 있다.

  31. p.31

    줄이 그어진 노트 종이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비어 있고, 하단에 FBI 샬럿 지국의 1956년 3월 1일과 3월 2일 접수 도장 두 개만 남아 있다.

  32. p.32

    손글씨로 쓰인 진술서의 두 번째 장이다. 글쓴이는 고속도로에서 자기 집까지 이어지는 길에 진입로 여섯 개와 갈림길 세 개가 있다고 설명한다. 차로 지나가는 동안 바깥쪽 비행체 하나가 갈림길마다 위에 떠 멈춰 서서 차가 어디로 꺾을지를 지켜보다가, 방향이 정해지면 다시 앞쪽 나무 위 살짝 앞으로 빠르게 미끄러져 갔다. 글쓴이는 비행체가 뒤에 붙어 있었으면 자기와 딸이 겁에 질려 속도를 냈을 텐데 일부러 앞쪽에 자리를 잡은 걸 보면 매우 영리한 존재들이라고 적었다. 집에 다 와서 비행체는 차가 진입로로 꺾기를 기다렸다가 정원 위, 진입로 옆으로 따라 들어와 멈췄다. 글쓴이와 딸은 각자 차에서 내렸고, 바로 가까이, 훨씬 낮은 높이에 떠 있는 비행체와 한참 동안 마주 보고 섰다. 비행체는 움직이지도 소리내지도 않았고 모터 소리조차 없었다. 글쓴이는 저들이 우리 사진을 찍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고 말한다. 말문이 막힌 채 압도되어, 지금 일어나는 일의 무게를 절감했다. 글쓴이는 비행체가 끝없는 시간과 끝없는 거리에서 왔으며 영원 그 자체에서 빠져나온 듯 느꼈다고 적었다. 한참 뒤 비행체들이 먼저 들판을 가로질러 강 쪽으로 이동했고, 글쓴이와 딸은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갔다.

  33. p.33

    그날 밤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 말로 풀어낼 시간이 아니었고, 내 인생의 이 작고 신성한 시간에 깃든 경이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 매일 밤, 뒷마당 개집에 묶여 있던 우리 개는 마지막 불이 꺼지면 몇 분씩 짖었다. 짖는 소리만 들어도 그게 그저 다른 동물이 아니라 누군가 사람이 거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마당 끝의 오래된 과수원은 잡초와 덤불, 작은 나무들이 우거지고 큰 노목 예닐곱 그루가 서 있는, 손대지 않은 자리였다. 그 끝, 키 큰 라일락 덤불 뒤로 우리 식구가 꼭 필요로 했던 작은 사각형 자리 — 일명 '도서관' — 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신문과 잡지가 매일 아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짐작이 가서, 일부러 저녁마다 신문과 잡지를 내놓고 아침에 확인했는데 늘 없어져 있었다. 어느 날 막내딸이 자기 방 불을 끌 때마다 개가 짖고, 뒷마당에 묘하게 둥글고 붉은 빛이 보인다고 말했다. 그날 밤 개가 짖기 시작했을 때 나는 (문을) 열고 —

  34. p.34

    노트 4쪽. 손글씨로 이어진 진술의 한 대목이다. 그 빛은 파이 접시만 한 크기였고, 색은 붉었다. 우리 손전등처럼 빛줄기를 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빛에 깊이가 있었다. 그들은 적어도 둘이었다. 한 명은 밖에서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은 안으로 들어가 서류를 가져갔다. 우리는 주(州) 경계 바로 위에 살아서 인디애나 신문을 받았고, 그래서 매일 저녁 나는 엘크하트 트루스, 사우스 벤드 트리뷴, 시카고 선데이 트리뷴, 그리고 잡지들을 문 앞에 내놓았다. 어느 날 밤에는 개를 묶어두지 않았다. 개가 짖기 시작했는데, 짖는 소리가 도중에 뚝 잘렸다. 그 소리를 평생 잊지 못한다. 그들이 개를 죽였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나가서 확인할 만큼 용기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보니, 개는 마당을 반쯤 가로질러 달리다가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없었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개 바로 옆을 지나갔는데도 개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 또한 그들의 선함과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그들의 손전등은 광선 형태의 빛이라서 마음만 먹었으면 개를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개는 정신이 조금 들자 좀 더 편한 자세로 자기 몸을 끌어당겼다.

  35. p.35

    8쪽으로 이어지는 손글씨 진술이다. 여자들이 일어났고, 그가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건 정오 무렵, 완전히 회복한 건 석 달이 지나서였다고 적는다. 그 6주가 끝나갈 무렵 어느 아침, 화자는 도서관 선반에서 낯선 신문 한 부를 발견한다. 신문 위에는 좋은 품질의 흰 종이 한 장이 함께 놓여 있었고, 그 종이에는 신문 활자를 읽는 열쇠가 적혀 있었다. 글자 모양은 우리 알파벳과 거의 비슷해서 몇 개는 그대로 같았지만, 한 글자씩 쓰지 않고 세 글자씩 묶어 쓴다고 한다. 그 묶음의 예시가 ooo ooo ooo 식으로 줄줄이 그려져 있다. 화자는 자기가 듣기에는 그들이 그 신문을 소리 내어 읽으면 노래를 부르듯 구절들이 이어지는 소리로 들릴 거라 짐작한다. 그들은 문장 끝의 마침표도, 다른 어떤 구두점도 쓰지 않았고, 대문자도 없었다. 그들은 분명 우리 인쇄물 읽는 법을 배웠을 텐데, 만약 우리가 그들이 우리 언어를 읽는 걸 들으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할 거라고 한다. 그래도 그들은 의미는 제대로 가져간다고 화자는 확신한다. 화자는 그 신문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할 때까지 숨겨두었지만, 누군가 그것을 찾아내 태워버렸다. 그 일이 너무 안타깝다고, 자기는 그 신문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하며 페이지가 끝난다.

  36. p.36

    한 여성이 직접 손으로 적어 보낸 목격담의 한 페이지다. 그날 아침 신문에서 비행접시 기사를 보고 위층으로 올라가 과수원 너머 강 쪽을 내려다보니 거기에 그 비행접시가 있었다고 한다. 유리처럼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져 있었고, 에스키모 오두막처럼 돔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안쪽에는 냅킨 고리 같은 커다란 링이 들어 있었고, 모든 것이 그 링 안에 담겨 있었다. 보고 있는 사이 링 전체가 색색으로 빛나기 시작해 더 이상 안쪽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더니 곧장 위로 솟아올라 나무들을 배경으로 또렷이 보이다가, 나무 위로 올라가자 그저 별처럼 보였다. 글쓴이는 조종사들도 이런 것들을 여러 번 보았을 텐데 자신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몰랐을 거라 짐작한다. 외계 여행에 쓰는 물건은 아니고, 어딘가에 거대한 비행선 같은 모선이 있어서 이 작은 비행접시들은 지구 안에서만 다니는 용도일 거라고 추측한다. 그런 것들이 다른 어딘가에 더 많이 있을 거라고 한다. 남편이 2년 전에 죽어서 농장은 세를 주고 지금은 딸들과 함께 엘크하트에 살고 있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는지는 모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할 길은 없지만, 그래도 정부가 이런 이야기를 정말 믿어 주는지 한번 알아보고 싶어 편지를 쓴다고 말한다. 마지막 줄에서 외계인들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로 다음 페이지를 이어 간다.

  37. p.37

    줄친 공책 종이에 갈색 펜으로 쓴 손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발신인 퍼거슨 부인은 외계인들이 우리 인쇄물을 보고 네온 사인으로 방송국 같은 걸 세워주면 그게 신문 교환을 위한 거라는 걸 알아볼 거라고 적는다. 자기 생각에 외계인들은 우리 스푸트니크 같은 걸 보고 꽤나 질색하고 있을 테고, 우리가 그들과 접촉만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많은 지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이어 수신인에게 부탁한다 — 이 모든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답장하지 말고, 답장을 하고 싶다면 자기 친구 앞으로 편지를 보내달라. 자기 집으로는 쓰면 안 된다, 친척들이 자기가 이런 편지를 썼다는 걸 알면 가둬버릴 것이고, 절대 안 믿을 사람들이라 누구에게도 이 얘기를 한 적이 없다 — 라고 덧붙인다. 괄호 안에는 "아, 그래, 우리 사진도 안에 들어 있었어"라고 추가한다. 자기 이름은 해럴드 퍼거슨 부인이라고 밝히고, 편지를 봉투에 자기 이름과 함께 봉한 다음, 그걸 다시 다른 봉투에 넣어 인디애나 주 엘크하트 플레전트 플레인 애비뉴 2506번지 레스터 램스비 부인 앞으로 보내달라고 주소를 적는다.

  38. p.38

    1958년 10월 2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공군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에게 보낸 메모다. 워싱턴 D.C. 템포 B 빌딩으로 발송했고, 주제는 "델마 H. 오베슨 — 잡건 정보 (민족계 정보)"다.

    후버는 먼저 1958년 9월 22일 F. L. 웰치가 서명한 공군 측 편지 (참조번호 24-185-483, 건명 "미확인비행물체, 코네티컷주 토링턴, 1957년 12월 5일") 에 대한 답신임을 밝힌다.

    동봉물은 두 건이다. 하나는 1958년 7월 9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작성된 메모로, 본 건의 대상 인물에 관한 내용이다. 거기 언급된 "다른 정부 기관" 은 콜로라도주 덴버 로리 공군기지의 특별수사실 (OSI) 이다. 다른 하나는 1958년 7월 3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작성된 메모로, 거기 언급된 "다른 정부 기관 대표" 는 캘리포니아 트래비스 공군기지의 USAF 지구사령관 윌리엄 E. 주어너 (Zuerner) 대령이다. 주어너 대령이 OSI 가 확보한 본 건 대상자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

    후버는 대상자가 공군 소속으로 보이는 만큼 FBI 차원의 추가 조치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하단의 노트는 이 메모가 "Confidential" 등급인 이유를 설명한다. 같은 등급의 레터헤드 메모를 동봉하기 때문이며, 캐나다 정부에서 받은 자료와 주어너 대령이 제공한 정보 모두 이미 같은 등급으로 분류돼 있었기 때문에 분류가 타당하다고 적었다.

    페이지에는 1958년 10월 6일 FBI 우편실 접수 도장, 좌측 세로의 "COMM-FBI" 도장, 사건번호 62-83894-391, 그리고 상단에 1970년·1977년 자로 "적절한 기관 및 야전사무소에 라우팅 슬립으로 통보" 표시가 함께 찍혀 있다.

  39. p.39

    1958년 10월 FBI 본부로 들어온 한 페이지의 routing 면이다. 페이지가 거꾸로 스캔되어 본문 타이핑은 비쳐 보이지만 판독이 어렵고, 대신 접수·라우팅 도장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빨간 'OCT 3 1958' 도장, 보라색 'AERONAUTICAL CHART AND INFORMATION CENTER' 도장, 그리고 'REC'D BELMONT FBI – JUSTICE Oct 1 6 25 PM '58' 와 'Oct 2 11 39 AM '58 OFFICE OF THE DIRECTOR F B I DEPT OF JUSTICE' 두 개의 시각 도장이 함께 찍혀, 10월 1일 저녁 벨몬트 라인으로 먼저 도착해 이튿날 오전 국장실로 올라가고 10월 3일 최종 접수된 흐름을 보여준다. AERONAUTICAL CHART AND INFORMATION CENTER 도장은 자료 출처가 공군 항공도표·정보 센터임을 시사한다.

  40. p.40

    1958년 9월 22일, 미 공군 본부 특별조사실 부책임자 F. L. 웰치가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회람 편지다. 1957년 12월 5일 코네티컷 토링턴에서 보고된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에 관해 어떤 민간인이 공군에 문의를 했는데, 공군이 그 문의를 FBI 쪽으로 넘긴다는 내용이다. 문의를 보낸 사람은 자신을 미네소타주 로조 소재 Electronics Service Unit 4 의 운영 책임자 Delmaine H. Oveson 이라고 소개했고, 1957년 12월 5일 무렵 토링턴에서 있었다는 비재래식 공중 물체 목격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이 편지는 코네티컷주 지상관측대(GOC) 코디네이터를 거쳐 공군 특별조사실에 들어왔는데, 코디네이터 본인도 1957년 12월 5일 무렵 토링턴 근처에서의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이 보고됐다는 것은 안다고 했지만, 정작 편지를 쓴 Oveson 이라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고 다른 수신자도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서 미 육군과 공군 우편국 양쪽에 확인한 결과 미네소타 로조에는 어떤 군 부대도 주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따라서 공군은 이 건을 FBI 가 적절히 판단해 처리해 달라며 넘긴다고 한다. 끝으로 FBI 가 공군이 관심을 가질 만한 정보를 얻게 되면 알려 달라고 요청한다. 편지 상단에는 22 SEP 1958 접수 도장과 OSI/PHF 라우팅이 찍혀 있고, 본문 여백에는 Flying DISCS 손글씨와 ENC ATTACHED, EX-108, 62-83894-391 사건번호가 함께 적혀 있다.

  41. p.41

    FBI 사건 파일 62-83894 의 391번 첨부 봉투를 정면에서 찍은 페이지다. 표면에는 본문이라 할 만한 글이 없고, 상단의 작은 ENCLOSURE 라벨과 그 옆에 손글씨로 적힌 사건번호 62-83894-391 만이 봉투의 정체를 알려준다.

  42. p.42

    1958년 7월 21일 미네소타 로조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의 사진이다. 발신인은 미네소타 로조 루트 2 의 "Electronics Service Unit 4 작전국장"으로 표기됐고, 수신인은 코네티컷 토링턴에 사는 도모닉 제라르디(Domonic Gerardi)다. 수신 주소 위쪽에는 "183 Harrington Ave" 라는 손글씨가 따로 적혀 있어, 수신자가 원래 주소가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졌거나 추가 배달지가 적힌 흔적으로 보인다. 봉투 왼쪽 아래에는 "B-2" 라는 표시가 손으로 적혀 있고, 우표는 25센트 항공우편으로 보인다. 검은 배경 위에 봉투 하나만 단독으로 놓고 촬영한 증거 사진 형식이다.

  43. p.43

    1958년 7월 12일 미네소타 로조에 자리한 일렉트로닉스 서비스 유닛 4 본부 작전국장 델메인 H. 오베슨이 코네티컷 토링턴의 포모닉 제라르디에게 보낸 협조 요청 편지다. 1957년 12월 5일 저녁 8시 5분경 친구들과 함께 토링턴 근처에서 비전형 공중 물체(Unconventional Aerial Object)를 목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며, 사건에 관한 협조를 부탁한다. 편지는 물체의 고도·색깔·모양·비행 방향·하늘에서의 위치·시각·날짜를 알려달라고 요청하고, 크기는 팔 길이만큼 떨어뜨려 든 동전과 비교해 어느 정도였는지, 목격 시간은 얼마였는지도 묻는다. 비행 안전을 침해하는 정황은 없었는지 확인하고, 답변 내용은 엄격히 비밀로 다루겠다고 약속한다. 마지막으로 협조에 깊이 감사하겠다는 인사로 끝맺고, 손글씨 서명 아래 직책으로 "EXETOR RPAF / Director of Operations" 가 함께 적혀 있다.

  44. p.44

    1958년 10월 2일, 후버 FBI 국장이 공군 감찰감실 산하 특수조사국장에게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도널드 E. 키호 —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조회. 후버는 키호가 9월 22일에 FBI 앞으로 보낸 편지의 사본 두 부와, FBI가 9월 26일에 회신한 답신의 사본 두 부, 총 네 부를 동봉한다고 알린다. 별도 노트에는 키호의 편지가 "FBI가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를 콕 짚어 물었고, FBI는 일반론적인 수준에서만 답했다고 정리한다. 같은 사본을 공군 특수조사국(OSI)에도 넘기는 이유는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업무는 공군이 조정하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페이지 하단에는 "NOT RECORDED" 도장, 1958년 10월 6일자 접수 도장("66 OCT 6 1958", "128 OCT 6 1958"), 그리고 손글씨로 기입된 새 파일 번호 62-83894가 보인다.

  45. p.45

    1956년 9월 26일, S. B. 도나호가 A. H. 벨몬트 부국장에게 올린 내부 메모다. 제목은 도널드 E. 키호 관련 — 미식별 비행 물체 (UFO) 관련 정보 회신 건. 사본은 미스, 벨몬트, 도나호, 샌더스에게 돌렸고 우측에 사건 번호 1519가 적혀 있다.

    키호는 항공현상 조사 민간위원회 (NICAP) 위원장으로, 9월 22일자 편지로 FBI에 UFO 관련 활동 사항을 문의해 왔다. 그가 이끄는 위원회는 위원회 레터헤드에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민간 후원의 사실 조사 위원회"라고 소개되어 있고, 이사진과 특별 자문단에 저명 인사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키호 본인은 퇴역 해병이다.

    키호는 FBI가 1935년부터 주시해 온 인물이며, 지금도 프리랜서 작가일 가능성이 있다. 1948년 니콜스 요원은 그를 두고 "과장이 심한 작가이고, 과거 경험으로 보아 그의 글 상당수가 무책임하다"고 평했다. 1951년에는 후버 국장도 니콜스의 의견에 동의하면서 "이 사람과는 엮이지 않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키호 글쓰기의 한 예로, 1941년 1월호 「코스모폴리탄」지에 그가 존 J. 데일리와 공동 집필한 「히틀러의 미국 상선단 장악 계획」이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이 기사는 FBI가 히틀러의 그런 계획에 관한 문서를 보유하고 있다고 암시했지만, 그 암시는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첨부한 회신 초안은 그의 질문 가운데 일부 — 이를테면 "FBI 요원들이 목격자에게 UFO 사건 발언을 함구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는가?" 라거나 "FBI가 일부 사건에서 UFO 목격자의 인물 조사를 수행하는가?" 같이 매우 유도성이 강한 질문들 — 에 대해 매우 일반적인 어조로만 답한다. 답변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피하면서도, 그의 날선 질문들을 정면으로 받지 않기 위해 폭넓고 두루뭉술하게 작성했다. FBI 측 담당관과의 인터뷰 요청은 미식별 비행 물체에 관한 FBI의 방침을 더 논의할 실익이 없다고 보고 비켜갔다. JANAP 146은 정보 사항 목격 보고를 다루는 국방부 문서다.

    조치 사항: 첨부한 회신 초안을 키호에게 발송한다. 공군 측 관심을 고려해 그의 문의 사본과 우리 회신 사본은 공군에 별도로 송부한다.

    하단에는 사건 번호 62-103561, 첨부물 (Enclosure), 작성자 약호 SSB:jas, 그리고 "Encl. 62-83894" 라우팅 표시가 손글씨로 추가되어 있다.

  46. p.46

    1958년 9월 26일, FBI 가 항공현상 국가조사위원회(NICAP) 의 도널드 E. 키호 소장에게 보낸 회신 편지다. 9월 22일 자 키호의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FBI 는 다섯 가지를 정리해 알린다. 첫째, FBI 는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을 직접 조사하지 않으며, 목격담이 들어오면 공군으로 넘긴다. 둘째, FBI 직원이 목격자에게 이 일을 말하지 말라 고 지시한 적은 없다. 셋째, 목격자의 신원·성격을 캐는 것도 FBI 의 임무가 아니다. 넷째, FBI 는 공개할 수 있는 미확인 비행 물체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 다만 이는 공개하지 못하는 정보가 따로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토를 단다. 다섯째, JANAP 146 은 국방부 문서이므로 FBI 운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끝줄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 외계 행성에서 온 비행체와의 교신이 만약 미확인…. 상단 라우팅 슬립에는 Nease, Belmont, Donahoe, Sanders 네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고, Donahoe 와 Sanders 옆에는 1 - 표시가 있다. 하단 작성자 표시는 ESS:jas, 사본 6부. 파일 번호 62-83894 가 두 번 찍혀 있다.

  47. p.47

    후버 FBI 국장이 도널드 키호 소령에게 보낸 답신의 두 번째 장이다. 앞 장에서 이어진 문장은 비행 물체가 외계 기원임을 입증하는 일은 FBI 의 직무가 아니라고 자른 뒤, 다만 미국 내부 안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면 FBI 도 당연히 관심을 둔다고 덧붙인다. 이어 1958년 9월 22일 키호가 보낸 편지에서 미확인비행물체와 그에 관한 FBI 의 방침을 두고 FBI 측 관계자와 면담을 요청했다는 사실을 짚고, 위에서 방침을 충분히 밝힌 만큼 요청한 면담은 더는 필요하지 않다고 느낄 것이라며 사실상 거절한다. 끝에 "Sincerely yours, John Edgar Hoover, Director" 서명 라인이 인쇄로 들어가 있고, 페이지 하단에는 두 번째 장임을 표시하는 - 2 - 페이지 번호가 찍혀 있다.

  48. p.48

    1958년 10월 13일, FBI 본부의 E. S. 샌더스가 S. B. 도나호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로, 제목은 "비행접시"다. 샌더스는 미확인 비행 물체, 통상 비행접시라 부르는 현상에 대한 FBI의 그간 방침을 한 장으로 요약한다.

    비행접시 보고는 1947년부터 쏟아졌고, 육군 항공정보부의 요청으로 FBI는 비행 원반 조사에 협조하기로 한다. 1947년 7월 30일자 회보 제42호는 각 현장 사무소에 모든 사례를 조사해 진짜 목격인지, 장난인지, 환각인지 판별하도록 지시했고, 본부 차원과 현장에서 모두 육군과 연락 채널을 통해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같은 해 8월 3일, 항공방위사령부 본부는 각 항공군 사령관 앞으로 편지를 보내, 원래 항공군의 의도는 항공군이 책임 있는 목격자를 직접 면담하고 FBI는 지상에 떨어진 이른바 원반 사례를 맡는 분담이었다고 짚는다. 편지는 FBI의 손을 빌린 이유를 명시한다 — 결국 "쓰레기통 뚜껑, 변기 시트, 그 밖에 별별 것"으로 판명나는 그 많은 신고를 일일이 추적하는 일에서 항공군을 덜어주기 위함이었다. 그 결과 1947년 10월 1일자 회보 제57호는 "앞으로 비행 원반과 관련된 모든 보고는 항공군에 넘기고, FBI 요원이 직접 조사에 나서서는 안 된다"라고 못박는다. 9월 27일자 편지는 항공군에게 FBI 인력과 시간을 이런 식으로 흩뿌릴 수 없다고 전달한 사실까지 적혀 있다(파일 번호 62-83894-121).

    1949년 9월 25일자 SAC 편지 제38호는 소련이 4년째 미지의 비행 원반을 시험하고 있다는 정보가 신뢰할 만한 출처에서 확보되었다고 알리며, 항공군이 필요로 하는 현장 자료의 목록을 함께 정리한다. 다만 이 편지도 FBI가 직접 조사에 들어가서는 안 되고, 다만 신고가 들어오면 정보를 받아 항공군에 전달하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1952년 8월 29일자 SAC 편지 제63호는 앞선 회보와 SAC 편지들을 다시 인용하며, 항공군이 원하는 종류의 정보는 신고자에게서 받아내 현지 OSI에 즉시 넘기라고 주의를 준다. 이 편지 또한 현장 조사는 항공군의 책임임을 다시 한 번 환기한다.

    메모 하단에는 발송 처리 표시와 함께 "62-83894-392"라는 파일 번호가 찍혀 있어, 이 요약 메모 자체가 후버 라인의 비행접시 본 파일에 묶여 들어갔음을 보여준다.

  49. p.49

    앞면이 비쳐 보이는 빈 뒷면 스캔이다. 페이지 하단에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 하나만 살아 있는데, 벨몬트 사무실이 1958년 10월 13일 오후 3시 51분에 받았다는 표시다. 상단 두 개의 펀치 구멍과 우측 상단의 작은 사건번호 흔적 외에 본문 텍스트는 없다.

  50. p.50

    도나호(Donahoe) 앞으로 보낸 메모의 두 번째 쪽이다. 제목은 여전히 "비행접시(FLYING SAUCERS)".

    작성자는 먼저 행정 차원의 상황을 정리한다. 요원 핸드북에도, 각종 매뉴얼에도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 보고를 어떻게 처리하라는 지침은 따로 없다. 그러나 이미 위의 국(Bureau) 회보들과 SAC 서한(Special Agent in Charge 앞으로 내려보낸 지침)으로 정책이 충분히 자리 잡았고, 지금까지 이 사안 때문에 문제가 생긴 적도 없다고 적는다. 공군은 여러 차례에 걸쳐, 국이 알아둘 만한 새로운 진전이 있으면 통보하겠다고 약속해 왔고, 가장 최근의 그 약속은 1957년 11월 12일 자 문서(62-83894-357)에 남아 있다.

    공군 쪽 창구도 한 줄로 정리한다. 국이 이 사안으로 접촉하는 상대는 공군 특별수사대(OSI)다. 다만 공군 내부에서는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의 항공기술정보센터(Air Technical and Intelligence Center)가 실제 사안을 다룬다.

    마지막 "ACTION" 항목에서 작성자는 결론을 내린다. 이 메모는 참고용으로만 올리며, 현재로서는 현장에 추가 지침을 내리거나 핸드북·매뉴얼에 새 문구를 끼워 넣을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끝맺는다.

    왼쪽 여백 아래에는 누군가의 손글씨 이니셜로 보이는 표시가 흐릿하게 남아 있고, 페이지 하단에는 "- 2 -" 쪽 번호가 찍혀 있다.

  51. p.51

    1958년 9월 25일 자, FBI 기록부(Records Branch)가 만든 사전 조회 슬립이다. 명단 조회 담당부(6523호실)와 서비스부(6524호실) 양쪽이 표시되어 있고, 결과는 리처즈(Richards) 또는 샌더스(Sanders) 1519호로 회신하라고 적었다. 조회 종류는 "미네소타주(Minn.) 지역으로 한정"이 체크되어 있다. 조회 대상은 델메인 M. 오베론(Delmaine M. OVERON). 아래쪽에 6월 29일 자 검색 흔적과 함께 파일 번호 62-4-2547이 손으로 굵게 적혀 있다.

  52. p.52

    1958년 11월 18일, FBI 본부의 G. A. 니즈가 톨슨 부국장 앞으로 올린 메모다. 제목은 윌리엄 앨버트 로즈의 비행접시 사진 건이고, 피닉스 지국 SAC 맥마혼이 전날 오후 3시 21분에 본부로 보고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맥마혼의 보고에 따르면 사건의 시작은 1947년 4월 30일이다. 로즈는 그날 피닉스 지국에 찾아와 자신이 비행접시로 보이는 물체를 사진으로 찍었다고 신고했다. 다만 음화는 그날 가지고 오지 못했고, 다음 날 가져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실제로 음화를 들고 다시 나타난 것은 그해 8월 30일이다. 응대한 특수요원 J. 베일리 브라워는 로즈에게, 이 음화는 공군 정보 쪽에서 받아 가져가는 것이며 돌려받을 수 있을지조차 불확실하다고 분명히 일러두었다. 로즈는 그 조건을 알면서도 음화를 두고 갔고, 음화는 곧 군 측 대표인 조지 퓨게이트 주니어에게 넘어갔다.

    3년 가까이 지난 1950년 4월 17일, 로즈는 피닉스 지국에 다시 연락해 음화를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때도 사무실은 같은 답을 반복했다. 1947년에 이미 공군 정보용으로 넘긴 자료이고 회수는 어렵다, 굳이 알아보고 싶다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공군 특별수사국(OSI)에 직접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메모의 마지막 단락이 본부가 이 건을 다시 꺼낸 이유다. 1958년 그 시점에 애리조나 리퍼블릭 지가 그동안의 비행접시 목격담을 한 칼럼으로 묶으면서 옛 신문 스크랩을 근거로 로즈를 다시 인터뷰했고, 로즈는 기자에게 FBI 가 자기 사진의 음화를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SAC 맥마혼은 신문사에 무어라 답해야 할지 본부 지침을 구했다. 본부의 답은 사실관계를 그대로 알려주라는 쪽이었다. 즉 1947년 당시 음화는 공군 정보로 넘긴다는 양해 아래 FBI 가 받아간 것이고, 돌려줄 수 있을지는 그때부터 불투명했으며, 로즈는 그 조건을 알고 음화를 넘겼고, 자료는 즉시 공군 정보 측 대표에게 인도되었으니, 더 알고 싶다면 샌프란시스코의 공군 OSI 로 문의를 돌리라는 것이다. 본부는 이 처리를 국내정보국(Domestic Intelligence Division) 의 동의에 부쳤다.

    메모 하단에는 벨몬트와 존스에게 사본이 배포되었고, 손글씨로 "맥마혼과 직접 통화했음", "조치 내용에 동의함" 이라는 메모가 덧붙어 있다. 우상단 라우팅 체크리스트에는 톨슨·벨몬트·모어·니즈를 비롯한 본부 간부들의 이름이 인쇄되어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모어와 벨몬트 쪽으로 따로 회람하라는 손글씨 표시가 보인다. 좌하단에는 11월 25일 접수 스탬프와 사건번호 62-83894 의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53. p.53

    타자기 본문의 잉크가 종이 뒷면으로 비쳐 보이는 뒷장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거꾸로 비친 상태라 직접 읽을 수 없고, 대신 FBI 내부 접수 도장 다섯 개가 여백에 찍혀 있어 이 문서가 1958년 11월 18일부터 20일 사이 본부 안에서 돌아간 경로를 보여 준다. 톨슨 부국장실이 11월 18일 오전 11시 29분, 국장실이 같은 날 오전 11시 50분, 법무부 쪽이 같은 날 오후 2시 4분, 그리고 11월 20일 오전 9시 53분에 다시 한 번 접수 표시가 찍혔다. 별도로 오전 9시 4분에 존스 담당관 앞으로 "REC'D" 도장이 찍혀 있다.

  54. p.54

    1958년 12월 2일 후버 FBI 국장이 오클라호마시티 노스웨스트 14번가 1007번지에 사는 제임스 메이니에게 보낸 답장이다. 본문은 짧다. 11월 22일자 편지를 잘 받았으며, 오클라호마시티 지부 특수요원에게 메이니를 직접 만나보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다.

    진짜 무게는 편지 아래에 붙은 내부 지시다. 오클라호마시티 지부장에게 보내는 메모로, 메이니라는 인물의 신원이 FBI 파일에서 확인되지 않으니 요원을 보내 그가 언급한 정기간행물의 사본이나 정보를 즉시 확보하라고 적었다. 메이니에게는 FBI 는 그가 제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미확인비행물체에 관한 어떤 조사도 진행한 적이 없다 고 분명히 통보하라고 못 박았다. 다만 공군의 특별조사실 (OSI) 이 관련 연구를 한 적이 있으니 그쪽에 문의해 보라고 권하라는 우회 지시가 따라붙었다. 요청한 자료를 첨부한 보고는 12월 9일 안에 제임스 메이니 — 범죄기록부 조사 라는 표제로 올리라고 기한까지 박았다.

    맨 아래 NOTE 는 FBI 파일에서 메이니가 한 번 더 등장한다는 사실을 짚는다. 같은 주소의 지미 메이니 가 일반 FBI 자료를 요청하면서 자기 취미가 제보자용 편지지를 수집하는 것 이라고 적은 기록이 있다. 또 뉴욕 지부에 조지프 A. 벤더라는 같은 이름의 특수요원이 1951년 4월 9일자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도 함께 적혀 있는데, 메이니의 편지가 그 요원의 신원을 사칭하거나 도용하는 단서일 수 있어 같이 체크한 흔적이다.

  55. p.55

    FBI 내부 서신 한 장이 위아래가 뒤집힌 채로 스캔되어 있다. 본문은 두 단락 정도로 짧고, 종이가 누렇게 변색되고 글자가 흐려 정확한 옮김이 어렵다. 발신은 휴스턴 지부 SAC, 수신은 FBI 본부 디렉터로 보이며, 1956년 12월 5일 발송 mailed 스탬프와 1958년 12월 휴스턴·본부 접수 스탬프가 나란히 찍힌 점이 눈에 띈다. 페이지 상단에는 붉은 펜으로 쓴 파일 번호 344가 크게 들어가 있고, 그 옆에 연필로 Re-336 같은 cross-reference 표기가 보조로 따라간다. 마지막 줄에는 손글씨 서명이 들어 있지만 누구의 것인지 판독되지 않는다. 본문 자체보다는 routing 흔적이 더 또렷한 페이지다.

  56. p.56

    1958년 11월 22일, 오클라호마시티의 제임스 매니가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에게 보낸 편지다. 매니는 자신이 Interplanetary Intelligence of Unidentified Flying Objects (IICUFO) 라는 오클라호마시티의 한 단체에서 부국장 대행을 맡고 있으며, UFO 를 진지하게 조사하는 모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본론은 한 가지 확인 요청이다. 최근 UFO 잡지들에 FBI 특수요원들이 비행접시 조사자들, 특히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의 A. K. 벤더에게 더 이상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만류했다 는 보도가 실리고 있는데, 후버 본인이 FBI 국장이니 이 보도가 사실인지 아니면 단순한 소문인지 직접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페이지 오른쪽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 REC-35 62-83894-394 와 1958년 12월 4일 접수 도장, 그리고 CRIME REC. 라는 도장이 같이 찍혀 있어, 이 편지가 후버의 핵심 파일 (62-83894) 의 394번 단수로 편입됐음을 보여준다. 왼쪽 아래에는 2 thru copies typed 12-4-58 / Ack 12/2/58 같은 사무 처리 메모가 손글씨로 덧붙어 있다.

  57. p.57

    한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뒷면이라 앞면에 타자된 본문이 거울상으로 비쳐 보이고, 본문 자체는 읽을 수 없다. 페이지 하단에는 거꾸로 찍힌 FBI 뉴욕 지부의 회수 도장("RETURN TO FBI, DEC 22, NEW YORK 1")과 손으로 쓴 서명 또는 머리글자가 함께 보인다. 즉 이 페이지는 앞면 편지의 뒷면이면서, FBI 뉴욕 지부가 회수했다는 행정 흔적을 남긴 면이다.

  58. p.58

    1958년 12월 11일, J. 에드거 후버가 루이지애나 뉴이베리아의 일간지 The Daily Iberian 편집장 겸 발행인 M. A. 월콧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12월 3일자 편지와 동봉물을 잘 받았다고 알린 뒤, 내용이 다른 정부 기관의 주된 관심사에 속하므로 편지와 동봉물 사본을 공군부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 — 워싱턴 D.C. 사우스웨스트 4가-애덤스 드라이브의 템포 E 빌딩 — 에게 전달하겠다고 밝힌다. 그쪽이 문의에 답하기에 가장 적임이라는 이유다. 본문 아래 NOTE 는 FBI 내부용 메모로, 1957년에 플로리다 바토우의 한 시민이 "Aerial Phenomena Research Club"에 관한 비슷한 자료를 보내왔고 그때도 OSI 로 이송했다고 적어 둔다. 해당 그룹이 정부 기관이라는 단서는 FBI 파일에 없고, 발신인 본인과 신문 양쪽에 대한 기록도 없다고 덧붙인다. 좌측 상단의 파일번호 62-83894-395, 12월 12일자 발송 도장, 12월 11일 오후 2시 57분 FBI Reading Room 접수 표시가 회신의 처리 흐름을 보여 준다.

  59. p.59

    1958년 12월 11일 후버 디렉터가 M. Stanford에게 보낸 회신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Stanford가 12월 5일자로 보낸 편지와 동봉물을 잘 받았다는 짧은 답장이고, 본문 단락은 종이를 뚫고 비친 글씨로만 읽혀 자세한 내용까지는 판독되지 않는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FBI 디렉터실 접수 도장 두 개가 똑바로 찍혀 있는데, 하나는 1958년 12월 11일 오후 3시 50분 접수, 다른 하나는 다음 날 12월 12일 오전 9시 19분 법무부/FBI 접수이며 옆에 사건 번호 62-83894 계열의 파일 스탬프가 함께 따라온다.

  60. p.60

    1958년 12월 3일, 루이지애나 뉴이베리아의 일간지 The Daily Iberian 발행인 M.A. 월콧이 워싱턴 D.C. FBI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다. 월콧은 시애틀에 있는 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이라는 단체가 보내온 "보도자료"를 동봉하면서, 이 단체가 정상적인 조직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알고 싶다고 묻는다. 특히 일부 "비행 물체"가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고 적었다. FBI가 이 단체의 신뢰도에 관해 아는 바가 있다면 알려달라는 요청으로 마무리한다. 편지지 머리 부분에는 신문사의 마스트헤드와 발행인 직함이 인쇄돼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12월 5일 FBI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16이 별도로 찍혀 있다. 본문 위 "Gentlemen:" 옆에는 "Flying Saucers"라는 손글씨 분류 메모가 달려 있다.

  61. p.61

    타이핑된 편지 또는 메모로 보이는 한 페이지다. 상단에 기관 레터헤드와 오른쪽 위에 작은 공식 인장이 함께 찍혀 있고, 종이 위쪽에는 바인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본문은 중간 부분에 몇 단락 정도 분량으로 타이핑되어 있으나 해상도가 낮아 글자를 판독할 수 없다. 페이지 하단 왼쪽에는 붉은 보라색 잉크 도장이 찍혀 있는데, 내용은 식별되지 않는다. 종이 자체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약간의 얼룩이 있어 오래된 행정 문서로 보인다.

  62. p.62

    시애틀 핀들리가 5103번지의 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 본부가 보낸 양식 편지다. 발신은 전국 디렉터 밥 그리블이고, 양식 번호는 1957년 5월 1일자로 개정된 4호다. 편지는 1958년 10월 13일 수신처 지역 상공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가 목격되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알리며, 당시 목격자를 찾는 일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한다. 본부는 수신처가 자기 매체에 "이 시기에 항공 현상을 본 사람은 우리 사무실로 연락해 달라"는 짧은 기사를 실어 줄 수 있는지 정중히 요청한다. 그리블은 자기 단체를 미확인 비행 물체와 그 관련 현상의 성격을 조사하고 규명하는 비영리 조직이라고 소개한다. 페이지 아래에는 FBI 사건 파일 번호 62-83894-395 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63. p.63

    1958년 7월 1일자 시애틀 핀들리 거리 5108번지의 항공현상연구단(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 APRG) 본부가 낸 보도자료다.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는 행성 간 비행체」. APRG 는 목격자 진술을 모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흔히 미확인 비행 물체라 불리는 공중 현상의 상당수가 '지구 대기 바깥에 기원을 둔, 지능적으로 조종되는 비행체'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다. 이 결론은 1954년 1월 1일 시애틀에서 시작된 미확인 비행 물체 및 관련 사건 연구의 산물이다. 연구단의 전국 책임자 로버트 J. 그리블은 개별 목격 자체는 과학적 계측을 담고 있지 않지만, 5,000건이 넘는 사례를 통계적으로 처리해 보니 뚜렷한 패턴이 드러났고, 그 패턴이 가리키는 것은 오늘날 과학 지식의 범위를 벗어난 기술적 산물이라는 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연구에서 다룬 미확인 비행 물체의 상당수가 '다른 행성에서 온 비행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APRG 는 모든 국가 안보 기관이 미확인 비행 물체에 부여된 특별한 '비밀 등급'과 그동안 따라붙은 신비주의를 즉시 걷어내라고 강하게 권고한다. 페이지 하단 여백에는 FBI 사건번호로 보이는 손글씨 '62-[판독불가] 395'가 들어가 있어, 이 보도자료가 FBI 파일로 편철된 사본임을 알려준다.

  64. p.64

    1958년 12월 16일에 FBI 본부의 기록 요청 카드가 작성되었다. Name Check Unit과 Service Unit으로 회람되고, 결과는 4층 ISC 사무실의 Walter에게 돌려보내라고 적혀 있다. 조회 대상은 Robert K. Bender라는 인물 한 명이고, 검색 종류는 분석 검색·하위 분류 전체 참조 등 표준 옵션 칸이 마련되어 있다. 카드 아래 절반은 이 이름으로 조회된 FBI 파일 번호 목록이 차지하는데, 맨 위에 나오는 것이 62-83894-326, 즉 우리가 따라가는 비행접시 본 사건 파일의 326번 단수다. 그 뒤로 65-70335 계열, 100-345 계열, 100-50230, 61-7575, 100-78-32 계열의 여러 단수가 나란히 적혀 있어, Bender라는 이름이 FBI 안에서 비행접시 사건 외에도 여러 다른 파일에 흩어져 있었음을 한눈에 보여 준다.

  65. p.65

    FBI 내부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색인 카드 시스템에 조회해 달라고 부탁할 때 쓰는 '네임 슬립' 한 장이다. 조회 대상은 로버트 P. 린더(Robert P. Linder), 담당 감독자는 왁스(Wachs), 자리는 1525호실, 의뢰 날짜는 6월 10일로 기록되어 있다. 상단에는 '다수 참조(NUMEROUS REFERENCES)'라고 적혀 있어 이 이름이 한 건이 아니라 여러 건의 파일에 걸쳐 등장한다는 사실을 색인 담당자가 미리 표시해 둔 것이다. 조회 결과로 적힌 파일 번호 가운데 하나는 100-103024 시리얼 19로, 나머지는 'NR(기록 없음)'이다. 마지막 줄의 'Clear'는 이 이름이 그밖의 보안 관련 파일에서는 특이사항 없이 정리되었다는 색인실의 판단을 가리킨다.

  66. p.66

    FBI 기록조사부의 1958년 12월 10일자 레퍼런스 카드다. 조사 대상은 C. H. 맥(C. H. Mack)이며, 담당은 6523호실 네임체크 유닛, 반환처는 WALKS 1515다. 카드 하단의 파일넘버 칸에는 80-0-24735, 62-1396-2412, 62-103562, 62-103-562-2410, 105-94224 같은 일련번호가 손글씨로 줄지어 적혀 있고, 카드 맨 아래에는 "C. H. Smock is a Jr."라는 메모가 따로 달려 있다 — 동명이인 또는 철자 혼동을 잡아내려는 메모다.

  67. p.67

    1956년 12월 11일 FBI 기록국에 접수된 자료 조회 슬립이다. 조회 대상은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 (국제 비행접시 협회) 한 곳. 분석 검색 (Regular Request, Analytical Search) 으로 요청했고, 변형 표기 없이 정확한 명칭만 검색하도록 (Exact Name Only) 체크했다. 슬립은 파일 검토부 (File Review) 로 돌려보내도록 했고, Vacca 라는 담당자에게 라우팅됐다. 슬립 하단의 파일 번호는 62-83894-326 — FBI 본부 UFO 마스터 파일 62-HQ-83894 의 326번째 시리얼이다.

  68. p.68

    문서 뒷면으로 보이는 작은 종이 조각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손글씨로 적힌 숫자 계산만 남아 있다. 왼쪽에 10.00, 오른쪽에 10·5·300·200 같은 숫자가 세로로 쓰여 있고 아래쪽에 10.00 두 번이 더 보인다. 누군가 금액을 더하거나 빼며 메모한 흔적이다.

  69. p.69

    1958년 12월 9일, 오클라호마시티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 주제는 오클라호마시티 14번가 N.W. 1007번지에 사는 제임스 메이니라는 인물에 대한 조회로, 분류는 "연구 (범죄 기록)" 으로 잡혀 있다. 메모는 12월 2일자 국장 회신 (Bulet) 에 대한 답장 성격이다.

    12월 8일, 그라임스 특별수사관이 메이니의 집을 직접 방문해 그를 만났다. 수사관은 FBI 가 비행접시 조사를 막거나 방해한 적이 없으며, 미확인비행물체에 대한 조사 자체를 수행하지 않는다고 메이니에게 알렸다. 알고 보니 메이니는 열세 살 소년이었다. 그는 UFO 관련 문헌 가운데 FBI 가 일부 조사자의 연구를 못 하게 막았다는 식의 글을 읽었다고 말했고, 그 근거로 잡지 한 부를 보여 주었다. 제호는 "The Suserian Bulletin" 으로, 친구한테서 빌려 온 거라 수사관에게 넘길 수는 없었다.

    수사관이 직접 살펴본 결과, 이 잡지는 1958년 10월 15일자 3권 4호로, 웨스트버지니아 클락스버그 사서함 2228 의 그레이 바커가 편집·발행하고 있었다. 분량은 약 30쪽, UFO 관련 도서 서평과 광고가 여러 편 들어 있었다. 메모는 그중 20쪽의 사설을 문제 삼는다. 바커가 미국 서부의 한 연구자한테서 받았다는 편지를 옮긴 글이었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바커 씨께, 벤더를 입막음한 세 남자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자주 궁금해하셨을 텐데, 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지 아담스키도 똑같이 세 남자한테 입막음을 시도당했거든요. 아담스키 본인 말로는, 그 세 사람은 각각 FBI, 공군 정보국, 중앙정보국에서 왔답니다. 아담스키를 입 다물게 하려고 협박한 건 CIA 쪽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페이지 여백에는 손글씨로 "flying Discs", "1945", "Also see 100-395213" 같은 메모와 "62-83871-396" 파일 번호 도장, 1958년 12월 11일·19일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같은 사건이 다른 파일과 교차 참조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표시다.

  70. p.70

    1949년 11월 3일자 미국 정부 사무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는 역상 텍스트뿐이고, 정체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좌측 하단의 FBI 접수 도장과 그 위에 손으로 적힌 "Mr. Jones" 라우팅 표시뿐이다. 도장에는 1949년 11월 11일 오후 4시 25분에 미국 법무부 FBI 가 접수·기록·색인했다는 표시가 남아 있다.

  71. p.71

    OC 62-2044 문서의 두 번째 쪽이다. 앞서 언급된 편지는 UFO 관련 책을 써 온 인물이 쓴 것으로, 그의 출판인은 시애틀 핀들레이가 5108번지의 로버트 J. 그리블이라고 한다. 제임스 매니의 설명에 따르면 같은 편지가 영국에서 발간되는 한 출판물에도 실린 적이 있고, 거기서는 글쓴이 이름이 시애틀의 리처드 오그던으로 적혀 있다. 매니는 그 출판물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본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오그던의 편지에 나오는 '벤더'는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의 A. 벤더로, UFO 관련 연구를 해 오다 신원 미상의 남자 세 명에게 조사를 그만두도록 위협받았다는 인물이다. 매니는 벤더의 입을 다물게 한 그 남자들이 누구인가를 두고 그동안 추측이 무성했다고 말한다. 더해서 매니는 'The Saucerian Bulletin' 의 편집인 그레이 바커가 이 사건을 다룬 책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를 쓴 적이 있다고 전했다.

  72. p.72

    1958년 12월 7일, 애리조나 스코츠데일 7854 North Lema Land Drive 의 C. H. 머렉 주니어가 워싱턴 D.C. 의 FBI 본부에 보낸 편지다. FBI 는 12월 17일 접수했고 62-93894-398 번 단수로 묶었다.

    머렉은 자기가 "벤더 사건" 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시작한다. 최근 공중접시 미스터리를 연구하는 한 연구자가 FBI 가 이 사건에 개입했다고 말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FBI 에 직접 문의한다. 사건의 대략은 이렇다 — 1952년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서 앨버트 K. 벤더가 공중접시 수수께끼를 캐려고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 라는 민간 조사 기관을 차렸다. 조사 도중 벤더는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했고, 1953년 "나는 접시가 무엇인지 안다" 고 단언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세 남자" 가 그를 침묵시켰고, 벤더는 지금까지 그 "입막음" 에 대해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는다.

    머렉은 자기가 알아낸 바를 덧붙인다. 공중접시의 비밀은 세계를 위협하는 "끔찍한 지하 위협" 에 있고, 자기도 그 "위협" 에 깊은 관심이 있다. 그는 이 "끔찍한 지하 위협" 에 관해 매우 중요한 정보를 봤다고 적으면서, 그 "위협" 에 관한 이야기는 "지옥 같은 공포" 이며 일반 대중이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환상적인 상황을 드러낸다고 묘사한다. 자기가 벤더와 직접 연락할 수 있게 FBI 가 도와주면 정말 고맙겠다고 부탁한다.

    끝으로 그는 오랫동안 공해에서 발생한 "특정" 선박 비극과 "특정" 항공기 사고·실종에 관한 정보도 모아왔다고 말한다. 이 비극들이 그 "위협" 이 실제로 "존재" 한다는 증거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답을 기다린다는 말로 편지를 맺는다.

    오른쪽 상단의 라우팅 슬립에는 톨슨, 벨몬트(체크), 모어, 니즈, 파슨스, 로젠, 탬, 트로터, 설리번 등 FBI 고위 간부 이름이 늘어서 있고, 우측에는 12월 10일과 17일 접수 도장, 좌측 아래에는 1959년 1월 2일 도장과 "Mrs. Decker to Cabinet, Merged w/refile" 같은 손글씨 처리 메모가 남아 있다.

  73. p.73

    이 면은 앞면 편지의 뒷장이다. 종이 너머로 본문 타이프 글자가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읽을 만한 내용은 없고, 정작 이 면에서 의미 있는 것은 FBI 각 부서의 접수 도장들이다. 1958년 12월 10일 정오에 FBI 디렉터(후버) 사무실이, 같은 날 12시 45분에 벨몬트 부서가, 오후 2시 15분에 올슨 부서가 차례로 이 문서를 받아 도장을 찍었다. 그로부터 한 주 뒤인 12월 17일 오후 12시 26분에는 FBI 기록 보존(Years) 쪽 도장이 한 번 더 찍혔다. 같은 날 안에 디렉터에서 벨몬트, 올슨으로 사본이 돌고, 일주일 뒤 기록 부서가 받아 보관 절차로 들어간 라우팅의 흔적이다. 좌측 하단 여백에는 작은 손글씨 서명이 한 줄 들어가 있다.

  74. p.74

    1958년 12월 16일 후버 FBI 국장이 피닉스 지부 SAC 앞으로 보낸 지시 메모다. 사건 식별번호는 62-83894-398, 제목은 "앨버트 K. 벤더 — 정보 사안 (국적 정보)"으로 잡혀 있다. 본문은 애리조나주 스코츠데일 노스 로마 랜드 드라이브 7834번지의 C. M. 마크 주니어로부터 받은 편지 사본을 동봉한다고 알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국장은 FBI 파일에 "벤더 어페어"나 동봉된 편지 두 번째 문단에 나오는 "벤더 입막음"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못 박는다. FBI 파일에서 벤더와 연관 지을 수 있는 자료는 단 두 건. 하나는 1952년 10월 26일 벤더가 국제 비행접시국 (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 레터헤드로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L. H. 프람에게 보낸 편지로, 프람이 프랭클린 지부를 어떻게 조직하면 좋을지 제안한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같은 비행접시국이 발행한 1953년 1월호 〈Space Review〉 잡지다. 이 잡지는 전 세계 비행접시 목격담 기사와 단신을 잔뜩 싣고 있지만 안보상 의미는 없어 보인다는 것이 국장의 평이다.

    그다음 국장은 피닉스 지부에 구체적인 행동을 지시한다. 지부 파일에 마크와의 면담을 피해야 할 사유가 없는 한 즉시 마크에게 연락해 편지 접수를 구두로 확인할 것. 동시에 마크를 철저히 면담해 "벤더 입막음"에 관해 그가 가진 모든 자료를 받아내고, FBI가 "벤더 어페어"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고 주장되는지 캐낼 것. 만약 FBI가 실제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해지면 마크에게 그렇게 알려도 된다고 한다. 면담 결과는 12월 23일까지 본부에 도착해야 하며, 마크에게는 "FBI는 벤더의 소재를 알지 못하며 벤더 어페어 관련 기록도 없다"고 통보해도 무방하다고 못 박는다.

    메모 하단의 NOTE 란에는 12월 12일자 도나호우-벨몬트 커버 메모를 참조하라고 적혀 있고, 작성자는 JFW (이니셜) — 타이피스트 jas — 사본 6부 배포다. 우측 상단에는 벨몬트·도나호우·맥 (?) 3인에게 사본이 갔다는 라우팅 표시가, 좌측 여백에는 톨슨·보드만·벨몬트·모어·니즈·파슨스·로젠·탬·트로터·클레이턴·전화실·홀로먼·갠디로 이어지는 후버 직속 라우팅 리스트가 박혀 있다. 페이지 하단의 1958년 12월 16일 발송 도장과 1959년 1월 2일 접수 도장은 이 메모가 후버 국장 책상에서 곧장 떠나 약 2주 뒤 다시 본부로 회수된 흐름을 보여 준다.

  75. p.75

    1958년 12월 12일, S. B. 도나회가 A. H. 벨몬트 앞으로 보낸 FBI 내부 메모다. 제목은 '앨버트 K. 벤더 — 국적 정보국 참고 사항'. 도나회는 같은 달 7일에 C. H. 마크 주니어라는 시민이 보낸 편지를 정리해 보고한다. 마크는 '벤더 사건'에 관해 FBI 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자기가 최근 듣기로 FBI 가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고 한다고 적었다. 마크의 설명에 따르면 벤더는 1952년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에서 국제 비행접시국(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을 조직해 비행접시 수수께끼를 조사했고, 1953년에는 자신이 그 정체를 알아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검은 양복을 입은 세 남자'가 찾아와 벤더의 입을 막았고, 지금까지도 벤더는 그 '입막음' 사건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크는 또 비행접시의 비밀이 '세계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지하 위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이 위협에 관해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벤더와 직접 연락이 닿게 도와달라고 했다고 전한다. FBI 의 자체 파일에는 마크에 관한 정보는 없다. 벤더에 대해서는 1952년 10월 26일에 인디애나주 프랭클린의 L. H. 프람 앞으로 보낸 편지 한 통이 남아 있는데, 비행접시국 프랭클린 지부를 어떻게 조직할지 안내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같은 단체가 발간한 것으로 보이는 1953년 1월호 '스페이스 리뷰' 한 부도 보관되어 있다. 잡지에는 세계 각지의 비행접시 목격담을 다룬 글들이 실려 있지만 보안상 의미는 없어 보인다. 끝으로 도나회는 마크가 망상에 시달리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FBI 가 모르고 있는 사건에 FBI 가 관여하고 있다고 주장한 점, 그리고 벤더의 '입막음' 묘사가 갖는 함의를 고려할 때, 마크를 직접 면담해 그가 가진 정보를 모두 받아 수사 여부를 판단하자고 권한다. 동시에 그의 편지에 대한 답신도 보내자고 적는다. 피닉스 지부에 보낼 편지가 첨부되어 있으며, 우측 하단에는 62-83894-398 이라는 사건번호와 1958년 12월 17일 접수 도장이 있다.

  76. p.76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위쪽 가장자리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고, 앞면 잉크가 비쳐 흐릿한 글자가 보인다. 뒷면에는 FBI 벨몬트 접수 도장 네 개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찍혀 있는데, 1958년 12월 12일 오후 2시 22분, 12월 15일 오후 3시 44분, 12월 15일 오후 5시 9분, 12월 17일 오전 10시 1분에 차례로 접수되었음을 보여 준다. 같은 문서가 며칠에 걸쳐 FBI 내부 여러 책상을 거쳐 돌아갔다는 흔적이다.

  77. p.77

    1958년 12월 19일, 피닉스 지부장(SAC)이 FBI 국장에게 보낸 내부 메모. 제목은 앨버트 K. 벤더(Albert K. Bender) 건으로, 정보 수집·국적정보(Nationalities Intelligence) 분류다. 같은 날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의 클로드 해럴드 마크 주니어(Claude Harold Marck, Jr.)가 호출에 응해, 비행접시와 바다의 미스터리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자신의 취미라고 특별수사관 조지 홀링스워스(George Hollingsworth)와 윌리엄 M. 드류(William M. Drew)에게 진술했다. 본인이 글을 쓴 적이 있다면 모두 이 취미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마크는 도널드 E. 키호(Donald E. Keyhoe) 소령이 쓴 『Flying Saucers from Outer Space』와 『Flying Saucers Conspiracy』 두 권을 수사관들에게 권했다. 둘 다 뉴욕 매디슨가 383번지의 헨리 홀트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며, 키호는 미 해병대 퇴역 소령이다.

    이른바 ‘벤더 사건(Bender Affair)’에 대해서는, 그레이 바커(Gray Barker)가 1956년 4월 유니버시티 북스에서 펴낸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같은 해 6월 3쇄)를 권했다. 바커는 웨스트버지니아 클락스버그 사서함 2228번에 거주하며 마크가 비행접시 관련 서신을 주고받는 인물이라고 했다. 바커는 비행접시 사건을 조사하는 민간 조사기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크는 각지의 항만청장들과 미 해군에게도 편지를 보내, 승무원과 승객이 사라진 채 통제를 잃고 바다 위를 떠도는 배들과 관련된 ‘무서운 해저의 위협(dreadful underground menace)’에 대해 문의해 왔다고 했다. 바커도 이 주제에 관심을 보였다고 하나, 마크는 더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 못했다. 벤더 사건은 바커의 책에서 다루고 있다.

    메모 상단·우측 여백에는 여러 수기 메모와 분류 도장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사건번호 62-83894 옆에 빨간 글씨로 ‘399’가 적혀 있어, 본 사건 파일 내 일련번호임을 알 수 있다.

  78. p.78

    메모랜덤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위쪽에는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 헤더와 DATE·TO·FROM·SUBJECT 칸이 거꾸로 비쳐 보인다. 앞면에 타이핑된 본문 글자가 뒷장으로 배어 나와 거울상으로 흐릿하게 보일 뿐, 이 면 자체에 새로 적힌 내용은 없다. 다만 하단에는 빨간 잉크 "REC'D" 접수 도장과 시각이 찍힌 작은 PM 도장, 그리고 왼쪽 여백에 손글씨 메모 몇 줄이 더 있어 — 이 페이지가 한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라우팅되며 접수·시간 기록을 거친 자국을 남긴다.

  79. p.79

    FBI 사건 파일 FX 62-667 의 두 번째 면이다. 요원들은 마크의 집을 찾아갔을 때 본인이 없어, 누이 셜리 E. 마크 와만 단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이의 진술에 따르면 오빠는 콜로라도주 덴버에 살던 시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들어갔으며, 몇 달 전까지 복무 중이었다. 그 뒤로는 학업을 마칠 기회를 다시 얻지 못한 채 지금은 만 서른한 살이 되었다고 한다. 셜리는 부모와 함께 동네 쇼핑을 나갔다 돌아오는 오빠의 도착 장면을 묘사하면서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정작 마크 본인과 이야기해 보니, 요원들 눈에는 그가 비행접시와 바다의 미스터리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데 빠져 있다는 점이 분명해 보였다. 어머니는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고 FBI 에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두고 아들을 엄하게 꾸짖었다.

    요원들은 마크에게 미 육군 복무 기간을 물었지만, 그는 입대·전역 시점도 군번도 답하지 못했다. 대신 본인의 전역증을 내보였는데, 거기에는 1943년에 입대해 1946년 일등병 (Private First Class) 으로 전역했다는 사실, 군번 37-703-300, 이스트 하이스쿨을 2년 다녔다는 학력, 1925년 1월 21일 생이라는 생년월일이 적혀 있었다.

    마크와 대화를 이어 가 보니, 그가 FBI 에 편지를 쓴 유일한 이유는 앨버트 R. 벤더 의 현재 거처를 찾으려는 것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요원들은 마크 본인과 그 가족에게, FBI 는 벤더의 소재를 확인하는 조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어머니가 FBI 같은 기관에 편지를 보내는 일을 두고 아들을 그렇게까지 호되게 꾸짖었다는 점에서, 요원들은 클로드 해럴드 마크 가 비행접시와 바다 이야기로 가득한 몽상 속에 사는 '만성' 사례라는 결론을 내렸다. 요원들은 마크에게, 자신들의 방문은 FBI 가 그의 편지를 수신했다는 사실의 확인일 뿐이라고 알렸다. 이 건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

  80. p.80

    1958년 12월 19일, 피닉스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다. 사안 표제는 앨버트 K. 벤더 — 잡건, 정보 관련 (국적 정보). 12월 16일 본부 서한에 대한 회신이다.

    같은 날 애리조나 스코츠데일에 사는 클로드 해럴드 마크 주니어가 특별수사관 조지 홀링스워스와 윌리엄 M. 드루에게 직접 진술했다. 마크는 자기 취미가 비행접시 관련 정보와 바다의 미스터리를 함께 모으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 취미를 좇으려고 관련 문헌을 닥치는 대로 구한다고 했다. 마크는 두 수사관에게 도널드 E. 키호 소령이 쓴 Flying Saucers from Outer SpaceFlying Saucers Conspiracy 를 추천했다. 둘 다 뉴욕 17, 매디슨 383번지 헨리 홀트 출판사가 발행한 책이다. 키호 소령은 미 해병대 퇴역 소령이다.

    이른바 벤더 사건 에 대해서는 그레이 바커가 쓰고 University Books Publisher 가 1956년 4월에 초판, 같은 해 6월에 3쇄를 찍은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를 가리켰다. 마크는 바커가 웨스트버지니아 클락스버그 사서함 2228번지에 거주한다고 했고, 자기와 비행접시 관련 서신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말했다. 또한 바커가 비행접시 사건을 직접 조사하는 민간 조사 기관을 운영한다고 알려져 있다고 덧붙였다.

    마크는 자신이 항만 관리인 여러 명과 미 해군과도 서신을 주고받았다고 했다. 주제는 외양에서 통제를 잃고 표류한 채 발견된 여러 선박 — 그 승무원과 승객의 실종을 둘러싼 끔찍한 지하의 위협 이다. 바커도 이 주제에 관심을 보였지만 더 상세히 보강할 자료를 내놓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벤더 사건 은 바커의 책에 자세히 실려 있다고 마크는 정리했다.

    배포는 본부 2부 (항공우편), 피닉스 1부. 작성은 WMD/mdc, 총 3부. 문서철 번호는 62-73894-399 로 매겨졌다.

  81. p.81

    디트로이트 FBI 사무소가 본부로 올린 보고서 PX 62-667 의 두 번째 쪽이다. 요원들이 클로드 해럴드 마크의 집을 찾았을 때 본인은 부재중이었고, 여동생 셜리 E. 마크가 혼자 응대하면서 오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고 적었다. 셜리는 오빠가 콜로라도주 덴버에 살던 시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에 입대했으며, 몇 달 전 제대한 뒤로는 학업을 마칠 기회를 잡지 못한 채 현재 서른세 살이라고 말했다. 본인이 부모와 함께 동네 쇼핑을 갔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셜리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마크와 직접 대화를 나눈 요원들은 그가 비행접시와 바다의 미스터리에 관한 정보 수집에 집착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그의 어머니는 자기 모르게 FBI 에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요원들이 군 복무 기간을 물었으나 마크는 입대와 제대 시점, 군 번호도 답하지 못했다. 그가 내놓은 제대 서류에는 1943년 입대해 1946년 일등병(Private First Class)으로 제대했고 군번은 37-703-300, 동부 고등학교(East High School)를 2년간 다녔으며 1925년 1월 21일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마크와 대화한 끝에 요원들은 그가 FBI 에 편지를 쓴 유일한 이유가 앨버트 K. 벤더의 현재 거처를 찾기 위해서였음을 확인했고, 마크와 그 가족에게 본 사무소가 벤더의 행방을 추적하는 수사를 개시할 수 없다고 알렸다.

    어머니가 FBI 같은 기관에 편지 보내는 행위를 책망한 것으로 보아, 클로드 해럴드 마크는 비행접시와 바다 이야기로 짜인 공상 세계에 사는 "만성적"(chronic) 인물로 보인다고 보고서는 평가한다. 요원들은 본인에게 이번 방문이 FBI 가 편지를 수령했다는 통지 차원의 접촉이라는 점을 알렸다.

    본 건에 관해서는 추가 수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끝을 맺는다.

  82. p.82

    1958년 12월 30일, FBI 본부장이 피닉스 SAC (사건번호 62-667) 에게 보낸 지시문이다. 사안은 "앨버트 K. 벤더 — 잡건, 정보 사안 (국적정보)", 그리고 비행접시 관련. 12월 19일자 피닉스 측 보고에서 그레이 바커가 쓴 책 『그들은 비행접시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다』(University Books 출판) 가 언급됐다. 본부는 이 책을 한 권 입수하고자 하지만, 정부 청사 안 참고 서가에 출판사 위치 자료가 없다. 그래서 클로드 마크 주니어에게 다시 접촉해 출판사 정확한 주소를 받아오라고 지시한다. 만약 마크가 본인 소장본을 한 권 빌려주겠다고 자청하면 받아서 본부로 보내도 된다.

    뒷부분의 NOTE 는 사안 배경을 풀어둔다. 마크는 12월 7일자 편지로 본부에 "벤더 사건" 관련 자료를 요청해 왔다. 마크 설명에 따르면 벤더는 1952년 코네티컷에서 국제비행접시국 (IFSB) 을 세워 비행접시 미스터리를 조사하다가, 1953년 비행접시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발언했고, 이후 "검은 양복의 세 남자" 가 찾아와 벤더를 입막음했다는 것이다. 벤더는 오늘날까지도 이 "입막음" 건에 대해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는다. 마크는 최근 FBI 가 벤더 사건에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12월 19일 마크를 직접 면담한 결과, 마크는 사건에 대한 본인 지식을 모두 위 책 한 권에 양도하는 식으로 언급했다. 책 안에는 벤더 사건 외에도 본부 관심사로 분류할 만한 다른 정보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본부는 가능한 경로로 이 책을 입수해 본부 관점에서 검토하고자 한다.

    좌측 하단에 1958년 12월 30일 발송 도장, 우측 본문 옆 사건번호 62-83894 — 480 이 가필돼 있어 이 편지가 본부 UFO 종합 파일 안에 묶인 흐름이 확인된다.

  83. p.83

    1959년 1월 22일, FBI 본부의 디렉터가 시카고 SAC 앞으로 보낸 문서번호 62-83894-401 메모다. 사안은 앨버트 K. 벤더 — 출신 정보 관련 잡건. 본부는 그레이 바커가 쓴 책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비행접시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들)』의 사본을 한 부 확보하고자 한다. 책은 일리노이 주 에반스턴 뎀스터가 806번지의 University Books, Inc.에서 펴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시카고 사무소가 이 출판사에 접촉해 가능하면 책을 입수하라는 지시다. 메모 뒷부분의 NOTE는 사건 경위를 설명한다. 1958년 12월 7일자 편지로 애리조나 피닉스의 클로드 마크 주니어가 본부에 "벤더 어페어"에 대해 문의해 왔다. 마크의 설명에 따르면 벤더는 1952년 코네티컷에서 국제비행접시국(International Flying Saucer Bureau)을 만들어 비행접시 미스터리를 조사했고, 1953년에는 비행접시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주장했지만, 그 직후 "검은 양복을 입은 세 사람"이 벤더의 입을 막아 오늘날까지도 벤더는 그 "입막음" 건을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58년 12월 19일 마크에 대한 인터뷰에서 그는 "벤더 어페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위 책을 참고하라며 수사관들을 그 책으로 돌렸다. 본부는 이 사건과 관련된 정보 외에도 책에 다른 관심거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을 보고, 피닉스 사무소에 마크를 다시 인터뷰해 책을 입수하거나 출판사의 정식 이름을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마크는 출판사 이름을 "University Books Publisher"라고만 알려주고 주소는 밝히지 않았다. 1959년 1월 5일자 피닉스 사무소 회신에는 마크가 덴버로 이주했고 정확한 주소는 확보되지 않았지만 University Books, Inc.는 위 에반스턴 주소에 있다는 점이 언급되어 있다. 작성자 이니셜은 JFW(J. F. Wacks)이며 사본은 4부, 우측 상단에 본인 서명이 들어 있다. 좌측 여백에는 1959년 1월 26일자 우편실 접수 스탬프, 하단 중앙에는 1959년 1월 22일 발송 처리 스탬프가 함께 보인다.

  84. p.84

    1959년 1월 5일, 피닉스 SAC(특별수사책임자, 사건번호 62-667)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앨버트 K. 벤더 — 잡건, 정보 관련 (민족 정보)"이고, 1958년 12월 30일자 본부의 피닉스 앞 통신문에 대한 회신이다. 본문은 짧게 두 가지를 보고한다. 첫째, 클로드 마크 주니어와 그 가족은 콜로라도 덴버로 이주했고 정확한 주소는 확인할 수 없다. 둘째, 피닉스 공립도서관을 통해 확인한 결과, University Books, Inc. 는 일리노이 에반스턴 뎀스터가 806번지에 있다. 배포는 본부 2부, 피닉스 1부, 작성자는 WMD/hpw 다. 여백에는 "Flying Discs" 라는 손글씨와 함께 시카고 사무소를 가리키는 메모, 그리고 1959년 1월 9일자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401 이 함께 있다.

  85. p.85

    1953년 5월 26일 시카고 SAC 가 WFO 앞으로 보낸 'Office Memorandum'. 제목은 'ALBERT K. BENDER — INFORMATION CONCERNING (Internal Security)' 이고, 1952년 10월 30일자 본부 파일을 받아 후속을 보고하는 짧은 회신이다. 두 가지가 본문 전부다. 첫째, Teaneck 의 길버트 M. 론(Gilbert M. Roan) 과 그 가족은 콜로라도로 이주했고, 그 외 최근 주소는 확보하지 못했다. 둘째, 시카고 공공도서관 자료를 통해 'University Booklets, Inc.' 가 일리노이 주 에반스턴 540 Daugherty Street 에 있다고 확인했다. 사본은 뉴어크 두 부, 티넥 한 부로 분배했다. 우측 여백에 1953년 6월 14일 오전 10시 26분 본부 접수 도장, EX-127 라우팅 도장, REC'D 도장이 잇따라 찍혀 있다.

  86. p.86

    1959년 2월 9일자 후버 FBI 국장이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의 래리 W. 브라이언트에게 보낸 회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402. 후버는 브라이언트가 2월 1일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알리며, FBI 파일 안 정보는 기밀이고 공식 용도에만 공개한다는 원칙을 설명한다. 따라서 브라이언트가 원하는 자료를 FBI가 가지고 있다거나 없다는 식으로 추론하지 말아 달라고 덧붙인다. 다만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는 FBI 관할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 이 사안은 공군이 1차로 다루므로, 브라이언트의 편지 사본을 공군 감찰감실 산하 특수조사국장 (워싱턴 D.C. Building Tempo E, 4th and Adams Drive 소재) 에게 보내겠으니, 추가 문의는 그쪽으로 하라고 안내한다. 하단 라우팅 메모에는 노포크 지부에 사본 첨부 — 정보 공유용이며 FBI 파일에 브라이언트 관련 기록은 없다는 내용, 그리고 공군 측에는 0-14 양식으로 발송한다는 행정 메모가 붙어 있다. 좌측 상단에 '1 - Mr. Wacks / 1 - Watson' 사본 배포 표시, 좌측 아래에는 FBI 본부 부서장급 배포 명단 (Tolson, Boardman, Belmont 등) 이 인쇄되어 있다.

  87. p.87

    이 페이지는 앞장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가 종이를 통해 비쳐 거꾸로 어렴풋이 보이지만 독립적인 본문은 없다. 왼쪽 아래에 RECEIVED-TUCSON FBI FEB 7 1 58 PM '59 라는 투손 지부 접수 표시, 오른쪽 가장자리에 빨간 ORIGINAL FBI DEPT. OF JUSTICE FEB 9 1 58 PM '59 도장이 있어 1959년 2월 7일 투손 지부 접수, 2월 9일 본부 접수의 두 단계 라우팅 흔적이 같이 남아 있다. 오른쪽 위에는 4-3 빨간 메모와 D-186 식별자가 보인다.

  88. p.88

    FBI 가 래리 W. 브라이언트(Larry W. Bryant) 앞으로 보낸 답신의 2쪽이다. 노트 항목으로 정리된 한 문단에 따르면, 편지를 쓴 본인은 FBI 가 정부의 미확인비행물체 조사 사업에 참여해 왔다는 점을 알고 있고, 그래서 이 현상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다. 또한 FBI 가 미확인비행물체의 기동을 분석한 적이 있는지, FBI 측 대표자가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이 주제로 증언한 적이 있는지를 함께 물었다.

  89. p.89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 아놀드가 1002번지의 래리 W. 브라이언트가 1959년 2월 1일에 워싱턴 D.C.의 FBI 미확인비행물체 현장조사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브라이언트는 FBI가 정부의 UFO 조사 프로그램에 참여해 온 것으로 안다고 운을 띄운 뒤 세 가지를 묻는다. 첫째, 1952년 1월 1일부터 지금까지 사진이나 필름이 첨부된 UFO 목격 보고를 FBI가 몇 건이나 수집·평가·분석했는지. 둘째, FBI가 UFO의 기동 패턴에 대한 분석 자료를 받은 적이 있는지. 셋째, 의회에서 UFO 사안을 두고 비공개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FBI 측 인사가 그 자리에서 증언한 적이 있는지. 편지 좌상단에는 누군가가 파란 잉크로 "Flying Saucers -" 라고 적어 주제를 표시해 두었고, 하단 여백에는 1959년 2월 6일 사본 두 부를 작성해 한 부는 브라이언트에게, 한 부는 OSI 사무소에, 한 부는 노퍽 지국으로 발송했다는 처리 메모가 손으로 적혀 있다. 우측 하단에는 1959년 2월 10일 접수 도장과 62-83894 사건번호, EX-135 라벨이 빨간 잉크로 찍혀 있다.

  90. p.90

    1959년 12월 23일 오전 9시에 작성된 FBI 기록부(Records Branch)의 레퍼런스 조회 슬립이다. 파일 리뷰 섹션을 거쳐 1515호의 니콜스에게 반환하도록 지정돼 있고, 조회 대상은 "래리 W. 브라이언트(Larry W. Bryant)"라는 인물이다. 요청된 참조 유형은 전복(subversive)·비전복(nonsubversive)을 모두 포함한 모든 레퍼런스이며, 검색 범위는 지역 한정이나 정확 이름 일치 같은 제한 없이 진행됐다. 슬립 하단의 파일 번호 칸에는 T.S., Larry, W., ATL?, B., Supr v of Loc, T.W., T.B. 같은 단편 표기가 차례로 적혀 있고, 마지막 줄에는 "no refs searched"라는 결과가 손글씨로 남아 있다. 즉 FBI 가 래리 W. 브라이언트에 대해 전 인덱스를 조회했지만 일치하는 참조가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91. p.91

    1959년 2월 12일, 시카고 SAC(시카고 지부 특별 책임자)가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앨버트 K. 벤더 — 잡건 정보(국적별 인텔리전스)"이고, 시카고 지부 사건 번호는 62-5494, 본부 마스터 파일은 62-83894다. 1월 22일자 본부 회신에 대한 후속 답신으로, 본부의 요청에 따라 그레이 바커가 쓴 책 『그들은 비행접시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다(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한 부를 동봉해 보낸다고 알린다. 책의 출판사는 뉴욕 16구 4번가 404번지의 University Books, Inc.다. 끝에는 RUC(Referred Upon Completion, 사건 종결 후 회부)를 적었다. 사본 배포는 본부에 한 부(동봉본 포함), 시카고에 한 부로 모두 세 부이며, 작성 담당자 이니셜은 HHL:tmk다. 우측 여백에는 본부 접수 도장 "24 FEB 1959", 등록번호 REC-75와 EX-133, 그리고 본부 마스터 파일에 묶인 시리얼 번호 62-83894-403이 붉은 펜으로 또렷이 적혀 있어, 이 책 사본이 벤더 관련 핵심 파일의 403번 단수로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 준다. 좌측 여백 "ENCLOSURE returned to work"와 "ENCLS. BEHIND FILM" 표시는 동봉된 책 본체는 별도 보관소(필름 뒷장)로 옮기고 메모만 파일에 남겼다는 처리 기록이다.

  92. p.92

    FBI 뉴욕 SAC 가 시카고 SAC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잉크가 종이를 통해 비쳐 거꾸로 읽히는데, 뉴욕 사무소가 시카고의 요청에 따라 그레이 바커 (Gray Barker) 의 책 『They Knew Too Much About Flying Saucers』 한 부를 동봉해 보낸다는 한 단락짜리 송부 메모다. 책은 뉴욕 22번가 마운틴 애비뉴 109번지의 University Books, Inc. 에서 펴낸 것으로 적시되어 있고, 비행접시 일반 정보 (FLYING SAUCERS — INFORMATION CONCERNING) 라는 표제 아래 본부 파일번호 62-83894 가 달려 있다.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1956년 1월 16일과 18일 자 접수·송신 스탬프, EX-133 번호, 손글씨로 휘갈긴 날짜·약자가 함께 찍혀 있다.

  93. p.93

    1959년 4월 21일, 버밍햄 지국 SAC가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 제목은 항공현상연구회(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 관련 잡건. 앨라배마 애니스턴의 일간지 〈애니스턴 스타〉가 4월 2일 「비행접시 목격자, 자료 제보를 요청받다」라는 기사를 실었고, 시애틀 18번 구역 핀들리가 5108번지의 항공현상연구회가 비행접시를 본 사람들의 보고를 모으고 있다고 전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4월 3일, 앨라배마 포트 매클레란 주둔 올리버 R. 허텔 중령이 같은 주소—시애틀 핀들리가 5108번지—가 시애틀 주재 소련 영사 운전기사의 주소로 알고 있다고 알려왔다. 허텔은 포트 매클레란의 111 CIC 그룹 특수요원에게, 약 다섯 달 전 워싱턴 D.C. 육군성 화학병과장(Chief Chemical Officer)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러시아인들의 명단과 주소 목록을 훑어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버밍햄 SAC는 시애틀 지국에 그 주소에 누가 사는지, 그리고 소련 영사 운전기사와의 연관이 실제로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다. 우측 하단의 접수 도장은 1959년 4월 22일과 4월 30일, 파일 번호 62-23894-404로 기록됐다.

  94. p.94

    타이프된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글자가 좌우 반전된 채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다만 종이 가운데와 오른쪽 아래에 푸른색 접수 도장이 두 번 찍혔는데, 한쪽은 1959년 5월 29일 오전 9시 09분에 ESPIONAGE 계열로 접수되었음을 알리고, 다른 한쪽은 같은 ESPIONAGE-NAT 계통 접수 표시다. 본문은 반대쪽 면을 봐야 읽을 수 있다.

  95. p.95

    1959년 5월 5일, 시애틀 SAC 가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다. 사건번호 62-1729, 제목은 항공현상연구회 (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 — 기타. 4월 21일자 버밍엄 지부 서한에 대한 회신이다.

    시애틀 18번지 핀들레이가 5108번지는 로버트 그리블의 자택 주소이며, 그리블은 항공현상연구회의 이른바 전국 디렉터 다. 1957년 이 단체에 관해 조회가 들어왔을 당시 그리블은 자신이 시애틀 시 소방관으로 정규 근무하고 있고 미확인 비행물체 정보를 모으는 일이 취미라고 진술했다. 그리블의 설명에 따르면 항공현상연구회는 국내·국제 회원 합쳐 약 350명을 두고, 연 회비 5달러를 받아 정기 간행물 발행비와 단체 부대비용으로 쓴다. 비영리 단체이고, 자신처럼 비행물체 정보 수집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그리블은 설명했다. 단체는 시애틀에 본거지를 두고 있으며, 그리블은 다른 임원 명단도 제공했는데 모두 시애틀 거주자였다.

    맥코드 공군기지의 제20지구 OSI 도 이 단체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시애틀 지부 파일의 관련 정보는 모두 OSI 에 넘어가 있다.

    시애틀 시 안에는 소련 영사관이나 기타 소련 측 시설이 없다. 핀들레이가 5108번지가 시애틀 주재 소련 영사의 운전기사 자택과 관련 있다는 헤르텔 중령의 기억은 사실과 전혀 다르다.

    1958년 6월 이후 항공현상연구회의 활동에 관해 시애틀 지부에 들어온 정보는 없다.

    배포는 본부 2부·버밍엄 (참고)·시애틀 각 1부, 작성자 CHD:msd. 하단에는 1959년 5월 8일 접수 도장과 5월 15일 도장이 함께 있다.

  96. p.96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의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과 본문 단락이 종이 너머로 거꾸로 비쳐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새로 적힌 내용이 없다. 하단에는 1959년 5월 13일 오전 9시 16분 FBI 가 접수했다는 'RECEIVED' 스탬프와 'INTERNAL SECURITY - R2' 라벨, 그리고 작은 'REC'D' 표식이 함께 남아 있다.

  97. p.97

    1959년 5월 22일, 버밍엄 SAC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office memorandum이다. 사건번호는 100-0-6898, 제목은 Aerial Phenomena Research Group — Miscellaneous이고, 손글씨로 OR FLYING SAUCERS라는 부제가 덧붙어 있다. 버밍엄 지부가 4월 21일 본부로 보낸 서한과 시애틀 지부가 5월 5일 본부로 보낸 서한을 함께 가리키며, 시애틀 서한에 담긴 내용을 감안할 때 버밍엄은 이 건에 대해 추가 조사나 조치를 하지 않겠다고 보고한다. 지역 OSI(공군 특수수사대) 사무소에도 이 건을 통보했다고 적었다. 우하단에는 본부 접수 일자인 5월 25일, 분류번호 62-83894-406, 그리고 6월 8일자 접수 도장이 찍혔다.

  98. p.98

    본문이 있는 면이 아니라 뒷면이다. 앞면에 친 타이핑이 거꾸로 비쳐 흐릿하게 보일 뿐이고, 이 면 자체에는 접수 도장 세 개와 좌측 여백의 손글씨 파일 번호 정도가 남아 있다. 비쳐 보이는 앞면 글머리에 따르면 벨몬트 앞으로 간 사무 메모이고, 위스콘신의 항공 현상 연구 기관(APRO)과 르 데 바로스라는 인물, 샌디아 연구소, 포브스 공군기지가 등장하며, 프로비던스 지국이 사본을 본부로 보냈고 현지 OSI(공군 특수수사대) 사무실에 통보했다는 식의 처리 흐름이 잡힌다. 직접 찍힌 접수 도장은 1959년 3월 7일 오후 4시 50분 본부 접수, 같은 해 3월 10일 오전 10시 14분 본부 접수, 그리고 1959년 6월 8일자 파일 인입 도장이다. 좌측 여백에는 사건번호로 보이는 손글씨와 서명·이니셜이 끼적여져 있는데 흘림이 심해 정확히 읽기는 어렵다.

  99. p.99

    1959년 8월 31일, 후버 FBI 국장이 오클라호마시티 노스웨스트 34번가 3726번지 — 'Interplanetary Intelligence of Unidentified Flying Objects' 의 부소장 헤이든 휴스에게 보낸 짧은 답신이다. 후버는 8월 24일자 휴스의 편지를 받았으며, 도와주고 싶지만 비슷한 요청이 많고 공무가 바빠 응할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편지 아래 'NOTE' 에는 휴스 본인이나 그가 속한 단체에 대한 FBI 자료가 없다고 적어두었다. 좌측 상단 빨간 글씨 사건번호 62-83894-407 과 EX 109, 좌측 하단 '1959년 9월 1일 발송' 도장으로 보아, FBI 본부의 통상 회신 처리 흐름을 그대로 탔다.

  100. p.100

    1959년 8월 말 FBI 국장 후버에게 보낸 짧은 편지의 한 쪽이다. 본문은 색이 바래 거의 읽히지 않고, Dear Mr. Hoover 인사말과 Sincerely yours, 맺음말, 네다섯 줄의 타자 본문, 서명만 흐릿하게 남아 있다.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FBI 우편실과 국장실, 법무부의 접수 도장이 1959년 8월 31일부터 9월 초까지 차례로 찍혀 있어, 이 편지가 어떤 경로로 FBI 안을 통과했는지 보여준다. 오른쪽 위 여백에는 빨간 손글씨로 Ref 한 단어가 적혀 있고, 오른쪽 중앙에는 1980년 5월 16일자 빨간 사각 도장이 따로 찍혀 있다. 이 1980년 도장은 본문과 무관하게 훨씬 뒤의 재검토 흔적으로 보인다.

  101. p.101

    1959년 8월 24일, 오클라호마시티에 본부를 둔 '행성 간 미확인비행물체 정보(IIOUFO)'의 헤이든 하우즈가 워싱턴 법무부 연방수사국의 J. 에드거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단체의 일은 UFO 곧 미확인비행물체, 또는 비행접시 목격담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뒤, 9월 중에 같은 주제의 간행물을 펴낼 계획이라고 알린다. 그러면서 후버에게 시간이 있다면 이 간행물에 실을 글 한 편을 써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주제는 후버가 쓰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좋고, 타자로 친 350자 정도 분량이면 된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은 가까운 시일 안에 답을 듣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맺는다. 편지지 상단에는 단체의 임원진 명단 (디렉터 W. F. Rie[삭제], 부디렉터 H. C. Hew[삭제], 부디렉터 J. Mane[삭제]) 이 인쇄돼 있고, 우측에는 FBI 내부 회람용 후버 측근 명단이 작은 글씨로 따로 인쇄된 라벨로 붙어 있다. 본문 옆 여백에는 누군가 파란 펜으로 'Flying Saucers' 라고 한 줄 적어 두었다.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 (8월 26일·9월 3일) 과 사건번호 62-83894-407, 그리고 우측 세로로 'EXP-PROC' 도장이 함께 들어가 있다.

  102. p.102

    1950년 5월 25일 오전 10시 49분에 FBI 가 접수한 타자기로 친 한 장짜리 편지로 보인다. 페이지가 위아래로 뒤집힌 상태로 스캔되어 있어 본문은 거꾸로 보이고, 발신처 주소가 페이지 위쪽 (정상 방향에서는 본문 위)에 자리잡고 있고, 서명란이 오른쪽 아래에 있다. 여백에는 손으로 쓴 머리글자와 라우팅 표시가 보이고, 오른쪽 위 모서리에 FBI 접수 도장이 보라색으로 찍혀 날짜를 알린다. 페이지 회전과 스캔 상태 탓에 본문 문장 단위까지 또박또박 옮길 만큼 또렷하지는 않다.

  103. p.103

    1959년 10월 5일자 FBI 내부 메모. J. F. 왝스가 S. B. 도나호 앞으로 보낸 것이고,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비행접시)"다. 문서 번호는 62-83894이다.

    왝스는 먼저 FBI의 비행접시 정책 연혁을 정리한다. 1958년 10월 13일자 샌더스가 도나호에게 보낸 메모에 따르면, FBI의 정책은 비행접시 관련 사안을 직접 수사하지 않고 곧바로 공군에 사실을 넘기는 것이다. 이 정책은 1947년 10월 1일자 국 회보 제57호에서 처음 정해졌고, 1949년 3월 25일자 SAC 서한 제30호에서 다시 확인되면서 공군이 신고를 접수할 때 받아야 할 자료 항목까지 적시되었으며, 1952년 8월 29일자 SAC 서한 제83호에서 한 번 더 같은 정책이 재확인되었다. 가장 최근으로는 1957년 11월 12일에도 공군이 FBI에 "우리 쪽에 관심 있는 진전 사항이 생기면 알려주겠다"고 약속했고, 그 시점에는 현장 요원 핸드북이나 지침서에 비행접시 관련 조항을 새로 넣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왝스는 지난 1년 동안의 통계도 짧게 보고한다. 비행접시 관련 민원은 FBI로 한 건도 회부되지 않았고, 이 기간에 들어온 문의는 두 건뿐이었으며 두 건 모두 OSI(공군 특수수사대)로 넘겼다.

    조치 항목은 단순하다 — 참고 사항이다. 현재로서는 비행접시 관련 현장 지시나 FBI 핸드북·지침서 추가 삽입이 필요하지 않으며, 이 사안은 1960년 10월 5일경 다시 검토한다.

    사본 배포는 도나호와 왝스 각 1부. 우측 상단 여백에는 회람 명단(톨슨, 벨몬트, 디로치 등)에 체크 표시가 빼곡하고, 하단에는 1959년 10월 7일과 9일자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104. p.104

    앞면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너머로 본문 글자와 법무부 인장이 거꾸로 비쳐 보이고, 하단에는 두 개의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59년 10월 8일 모어(Mohr) 앞으로 들어온 FBI-법무부 접수 도장이고, 다른 하나는 같은 무렵 인종·국가내사 부서가 받았다는 표시다. 페이지 자체에 새로운 텍스트는 없다.

  105. p.105

    1960년 3월 9일 디트로이트 SAC 가 FBI 본부장 앞으로 보낸 에어텔(항공우편 전송)이다. 사건번호는 65-2677,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UFO) 사건, 신고인은 미시간 그랜드 블랑크의 조지프 페리. 디트로이트 측은 같은 날짜로 작성된 동일 제목의 레터헤드 메모 다섯 부와 〈디트로이트 타임스〉 당일자 신문 기사를 동봉해 보낸다고 알렸다. 같은 메모 한 부와 35mm 슬라이드 두 장은 미시간 마운트 클레먼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에 있는 제25 OSI 지구(IG)에 같은 날 별도 서신으로 전달했고, 공군 측에 슬라이드를 페리에게 돌려주도록 요청했다고 적었다. 동봉된 신문 기사와 관련된 언론 문의 사항도 전보로 본부에 따로 보고했다고 알리면서, 셀프리지의 OSI 에는 3월 9일 구두로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OSI 앞 표지 서한에는 디트로이트 사무소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예정이며 OSI 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조치를 위해 사건을 이관한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우상단에는 2015년 7월 8일자 기밀 해제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는 1960년 3월 24일 접수 도장과 사건 일련번호 62-83894-409 가 함께 표시되어 있다.

  106. p.106

    문서의 뒷면 스캔 페이지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종이 뒷면으로 비쳐 보이는 자주색 도장의 흐릿한 흔적과 함께 "MAR 17 1960", "51 MAR 24 1960", "MAR 18 1 30 PM '60", "REC'D" 같은 접수·라우팅 스탬프가 거꾸로 또는 옆으로 찍혀 있는 정도만 남아 있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누렇게 변색된 테이프 자국이 세로로 붙어 있어, 한때 이 종이가 다른 문서에 물리적으로 부착되어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107. p.107

    FBI 파일 봉투의 뒷면이다. 봉투 위쪽에 작은 라벨이 한 장 붙어 있고, 그 라벨에는 봉투 안에 든 자료의 정체가 짧게 적혀 있다. 레터헤드 메모 사본, 1954년 1월 8일자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사 스크랩, 그리고 앨버트 벤더·프랜시스 스완·비행접시·ESPIONAGE-X 라는 사건 키워드가 줄지어 있고, 파일 번호 62-83894 가 함께 적혀 있다. 라벨 아래쪽에는 손글씨로 서명과 날짜가 들어가 있고, 그 위로 작고 흐릿한 분류 표시 도장이 한 차례 찍혀 있다. 봉투 자체는 갈색 마닐라지에 위·아래로 마스킹테이프가 가로질러 붙어 있고, 위쪽과 아래쪽에 각각 구멍이 두 개·한 개 뚫려 있는 표준 FBI 사건 봉투 형태다.

  108. p.108

    1960년 3월 9일 디트로이트 FBI 사무소가 작성한 미확인 비행물체 관련 보고서다. 사건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조셉 페리, 미시간주 그랜드블랑 — 신고인"으로 적혀 있다.

    미시간주 그랜드블랑 에드워드 스트리트 3079번지에 사는 조셉 페리는 본인 요청에 따라 1960년 3월 5일 이 사무소 요원들과 접촉했다. 페리는 같은 거리 3075번지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며 30년 경력의 전문 사진가라고 밝혔다. 그는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달 사진을 찍는 취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1960년 2월 21일 새벽 1시쯤 달 사진을 몇 장 찍어 현상한 뒤 뷰어에 올려놓고 살펴보니, 한 장에서 망원경 끝과 달 표면 사이 어딘가에 비행물체로 보이는 것이 찍혀 있었다. 그 물체를 확대해 보니 아래쪽이 평평하고 타원형이며 전체 둘레에 형광색 빛이 돌고, 뒤로 증기 같은 자국이 이어져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 달 사진을 천 장 넘게 찍었지만 이런 모양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페리는 30년 사진 경력에 비춰 사진에 나온 것은 진짜 비행물체이지 카메라 고장이나 망원경의 흐려짐, 현상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 아니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그날 달 사진을 스무 장가량 찍었지만 대부분이 노출 부족이라, 제대로 노출된 두 장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폐기했다. 그는 남은 두 장을 모두 FBI에 넘겼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1985년 5월 17일 자로 "본 문서의 모든 정보는 기밀이 아님"이라는 비밀해제 도장과 담당자 서명, 사건번호로 보이는 215714가 함께 찍혀 있다.

  109. p.109

    보고서 두 번째 쪽이다. 페리는 35mm 레트나 독일제 카메라에 슈퍼 안스코 컬러 필름을 끼워 사진을 찍었으며, 최대 2,840배까지 확대할 수 있는 자작 망원경을 통해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비행 물체를 찍은 사진의 경우 망원경 배율을 350~400배 사이로 맞춰 둔 상태였다고 본인은 추정한다. 같은 정보는 제25 OSI 관구의 루이스 워이웨이드 특수요원에게도 이미 전달되어 있으며, 워이웨이드 쪽이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어떤 조치든 자유롭게 취하라는 단서가 함께 갔다. 디트로이트 FBI 사무소는 그 이상의 후속 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 마지막 문단은 정형 면책 문구다. 이 문서는 어떠한 권고나 결론도 담고 있지 않으며, FBI 의 소유물이자 수신 기관에 대여하는 형식이므로 기관 바깥으로 유출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110. p.110

    1960년 3월 7일 FBI 디트로이트 지부에서 작성한 보고서. 사건명은 'Unidentified Flying Object; Joseph Perry, Grand Blanc, Michigan – 신고자(Complainant)'.

    미시간주 그랜드블랭의 조셉 페리(3079 Edwards Street)가 본인이 요청해 1960년 3월 5일 FBI 요원과 만났다. 페리는 같은 거리 3075번지에서 피자 가게(Pizza House)를 운영하며 직업 사진사로 30년을 일했다고 진술했다. 취미로 직접 만든 망원경을 통해 달 사진을 찍는데, 1960년 2월 21일 새벽 1시경 달 사진을 몇 장 찍어 현상한 뒤 뷰어에 올려 보다가 한 장에서 망원경 끝과 달 표면 사이 어딘가에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확대해 보니 바닥은 평평하고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며, 물체 둘레에 형광빛 같은 빛이 감돌고, 뒤에 증기 자국이 따라붙어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달 사진을 천 장 넘게 찍어왔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이라고 했다.

    페리는 30년 경력을 근거로, 이 사진에 찍힌 것이 실제 비행 물체이지 카메라 오작동도, 망원경의 번짐도, 필름 현상 과정에서 생긴 자국도 아니라고 확신했다. 그날 달 사진을 스무 장가량 찍었으나 대부분 노출이 부족해서 노출이 잘 잡힌 두 장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폐기했고, 그 두 장 모두 FBI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문서 하단의 붉은 도장은 1985년 5월 4일자 비밀해제 처리 표시다.

  111. p.111

    FBI 디트로이트 사무국이 작성한 보고서 2쪽이다. 페리는 35mm 레트나 독일제 카메라에 슈퍼 안스코 컬러 필름을 끼워 사진을 찍었다고 진술했고, 사진은 최대 2,640배까지 올릴 수 있는 자작 망원경을 통해 촬영했다. 비행 물체가 찍힌 사진을 찍을 당시 망원경 배율은 350~400배 사이로 맞춰져 있었다고 추정한다. 이 진술은 25공군특수수사대(OSI) 지구의 루이스 월라운스 특별요원에게도 같은 내용으로 통보됐고, 월라운스 측에는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조치를 위해 정보를 넘겨준 것이며 디트로이트 FBI 사무국은 추가 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문서 말미에는 이 보고서가 어떤 권고나 결론도 담고 있지 않으며 FBI의 자산으로서 수신 기관에 대여한 것일 뿐, 본문과 내용은 외부로 배포하지 말라는 통상 단서를 붙였다.

  112. p.112

    1960년 3월 9일 디트로이트 FBI 사무소가 작성한 보고서다.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 — 조셉 페리, 그랜드 블랭크, 미시간 — 신고인〉. 미시간주 그랜드 블랭크 에드워즈 스트리트 3079번지에 사는 조셉 페리가 본인 요청으로 1960년 3월 5일 디트로이트 사무소 요원들과 만났다.

    페리는 같은 주소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직업 사진가로 경력은 30년이다. 취미는 자가제 망원경으로 달을 찍는 것이다. 1960년 2월 21일 새벽 1시쯤 달 사진을 여러 장 찍은 뒤 현상해 뷰어로 들여다보다가, 한 장에서 망원경 끝과 달 표면 사이 어딘가에 떠 있는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확대해 보면 바닥은 평평하고 전체적으로 타원형이며, 물체 둘레에는 형광 같은 빛이 둘러쳐져 있고, 뒤로는 증기 자국이 길게 늘어져 있어 움직이고 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달 사진을 천 장 넘게 찍어 왔지만 이런 모양은 처음이라고 했다.

    페리는 사진 경력 30년에 비추어 사진 속 물체가 진짜 비행 물체라고 확신했다. 카메라 오작동도, 망원경 위 얼룩도, 현상 과정에서 생긴 흔적도 아니라고 했다. 그날 달 사진 스무 장 정도를 찍어 현상한 뒤 노출이 제대로 된 두 장만 잘라 두고 나머지는 폐기했다. 그는 그 두 장을 FBI에 넘겼다.

    좌측 상단 FBI 인장 아래에는 1982년 5월 7일 비밀해제 처리되어 모든 내용이 비밀 등급에서 해제되었음을 알리는 도장이 찍혀 있다.

  113. p.113

    보고서 두 번째 쪽이다. 페리는 35mm 레트나(Retna) 독일제 카메라에 슈퍼 안스코 컬러 필름을 끼워 사진을 찍었다고 진술했다. 사진은 자신이 직접 만든 망원경을 통해 찍었는데, 이 망원경은 최대 2,840배까지 배율을 올릴 수 있다. 비행 물체가 찍힌 사진을 촬영한 순간에는 망원경 배율을 350~400배 사이에 맞춰두었다고 추정한다.

    이 진술은 같은 정보를 이미 전달받은 제25 공군특수수사대(OSI) 관할의 특수요원 루이스 베이바인(Louis Veiwein)에게 제공된 내용과 일치한다. 베이바인에게도 같은 정보가 그가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제공되었으며, FBI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더 이상의 후속 조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 문단은 표준 면책 문구다. 본 문서에는 어떠한 권고나 결론도 담겨 있지 않으며, FBI 의 소유물로서 수신 기관에 대여하는 것일 뿐, 문서 자체나 그 내용을 수신 기관 바깥으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

  114. p.114

    1960년 3월 9일 미시간 디트로이트 FBI 사무실에서 작성한 보고서로, 그랜드블랑 거주 조셉 페리의 비행물체 신고를 다룬다. 페리는 3월 5일 본인 요청으로 FBI 요원과 접촉했다.

    페리는 그랜드블랑 에드워즈가 3079번지에서 피자집을 운영하며 사진 경력 삼십 년의 전문 사진사라고 진술했다. 취미로 자작 망원경을 통해 달 사진을 찍어 왔는데, 2월 21일 오전 열한 시쯤 달을 촬영한 필름을 현상해 뷰어로 살펴보던 중 한 장에서 망원경 끝과 달 표면 사이 어딘가에 비행 물체로 보이는 무엇이 찍혀 있었다고 했다. 확대해 보니 물체는 바닥이 평평한 타원형이고, 전체에 형광빛이 감돌며, 뒤로 증기 자국 같은 흔적이 이어져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고 한다. 천 장 넘게 달을 찍어 왔지만 이런 물체는 처음 봤다는 말도 덧붙였다.

    페리는 삼십 년 사진 경력에 비추어 사진에 찍힌 것이 실제 비행 물체이며, 카메라 오작동도, 망원경 렌즈에 묻은 얼룩도, 현상 과정의 결함도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날 달 사진을 스무 장가량 찍었는데 현상해 보니 대부분 노출 부족이었고, 제대로 노출된 두 장만 잘라 두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했다. 그 두 장을 FBI에 함께 제출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1985년 5월 7일 비밀해제 처리 도장과 사건번호 245774 표기가 따라붙는다.

  115. p.115

    FBI 보고서의 2쪽이다. 페리는 35mm 레트나 독일제 카메라에 슈퍼 안스코 컬러 필름을 넣어 사진을 찍었으며, 자작 망원경을 통해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이 망원경은 최대 2,840배율까지 끌어올릴 수 있고, 비행 물체가 찍힌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350~400배율 사이에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같은 정보는 제25 OSI 지구의 루이스 홀웨이드 특수요원에게도 전달되었고, 그쪽도 적절한 조치가 무엇이든 알아서 판단하라는 차원에서 받았으며 FBI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더 이상 후속 조치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마지막 문단은 정형화된 FBI 배포 제한 문구로, 본 문서에는 어떠한 권고나 결론도 담겨 있지 않으며 문서 소유권은 FBI 에 있고 수신 기관에 대여된 것이므로 해당 기관 밖으로 내용물을 유포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는다.

  116. p.116

    1960년 3월 9일 오후 4시 31분, 디트로이트 SAC 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긴급 전문이다. 문서번호 65-2677, 분류는 62-83894-410. 사건명은 "미확인 비행 물체, 조셉 페리, 미시간 그랜드 블랑 — 신고인".

    같은 날짜 디트로이트 타임스에 미시간 그랜드 블랑 발 기사가 실렸다. 조셉 페리라는 사람이 찍은 사진 슬라이드를 FBI 플린트 지사가 넘겨받았는데, 달을 배경으로 비행접시 모양 물체가 실루엣처럼 떠 있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는 FBI 가 이 사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페리 본인은 그랜드 블랑 에드워즈 가 3079번지에 살며, 사흘 전인 3월 4일 플린트 지사에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는 30년 경력의 프로 사진가이고,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달을 찍는 게 취미라고 했다. 2월 21일 새벽 1시쯤 달을 촬영했는데 현상해 보니 한 장에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이 찍혀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피자 가게도 운영하는데, 그 가게 손님들이 사진 속 물체가 비행접시 같다고 했다고 한다. 언론에 정보를 흘린 쪽도 페리 본인이었다.

    페이지는 "END PAGE ONE" 으로 끝나며, 우상단 배포 리스트에는 톨슨·벨몬트·로젠 등 후버 직속 라인업이 빠짐없이 들어가 있다.

  117. p.117

    FBI 내부 라우팅 슬립의 뒷면이다. 분홍색 종이에 1950년 3월 9일부터 11일 사이 여러 부서 — 톨슨 부국장실, 디렉터 사무실 벨몬트 라인, 탬 부국장 라인의 FBI 연구소부 — 가 같은 문서를 받았다는 접수 도장이 사방으로 찍혀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도장 사이로 앞면의 글씨가 비쳐 흐릿하게 보인다. 한 문서가 사흘 사이 FBI 본부의 핵심 결재선을 거의 모두 통과했다는 흐름이 도장만으로 드러난다.

  118. p.118

    전문 두 번째 장. 디트로이트 레지던트 요원실은 언론 문의를 받고, 페리가 슬라이드 두 장을 FBI에 넘겼으며 그것이 적절한 당국으로 전달될 것이라고만 답했다. 디트로이트 타임스 측에는 오늘, FBI가 슬라이드 관련 조사를 수행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것이며, 관련 정보는 미시간주 셀프리지 비행장의 공군으로 넘겼다고 안내했다. 자료 자체는 셀프리지 공군기지의 제25 특수수사대(OSI) 분견대로 넘어갔고, 그쪽에서 적절한 공군 관계자에게 다시 전달할 예정이다. 세부 사항은 에어텔로 뒤따른다. 본문 위쪽에 누군가 손으로 "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S AIR FORCE BASE"와 "AIR FORCE BASE"라는 약어 풀이를 끼워 적어 두었고, 마지막 줄의 사본 통보 대상은 벨몬트 차장이다.

  119. p.119

    분홍색 종이의 뒷면 스캔으로, 앞면 텍스트가 비쳐 보이고 하단에 1950년 3월 9일 오후 4시 37분 FBI 법무부 텔레타이프 접수실에서 찍은 접수 도장이 거꾸로 보인다. 본문 자체는 이 면에 직접 적혀 있지 않다.

  120. p.120

    1960년 3월 29일 디트로이트 FBI 지부 책임자(SAC, 사건번호 65-2677)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에어텔 항공우편이다.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 미시간주 그랜드 블랑 거주 조셉 페리, 진정인"이고, 3월 27일자 데에어텔과 3월 9일자 데텔의 후속 보고에 해당한다.

    3월 27일자 미시간주 플린트의 「플린트 저널」 13면에 앨런 R. 빌헬름 기자가 페리를 인터뷰한 기사가 실렸다. 디트로이트 지부는 그 기사 내용을 본부에 그대로 옮겨 보고한다. 기사에 따르면 페리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관련해 편지와 전화를 50건 넘게 받았다. 그중 한 통은 항공현상 전국조사위원회(NICAP)에서 온 것이었고, 거기에는 "사진 증거 사례에 대한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당신이 그 사진을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는 문장이 있었다. 페리는 신문사에 자신이 아는 것이라곤 사진이 공군 손에 있다는 사실뿐이라고 말했고, FBI는 그저 "적절한 곳에" 있다고만 했다고 전했다. 기사는 이어 페리가 지난주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 슬라이드의 행방을 알 수 없다며 돌려받을 수 있을지 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적었다. 페리는 "돌려받지 못한다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부가 이건 너무 일급비밀이라 곤란하다고 알려주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사진은 35mm 슬라이드로, 디트로이트 지부가 3월 9일자 서한으로 셀프리지 공군기지(SAFB) 공군특수수사대(OSI)에 넘긴 자료다. 지부는 이 사실을 OSI 측에도 통보했고, 신문 기사 사본을 포함한 추가 정보를 곧 송부하겠다고 덧붙인다.

    문서 하단에는 1960년 3월 29일 접수 도장과 사건번호 62-83894-411이 찍혀 있고, 빨간색 AIRTEL 도장과 손글씨 메모가 여백에 남아 있다.

  121. p.121

    1960년 3월 31일, 디트로이트 SAC가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항공 전문이다. 사건번호 65-2677, 제목은 "미확인 비행체 — 조셉 ◾◾◾ 그레이, 미시간 그랜드 블랑 — 진정인" 이고 옆에 누가 손으로 "Flying Saucers"라고 덧붙여 두었다. 3월 28일자 디트로이트 전문에 첨부할 신문 기사 한 부를 동봉한다는 내용이다. 그 기사는 미시간주 플린트에서 발행되는 〈Flint Journal〉 3월 27일 일요일자에 앨런 R. 윌헬름이 쓴 것이고, 같은 기사 사본은 미시간주 마운트 클레먼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 OSI(공군 특수수사대)에도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3월 9일 항공 전문·텔레타이프에서 보고한 문의 외에 언론이나 라디오로부터 추가 문의는 받지 않았다고 밝힌다. 끝부분에서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이 보고는 본부의 참고용일 뿐이며, 공군 OSI 측에 우리가 보유한 사실 전부를 이미 넘겼으므로 본 사무소에서 더 이상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정리한다. 본부 접수 도장은 1960년 4월 1일, FBI 사건번호 62-83894-412로 편철되었고, 좌측 하단의 별도 도장은 1985년 5월 22일 "수록된 모든 정보는 비밀해제됨"으로 격하 처리되었음을 알린다.

  122. p.122

    이 페이지는 앞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종이를 통해 비치는 도장과 글자가 거꾸로 보인다. 하단에 'MR JONES', 'RECEIVED F.B.I. MAR 1 2:32 PM '50', 'APR 7 1960' 접수 도장과 우측에 'MAR 3 17:16 PM '51 REC'D'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는 것이 비쳐 보이고, 가운데에는 빨간 글씨로 보이는 흔적이 희미하게 비친다. 상단 가장자리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다.

  123. p.123

    FBI 디트로이트 지부가 1960년 3월 27일자 플린트 저널 일요판 12면 2~5단에서 잘라 붙인 신문 스크랩이다. 앨런 E. 빌헬름 기자가 쓴 기사 제목은 "그랜드 블랑크의 한 남자가 아이크 대통령에게 청원" / "비행접시 필름이 공중에 떠 있다". 기사는 워싱턴 D.C. 펜실베이니아 가의 좋은 주소에 있는 한 중후한 신사가 편지 한 통을 집어 들고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인터컴 버튼을 누르며 "화이트 공군참모총장과 후버 FBI 국장에게 연락해서 조 페리에게 비행접시를 돌려주라고 해" 라고 지시했을 법한 장면을 농담조로 그리는 가상의 도입부로 시작한다. 실제로 그런 장면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랜드 블랑크 타운십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페리가 백악관에 편지를 보낸 건 사실이라고 기자가 이어 쓴다. 페리는 에드워드 가 5079번지 "페리스 피자 그릴" 의 운영자이고, 가게가 해 진 뒤에 열기 때문에 피자를 굽는 사이사이 자가 제작 망원경으로 달을 찍는다고 한다. 지난달 추운 밤 새벽 1시쯤 찍은 컬러 슬라이드 한 장에 보름달을 배경으로 "접시 같은" 물체가 떠 있어서 그를 당혹시켰다. 가게 손님들에게 벽면 스크린으로 영사해 보여 주니 대부분 "비행접시처럼 보인다, 아니면 사람들이 흔히 비행접시일 거라 생각하는 모양" 이라고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페리가 신문 기사를 읽었고… 라는 데서 이 페이지의 본문은 끊긴다. 오른쪽 여백에는 디트로이트 지부 신문 클리핑 양식이 붙어 있고, 인쇄된 디트로이트 프리프레스·디트로이트 뉴스·디트로이트 타임스 칸은 비어 있는 반면 그 아래에 손글씨로 "Flint Journal / Editor: Ralph A. Curry" 가 더해져 체크가 되어 있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는 사건 번호 62-23894-412 와 "ENCLOSURE" 라는 수기 표기가 있다.

  124. p.124

    신문 스크랩 한 장이 페이지 가운데에 테이프로 붙어 있다. 사진 속 남자 한 명이 눈밭에 세워 둔 큰 망원경 옆에 서서 접안부를 들여다보고 있고, 캡션은 "Joe Perry and His Telescope (Journal Photo)"다. 캡션 아래 본문은 일부만 읽히는데, 공군이 미확인 비행체에 관한 모든 신고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해당 보고가 워싱턴의 공군 사무국으로 송부되었다는 취지, 그리고 페리 본인에게도 자료가 전달되어 그가 UFO 조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식의 설명이 이어진다. 스크랩 위쪽 모서리에는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보인다.

  125. p.125

    디트로이트 신문 기사 스크랩 두 조각이 한 페이지에 같이 붙어 있다. 피자 가게 주인 페리가 비행접시로 보이는 물체를 찍었다는 슬라이드 한 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뒤, 그에게는 편지와 전화가 서른 통 넘게 들어왔다. 그중 한 통은 NICAP, 곧 항공현상조사 민간위원회에서 온 것이었다. 위원회는 디트로이트 신문에서 페리의 사진 이야기를 보고, 사진 증거를 둘러싼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그가 그 사진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사진을 일반에 공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페리가 아는 것이라곤 사진이 공군 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뿐이었고, FBI는 "믿을 만한 곳"에 있다고만 답했다. 그래서 페리는 지난주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 자기 슬라이드의 행방을 알 수 없으니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부탁했다. 페리는 사진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정부가 "극비"라고 말해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에서 사진을 돌려받기 위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단체들의 제안도 있었고, 사진을 사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는 "팔지 않는다"고 답했다. 사진 취미는 돈이 많이 든다며 약간의 수익이 나쁘진 않겠다고 하면서도, 돌려받기만 하면 모두의 것이 될 거라고 말했다. 한 전국 잡지에서 사진을 쓰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다고 한다. 페리는 자기 슬라이드에 어떤 비행체가 찍혀 있다고 확신했고, 피자 광고에 비행접시를 쓰면 어떻겠냐는 식의 제안에는 발끈했다 — 자기 피자는 그 자체로 충분한 광고라고 잘라 말했다. 슬라이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판정하는 데 전문가가 오래 걸릴 일은 아니라고도 했다. 정부도 조작 사진을 곱게 봐주지 않을 거고, 사진을 꾸미려는 사람은 망신만 당하리라는 것이다. 페리는 망원경 너머로 그 물체를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슬라이드를 직접 현상하는 과정에서야 뭔가 찍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가 본 물체는 옆에서 찍은 것처럼 보였고, 청록색 광채에 둘러싸인 채 움직이는 듯한 인상이었다고 한다. 페리는 자기에게 연락한 사람들이 자기보다 그 사진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같다며, 장거리 전화를 걸어 자기도 비행접시를 타본 적이 있으니 친구들에게 보여줄 사진 한 장을 달라던 남자 얘기도 꺼냈다 — 그 사람의 말은 진지하게 듣지 않았다고 했다. 비슷한 사진을 찍게 될 다른 사람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 복사본을 만들어 두라"고 답했다.

  126. p.126

    1960년 4월 6일자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공군 특수조사실 방첩과장에게 보낸 메모. 사건명은 미확인 비행 물체 / 미시간주 그랜드 블랑 거주 조셉 페리 제보 / 국적 정보 부류. 후버는 먼저 같은 사건을 다룬 1960년 3월 9일자 디트로이트 발 부내 메모를 참조하며, 그 사본은 이미 공군 쪽에 넘긴 상태라고 밝힌다. 이어서 워싱턴 D.C. 코네티컷 애비뉴 1536번지에 있는 전국 항공 현상 조사 위원회 (NICAP) 의 사무총장 리처드 홀이 1960년 3월 21일자로 FBI 에 편지를 보냈음을 알린다. 홀은 1960년 3월 9일자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사 한 부를 동봉하면서 세 가지를 물었다 — FBI 의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정책에 변화가 있었는가, FBI 가 공군을 위해 UFO 증거를 수집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기사에 실린 사진이 FBI 연구소나 FBI 차원에서 분석된 적이 있는가. 후버는 이미 1958년 9월 26일자 답신에서 같은 단체에 FBI 는 UFO 사건을 직접 수사하지 않으며, 다만 접수된 자료는 공군에 넘긴다 고 못박은 바 있다고 환기한다. 그리고 1960년 3월 25일자 답신에서도 홀에게 UFO 정책에는 아무 변경 사항이 없다 고 회신했다고 적는다. 본문은 그 답신 내용을 이어 설명하는 도중 다음 쪽으로 넘어간다. 페이지 왼쪽에는 모든 정보 비밀해제 — 1977-2-17 도장이, 하단에는 1960년 4월 6일 발송·4월 21일 접수 도장이, 오른쪽 여백에는 부국장급 라우팅 명단 (톨슨·모어·파슨스·벨몬트·드로치·로젠·태머·설리번 등) 이 함께 찍혀 있다.

  127. p.127

    어느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가운데로 보이는 본문 글자는 앞면 텍스트가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읽히는 잉크 자국일 뿐, 이 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대신 여백 곳곳에 FBI 내부 접수·라우팅 도장이 찍혀 있는데, 1960년 4월 7일 오전 9시 47분 디렉터 사무실 접수, 같은 날 오전 10시 45분 메일룸 접수, 그리고 4월 15일자 접수 흔적이 함께 보인다. 별도의 RECEIVED LIAISON FBI 도장도 같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FBI 내부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회람된 라우팅 슬립 또는 회신 사본의 뒷면임을 짐작하게 한다. 상단의 붉은 표기는 식별이 어렵다.

  128. p.128

    FBI 본부가 1960년 4월 무렵 작성한 답신 두 번째 장으로, 공군 특별수사국(OSI) 앞으로 보내는 본문과 디트로이트 SAC(특별수사관 책임자) 앞으로 첨부한 내부 메모가 한 페이지에 같이 실려 있다.

    본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FBI 는 공군을 대신해 미확인 비행물체에 관한 증거를 수집하지 않으며, 다만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정보를 제공해 오는 경우에는 받아 둔다.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사에 언급된 사진은 FBI 연구소나 다른 어느 부서에서도 FBI 의 목적으로 검토한 바 없다. 다만 조지프 페리에게서 받은 사진 두 장은 공군 측에서 적절히 판단해 처리하라는 의미로 공군 대표에게 전달했다고 홀에게 추가로 알렸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1960년 3월 31일에 법무부가 페리가 같은 해 3월 21일에 대통령 앞으로 보낸 편지를 FBI 에 넘겨왔다는 경위가 나온다. 이 편지는 본래 백악관이 법무부로 회부한 것이었고, 사본을 첨부해 보낸다고 적었다. 디트로이트 사무소가 페리를 직접 만나 그의 편지가 결국 FBI 로 넘어왔다는 사실, 사진은 미시간주 마운트 클레멘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 OSI 로 이미 보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편지 사본을 수신자 측에도 함께 전달했다는 사실을 안내할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첨부 문서는 두 건. 본문 아래에는 디트로이트 SAC 에게 보내는 내부 메모가 따로 붙어 있다. 페리에게 즉시 연락해, 그의 대통령 앞 편지가 백악관에서 법무부를 거쳐 FBI 로 넘어왔으며 지금 그 접수를 확인하고 있음을 알리라는 지시다. 편지 내용은 신중히 검토했고, 그가 자진해 디트로이트 사무소 요원에게 넘긴 사진은 곧바로 셀프리지 공군기지 OSI 로 전달했다는 점을 페리에게 알리라고 적었다. 메모는 공군이 이후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다가 페이지 하단에서 끊긴다.

  129. p.129

    메모의 마지막 부분이다. 페리에게 보낸 대통령 서한 사본은 공군 특수수사국(OSI)에 넘겼고, 페리에게는 FBI가 이 건을 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리라고 지시한다. 이어 붙은 '주(NOTE)'는 페리의 신원과 경위를 정리한다. 페리는 미시간주 그랜드블랭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아마추어 사진가로, 달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다. 그는 1960년 3월 5일 디트로이트 지부에 자신이 찍은 두 장의 사진에 비행접시로 보이는 외계 물체가 찍혔다고 알렸고, 본인 요청에 따라 FBI 요원이 그를 만나 필름을 받아 지역 OSI 측에 넘겼다. FBI 자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사가 'FBI가 이 건을 수사 중'이라고 보도하자, 디트로이트 SAC가 신문사 관계자에게 연락해 그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알렸다.

  130. p.130

    1960년 3월 26일 백악관 대통령 보좌관 윌튼 B. 퍼슨스가 법무부로 사건을 회부한 라우팅 슬립과, 이를 받은 FBI 내부에서 정리한 사건 요약 메모가 한 페이지에 같이 붙어 있다. 요약에 따르면 디트로이트 특별수사관 사무소는 1960년 3월 9일, 같은 해 3월 21일자 페리의 편지에 첨부된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사 — 미시간주 플린트 상주분소가 페리에게서 받은 슬라이드 사진 두 장에 달을 배경으로 한 접시 모양 물체가 실루엣으로 찍혀 있었다는 보도 — 를 보고받았다. 페리는 3월 4일 플린트 상주분소에 본인이 직업 사진가이며 달을 촬영한 사진을 현상하다가 그중 한 장에서 비행 물체로 보이는 형상을 발견했다고 알린 뒤 언론에 정보를 흘렸고, 플린트 분소는 언론 문의에 슬라이드 두 장을 FBI에 넘겼으며 적절한 기관에 전달 중이라고만 답했다. 디트로이트 타임스에는 3월 9일에 FBI가 슬라이드 관련 수사를 진행하지 않으며 공군에 정보만 넘겼다고 알렸고, 공군 측에는 슬라이드를 페리에게 반환하라고 요청하면서 FBI는 별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며 공군이 판단해 처리하라고 통보했다. 라우팅 슬립 우측에는 톨슨, 파슨스, 벨몬트, 캘러핸, 들로치, 설리번 등 후버 휘하 부국장급 명단이 일일이 표시되어 있어 사건이 후버 본부 핵심부 전원에게 회람되었음을 보여준다.

  131. p.131

    분홍색 라우팅 슬립과 회색 종이의 뒷면이 같이 찍힌 스캔이다. 분홍 슬립에는 1960년 3월 31일 오후 6시 3분에 FBI 법무부 벨몬트 사무실에서 접수했다는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회색 종이 쪽에는 FBI 레터헤드가 뒷면으로 비쳐 거울처럼 뒤집힌 채 흐릿하게 드러난다. 본문 텍스트가 없는 사실상 빈 페이지로, 문서 묶음의 뒷면·접수 표시 면에 해당한다.

  132. p.132

    1960년 3월 21일, 미시간주 그랜드 블랑 에드워드가 3079번지에 사는 조셉 F. 페리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다른 누구에게서도 답을 들을 수 없어 직접 대통령에게 쓴다고 했다. 페리는 3월 초에 달과 미확인 비행물체가 함께 찍힌 컬러 투명필름 한 장을 FBI에 넘겼는데, 지금까지 그 필름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지 못했고 다만 합당한 기관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답만 들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3월 14일에 도널드 E. 키호 소령에게서 받은 편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사진 증거에 관한 과거 경험으로 미루어 보면, 당신은 그 사진을 다시 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다른 UFO 단체들에서도 같은 예측을 들었다고 했다. 페리는 그 컬러 필름이 짧은 시간 안에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요청한다. 카메라와 장비를 다루는 자기 취미에 그 필름이 금전적으로도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디트로이트 타임스에서 같은 사안을 다룬 기사 한 부를 동봉한다고 마무리한다. 편지 오른쪽 위에는 FBI 내부 회람 슬립이 붙어 있고, 페이지 오른쪽 여백에는 빨간색으로 "EXP-PROC MAR 28 1960"이 큼직하게 찍혔다. 하단에는 FBI 사건 번호 62-83894-413이 손글씨로 적혔고, 1960년 3월 29일자 기록부 접수 도장과 4월 11일자 접수 도장이 함께 보인다. 좌측 하단 손글씨 메모는 이 건을 본 후 휴가 관련 동봉물과 기사 사본을 백악관으로 전달하라는 내부 지시다.

  133. p.133

    이 페이지는 1960년 3월 31일자 FBI 내부 문서의 뒷면이다. 앞면 종이가 비쳐 보이는 위로 라우팅 도장과 접수 도장이 거꾸로 여러 개 찍혀 있다. 같은 날 하루 동안 이 문서가 FBI 안에서 어떻게 돌아다녔는지가 도장 시각만으로도 드러난다 — 오전 10시 36분 국장실 접수, 오후 12시 20분 또 한 차례 접수, 오후 1시 76분(원문 표기), 오후 3시 35분 투손 지국 접수, 오후 4시 26분 FBI 발신, 오후 5시 27분 미 법무부 산하 FBI 접수까지. 왼쪽 위에는 후버 국장 책상으로 올라가는 라우팅 체크리스트 박스(Tolson, Mohr, Parsons, Belmont, Callahan, Conrad, DeLoach, Evans, Malone, Rosen, Sullivan, Tavel, Trotter,전화실, Holmes, Gandy)가 보인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한 장의 종이가 본부와 지국, 법무부 사이를 하루 안에 여러 번 오갔다는 사실만 도장으로 남아 있다.

  134. p.134

    1957년 3월 9일 미시간주 그랜드 블랭크에서 발행된 신문 기사로, 표제는 〈공군이 알고 싶어한다 — 피자 파이인가 비행접시인가?〉다. 기사에 따르면 그랜드 블랭크의 피자 가게 주인 조 페리가 직접 만든 망원경-카메라로 보름달 둘째 날 밤에 달을 찍었는데, 그 사진에 달을 배경으로 접시 모양 물체가 실루엣으로 잡혔다. 페리 본인은 "녹색 꼬리를 끌고, 달보다 지구에 더 가까워 보이며, 둥글고 달보다 훨씬 작고 돔이 달려 있다"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았으나 식당 손님들이 자꾸 다시 보여달라며 "비행접시"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그 소식이 FBI로 흘러들어 지난 금요일 다음 날 플린트 지부 요원 두 명이 가게를 찾아왔다. 페리는 그날 밤 찍은 슬라이드 여러 장을 보여줬는데 요원들은 이 특정 한 장이 나오자 둘 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고 한다. 요원들은 이 사진과 다른 사진 몇 장을 가져갔다. 48세에 손주를 본 페리는 자신의 사진이 외계 답을 찾는 정부 전문가들에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면서도 "그 사진은 돌려받았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ENCLOSURE 62-83894-413"이라는 손글씨 식별 표시가 보인다.

  135. p.135

    1960년 4월 12일, 디트로이트 지부 특수요원 책임자가 FBI 국장 앞으로 올린 메모다. 사건 번호는 65-2677, 주제는 "미확인 비행체 — 조지프 페리, 미시간주 그랜드 블랭크 — 진정인." 메모는 4월 6일자 본부에서 공군 특수수사실로 보낸 서한과 4월 11일자 디트로이트의 항공전문을 받아 작성됐다.

    같은 날 4월 12일, 특수요원 레이먼드 E. 무미와 마틴 A. 맥너니가 미시간주 그랜드 블랭크 에드워즈가 3079번지 페리의 자택을 직접 찾아갔다. 두 요원은 페리에게, 그가 1959년 3월 21일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이 법무부에서 FBI로 이송되었으며 FBI가 그 서한의 수신을 확인했다고 알렸다.

    이어서 페리에게, 서한 내용은 꼼꼼히 검토되었고, 페리가 자발적으로 FBI에 넘긴 사진들은 즉시 미시간주 마운트 클레먼스 셀프리지 공군기지 공군 특수수사실로 전달되었으며,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사본 또한 공군에 함께 넘겨졌다고 통보했다.

    FBI는 이 건과 관련해 어떤 수사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페리에게 전달됐고, 페리는 이런 사안에 대한 FBI의 방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페리는 FBI의 협조에 사의를 표했다.

    배포는 본부 2부, 디트로이트 1부. 사건 번호 62-83894-414로 1960년 4월 14일 접수, 4월 22일 다시 도장이 찍혔다. 좌측 여백에는 "이 안의 모든 정보는 비밀이 아님"이라는 기밀해제 도장이 세로로 들어가 있고, 주제 줄 위에는 "CAMERAS"라는 손글씨가 보태져 사진/카메라가 이 사건의 핵심 단서임을 표시한다.

  136. p.136

    앞장 문서의 뒷면 스캔. 글씨가 거꾸로 비쳐 보이며, 하단에 'REC'D' (접수) 도장과 'MAY 19' 날짜·시각 표시가 뒤집힌 채 비친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137. p.137

    1960년 4월 11일 디트로이트 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AIRTEL-등기항공편 보고서다. 사건명은 "미확인 비행 물체 — 조지프 페리, 미시간 그랜드블랭크 — 진정인 — 잡건 — 정보 보고 (국가정보)"이고, 4월 6일자로 공군 특별수사국이 보낸 통보문에 대한 회신 성격이다.

    4월 9일 토요일, 미시간 플린트 상주 지국 요원들이 조지프 페리의 자택인 그랜드블랭크 에드워드 가 3079번지를 직접 찾아갔지만 본인을 만나지 못했다. 같은 날 저녁 6시 30분경 전화로 페리와 연결이 되었는데, 본인은 그날 밤이나 주말에는 면담이 어렵다고 답했다. 요원 측은 페리가 백악관 앞으로 보낸 편지가 법무부를 거쳐 FBI로 회부되었고, 그 편지를 정식으로 접수했음을 알리는 동시에 직접 만나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페리는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면담 일정을 잡겠다고 답했다.

    4월 11일 약속이 잡혀 12일에 페리를 만나기로 했고, 그 자리에서 FBI 본부의 지시 사항을 완전히 이행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배포는 본부 2부, 디트로이트 2부. 문서 우측 여백에는 손글씨로 사건 분류 번호 62-83894-415가 적혀 있고, 1960년 4월 12일·4월 21일자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138. p.138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가 비쳐 거꾸로 보이고, 하단에는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다. 하나는 1960년 4월 18일 자 "APR 18 1960" 도장, 다른 하나는 1961년 8월 17일 오후 2시 55분에 접수된 "REC'D DIRACE-NAT" 도장으로, 같은 종이가 서로 다른 시점에 두 차례 접수 처리를 거쳤음을 보여준다.

  139. p.139

    1960년 4월 21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미시간 그랜드블랭크 에드워드가 3079번지에 사는 조지프 F. 페리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4월 13일자 페리의 편지를 잘 받았고, 페리가 FBI 특수요원에게 넘긴 사진의 반환 문제에 관해서는 공군이 직접 답할 수 있도록 자기 편지 사본을 공군부에 함께 넘겼다고 알린다. 이전에 안내했듯 페리가 사진을 가져왔을 당시 그 사진은 곧바로 미시간 마운트클레먼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에 있는 공군 특수조사대(OSI)로 넘겼다는 점도 다시 짚는다. 그러니 이 건과 관련한 추가 문의는 공군부 쪽으로 직접 보내라고 권한다. 본문 아래 메모는 페리가 그랜드블랭크에서 식당을 하는 아마추어 천체사진가이며, 1960년 3월 5일 디트로이트 지부에 자기가 찍은 달 사진 두 장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찍혀 있는 것 같다고 알려 왔다는 사실을 정리해 둔다. 좌상단 'Mr. Nease' 라우팅 표시와 좌측 여백의 부서 회람 명단, 사건번호 62-83894-416 표기가 이 편지가 표준 본부 회람 절차를 거친 정식 회신임을 보여 준다.

  140. p.140

    문서 뒷면 스캔 페이지다. 앞면의 본문이 누런 종이를 투과해 좌우가 뒤집힌 흐릿한 잉크 자국으로 비쳐 보이고, 페이지 자체에는 새로 적힌 내용이 없다. 다만 페이지를 거꾸로 들었을 때 아래쪽 여백에 FBI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는데, 1960년 3월 21일 오후 12시 28분과 같은 해 4월 20일 오후 3시 57분에 각각 다른 부서에서 받아 처리한 흔적이다.

  141. p.141

    조지프 F. 페리 앞으로 작성된 메모의 두 번째 장이다. 페리가 찍었다고 주장한 사진을 두고 FBI가 무엇을 했는지 정리한다. 페리는 자신이 찍은 것이 비행접시라고 했고, 요청에 따라 FBI 요원들이 그를 찾아가 사진을 받아 디트로이트 현지 OSI 측에 넘겼다. 페리는 이 일을 언론에 알렸고, 그 결과 FBI가 조사 중 이라는 기사가 났다. 페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디트로이트 타임스 측에 정정을 해 두었다. 페리는 1960년 3월 21일자 편지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사진의 행방을 모르겠으니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달라고 썼다. 1960년 4월 12일 디트로이트 사무실의 특별요원들은 페리에게 그가 자발적으로 넘긴 사진이 셀프리지 공군기지의 OSI에 전달되었고, 대통령에게 쓴 편지 사본은 공군부에 전달되었음을 알렸다. 페리는 4월 13일자 답신에서 백악관에서 온 메시지를 전달해 준 국장에게 감사하다고 했고, 공군의 사진 분석이 끝나면 귀 사무실 이 사진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표했다. 또 수천 명이 사진을 보고 싶어한다 고 덧붙였다. 본 메모와 4월 13일자 페리 편지의 사본을 페리에 대한 회신용으로 공군 측에 함께 보낸다고 메모는 마무리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 2 - 라는 면 번호만 있다.

  142. p.142

    1960년 4월 13일, 미시간주 그랜드블랭크 에드워드 스트리트 3079번지의 조지프 F. 캐리(Joseph F. Cary)가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짧은 감사 편지다. 편지지 상단 오른쪽에는 손글씨로 'Flying Saucers(비행접시)' 라고 주제가 적혀 있다.

    캐리는 자신이 찍은 미확인비행물체 컬러 슬라이드 사진에 대해 백악관의 메시지를 FBI가 자신에게 전달해 준 데 감사한다고 적었다. 이어 분석이 끝나면 그 슬라이드를 자신에게 돌려보내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 수많은 사람이 이 사진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 그가 든 이유다.

    편지 본문 아래에는 1960년 4월 22일 자 접수 도장과 함께 FBI 파일 번호 62-83894-416, 그리고 2005년 5월 7일자 'ALL INFORMATION CONTAINED HEREIN IS UNCLASSIFIED' 비밀해제 도장이 겹쳐 있다. 왼쪽 아래 여백의 손글씨 라우팅 메모는 1960년 4월 21일 회신을 보냈고, 사본을 공군 특별수사대(OSI)와 디트로이트 지부에 한 부씩 보냈음을 알려 준다.

  143. p.143

    본문 없는 종이의 뒷면이다. 위쪽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고, 앞면에서 찍힌 두 개의 접수 도장이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인다. 하나는 4월 20일 오전 10시 53분 1960년에 통신정보과가 받았다는 표시이고, 다른 하나는 4월 15일 오후 2시 54분 1960년에 FBI 통신·투어 부서가 처음 받았다는 표시다. 가운데에는 보안 분류 도장으로 보이는 보라색 자국이 희미하게 비친다.

  144. p.144

    1960년 4월 21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공군 특별수사실(OSI) 방첩과장 앞으로 보낸 짧은 공문이다. 주제는 미시간주 그랜드블랭의 조지프 페리가 제기한 비행접시 민원 — 국적별 정보(Nationalities Intelligence) 분류로 처리된 건 — 으로, 같은 해 4월 5일 자 FBI의 선행 공문에 이어지는 후속 문서다. 후버는 페리가 4월 13일에 쓴 편지 사본과, FBI가 페리에게 보낸 회신 사본을 함께 동봉한다고 밝히면서, 공군이 페리에게 답장을 보낼 경우 그 사본을 FBI로 회신해 달라고 요청한다. 디트로이트 지국에 사본 1부가 함께 발송됐다. 우상단의 "Flying Saucers" 손글씨와 우측 여백의 "62-83894-417" 파일 번호, 1985년 5월 7일 자 "ALL INFORMATION CONTAINED HEREIN IS UNCLASSIFIED" 비밀해제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이 문서가 후일 1960년대 UFO 민원 관련 FBI 본부 파일에서 비밀해제 처리됐음을 보여준다.

  145. p.145

    이 페이지는 타자기로 친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 글자가 비쳐 보여 본문은 좌우가 뒤집힌 채 흐릿하게 읽히고, 페이지 자체에 독립적으로 적힌 본문은 없다. 아래쪽에는 FBI 우편실 접수 도장 두 개가 찍혀 있다. 하나는 1960년 3월 21일 오전 8시 11분, 다른 하나는 1960년 4월 21일 오후 12시 28분으로 약 한 달의 시차가 보이고, 그 옆에는 통신부(Communications Section) 발송 표시와 빨간 펜으로 적힌 1144 라는 번호가 함께 보인다.

  146. p.146

    1960년 5월 4일, 덴버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메모다. 사건 표제는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협회; 조지 W. 밴 태셀; 잡건 — 정보 관련". 동봉한 레터헤드 메모는 밴 태셀의 강연에 관한 보고서이고, 같은 사본 한 부는 덴버 로리 공군기지의 특별조사실 (OSI) 에 전달했다.

    동봉 메모는 본부와 로스앤젤레스,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지부에 정보용으로 돌린다. 밴 태셀이 캘리포니아 자이언트 록 출신이라고 주장하지만, 덴버 쪽 우편 안내나 가용 지도에는 그 마을이 나오지 않는다.

    특별요원 토머스 스티븐 켈리가 라디오에서 강연 예고를 듣고 4월 17일 일요일 강연에 참석했다. 켈리는 현장에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현장의 누구도 켈리를 알아보지 못했다.

    4월 19일 덴버 핍스 강당 측에 전화로 확인한 결과, 밴 태셀의 강연 준비는 로이드 아널드 (전화 BElmont 7-5775) 와 한 것이라고 답했다. 1959년 콜로라도 레이크우드 시 명부에는 같은 전화번호로 로이드 L. 아널드, 아널드 엔지니어링 어소시에이츠, 1940 심스 주소가 올라 있다.

    하단에는 배포 명단 (본부 봉투 5부, LA·샌디에이고·샌프란시스코 각 1부, 덴버 1부) 과 함께 REC-61 접수번호, 사건번호 62-83894-418, 1960년 5월 20일과 5월 9일자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147. p.147

    타자기로 친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잉크가 종이를 뚫고 비쳐 본문 글자들이 거꾸로·뒤집힌 상태로 흐릿하게 보이지만, 그 자체로는 읽히지 않는다. 페이지 하단 (정방향 기준으로는 상단) 에는 1948년 5월 6일 오후 3시 39분 접수를 표시하는 "REC'D"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옆에 사무소 위치로 보이는 글자가 같이 들어가 있다. 페이지 자체는 빈 종이의 뒷면에 가깝고, 본문 정보는 모두 앞면에서 와야 한다.

  148. p.148

    1960년 4월 26일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작성된 미국 법무부 연방수사국 문서로,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협회와 조지 W. 반 태슬에 관한 것이다. 1960년 4월 17일 덴버 시티파크의 핍스 오디토리엄에서 조지 W. 반 태슬이 미확인 비행물체에 관한 강연, 영화 상영, 토론으로 광고된 행사를 진행했다. 청중은 대체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여성 비중이 높았으며, 젊은 사람은 드물었지만 일부 가족 단위 참석자도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덴버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협회들이 후원했으며, 그중 하나는 콜로라도 레이크우드의 제퍼슨 카운티 은행에서 매달 모임을 열고 있었다. 그 단체의 임원이 사회자를 맡았다. 행사는 45분짜리 영화로 시작했는데, 영화에는 비행접시라고 주장되는 것들의 여러 장면과 각계각층 사람들이 자신들이 목격했다는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말하는 인터뷰가 포함되었다. 영화가 끝난 뒤 조지 W. 반 태슬은 강연을 했는데, 그 내용은 미확인 비행물체 자체보다는 종교와 경제를 섞은 강연에 가까웠다.

    반 태슬은 자신이 30년 넘게 ‘비행 분야’에 몸담아 왔고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민간항공국 승인을 받은 사설 비행장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많은 목격 사례를 직접 보았고, 비행접시를 보았다는 수백 명의 사람들과도 대화했다고 했다. 또한 외계인들이 자신을 찾아온 적이 있으며, 그 사람들의 사실을 미국 국민에게 알리는 일을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은퇴했고, 가족도 장성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이 일을 통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느껴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하단에는 이 메모가 FBI 소유이며 대여받은 기관 밖으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문구와 출처 폐기 표시, 문서번호와 첨부 표시가 있다.

  149. p.149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 협회와 조지 W. 밴 태슬에 관한 문서의 두 번째 페이지로, 이 부분은 밴 태슬의 강연 내용을 요약한다. 그는 강연의 대부분을 성경의 사건들이 이른바 우주인들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썼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는 부분은 우주가 만들어지는 시작 부분뿐이며, 그 뒤의 언급들은 모두 “하늘 밖에서” 또는 “천국 밖에서” 온 존재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 즉 우주인은 하나님이 만들었고, 태초에 우주인들이 지구에 와서 동물들을 남겨 두었다. 그 동물들은 체온이 105도인 선사시대 동물이었으나, 극이 기울어지는 사건으로 극지방과 열대 기후가 뒤바뀌며 얼음이 덮이게 되었다. 이후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에 동물을 들여놓았고, 성경의 노아의 방주는 그 일을 묘사한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는 극의 기울어짐 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체온이 98.6도가 되었고, 이것이 우주인에게 적합했기 때문에 그들이 식민지를 세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남성만 남겨 두고, 나중에 보급선으로 여성을 데려오려 했기 때문에 아담에게 아내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생겼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라 남성 종족이었고, 이 종족이 “지능이 있고 두 발로 곧게 걷는 동물” 종족, 곧 이브와 혼인했다. 우주인들이 보급선을 타고 돌아왔을 때 이 일을 보고 착륙하지 않았으며, 그 뒤로 아담의 기원 때문에 지구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일 같은 성경의 여러 장면이 이를 기록한다고 주장했다. 십계명은 우주인들의 법이며 지구인들은 말로만 그것을 따른다고도 했다.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도 우주인들이 공급한 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에서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옥수수와 감자가 “불타는 카누”를 타고 왔다고 말하는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보았다. 원주민들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교통수단이 카누였기 때문에 우주선을 카누에 비유했다는 것이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달린 전차와 날개 달린 흰 말에 관한 옛이야기들도 같은 증거라고 말했다. 또 예수는 이미 임신한 상태로 지구에 보내진 우주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났고, 지구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위한 존재였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주인들이 오랫동안 인류를 지켜보며 도우려 했고, 자신들과 똑같이 보이는 요원들을 지구에 보냈다고 말했다.

  150. p.150

    미확인 비행 물체와 조사 단체, 조지 W. 밴 태슬에 관한 문서의 3쪽이다. 그는 우주인들이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말했다. 많은 우주인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중 일부는 지구의 언어를 말하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그는 지구에 와 있는 우주인들이 자기 주변에 자기장을 만드는 “수정 배터리”를 갖추고 있으며, 이 자기장이 빛의 파동을 휘게 해서 우주인들이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발소리, 문이 열리는 일 같은 유령 이야기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주인들이 지구의 원자폭탄을 매우 심각하게 걱정한다고 말했다. 폭탄 폭발이 지구의 자전을 교란했고, 북아프리카에서 있었던 프랑스의 폭탄 폭발처럼 실제로 지진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관리들은 이를 알고 있으며, 최근의 지구물리학의 해도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폭발들이 지구를 또 다른 극 이동으로 몰아가고 있고, 이는 인류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극 이동이 일어나면 우주인들은 “황금률”을 지킨 지구인들을 대피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죽게 내버려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주인들이 지구의 관리들과 접촉해 자신들의 우려를 전달했지만, 이것이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방사성 낙진이 극도로 위험해졌고 관리들도 걱정하지만, 각 강대국이 자기 권력에 너무 집착해 평화에 합의하지 못한다고 했다.

    밴 태슬은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를 맡은 미 공군이 정보를 은폐해 왔다고도 말했다. 공군은 선출직 공무원처럼 대중에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에만 책임지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도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또 그런 정보가 공개되면 공군이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으로 여겨져 해체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줄에서는 행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경제 때문이라고 말하기 시작하지만,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151. p.151

    보고서 머리에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단체; 조지 W. 밴 태슬" 이라는 주제가 붙은 4쪽이다. 앞장에서 이어진 문장은 밴 태슬의 말을 옮긴다. 그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졌고 앞으로도 이루어질 과학적 발견이 노동을 줄이고 거의 영구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더 이상 대체품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밴 태슬의 강연은 세 가지 주제로 묶인다. 첫째, 우주인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과 연결된다. 둘째, 원자폭탄은 지구와 우주에 해롭다. 셋째, 경제는 빈약하며, 우주인이 가져오는 사상 아래 무너질 것이다.

    강연 내내 밴 태슬이 언급한 경제와 정부, 공군은 오직 미국뿐이었다. 인류 전체를 여러 번 들먹였지만, 정부와 경제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미국을 가리키는 말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청중 가운데 한 사람이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목격 사례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는 목격은 전 세계에서 보고되었다고 답했지만, 구체적으로 거론한 나라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뉴기니뿐이었다.

    그는 청중에게 어떤 행동도 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악은 결국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다만 그 자리에 모인 약 250명은 덴버에서 유일하게 지적인 사람들이며, 호기심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싶어서 모인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들은 평균 이상의 지능을 가졌고, 결정적 순간이 오면 세상이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사고와 인도를 맡길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 끝에는 덴버 지부 가입 신청서가 배포되었다.

  152. p.152

    1960년 4월 26일 콜로라도 덴버 지부가 작성한 FBI 메모로, 주제는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회 / 조지 W. 밴 타셀"이다.

    1960년 4월 17일 콜로라도 덴버 시티 파크의 핍스 강당에서 조지 W. 밴 타셀의 강연이 열렸다. 강연·영화 상영·미확인 비행물체 토론이 함께 진행된다고 광고되었다. 청중은 노년층이 다수였고 여성 비율이 더 높았다. 젊은이는 적었고 일부 가족 단위가 섞여 있었다.

    행사는 덴버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회들이 후원했다. 그 가운데 한 곳은 콜로라도 레이크우드의 제퍼슨 카운티 은행에서 매달 모이며, 그 단체의 사무국장이 사회를 맡았다. 프로그램은 45분짜리 영화부터 시작했는데, 비행접시라고 주장하는 장면 여러 컷과, 그런 미확인 물체를 목격했다는 사람들과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영화가 끝난 뒤 밴 타셀이 직접 강연을 했지만, 내용은 미확인 비행물체 이야기라기보다 종교와 경제를 뒤섞은 강연에 가까웠다.

    밴 타셀은 자신이 "비행 분야"에 30년 넘게 몸담아왔으며,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민간 항공국 인가를 받은 사설 비행장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본인도 여러 차례 비행접시를 목격했고,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 수백 명과 이야기해봤다고 했다. 더 나아가 자신은 외계에서 온 사람들의 방문을 받아왔으며, 그들이 전한 사실을 미국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떠안았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어느 정도 은퇴한 상태이고 자녀도 다 자라 집을 떠난 만큼, 이 일로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다고 느껴서 십자군처럼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이 메모가 FBI 소유이며 대출받은 기관 밖으로 내용을 유출할 수 없다는 통상 경고가 붙어 있다.

  153. p.153

    이 문서는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 협회와 조지 W. 밴 태슬에 관한 보고의 2쪽이다. 강연의 대부분은 성경 속 사건을 우주인과 연결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부분은 우주가 창조되는 처음뿐이고, 그 뒤의 언급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나 천국에서 온 존재를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인간, 곧 우주인이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세상 초기에는 우주인들이 지구에 와서 동물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물들은 체온 105도에서 살던 선사시대 동물이었지만, 극축의 기울어짐이 일어나 극지방이 이동하고 열대 기후 지역이 얼음으로 덮이는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이후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에 동물을 들여왔고, 이것이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로 묘사되었다고 말했다. 극축 변화 뒤에는 생명 유지에 적합한 온도가 98.6도가 되었고, 이는 우주인에게 알맞았으므로 그들이 식민지를 세웠다고 했다. 그들은 남성만 남겨 두고 나중에 보급선을 통해 여성을 데려오려 했으며, 아담에게 아내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이를 반영한다고 주장했다. 또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한 종족이었고, 이 종족이 지적이고 직립 보행하는 동물들과 결혼했으며, 그 종족이 이브였다고 설명했다.

    그 뒤 우주인들이 보급선을 타고 돌아왔을 때 벌어진 일을 보고 착륙하지 않았지만, 아담의 기원 때문에 그때부터 지구 사람들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것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장면처럼 성경에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고 말했다. 십계명은 우주인들의 법이며 지구의 인간들은 그 법을 말로만 따른다고 했다.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도 우주인들이 공급한 빵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에서도 이런 흔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옥수수와 감자가 불타는 카누를 타고 이곳에 왔다는 원주민 이야기는 우주선을 가리키며, 원주민들이 아는 가장 높은 수준의 교통수단이 카누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했다는 것이다. 또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달린 전차와 날개 달린 흰 말에 관한 옛 이야기들도 같은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는데, 마리아는 이미 임신한 상태로 지구에 보내진 우주인이며 지구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위한 존재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주인들이 오랫동안 우리를 지켜보고 도우려 했으며, 그들의 요원들을 지구에 보냈고 그 요원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154. p.154

    FBI 가 정리한 조지 W. 밴 태슬 강연 요지의 3쪽이다. 우주인들은 예수처럼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이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이며, 우주인 다수는 말을 못 하지만 일부는 지구 언어를 익히도록 훈련받는다고 밴 태슬은 주장했다. 지구에 와 있는 우주인들은 크리스탈 배터리 라는 장치를 갖추고 있는데, 이 장치가 만들어내는 자기장이 빛을 굴절시켜 그들이 보이지 않게 한다고 했다. 발자국 소리, 저절로 열리는 문 같은 유령 이야기들이 다 여기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주인들은 지구의 원자폭탄 실험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고, 폭발이 지구 자전을 흐트러뜨려 북아프리카 프랑스 핵실험처럼 실제로 지진을 일으켰다고 했다. 지구 당국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고, 최근 국제지구물리관측년(Geophysical Year)이 그 대응을 가늠하려 한 시도였다고 그는 설명했다. 폭발이 지구를 또 한 번의 극축 기울기 쪽으로 밀어붙이고 있고, 그때 우주인들은 황금률 을 지킨 사람만 대피시키고 나머지는 멸망하도록 둘 것이라고 했다. 우주인들이 이미 지구 당국자들과 접촉해 우려를 전했지만 공개되지 않았고, 방사성 낙진이 극도로 위험해진 상황에서도 각국이 권력 욕심에 사로잡혀 평화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밴 태슬은 미 공군이 UFO 조사를 맡고 있지만 정보를 은폐해왔으며, 선출직이 아니라 행정부에만 책임을 지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공군이 이 정보가 풀리면 자기들의 존재 이유가 사라지고 해체될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마지막 단락은 행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 때문이라는 문장으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상단에는 사건 제목 UNIDENTIFIED FLYING OBJECTS, INVESTIGATIVE SOCIETY; GEORGE W. VAN TASSEL 이 적혀 있고, 페이지 상단 펀치 구멍 세 개가 보인다.

  155. p.155

    이 페이지는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협회〉와 조지 W. 밴 태셀에 관한 보고서 4쪽이다. 밴 태셀은 강연에서 경제가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는데, 대중에게 어떤 공포를 심으려는 의도 때문이 아니라 이미 이뤄진 그리고 앞으로 이뤄질 노동 절감 과학 발견이 너무 많고 그 효과가 거의 영구적이라 대체 일자리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밴 태셀의 강연 주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우주인은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다. 둘째, 원자폭탄은 지구와 우주에 해롭다. 셋째, 경제는 빈약하며 우주인이 가져올 사상 앞에서 무너질 것이다. 강연 내내 밴 태셀은 미국 경제와 미국 정부, 미국 공군만 언급했다. 인류 전체를 여러 번 거론했지만 정부와 경제라는 말은 미국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누가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목격담이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목격담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되었다고 답하면서도 구체적으로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 뉴기니만 짚었다. 그는 청중에게 어떤 행동을 권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악은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250명쯤 되는 청중이 덴버에서 유일하게 지적인 사람들이라고 느낀다고 했고, 호기심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자 모인 이들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지능이 평균을 웃도는 사람들이며, 결정적인 시기가 오면 세상에는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생각하고 인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임에서는 이 단체의 덴버 지부 회원 가입 신청서가 배포되었다.

  156. p.156

    1960년 4월 25일 콜로라도 덴버 FBI 사무소가 작성한 메모로,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단체, 조지 W. 밴 태슬"이다. 1960년 4월 17일 덴버 시티 파크 필립스 강당에서 조지 W. 밴 태슬이 강연을 했으며, 강연·영화 상영·미확인 비행물체 토론이 있다고 광고되었다. 청중은 나이가 많은 사람과 여성이 다수였고, 젊은이는 적었지만 가족 단위도 일부 있었다. 행사는 덴버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단체들이 후원했고, 그 가운데 하나는 콜로라도 레이크우드의 제퍼슨 카운티 은행에서 매달 모이며 이 단체의 임원이 사회를 맡았다. 프로그램은 45분짜리 영화로 구성되었는데, 비행접시로 추정되는 영상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목격담을 진술하는 인터뷰가 포함되었다. 영화 상영 뒤 밴 태슬은 미확인 비행물체보다는 종교·경제론에 가까운 강연을 했다. 밴 태슬 본인은 자신이 30년 넘게 "비행 게임"에 몸담아 왔고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민간 항공국 인가를 받은 사설 비행장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자신도 직접 다수의 목격담을 가지고 있으며 비행접시를 보았다는 수백 명과 이야기를 나눴고, 외계인의 방문도 직접 받았으며 그 사실을 미국인에게 알리는 일을 사명으로 삼았다고 진술했다. 은퇴한 처지에 가족도 다 출가했으니 이 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한 일종의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에는 이 메모가 FBI 소유이며 대출받은 기관 밖으로 내용을 배포할 수 없다는 표준 경고가 붙어 있다.

  157. p.157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 모임과 조지 W. 밴 태슬에 관한 보고서의 일부로, 이 페이지는 그의 강연 내용 중 성경 속 사건을 우주인과 연결해 설명한 대목을 다룬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언급되는 것은 우주가 창조되는 처음뿐이며, 그 뒤의 표현은 모두 하늘에서 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 즉 우주인은 하나님이 만들었고, 세계의 초기에 우주인들이 지구에 와서 동물들을 남겼다. 이 동물들은 체온이 105도인 선사시대 동물이었으나, 극이 기울어지면서 극지와 열대 기후가 뒤바뀌었고 얼음이 덮였다고 했다.

    그는 이후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에 동물을 놓았고, 이것이 성경의 노아의 방주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극의 변화 뒤 생명을 유지하는 온도는 98.6도가 되었고, 이 조건이 우주인에게 적합해지자 그들이 식민지를 세웠으며 처음에는 남성만 남겨 두고 나중에 보급선으로 여성을 데려오려 했다고 말했다. 아담에게 아내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여기서 비롯되며,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종족이었다고 주장했다. 이 아담 종족이 지능이 있고 두 발로 걷는 동물들과 결혼했는데, 그 종족이 이브였다고 했다.

    그 뒤 우주인들이 보급선을 타고 돌아왔을 때 벌어진 일을 보고 착륙하지 않았지만, 아담의 기원 때문에 이후로도 지구 사람들을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일 같은 성경 기록이 이를 보여 주며, 십계명은 우주인들의 법이고 지구의 인간들은 그것을 말로만 따를 뿐이라고 했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도 우주인들이 공급한 빵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옥수수와 감자가 불타는 카누를 타고 왔다고 전한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이것은 우주선을 가리키며, 원주민들이 알고 있던 가장 높은 수준의 교통수단이 카누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날개 달린 전차와 날개 달린 흰 말에 관한 옛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가 이미 임신한 상태로 지구에 보내진 우주인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지구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위한 존재였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우주인들은 오랜 세월 우리를 지켜보며 도우려 했고, 그들의 대리인을 지구에 보내 왔으며, 그들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158. p.158

    조지 W. 밴 태슬과 그가 이끄는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 단체를 다룬 FBI 보고서의 세 번째 면이다. 밴 태슬은 우주인들이 예수처럼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을 갖고 있고, 그것이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우주인 대부분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일부는 지구 언어를 배워 구사하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또 지구에 와 있는 우주인들은 '크리스털 배터리'를 지니고 다니는데, 이 장치가 자기장을 만들어 빛을 굴절시키기 때문에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발소리만 들리거나 문이 저절로 열리는 식의 유령 이야기가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밴 태슬은 우주인들이 지금 가장 심각하게 보는 문제는 인류의 핵실험이라고 했다. 핵폭발이 지구의 자전을 흔들었고, 북아프리카에서 프랑스가 진행한 핵실험이 지진을 일으킨 것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지구 관료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 최근 국제지구물리관측년을 추진해 대책을 찾으려 했다는 것이다. 핵실험이 계속되면 지구의 극이 다시 기울어져 인류 전체가 위험에 빠지는데, 우주인들은 '황금률'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만 그때 구출하고 나머지는 멸망하도록 둘 작정이라고 했다. 밴 태슬은 우주인들이 이미 각국 관료들과 접촉해 이런 우려를 전달했지만, 그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했다. 방사능 낙진의 위험성도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는데, 각국이 권력 욕심에 사로잡혀 평화 합의에 나서지 않는다는 점을 관료들이 걱정한다고 덧붙였다. 또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를 맡은 미 공군이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군은 선거로 뽑힌 공직자가 아니라 행정부에만 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런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밴 태슬은 공군이 정보가 새어 나가면 자신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으로 몰려 해체될 것을 두려워한다고 주장했다. 행정부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에 미칠 충격 때문이라는 말로 면이 끝난다.

  159. p.159

    1950년대 FBI 보고서 4쪽으로, 제목줄은 '미확인비행물체, 조사 협회, 조지 W. 밴 태슬'이라고 적은 사건이다. 보고자는 밴 태슬의 강연 마무리 부분을 요약한다. 밴 태슬은 대중을 불안에 빠뜨릴 의도가 없다고 말했고, 그 이유로 이미 이뤄졌거나 곧 이뤄질 과학적 발견이 노동을 줄이고 거의 영구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어서 인력 대체조차 필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자는 강연의 주제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 우주에서 온 사람들이 성서의 사건들과 연결된다. 둘째, 원자폭탄은 지구와 우주에 해롭다. 셋째, 경제는 형편없으며 우주인이 가져올 사상 앞에서 붕괴할 것이다.

    강연 내내 밴 태슬은 미국 경제·미국 정부·미국 공군만 거론했다. 인류 전체를 여러 번 언급하기는 했지만 그가 말하는 '정부'와 '경제'는 결국 미국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보고자는 적는다. 청중 한 사람이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목격담이 있느냐고 묻자 밴 태슬은 전 세계에서 보고된다고 답한 뒤, 구체적으로는 미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뉴기니만 꼽았다.

    그는 청중에게 어떤 행동도 요구하거나 권하지 않았다. 악은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다만 그날 모인 250명 안팎의 청중을 두고는 덴버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갖춘 사람들이며 호기심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모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평균 이상의 지력을 지녔으며 결정적 시기가 올 때 세상이 길잡이로 삼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다.

    모임 자리에서는 덴버 지부 가입 신청서가 배포되었다.

  160. p.160

    1960년 4월 28일 콜로라도 덴버에서 작성된 FBI 문서로, 미확인비행물체 조사 단체와 조지 W. 밴 태슬의 강연을 다룬다. 1960년 4월 17일 조지 W. 밴 태슬은 콜로라도 덴버 시티파크의 힐톱 홀에서 미확인비행물체에 관한 강연과 영화 상영, 토론을 한다고 홍보된 행사를 열었다. 청중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고 여성도 많았으며, 젊은 사람은 드물었지만 가족 단위 참석자도 일부 있었다.

    이 행사는 덴버 미확인비행물체 조사 협회들이 후원했으며, 그중 한 단체는 콜로라도 레이크우드의 제퍼슨 카운티 은행에서 매달 모임을 열고, 그 단체의 임원이 사회를 맡았다. 프로그램은 45분짜리 영화로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비행접시라고 주장되는 물체들의 장면 몇 개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목격한 미확인비행물체에 관해 말하는 인터뷰들이 들어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조지 W. 밴 태슬은 미확인비행물체 자체보다는 종교적·경제적 성격이 더 강한 강연을 했다.

    밴 태슬은 자신이 30년 넘게 항공 분야에 있었고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민간항공국 승인을 받은 사설 비행장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도 많은 목격을 직접 했고 비행접시를 봤다는 수백 명과 이야기했다고 했다. 또한 우주에서 온 사람들의 방문을 받았으며, 그들의 복음을 미국인들에게 전하는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어느 정도 은퇴했고 가족들도 성장해 집을 떠났기 때문에, 이 일을 통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하단에는 이 메모가 FBI 소유이며 대여된 기관 밖으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제한 문구가 있다.

  161. p.161

    미확인 비행물체 조사협회와 조지 W. 밴 태슬에 관한 섹션의 2쪽이다. 강연의 대부분은 성경 속 사건들을 우주인과 연결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대목은 우주가 만들어지던 태초뿐이며, 그 뒤의 언급들은 모두 하늘에서 왔다거나 천국에서 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인간, 곧 우주인이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고, 세상 초기에는 우주인들이 지구에 와서 동물들을 남겨 두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동물들은 체온이 105도인 선사시대 동물이었지만, 극축이 기울면서 극지방이 이동하고 열대 기후 지역이 얼음으로 덮였으며 그 반대 현상도 일어났다고 했다. 이후 우주인들이 다시 지구에 동물을 놓아두었고, 이것이 성경에서 노아의 방주로 왜곡되어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극축 변화 뒤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체온이 98.6도가 되었고, 이것이 우주인에게 적합했기 때문에 그들이 식민지를 세웠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남성만 남겨 두고, 나중에 보급선을 통해 여성을 데려오려 했으며, 이것이 아담에게 아내가 없었다는 이야기로 반영되었다고 했다. 또 아담은 한 개인이 아니라 한 남성 종족이었고, 이 종족이 지적이고 직립 보행을 하는 동물들과 결합했으며, 그 종족이 이브였다고 말했다. 우주인들이 보급선을 타고 돌아왔을 때 벌어진 일을 보고 착륙하지 않았지만, 아담의 기원 때문에 그 뒤로도 지구 사람들을 지켜보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내용이 모세가 십계명을 받는 이야기처럼 성경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십계명은 우주인의 법이며 지구인들은 말로만 그것을 섬긴다고 했다. 또한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도 우주인들이 공급한 빵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 이야기에서 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던 옥수수와 감자가 불타는 카누를 타고 왔다고 전하는 것도 같은 증거라고 보았다. 여기서 불타는 카누는 우주선을 가리키며, 원주민들에게 가장 높은 수준의 교통수단이 카누였기 때문에 그렇게 비유했다는 설명이다. 날개 달린 전차와 날개 달린 흰 말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옛이야기들도 같은 맥락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지만, 마리아는 지구 사람들에게 올바른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위해 이미 임신한 상태로 이곳에 보내진 우주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인들은 오랜 세월 우리를 지켜보며 도우려 했고, 자기들의 요원들을 지구에 보냈으며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보인다고 말했다. 문장은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162. p.162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 단체와 조지 W. 반 태슬에 관한 문서의 3쪽이다. 반 태슬은 우주인들이 예수처럼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으며, 이것이 그들의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말했다. 많은 우주인은 말을 하지 못하지만, 그중 일부는 지구 언어를 말하도록 훈련받는다고 했다.

    그는 지구에 와 있는 우주인들이 자기 주위에 자기장을 만드는 “수정 배터리”를 갖추고 있고, 이 자기장이 빛을 휘게 해서 우주인들이 보이지 않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발소리, 문이 저절로 열리는 일 같은 현상이 유령 이야기로 전해졌다고 했다.

    반 태슬은 우주인들이 인류의 원자폭탄을 매우 심각하게 걱정한다고 말했다. 폭탄 폭발이 지구의 자전을 교란했으며, 북아프리카에서 있었던 프랑스의 폭탄 폭발처럼 실제로 지진을 일으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지구의 관료들도 이를 알고 있으며, 최근의 지구물리학의 해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폭발들이 지구를 또 다른 극축 기울어짐으로 몰아가고 있고, 그 결과 전 인류가 위험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극축 기울어짐이 일어나면 우주인들은 “황금률”을 지킨 지구인들을 대피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머지는 죽도록 남겨둘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주인들이 지구의 관료들과 접촉해 자신들의 우려를 전달했지만, 그 사실은 공개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한 방사능 낙진이 극도로 위험해졌고 관료들도 걱정하지만, 각 강대국이 자기 힘에 지나치게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에 평화에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 태슬은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를 맡은 미국 공군이 정보를 은폐해 왔다고도 말했다. 공군은 선출직 공직자처럼 대중에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행정부에만 책임지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런 정보가 공개되면 공군이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으로 여겨져 해체될까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행정부가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경제 문제라고 말하기 시작하지만, 문장은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163. p.163

    FBI 의 〈미확인 비행 물체·조사 단체·조지 W. 밴 태슬〉 사건 파일 4쪽이다. 보고서는 밴 태슬의 강연 내용을 정리하면서, 그가 대중에게 두려움을 심으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적는다. 이미 이뤄졌고 앞으로 이뤄질 과학적 발견이 노동을 줄이고 거의 영구적이어서 대체 인력이 필요 없어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요약하면 밴 태슬의 강연은 세 가지 주제로 압축된다. 첫째, 성경에 나오는 사건들과 연관된 우주인. 둘째, 지구와 우주에 해로운 원자폭탄. 셋째, 빈약한 경제와, 우주인이 가져올 사상 아래 무너질 경제.

    강연 내내 밴 태슬이 거론한 것은 미국 경제와 미국 정부, 미국 공군뿐이었다. 인류 전체를 자주 언급하긴 했지만 정부와 경제를 말할 때는 사실상 미국을 가리켰다. 청중 한 명이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목격 사례가 있었는지 묻자, 밴 태슬은 목격담이 세계 곳곳에서 보고됐다고 답한 뒤 구체적으로는 미국·호주·뉴질랜드·뉴기니만 꼽았다.

    그는 청중에게 어떤 행동도 요구하지 않았다. 악은 스스로 무너지는 법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다만 그날 모인 250명가량의 청중이야말로 덴버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갖춘 이들이며, 호기심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이들은 평균 이상의 지성을 가졌고, 결정적 시기가 오면 세상이 이런 사람들을 필요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임에서는 덴버 지부 가입 신청서가 배포됐다.

  164. p.164

    디트로이트 SAC가 1960년 5월 20일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항공 전문이다. 사건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진정인은 미시간주 그랜드 블랭크의 조지프 페리이고 분류는 국적 정보. 4월 21일 공군 특수조사실 앞으로 보냈던 전문에 이어 보내는 것으로, 디트로이트 타임스가 5월 20일 플린트 사무소에 걸어온 전화를 설명하는 레터헤드 메모 사본 다섯 부를 동봉한다.

    플린트 거주사무소는 디트로이트 타임스 기자 제리 키아페타의 전화를 받자마자 본부에 보고했다. 그 뒤 ASAC가 직접 키아페타에게 연락해 무엇을 알아보려 했는지 물었다. 확인된 사정은 다음과 같다. 키아페타는 본인 신문사의 데이브 다우니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을 뿐이고, 다우니는 플린트의 FBI 요원들이 페리에게서 사진 두 장을 낚아채 갔다(snatched)고 들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키아페타 본인은 FBI가 그런 식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했지만, 자기 신문사 자료실(morgue files)을 뒤지는 중이라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고 싶다고 했다.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키아페타에게, 사건 발생 당시 이미 디트로이트 타임스와 한 번 접촉했었다는 점을 다시 환기시키며, FBI는 이 사건을 수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수사하지 않는다고 거듭 못 박았다. 본문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좌측 상단의 빨간 도장 ALL INFORMATION CONTAINED HEREIN IS UNCLASSIFIED 와 2015년 7월 9일자 해제 처리 표기는 이 문건이 2010년대 중반에 비밀해제된 사본임을 알린다.

  165. p.165

    디트로이트 사무소가 본부에 보내는 보고서 DE 65-2677 두 번째 쪽이다. 이 사건에서 FBI 가 먼저 움직인 것이 아니라 페리가 자진해서 정보를 들고 왔고, 적절한 기관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해서 FBI 가 받아 준 것이라고 정리한다. FBI 는 받자마자 사진을 셀프리지 공군기지 특별수사실 (OSI) 에 넘겼고, 페리에게도 그때 분명히 알려 줬다. FBI 는 이 사진을 직접 검사하지도 조사하지도 않았으며, 다만 사진이 해당 기관에 전달되었다는 점만 확인했다. 그 뒤 플린트 요원들이 페리와 다시 접촉했을 때 페리는 FBI 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키아페타에게도 한 가지가 추가로 전달되었다. 페리는 사진을 FBI 에 넘기면서, 공군이 사용 목적이 끝날 때까지 보관해도 좋지만 그 뒤에는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이 사실은 공군에 사진을 넘길 때 함께 전달되었다. 키아페타는 FBI 가 절차대로 처리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며, 자신은 단지 기록을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라고, 사실 외의 다른 사정을 암시하거나 이 건으로 또 다른 기사를 쓰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 단락은 사후 처리다. 플린트 상주 요원실에서 이 건의 정보를 받자마자 디트로이트 사무소는 셀프리지 OSI 에 전화로 연락해, 본문에 언급된 데이브 다우니 쪽에서 신문사 문의나 직접 접촉이 올 가능성에 대비하도록 알려 주었다.

  166. p.166

    1960년 5월 20일 디트로이트 지사가 작성한 미 법무부 연방수사국 보고서다. 사건 표제는 "미확인 비행 물체 — 진정인 조지프 페리, 그랜드블랭크, 미시간". 같은 날 오후 3시 58분, 디트로이트 타임스 시티 데스크의 제리 키아페타가 플린트 주재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왔다. 미시간 웨인 카운티에 사는 데이브 다우니로부터 막 제보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다우니는 자신을 항공현상조사회(Aerial Phenomenon Investigation Society)의 지역 책임자라고 소개했다. 다우니가 디트로이트 타임스에 전한 내용은 이러했다. 미시간 그랜드블랭크의 조지프 페리가 1960년 5월 3일 미시간 마운트클레먼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로부터 슬라이드 한 장을 돌려받았는데, 이 슬라이드는 페리 본인의 소유물로, 페리는 거기에 달 사진이 담겨 있고 달 부근 어딘가에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이 찍혀 있다고 주장해 왔다. 공군은 사진을 돌려주면서 비행 물체처럼 보이는 부분은 사실 제대로 현상되지 않은 네거티브의 일부라는 설명을 편지로 함께 전달했다고 한다. 다우니는 이 설명을 믿지 않는다고 디트로이트 타임스에 말했다. 조 페리가 사진 현상에 매우 꼼꼼한 사람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슬라이드에 실제로 비행 물체가 찍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슬라이드를 받아내 추가 분석을 위해 이스트먼 코닥사에 보낼 작정이라고 했다. 보고서 말미에는 정형 문구가 따른다. 이 문서는 어떤 권고도 결론도 담고 있지 않으며, 연방수사국의 자산으로 귀 기관에 대여된 것일 뿐이라 외부로 배포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우측 하단에는 "여기 담긴 모든 정보는 미분류임" 도장이 빨간 잉크로 찍혀 있고, 페이지 맨 아래 가운데에는 손글씨로 사건번호 62-83894-419가 적혀 있다. 좌측 하단에는 1964년 11월 12일 사본 폐기를 표시한 별도 도장이 있다.

  167. p.167

    1960년 5월 30일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FBI 사무소가 작성한 보고서다. 사건명은 미확인 비행 물체 — 그랜드 블랭크 거주 조지프 페리의 신고 건. 5월 20일 오후 3시 58분, 디트로이트 타임스 시티 데스크의 제리 키아페타가 플린트 레지던트 에이전시로 전화를 걸어 와인 카운티에 사는 데이브 다우니에게서 받은 제보를 전했다. 다우니는 자신이 항공현상조사회 (Aerial Phenomenon Investigation Society) 지역 책임자라고 소개했고, 그랜드 블랭크의 조지프 페리가 1960년 5월 3일 미시간주 마운트 클레멘스의 셀프리지 공군기지에서 슬라이드 한 장을 돌려받았다고 전했다. 페리 본인의 사진으로, 달을 찍었는데 달 근처에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이 같이 찍혔다는 것이다. 공군은 사진을 반환하면서 비행 물체로 보이는 것은 현상 과정이 제대로 안 된 음화 일부일 뿐이라고 적힌 편지를 함께 보냈다. 다우니는 그 설명을 믿지 않는다고 디트로이트 타임스에 말했다. 페리가 사진 현상에 매우 꼼꼼한 사람이라서, 슬라이드에 진짜 비행 물체가 찍힌 거라고 본다는 것. 다우니는 그 슬라이드를 받아 이스트만 코닥에 추가 분석을 의뢰할 계획이라고 했다. 보고서 끝에 FBI 표준 문구가 붙는다 — 이 문서는 권고나 결론을 담지 않으며 FBI 자산이고, 수신 기관 밖으로 유출돼서는 안 된다. 하단에 1985년 5월 4일 날짜의 redaction 처리 도장과 서명이 있다.

  168. p.168

    FBI 내부 케이스 파일 표지에 가까운 라우팅 카드다. 가운데에 손글씨로 "62-83894-420,421"이라는 기존 사건번호를 적어 놓고, 그 아래 "CHANGED TO"라는 활자 라벨을 끼운 다음 "62-6127-X, X1"이라는 새 번호를 다시 손글씨로 적어 두었다. 즉 원래 62-83894 파일의 420·421번 단편이 62-6127 파일의 X·X1 시리즈로 옮겨졌다는 표시다. 왼쪽 아래에는 1960년 8월 23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그 밑에 담당자 약식 표기로 보이는 "BL/363"이 적혀 있다. 오른쪽 위 모서리에는 "6-508"이라는 작은 표시가 있다.

  169. p.169

    1960년 9월 30일 S. B. 도노호가 A. H. 벨몬트 앞으로 보낸 FBI 내부 메모.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비행접시)". 도노호는 현재로서 비행접시와 관련해 현장 지부에 추가 지시를 내리거나 FBI 핸드북·매뉴얼에 새로 끼워 넣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시작한다.

    도노호는 비행접시에 대한 FBI 정책의 연혁을 짧게 정리한다. 1959년 10월 5일 메모에서 이미 정리해 두었듯 FBI 정책은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자체 조사는 하지 않고, 들어온 사실은 즉시 공군에 넘긴다는 것이다. 이 정책의 근거로는 네 건이 나열된다. 1947년 10월 1일자 국 회보 제57호, 1949년 3월 25일자 SAC 서한 제38호 (공군이 신고를 받을 때 확보해 주기를 바라는 데이터 항목을 정리), 1952년 8월 29일자 SAC 서한 제83호 (정책 재확인), 그리고 1957년 11월 12일 공군이 FBI 측에 "우리 쪽 관심사가 되는 모든 진전 사항은 알려 주겠다"고 약속한 건. 도노호는 이 네 건을 묶어, 현장이나 요원 매뉴얼에 비행접시 정책을 따로 추가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고 정리한다.

    지난 12개월 동안 FBI로 들어온 비행접시 관련 신고는 단 한 건이었고, 그것마저 현장과 본부 양쪽 모두 즉시 공군에 넘겼다고 도노호는 적는다.

    조치 항목에서는 같은 결론이 반복된다. 참고용이며 추가 지시는 필요 없고, 이 사안은 1961년 10월 1일 무렵 다시 검토하겠다는 것. 좌측 하단 라우팅은 벨몬트·도노호·왁스 세 사람에게 사본을 돌리는 것으로 마감되어 있다. 우측 여백의 "REC-5 62-83894" 도장과 1960년 10월 5일·10일 접수 도장은 이 메모가 비행접시 본 사건 파일 62-83894 로 들어가 분류되었음을 보여 준다.

  170. p.170

    문서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타자기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지만 글자 단위로는 읽기 어렵고, 오른쪽 여백에 푸른 잉크로 찍힌 'REC'D' 접수 도장과 날짜 표시만 또렷하다. 상단에는 종이를 철했던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나란히 뚫려 있다.

  171. p.171

    1960년 10월 17일, J. 에드거 후버가 시애틀 웨스트 57번가 2842번지의 앨프리드 지글러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다. 후버는 10월 10일자 편지를 잘 받았으며 편지를 쓰게 한 관심에 감사한다고 인사한 뒤, 곧 FBI 특별수사관 한 명이 이 문제로 지글러를 찾아갈 것이라고 알린다. 문서 하단의 내부 NOTE 는 같은 날 시애틀 SAC 앞으로 "앨프리드 지글러, '스트레인지스 박사' 관련 진정"이라는 별도 서한이 발송되었음을 명시한다. 좌상단 적색 일련번호 62-83894-423 으로 UFO 본 파일에 편철되었고, 1960년 10월 17일 발송·10월 24일 메일룸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172. p.172

    페이지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드러나고, 이쪽 면에는 1950년 10월 17일자 FBI 접수 도장 세 개가 찍혀 있다 — 새벽 6시 17분 우편실, 오후 4시 38분 톨슨 사무실, 오후 5시 12분 후버 국장실 순서. 우상단에는 붉은 라우팅 도장과 붉은 박스 도장이 있고, 우하단 모서리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58 이 거꾸로 새겨져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173. p.173

    1950년 10월 10일, 시애틀 57번가 2842번지에 사는 알프레드 타이글러가 워싱턴 DC 법무부 청사 9가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의 FBI 인사과 앞으로 보낸 편지다.

    타이글러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한 가지 문제가 있다고 운을 뗀다. "스트레인지스 박사"라는 사람이 비행접시를 다룬 책을 내놓았거나 누군가를 시켜 내게 했고, 공적인 자리에서나 사적인 자리에서나 자기가 한때 FBI에서 일했다는 식으로 흘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인지 알고 싶다는 게 편지의 본론이다.

    타이글러가 그리는 스트레인지스는 영악한 사람이다. "박사"라고 자칭하지만 무슨 박사인지는 한 번도 설명한 적이 없고, 말과 글에서 단어 선택이 굉장히 조심스러워서 많은 것을 암시하면서도 막상 추궁이 들어오면 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빠져나갈 수 있게 문장을 만든다. 직접적인 질문을 받으면 솜씨 좋게 비껴간다. 전체적으로 진실에 대해 무신경한 태도가 묻어나지만, 딱히 어디를 꼬집어 거짓말이라고 못 박기는 어려운 종류라는 것이다.

    이 사람은 비행접시 이야기를 종교적 주제와 엮어서 전국 교회들의 강단을 차지하고 있다. 타이글러는 그가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 물론 세금도 안 내고 — 교회를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 법을 어겼다는 증거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따지면 차라리 법을 어긴 자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적는다.

    스트레인지스가 몇 주 뒤에 자기 교회에 또 올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번 방문에서 꽤 노골적인 거짓말을 여러 개 했다고도 덧붙인다. 그래서 이 사람이 법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사기꾼이라면, 자기 교회 강단에 서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싶다고 한다. 그가 정말로 FBI 출신인지 아닌지 알려주면 고맙겠다는 부탁으로 편지를 맺는다.

    편지 오른쪽 위에는 후버 휘하 간부 명단이 줄지어 있는 통상 라우팅 슬립이 붙어 있고, 1950년 10월 18일자 접수 도장 EX-108과 사건번호 62-83894가 찍혀, 이 민원이 바로 FBI 본부 사건철로 흘러들어 갔음을 보여 준다.

  174. p.174

    문서 한 장의 뒷면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비쳐 보이고, 정작 뒷면에는 1950년 10월 14일과 17일에 FBI 본부 안에서 이 보고가 어떤 손을 거쳐 갔는지 보여주는 접수·라우팅 도장들이 사방으로 찍혀 있다. 같은 날 오후 1시 24분, 3시 37분, 4시 6분, 6시 46분, 8시 23분, 그리고 사흘 뒤 오후 2시 3분까지 시간이 다른 접수 도장들이 줄지어 있고, 도장 사이로 "MR. JONES", "MR. MUHR", "RECEIVED-TOLSON", "RECEIVED-DIRECTOR" 같은 수신처 표시가 같이 보인다. 종이 윗부분에는 1951년 5월 4일자 "REC-ADMIN." 행정 접수 도장과 "EX 100" 표시, 손글씨로 적은 문서번호 62-83894-21과 날짜 10/15/50이 함께 남아 있다. 이 한 장은 보고의 내용이 아니라, 그 보고가 후버 본부 안에서 톨슨 부국장과 국장에게 도달하기까지 거친 손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라우팅 기록이다.

  175. p.175

    1960년 10월 17일, 시애틀 SAC 가 FBI 본부에 알프레드 지글러 (시애틀 5번가 서편 2842) 의 진정 건을 보고한 문서다. 지글러가 스트레인지스 박사 라는 인물의 연구·서신·강연 활동을 문제 삼아 10월 10일자로 FBI 에 편지를 보냈고, 시애틀 사무소는 그 편지와 자신들의 답신 사본을 본부로 동봉했다. 본부 파일에는 지글러와 일치하는 기록이 없다고 적었다.

    시애틀 사무소는 지글러가 언급한 스트레인지스 박사 가 정확히 누구인지 단정할 수 없지만, 뉴욕주 글렌데일 61번가 7847번지에 자리한 인터내셔널 에반젤리즘 크루세이드의 회장 프랭크 E. 스트레인지스 박사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1957년 10월부터 본국은 미국 복음주의 협회 부회장 명의의 편지지로 스트레인지스 박사로부터 수차례 연락을 받아 왔는데, 대부분은 협회 월간지 비전 에 실을 자료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스트레인지스는 볼티모어 바이블 칼리지 부회장과 미국 복음주의 협회 부회장 양쪽 직함을 함께 썼다. 1957년에 본국이 볼티모어 바이블 칼리지를 잠깐 조회해 보니, 그해 새로 세워진 학교로 학생 수는 121명, 볼티모어 부흥 센터와 연계되어 있고 주요 운영진은 처치 오브 갓 목사들이었다. 스트레인지스 본인은 신학 박사 학위를 갖고 있고 라살 로 유니버시티 졸업생이라 알려져 있다. 본국은 그에게 이전에 발표한 후버 국장의 글 두 편을 재출판하도록 허가했고 각종 발간물도 보내 주었다. 다만 그가 별도 기고문을 요청하거나 강연을 제안하거나 워싱턴 D.C. 의 내셔널 복음주의 센터에서 FBI 대표가 연설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모두 거절했다. 가장 최근에 그가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는 직함이 인터내셔널 에반젤리즘 크루세이드 회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본국 기록상 프랭크 E. 스트레인지스가 FBI 직원이었던 적은 없다.

    동봉물은 세 건이고 후속 조치 기한은 10월 26일로 잡혀 있다. 우상단 여백에는 손글씨로 FLYING SAUCERSWASH. 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 본부가 이 메모를 비행접시 파일 갈래로 분류했음을 보여 준다. 하단에는 62-83894-454 의 파일 번호와 1960년 10월 19-28일 사이의 접수·라우팅 도장이 여러 겹 찍혀 있다.

  176. p.176

    문서의 뒷면 스캔으로, 앞면 타자기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보이지만 거꾸로 뒤집힌 상태라 읽을 수 없다. 페이지 하단 가까이에 "RECEIVED-TOLSON FBI Oct 17 4 38 PM '50" 라는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1950년 10월 17일 오후 4시 38분에 톨슨 비서실로 접수된 문서임을 보여준다. 왼쪽 여백에는 손글씨 메모 몇 줄이 있으나 판독이 어렵다.

  177. p.177

    시애틀 지부로 보내는 후속 지시 두 번째 장이다. 본부는 지글러 씨를 특수요원이 직접 면담해, 그가 편지에서 언급한 "스트레인지스 박사"가 프랭크 E. 스트레인지스 박사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지글러 씨가 왜 그 인물을 전직 FBI 요원으로 행세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그 근거를 캐물으라고 한다. "스트레인지스 박사"가 지글러 씨의 교회에 다시 나타날 예정 날짜도 함께 파악하라고 하며, 조사 결과를 1950년 10월 25일까지 본부로 보고하라고 마감을 못박는다.

  178. p.178

    1961년 10월 2일 FBI 도나호(S. B. Donahoe)가 설리번(W. C. Sullivan)에게 올린 내부 메모랜덤이다. 제목은 "미확인비행물체(비행접시)"이고 문서번호는 62-83894-425, 접수 도장은 1961년 10월 4일이다.

    도나호는 현장 요원이나 FBI 핸드북·매뉴얼에 비행접시 관련 추가 지시를 넣을 필요가 없다고 보고한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60년 9월 30일자 메모에서 이미 정리한 대로, FBI 의 정책은 비행접시를 자체 수사하지 않고 사실관계를 즉시 공군에 넘기는 것이다. 이 방침은 1947년 10월 1일자 부 회보 제57호에서 처음 명시됐고, 1949년 3월 25일자 SAC 서신 제35호가 같은 정책을 되풀이하면서 공군이 신고 접수 시 확보하기를 원하는 자료 항목까지 정리했다. 1952년 8월 29일자 SAC 서신 제83호도 동일한 방침을 재확인했다. 1957년 11월 12일자 SAC 서신에서는 이 분야에 FBI 가 관심을 가질 만한 변동이 생기면 본부가 통보를 받기로 했고, 그 시점에도 추가 지시나 요원 매뉴얼 삽입이 불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12개월 동안 비행접시 관련 신고는 단 한 건 접수됐으며, 그 사실관계도 즉시 공군으로 이첩했다. 따라서 추가 지시는 필요 없고, 이 사안은 1962년 10월 1일 무렵 다시 검토하기로 한다. 메모 좌측 여백과 하단에는 수기 서명, 라우팅 표식, 사본 배포 명단(설리번·도나호·왁스) 등이 어지럽게 덧붙어 있다.

  179. p.179

    1961년 10월 17일 신시내티 SAC가 후버 FBI 국장(파일 62-83894)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랜덤이다. 제목은 "민간 연구, 행성 간 비행 물체, 레너드 H. 스트링필드, 신시내티 오하이오 소장 — 잡건, 참고 정보"다.

    메모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신시내티 지부는 1961년 9월 25일과 10월 2일에 SA 조지 J. 맥퀘이드가 레너드 H. 스트링필드로부터 받은 정보를 정리한 레터헤드 메모를 본부 정보용으로 첨부했다고 알린다. 사본 한 부는 신시내티 OSI(공군 특별수사대)에 현지 배포가 끝났다.

    다음으로 신시내티 지부는 본부의 스트링필드 관련 파일을 완성하기 위해 다음 사실을 추가로 보고한다. 1960년 6월 15일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에 "사망과 장례 — L.H. '팻' 스트링필드, 훈장받은 전쟁 영웅"이라는 부고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1차 세계대전의 훈장 다수를 받은 참전용사이자 신시내티 상이군인회 1지부 임원이었던 레너드 R. '팻' 스트링필드가 신시내티 해리슨 애비뉴 2495번지 자택에서 62세로 사망했다.

    기사는 이어서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마리몬트의 레너드 H. 스트링필드가 미확인 비행 물체 연구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주제에 대한 그의 견해가 연방 정부의 관심을 끌어왔다고 적었다. 본문은 이 지점에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좌측 여백에 신시내티 그로브 애비뉴 4417번지 주소가 손으로 적혀 있고,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CRIME RESEARCH"라는 빨간 사선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메모가 FBI 내부에서 범죄 연구 경로로 분류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단에는 1961년 10월 23일과 10월 31일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80. p.180

    파일 CI 100-11671 의 두 번째 장으로, 레너드 스트링필드의 신원과 그가 신시내티 지역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정리한 부분이다. 그는 듀보이스 케미컬 컴퍼니의 광고 임원이며, 비행접시 보고를 연구한 결과 이들이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어 1960년 6월 8일자 신시내티 포스트 앤 타임스 스타 5면에 실린 기사 '비행접시 비밀을 털어놓다, 전문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기사에서 스트링필드는 미국이 미확인비행물체 관련 비밀 파일을 공개한다면 러시아로부터 우주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정부가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움직이면 세계의 긴장 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듀보이스 케미컬의 광고 매니저인 스트링필드는 미확인비행물체가 외계에서 왔고, 지구를 관찰하는 지성체가 조종한다고 본다. 적대적인 의도는 없다고 보며, 그들이 태양계 안의 행성들, 심지어 달까지 기지로 써왔다고 믿는다. 천문학자들이 오랫동안 달 위에서 움직이는 점들을 관측해 왔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그는 미 공군 비밀 파일에 외계 기원의 증거 혹은 그에 준하는 자료가 들어 있다고 보지만, 당국은 공개 시 공황을 우려해 숨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 정부들도 같은 이유로 증거를 비공개로 둔다는 것이다. 신시내티 미확인비행물체 협회를 이끄는 스트링필드는 1945년 공군 복무 중 이 주제에 처음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밝혔다.

  181. p.181

    파일 번호 CI 100-11671 의 3쪽.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진술 인용의 끝부분으로, 그 사람이 폭격기에서 비행물체 편대를 목격했다는 문장이 먼저 나오고, 그 이후로는 방공사령부의 스포터로 일하면서 그 물체에 관한 잡지를 펴내고 책까지 썼다는 설명으로 마무리된다. 이후 페이지 하단까지는 빈 여백이고 가운데에 페이지 번호 3 만 찍혀 있다.

  182. p.182

    1961년 10월 17일, 신시내티 FBI 사무소가 파일번호 100-11671로 작성한 보고서다. 제목은 '민간 연구, 행성간 비행물체, 레너드 H. 스트링필드, 디렉터, 신시내티, 오하이오'. 보고서는 스트링필드가 직접 진술한 내용을 정리한다. 그는 신시내티 듀보이스 화학회사의 광고 매니저이며 거주지는 신시내티 머리몬트의 그로브 애비뉴 4412번지다. 1961년 9월 25일에 스트링필드는 자신이 미확인비행물체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관련 회보를 발행해 왔고, 이 분야에서 잘 알려져 있으며, 미확인비행물체 관련 사안에 관해 공군방공사령부와 협력해 왔다고 진술했다. 또한 그는 최근 신시내티의 WCPO-TV 방송에서 방영된 'Impact News'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1961년 9월 10일 일요일 출연해 세 명으로 구성된 패널로부터 미확인비행물체 관련 질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서 그는 1961년 9월 25일 오전 9시경 익명의 전화를 받았는데, 발신자는 남성으로 목소리가 단호하고 분명했으며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고 말했다. 발신자는 스트링필드에게 그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며 미확인비행물체와 관련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전하려 한다고 했다. 페이지는 다음 단락의 도입부에서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가 대여한 것이며 대여받은 기관 외부로 배포할 수 없다'는 빨간 사각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외부 기관과의 자료 공유용 사본임을 보여 준다. 같은 줄에는 손글씨로 'ENCLOSURE 62-83894-426'이라고 적혀 있어, 본 보고서가 HQ 사건파일 62-83894의 부속자료 426번에 해당함을 가리킨다.

  183. p.183

    스트링필드의 직장 전화 GA 1-5100 으로 전화를 건 익명의 남자는 자기를 밝히지 않은 채, 이 사안과 관련된 핵심 책임자들에게 모두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링필드에게 곧 100메가톤급 러시아 핵폭발의 여파로 사상 최대 규모의 UFO 목격 사태가 벌어질 테니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목격은 특정 기간에 집중되는데, 스트링필드의 기억으로는 남자가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를 기억해 두라, 이 기간에 역대 최대의 UFO 활동이 있을 것" 이라고 했다. 남자는 통화 끝에 19일 이후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스트링필드는 남자가 끝내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전하려는 메시지를 두고 말투는 분명히 또렷했다고 진술했다.

    스트링필드는 이 전화 자체에 우려를 느꼈다고 했다. 만약 내용에 일말의 진실이 있고 실제로 그 목격이 벌어진다면 미국 시민들 사이에 공황을 일으킬 수 있는 사안인데다, 남자의 목소리와 메시지 어디에도 장난이나 농담의 기색이 없이 매우 진지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스트링필드는 자신이 미확인 비행 물체 목격을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항공방위사령부 본부로 보고하는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 이런 전화를 받는 일 자체는 드물지 않다고 설명했다. UFO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점이 외부에 알려진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이 National Investigations Committee on Aerial Phenomena 의 자문을 맡고 있으며, 이 위원회는 코네티컷에 있다고 진술했다.

  184. p.184

    1961년 10월 2일 스트링필드는 신시내티 FBI 사무소에 다시 전화를 걸어, 같은 해 10월 1일 일요일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2면 E 섹션 "Offbeat Washington" 칼럼에서 한 문단을 보았다고 알린다. 그 문단은 국방부 일부 고위급 인사들이 러시아가 자국의 위협 캠페인의 정점으로 우주에서 거대한 핵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지상 200마일 상공에서 폭발하면 그 빛이 수억 명에게 보일 만큼 거대할 것이며, 소련은 이미 그런 폭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이 관리들은 믿고 있다는 것이다. 스트링필드는 이 문단이 워싱턴 D.C.의 헤럴드 트리뷴 뉴스 서비스에서 재인용된 것이며, 9월 25일 자신에게 걸려온 익명 전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봤다. 같은 페이지 윗부분은 앞 페이지에서 이어진 문장으로, 도널드 키호 소장이 이끄는 위원회가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스트링필드가 언급한 대목으로 시작한다. 페이지 하단에 "-3-" 쪽 번호가 붙어 있다.

  185. p.185

    1961년 10월 17일, FBI 신시내티 지부가 작성한 보고서다. 파일 번호 100-11671, 제목은 "민간 연구, 행성간 비행체, 신시내티 오하이오의 디렉터 레너드 H. 스트링필드 건".

    신시내티 듀보이스 화학회사의 광고 매니저 레너드 H. 스트링필드 — 자택은 신시내티 메리몬트 그로브가 4412번지 — 가 1961년 9월 25일 FBI에 다음과 같이 알렸다. 자신이 미확인 비행체 연구를 활발히 하고 있으며, 관련 회보를 펴내고 있고, 이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며, 미확인 비행체 문제로 공군방공사령부와 협업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스트링필드는 최근 신시내티의 WCPO-TV에서 방영하는 〈임팩트 뉴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했다. 1961년 9월 10일 일요일에 나가 패널 세 명에게 미확인 비행체 관련 질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1961년 9월 25일 오전 9시쯤 익명의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남자였고, 목소리는 단호하고 명료했으며, 영어를 잘 구사했다. 전화를 건 자는 미확인 비행체와 관련해 스트링필드에게 전할 매우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고, 이름까지 정확히 호명했다. 그리고 그 전화에서 —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는 "이 자료는 FBI가 대여한 것이며, 대여받은 기관 외부로 자료 자체나 그 내용을 배포할 수 없다"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어, 외부 공유가 제한된 문서임을 알린다.

  186. p.186

    FBI 메모 2쪽. 익명 제보자가 신시내티의 UFO 정보원 레너드 스트링필드의 직장 (전화 GA 1-5100) 으로 전화를 걸어, "우리는 이 사안에 관련된 핵심 인물 모두에게 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100메가톤이 넘는 러시아 핵폭발 여파로 사상 최대 규모의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이 줄을 이을 것이니 대비하라고 알렸다. 목격은 특정 일자 사이에 집중되며, 스트링필드의 기억에 따르면 제보자는 "10월 15일부터 19일까지를 기억해 두라, 그 기간이 수년 만에 가장 큰 UFO 활동의 시기가 될 것"이라고 못박았다. 또한 "계속 연락하겠다, 19일 이후 다시 전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스트링필드는 제보자가 끝까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자신에게 전한 내용은 조리 있게 말하는 듯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만약 이 말이 사실이고 실제 목격이 벌어진다면 자국민 사이에 공황이 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고, 제보자의 어조가 매우 진지해서 농담이나 장난으로 보이는 구석은 없었다고 했다. 스트링필드는 자신이 콜럼버스 (오하이오) 의 항공방위사령부 본부로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을 보고할 권한을 가진 인물이고, UFO 사안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어 이런 전화를 받는 일이 드물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코네티컷에 본부를 둔 항공현상조사위원회 (NICAP) 의 자문위원이라고 밝혔다 — 다음 페이지에서 문장이 이어진다.

  187. p.187

    이전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보고서의 3쪽이다. 워싱턴 D.C. 의 어느 거리, 도널드 키호 소령이 디렉터이며, 스트링필드는 이 위원회 인원이 모두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1961년 10월 2일 스트링필드는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FBI 신시내티 사무소에 다음을 알렸다.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일요판 1961년 10월 1일자 1면 H 섹션, "Offbeat Washington" 이라는 제목 아래 한 단락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그 단락은 이렇게 적었다. "국방부 고위 인사 일부는 러시아가 우주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위협 작전의 정점을 찍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 수억 명이 볼 수 있는 거대한 핵폭발이다. 이들 관리는 소련이 지상 200마일 정도 상공에서 그런 폭발을 일으킬 능력이 있고, 여러 나라에서 그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스트링필드는 이 단락이 워싱턴 D.C. 의 헤럴드 트리뷴 뉴스 서비스에서 재인쇄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 기사는 1961년 9월 25일 익명 전화 제보자가 스트링필드에게 전한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188. p.188

    1961년 10월 17일 오하이오 신시내티의 FBI 지국이 작성한 보고서로, 파일 번호는 100-11671이다. 제목은 "민간 연구, 행성간 비행 물체, 신시내티 디렉터 레너드 H. 스트링필드"이다.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듀보이스 케미컬 컴퍼니의 광고 매니저 레너드 H. 스트링필드는 신시내티 7번가와 브로드웨이에 직장을 두고, 마리몬트의 그로브 애비뉴 4412번지에 거주한다. 1961년 9월 25일 그는 자신이 미확인 비행물체 연구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관련 회보를 발행한 적이 있고, 이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며, 미확인 비행물체와 관련된 사안을 두고 방공사령부와 협력해 왔다고 진술했다.

    스트링필드는 최근 신시내티 WCPO-TV의 "임팩트 뉴스(Impact News)"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고 말했다. 1961년 9월 10일 일요일 방송이었고, 패널 세 명이 미확인 비행물체에 대해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어서 스트링필드는 1961년 9월 25일 오전 9시경 익명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했다. 남성 발신자였고, 목소리는 깔끔하고 또렷했으며 영어를 잘 구사했다. 발신자는 스트링필드에게 전할 매우 중요한 정보가 있다고 말하면서 그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통화를 요청했고, 내용은 미확인 비행물체에 관한 것이었다. 스트링필드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 발신자는 — (페이지가 여기서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이 자료는 FBI가 대여한 것이며, 자료와 그 내용은 대여받은 기관 밖으로 배포해서는 안 된다"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189. p.189

    보고서는 익명 발신자가 스트링필드에게 건 전화의 구체적 내용을 이어 옮긴다. 발신자는 "우리는 이 사안에 관한 모든 핵심 인물과 책임 있는 인물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스트링필드의 근무처 전화 GA 1-5100 으로 연결됐음을 확인했다. 본인 신원은 밝히지 않은 채, 발신자는 "러시아의 100메가톤급 핵폭발에 따라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이 사상 최대 규모로 쏟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발신자는 이 목격이 시작될 때 일어날 혼란에 대비하라고 덧붙였고, 특정 날짜 사이에 사건이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스트링필드의 기억에 따르면 발신자는 "10월 15일부터 10월 19일까지를 표시해 두라, 그 기간이 수년 동안 UFO 활동에서 가장 큰 사건이 일어나는 때다"라고 못박았다. 발신자는 "19일 이후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도 남겼다. 스트링필드는 발신자가 끝내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지적으로 또렷하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만약 이 예고에 조금이라도 진실이 섞여 있고 실제로 그런 목격이 일어난다면 국민 사이에 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고, 발신자의 목소리나 메시지 어디에도 농담이나 장난으로 볼 만한 단서가 없었으며 매우 진지하게 들렸다고 진술했다. 스트링필드는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을 오하이오 콜럼버스 소재 방공사령부 본부에 보고할 권한을 가진 인물이므로 그런 전화를 받는 일은 드물지 않다고 부연했다. UFO 관련 사안에 관심을 가진 인물로 공개적으로 알려져 있어 이런 연락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단에서 그는 자신이 National Investigations Committee on aerial phenomena 의 자문위원이며 이 위원회는 코네티컷에 있다고 밝힌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는 면번호 -2- 가 찍혀 있다.

  190. p.190

    이 페이지는 신시내티 FBI 사무소가 작성한 스트링필드 관련 보고서의 3쪽이다.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문단은 워싱턴 D.C. 어느 거리 주소와 함께 NICAP 위원회 소장 도널드 키호 소령을 언급하고, 스트링필드는 이 위원회 인원이 모두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 1961년 10월 2일 스트링필드는 신시내티 FBI 사무소에 연락해, 1961년 10월 1일 일요일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1면 E 섹션의 "Offbeat Washington" 칼럼에서 한 단락을 읽었다고 알린다. 칼럼은 국방부 고위 관계자 일부가 소련이 위협 캠페인의 절정으로 우주에서 거대한 핵 폭발을 일으킬 것을 우려한다는 내용이었다. 지구 위 약 320킬로미터 상공에서 핵을 터뜨려 수억 명이 동시에 볼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섬광을 만들어낼 능력이 소련에 있다는 평가가 들어 있었다. 스트링필드는 이 칼럼이 워싱턴 D.C.의 헤럴드 트리뷴 뉴스 서비스에서 받은 재인쇄 기사이며, 그 내용이 1961년 9월 25일 자신에게 걸려온 익명 전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보고했다.

  191. p.191

    1961년 10월 17일 신시내티 FBI 사무소가 작성한 보고서다. 파일 번호는 100-11671, 제목은 '민간 연구, 행성간 비행물체 — 신시내티의 레너드 H. 스트링필드 디렉터'. 보고서에 따르면 스트링필드는 신시내티 두보아 화학회사 광고 매니저이자 마리몬트 그로브 애비뉴 4412번지 거주자로, 9월 25일 자신이 미확인 비행물체 연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관련 회보를 발행해 왔고 이 분야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며 방공사령부와도 협력해 왔다고 진술했다. 또한 9월 10일 일요일 신시내티 WCPO-TV 의 'Impact News'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 명의 패널로부터 UFO 관련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본문 핵심은 9월 25일 오전 9시경 그가 받은 익명 전화다. 발신자는 남성이었고, 단호하고 또렷한 목소리에 영어가 유창했으며, 스트링필드를 이름으로 지명하면서 UFO 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가 대출해 준 자료이며 내용물은 대출받은 기관 밖으로 배포할 수 없다'는 빨간 사각 도장이 찍혀 있어 자료의 유통 제한 성격을 보여 준다.

  192. p.192

    보고서 2쪽이다. 익명의 발신자는 스트링필드의 직장 전화 GA 1-5100 으로 전화를 걸어 와, 자신은 이 사안에 관여하는 핵심 책임자 전원에게 전화를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발신자는 끝까지 신원을 밝히지 않았고, 곧 러시아의 100메가톤급 핵 실험 여파로 최대 규모의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 보고가 쏟아질 것이라며 스트링필드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알렸다. 발신자는 정확한 날짜까지 짚었다. 스트링필드의 기억에 따르면 발신자는 "10월 15일부터 19일 사이를 표시해 두라, 그 기간에 수년 만의 최대 UFO 사건이 벌어질 것" 이라고 말했고, 19일이 지난 뒤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덧붙였다. 스트링필드는 발신자가 신원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전달하려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또렷하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만약 이 통화 내용에 조금이라도 사실이 섞여 있고 실제로 그런 목격 사건이 발생한다면 대중 사이에 공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발신자의 말투는 매우 진지했고 농담이나 장난으로 들릴 만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스트링필드는 본인이 오하이오 콜럼버스에 있는 방공 사령부 본부에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 사례를 보고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며, 미확인 비행물체 문제에 관심 있는 인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런 전화를 받는 것 자체는 드문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코네티컷에 위치한 항공 현상 관련 전국조사위원회의 자문위원이기도 하다.

  193. p.193

    FBI 보고서의 세 번째 쪽이다. 첫 줄은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문장으로, 워싱턴 D.C. 의 어느 거리 주소와 함께 도널드 키호 소령이 이 위원회의 디렉터라는 사실, 그리고 스트링필드가 위원회 구성원이 모두 민간인이라고 언급한 점을 정리한다.

    이어서 1961년 10월 2일 스트링필드가 FBI 신시내티 사무소에 알린 내용을 옮긴다. 그는 전날인 10월 1일 일요일 자 신시내티 인콰이어러 1면 K 섹션 "Offbeat Washington" 칼럼에서 한 단락을 보았다고 했다. 그 단락은 이렇게 적었다 — 일부 국방부 고위 인사들은 러시아가 자국의 위협 전술에 정점을 찍기 위해 우주 공간에서 극적인 폭발을 일으킬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수억 명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핵폭발이다. 이 관계자들은 소련이 지상에서 약 320킬로미터 (200마일) 상공에서 이런 폭발을 일으킬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관측될 수 있다고 본다.

    스트링필드는 이 단락이 워싱턴 D.C. 의 헤럴드 트리뷴 뉴스 서비스 기사에서 그대로 옮겨 실린 것이며, 9월 25일 자신에게 걸려 온 익명 전화의 내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 -3- 쪽수 표시.

  194. p.194

    1962년 10월 2일자로 W. R. 워널이 W. C. 설리번에게 올린 비망록.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비행접시). 워널은 지금 단계에서 비행접시 관련 추가 지침을 현장에 내리거나 FBI 핸드북·매뉴얼에 새로 끼워 넣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짧게 결론을 먼저 적었다. 그러면서 1년 전인 1961년 10월 2일자 비망록이 같은 결론을 이미 내렸다는 사실을 환기한다. FBI 의 일관된 정책은 비행접시 신고가 들어와도 자체 수사는 하지 않고 사실관계만 즉시 공군에 넘긴다는 것이며, 이 방침은 1947년 10월 1일 국 회보 제57호, 1949년 3월 25일 SAC 서한 38호, 1952년 8월 29일 SAC 서한 83호로 이어져 왔다. 공군은 1957년 11월 12일자로 FBI 가 알아야 할 만한 진전이 이 분야에 생기면 통보해 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래서 현장 요원용 지침에 별도 항목을 추가할 이유가 없었다고 워널은 정리한다. 지난 12개월 동안 들어온 비행접시 신고는 단 한 건이며, 그 건도 사실관계를 곧바로 공군에 넘겼다. 마지막 '조치' 항목에서 워널은 같은 결론을 다시 한 번 못 박는다 — 추가 지침은 필요 없고, 이 사안은 1963년 10월 2일 전후로 다시 검토한다. 문서 하단 사건번호는 62-83894 이고, 사본은 설리번·워널·웍스 세 사람에게 돌렸다. 우측 여백에는 결재 흐름을 보여 주는 도장 — 1962년 10월 3일 접수, 10월 8일 추가 접수, 사건번호에 일련번호 427 이 붉은 글씨로 부여된 흔적 — 이 남았다.

  195. p.195

    어떤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 잉크가 비쳐 글자 윤곽이 거꾸로 어렴풋이 보이고, 페이지 아래쪽에 1952년 10월 7일 오전 10시 47분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도장에는 REC-2, EX. R.E.E.RANCH INSPECTOR, 6-216 같은 라우팅·접수 식별이 들어 있어, 이 종이가 본문이 아니라 FBI 내부 접수 처리 흐름을 보여주는 면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196. p.196

    1963년 6월 27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뉴저지 칼스타트 워싱턴가 427번지의 R. G. 마스트로베르테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6월 24일자 소인이 찍힌 편지를 잘 받았다고 짧게 답한 뒤, 미확인 비행물체에 관한 사안은 FBI 의 수사 관할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그러면서 오하이오주 라이트-패터슨 공군기지에 있는 미 공군 외국기술국(Foreign Technology Division)에 문의해 보라고 안내한다. 본문 아래 사무처리 메모에는 이 발신인이 FBI 내부 파일에 기록이 없다는 점, 그리고 연락담당과(Liaison Section)가 제안한 대로 타 기관 안내(referral) 처리했다는 점이 적혀 있다. 좌측 상단에는 사건파일 번호 62-83894-428이, 본문 하단에는 1963년 6월 27일 발송 도장이 찍혀 있다.

  197. p.197

    1963년 6월 27일 후버 국장 명의로 웨스트버지니아 찰스턴의 R. 맥더모트라는 시민에게 보낸 답신이다. 맥더모트가 6월 21일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 뒤, FBI는 미국 법무부 산하 사실조사 기관이라 특정 인물·간행물·단체의 성격이나 신뢰성에 대한 평가나 의견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또한 문의 대상에 관한 자료가 FBI 파일에 있다 없다를 추정하지 말아 달라는 표준 문구를 덧붙인다. 본문 아래에는 사무용 NOTE로, 이 사람은 FBI 색인에 잡히는 기록이 없고 범죄기록과에서도 관련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적어 두었다. 페이지 자체는 상하가 뒤집힌 채 스캔되었고, 윗머리에 6월 2일자 발신 도장과 6월 27일 우편실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198. p.198

    1963년 6월 말, 뉴저지 칼슈타트의 워싱턴가 429번지에서 RG 마스트로베르테라는 인물이 워싱턴 D.C.의 FBI 앞으로 편지를 한 통 보낸다. 자신을 PRRO 라는 단체의 디렉터라고 소개한 그는 답을 듣고 싶은 질문이 두 가지 있다며 곧장 용건으로 들어간다. 첫째, FBI 는 미확인 비행물체와 그 탑승자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은 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관련 사건 파일은 일반에게 열람이 가능한가. 둘째, 같은 주제와 연결된 의문의 실종 사건에 관해서도 정보 비공개 명령을 받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사건들의 파일은 열람이 가능한가.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의 일부에 답이 "아니오" 라면, 한 가지 더 답해 달라고 덧붙인다 — 미국 정부가 비행접시나 어떤 종류든 행성 간 비행체를 포획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누가 관여했고 어디로 옮겨졌는가. 어떤 도움이든 환영한다는 말로 그는 편지를 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의 접수 도장 "JUL 2 1963" 과 사건 색인 번호 62-83894-428 이 함께 찍혀 있어, 이 편지가 후버 시대 UFO 문의 파일에 정식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

  199. p.199

    내용물이 비치는 종이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본문이 거꾸로 비쳐 보이고, 위쪽에 두 개의 펀치 구멍, 아래쪽에는 접수 도장으로 추정되는 흐릿한 자국이 거꾸로 남아 있다. 독립된 정보는 담겨 있지 않다.

  200. p.200

    1963년 7월 12일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21번지 어느 빌딩에 사는 존 L. ---라는 시민이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다. 그는 두 가지를 묻는다. 첫째, FBI가 미확인 비행 물체 보고에 공식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둘째, FBI가 미 공군의 프로젝트 블루북이 진행하는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에 협조하고 있는지. 본문은 이 두 문장이 전부고 "Thank you"로 끝맺는다. 본문 아래에는 푸른 잉크 서명과 발신인 주소가 타자로 박혀 있고, 오른쪽 여백에 큼지막한 빨간 손글씨 "A"가 회신 표시처럼 들어가 있다. FBI 접수 도장은 1963년 7월 19일 자로 사건 번호 62-83894-429를 부여했고, 왼쪽 하단 손글씨 메모는 7월 16일에 국장 연설문을 첨부해 답신(Ack)했음을 보여준다.

  201. p.201

    본문이 없는 뒷면 스캔으로, 종이 뒤로 비쳐 보이는 1957년 7월 19일 접수 도장과 FBI 수신 표시 외에는 비어 있다.

  202. p.202

    1963년 7월 17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에 사는 존 L. 블랙에게 보낸 답신이다. 후버는 7월 10일자 소인이 찍힌 블랙의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린 뒤, 미확인비행물체 조사는 FBI 의 권한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다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편지 사본을 공군 감찰감실 특별조사국장(워싱턴 D.C. 4번가-애덤스 드라이브 템포 E 빌딩) 앞으로 회부했다고 알린다. 본문 아래 사무 메모에는 발신자가 FBI 자체 파일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인물이며, 받은 편지 사본은 표준 양식에 따라 공군 특별조사국으로 넘겼다고 적혀 있다. 문서 상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429 가 손글씨로 매겨져 있고, 1963년 7월 17일 발송 도장과 7월 25일 접수 도장이 같이 찍혀 있어 동일 사건철 안에서 회람·정리된 흔적이 남아 있다.

  203. p.203

    1963년 8월 17일자로 FBI 본부가 발송한 후버 국장 명의의 회신 편지다. 7월 10일자로 들어온 시민 문의에 대해, FBI 는 그 문제를 다루는 기관이 아니며 미확인비행물체 조사는 국방부가 설치한 공군 산하 전담 기관 소관이라는 점을 알리고, 워싱턴 D.C. 의 미 공군 본부로 문의해 보라고 안내한다. 끝에는 본문 아래에 내부 메모로 "문의인은 Bufiles 에서 식별되지 않음, 사본은 신시내티 지부로" 라는 처리 지시가 붙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REC'D MAIL ROOM FBI JUN 17 5 30 PM '63" 라는 우편실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같은 사건 파일 안에 다른 문건과 함께 묶여 들어왔음을 짐작하게 한다.

  204. p.204

    1963년 9월 27일, 후버의 비서 헬렌 W. 갠디가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에 사는 래리 W. 브라이언트에게 보낸 답장이다. 갠디는 후버가 사무실로 돌아와 브라이언트가 9월 17일에 쓴 편지를 읽었으며, 파일이 비밀로 묶여 있어 요청에 응할 수 없다고 자신에게 지시했다고 전한다. 본문 아래의 내부 메모는 브라이언트가 버지니아 포트 유스티스에 있는 미 육군 수송학교에서 편집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UFO 관련 문의를 여러 기관에 보내고 있어 메릴랜드 포트 미드의 제2군 G-2 부서가 그의 신원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노퍽 지국이 보고한 사실을 정리한다. 편지 상단 여백에는 누군가 손글씨로 브라이언트의 출생일(1937-2-23 셰넌도어 버지니아)과 사회보장번호를 적어 두어, 받는 즉시 신원조회를 시작하려 한 자취를 보여준다.

  205. p.205

    이 페이지는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의 글자가 비쳐 보이지만, 모두 좌우·상하가 뒤집힌 상태다. 비쳐 보이는 요소는 FBI 의 접수 도장과 1983년 9월 21일 자 시간 도장 두 개 (오후 3시 22분, 오후 3시 6분), 우편실 접수 표시, 그리고 부국장(ASST. DIRECTOR) 라우팅 흔적이다. 페이지 상단에는 붉은 손글씨로 464 가량의 세 자리 숫자가 적혀 있다. 본문은 비쳐 보이는 것 외에는 새 정보가 없다.

  206. p.206

    1963년 9월 24일자로 노퍽 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airtel이다. 사건번호는 노퍽 62-720, 주제는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의 래리 W. 브라이언트가 벌이는 “비행접시 관련 서신과 견학 조사”다. 9월 20일자 본부 airtel에 대한 회신으로, 노퍽 사무소가 보관한 브라이언트의 활동 기록을 정리해 올린다.

    노퍽 파일을 훑어보니, 브라이언트는 1958년 8월 7일 버지니아주 케이프찰스 공군기지 사령관에게 미확인비행물체(UFO) 정보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다. 케이프찰스 공군기지는 그 편지 사본을 노퍽 FBI로 넘겼다.

    브라이언트는 1959년 2월 1일에는 FBI에 직접 편지를 썼고, 본부는 2월 9일에 답신을 보냈다. 1960년 4월 15일에는 노퍽 미 해군기지의 대서양 함대 해병대 사령부 본부 사령관 앞으로 UFO 정보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 해군 부대도 사본을 노퍽 FBI로 보내왔다.

    파일을 더 보면 1963년 8월 8일에는 노퍽 해군기지 사령관에게 또 한 통을 보냈다. 이번 주제는 해군 인원이 비행접시 목격담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사령부가 두고 있는 제한 조치였다. 이 편지 사본도 노퍽 FBI 사무소로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주 서식스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스토니크릭 소재)가 받은 편지의 사본 한 통도 파일에 들어 있다. 브라이언트가 UFO 관련 정보를 요청한 내용이고, 발신 소인은 1963년 7월 23일 버지니아주 포트유스티스다.

    배포는 본부 2부, 노퍽 1부. 우측 상단에는 FBI HQ 본부 파일 번호 62-83894-430과 1963년 9월 20일 접수 도장, ‘CORRESPONDENCE’ 라벨이 따로 표시되어 있어, 본부가 이 보고를 브라이언트 관련 서신 흐름 추적에 묶어두려 한 정황을 보여준다.

  207. p.207

    FBI 노포크 사무소 사건번호 NF 62-720 보고서로, 리치먼드 지부가 노포크 사무소로 넘긴 편지의 후속 조사 내용을 정리한 페이지다. 1963년 9월 17일, 포트 유스티스(버지니아) 민간인 인사기록과 비서 비버리 얼리(Beverly Earley) 부인이 특수요원 존 S. 캐슬스(John S. Castles)에게, 자기 부서 파일 기록상 래리 윌리엄 브라이언트(Larry William Bryant)라는 인물이 1938년 2월 23일 버지니아주 페이지 카운티 셰넌도어 출생, 사회보장번호 230-44-9093이며, 1963년 5월 22일부터 포트 유스티스에서 사무 타자수로 근무하기 시작해 현재는 미 육군 수송학교 훈련문헌국 기술교범과 수송가능성반의 편집 사무원(타이핑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거주지는 뉴포트 뉴스 매디슨 가 5603번지이며, 그 전에는 같은 시 아놀드 가 1002번지에 살았다는 사실도 함께 전달됐다. 같은 날 브라이언트 본인은 포트 유스티스 수송학교 206호실에서 특수요원 톰 S. 캐슬스의 면담을 받았다. 그는 옛 워릭 시 민방위 지상관측대(Ground Observer Corps) 시절부터 UFO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이후로는 독서와 집필, 그리고 과거 UFO 목격을 보고한 적 있는 여러 군·민간 기관에 직접 편지를 보내 정보를 모으는 식으로 상당한 조사를 해왔다고 진술했다. 본인의 UFO 관심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며 현 직무와는 공식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고, 현재 UFO에 관한 연구 논문을 한 편 준비해 잡지나 신문에 게재할 수 있도록 사전 검열을 받기 위해 국방부에 제출해 둔 상태라고 했다. 면담 도중 브라이언트는 자기가 예전에 UFO 문제로 FBI에 편지를 쓴 적이 있다고 말하면서 면담 요원에게 정확한 날짜를 아는지 물었고, 요원은 1959년에 보낸 것이라고 답해주었다. 면담 말미에 브라이언트가 이 인터뷰로 얻은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고 묻자, 요원은 파일용 메모로 작성될 것이라고 답했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208. p.208

    사건 번호 NF 62-720 의 3쪽이다. 1963년 9월 17일, 버지니아 주 포트먼로 헌병감실의 길버트 클라인크네히트 중위가 캐슬스 특수요원에게 알린 내용을 FBI 본부에 전하는 보고다. 메릴랜드 주 포트 조지 G. 미드에 있는 제2군 G-2 (군 정보) 부서가 브라이언트의 신원조회를 이미 끝냈으며, 그 이유는 브라이언트가 이 지역 군 관계자들에게 방대한 분량의 서신을 계속 보내고 있고 본인이 미 육군 소속으로 고용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209. p.209

    1963년 9월 20일 후버 국장 사무실이 노퍽 지부장에게 보낸 항공우편(Airtel) 지시문이다. 사건번호는 62-83894-431, 대상은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에 사는 래리 W. 브라이언트이고 분류는 조사 (서신 및 투어) 다. 본부는 노퍽 지부에 브라이언트와 관련해 파일에 있는 모든 정보를 요약해 9월 25일까지 보내라고 지시했다. 여기에는 브라이언트가 특별수사관 존 S. 캐슬스와 진행한 면담 내용도 포함시키라고 못박았다. 메모란에는 본부 파일을 확인한 결과 1959년 2월 9일 브라이언트에게 미확인비행물체 보고를 조사할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 고 통보한 이전 서한이 있다고 적혀 있으며, 정형 부재 회신만 보냈고 노란 사본이나 초록은 작성하지 않았다고 부기했다. 우상단에는 붉은 손글씨로 브라이언트의 출생지·생년월일(1938년 2월 23일, 버지니아 셰넌도어), 주소(매디슨 가 5603번지), 사회보장번호(33 44 9093)가 추가로 적혔고, 추적란에는 9월 26일 캐슬 수사관과 통화해 후속 조치를 취했다는 메모가 손으로 덧붙었다. 좌측 여백의 톨슨·벨몬트·모어·디로치 등 본부 핵심 간부 회람 목록은 이 사안이 단순 회신이 아니라 본부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10. p.210

    FBI 본부가 1951년 9월 27일 오후 3시 10분과 9월 28일 오후 12시 3분에 두 번에 걸쳐 접수한 사무 통신문의 한 페이지다. 스캔이 거꾸로 들어갔고 종이가 누렇게 바래 본문은 거의 판독되지 않는다. 상단에는 빨간 손글씨로 "194" 라는 정리 번호가 적혀 있고, 하단에는 FBI 디렉터 사무실 접수 도장 두 개가 나란히 찍혀 있다. 본문은 디렉터에게 보낸 보고·요청 형식의 메모로 보이며, 마지막 NOTE 단락은 통상 절차에 따라 처리한다는 종류의 문구로 끝난다. 페이지 자체는 사건 기록보다는 라우팅·접수 흐름을 보여주는 사무 슬립에 가깝다.

  211. p.211

    1963년 9월 17일,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 매디슨가 5603번지에서 래리 W. 브라이언트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브라이언트는 그날 아침 자신의 포트유스티스 사무실로 뉴포트뉴스 담당 요원 존 S. 캐슬스가 찾아와 약 10분간 자신의 미확인비행물체(UFO) 목격 보고에 대한 관심을 물어봤다고 적었다. 캐슬스가 질문한 것은 1959년에 FBI로 보낸 편지 한 통과, 최근 주·연방 기관들에 UFO 보고 처리 역할을 따져 물은 두 통의 편지였다. 브라이언트는 캐슬스가 면담의 목적이 자신의 공식 신원과 사인 자격으로 그런 편지들을 쓴 동기를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밝혔으며, 이 면담을 "파일용 메모"로 작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브라이언트는 그 메모 또는 보고서 사본을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편지 하단에는 1963년 9월 20일자 FBI 우편 접수 도장, 사건번호 62-83894-431, 9월 30일 추가 접수 표시, "CORRESPONDENCE" 도장이 찍혀 있고, 손글씨로 "O Flying Discs"라는 분류 메모가 적혀 있다.

  212. p.212

    편지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종이가 얇아 앞면 본문이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글자 자체는 거의 알아보기 어렵다. 비쳐 보이는 머리에는 발신자 주소 세 줄과 1953년 9월 16일 날짜가 있고, 끝에는 Sincerely yours 결미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뒷면에는 FBI 접수 도장이 여러 개 찍혀 있다. 9월 18일 오후 1시 28분 FBI 접수 도장과 9월 18일 RECORDED 도장이 먼저 찍혔고, 이틀 뒤 9월 20일 오전 11시 48분 Reading Room 도장, 같은 날 오후 1시 03분 Mail Room 도장, 오후 12시 03분 부국장실 (RECD-VED-DIRECTOR) 도장이 차례로 찍혀 사내 회람 경로를 보여준다.

  213. p.213

    1963년 10월 4일, FBI 본부의 W. R. 워널이 W. C. 설리번에게 올린 "미확인비행물체(비행접시)" 건 메모다. 워널은 이 사안을 매년 한 번씩 자체 검토해 온 관행을 더 이어갈 이유가 없다고 본다. 1958년부터 FBI는 비행접시 관련 민원을 1년에 한 번씩 모아 살펴보면서, 현장 지부에 이미 내려간 지시 외에 추가 지시가 필요한지를 점검해 왔다. 가장 최근인 1962년 10월 2일자 메모는 FBI의 방침이 직접 조사하지 않고 접수한 사실관계만 즉시 공군에 넘기는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했고, 1949년과 1952년 SAC 레터에서도 같은 방침을 강조한 만큼 이번에도 별도 지시는 필요 없어 보인다고 정리한다. 지난 12개월 동안 비행접시 관련 민원은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고, 24개월을 통틀어도 단 한 건만 접수되어 곧바로 공군으로 이첩되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워널은 "매년 검토를 이어갈 근거가 없으므로 앞으로는 이 분야에 관한 추가 분석이나 검토를 일절 진행하지 않는다. 다만 민원이 들어오면 기존 방침대로 처리한다"고 결론짓는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벨몬트 등 FBI 수뇌부 회람 체크 목록이 인쇄되어 있고, 하단에 사건번호 62-83894-432와 1963년 10월 8일·11일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본 메모가 이 핵심 파일에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 준다.

  214. p.214

    문서의 뒷면 스캔으로, 본문은 비치어 보일 뿐 거의 비어 있고 하단 여백에 FBI 내부 접수 도장 네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1963년 10월 4일 5시 13분에 방첩 분과(Espionage Branch / Espionage II C.G.M. Branch)가 가장 먼저 수령했고, 이어 10월 7일 4시 20분에 벨몬트(Belmont)가, 10월 8일 3시 14분에 설리번(Sullivan)이, 같은 날 3시 35분에 국내정보부(Domestic Intelligence Division)가 차례로 접수 도장을 찍었다. 문서 한 장이 며칠 사이에 FBI 본부 내 네 부서를 거쳐 돌아간 라우팅 흔적이다.

  215. p.215

    1963년 11월 22일 캘리포니아 인디오 인근 치리아코 서밋에 자리한 광산 사업체 Storm-Jade Mountain Mines 가 워싱턴 D.C. NASA 과학기술정보국 앞으로 보낸 편지다. 종이는 옥(jade) 과 보석 원석 목록이 빼곡히 인쇄된 사업체 레터헤드를 그대로 쓰고 있고, 본문 윗머리에는 누군가 손으로 'Flying Discs (비행접시)' 라고 적어 두었다.

    발신인은 자신을 '아마추어 과학자이자 일반인' 으로 소개하면서, '핵 로켓 추진' 같은 공개 문헌을 두루 읽었고 직접 미확인 비행물체를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한다. 그중 한 대는 거대한 접시 모양으로, 지금 인류가 쓰는 어떤 추진 방식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특정 기동을 해 보였다고 한다. 발신인은 이런 비행체가 여러 세기에 걸쳐 다양한 지역에서 목격돼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으며, 에너지와 물질을 잇는 고리인 수소의 양성자 핵 자체가 본디 전자 대기 속에서 라디오 은하의 전자기 융합으로 만들어졌으리라고 본다.

    그래서 자신은 이런 성간 비행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풀어 보려고 관련 주제를 틈틈이 뒤져 왔다고 한다. '나무에 가려 숲을 못 보는' 부류일지 모르지만, 지금의 기술과 재료와 공법으로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고, 미국의 국익을 우선 생각해 NASA 에 먼저 그 내용을 넘긴다고 밝힌다. 발신인이 집필 중이라는 논고 'The Worlds And You In The Making' 의 한 대목을 직접 인용해 옮긴다.

    첫 대목은 이렇다. 이 비행체에 탄 보이지 않는 승객들이, 성간 공간에서 끌어모은 원소 물질 곧 수소를 동력원으로 삼는 '슈트 모터' 에 실려 가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쓰는 수소 모터 흐름도는 이렇게 시작될 수 있다 — 먼저 수소 흡입구와 흡입 압축기를 거쳐 액체 수소 연료 탱크로 들어가고, 단열 처리된 이 1차 연료 저장조에서 2단 압축기가 수소를 다시 팽창 기체로 바꿔 두 번째 '준비 상태' 연료 탱크로 보낸다. 이 탱크 양 끝에 압축기를 달아 가운데로 모이도록 흐름을 만들고, 그 흐름이 외부 추력판 안쪽 한 점으로 향하도록 비스듬히 배치된 네 개의 열반응로 '포드' 로 흘러 들어간다. 기체 공동 반응로(gaseous cavity reactor) 의 공급 방식과 비슷한 구조다. 이렇게 과열된 수소 기체 와류 속으로 또 하나의 열반응로가 우라늄을 점화해, 통제된 수소 융합을 일으키는 식이다.

    이어지는 다음 단락은 페이지 맨 아래에서 잘려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 '아니면 더 단순하게, 외부 [추력판] 바로 뒤 한 점을 향해 비스듬히 배치된 네 개의 열반응로만으로 수소 연료 반응로가 구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까지만 보인다.

    페이지 맨 위 여백에는 'Have just sent the original to addressee. It might be well to see that it doesn't get into the wrong hands' — 원본은 수신자에게 이미 보냈다, 엉뚱한 손에 들어가지 않게 단속해 두는 편이 좋겠다 — 라는 짧은 손글씨가 적혀 있고 옆에 'FBI' 표시와 짧은 서명이 같이 보인다. 왼쪽 하단의 'DEC 5 1963' 빨간 접수 도장과 'OCT 22 1963' 자국, 그리고 'copy attached / Read' 같은 여백 메모는 이 편지가 FBI 내부에서 한 차례 회람·복사된 자료임을 알려 준다.

  216. p.216

    버리(Barry) 라는 발신인이 보낸 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첫 장에서 시작된 접시형 비행체 추진 개념 설명이 이어진다. 발신인은 수소 가스가 과열된 상태에서 그 측면 흐름이 가속기 총에 의해 한데 충돌하면서 추진력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이런 모터를 접시형 비행체의 앞·뒤·옆에 단다면 윗쪽 반응로의 하향 분사만으로 정지 비행도 하고 착륙·이륙도 한다는 것이다. 속도와 방향을 순간적으로 바꿔도 안에 탄 사람은 중력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고, 결국 이 우주 여행자들은 인류보다 수천 년을 앞선 진화 단계에 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인류의 제트기가 오천 년 전 파라오 시대 배보다 앞선 만큼, 그쪽 광속 돌파선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비유다.

    발신인은 개념을 셋으로 정리한다. 하나, 네 개의 열반응로가 한 점을 향해 발사된다. 둘, 그 반대편 외부에 추진판이 있고, 이는 기체 공동 반응로 끝단과 비슷한 구조다. 셋, 과열된 수소 와류 방전 안에 우라늄 증기를 주입해 제어 수소 핵융합을 일으키거나, 같은 와류 안에 가속기 총으로 수소 원자 흐름을 쏘아 넣는다.

    글 중간에는 손으로 그린 간단한 도해가 들어 있고, 손글씨로 열반응로, 기체 공동 반응로 시스템, 고온, 기체, 추진판, 조향 핀 같은 부품 이름이 적혀 있다.

    마지막 단락이 이 편지의 진짜 호소다. 이 위태로운 시기에 그 개념이 아주 조금만 작동해도, 군사적으로는 핵탄두 한 발을 모스크바에 시간 단위가 아니라 분 단위로 떨어뜨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Sincerely yours, Barry 라는 서명으로 끝난다. 좌측 하단에는 ES.MAR 11 12 AM 으로 보이는 접수 도장이 있다.

  217. p.217

    1964년 1월 22일, 후버 국장이 오하이오주 위클리프의 레이 몬텔로(2201 록펠러 로드, 44092)에게 보낸 짧은 답신이다. 후버는 1월 15일자 편지를 잘 받았다고 인사한 뒤, 문의 건에 관해 중앙정보국 입장은 자기가 대신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다만 FBI는 그런 조사를 한 적이 없다고 답한다 — 애초에 그 사안은 FBI의 수사 관할에 들어오지 않는 종류라는 이유다. 서명은 존 에드거 후버 국장. 본문 아래 사무 메모에는 "발신인은 FBI 파일에서 식별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 줄 덧붙어 있다. 좌측 여백의 1964년 1월 22일자 "MAILED 12 / COMM-FBI" 인장과 우측의 1월 27일 자료실 접수 인장, 그리고 빨간 "434" 번호는 이 답장이 정식 발송돼 사건철 62-83894의 434번 단수로 편철됐음을 알린다.

  218. p.218

    이 페이지는 문서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 타자 본문이 비쳐 보일 뿐 직접 읽을 수 있는 본문은 없다. 상단 가운데에 붉은 손글씨 표기가 하나 있고, 왼쪽 가장자리에는 세로로 돌아간 "FBI" 접수 표시, 가운데 오른쪽에는 보라색 사각 도장, 하단에는 1951년 1월 22일 오후 5시 24분 FBI 접수를 가리키는 초록 날짜 도장이 찍혀 있다. 결국 이 면 자체는 행정 접수 흔적만 남아 있는 백지 뒷면이다.

  219. p.219

    1964년 1월 15일, 오하이오주 위클리프(2201 Rockefeller Rd.) 의 레이 몬텔로(Ray Montello)가 워싱턴 D.C. FBI 공보실 앞으로 보낸 편지다. 자기가 속한 연구 그룹이 현재 UFO(미확인 비행 물체, 흔히 flying saucers 라고 우습게 불리는 그것) 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조사 과정에서 마주친 두 가지 소문을 FBI에 직접 묻는다. 첫째, FBI와 CIA 같은 연방 기관이 UFO에 대해 자체 조사를 해왔고 때로는 공군의 자체 연구와 공조했다는 이야기. 둘째, 정보기관 요원들(FBI와 CIA)이 수상한 물체 를 목격한 민간인에게 입을 다물도록 압력을 넣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 본인의 그룹은 FBI 와 그 요원에 한해 이 두 진술을 확인 혹은 부인해주면 매우 고맙겠다며, 같은 내용의 편지를 CIA에도 따로 보낼 예정이라고 덧붙인다. 페이지 우측과 하단에는 FBI 내부 처리 흔적 — 사건번호 65-83894-457, ST-103 인덱스 번호, 1964년 1월 23일 접수 도장, CORRES(correspondence) 라벨, ack 1-22-64 라는 답신 처리 메모 — 이 함께 찍혀 있어, 이 편지가 실제로 FBI 본부에 접수되어 응답 처리 라인에 올랐음을 보여준다.

  220. p.220

    이 페이지는 거의 비어 있다. 앞면 타자기 글씨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읽을 수 없다. 페이지 하단에는 거꾸로 찍힌 FBI 접수 도장이 있고, "REC'D-CORR & TOURS / FBI / Jan 20 9 21 AM '54" 즉 1954년 1월 20일 오전 9시 21분에 FBI 통신·문서 접수부 (Correspondence & Tours) 가 받았음을 보여 준다.

  221. p.221

    1964년 4월 27일 오전 3시 6분 산악표준시, 앨버커키 지국이 FBI 본부 국장 앞으로 보낸 디퍼드 전문이다. 사건번호는 앨버커키 62-1028, 본부 파일은 62-83894-435 로 매겨졌다. 4월 24일 뉴멕시코주 소코로에서 발생한 미확인비행물체 사건의 후속 보고로, 앨버커키 공군특수수사대(OSI)는 이번 사건이 군 또는 클라우드 갭 작전과 연관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이어 추가 사건이 보고됐다. 4월 26일 오전 1시경, 산타페에서 북쪽으로 약 70마일 떨어진 뉴멕시코주 라 마데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에스파뇰라 주재 뉴멕시코주 경찰 마틴 비힐 경위가 유일한 목격자 올란도 가예고스(35세, 산타페 거주)를 면담한 결과, 목격자는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였고 겁에 질려 있었다고 한다. 올란도는 부친 프랭크 가예고스를 만나러 라 마데라에 와 있었고, 4월 26일 오전 1시경 시끄럽게 우는 말을 살피러 밖에 나갔다가 집에서 약 300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무언가를 봤다. 모양은 부탄 탱크 같고, 높이는 약 12~14피트, 길이는 "전봇대만큼" 됐다. 외관상 지면에 놓여 있었고 주변에는 무언가 둘러싸여 있었다 — 본문은 1쪽 끝으로 이어진다.

  222. p.222

    1964년 4월 24일 앨버커키 FBI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1쪽이다. 사건번호는 앨버커키 52-1058-3P, 발신 시각은 P241749Z. 표제는 "미확인비행물체, 뉴멕시코 로스웰, 지난 4월 28일". 본문은 4월 25일자 앨버커키 전문에 대한 후속 회신으로, 앨버커키 지부는 이 사건이 군 또는 "오퍼레이션 클라우드 갭"과 연관된 것으로는 파악되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이어서 지난 4월 26일 뉴멕시코 라마데라(Santa Fe 북동쪽 약 70마일 지점)에서 또 한 건의 사례가 보고되었음을 알린다. 뉴멕시코 주경찰 에스파뇰라 지서의 마틴 비길 경위가 단일 목격자 올란도 갈레고스 — 산타페 거주, 30세 과수노동자 — 를 면담한 결과를 전했다. 올란도는 4월 26일 라마데라의 아버지 메렐 갈레고스 집을 방문 중이었고, 새벽 1시경 집 근처에서 양을 살피러 나갔다가 집에서 약 300피트 떨어진 지점에서 "전신주"와 "구형의" 무언가를 목격한 것으로 보인다. 1쪽 끝(END PAGE ONE)에서 본문이 끊긴다. 여백에는 FBI 일반행정과·연구실·각 책상의 접수 도장이 4월 21일부터 28일까지 여러 차례 겹쳐 찍혀 있어, 이 한 장이 청사 안 여러 부서를 거쳐 회람된 흔적이 보인다.

  223. p.223

    전문 2쪽. 물체에서는 청백색 화염이 나왔는데, 마치 현창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았다. 올랜도는 약 1분 동안 그 광경을 지켜봤고, 곧 화염이 꺼졌다. 물체는 움직이지 않았고 내내 소리도 없었다. 올랜도는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에게 알렸지만, 아버지는 그를 비웃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현장을 다시 찾아갔고, 아직 연기가 나는 구역을 봤다. 그날 늦게 주 경찰관을 만나 이 일을 전했다.

    비길 대위가 이어 진술하길, 그는 4월 26일 오후 7시 30분에 현장을 점검했고, 지름 약 9~12미터의 그을린 원형 구역을 확인했다. 땅에는 한 변 20×30센티미터, 깊이 약 8~10센티미터의 V자형 직사각형 자국 하나가 나 있었다. 먼저 와 있던 동료 경관이 직사각형 자국 세 군데를 더 가리켜 보였다고 한다.

    비길 대위는 또 현장에서 지름 약 9센티미터의 매끈한 원형 자국 여러 개를 봤다고 덧붙였다. 물체를 목격한 다른 증인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은 앨버커키 커틀랜드 공군기지의 해당 군 당국이 인지하고 있다. 전문 2쪽 끝.

  224. p.224

    분홍빛 종이에 인쇄된 FBI 전문의 마지막 장이다. 앞 페이지에서 이어진 본문은 앨버커키 지국이 따로 수사를 벌이지 않고 있으며 연락 채널만 유지하고 있다고 알린다. 이어 접촉한 군 장교들이 보고된 두 건의 사건이 자기들이 아는 한 군사훈련의 일부가 아니며 현재까지 설명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전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관련 진전이 있으면 본부에 다시 보고하겠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에는 종결 표시 END, 송신 코드 LLD, 수신처 FBI WASH DC, 그리고 단일 알파벳 P가 차례로 찍혀 있다. 페이지 왼쪽 아래 여백에는 손글씨로 CC—M. DeLoach라고 적혀 있어 사본이 부국장 카서 디로치 앞으로도 돌았음을 보여준다.

  225. p.225

    분홍색 종이 뒷면 스캔으로, 앞면 텍스트가 비쳐 좌우가 뒤집힌 상태로 보인다. 1954년 4월 27일 오전 6시 16분에 FBI 본부 텔레타이프 유닛이 수신한 전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앨버커키 FBI 사무소는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연락 채널은 유지 중이라고 알린다. 접촉한 군 관계자들은 보고된 두 건의 사건이 자신들이 아는 한 어떤 군사 훈련의 일부도 아니며 현재까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사무소는 본부에 추가 진전이 있을 경우 보고하겠다는 말로 전문을 마무리한다.

  226. p.226

    1964년 4월 25일 오후 5시 37분 (MST), 앨버커키 SAC 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사건 번호는 앨버커키 62-NEW, 제목은 “1964년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 미확인비행물체 관련 정보.”

    4월 24일과 25일에 걸쳐 정보 제공자는 뉴멕시코 소코로 경찰의 로니 자모라 (Lonnie Zamora) 경관이었다. 그는 차분하고 신뢰할 만하며 공상에 빠지는 성격이 아닌 인물로 평가되었다. 자모라는 그날 오후 5시 50분쯤 소코로 남쪽 지역에 있다가 남서쪽 하늘에서 불꽃을 보았다. 인근 다이너마이트 저장고가 폭발했나 싶어 직접 가서 확인하기로 했다.

    외딴 지역을 차로 달리다가 소코로 남쪽으로 약 1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800피트쯤 떨어진 움푹 꺼진 곳에 흰빛이 도는 물체가 보였다. 처음 본 순간에는 뒤집힌 자동차 같았다. 그 옆에는 흰 작업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자모라는 험한 길을 따라 물체에서 약 103피트 떨어진, 약 20~25피트 더 높은 지점까지 다가갔다. 그 시점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초도 안 되는 간격을 두고 두세 번 둔탁한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굉음과 함께 푸르스름하고 주황빛이 도는 불꽃이 일었다. 물체는 천천히 수직으로 차 높이 정도까지 솟아올랐다가 소음과 불꽃이 멈추자, 거의 수평으로 직선으로 고속 비행해 멀리 있는 산 너머로 사라졌다.

    크게 놀란 자모라는 무전으로 자기가 본 내용을 보고했고, 현장에 빠르게 도착한 뉴멕시코 주 경찰 (NMSP) 경사와 소코로 카운티 부보안관은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그을린 자국 네 곳과, 가로세로 약 16인치 × 6인치 크기의 균일하게 눌린 자국 네 곳을 확인했다. 1페이지는 여기서 끝나며, 하단에는 “MR. MOHR FOR THE DIRECTOR” 라벨이 작은 박스로 처리되어 있다. 우측 여백에는 회람을 거친 손글씨 이니셜과 메모, 그리고 62-83894 사건번호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227. p.227

    전문(텔레타이프)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비치지만 거의 판독되지 않고, 페이지 전체가 FBI 내부 라우팅 도장으로 덮여 있다. 1964년 4월 24일 통신실에서 받은 뒤, 같은 달 25일 저녁 7시 55분에 에반스와 별도 라우팅으로 접수되고, 27일 오전과 밤 사이 톨슨·벨몬트·실험실로 차례로 넘어간다. 같은 해 11월 27일에는 콘래드, 벨몬트, 그리고 실험실의 현미경 화학과로 재차 라우팅된다. 한 장의 전문이 봄에 한 번 돌고, 가을에 다시 한 번 같은 라우팅 라인을 따라 도는 모습이 도장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228. p.228

    전문은 소코로 사건 첫날 앨버커키 FBI 가 본부로 올린 보고의 후반부다. 자국 패턴은 평균 12피트 간격의 직사각형 형태였다고 적었다. 소모라는 물체가 풋볼과 비슷한 타원형이었고 길이는 20피트 정도였으며, 약 30인치 높이에 2피트 너비의 붉은 표식이 물체 중앙에 자리잡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소음·화염·물체 자체를 본 다른 목격자는 알려진 바 없다. 소코로의 스탤리언 사거리 센터 상부 사거리 지휘관인 R. T. 홀더 대위가 4월 24일 즉시 통보를 받고 사안을 처리 중이다. 군은 현재 클라우드 갭이라는 작전을 수행 중인데, 국방부와 군축통제국 합동으로 뉴멕시코를 포함한 남서부 주에서 진행되는 작전이다. 이번 사건이 클라우드 갭과 연관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언론의 관심이 상당하다. 앨버커키 사무소는 자체 수사는 하지 않고 군과의 연락만 유지하며, 본부에 추가 사정을 계속 보고하겠다고 끝맺는다. 본문 끝에는 END, 발신 코드 VA NHM, 수신 FBI WASH DC, TUP 표시가 따라붙고, 그 아래 손글씨로 cc Dr Roach 가 추가됐다.

  229. p.229

    1964년 4월 25일 오후 5시 37분 MST, 앨버커키 FBI 특수요원 책임자(SAC)가 후버 국장 앞으로 URGENT 등급으로 보낸 텔레타이프다. 제목은 "미확인 비행물체, 뉴멕시코 소코로, 1964년 4월 24일 관련 정보". 통신과 접수 도장 옆에는 손글씨로 "Mickelwait 4/16/64"가 적혀 있고, 본문 끝의 박스에는 "국장에게 — 모어"라고 지정되어 있다.

    앨버커키 지부는 4월 24일과 25일 양일에 걸쳐, 소코로 경찰서 소속 경찰관 로니 자모라로부터 정보를 받았다. 자모라는 "술에 취하지 않았고, 신뢰할 만하며, 성숙하고, 공상에 빠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오후 5시 50분경 소코로 남쪽 지역을 순찰하던 중 남서쪽 하늘에서 화염을 보았고, 그 일대의 다이너마이트 창고가 폭발한 것이라 짐작해 확인하러 갔다.

    소코로 남쪽 약 1마일 떨어진 외진 지역을 달리던 자모라는, 800피트쯤 떨어진 우묵한 곳에 흰빛이 도는 물체를 보았다. 처음에는 뒤집힌 자동차로 보였고, 그 옆에는 흰색 작업복을 입은 듯한 두 사람이 서 있었다.

    자모라는 거친 길을 따라 더 가까이 다가가, 물체에서 103피트 떨어진, 물체보다 20~25피트 높은 지점에 도착했다. 그때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1초 간격도 안 되는 짧은 간격으로 두세 번의 큰 쿵 소리를 들었고, 곧이어 굉음과 함께 푸르스름하고 주황색을 띤 화염이 일었다. 물체는 천천히 수직으로 자동차 높이만큼 떠올랐고, 소리와 불꽃이 멎자 직선으로 빠르게, 거의 수평으로 가속해 먼 산 너머로 사라졌다.

    크게 놀란 자모라는 무전으로 목격 내용을 전했다. 뉴멕시코 주경찰(NMSP) 경사와 소코로 카운티 부보안관이 곧장 현장에 도착해, 작고 불규칙한 모양의 그을린 자국 네 군데와, 약 16×6인치 크기의 일정한 함몰 자국 네 군데를 확인했다. 페이지는 "END PAGE ONE"으로 끊긴다. 하단 손글씨 파일 번호는 62-83894-436.

  230. p.230

    본문 없는 빈 페이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반대편에 찍힌 접수·배포 도장이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 이 면 자체에는 적힌 내용이 없다. 상단 두 개의 펀치 구멍과 하단 오른쪽 모서리의 "ACTION UNIT 9035" 식별 도장만 확인된다.

  231. p.231

    FBI 앨버커키 지국이 워싱턴 본부로 보낸 전문의 뒷부분이다. 사마라가 본 물체는 럭비공 비슷한 타원형으로 길이는 20피트쯤 되어 보였고, 가운데에는 높이 30인치, 너비 2피트 정도의 붉은 표식이 있었다고 한다. 소리·불꽃·물체에 대한 다른 목격자는 확인되지 않았다. 사건은 스탤리언 사거리 센터의 R. T. 홀더 대위가 4월 24일 즉시 통보받아 처리 중이다. 같은 시기 군은 남서부 주들 — 뉴멕시코 포함 — 에서 국방부와 군축청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클라우드 갭이라는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이 그 작전과 관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언론 관심이 상당하지만 앨버커키 지국은 직접 수사하지 않고 군과 연락을 유지하며 새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본부에 보고하겠다는 내용이다. 전문 끝에는 송신 코드 WA NNH, 수신처 FBI WASH DC, 송신자 표시 TUP, 그리고 사본 수신자로 디로치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232. p.232

    1964년 4월 28일자 FBI 본부 디렉터가 앨버커키 지부장(SAC) 앞으로 보낸 에어텔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436.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 뉴멕시코 소코로, 1964년 4월 24일, 잡건 — 정보 송부 (국적 정보)". 본문은 단 두 문장이다. 4월 25일자 회신 전문(reurtel)을 받았으니 이 건의 사실 관계를 현지 공군에 통보할 것, 그리고 레터헤드 메모란덤을 제출할 것을 지시한다.

    같은 페이지의 NOTE 칸이 사건의 골자를 더 풀어쓴다. 술에 취하지 않고 믿을 만하며 공상에 빠지지 않는 성품으로 알려진 한 경찰관이 미확인 비행 물체가 굉음과 함께 지면에서 솟아올라 푸르스름한 불꽃과 주황색 불꽃을 뿜으며 먼 산 너머로 사라지는 광경을 보았다고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현지 법 집행기관 인원이 현장에 출동해 작게 불규칙한 모양으로 그을린 자리 네 곳과 일정하게 꺼진 자리 네 곳을 확인했다. 물체는 타원형으로, 길이는 약 6미터(20피트), 붉은 휘장이 들어가 있었다고 묘사한다. 인용한 전문에는 공군에 보고가 갔다는 흔적이 없으며, FBI 의 방침은 직접 조사가 아니라 공군이 사실을 인지하도록 챙기는 데 있다고 못박는다. 현재 군이 조사 중이고 앨버커키 지부가 연락을 유지한다.

    여백에는 1964년 4월 23일 공문 발송 도장, 4월 28일 접수 표시, 5월 5일자 메일룸 도장이 같이 찍혀 있고, 우측 위 손글씨로 "1 - Wacks 4/28/64" 가 들어가 송부 사본 한 부의 행선지를 표시한다.

  233. p.233

    1964년 4월 28일, 앨버커키 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에어텔 평문 전송이다. 사건 번호는 62-1028, 주제는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에서 발생한 미확인비행물체 건이며, 앨버커키 지국이 4월 25일과 27일에 본부로 보낸 텔레타이프를 잇는 후속 보고다.

    앨버커키 SAC는 커틀랜드 공군기지(KAFB) OSI의 L. B. 킹 중령이 4월 26일 면담에서 소코로 경찰관 로니 자모라가 묘사한 관찰 내용을 자신은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보고를 다룰 적임자는 KAFB 안전장교 윌리엄 R. 코너 소령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코너 소령은 자신이 D. N. 무디 기술 상사와 함께 소코로 현장을 직접 살피고 자모라 경관을 면담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자모라의 진정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현장에서 무선 활동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모라의 관찰을 설명할 길은 없었다. 다만 소코로의 뉴멕시코 광업기술대학이 작업 중 발파를 하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이 일어난 구역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배포는 본부 4부(그중 1부는 FBI 연구소), 앨버커키 2부로 총 6부. 페이지 하단에는 1964년 4월 30일자 접수 도장과 사건 번호 62-83824, 5월 8일자 처리 도장이 차례로 찍혔고, 우측 여백에는 손글씨 서명과 "FLYING SAUCERS" 라는 메모가 남아 있다.

  234. p.234

    문서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비쳐 보이는 앞장 글씨와 함께 1954년 3월 1일·3월 30일·5월 4일에 FBI 실험실과 조사 실험실로 들어왔다는 접수 도장 여러 개가 거꾸로 찍혀 있는 빈 페이지다.

  235. p.235

    AQ 62-1028. 코너 소령은 1964년 4월 27일, 자기가 그 전날인 4월 26일 산타페에서 올랜도 가예고스를 만나 함께 뉴멕시코 라마데라로 가서 가예고스가 봤다는 현장을 점검했다고 알려왔다. 코너의 말에 따르면 도착했을 때 현장에는 아직 연기가 나는 물질이 남아 있었고, 주변에는 잡다한 쓰레기가 흩어져 있어 한때 쓰레기장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코너는 페인트 통 같은 물건이 불이 붙어 터졌을 수도 있다는 견해를 덧붙였고, 가예고스에게서 술 냄새가 났다는 점도 보고했다. 앞으로 관련 진전이 있으면 앨버커키 FBI 사무소에 알리겠다고 했다. 한편 1964년 4월 24일에는 뉴멕시코 주경찰 M. S. 차베스 경사와 소코로 카운티 부보안관 짐 러키가 자모라의 무전 호출에 응답해 신속히 현장에 도착했고, 작은 화재 지점 여러 곳과 패인 자국들을 직접 확인했다고 보고했다. 현장에는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었으며, 평판이 좋고 유능한 경찰관인 자모라는 완전히 맑은 정신이었지만 심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고 한다. 같은 날 소코로에 있던 D. 아서 번스 주니어 특별수사관도 네 군데의 불규칙한 화재 자국과 네 개의 패인 자국을 확인하고, 곧바로 스털리언 사거리 센터(Stallion Range Center)의 사격장 사령관 R. T. 홀더 대위에게 알렸다. 홀더 대위는 자모라 경관, 번스 수사관과 함께 현장을 다시 점검하고 자모라를 길게 인터뷰했으며, 그 진술은 정식 진술서 형태로 받아두었다. 이 진술서 사본과 현장에서 수거한 탄화 물질 소량의 표본은 앨버커키 FBI 사무소가 보관 중이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을 짚는다 — 소코로 현장에는 폭발의 충격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화재 자국들 사이의 땅은 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고, 마른 갈색 풀밭도 그대로였다.

  236. p.236

    앨버커키 지부 사건번호 62-1028 보고서의 3쪽이다. 홀더 대위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즉시 적절한 군 인원에게 연락을 취했음을 짚어두고, 코셔 소령과 계속 연락을 유지하겠다고 적는다. 코셔 소령은 추가로 여러 건의 목격 보고를 받았으며 이 건들에도 관심을 두겠다고 알려왔다.

  237. p.237

    1964년 5월 8일, 앨버커키 FBI 지국장이 FBI 본부장에게 보낸 메모랜덤이다. 사건 번호 62-1028.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 — 1964년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 — 잡건, 정보 참조 (국적 정보)'. 4월 28일자 앨버커키발 본부행 에어텔과 같은 날 본부발 앨버커키행 에어텔을 회신하는 형식이다.

    메모는 4월 24일 사건 직후 인근 스탤리언 사격장(Stallion Range Center) 의 업레인지(Up Range) 지휘관 R. T. 홀더(R. T. HOLDER) 대위에게 즉시 통보가 갔다는 사실부터 시작한다. 홀더 대위는 같은 날 현장을 직접 둘러봤고, 그 사이 FBI 특별수사관 D. 아서 번스 주니어(D. Arthur Byrnes, Jr.) 는 땅에 패인 네 곳의 자국과 그 외 한 곳의 흔적 주위에 돌을 놓아 위치를 표시했다.

    4월 24일 밤부터 25일 새벽 사이, 미 공군 소속인 홀더 대위와 번스 수사관은 소코로 경찰서 소속의 로니 자모라(Lonnie Zamora) 경관을 함께 조사했다. 번스는 자모라의 진술을 장시간 심문 형식으로 받아 정식 진술서로 타자해 정리했고, 홀더 대위는 현장 실측치를 도면으로 그렸다.

    4월 25일 이른 시간에 두 사람은 자모라 진술서 원본과 사본, 그리고 홀더 대위의 도면을 들고 소코로에서 남동쪽으로 약 48km 떨어진 스탤리언 사격장 당국에 직접 제출했다.

    메모에는 두 건의 레터헤드 메모랜덤이 함께 동봉됐다. 하나는 자모라 경관의 진술이고, 다른 하나는 번스 수사관 본인의 관찰 기록이다. 여기에 더해 홀더 대위가 작성한 관련 지역 도면 사본도 같이 들어갔다.

    메모 하단에는 본부 2부·앨버커키 1부 배포, 동봉물 10건, 그리고 각 동봉물 사본을 번스 수사관이 공군 특별수사국(OSI) 에도 별도 전달했다는 처리 사항이 적혀 있다. 여백에는 'Flying Saucers', 'No demo' 같은 손글씨 메모와 빨간 'K' 표시, 그리고 사건번호 62-83894-438 이 함께 찍혀 있다.

  238. p.238

    앨버커키 지부 사건번호 AQ 62-1028 보고서의 2쪽이다. 본문은 한 단락뿐이다. 이 건과 관련된 전화 문의는 모두 커틀랜드 공군기지 안전 담당관 윌리엄 R. 코너 소령에게 즉시 넘기고 있다고 적는다.

  239. p.239

    1964년 5월 23일자 메모랜덤. 보낸이는 M. A. 존스, 받는이는 디로치 차장이다. 제목은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에 사는 래리 W. 브라이언트가 쓴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기사 건. 헤더 옆 여백에는 손글씨로 "Flying Discs" 라고 적혀 있다.

    배경. 5월 21일 국방부가 "UFO 검열관에게 도전하자 (Let's Challenge the UFO Censors)" 라는 제목의 원고를 FBI 본부에 보냈다. 저자는 브라이언트, 국방부 전달양식에 따르면 육군성은 이 기사의 출판에 이의가 없다. 국방부는 FBI 가 특히 6쪽을 주목하도록 안내했다. 원고와 함께, 브라이언트가 육군성에 자기 글을 실제 심사한 사람들의 이름·계급·직위·소속 부서를 알고 싶다고 요구한 송부 편지 사본도 같이 들어 있었다. 기사를 읽어 보니, 미확인 비행 물체에 관한 기사의 사전 검열 정책, 특히 저자가 브라이언트처럼 미 육군에 고용된 직원일 때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이다. 본질은 브라이언트 자신이 UFO 관련 기사를 출판하면서 부딪힌 문제들을 정리한 회고다.

    FBI 관련 언급은 두 군데. 2쪽에서 브라이언트는 FBI 가 육군 민간 직원의 UFO 연구 활동을 감시하는 역할을 폭로하겠다고 예고한다. 6쪽에서는 1963년 9월 17일 노퍽 사무소 존 S. 캐슬스 특별수사관이 자신을 면담한 사실을 거론한다. 면담 계기는 브라이언트가 1963년 7월 23일 버지니아주 서식스 카운티 보안관에게 UFO 목격 자료를 요청한 편지였다. 브라이언트는 캐슬스 수사관이 같은 해 8월 8일 노퍽 해군기지 사령관에게 보낸 비슷한 편지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고 주장한다. 브라이언트가 캐슬스에게 "FBI 가 UFO 에 관심을 표현한 사람을 통상적으로 조사하느냐" 고 묻자, 캐슬스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면서 "두 편지의 수신자들이 우리 사무소에 문의해 와서, 파일용 메모 (memorandum for the files) 를 작성하기 위해 정보만 모으는 중" 이라고 설명했다. 또 브라이언트는 캐슬스가 이렇게 덧붙였다고 진술한다. "FBI 에 UFO 목격 관련 자료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정보 (intelligence) 성격일 것이고, 따라서 일반 대중이나 개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FBI 내부 자료. 본부 파일을 보면 1959년 2월 브라이언트는 FBI 국장에게 UFO 조사 건으로 문의를 보냈고, 답장으로 FBI 는 UFO 같은 사안은 조사하지 않으며 UFO 관할은 공군성 (Department of the Air Force) 에 있다고 통보받았다.

    루팅 라인에는 톨슨·디로치·설리번·연락반에 각 1부씩 보낸다고 명시하고, 우측 하단에는 "CRIME RESEARCH" 도장과 "REC-26 62-83894-" 로 시작하는 접수번호가 찍혀 있다. 즉 이 메모는 62-HQ-83894 단수의 정식 등록 문서다.

  240. p.240

    이 페이지는 앞장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FBI 내부 부서들이 5월 25일부터 6월 11일까지 차례로 문서를 접수하며 찍은 날짜 도장만 사방으로 흩어져 있다. 디로치(De Loach), 톨슨(Tolson) 사무실, 모어(Mohr), 니즈(Nease), FBI 감사실 같은 상위 데스크의 접수 표시가 보이고, 일부 도장은 "NO TIME" 으로 시각이 비어 있다. 같은 문서가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후버 직속 라인을 한 차례씩 돌며 회람된 흔적이다.

  241. p.241

    M. A. 존스가 디로치 앞으로 보낸 내부 메모의 두 번째 장이며, 제목은 "래리 W. 브라이언트" 다. 브라이언트는 1963년 9월 17일자 편지에서 자기가 같은 달 캐슬스 특별요원에게 인터뷰를 받았다고 알려 왔다. 캐슬스는 노퍽 사무실 소속 뉴포트뉴스 시니어 상주 요원이고, 1948년 2월 2일자 임용에 GS-13 등급이다. 인터뷰 사유는 브라이언트가 UFO 목격 보고에 관심을 가져온 점이다. 브라이언트 본인 진술에 따르면 캐슬스는 "파일용 메모" 를 작성할 목적이라고 밝혔고, 그 메모 사본을 달라고 브라이언트가 요청해 왔다.

    노퍽 사무실은 답신을 보내기 전 본부에 사정을 정리했다. 브라이언트는 인근 군 관계자들에게 다량의 편지를 보내 왔으며, 본인이 버지니아주 포트유스티스의 육군부에 근무하던 시기 메릴랜드주 포트미드의 제2군 G-2 (군 정보) 과가 브라이언트에 관한 신원조사를 진행 중이다. 다른 기관 앞으로 보낸 편지 여러 통이 노퍽으로 회송돼 왔다. 1960년 6월 15일자 노퍽 미 해군기지 항공함대 사령부 사령관 앞, 1958년 8월 7일자 케이프찰스 공군기지 사령관 앞, 1963년 8월 8일자 노퍽 미 해군기지 사령관 앞, 같은 해 7월 23일자 서식스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 앞 — 포트유스티스 소인 — 으로 보낸 편지들이다.

    캐슬스가 브라이언트를 인터뷰한 것은 9월 7일이며, 목적은 위 서식스 카운티 보안관 사무소와 노퍽 해군기지로부터 회송돼 온 편지들에 답신하기 위해 브라이언트의 배경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인터뷰 마지막에 브라이언트가 "내가 캐슬스 요원에게 준 정보는 어떻게 처리되느냐" 라고 묻자, 그 정보는 FBI 파일에 기록 사항으로 남게 된다고 안내받았다. 이후 9월 27일자 부재중 답신 편지로 브라이언트에게 알린 바, 우리 파일의 비공개성 때문에 캐슬스의 인터뷰 메모 사본을 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메모 작성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브라이언트 원고 6쪽의 FBI 관련 서술은 사실과 완전히 맞지 않으며, 잘못된 인상을 남기는 효과를 가진다. FBI 는 브라이언트를 수사한 게 아니라 다른 기관에서 들어온 문의에 답하기 위해 인터뷰했을 뿐이다. 캐슬스 요원도 "파일용 메모" 를 쓰려고만 인터뷰한 것이 아니라, 그 인터뷰 자체가 FBI 파일 기록 사항으로 남는 것이다. 또한 브라이언트가 FBI 파일의 비공개성에 대한 캐슬스의 언급을 옮긴 표현 방식도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이 점들은 국방부에 환기시켜야 한다.

    권고는 다음과 같다. 우리 측 국방부 연락관이 브라이언트의 UFO 원고를 국방부에 반환하면서, 브라이언트의 인터뷰 묘사와 UFO 수사에서의 FBI 역할에 관한 그의 서술을 FBI 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국방부에 알린다. 다만 국방부가 이 의견을 FBI 발로 인용해서는 안 되며, 글의 출판 승인 여부 자체는 국방부 판단에 맡긴다.

    페이지 아래 여백에는 손글씨 이니셜과 짧은 메모가 남아 있으나 판독이 어렵다.

  242. p.242

    FBI 파일 62-83894-439 의 ENCLOSURE 로 묶인 래리 W. 브라이언트 (Larry W. Bryant) 의 기고문 첫 페이지로, 제목은 "UFO 검열관에게 맞서자 (LET'S CHALLENGE THE UFO CENSORS)" 다. 브라이언트는 이 글이 인쇄되어 독자에게 닿기 전에 먼저 국방부 (Defense Department) 의 보안 심사·승인 절차를 거치게 된다고 밝힌다. 이유는 미 육군 (U. S. Army) 규정상 저자가 정확성·적절성·보안 기준에 맞는지 그 내용을 검토받을 의무를 지기 때문이고, 이 의무는 이번 글뿐 아니라 그가 UFO 의 군사적 측면에 관해 쓰는 모든 글에 똑같이 적용된다.

    브라이언트는 자신이 미 육군 부서의 민간인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지난 6년 동안 연방정부의 UFO 연구 역할을 비공식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써왔다고 말한다. "먹여주는 손을 문다" 같은 식의 흔한 반박도 부딪쳐 봤고 견뎌냈다며,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게는 "누군가는 해야 한다. UFO 검열관이 정말 존재한다면, 누군가는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 고만 답한다. 그러한 검열관의 존재는 이전에 승인을 통과한 자신의 원고 두 편 이상과, 심사·승인 단계를 끝내 넘지 못한 원고 한 편이 이미 입증해 주었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신이 신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려는 시점에서 페이지가 끊긴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 62-83894-439 가 손글씨로 적혀 있고, ENCLOSURE 라는 빨간 도장이 찍혀 있어 이 글이 어떤 FBI 통신문에 첨부물로 묶여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243. p.243

    본문 2쪽이다. 글쓴이는 검열관이 자신의 머리 바로 위에서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독자의 추측에 맡긴다고 말한다. 그러는 동안 이 글이 통과된다면 독자도 자신의 최근 준공식적 도전에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 도전이란 국방부 공보 프로그램 — 그중에서도 부서 직원이 개인 출판을 위해 쓴 원고의 사전 검토·승인을 다루는 부분 — 의 현행 정책과 방법론을 알리는 일, 그리고 한 명의 육군 민간인 직원의 UFO 연구 활동을 감시한 FBI와 육군 정보부서 G-2의 역할을 자신의 시각으로 평가하는 일이다. 짧은 별표 구분 뒤 본문은 1958년 버지니아주 포트먼로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 대륙군사령부(USCONARC) 본부가 있던 곳이며, 글쓴이는 그곳에서 2년간 근무했다. 항공 현상에 대한 초기 관심의 일환으로 그는 1958년 9월 22일자 포트먼로 데일리 불러틴에 비공식 공지를 실어, USCONARC 인원에게 자신이 분석할 수 있도록 UFO 목격담을 보고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이 요청을 들어주는 것은 공식 처리 절차를 다루는 두 건의 기밀 육군 지침을 위반하는 일임이 드러났다.

  244. p.244

    포트 먼로에서 육군 방첩대 요원 두 명에게 심문을 받는 동안, 나는 우리 군 정보 전문가들이 UFO 즉 비행접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의 공식적이고 무대 뒤에 있는 태도를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마음먹고, 1960년에 긴 보고서로 그 내용을 풀어냈다. 이 보고서는 검토·승인 절차를 통과하는 데 다섯 달이 걸렸고, 결국 1960년 2월에 발표 허가가 떨어졌다.

    그 뒤 포트 먼로의 민간 인사 담당관이 UFO 비밀주의에 관한 진실 추구 운동을 그만두라고 경고했지만, 나는 검열관들에 대한 증거를 계속 모았다. 검열관들도 여전히 자신들의 존재를 내게 거추장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분명 말로 밀고 당기는 악순환이며, 이 갈등의 진짜 승자는 나도 검열관도 아닌 일반 대중을 대표하는 독자들이다.

    다음 대목은 1959년 봄에 내가 쓴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 초안에 관한 것이다. 이 원고를 미 육군 본토 사령부(USCONARC)에 정식으로 검토와 승인 요청을 위해 제출했지만, USCONARC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서 승인을 거부했다. 페이지 하단에 -3- 쪽수가 매겨져 있고, 본문 옆 여백에는 손글씨로 "DA" 라는 짧은 약자가 적혀 있다.

  245. p.245

    회고록 4쪽이다. 윗부분에는 미 육군 측의 공식 답변 네 항목이 인용 형태로 실려 있다. 첫째, 공식 검열·조롱·침묵 이라는 표현도, 핵심 UFO 자료를 은폐한다 는 표현도 사실이 아니며, 국방부의 방침은 사실로 뒷받침되지 않는 UFO 자료는 공개하지 않는다 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다고 한다. 둘째, UFO 정보를 얻으려 할 때 질책당한다 (chastism) 는 추론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런 정보 통제가 확립된 방침을 따른 것이며 국방부는 공개되는 자료가 사실에 근거하도록 그 통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한다. 셋째, USCONARC 본부에서 UFO 자료를 끌어내려는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고 미 공군 쪽으로 문의하라고 권하며, 받은 사안은 모두 특권 정보로 보아 공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넷째, 위의 진술들은 검열 시도가 아니며, 육군은 소속 인원이 사실을 지키고 기밀을 누설하지 않고 품위 기준을 지키는 한 발언과 글쓰기를 권장한다고 한다.

    별표 세 개로 단락이 끊긴 뒤, 글쓴이는 자신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포트 먼로에서 버지니아주 포트 유스티스의 미 육군 수송학교로 전속된 직후, 다시 한 번 줄다리기의 자기 쪽 줄을 당겼다고 적는다. UFO 가 비밀리에 개발된 지구의 무기 라는 소문을 잠재우고 싶었던 그는, 1960년 3월 13일 유스티스의 전투개발기관 (Combat Development agency) 으로 개인 자격의 편지를 보내 질의를 시작했다 — 그 질문 내용이 다음 쪽으로 이어진다.

    오른쪽 여백에는 chastisement, DA 라는 손글씨 교정 메모가 적혀 있어, 본문 안 chastism 이라는 단어가 원래 chastisement (질책·문책) 의 오타 또는 약식 표기였음을 알려준다.

  246. p.246

    글쓴이는 1952년 목격 사태 당시 기지가 접시 모양 비행체를 제작하거나 시험한 적이 있는지 직접 물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고, 대신 기지 G-2 책임자였던 프랭크 O. 애덤스 대령이 사무실로 호출해 질문의 동기를 해명하라고 요구했다고 적는다. 글쓴이는 지역 보안 절차를 흔들 의도가 없었고 단지 정직한 질문을 던졌을 뿐이라고 해명했고, 애덤스 대령은 앞으로는 더 신중하게 처신하라고 권고하며 마무리했다고 한다. 글쓴이는 애덤스 대령을 너무 몰아세울 일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군 정보 업무의 기본 격언인 “잠재적 적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말라”를 따르는 것이 그의 임무였고, 바로 그 격언이 아래 인용한 유스티스 기지 방침의 바탕이었다는 것이다. 그 방침의 요지는, 미국에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캐내려는 정보 상당 부분이 겉보기에 무해한 요청을 통해 비공개도 아닌 출처에서 얻어지므로, 기지·인원·기타 자료에 관한 모든 비정상적 정보 요청은 참모차장보 G-2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별표 세 개로 단락을 끊은 뒤 글쓴이는, 자신의 UFO 연구는 그 결과물뿐 아니라 출처 자체도 관계 당국의 감시를 받는다는 사실이 이 일을 계기로 분명해졌다고 말하며 다음 일화로 넘어간다. 페이지 하단에는 쪽 번호 -5- 가 매겨져 있다.

  247. p.247

    이 페이지는 어떤 민간 UFO 연구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직접 서술하는 진술문의 6쪽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최근 발표한 글 "A Hard Look at UFO News Management" — 1963년 10월 10일 국방부 검열을 통과한 — 의 사전 조사를 마치던 무렵의 일이라고 말한다. 1963년 7월 23일 그는 버지니아주 서식스 카운티 보안관에게 편지를 보내 보유 중인 UFO 목격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다 9월 17일 오후, 포트 유스티스에서 근무 중이던 그에게 지역 FBI 요원 존 S. 캐슬스가 찾아와 10분 동안 면담을 했다. 캐슬스는 서식스 보안관에게 보낸 편지뿐 아니라, 글쓴이가 1963년 8월 8일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 사령관에게 보낸 비슷한 편지에 대해서도 캐물었다. 글쓴이는 자신의 공무원 직위와 UFO 관련 집필 활동에 관해 캐슬스가 원하는 정보를 다 알려준 뒤, FBI 가 UFO 에 관심을 표한 사람을 일일이 심문하는 게 관행이냐고 물었다. 캐슬스는 아니라고 답했다. 다만 두 편지의 수신자들이 자기 사무소에 문의를 넣었기 때문에, 자기는 “파일용 메모” 를 쓰기 위한 정보를 모으는 중일 뿐이라고 했다. 캐슬스는 거기에 한마디를 자진해서 덧붙였다. “만약 FBI 가 그런 자료 /UFO 목격 관련/ 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아마 정보기관 차원의 자료일 테니 일반 대중과 사적 개인에게는 열람할 수 없을 것입니다.” 글쓴이는 다시 한번, “당국” 이 하늘에 떠 있는 물체에 관해 한 민간인이 쓴 글을 두고 진지하고도 집요하게 우려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248. p.248

    이 페이지는 한 UFO 연구자의 글에서 미 공군의 검열 구조를 다루는 7쪽 본문이다. 글쓴이는 공식적으로 UFO 가 대부분 자연 현상이나 다른 익숙하고 무해한 현상으로 식별 가능한 물체 라며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처리되는 점을 먼저 짚는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UFO 검열관들이 전체 검토·승인 체계를 어떻게 조작할 수 있는가 라고 묻고, 한 미 공군 (USAF) 현지 관계자가 자신에게 보낸 편지를 권위 있는 답으로 인용한다. 편지는 1960년 6월 6일자 공군 매뉴얼 190-4 의 4장 B절 2a(7) 단락을 인용해, 군사·국가·외교 사안을 다루는 원고는 정확성과 적절성 검토, 그리고 국방부의 최종 승인을 받기 위해 공군 정보국장실 (SAF-OI) 로 제출된다고 적는다. 이 정책은 공군 현역, 퇴역 군인, 민간 직원, 그리고 민간 부속 조직 구성원까지 모두에게 적용된다. 또 다른 지침인 공군 규정 200-2 는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활동을 규율하는데, 이 규정상으로는 각 기지의 정보 장교가 제출된 원고가 사실에 부합하고 정확한지 점검할 수 있을 뿐이지만, 위에 적힌 같은 범주의 사람들은 자기 글에 공군의 UFO 자료를 쓸 수 없다고 못박는다. 글쓴이는 이를 상당한 도전 이라 부르며, 그래도 당신과 내가 맞서려 한다면 검열관들이 패배를 인정하고 항복할 희망은 남아 있다 고 쓴다. 마지막으로 검열관이 정말 존재한다면 브라이언트는 왜 계속 원고를 출판할 수 있는가 라는 자문을 적고, 자신이 줄 수 있는 유일한 답은 미국에 아직 정보의 자유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쪽번호 -7- 이 찍혀 있다.

  249. p.249

    문서의 참고문헌 페이지다. 다섯 개의 항목을 번호 순서대로 정리해 두었다. 첫째, 래리 W. 브라이언트가 1960년 4월 1일 자로 펴낸 52쪽짜리 등사본 보고서 『검열 안에서 — 지역 UFO 현장의 비밀주의 분석』. 발행처는 버지니아주 뉴포트뉴스 매디슨 애비뉴 5603번지의 에어 리서치 그룹이다. 둘째, 미 대륙군 사령부(USCONARC) 정보과가 1959년 8월 26일 작성한 두 쪽짜리 회신으로, 「독자 투고 게재 승인 요청」이라는 제목의 사내 처리서식에 들어 있다. 버커트라는 인물이 작성하고 L. J. M. 멀홀 대령이 서명했다. 셋째, 포트 유스티스 기지의 1964년 3월 9일 자 일일 회보에 실린 지시. 넷째, 일리노이주 에반스턴에서 발행되는 잡지 『페이트』 1964년 2월호. 다섯째, 1963년 10월 3일 자 편지로,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 있는 미 공군 전술공군사령부 지역사회관계과 과장 로버트 E. 허비 중령이 서명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래리 W. 브라이언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250. p.250

    1964년 7월 13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오클라호마시티의 "인터플래너터리 인텔리전스 오브 언아이덴티파이드 플라잉 오브젝트" 부소장 헤이든 휴스에게 보낸 회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440. 후버는 휴스의 7월 5일자 편지를 받았다고 밝힌 뒤, FBI 는 미확인 비행 물체에 관한 정보를 자체적으로 조사하지 않는 것이 오랜 방침이며, 그런 사안은 FBI 의 관할이 아니라 모든 자료를 즉시 공군부로 넘긴다고 답했다.

    편지 아래 내부 메모(NOTE) 에는 휴스에 대한 FBI 의 사전 평가가 정리되어 있다. FBI 의 자체 파일에는 휴스에 대한 부정적 정보가 없으며, 이전에 한 차례 휴스가 자신의 단체에서 출범시키는 출판물에 국장이 직접 글을 기고해 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FBI 가 거절한 적이 있다. 또 FBI 파일에는 미확인 비행 물체를 봤다고 주장한 한 인물을 FBI 요원이 공군 장교와 동석한 자리에서 면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 인물은 뉴멕시코주 소코로 경찰서 소속 경관이었다. FBI 는 그 사건과 관련해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휴스에게 그의 편지 사본이 공군부로 전달됐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기로 했다. 휴스가 자신이 공군 파일을 열람할 수 있는 특별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FBI 는 그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그가 그런 주장을 하며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으려 한다는 사실을 공군 측이 인지하도록 사본을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페이지 우측 여백에는 "RECD-READING ROOM / F B I / Jul 13 12 39 PM '64" 접수 표시와 "MAILED 19 / JUL 13 1964 / COMM-FBI" 발송 도장이 찍혀 있고, 좌측 하단에는 수신처 명단(Tolson, Belmont, Mohr, Conrad, Callahan… Gandy) 이 인쇄돼 있다.

  251. p.251

    이 페이지는 앞 장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너머로 앞면 타자 텍스트가 비쳐 보이지만 읽을 수 있는 본문은 없고, 상단에 FBI 국장실 접수 스탬프 "RECEIVED-DIRECTOR F.B.I. JUL 13 12 54 PM '54" 가 거꾸로 찍혀 있다. 좌측에는 또 다른 접수 도장 흔적이, 우측 여백에는 작은 글씨의 메모가 세로로 적혀 있으나 해상도 한계로 식별이 어렵다. 페이지 하단에는 두 장의 검은 실루엣(인물 두상)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이는 스캔 시 페이지를 누르기 위한 표식으로 보인다.

  252. p.252

    오클라호마시티의 민간 UFO 조사 단체 IIOUFO(Interplanetary Intelligence of Unidentified Flying Objects)의 부소장 헤이든 휴스가 1964년 7월 5일 후버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휴스는 1959년 8월 31일에 받은 답신에 대한 감사를 다시 한 번 전한 뒤, IIOUFO가 1958년 8월부터 UFO와 비행접시 목격을 조사해 왔으며 미국 50개 주 대부분과 7개국에 주 대표를 두고 있고, 알려진 과학자들로 구성된 과학 패널과 비행접시 연구자들로 구성된 기술 자문위원회를 갖추고 있다고 소개한다. 본론에서는 자신이 워싱턴의 공군성으로부터 오하이오 데이턴의 라이트 패터슨 공군기지를 방문해 1948년 이후 공군이 진행해 온 비행접시 조사 파일을 열람할 특별 허가를 받았다고 알린다.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사건은 1964년 4월 25일 뉴멕시코 소코로(편지에서는 "Socorero")에서 일어난 최근 목격으로, 뉴멕시코 여러 마을의 여러 사람이 목격했고 AP 보도에 따르면 FBI가 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 휴스는 이 조사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지 묻고, 어떤 정보든 알려준다면 감사하겠다고 마무리한다. 편지 하단에는 휴스의 서명과 함께 "call 7/7/64 OPC Campbell mailed"라는 손글씨 처리 메모, FBI 접수 도장 "12 JUL 14 1964", 파일 번호 "62-83894-440", 그리고 사선으로 찍힌 "CORRESPONDENCE" 도장이 함께 남아 있어 FBI가 사흘 만에 후속 통화로 응답하고 정식 통신 파일로 분류해 넣은 흐름을 보여준다.

  253. p.253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글자가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비쳐 보이고, 상단에는 펀치 구멍 두 개와 함께 붉은색 도장 자국이 거울상으로 비친다. 하단 가장자리에는 접수 라벨 두 개가 같은 자리에 좌우로 붙어 있는 윤곽이 뒤에서 비쳐 보이며, 왼쪽 모서리에는 또 다른 작은 스탬프 자국이 보인다. 페이지 자체에는 별도로 적힌 내용이 없다.

  254. p.254

    1964년 11월 16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텍사스 오렌지의 찰스 E. 빌보에게 보낸 회신이다. 문서번호 62-83894-441. 후버는 11월 9일자 편지와 동봉물을 잘 받았다고 알린 뒤, 도움을 주고 싶지만 FBI 파일의 정보는 법무부 규정에 따라 공무용으로만 비밀 유지된다고 답한다. 따라서 빌보가 언급한 정보를 FBI 가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조차 추론하지 말아 달라고 못 박는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한 줄로 마무리한다. 회신 아래에는 로스앤젤레스 지부장(SAC) 앞 사본 지시가 따로 붙는다 — FBI 파일에는 해럴드 T. 윌킨스나 그의 책 《Flying Saucers On The Attack》에 관해 식별 가능한 자료가 없다는 내부 메모다. 좌측 하단의 빨간 'MAILED 6 / NOV 16 1964' 도장과 우측 여백의 RECORDS BRANCH ROOM 접수 도장이 발송·접수 시각을 같이 남긴다.

  255. p.255

    문서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본문은 앞면에서 비쳐 들어와 좌우가 뒤집힌 채 흐릿하게 보이고, 정상 방향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왼쪽 위 모서리에는 빨간 손글씨로 짧은 표기가 — 라우팅 번호로 보이는 — 남아 있고, 아래쪽에는 "RECEIVED-DIRECTOR F.B.I. NOV 16 5 06 PM '54" 라고 적힌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즉 이 종이는 1954년 11월 16일 오후 5시 6분 FBI 국장실에 접수된 어떤 문서의 뒷면이며, 페이지 자체에는 독립적인 본문 내용이 없다.

  256. p.256

    1964년 11월 9일 월요일, 텍사스 오렌지의 사서함 594번지에서 찰스 E. 빌보(Charles E. Bilbo)라는 시민이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보낸 편지다. 그는 해럴드 T. 윌킨스(Harold T. Wilkins)의 책 『공격 중인 비행접시(Flying Saucers On The Attack)』에서 발췌한 자료를 동봉한다며, 그 안에 외계에서 왔다는 방문자 두 명에 관한 압축된 사실이 정리돼 있다고 적었다. 빌보는 FBI가 이 사건의 조사에 관여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그 방문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냥 공상과학 소설에 불과한지를 알고 싶다고 묻는다. 만약 사실이거나 FBI가 이 건에 대한 보고서를 갖고 있다면 사본을 보내 달라고 부탁하고, 전체 사본을 보내기 어려우면 요약본이라도 받고 싶다고 말한다. 자기도 이 이야기가 황당하게 들린다는 것을 안다면서도, 실제로 일어난 일로 알려져 있으니 답을 받고 싶다고 덧붙이며 편지를 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1964년 11월 17일 접수 도장, 사건 번호 62-83894-441, 그리고 11월 16일 회신 처리됐다는 손글씨 메모가 함께 찍혀 있다.

  257. p.257

    문서의 뒷면이 비쳐 보이는 빈 페이지다. 위쪽에 펀치 구멍 두 개가 있고, 뒷장 잉크가 종이 너머로 어렴풋이 드러난다. 아래쪽에는 1964년 11월 12일 오전 9시 31분에 FBI 통신·견학과(Correspondence & Tours)가 접수했다는 도장과, 그 옆에 11월 13일자 접수 표시가 함께 찍혀 있다. 가운데쯤에는 "CLOSE FILE(사건 종결)" 이라는 손글씨가 거꾸로 적혀 있어, 누군가가 이 문서를 종결 처리하라고 지시한 흔적이 남았다.

  258. p.258

    1964년 11월 9일자 편지로, 발신자 찰스 E. 빌보(Charles E. Bilbo)가 해럴드 T. 윌킨스의 책 『하늘을 공격하는 비행접시(Flying Saucers On The Attack)』(시타델 프레스, 뉴욕, 1954)에 실린 두 외계 방문자 일화를 요약해 FBI에 정리해 보낸 문서다.

    빌보가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1953년 1월 20일경 로스앤젤레스의 한 변호사 사무실 직원, 그러니까 행방불명자를 추적하는 법률 조사소가 두 남자를 고용했다. 두 사람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1952년 12월 중순 무렵 다른 행성에서 출발해 로스앤젤레스 동쪽 250마일 떨어진 모하비 사막에 작은 비행접시로 착륙했다. 영어는 우주 공간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들으며 익혔다고 한다.

    외모와 특징도 적혀 있다. 키는 6피트 6인치, 마른 체형, 옷차림은 허름했고, 피부는 푸르스름한 녹색, 귀는 뾰족했으며 조사관으로서는 대단히 유능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일화는 이렇다. 두 남자 중 한 명이 서류 캐비닛 위에 손을 얹고 기댔는데, 묘하게 굽은 그 손이 강철 표면에 4분의 1인치 이상의 자국을 남겼다. 함몰된 강철 조각을 야금 화학자에게 보내 분석한 결과, 그 정도 함몰을 내려면 1인치당 약 2,000파운드의 힘이 필요하고, 함몰부에서는 열 가지가 넘는 미지의 원소 흔적이 검출됐다고 한다.

    결말 부분에서 빌보는 다음을 덧붙인다. FBI가 두 남자를 조사하러 요원 몇 명을 파견했지만 도착했을 때 두 방문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1953년 2월 중순). 강철 캐비닛은 금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익명을 원한 로스앤젤레스의 한 기자가 윌킨스에게 전해준 것이라고 한다.

    빌보는 마지막에 이상의 내용이 윌킨스 책 부록에 실린 기사의 요약본임을 명시하고 서명으로 마무리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첨부 표시 'ENCLOSURE 62-83894-441'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259. p.259

    1965년 1월 26일 자 항공우편으로, 후버 FBI 국장이 런던 사우스켄싱턴의 J. A. 헨네시에게 보낸 답신이다. 문서번호는 62-83894-442. 헨네시가 1월 20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운을 떼고, 그쪽이 제기한 사안에 대해 FBI 가 별도 조사를 벌인 적은 없다고 못 박는다. 그 건은 애초에 FBI 의 수사 관할이 아니라는 것이다. 요원이 현장에 갔던 이유는 단 하나, FBI 가 관심을 가질 만한 위반 사항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 다음 문단에서 후버는 FBI 파일이 법무부 규정에 따라 비공개로 관리되며 공적 용도로만 열람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그래서 더 도움을 드리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이유를 이해해 주실 줄 안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에는 발송 사본 목록이 붙어 있다 — 런던, 앨버커키, 설리번, 외사연락반 각 1부씩 자료 동봉. 발신 분류 코드 WAM:pem 과 다음 페이지에 메모가 이어진다는 안내가 함께 적혀 있다. 우편실 접수 도장 두 개 (1965년 1월 26일 발송, 같은 해 2월 9일 자 도장) 가 본문 좌하단과 상단을 덮고 있어 이 편지가 실제 발송·접수 라인을 탔음을 보여 준다.

  260. p.260

    1965년 1월 25일 오후 4시 30분에 FBI 국장실이 접수했다고 도장이 찍힌 문서의 뒷면 스캔으로 보인다. 종이 반대편 본문이 비쳐 보이는 정도라 글자는 거의 읽을 수 없고, 가운데에 검열로 가린 부분 하나와 서명 자리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같은 면 위쪽에는 1965년 2월 3일자 FBI 라우팅 도장과 "XEROX COPIES / DATE" 도장이 같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접수 후 사본으로 돌아간 흐름을 알려 준다. 빨간 손글씨로 적힌 "443" 표기는 분류·정리 번호로 짐작된다. 페이지 자체는 본문 자료라기보다 접수·복사 처리 기록을 보여 주는 행정 측면이다.

  261. p.261

    헤네시(J. A. Hennessey) 앞으로 올라간 두 번째 장의 NOTE 단락이다. FBI 파일에는 1964년 4월 24일 뉴멕시코 소코로(Socorro) 인근에서 미확인 비행물체가 목격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적는다. 미 공군의 홀더(Holder) 대위와 FBI 특수요원 D. 아서 번스 주니어(D. Arthur Byrnes, Jr.)가 소코로 경찰서의 로니 자모라(Lonnie Zamora)를 인터뷰했고, 자모라가 직접 현상을 목격한 인물이라고 밝힌다. 번스 요원은 자모라로부터 진술을 받아 타이프로 정리했고, 그 진술은 이후 배포용 메모에 포함됐다. 앨버커키 사무소는 그 외에는 별도의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고, 본부에 상황을 보고하고 공군과 연락 채널을 유지하는 정도에 그쳤다고 정리한다. 작성자는 외부 편지를 보낸 사람이 가리키는 사안이 바로 이 소코로 건일 것이라고 본다. 다만 FBI 파일에는 그 편지 작성자와 식별되는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고 적는다.

  262. p.262

    본문이 없는 페이지다. 종이 뒷면 스캔으로, 앞면에 타자기로 친 한 단락이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있고 흐려 정확히 옮길 수 없다. 우측 하단에 거꾸로 찍힌 'XEROX COPIES / DATE 11-23-66' 도장이 있어, 1966년 11월 23일에 제록스 복사된 사본임을 알려 준다.

  263. p.263

    1965년 1월 20일, 런던 사우스켄싱턴 맨슨 플레이스 10번지에 사무실을 둔 영국의 UFO 조사관 J. A. 헤네시가 워싱턴의 FBI 앞으로 보낸 편지다. 그는 미국 항공현상조사위원회(NICAP) 회원이라는 직함을 편지지 상단에 박아 두었다.

    헤네시는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FBI 요원이 미확인비행물체 — 특히 지상에 내려앉았다는 신고 — 를 조사하는 것이 통상적인 절차냐는 질문이다. 그는 최근 여러 건의 사례에서, 인근 미 공군기지 소속 조사관들이 착륙 지점을 살피러 갈 때 FBI 요원이 동행한 것을 확인했다고 적는다. 그러면서 그 요원들이 작성한 보고서 사본을 받을 수 있는지도 함께 묻는다.

    구체적인 사례로 그는 1964년 4월 28일 뉴멕시코주 라마데라에서 일어난 사건을 든다. 라마데라와 산타페에 적을 둔 35세의 올랜도 카예고스가 자기 집에서 약 90미터 떨어진 곳에 미확인 물체가 내려앉은 것을 보았다고 마빈 로메로 경관에게 신고했고, 그 다음 날 FBI의 번스 요원과 앨버커키 커틀랜드 공군기지의 코너스 소령이 현장을 조사했다는 것이다. 헤네시는 그때 번스 요원이 무엇을 확인했는지 알고 싶다고 청한다.

    이어 그는 FBI가 본래 연방 범죄를 다루는 기관임을 알지만, 통상 국방 사안으로서 미 공군이 맡는 영역인 UFO 사건에 어째서 직접 관여해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적는다. 마지막으로 이 편지는 비판이 아니라 일반적인 문의로 보낸 것이라며, 빠른 답신을 부탁한다.

    편지 상단 오른쪽에는 후버 국장 직속의 톨슨, 벨몬트, 디로치, 캐스퍼, 컬러핸, 콘래드, 펠트, 게일, 로젠, 설리번 등 FBI 고위 간부 명단이 인쇄된 라우팅 카드가 박혀 있어, 이 편지가 워싱턴 본부 내에서 어떤 책상들을 거쳐 회람되었는지 보여 준다. 본문 위로는 굵은 빨간 글씨로 "FLYING SAUCERS"라는 분류 표시가 가로지르고, 하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442 가 빨간 잉크로 적혀 있어, 이 편지가 후버의 UFO 종합 파일에 정식 편철되었음을 알린다.

  264. p.264

    거의 비어 있는 종이의 뒷면 스캔. 상단에 펀치홀 세 개가 뚫려 있고, 앞면에 찍힌 도장과 타자 글자가 종이를 통해 어렴풋이 비쳐 보인다. 하단 가운데에는 보라색 접수 도장과 그 옆에 손으로 쓴 서명 같은 표시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265. p.265

    FBI 가 1965년 2월 26일 앨라배마 탤러디가의 조 콜드웰에게 보낸 답장이다. 콜드웰이 2월 21일에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리며, 요청한 정보는 법무부 규정에 따라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대신 법무부가 체제 전복 단체로 지정한 조직들의 목록 한 부를 동봉한다고 덧붙인다. 끝에는 "이 발신인은 우리 파일에서 식별되지 않는다"는 내부 메모가 붙어 있고, 1965년 2월 26일 발송 도장과 3월 11일 텔레타이프 유닛 처리 도장, 그리고 여백에 사건번호 62-83894-443 이 빨간 잉크로 적혀 있다.

  266. p.266

    이 페이지는 어느 편지의 뒷면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좌우 반전된 상태로 흐릿하게 비치고, 정작 이 뒷면 자체에 추가된 표시는 FBI 의 수령 도장과 파일 번호 정도이다. 도장은 1955년 2월 26일 오후 4시 15분에 FBI 국장실이 이 문서를 받았음을 알리며, 그 위에는 62-83894 시리즈의 일련번호와 빨간 손글씨 번호 443, 그리고 한 줄짜리 검정 redaction 막대가 함께 찍혀 있다. 본문 정보는 앞면 쪽에 있고, 이 면은 라우팅·접수 기록을 남기기 위한 면에 가깝다.

  267. p.267

    1963년 2월 21일 앨라배마주 탤러디가 델우드 드라이브 1011번지에 사는 조 콜드웰이 FBI 앞으로 보낸 짧은 편지의 진본 사본이다. 콜드웰은 우편으로 배달되는 비행접시 관련 읽을거리 중 일부가 공산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것일 가능성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받아 봐도 괜찮은지 묻는다. 만약 체제 전복적인 자료 목록을 보내 줄 수 있다면 고맙겠다고, 자신은 결코 그런 공산주의자 사주를 받은 자료를 받고 싶지 않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가 이 편지를 사건 파일 62-83894-443 으로 분류해 1963년 3월 2일에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빨간 손글씨 사건 번호와 날짜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268. p.268

    1963년 2월 21일, 앨라배마주 탤러디가 파인우드 드라이브 1011번지에 사는 조 콜드웰이 FBI 앞으로 직접 손으로 써 보낸 편지다. 그는 우편으로 비행접시 관련 읽을거리가 자기 집에 배달되고 있다고 적고, 그 자료들 중 일부가 공산주의에서 흘러나온 것은 아닌지 묻는다. 받아도 괜찮은 자료인지 알고 싶으니 체제 전복적일 수 있는 자료 목록을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본인은 그런 공산주의 영향이 들어간 자료를 절대 받고 싶지 않다며 글을 맺는다. 편지 아래쪽 여백에 1963년 2월 26일자로 회신을 보냈다는 짧은 메모가 손글씨로 더해져 있고, 우측 하단에는 FBI 통신 접수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사건 파일로 정식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269. p.269

    편지지 뒷면 스캔. 좌측 상단에 'RECORDS BRANCH / FILE' 접수 도장과 '1965년 2월 24일 오후 2시 31분' 타임스탬프가 보라색 잉크로 찍혀 있고, 그 옆으로 더 흐릿한 두 번째 도장 자국이 겹쳐 있다. 종이 자체에는 본문이 없고, 앞면 손글씨의 잉크가 뒷면으로 비쳐 거꾸로 읽히는 흔적만 남아 있다.

  270. p.270

    텍스트가 없는 빈 페이지. 상단에 펀치 구멍 자국과 약간의 얼룩만 남은 종이 면으로, 앞 문서의 뒷면이거나 분철 사이에 끼어 있던 백지로 보인다.

  271. p.271

    1965년 4월 28일자로 후버 FBI 국장이 일리노이주 팔러타인의 마크 파월에게 보낸 짧은 답신이다. 파월이 4월 22일자 편지와 동봉 자료를 보내 미확인 비행물체 관련 문의를 했고, 후버는 그 문제는 워싱턴 D.C. 공군성 감찰감실 산하 특별조사국장 앞으로 직접 문의하라고 안내하며 그 주소(워싱턴 D.C. 20333)를 일러준다. 후버 본인 서명으로 마무리한다. 편지 하단의 내부 메모는 "제공된 정보만으로는 발신인을 FBI 파일에서 식별할 수 없었다"고 적어 둔다. 우측 여백에는 4월 28일 오후 1시 32분 접수 도장이, 좌측 여백에는 4월 28일 발송 도장과 5월 26일 텔레타이프실 처리 도장이 찍혀 있다. 문서 상단에는 "EX 109" 표시와 사건번호 62-83894-444가 빨간 글씨로 적혀 있어, 이 답장이 FBI 본부의 UFO 메인 파일에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 준다.

  272. p.272

    1965년 4월 28일 오후 5시 23분 FBI 본부 수신·접수, 다음날 4월 29일 오전 9시 48분 메일룸이 다시 한 번 도장을 찍은 FBI 발송 서신의 사본. 빨간 'AIR' 도장이 좌측 상단에 찍혀 항공우편으로 부쳤다는 표시가 남아 있고, 우측 상단 수신인 블록·인사말·제목 라인·본문 한 단락·'Sincerely yours' 마무리·서명·'(M)' 표시·하단 여백의 짧은 메모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후버 시대 FBI 송신 서신 포맷이지만, 이 스캔본은 페이지가 거꾸로 들어간 상태이고 노란 카본지 위 타이핑이 흐려서 본문 문장 단위 판독이 어렵다. 이 페이지에서 단단히 건질 수 있는 정보는 1965년 4월 말 FBI 본부에서 외부로 항공우편 한 통이 나갔다는 사실, 그리고 그 송신과 메일룸 처리 사이에 하루의 시차가 있었다는 처리 흐름뿐이다.

  273. p.273

    1965년 4월 27일, 일리노이주 팰러타인에 사는 마크 파월이 "롱 그로브스 컨트리 클럽 에스테이츠" 용지에 짧은 편지를 적어 FBI 앞으로 보냈다. 본문은 단 한 문장이다. 미확인 비행 물체를 조사하는 부서나 기관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 달라는 요청이다. 발신인은 자기 집 주소를 사우스 시더 스트리트 539번지, 우편번호 60067로 적어 두었다. FBI 접수 도장은 1965년 4월 30일, 사건 번호 62-83894-444. 본문의 "unidentified flying objects" 옆에는 빨간 글씨로 "SAUCERS"라는 메모가 따로 들어가 있다.

  274. p.274

    1965년 4월 26일자로 일리노이 팰러타인의 마크 파월(Mark Powell)이 FBI 앞으로 손글씨로 보낸 짧은 편지다. 롱그로브 컨트리 클럽 에스테이츠(Long Grove Country Club Estates) 사옥 레터헤드 용지를 썼고, 본문은 "미확인 비행 물체를 조사하는 부서나 기관의 이름과 주소를 알려달라"는 한 문장 요청이다. 자기 집 주소로 사우스 시더 스트리트 539번지, 일리노이 팰러타인, 우편번호 60067을 적어 답신 받을 곳을 분명히 했다. 좌측 하단 팰러타인 우체국 소인이 1965년 4월 26일 접수를 확인하며, 여백의 "RTC 4/27", "Ack'd 4-28-65" 같은 FBI 내부 표시는 4월 27~28일에 접수 처리되고 회신이 나갔음을 보여준다. 하단의 ENCLOSURE / CORRESPONDENCE 분류 라벨로 보아 이 편지는 정식 민원 서신으로 FBI 파일에 편철되었다.

  275. p.275

    뒷면 스캔으로 보이는 빈 페이지. 상단에 2공 펀치 자국이 있고, 가장자리로 앞면 인쇄가 비쳐 보이는 정도다. 본문에 해당하는 텍스트는 없다.

  276. p.276

    FBI 파일 62-83894 시리얼 444 로 편철된 ENCLOSURE 페이지로, 빈 종이 한가운데 일리노이주 롱그로브의 부동산 회사 Long Grove Country Club Estates 의 명함 한 장이 붙어 있다. 명함에는 부사장 마크 파웰(Mark Powel) 이름과 두 사무소 — 롱그로브 53번 국도 변의 Property Office, 그리고 일리노이주 팰러타인 노스웨스트하이웨이 111 East 의 본사 — 의 전화번호가 인쇄돼 있다. 페이지 하단 오른쪽에는 FBI 가 손글씨로 사건번호 62-83894-444 를 기입했고, 그 아래 ENCLOSURE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명함이 별도 첨부물로 처리됐음을 알려준다.

  277. p.277

    1966년 4월 15일 후버 국장이 매사추세츠 레이넘의 폴 G. 스나이저(Paul G. Snigier)에게 보낸 답신이다. 4월 11일자 편지를 잘 받았다고 인사한 뒤,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은 FBI 수사 관할이 아니라고 짧게 못 박는다. 다만 이번 문의가 다른 정부 기관에 관심사일 수 있어 편지 사본을 공군 특별수사국(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s)으로 넘겼다고 알린다.

    본문 아래 "NOTE" 단락은 내부 참고용 메모다. 스나이저 본인은 FBI 파일에 식별 정보가 없으나, 비슷한 사례가 1960년 3월에 있었다고 적는다. 미시간주 그랜드블랑의 조지프 F. 페리(Joseph F. Perry)가 자신이 찍었다고 믿는 미확인 비행물체 사진을 들고 디트로이트 사무소로 연락해 왔고, FBI 요원들이 그의 요청을 받아 면담한 뒤 사진을 공군 특별수사국에 넘긴 사건이다. 그런데 페리가 지역 신문에 "FBI가 조사 중"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FBI 측이 신문사에 직접 가서 기록을 바로잡아야 했다는 점, 페리에게는 사진이 공군으로 넘어갔다고 통지했고 페리도 4월에 후버 앞으로 공군 분석 결과와 사진 반환을 기다린다는 편지를 다시 보냈다는 점, 그 편지 사본 역시 공군에 회신 처리를 넘겼다는 점이 적혀 있다.

    페이지 상단에는 라우팅 도장 "REC 20"과 사건번호 62-83894-445가 큰 빨간 글씨로 표시되어 있고, 왼쪽 여백에는 FBI 국장 직속 보좌관 명단(Tolson, DeLoach, Mohr 등) 라우팅 블록과 우편 발송 도장(MAILED 4 / APR 15 1966 / COMM-FBI), 메일룸 접수 도장(APR 15 3 50 PM '66 / MAIL ROOM / FBI)이 함께 찍혀 있다. 페이지 하단의 빨간 도장 "54 APR 22 1966"은 이 답신이 4월 22일 다시 파일링되었음을 알려준다.

  278. p.278

    1956년 4월에 접수된 FBI 문서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 타자 본문이 그대로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있어 직접 읽히지는 않고,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윗부분에 4월 1956년·DEC 20 날짜 표시와 붉은 손글씨 표시가 있고, 하단에는 디로치(DeLoach) 수신을 알리는 "RECD DELOACH" 표시와 1956년 4월 15일 오전 10시 4분에 FBI 가 접수했다는 도장이 보인다.

  279. p.279

    1966년 4월 11일, 매사추세츠주 레인햄(Raynham) 플레전트가 360번지의 폴 G. 스니지어(Paul G. Snigier)가 워싱턴 FBI 본부 앞으로 보낸 편지다. 제목은 "비행접시(FLYING SAUCERS)"로 손글씨로 적었다. 스니지어는 먼저 UFO 목격 사건 조사와 분석은 공군의 프로젝트 블루북 책임이지만, 때로는 주·지방 경찰이 조사 요청을 받기도 한다고 짚는다. 최근 매사추세츠주 레호보스(Rehoboth)에서 잇따른 목격이 있었고 오스카 베르크만(Oscar Berghman) 경찰서장이 FBI가 목격자 둘 이상을 조사했다고 발표했다는 점을 들었다. 비슷한 과거 사례로는 1960년 2월 13일 미시간주 그랜드블랭에서 아마추어 천문가 조 페리(Joe Ferry)가 찍은 컬러 사진 건을 든다. 페리가 공군에 신고하자 공군은 그를 FBI로 돌려보냈고, 플린트 지부 요원 두 명이 조사를 맡았으며 사진은 다시 공군 분석으로 넘어갔다. 스니지어는 그래서 이런 사건 조사에 관한 FBI의 방침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UFO 조사 정책에 대한 공식 FBI 규정이 있다면 사본을 청구하고, 사본 제공이 불가능하다면 해당 규정의 번호라도 알려 달라고 부탁하며 편지를 맺는다. 우측 상단에는 톨슨·드로치·모어 등 후버의 핵심 부관 명단이 인쇄된 라우팅 스탬프가 찍혀 있고, 페이지 하단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445가 빨간색으로 기재되어 있다.

  280. p.280

    문서 본문은 없는 빈 뒷면 스캔이다. 페이지 상단에 라우팅 슬립이 거꾸로 붙어 있고, 하단에는 FBI 접수 스탬프 'APR 13 10 25 AM '66' 과 'DIRECTOR' 라우팅 표기가 뒤집힌 채 찍혀 있다. 1966년 4월 13일 FBI 본부로 접수된 어떤 문서의 뒷면임을 보여 주는 면이다.

  281. p.281

    1966년 7월 20일, J. 에드거 후버가 캘리포니아 포모나의 로니 폭스에게 보낸 답신이다. 후버는 7월 15일 자 편지를 동봉물과 함께 받았으며 그 동봉물은 돌려보낸다고 말한다. 이어지는 본문은 단호하다. 미확인비행물체 수사는 FBI 의 관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고, 폭스가 보낸 사진 속 인물들은 FBI 직원이 아니며, FBI 는 다른 행성에서 온 탑승자를 신병으로 확보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못 박는다. 본문 아래 작은 글씨로 붙은 내부 메모는 발신자가 FBI 파일에서 식별되지 않으며 동봉물은 야윈 아이가 두 남자 어른과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고 적는다. 메모는 "Real" 잡지와의 관계가 그동안 좋지 않았고, 그 잡지의 최근 호에 실린 UFO 실제 보고를 자처한 기사가 이전에도 FBI 의 주의에 올라왔으며, 기사가 허구라는 점과 잡지와의 관계를 감안해 FBI 요원 묘사 건으로 잡지 측에 별도 접촉은 하지 않았다고 정리한다. 좌측 여백의 빨간 "MAILED 8 JUL 21 1966" 스탬프와 우측의 "REC'D-READING ROOM FBI" 스탬프, 상단의 사건 번호 62-33894-446 이 이 편지가 본 파일 시리즈에 정식 편철되었음을 보여준다.

  282. p.282

    문서 페이지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 너머로 비쳐 뒤집힌 채로 어렴풋이 보이고, 별도의 본문은 없다. 1966년 7월 20일 오전 10시 6분 DeLoach 사무실 접수 도장, 같은 날 오후 3시 21분 Received Section 접수 도장, 다음 날인 7월 21일 오후 5시 27분 Mail Room 접수 도장이 잇따라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에서 어느 경로로 돌았는지를 보여 준다.

  283. p.283

    1966년 7월 9일, 캘리포니아 포모나의 로니 폭스가 워싱턴 D.C. 의 FBI 앞으로 보낸 편지다. 폭스는 최근 잡지 《Real Magazine》 1966년 8월호 17권 3호에서 한 사진을 보았는데, 잡지의 설명에 따르면 그것은 "외계 행성에서 온 클라디온 탑승자" 이고, 그 "방문자" 옆에 서 있는 두 남자가 FBI 요원이라고 한다. 폭스는 이 사진에 관련된 정보를 보내 달라고, 또 가능하면 사진까지 보내 줄 수 있느냐고 요청한다. 자기가 동봉한 사진은 유일하게 가진 한 장이니 꼭 돌려달라고도 덧붙인다. 답신을 받을 주소는 1348 Edgehill Drive, Pomona, California 91767. 페이지 하단에는 FBI 가 접수하면서 찍은 1966년 7월 22일자 도장과 사건 번호 62-83894-446, 그리고 "ENCLOSURE" 표시가 함께 보인다. 오른쪽 위에는 누군가가 파란 펜으로 "Flying Saucers" 라고 적고 밑줄을 그어 두었다.

  284. p.284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얇아 앞면의 접수 도장과 글자가 비쳐 보일 뿐, 이 면 자체에 작성된 내용은 없다. 위쪽에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고, 아래쪽 가장자리에 1955년 7월 15일 오후 4시 39분, 7월 18일 오후 8시 50분으로 읽히는 접수 도장이 거꾸로 비친다.

  285. p.285

    1966년 7월 21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텍사스 클레번에 사는 스티븐 C. 그레이에게 보낸 답신이다. 문서 일련번호는 62-83894-449. 그레이가 7월 16일에 보낸 편지를 받았다고 알린 뒤, 후버는 미확인 비행 물체 조사가 FBI의 수사 관할에 속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다고 못 박는다. 그레이가 언급한 사진 속 인물들이 FBI 직원이 아니며, FBI가 다른 행성에서 온 탑승자를 보관한 적도 없다고 단언한다. 동봉물로 FBI 활동을 소개하는 소책자 두 권 — Know your FBI, Story of the FBI — 을 보낸다고 덧붙이며 마무리한다.

    편지 아래의 내부 NOTE 가 답신의 배경을 설명한다. 발신자 그레이는 FBI 파일에서 식별되지 않으며, 이 사진에 대한 문의가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들어왔다고 한다. 문제의 사진이 실린 잡지 Real 의 최근 기사는 미확인 비행 물체에 대한 실제 보고를 가장한 것으로, FBI 측에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잡지의 픽션적 성격과 Real 측과의 관계를 고려해 FBI 요원 묘사 문제로 잡지사에 별도로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적는다.

  286. p.286

    문서 뒷면 스캔이다. 종이가 비치면서 앞면 타자 본문과 빨간 도장이 거꾸로 희미하게 드러나고, 위쪽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하단에는 "JUL 20 4 46 PM '55 REC'D DeLOACH F B I" 라는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이 문서가 1955년 7월 20일 오후 4시 46분 디로치(DeLoach) 앞으로 접수된 자료의 뒷면임을 보여준다.

  287. p.287

    1966년 7월 16일 텍사스주 클리번에 사는 스티븐 G. 그레이가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이다. 그레이는 최근 잡지 Real 한 권을 샀는데 그 호에 미확인 비행물체 사진이 잔뜩 실려 있었고, 그중에는 FBI 요원 두 명이 키 45~60센티미터 정도 되는 은빛 옷차림의 인물을 미국 거리에서 끌고 가는 사진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진이 황당하게 들린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잡지에 그렇게 실려 있었으니 확실히 해두고 싶다고 적는다. 사진이 조작된 것 같지만 그래도 확실히 알고 싶으니 답장을 달라고 부탁하고, 이 사진이 어쩌다 보니 독일 쾰른 신문에 먼저 실렸다는 점도 덧붙인다. 편지 아래쪽에는 클리번 우체국 소인과 함께 FBI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사건 번호 62-83894-447 이 손글씨로 더해져 있어 이 편지가 같은 FBI 파일에 편철되었음을 보여 준다. 1966년 7월 22일 접수 도장도 같이 찍혀 있다.

  288. p.288

    1966년 7월 16일, 플로리다 멜버른 포레스트가 93번지에 사는 스티븐 G. 그레이라는 사람이 워싱턴 D.C. 법무부의 J. 에드거 후버에게 손으로 쓴 편지다. 그레이는 최근에 잡지 "Real"을 한 권 샀는데, 미확인 비행 물체에 관한 사진이 많이 실린 그 호에 FBI 요원 두 명이 키 50~60센티미터 정도로 보이는 은빛 옷을 입은 작은 남자를 미국 거리에서 끌고 가는 사진이 있었다고 했다. 본인이 듣기에도 이상한 이야기라는 걸 알지만 잡지가 그렇게 싣고 있었고, 사진이 조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하면서도 확실히 해두고 싶어서 후버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또한 이 사진이 처음 실린 것은 어쩐 일인지 독일 쾰른의 한 신문이었다고 덧붙였다. 왼쪽 여백에는 7월 20일에 TC 파일로 보내라는 처리 메모와 7월 21일 EFFjmc 가 회신 처리했다는 메모가 있고, 하단에는 "CORRESPONDENCE"라는 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289. p.289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빈 페이지다. 종이 결만 보이고 본문은 없으며, 좌하단과 우하단에 작은 일본어 도장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290. p.290

    황갈색 마닐라 폴더 표지로, 본문 텍스트는 없다. 왼쪽 상단 모서리에 손글씨로 분류 번호와 FBI 사건 파일 번호 62-83894가 적혀 있어, 이 폴더가 해당 사건 파일의 일부였음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