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I 사건 파일 62-HQ-83894 시리얼 130 — 1947년 비행접시 파동의 한 묶음, Powell·White·Birmingham·Newfoundland·Pikes Peak·Kenneth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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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9월 12일 미 공군 방공사령부 본부 (뉴욕 미첼 필드) 가 작성한 '미확인 비행 물체 — 알피우스 O. 파월 면담' 정보 요약 보고서다. 문서번호 62-83894-130, 상단·하단 모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좌측 상단에 DECLASSIFIED 도장이 추가로 들어가 있다.
8월 12일, 롱아일랜드 뉴 하이드 파크 28 레드우드 로드에 사는 알피우스 O. 파월이 8월 4일에 본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 원반 목격담을 진술했다.
47세인 파월은 팬 아메리칸 에어웨이즈 소속 항공기 기장으로, 사건 당일 뉴펀들랜드 갠더에서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하는 컨스텔레이션 기종 노선의 정조종사였다. 갠더에서 동부 일광절약시간 12시 30분경 이륙해 라과디아로 향했고, 16시경 매사추세츠 에버렛 팬 마커와 베드포드 라디오 비콘 중간 지점 (에버렛은 보스턴 북서쪽 2마일, 베드포드는 같은 도시 북서쪽 15마일) 상공에서 항법사 R. 화이트와 함께 미확인 비행 물체를 봤다.
당시 기상은 파월의 기억으로는 시정 양호, 운량 10분의 6.4, 운정 1만 피트, 8천 피트 고도 풍속은 270도 방향 시속 25마일 수준이었다. 항공기는 고도 8천 피트, 대기속도 시속 255마일, 자방위 244도로 비행 중이었다.
부조종사석 (조종실 우측) 에 앉아 있던 화이트가 먼저 파월에게 기체 오른쪽, 항공기 고도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밝은 오렌지색 물체를 알려줬다. 파월의 자리에서는 오른쪽 아래 시야가 막혀 그쪽을 볼 수 없었다. 파월은 곧장 측면 창밖을 봤고 왼쪽 45도 방향에서 미확인 비행 물체를 발견했다. 거리는 약 1마일, 고도는 약 7천 피트로 추정됐다. 파월은 더 잘 보려고 기체를 기울였다. 관측 시간은 약 30초였으며 그동안 파월이 직접 봤다.
파월은 물체를 P-40 동체 길이 정도에, 양 끝이 뭉툭하고 원통형이며 밝은 오렌지빛을 띠는 형태로 묘사했다. 윤곽이 분명했고, 로켓이나 제트기 배기가 만들어내는 가스 확산 같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물체의 진행 방향은 자방위 300도, 속도는 시속 약 100마일로 추정됐다. 곧 구름이 항공기와 물체 사이에 끼어 파월은 시야를 놓쳤다. 추적을 이어가려면 정해진 항로를 벗어나야 했기 때문에 그 이상은 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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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9월 15일자로 미첼 필드의 공군방공사령부(Air Defense Command) 본부에서 작성한 보고서로, 제목은 "미확인 비행 물체 — 월터 I. 화이트 인터뷰"다. 9월 10일 뉴욕 잭슨하이츠에 거주하는 월터 I. 화이트로부터 받은 진술을 정리한 정보 요약이다.
화이트는 팬암 항공사 소속 항법사로, 1947년 8월 4일 뉴펀들랜드 갠더에서 뉴욕 라과디아 공항으로 향하는 컨스텔레이션 기종 여객기에 탑승해 있었다. 오후 4시경 보스턴 남서쪽 약 10마일 지점에서 부조종사석에 앉아 오른쪽으로 다른 항공기가 있는지 살피던 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 물체를 발견했다. 처음 봤을 때 물체는 약 2마일 거리, 컨스텔레이션보다 최소 1,000피트 아래에 있었다. 그는 조종사에게 알리기 전까지 약 30초 동안 물체를 관찰했다고 말한다.
화이트의 묘사에 따르면 물체는 짙은 황금빛이었고 표면이 빛을 반사했다. 길이는 약 15피트, 두께는 2~3피트 정도였으며, 타원형에 양 끝이 무딘 형태였다. 속도는 시속 175마일로 추정했고, 방향은 자기방위 약 110도, 즉 동쪽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그가 기장에게 "오른쪽에 미확인 물체가 있다"고 알리고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려 잠깐 더 봤지만, 곧 기장이 비행기를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때 기장 파웰이 자기 쪽에서도 비슷한 물체가 보인다고 외쳤지만, 화이트는 그쪽 물체는 보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봤던 물체와 파웰이 본 물체가 같은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데, 자신이 본 물체가 그대로 같은 항로를 유지했다면 그 시점에는 이미 컨스텔레이션의 날개와 꼬리 부분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장이 다시 기체를 수평으로 되돌렸고, 전체 사건은 1분 3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목격 당시 기상 조건은 적운이 5/10 정도 흩어져 있고 구름 정상은 10,000피트, 시정 10마일, 비행 고도의 바람은 동풍 약 15노트였다. 항공기는 9,000피트 고도에서 진대기속도 270노트로 자기방위 남서 방향으로 비행 중이었다.
수사관 메모에 따르면 화이트는 지난 5년간 팬암 항법사로 일했고, 전쟁 기간에도 팬암에서 근무했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빨간색으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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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마지막 장이다. 화이트 씨는 AAF 위탁 비행 업무에서 파웰 씨와 여러 차례 함께 비행한 적이 있으며, 파웰을 매우 안정적이고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 "공상에 잘 빠지는" 부류가 아닌 사람으로 본다고 진술한다. 관련 자료로 1947년 9월 12일자 ADC 작성 정보 요약 "Unidentified Flying Objects" (Alphous G. Powell 면담) 이 참조 표기되어 있다. 배포 이력은 없음, 이번 배포는 AAF 3부·ADC 2부. 출처 신뢰도는 C, 정보 신뢰도는 3 으로 평가되었다.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빨간 잉크로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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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 메모. A. O. 파월은 항공 사관 비행 훈련 프로그램을 거쳐 앨라배마 맥스웰 비행장에서 41-C 기수로 졸업한 인물로, 졸업 이후 팬아메리칸 항공에서 근무했으며 이 보고서 시점까지 기장 비행 시간이 4,000시간을 넘는다. 파월은 차분하고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며 공상에 빠지거나 신문에서 비슷한 종류의 보고를 읽고 휩쓸릴 사람은 아니다. 다만 본인 이야기가 알려져 비웃음거리가 될까 걱정해 진술 자체를 망설였다. 조사관은 그가 본 물체가 예항 표적, 기상 관측용 풍선, 라디오존데 같은 기상 관측 장비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파월은 비행 중 그러한 풍선과 라디오존데, 예항 표적을 여러 차례 본 적이 있으며 이번 비행에서 목격한 물체는 분명히 그중 어느 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자료 신뢰도는 C, 정보 신뢰도는 S 로 매겨졌고, 이전 배포 이력은 없으며 AAF 와 ADC 에 각 2부씩 배포되었다.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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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플로리다 올랜도에 있던 미 14공군 사령부가 뉴욕 미첼 필드의 공군방어사령관 앞으로 보낸 1차 회신 문서다. 원래 자료는 앨라배마 버밍엄 육군비행장(BAAFD)이 7월 8일자로 올린 "지역 비행접시 보고"였고, 14공군은 이를 두 항목으로 회신한다. 첫째, 귀 사령부의 참고용으로 그대로 전달한다. 둘째, 이번 건은 단발성 사례이므로 14공군은 "비행접시" 보고에 대해 별도의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사령관을 대리해 W. Murphy 가 서명했고 첨부물(a/c) 세 건이 함께 넘어간다. 상하단의 RESTRICTED 표시는 당시 이 문서가 제한 등급으로 다뤄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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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에 손글씨로 사건 번호 62-83894-130 만 남아 있는 빈 페이지다. 다른 페이지의 뒷면 스캔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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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6일, 앨라배마 버밍햄의 항공군 훈련분견대(Birmingham Air Forces Training Detachment) 사령관 잭 C. 화이트 소령이 플로리다 올랜도의 제14공군 사령관(A-2 정보참모 앞)에게 보낸 "현지 비행접시 보고" 라는 제목의 보고서다. 화이트 소령은 1947년 7월 6일 일요일 밤 버밍햄 상공에서 목격되었다고 알려진 "세간에 알려진 비행접시" 의 사진을 동봉한다고 알리며, 사진에 찍힌 두 개의 빛점과 그 뒤를 따르는 빛 자국, 그리고 비행 방향을 나타내는 사진 상단 화살표에 주목해 달라고 청한다. 버밍햄의 전문 사진가들이 이 사진을 검토한 결과, 빛 자국 위의 두 점이 비행접시라는 것이 일반적 의견이며, 단순한 음화가 아니라 수수께끼의 원반을 직접 찍은 사진이라고 화이트는 전한다. 본인은 어떤 원반의 비행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고 명시하면서도, 버밍햄 시민들로부터 수많은 보고가 들어온 점을 들어 "하늘에 무언가 있었다" 는 의견이 도시 전반에 퍼져 있다고 평가한다. 이어 자신의 부대 소속 군인 두 명이 직접 원반의 비행을 목격하고 작성한 진술서를 두 번째 첨부로, 다수의 목격담을 다룬 현지 신문 기사 스크랩을 세 번째 첨부로 함께 보낸다고 적는다. 마지막으로 버밍햄 군관구 정보장교가 지상군 계통을 통해 조지아 애틀랜타 제3군 사령관에게도 동일한 내용을 이미 송부했음을 알린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RESTRICTED 표시가 찍혀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손글씨로 된 파일 번호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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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25일, 뉴욕 미첼 필드의 방공사령부(Air Defense Command) 본부에서 워싱턴의 육군 항공대 사령관(정보참모부 AC/AS-2 앞)에게 보낸 두 번째 회신(2nd Ind)이다. 문서번호는 D333.5 ID (8 Jul 47), 제목은 「지역 '비행접시'에 관한 보고(Report on Local "Flying Discs")」. 본문은 "귀하의 정보를 위해 전달함(Forwarded for your information)" 한 줄뿐이고, 사령관을 대리하여 정보참모부 차장 R. H. 스미스 대령(GSC)이 서명했다. 첨부 3건은 변경 없이(n/c) 그대로 동봉했다. 상하단에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어 제한 등급 문서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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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엄 Age-Herald 신문의 1947년 7월 무렵 1면 스크랩이다. 머리기사는 '비행접시' 39개 주에서 목격, 그러나 이곳에 집중되는 듯 이고, 부제는 도시는 으스스한 원반의 현란한 쇼에 어리둥절 이다. 기사는 6월 25일부터 밤하늘에 보였다는 이상한 물체들이 어젯밤 버밍엄 상공에도 나타났다고 전한다. 목격자 수백 명이 신문사에 제보했고, 모두가 동의하는 점은 물체가 둥글고 접시 모양 이라는 것 하나뿐이다. 그 외의 묘사는 제각각이다. 크다는 사람도 있고 작다는 사람도 있다. 빠르게 움직였다고도, 공중에 멈춰 있었다고도 한다. 소리가 났다는 증언과 검은 하늘을 소리 없이 지나갔다는 증언이 같이 있다. 멀리 있었다는 사람도, 땅에 떨어졌다는 사람도, 완벽한 편대 비행을 했다는 사람도, 서로 충돌했다는 사람도 있다. 워싱턴 주의 한 남자가 처음 보고한 지 12일 만에 전국을 술렁이게 한 그 정체불명의 물체가 어젯밤 매직 시티 (버밍엄의 별칭) 상공에 분명히 떠 있었으며, 어쩌면 다른 어느 곳보다도 버밍엄 주민들이 더 많이 봤다는 인상이다. 어젯밤 8시경부터 Age-Herald 시내 편집국으로 제보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고, 그 뒤 한 시간 넘게 신문사는 아수라장이었다. 교환원은 전화에 파묻혔고 기자·사환·교열까지 모두 동원됐다. 제보는 에지우드, 마운틴 브룩, 애번데일, 사우스사이드, 페어필드, 잉글누크 시티, 웨스트엔드, 센트럴 파크, 베서머에서 들어왔다. 목격자들의 목소리에는 두려움·흥분·공포·회의가 섞여 있었다. 본문 옆에는 거의 새카만 사진이 한 장 실려 있고, 캡션은 카메라가 잡은 '비행접시' 라고 적혀 있다. Age-Herald 교열기자 로버트 크로스랜드가 어젯밤 8시 37분, 39번가와 하이랜드 애비뉴 자택에서 15초 노출로 촬영한 사진이라는 설명이다. 신문 스크랩 상단에는 FBI 파일 번호 62-93994-130 이 손으로 적혀 있고, 여백에는 see 130 이라는 메모가 두 군데 더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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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엄 뉴스 5면에 실린 〈버밍엄 상공에 나타난 수상한 비행접시〉 기사의 1면에서 이어지는 부분이다. 버밍엄 헤럴드는 전날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사진기자를 비행기에 태워 띄웠지만 남쪽 하늘에서 아무 물체도 보지 못했고, 그 사이에도 시민들의 제보와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잭 C. 화이트 소령은 버밍엄 주민들에게 '미스터리의 정체가 풀릴 때까지 비행장은 경계 태세를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냈고, 물체가 지평선 너머에서 온 것 같다는 견해도 함께 덧붙였다.
오른쪽 단은 좀 더 넓은 분위기를 전한다. 어떤 남자는 몇 주 전 그 물체를 봤지만 '아내한테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이 일이 무엇이든 미국 전체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다른 국내외 뉴스를 모두 가려버릴 정도였다. 전날 밤 영국발 방송은 영국인들이 이 이야기를 비웃고 있다고 전했지만, 미국 30여 개 주의 시민들이 같은 물체를 봤다고 신고한 이상 무언가는 있는 셈이라고 기사는 적는다.
버밍엄 경찰서, 기상청, 공항 관제탑, 항공사 사무실에도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버밍엄 육군 비행장의 사령관 잭 C. 화이트 소령은 경계령을 내리고 L. S. 로빈슨 중위에게 시내 상공을 정찰하라고 지시했다. 로빈슨은 4천에서 5천 피트 고도로 1시간 15분 동안 시내를 돌았지만 비정상적인 물체를 하나도 보고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그저 눈의 착각일 뿐이라고 본다. AP 통신의 과학 담당 기자 하워드 블레이크슬리는 자기도 롱아일랜드 자택에서 비슷한 물체를 여러 해 동안 봐 왔지만 거기에 어떤 신비도 결부시키지 않았다며, 그것은 눈과 빛이 만들어내는 합작 착시라고 답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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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7일 월요일자 신문 기사 스크랩이 큰 종이 한가운데에 붙어 있다. 표제는 "라디오 조종이라고, 한 소년이 말한다". 크레스트라인 하이츠 스쿨 5학년에서 6학년으로 올라가는 열 살짜리 마이클 엘러먼이 더 뉴스 기자에게 비행접시가 무엇인지 자기 의견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비행접시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준비하는 다른 나라가 보낸 신형 라디오 조종 로켓 원반이라고 했다. 카메라가 달려 있어 사진을 찍은 뒤 라디오 신호로 본국까지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너무 빨라서 사람들이 못 보다가, 사진을 찍을 때만 공중에 멈춰 있다고 한다. 엘러먼은 비행접시가 버밍햄 상공에 나타나는 이유도 따로 있다고 했다 — 이곳에 큰 제철소와 거대한 조면기가 있기 때문이다. 또 "암 카메라"가 서부의 과수 산업도 찍어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느 나라가 보냈는지는 짐작하지 않았고, 자기 집인 클라렌든 로드 4번지에서도 직접 본 적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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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버밍햄 지역 신문 기사 스크랩 두 단을 한 장에 붙여놓은 자료다. 비행접시 목격담 보도다.
첫 단은 버밍햄 기상 담당자 찰스 브래들리의 코멘트로 시작한다. 그는 이 현상이 기상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고, 직원들에게 관련 정보를 모으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날 저녁 가장 큰 소동은 에이븐우드 근처 협곡에 비행접시 몇 개가 떨어졌다는 제보였다. 기자와 사진기자가 현장에 갔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동네 주민들은 비행접시가 낮게 지나가 나무 사이로 내려간 듯 보였다고 말했다.
에이지-헤럴드의 카피리더 로버트 클리블랜드는 29번가와 하이랜드 애비뉴의 자기 집 위로 물체가 지나가자 카메라를 들고 뛰어나갔다. 현상해 보니 검은 광택 위에 둥글고 하얀 점 두 개가 함께 찍혀 있었고, 한쪽이 다른 쪽보다 컸다. 16초 노출이었고 옆에 다섯 사람이 더 있었다고 한다.
기자는 이제 목격자를 더 모을 필요도 없을 만큼 "점잖은 시민들" 이 너무 많이 봤다고 적었고, 이 광경을 오늘 밤 몽거 볼에서 "주간 오페라" 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올리자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두 번째 단은 "수많은 사람들이 미스터리한 원반을 봤다고 신고" 라는 표제로 묶인 짤막한 증언 모음이다. 이스트레이크, 사우스사이드, 웨스트엔드, 우들론, 베스머 주민들이 전날 밤 비행접시를 봤다고 신고했고, 한 건은 같은 날 오후 워리어 강 상공에서 목격됐다. 한 번에 보이는 개수는 들쭉날쭉했다.
사우스 19번 코트의 코니 머독은 원반 아홉 개가 "빛의 구슬" 처럼 하늘에서 움직이는 걸 봤다고 신고했다. 49번가의 H. E. 리글은 이웃들과 함께 "마흔에서 쉰 개" 의 빛 점이 센트럴파크 공항 쪽 상공에 떠 있는 걸 봤다고 했다. 이스트레이크의 한 주민은 라디오 보도를 듣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가 DC-9 의 착륙등과 반딧불이 열일곱 마리를 봤다고 비꼬듯 응답했다.
사우스 29번가의 베인 부인은 동에서 서로 가는 원반 세 개를 봤고, 잠시 뒤 두 개가 더, 그리고 한 개가 따로 지나갔다고 했다. 베스머 클랜튼가의 카르도스는 베스머와 레드 마운틴 사이 하늘에서 "이상한 빛" 이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고 보고했다. 사우스 10번 플레이스의 댄 스미스 (14세) 와 사우스 10번 애비뉴의 마빈 파 (13세) 는 마당에 서 있다가 원형 은빛 섬광이 빙빙 도는 걸 봤다고 말했다. 처음엔 하나씩 나타나다가 점점 늘었고, 산 너머로 사라지는 듯했다고 했다.
경찰서에서는 매크닐 경관이 원반 신고가 저녁 8시 15분쯤 시작돼 20분 뒤 잦아들었다고 밝혔다. 그린에이커스 메도우레인의 소크웰 부인은 "아주 느리게 흐르는 광선들" 을 봤다고 했는데, 라디오 보도를 듣자마자 마당으로 나가 남편과 이웃 다섯 명과 함께 원반 여섯 개가 "꽤 낮게" 나는 모습을 봤고 크기는 야구공 정도였다고 말했다.
마지막 "식탁만큼 컸다" 단락은 베스머 슈퍼하이웨이의 미스 부인 증언이다. 자기가 미쳤는지 확인하려고 신문사에 전화했다고 밝힌 그녀는, 전날 밤 9시 반에서 10시 사이 브라이턴에서 부시 부부 댁을 방문한 뒤 차에 타려다 "불덩어리" 들을 봤다고 말했다. 봉화 같은 빛이 베스머 쪽에서 언덕을 넘어 다가왔고, 번개 같은 속도로 달려와 갑자기 멈춰 공중에 박혔다가 다시 쏜살같이 흩어졌으며, 일부는 베스머 방향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계속 나아갔다고 한다. 원을 그리는 것도, 서로 스칠 듯 비껴가는 것도 있었다고 했다. 크기는 "내 식당 식탁만큼 컸다" 고 표현했다. 단 마지막은 잘려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데, 그쪽 단편을 보면 야구공 정도였고 "남서에서 남동으로 큰 곡선을 그리며" 약 5초 간격으로 나타났다는 다른 증언의 마무리 부분이 함께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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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밍햄 지역 신문에서 오려낸 기사로, 같은 날 밤 시내 곳곳에서 비행접시를 봤다는 시민들의 목격담을 모아 실은 것이다. 페어필드 하이랜즈의 한 시민은 비행접시가 시속 1500마일로 자기 집 위를 지나갔고, 반대 방향으로 날아가다가 멈춰서 서로 부딪히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WSGN 방송국 프로그램 매니저 진 플럼스테드는 에지우드 호수 위에서 봤다고 알렸고, 엔슬리의 J. A. 해프너는 거대한 탐조등이 만든 빛 같았지만 정작 탐조등 같은 광선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웨스트엔드의 해크바스 부인은 하늘에서 흰 둥근 물체 여러 개를 봤고, 센트럴파크의 L. M. 캐든헤드는 파우덜리 상공에서 빛을 봤다고 했다. 사우스 47번가의 마틴 부부와 아놀드 부부는 자동차 타이어만 한 크기였다며 어떤 건 총알처럼 빠르고 어떤 건 떠다녔다고 묘사했다. 하월 부부는 아침 8시 반쯤 디스크 열한 개를 봤다고 했고, 노스 12번 코트의 헬렌 맬러리 부인은 약 열두 개가 자기 집 위로 지나갔으며 아들 마일로가 먼저 발견해 가족을 불렀다고 했다. 테네시 석탄·철·철도 회사 소속 경찰관 프랭크 러브레이스는 여덟에서 열 개 정도였고 설거지통 크기로 남동쪽에서 나와 몇 분간 빙빙 돌았다고 했다. 버밍햄 육군 비행장의 리빙스턴 하사는 그린 에이커스의 자기 집에서 지그재그로 동에서 서로 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유럽 전선에서 대공포 사수로 복무했던 본 3세는 엔슬리 하이랜즈의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봤는데, 자기가 쏴본 어떤 표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며 오로라 같은 자연 현상의 일종일 거라고 추정했다. 열한 살 지미 파우더위츠는 할머니 댁에서 봤는데 유성처럼 생겼지만 너무 낮게 날았고 긴 빨간 꼬리가 달려 있었다고 말했다. 기사 아래쪽 〈탐조등 반사 가설 제기〉 단락에서는 컴머 빌딩에 입주한 복구금융공사의 윌리엄 B. 헤이스가 다른 설명을 내놓은 내용이 이어진다. 헤이스는 그날 밤의 비행접시가 버밍햄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실루리아의 카니발 탐조등 빛이 두꺼운 구름에 비쳐 생긴 현상일 거라고 봤다. 태평양 전선에서 군 복무를 한 그는 그 지역에서 같은 모양을 자주 봤다며, 자신이 조종사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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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7일자 진술서다. 공군 상사 아이라 L. 리빙스턴 (군번 RA 14 153 972) 이 앨라배마주 버밍햄 인근에서 '비행접시' 를 본 경위를 직접 설명한 것을 1등중위 제임스 E. 맥팔런드 보조 AJS 앞에서 선서·서명한 형식이다. 문서 상하단에는 RESTRICTED 가 찍혀 있다.
리빙스턴은 조종사 겸 무장 사수로 약 250시간의 비행 경력을 가졌다고 자신을 소개한 뒤 본격적인 목격담을 이어간다. 1947년 7월 6일 저녁 8시 45분, 그는 버밍햄 그린 에이커스의 미도우 레인 1154번지 자택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옆집 이웃 허먼 M. 록웰이 현관문 쪽으로 그를 불러내며 바깥에 '비행접시' 가 있다고 알렸고, 그는 곧장 앞마당으로 나가 물체를 관찰했다.
물체는 버밍햄 서쪽 하늘에 나타나 남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본 각도는 지평선으로부터 45도, 고도는 약 3000피트로 추정됐다. 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물체는 지름 약 2피트 정도로 둥근 형태였고, 희미한 빛을 내며 시속 500~600마일로 움직였다. 직선이 아니라 분명한 호를 그리며 날았고, 하나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뒤따라 나타났는데 늘 같은 경로는 아니었다. 한번은 곧장 위로 솟는 듯한 물체도 보였는데, 출발점은 근처 집에 가려 보이지 않았고 약 3000피트 고도에 이르자 다른 물체들과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한 번에 두 개 이상을 동시에 본 적은 없으며, 따라서 한 물체가 반복해 나타났을 가능성도 인정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일곱에서 열 개 정도였다고 믿는다고 적었다. 물체는 소리가 없었고 하나의 빛 덩어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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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7월 30일, 뉴펀들랜드 기지사령부 정보참모부의 매리언 C. 밀러 대위가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 토튼의 대서양 항공수송사령부 사령관에게 보낸 이송장이다. 같은 사령부가 7월 28일 보낸 이송장에 이어, 뉴펀들랜드 스티븐빌의 하먼 비행장에서 7월 23일 03시 45분(Z)에 발생한 "비행접시" 목격 최종 보고서를 동봉해 전송한다는 내용이다. 동봉물은 네 건으로, 목격 최종 보고서 세 부와 커니 순경의 서명 진술서 한 부가 포함된다. 문서 상단에는 기밀 등급을 'CONFIDENTIAL'에서 'RESTRICTED'로 강등한다는 손글씨 메모가 보이고, 8월 6일자로 포트 토튼 본부의 제임스 H. 브렘스터 중령이 같은 문서를 워싱턴의 항공수송사령부 본부 참모장 앞으로 다시 회부했다는 1차 첨신(1st Indorsement)이 아래에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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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
1947년 7월 23일 뉴펀들랜드 하몬 비행장에서 목격된 빛을 정리한 「최종 목격 보고서」다. 1388th AAF Base Unit 소속 정보장교 윌리엄 H. 스미스 대위가 작성했고, 상단에는 CONFIDENTIAL이 줄로 지워지고 RESTRICTED로 격하되었다는 표시가 1947년 8월 13일자 서명과 함께 남아 있다. 목격 시각은 23일 0345Z, 고도는 약 1만 피트, 시정은 15마일 이상으로 양호했다. 빛은 남쪽에서 북북동(약 30°) 방향으로 움직였고, 속도는 통상 항공기보다 빠르다고 진술했다. 처음에는 별똥별이나 비행기처럼 보였지만 같은 자리에 다시 나타났고, 약 3분 동안 붉은 색의 간헐적 섬광이 이어졌다. 떨어지는 별로 보기에는 그렇게 떨어지지 않았고, 비행기로 보기에는 기동이 너무 급격했으며 모터 소리도 없었다. 보고자는 뉴펀들랜드 국적 정부 직원 패트리샤 애벗 양과 항법사 겸 공보장교 해마커 중위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은 걷던 중 붉은 빛을 보았고, 처음에는 별똥별로 생각했지만 꼬리가 없었다고 한다. 다시 나타나자 고고도를 나는 비행기인가 했지만, 소리가 전혀 없고 빛이 갑작스럽게 튀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비행기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고 한다. 둘 다 이전에 같은 것을 본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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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1947년 7월 26일 뉴펀들랜드 기지사령부(Fort Pepperrell, APO 862)가 뉴욕 롱아일랜드 포트 토튼의 대서양 사단 ATC 사령관(정보참모부 수신)에게 보낸 송부 서한. 동봉물 1·2·3번은 뉴펀들랜드와 인근 지역에서 관측된 '비행접시(flying saucers)' 목격에 대한 최종 보고서로, 각각 1947년 7월 10일 20시 02분(Z), 7월 11일 00시 30분(Z), 7월 20일 00시 15분(Z) 자 목격을 담고 있다. 또한 본 사령부가 1947년 7월 12일 17시 30분(Z) 자로 발송한 전문 TWX EN-18469와 관련해, 1947년 7월 9일 밤 뉴펀들랜드 그랜드 폴스(Grand Falls)에서 뉴펀들랜드 경찰(Newfoundland Constabulary) 소속 에릭 키어시(Eric Kearsey) 순경이 '비행접시'를 목격한 건에 대한 키어시 순경의 서명 진술서를 동봉물 4번으로 함께 송부한다. 사령관을 대신하여 항공대 대위이자 정보참모 부참모장(AC/S, Intelligence)인 마리온 C. 밀러(Marion C. Miller)가 서명했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RESTRICTED /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어 원래 기밀로 분류된 군 내부 문서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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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1947년 7월 10일 뉴펀들랜드 하몬 필드 1388 AAF 부대의 정보장교 윌리엄 H. 스미스 대위가 작성한 목격 최종 보고서다.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 위로 줄을 긋고 RESTRICTED 로 분류를 낮춘 표시가 손글씨로 들어가 있다.
목격 장소는 하몬 필드에서 남남서 약 9.7킬로미터 지점, 시각은 1947년 7월 10일 그리니치 표준시 20시. 고도는 8천 ~ 1만 피트, 날씨는 맑고 같은 고도에 산발성 적운이 있었다. 물체는 북북동 방향 수평 진로로 매우 빠르게 이동했다. 모양은 바퀴처럼 둥글었고, 크기는 1만 피트에서 본 C-54 수송기와 비슷했다고 한다. 색은 반투명 또는 은빛이었고, 약 24킬로미터 길이의 푸르스름한 검은 흔적을 남겼다.
보고는 세 사람의 증언에 기반한다. TWA 정비사 존 N. 머먼 박사, PAA 정비사 존 W. 우드러프, PAA 정비사 로버트 E. 레이디 세 사람은 사건 닷새 뒤인 7월 15일 정보장교에게 직접 사실을 보고했고, 같은 날 ATC 사령관 정보참모부장 앞으로 플래시 리포트가 TWX 전문으로 송신됐다. ATLD 와 NEC 사령부에는 사본이 갔다.
세 사람은 스티븐빌 크로싱에서 하몬 필드로 이동하던 길에 물체를 봤다. 우드러프가 먼저 디스크를 봤고, 물체는 통과한 구름을 찢거나 가르는 것처럼 보였으며 뒤로 약 24킬로미터의 푸른 검은 자국을 남겼다. 자국은 강한 착륙등이나 서치라이트 빔이 갑자기 꺼진 뒤 남는 잔광과 비슷했다. 머먼과 우드러프는 물체가 수평으로 곧게 날아갔다고 했고, 레이디는 수평면 위에서 크게 곡선을 그리며 이동했다고 했다. 물체는 북북동 방향으로 사라졌다. 레이디는 자국을 코다크롬 필름으로 두 장 찍었다고 진술했고, 필름은 뉴펀들랜드 기지사령부 정보참모부장에게 현상을 위해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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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
1947년 7월 11일 0030Z, 뉴펀들랜드 코드로이 상공에서 보고된 비행 물체에 관한 최종 목격 보고서다. 작성 주체는 뉴욕 APO 864의 1388 AAF 기지부대이며, 문서 상단에는 원래 'CONFIDENTIAL'이었다가 'RESTRICTED'로 등급이 강등되었다는 표시가 있다.
목격 항목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치는 서경 59도 03분, 북위 47도 50분의 코드로이. 고도는 약 6,000피트. 날씨는 맑았고 시점은 황혼. 물체는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했고 속도는 매우 빨랐다. 모양과 크기는 원반형으로, 통뚜껑이나 디너 접시 크기, 혹은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 정도였다고 보고됐다. 꼬리가 남아 전체적으로 원뿔처럼 보였다. 색은 불꽃색이었고 꼬리는 그보다 옅은 불꽃색이었다.
목격자는 코드로이 주민 존 레지, Wm. 에반스, 앨버트 샘즈 세 사람이다. 레지와 에반스는 레지의 가게 앞에 서 있다가 함께 물체를 봤다. 두 사람 모두 원반이 매우 밝았고 잔광 때문에 물체가 원뿔처럼 보였다고 진술했다. 매우 맑은 밤이었다. 물체가 굉장히 빨랐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나 별똥별로 혼동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앨버트 샘즈는 따로 그 물체를 봤고 어머니에게 본 것을 이야기했다. 어머니 샘즈 부인의 말로는 앨버트는 전혀 놀라지 않은 상태였고, 혼자 집으로 가는 길에 물체를 발견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고 한다. 앨버트는 색과 움직임으로 보아 비행기가 아니라 분명히 어떤 비행 물체라고 확신했다.
제보자 레지에 대한 신뢰성 평가도 덧붙어 있다. 마흔 살 정도의 남자이며 뉴펀들랜드 부캔스 광산의 현장 감독으로 300명을 통솔한 경력이 있다. 전쟁 중에는 민간 항공감시단에 소속돼 있었다.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레지는 자기가 본 것이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새로운 무엇이라고 확신한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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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RESTRICTED·CONFIDENTIAL 도장이 위아래로 찍힌 한 장짜리 "Final Report of Sighting" 보고서의 마지막 면으로, 항공대 정보장교 윌리엄 H. 스미스 대위가 서명한 목격 정리다. 앨버트 범마라는 열두 살 소년이 비행 물체를 혼자 보았는데, 이전에 그 비슷한 것도 본 적이 없다고 확실하게 말했다. 소년의 어머니 범마 부인은 마을의 우체국장으로, 아들의 묘사를 듣고 "비행접시" 묘사에 들어맞는다고 판단했다. 이웃 레그 씨는 자기가 본 것을 곧바로 범마 부인에게 알렸는데, 사건이 즉시 전보로 보고될 수 있도록 우체국장에게 알리는 것이 옳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 한 건의 목격이 사우스 브랜치의 리버 매리언에서 들어왔지만, 정보장교는 다른 면담을 진행하던 중이라 당사자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대신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은 묘사를 확보했고, 그 내용은 코드로이의 목격들과 일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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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1
1388 육군항공기지대(APO 864, 뉴욕)에서 작성한 비행물체 목격 최종 보고서다. 1947년 7월 20일 0015Z, 노바스코샤 시드니에서 뉴펀들랜드 포트오바스크로 향하던 증기선 〈버구〉가 시드니를 떠난 지 한 시간쯤 됐을 무렵의 일이다.
물체는 수평면 기준 진북에서 동쪽으로 30도 방향, 즉 북북동으로 움직였고, 수평선 위 30도 지점, 약 1/4마일 거리에 있었다. 날씨는 맑고 어두웠으며, 속도는 예광탄보다 빠르다고 표현될 만큼 빨랐다.
관측자 네 명은 물체 자체를 보지는 못했고 섬광만 봤다. 네 명 모두 섬광이 네 번 또는 다섯 번 일정하게 1초 간격으로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번쩍였다는 데 동의했다. 색은 은빛에서 붉은빛에 가까웠고, 두 명은 파이브플라이와 비슷하지만 더 크고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보였다고 묘사했다. 유성이나 비행기와는 다른 모양이라는 것이다.
목격자는 메이틀랜드, 라킨, 더글러스, 해밀턴 네 사람으로, 모두 해먼드필드 건설을 맡고 있는 해밀턴·메트칼프·캔자스시티브리지 컴퍼니 소속이다.
〈버구〉의 선장 걸리지 대위는 네 사람과 우현 갑판에 함께 서 있었다. 걸리지가 자기가 이전에 본 목격담을 들려주려던 참에 섬광이 다시 나타났고, 나머지 네 명도 같이 봤다. 네 사람 모두 속도와 색, 일정한 간격의 섬광 때문에 유성도 비행기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걸리지 대위는 1947년 7월 15일 저녁 거의 같은 시각, 같은 위치에서도 같은 것을 봤다고 일행에게 말했다. 다만 그때는 속도가 더 빨랐고 항로를 자주 바꿨다 — 갑자기 여러 차례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 그리고 대체로…(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페이지 상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두 줄로 그어져 있고, 그 위로 RESTRICTED 도장이 비스듬히 찍혀 있다. 분류 등급이 한 단계 낮춰진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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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
목격 보고서의 두 번째 페이지로,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일반' 항목의 끝부분이다. 8번 항목에서 기장은 네 명의 신사들에게, 공식 목적으로 정보가 필요하다면 자신이 완전한 보고서를 작성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보고서 말미에는 항공대 정보장교 윌리엄 M. 스미스 대위의 서명이 있다. 상하단의 RESTRICTED 도장은 가로선으로 지워져 있어, 이후 기밀 등급이 해제되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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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
1947년 7월 16일, 뉴펀들랜드 기지사령부 1395 AAF 기지부대 정보장교 윌리엄 스미스 대위가 같은 날 오후 2시 15분 (동부 표준시) 팬 아메리칸 항공 하몬 필드 정비주임 존 E. 우드러프를 심문한 기록이다. 우드러프는 7월 10일 오후 5시경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스티븐빌 크로싱과 기지 사이의 언덕을 넘다가 앞쪽 구름 무리에서 디스크가 튀어나오는 장면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팬 아메리칸 차량 조수석에 타고 있었고, 음주는 하지 않았으며, 그날 날씨는 매우 맑았고 구름은 8천~1만 피트 고도에 흩어져 있었다고 답했다. 디스크 자체는 반투명한 바퀴처럼 보였고 엄청난 속도로 수평 비행하면서 통과하는 자리마다 구름을 갈라놓았다고 말했다. 크기는 "5센트 동전 또는 콘스텔레이션 여객기 정도"로 보였고, 갈라진 구름의 폭은 약 반 마일에 달했다고 했다.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다가 취소선으로 지워지고 "RESTRICTED"로 격하된 흔적이 남아 있고, 하단에도 같은 격하 표시와 정보장교의 이니셜 서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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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
1947년 7월 17일자 팬 아메리칸 항공사 수석 정비사 존 E. 우드러프(John E. Woodruff)의 진술 조서 두 번째 장이다. 조서를 받은 사람은 육군 항공대 부관 S. M. 린슨 대위. 문서 윗단과 아랫단에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고, 그 위에 CONFIDENTIAL 도장은 줄을 그어 격하 처리했다.
우드러프는 자신이 본 물체가 구름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묻는 질문에, 구름 사이로 곧장 길을 내듯 직선으로 뚫고 지나갔다고 답한다. 흔적이 남았는지 묻자, 강한 조명을 비춘 듯 짙은 푸른빛이 도는 자국이 약 15에서 20마일 정도 이어졌다고 말한다. 유성을 본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이번 물체는 유성과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 너무 깨끗하게 빠져나갔고, 화살처럼 곧았다는 것이다. 진로는 지도를 놓고 보면 북북동 방향이라고 했다.
조서를 받는 쪽은 우드러프가 비행기를 다루어 온 경력이 충분한지 확인한다. 항공기 크기와 거리에서의 고도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일해 왔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고, 항공기 일에 몸담은 햇수는 7년이라고 한다. 전쟁 기간 동안 군에 있었느냐는 물음에는 아니라고 답한다.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었는지 묻자, 본인은 찍지 않았지만 같이 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몇 장 찍었다고 한다. 그 사진이 잘 나올 것 같으냐는 물음에는 사진 찍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고 답한다.
조서 끝에는 우드러프의 친필 서명과 함께 1947년 7월 17일에 본인 앞에서 선서하고 서명했다는 린슨 대위의 인증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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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5
1947년 7월 16일 오후 2시 30분, 뉴펀들랜드 기지 사령부 정보장교 윌리엄 H. 스미스 대위가 트랜스월드항공 하몬필드 정비감독 존 N. 메르먼 주니어를 면담한 기록이다. 메르먼은 1938년부터 항공 일을 해 왔고 전쟁 중에는 육군 공중사수로 복무해 거리와 크기 판단 훈련을 받았다고 답했다. 7월 10일 저녁, 메르먼은 동료 우드러프와 함께 차로 스티븐빌 크로싱 쪽 산을 넘어오던 중이었다. 오르막에서 앞 유리 너머로 하늘이 보였고, 우드러프가 "하늘이 갈라진 데를 보라"고 외쳤다. 메르먼이 고개를 들었을 때 본 것은 푸르스름한 검은색 증기 자국뿐, 물체 자체는 이미 지나간 뒤였다. 그는 구름이 8000~1만 피트 높이에 흩어져 있었는데, 그 물체가 구름을 가르고 지나가면서 마치 칼로 벤 듯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틈을 남겼다고 말했다. 가장자리는 용접 부위를 반으로 자른 듯한 결이었다. 진행 방향은 수평이었고 코스는 거의 북북동, 속도와 크기는 본인이 물체를 보지 못해 답할 수 없다고 했다. 페이지 상단 좌우에는 RESTRICTED와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다가 하단에서 다시 한 번 찍히고 줄로 그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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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1947년 7월 작성된 존 N. 메르만 주니어(John N. Mehrmann, Jr.) 심문 조서 2쪽이다. 메르만은 트랜스 월드 항공(Trans World Airways)의 정비 감독이며, 공군 부관 대위 앞에서 선서하고 진술했다.
조사관이 비행 흔적의 모양을 묻자 메르만은 푸르스름한 검은색이라 파란 하늘과 쉽게 구분됐고, 디젤 엔진 배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답했다. 흔적이 부채 모양이었냐는 질문에는 부채꼴이 아니라 하늘을 가로지르는 띠 모양으로 거의 직선이었다고 했다.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물체를 발견했을 때 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차를 세우고 모두 내려서 올려다봤다고 말했다. 일행 중 한 명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물체가 남긴 흔적을 사진으로 찍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의 이름은 로버트 라이디(Robert Leidy)였고, 사용한 필름은 코다크롬(Kodachrome)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라이디가 비행 물체 자체를 봤는지는 모르겠으며, 보지 못한 것 같다고 진술을 마쳤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히고 그 위에 줄이 그어진 채 RESTRICTED 로 등급이 조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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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
1947년 7월 16일 오후, 뉴펀들랜드 하몬 필드의 정보장교 윌리엄 N. 스미스 대위가 팬 아메리칸 항공 정비공 로버트 W. 레언을 신문한 기록이다. 7월 10일 저녁 우드러프와 메어만이 하늘을 지나가는 비행접시 같은 물체를 보았을 때 레언도 함께 있었다. 일행이 술을 마셨느냐는 질문에 레언은 30분쯤 전에 맥주 한 캔을 마신 정도였다고 답한다. 정황을 묻자, 우드러프가 먼저 그것을 보고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고, 처음에는 믿지 않다가 그가 너무 절박해해서 차를 세우고 내렸다고 한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챙기긴 했다. 하늘에는 구름의 형성으로는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줄이 남아 있었고, 무언가 지나간 분명한 자취였으며 그것이 지나갈 때 구름이 갈라져 있었다는 것이다. 구름을 가르는 길이 났느냐는 질문에 레언은 아주 또렷했다고 답한다. 자취가 구름을 그대로 통과한 것이 보였고, 큰 원을 그리며 날아간 듯했으며 구름의 가장자리가 날카롭게 잘려 있었다. 자취의 모습을 묻자 그는 배기가스 같지는 않았다고 한다. 마치 연못에 조약돌이 떨어져 동심원을 남기듯, 무언가가 통과하면서 생긴 흔적 같았다는 것이다. 색의 차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물체가 구름을 깨고 지나가며 그 자리에 틈을 남긴 것처럼 보였다고 답한다. 자취는 수평이었고, 구름의 고도는 정확히 모르지만 꽤 높았으며, 시각은 정확하지 않지만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 낚시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고 진술한다. 페이지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 위에 "RESTRICTED" 도장이 겹쳐 찍혔고, 분류가 취소되었다는 손글씨 주석이 보인다. 하단에는 같은 도장 위에 레언의 이니셜 "R W L" 이 자필로 들어가 있어, 본인이 진술 내용을 확인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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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
로버트 W. 레이디 면담 둘째 장. 질문자가 물체를 직접 봤느냐고 묻자 레이디는 보지 못했다고 답한다. 다만 흔적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무언가가 하늘을 지나간 게 분명하다고 말한다 — 흔적과 빈 공간이 워낙 또렷해서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흔적이 직선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지상에서 보기에는 굉장한 속도로 원을 그리며 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답한다. 경로가 그렇게 보일 만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유성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한다. 구름 속에 난 자국의 크기는 추정하지 못한다. 비행기 주변에서 일한 지는 6년쯤 됐고, 전쟁 중에 군에 있지는 않았다. 사진은 두 장 찍었고, 카메라는 아거스 3-S, 필름은 흑백이 아니라 코다크롬이었다. 필름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질문에는, 자신이 서너 통의 필름을 갖고 있는데 그중 어느 통에 이 사진이 들어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답한다. 우드러프 씨에게서 필름이 현상 중이라고 들었다는 말에는, 카메라에서는 빼 둔 것 같지만 아직 현상소로 보내지는 않았다고 정정한다. 마지막으로 그 네 통의 필름을 넘겨주면 공식 절차로 현상하겠다는 요청에 그러겠다고 답한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RESTRICTED 도장과 CONFIDENTIAL 도장이 겹쳐 찍혀 있고, 둘 다 사선으로 줄을 그어 등급 해제를 표시했다. 우측 하단 여백에는 손으로 쓴 이니셜 R M L 과 페이지 번호 20 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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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1947년 7월 17일 자로 작성된 팬아메리칸 항공 정비공 로버트 W. 레이디에 대한 심문 조서의 마지막 장이다. 질문자는 레이디에게 사진 한 부를 육군에 넘길 의향이 있는지 물었고, 레이디는 그러겠다고 답했다. 조서 아래에는 진술인 레이디 본인의 서명과 함께, 그 진술을 선서 아래 받았다고 확인한 부관 S. L. 킨슨 대위(Air Corps)의 서명이 들어 있다. 문서 상단·하단 모두 원래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다가 가로줄로 지워지고 그 위에 RESTRICTED 가 덧찍힌 형태로, 분류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가는 재처리를 거친 흔적을 그대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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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0
1947년 7월 17일, 뉴펀들랜드 하먼 필드 정보국의 머세이디스 버크가 뉴펀들랜드 코드로이의 존 P. 레지에게 받은 진술서다. 문서 상하단에는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다.
레지는 1947년 7월 10일 저녁 10시쯤 자기 가게 문 앞에 서 있다가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고, 그때 "비행접시"로 보이는 물체를 봤다고 말한다. 별똥별은 아니었다. 별이 떨어지는 건 전에도 몇 번 봤지만 이번 것은 전혀 달랐다. 비행기도 아니었다. 너무 환하게 빛났고 속도도 너무 빨랐다. 비행기에 불이 붙은 것도 아니었다 — 그랬다면 바다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날 밤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으며 막 어두워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속도는 별똥별 정도였지만 훨씬 가까웠고, 고도는 대략 6,000피트쯤으로 보였다. 15초쯤 보였고, 북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였다.
원형 부분은 술통 뚜껑만 한 크기로 보였고, 뒤에 끌리는 꼬리는 약 15피트 정도로 보였다. 원반 뒤로 이어지는 꼬리 때문에 전체 모양이 원뿔처럼 보였다. 별똥별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별똥별은 보통 잠깐 자국이 남는데 이번 물체는 자국이 전혀 없었고 다만 원형 뒤로 따라가는 잔광 같은 것만 있었다는 점이다. 원형은 밝은 빨강이었다 — 가장 가까운 비유는 불꽃의 색이다. 뒤에 끌리던 원뿔 모양의 잔광은 그보다 옅었다. 지난 목요일 밤에 본 것은 어떤 면에서도 별똥별과 닮지 않았다. 물체는 단 하나였다.
진술서 하단에는 존 P. 레지의 서명과 함께 증인 두 명 — 이름이 잘 보이지 않는 한 사람과 머세이디스 버크 — 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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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
1947년 7월 17일 뉴펀들랜드 하먼 필드 정보국의 머세이디스 버크가 코드로이의 윌리엄 에반스로부터 받은 진술서다. 에반스는 1947년 7월 10일 밤 10시쯤 레지 씨의 가게 앞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어떤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방향은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만약 그것이 유성이라면 이렇게 큰 유성은 본 적이 없고, 지금까지 하늘에서 본 어떤 것보다 훨씬 밝았다고 했다. 둥근 물체로 보였고, 둥글다는 것 말고는 다른 형태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꼬리는 노란빛을 띠었지만 원판 부분만큼 밝지는 않았고, 가장 가깝게 묘사하자면 붉은빛과 노란빛이 섞인 색이었다. 꼬리 길이는 1야드를 약간 넘는 정도였고, 원판은 큰 디너 접시 크기쯤이었다고 했다. 너무 빨라서 시야에 들어왔다 사라지기까지 거의 시간이 없었다. 고도는 가늠할 수 없지만 유성보다 훨씬 가까웠고 굉장한 속도로 움직였다. 그게 무엇이었든 하늘을 가로지르는 단순한 섬광이 아니라 공중을 날아간 것이었고, 결코 유성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비행기도 분명히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그렇게 자주 들려오던 바로 그것과 똑같아 보였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플라잉 소서"라 불렀다고 했다. 진술서 하단에는 에반스 본인의 서명과 함께 입회인 두 사람의 서명이 있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RESTRICTED 표시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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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
1947년 7월 17일, 뉴펀들랜드 하먼 필드 정보국의 머세데스 버크가 코드로이의 앨버트 샘스로부터 받은 진술서다. 표지에는 RESTRICTED 라벨이 위아래로 찍혀 있다.
샘스는 지난 목요일 밤 집 밖에 나와 있다가 우연히 하늘을 올려다봤고, 처음에는 비행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한다. 높이도 높이 나는 비행기 정도였다. 그러나 곧 비행기치고는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물체 전체가 매우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다. 비행기에도 등이 한두 개 달려 있긴 하지만, 이 물체는 훨씬 밝았고 색깔도 붉은빛이 도는 노란색에 가까웠다. 샘스가 본 시간은 1분 정도였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빨리 시야에서 사라져서 비행기라기에는 이상하다고 느꼈고, 그제야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비행접시" 가 떠올라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 어머니에게 알렸다고 한다.
진술서 아래에는 샘스 본인의 서명과 함께 입회인 두 명의 서명 — 이니셜 F.W. 와 머세데스 버크 — 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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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3
RESTRICTED 등급으로 분류된 진술서로, 작성자는 미세스 존 샘스다. 앨버트가 황급히 들어와 자신이 방금 본 것을 이야기했다는 대목으로 시작한다. 처음에는 비행기인 줄 알았지만, '플라잉 소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그것이 플라잉 소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작성자가 다시 캐묻자 앨버트는 그것이 비행기일 리 없다고 했다 — 비행기라면 그런 식으로 떨어지듯 내려오지 않고, 게다가 너무 환하게 빛났기 때문이다. 미스터 레그스도 같은 것을 보았다며 작성자에게 보고했고, 아침에 존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자신에게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 진술서 하단에 미세스 존 샘스의 자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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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1947년 7월 13일 뉴펀들랜드 경찰(Newfoundland Constabulary) 그랜드폴스 지서에서 치안총감 L. Strange 에게 올린 보고서다. 7월 9일 밤 11시 15분과 11시 40분경 그랜드폴스 상공에서 목격된 이상한 비행 물체에 관한 건이다.
보고자인 경관 Eric Kearsey 는 수요일인 9일 밤 11시 30분경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고 적었다. 집 앞 계단에는 아내와 장모, 그리고 가족 친구인 세인트존스 거주자 John Jackman 이 앉아 있었다. 아내가 "비행접시"를 봤느냐고 묻자 Kearsey 는 농담인 줄 알고 아무것도 못 봤다고 답했다. 그러자 Jackman 과 장모는 그가 도착하기 직전 동쪽으로 날아가는 물체 네 개를 실제로 봤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긴 것이었느냐고 묻자 Jackman 은 둥근 모양의 물체 네 개가 엄청난 속도로 머리 위를 지나갔으며 나란히 날고 있었다고 했다.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중 아내와 Jackman, 그리고 Kearsey 본인까지 거대한 해파리 같은 물체가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이며 지나가는 모습을 함께 봤다. 보인 시간이 짧아 높이와 속도는 가늠하기 어려웠고 색깔도 단정하기 어려웠지만, 인광 같은 빛을 띠고 있었으며 모양은 둥글고 크기는 통의 마개 정도, 흔들거리듯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Kearsey 는 이 정도가 자신이 말할 수 있는 전부이며, 이후 약 30분간 하늘을 더 살폈으나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를 마쳤다. 문서 하단에는 "RESTRICTED" 표시가 찍혀 있고, 우측 하단에 Kearsey 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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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1947년 7월 13일, 뉴펀들랜드 컨스태뷸러리(Newfoundland Constabulary) 그랜드폴스(Grand Falls) 지서의 에릭 키어시(Eric Kearsey) 순경이 경찰서장 L. 스트레인지(L. Strange) 치안판사 앞으로 올린 보고서다. 제목은 '7월 9일 밤 11시 10분과 11시 40분경 그랜드폴스 상공에서 목격된 이상한 비행 물체'. 키어시 순경은 7월 9일 수요일 밤 11시경 근무를 마치고 귀가했고, 집에 도착하니 아내와 장모, 그리고 가족의 친구인 세인트존스 거주자 존 잭맨(John Jackman)이 현관 계단에 앉아 있었다. 아내는 키어시에게 '비행 접시'를 봤느냐고 물었고, 키어시는 농담인 줄 알고 본 적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잭맨과 장모는 키어시가 도착하기 직전에 동쪽으로 날아가는 물체 네 개를 분명히 봤다고 말했다. 키어시가 묘사를 부탁하자 잭맨은 둥근 형체 네 개가 어마어마한 속도로 머리 위를 나란히 지나갔다고 설명했다. 키어시와 아내가 다시 남동쪽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두 사람도 한 개의 물체를 봤다. 키어시는 그것을 '터지는 해파리(bust jellyfish)'가 하늘을 가로질러 번쩍이듯 지나간 것 같다고 묘사했다. 짧은 시간 동안만 보였기 때문에 고도와 속도는 가늠하기 어려웠고, 색깔도 단정하기 힘들었지만 인광 같은 빛을 띠는 듯했다. 뒤쪽에서는 흔들리는 듯한 움직임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키어시는 그 후 30분쯤 더 하늘을 살폈으나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고 보고를 마쳤다. 문서 하단에는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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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
진실성과 신뢰성을 기준으로 골라낸 보고들을 면밀히 검토해, 다음 결론에 이른다.
(a) 이 '비행접시' 사안이 전부 상상이거나 자연 현상을 과장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무언가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
(b) 과거 유사한 사안이라면 윗선에서 즉각적이고 집요한 조회가 내려왔을 텐데, 이번에는 윗선 문의가 거의 없다. 이는 대통령 등 일부 윗선이 이미 알고 있는 국내 프로젝트일 가능성에 평소 이상의 무게를 실어준다.
(c) 정체가 무엇이든, 물리적 외형에 대해서는 이만큼은 말할 수 있다.
1. 표면은 금속질이며, 최소한 외피는 금속이다.
2. 비적을 남길 때는 옅은 청갈색 안개 형태로, 로켓 엔진 배기와 비슷하다. 고체 연료 로켓과 달리 한 건의 관측에서는 연료를 조절하는 모습이 잡혀, 액체 연료 로켓 엔진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3. 형태는 모든 관측에서 원형, 적어도 타원형으로, 아랫면은 평평하고 윗면은 살짝 돔 모양이다. 크기는 C-54 수송기나 콘스텔레이션 여객기 정도로 추정한다.
4. 일부 보고는 후미에 두 개의 돌출부가 있고, 비행 방향 축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이라고 묘사한다.
5. 세 대에서 아홉 대까지 편대를 이뤄 함께 비행했고, 속도는 항상 시속 300노트를 넘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6. 디스크는 비행 중 좌우로 흔들리는데, 뱀처럼 구불거리는 움직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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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7
1947년 8월 25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있는 제4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 (A-2) 가 워싱턴 D.C.의 육군항공사령부 정보참모부 (AC of AS-2) 앞으로 보낸 기밀 공문이다. 문서번호는 4AFDA 333.5/1208-I, 제목은 "비행 원반 조사 (Investigation of Flying Disc)". 발신자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은 세 가지를 알린다. 첫째,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F. M. 존슨이 보낸 편지의 진본 사본을 8월 22일 접수했다. 둘째, 존슨의 진술이 아놀드의 진술과 유사한 점에 주목해 달라. 셋째, 이 편지는 같은 날짜로 샌프란시스코 FBI 특별수사관에게 회부되었으니 필요하다면 FBI 가 직접 조사하라. 첨부물은 존슨의 편지 사본 한 부 (정·부본). 상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여백에 손글씨로 "Before / 6" 와 "see 107" 같은 정리·라우팅 메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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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1947년 8월 2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보좌참모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 앞으로 보낸 편지다. 발신인은 포틀랜드의 F. M. 존슨, 주소는 노스웨스트 1번가 106번지. 문서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본문 아래에는 스프링거 중령 본인이 사본 진본을 확인한 서명이 붙어 있다.
존슨은 얼마 전 포틀랜드 신문에 실린 비행접시 관련 기사를 읽고 글을 쓴다고 말한다. 자기는 광물 탐사꾼이고, 6월 24일 그날 마운트애덤스 일대에 나가 있었다고 한다.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가 비행접시 편대를 봤다고 주장한 바로 그날이다. 존슨도 거의 같은 시간에 같은 물체들을 직접 봤다.
마침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똑똑히 봤다고 강조한다. 그 물체들은 진짜였고, 이전에 본 어떤 것과도 달랐다. 자기가 서 있던 자리에서 그리 높지 않게 지나갔다 — 대략 1,000피트쯤이었다. 모양은 둥글었고, 지름은 30피트쯤. 머리 쪽이 한 점으로 날카롭게 좁아지는 타원형이었고, 윗면이 밝게 빛났다. 비행기에서 나는 것 같은 소음은 들리지 않았다. 다만 꼬리 쪽에 시계 바늘처럼 좌우로 흔들리는 물체가 하나 붙어 있었는데, 마치 큰 자석 같았다고 적었다. 속도는 자기가 본 어떤 것보다도 빨랐다.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구름 속에서 옆으로 기울어 선회하는 모습이었다.
편지 끝에 "존경을 담아" F. M. 존슨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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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9
1947년 7월 3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 FBI 요원이 노스이스트 심슨가 834번지에 사는 47세 비행사 리처드 랜킨을 면담한 진술서다. 랜킨은 열아홉 살이던 1919년에 처음 단독 비행을 했고 그 뒤로 줄곧 비행해 왔다. 후기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미국 서부 전역을 수없이 횡단하며 미 산림청 의뢰로 서부 일대를 항공 측량했고, 에어쇼와 각종 항공 시연에서 스턴트 비행을 직업으로 삼았다. 친형 "텍스" 랜킨은 사망 전까지 민간·군 항공계 양쪽에서 이름이 알려진 비행사로, 후기 전쟁 동안 본인이 운영한 1차 훈련학교에서 수천 명의 비행 생도를 길러냈다. 랜킨 본인의 비행시간은 민·군 기종을 합쳐 7천 시간에 달한다. 그래서 하늘에 뜬 물체가 무엇인지 웬만하면 안다고 자부하지만, 모든 비행체를 단정해서 식별할 수 있다고 주장할 만큼 자만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랜킨이 본 것은 1947년 6월 14일 정오 무렵,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 사우스 "H"가 1322번지 자기 집 앞마당에서였다. 잔디 깎는 일을 하던 소년이 곁에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랜킨은 남에서 북으로 날아가는 비행체 열 개를 봤다. 고도는 약 9,500피트, 속도는 시속 350마일 정도로 가늠했다. 산림청 항공 측량 경험에 비추어 거리감은 자신 있다고 말한다. 랜킨은 곧장 그 소년에게 "남부 캘리포니아 사막에 있는 시험장에서 띄운 육군 아니면 해군 시제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순간에는 정부 시험기 외에 다른 가능성은 떠올리지 않았다. 형태가 해군이 시험 중이라고 알려진 "플라잉 플랩잭"(JTPB-1)의 사진과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비행체가 사라진 뒤 집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 다시 그늘에 누우러 마당으로 나오자, 이번에는 같은 비행체들이 북에서 남으로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처음에는 열 개였는데 이번에는 일곱 개였다. 처음 봤을 때도, 두 번째에도 모두 V자 편대였고 한 대가 후미에서 처지듯 따라갔다. 랜킨은 잔디를 깎고 있던 그 소년에게 "세 대는 다른 항로로 기지에 먼저 돌아간 모양"이라고 말했다. 일주일쯤 지나 캐스케이드산맥 상공에서 같은 종류의 비행체를 봤다는 다른 비행사 보도를 신문에서 읽고서야, 본인이 본 것이 단순한 군용 시제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페이지는 여기서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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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0
1947년 7월 3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리치먼드 랭킨이 직접 서명한 진술서의 둘째 장이다. 랭킨은 워싱턴에서 자신이 본 물체와 신문 기사에 실린 물체가 같은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깨달았지만,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봐 한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적었다. 여름의 남은 기간을 포틀랜드에서 보내면서 그는 결국 그곳 신문 「오리고니언」의 편집자에게 자신이 목격한 일을 털어놓았고, 그 대화의 결과는 진술서에 첨부된 신문 기사로 정리되어 있다고 밝혔다. 랭킨은 전국 신문들이 이미 이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면서도, 자신은 정신적으로 온전하며 자신이 본 물체가 일종의 비행 기계라는 점을 굳게 확신한다고 못박았다. 다만 그 기계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고, 이 진술이 세간의 주목이나 개인적 이득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마지막에 분명히 했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좌측 여백에는 손으로 쓴 "9" 표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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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1947년 7월 3일 자 오리거니언(The Oregonian) 11면 기사. 포틀랜드 발(發)이다. 제목은 "파일럿이 디스크를 봤다고 말하다 — 딕 랭킨이 이상한 비행체를 증언하다". 수요일 또 한 건의 '플라잉 플랩잭' 목격담이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작고한 텍스 랭킨의 동생이자 7천 시간 비행 경력의 베테랑 파일럿 딕 랭킨의 증언이다. 자동차 사고로 등을 다쳐 회복 중인 그는 주말을 보내려 포틀랜드에 왔다가 오리거니언에 말을 꺼냈다.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상공을 지날 때 은빛 비행체들을 봤다는 것이다. 랭킨은 "신문에 실린 추측들을 다 검토하기 전에는 말을 아꼈다"며 친구와 의견을 맞춰본 끝에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베이커스필드와 그 이전에도 같은 것을 봤다고 말했다. 해군과 제조사는 같은 종류의 비행체는 단 한 대, 코네티컷에서 제작된 것뿐이라고 공식 발표했다는 점을 그는 언급한다. "비행체들은 600피트쯤 높이에서 떠 있었고, 여섯 내지 여덟 대, 어쩌면 그쯤이 한 시간 가까이 보였다. 처음에는 열 대가 북쪽으로 편대 비행하다가 방향을 틀어 다시 남쪽으로 돌아오는 걸 셌는데, 내가 다시 봤을 때는 여섯 대뿐이었다." 편대 안에서 흔들리듯 움직였고 숫자나 세부 특징을 잡아낼 수는 없었지만, 크게 보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형태는 거의 원형이었고 앞뒤가 약간 달랐다고 묘사한다. 랭킨은 남은 포틀랜드 일정을 보낸 뒤 세일럼 농장으로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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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1947년 8월 20일, 뷰트(Butte) 지부 SAC 가 FBI 국장에게 보낸 보고서로, 사건 번호 65-490, 제목은 'FLYING DISCS' 다. 8월 15일자 뷰로 텔레타이프에 이어지는 후속 보고이며, 오른쪽 위에 'COPY' 도장이 찍혀 있다.
동봉 자료는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다호 트윈 폴스 'Times News' 가 8월 15일에 실은 신문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목격자 A. C. 유리(URIE) 가 자신이 봤다고 주장하는 물체를 직접 스케치한 종이다.
유리는 자신이 그린 스케치에서 바깥 가장자리의 접힌 부분이 약 1피트 두께였다고 본다. 본인과 아들들이 봤다는 거품 혹은 배기 화염도 약 1피트 두께로, 장치 뒤끝까지 뻗어 나갔다. 화염은 머리 쪽으로 가늘어지지도, 넓어지지도 않았다.
아들들인 빌리(BILLY) 와 케이스(KEITH) 유리는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장치 옆면에 매듭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었고, 배기 화염과 장치 옆면 사이로 햇빛이 보였다고 했다. 화염은 연기나 냄새를 남기지 않았다.
측면도에 대해서는 두 아들과 아버지의 의견이 갈렸다. 아들들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더 날카롭게 꺾이는 형태로 그려야 한다고 본 반면, 유리 본인은 더 유선형이고 곡선이라고 봤다. 유리는 장치 끝부분이 뾰족하거나 둥글게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유리는 자기 메모에 목격 날짜를 목요일로 잘못 적었는데, 인터뷰 자리에서 실제로는 1947년 8월 13일 수요일, 오후 1시쯤이었다고 정정했다. 그가 보트에서 밧줄을 가져오라고 아들들을 강가에 보낸 뒤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공구창고 밖으로 나가 아들들을 찾으려고 했다. 그러다 약 300피트 떨어진 하늘을 보게 됐고, 고개를 들어 본 것이 자신이 'flying disc' 라고 부르는 그 물체였다. 잠깐 본 직후 언덕 뒤로 사라져 시야에서 가려졌다고 한다.
유리는 그 물체가 공중 약 75피트 높이에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스네이크 리버 캐년 깊은 곳에 사는데, 이 지점의 협곡은 깊이 약 400피트, 폭 약 1200피트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체는 협곡 가장자리에서 약 300피트 아래 위치였고, 그는 협곡 건너편의 가파른 벽을 배경으로 그것을 봤다. 색은 하늘색이었고, 만약 하늘을 배경으로 했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인도 인정했다. 그가 본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했다. 물체는 팽이처럼 돌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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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FBI 보고서의 한 페이지로, 협곡에서 비행 물체를 목격했다는 유린(URIN) 일가의 진술이 이어진다. 기계가 유린의 집 옆을 지나갈 때 거의 바로 위를 스친 나무 — 허먼 포플러 — 는 비행기가 지나간 것처럼 바람에 휘는 것이 아니라, 유린의 표현대로 "진공 속에 들어간 듯 꼭대기가 빙빙 돌았다"고 한다. 여덟 살 아들 키스 유린은 그 기계가 협곡을 따라 동에서 서로 내려오면서 지형 굴곡을 그대로 따라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고 했고, 열 살 빌리도 거의 동시에 보았다. 두 아이는 잠깐 사이에 그것이 나무 뒤로 사라지는 것까지 지켜본 다음 아버지에게 달려갔고, 아버지 역시 같은 기계를 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면담을 진행한 요원은 유린이 사건에 대해 전적으로 진지해 보였다고 적었다. 그는 아내와 딸은 그 시각 집 안에 있어 기계를 보지 못했다고 했고, 같은 협곡에 사는 형제에게도 물어봤지만 형제는 식사 중이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유린과 두 아들은 이전에 그런 원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거듭 말했고, 유린은 면담 당시 술에 취하지 않은 중년 남성으로 보였다고 한다. 처음 이 사건을 특별요원들에게 제보한 "타임스 뉴스" 기자 존 브로만 역시 유린이 기계에 대해 매우 진지해 보였다고 진술했다. L. M. 호킨스는 같은 시각 함께 있던 J. M. 브라운이 이미 면담을 마친 만큼 따로 찾지 않았다. 브라운의 이름은 신문에 실리지 않았는데, 브라운이 트윈 폴스에서 근무 중이어야 할 시간에 호킨스와 함께 새먼강 댐 근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단지 자신과 호킨스가 굉음을 들었고, 고개를 들었더니 매우 높은 곳에서 비행 기구 두 대가 날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그 높이가 4,000피트에서 6,000피트쯤 됐을 거라고 추정했지만, 기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어 실제로는 수 마일 떨어져 있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신과 호킨스는 무엇인가를 본 것은 분명하다고 확신하면서도, 그것이 통상의 비행기 두 대였다고는 거의 믿지 않았다고 보고서는 전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COPY" 라는 세로 표시와 정리번호로 보이는 "200/15", 페이지 번호 35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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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
1947년 8월 15일자 아이다호 주 트윈 폴스 지역신문 《Times News》 1면 스크랩이다. 헤드라인은 "머리 들어 보세요, 여러분! 원반이 또 날고 있습니다"이며, 그 아래에 측면도·아래에서 본 모습·끝면도 세 각도로 그린 비행접시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일러스트에는 폭 20피트, 두께 10피트라는 치수가 적혀 있고, 신문사 미술기자 빅 고에르첸이 목격자 진술을 바탕으로 그렸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본문 기사 제목은 "비행접시 시속 1,000마일로 협곡을 가르며 내려갔다 — 두 건 더 목격"이고, 기자는 존 브로스난이다. 기사는 트윈 폴스 카운티의 두 남자가 같은 날 따로 비행접시를 봤다고 신고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블루레이크스 목장 서쪽 6마일 지점 스네이크 강 협곡에서 슈퍼폴스 송어 양식장을 운영하는 A. C. 유리는 8월 13일 오후 1시, 협곡 바닥에서 약 75피트 위를 시속 1,000마일 정도로 스쳐 지나가는 원반을 가까이서 봤다고 진술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30분에는 트윈 폴스 카운티 위원이자 전 보안관인 파일러 출신 L. W. 호킨스가 트윈 폴스 남서쪽 40마일 새먼 댐 근처에서 원형 물체 두 개가 높은 곳을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유리는 여덟 살 키스와 네 살 빌리 두 아들과 함께 있었고, 강 북쪽에서 보트로 건너오던 아이들이 늦자 걱정이 돼 강가로 내려갔다가 약 300피트 거리에서 거의 같은 높이로 옆면을 봤다고 했다. 아이들도 45도 각도로 바닥과 옆면을 함께 봤고, 일행 모두 강 남쪽에서 그 물체를 지켜봤다고 진술한다. 기사는 5면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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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트윈폴스 인근 스네이크강 협곡 위로 비행접시가 날아갔다는 신문 스크랩이다. 헤드라인은 "비행접시, 스네이크 협곡을 따라 날아가는 것을 목격"이고, 본문은 협곡 아래 농부와 카운티 위원이 같은 날 본 물체를 묘사한다. 목격자는 옅은 하늘색에 위쪽 가장자리가 관 모양으로 붉게 빛나는 단색 물체였다고 진술한다. 협곡 바닥이 험한 그 지점에서 물체는 위아래 굴곡을 따라가지 않고 그 위로 일정한 높이를 유지하며 미끄러졌고, 잠수함처럼 생겼지만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소음은 거의 없었고 "휙" 하는 바람 소리만 났다. 크기는 길이 약 18미터, 높이 3.6미터, 폭 4.8미터쯤이며, 뒤집힌 파이 접시나 통 모양 스토브가 옆으로 굴러가듯 바닥 가장자리로 회전하며 이동했다. 목격자는 자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단정하지 못하지만, 동행한 청년들이 단순히 사진에 이름이 실리고 싶어 지어낸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이었든 청년들을 놀라게 했고,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덧붙인다. 같은 날 카운티 위원 호킨스가 비슷한 물체를 보았다는 소문을 추적해 타임스-뉴스가 그에게 전화로 확인한다. 호킨스는 망설임 없이 "보았다"고 답하며, 줄곧 회의적이었지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뒤로는 그 정체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수요일 오전 새먼 댐에 있을 때 빛을 반사하는 원반형 물체 두 개가 보통 비행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기사 후반부는 보이시의 사업가 케네스 아널드가 워싱턴주 캐스케이드산맥 상공에서 처음 원반형 물체를 본 이래 비슷한 신고가 전국에서 이어졌다는 배경을 덧붙이고, 그 사이 트윈폴스에서도 산발적 목격담이 있었으며 이번 주 목격자들로 다시 관심이 살아났다고 정리한다. 마지막 줄은 외계에서 온 것일지, 외국의 신무기 시험인지 등 다양한 추측을 나열한 뒤 "무엇이든,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봤다"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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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6
1947년 7월 10일 텍사스 랜돌프 필드의 항공훈련사령부 비행사단 사령관실에서 텍사스 브룩스 필드의 제10공군 사령관 앞으로 보낸 기밀 공문이다. 제목은 "식별 불능 물체"이고 문서 번호는 333.5다. 비행사단은 동봉한 MOIC(담당 장교 비망록)를 참고용으로 제10공군에 넘긴다고 알리며, 만약 제10공군이 이미 E. B. 암스트롱 중위를 면담했다면 그 MOIC 사본을 비행사단에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발신자는 비행사단 참모차장 H. L. 크리슬러 중령이다.
같은 문서 하단에는 6일 뒤인 7월 16일 브룩스 필드의 제10공군 참모차장실(A-2)이 보낸 1차 회신(1st Ind)이 붙어 있다. 제10공군은 원 통신문 2항이 요청한 대로, 암스트롱 중위 건과 관련한 담당 장교 비망록을 동봉해 랜돌프 필드 비행사단으로 회송한다고 알린다. 동봉 표시는 7월 15일자 MOIC 1부를 새로 넣고, 앞서 보냈던 7월 7일자 MOIC 1부는 회수했다고 적혀 있다. 회신 서명자는 제10공군 참모차장 S. R. 모스로 대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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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1947년 7월 15일, 애리조나 챈들러 윌리엄스 비행장에서 CIC 특수요원 로런스 R. 킹 주니어가 담당 장교 앞으로 올린 "식별 불가 물체" 메모다. 7월 14일에 면담한 170 육군항공대 기지대 페리 사단 소속 에릭 B. 암스트롱 중위(군번 O-2059709)의 진술을 정리한 내용이다.
암스트롱 중위는 6월 28일 14시(중부표준시) 윌리엄스 비행장에서 P-51 을 몰고 메드포드를 경유해 오리건 포틀랜드로 향했다. 15시 15분, 침로 300도, 대지속도 285, 고도 16,000피트, 네바다 미드 호수 북서쪽 약 30마일 지점에서 4시 방향에 흰색 원형 물체 다섯에서 여섯 개를 보았다. 물체의 고도는 약 6,000피트, 침로는 120도쯤, 속도는 285마일 정도로 추정했다. 매우 매끄럽게, 밀집 편대를 이루고 날고 있었다고 했다. 흰색 물체의 크기는 지름 36인치 정도로 봤다. 접근 속도가 너무 빨라 새는 아니라고 단정했고, 제트기나 통상형 항공기도 아니라고 했다. 두 기종 모두 직접 몰아봤다는 것이 근거다.
요원 의견란에서 킹은 암스트롱이 진술에 매우 진지했고 과장하는 성격이 아니라고 적었다. 본 것만 말했고, 그 흰 물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결론은 본인이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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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1947년 7월 7일, 애리조나주 챈들러 윌리엄스 필드에서 CIC-AAF 특별요원 린 C. 올드리치(Lynn C. Aldrich)가 작성한 "미확인 비행 물체" 관련 담당 장교 앞 메모. 사본 인증은 AC 소령 존 K. 오어(John K. Ohr)가 했다.
첫 번째 면담은 1947년 7월 1일, 윌리엄스 필드의 P-80 훈련생인 미 해군 중위 윌리엄 C. 매긴티(McGinty, 군번 195803)를 상대로 진행됐다. 매긴티 중위의 진술 요지: 6월 30일 오전 9시 10분(MST) 무렵, 그는 P-80 기종을 몰고 그랜드 캐니언 상공 2만 5천 피트에서 윌리엄스 필드 쪽으로 남행 중이었다. 그때 둥근 물체 두 개가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수직 강하하는 모습을 봤다. 본능적으로 그는 물체를 피해 기수를 돌렸다. 두 물체는 몇 초 간격으로 앞뒤로 떨어져 같은 궤적을 따랐고, 속도가 너무 빨라 형태는 원형이라는 것과 색이 옅은 회색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 알아봤다. 직경은 약 8피트로 추정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두 물체가 그랜드 캐니언 남쪽 림에서 남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지점에 충돌했을 것이라고 봤다. 요원 메모: 매긴티 중위의 영구 주소는 캘리포니아 포트 휴니미의 해군 항공 미사일 시험 센터(N.A.M.T.C.)다.
두 번째 면담은 같은 날, 윌리엄스 필드의 단발기 교관인 말콤 C. 암스트롱(Armstrong) 대위(군번 O-734168)를 상대로 진행됐다. 암스트롱 대위의 진술 요지: 텍사스 브룩스 육군 비행장 제10 육군 항공대 사령부에 근무하는 동생 E. B. 암스트롱 중위로부터, 네바다 미드 호 근처에서 설명되지 않는 물체들의 편대를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에 따르면 그 물체들은 남쪽으로 향했고 고도는 약 1만 피트였다. 요원 메모: 암스트롱 대위는 동생이 본 물체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추가 정보는 텍사스 브룩스 필드 제10 육군 항공대 사령부의 E. B. 암스트롱 중위에게 직접 문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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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1947년 7월 21일 뉴욕 미첼 필드의 항공방위사령부 본부가 워싱턴 D.C. 육군항공대 사령관(정보참모부 AC/AS-2 앞)으로 보낸 1차 첨부 공문이다. 사안 표제는 "식별 불가능 물체(Unidentifiable Objects)", 문서번호는 F 333.5 IO. 본문은 한 줄, "귀하의 정보 및 활용을 위해 이송한다(Forwarded for your information and utilization)"가 전부다. 사령관을 대신해 정보참모 차장 제임스 F. X. 오코넬이 서명했고, 사본은 오하이오 데이튼 라이트 필드의 항공물자사령부(AMC) 사령관에게도 보내졌다. 여백에는 "2 Incls n/c", "Refer 6", "re 136", "F 177" 같은 손글씨 라우팅 메모가 흩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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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0
1947년 7월 21일, 뉴욕 미첼 필드에 있던 공군 방공사령부(Air Defense Command)가 워싱턴의 육군항공대 사령관(AC/AS-2 정보참모부 앞)에게 보낸 1차 회신이다. 문서번호는 IP 333.5 ID, 제목은 "Unidentifiable Objects(식별 불가 비행체)". 내용은 단 한 문장으로, "참고 및 활용을 위해 전달합니다(Forwarded for your information and utilization)"라고만 적혀 있다. 서명자는 정보참모차장 R. H. 스미스 대령. 동봉 자료는 두 건. 사본은 오하이오주 데이턴 라이트필드의 항공자재사령부(AMC) 사령관에게도 보낸다. 상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히고, 우측 하단에는 거꾸로 찍힌 접수(RECEIVED) 스탬프, 본문 가운데에는 "10/10"으로 보이는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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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1947년 7월 16일, 텍사스 샌안토니오 브룩스 필드의 제10공군 사령부 부참모장실(A-2)이 뉴욕 미첼 필드의 방공사령부 사령관에게 보낸 "미확인 물체(Unidentifiable Objects)" 건 공문이다. 발신인은 GSC 소속 대령 M. M.이고 문서번호는 LO 333.5다.
공문은 두 문단으로 짧게 끝난다. 첫째, 본부는 텍사스 랜돌프 필드 항공훈련사령부 비행과 본부에서 시작된 미확인 물체 조사 자료를 동봉해 알린다. 본부 부참모장실은 동봉문서 1번에 적힌 대로 담당 장교를 위한 메모랜덤을 완성해 조사를 보조했다. 둘째, 본부는 이 사건에 관해 더 이상의 후속 조치를 계획하지 않는다.
동봉물은 두 건이다. 7월 7일자 MOID 한 건, 그리고 공군역사부서 앞 서한과 7월 16일자 MOID 한 건이다. 우측 하단에는 "62-9"라는 식별 번호와 "1947년 7월 21일" 접수 도장이 있다.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분류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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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1947년 8월 1일,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매그놀리아 애비뉴 2636번지에 사는 한 시민이 워싱턴 D.C. 전쟁부 군사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페이지 위쪽 라우팅 메모에는 정보국장이 1947년 8월 5일자로 G·A4 (AL/A52 첨부) 앞으로 이 편지를 넘긴다는 표시와 핀치 소령 9R736 이라는 담당자 표기가 있다.
발신인은 7월 6일 일요일 오후에 매우 이상한 것을 보았다고 운을 뗀다. 적어도 본인 머릿속에서는 그것이 놀라운 비행접시 현상과 연결되어 있어서, 첫 번째 현상을 말하지 않고는 두 번째 현상을 보고할 수가 없다고 한다. 자기를 집단심리의 피해자나 괴짜, 몽상가로 봐 주지 않기를 바라며 보고를 망설였지만, 의무라고 생각해서 쓴다고 적었다.
어디로 편지를 보내야 할지 몰라서 신문 기사에서 "여러 실험에 손가락을 담그고 있다"고 언급된 표준국 (Bureau of Standards) 에 먼저 편지를 썼더니, 휴 L. 드라이든 (Hugh L. Dryden) 씨가 군사정보국장 앞으로 보내라고 권해서 다시 쓰는 길이라고 설명한다.
발신인은 그동안 비행접시 이야기를 재미있는 농담거리로만 듣고 믿지 않았다. 그러던 7월 6일, 할리우드–타자나 (Tarzana) 노선 버스의 타자나 종점에 버스가 서 있었다. 운전기사는 회차 준비로 운행 일지를 쓰느라 바빴고, 본인은 버스에 혼자 타서 벤투라 거리 쪽 좌석 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버스는 남북 방향으로 주차되어 있었다.
오른쪽을 보니 "비행접시" 하나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게 나타났고, 곧이어 똑같은 크기에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여러 대가 뒤따라 나왔다. 마치 서쪽에서 모퉁이를 돌아 나오듯 북쪽으로 굴러가며 빠른 속도로 벤투라 대로와 평행하게 이동했다.
그것이 헛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떠들던 바로 그 비행접시라고 확신한 순간, 시선이 자신과 "비행접시들" 사이에 떠 있는 또 다른 현상으로 끌려갔다. 햇빛 속에서 우윳빛 흰 광선이 마치 밤하늘의 탐조등처럼 서로 엇갈리며 비치고 있었다. 밝은 물체에 햇빛이 반사된 것과는 달랐고, 광선들은 한 점에서 만나지는 않지만 어느 중심을 향해 모이는 듯 보였다. 본인이 보던 자리에서 보기에 반경 18인치쯤 되는 그 중심에는 붉은빛이 도는 어떤 물질이 빙글빙글 도는 물체들이 있었다고 한다. 편지는 여기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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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M. 러노어 코리가 자신이 본 광경을 자세히 적어 보낸 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그는 자기가 본 붉은 파편들의 색이 준보석 카닐리언 같았다고 묘사한다. 파편들은 날카롭고 불규칙하고 반짝거렸으며,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날아다녔다. 한순간이었기에 그는 다시 비행접시들이 그대로 있는지 보려고 시선을 돌렸다. 한두 개는 보였지만 같은 현상이 다시 일어났고, 두 번째 현상을 잠깐 더 목격했다. 그 사이 비행접시들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집으로 오는 내내 그는 비행접시 자체에 대해 어떻게든 논리적인 설명을 찾으려 했지만, 머릿속은 자꾸 두 번째 현상으로 되돌아갔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자신이 본 빨간 광선들이 소용돌이 안에서 회전하던 그 붉은 파편들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이 떠올랐다. 비행접시들이 서쪽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그 물질이 비행접시에서 발사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고 적는다.
그러나 미군이 사람이 많은 고속도로 쪽으로 치명적인 광선을 쏘아댈 리는 없을 테고, 사건 전체가 너무 황당하게 들리니, 진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아는 사람의 판단을 믿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로 본 것, 그리고 매우 궁금해하는 것을 이렇게 보고로 남긴다고 밝힌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어디에 알려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준 드라이덴 씨에게 감사를 전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수신자에게도 감사를 표하며, 이 편지가 적절한 인상을 남기기를 바란다고 마무리한다. 끝에는 서명과 함께 보낸 이의 이름 M. 러노어 코리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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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1947년 7월 30일 오클라호마시티 팅커필드의 공군 항공자재 본부(OCAMA)에서 보안 담당관 앞으로 올라온 메모랜덤이다. 문서 번호는 3724-I. 변호사 댄 넬슨(Dan Nelson, 53세, 페린 빌딩 926호 사무실)을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로, 넬슨이 "비행접시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주장한 내용에 관한 것이다.
넬슨은 현재 변호사 업무를 보면서 듀얼 주차 미터 회사의 대리인을 겸하고 있다. 결혼해서 일곱 살과 열 살 두 아들을 두었고, 오클라호마시티 N.W. 14번가 2613번지에 산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제58보병연대 L중대에서 하사관으로 복무했고 부상도 입었다. 입대 전 학력은 초등 8학년에 그쳤지만, 제대 후 학업을 이어 1929년 오클라호마 대학교를 졸업했고, 그때부터 노먼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일반 변호사 업무를 해 왔다.
넬슨은 1947년 7월 19일 자신이 발견한 비행접시의 정체를 적은 편지를 육군성에 보냈고, 7월 23일자 회신으로 편지가 공군으로 이관되었다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7월 29일까지 추가 응답이 없자, 자신의 주장을 지역 신문 〈데일리 오클라호만〉에 직접 공개했다.
그가 제시한 비행접시 이론은 본인이 차를 몰며 해 본 간단한 실험에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본 것은 사실 자동차 앞유리나 측면 환기창에 비친 빛 혹은 반짝이는 물체가 접시·원반 모양으로 반사된 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차가 움직이고 유리가 완벽한 거울이 아니다 보니 지나가는 사물이 함께 비쳐, 마치 빠르게 날아가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차의 진동은 그 상이 회전하는 것처럼 만들고, 반사 자체가 평평하고 접시 모양처럼 보이게 한다. 차가 가는 방향과 창에 비치는 빛의 개수에 따라 보이는 물체의 수도 달라지며, 같은 원리가 집안 보통 창문에서도 조명 조건에 따라 일어날 수 있다고 넬슨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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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미 육군 방첩요원 칼만 D. 사이먼이 작성한 면담 보고서 2쪽이다. 넬슨이라는 인물의 진술을 옮긴 부분으로, 그는 차의 속도가 바뀌면 물체의 속도도 바뀌고, 방향이 바뀌면 물체가 이동하는 각도도 바뀐다고 설명했다. 물체가 수직으로 보일 수도 수평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조건도 함께 말했다. 넬슨은 비행접시나 원반을 실제로 본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자신이 말하는 반사 현상에 다른 사람들의 보고가 일으킨 흥분과 히스테리가 더해져 대부분의 비행접시 보고가 만들어졌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같은 이론이 항공기에서 본 비행접시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에는 넬슨이 자신의 관찰과 이른바 비행접시 미스터리에 대한 해석을 정리한 별도 진술서가 첨부되어 있다고 적었다. 본문 아래에는 사이먼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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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1947년 7월 12일 자 "비행접시 미스터리 풀렸다"라는 제목의 문서다. 작성자는 가장 인상적인 비행접시·원반 목격담은 조종사들에게서 나왔다고 정리한다. 조종사들은 원반 모양 물체가 고고도에서 다양한 대형으로 빠르게 날아가는 모습을 봤다고 말했고, 첫 번째 보고자는 그 물체가 약간 광택이 도는 표면을 가졌으며 대형을 이뤄 비행하다 수시로 위치를 바꿨다고 진술했다. 대부분의 목격은 늦은 오후나 해질 무렵에 몰려 있었다. 거의 모든 보고는 물체가 뒤집힌 원반 또는 접시처럼 보였다는 점에서 일치했고, 일부는 비행 중 회전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작성자는 이 미스터리가 간단한 응용과학과 몇 가지 실험만으로 풀릴 수 있다고 본다. 그가 제안하는 설명은 단순하다. 햇빛이 비치는 오후나 저녁에 고속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라면 누구나 이 원반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낮에 보이는 비행접시 대부분은 자동차 안팎의 반짝이는 부분에 햇빛이 반사된 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북서쪽을 향해 운전하면서 햇빛이 차량 왼쪽 앞문이나 뒷문 손잡이에 떨어질 때, 운전석 왼쪽 창문의 환기창을 45도 정도 열어두면 그 안에 빛나는 물체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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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보고서 본문 두 번째 쪽이다. 운전자가 차창 환기창 유리를 통해 봤다는 그 빛나는 물체들은 반사 횟수에 따라 모양이 여러 가지일 수 있고 한 번에 두 개 이상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위치는 물체가 환기창에 반사되는 각도와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지며, 모양은 자주 접시 형태나 납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환기창 유리는 낮 동안 완전한 거울이 아니기 때문에 운전자에게는 마치 유리 너머 하늘을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짚는다. 차가 움직이는 동안 이 밝은 물체들은 지면의 고정된 물체나 먼 지평선, 혹은 창문에 희미하게 비치는 풍경의 윤곽과 비교했을 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비행접시는 보통 자동차와 같은 방향으로 진행하지만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쳐 결국 운전자의 진로를 가로지를 것처럼 보이는데, 이는 환기창 유리의 각도와 차의 진행 방향이 맺는 관계 때문에 생기는 외관상의 비행 방향이라고 설명한다. 유리에 비치는 비행접시의 수와 위치는 햇빛에 반사된 물체의 수와 윤곽에 달려 있고, 뒤따라오는 차의 밝은 부분이 낮 시간 환기창에 그런 반사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쪽 번호 (2)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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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환기창이 완벽한 거울이라면 반사를 일으키는 물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물체가 함께 비쳐야 하지만, 환기창은 반쪽짜리 거울에 가까워서 물체 전체가 아닌 밝은 점만 반사한다. 그래서 관찰자는 자기가 유리를 통해 바깥을 보고 있다고 느끼고, 그 밝은 점이 실제로 하늘에 있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효과는 늦은 오후나 해진 뒤에 가장 잘 나타난다.
비행접시나 원반을 봤다고 신고한 조종사들은 거의 틀림없이 자기 비행기 안의 밝은 물체가 반사된 모습을 본 것이다. 캐노피나 윈드실드에 비친 반사상을 보고도 그것이 반사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거나, 아니면 다른 항공기의 반사상을 본 것이다.
조종사가 비행을 계속하면서 그 원반이 산이나 구름, 지상의 고정된 지물과 비교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하면, 원반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윈드실드의 기울어진 각도와 조종사의 좌석 위치 때문에 원반이 하늘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반의 위치도 관찰자가 어디에 있는지, 빛이 유리에 어떤 각도로 반사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일부 보고는 비행접시가 여러 개 한꺼번에 보였고, 마치 서로 묶여 있는 것처럼 함께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운동을 반복했으며, 하나가 내려가면 다른 것들도 동시에 같은 운동을 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동시에 움직이는 것은 모든 반사상이 같은 원본 물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 본문 페이지 번호 (3) 과 문서 일련번호 49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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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비행접시의 정체에 관한 어느 제보자의 자동차 환기창 반사설 4페이지다. 글쓴이는 차나 비행기 어딘가의 밝은 물체에서 반사된 상이 환기창에 비치고, 차나 비행기가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그 반사상이 위아래로 출렁이듯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고 설명한다. 반사 대상이 가만히 있고 차만 움직여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다. 비행접시가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진술 역시 자동차나 비행기의 진동 탓이라고 본다. 진동이 반사상을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그 진동이 반사상을 납작한 원반 모양으로 보이게 하는 원인이라는 주장이다. 그러고는 직접 해 볼 수 있는 실험 방법 까지 제시한다. 해 질 무렵이나 밤에 차를 몰면서 운전석 기준 45도 각도로 환기창을 열고, 왼쪽에 있는 가로등 같은 고정 전등을 지나친 뒤 뒤쪽으로 비치는 반사상을 관찰하라는 것이다. 뒤쪽 빛이 너무 많지 않으면 빨강·초록·은색의 비행접시 편대가 환기창에 완벽한 대형으로 떠 있는 듯 보이고, 시속 45~50마일 정도일 때 가장 그럴듯해 보인다고 한다. 처음에 잘 안 되면 다시 해 보라, 보는 법을 익히고 나면 관찰이 더 즐거워진다고 권한다. 마지막 단락에서는 뒤에서 다가오는 차의 헤드라이트마저 환기창 안에서 하나의 비행접시처럼 보일 수 있다며, 차체 옆면이 빛줄기를 가리지 않는 한 이런 반사가 계속 나타난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4) 라는 쪽수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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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이 보고서 5쪽은 자동차 부품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반사가 어떻게 비행접시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작성자는 다가오는 자동차가 사오백 미터쯤 떨어져 있을 때 반사가 가장 잘 보인다고 적는다. 밤보다는 늦은 오후가 더 선명한데, 밤에는 환기창이 거의 완벽한 거울처럼 작동해 지나가는 풍경이 흐려지면서 오히려 반사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채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늦은 오후에는 유리를 그대로 통과해서 본다는 느낌이 들어 반사된 물체가 더 실체처럼 보인다. 운전대에 손을 얹었을 때 손가락의 반지에 햇빛이 비치면 앞 유리에 원반 모양의 반사가 비칠 수 있고, 그 형태는 반지의 장식 무늬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작성자는 자신의 자동차 뒷문 손잡이가 밝은 햇빛 아래에서 아홉 개의 작고 아름다운 은빛 비행접시를 비춘다고 설명한다. 이 아홉 개의 원반은 환기창 아래쪽에 나타나며, 평탄한 도로를 달릴 때면 길가에서 자신과 나란히 달리는 것처럼 보인다. 배열은 네 개씩 두 줄, 그리고 그 중앙 앞쪽에 아홉 번째 원반이 자리한 형태이고, 수직으로 회전하는 프로펠러처럼 보인다. 손잡이의 곡면과 장식 무늬 때문에 원반에는 꼬리 같은 선도 따라붙는다. 밝은 햇볕 아래 북쪽으로 달리던 어느 이른 오후에는 이 아홉 개의 원반이 왼쪽 저 아래쪽에 나타나 엄청난 속도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작성자는 같은 현상을 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권한다. 복도 한쪽 끝에 작은 전등을 켜고 반대편 끝의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페이지 왼쪽 위에는 손으로 쓴 작은 "5" 표시가, 아래쪽 가운데에는 인쇄된 페이지 번호 (5)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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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글쓴이는 자동차 전조등 전구 하나에서 비행 원반이 세 개까지 보일 수 있고 종 모양에 가깝게 보일 때가 많다고 설명한다. 위아래가 뒤집힌 받침 접시처럼 보이는 이 원반은 관찰자가 천천히 자리를 옮기면 함께 위치를 바꾸기 때문에 늦은 오후나 일몰 직후, 어스름이 깔리는 시간대에 가장 잘 관찰된다고 말한다. 어두워질수록 차창은 더 완벽한 거울이 되고, 원반은 거울에 비친 상처럼 떠 있는 것이다. 차창 환기창 너머로 원반이 자동차와 나란히 시골길을 따라오는 모습은 상상력만 조금 보태면 굉장히 매혹적이어서 운전자의 주의를 통째로 빼앗을 수 있다며, 글쓴이는 한눈팔다 도로를 벗어나거나 다른 차와 부딪히지 말라고 운전자들에게 당부한다. 또한 앞서 다루지 않은 비행접시 보고 중 하늘에서 밝은 섬광을 봤다는 사례들은 비행기 표면에서 반사된 햇빛이 관찰자의 시선을 가로지른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 광선은 굉장히 밝아서 한순간 시야를 멀게 만들 정도이며, 비행기는 너무 높아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자동차 앞유리에서도 같은 종류의 눈부신 섬광이 자주 발생하며, 7월 4일 독립기념일 무렵의 보고 상당수는 각종 불꽃놀이가 촉발한 것이라고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에 인쇄된 페이지 번호는 (6) 이고 오른쪽 여백에 손으로 쓴 ‘52’ 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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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2
오클라호마시티의 댄 넬슨이 보낸 편지의 다섯 번째 장이다. 넬슨은 어떤 보고는 순전한 상상이나 히스테리에서 나왔고 또 다른 보고는 의도된 날조였지만, 그 외 나머지 보고는 주변 정황만 다 알면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적는다. 비행접시에 관한 보고와 묘사 대부분이 자신이 이 글에서 내놓은 결론과 너무나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자신이 올바른 해답을 갖고 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자기 진술이 엄밀한 과학 용어로 다듬어진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정확하지도 않을 수 있지만, 평범한 일반인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되었으며 명제를 입증하기에 충분히 정확하다고 본다고 적는다. 마지막 단락에서 넬슨은 개인적으로 이른바 비행접시나 그 해법이 군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만 정부가 이 정보를 잠재적 적국에 대한 심리적 효과를 위해 보유하려 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며, 전쟁 당시 독일이 이른바 비밀 무기로 그러한 효과를 노린 사례를 든다. 본문 아래에는 댄 넬슨의 서명과 오클라호마시티라는 자필 지명이 함께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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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
1947년 8월 7일, 해군연구소 AMC 연락장교 윌리엄 P. 밀러 소령이 워싱턴 DC 의 육군항공대 정보참모부 수집과(Asst Chief of Air Staff-2, Collection Branch, AAF) 앞으로 보낸 "Flying Saucers" 제목의 메모랜덤이다. 본문은 세 항목으로 정리되어 있다. 첫째, 첨부물은 해군연구소 마이크론 웨이브 섹션장 E. 투지 박사에게 존 F. 콜 씨가 보낸 편지의 발췌인데, 콜 씨가 뉴잉글랜드 지역의 "하늘을 나는 원반" 첫 보고가 나오기 얼마 전에 보았다는 미확인 물체에 관한 내용이다. 둘째, 투지 박사는 콜 씨가 잘 알려진 천문학자이고 훈련 덕분에 신뢰할 만한 관측자라고 밝히고 있다. 셋째, 이 첨부물은 AAF 정보참모부 A-2 의 G. D. 개럿 중령의 요청으로 진행된 면담에서 나온 정보로 이미 보낸 이전 편지들에 더해지는 자료다. 문서번호는 NRL Code 110A, 동봉물은 투지 박사에게 간 편지에서 뽑은 발췌본 한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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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
메인주 사우스 브룩스빌의 존 F. 콜이 1947년 7월 28일 R. 투지 박사에게 보낸 편지의 발췌본이다. 우측 상단에 손글씨로 'COPY' 라고 적혀 있다.
콜은 디스크를 봤다고 신고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조롱당하는 것을 의식하면서 신중하게 해석하겠다고 운을 뗀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자신의 주의를 끌었으며, 자신은 노스헤이븐 그린스톤 틈에서 흘러나온 차가운 샘물 한 모금 외에는 완전히 멀쩡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본 '디스크'가 제트기인지 폭격기인지 로켓인지 식별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시점은 1947년 7월 3일, 서머타임 21시 30분 (그리니치 표준시 18시 30분) 무렵이었으므로, 이스트포트나 바하버, 벨파스트 쪽에서 진행된 해군 시연이었을 가능성도 떠올린다. 무리는 약 50도 고도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가벼운 경추 관절염을 앓고 있지만 난시와 원시는 잘 교정돼 있으며, 대뇌 피질 병변이 평형 감각에 영향을 줄 만큼 진행됐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관찰을 신뢰해도 좋다고 적는다.
처음 위를 올려다본 계기는 평소와 다른 큰 굉음이었다. 가까이에 또렷한 비행기 무리가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놀랐다. 한참 응시해야 비로소 매우 밝은 색 물체들의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대체로 북쪽 방향으로, 실제 진북 기준 북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콕스 힐에 있었고 하버사이드의 평평한 정상의 백우드 마운트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방향 판단은 비교적 정확하다고 본다.
무리 전체는 하늘에서 각지름 1.5도를 넘지 못했고, 일정한 편대 없이 비교적 촘촘하게 뭉쳐 있었다. 개수는 10개 정도였을 수 있지만 단정하기 어렵고, 90도 호각으로 흩어졌다면 식별 가능한 시야 범위 안에 충분히 들어왔을 것이라고 한다. 무리는 약 10~15초에 걸쳐 30도 호각을 가로질렀다. 만약 그중 하나가 1/10도 정도의 크기였고 날개폭이 100피트였다고 가정하면, 거리는 10마일 이상이 되며 작고 밝은 물체였으므로 그 거리에서는 사실상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또 10마일 거리에서 30도 호각을 이동했다면 15초에 약 5마일, 즉 분당 20마일, 시속 1200마일에 달한다 — 폭격기치고는 너무 빠르다. 거리 5마일에서 50피트 짜리 물체라면 시속 600마일 정도가 되는데, 이 역시 빠른 편이다.
형태에 대한 유일하게 구체적인 단서는 무리의 왼쪽 끝에 나타난 두 개의 짙은 형태였다 — 편지 본문에는 작은 잉크 스케치까지 그려져 있다. 그는 이것이 꼬리 날개일 수도 있다고 추정하면서, 더글러스 폭격기에 이런 모양이 있지 않냐고 묻는다. 정해진 편대 없이 벌떼처럼 불규칙하게 움직였다면 왜 나머지 물체들의 날개는 보이지 않았는지 의아해한다. 큰 굉음으로 보아 실제로는 훨씬 가까이, 그리고 더 작은 물체였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늘은 푸르스름한 안개빛이었고 해는 자신의 등 뒤에 있었다. 풍선을 한 다발 끌고 가는 비행기였다면 쉽게 알아봤을 것이라고도 덧붙인다.
끝으로 그는 투지 박사에게 두 가지를 묻는다. 그 시간대에 보고된 운석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시간대에 무선 전계 강도나 전리층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는가? 페이지 우측 하단에는 '64' 라는 작은 페이지 번호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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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1947년 7월 26일 공군 감찰관실(Office of the Air Inspector)이 방첩과(AC/AS-2 Counter Intelligence Branch)에 보낸 메모다. 작성자는 먼저 이 메모의 모든 정보와 의견이 방첩과의 푸틀러(Putler) 씨와의 대화 및 그의 요청에 따라 작성된 것이며, 최근 널리 회자되는 "비행접시" 관련 현상에 대한 것이라고 밝힌다. 이어 작성자는 약 3주 전, 즉 1947년 7월 7일 무렵 밤 10시 반에서 11시 사이에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당시 그는 아내와 함께 버지니아주 알링턴 노스 글리브 로드 2807번지에 살고 있었으며, 자신이 사용하던 방의 배치는 첨부한 도해 1(Illustration No. 1)에 그려두었다고 안내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손으로 그린 방 평면도가 직접 붙어 있어 침대, 라디오, 책상, 그리고 지하실 창의 위치를 보여주고, 그 아래에는 작성자의 서명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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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진술자가 사건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진술서의 세 번째 항목이다. 그는 침대맡 등을 막 끄고 라디오 프로그램이 끝나기를 들으려고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같은 시각 아내와 그는 얼마 전에 새로 산 집에 들일 가구를 어떻게 고를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창문을 마주 보고 앉아 있던 그는 끝 쪽 창문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빛 하나가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그 빛은 빠르게 옆으로 움직여 나무나 지평선 아래로 사라지거나 남쪽 어딘가에서 꺼지듯 사그라들었다. 그는 이 장면을 다음 페이지에 매우 거친 스케치로 그려 두었다고 적고 다음 그림 2번을 참고하라고 안내한다. 페이지 아래 절반은 직접 그린 스케치로, 빛이 나타난 모서리와 사라진 방향, 약 4분의 3마일 정도의 거리, A·B·C·D 지점, 오른쪽 위 작은 집 모양 등이 손글씨 라벨과 함께 표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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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진술자는 그 순간 관심이 다른 일들에 쏠려 있어, 처음에는 그저 "불빛 하나가 지나갔다" 정도로만 받아들였고 잠시 동안 더 생각하지 않았다고 적는다.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그런 물체는 처음 본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자연스러운 설명은 유성이 지표로 떨어진 것이겠지만, 자신이 본 어떤 유성이나 별똥별과도 모양이 같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항간에 떠돌던 비행원반 이야기를 떠올린 그는, 자신이 막 목격한 것이 신문과 라디오에서 떠들고 있던 그 소동의 원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에서 그는 농담조로, 어젯밤 비행접시를 봤는데 알렉산드리아 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고, 거기 우리 장교들이 몇 살고 있지 않냐고 말한다. 이어 그저 별똥별이었을 거라고 덧붙이지만, 모양이 좀 이상하긴 했다고 말한다. 한참 이야기를 나눈 뒤 그는 화제를 거두고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한다. 자신이 떠도는 소문에 한 가닥을 더 보태 전국적인 공황의 불씨가 될까 우려한 것이다.
관찰 시간이 너무 짧아 빛 또는 물체를 묘사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그는 말한다. 첨부 그림 2번에 그려둔 대로, 물체가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지나간 것으로 보였고, 자신의 모든 계산은 그 최근접 지점(AC)까지의 거리 감각에 기초한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거리 자체는 매우 거친 깊이 지각에 의존했을 뿐 확신할 수 없으며, 만약 자신의 인상이 맞아 먼 유성이 아니라 가까이 지나간 어떤 물체였다고 가정한다면, 묘사를 위해 그 거리를 약 3/4마일로 잡겠다고 한다. 비교적 믿을 만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각도뿐이었는데, 3도에서 4도 사이로, 빛이 자신 앞쪽의 가장 키 큰 나무들 뒤로 간헐적으로 가려졌다 보였다 했고, 그 나무들은 몇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 60에서 80피트쯤 되는 평범한 높이였다고 한다. 거리와 각도에 대한 이런 온건한 가정을 합치면, 물체는 500피트보다 훨씬 낮은 고도, 즉 약 30피트짜리 소형 항공기에 가까운 크기로 보였다. 모양은 둥글거나, 타원이거나, 원반이거나, 불규칙했을 수 있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밖에 인식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어림한 거리가 3/4마일보다 더 가깝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보다 가까웠다면, 저녁 늦은 시각에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있었던 자신이 분명 어떤 소리라도 들었을 텐데, 이번에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 가지를 짚어두는데, 30피트 거리의 반딧불, 약 3/4마일 거리의 항공기, 그리고 수백 마일 거리의 유성이 크기·고도·속도 면에서 서로 비슷하게 보이는 착시가 있다는 점이며, 우리 대부분이 이 착시에 익숙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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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콥 중령이 워싱턴 D.C. 부근 상공에서 본 빛에 대한 진술서의 후반부다. 콥은 빛이 몇 초 정도만 보였다고 기억한다고 적는다. 이 시간을 스케치 2번에 그대로 대입하면 물체 속도는 시속 1,350마일 정도가 나오지만, 콥 자신은 그렇게까지 빠르게 움직였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한다. 제트 항공기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이 보는 동안 직선 코스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고도를 눈에 띄게 잃지도 않았다고 진술한다. 색은 맑은 밤하늘의 달처럼 차갑고 밝은 흰빛이었고, 붉은 기는 없었다. 불꽃·연기·불티 같은 꼬리는 보이지 않았다. 콥은 볼링 필드 기상실 기록으로 당시 날씨를 확인했고, 시정 10~12마일에 산재운에서 부분운 정도였다고 적는다. 본인은 그날 날씨를 직접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비가 오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한다. 마지막 8항에서 콥은 사건 당시 아내를 깨워 이야기할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공식 보고를 할 생각도 없었다고 인정한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본 짧은 장면을 곱씹게 되었고,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드물게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었을 거라고 본다. 지난 7년 동안 약 2,500시간을 비행한 경험을 근거로 다섯 가지를 단언한다. 기상관측 기구가 아니었고, 운저에 비친 신호등 섬광도 아니었으며, 불붙은 비행기도 아니었고 — 그랬다면 이 일대에 적어도 추락했을 것이다 — 완전히 상상의 산물도 아니었고, 한곳에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마지막에 손글씨 서명과 함께 'JAMES O. COBB, Lt Colonel, Air Corps' 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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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1947년 7월 28일, 해군성 해군연구소(Naval Research Laboratory) 산하 육군 연락사무소의 윌리엄 P. 멜렌(William P. Mellen) 소령이 워싱턴의 항공참모차장(Asst Chief of Air Staff-2) 수집과 앞으로 보낸 후속 보고서다. 제목은 '비행접시(Flying Saucers)'.
앞서 7월 18일자 편지에 미확인 비행물체를 봤다고 주장하는 C. H. 존(Zohn)과의 면담 내용을 전달한 바 있었는데, 그 편지에 함께 목격자로 언급된 C. C. 록우드(Rockwood)로부터 7월 21일 추가 정보를 얻었다고 보고한다.
록우드의 설명에 따르면 그 물체는 은빛 구 또는 원반 모양이었다. 기상 관측 기구로 봤을 법도 했지만, 자기가 탄 자동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것도 거의 같은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었다는 점이 달랐다. 자동차는 시속 60마일 정도로 달리는 중이었고, 지표면 바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 봤을 때 물체는 약 45도 고도에 있었고, 크기는 태양과 비슷해 보였다. 자동차 소음 너머로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연기나 비행운(contrail)도 보이지 않았다.
움직임은 전부 수평이었으며, 관측이 가능했던 시간 동안 형태도 변하지 않았다. 록우드는 물체가 단순히 너무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고서 우상단 여백에는 'Bel-C 6'으로 보이는 손글씨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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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거의 전체가 검은 사진이다. 흰 테두리 안쪽이 검게 노출된 야간 또는 노출 부족 촬영 결과로 보이고, 왼쪽 여백에는 손글씨로 화살표와 함께 비행 경로 표시가 적혀 있다. 아래쪽 여백에는 일련번호로 보이는 손글씨 표시가 남아 있다. 사진 자체에는 알아볼 수 있는 피사체가 거의 보이지 않고,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언가의 궤적이 있었음을 표시하는 자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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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흑백 사진 한 장이다. 구름 낀 하늘을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가늘고 긴 흰 줄이 보이고, 화면 아래쪽 모서리에는 수면처럼 보이는 어두운 띠가 걸쳐 있다. 사진 가장자리에 흰 여백이 남아 있어 인화지 그대로의 형태를 띠고 있다. 텍스트나 캡션, 도장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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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2
흐린 하늘을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이 페이지 전체를 채운다. 사진 아래쪽에는 나무 윤곽과 십자 모양 전신주가 실루엣으로 깔리고, 가운데에는 구름 사이로 작은 점 같은 물체가 떠 있다. 사진 위에는 비스듬한 연기 자국 같은 선이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캡션·날짜·문서번호 같은 글자는 페이지 안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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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3
1947년 8월 9일 정오 (동부 표준시) 영국 항공부 런던 (A.M. London) 이 FAFDEL 앞으로 보낸 암호 전문 AIX 6328. 7월 29일 자 AIX 14에 대한 답신이다. 1947년 1월 16일 밤 22시 30분, 야간 비행 훈련 중이던 모스키토 한 대가 22,000피트 상공에서 미확인 항공기 쪽으로 유도되었다. 추격은 네덜란드 해안에서 약 50마일 떨어진 북해 상공에서 시작해 23시에 노퍽 상공에서 끝났다. 기상 레이더 (AI) 접촉은 두 번 짧게 잡혔지만 곧 사라졌다. 미확인 항공기는 효율적이고 통제된 회피 기동을 보이는 듯했다.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은 그 이후로 나오지 않았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도 않았다. 문서 상단에는 이 전문이 미가공 암호문이므로 다른 체계로 재전송하거나 영국·미국 정부 기관 외부에 알릴 경우 반드시 의역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페이지 중앙에는 ACTION COPY 도장이 크게 찍혀 있고, 하단 배포 라인에는 A.C.M., P.M., C.I.O.(Action) 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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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1947년 7월 30일자 AFBIR-CO (육군 항공정보 부장실) 분석 메모 표지다. 문서번호는 62-83894-130, 제목은 "Flying Discs". 분석을 위해 보고된 "하늘을 나는 원반" 목격 사례 가운데 열여덟 건을 골라 세부 항목별로 쪼개 정리했고, 각 보고서에 번호를 매겨 다음 장부터 왼쪽 단에 표시한다고 밝힌다. 7번 보고서는 아직 수령 전이라 날짜·목격자 이름·장소만 들어가 있고, 제4공군이 목격자 진술서를 확보하려는 중이다. 2번·4번·17번·18번 보고서는 아직 분석되지 않았다. 항목 분류는 날짜, 시각 (현지 표준시), 장소, 목격자 이름, 목격자 직업, 지상에서 봤는지 공중에서 봤는지, 본 물체 수, 고도, 비행 방향, 속도, 이동 거리, 시야에 머문 시간, 직진에서 벗어난 정도, 색, 크기, 모양, 소리, 꼬리, 날씨, 사라진 방식, 비고 — 모두 스물한 항목이다. 상하단 가장자리에 CONFIDENTIAL 도장이 두 번씩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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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5
1947년 5월부터 7월까지 미국 전역과 알래스카·뉴펀들랜드에서 접수된 비행접시 목격 보고 16건의 일람표다. 보고 번호, 날짜, 현지 표준시 기준 시각, 발생 장소가 한 줄씩 정리돼 있다. 5월 19일 콜로라도 매니투 스프링스의 12시 15분 목격을 시작으로, 오클라호마시티, 매사추세츠 그린필드, 워싱턴 레이니어산, 앨라배마 맥스웰 비행장, 뉴멕시코 화이트샌즈,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아이다호 에밋, 캔자스 클레이센터, 캘리포니아 페어필드-수이선, 위스콘신 코슈코농과 이스트트로이, 캘리포니아 볼디산, 뉴펀들랜드 그레이트폴스와 하먼 비행장,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비행장에서 7월 10일 18시 30분 보고까지 이어진다. 일부 보고는 시각이 비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 18쪽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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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관찰자 16건의 명단을 한 표로 정리한 페이지다. 보고서 번호, 관찰자 이름, 직업, 관찰 위치(지상/공중) 네 열로 짜였다. 1번은 철도 직원인 D. A. 하우저와 F. J. 스미스, L. D. 재미슨이 지상에서 본 건. 2번은 사업가 겸 조종사 바이런 새비지가 지상에서, 3번은 R. L. 디로즈인데 직업은 명시되지 않았고 "받은 편지로 보아 관찰자가 분명히 교육 수준이 높다"는 주석이 별표로 달렸다. 4번이 케네스 아놀드 — 사업가 조종사이며 공중 관찰. 5번은 AAF(육군항공대) 대위 윌슨 H. 카이코와 존 H. 캔트렐, 레드먼, 그리고 AAF 중위 시어도어 듀이. 6번은 BLI 직원 C. H. 존, J. R. 카우케, C. C. 록우드와 그의 부인 낸시 록우드. 7번 민간 조종사 리처드 랜킨. 8번이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E. J. 스미스와 부조종사 랠프 스티븐스 — 공중 관찰. 9번은 AAF 소령 A. B. 브라우닝, 공중. 10번은 AAF 대위 제임스 H. 버니스턴, 지상. 11번과 12번은 이름 미상의 CAP(민간항공대) 교관·학생·조종사·승객. 13번은 ACCNG 중위 알빈 E. 무어맨, 공중. 14번은 뉴펀들랜드 경비대 소속 경관 이릭 키어시, 지상. 15번은 TWA 직원 메르만과 FAA 직원 우드러프, AAF 소령 그램, 그리고 "여러 다른 장교들". 페이지 하단에 페이지 번호 42가 손으로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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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7
라파즈가 분석한 16건의 목격 사례를 비행 궤적·색·크기 세 항목으로 정리한 표의 두 번째 면이다. 1번 사례는 은색 물체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머리 위를 지나간 뒤 원래 항로로 돌아왔고 크기는 작아 보였다. 2번은 매우 밝은 은색에 작았다는 보고. 3번은 별보다 조금 더 밝게 빛났고 태양광 반사가 있었으며 "물벌레처럼" 갈지자로 움직였다. 4번부터 7번까지는 비행 편차 보고가 없다. 8번은 거의 해질 무렵이라 색을 분간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다. 9번은 매우 밝은 은빛으로 지름 30~50피트. 10번은 햇빛 반사가 있었고 1만 피트 상공의 C-54 수송기 정도 크기였다. 11번은 비스듬히 하강하다 4천 피트에서 멈춰 수평 자세를 잡고 15초간 수평 비행한 뒤 다시 멈췄다가 사라졌다. 12번은 모든 항목이 미기재. 13번은 반사광 성질의 빛으로 외관상 깊이가 1-7-51로 표기. 14번은 인광색. 15번은 은빛. 16번은 회색 풍선 같은 모양으로 관측자들로부터 5마일 떨어진 산의 능선을 따라 비행했고 지름은 약 10피트로 추정. 페이지 번호는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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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보고 번호별로 목격된 비행체의 모양, 소리, 꼬리, 그날 날씨를 정리한 표다. 1번은 형태가 분명히 잡히지 않아 결정 불가, 소리·꼬리 없음, 날씨는 시야 양호. 3번은 불규칙한 둥근 모양이지만 특별히 특정 형태는 아님. 5번은 모양은 밝힌 바 없고 단지 밝은 빛처럼 보였으며, 맑은 달빛 아래였음. 7번은 돌출부 없이 균일한 형태였고, 증기 꼬리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었을 가능성 언급. 8번은 모양이 명확하지 않지만 바닥은 평평하고 윗면 윤곽이 약간 거칠어 보였음. 9번은 둥근 원반형. 10번은 모양을 분간할 수 없었고 날씨는 맑음. 11번은 형태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보고서가 여러 번 masses 라는 표현을 씀. 12번은 11번과 동일. 13번은 빛을 반사하는 납작한 물체로, 수직 핀이나 보이는 날개는 없는 듯했음. 14번은 달걀형 혹은 통의 머리 부분 같은 모양. 15번은 마차 바퀴 같은 원형이며, 약 15마일 길이의 푸르스름한 검은 꼬리를 끌었고, 날씨는 8천에서 1만 피트 상공에 산발적인 적운이 있는 맑은 하늘. 16번은 조립된 풍선 형태로 기록. 페이지 하단 페이지 번호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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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
FBI 사건 파일 안에 들어가 있는 1949년 무렵의 비행 관측 사례 표 — 7쪽이다. 표는 세 단으로 나뉘어, 왼쪽에 보고서 번호 1부터 16까지, 가운데에 물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매우 빠르게 시야 밖으로 올라감", "구름띠에 가려짐", "달빛에 묻혀 사라짐", "설명 불가 — 반사 각도가 갑자기 바뀐 것일 수 있음", "엄청난 속도였는지 분해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일몰 속으로 사라짐", "지구 표면 위 30도 각도로 사라짐", "시속 300마일 조종사가 시야 유지를 시도했으나 실패" 등), 오른쪽에 사건별 비고를 실었다.
비고 칸이 사례 하나하나를 사람 손으로 다듬어 놓은 인상이다. 1번 사례에는 "확실한 형태를 특정할 수 없었고, 4배에서 6배 쌍안경을 동원해도 물체에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고 적었다. 3번 사례를 보내온 사람은 편지 자체로 보아 교육 수준이 높은 인물이며 언론 노출은 원치 않는다고 평했다. 5번 사례는 평가관 두 명을 포함한 관측자 네 명이 직접 Field Ops 에 전화를 걸어 시험 비행기가 근처에 있었는지 확인했고, 하늘 차트도 첨부했다. 6번 사례의 관측자는 NRL (해군연구소) 의 Rocket Sonde Section 행정 보좌관이며, 다른 "과학자" 두 명과 그중 한 명의 부인까지 같은 장면을 함께 봤다.
8번 사례는 정기 운항 중인 유나이티드 항공 DC-3 의 기장·부기장·승무원이 동시에 본 사건이고, 더 자세한 진술서를 따로 읽어 볼 것을 권한다고 적었다. 9번 사례에서는 관측자가 처음 수평선 부근에서 물체를 본 뒤 무릎 위 차트로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창밖을 봤더니 물체가 왼쪽 날개 11시 방향에 가 있었다는 상황을 짧게 풀어 놓았다. 10번 사례의 물체는 하늘을 가로지르며 좌우로 세 번 뒤집혔고, 햇빛이 위쪽 면에서만 반사되었지 아래쪽 면에서는 회전 중에도 끝내 반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13번 사례에서는 인근 기지에 확인했으나 그 시간대에 떠 있던 항공기는 없었다고 회신받았다. 14·15번 사례 비고는 디스크 네 개가 줄지어 날았고, 구름을 마치 열어젖히듯 통과했으며, 그 자국이 고출력 착륙등을 끈 직후 남는 잔광 같았다고 묘사한다. 16번 사례의 물체는 C-47 한 대와 나란히 따라가다 그대로 착륙 코스로 들어갔다.
빈칸 (2·4·7·11·12·14·15번 일부) 도 사례 자체가 없다기보다, 사라진 방식을 한 문장으로 잡아낼 수 없어 비워 둔 인상이다. 페이지 하단에는 작은 "7" 만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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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
1947년 7월 2일자로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자리한 제15공군 사령부가 작성한 "초음속 접시" 정보 요약 보고서다. 6월 27일, 파이크스 피크 철도 직원 세 명 — D. A. 하우저, R. J. 스미스, L. D. 제이미슨 — 이 같은 사령부 방첩대 요원들에게 자신들이 본 것을 진술했고, 이 문서는 그 진술을 정리한 것이다.
세 사람의 진술에 따르면, 5월 19일경 점심시간인 12시 11분에서 12분 사이, 열차 승무원 한 명이 북동쪽에서 다가오는 은색 물체를 가리켰다. 물체는 굉장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세 사람 모두 물체가 너무 작아 보여 고도를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멀리서 큰 것이 높이 떠 있는 것인지, 가까이에서 작은 것이 낮게 떠 있는 것인지조차 분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마니투 마운틴 정상보다는 확실히 높이 있어 보였다고 했다 — 그 산은 그들이 일하던 작업장보다 천 피트 이상 높은 곳이다. 형태는 또렷이 잡히지 않았고, 4배에서 6배 배율의 쌍안경으로 봐도 초점이 맞지 않았다. 세 사람은 이 물체가 당시 알려진 어떤 항공기의 모습과도 닮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그날 하늘은 맑고 화창했으며, 구름 한 점 없고 지표면에도 바람이 없었다.
물체는 마니투 마운틴 북쪽 부근에 도착한 뒤 그 자리에 몇 분간 머물렀다. 그 사이 상승, 하강, 방향 전환 같은 기동을 몇 초 간격으로 반복했다. 시점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세 사람 중 둘은 하늘에 같은 종류의 물체가 여러 개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다. 물체는 가끔 공중에 멈춘 듯 머물렀다가 다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보였을 때는 바람을 정면으로 거슬러 서쪽으로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문서 하단에는 이전 배포처가 없으며, 이번에는 전략공군사령부에 사본 세 부가 배포되었다고 적혀 있다. 출처의 신뢰도는 E, 정보의 신뢰도는 0 으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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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1
1947년 7월 24일, 오클라호마시티 에어머티리얼 에어리어 산하 팅커필드의 보안담당관 앞으로 올라간 메모랜덤이다. 사건번호 3724-I, 발신 부서 약호 CCAFB/KDS:cp. 제목은 RCA(미국 라디오 코퍼레이션) 댈러스 사무소 소속 필드 엔지니어 바이런 E. 새비지로, 거주지는 오클라호마시티 NW 29번가 416번지. 사안은 비행 원반(flying disc) 목격이다.
1947년 7월 23일, 수사관은 새비지를 자택에서 면담했다. 그는 38세, 기혼에 자녀 한 명, 단발 엔진 육상기용 자가용 조종사 면허 39101호를 보유한 사람이다. 전자공학·음향공학·항공학을 두루 공부했고, 현재 직업은 RCA 댈러스 사무소의 필드 엔지니어로 극장용 음향 설비를 설치하러 다닌다.
새비지의 진술은 이렇다. 1947년 5월 17일에서 21일 사이 어느 날, 해는 막 졌고 달은 아직 뜨지 않은 황혼 직후였다. 시각은 저녁 8시 30분에서 9시 사이로 추정되며, 오클라호마시티 시내 불빛이 하늘로 반사돼 어떤 물체에 비치고 있었다. 그와 아내가 자택을 나와 진입로에 세워 둔 차에 막 타려던 참, 남쪽 하늘에서 작은 항공기로 보이는 물체를 보았다. 처음에는 "커다란 흰색 비행기가 오고 있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물체가 시야 기준 45도 각도에 들어왔을 때, 그는 일반적인 항공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타원형이었지만 가까워지면서 완전히 둥글고 평평한 원반 모양으로 보였다. 구체로 보이지는 않았고, 지름과 두께의 비율은 대략 10대 1, 가운데가 약간 더 두꺼워 보였지만 단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도는 1만에서 1만 8천 피트 사이로 추정했고, 꼬리에 남는 흔적은 없었다. 부피는 같은 고도의 B-29 폭격기 여섯 대를 합친 정도로 컸다. 시야에 머문 시간은 15~20초가량, 속도는 제트 항공기의 약 세 배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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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
1947년 7월 24일자로 오클라호마시티 항공자재사령부(OCAMA) 팅커 필드의 보안 장교에게 보낸 파일 370A-1 메모다. 미 육군 방첩대(CI)의 라만 D. 사이먼이 목격자 새비지의 진술을 정리했다.
새비지는 그 물체에 돌출부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물체가 지나갈 때 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는데, 한순간 공기가 빠르게 스치는 듯한 휙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했다. 그 소리는 물체가 지나간 뒤 몇 초 후에 들렸다. 새비지는 소리가 크지 않았고 오래 가지도 않았으며, 자신이 무언가를 들으리라 기대하던 끝에 상상한 소리일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 본인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새비지는 아내를 불러 함께 보려고 했지만, 아내가 시선을 맞추기 전에 물체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고 말했다. 물체는 멀어지면서 크기와 속도가 모두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고, 북쪽 350도 방향으로 움직였다. 색은 내내 서리 낀 흰색이었다.
새비지는 1929년부터 비행을 시작해 1934년부터 조종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 조사에 협조하겠으며 어떤 형태로든 돕겠다고 했다. 그는 그 물체가 운석은 아니라고 확신했고, 자신의 의견으로는 근본적으로 새롭게 설계되고 동력을 갖춘 — 아마도 바퀴 형태의 — 비행체일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라만 D. 사이먼의 친필 서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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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1947년 7월 10일, 매사추세츠 그린필드 메리디언가 181번지에 사는 에드워드 L. 디로즈가 매사추세츠 치코피의 웨스토버 필드 지휘관에게 보낸 편지다. 디로즈는 목격담을 신문과 라디오에서 접한 뒤, 자신도 2주 전쯤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이 떠올라 보고하기로 했다고 말한다. 공군이 이른바 '플라잉 디스크' 조사에 나섰다는 보도를 보고,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적어 보낸다고 했다. 다만 자기 이름은 어떤 식으로도 공개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못 박는다.
목격 시점은 6월 22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쯤. 디로즈는 사다리에 올라 야외 작업을 하다가 위를 올려다보던 중, 시야를 가로질러 빠르게 지나가는 작고 둥글며 은백색으로 번쩍이는 물체를 봤다. 고도는 약 1,000피트 이상으로 추정했고, 북서쪽 방향으로 거의 직선에 가깝게 매우 빨리 — 빠른 비행기 정도, 혹은 그보다 빠르게 — 움직였다. 너무 낯설고 이상한 광경이라 약 5~10초 동안 시선이 묶였고, 이후 구름 띠에 가려 사라졌다고 적었다.
호기심이 일어 그게 뭐였을지 생각해 봤지만, 기상관측 풍선은 아닐 것이라고 본인은 봤다. 자기가 본 적 있는 어떤 기상풍선과도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체는 작았지만 광택을 낸 알루미늄이나 은처럼 햇빛을 강하게 반사했고, 분명히 실재한 물체였다고 강조한다. 모양은 불규칙한 원형이었고, 디스크 형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특별히 디스크라는 인상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디로즈는 상상이나 과장 없이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적었다고 덧붙이며, 자신의 목격은 '플라잉 디스크'라는 표현을 듣기 전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도 짚는다. 그는 이 정보가 국가 안보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다시 한번 자기 이름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며 편지를 맺는다.
페이지 상단에는 'RESTRICTED' 도장이 찍혔고, 하단 왼쪽에는 항공대 대위 아치 F. 로이가 사본 진본임을 인증한 서명이 들어 있다. 오른쪽 하단에는 7월 24일 AFOIR-CO에서 접수했다는 손글씨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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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4
1947년 7월 17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있는 제4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워싱턴의 육군항공대 사령관 앞으로 보낸 「비행접시 조사」 건 공문이다. 발신자는 정보참모부장 도널드 L. 스프링거 중령. 7월 10일 뉴욕 미첼 필드의 항공방어사령부가 보낸 TWX 요청에 따라, 관련 진술서와 MOIC(월간 정보 보고)를 첨부해 송부한다고 알린다. 다만 리처드 랭킨(Richard Rankin)이라는 인물의 소재를 아직 파악하지 못해, 그를 찾는 대로 진술서와 MOIC를 별도로 직접 보내겠다고 덧붙인다. 사본은 항공방어사령부에도 함께 보낸다. 첨부물은 7월 16일자 브라운의 MOIC 사본 네 부.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는 동그라미 친 숫자 4가 손으로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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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1947년 7월 16일, 사건번호 4AF 1208 I에 관해 담당 장교에게 보내는 메모이다.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Idaho Daily Statesman 신문사 사무실을 방문해 항공 담당 편집자 데이비드 N. 존슨을 면담했다. 면담 목적은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아놀드가 한 진술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이는 아놀드가 1947년 6월 26일 여러 전국 뉴스 서비스에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9개의 물체를 보았다고 말한 내용을 검증하려는 시도였다. 이 물체들은 뒤에 비행접시 또는 비행원반으로 불렸으며, 이 보고서에서도 그렇게 부른다.
존슨은 아놀드를 꽤 오래 알고 지냈고, 두 사람이 모두 민간 조종사였기 때문에 여러 차례 만나 비행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존슨은 아놀드가 말한 것은 무엇이든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자신도 아놀드가 앞서 언급한 비행원반을 실제로 보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아놀드가 비행원반 목격을 보고한 뒤 신문 편집자는 존슨에게 신문사 소유 항공기를 타고 북서부 지역에서 비행원반이 목격됐을 가능성을 입증하거나 반박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존슨이 그 임무를 수행한 결과와 이후 목격한 내용은 존슨이 서명한 선서 진술서로 이 보고서에 첨부된 Exhibit B에 들어 있다.
요원 기록에 따르면 존슨은 대략 33세에서 35세 사이의 남성이며, 외견상 매우 신중한 성격으로 보인다. 그는 여러 종류의 항공기에서 2,800시간의 비행 시간을 기록했고, 다발 엔진 항공기 경험도 있다. 전쟁 기간 중 일부 동안 그는 태평양 티니언 섬에 주둔한 제20 미 육군항공대 소속 B-29 항공기의 제1조종사였다. 면담자는 존슨이 첨부 보고서에서 보았다고 말한 것을 실제로 보았다고 개인적으로 판단한다. 또한 존슨은 이런 사건을 보고해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많으므로, 실제로 무언가를 보았다고 강하게 확신하지 않았다면 그런 사건을 보고해 조롱을 감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문서 말미에는 Exhibit B 한 부를 첨부한다고 하고, CIC 제5공군 특별요원 Frank M. Brown의 이름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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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6
1947년 7월 12일 아이다호 보이지에서 작성한 데이비드 N. 존슨의 진술서다. 존슨은 1947년 7월 6일 스테이츠먼 신문사(아이다호 주에서 스테이츠먼 인쇄회사로 법인 등록) 의 총괄 매니저 제임스 L. 브라운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임무를 받았다고 한다 — 미 북서부 주 상공을 항공으로 수색해 비행접시를 직접 보고 사진을 찍어 오라, 합당하다고 판단되는 동안, 또는 비행접시를 볼 때까지 이 순찰을 계속하라.
존슨은 이 지시에 따라 7월 7일 스테이츠먼 사의 항공기에 케네스 아놀드를 동승시켜 7시간 30분간 비행했다. 수색 범위는 워싱턴 주 핸포드 시설 일대, 그리고 케네스 아놀드가 원반 모양 물체를 처음 목격했다고 보고한 레이니어 산과 애덤스 산 사이 영역이었다. 결과는 무위였다.
7월 8일에는 자신이 소속된 아이다호 주방위공군 190 전투비행대대의 AT-6 훈련기를 몰고 아이다호 북부, 몬태나 북서부 일부, 워싱턴 주 스포캔까지 다녀온 뒤 워싱턴 주 월라월라와 오리건 주 펜들턴을 거쳐 보이지로 돌아왔다. 이 수색도 성과가 없었다.
7월 9일에는 다시 주방위공군 AT-6을 사용해 보이지 서쪽 및 남서쪽 오와이히 산맥, 마운틴홈 육군 항공기지 남동쪽 마운틴홈 사막의 일부 구간을 살핀 뒤 소투스 산맥으로 진입했다가, 스내퍼 뷰트 산림감시 전망대 북쪽 한참 위 선을 따라 보이지 방향으로 돌아오면서 호스슈 벤드 일대를 지나 다시 남서쪽으로 향했다 — (페이지가 여기서 끊긴다).
페이지 상단에 "COPY" 와 "CONFIDENTIAL" 표시가 함께 찍혀 있고, 하단에는 "EXHIBIT A" 라벨과 함께 보존번호로 보이는 "20-95" 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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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
케네스 아놀드는 보이시와 메리디언 사이 상공을 두 시간 반 가까이 수색하던 상황을 진술서에 그대로 풀어놓는다. 보이시 동쪽 카마스 평원 일대에서 빠르게 솟아오르는 적운 사이를 위아래로 누비며 비행했고, 구름은 페어필드 마을 근처에 몰려 있었다고 한다. 페어필드는 보이시에서 비행 직선거리로 75마일 떨어진 곳이고, 그때까지는 구름 부근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적는다.
보이시와 메리디언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비행 고도는 평균해수면 기준 1만 4천 피트였고, 이 지역 지면 위로는 평균 1만 1천 피트 정도였다고 한다. 이륙 후 기압 변화나 그 고도의 기온으로 인한 고도계 오차는 감안하지 않은 수치다.
그는 기수를 서쪽 가웬 필드로 돌려 1분쯤 비행하던 중 시야 왼쪽에 갑자기 검고 둥근 물체가 나타났다고 진술한다. 곧바로 그 물체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움직임이 워낙 불규칙해서 처음에는 기상관측 풍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이시의 CAA 통신소를 호출해 풍선을 띄운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통신사 앨버트슨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앨버트슨의 정확한 말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시간 동안은 띄운 적이 없다 는 식이었거나 그날 아침 6시 30분쯤이었던 직전 발사 시각을 정확히 알려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이 답을 들은 뒤 아놀드는 비행기를 물체와 정면으로 마주 보도록 돌리고, 왜곡을 피하려 플렉시글라스 덮개를 뒤로 젖힌 다음, 지도함에서 카메라를 꺼내 8밀리미터 모션픽처 필름으로 약 10초간 촬영했다고 적는다. 페이지 맨 위와 아래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고, 오른쪽 아래 여백에 p. 5 라는 페이지 표시가 손으로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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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키호의 진술서가 이어진다. 그는 카메라 — f:1.9 이스트맨 — 의 광학 뷰파인더 배율이 너무 작아서 그 안에서는 물체를 잡을 수 없었다고 적는다. 카메라를 다시 내려놓고 맨눈으로 물체에 시선을 모으자, 물체가 한쪽 옆면을 그에게 보이도록 굴렀고 그 순간 햇빛에 한 번 번쩍인 뒤 가느다란 검은 선처럼 보였다고 한다. 곧이어 물체는 슬로 롤이나 배럴 롤을 시작하는 듯한 기동을 했는데, 동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180도 지점에서 끊겼고 그 위쪽으로 빠져나가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그는 말한다. 이 모든 광경은 가우스 프레리 상공에 미리 형성되어 있던 구름을 배경으로 보였다고 한다. 그가 본 물체의 크기는 25센트 동전 정도였고, 얼마나 멀리 있었는지도 속도가 얼마였는지도 자신은 알지 못한다고 못박는다. 다만 비행기는 아니었고, 만약 아주 먼 거리에 있었다면 — 멀어질수록 보이는 속도는 작아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 실제 속도는 매우 빨랐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그는 물체를 본 정확한 시각을 시계로 확인하는 것을 잊었지만, CAA 의 무선 교신 기록을 보면 자신의 첫 교신은 12시 17분이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이 물체를 처음 본 시점과 CAA 관제소를 호출한 시점 사이에는 몇 초의 간격이 있었다고 그는 분명히 한다. 그는 이어서 자신이 본 것을 무선으로 설명했고 통신사 알버트슨이 그 내용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며, 관제탑에 교신 녹음이 남아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자신은 그 부분을 확인해 보지 않았다고 적는다. 굳이 무전으로 목격담을 전한 이유는 그 시점 자신은 취재 임무 중이었기 때문에 신문사로 보고를 빨리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 뒤로는 자신의 노력을 두 가지에 — 첫째 이 정보를 전달하는 데, 둘째 추가 수색을 진행하는 데 — 쏟았고, 추가 수색은 연료 보급을 위해 착륙한 뒤 몇 통의 전화를 걸면서 진행했다고 마무리한다. 위아래 여백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들어가 있고, 우측 하단에는 페이지 번호 77 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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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9
목격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진술서의 일부로, 첫 번째 수색을 마치고 약 30분 만에 두 번째 수색을 시작했고 그 수색도 두 시간을 잡아먹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고 적는다. 본인이 물체를 본 지역을 샅샅이 훑었다는 것. 물체를 발견한 직후 본인은 그 일대에 다른 항공기가 있었는지 물었고, 190 비행대대 소속 F-51 한 대가 쿠나 근처에서 기동 훈련 중이었지만 본인 뒤편이었으며 C-82 한 대가 보이시 상공을 지나갔으나 본인보다 약 2,000피트 아래로 통과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본인 요청으로 쿠나 근처의 F-51 이 물체가 있던 지역으로 이동해 수색을 벌였지만 역시 빈손이었고, 오후에는 F-51 편대가 추가로 출동해 산소를 쓰는 고고도 임무까지 포함해 일대를 훑었지만 모두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이후 본인은 가우언 비행장 (Gowen field) 의 유나이티드 항공 쪽과 주방위 공군 쪽 인원이 같은 구름 대형 앞쪽에서 검은 물체가 기동하는 것을 보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 구름은 시간이 지나 평균 운저 13,500~14,000 피트 (해발 기준) 에서 19,000~20,000 피트까지 자라 있었다. 그중 세 명이 주방위 공군 인원이었고 본인이 그들과 직접 이야기했는데, 유도성 질문을 피하려고 본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에 그들이 본 것을 먼저 묘사하게 했다고 한다. 그들은 본인이 두 번째 수색에 나가 있던 동안 지상에서 물체를 보았으며 시각은 14시쯤이었다고 믿었고, 물체가 본인이 관찰한 것과 똑같이 불규칙한 방식으로 움직였다고 말했다. 본인은 여기까지가 사건의 전부이며 이제 본인 자신에 대한 정보를 밝힐 차례라고 적는다. 비행 시간은 약 2,800시간이고 초등 훈련기에서 B-29 까지 다양한 기종을 다뤘으며, 물론 이런 경력이 일반 비행사가 매일 단련하는 수준 이상의 관찰력을 본인에게 주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어 문서의 비밀 등급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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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0
기술자는 앞서 말한 경험 당시 원반을 찾아 가능하면 사진으로 촬영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미 14시간 30분을 비행한 상태였으며, 솔직히 피곤했고 약간의 산소 부족을 겪었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 그는 조종사로서 눈을 많이 써야 하는 부수적 요구가 있을 뿐, 그런 경험이 자신의 시력을 더 예리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 물체를 보기 전까지 그는 수색을 계속해도 소용없으며, 아널드와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미스 기장이 언급한 원반 모양 물체를 자신은 아마 끝내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색하는 동안, 특히 아널드와 함께 있었던 때를 포함해 그날과 앞선 이틀 내내 그는 원반을 찾아 임무를 성공시키고 싶은 강한 욕구 때문에 암시나 자기최면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에게 계속 다짐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암시나 최면의 희생자가 아니었다고 본다. 그는 고정된 물체를 충분히 오래 바라보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잘 알고 있으며, 움직이는 물체와 관련해 눈이 어떤 장난을 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고 한다. 특히 야간 편대비행 중 그런 현상을 배웠다고 덧붙인다.
그는 물체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처음처럼 덜컥거리는 식의 움직임이 관찰 내내 이어졌다면, 자신이 본 것이 항공기도, 풍선도, 어느 한쪽 눈의 망막을 가로지르는 입자도 아니었다고 이렇게 강하게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물체가 모서리를 자신에게 보였을 때의 기동 방식 때문에, 그는 실제 물체가 불규칙한 비행 경로를 수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확신한다.
물론 남는 문제는 그가 정말 그것을 보았느냐는 점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스트먼 연구소의 R. M. 스토어가 현상하고 처리한 영화 필름을 언급하다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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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1947년 7월 12일자 데이비드 N. 존슨의 진술서 마지막 장으로, 같은 날 아이다호주 에이다 카운티의 공증인 조지 L. 플래허티 앞에서 선서·서명된 사본이다. 존슨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검토한 사진사 슈토어의 의견을 옮긴다. 슈토어는 만일 그 비행물체가 존슨이 말한 크기로 1마일 이상 떨어져 있었다면 필름에 충분히 잡힐 만큼 기록되지 않았을 거라고 했다. 너무 멀어서 필름을 크게 확대해도 식별되지 않았을 것이고, 확대 자체도 필름 크기와 렌즈에 망원 장비가 달려 있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노출은 f.16, 무한대 초점, 초당 16프레임이었다. 존슨은 본 것을 두고 스스로 되짚어보았다고 말한다. 자신을 한 발 떨어뜨려놓고 "이봐 존슨, 바보같이 굴지 마" 하고 타일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결론에는 끝내 도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순간의 인상이 너무 생생하고 사실적이었으며, 공중에서 부분적인 슬로우 롤 혹은 배럴 롤을 본 순간 환각의 희생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자기 진술이 비행접시 현상을 조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고, 자기가 본 물체의 움직임을 그린 도표를 첨부한다고 덧붙인다. 마지막으로 이 진술은 그날 아침 자신을 찾아온 브라운 씨와 데이비드슨 대위의 요청에 응해 자발적이고 자유롭게 한 것이라고 명시한다. 페이지 위아래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좌측 하단에는 사본임을 알리는 COPY 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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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이 페이지는 데이비드 L. 존슨 진술서 6쪽에서 언급된 도표다. 가운데에는 손으로 그린 점선 궤적이 있고, 1부터 6까지 번호가 매겨진 점들이 물체의 이동 경로를 따라 표시되어 있다. 아래 설명은 이 도표가 첨부 진술서에서 언급된 물체의 움직임을 그린 것이라고 밝힌다. 물체는 시종일관 검게 보였고, 1번·2번·3번 위치에서는 끊기듯 튀어 오르는 움직임을 보였다. 4번 위치에서는 물체가 한 번 굴러 옆면을 목격자 쪽으로 드러냈고, 이후 점선을 따라 기동의 정점을 넘어 굴러가 6번 위치에서 사라졌다.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하단 여백에는 4055라는 손글씨 번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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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1947년 7월 16일 작성된 사건 AAF 1208 I 관련 담당 장교 앞 메모에서, 조사관은 아이다호 보이시의 케네스 아놀드가 워싱턴주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이상한 물체 9개를 보았다고 보고한 일을 다룬다. 1947년 7월 12일 조사관은 아놀드를 면담했고, 아놀드는 해당 날짜에 자신이 본 것을 정확히 적은 서면 보고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그 보고서는 이 문서의 별첨 A로 붙는다.
조사관의 메모에 따르면 아놀드는 32세의 기혼 남성으로 두 아이의 아버지이며, 지역사회에서 평판이 좋고 가정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그는 가족을 잘 부양하는 사람처럼 보였고, 최근 보이시 외곽에 집을 샀으며 자신의 사업을 위해 5,000달러짜리 비행기도 구입했다. 조사관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아놀드가 자신이 보았다고 말한 것을 실제로 보았다고 본다. 아놀드 같은 성격과 명백한 진실성을 가진 사람이 실제로 보지 않았다면 그처럼 자세한 보고서를 쓸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만약 아놀드가 그런 물체를 보지 않고도 그런 성격의 보고서를 쓸 수 있다면 그는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벅 로저스’식 공상과학 소설을 써야 할 사람이라고까지 말한다.
아놀드는 매우 솔직하게 말했고, 미 육군 항공대와 연방수사국 지도부가 이 일을 더 일찍 조사하지 않은 데 대해 다소 불만을 드러냈다. 조사관은 아놀드의 모든 발언을 이 보고서에 넣으면 분량이 지나치게 많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만 아놀드가 물체를 보았다고 주장한 지역의 항공 지도를 확인한 결과, 그가 말한 거리, 물체의 속도, 진로, 크기와 관련한 진술은 실제 사실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았다. 아놀드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거리들은 이 지역의 항공 차트상 실제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아놀드는 육군이 쓰는 종류의 항공 차트를 본 적이 없었다.
아놀드는 6월 25일 보고 이후 자신의 사업이 크게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사업상 이동하는 곳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그가 정확히 무엇을 보았는지 묻기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 하늘에서 무엇을 보더라도, 자신의 표현을 직접 빌리면 “10층 건물”을 보더라도 말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하기 시작했지만, 이 페이지는 그 문장 중간에서 끝난다. 하단에는 프랭크 M. 브라운 CIC 특수요원의 이름이 보이고, 흐릿한 접수 또는 처리 도장과 여백의 사건 번호 메모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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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보고자는 자신이 하늘을 나는 무언가를 봤더라도 한마디도 꺼내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언론이 너무 심하게 조롱한 탓에 그가 본 것이 미국 인구 다수의 눈에는 사실상 비밀처럼 묻혀 있다는 것이다. 문서 끝에는 첨부물 한 건 (Exhibit “A”) 이 딸려 있다고 적었고, 발신자는 미 육군 항공대 방첩대 (CIC USAAF) 의 프랭크 W. 브라운 요원이다. 페이지 우상단에는 사건번호 LAF 1205 X 가, 하단에는 라우팅 약어와 손글씨 이니셜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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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5
케네스 아놀드 본인이 직접 작성한 약력 진술서 〈Exhibit A〉다. 1915년 3월 29일 미네소타주 수베카에서 태어났고, 아버지는 에드워드 어브 아놀드, 어머니의 결혼 전 성은 버사 E. 바든이다. 여섯 살까지 미네소타에 살다 가족이 몬태나주 스코비로 이주해 자작농 정착을 했고, 할아버지 롤랜드 G. 아놀드 역시 스코비에 정착해 몬태나 출신의 유명 상원의원 버튼 K. 휠러와 함께 정계에서 이름이 알려졌다. 학창 시절은 노스다코타주 마이놋에서 보냈다. 열두 살에 보이스카우트에 들어가 열네 살이 되기 전 이글스카우트에 올랐고, 당시 스카우트 책임자 H. H. 프레스콧은 현재 캔자스시티 보이스카우트 지역 커미셔너다. 운동부 활동도 활발해서 1932·1933년에는 노스다코타 주 대표로 뽑혔고, 1932년 미국 올림픽 다이빙 예선에 출전했으며, 1932·33·34년에는 적십자 인명구조 자격 시험관으로 일했다. 마이놋의 스카우트 캠프와 시립 수영장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쳤고, 미네소타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닐스 소프 감독 밑에서 수영과 다이빙, 버니 비어먼 감독 밑에서 미식축구를 했지만, 무릎 부상으로 대학 미식축구는 이어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는 현재 노스다코타 대학교 미식축구 헤드코치인 글렌 L. 재럿이었다. 형편이 넉넉지 않아 운동으로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 목표였다고 적었다. 마이놋 시절에는 개썰매 경주도 즐겨, 1930년 라이온스 클럽 도그 더비에서 자기 개와 함께 1등을 했다. 1933년부터는 콜로라도주 리틀턴의 자동 소화 장비 제조사 레드 코멧에 들어가 일했고, 1939년에는 서부 일부 주를 담당하는 지구 매니저로 승진했으며, 1940년에 —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상단에 CONFIDENTIAL 도장과 COPY 라벨, 하단 가운데에 EXHIBIT "A" 표시가 함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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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6
진술자는 자신이 Great Western Fire Control Supply 라는 화재 진압 장비 공급 회사를 직접 차렸다고 적는다. 그 뒤로 독립 화재 진압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미국 서부 다섯 개 주의 시골 지역에 자동·수동 화재 진압 장비를 직접 다루고 유통·판매·설치했다고 한다. 비행 경력은 노스다코타주 마이놋에서 어린 시절 시작했다. 첫 비행 수업은 원래 몬태나주 그레이트폴스 출신이었던 얼 T. 밴스에게 받았는데, 당시 비용이 너무 비싸 비행을 계속할 수 없었고 1943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인 비행에 나섰다. 조종사 자격증은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CAA(미국 민간항공국) 선임 검사관 에드 리치에게서 받았다. 최근 3년 동안은 자기 비행기를 직접 소유하고 그 비행기로 담당 구역 전체를 돌았으며, 매달 40시간에서 100시간씩 비행해 왔다고 한다. 일에 비행기를 전적으로 쓰기 때문에 올해 1월에는 새 Callair 기종을 한 대 더 샀는데, 이 기체는 고도가 높은 곳에서 이륙하거나 거칠고 짧은 활주로에서 쓰는 용도로 설계된 비행기다. 자신이 하는 비행은 어지간한 소 방목장에서도 이착륙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어서 연습과 판단력이 많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가는 곳마다 활주로가 매우 짧고 고도가 높은 들판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는 823개의 소 방목장과 산속 초원에 착륙했으며, 천 시간이 넘는 비행 중 가장 큰 사고는 타이어 펑크 한 번이었다고 한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고, 오른쪽 아래에는 손글씨로 페이지 번호로 보이는 표시가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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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7
COPY 표시와 CONFIDENTIAL 도장이 찍힌 케네스 아놀드(Kenneth Arnold) 본인 명의의 진술서로, 1947년 6월 24일 캐스케이드 산맥 상공에서 관측한 내용을 직접 서술한 문서다. 아놀드는 첫머리에서 자신이 본 것이 아무리 믿기 어려워도 분명한 사실이며, 우연히 그 시각 그 장소에 있었던 일로 유명세를 원한 적도 요청한 적도 없다고 못 박는다. 자신이 보고한 것은 어느 조종사라도 보고했을 만한 일이고, 자신의 관측이 일반 조종사 수준을 넘는 특별한 시력이나 판단력 때문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날 화요일 아놀드는 워싱턴 주 셰할리스(Chehalis)의 센트럴 항공 서비스(Central Air Service) 일을 마치고 오후 두 시 무렵 셰할리스 공항에서 야키마(Yakima)로 향할 작정으로 이륙했다. 다만 워싱턴 주 레이니어 산 남서쪽 어딘가에 추락했다는,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해병대 수송기를 한 시간가량 수색하느라 출발이 늦어졌다. 약 9,500피트 고도까지 올라간 뒤 레이니어 산 쪽으로 곧장 비행했는데, 이 고도가 레이니어 산이 솟아 있는 고원의 대략적인 높이라고 적는다. 고원 서쪽을 한 차례 훑으며 능선마다 수송기 흔적을 찾다가 워싱턴 주 애시포드(Ashford)가 위치한 협곡의 능선 쪽 서편으로 내려가 비행했다.
수송기로 보일 만한 것이 끝내 보이지 않자 미네럴(Mineral) 시 상공에서 오른쪽으로 360도 선회한 뒤 다시 레이니어 산 쪽으로 기수를 돌리고 약 9,200피트까지 다시 고도를 올렸다. 그날 공기가 어찌나 잔잔했는지 비행이 즐거웠고, 대다수 조종사가 그러듯 그는 야키마 방향—자기 위치에서 거의 정동쪽—으로 트림을 맞춘 뒤 조종석에 가만히 앉아 하늘과 지형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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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8
비행기 왼쪽 뒤로 약 15마일 떨어진 곳, 고도 1만 4천 피트쯤에 DC-4 한 대가 있었다. 하늘과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다. 항로에 오른 지 2~3분쯤 됐을 때 비행기에 밝은 섬광이 반사됐다. 다른 항공기에 너무 가까이 붙은 줄 알고 깜짝 놀랐다. 하늘을 샅샅이 훑어봤지만 반사광의 출처를 찾지 못하다가, 왼쪽 레이니어산 북쪽을 보고서야 정체를 알아챘다. 묘하게 생긴 항공기 아홉 대가 일렬로 북에서 남으로, 고도 약 9,500피트에서, 약 170도 방향을 향해 일정한 침로로 날고 있었다.
이들은 레이니어산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고, 처음엔 그냥 제트기겠거니 했다. 그러던 중 반사광이 어디서 온 건지 깨달았다. 두세 대씩 몇 초 간격으로 살짝 기우뚱하거나 침로를 미세하게 바꿨는데, 그 각도가 햇빛을 정통으로 받아 비행기까지 환하게 튕겨 보냈다.
물체들이 꽤 멀리 있어서 몇 초간은 형태나 편대 모양이 잡히지 않았다. 곧 레이니어산에 근접했고, 눈을 배경으로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
꼬리가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지만 어떤 종류의 제트기겠지 짐작했다. 시간을 재기로 마음먹었다. 통과 지점으로 삼을 만한 명확한 지표 두 곳이 있었고, 그날 공기는 50마일 떨어진 물체의 대략적인 모양과 크기까지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맑았다.
계기판에 달린 8일 시계의 초침이 오후 3시 1분 전을 가리키던 순간, 이 편대의 첫 물체가 레이니어산 남쪽 가장자리를 통과하던 장면이 또렷이 남아 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라 큰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페이지 위아래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혔다가 가로줄로 취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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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9
기밀로 분류된 이 진술서 페이지에서 목격자는 자신이 본 비행체들의 비행 모습을 이어 묘사한다. 비행체들은 산봉우리에 아주 가까이 붙어, 길게 뻗은 산맥의 등줄기를 따라 남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곧장 내려가고 있었다. 자기 고도를 기준으로 위아래로 약 천 피트쯤은 차이가 났을 수 있겠지만, 시야에 거의 수평선상에 들어왔으니 자신과 비슷한 고도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비행체들은 마치 한 줄로 묶인 것처럼 비스듬한 사슬 모양 대형으로 날아갔다. 거위 떼가 그렇게 나는 모습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일정한 방향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산봉우리를 사이사이 비껴 들락날락했다. 속도 자체는 특별히 인상 깊지 않았는데, 미군과 공군에 매우 빠른 비행기들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햇빛에 번쩍이며 휙휙 움직이는 비행체들을 보는 내내 그를 신경 쓰이게 한 것은 꼬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어떤 조종사라도 이런 비행기를 봤다면 한 번 이상 다시 살펴봤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비행체들을 또렷이 보았고, 거의 직각으로 떨어진 거리를 20에서 25마일 사이로 가늠한다. 화창한 화요일이었지만 그 거리에서 모양을 분간할 수 있었다는 것은 비행체들이 매우 컸다는 뜻이다. 그는 주머니에 있던 작은 도구를 꺼내 비행체와 왼쪽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DC-4 항공기 위에 각각 대보며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비행체들은 DC-4 보다 작아 보였지만, 너비는 DC-4 동체 양쪽 가장 바깥 엔진까지의 폭과 맞먹었으리라고 그는 짐작한다.
비행체들을 오래 볼수록 그는 점점 더 동요했다. 자신은 낮은 고도든 높은 고도든 웬만한 비행 물체에 익숙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 비행체들이 레이니어산과 애덤스산 사이에 있는 또 다른 눈 덮인 산등성이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적는다.
페이지 위쪽과 아래쪽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하단에 24166 이라는 페이지 또는 문서 번호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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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0
이 페이지에서 진술자는 비행 중 목격한 접시 모양 물체들의 이동 거리와 관찰 조건을 설명한다. 첫 번째 물체가 능선의 남쪽 봉우리를 지나갈 때 마지막 물체가 그 능선의 북쪽 봉우리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능선을 향해 날아가며 길이를 재 보니 약 5마일이었고, 따라서 이 접시 같은 물체들의 줄이 적어도 5마일은 된다고 판단할 수 있었다. 물체들의 경로 앞쪽과 뒤쪽에 여러 높은 봉우리들이 있어 그들의 이동 경로도 꽤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 대형의 마지막 물체가 애덤스 산 남쪽 끝의 높고 눈 덮인 봉우리를 지날 때, 그는 초침을 보았고 그들이 그 거리를 1분 42초 만에 이동했음을 확인했다. 당시에는 착륙하고 나면 자신이 본 것에 대한 설명이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이 시간 측정 자체가 그를 불안하게 하지는 않았다.
여러 신문기자와 전문가들은 그가 반사광이나 신기루를 본 것일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그것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 물체들을 비행기 유리창을 통해서만 본 것이 아니라, 비행기를 옆으로 돌려 창문을 열고 완전히 가려지지 않은 시야로 보았으며 선글라스도 끼지 않았다.
지상에 있는 사람에게 2분은 매우 짧게 느껴질 수 있지만, 공중에서는 조종사가 2분 동안 매우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시야 안에 있는 대상이라면 아마 쉰 번이나 예순 번쯤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그 뒤에도 해병대 비행기를 찾기 위해 15분에서 20분가량 더 수색했지만, 방금 본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점점 더 동요한 그는 티턴 저수지를 마지막으로 살펴본 뒤 야키마로 향했다. 마지막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며, 그는 이 물체들이 애덤스 산을 지날 때 번쩍이는 모습까지 따라볼 수 있었고 전체 관찰 시간이 약 2분이었다고 덧붙이려 한다. 페이지 위아래에는 기밀 표시가 있고, 하단 여백에는 손글씨로 보이는 표시와 쪽수 5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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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1
케네스 아놀드가 1947년 6월 24일 자신의 목격담을 이어가는 진술서의 한 페이지다. 물체들이 마운트 애덤스에 도달할 무렵에는 이미 시야에서 벗어나 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고, 햇빛이 한두 개 혹은 서너 개 유닛에 반사될 때는 완전히 둥글어 보였다고 적는다. 자신이 능력껏 그린 스케치를 동봉하며, 눈 덮인 능선과 마운트 레이니어를 지나는 순간 관찰한 형태를 그대로 옮겼다고 밝힌다. 물체들이 거의 수평으로 곧게 날 때는 검고 가느다란 선처럼 보였고, 몸체를 뒤집듯 기울인 순간에만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일정한 고도를 유지했고 로켓이나 포탄처럼 상승하거나 하강하지 않았으며, 본인이 아는 재래식 항공기와는 여러 면에서 맞지 않지만 어떤 형태로든 비행기의 일종이라고 확신한다고 적는다. 미국 전역에서 같은 종류의 보고가 나왔으며, 그중 자신이 본 것과 동일한 현상을 봤다고 인정할 만한 목격담이 여섯 일곱 건 있다고 짚는다. 구체적으로는 시더 시티 유타 출신의 웨스턴 에어 라인스 직원 세 명, 오클라호마 시티의 조종사들, 일리노이의 기관차 기관사, 그리고 유나이티드 에어 라인스의 스미스 기장과 부조종사 스티븐스를 꼽는다. 지상에서 관측한 경우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고 같은 물체였는지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함께 적는다. 대기 중 수분과 먼지가 시야를 왜곡할 수 있고 지상에서는 4~5초 이상 추적하기도 어려웠을 거라고 덧붙인다. 마지막 문단은 자신이 미국 전역에서 받은 편지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말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과 페이지 번호 7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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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2
케네스 아놀드가 자기 목격담을 직접 1인칭으로 적어 내려간 진술서의 중간 페이지다. 아놀드는 그날 망원 렌즈가 달린 영화 카메라가 있었다면 무엇이든 내주었을 것이라고 적고, 이제부터는 카메라 없이 다니지 않겠다고 말한다. 워싱턴주 야키마 공항에 착륙한 뒤 친한 친구 알 박스터에게 본 것을 설명했더니, 박스터는 끝까지 들어주긴 했지만 농담조로 믿지 않았다고 한다. 같은 날 오리건주 펜들턴에 착륙해 조종사 친구들에게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는 비웃는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유도 미사일이거나 새로운 무엇일 거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전직 육군 조종사 몇 명은 해외 전투에 투입되기 전에 비슷한 모양과 설계의 물체를 볼 수도 있다는 사전 브리핑을 받았다고 말하며, 아놀드에게 꿈을 꾼 것도 미친 것도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었다. 아놀드는 펜들턴에서 농약 살포 일을 하는 전직 육군 항공대 조종사 소니 로빈슨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로빈슨은 아놀드가 본 것이 미국 정부가 시험 중인 제트나 로켓 추진 비행체이거나, 외국 정부가 시험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아놀드는 자신이 그 물체들을 목격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 그날 밤 안에 전 세계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고 적고, 지금까지 비웃거나 의심하는 전화나 편지는 한 통도 받은 적이 없으며, 자신이 아는 유일한 불신은 신문에 인쇄된 것뿐이라고 덧붙인다. 끝부분에서 아놀드는 이 사건을 일부 사람들처럼 웃긴 일로 보지 않는다고, 자신에게는 매우 진지한 일이며, 길모퉁이의 존 도나 목장의 피트 앤드루스가 들어본 적 없는 무언가를 자기가 분명히 보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이라고 쓴다. 자신이 군에 공개적으로 조사를 요청했음에도 — 하는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분류 표시가 있고, 오른쪽 아래 여백에 손글씨로 "Ex 116" 이라는 증거 번호가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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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3
케네스 아놀드가 보이시 자택 주소(Box 387, Boise, Idaho)를 적어 서명한 진술서의 한 페이지로, 상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다. 아놀드는 FBI가 자신의 이야기의 진위나 자신의 능력을 두고 정신·신체 검사를 요구한 적이 없고, 두 기관(FBI와 군 정보부)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먼저 짚는다. 그는 자신이 UP·AP 통신과 라디오에 두 차례 한 보고가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한 모양인데, 만약 군 정보부가 자신이 본 것을 모르고 있다면 오히려 그쪽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먼저 의심해야 할 방문객이라고 비꼰다. 아놀드는 사람들이 추측을 보태달라고 요청해 오지만 자신은 이 글에서 분명한 사실만 적었고, 자신이 본 것은 자신에게도 세계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수수께끼라고 못 박는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조종사 면허번호가 333487이며, 와이오밍 애프턴에서 산악 비행을 위해 만들어진 고성능·고고도 3인승 단발기 캘레어 기종(국적 등록기호 NX33355)을 몬다고 신원과 장비를 밝힌다. 오른쪽 여백에는 아놀드가 직접 그린 도형과 함께 "이쪽으로 진행 / 위"라는 화살표 표시, "폭보다 길고 두께는 폭의 약 1/8"이라는 손글씨가 적혀 있어 그가 본 비행체의 모양 묘사를 보강한다. 아래쪽에도 "단단한 물체로는 보이지 않았다"는 취지의 손글씨와 두 번째 서명이 다시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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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4
1947년 7월 7일, 버지니아 랭글리필드의 전술공군사령부(TAC) 본부가 작성해 같은 사령부 정보참모(A-2) 앞으로 보낸 「특이 천체 현상 보고」다. 7월 11일 공군 정보부(AFOIN-CC)에 접수됐다. 1947년 6월 28일 밤, 앨라배마 몽고메리의 맥스웰필드에서 공군 인원 네 명이 목격한 사건을 정리한 문서로, 목격자는 TAC 본부의 윌슨 H. 케이코 대위, TAC 비행대대의 존 H. 캔트렐 대위, TAC 본부의 시어도어 디윅 중위, 그리고 맥스웰필드의 레드먼 대위였다.
중부 시간으로 밤 9시 20분쯤, 별보다 조금 더 밝은 빛 하나가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 달이 환한 맑은 밤이었고, 그 빛은 지평선 위에서 처음 눈에 띈 뒤 동쪽으로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고도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상당히 높이 떠 있는 듯했다. 움직임이 특이했다 — 갈지자로 꺾이며 자주 속도를 짧게 폭발시켰는데, 물 위를 튀어다니다 멈추는 물벌레와 비슷했다. 그러다 관측자들의 머리 바로 위까지 와서는 진로를 남쪽으로 90도 꺾었다. 그런 식으로 5분쯤 더 움직인 뒤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달빛에 묻혀 사라졌다. 밤 9시 45분에는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목격 직후 맥스웰필드 작전실에 전화해 그 일대에서 비행 예정인 실험기가 있는지 물었지만, 답은 없다였다. 보고서는 이 빛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항공역학 법칙에 어긋난다고 적고, 그럴듯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고 밝힌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 이상 비행물체 목격 보고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요청에 따라 작성해 올린다는 점도 함께 밝힌다. 네 명의 목격자 가운데 두 명은 자격을 갖춘 조종사, 나머지 두 명은 항공정보 장교였고, 모두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상태였다고 명시한다. 마지막으로 빛의 대략적인 궤적을 그린 스케치를 첨부했다고 적었다. 문서는 케이코 대위의 서명으로 끝난다. 상단과 하단에는 「RESTRICTED」 도장, 우측 하단에는 ⑤ 표시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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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5
관측자가 직접 그린 목격 위치 약도다. 위쪽에 N, 아래에 S, 양옆에 W·E 가 적혀 방위를 표시하고, 북쪽 하늘에는 별자리 모양으로 십자(별) 표시들이 흩어져 있으며 그중 하나에 "Polar St."(북극성) 라벨이 붙어 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점선으로 능선 또는 지평선이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위로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Course of light"(빛이 지나간 경로) 화살표가 들어오며, 빛이 정지하거나 사라진 지점은 굵은 X 표시로 표기한다. X 아래에는 "Observers"(관측자들) 위치가 화살표로 가리켜져 있고, 남쪽 방향에는 작은 동그라미로 "moon"(달) 위치가 표시된다. 페이지 상단과 우하단에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고, 우하단에 페이지 번호 94 가 손글씨로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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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6
1947년 7월 18일, 미 해군 연구소(NRL) 아미 리에종 오피스(Code 110)가 육군항공대(AAF) 정보참모부 산하 수집과(Asst Chief of Air Staff-2, Collection Branch)에 보낸 비식별 비행 물체 목격자 면담 보고서다. AAF A-2의 G. D. 개럿 중령 요청으로, NRL 로켓 손데 섹션의 행정보좌관 C. H. 존을 면담했다. 존은 6월 29일 뉴멕시코 화이트 샌즈에서 비식별 비행 물체를 봤다고 언론에 흘렸던 인물이다.
면담 내용 요지는 이렇다. 1947년 6월 29일 일요일 오후 1시에서 1시 30분 사이, 존은 NRL 로켓 손데 섹션 텔레메트링 감독 J. R. 카우케, NRL 로켓 손데 고고도 분광기 과학자 C. C. 록우드, 록우드의 부인 낸시 록우드와 함께 라스크루세스에서 화이트 샌즈 V-2 발사장으로 17번 고속도로를 북동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다. 운전은 카우케가 맡았다. 라스크루세스에서 1/3쯤 갔을 무렵, 운전 중이던 카우케가 문제의 물체를 먼저 발견해 다른 일행에게 알렸다. 존은 옆 창문을 열고 물체를 관찰했다 —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고도는 약 1만 피트로 추정했다. 카우케도 자기 쪽 열린 창문으로 보면서 8천~1만 피트라고 했다. 다만 존 본인은 그 추정값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물체는 처음 발견했을 당시 차의 오른편 앞쪽, 고도는 가늠 안 되는 위치에 있었고, 수평으로 북쪽을 향해 — 즉 도로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지르듯이 — 이동하고 있었다. 차 안 일행 모두가 봤다. 존은 물체의 세부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모양이 균질했고 비행기 날개 같은 돌출부는 없었다는 정도만 말했다. 너무 멀어 입체적으로 볼 수도 없었다. 햇빛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빛이 보였고, 물체가 멀어지면서 그 강도가 변하다가 처음 발견 후 약 30초 만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설명할 수 없었고, 반사각이 갑자기 바뀐 탓일 수 있다고만 했다. 그 시각 구름이나 시야를 가리는 요소는 없었고 해는 차 뒤쪽에 있었다. 카우케는 한 번은 비행운 같은 것을 봤다고 했다.
오른쪽 위 여백에 'BIR 8'이 손글씨로 쓰여 있고, 페이지 하단에 동그라미 안에 숫자 6이 도장처럼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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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7
이 페이지는 1947년 7월 18일 ALO(Air Liaison Officer)가 NRL(해군 연구소)에서 작성해 AAF 항공참모차장 수집과로 보낸 「미확인 비행체 목격자 면담 보고」의 두 번째 장이다. 면담은 로켓 존데 부서장 대행인 M. H. 하월 박사가 배석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면담 대상자 존 씨는 최근까지 해군에 복무해 대부분의 항공기 종류와 기상 관측용 풍선의 외형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명시한다. 보고서는 차 안에 있던 일행 중 누구도 술에 취해 있지 않았다는 존 씨의 진술도 함께 적는다. 본문 아래에는 항공군단 소령이자 AMC 연락장교인 윌리엄 P. 멜런의 서명과 직함이 들어가 있어 이 두 번째 장이 보고서의 마지막 면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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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8
FBI 인터뷰 보고서다.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신고한 유나이티드 항공 조종사 E. J. 스미스 기장과 부조종사 랠프 스티븐스를 면담한 기록으로, 스미스 기장 면담은 1947년 7월 9일 18시에 진행되었다.
스미스 기장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비행기는 태평양 표준시 20시 5분 아이다호 보이시를 이륙해 펜들턴(오리건)으로 향했다. 20시 15분쯤 아이다호 산맥 부근, 고도 약 6,500피트에서 순항고도 8,000피트로 상승하던 중 부조종사 스티븐스가 첫 번째 물체를 가리켰다. 당시 기수는 자북 300도였고, 물체는 좌측 10도 방향인 290도에 보였다. 곧이어 첫 물체 왼쪽으로 작은 물체 네 개가 더 나타났는데, 다섯 모두 같은 평면에 있었다. 스미스는 물체들의 고도를 약 8,500피트로 추정했다. 약 2분간 시야에 있다 사라졌다.
1~2분 뒤 두 번째 무리가 우측 310도 방향에 나타났다. 고도는 첫 무리와 같았고, 세 개는 같은 평면에, 한 개는 조금 더 높고 오른쪽에 있었다. 이 무리는 12~15분간 시야에 머물다 사라졌고, 그때쯤 비행기는 이미 수평비행에 들어가 있었다.
물체들은 밑면이 평평했고 윗면은 약간 거칠어 보였다. 크기는 약 5마일 떨어진 DC-4와 비슷해 보였다. 거리가 더 멀면 그만큼 더 큰 비행체였을 텐데, 정체를 모르니 DC-3 날개폭(30피트) 정도라고 가정하고 약 5마일 거리로 추정했다. 다만 실제 거리는 알 수 없다. 물체들은 한 번도 가까이 다가오지 않아서, 멀어지거나 다가오는 중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오래 시야에 머문 걸 보면 아주 빠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시속 300마일 정도로 짐작한다.
개인적 인상은 이렇다.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변화했다. 처음에는 천천히 움직이며 한참 보였지만, 사라질 때는 거의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갑자기 엄청난 가속을 했거나 흩어져 버린 것 같다. 또 다섯 개 중 큰 물체 하나만 직접 제어되고 나머지는 그 물체가 통제하는 듯했으며, 전체적으로는 지상에서 조종받는 것 같다는 인상이었다.
페이지 좌상단에는 사본 표기 'COPY' 가 있고, 하단 우측에는 페이지 번호 97 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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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9
이 페이지는 1947년 7월 4일 보이시 출발 항공편 부조종사 랠프 스티븐스(Ralph STEVENS)의 진술을 옮긴 사본의 2쪽이다. 페이지 맨 위에는 기장 스미스의 발언이 이어지는데, 사고 두 차례 모두 부조종사가 먼저 물체를 보고 자기를 불렀고, 그날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바람은 남서쪽에서 시속 10마일, 비행기 속도는 약 135마일, 해는 이미 수평선 아래로 떨어져 물체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으로만 보였기 때문에 색이나 반사를 구별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아래로 면담관의 정리가 이어진다. 스티븐스는 1947년 7월 9일 21시 30분에 면담을 받았고, 비행 시각·물체를 본 시각·비행 방향 등 스미스의 진술을 거의 그대로 확인해 줬다. 다만 두 사람 진술이 어긋난 부분이 두 군데 있었는데, 작은 물체들의 크기와 비행 고도였다. 스티븐스 쪽 설명으로는 큰 물체와 작은 물체의 크기 차이가 컸고, 작은 쪽은 모양을 가려내기가 어려웠다. 또한 그 물체들이 자기 비행기와 같은 고도에서 함께 상승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스티븐스 본인의 진술은 따옴표 안에 옮겨져 있다. 7월 4일 20시 12분, 보이시 이륙 8분 뒤에 첫 물체를 봤다. 처음에는 약 5마일 앞에서 마주 오는 DC-3 같은 항공기로 알고 착륙등을 켰다. 그쪽에 우리가 있다는 표시였다. 스미스에게 알리고 둘이 같이 지켜보던 중 같은 고도에 네 개가 더 나타났다. 자기 비행기 고도는 약 6,000피트, 물체들은 자기 비행기 자기장 기준 북쪽 약 290도 방향으로 향하고 있어 자기도 그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4~5분쯤 지켜보다가 다섯 개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사라졌고, 그게 비행선 위로 합쳐진 건지, 시야 밖으로 나간 건지, 흩어진 건지 자기는 모른다고 한다.
그로부터 2분쯤 뒤, 큰 물체 하나가 다시 나타났고 왼쪽에 작은 것 세 개, 오른쪽 멀리 작은 것 하나가 함께 보였다. 이 두 번째 무리는 약 12분 동안 보였고, 마지막 순간까지 같은 대형을 유지한 채 석양 속으로 사라졌다. 마지막에 봤을 때 자기는 9,000~10,000피트 정도까지 올라온 상태였는데, 물체들은 자기보다 더 올라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 시간대에 해는 수평선 아래로 떨어진 뒤였지만, 일몰 직후 수평선 위로 붉은 빛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거리가 얼마나 됐는지는 그 물체가 무엇이고 얼마나 큰지를 모르니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지켜보던 중에 약 30마일 떨어진 오리건주 온타리오 기상관측소에 무전으로 상황을 알리고 밖에 나가서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고, 저쪽에서도 무전으로 답해 왔다는 데서 페이지가 끊긴다. 페이지 좌측 상단에는 "COPY" 표시, 하단에는 페이지 번호 "-2-" 와 사건 묶음 표시로 보이는 "98" 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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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0
보고서 마지막 장이다. 부조종사 스티븐스의 진술이 이어진다. 비행기와 온타리오 사이에 물체가 있다고 알려 줬는데도 온타리오 쪽에서 아무것도 못 본 건, 물체가 오히려 온타리오 너머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그는 짚는다. 게다가 온타리오 직원들은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는 입장이었으니 애초에 보기 어려웠을 거라고 덧붙인다.
스티븐스는 본인이 본 게 사람이 만든 원반인지 아닌지, 무선으로 조종되는지 아닌지, 자기는 단정할 수 없다고 한다. 첫 무리가 합쳐질 때를 빼면 물체들은 거의 기동을 하지 않았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자기 비행기와 같은 방향으로 가면서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구름이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이런 식으로 보였다면 그 자체가 지금까지 본 어떤 것과도 다른 현상이었을 것이다. 물체들 사이에는 크기 차이가 컸다. 작은 것은 모양을 알아보기 힘들었고, 반짝이지도 "플립" 동작을 하지도 않았다. 법정에서 구름이 아니었다고 맹세하라면 못 하겠지만, 구름이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구름이었다면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지 않았을 테고, 자기들도 그 쪽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보이시 공항에서 이륙하려 활주로로 나가던 중에 관제탑이 무전을 걸어 와 최근에 원반을 본 적 있느냐고 물었고, 그 때문에 자기들끼리 비행 원반 이야기를 하던 참에 물체를 봤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렇다고 상상이 만들어 낸 환영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자기와 스미스 둘 다 같은 것을 봤고, 두 번째 무리에서 멀리 떨어져 오른쪽으로 빠진 물체까지 똑같이 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대화에 끼지 않고 있던 객실 승무원까지 불러서 "원반"이라는 단어를 빼고 무엇을 봤느냐고 물었는데, 승무원도 자기들과 같은 것을 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환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는 얘기다.
위 진술 뒤에 스티븐스는 비공식으로 한 마디를 덧붙인다. 스미스가 받는 언론 주목에 자기는 좀 실망했고, 스미스가 다소 "잘난 척"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본인은 기자 인터뷰에 응할 생각도, 라디오에 출연할 생각도 없다. 해군 측 인사나 다른 정부 관계자와 이야기하는 것은 얼마든지 협조할 수 있지만, 신문사·라디오 방송국과 줄줄이 인터뷰를 하고 싶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보고서 작성자는 스티븐스를 매우 침착하고 분별 있는 사람으로, 떠들썩한 보도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로 봤다. 같은 분별 있는 사람이지만 스미스는 본인이 받는 주목을 오히려 즐기는 쪽으로 보였다고 덧붙인다. 본문은 여기서 "- end -" 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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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1
1947년 7월 15일자 메모로, 4군 방첩대 특수요원 프랭크 W. 브라운이 담당 장교에게 올린 보고서다. 사건 번호는 LAF 1305 I. 1947년 7월 12일, 유나이티드 항공의 스미스 기장을 아이다호주 보이시 시영 공항에서 면담했다. 스미스 기장은 정기편으로 보이시를 경유하던 중이었고, 20분간 머무는 사이에 면담이 이루어졌다. 그는 7월 4일 밤늦은 시각, 보이시를 떠나 시애틀로 향하던 항로에서 이륙 9분 만에 목격한 것에 관해 이미 언론에 했던 진술을 그대로 다시 들려주었다. 면담자는 스미스 기장이 차지한 직위를 감안할 때, 이런 종류의 보고에 따라붙기 마련인 조롱을 감수하면서까지 입을 열려면 그가 실제로 비행 원반을 보았다고 아주 강하게 확신해야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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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2
1947년 7월 16일자로 육군 항공사령부 워싱턴 본부에 접수된, 아치 B. 브라우닝 육군 항공대 소령의 선서 진술서다. 브라우닝은 자기가 아는 한 다음 내용이 사실임을 맹세한다고 적은 다음, 열흘 전인 7월 6일의 목격담을 풀어 놓는다. 그날 그는 B-25 폭격기를 몰고 유타주 오그덴에서 미주리주 캔자스시티로 향하던 중이었고, 고도 1만 피트 상공에서 왼쪽 아래 약 40마일 떨어진 곳에 아주 밝게 빛나는 물체 하나를 봤다. 시각은 오후 1시 45분, 위치는 캔자스시티 동쪽 약 100마일 지점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급수탑 꼭대기인 줄 알았다. 지도로 위치를 확인하고 3초쯤 지나 다시 왼쪽을 봤을 때, 그 물체는 둥근 원반 모양으로 매우 밝고 은빛으로 빛나면서 11시 방향 좌현 한두 마일 옆을 1만 1천 피트 고도로 따라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지름은 30~50피트 정도로 가늠했고 밝기는 무척 강렬했다. 같은 방향, 같은 속도(시속 210마일)로 비행하는 듯하다가 자신이 기수를 그쪽으로 틀자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기상은 CAVU(시계 무제한)였다고 적었다. 본문 아래에는 브라우닝의 서명과 직함이 들어가 있고, 왼쪽 여백에는 '이 장교는 펜타곤 AC/AS-1에 배속, 전화 73852'라는 손글씨 메모가, 오른쪽 아래에는 'AFBIR-CO 1947년 7월 16일 접수' 표시가 보인다. 페이지 하단의 동그라미 친 9는 문서철 내 단수 번호로 보인다. '첨부 도면 참조'라는 손글씨도 함께 적혀 있어, 진술과 함께 비행 위치 다이어그램이 별도 첨부됐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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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3
본문 텍스트가 없는 손그림 도면 페이지. 가운데에 작은 비행기 실루엣이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그려져 있고, 그 주변 여러 위치에 아주 작은 표식이 점처럼 흩어져 있다. 오른쪽에는 작은 원 하나가 따로 떠 있다. 비행 중 목격된 물체들의 상대 위치를 비행기를 기준으로 표시한 스케치로 보인다. 상단에는 바인더용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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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4
1947년 7월, 페어필드-수이슨 육군 비행기지의 제임스 H. 버니스턴 대위가 정보부 소속 윌리엄 J. 프레이저 대위와 요니 스튜어트 병장 앞에서 작성한 자발적 진술서다. 진술서 머리에는 전쟁법 26조에 따른 권리와 특권을 고지받았으며, 강압이나 보상, 면책 약속 없이 자유 의사로 진술한다고 밝혔다.
버니스턴은 7월 6일 일요일 페어필드-수이슨 기지에서 아내와 함께 있을 때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이동하는 물체를 목격했다고 진술한다. 추정 고도는 1만 피트 이상이고, 같은 고도에서 자기가 본 어떤 비행기보다 빠른 속도였다. 약 60초 동안 시야에 있었으며, 그 시간 동안 보이는 하늘의 4분의 3 정도를 가로질러 이동했다. 형태나 명확한 색깔은 구별할 수 없었지만, 물체는 하늘을 가로지르는 동안 세 번 좌우로 굴렀다. 한 번은 햇빛이 표면에 강하게 반사되며 번쩍이는 순간 위쪽이 보였고, 다른 순간에는 햇빛 반사 없이 아래쪽이 보였다. 그 고도에서 크기는 C-54형 비행기 정도로 추정했다. 위쪽이 보이는 순간과 아래쪽이 보이는 순간 사이에는 잘 보이지 않거나 거의 사라지는 시기가 있었다.
형태에 관해서는, 속도와 공중에서의 움직임 때문에 모양을 알아볼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물체는 지면에서 약 30도 각도로 사라지며 시야에서 놓쳤다. 멀리서 들리는 비행기 엔진 소음 때문에 이 물체에서 나는 소리는 알 수 없었다. 시간은 아내가 확인했고,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정체에 대해서는 자기가 아는 어떤 비행기 형태와도 달랐다고 진술한다. 날개나 동체 같은 형태가 없었고, 햇빛이 표면에 반사되는 순간 처음 알아챘으며, 그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그 속도였다.
진술서 아래에는 버니스턴의 자필 서명과 함께 "항공정보국 본부(AFBIR-CO)가 1947년 7월 23일 접수"라는 손글씨 메모가 있다. 좌측 하단의 큰 손글씨 "10"은 케이호 파일 안에서 이 진술서가 차지하는 자리(10번째)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단에 RESTRICTED 도장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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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5
1947년 7월 7일 위스콘신 윙 본부 (밀워키) 의 민간항공순찰대 (Civil Air Patrol) 가 워싱턴 볼링 필드의 AAF 사령관에게 보낸 비행접시 보고서다. 7월 11일 AFB1R-CO 가 접수 도장을 찍었다. 두 대의 비행기에서 비행 중이던 네 명의 목격자가 진술한 내용을 정리했다고 시작한다. 그날 날씨는 CAVU, 시계는 매우 좋았고, 6천 피트 상공에 적운이 흩어져 있었다. 첫 번째 보고는 위스콘신 표준시 11시 35분, 관측자는 지상 5500피트 상공, 비행접시는 4천 피트 MSL 에 있었다. 카슈코농 상공에서 처음 잡혔고, 카슈코농에서 엘크혼까지 25마일을 15초 만에 가로질렀다 — 시속 6천 마일이다. 두 번째 보고는 같은 날 오후 2시 30분, 관측자는 3500피트, 접시는 2500피트에 있었다. 이스트트로이의 두 사람이 이글에서 델라반까지의 22마일을 20초 만에 통과하는 모습을 봤다 — 시속 3960마일에 해당한다. 비행 패턴도 적었다. 첫 관측에서 접시는 구름을 가로지르며 옆날로 수직 강하하다가 4천 피트에서 멈춰 수평으로 자세를 바꿨고, 15초 동안 25마일을 수평 비행한 뒤 다시 멈춰 사라졌다. 두 번째 관측에서는 20초 동안 22마일을 수평 자세로 날았다. 이 시점에서 조종사가 자기 비행기의 글라이드 컴파트먼트에서 진로를 바꾸자 접시가 사라졌고, 10마일쯤 더 항로를 따라간 뒤 8초 만에 다시 나타났다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다고 적었다. 첫 두 목격자는 엘크혼 공항에서 막 이륙한 교관과 학생이었고, 두 번째 조의 한 명은 위스콘신 윙 연락 장교 R. J. 사우디 대위였다. 서명자는 존 D. 슈몰러 주니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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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6
1947년 7월 10일 캘리포니아 샌버나디노 항공기지 사령관(CG SBAAA)이 워싱턴 D.C. 육군항공대(AAF) 사령부 정보참모부 방첩과, 제6군 사령부, 새크라멘토 ANA 경유 항공자재사령부(AMC) 본부에 보낸 기밀 전문이다. 7월 8일 15시 50분(태평양 표준시), 제96전투비행대 소속 앨빈 E. 모어먼 중위가 P-51 전투기를 몰고 시정 2만 피트 상공에서 정기 시험 비행을 하던 중 빛을 반사하는 평평한 물체를 목격했다. 그 물체는 지느러미도 보이는 날개도 없이 움직임 없이 떠 있었고, 두께는 P-51 한 대 정도였으며, 고도는 약 3만 5천 피트, 위치는 북위 34도 5분, 서경 117도 30분이었다. 약 30초간 관측되었다. 같은 날 15시 50분 5초경 마운트 볼디 상공, 고도 약 5만 피트, 북위 34도 20분, 서경 117도 47분 부근에서 같은 물체가 다시 관측되었다. 모어먼 중위는 물체를 시야에 두려고 시도했으나 따라잡지 못했다. 당시 P-51의 속도는 약 시속 300마일로 상승 중이었다. 마치 필드를 비롯한 인근 기지들에 확인했으나 공중에 띄운 자기 기체는 없다는 답을 받았다. 좌측 여백에는 'Started on AAFB'라는 손글씨와 'Received AFOR-CO 14 July 47'라는 접수 도장이 남아 있고, 하단에는 'ACTION COPY 13'이라는 큰 원형 도장이 찍혀 있어 이 사본이 13번 결재용 사본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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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7
FBI 파일에 끼워 둔 손글씨 진술서 한 장이다. A-1 장교 부서 소속 브라우닝 소령(Maj Browning)이 캔자스 클레이 센터, 토피카 북서쪽 상공에서 본 것을 적은 내용. 그는 B-25 를 시속 200 마일, 고도 1만 400 피트, 방위 90도로 몰고 있었고, 방위 100도 방향에 자기 항공기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서 물체를 처음 봤다. 처음에는 급수탑인 줄 알았지만, 1마일쯤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보니 비행익(flying wing) 같으면서도 수직으로 떠 있고 거의 완전히 둥근 형태였다. 연기도 없고 불꽃도 없었다. 그가 기수를 그쪽으로 돌리자 물체는 거의 곧바로 사라졌다. 너무 빠르게 사라져서 초음속이었을 거라고 그는 본다. 그 시각 부조종사는 졸고 있었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물체가 사라진 뒤였다. 처음에는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가, 너무 빠르게 다가왔고, 멈추는 것 같더니 사라졌다고 적었다. 캔자스시티에는 중부 시간 14시에 착륙했고, 이 일은 대략 13시 15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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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8
1947년 7월 14일 23시 22분(Z), 뉴욕 포트 토튼의 항공기술·연구 사령부(CG AT&D ATC)가 항공운송사령부(ATC) 참모장 앞으로 보낸 전문이다. 뉴펀들랜드 기지사령부에서 올라온 '플라잉 디스크' 면담 요약을 그대로 전달하는 형식이다.
뉴펀들랜드 경찰의 에릭 키어니(Eric Kearney) 순경이 7월 9일 새벽 2시 30분, 뉴펀들랜드 그랜드 폴스 상공에서 달걀 모양의 인광색 원반 네 개를 보았다고 보고했다. 10분 뒤에는 같은 종류의 원반 한 개가 더 나타났다. 처음 본 네 개는 가까이 붙어 한 줄로 늘어선 듯한 대형으로 지면과 평행하게 동쪽으로 움직였고, 뒤따른 한 개는 덜 또렷했지만 같은 방향으로 갔다. 키어니는 고도를 대략 3만 피트로 잡았고, 매우 빠르게 움직이다가 몇 초 만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모양은 술통 뚜껑 또는 달걀 같았고, 꼬리 쪽에 검은 점이 있었으며 연기 자국은 없었다. 또 다른 목격자는 원반 모양을 '세 잎 클로버'에 비유했다고 키어 순경이 전했다. 그랜드 폴스 중계국 책임자가 면담 당시 시계가 양호한 맑은 날씨(CAVU)였음을 확인해 주었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우측 하단에는 'Received AFBIR-CO 15 July' 라는 손글씨 접수 표기가 남아 있어 워싱턴 측이 다음 날 받아 든 전문임을 보여준다. 좌측 하단 동그라미 안의 14 는 일련번호이고, ATC CM-IN X0044 는 항공운송사령부 인입 메시지 식별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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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9
1947년 7월 15일 18시 15분, 뉴펀들랜드 스티븐빌에서 발신된 "RESTRICTED" 등급의 우선 분류 전문이다. 워싱턴 D.C. 의 SAC (전략공군사령부) 정보 담당과 뉴욕의 ATC, 페퍼렐 기지 등으로 동시 송신됐고, 발신자는 제1108 AAF 부대 사령관, 회신 코드는 BFK 0918 이다.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47년 7월 10일경 뉴펀들랜드 하먼 필드 상공 약 1만 피트 고도에서 비행접시 한 대가 목격됐다. 진행 방향은 북북동, 날씨는 맑았고 8000~1만 피트 사이에 적운이 산재해 있었다. 색은 은빛이었다. 처음 발견한 사람은 하먼 필드에서 남남서 방향 약 6마일 지점에 있던 셰리던 씨와 FAA 측 우드러프 씨 두 사람이다. 비행접시는 1만 피트 고도의 C-54 수송기와 비슷한 크기로 보였고, 마차 바퀴처럼 둥근 형태였다. 구름을 가르고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으며 뒤로는 약 15마일에 달하는 푸르스름한 검정 자취를 남겼다. 그 자취는 고출력 착륙등이나 오렌지색 조명을 껐을 때 잠시 남는 빔과 비슷했다. 코다크롬 컬러 사진을 촬영했고 본토에서 현상 중이며, 사진은 우드러프 씨가 받는 대로 전달될 예정이다. 페이지 좌측 하단에는 "Maj Kimball 16/7/47" 서명, 우측 하단에는 "Received APBIR-CO 16 July 47" 수기 메모, 가운데 동그라미 안에 "15" 번호가 표시돼 있어 사본이 7월 16일 APBIR-CO 측에 접수되었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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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0
1947년 7월 14일 12시 21분에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의 제59 AACS 그룹에서 보낸 우선전문이다. 수신처는 본부 정보참모부장이고, 분류는 기밀(CONFIDENTIAL)이다. 본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름이 약 10피트 정도인 회색빛 풍선을 닮은 물체가 엘멘도르프 기지에서 관측되었고, 산맥의 능선을 따라 약 5마일 떨어진 지점에서 북서 방향으로 비행했다. 비행 고도는 1,500피트, 속도는 시속 100마일 정도로 추정된다. 시속 20마일의 바람을 안고 북서쪽으로 착륙 중이던 7월 4일자 찰리 비행기와 나란히 비행하는 모습이 관측되었다. 본부의 그라우브 소령이 1043Z 시각부터 수 분간 이 물체를 관측했고, 알래스카 사령부 소속 여러 장교들도 그의 진술을 뒷받침했다. 우측 하단에는 7월 14일에 AFBIR-CO가 수령했다는 손글씨 표기가 있고, 페이지에는 16번이라는 동그라미 표시가 매겨져 있다. 하단의 처리 지침에는 의역(paraphrase)이 필요하지 않으며 AR 380-5(1946년 8월 15일자)의 31항 및 60a(4)항에 따라 처리하라고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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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1
1947년 7월 12일 00시 47분(Z), 알래스카 엘멘도르프 기지의 59th AACS Group이 정보참모부 차장(ATTN ASSISTANT CHIEF OF STAFF INTELLIGENCE) 앞으로 보낸 ROUTINE 등급의 기밀(CONFIDENTIAL) 무전 메시지다. 본문은 이렇게 보고한다. 지름 약 3피트의 알루미늄 색 풍선처럼 보이는 물체가 고도 미상에서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것이 목격됐다. 관측은 엘멘도르프 비행장 인근에서 1947년 7월 11일 1100Z 시각에, 본 사령부 소속 페리 대령(Colonel Perry)과 가이저 소령(Major Geyser)이 직접 했다고 적었다. 메시지 하단에는 "패러프레이즈 불필요, AR 380-5(1946년 8월 15일자) 511항 및 6-a(4)항에 따라 기밀 통신으로 취급할 것"이라는 처리 지침이 달려 있다. 오른쪽에는 손글씨로 "AFBIR.10에서 1947년 7월 14일 접수"라는 메모가 적혀 있고, 좌하단에는 큰 원 안에 손글씨 페이지 번호 17이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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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2
메릴랜드주 프로스트버그 메인 스트리트 390번지에 사는 하워드 A. 플러머가 1947년 7월 21일 워싱턴 D.C. 육군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다. 플러머는 7월 20일 일요일에 비행 중인 어떤 물체를 목격했고, 이것이 최근 화제가 된 비행접시 미스터리에 새로운 단서를 줄지 모른다고 운을 뗀다. 자신은 1942년부터 1946년까지 4년간 육군 항공대에서 병장으로 복무하며 제4공군과 제12공군에 배속됐고, 그 시기에 온갖 종류의 항공기를 직접 관찰할 기회가 있었다고 밝힌다. 그날 오후 4시쯤 그가 본 물체는 둥글고 거의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이었으며, 워싱턴과 피츠버그 사이의 한 비행장 북쪽 상공을 북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렀다. 관측 지점은 컴벌랜드에서 동쪽으로 약 30마일 떨어진, 포토맥 강 북쪽 기슭이었다. 마지막 단락은 고도와 비행 조건을 설명하려는 듯하지만 글씨가 흐려 일부 단어를 알아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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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3
한 목격자가 머리 위를 지나간 비행체를 묘사한 손글씨 진술서다. 비행체가 다가올수록 소리가 점점 커졌고, 그 소리는 제트기와 비슷했지만 음량이 비정상적으로 컸다고 한다. 목격자는 비행체가 머리 위를 지날 때까지 보지 못했고, 빈터 위를 지나는 약 20초 동안에야 또렷이 보았다. 비행체는 가장 높은 구름층 위, 대략 15,000피트 고도에 있었다. 오전 9시 43분에는 DEW 항공기 한 대가 같은 방향과 항로를 약 5,000피트 고도로 지나갔다고 적었다. 목격자는 그 비행체와 DEW 항공기의 차이를 다섯 항목으로 나누어 적었다. 첫째, 형태가 분명히 달랐다. 둘째, 거의 흰색이었고 중앙에 무언가가 있었다. 셋째, 매연이나 제트 소리의 흔적이 없었다. 넷째, DEW 항공기보다 서너 배 크게 보였다. 다섯째, 눈 앞에 손을 들어 가린다면 그 정도 크기였을 거라고 비교했다. 마지막에 "우리의 결론은 여기까지"라는 식의 마무리 문장이 따른다. 페이지 우측 하단에 10 B 라는 페이지 표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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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4
손글씨로 이어진 진술의 뒷부분이다. 작성자는 자기가 본 비행체에 대해 두 가지를 적는다. 첫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항공기다. 둘째, 고출력 제트 추진 항공기인데, 꼬리 조립부와 날개 끝을 가리기 위해 일종의 낙하산형 덮개를 단 것으로 보인다 — 그 두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성자는 같은 시각 그 지역을 지나간 항공기를 조사하면 이 수수께끼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하고, 가능하다면 자기도 그 답을 꼭 알고 싶다고 덧붙인 뒤 서명으로 진술을 맺는다. 페이지 위쪽에는 파일 편철 자국이 세 군데 뚫려 있고, 아래쪽 오른편에 페이지 번호 111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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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5
일리노이주 와츠카의 셰리프 멀 T. 윌모스가 보낸 소포에 대한 보고다. 셰리프의 편지에 따르면, 일리노이주 댄포스의 한 농부가 자기 농지 한가운데서 이 기구를 발견했다. 물체가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지름 1.5피트(약 45cm) 가량 잡초가 곱게 재가 되도록 타 있었고, 잡초 키는 2.5피트(약 75cm)였다. 기구의 구성은 다섯 부분이다. 첫째, 가운데가 타원형으로 비어 있는 석고 본체. 둘째, 그 타원 한쪽 끝에 나사로 결합되는 파워 마이크로폰으로, 솔트레이크시티의 "Nathaniel Baldwin Inc." 제품이며 1910년 5월 10일과 1915년 9월 14일자 특허 번호가 새겨져 있다(특허번호 하나는 957493, 다른 하나는 판독 불가). 셋째, 소형 "Polymat" 필터 콘덴서. 넷째, 가는 구리선을 감은 베이클라이트 원통 두 개로, 명백히 코일이지만 충격으로 구리선이 코어에서 뜯겨 나갔다. FBI 무선과는 이 코일이 이미 더 작고 효율적인 코일로 대체된 구식이거나, 상당히 오래 사용된 물건이라고 단정한다. 다섯째, 자성을 띤 금속 조각인데, 충격으로 파워 마이크로폰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석고 본체는 충격으로 부서졌지만, 일부 조각은 안쪽에 보강된 철사로 묶여 있어 흩어지지 않았다. 한편 FBI 짐머 요원이 휘던 부인(JB 274 내선 73909, Jig C)에게 이 물체를 보여줬는데, 그녀는 자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짐머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손글씨 서명 두어 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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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6
1947년 7월 16일, 버지니아 리치먼드의 미 농무부 소속 조지 A. 라이트가 워싱턴의 로젠 지역사무소장 앞으로 보낸 "비행접시" 보고 메모다. 라이트는 파일럿 풍선을 띄워 관측하던 중 동료들이 본 금속성 비행체를 보고하기를 망설였다고 운을 뗀다. 비행접시 자체에 대한 사회적 회의가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 신문이 미국 정부도 이런 비행체에 대한 권한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한 이상, 외국에서 온 물체로 봐야 한다고 판단해 이 보고를 올린다. 라이트는 만약 다시 목격하게 되면 풍선을 떨어뜨리고 대신 그 디스크를 추적 관측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클론체프스키 직원은 지난 6개월 사이 파일럿 풍선을 테오돌라이트로 추적하던 중 이 금속성 디스크를 세 차례 봤다. 배론 양도 한 번 봤는데 다른 부분은 일치했지만 색을 둔한 금속 광택으로 보고한 점만 달랐다. 클론체프스키가 가장 최근에 본 것은 1947년 4월, 풍선이 약 1만 3천 피트 상공에 떠 있을 때였다. 디스크는 15초 동안 관측소 북쪽 멀리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수평으로 이동했다. 평평한 바닥에 둥근 돔형 상부를 가진 타원형 금속체였고, 풍선만 한 크기로 보였으며 은처럼 빛났다. 속도나 고도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상당히 빠르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배론이 본 것은 풍선이 약 2만 7천 피트에 있을 때였다. 관측 당일은 모두 맑거나 구름이 거의 없는 좋은 시야였다.
메모지 오른쪽 윗부분에는 "Restricted" 라는 손글씨 분류 표시와 FBI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어, 농무부 현장 직원의 목격 보고가 곧바로 FBI 라우팅 절차에 올라탔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