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 Department of War · PDF (28p) · 12/30/47

"실재하며 환각이 아니다" — 1947년 미 항공자재사령부의 플라잉 디스크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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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말, 오하이오주 라이트 필드의 미 항공자재사령부(Air Materiel Command, AMC)가 "플라잉 디스크"를 주제로 워싱턴의 미 공군 본부와 주고받은 공문 묶음이다. 28페이지 분량으로, 1947년 8월부터 12월 사이에 작성된 보고서, 서신, 내부 라우팅 슬립이 함께 묶여 있다.

파일의 핵심은 두 문서다. 첫째는 1947년 9월 23일 항공자재사령부 사령관 트와이닝 중장이 공군 본부에 올린 의견서로, "보고된 현상은 실재하며 환각이나 허구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담고 있다. 둘째는 1947년 12월 30일 공군 본부 크레이기 소장이 항공자재사령부에 내린 지시문으로, 코드명 "사인(SIGN)"이라는 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이 파일은 미 공군이 UFO 를 공식적으로 조사하기로 결정하는 첫 번째 순간을 담은 1차 자료다.

파일 곳곳에는 당시 공군 내부가 이 현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보여주는 행정 흔적도 남아 있다. 독일 호르텐 형제의 전익기와 비행 원반을 연결하려 했던 시도, 소련의 제트 추진 전익기 제작 첩보, 오리건주에서 접수된 시민 사진 보고, FBI에 목격자 신원조회를 요청한 기록 등이다.

1947년 8월, 미 육군 항공대 정보요구과(AC/AS-2)는 라이트 필드의 항공자재사령부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내용은 짧았다. 지금까지 수집된 비행접시 목격 보고를 들여다본 결과, 여러 목격에서 공통 패턴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다음 단계 조사로 넘어가기 전에, 육군 항공대 안에 현재 시험 중인 연구 프로젝트 가운데 이 특징들을 지닌 것이 없다는 점을 먼저 확인해 달라.

한 달 뒤, 8월 29일, 항공참모차장 커티스 르메이 소장의 서명이 찍힌 답장이 왔다. “육군항공대에는 1번 코멘트에 기술된 특성을 가진 연구 프로젝트가 없다.” 한 줄이었다.

이것이 이 파일의 시작이다.

1947년 12월 10일 항공자재사령부 정보부장 매코이 대령이 크레이기 소장에게 보낸 공문 표지. SECRET 도장과 기밀해제 라벨, 매코이 서명이 한 면에 모여 있다. p.1
1947년 12월 10일 항공자재사령부 정보부장 매코이 대령이 크레이기 소장에게 보낸 공문 표지. SECRET 도장과 기밀해제 라벨, 매코이 서명이 한 면에 모여 있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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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필드가 모은 것들

1947년 여름과 가을, 전국 각지에서 비행 원반 목격 보고가 공군 채널을 통해 라이트 필드로 흘러들어 왔다.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메리 헤렌 부인은 1946년 11월 오리건주 제퍼슨 인근에서 찍은 사진 다섯 장을 제4공군에 넘겼다. 사진에는 하늘에 늘어선 물체들이 찍혀 있었다. 제4공군 정보참모부는 “카메라나 필름 결함일 가능성이 있다”며 워싱턴으로 올렸다.

1947년 9월에는 알래스카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비행 원반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라이트 필드 정보부장 매코이 대령은 워싱턴에 이 건의 추가 조사를 요청하면서, 가까운 거리에서 본 목격이라면 보고된 것보다 훨씬 더 상세한 관찰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일본 레이더 기지가 포착한 “플라잉 소서” 목격 건도 1947년 9월 슐겐 준장 사무실 회의에서 거론됐다. 매코이 대령은 워싱턴에 그 사건 관련 모든 가용 정보를 자기 사무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8월에는 FBI 에 목격자 신원조회를 정식 요청하는 색인 카드도 작성됐다. 통신 색인 카드의 요지란에는 “비행접시 목격자들 일부의 신원을 FBI 가 조사해달라는 요청”이라고 적혀 있다.


트와이닝 의견서 — “실재하며 환각이 아니다”

1947년 9월 23일 트와이닝 중장의 'AMC 플라잉 디스크 의견서' 첫 면. AMC 라이트 필드 레터헤드, SECRET 도장, SAVE 라벨, U-39552 문서번호가 함께 보인다. p.9
1947년 9월 23일 트와이닝 중장의 'AMC 플라잉 디스크 의견서' 첫 면. AMC 라이트 필드 레터헤드, SECRET 도장, SAVE 라벨, U-39552 문서번호가 함께 보인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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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9월 23일, 항공자재사령부 사령관 N. F. 트와이닝 중장은 워싱턴의 육군항공대 사령관 앞으로 의견서를 보냈다. 수신자의 주의는 정보참모부 조지 슐겐 준장이었다. 제목은 “비행 원반에 관한 AMC 의견”.

의견서의 결론 목록. '현상은 실재한다' '금속질 표면' '극단적 상승률' 등 공식 판단 항목이 타자기로 정리되어 있다. SECRET COPY 도장이 찍혀 있다. p.12
의견서의 결론 목록. '현상은 실재한다' '금속질 표면' '극단적 상승률' 등 공식 판단 항목이 타자기로 정리되어 있다. SECRET COPY 도장이 찍혀 있다.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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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서는 T-2 정보부, T-3 공학부, 그리고 항공기술연구소 인원이 모인 회의의 결론을 항목별로 정리했다.

첫째, “보고된 현상은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실재한다.” 둘째, 사람이 만든 항공기만큼 커 보일 정도의 원반형에 가까운 물체가 있다. 셋째, 일부는 유성 같은 자연 현상이 원인일 수 있다. 넷째, 극단적인 상승률, 특히 롤 기동에서의 운동성, 아군 항공기와 레이더에 포착됐을 때의 회피 움직임 등으로 보아 일부 물체는 수동, 자동, 또는 원격으로 조종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물체의 공통 외형도 목록으로 정리됐다. 금속질이거나 빛을 반사하는 표면. 고성능 조건 외에는 항적 없음. 원형 또는 타원형, 바닥은 평평하고 위쪽은 돔. 3~9대의 정돈된 편대 비행. 보통은 소리가 없으나 세 차례는 굉음이 동반됐다. 수평 속도는 통상 300노트 이상.

트와이닝은 세 가지 가능성도 함께 정리했다. 국내에서 만든 것, 즉 공군도 모르는 고도 보안 사업의 산물일 가능성. 물리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핵추진 같은 미지의 방식을 가진 외국이 만든 것일 가능성이다.

마지막으로 트와이닝은 권고했다. 공군 본부가 우선순위, 보안 등급, 코드명을 부여하는 지령을 내리고, 관련 자료를 해군, 원자력위원회, JRDB, 공군과학자문단, NACA, RAND 등에 회람시킬 것. 별도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AMC 는 자체 자원으로 조사를 계속하겠다고 덧붙였다.


호르텐 형제와 소련

1947년 9월 24일 영국 왕립항공연구소의 호르텐 형제 무미익기 보고서(AERO 1703)를 비행 원반 사건과 연결해 공군 본부에 송부한 공문. p.15
1947년 9월 24일 영국 왕립항공연구소의 호르텐 형제 무미익기 보고서(AERO 1703)를 비행 원반 사건과 연결해 공군 본부에 송부한 공문.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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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인 1947년 9월 24일, 라이트 필드는 워싱턴에 또 다른 문서를 보냈다.

영국 왕립항공연구소(Royal Aircraft Establishment)가 작성한 기술 노트 AERO 1703이었다. 호르텐 형제의 무미익(tailless) 항공기를 다룬 보고서로, 이른바 “비행 접시” 사건과 연결해 볼 만한 참고 페이지들이 지목돼 있었다.

그리고 4항에는 1947년 6월 9일 모스크바 주재 미 육군 무관 보고가 인용됐다. 호르텐 8형 설계를 따른 항공기 1,800대가 소련에서 폭격기 운용용으로 제작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날개 폭 131피트, 총중량 약 3만 3천 파운드. 다만 소련판은 제트 추진 방식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적혀 있었다.

또 하나의 문서가 있었다. 1947년 10월 30일자 통신 참조 양식으로, 색인 항목은 “비행접시 현상”이었다. 비고란에는 손글씨로 짧은 메모가 적혀 있다. “독일 과학자 관련.” 2차대전 종전 직후 미국으로 흡수된 독일 기술자들이 비행 원반 정보 수집 요청과 함께 언급된 것이다.


뉴멕시코의 가설

라이트 필드가 받은 제보 중에는 색다른 것도 있었다.

1947년 9월, 뉴멕시코 산타페에 사는 마들렌 디옌스 베르샹트 부인이라는 인물이 브렌트널 장군에게 가설을 내놓았다. 비행 원반은 멕시코 중부에 있는 연구소에서 발사되고 있으며, 그 연구소는 러시아인들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발사 목적은 미국의 원자력·항공 시설 정찰이었다.

브렌트널 장군은 이 건이 공학적 사안이 아니므로 자신이 직접 심문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누군가 심문을 진행하고 싶다면 관련 장교의 이름을 알아봐 달라고 했다.

1947년 10월, 라이트 필드는 워싱턴에 이 내용을 보고했다. 워싱턴의 회신은 짧았다. “머천트 부인을 따로 불러 심문하지 말고 이 건은 종결할 것을 권고한다.”


프로젝트 사인의 출범

1947년 12월 30일 크레이기 소장이 항공자재사령부에 내린 지시문. 코드명 SIGN, 우선순위 2A, 보안 등급 제한(restricted). 미 공군 최초의 공식 UFO 조사 프로젝트 출범 명령서다. p.3
1947년 12월 30일 크레이기 소장이 항공자재사령부에 내린 지시문. 코드명 SIGN, 우선순위 2A, 보안 등급 제한(restricted). 미 공군 최초의 공식 UFO 조사 프로젝트 출범 명령서다. 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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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12월 30일, 워싱턴 공군 본부의 연구개발 담당 소장 L. C. 크레이기가 라이트 필드 항공자재사령부에 지시문을 보냈다.

크레이기는 먼저 공군의 방침을 정리했다. 대기 중에서 본 무언가에 관한 보고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공군의 입장이며, 그런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하고 평가하는 것이 공군 임무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공자재사령부에 별도의 프로젝트를 세우도록 지시했다. 국가 안보와 관련될 수 있는 대기 중 목격 정보를 수집하고, 정리·평가한 다음, 관계 정부기관과 계약업체에 배포한다. 산출물은 초기 보고서 한 건, 그 이후로는 분기별 정기 보고서, 그리고 필요하면 보충 보고서를 더 자주 낸다.

프로젝트에 부여된 명칭은 코드명 “사인(SIGN)”, 우선순위 2A, 보안 등급 “제한(restricted)”.

1947년 8월 29일 항공참모차장 르메이 소장 서명의 라우팅 슬립. '육군 항공대에는 해당 특성을 가진 연구 프로젝트가 없다'는 결론 한 줄. RESTRICTED 도장과 친필 서명. p.28
1947년 8월 29일 항공참모차장 르메이 소장 서명의 라우팅 슬립. '육군 항공대에는 해당 특성을 가진 연구 프로젝트가 없다'는 결론 한 줄. RESTRICTED 도장과 친필 서명.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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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필드 안팎에서 4개월 동안 쌓인 공문들이 이 지시 한 장으로 귀결됐다. 정부가 모른다고 했던 것들을 공식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프로젝트 사인이 어떤 결론을 냈는지는 이 파일에 없다. 이 파일이 담고 있는 것은 그 프로젝트가 시작되기까지의 과정이다. 목격 보고를 어느 선에서 무시할 수 없게 됐는지, 그 판단이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실재하며 환각이 아니다”라는 트와이닝의 한 줄이 프로젝트 사인의 출발점이었다.


출처: U.S. Department of War, “18_100754_ General 1946-7_Vol_2” (1947). 미국 전쟁부 공개, war.gov/UFO. 원문 PDF — Public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