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코메타(COMETA) UFO 보고서 — 국방고등연구원 출신들이 쓴 독립 평가서 + 캐럴 로진 편지
페이지별 한국어 번역
94 페이지 중 94 페이지의 한국어 번역. 자료 본문을 페이지 순서대로 옮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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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 종이 폴더의 표지로, 본문 없이 상단 라벨에 손글씨로 "Carol Rosin and Jan Cypher 4/30/2014" 가 적혀 있고 우측 상단에 녹색 펜으로 정리번호 "78078" 이 크게 써 있다. 캐럴 로신과 잰 사이퍼의 2014년 4월 30일 자료 묶음을 담은 파일 폴더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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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
캘리포니아 벤투라에 사는 캐럴 로진(Carol Rosin)이 2001년 4월 30일 'Dan'이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다. 로진은 이번 주 금요일 오후 3시 30분에 남편 존 사이퍼(Jon Cypher)와 함께 댄의 사무실을 찾기로 한 약속을 다시 확인하며, 남편을 짧게 소개한다. 존은 〈힐스트리트 블루스〉, 〈메이저 댄〉 등 여러 TV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이자 브로드웨이에서 〈맨 오브 라만차〉의 'The Impossible Dream'을 부른 가수, 그리고 4개 언어로 오페라를 부르는 학자이며, 우주에 대해서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두 사람은 결혼한 지 15년이 됐다.
로진은 자신이 1983년에 세웠던 우주안보협력연구소(Institute for Security and Cooperation in Outer Space)를 몇 년 전 문 닫은 뒤, 부부가 함께 우주 프로그램을 알리는 데 어떤 역할을 맡을 수 있을지 계속 찾아 왔다고 적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베르너 폰 브라운(von Braun) 말년의 대변인이었으며, 폰 브라운은 자신에게 "우주의 문을 여는 길을 찾는 일"을 그의 완전하고 무제한적인 비전과 함께 맡겼다고 회고한다. 로진은 이제 그 길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금요일 만남에서 로진은 댄에게 그 아이디어를 보여줄 "패키지"를 가져갈 예정이다. 댄과 NASA 어느 쪽에도 비용이 들지 않으며, 댄이 원하는 만큼만 — 단 몇 분이라도 — 시간을 내면 된다고 한다. 그래도 직접 만나 건넬 가치가 있는 자료라고 강조한다. 워싱턴 D.C.에 머무는 동안 댄과 그 가족을 점심이나 저녁에 초대하고 싶다는 제안도 덧붙인다.
끝에는 자필로 "Carol"이라고 서명하고, 전화번호 두 개와 이메일을 남겼다. 추신에서는 같이 보낸 사진은 두 사람이 기조 연설자로 나섰던 미국우주재단(US Space Foundation) 행사에서 찍은 것이라고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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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
Royal Plaza 호텔 메모지에 손으로 쓴 쪽지다. 화요일자, 수신인은 'Dan'. 보낸 사람은 약속대로 프랑스의 코메타(COMETA) 보고서를 함께 전달한다고 알린다. 5쪽에 받는 사람의 옛 카운터파트가 쓴 서문과 기여자 명단이 실려 있다는 안내가 이어진다. 앞서 잘못 말했다며, 이것은 정부 보고서가 아니라 민간 보고서라고 정정한다. 다만 참여자들의 격과 진중한 성격을 보면 여전히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권한다. 참고용 기사 몇 편도 같이 넣어 두었고, 앞서 건넨 큰 문서의 125쪽에 보고서 요약이 있다고 일러둔다. 덧붙여, 존 캘러핸의 진술과 그 뒷받침 자료는 62쪽에, 멕시코시티 국제공항의 선임 항공관제사 엔리케 콜벡(Enrique Kolbeck)에 관한 내용은 65쪽에 실려 있으며, 어느 쪽이든 62쪽부터 시작하는 레이더 관련 단원 전체를 꼭 읽어 달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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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
르네상스 호텔 로고가 찍힌 메모지에 손글씨로 쓴 짧은 감사 편지다. 발신인은 햄릿의 대사 — 호레이쇼,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자네 철학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것들이 더 많다네 — 를 늘 떠올린다고 운을 뗀다. 이어서 만나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다시 전하며, 질문이 더 있으면 워싱턴 D.C. 9가 NW 999번지 르네상스 호텔(전화 202-898-9000)로 직접 전화 달라고 부탁한다. 마지막 줄에는 만나서 좋았다는 한마디와 Joe Cyppher 라는 서명이 들어가 있다. 메모지 하단에는 호텔 예약 문의 번호 1-800-HOTELS 1 이 인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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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
프랑스 민간 협회 COMETA 가 작성한 UFO 독립 보고서의 표지 페이지로, 제목은 「UFO 와 방위 — 우리는 무엇에 대비해야 하는가?」다. 표지 설명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프랑스 국방고등연구원(Institute of Higher Studies for National Defence)이 진행한 연구 결과를 정리한 것이며, 원문은 1999년 7월 프랑스 잡지 VSD 특별호에 처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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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
보고서의 속표지다. 가운데 위쪽에 이탤릭으로 "UFOs and Defense"라는 제목이 있고, 그 아래에 "--The COMETA Report--"라는 부제가 두 줄로 적혀 있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제본용 코일 구멍이 세로로 길게 늘어서 있어, 스프링 제본된 책자의 안쪽 면을 그대로 스캔한 것임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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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 전 의장 앙드레 르보 교수가 쓴 서문이다. 제목은 "UFO 현상에서 비합리적 층을 벗겨내기". 르보는 과학계가 민간 신화로 분류되는 현상을 다루기를 꺼린다는 점부터 짚는다. 하늘에서 돌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한때 프랑스에서는 동화 취급을 받았지만, 레글(Laigle) 마을 상공의 운석우가 집단 관측으로 확증되면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한 세기 뒤 NASA는 다소 성급하게 이 돌을 화성 원시 생명의 증거로 끌어올리기까지 했다.
르보는 이런 종류의 현상이 과학에 던지는 1차 질문을 "과연 과학적 사실이 존재하는가"로 정리한다. 실험으로 다룰 수 있는 현상이라면 재현성이 기준이 된다. 그러나 천문학이나 지구물리학처럼 실험이 불가능하고 반복 관측만 가능한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도 드물지만 집단적으로 명확히 보이는 사건이라면 과학 대상으로 올리기 쉽다. 일식, 혜성, 신성도 고대부터 종교적 해석이 붙어 있었지만 결국 사실로 인정됐다. 집단·동시 관측이 실험 재현성의 자리를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드물고 동시에 산발적이며, 매번 남는 증거가 적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UFO가 그런 범주에 속한다. 게다가 우주 시대 이후 인간 활동이 만들어내는 대기 현상 자체를 관측자가 즉시 식별하기 어려워 혼선이 커진다. 그 결과 인간 활동이나 알려진 자연 메커니즘으로 설명되지 않는 사례들이 "식별은 어렵지만 신비롭지는 않은" 배경 잡음과 뒤섞인다.
무엇보다 르보는 이 현상이 "우주에 우리뿐인가"라는 근본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부가 외계 지적 존재의 산물일 가능성은 UFO 사안을 사회학·미디어·종교적 영역으로 끌고 가고, 이 차원의 존재 자체가 과학계의 거부 반응을 부른다. 그러나 르보는 오히려 비합리적 환경이 강하게 형성돼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과학적 방법을 UFO에 적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라고 본다.
그가 보기에 이번 COMETA 보고서가 바로 그 시도다. 보고서는 과거 GEPAN(이후 SEPRA로 개칭)의 작업에 기대어 목격담과 증언, 그리고 설명된 사례 분석에 큰 비중을 두었고, 이는 사실의 정립이 이 작업의 중심에 있음을 보여준다. 본문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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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보고서 도입부의 끝 단락은 외계 지성 가설과, 여러 연구가 모여 그 가설을 확증할 경우 갖게 될 무게를 짚는다. 저자는 이 보고서가 UFO 현상에서 비합리적 외피를 벗겨내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적는다. 결국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들이 외계 방문자의 존재를 믿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외계 방문자라는 가설은 겉으로는 놀라워 보이지만 원인을 따지면 흔한 여러 현상 뒤에 가려져 있을 수 있다. 과학자가 무엇을 믿느냐는 연구를 끌고 가는 동력으로서는 중요하지만, 그 믿음이 연구 결과 자체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 연구자가 엄정하기만 하다면. 페이지 아래쪽 절반은 목차다. 서문·머리말·서론에 이어 1부 〈사실과 증언〉(프랑스 조종사 증언, 전 세계 항공 사례, 지상 목격, 프랑스의 근접 조우, 설명된 현상의 반례), 2부 〈우리가 아는 것의 범위〉(프랑스 내 연구 조직, GEPAN/SEPRA의 방법과 결과, UFO 가설과 모델링 시도, 해외 연구 조직), 3부 〈UFO와 국방〉(전략 기획, 항공 함의, 과학·기술 함의, 정치·종교 함의, 언론 함의)으로 구성되어 있고, 결론과 권고에 이어 부록 6편 — 프랑스 내 레이더 탐지, 천문학자들의 목격, 우주 생명, 우주 식민화, 로즈웰 사건과 역정보, UFO 현상의 긴 역사 — 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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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코메타 보고서 〈UFO와 국방 — 우리는 무엇에 대비해야 하는가〉의 판권 페이지다. 목차 끝부분에 부록 7 〈UFO 현상의 다양한 심리적·사회적·정치적 측면에 대한 고찰〉이 80쪽, 참고문헌이 87쪽, 용어집이 90쪽에 실린다고 적혀 있고, 43~50쪽과 2쪽, 91쪽의 사진 섹션은 최초 보고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단서가 붙는다. 발행은 파리 근교 르발루아페레의 G.S. Presse Communication이 맡았다. 자본금 25만 프랑, 99년 존속의 주식회사이며 대표이자 발행인은 다니엘 드니스, 아트 디렉터는 리샤르 보토, 편집 보조는 자크 브리옹, 일러스트레이션과 기술 자문은 베르나르 투아넬이다. 1901년 7월 1일 결사법에 근거해 설립된 단체 코메타가 저작권을 보유하며, 1999년 7월 베르제르 르브로 인쇄소에서 인쇄되었다. ISBN은 1278-916 X. 표지 사진에 대한 설명도 마지막에 붙어 있는데, 1971년 11월 4일 코스타리카 국립지리원 소속 항공기가 중앙아메리카 틸라란 산맥 상공에서 찍은 사진이며 베르나르 투아넬의 소장본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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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0
프랑스 국방고등연구원(IHEDN) 전 원장인 베르나르 노를랭 장군이 쓴 서문이다. 노를랭은 1995년 3월 드니 레티 장군이 자기 사무실로 찾아와 UFO 연구 위원회를 새로 만들겠다고 설명했을 때, 그 계획에 관심을 표하면서 IHEDN 감사관 협회(AA) 운영진에게 그를 소개했다고 적는다. AA는 이미 20여 년 전에 같은 주제로 예비 보고서를 회보에 실었던 만큼, 이제 갱신할 때가 됐다고 봤다는 것이다. 노를랭은 레티가 이 일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한 근거도 짚는다. 한 달 전인 2월에 레티가 공군사관학교 동문회를 통해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에 대한 학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동료 옛 조종사들이 자기들이 겪은 UFO 목격을 청중 앞에서 직접 털어놓았고,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에서 이 현상을 담당하는 인물이 연구 결과를, 그리고 잘 알려진 한 천문학자가 외계 가설을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형태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노를랭은 UFO 현상이 다루는 지식 영역이 매우 다양하다고 보고, 레티가 AA 안팎에서 끌어모은 전문가 명단을 두고 "매우 인상적"이라고 평가한다. 장교, 기술자, 물리학·생명과학·사회과학 전문가가 모두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연구가 단순한 학술 작업이 아니라, 민·군 조종사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닌, 행동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구체적 문제를 제기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위원회 이름도 "심층연구위원회"라는 뜻의 COMETA로 정했고, 위원 거의 전원이 국방·산업·교육·연구·중앙행정에서 중요한 책임을 맡았거나 맡고 있는 인물이라고 적는다. 노를랭은 마지막으로, COMETA의 권고가 좋은 상식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만큼 프랑스 당국이 검토하고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AA의 첫 보고서가 CNES 안에 UFO 연구를 전담하는 세계 유일의 민간 정부 기관 창설을 지지한 바 있는데, 훨씬 깊이 있는 이번 새 보고서가 프랑스의 노력과 필요한 국제 협력에 새 동력을 줄 것이고, 그렇게 되면 IHEDN은 국가에, 어쩌면 인류 전체에 잘 봉사한 셈이 될 것이라고 맺는다. 본문 위아래로 "행동 차원의 대응을 요구하는 구체적 문제가 제기된다"와 "모든 가설을 검토하라"라는 문구가 표어처럼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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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
프랑스 공군 예비역 장군 드니 레티가 서명한 서문이다. 잘 기록된 목격담이 신뢰할 만한 증인들을 통해 충분히 쌓였기에, 이제는 미확인비행물체 즉 UFO의 기원에 관한 모든 가설을, 특히 외계 가설까지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말한다. UFO는 이미 미디어 환경의 일부가 되었고, 영화·방송·서적·광고 등이 그 사실을 충분히 보여 준다.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뚜렷한 위협이 감지되지 않았지만, 국방고등연구원(IHEDN) 출신 전직 청강생들은 이 주제를 한 번 정리해 둘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다양한 배경의 전문가들과 함께 민간 차원의 심층 조사 위원회를 꾸렸고, 그 이름을 COMETA라 붙였다. 이후 위원회는 COMETA 협회로 발전했고, 레티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IHEDN 전 원장 베르나르 노를랭 장군과, 국립우주연구센터 전 의장 앙드레 르보의 도움이 없었다면 COMETA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한다.
이어 그는 증언이나 연구에 협력해 준 사람들의 이름을 차례로 든다. CNES의 SEPRA 책임자 장-자크 벨라스코, 플렉시마주 대표 프랑수아 루앙주, 민간·군 조종사 장-샬 뒤복·장-피에르 파르테크·르네 지로, 안타나나리보의 전 에어프랑스 기술이사 에드몽 캉파냑, 헌병대 비행대대장 미셸 페리에, 민간항공총국의 무슈 순, 감사단 사무총장 조제프 도망주 장군 등이다. 1994년 1월 28일 AF 3532편 사건 조사에 협력해 준 공군 항공작전사령부 사령관에게도 따로 감사를 표한다.
끝으로 그는 거의 삼 년 동안 매달려 준 COMETA 위원들의 명단을 직접 적어 내려간다. 정치학 박사이자 변호사인 미셸 알그랭, 무기공학 장군 피에르 베스콩, 내무부 국가경찰의 블랑셰 경무관, 수자원·산림 분야의 공학 박사 장 둥글라스, 공군 장군 브뤼노 르 무안, 국방연구재단의 프랑수아즈 레핀, ONERA 연구이사인 광산공학 수석 크리스티앙 마르샬, 해군 제독 마르크 멜로, 물리학 박사이자 무기공학 장군인 알랭 오르사그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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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
보고서의 서문이다. 1976년 프랑스 국립국방고등연구원(IHEDN) 산하 위원회가 국가헌병대 출신 블랑샤르 장군의 주재 아래 미확인비행물체 관련 자료를 열었다고 시작한다. 위원회의 목적은 이 현상에 대한 연구와 자료 수집을 어떻게 조직할지 제안을 내놓는 것이었고, 그 권고에 따라 미확인 항공우주현상 연구단(GEPAN)이 만들어졌다. GEPAN은 현재 국립우주연구원(CNES) 산하 대기재진입현상 자문부서(SEPRA)의 전신이며, SEPRA가 지금 이 자료를 관리한다. 위원회가 출범한 지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저자들은 다시 한번 그동안 쌓인 지식을 점검할 필요를 느꼈다고 밝힌다. 이 현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으며 상당수는 UFO를 외계 기원으로 확신하는 분위기인데, 텔레비전 방송에 등장하는 관련 다큐멘터리만 봐도 그렇다는 설명이다.
저자들은 표기의 편의를 위해 더 과학적인 용어인 UAP(미확인 항공우주현상) 대신 일반적인 UFO(미확인비행물체)를 쓰겠다고 미리 밝혀둔다.
그러면서 자료의 양과 질이 충분한데도 설명되지 않는 목격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고 짚는다. 1981년 프랑스 트랑상프로방스 사례처럼, 무언가가 실제로 지면에 착륙해 머물렀음을 보여준다고 하는 심층 조사가 진행된 사례도 있다. 민간·군 조종사들이 남긴 시각 증언은 종종 레이더 기록으로 뒷받침되며, 최근 프랑스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해의 필요성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의 1부는 특히 주목할 만한 프랑스와 해외 사례를 다루겠다고 예고한다. 2부에서는 프랑스와 해외에서 이 현상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조직되어 있는지 정리한 뒤, UFO에 관심을 가진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작업을 평가하겠다고 한다. 그들은 알려진 물리 법칙에 기반한 부분적 설명을 내놓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추진체계, 비살상무기 같은 단·중·장기적으로 현실이 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본다.
이어 비밀무기에서 외계 기원 가설까지를 아우르는 주요 설명들을 현재의 과학 자료와 부합하는지를 기준으로 검토하겠다고 한다. UFO 현상은 넓은 의미의 국방 문제이며,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에 따라 필요한 조치들을 살펴보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민·군 조종사가 이런 현상을 마주했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더 넓게는 일반 대중과 의사결정자에게도 정보를 전달하는 일, SEPRA의 활동을 발전시키고 지속적인 과학적 감시와 연구를 촉진하는 일, 그리고 외계 기원 가설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의 전략·정치·종교적 결과를 고려하는 일을 꼽는다. 페이지는 이 마지막 항목을 설명하는 문장 중간에서 끊겨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상단에는 본문에 앞서 "AA 또는 AR xx: 국가 또는 지역 진급 심사관 제xx호"라는 짧은 각주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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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
보고서는 첫 장 "제1부 — 사실과 증언"을 열며, 본격적인 분석에 앞서 본 심층 연구의 가치를 뒷받침할 만한 사실과 증언을 먼저 제시하겠다고 밝힌다. 그 목록은 비행 중 UFO를 조우한 프랑스 민·군 조종사 세 명의 증언, 세계적으로 중요한 항공 사례 다섯 건, 지상에서의 목격 세 건, 프랑스 내 근접 조우 네 건이다. 위원회는 이들이 최근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관측된 수백 건의 신뢰할 만하고 잘 기록된 사례 가운데 일부일 뿐이며, 어느 것도 아직 설명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보통은 조사를 통해 현상의 원인이 밝혀지지만 이 사례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 가운데 두 건의 의미 있는 사례를 별도로 다루겠다고 예고한다.
이어 "1장 — 프랑스 조종사들의 증언"에서는 비행 중 UFO를 만난 세 명의 프랑스 조종사가 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했고, 이들의 진술은 항공 분야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공중 현상보다 훨씬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적는다.
첫 사례인 "1.1 미라주 IV 조종사 지로(Giraud) 씨, 1977년 3월 7일" 항목은 사건 경과를 조종사와 관제사 간의 무선 교신 기록으로 재구성한 결과라고 밝힌다. 모든 관제센터에서 규정에 따라 일정 기간 보관하는 자료다. 사건은 1977년 3월 7일 야간 임무를 마치고 자동조종 상태로 뤼크쇨로 복귀하던 미라주 IV가 디종 상공을 지나던 현지 시각 21시경에 일어났다. 고도 9600m, 속도 마하 0.9, 비행 조건은 매우 양호했다. 조종사 에르베 지로(P)와 항법사(N)는 같은 고도의 "3시 방향"에서 매우 밝은 빛이 충돌 코스로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고, 보고서는 이 물체를 이후 "공격자(assailant, AI)"로 부르겠다고 둔다. 조종사는 자신들을 관제하던 콩트렉세빌 군 레이더 기지에 다가오는 항공기에 대한 레이더 접촉이 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식별 비콘으로 자신들을 식별하려는 방공 요격기일 가능성을 떠올린 것이다. 그러나 관제사(C)는 자신의 스코프에 해당 항공기가 잡히지 않는다고 답하고, 조종사들에게 산소 상태를 확인하라고 요청했다. 이는 관제사의 표준 비상 절차이며, 이로써 관제사가 매우…(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페이지 좌측 여백에는 책등 제본 흔적이 일정한 간격의 짙은 띠로 보이며, 본문에는 별도의 도장이나 손글씨 메모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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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4
보고서의 이 대목은 미라주 IV 교전 사례를 매듭짓고, 곧바로 1976년 3월 3일 단독 야간 비행 중이던 한 전투기 조종사의 증언으로 넘어간다. 먼저 미라주 IV 사례에서, 조종사 P는 의심 항적 A1을 시야에 잡으려고 3~4G 의 강한 우선회를 계속 조였지만 A1은 약 1500미터 거리에서 미라주 IV 뒤로 돌아 들어왔다. P가 선회를 반대로 풀자 그 빛은 "11시 방향"으로 멀어졌고 P는 룩쇠유 기지로 침로를 다시 잡았다. 그러나 45초 뒤 P는 누가 자신을 "지켜본다"는 느낌을 받았고, 동승한 N에게 "두고 봐, 다시 올 거야"라고 말했다. 실제로 똑같은 빛 A2 가 "3시 방향"에 나타났다. P는 이를 실제 위협으로 판단해 6.5G 의 매우 격한 선회로 빠지려 했지만, A2 역시 미라주 IV 의 기동을 따라가 약 2000미터 거리에서 후방을 잡았고, P가 선회를 반대로 풀자 같은 조건에서 사라졌다. 지상 관제 C는 끝내 A2에 대한 레이더 접촉을 잡지 못했고, P와 N은 룩쇠유 기지로 정상 복귀했다. 보고서는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 A1과 A2 의 속도와 기동성은 전투기급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 고도에서 C 의 레이더에 잡혔어야 하고 더구나 미라주 IV 외에는 다른 교통이 없었으므로 더 분명히 잡혔어야 한다. 둘째, A1과 A2 가 보여준 기동은 초음속이어야 설명되며, 전투기였다면 선회로 인한 충격파의 초점 형성 현상 때문에 매우 큰 소닉붐이 지상에서, 그것도 야간이라는 조건에서 들렸어야 하지만 그 일대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어지는 1.2절은 1976년 3월 3일 단독 야간 비행 중이던 전투기 조종사 P 의 증언으로, 그는 처음에 익명을 원했지만 이후 자신이 클로드 보스크 대령이었음을 밝혔다고 보고서는 적는다. 당시 그는 투르의 전투비행학교 학생 조종사로 T-33 훈련기를 몰고 있었으며, 임무는 고도 6000미터에서 렌–낭트–푸아티에를 거쳐 투르에 착륙하는 것이었고 같은 항로를 5분 간격으로 다른 항공기들이 따르고 있었다. 밤은 어두웠지만 구름이 없고 가시거리는 100킬로미터를 넘었다. 6000미터 고도, 시속 460킬로미터로 안정 비행 중이던 P는 정면 멀리 — 지상 불빛이 겨우 식별되는 한계 거리 — 에서 처음에는 녹색 신호탄이 올라온 줄 알았던 빛을 보았다. 그러나 1~2초 만에 그 빛은 그의 고도보다 1500미터 위까지 솟구쳤다가 공중에서 수평으로 멈춘 뒤 그의 방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고, 어지러울 정도의 속도로 충돌 침로를 잡으며 조종석 전면 풍방을 가득 채웠다.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P는 조종간을 놓고 반사적으로 두 팔을 얼굴 앞으로 교차했다. 항공기는 매우 밝은 인광의 녹색 빛에 완전히 휩싸였고, 그는 자신의 항공기를 비껴간 구체 S를 보았다 —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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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5
보고서 본문은 두 사례를 잇달아 다룬다. 앞의 사례에서는 조종사 P가 자신의 오른쪽 날개를 거의 스칠 듯이 지나간 물체를 1~2미터 크기에 형광 초록빛 꼬리를 단 모습으로 기억했다. 꼬리는 혜성과 비슷했고, 가운데에는 마그네슘이 타는 듯한 밝은 흰빛이 자리 잡았으며, 전체 목격은 5초도 되지 않았다. 큰 충격을 받은 P는 지상에서 임무를 통제하던 레이더 관제사에게 곧바로 알렸지만 관제사의 레이더 화면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같은 항로를 따라간 다른 조종사 두 명은 귀환 뒤 같은 현상을 멀리서 보았다고 진술했다.
이어지는 1.3절은 1994년 1월 28일 에어프랑스 3532편 사례를 다룬다. 기장 장샤를 뒤복(P)과 부기장 발레리 쇼푸르(CP)가 니스–런던 노선을 운항하던 중, 13시 14분 센에마른의 쿨로미에 인근 상공 11,900미터에서 날씨가 매우 좋은 가운데 조종실에 있던 사무장이 기상 관측 풍선처럼 보이는 물체를 가리켰다. 부기장이 곧 확인했고, 뒤이어 본 기장은 처음에는 45도로 기운 항공기로 보았다. 그러나 세 사람 모두 곧 자신들이 아는 어떤 물체와도 닮지 않았다는 데 동의했다. 좋은 시정과 고적운을 기준으로 기장은 물체가 고도 10,500미터, 거리 약 50킬로미터에 있다고 가늠했고, 외견상 직경으로 미루어 큰 기체라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갈색 종 모양이었다가 밤색 렌즈 모양으로 바뀌더니, 거의 순식간에 항공기 왼편에서 사라져 마치 갑자기 보이지 않게 된 듯한 인상을 남겼다. 기장은 랭스 항공교통관제센터에 보고했으나 그쪽도 인근에 다른 항공기 정보가 없다고 답했다. 절차에 따라 랭스는 타베르니 방공작전센터(CODA)에 승무원의 목격을 알리고, 기장에게 착륙 후 ‘에어미스’ 절차를 따르도록 요청했다.
CODA는 같은 시각 생크마르라필 관제센터가 잡은 레이더 항적을 실제로 기록했고, 이 항적은 50초 동안 남아 3532편 항로와 교차했으며 어떤 비행계획서와도 일치하지 않았다. 승무원의 시야에서 물체가 사라진 순간과 레이더 화면에서 사라진 순간이 같았다. CODA의 조사로 기상 풍선 가설은 배제되었고, 두 항적의 정확한 교차 거리를 산출해 기체의 길이를 약 250미터로 추정했다. 하루 3000편의 움직임을 다루는 북부지역항공항행센터(CRNA)가 지난 7년간 다룬 사례는 단 세 건뿐이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3532편 사건이다. 페이지 마지막에는 다음 장의 시작인 ‘제2장 — 세계 곳곳의 항공 사례’ 제목이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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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은 항공기에서 목격된 사건은 항공 사례로 분류한다는 점을 먼저 짚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다섯 건의 주요 사례를 다룬다. 모두 해당국 당국이 조사를 진행한 사건이며, 그중 네 건은 물체가 육안과 레이더 양쪽으로 포착되었다. 다섯 번째 사례에서는 다수의 독립 목격자가 물체를 관측했다.
첫 번째 사례인 영국 레이큰히스 사건은 1956년 8월 13일에서 14일 밤에 일어났다. 미 공군과 영 공군의 합동 기지인 레이큰히스 기지와 벤트워터스 기지는 케임브리지에서 북동쪽으로 30km 거리, 그리고 해안 가까이에 자리한다. 그날 밤 두 기지의 레이더에 잡힌 미확인 비행체는 미 공군 UFO 연구를 평가하기 위해 꾸려졌던 콘던 위원회가 1969년에 낸 보고서에서 "미확인"으로 분류되었다. 1971년 9월에는 콘던 위원회의 레이더 전문가 세이어가 학술지 Astronautics and Aeronautics에 사건 분석을 실었는데, 이는 1969년 대기물리학자 맥도널드 교수가 발표한 연구를 일부 토대로 삼은 것이었다. 이후 1976년에는 항공 전문지 Aviation Week and Space Technology의 편집자 필립 클래스를 비롯한 몇몇 저자들이 이 분석을 깎아내리고 사건 전체를 운석이나 레이더 전파 이상 같은 평범한 현상의 연쇄로 환원하려 했다.
사건은 1956년 8월 13일 21시에서 22시 사이, 벤트워터스 기지의 접근 관제 레이더에서 비정상 신호가 잡히면서 시작됐다. 22시 55분, 레이더는 동에서 서로 기지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확인 물체를 잡아냈다. 거의 정면 맞바람을 받으며 시속 2000에서 4000마일, 즉 시속 3200에서 6400km로 이동했지만 음속 폭음은 보고되지 않았다. 같은 시각, 벤트워터스 관제탑 요원들은 동에서 서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지면 위를 가로지르는 밝은 빛을 약 1200m 고도에서 보았다고 진술했고, 마침 그 상공 1200m를 지나던 미군 수송기 조종사도 자기 비행기 아래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통과하는 밝은 빛을 봤다고 말했다. 두 건의 육안 목격이 레이더 탐지를 뒷받침한 셈이다.
벤트워터스 레이더 요원은 이 일치된 탐지 결과를 인근 레이큰히스 기지의 항공교통관제센터 교대 책임자, 미군 부사관에게 보고했다. 훗날 퇴역한 이 부사관이 1968년 콘던 위원회에 직접 보낸 사건 보고서는, 미 공군 프로젝트 블루북 파일과 몇몇 사소한 부분을 빼면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 블루북 측 자료로는 사건 당일 레이큰히스가 블루북 팀에 보낸 정식 텔렉스, 그리고 두 주 뒤 벤트워터스 정보장교였던 홀트 미군 대위가 같은 팀에 보낸 보고서가 함께 남아 있다.
레이큰히스 교대 책임자는 즉시 자기 레이더 요원들에게 경계 명령을 내렸고, 그중 한 명이 기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지점, 22시 55분에 잡힌 초음속 물체의 궤적 축선상에서 정지한 물체를 발견했다. 책임자가 레이큰히스 접근 관제소에 확인을 요청하자 접근 관제 레이더도 같은 물체를 잡았다고 답했고, 직후 관제센터의 레이더 기술자들은 그 물체가 정지 상태에서 갑자기 시속 600에서 950km로 가속하는 것을 보았다. 책임자는 곧바로 기지 사령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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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큰히스 사례에 이어, 이 페이지는 1956년 영국 레이큰히스 공군기지에서 일어난 추격 후반부와 1957년 미국 RB-47기 사건을 다룬다. 물체는 13~30킬로미터의 직선 구간을 그리며 여러 차례 방향을 바꿨고, 그 사이에 3~6분씩 갑자기 멈췄다. 속도는 매번 0에서 시속 약 950킬로미터로 어떤 가속 구간도 없이 점프하듯 바뀌었다. 지상 관측이 그 고속과 경악스러운 가속을 확인했고, 레이큰히스가 보낸 정식 텔렉스는 "레이더와 지상 시각 관측이 빠른 가속과 갑작스러운 정지를 동시에 잡았다는 사실 자체가 보고에 신빙성을 더한다"고 결론지었다.
30~45분이 지난 뒤 영국 공군은 야간 요격기 베놈 2인승을 출격시켰고, 레이큰히스 항공교통관제센터가 기지 동쪽 10킬로미터 지점에 있던 물체 방향으로 유도했다. 조종사는 처음엔 시각과 레이더 양쪽에서 표적을 잡았다가 놓쳤다. 다시 동쪽 16킬로미터로 유도하자 "기관총이 표적을 잠갔다"는 보고가 나왔다. 그러나 잠시 뒤 표적이 사라졌고, 지상 레이더는 물체가 순식간에 요격기 뒤로 돌아가 짧은 거리에서 따라붙는 모습을 잡았다. 조종사도 그 사실을 확인했다. 레이더 운용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약 10분 동안 급상승, 급강하, 지속 선회 등 모든 기동을 시도했지만, 지상 레이더가 보기에 UFO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대로 따라왔다. 결국 연료 부족으로 기지로 복귀하면서 그는 "이게 계속 나를 따라오는지 누가 좀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물체는 잠시 더 따라가다가 멈췄고, 짧은 이동을 몇 차례 한 뒤 시속 약 950킬로미터로 북쪽으로 사라졌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시각은 03시 30분이었다. 첫 베놈을 대체해 출격한 두 번째 베놈은 기계 문제로 접촉도 못 한 채 곧바로 귀환했다.
세이어는 학술지 《Astronautics and Aeronautics》에 실은 글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정보의 높은 신뢰도, 진술의 일관성, 그리고 강한 "낯섦의 정도"를 함께 놓고 보면, 이 사례는 오늘날 알려진 UFO 사건 가운데 가장 마음을 흔드는 축에 든다고.
2.2 절은 1957년 7월 17일 미국에서 일어난 RB-47기 사건으로 넘어간다. 콘던 보고서가 "미식별"로 분류한 이 사례는 40년에 걸쳐 거듭 인용·연구됐다. 물리학자 제임스 맥도널드가 1971년 같은 학술지에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1976년에는 앞서 언급한 언론인 필립 클래스가 사실을 사소화하려 했지만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그 해석의 큰 부분은 1997년 말, 항공우주 기술 연구자 브래드 스파크스가 정리한 심층 조사 메모로 반박됐다.
저자는 사건의 핵심 흐름을 요약하겠다고 예고한다. 빛을 내는 미식별 비행체가 야간에 시각·레이더뿐 아니라, 그 방향에서 들어온 펄스 마이크로파 전파로도 잡힌 사례다. RB-47은 폭격기였지만 폭탄창을 개조해 세 명의 장교를 태웠고, 이들은 지상 레이더에서 나오는 신호를 탐지해 방위각만 잡을 수 있는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거리와 신호 성질까지는 알 수 없었다. 사건 당일 RB-47은 미국 중남부 상공에서 훈련 비행 중이었고, 그 지역에는 약 3000메가헤르츠 대역의 신호를 1마이크로초짜리 펄스로 송출하는 레이더 기지가 다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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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매도널드가 직접 면담한 RB-47 승무원 여섯 명의 진술을 따라가는 보고서 본문이다. 레이더는 600마이크로초마다 한 번씩 펄스를 쏘면서 1분에 네 차례 수평선을 훑었고, 조종실에는 조종사·부조종사·항법사 세 명이 함께 있어 바깥을 직접 볼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여섯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미시시피 상공에서 일어났다. 협정세계시 0930Z, 현지 시각 0330 무렵, 멕시코만에서 북쪽으로 돌아오던 RB-47은 마하 0.75로 미시시피 삼각주 동쪽 해안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맥클루어 대위는 자기 화면 오른쪽 뒤편 "5시 방향"에서 펄스 마이크로파 신호 하나를 잡았다. 그 신호는 항공기를 빠르게 추월해 한 바퀴 돈 뒤 "6시에서 9시 사이"의 왼쪽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비행체이면서 초음속이라는 뜻이었다. 신호의 특성은 앞서 언급한 지상 레이더국과 같았지만 펄스 길이는 2마이크로초로 달랐다. 그는 전자 장비 오작동인가 싶어 그 자리에서는 보고하지 않았다. 클래스가 적은 대로, 그 시점 미국에도 소련에도 그런 신호 특성을 가진 레이더를 실을 만큼 큰 초음속 항공기는 없었다.
다음 사건은 1010Z 루이지애나 상공에서 일어났다. 조종사 체이스 중령과 부조종사 매코이드 대위는 "11시 방향"에서 비행기를 겨냥해 들어오는 강한 푸르스름한 흰빛을 봤다. 빛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번에 건너뛰더니 "2시 방향"에서 사라졌다. 클래스는 그것이 광학적 착시를 일으킨 운석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당시 체이스와 매코이드는 미확인 비행체가 아닌가 의심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맥클루어는 앞서 자신이 잡았던 신호를 떠올리며 같은 종류의 신호를 다시 찾아봤다.
맥클루어는 1030Z에 그 신호를 다시 잡았다. 앞서의 것과 똑같았고, 우연인지는 몰라도 "2시 방향"에서 들어왔다. 신호는 3000MHz 부근까지 잡을 수 있는 프로벤차노 대위의 검출기에서도 확인됐다. 항공기가 몇 분 동안 서쪽 항로를 따라가는 동안에도 "2시 방향"이 그대로 유지됐기 때문에 고정된 지상 레이더의 신호일 수는 없었다. 항공기는 텍사스에 들어선 뒤 댈러스 인근의 "유타" 레이더 관제 권역에 진입했고, 승무원이 유타에 보고하자 유타 쪽도 항공기와 함께 18km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물체 하나를 같이 잡고 있었다.
1039Z, 여전히 텍사스 상공에서 체이스 중령은 항공기 약 1500m 아래 "2시 방향"으로 움직이는 커다란 붉은빛을 봤다. 항공기는 고도 10,500m를 날고 있었고 날씨는 완벽하게 맑았다. 그는 물체의 모양도 크기도 가늠할 수 없었지만 빛이 물체의 윗부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인상은 분명했다. 1040Z, 그는 추적 허가를 받고 유타에 알렸다.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높이는 동안, 유타는 그 물체가 항공기의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18km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알려왔다. 1042Z, 체이스가 가속하자 붉은 물체는 댈러스 방향으로 오른쪽으로 꺾었고, 이것은 맥클루어도 확인했다. 1050Z 무렵, 댈러스에서 약간 서쪽 지점에서 물체는 그 자리에 멈춰 섰고, 같은 순간 유타와 RB-47의 기내 레이더, 그리고 맥클루어의 화면에서 동시에 사라졌다. 보고서는 레이더 화면에서 물체가 사라지는 일은 오늘날 개발·운용 중인 능동 스텔스 기술을 떠올리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항공기는 왼쪽으로 선회했고, 맥클루어는 유타에서 오는 것으로 보이는 신호 하나를 다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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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1957년 RB-47 사건의 마지막 단락에서 1976년 9월 18~19일 테헤란 사건으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먼저 RB-47 추적의 끝을 정리한다. 10시 52분 Z, 정찰기 Chase 가 그 물체가 약 4,500피트까지 하강하는 것을 봤고, 그는 RB-47에 1만 500미터에서 6,000미터로 급강하를 명령했다. 그 순간 물체는 그의 시야, 유타 레이더, 그리고 MacClure 화면에서 동시에 사라졌다. 10시 57분 Z, 여전히 댈러스 부근에서 물체가 MacClure 화면에 다시 나타났고 유타 측은 미확인 비행물체 목격 시 공군에 의무적으로 올려야 하는 비밀 긴급 무전 보고인 CIRVIS — Communications Instructions for Reporting Vital Intelligence Sightings — 보고서를 준비했다고 알렸다. 10시 58분 Z, 조종사는 2시 방향에서 시각 접촉을 회복했다. 몇 분 뒤 연료가 줄어드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귀환을 결정하고 오클라호마 시티 방향, 거의 북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그러자 물체는 유타 측 보고에 따르면 항공기 뒤쪽 18km 지점에 자리를 잡았고, 유타는 정체 불명의 물체를 추격할 전투기를 보내려 했다. 물체가 RB-47보다 아래쪽 뒤에 있어 조종석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유타 레이더의 사정거리를 한참 벗어난 오클라호마 시티 부근까지 MacClure의 화면에는 계속 잡혔다. 그러다 11시 40분 Z, 화면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이어 2.3절 테헤란 사건이 시작된다. 이 사건은 1976년 9월 18일에서 19일로 넘어가는 밤에 일어났다. 전 세계 여러 신문이 정확도에 차이를 두고 보도했고, 9월 21일자 France-Soir 가 그 한 예다. 한 미국인 시민이 정보자유법을 근거로 미국 당국에 끈질기게 요청한 끝에 결국 국방정보국 DIA 로부터 보고서를 받아냈고, 이후 다른 미국 문서들도 추가로 확보됐다. 이 사건에 관여한 장군들과 이란 항공 관제사들의 인터뷰는 DIA 보고서를 뒷받침하고 보완해 주었으며, 특히 인물의 실명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어지는 요약은 이 모든 자료를 종합한 것이다.
9월 18일 밤 11시경, 테헤란 공항 관제탑은 수도 북부 셰미란 주거지구 상공에 움직이지 않는 이상한 발광 물체가 떠 있다는 신고를 여러 차례 받았다. 야간 근무 책임자 호세인 페루지 Hossain Perouzi 가 쌍안경을 들고 직접 나가서 봤다. 그의 증언으로는 직사각형으로 보였고 아마도 원통형 물체였으며, 양 끝에서 푸르스름한 흰빛이 맥동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작은 빨간 불빛 하나가 원을 그렸다. 페루지는 이 기이한 목격을 황실 공군 사령부에 보고했고, 사령부는 공군 서열 3위인 유세피 Youssefi 장군에게 알렸다. 그는 자기 집 발코니로 나가 별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크고 밝은 물체를 직접 확인했고, 즉시 팬텀 F-4 한 대를 출격시키며 페루지를 중계로 삼아 작전을 지휘했다. F-4가 물체에서 45km 거리에 들어서자 비행 계기와 무전·인터컴을 포함한 모든 통신 수단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조종사는 요격을 중단하고 기지로 향했고, 거리가 멀어지자 승무원들은 계기와 통신을 다시 쓸 수 있게 됐다. 유세피 장군은 두 번째 F-4를 보냈다. 그 기체 화면에 잡힌 UFO 의 에코는 보잉 707 정도 크기로 보였다. F-4는 상대속도 280km/h 로 UFO에 접근했고, 45km 지점에 다다른 순간 UFO 가 가속해 그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승무원들은 물체의 실제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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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1976년 9월 이란 테헤란 상공 F-4 추격 사건 보고서의 마지막 대목과, 곧이어 1990년 3월 21일 러시아 페레슬라블-잘레스키(모스크바 동쪽) 사건으로 넘어가는 본문이다.
테헤란 사건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이어진다. UFO에서 직경이 달의 절반에서 3분의 1쯤 되는 밝은 물체 하나가 갑자기 빠져나와 F-4 쪽으로 빠르게 돌진한다. 조종사가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쏘려 한 순간 사격통제 콘솔과 무전·인터콤이 동시에 먹통이 된다. 곧바로 뱅크와 다이브로 회피하지만 물체는 약 6km 거리에서 따라붙다가, F-4의 선회 안쪽으로 파고든 뒤 다시 모선 UFO로 돌아간다. 잠시 후 또 다른 물체가 UFO에서 나와 지면을 향해 수직 강하한다. 승무원은 폭발을 예상했지만 물체는 부드럽게 착륙하듯 내려앉아 직경 2~3km 일대를 강한 빛으로 밝힌다. 일시적으로 시야를 잃은 승무원은 야간시각이 회복될 때까지 선회한 뒤 테헤란 비행장에 착륙한다. 특정 구역을 지날 때마다 통신이 끊겼고, 같은 구역을 통과한 민간기 한 대도 같은 일을 겪었다. 다음 날 헬기로 물체가 내려앉은 장소로 가 보니 말라붙은 호수 바닥일 뿐,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DIA가 첨부한 메모는 보고서 자체만큼이나 놀랍다. 다른 출처로도 확인했다고 적은 뒤, 이 사건이 UFO 현상 연구에 필요한 모든 기준을 충족하는 고전적 사례라고 평가한다. 그 근거로 여섯 가지를 든다. 서로 다른 위치의 다수 목격자가 있었다는 점, 공군 장성과 자격을 갖춘 승무원, 숙련된 레이더 운용병 등 목격자의 신뢰도가 높았다는 점, 시각 목격이 레이더로 확인되었다는 점, 별개의 항공기 세 대에서 같은 전자기 효과가 보고되었다는 점, 일부 승무원에게 야간시각 손실 같은 생리적 영향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UFO가 보여준 기동성이 상상을 넘어선 수준이었다는 점이다. 클래스가 이 사건을 사소화하려 한 시도는 오히려 사건의 견고함을 드러낸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이어 2.4절은 1990년 3월 21일 러시아 사건으로 옮겨간다. 모스크바 동쪽 페레슬라블-잘레스키 지역에서 야간에 일어난 일이다. 방공군 사령관 이고르 말체프 항공장군이 1990년 4월 19일자 신문 라보차야 트리부나(노동자의 신문)에 "방공 레이더에 잡힌 UFO"라는 글로 보고했고, 9.1장에서 인용한 마리 갤브레이스의 책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글에 따르면 탐지된 UFO를 요격하기 위해 전투기가 출동했다. 부대 지휘관들이 모은 100건이 넘는 시각 목격을 정리한 말체프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UFO 전문가가 아니므로 자료를 맞춰 보고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목격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UFO는 직경 100~200미터의 원반 형태이고, 양옆에 맥동하는 불빛 두 개가 있었다. 물체는 자기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고 수직·수평 양 평면에서 S자 기동을 보였다. 그 다음에는 지면 위에 정지 상태로 떠 있다가, 현대 제트 전투기보다 두세 배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비행 고도는 100미터에서 7,000미터 사이였다. UFO의 이동에는 소리가 없었고, 놀라운 기동성으로 다른 비행체와 구별되었다. 마치 관성을 완전히 잃은 듯 보였고,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떻게든 중력과 타협한 것처럼 움직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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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절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 사건 (1995년 7월 31일). 출처는 프랑스 항공우주청 산하 SEPRA.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출발한 보잉 727기 아르헨티나항공 AR674편이 안데스 중부의 휴양지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에 착륙하려 140km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하던 중이었다. 바로 그 순간 마을 전체에 정전이 발생해 어둠이 깔렸고, 관제는 조종사에게 몇 분간 대기 후 최종 접근하라고 지시했다. 접근에 들어선 조종사는 이상한 별 하나를 보았고, 같은 시각 관제는 해당 구역에 들어온 다른 항공기 한 대도 대기시켰다. AR674편은 선회를 마치고 활주로 축선에 들어섰을 때 오른쪽으로 대형 항공기 형상의 물체가 나타나 나란히 비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 물체에는 세 개의 불빛이 있었고 그중 가운데 하나는 붉은색이었다. 그 사이 공항 조명이 또다시 꺼졌고 활주로와 접근램프 조명까지 모두 나갔다. 대기 중이던 다른 항공기에서도 같은 현상이 관측됐다. 착륙이 불가능해진 조종사는 기수를 들어 다시 선회해 활주로 축선에 자리 잡으려 했고, 그 순간 발광 상태가 된 물체는 항공기 뒤로 돌아가 멈췄다가 수직으로 상승해 다시 멈췄다. 이어 항공기 앞으로 옮겨갔다가 결국 안데스 산맥 방향으로 사라졌다. AR674편의 승무원과 승객, 다른 항공기 탑승자, 관제사, 그리고 산카를로스 주민 일부가 이 기이한 공중 발레를 멍하니 지켜봤다. 보고서는 이 사건이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고 정리한다. 비행 중과 지상 양쪽에서 다수의 독립 목격자에게 확인됐다는 점, 현상이 수 분간 지속됐다는 점, 일부 궤적이 항공기 궤적을 그대로 따라갔다는 점, 그리고 마을과 공항 조명이 동시에 꺼지는 전자기 현상이 물체의 존재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3장 지상 목격은 지상에서 본 사례를 다룬다. 그중 두 건은 위원회에 직접 출석한 목격자의 증언으로, 모두 항공 분야 종사자이며 현상이 낮 시간에 관측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3.1절은 1954년 8월 16일 안타나나리보(마다가스카르)에서 다수 목격자가 본 현상을 다룬다. 위원회 출석 증언자 에드몽 캄파냐크(C)는 전직 포병 장교이자 마다가스카르 에어프랑스 기술서비스 책임자로, 현재는 은퇴해 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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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나나리보 상공에서 수백 명이 같은 물체를 봤다. 오후 5시, 우편을 기다리던 에어프랑스 사무소 직원들이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거대한 녹색 공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운석이라고 생각했다. 그 물체가 언덕 뒤로 사라지자 직원들은 곧 땅에 충돌해 충격이 전해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1분 뒤 다시 나타난 물체는 관찰자 머리 위를 지나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금속성 럭비공 모양 본체 앞에 뚜렷이 떨어진 녹색 렌즈 모양 부분이 앞서가고, 뒤로는 불꽃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목격자들이 추정한 본체의 길이는 DC4 여객기 정도, 약 40m였다. 녹색 렌즈 부분은 본체에서 약 40m 앞을 떨어진 채 비행했고, 뒤로 길게 불꽃을 끌고 있었다. 물체는 안타나나리보 상공을 50~100m 정도의 높이로 지나갔는데, 이 고도는 인근 언덕과 비교해 추정했다. 물체가 지나갈 때 상점 조명이 꺼졌고, 동물들은 극심한 불안 반응을 보였다.
물체는 안타나나리보를 지난 뒤 서쪽으로 향했다. 시내 얼룩말 사육장 위를 지나갈 때 동물들은 격렬한 공포 반응을 보였는데, 이는 평소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지나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는 반응이라는 점에서 특이했다. 2~3분 뒤 같은 모양의 물체가 150km 떨어진 농업학교 상공에서 목격됐고, 이곳 가축 떼도 공황 상태에 빠졌다. 만약 두 곳에서 본 것이 동일한 물체였다면 속도는 시속 3000km 수준이었다. C의 진술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 주둔 사령관 플뢰르캥 장군이 이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과학 위원회를 꾸렸지만, 공군 문서고에서 그 조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GEPA(항공우주현상연구회) 회보 1964년 하반기 6호가 이 목격 사례를 다뤘다.
이어지는 절은 1979년 12월 9일, 한 조종사가 지상 가까이에서 본 비행접시 사례다. 사건 당시 전직 공군 중령 장피에르 파르텍은 디종 제2전투비행대 미라주 III 조종사였고, 현재는 민간 항공사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디종 인근 마을에 살고 있었으며 지금도 같은 곳에 거주한다. 그의 집은 들판이 내다보이는 주택단지 끝에 자리 잡고 있다. 250m쯤 떨어진 곳에는 최대 15m 높이의 작은 숲이 있다. 1979년 12월 9일 오전 9시 15분경, 파르텍과 아내는 집 근처 들판에서 낯선 물체를 봤다. 보고서는 이 물체를 M이라 부른다. 날씨와 시정은 매우 좋았다. 두 사람이 추정한 M의 크기는 지름 20m, 두께 7m였고, 숲에 일부가 가려진 채 지면에서 약 3m 위에 떠 있었다. 아내와 진술이 완전히 일치한 파르텍은 물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윤곽이 매우 또렷한 접시 두 개를 위아래로 뒤집어 포갠 모양이며, 창이나 조명은 없었다. 윗부분은 금속성 회색, 아랫부분은 더 어두운 푸른빛이었고, 두 색이 만나는 경계가 완벽하게 구획돼 있었다. 태양 위치를 고려하면 이 색 차이는 단순한 조명 차이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물체는 마치 균형을 잡으려 애쓰듯 매우 작은 폭으로, 그러나 빠르지 않은 빈도로 끊임없이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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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절은 디종 공군기지 근처에서 한 조종사가 목격한 UFO 사례를 마무리한다. 그가 본 물체는 소리도 내지 않았고, 지상에 어떤 난기류나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한참 지켜보던 중에 물체가 더 빠르게 진동하더니 헬리콥터가 이륙 후 수평 비행으로 들어갈 때처럼 약간 앞으로 기울었고, 매우 낮은 고도로 흔적 없이 빠르게 수평 이동하다가 몇 초 만에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조종사는 이 사건을 디종 공군기지의 공군 헌병대에 신고했고, 이웃과 그 아이들도 같은 광경을 봤지만 신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항공 현상에 직업적으로 밝은 조종사가 본 이 광경은 끝내 설명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3.3절은 1989년 7월 28일에서 29일에 걸쳐 러시아 미사일 기지에서 다수 목격자가 본 사건을 다룬다. 1991년 KGB가 기밀해제한 UFO 보고 묶음의 첫머리에는 아스트라한 지방 카푸스틴 야르 인근 육군 미사일 기지 사건 파일이 놓여 있다. 이 사건은 마리 갤브레이스의 저서(9.1장 참고)에 소개됐고, 영어권에는 1993년 3월 모스크바 학술지 AURA-Z를 통해 알려졌다. 기지 안 두 거점의 군인들이 양호한 가시 조건에서 본 광경을 진술서로 남겼다. 파일은 불완전하며 레이더 탐지 여부는 언급되지 않는다. 익명의 KGB 장교가 쓴 사건 요약 뒤에 일곱 명의 진술이 이어진다.
첫 거점에서 나온 다섯 건의 진술은 클리멘코 중위, 하사 두 명, 사병 두 명의 것이다. 이들은 7월 28~29일 밤 22시 15분에서 23시 55분 사이에 3~5km 거리에서 UFO를 봤고, 한 번에 최대 세 개까지 동시에 나타났다. 한 물체는 소리 없이 갑자기 출발하고 멈추기를 반복하며 정지하기도 하는 단속적 움직임을 보였다. 전투기 한 대가 그중 한 UFO에 접근을 시도하자 UFO는 번개 같은 속도로 빠져나가 "마치 전투기가 정지비행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들리는 소리는 전투기 쪽뿐이었으니 UFO는 초음속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인근의 다른 거점에서 나온 두 건의 진술은 23시 30분부터 다음 날 1시 30분까지 수 km에서 300m 거리까지 접근한 UFO를 다룬다. 볼로신 소위는 이 UFO를 지름 4~5m의 원반에 밝게 빛나는 반구형 돔이 얹힌 형태로 묘사하고, 진술서에 직접 그린 스케치를 붙였다. 원반은 갑자기 움직이다가도 소리 없이 지상 20~60m 상공에 멈췄다. 사병 티차예프와 함께 있던 볼로신 소위는 원반이 인광 같은 녹색 빛을 내며 미사일 저장고 위 약 20m, 자신들에게서 300m 떨어진 곳에 떠 있다가 빛의 띠로 저장고를 몇 초간 비추는 것을 봤다. 티차예프 사병의 보고도 상관 보고와 일치했고, 그는 가까이 와도 소리가 없었던 점을 강조하며 헬리콥터로 착각할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뒤늦게 합류한 경비조까지 더해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거점 일대 상공에서 이 물체의 기동을 지켜봤다.
페이지 끝에 4장 — 프랑스의 근접 조우 — 의 머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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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립헌병대(Gendarmerie Nationale)가 정밀 조사한 1965년 7월 1일 발랑솔(Valensole) 사건을 다룬다. 그날 새벽 5시에 집을 나선 농부 모리스 마스(Maurice Masse)는 마을 근처 고원에 있는 라벤더 밭으로 향했다. 6시쯤 트랙터에 시동을 걸기 전, 담배에 불을 붙이려는 순간 쉭 하는 소리가 들렸고, 돌무더기 너머로 약 90미터 거리에 어떤 물체가 밭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을 봤다. 모양은 자동차 "도핀(Dauphine)"을 닮았고, 중앙 지지대를 중심으로 여섯 개의 다리로 서 있었다. 라벤더를 훔치려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10미터 정도까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자, 작은 존재 둘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이 왼쪽 옆에 매단 가방에서 관 같은 도구를 꺼내 마스를 향해 겨눴다. 마스는 그 자리에서 굳어 마비된 채 움직이지 못했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또렷하게 인식했다고 한다. 두 존재는 다시 비행체 안으로 들어갔고, 일종의 돔 너머에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거운 소음과 함께 비행체가 떠오르자 바닥에 닿아 있던 관과 여섯 다리가 회전하면서 본체로 접혀 들어갔다. 비행체는 수직으로 솟아오른 뒤 사선으로 기울어지며 제트기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마스는 약 15분 뒤에야 마비에서 풀려나 일을 재개했고, 마을로 돌아가 이야기를 전하자 소식을 들은 헌병대가 그날 하루 동안 그를 조사했다.
발랑솔 헌병대와 디뉴(Digne) 수사반은 며칠에 걸쳐 현장을 살폈다. 마스가 가리킨 자리에는 땅이 눌린 흔적과 함께 그 자리만 물에 젖은 듯한 모습이 남아 있었고, 한가운데에는 지름 18센티미터, 깊이 40센티미터의 매끈한 원통형 구멍이 있었다. 그 바닥에는 다시 지름 6센티미터의 휘어진 구멍 세 개가 뚫려 있었다. 비행체의 이동 축을 따라 100여 미터에 걸쳐 라벤더가 말라 죽었고, 이 현상은 여러 해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마스는 흔적 주변 몇 미터 범위 안에 라벤더를 다시 심어 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마스의 진술에 모순되는 부분이 일부 있었음에도, 두 헌병대가 모은 자료는 사건의 신빙성을 뒷받침했다. 특히 환경에 남은 흔적과 증인 본인에게 나타난 영향이 컸는데, 그는 이후 몇 달 동안 하룻밤에 12~15시간씩 잠을 잤고 그 뒤로도 마비 후유증에 시달렸다. 증인의 성격을 조사한 결과로도 거짓말증이나 조작을 의심할 만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이어지는 4.2절은 1967년 8월 29일 캉탈 데파르트망(Cantal Department)의 퀴삭(Cussac) 사건을 GEPAN/SEPRA 조사 결과로 다룬다. 퀴삭 사건은 1978년에 GEPAN 과학자문위의 요청으로 두 번째 조사가 진행된 사례로, UFO 사건들 가운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사건 당일 오전 10시 30분쯤, 프랑스 중부 고원지대의 화창한 아침에 어린 두 남매가 가족 소유의 가축 떼를 지키고 있었다. 함께 있던 개가 짖으며 한 마리 소가 뛰쳐나가려 한다고 알리는 장면에서 본문이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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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GEPAN/SEPRA 조사 보고서의 한 페이지로, 두 건의 목격 사례 마무리와 새 사례의 도입을 담는다.
앞 사례에서는 당시 13살이던 한 소년이 우리에서 빠져나간 소를 다시 데려오려다 길 건너편에서 모르는 아이 넷을 발견한다. 놀란 소년이 누이를 불렀고, 누이는 낯선 아이들 뒤로 매우 밝게 빛나는 구체가 떠 있는 것을 본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아이가 아니라 키가 1.2미터를 넘지 않는 작고 검은 존재였다. 둘은 구체 옆에 서 있었고, 한 명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으며, 서 있던 또 다른 한 명은 거울 같은 것을 들어 아이들의 눈을 부시게 했다. 소년이 그들을 부르려 하자 작은 존재들은 황급히 구체로 돌아가 머리부터 몸체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체는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떠올라 빠르게 나선을 그리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개는 짖고 소들은 울었으며 공기에는 짙은 유황 냄새가 가득했다.
1978년에 GEPAN 조사팀과 외부 전문가들이 두 번째 조사를 진행했는데, 외부 전문가 중에는 전직 예심판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두 번째 조사의 핵심은 진술 자체가 아니라 새로 확보한 이차 증인들이었다. 사건 직후 현장에 도착한 한 헌병은 아이들이 가리킨 자리에서 흙바닥의 흔적과 짙은 유황 냄새를 직접 확인했다. 사건 현장 근처 곳간에 있었다는 또 다른 증인도 나타나, 당시 헬리콥터 소리와는 분명히 다른 쉭 하는 소리를 똑똑히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두 주요 증인의 입회 아래 진행한 현장 재구성은 진술과 사건 정황을 모두 뒷받침했다. 사건 당시 아이들에게서는 짙은 유황 냄새가 났고, 무엇보다 며칠 동안 신체 이상과 눈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증상이 이어졌으며, 이는 가족 주치의가 확인하고 당시 마을 시장이던 아이들의 아버지가 증언했다. 두 번째 조사를 마치며 판사는 이렇게 말한다. ‘증인들의 진술 어디에도 그들의 진실성을 의심하거나 조작·장난·환각을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결함이나 모순은 없다. 주요 증인들이 어린 나이임에도, 그들이 진술한 사실이 아무리 비범해 보여도, 나는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목격했다고 본다.’
페이지 후반부는 새 절 ‘4.3 트랑상프로방스(바르 도, 1981년 1월 8일)’로 넘어간다. 1981년 1월 8일 오후 5시 무렵, 트랑상프로방스에서 정원에 펌프용 작은 헛간을 짓던 한 남자가 프랑스에서 관찰·연구된 가장 특이한 사례 중 하나의 목격자가 됐다고 한다. 하늘에서 무언가가 햇빛을 반사하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리자, 소리 없이 내려와 집 아래쪽 흙 단에 갑작스레 내려앉는 금속 물체가 보였다. 타원형의 그 물체는 비행기로 볼 만한 돌출부·날개·조종면·엔진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잠깐 흙 단에 머문 뒤 여전히 아무 소리 없이 푸른 하늘로 빠르게 사라졌다. 만약 왕관 모양의 기계적 흔적과 자국이 흙 단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사건은 그저 시각적 목격으로 끝났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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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
프랑스 헌병대와 이어 GEPAN이 목격자와 이웃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했고, 토양과 식물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전문가 감정은 미확인 중량 금속 물체가 실제로 그 자리에 착륙했다는 결론을 분명히 보여준다. 채취한 식물 시료 분석은 알려진 항공기는 물론 헬리콥터나 군사 드론도 아니라는 점을 가리켰고, 검토 가설은 모두 배제됐다. 착륙 지점의 야생 알팔파 비슷한 식생은 외부 작용으로 광합성 장치 자체가 크게 흐트러진 상태였다. 식물의 엽록소와 일부 아미노산 농도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났고, 이 변화는 자국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줄어들었다. 2년 뒤에는 이 영향이 완전히 사라져, 특정한 종류의 외상이라는 점이 드러났다. 분석을 맡은 INRA(국립농업연구소) 생태·식물독성학 연구실의 미셸 부니아스 교수는 그 생태계 식물에 가해진 깊은 교란이 고주파(마이크로파) 영역의 강력한 전자기장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사건은 여전히 조사가 이어지고 있으나, 1981년 1월 8일 트랑상프로방스에 착륙한 물체의 정체와 기원을 확실히 규정할 만한 단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4.4절은 이른바 '아마란스 사건'(1982년 10월 21일, 뫼르트에모젤주 낭시)을 다룬다. GEPAN/SEPRA가 조사한 이 사건은 세포생물학 연구자인 목격자가 자기 집 정원 위에 20분간 정지해 떠 있던 물체를 대낮에 본 일이다. 목격 후 다섯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헌병대가 받아둔 진술 요지는 이렇다. 목격자는 1982년 10월 21일 12시 35분쯤 퇴근 후 집 앞 정원에 있다가 남동쪽에서 다가오는 비행체를 보았다. 처음에는 비행기로 여겼고, 구름은 없었으며 태양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가시거리는 더없이 좋았다. 하강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아 집 위를 그냥 지나가리라 생각했지만, 궤적이 자기 쪽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3~4미터 뒤로 물러섰다. 타원형의 그 물체는 지면에서 약 1미터 위에 멈춰 그 자리에 20분 가까이 떠 있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해둔 덕분에 목격자는 비행체가 떠 있던 시간을 분명히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 형상은 직경 약 1미터, 두께 약 80센티미터의 알 모양으로, 아래 절반은 잘 닦은 베릴륨처럼 금속 광택을 띠었고 위 절반은 깊은 호수 속 같은 청록색이었다. 소음도 없었고, 열·냉기·방사선·자기력·전자기 어떤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20분이 지나자 물체는 갑자기 수직으로 솟구쳐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마치 강한 흡인력에 끌려가듯 매우 빨랐다. 목격자는 마지막으로, 지면에 자국이나 흔적은 남지 않았고 풀도 그을리거나 눕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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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앞 사례에 대한 마무리부터 시작한다. 목격자는 비행체가 떠난 뒤 풀이 다시 똑바로 일어섰다고 증언했고, 조사관들은 식물에 남은 흔적, 특히 잎 끝이 완전히 말라버린 아마란스 덤불에 주목했다. 강한 전기장에 노출된 흔적으로 보였지만, 시료 채취 시점과 보관 조건 때문에 가설을 끝까지 검증하지는 못했다. 다만 이전 연구를 근거로, 풀을 일으켜 세운 전기장은 30 kV/m 을 넘었을 것으로, 아마란스가 받은 영향은 식물 높이에서 200 kV/m 을 훨씬 초과한 전기장 때문일 것으로 추정했다.
이어지는 5장은 "설명된 현상의 반례" 라는 제목으로 방향을 튼다. 앞 장들에서 다룬 미해결 사례는 데이터가 풍부했음에도 끝내 풀리지 않은 사례지만, 실제로는 이런 경우가 소수다. 프랑스에서 헌병대에 신고된 다수의 공중 현상은 헌병대나 GEPAN/SEPRA 의 짧은 조사 끝에 달, 행성, 항공기, 기상 관측 기구, 차 헤드라이트가 구름에 반사된 빛 등으로 설명되었고, 드물게는 장난이나 조작으로 밝혀졌다. 가끔은 더 색다른 설명이 나오기도 했다. 보고서는 그 사례 두 건을 들기로 한다.
첫 번째 사례는 1988년 9월 29일, 파리-릴 고속도로에서 일어났다. 한 자동차 정비공이 거대한 붉은 공이 도로를 가로질러 몇십 미터 앞에서 도로 아래로 굴러 내려가는 모습을 보았다. 빛을 반사하고 짙은 연기에 감싸인 채 들판에서 멈춰 섰다. 충격을 받은 정비공은 고속도로 헌병대에 신고했고, 헌병대장은 고속도로와 주변 수 킬로미터 구역을 봉쇄했다. 주 목격자와 가족은 병원으로 이송되어 일련의 검사를 받았고, 민간·군 보안 요원들이 가이거 계수기를 들고 현장에 나왔다. 마침 그 시점에는 핵연료 발전기를 실은 소련 위성 코스모스 1900호의 추락이 임박해 있어 별도의 지침이 내려와 있었다. CNES 에 문의하자 코스모스 1900호는 같은 시각 인도양 상공을 지나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이 붉은 공은 우주에서 온 것인가? 보안 전문가들은 방사선 계수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 지름 약 1.5미터의 구체에 다가갔다. 서치라이트 불빛 아래서 보니 대기권 재진입 때 생길 만한 큰 열 손상이나 기계적 흔적은 없었고, 표면은 작은 거울들로 덮여 있었다. 연기도 방사능도 검출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이 구체는 장-미셸 자르 콘서트의 무대 장식용으로, 런던으로 향하던 트럭에서 떨어진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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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GEPAN/SEPRA 가 1979년 3월 프랑스 동브 지역의 한 마을에서 조사한 사례를 정리한 보고서다. 1979년 3월 13일, 마을 주민이 3월 10~11일 밤 마을 위에서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봤다고 신고하자 현지 헌병대가 출동해 모두 네 건의 증언을 받았고, 그 중 세 건은 서로 완전히 독립된 것이었다. 첫 번째 증인인 마을 식당 운영자는 약 15미터 길이의 푸르스름하고 보랏빛이 도는 빛 덩어리가 약간 길쭉한 타원형으로 떠 있었다고 설명했다. 빛이 어찌나 밝은지 마을 광장이 대낮처럼 환해졌고, 자동으로 켜져 있던 가로등이 오히려 꺼져 버렸다. 마을 근처에서 차를 몰고 있던 다른 두 증인은 그 빛 덩어리가 자기 차 앞 2미터 정도 거리를 앞서서 도로를 따라가다가, 빛 양옆으로 주황색 빛이 나타난 직후 갑자기 사라졌다고 헌병대에 진술했다. 네 번째 증인은 양어장을 운영하던 농부로, 그 밤 둔탁한 소리에 잠을 깼고 푸르스름한 밝은 빛을 봤다고 했다. 다음 날 그가 키우던 수조 중 한 곳의 메기들이 모두 죽은 채 발견됐다. 수조 위에 송전선이 지나고 있어서 헌병대는 조사 방향을 전기 현상 쪽으로 잡았다. 며칠 뒤 GEPAN/SEPRA 가 직접 현장에 들어가 조사해 보니, 수조 위를 지나는 10킬로볼트 송전선이 녹아 있었다. 프랑스 전력공사 EDF 가 제공한 정보를 종합한 결과, 이 송전선은 설치된 지 약 삼십 년이 된 노후 설비였고, 알루미늄 도선의 부식과 산화로 인해 코로나 방전과 함께 전기 아크 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설명은 증인이 들은 푸른 빛과 소음, 그리고 공공 가로등이 꺼진 현상을 동시에 풀어 준다. 실제로 그 빛은 녹은 송전선 근처에 있던 가로등 광전 제어 셀을 작동시킬 만큼 충분히 밝았다. 결국 양어장 물고기들은 몇 분 동안 수조 안으로 떨어진 알루미늄 방울에 중독돼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페이지 후반부는 보고서의 2부 "우리가 아는 것의 범위"로 넘어가며, 6장 "프랑스 연구 조직의 구성"을 시작한다. 1977년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CNES)가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UAP) 연구를 담당할 상설 조직을 세우라는 임무를 받았고, 그 결과 GEPAN —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 연구단 — 이 만들어진 경위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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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UFO 연구 조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는 보고서 본문이다. 이 임무에 어울릴 만한 기술과 자원이 조직 안에 갖춰져 있었고, 특히 과학계와 가까이 닿아 있던 고급 기술 인력과 엔지니어들이 그 자리를 지켰다. 위베르 퀴리앙(Hubert Curien)이 의장을 맡고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두루 대표하는 열두 명으로 구성된 과학자문위원회가, 이 까다롭고 민감한 주제를 필요한 만큼 정밀하게 다루겠다고 보증했다. 이 위원회는 GEPAN의 작업을 매년 지도하고 조직하고 검토하는 일을 맡았다.
프랑스의 UFO 연구 활동은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고, 1988년 GEPAN의 후신인 대기재진입현상연구국(SEPRA)이 CNES 산하에서 출범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첫 번째 단계는 조직을 세우고 자료 수집·처리 절차를 정하는 단계이며, 이 장에서 다룬다. 두 번째 단계는 사례를 연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정의하는 단계, 세 번째 단계는 앞서 정의한 방법과 절차를 실제로 운용하는 단계로, 뒤의 두 단계는 다음 장에서 다룬다. SEPRA는 GEPAN보다 더 제한적인 역할을 하며, 과학자문위원회는 이미 역할을 마쳤다.
6.1 조직 구성 단계. GEPAN이 처음 한 일은 신뢰할 만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기 위해 민간·군·행정 영역의 여러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는 것이었다. 헌병대(Gendarmerie Nationale), 민간·군 항공 당국, 국립기상청 등이 GEPAN과 협정과 의정서를 통해 한 조직 안으로 묶였다. 첫 목표는 현상이 목격된 현장에서 자료를 빠르게 확보해 내놓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과학자문위원회의 지침에 따라, GEPAN은 심리적·물리적 자료를 모으는—예컨대 지면에 남은 흔적의 시료를 채취하는—전문 조사팀을 꾸리는 임무를 받았다. 같은 흐름에서, 민간·군 연구소들이 조사 자료의 감정과 분석에 참여하도록 요청을 받았고, 사진 자료나 레이더 기록을 처리하는 일도 그중 하나였다.
6.2 헌병대의 참여. 헌병대가 UFO 자발 증언을 수집하고 중앙으로 모으는 임무를 정식으로 받은 것은 1974년 2월의 일이다. 그전까지는 지역 헌병대가 그때그때 산발적으로 증언을 받아두는 정도였고, 보고서를 따로 쓰거나 본격 조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1965년의 발랑솔(Valensole) 사건이 그런 예외 가운데 하나다. 행정·기술 부처는 그렇게 모인 문서를 처리하지도, 활용하지도 않았다. 1977년 5월부터는 지역 헌병대가 작성한 보고서 여섯 부 가운데 한 부가 GEPAN에 송부되었고, 이때부터 GEPAN이 UFO 관련 정보를 모두 받는 창구가 되었다.
6.2.1 헌병대의 역할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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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헌병대(장다르므리 나시오날)의 미확인 항공현상 자료 수집·처리 절차를 설명하는 보고서 본문이다. 모든 헌병 부대는 "헌병대 핸드북"이라는 매뉴얼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미확인 항공현상 자료 수집 절차가 모두 적혀 있다. 사건의 복잡도에 따라 단순 진술 기록부터 실제 현장 조사까지 개입 수준이 달라지는데, 현장 조사 단계에서는 GEPAN/SEPRA 부서가 목격 지점에서 헌병대와 함께 움직여 심층 보고서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다음 절(6.2.2)은 수집된 자료의 활용을 다룬다. 현지 헌병대가 정보를 모으면 이를 보고서 형태로 파리의 헌병대 본부에 올리고, 본부가 그 사본을 GEPAN/SEPRA에 넘긴다. GEPAN/SEPRA는 이를 두 단계로 처리한다. 1단계에서는 보고서를 분석해 데이터베이스에 입력하고, 현상의 분류와 유형학을 만들기 위해 통계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2단계는 더 복잡한 "UAP D"(D등급 미확인 항공현상) 사건에 해당하는데, 현장 조사 결과를 추가로 처리해 상세한 심층 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 보고서는 사실 해석 연구의 자료가 된다.
이어지는 절(6.2.3)은 헌병대와의 협력 성과를 평가한다. 1974년 이래 3000건이 넘는 헌병대 보고서가 GEPAN/SEPRA로 넘어왔고, 한 보고서마다 평균 세 명의 자발적 증언이 들어 있다. 여기에 더해 약 100건의 현장 조사와 개입이 지역 헌병대와 공동으로 이뤄졌다. 이 모든 작업 덕분에 빈도는 낮지만 다양하게 나타나는 자연·인공 현상들을 특징지을 수 있었고, 이러한 조직 체계가 없었다면 식별이 불가능했을 사례들이다. 협력 덕분에 트랑상프로방스 사건이나 "아마란스" 사건(4장 참조) 같은 UFO 사례를 우수한 조건에서 연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잔여 사건들이 남아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CNES가 UFO 연구에서 추구하는 목표를 정리한 자료는 모든 지역 헌병대에 폭넓게 배포되었다. 또한 헌병대 학교는 장교와 하급 헌병들을 대상으로 추가 교육을 정기적으로 제공해 부대 지휘관들이 이 문제에 민감해지도록 하고 있다.
마지막 단락은 협력의 한계를 짚는다. 협력 결과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자료 수집 절차를 정기적으로 갱신할 필요가 있고, 지역 헌병대가 사건을 인지한 시점부터 SEPRA가 개입하기까지의 시간 차이도 더 짧아져야 한다. 개입 시간이 줄면 특히 환경에 남은 흔적 같은 정보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SEPRA가 수행한 연구·조사 결과를 헌병대가 일상적으로 전달받는 일도 중요하다. 단락은 "그러나(However, the)"로 끊겨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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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6장 후반부로, 프랑스 군·민간 항공 당국이 UFO 목격 보고를 어떻게 수집하고 GEPAN/SEPRA 로 전달하는지를 정리한다. 6.3 절은 공군의 참여를 다룬다. 2차 대전 직후부터 프랑스 항공 UFO 목격은 공군참모총장실 산하 기획연구국(EMAA/BPE)이 모아 보관해 왔다. GEPAN 창설 후 양 기관은 양해각서를 맺어 군 항공 목격 처리의 역할을 나누었다. 원칙은 모든 UFO 목격을 해당 군 항공교통관제센터에 신고하고, 그 정보는 타베르니의 공중작전센터(CCOA)로 넘어가며, 다시 공군참모총장실 우주국과 협력해 GEPAN/SEPRA 에 전달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레이더 자료는 레이더 관제센터에서 최소 한 달, 요청이 있으면 그 이상 보존하고, 필요할 때 조사관에게 제공한다. 육군과는 별도 협약으로 육군항공대(ALAT) 조종사가 비행 중 수집한 정보의 전달 조건을 정해 두었다. 6.4 절은 민간 항공 당국의 참여를 다룬다. 동일한 조직과 절차가 적용되어 민간 조종사의 목격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한다. 민간항공총국(DGAC) 과 CNES 가 맺은 협약 덕분에 GEPAN/SEPRA 는 국내·외국 항공사 승무원이 작성한 목격 보고서에 접근할 수 있다. 이를 위해 DGAC 와 GEPAN/SEPRA 가 공동으로 만든 목격 보고 양식을 민간 항공교통관제센터와 항공사 승무원이 사용한다. 또한 승무원과 관제소 사이의 무선 교신은 일상적으로 녹음되어 상세 목격 보고에 첨부된다. 안전이 걸린 비행 사고에 대해서는 별도 규정이 있어, 기장은 "Airmiss" 절차를 따르고, 이 절차는 자동으로 DGAC 의 조사를 촉발한다. 6.5 절은 추가 연구 자원을 설명한다. 다수의 민간(공공 또는 사설) 및 군 기관이 GEPAN/SEPRA 의 조사·연구에서 전문 감정에 참여한다. 참여는 두 층위로 이루어지는데, 하나는 현장 자료 수집과 목격 보고 활용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전문 감정 이후의 자료 분석과 필요한 이론·실험 연구 단계이다. 자체 연구 영역에서 GEPAN/SEPRA 조사 결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기관과는 협력 협정이 체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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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PAN/SEPRA 가 협력하는 기관 목록 끝부분과, 이어지는 6.5절 세 가지 강조할 응용의 본문이다. 협력 기관 예시로 번개 연구에는 EDF·CEA(프랑스 원자력청)·기상청·ONERA·CEAT(툴루즈 항공시험센터), 유성 연구에는 CNRS(국립과학연구센터)·DGA(국방조달청), 통신 연구에는 EDF·프랑스 텔레콤, 집단 사회학과 특히 종파 연구에는 CNRS와 대학들, 사진·필름·위성 영상 처리에는 Fleximage 사가 들어간다. 이어 강조할 세 응용을 차례로 설명한다. 6.5.1 시료 분석 — GEPAN/SEPRA 는 ETCA(중앙 군수기술연구소) 등 민간·군 연구소들의 협력을 받아 조사 과정에서 수집한 토양·식물 시료를 분석한다. 6.5.2 사진 활용 — ETCA 에서 1981년부터 1988년 사이 영상 처리 연구를 진행했고, 이 작업으로 GEPAN 기술 메모 18호에 정리된 UFO 추정 사진 분석 기법과 절차가 정립되었다. 헌병대 각 지역대에는 회절 필터를 보급해 현장에서 발광 스펙트럼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했다. 6.5.3 하늘 감시 시스템 — 국방부가 오리온 이라는 시스템을 연구·부분 배치했다. 본래 목적은 위성, 특히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 위성의 감시·식별·통과 예측이지만, UFO 유형 발광 현상의 감시 수요도 적어도 부분적으로 충족할 수 있다. 시스템 구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함정 몽주(Monge) 호에 탑재된 기존 감시·추적 레이더와 청취 안테나. 둘째, 두 종의 레이더·광학 감시 체계와 한 종의 광학 영상 체계 — GRAVES 감시 레이더는 1500킬로미터 거리에서 1제곱미터 크기 물체까지 탐지하도록 설계되며, SPOC (하늘 관측 탐사 시스템) 광학 감시 체계는 CCD 카메라로 궤도 위성과 7~8등급 우주 잔해의 궤적을 탐지·산출하는데 두 곳에 장비 설치가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지름 4미터의 SOLSTICE 망원경 개발이 있는데, 적응 광학을 적용해 정지궤도(36000킬로미터) 물체를 관측하는 용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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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7장은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 산하 GEPAN/SEPRA 가 정립한 미확인 항공 현상 조사 방법과 그 결과를 다룬다. 7.1절은 GEPAN 이 개발한 조사 방법을 설명한다. GEPAN 은 드물고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법을 만들었고, 운석 역시 그러한 현상의 하나라고 본다.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시골 주민들이 보고하는 "하늘에서 돌이 떨어졌다"는 목격담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으나, 1803년 물리학자 장바티스트 비오가 오른 데파르트망의 레글 마을에서 보고가 들어온 지 약 3주 뒤 현지에 가서 정밀 조사를 했다. 그는 떨어진 돌과 부러진 나뭇가지, 뚫린 지붕, 화재 같은 정황 증거를 살피고 다수의 독립 목격자를 면담해 운석의 과학적 실재를 입증하는 보고서를 작성했고, GEPAN 은 이 사례를 자기 방법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GEPAN 의 방법은 과학자문위원회의 승인을 받았으며, 핵심은 처음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을 네 가지 자료를 함께 분석해 식별하는 것이다 — 목격자 자체 (생리, 심리 등), 진술 (서술 내용, 질문에 대한 반응, 전반적 행동), 물리 환경 (기상, 항공 교통, 사진, 레이더 자료, 환경에 남은 흔적), 그리고 심리 환경 (목격자의 사전 지식과 신념, 미디어와 집단이 목격자에게 미친 영향). 헌병대 보고만으로도 항공기·행성·인공위성 같은 일상적 정체가 드러나는 사례가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GEPAN/SEPRA 는 보충 조사를 진행하며 심층 조사는 길게는 2년이 걸린다. 환경에 남은 흔적은 전문 실험실에 의뢰하기도 하는데, 4장에서 다룬 트랑장프로방스와 "아마란스" 사례가 그 예다. 또한 조사 방법을 다듬기 위해 대학들과 공동 연구를 했고, 과학적 정밀성을 위해 CNES 는 더 널리 알려졌지만 의미가 좁은 UFO 대신 UAP 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GEPAN 은 그 UAP 를 연구하는 조직이다. 7.2절은 GEPAN/SEPRA 가 사례를 어떻게 분류하는지 보여 준다. 조사 후 모든 사례는 식별 정도에 따라 네 범주로 나뉜다. A 범주는 현상이 완전히 식별된 경우, B 범주는 식별이 가능해 보이지만 증거 부족으로 확신할 수 없는 경우, C 범주는 자료가 부족해 식별이 불가능한 경우, D 범주는 자료가 풍부하고 질이 좋은데도 식별이 되지 않는 경우다. 마지막 D 범주는 전체 사례의 4~5%에 해당하며 UAP-D 라 불린다. 이 가운데에는 목격자로부터 불과 몇 미터 거리, 거의 지면 가까이에서 일어난 사례도 있고, 가장 기이하고 수수께끼 같은 사건들이 여기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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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GEPAN/SEPRA 의 UAP 분류와 사례 분석을 정리한 보고서 본문이다. 앞 문단은 미 공군 자문 천문학자 J. 앨런 하이네크 교수가 블루북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분류에 따라 이런 사례를 CE3, 즉 제3종 근접조우로 부른다고 설명한다.
7.3절은 UAP D 의 유형 분류를 다룬다. 세밀한 통계 분석을 통해 속도·가속도·정숙성·형태·환경 영향 같은 물리적 특성의 분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소련의 통계 연구 결과가 GEPAN 의 초대 책임자 클로드 포에르가 프랑스 사례 200여 건 — 전 세계로 보면 1,000여 건 — 으로 도출한 분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도 UAP D 통계 연구를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7.4절은 주목할 만한 사례 조사를 다룬다. GEPAN/SEPRA 가 수행한 조사는 100여 건에 달하는데, 일부는 번개 같은 희귀 대기 물리 현상과 연관되었음을 보여 줬고, 일부는 환각제 복용 등으로 인한 목격자의 비정상적 심리 상태를 드러냈다. 그러나 증거 분석에 기반한 몇몇 심층 조사는 결국 그 본질과 기원이 여전히 불명인 어떤 현상의 물리적 존재를 입증했다. 4장에 실린 두 사건이 특히 인상에 남는데, 1981년 1월 8일 트랑상프로방스 사건과 1982년 10월 21일 "아마란트" 사건이다. 조사 결과는 두 개의 접시를 맞붙인 형태의 물체가 한동안 지면 가까이에 머물다 하늘로 떠나면서 식물과 — 트랑상프로방스의 경우 — 지면에까지 흔적을 남겼다는 결론을 시사했다. 자세한 내용은 GEPAN 기술 메모 16호와 17호에 담겨 있다.
7.5절은 항공 사례를 다룬다. 7.5.1 프랑스 항공 사례 항목에 따르면 GEPAN/SEPRA 에 보고된 프랑스 항공 사례는 12건이며, 이 가운데 D 범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서너 건에 불과하다. 가장 이른 UAP D 사례는 1951년 오랑주 지역 뱀파이어 군용기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장에서 다룬 다른 두 건은 1976년 투르 인근, 1977년 뤽쇠유 인근에서 군 조종사들이 일반 항공기로는 설명되지 않는 비행 성능을 가진 물체를 목격한 사건이다. 그러나 시각 목격과 50초 이상의 레이더 탐지가 처음으로 짝지어진 사례가 나온 것은 1994년 1월 28일 정기 운항 중이던 에어프랑스 여객기 승무원에 의해서였다.
7.5.2 항공 UAP D 사례 세계 동향 항목은 1942년 이후 알려진 항공 UAP D 사례가 도미니크 와인스타인의 책 《Rencontres dans le ciel》(하늘에서의 조우) 에 처음 정리되었으며, 이 책의 프랑스 항목 작성에 SEPRA 가 기여했다고 밝힌다. 목록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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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충분히 검증된 항공 UAP-D 목격 489건을 정리한다. 대부분의 정보는 공식 출처 — 각국 정부, 공군, 그리고 SEPRA 같은 기관 — 에서 나왔다. 목록은 목격의 질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단순 시각 목격부터 — 속도, 가속, 기동성, 무음 같은 현상의 성능과 기동을 묘사한 사례 — 더 정교한 목격까지 — 무선 간섭이나 레이더 재밍, 항법 계기 오작동, 심지어 승무원에 미친 물리적 영향(열, 시야 차단 등) 같은 환경 교란을 동반한 사례 — 다양하다. 1947년에서 1969년 사이, 즉 미 공군의 UFO 조사 프로젝트 블루북이 돌아간 시기에 363건이 확인됐다. 가장 많은 목격이 기록된 해는 1952년으로 68건이다. 적어도 한 차례 이상 항공 목격이 있었던 나라는 모두 63개국에 이른다.
7.5.3 — 전 세계 "레이더-시각" 사례. 레이더-시각 사례는 시각 목격이 기내 또는 지상 레이더 탐지와 동시에 일어난 경우를 가리킨다. 일본과 소련의 첫 사례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목록의 68개국 중 30개국이 레이더-시각 사례를 보고했다. 보고서의 489건 중 101건(21%)이 레이더-시각 사례였고, 블루북 363건 중에서는 76건(21%), 1952년에는 68건 중 16건(23.52%)이 그러했다. 결론적으로 1942년부터 1995년 사이 전 세계에서 확인된 항공 UAP-D 목격은 적어도 500건이고, 그중 20% 가까이가 레이더-시각 사례다. 이 자료들은 역설적 기동을 보인 현상이 물리적 실재였음을 뒷받침한다.
7.6 — UAP-D 의 물리적 실재. 7.6.1 — 1947년 9월 미국에서 나온 초기 보고서. 앞서 GEPAN/SEPRA 의 작업은 알려진 자연 현상이나 인공 현상으로 분류할 수 없는, 빈도는 낮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희귀 물리현상의 전체 범주가 있음을 보여줬다. 군과 민간 항공 영역, 그리고 지상 근접 — 근접 조우 — 영역 모두에서 UAP-D 가 부각됐다. 이 사례들은 전 세계 공식 당국이 검증한 또 다른 잘 문서화된 목격들과 맥을 같이한다. 흥미로운 점은 1947년 11월 [원문 표기], 즉 현대 UFO 첫 물결이 막 시작되던 시점에, 미국에서 항공물자사령부 책임자 트와이닝 장군이 "flying disks" 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 결론은 매우 분명하다 — 첫째, 보고된 현상은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실재한다. 둘째, 우리 항공기에 비견될 크기의 원반형 물체가 실제로 존재한다. 셋째, 일부 목격은 자연 현상에 해당할 가능성이 있다. 넷째, 관찰된 매우 높은 상승률, 기동성, 그리고 회피… (다음 페이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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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프랑스 정부 UAP 보고서(이른바 코메타 보고서)의 7.6절 일부로, 해외 사례를 검토해 1947년 트와이닝 장군이 내린 결론을 뒷받침할 수 있는지 살핀다. 먼저 디스크가 발각될 때 보이는 기동을 근거로 누군가가 조종하거나 원격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추정하게 된다고 적고, 다섯 번째 결론으로 대다수 목격자가 금속 표면에 원형 또는 타원형이며 위쪽이 돔 모양인, 소리 없이 비행하는 물체를 봤다고 진술한 점을 든다. 7.6.2절은 GEPAN/SEPRA의 작업을 다룬다. 물질 조각이든 통째이든 UAP D의 물리적 실재와 인공물성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는 아직 없지만, 20년이 넘는 자료 수집과 전문가 감정은 트와이닝 장군이 1947년에 남긴 진술을 뒷받침한다고 정리한다. 7.6.3절은 프랑스 군 항공 사례를 본다. 1951년 오랑주, 1976년 투르, 1977년 뤽쇠이의 군 조종사 목격담은 트와이닝의 네 번째 결론, 곧 물체가 조종되거나 원격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조종사들은 한결같이 자기 쪽이 다가간 게 아니라 물체 쪽이 자기 쪽으로 다가왔다고 진술했고, 그 기동 능력이 자신들이 아는 어떤 비행체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7.6.4절은 프랑스 안에서의 근접 목격 사례를 묶는다. 4장에서 다룬 트랑상프로방스 사건의 경우 현장 감정이 주민 증언을 뒷받침했고, 금속질 외관에 원형 모양의 물체가 착륙한 뒤 2.5m 높이의 담장 가까이서 짧은 시간 안에 소리 없이 다시 떠올랐다고 본다. 현재 어떤 항공기도 이 정도로 조용히 그렇게 기동할 수 없으므로, 조종사가 타고 있거나 원격 조종되거나 혹은 매우 발달한 인공지능형 제어를 갖춘 비행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같은 4장의 발랑솔, '아마란스', 퀴삭 등 다른 근접 조우 사례도 UAP D 뒤에 어떤 지적 문명이 있다는 가정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들 사례에서는 목격자가 물체와 마주 선 직후 모든 것이 매우 빠르게 일어나고, 물체는 목격자에게 어떤 적대적 태도도 보이지 않은 채 자리를 떴다. 7.6.5절은 해외 사례를 묶는 결론으로, 해외 사례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프랑스 사례에서 끌어낸 결론과 비슷하다고 정리한다. 같은 관점에서 2장에 등장한 항공 사례들을 다시 읽을 수 있고, 이에 더해 해외 근접 조우 사례까지 함께 엮어 볼 수 있다고 말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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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소코로(뉴멕시코) 사건이 트랑상프로방스 사건과 비슷하지만, 그 비판적 개관은 본 보고서를 불필요하게 무겁게 만들 것이라며 다루지 않고 넘어간다. 그러면서 한 가지 강한 결론을 끌어낸다. 일부 UAP D는 완전히 정체불명의 비행 기계로 보이며, 자연 지능 혹은 인공 지능에 의해 유도되는 듯한, 비범한 성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8장 〈UFO: 가설과 모델링 시도〉의 8.1절 '부분 모델'은 보고된 현상에 그럴듯한 기술적 설명을 덧붙일 수 있다고 본다. 보고서는 현 지식 수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관측 사례로 세 가지를 든다. 매우 빠른 가속도나 매우 빠른 속도로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공중 이동, 근처에 있던 지상 차량 엔진의 정지, 그리고 목격자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다. 가장 잘 기록되어 있고 목격자의 명백한 전문성 때문에 가장 신뢰할 만한 사례가 항공기 조종사로부터 나오므로, 레이더 기록까지 뒷받침하는 그들의 공중 이동 목격이 먼저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8.1.1절 '이동'에서는 프로펠러나 제트 엔진이 필요 없어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는 여러 추진 원리를 개념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예고한다. 그중 가장 앞선 방식이 자기유체역학(MHD)이지만 다른 방식들도 함께 살피겠다고 한다.
8.1.1.1절 'MHD 추진'에서 보고서는 MHD 추진의 원리를 풀어 설명한다. 이 방식은 진공에서는 작동할 수 없으며, 배 주위 매질에 전류를 흐르게 하는 동시에 배가 자기장을 내보내는 데서 출발한다. 라플라스 법칙에 따라 이 자기장은 전류, 그리고 그 전류가 흐르는 매질에 힘을 가하는데, 이는 대부분의 전기 모터의 원리와 같다. 매질이 배에 대해 밀려나면, 반작용으로 배가 추진력을 얻는다. 남은 문제는 자기장과 전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자기장은 전기 모터의 권선처럼 적절한 전류가 흐르는 코일을 배의 벽 안이나 아래에 두면 쉽게 얻을 수 있다. 전류는 매질에 따라 사정이 달라진다. 바닷물에서는 선체에 전극을 붙여 전류를 흘리는 것이 쉽고, 그래서 미국과 일본이 수상선과 잠수함 모형으로 MHD 추진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해왔다. 반면 공기는 본래 절연체라 전류를 흘리기 더 어렵지만, 강한 전기장을 만드는 적절한 전극으로 공기를 도전체로 만들면 가능해진다고 본문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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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미확인 비행체의 추진 방식 가능성을 따져본다. 자기장 자체는 선박에서처럼 만들 수 있지만, 공중에서는 기체를 추진하는 동시에 기체 무게까지 떠받쳐야 하기 때문에 훨씬 강한 전기장과 자기장이 필요하다. 그만큼 강한 자기장을 얻으려면 초전도 배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론에 머물던 이 방식은 1991년 상온에 가까운 온도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가 발견되면서 항공기 응용 가능성이 진지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프로펠러나 제트엔진 없이 공기 중을 비행하는 자기유체역학(MHD) 추진은 원리상 충분히 가능하며, 계산에 따르면 필요한 출력은 현재 항공 엔진과 양립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가까이서 관찰된 비행체에 냉각계통이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은 점은, 비행 시간이 수십 분을 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이미 우리가 쓰는 전기 모터, 기내 저장 에너지, 플라이휠 같은 보조 동력은 즉각적인 냉각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많은 목격자가 강조한 것은 음속을 넘는 속도에서도 충격음이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MHD 추진은 이 침묵을 설명할 후보 기술이며, 후류와 충격파를 제거해 소음을 줄이려는 초기 실험은 특정 조건 아래에서 고무적인 결과를 보였다. 이 분야 연구는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 연구소, 영국, 러시아에서 진행되어 왔다고 보고서는 덧붙인다 (New Scientist 1996년 2월호 인용).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단기적으로 MHD 항공기 모델은 충분히 구상 가능하며, 목격담에서 묘사된 기동 능력에 가까운 비행체는 수십 년 안에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다만 지면 가까이에서 정지 비행할 때 감지되는 공기 흐름과 소음이 거의 없다는 점은 여전히 풀어야 할 문제로 남는다.
8.1.1.2 항에서는 진공에서의 다른 추진 방식을 다룬다. 진공에서는 분자나 원자가 거의 없어 매질을 통한 전류 흐름도, 매질에서 끌어낸 물질을 분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므로 MHD는 쓸 수 없고 다른 가설이 필요하다. 화학반응에 의한 제트 추진, 즉 성능이 더 향상된 형태의 로켓 엔진은 우주 구간에서 멀리서 관찰되기 때문에 우선 후보에서 배제할 수 없다. 또한 망원경과 레이더에 잡히지 않게 하는 스텔스 외피 덕분에 수 킬로미터에서 수십 킬로미터 거리에서는 통상적인 추진 방식을 쓰더라도 탐지되지 않을 수 있다. 남는 문제는 전력 소비와 분사할 질량인데, 8.1.1.3에서 제시할 방법으로 일부 해결 가능하다고 본다. 더 진보된 기술 후보로는 광속의 상당 부분에 이르는 매우 빠른 분사 속도를 요구하는 추진 — 입자빔 추진 — 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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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페이지는 보고서 8.1.1.2 절 후반부터 8.1.2 절 도입까지를 다룬다. 입자빔 추진은 매우 높은 속도로 적은 질량을 오랜 시간에 걸쳐 분사할 수 있어, 옛 소련(조지아 수후미)과 미국(특히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위성 탑재용 우주전 무기로 개발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빔은 지금 논의에 필요한 출력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행성 근처를 벗어난 뒤 저출력 엔진으로 쓰기에는 이미 의미가 있고, 1999년 7월 29일 소행성 1992 KD에 근접 통과 예정인 미국의 "딥 스페이스 1" 탐사선이 바로 이 방식의 엔진을 달았다고 적는다.
그 다음으로 다른 우주 추진 방식들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음을 짚는다. 핵분열 추진(NERVA·ORION·DAEDALUS 계획)과 더 최근의 핵융합 추진은 현재 최고 수준 엔진보다 각각 한 자릿수, 두 자릿수 이상 성능 향상을 약속한다. 그 너머에는 반물질 형태로 저장한 에너지가 있는데, CERN(유럽핵입자물리연구센터)이 반수소 원자를 만들고 그 저장 방법까지 입증하면서 신빙성을 얻었으며, 이것은 다시 백 배 이상의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점점 많은 연구기관이 이 주제에 매달리고 있다. 제트추진연구소(JPL), 로렌스 리버모어 연구소, 그리고 에드워즈 공군기지의 공군 우주항공연구소가 그 예이며, 마지막 기관에서는 1996년 6월 10일자 〈Jane's Defence Weekly〉에 따르면 반중력도 연구 중이라고 한다. 이 반중력 주제는 영국과 CIS(독립국가연합)에서도 추진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어 8.1.1.3 절은 행성·항성 임펄스를 이용한 항행을 다룬다. 엄밀히 말해 추진이라기보다는 항행 기법인데, JPL이 1961년에 적절히 고른 행성의 중력 우물을 활용해 우주선을 슬링샷시키면 추가 에너지 소비 없이 점점 더 빠른 속도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이 방식은 이제 태양계 외곽 행성 탐사에서 일상적으로 쓰인다. 1963년 다이슨이 제안한 대로, 행성뿐 아니라 항성까지 "반사판"으로 활용하면 탈출 속도 한계 안에서 상당한 속도에 이를 수 있고, 출발·도착 슬링샷에 시간을 들이는 대신 비교적 적은 에너지로 항성 간 거리를 가로지를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 방식이라면 항성 간 항해는 수천 년 단위가 되고, 앞서 살핀 반물질 추진보다 한 자릿수 더 긴 시간이 든다.
8.1.1.4 절은 항행에 관한 결론으로, 대기권 안과 우주에서의 이동 모두에 대해 합리적인 가설을 세울 수 있다고 정리한다. 첫째는 뚜렷한 양력 수단 없이 비행하는 경우, 둘째는 항성 간 규모까지 거리를 가로지르는 경우다.
끝으로 8.1.2 절은 "지상 차량 엔진 정지" 현상을 다루기 시작한다. 해외에서 자주 보고된 이 현상을 설명하려면 원격 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빛과 관련한 이론이 이 엔진 정지 현상에 결부된 사례가 없으므로 마이크로파 같은 라디오 주파수 복사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까지 적고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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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미확인 물체에서 나오는 마이크로파가 차량 주변에 강한 전기장을 만들어, 점화 전압에 더해지면 점화 코일·배전기·스파크 플러그 배선 같은 고전압 회로 주변 공기를 이온화하고 절연 파괴를 일으켜 엔진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본다. 1970년대부터 전자식 점화가 널리 쓰이면서 마이크로파는 이 회로를 직접 마비시킬 수도 있고, 같은 이유로 전자 제어가 늘어난 디젤 차량까지 영향을 받는다. 고출력 마이크로파 빔은 미국과 옛 소련이 적의 전자 장비를 원거리에서 파괴하거나 무력화하고 사람에게까지 작용시키려고 개발해 온 무기에서 이미 입증된 기술이며, 프랑스에서도 같은 목적의 발생기 연구가 진행 중이다. 다른 형태의 방사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하전 입자 빔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고, 일부 목격자의 몸 같은 살아 있는 조직을 통과해도 본인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후유증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 양성자 치료에 쓰이는 가속기 빔이 그 예로, 조직을 통과하다가 침투 끝에 에너지가 일정 한계 아래로 떨어질 때 비로소 파괴력이 생긴다. 또한 빛줄기가 물체를 통과하는 듯 보였다는 일부 증언은 양성자 빔이 공기를 이온화해 끝이 잘린 빛줄기처럼 보이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그 길이는 처음 에너지에 비례한다. 이어 8.1.3절은 일부 목격자가 겪는 운동 마비를 다룬다. 이 현상은 드문 편이지만, 마비가 호흡이나 자세 균형, 신경계 움직임은 건드리지 않고 의도적인 움직임만 막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인체에서 자세와 호흡은 소뇌가 맡고, 자발 운동은 별개의 대뇌가 담당한다는 점을 짚으며, 보고서는 이 마비를 마이크로파가 인체 일부에 원거리로 작용한 결과로 본다. 같은 효과는 위에 언급한 마이크로파 무기 연구의 목적이기도 하며, 미 공군의 커틀랜드 공군기지 무기연구소에서도 이런 효과를 연구 중이라고 적는다. 8.2절 「모형과 신뢰성」은 한 단락만 보인다. 사물의 추진 방식을 그럴듯한 가설로 세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긍정적 신호일 뿐, 그 사물이 실재한다는 증거도, 우리가 떠올리는 모형에 들어맞는다는 증거도 되지 못한다고 운을 뗀 뒤, 기술의 역사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지만 동시에 어떤 결과를 남길 수도 있다는 말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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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1
지은이는 미래 기술을 예측할 때 겸손해야 한다는 점부터 짚는다. 과거의 위대한 과학자들조차 "터널 안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과학은 거의 완성됐다", "공기보다 무거운 것은 날 수 없다" 같은 단언을 남겼다. 지금 우리의 지식과 성취만으로 우리보다 한두 세기 앞선 기술을 예단하는 것은 오만하다.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엔진, 전기, 원자의 존재, 헤르츠파 같은 것이 모두 미지의 영역이었다. 쥘 베른의 『20세기 파리』나 『어제와 내일』을 다시 읽어볼 만하다.
반면 확실한 것도 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멈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국가 간 경쟁에 떠밀려 일하고 있고, 이제 "닫힌" 세계가 된 지구에서 그 경쟁은 한때 자유롭게 풀려 있던 자원, 즉 식수, 심해, 극지, 대기, 우주, 전파 주파수 같은 것을 둘러싸고 벌어질 것이다.
가속하는 과학·기술 발전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위태롭지만, 적어도 수십 년 안에 우리 자신의 지식이 크게 나아지리라는 점은 거의 확실하다. 그 너머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 능력 너머에 있는 물체의 움직임도 수십 년 또는 수 세기 안에는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거라고 높은 확신으로 말할 수 있다 — 설령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이 우리가 지금 예상하는 것과 다르더라도 그렇다.
이 결론을 받아들인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인류의 등장과 우리 후손의 별 사이 탐사 사이에는 (큰 재앙이 없는 한) 수백만 년 정도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의식을 가진 지능이 지구에 나타난 시점부터,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그 물체들이 보이는 능력에 우리가 도달하는 시점까지의 간격은 1~2천 년 수준으로, 지구의 나이나 캄브리아기에 처음 생명체가 나타난 이래의 6억 년에 비하면 거의 0에 가깝다.
그러나 다른 세계의 지적 존재가 정확히 지구와 같은 속도로 발달했을 리는 없다. 다른 행성도 지구처럼 약 40억 년의 나이를 가졌고 거기서 의식을 지닌 생명이 등장했다 해도, 그 발달 속도와 행성의 형성 시기가 지구와 똑같을 수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초기 조건에서 0.1퍼센트만 어긋나도 그 문명은 우리보다 수백만 년 앞서 있거나 수백만 년 뒤처져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우주 안에서, 그리고 같은 태양계 안에서도, 두 문명이 비슷한 발달 단계에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결국 가능성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우리의 "이웃"은 우리보다 수천 년 또는 수백만 년 뒤처져 있거나 아직 의식을 가진 종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다면 그들을 발견하는 쪽은 우리가 된다. 둘째, 이웃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면 그 격차는 수년이나 수백 년이 아니라 수천 년 이상일 가능성이 높고, 우리 자신의 발전 속도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기술 수준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모든 영역에서 한참 넘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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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2
8.3 UFO — 전체 가설.
수십 년 동안 비정상 대기 현상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과학적으로 연구해 온 결과, 여러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분석해 보면 목격 사례 중 상당수는 인공위성, 대기권 재진입체, 기상 관측 풍선 등으로 완전히 설명된다. 이런 작업 덕분에 관찰자의 정확성, 증언의 신빙성과 일관성을 함께 시험해 볼 수 있었다. 조작 사례는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드물고 가려내기도 쉽다. 대부분의 관찰자는 신뢰할 만한 보고를 제공하지만, 평가의 다양성에서 오는 문제는 감안해야 한다.
각종 목격 사례 가운데에는 신빙성 있고 잘 기록되어 설명이 발견되지 않은 사례, 곧 'UAP D'(카테고리 D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로 따로 분류된 사례들이 있다. 이런 현상은 일관된 증언으로 입증되는 경우가 많고, 시각 목격과 레이더 관측이 함께 잡히는 경우까지 이른다. 만약 UAP D 사례가 열 건 정도에 그쳤다면 이 애매한 파일은 '조치 없음'으로 분류하고 말 수 있었겠지만, 이미 그 단계는 훨씬 지나 있다. 따라서 그럴듯한 설명을 찾을 수밖에 없다. 온갖 가설이 만들어졌고,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8.3.1 비과학적 가설.
첫째 부류는 '우리가 알지 못한 채 조종당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매우 비밀스럽고 매우 강력하며 매우 박식한 집단, 정체불명의 또는 외계 존재, 영혼, 악마, 우리 자신의 심리적 환상 같은 것이 그 주체로 거론된다. 이런 가설이 참인지 거짓인지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증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약점은 우리에게 별 쓸모가 없다는 점이다. 초심리학적 현상과 집단 환각도 이 부류에 들어간다.
같은 부류로, 목격된 미래형 비행체가 실은 인류의 미래 활동에서 온 산물이라는 발상도 종종 등장한다. 시간을 거슬러 오는 방법을 발견한 먼 미래의 후손이 우리를 관찰하러 온다는 식이다. 어떤 흔적을 통해 과거를 재구성하거나 관찰하려는 시도는 고전적인 발상이다. 이론적으로는 직접 관찰도 가능하다. 예컨대 몇 광년 떨어진 행성에 잘 정렬된 거울이 있다면 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관찰이 과거의 시간에 영향을 미친다거나, 심지어 그 관찰 자체가 감지될 수 있다는 식의 가능성은 논외다.
8.3.2 강대국의 비밀 병기.
둘째 가설은 UAP D를 지구상의 누군가가 조종하거나 원격 조작하는 기체로 보는 입장이다. 자신이 하늘에서 본, 환상적인 성능으로 기동하는 물체가 사실은 군사 기술의 최첨단이라고 믿는 관찰자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그 물체가 비밀에 부쳐진 이유도 설명된다. 스텔스 항공기나 자기유체역학 연구처럼, 이 분야의 진전이 인상적인 단계에 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그 진전을 일반인과 외국 전문가의 눈앞에 노출시키는 것은 그토록 감추려 했던 것을 무산시키는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오늘날에는 다음 사실을 덧붙일 수 있다.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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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보고서는 UFO 현상을 설명하려는 여러 가설을 차례로 검토한다. 먼저 만약 이 현상이 수십 년 동안 누군가의 비밀 작전이었다면, 특히 최근 정치적 격변을 감안할 때 진작에 새어 나왔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8.3.3 절은 허위 정보 시도 가설을 다룬다. 특수효과와 합성 영상이 대대적인 언론 보도와 함께 동원되는 경우다. 일부 연구자들은 초현대식 무기를 실제로 만들지 않더라도, 고성능 비행체의 성능을 과시해 다른 선전 기법처럼 여론을 세뇌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시각은 냉전기의 산물로, 당시에는 외계인 침공 공포나 "우리에게 명백히 매우 심각한 무언가를 숨기는" 지도자에 대한 의심을 심는 일까지 상대 진영을 흔드는 수단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가설은 앞선 가설들이 받았던 반론을 전부 다시 받기 때문에 설득력이 더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8.3.4 절은 홀로그램 영상 가설이다. 강대국의 작품이든 외계인 승무원의 작품이든, 허위 정보 가설과 외계 가설의 접점에 놓인다. 그러나 실제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공기는 매우 투명해 빛을 거의 산란시키지 않아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광학 영역 전체를 덮을 만큼 큰 장비를 두거나, 적어도 물막 같은 적절한 스크린을 투사해야 한다. 첫 번째 방식이 이론적인 홀로그램 영상에 해당하고, 두 번째 방식은 더 단순해 화려한 효과에 자주 쓰이지만 흔적을 남기는 단점이 있다. 구름이나 빗줄기를 스크린 삼는 방법도 떠올릴 수 있지만 위험이 따른다. 결론은 홀로그램 영상과 관련 기법은 현재로서는 활용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8.3.5 절은 알려지지 않은 자연 현상 가설이다.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므로 언급은 해야 하지만, UFO 가 접근·추적·회피·도주 같은 지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는 이 가설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8.3.6 절은 외계 기원 가설 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UFO 가 우주 먼 곳에서 와 우리를 관찰하고 접촉을 시도하는 지적 존재의 조종을 받는다고 믿는다. 매력적인 가설이지만 큰 난제에 부딪힌다. 화성인 가설은 최근에야 가능성의 영역에서 사라졌고, 지구를 빼면 태양계 안에서 조직된 생명, 더구나 진보한 문명이 등장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그래서 별까지 시야를 넓혀야 하지만, 가장 가까운 별조차 달보다 1억 배 더 멀다. 이런 거리에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접촉 수단은 현재로서는 전파뿐이라는 문장에서 페이지가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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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4
천문학자들은 SETI·MEGASETI 같은 프로그램으로 메시지 송신과 전파 청취 결로 외계 문명과 접촉을 시도해 왔다. 일부 열정적 지지자들은 블랙홀 활용처럼 광대한 거리를 우회하는 미래적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만, 외계 존재가 항성 간 거리를 건너왔을 가능성에는 회의가 많고, 대다수 천문학자는 "외계 문명에서 왔다고 추정할 만큼 충분히 입증된 UFO 사례는 지금까지 없다"고 거듭 말한다.
그러나 두 전문 천문학자 장클로드 리브와 기 모네는 항성 간 항해를 합리적으로 포함한 미래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부록 4에 요약된 이 시나리오에서 그들은 물리학자 오닐이 묘사한 거대 인공 구조물 —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속 푸른 섬" — 의 건설, 그리고 큰 소행성 안쪽의 거주를 그린다. 소행성 안에는 물·산소를 비롯한 다양한 자원과 함께 운석·우주방사선 차폐도 갖춰져 있다. 후손들은 그 거주 구역 일부를 다른 항성계로 추진해 보내고, 그곳 소행성대에 정착해 가족을 꾸린 뒤 그 행성계의 행성들을 우주선으로 방문할 텐데, 그 행성의 원주민은 우리가 UFO를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들의 우주선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물리 법칙만으로 성립하는 이 시나리오는 외계 가설에 일정한 그럴듯함을 부여한다. 어딘가에서 온 문명이 우리 소행성대를 식민지로 삼고 그곳을 지구로 향하는 중간 기지로 활용했다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우주 개발과 물리학의 현 진척 상황이 이 발상을 뒷받침한다.
또 한 가지 매우 논쟁적인 가설도 짚어둘 만하다. UFO들이 소행성대에 자리 잡은 문명에서 오는 것은 맞지만, 그 문명 자체가 우리 지구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다. 알려진 어떤 지구 문명보다 오래되고 고도로 발전한 그 문명이 핵전쟁·방사능·오염 등으로 지구에서 사라진 뒤 태양계 안으로 이주했다는 설명이다.
두 가설 모두 UFO 문제를 초자연 영역 밖으로 끌어내고 우리 행성의 미래에 대한 사유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9장에서는 외국에서의 UFO 연구 조직을 다룬다. 9.1절은 미국의 상황이다. 현재 미국에서 UFO는 매우 대중적인 주제다. 〈인디펜던스 데이〉, 〈맨 인 블랙〉, 〈콘택트〉 같은 픽션 영화의 수와 흥행이 이를 보여준다. 1997년 6월 타임지 의뢰로 이루어진 조사에서는 1947년 7월 초 뉴멕시코 로즈웰에 외계 우주선이 추락했다고 미국인 네 명 중 한 명꼴로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버드의 정신의학 교수 맥 박사는 자국민이 UFO에 일시적으로 납치되는 — 실재든 상상이든 —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룬다. 이런 대중의 기대 앞에서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국은 UFO 현상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도, 외계 기원의 증거도 아니라고 부인한다. 이 입장은 1948년부터 1969년까지 UFO 연구를 맡았던 공군이 거의 일관되게 취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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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5
블루 북이라는 큰 틀의 프로젝트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블루 북 프로젝트 평가를 맡은 대학 위원회, 곧 콘던 위원회의 요약과 결론에서 확인되었다. 물리학자 콘던은 결론에서 UFO 연구가 과학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렇게 미국의 모든 공식 연구는 1969년 12월부로 중단되었고, 공군은 호기심 있는 사람들을 민간 UFO 연구 단체로 안내했다.
콘던 보고서는 미 과학원의 승인을 받았지만, 다수의 과학자들 — 특히 막강한 미국항공우주학회 AIAA 소속 — 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다. AIAA 측은 콘던 본인이 직접 작성한 요약·결론이 본문 안의 여러 분석과 충돌한다고 정당하게 지적했다. AIAA 는 UFO 에 대한 온건하지만 지속적인 과학 연구를 권고했다.
1974년 통과된 정보자유법 FOIA 개정안 덕분에 1976년부터 UFO 관련 기밀해제 공식 문서들을 입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중 한 건이 특히 주목을 받았다. 1969년 10월 공군 준장 볼렌더가 보낸 편지였는데, 블루 북 프로젝트가 곧 종결되더라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UFO 관련 군 보고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보고는 애초에 블루 북 체계에 속해 있지 않았고, 과거와 마찬가지로 JANAP 146 지침과 공군 매뉴얼 55-11 에 따라 계속 처리될 예정이었다.
이어 "진위 문제에서는 부정적 결론만이 확정적이다" 라는 제목 아래 플렉시마주 사 최고경영자 프랑수아 루앙주의 글이 시작된다. 그는 UFO 조사 중에서도 사진 분석이 가장 까다로운 영역에 속한다고 본다. 대중에게 사진은 현상의 존재를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처럼 보이고, 그래서 강한 감정적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실제 사진의 세계에는 오류와 조작이 많다. 자연적·기술적 요인이 놀라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컴퓨터 장비를 가진 전문가가 정밀하게 조작한 음화가 검증을 통과하기도 점점 쉬워지고 있으며, 이런 일이 돈벌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분석을 견뎌낸 음화 대부분이 정작 쓸 만한 정보 — 검은 바탕에 포화된 밝은 점 하나, 혹은 그 반대 같은 — 를 거의 담고 있지 않아 조사가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많다.
루앙주는 약 40년간 UFO 사진으로 알려진 자료들이 종종 이 분야 전문가들의 감정 대상이 되어 왔다고 말한다. 동원되는 물리·기술 분야는 대기 전파부터 사진·영상, 디지털 이미지 처리까지 다양하다. 사진이나 영상 한 점을 분석할 때는 두 단계를 거친다. 첫째, 진위 여부를 확정하거나 반증하고, 조작·연출·기생 현상이 촬영 장비나 원본 저장 매체 (필름·비디오 카세트) 에 영향을 주었는지 밝혀낸다. 다만 진위라는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어서, 가장 좋은 경우에도 부정적 결론만이 확정적일 수 있다 — 본문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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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진위가 확인된 문서를 다룰 때 어떤 분석에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짚은 뒤, 두 번째 단계로 그 문서에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끌어내야 한다고 적는다. 알려진 현상이라면 무엇인지 식별하고, 처음부터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라면 크기·위치·속도·반사도·방출 에너지 같은 항목으로 특성을 잡아낸 뒤, 다른 미해명 사례들과 비교해 가능한 공통점을 찾는다는 것이다. 다만 사진이나 영상 자료는 우연히 현장에 있던 목격자에게서만 들어오기 때문에, 통계적으로 보면 의미 있는 데이터가 모이기는 매우 어렵다고 인정한다. 드문 현상을 직접 목격할 확률, 그 순간 카메라가 손에 있을 확률, 흔들림 없이 전문가 수준의 사진을 남길 확률이 모두 겹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깊이 있는 조사는 두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례로 제한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첫째, 네거티브·슬라이드·비디오 같은 원본 매체가 남아 있어야 하고, 둘째, 시각 증언이든 다른 감지 장비이든 독립된 다른 출처가 적어도 하나 더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이어지는 "눈속임: 렌즈 모양 구름" 항목은 가운데가 부풀고 위아래로 좁은 원반, 렌즈형 은하의 정의가 동시에 고도 7000m 이상 대류권 한계까지 형성되는 권적운 렌티큘라리스 구름의 정의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이 구름의 매우 특징적인 모양은 기압·기온·난류·강풍이 만들어내지만, 비행접시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정리한다.
그다음 "군용기가 UFO 행세를 할 때" 항목은 1989년 로스앤젤레스 앞바다에서 촬영된 무인 정찰 장비의 사진을 소개하며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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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7
이 페이지는 미국 군의 무인기 사진 두 장의 캡션과 본문 해설로 시작한다. 사진 캡션은 캐나다 CL-227 시 센티넬 군용 무인기, 그리고 우측의 시콜스키 사이퍼 정찰 무인기로 미 육군이 도시 분쟁 상황에서 운용한다고 짧게 적는다.
이어지는 본문은 미국·캐나다의 통합 군 통신규정 JANAP 146 을 설명한다. JANAP 146 은 군인뿐 아니라 민간 항공사 기장, 상선 선장 등 일부 민간인에게도 적용되는데, 미국이나 캐나다 군이 긴급 방어 조치나 조사가 필요한 물체를 목격했을 때 즉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항공작전사령부 (현 NORAD, 북미항공방위사령부) 에 보고하도록 규정한다. 이 보고 대상 물체에는 미사일, 적성·미식별 잠수함과 함께 UFO 도 포함되며, 보고 내용을 외부에 누설하면 간첩단속법으로 처벌받는다. 저자는 이 규정이 최근까지도 유효하며, 미국 군인 특히 조종사들이 UFO 화제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의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본다.
다음 단락은 미국의 UFO 연구단체들을 다룬다. 회원이 수천 명에 이르는 이 단체들은 공공 기관이 UFO 연구에서 비워둔 자리를 메우려 활동해 왔다. 정보공개법 (FOIA) 시행은 이들 단체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공군이나 CIA 등 정부 기관이 UFO 에 관심이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해 왔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정보공개법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75년 미사일 기지 상공 침범 사건이나 2장에서 다룬 1976년 테헤란 사건 같은 굵직한 사례도 알려졌고, 미국 국방정보국 (DIA) 은 테헤란 사건을 “레이더와 육안 관측이 모두 들어맞은 사례, UFO 현상의 정식 연구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고전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3대 UFO 연구단체를 한자리에 모은 인물로 마리 갤브레이스를 꼽는다. 그녀는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주프랑스 미국 대사를 지낸 이반 그리피스 갤브레이스의 부인으로, 가브리엘가에서 살았던 만큼 프랑스에 익숙하다. 로런스 록펠러 (저 유명한 데이비드 록펠러를 통해 알려진 인물) 의 도덕적·재정적 지원을 받아 세계 곳곳을 다니며 UFO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들을 만나고 가장 신뢰할 만한 사례들을 모았다.
그녀는 이 작업을 토대로 단행본 《Unidentified Flying Objects, Briefing Document — the best available evidence》 의 집필을 총괄했고, 이 책은 1995년 미국 3대 UFO 단체인 CUFOS (Center for UFO Research), FUFOR (Fund for UFO Research), MUFON (Mutual UFO Network) 의 의장들이 공동으로 추천했다. 갤브레이스는 책을 전 세계 주요 인사 천여 명에게 보냈고, 그 가운데 다수가 미국 의원이었다. 그녀의 목적은 미국 정부, 가능하다면 다른 정부들까지 UFO 비밀주의를 끝내도록 하는 것이다. 책의 편집자들은 이 비밀주의가 본질적으로 군사적 동기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UFO 의 비범한 특성을 가장 먼저 재현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논리다. 냉전기에는 비밀주의가 정당화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UFO 연구로 인류가 얻을 과학·기술적 도약을 생각하면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마지막 단락은 갤브레이스의 책 자체가 묘사적인 책이라고 짚는다. 책은 목격된 현상을 해석하지 않는다. 즉, 물리 모형을 세우거나 물체의 기원에 관한 가설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런 태도는 같은 해 9월에 열린 국제 과학 학술대회의 정신과도 일치하는데, 그 학술대회에 관한 서술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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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8
보고서 본문이 이어지는 페이지다. 1997년 로런스 록펠러가 웨스트포인트 인근 포칸티코에 있는 록펠러 형제 재단 부지에서 콜로키움을 열었고, 천체물리학자 피터 스터록이 진행을 맡아 UFO에 관한 물리적 증거를 다뤘다. 레이더, 마이크로파의 생체영향, 사진 등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과학자문위원회를 구성했는데 이들 대부분은 UFO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고, 이 자리에서 UFO 연구자들이 제출한 논문을 심사했다. 프랑스 측 참여가 두드러져 SEPRA 책임자와 자문위원 두 명이 함께 자리했고, 마무리 문서에서는 여러 나라가 프랑스에 견줄 만한 UFO 연구 조직을 갖추기를 바란다는 기대를 담았다.
이어 "콜 코르소 대령의 주장"이라는 절이 시작된다. 1997년 7월, 로즈웰 사건 50주년에 맞춰 코르소 대령이 쓴 『로즈웰 그 후의 날』(The Day After Roswell)이 출간돼 큰 파장을 일으켰다. 코르소는 1953년부터 1957년까지 국가안보회의 군사 담당으로 일하며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가까이서 호흡한 인물이고, 이 책의 서문은 당시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스트롬 서먼드 의원이 썼다. 서먼드는 이미 위원회 소속이던 시절인 1963년 5월에 저자의 요청에 따라 코르소를 위원회 자리에 앉힌 인연이 있었다. 코르소는 로즈웰에서 발견된 물체가 외계 비행체였다고 단언하고, 1947년 7월에는 유리관에 보존된 탑승자 시신을 직접 봤다고 회고한다. 1961~1962년 미 육군 연구개발부의 외국기술국장으로 있을 때는 잔해에서 나온 첨단 기술 — 인쇄회로, 레이저, 광증폭기 등 — 을 미국 산업계가 알게 모르게 가져다 쓰도록 분배하는 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코르소는 미국 고위 군 장교와 일부 의원이 외계 비행체의 존재를 안다고 못 박는다. 다만 대중의 패닉을 피하려고 비밀로 했고, 이제는 50년 동안 준비해 온 끝에 가상의 UFO 공격에 맞설 수단을 갖췄으니 전면 공개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이 주장 가운데 일부는 분명 놀라운 수준이지만, 저자의 이력과 서먼드의 추천을 감안하면 책 전체를 가볍게 넘기기는 어렵다고 본다. 다만 서먼드는 재판본부터 자기 서문을 빼 달라고 요청했고, 그 요청이 받아들여졌다. 저자가 자신에게 이 책이 UFO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 서열 3위에 해당하는 인물이 서문을 썼고, 사이먼앤슈스터 같은 출판사가 초판을 낼 때 내용을 모르고 진행했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게 글쓴이의 시각이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미 공군은 로즈웰에 대한 두 번째 보고서를 내놓고 외계 비행체 추락 가설을 다시 부정했다. 1994년에 나온 첫 번째 보고서는 1969년 블루북 프로젝트 종료 이후 미국 정부가 UFO에 대해 내놓은 첫 공식 연구로 소개됐는데(부록 5의 "로즈웰과 역정보" 참고), 글쓴이는 이런 부정 반응이 코르소의 주장과 모순되지 않으며, 그의 폭로에 동요할 사람들을 진정시키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풀이한다.
페이지 끝부분에서 "9.2 영국의 연구 조직" 절이 시작된다. 영국은 주목할 만한 사례가 여럿 일어난 무대였고, 글쓴이는 2장에서 이미 1956년 레이큰히스 "레이더-시각"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영국 공군과 담당 부처는 일찌감치 UFO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그 활동에 관한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말로 다음 절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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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영국 국방부(MOD)는 1964년부터 UFO 연구반을 두어 왔고, 약칭 Sec(AS)2a 는 항공참모부 산하 사무국 2과를 가리킨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이 부서를 이끈 닉 포프는 자신의 책 『Open Skies, Closed Minds』에서 이 부서의 활동을 활달한 문체로 소개했다. 이 부서는 목격자의 전화나 편지도 받지만, 대체로는 경찰서·공항·영국 공군 기지에서 받은 목격 진술 보고서를 넘겨받는다.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레이더 기지, 기상 관측소, RAF 의 우주물체 감시 기지 플라잉데일스, 그 외 RAF 기지나 그리니치 천문대에 조회를 돌리는 식으로 통상적인 조사를 한다. 이 부서의 역할은 단 하나, 들어온 보고가 국방상 의미가 있는지(이른바 '국방 관련 영역') 판단하는 것이다.
현직 MOD 직원인 닉 포프는 전임자들과 달리 언론 인터뷰에 응하고 방송에도 출연하는 등 새로운 길을 열었다. UFO 연구 단체와도 협력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목격자에게 연구 단체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 주기도 했다. 그는 답신에서 일부 UFO 목격 사례는 설명되지 않으며, MOD 도 이에 대해 열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전임자들이 "자료가 충분하다면 모든 사건은 분명히 설명될 것"이라 적었던 것과는 다른 태도다. 책에서 포프는 신뢰할 만하고 자세한 보고가 있는 미확인 사례들을 두고 여러 가설을 검토하면서, 외계 기원 가설을 강하게 지지하고, MOD 가 UFO 가 안고 있을 잠재적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주기를 바란다고 밝힌다.
그가 혼자 있는 이 부서보다 한 단계 더 들어간, UFO 현상을 비밀리에 연구하는 부서가 MOD 안에 따로 있을까? 이 점에 대한 포프 본인의 진술은 책 129쪽과 181쪽에서 서로 어긋난다. 1969년부터 1972년까지 포프의 전임자였고 1977년 국방차관보로 MOD 를 떠난 랠프 노이스는 그런 부서가 있을 것으로 본다.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영국 국방참모총장을 지낸 해군원수 힐노턴 경 역시 같은 견해다. 이 이야기는 티모시 굿의 책 『Above Top Secret』에서 확인되며, 머리말은 힐노턴 본인이 썼다. 힐노턴은 1980년대에 UFO 를 연구하던 영국 상원 의원 약 서른 명의 모임에도 속해 있었다. 그런 비밀 연구 부서가 실제로 있다면 미국과 협력해 움직인다고 보아도 좋다는 것이 이 책의 추정이다(『Above Top Secret』 48–49쪽).
9.3 러시아의 연구 조직
소련 과학아카데미는 적어도 1979년부터 UFO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 시기 아카데미 회원 블라디미르 미굴린은 잡지 『La Recherche』에서 소련 영토에서 보고된 발광 현상과 이상 물체의 목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목격의 대부분은 다른 나라에서 관측되는 것과 거의 같은 실재 현상이다. 그러나 그중 일부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기술적 발현이라는 것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는 없다. 이 현상을 대기 현상과 연결지어 보려는 시도도 필요하다." 그의 보좌역인 플라토프가 1992년에 펴낸 『UFO 와 현대 과학』은 이 방향을 그대로 좇은 작업이다. 당시 미굴린과 플라토프는 과학아카데미의 이상현상 전문가 그룹을 이끌면서 과학적·기술적 접근을 제안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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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0
프랑스 SEPRA 와 협력하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CNES 경영진은 후속 조치를 하지 않았다. 한편 시베리아 과학아카데미의 연구는 서방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쪽은 외계 가설을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쪽으로 기울어 있다.
글라스노스트 시기에는 KGB 와 군이 진행해 온 연구 정보가 외부로 공개되기 시작한다. 1991년 KGB 는 1982년부터 1990년까지 17개 지역에서 일어난 이상 현상 목격 사례 124쪽 분량의 문서를 기밀해제했다. 그 가운데 한 사건은 1989년 아스트라한 인근 육군 미사일 기지 상공에서 빛나는 원반 세 개가 보인 일이다. 군인 일곱 명이 함께 봤고, 원반들은 정지 비행에서 고속 비행으로, 다시 정지 비행으로 소리 없이 전환했다. 소련 전투기가 접근하자 그중 하나는 너무 빨리 빠져나가 전투기를 그 자리에 묶어 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1994년 보리스 소콜로프 대령은 1978년부터 1988년 사이 군이 수행한 조사 자료를 ABC 뉴스에 넘겼다. 이보다 앞선 1990년에는 영토 방공을 지휘했던 말체프 항공장군이 신문 라보차야 트리부나에 글을 실었다. 1990년 3월 21일 밤 페레슬라프-잘레스키에서 다수 목격자가 본 사건으로, 시각과 레이더 양쪽으로 잘 기록된 경우다. 소리 없는 원반형 물체가 정지 상태에서 현대 전투기 속도의 두세 배에 이르는 속도로 가속했다고 한다.
3부 — UFO 와 방위
지금까지 UFO 가 어떤 사고나 적대 행위의 확실한 원인으로 지목된 적은 없다. 적어도 공식적으로 프랑스에서 UFO 가 위협으로 현실화된 적은 없으며, 다만 위협을 가하는 듯한 기동은 확인되었다. 그러나 신뢰할 만한 목격자가 본 다수의 사례는 외계 기원 비행체의 활동일 수 있다. 만약 지상에서 만든 것이라면 미국 외에는 가능성이 없는데, 비밀 유지에 아무리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그 정도 규모면 알려졌을 것이다. 첫 스텔스기 시제품은 1977년 말에 비행했고,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은 약 10년 뒤인 1988년이었다. 그런데 설명되지 않는 신뢰할 만한 UFO 목격은 1944년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이 주제를 진지하게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여전히 비웃음이나 불신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목격된 현상에 대한 설명이 없는 이상, 외계 기원 가설을 더는 배제할 수 없다. 3부에서는 현재의 과학 지식에 기반해 이 가설이 전략·과학·정치·종교·미디어 측면에서 어떤 함의를 가지는지 살핀다.
10장 — 전략 기획
적이라 부를 대상에 대한 전략을 정의하려면 먼저 그 대상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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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1
보고서는 외계 존재를 상대하려면 적의 의도와 행동방식을 파악하듯 접근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그들은 누구인가, 의도는 무엇인가, 접촉을 시도하는가 이미 했는가.
10.1절은 "외계인은 어떤 존재인가" 라는 제목으로 그동안 모인 목격담의 공통점을 정리한다. 원반·발광체·원통형 비행체, 정지 비행 뒤 번개 같은 가속, 소음의 부재, 음속을 넘어도 들리지 않는 충격파, 주변 전기·무선 장비에 간섭하는 전자기 효과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정도 비행을 해낼 정도면 지능과 기술이 인류를 앞선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다 미지의 영역이다 — 신체 구조, 생명 형태, 의사소통 방식, 사회 형태, 가치관, 시간 개념, 행동 동기까지. 보고서는 한 가지 모순을 지적한다. 그들이 인간에 대해 보이는 관심과 그들의 은밀함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라리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 인간이 자기 존재에 서서히 익숙해지게 만들려는 듯 보인다는 것이다.
10.2절은 "그들의 행동에서 어떤 의도와 전략을 추론할 수 있는가" 라는 제목으로, 상대의 목적을 합리적으로 분석해 우리 쪽 대응 전략의 큰 줄기를 잡자고 제안한다. UFO는 수십 년간 전 세계에 나타났고 1952~1954년에 정점을 찍었지만 일관된 행동 노선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관찰 단계와 존재 증명 단계가 끝났다면 다음 수순은 지구 국가들에 자기 의지를 각인시키는 단계여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의도를 가리키는 단서가 없다. 미국이 우선 접촉 대상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지만, 유럽 국가나 러시아·중국·일본과의 접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어느 국가의 묵인 아래 그들이 지구에 자리를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고, 접촉 가설로부터 그들과의 "현상유지" 같은 균형 상태를 추론할 근거도 없다. 1947년 이후 산발적 출현과 반복적 목격 파동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그들은 자기 우위를 등에 업고 행성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목적과 수단으로 자기 계획을 이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1947년 전후로 그들이 핵전쟁의 위협을 받는 지구의 미래를 우려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그 우려가 구체적 시연 행동으로 표출됐다고 본다. 사례로 핵미사일 기지 상공 비행 (3장에서 다룸) 과 뤽쇨·테헤란 사건 같은 항공기 위협 기동 (1.1장과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항목) 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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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2
보고서는 인류의 우주 탐사와 핵 기술 발전이 외계 문명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본다. 외계 문명이 소행성대에 기지나 식민지를 두고, 어쩌면 달에 중계소까지 두었으리라 가정하는 일이 비논리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이 수소폭탄으로 소행성 궤도를 바꿔 채굴 목적으로 지구 가까이 끌어오려는 연구가 외계 문명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그들이 인류 일에 끼어들지는 않지만,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적는다. 지구를 침공하려는가, 지구를 핵 자멸에서 지키려는가, 아니면 인류 문명이 수세기에 걸쳐 쌓아온 유산을 알고 보존하려는가. 이런 불확실 속에서는 그들이 앞으로도 계속 개입하지 않을 거라 단정할 수 없으며, 그들의 어떤 행동은 장기적으로 무해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그들에게는 인류의 감수성이나 국가 정치 따위는 안중에 없을지도 모른다고 덧붙인다.
이어 10.3절은 UFO 현상이 각국의 공식·비공식 대응에 미친 영향을 다룬다. 보고서는 각국 반응을 네 부류로 분류한다. 첫째, 외계 현상을 모르거나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국가. 둘째, 알고는 있으나 조사 수단이 없는 국가. 셋째, 알고 있고 조사 수단도 가진 국가. 넷째, 한 곳 이상의 외계 문명과 접촉해 관계를 맺었거나 정치·과학·기술 협력에 들어간 국가.
10.4절에서는 한 국가 이상이 외계 문명과 실제로 접촉했을 가능성을 따진다. 개인이 외계 지성과 연구나 관계 수립을 목적으로 접촉했다고 주장하는 사례는 이미 있다. 그렇다면 한 국가, 특히 미국이 최고위급에서 직접 또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일도 상상해 볼 수 있지 않은가. 보고서는 1947년 6월 목격 물결과 7월 로즈웰 사건 이후 미국의 입장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본다. 그때나 다른 기회에 미국이 외계 비행체의 잔해나 비교적 온전한 동체, 심지어 휴머노이드 시신까지 회수했다면 일정한 형태의 접촉은 이미 성립한 셈이라는 것이다. 처음 나오는 진술과 반응이 나중 발언보다 더 충격적인 경우가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로즈웰 사건 직후 트와이닝 장군은 "비행 원반"에 관한 비밀 보고서 작성을 맡았고, 그 존재는 22년 뒤 콘던 보고서에 가서야 공개되었다. 이 보고서로부터 그런 물체가 실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다만 그 뒤로 미국은 일부 UFO 관련 정보를 "극비" 이상의 등급으로 묶는 비밀주의 강화 정책을 따라왔다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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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3
이 페이지는 보고서 본문 한 단락이다. 글쓴이는 배리 골드워터 장군의 말을 인용하며 미국이 UFO 정보를 비밀로 유지하고 허위 정보를 흘려온 이유를 따져 묻는다. 콘돈 보고서의 이상한 결론도 그 한 사례일 뿐이라며, 이런 중요한 비밀이 어떻게 지금까지 줄곧 보호될 수 있었는지 묻고 가장 단순한 답으로 미국이 경쟁국에 대한 군사·기술적 우위, 그리고 경우에 따라 우선적 접촉권을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유지하려 한다는 점을 든다. 이러한 비밀·허위정보 정책의 동기로는 대중의 공황이나 비합리적 광풍을 막으려는 우려, 당시 소련의 행동으로부터 국가를 지키려는 우려, 좀 더 평범하게는 유권자들 앞에서 설명 능력 부족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정치적 동기, 영공 침범을 막지 못한 군의 위신이 깎이고 정적들이 군 예산을 공격할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동기 등을 든다. 정부 기관이 거짓말한 사실이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까지도 가능성으로 열어둔다.
이어서 글쓴이는 1953년 이후 미국이 강력한 통제 장치를 갖추었고 지금도 유효해 보인다고 짚는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군 규정이 있다. 공군 규정 AFR 200-2는 미확인 물체 목격 정보의 대중 공개를 금지하고, 합동 육·해·공군 출판물 JANAP 146은 목격자가 UFO 목격 사실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행위를 10년 징역과 1만 달러 벌금에 처할 수 있는 위반 행위로 규정한다. JANAP 규정은 군 인원뿐 아니라 민간 항공사 조종사와 상선 선장에게도 적용된다.
다음 절 10.5는 "이제부터 우리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글쓴이는 UFO가 외계 기원이든 아니든 현상은 이미 우리 곁에 있으며 비판적 경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현상은 미디어·심리·문화·종교 차원에서 공황, 세계전쟁, 사이비 종파나 로비 집단이 만들어내는 정신병적 반응 같은 불안정화 조작 위험을 안고 있다. 우주적 현기증의 위험과 앞으로 다가올 우주 발견·정복을 함께 고려할 때, 정치·과학·지식 엘리트는 충격적 놀라움이나 잘못된 해석, 악의적이거나 불건전한 조작을 막을 만큼의 "우주적 경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치는 국가 차원과 국제 차원 모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글쓴이는 미국의 정치적 문제와 지속되는 비밀주의 자세를 두고, 동맹국들 사이, 특히 NATO 안에서 조화로운 정치·군사 관계가 어떻게 가능하겠느냐고 묻는다. 그 관계는 기본적 신뢰 위에 서야 하는데,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정보, 특히 기술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마지막 소절 10.5.1 "국가 차원의 구조"는 프랑스가 이 영역에서 자기 존재감을 분명히 하려면 SEPRA를 확대하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하며, SEPRA가 해야 할 일을 다음 페이지에서 열거할 것임을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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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프랑스가 UFO 관련 인적·물적 자원을 늘려 유럽과 전 세계의 모든 UFO 현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조사·분석 역량을 키우며, 대표성과 대외관계 위상을 끌어올릴 것을 권고한다. 또 SEPRA와 협력할 최고위 국가 차원의 별도 조직을 만들어 가설을 종합하고, 과학·기술 연구를 추동하며 (소액 최소 예산만 있어도 된다), 군사 전략 요소를 제안하고, 관심 있는 유럽·외국 국가들과의 지역 협력 협정 체결에 참여하도록 한다. 이미 많은 나라가 군이나 정보기관 안에 UFO 목격 정보를 수집하는 소규모 부서를 두고 있다는 점을 짚어둔다.
10.5.2 유럽 차원의 구조에서는, 유럽 각국과 EU 집행위원회가 모든 종류의 연구를 수행하고 미국에 외교적 접근을 시도하여 유효한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 중대한 문제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본다. 이는 정치·전략 동맹의 영역에 들어가는 사안이다. 프랑스가 집행위원회에 제안하여 — 더 이상 눈멀고 귀먹고 마비된 상태로 있지 않기 위해 —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갖춘 별도의 확장된 조정 기구를 그 안에 두자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10.6 우리는 어떤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가에서는 네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첫째, UFO와 외계 존재가 공식적이고 평화적인 접촉을 시도하는 경우. 둘째, 프랑스나 유럽 어딘가에서 소형 기지 또는 기지가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발견된 경우 — 우호적 세력인지 비우호적 세력인지에 따라 어떤 입장을 취할지의 문제. 셋째, 침공 (원자력 발견 이전에 이미 가능했을 일이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과 전략·비전략 지점에 대한 표적 또는 대규모 공격. 넷째, 다른 국가를 흔들기 위한 의도적 조작 또는 허위정보. 첫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 정교한 연구·분석 도구를 갖춘 국가가 우선 접촉 대상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다른 국가보다 클 수 있다고 추정해도 무방하지만, 그 위험과 이점은 무엇인가.
이어 11장 항공 분야의 함의로 넘어간다. 11.1 왜 항공 분야의 함의를 다루는가는, 설명되지 않은 현상 앞에서 지적으로 무관심하게 남아 있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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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5
민간과 군 양쪽 조종사들이 직접 마주친 항공 현상에 관한 보고서다. 확인된 수백 건의 항공 사례를 다섯 유형으로 나눈다. 먼저 승무원·승객·지상 인력의 단순 목격이 있고, 다섯 건 중 한 건꼴로 레이더 스크린에 항적이 잡히기도 한다. 1994년 1월 28일 생크-마르-라-필 관제·탐지 센터(CDC)에서 항적이 기록된 사례가 그 예다. 산카를로스 데 바릴로체나 테헤란 사례처럼 지상이나 기내 전기·전자 장비에 간섭이 생기는 경우, 산카를로스 데 바릴로체나 RB-47 사례처럼 항공기를 따라붙는 경우, 그리고 미라주 IV를 몰던 지로 대령이나 투르의 학생 조종사, 테헤란 사건처럼 공격적으로 보이는 행동을 하는 경우까지가 나머지 유형이다.
증언의 양과 증인들의 질을 고려하면 이 현상을 피해 갈 수 없고, 항공 인력, 특히 국방 인력은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인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보고서의 입장이다. 지능을 가진 존재가 조종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 물체가 우리 영공을 정기적으로 가로지르는데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우리 기술 지식의 범위를 넘는다는 이유로 우리 소관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국방과 공중 정보의 원칙 자체가 흔들린다고 본다.
조종사들의 첫 목격은 194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후 전문가 감정을 거쳐 미확인 목격(UAP D 등급)으로 분류된 사례는 조종사나 항공 관제사 보고를 통틀어 500건을 넘었다. 참고로 프랑스에서 1951년 이래의 수치는 세네 건에 불과하다. 그 반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주로 영공에서 일어나는 이런 현상을 다루는 것은 공군의 책임이라고 정리한다.
11.2절 〈누가 관여하는가〉의 첫 항목은 비행 승무원, 그중에서도 조종사다. 민간이든 군이든 조종사는 목격에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고, 충돌 같은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투 조종사의 경우 하늘을 항상 감시하도록 훈련받았고, 갈수록 더 빠르고 더 작은 표적을 더 먼 거리에서 탐지하는 무기 체계를 다루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조종사와 무장 체계의 짝은 그 어느 때보다 훌륭한 목격 도구이며, 만약 개입이 필요해진다면 우리의 첫 수단이 될 것이다. 민항기 조종사의 사정은 다르다. 같은 장비를 갖추지 못한 데다, 우선순위는 명백히 승객의 안전이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의 중요한 동반자이기는 하지만, UFO가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때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다음 항목인 관제사도 당연히 관여한다. 민간이냐 군이냐에 따라 다룰 수 있는 관제 장비가 달라진다. 어느 쪽이든 조종사와 무선으로 교신하기 때문에, 승무원의 목격 보고를 가장 먼저 받는 사람은 관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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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보고서는 이 장에서 UFO 관련 업무에 끌어들여야 할 인력군을 분야별로 정리한다. 군 관제사는 일반 항공 규칙을 따르지 않는 비행체를 잡아낼 수 있는 유일한 장비를 가진 사람으로, 자기 위치에서 떨어진 거리만큼 객관성을 유지하며 들어오는 목격 정보를 받아 적고 보완해야 한다. 군용 방공 레이더는 1차 탐지의 시각 표시와 함께 민간 관제사가 쓰는 합성 화면을 군 관제사 스코프에 같이 띄워주고, UFO 추정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의 영상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장비이기도 하다. 통제·탐지 센터(CDC)는 현장에서 레이더 상황을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필요하면 추가 조사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기상학자에 대해서는 이상 현상이 기상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련 부서에 그 관측의 중요성이 잘 전달되기만 하면 의문이 풀린다고 본다. 따라서 기상 전문 군·민간 인력 모두 이 기대에 부응할 수 있어야 한다.
CNES 기술자에 대해서는, 프랑스 우주 분야 전문가인 만큼 UFO 현상에 무관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주에 대한 지식, 하늘 관측, 하늘로 올라가는 모든 것에 대한 감시가 그들을 외계 현상 연구를 이끌 적임자로 만들며, 그들의 작업은 앞 장에서 이미 다루었다.
항공 분야 기술자에 대해서는 자연스럽게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며, 구체적인 작업은 다음 장의 과학·기술적 함의에서 다룬다고 정리한다.
이어 보고서는 항공 분야 인력을 어떻게 끌어들일지 묻는다. 인력과 자원을 함께 동원하려면 먼저 그들의 관심을 끌고, 현상을 알리고,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시하고, 어떤 반사적 대응과 행동 절차를 가져야 하는지 정의해야 한다.
인력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은 우리 하늘에 외계 비행체가 존재할 가능성 자체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이라고 본다. 조롱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고, 확실하진 않더라도 항공계 증언 가운데 추려낸 사례들에서 강한 정황 증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든 세대에 닿아야 한다고 말한다. 젊은 세대에게는 공군사관학교(Ecole de l'Air), 국립민간항공학교(ENAC), Sup'Aero 같은 항공 교육기관에서 정보 강연을 쉽게 열 수 있고, 그보다 나이가 든 인력에게는 합동참모대학(CID)과 IHEDN의 평생교육 과정에서 다룰 수 있다. SEPRA는 이미 민간 항공 분야의 틀 안에서 ENAC에서 강연을 진행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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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7
이 페이지는 보고서 11장의 권고 부분으로, 미확인 현상을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항공 인력을 어떻게 교육하고 어떤 행동 절차를 따르게 할지 다룬다. 우선 관제사 교육에서 끝낼 일이 아니라, 전공과 무관하게 모든 비행 승무원 교육 학교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본다. 이미 현장에서 일하는 세대를 위해서는 군 인력의 경우 통제·탐지 센터와 비행대대 단위에서, 민간 항공 관제사의 경우 적어도 지역 항공 항행 센터(CRNA) 단위에서 같은 형식의 강연을 어렵지 않게 열 수 있다. 상업 항공 승무원 쪽은 이미 에어 프랑스를 비롯한 항공사들이 주기적으로 갱신되는 승무원용 정보 시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 정보는 앞으로도 꾸준히 갱신되어야 한다. 목적은 분명하다. 앞으로 현상을 마주칠 사람이 — 직접 행동에 나서는 입장이든 단순한 관찰자든 — 그 순간 자신이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하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게 만드는 것이다. 인력을 실질적으로 참여시키려면, 실시간으로 어떻게 반응할지, 누구에게 무엇을 보고할지, 그 상황에 맞는 조치는 무엇인지를 본인 손에 쥐어 줘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인 행동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일단 즉각 반응(reflex response)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부터 함께 정해 두는 편이 낫다고 본다.
11.3.2 즉각 반응 항목에서는 그 즉각 반응을 사람들 안에 미리 새겨 둬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단순 관찰자로 끝나지만, 어떤 사람은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예시로 산 카를로스 데 바릴로체(San Carlos de Bariloche) 사건에서 UFO 사건이 진행되는 한가운데 활주로 조명이 갑자기 꺼져 버린 일을 든다. 이런 예측 불가능하고 정체도 잘 모르는 사건 앞에서 자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미리 알고 있는 편이 분명히 낫다는 것이다. 즉각 반응의 종류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단순 목격, 진술 기록, 수집한 정보의 전송, 그리고 현상에 맞춰 그 자리에서 임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모두 다른 반응을 요구한다.
11.3.3 취해야 할 행동 절차에서는 권고를 한 줄로 요약한다. 관찰하고, 가능한 한 많은 디테일을 기록하고, 가능하다면 사진을 찍고, 보고하고, 그러면서 방문자(visitor) 쪽이 먼저 접촉해 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언론에 성급히 흘러 나가지 않도록 한다.
11.3.3.1 객관적 관찰에서는 정체 모를 상황 앞에서 본능적으로 튀어 나오는 자기방어 반응을 경계하라고 말한다. 그 반응이 상대 입장에서 보면 도발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관찰하고, 먼저 접촉을 시도하는 행동은 일체 피하라고 권한다.
11.3.3.2 보고에서는 일단 현상이 목격되면 보고가 우선이라고 본다. 한쪽으로는 다른 승무원들에게 알리는 — 이미 현재도 하고 있는 — 절차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권한을 가진 기관에 알리는 절차가 있다. 후자는 민간의 경우 항공 관제 지휘 계통, 군의 경우 방공 지휘 계통을 통해 올라간다.
11.3.3.3 항목은 대중을 상대로 어느 정도 신중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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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8
보고서 12장 "과학적·기술적 함의" 가 시작되는 페이지다. UFO 현상이 넓은 의미의 국방에 갖는 중요성을 짚으면서, 저자들은 몇 가지 제안을 내놓는다.
먼저 12.1절은 자료 수집과 분석을 더 확장하라고 권한다. GEPAN 에 이어 SEPRA 가 이어받아 수행해 온 수집·일차 분석·분류·증언 작업을 계속하고, 가능하면 지리적으로 더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 이는 5장과 6장에서 이미 설명한 활동이다.
12.2절은 "감시와 선행 연구" 를 제안한다. 8장의 연구에 비추어 보면, 자기유체역학 같은 첨단 추진 분야에서는 적어도 수동적인, 가능하면 능동적인 기술 감시 (techno-watch) 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른 나라들이 이 분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다른 첨단 기술 분야 — 입자빔이나 마이크로파, 그 효과로서의 도구·무기 등 — 에서도 증언 연구와 과학 실험을 결합하면 큰 진전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주제들은 DGA 나 공공 연구기관이 현재 다루고 있는 기술 문제보다 전반적으로 앞서 있어서, 국가 최고위 수준에서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 한 본격적으로 다루기 어렵다.
12.3절은 현상을 더 큰 맥락 안에 놓고 사고하도록 권한다. 위에서 언급한 작업은 관측된 현상을 부분적으로나마 모델링하는 데 진전을 가져오고, 국방과 산업으로의 파급 효과도 상당할 것이다. 그러나 잘 기록되어 있으면서도 설명되지 않는 이 현상들을 전체적으로 해석하려면 또 다른 연구가 필요하다. 핵심 연구 분야는 외계 가설과 맞닿아 있다. 참고로 외계 행성 탐지 연구는 칠레의 유럽남방천문대 (ESO) 가 운용하는 거대망원경 VLT 가 직접 관측을 가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행성 발견은 행성이 모항성에 일으키는 교란을 통한 간접 관측으로 이루어져 왔고, 매번 언론의 호의적인 반응을 얻어 왔다.
덜 화려하지만 교양 있는 독자에게는 매혹적인 분야로, 생명의 기원에 관한 국제 연구가 만족스러운 속도로 진행 중이다. 이는 외계 생명을 다루는 과학인 우주생물학 (exobiology) 의 토대가 된다 (부록 3 참고). 진화와 그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는 학문 분과 차원에서 계속 도전을 받고 있는데, 이 역시 UFO 주제와 무관하지 않다 — 생명이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진화할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덜 발전된 분야지만 중요한 것이, 문명의 발생과 미래에 관한 연구다. 이는 보통 우리 행성과 다른 행성에 대한 장기적·전망적 시나리오로 확장된다.
마지막으로, 부록 4 "우주의 식민화" 에서 그려 본 항성간 여행은 적어도 수동적인 모니터링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 주제는 현재 미국이 다루고 있는데, NASA 와 펜타곤의 수많은 연구 계약이 여기에 관여하고 있다 — 문장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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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9
보고서는 태양계 안팎에서 반물질을 추진체로 쓰는 항행 가능성을 짚은 뒤, 천문학자 파파지아니스가 몇 년 전 NASA로부터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 외계 문명이 만든 안정된 도시가 있는지 탐지하는 연구 계약을 받아 진행한 사례를 소개한다. 그는 1983년 IRAS(적외선 천문 위성)가 찍은 사진을 분석해 이 소행성대 천체에서 이상 적외선 방출이 있는지 살폈지만 결과를 내지 못했고, NASA는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다.
이어지는 12.4절 〈특수 연구〉는 이른바 '하드 사이언스'에 속하지 않는 과제들을 따로 묶는다. 예를 들어 항성 간 항행을 떠나는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최소 몇 명이 필요한지 같은 사회학적 문제, 그리고 일부 외국 정부가 군용 항공기·무기 분야의 미래 기술을 독점하려고 벌이는 의도적 역정보(disinformation)를 신중하면서도 깊이 있게 분석해야 한다는 권고가 들어 있다(부록 5·7 참조). 보고서는 외계 문명과의 의심할 여지 없는 물리적 접촉이나 전파 접촉 같은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 취해야 할 조치와 결정을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좋다고 권한다.
13장 〈정치·종교적 함의〉는 UFO와 외계 문명의 존재가 공식 확인됐을 때 지구 각국의 정치·종교 지형이 어떻게 흔들릴지 가늠한다. 정면에서 평가하기는 어려우니, 보고서는 지구를 관찰·개입 대상지로 고른 외계인의 입장에 자기를 놓고 보는 방식을 택한다. 이때 그들이 이미 기술적·인적 난관을 풀고 태양계와 은하의 한계를 넘었다고 가정한 뒤, 두 가지 항행 방식을 상정한다. 첫째는 수천 명의 자원자가 탑승해 세대를 이어가는 '세계함(ship-worlds)' 식 장기 항해다. 이런 함선은 더는 모항으로 돌아올 수 없으므로, 출항 전에 정해진 명령과 프로그램에서 벗어난 정치적 자율과 결정권이 함내 정부에 사실상 주어진다(부록 4 〈우주 식민화〉 참조). 둘째는 아직 상상에만 머무는 혁신적 과학 개념과 기술을 바탕으로 수개월에서 수년 안에 도달하는 항해이며, 일반 승무원이나 생체 안드로이드가 모항·지구의 지시를 받아 조종한다.
이런 탐사 도중 외계인은 자신들과 비슷한 진화 경로를 거친 인간형, 다른 형태의 휴머노이드, 혹은 더 낯선 존재가 사는 천체를 한두 곳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만든 문명은 외계인의 현재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앞서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초보적인 생존 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페이지 끝의 주석은 이 장에서 괄호 안에 적힌 숫자가 87~89쪽의 참고문헌을 가리킨다는 안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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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0
13장은 외계 탐사자가 다른 행성의 지적 생명체를 만났을 때 거치는 단계를 가설로 정리한다. 13.1절은 첫 단계인 "원거리 관측"이다. 지구의 탐사자들이 새로운 세계를 평화롭게 관찰하거나 후손을 정착시킬 영토로 삼는 임무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현지 문명의 발전 수준에 따라 관찰의 방식과 기간이 달라진다. 관찰 대상은 두 갈래다. 하나는 그곳에 사는 생명체 — 그들의 사고방식, 언어, 종교, 예술, 과학, 기술, 무기, 정치 제도, 사회 조직, 역사 전반. 다른 하나는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 즉 동식물과 광물이다. 이 1단계는 어떠한 물리적·물질적 접촉도 배제한 채, 전자 감시·원격 탐사·기록·언어 해독·분석으로 이루어지는 "생체 내(in vivo) 실험실 관측"이다. 보고서는 이 기간이 1년이 될 수도, 10년이나 100년, 심지어 1000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평화 상태든 전쟁 상태든, 정체되어 있든 진화 중이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백 가지 방식의 문명을 광의(lato sensu)에서 비교 관찰하는 것보다 더 좋은 과학 실험은 없다는 논리다. 한마디로 "우리 자신을 관찰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13.2절은 2단계 — 현지에서 직접 표본을 채취하고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는 단계다. 1단계 데이터의 해석은 광물·식물·동물, 더 나아가 진화한 존재의 일부까지 표본을 분석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면 어떤 형태의 접촉이 적절한지 — 은밀한 접촉인지, 드러내는 접촉인지, 연속적인 접촉인지 간헐적인 접촉인지 — 그리고 그 접촉이 현지 문명의 정치·심리·종교에 어떤 파장을 주는지가 문제로 떠오른다. 보고서는 처음에 은밀한 방식을 택하더라도 현재 우리 기술 수준으로는 토착 주민의 눈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같은 행성 안에서도 정치 조직의 형태와 도덕·과학적 발전 수준에 따라 그 심리적·종교적 충격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인다.
13.2.1절은 산업화 이전 문명에 미치는 영향이다. 산업 이전 사회의 개인이나 집단은 외계 탐사선이나 원격 조종 기체의 통과나 착륙을 목격하면, 그것을 자연 현상으로도, 신적인 것으로도, 초자연·이상·악마적 현상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보고서는 그 사례로 유고슬라비아 데차니 수도원의 프레스코화, 1561년 뉘른베르크와 1566년 바젤 상공의 구체들을 들며 부록 6을 참고하라고 적는다. 또한 우주 비행사들의 모습이 함께 목격될 경우, 이러한 현상이 그들의 집단 기억과 상상에 더 또렷이 새겨질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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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1
보고서 13.2.1절은 외계 존재가 우주복을 입었든 아니든, 또는 로봇·안드로이드·인공물 형태로 나타나든, 지역 당국이 그 실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면 토착의 정치·종교 관념을 한동안 뒤흔들 만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본다. 이어 13.2.1.1절은 종교적 충격을 다룬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상과 천상의 질서가 긴밀히 얽혀 있는 만큼, 우주선이나 원격 조종 비행체, 우주인이나 생체 로봇의 출현은 기존 종교의 방향을 바꾸거나 새 종교를 낳거나 창조 신화를 만들어낼 힘을 가진다. 보고서는 에스겔이 길게 묘사한 비행 기계, 라마야나의 공중전, 길가메시 서사시, 창세기의 엘로힘, 인간의 딸들과 어울려 거인을 낳았다는 하늘의 감시자들, 동양과 중국의 불멸자와 하늘의 자손들, 일본의 '신의 땅', 남미 비라코차와 잉카의 신들, 고대 이집트의 위대한 신들, 서양과 동양 고대의 신·티탄·거인·영웅을 예로 든다. 과거에는 초자연적이고 비범한 현상이 자연 질서의 일부였으니, 신이나 창조 질서를 전제로 한 종교가 외계 존재의 출현에 무너질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고 본다. 충격과 공포, 호기심이 가라앉으면 새로운 우주 질서 인식이 옛 종교 관념을 대체하더라도 신성 자체는 살아남을 수 있다. 신은 우주선을 타고 다니지 않으며, 지구의 큰 종교들은 우주에 다른 거주 세계가 있다는 발상을 단죄하지 않는다. 보고서는 뉴헤브리디스의 화물 비행기 숭배처럼 집단 기억이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엉뚱하게 굴절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조차 현지 연대기에는 메카 순례가 잠시 끊긴 사건으로만 남았고, 인간이 달에 갔다는 사실을 광고용 연출이나 허위 정보로 믿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도 든다. 다만 고대 문명들은 이미 바다·바람·화산·지진·번개의 무서운 현상에 신을 결부시켜 왔으므로, 이들이 외계 존재의 흔적이었는지 단순히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신화적 발명이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13.2.1.2절은 정치적 충격을 다루며, 이는 종교적 충격보다 훨씬 짧게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놀라움이 지나가면 국가의 정치 구조는 지속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일상적 사정이 곧 우위를 되찾는다. 다만 군주나 국가 원수가 이 비상한 현상의 유일한 해석자임을 자처하며 자신을 신왕이나 왕신으로 떠받드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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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2
보고서는 권력 정당성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통치자가 자기 백성 눈에 어떻게 비쳤느냐는 질문이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권력 정당화 욕구의 산물인지, 누군가의 교묘한 기회 포착의 결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채로, 역사에는 신왕 또는 왕신의 사례가 넘친다고 보고서는 적는다. 파라오, 아시리아 왕, 헬레니즘권의 현현하는 왕, 로마·중국·일본 황제, 중남미의 태양의 아들 등이다.
13.2.2 산업 문명에 미친 영향에서는 산업 문명이 과거보다 회의적이라고 짚는다. 즉시 설명되거나 수치로 측정되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도 외계 지적 존재의 반박 불가능한 증거가 제시된다면 오늘날 우리 같은 인구 집단에 깊은 흔적을 남길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 문제가 보고서의 핵심이라고 본문은 명시한다.
13.3 3단계: 지역 문명에 대한 영향에서는 시점을 뒤집는다. 우리가 외계 문명을 발견한다는 가정에서, 우리가 그들의 환경과 문명에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이 적절할지를 다룬다. 우리 방식대로 진화시키도록 유도하는 영향을 가하되, 이익과 위험을 신중히 따져야 한다고 적는다.
13.3.1 산업 이전 문명에 대한 영향은 더 구체적이다. 관찰과 분석을 마친 뒤, 자연 환경과 생태계를 조금씩 수정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결여된 식물·생물을 도입하거나 파종하는 식이다. 더 나아가, 멀리서 또는 직접 개입해 특정 개인의 자질이나 결함에 영향을 주고, 지적·도덕적 경향과 과학 지식을 강화하거나, 아직 발명되지 않은 방법으로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그 경우 우리가 맡는 역할은, 그 인구가 신에게 자발적으로 맡기곤 했던 자리다. 신은 성서를 내려 주민의 도덕관, 종교성, 어쩌면 법과 정치 제도까지 재정렬한다. 공포와 경외를 일으키는 요소를 동원하는 것도 어떤 경우엔 적절할 수 있다고 보고서는 덧붙인다. 그러면서 구약성서의 여러 일화, 마누 법전이 제정된 정황, 코란이 내려진 정황을 떠올리게 한다고 적는다. 이런 영향은 역사 속 수수께끼와 연결된다 — 인더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같은 거대 문명이 도시·건축·문자·달력·천문학을 거의 동시에 갖춘 채 등장한 일이 그 예다. 또 1531년 프랑스인 오롱스 피네가 그렸다는 남극 지도도 거론한다. 1820년 남극 대륙이 발견되기 거의 3세기 전에, 얼음이 거의 없는 모습으로 그려진 지도였다.
절은 13.3.2 산업 문명에 대한 영향이라는 다음 섹션 제목에서 끊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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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3
외계 문명이 끼치는 영향의 성격은 그 문명의 유형, 기술 발전 수준, 외계 존재라는 사실에 심리적으로 적응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이 보고서는 그래서 미리 사전 작업을 하라고 권한다 — 공상과학 소설, 영화, 만화, 비디오 게임, 광고, 우호적인 심리적 분위기, 더 나아가 적절한 종파 같은 것까지 동원해 사람들이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에 익숙해지도록 길들여 둬야 한다는 식이다. 새롭고 필수적인 기술 지식은 여러 경로로, 또는 우리 우주선 한 대가 우연히 또는 의도된 사고를 통해 전달될 수도 있다. 보고서는 곧바로 동시대의 로즈웰 사건을 떠올린다. 다만 이 사건이 온전한 사례로 보존되려면 — 또는 반대로 폐기되려면 — 미국 정부가 그날 실제로 회수한 요소 일체를 회피 없이 공개하고, 공유하며, 분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먼저라고 본다.
뒤이은 13.4절은 "제4단계: 직접 접촉"이라는 제목으로 넘어간다. 네 번째 단계는 현지인 개개인이나 인구 전체와 직접 만나는 것을 뜻한다. 생체 로봇 선발대를 앞세울 수도 있고,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도 목표를 정확히 정해야 하고, 접촉의 이득과 실제 효용을 위험·결과와 함께 신중히 따져야 하며, 엄격한 프로그램이라면 이 모두를 미리 계획해 둘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우주선 한 대가 심각한 기술 사고를 겪으면 그 사고가 비공식 접촉의 시작이 될 수 있고, 정착이 되거나, 식민화가 되거나, 필요하다면 정보-역정보 작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일부 승무원이 명령을 어기고 발견된 행성에 남기로 하거나, 자기 판단으로 그 세계에 정착해 결국 토착 주민과 섞여 들어가는 사태 — 보고서는 이를 "승무원의 반란(sedition)"이라 부른다 — 도 미리 상정해 둬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모든 시나리오는 그 세계에 우리와 같거나 매우 비슷한 외모의 인간 또는 유사 인류가 살고 있다는 가정 위에 서 있다. 그렇다면 장기 정착이 계획될 경우 토착 주민과의 혼혈은 예방 차원에서 금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오히려 용인하고 장려해야 하는가? 보고서는 이 질문을 던지면서, 직접 접촉이나 장기 접촉이 결국에는 토착 주민에게 "우리도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인식을 심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짚는다. 그래서 더 신중한 방법으로, 본격적인 등장에 앞서 원격 조종 안드로이드를 먼저 보내 침입에 대한 반응을 살피거나, 은밀하고 단편적인 출몰을 반복해 사람들이 그 관념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13.4.1절은 산업화 이전 단계의 문명과 직접 접촉할 때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 접촉을 하면 현지 사람들은 거의 틀림없이 자신들이 신을 마주하고 있다고 여길 것이라고 보고서는 단언한다. 역사적 유비도 곧바로 떠올린다 — 갑옷을 두르고 말을 타고 중앙아메리카에 상륙한 스페인인들, 더 넓게는 대항해 시대의 유럽인들. 말도, 햇빛에 번쩍이는 갑옷도, 금발이나 붉은 머리의 백인도 본 적 없던 사람들에게 그 충격은 매우 강했을 수밖에 없다. 다만 관계가 누적되면서 이 환영 같은 충격은 점차 누그러졌고, 우리 승무원이 현지의 정치·군사 질서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더욱 빠르게 무뎌질 것이다. 이 모든 논의는 결국 대항해 시대의 여러 서사시, 유럽의 식민화, 그리고 서구 제국들의 종말로 다시 이어진다고 보고서는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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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4
13.4.2 산업기 단계 문명과의 직접 접촉. 보고서는 우리가 기울인 노력으로 그 문명들이 점차 우리 수준까지 끌어올려져 우리 세계에 참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날을 가정한다. 사전 준비를 마쳐 두면, 접촉은 선별된 개인 단위로 은밀하게, 혹은 일부 국가의 최고위층 단위로 비밀리에 추진할 수 있다. 정보 유출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못하지만, 선택된 지도자들이 정보·역정보·반역정보 캠페인을 벌여 이 관계의 특권적 성격을 지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 측은 새로운 과학·기술·정치 정보를 얻어 그들이 경쟁자보다 앞서게 도울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국가·지도자·핵심 인물·혹은 평범한 개인을 고를지가 결정적인 문제가 된다.
영향력 작전을 펼치기 전이나 후에, 원정대원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도록 그곳 주민과 흡사한 외형의 인간형 바이오닉 로봇을 동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공개적으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시나리오 또한 가능하다. 그 경우 심리·정치·군사·전략·종교 모든 영역에서 거대한 충격이 일고, 언론은 물론 국제 회의·UN 같은 기구의 연속 회의·"세계 통합" 호소·국제 협의·환영 위원회 설치 같은 사태가 잇따르리라 예상된다. 그 와중에 국가 간 경쟁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흥미로운 관찰 거리가 된다.
물론 우리 의도는 평화적인 것으로 비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현지 주민의 정서를 배려할 특별 조치를 굳이 취할 이유가 없다. 어떤 시나리오에서든 천년왕국적 신념·맹신·실용·이해관계 때문에 우리를 구원자로 환영하는 우상숭배자·아첨꾼·헤로데주의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첫 동맹이 된다. 반면 광신자·회의주의자·기존 세속 세계관에 갇힌 이들은 우리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인하고, 인정하더라도 침입자로 받아들인다. 우리가 평화롭다는 점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더 의심스러워지고, 거기서 방위 운동·저항 운동의 결성까지는 한 걸음이다. 그 운동의 세는 우리가 이를 진압하거나 설득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솜씨에 부분적으로 좌우된다.
그렇다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와 좋은 감정으로 포장된다"는 말의 함정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오래 그들을 관찰해 왔는지 털어놓아야 하는가. 그들은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우리를 비난할 것인가, 아니면 그 책임을 우리에게 돌릴 것인가. 더 일반적으로는 자신들의 문명 진로를 우리가 바꿔 놓았다고 원망하지 않을까. 이런 경우 매우 심각하고 오래가는 심리적 동요가 따를 수 있다.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됐을 때 그들은 실망할 것인가. 이후 단계에서는 그 주민과 경제·기술 교류, 금융 관계가 맺어진다. 우리가 그들의 내정에 개입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일까. 어떤 식으로든 정치 분쟁·평화·전쟁·경제 위기의 중재자 역할을 떠맡아 달라는 요청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어떤 경우든 결국 우리가 그들의 미해결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고, 그들은 이 페이지가 끊긴 다음 단락에서 우리 "기여"의 대가를 추궁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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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보고서가 외계 문명과의 접촉을 가정하고 그 정치적 함의를 풀어내는 대목이다. 우리가 진보된 문명이라 여기는 상대에게 우리의 존재가 정말 이로운 것인지부터 의심한다. 시간이 흐르면 상대의 의견과 태도는 바뀔 수 있고, 우리가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니게 된 이상 어느 시점엔 자기들이 우리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집단이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저항 운동이 일어나고 혁명의 순환이 시작되며, 우리뿐 아니라 우리에게 협력해온 헤로데적 동맹들까지 함께 타격을 입는다. 그때는 접촉 빈도를 줄이고 우주선으로 물러나 후퇴하면서, 아직 우리 입문자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기법을 토대로 정책을 다시 검토할 시간이 필요해진다.
반대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다 보면 우리만큼, 혹은 우리보다 훨씬 앞선 문명과 마주칠 수도 있다. 더 먼 세계에서 온 탐사자들과 만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는 우리 쪽이 먼저 우주에서 발견당하는 입장이 되며, 앞서 서술한 심리적 충격과 정치·종교적 파장을 우리가 직접 겪게 된다. 그쪽 정부들은 우리를 어떻게 대할까. 평화롭게 환영할까, 아니면 신중하게 거리를 둘까. 그들의 행성 가까운 소행성대에 우리가 세우려 했거나 이미 세운 기지를 향해, 핵 우주 무기 같은 것이 겨눠지지 않을까. 결국 처음의 질문, 우리의 현재의 우려로 한 바퀴 돌아 돌아온 셈이다.
이어 14장 〈미디어 함의〉가 시작된다. 멀쩡한 사람들, 그것도 과학자들이 우스워 보일 위험을 감수하면서 설명되지 않은, 당분간 설명할 수도 없는 현상에 매달리는 것이 황당해 보일 수 있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보고서가 보여주려는 것처럼, 과학적 관심을 정당화할 만큼 구체적인 증거가 충분히 있다는 입장이다. 연구자의 접근은 과학이 아직 완전한 답을 내놓지 못하더라도 수수께끼를 풀어가려는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언론의 관심은 갑작스러운 새 사건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와 멋진 특종거리가 되는 주제를 향해 있고, 그 보도는 대체로 과학적 정밀함과는 거리가 멀다.
언론을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며, 그 도움은 종종 가장 값진 것이라고 덧붙인다. 다만 이런 일회성 사건들은 미지와 마주친 충격 때문에 흔들리고 평소 기준조차 잡지 못하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기 때문에 근거가 매우 약하다. 그 결과 언론은 사실을 비웃거나, 목격자가 말한 것에서 너무 많이 부풀려 보도하다가 스스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14.1절은 〈정부는 미디어의 호기심에서 무엇을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며, 첫 항목으로 Panic, 즉 미디어가 공포에 가까운 정보를 퍼뜨려 대중에게 혼란을 일으킬 위험을 꺼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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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6
보고서는 미디어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을 짚으면서 1938년 오슨 웰스의 라디오 드라마가 실제 사건으로 받아들여져 미국 한 지역에서 큰 혼란을 일으킨 사례를 든다. 이 일화가 1947년 로즈웰 사건에 대한 미군의 대응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당시 정보 차단 작전이 워낙 능숙해서 30년 동안 미디어가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살, 도로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폭동, 기물 파손 같은 큰 사회적 혼란을 동반하는 공황은 평화 자체가 권력의 자산이자 안정 요인인 어떤 정부도 뒷걸음치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든 요인은 불신이다.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고 빈정대는 어조로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분위기 자체가 UFO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보고서는 이런 자세야말로 진실과 거짓을 둘러싸고 여론이 빠져 있는 정보 차단과 혼란의 핵심이라고 짚는다. 조롱에 대한 두려움도 짚는다.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는 않지만 여전히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디어가 특정 영역의 이익을 위한 로비나 압력 집단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가령 반UFO 전략방위구상(SDI)을 만들도록 정치인을 압박하는 식이며, 이렇게 되면 미디어 자체가 정보 차단 작전이나 안정성 흔들기 시도의 모르는 대변자가 될 수 있다.
14.2절은 미디어가 실제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로 옮겨간다. 타블로이드는 팔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좋다는 입장이다. 대중의 호기심이 커서 자극적이고 종종 가짜인 기사를 양산하지만, 역설적으로 로즈웰에 관한 옛 목격자들의 최근 증언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타블로이드 덕분이라고 본다. 주요 신문들은 좀 더 공격적인 자세로 아무도 손대지 못한 금기 주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산카를로스데바릴로체 사건처럼 수십 명이 동시에 목격한 비범한 현상이 일어났을 때는 신문이 그 소식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UFO 사건을 잘 정리해 보여주기도 한다. 텔레비전과 영화에서는 픽션으로 다룰 수 있어 인기 있는 소재이며 제작자의 상상력을 막는 것이 사실상 없다. 프랑스 채널 플뤼스의 〈외계인의 밤〉 같은 기괴한 편성은 이 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지 못한다. 다만 1996년 3월 아르테 방송처럼 진지하고 잘 만든 다큐멘터리 몇 편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14.3절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마무리한다. 보고서는 인류의 미래가 우주에 있다고 단언한다. 인구 과잉, 모험심, 다른 원자재에 대한 탐색, 정복과 식민화에 대한 욕망, 혹은 더 이타적인 동기 등 무엇이든 인류 확장으로 향하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본다. 우리가 언젠가 다른 행성의 외계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우리 탐사선이 점점 더 먼 세계를 돌며 촬영할 때 그곳의 가상 주민이 우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묻는다. 보고서는 이 전망에 대비해야 하며, 미디어가 대중을 교육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강화된 SEPRA가 언론인 교육에 자원을 쏟고 인터넷에 다큐멘터리 사이트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제안으로 절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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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7
보고서의 결론·권고 부분이다. UFO 문제는 신랄한 농담 몇 마디로 치워버릴 수 없다는 단언으로 시작한다. IHEDN 청강생회의 첫 보고서가 나온 지 20년이 지났고, 그 사이 CNES가 헌병대와 공군을 중심에 두고 민간항공·기상청 같은 국가기관과 함께 진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미국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비교적 조용히 이뤄진 다른 연구들과 들어맞는다.
그 연구들은 한 가지 사실을 거의 확실하게 보여준다. 비범한 비행 성능과 무소음으로 움직이며, 지능을 가진 무엇인가가 조종하는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물리적으로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 비행체의 기동은 민간·군 조종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조종사들은 그 경험을 입에 올리길 꺼린다. 우스워 보일까, 정신 나간 사람으로 몰릴까, 잘 속는 사람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서다. 지구산 비밀 항공기—드론이나 스텔스기 같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례는 일부에 불과하다. 한 발 물러서서 수년치 자료를 들여다보면 그 한계가 분명해진다.
그래서 다른 가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그중 어떤 가설은 입증도 반증도 어렵다. 희귀하고 잡히지 않으며 무작위로 일어나는 현상은 실험과 재현을 토대로 하는 과학과 잘 맞지 않는다. 다만 운석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런 종류의 현상도 수백 년의 의심과 거부 끝에 결국 과학계가 받아들이는 일이 있다.
사실관계를 충분히 설명하면서 오늘날의 과학만으로도 다룰 수 있는 가설이 하나 있다. 외계 방문자 가설이다. 1947년부터 미국 군 일부가 제기해 온 이 가설은 오늘날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엘리트층은 이를 폄하하지만 그럴듯한 가설이며, 천문학자·의사·엔지니어·미래학자 등 과학자들이 동료들 사이에서 가설로 받아들여질 만큼 충분히 다듬어 놓았다. 먼 항성계의 한 문명이 우리 태양계까지 오는 여정에 대한 그럴듯한 변형 가설이 여럿 제시되어 있고, 대기 중에서 UFO를 추진할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자기유체역학 기술 모델은 상당한 단계까지 발전했다. 자동차 시동 꺼짐이나 잘린 듯이 보이는 광선 같은 현상도 물리적 설명을 얻기 시작했다.
이 잠재적 방문자들의 목적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진지한 추론과 시나리오 작업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외계 가설은 단연 가장 뛰어난 과학적 가설이다. 단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강한 정황 증거가 그 손을 들어주고 있고, 만약 맞다면 그 함의는 매우 무겁다.
이런 점진적이지만 견고한 평가를 바탕으로 몇 가지를 권고한다. 첫째, 정치·군사·행정 의사결정자와 항공기·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알릴 것. 점진적 정보 전달의 대상으로는 국립행정학교 ENA와 IHEDN, 그리고 국방부 산하 학교들—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생시르 육군사관학교, 헌병학교(장교·부사관), 군 의학교, 폴리테크니크, 첨단기술국립학교 ENSTA, 항공우주국립학교 ENSAE, CID, 첨단무기연구센터 CHEAR, 그리고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CHEM 등이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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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8
보고서는 권고 사항을 이어 나간다. 먼저 정보 공유와 교육의 대상으로 군 고등학원과 동문 조직, 국립경찰학교, 경찰간부학교, 언론학교, 국립민간항공학교를 든다. 특히 국립민간항공학교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학회가 열려 항공 관제사들이 비행 중 UFO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교육받아 왔다고 한다. 이어 군 연구개발을 지원하거나 직접 수행하는 기관으로 DGA, ONERA, 군사응용국 CEA/DAM 등을 거론하고, 옛 군 공보부서인 SIRPA의 후신 DICOD 등 국방 커뮤니케이션 본부와 민군 특수 부서들에는 허위정보 유포 행태에 주의를 환기할 것을 요구한다.
두 번째 권고는 SEPRA의 인적·물적 자원을 늘리는 일이다. 조사와 분석 역량을 키우고,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UFO 발현 사례를 수집하며, 이 현상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유지·발전시키고, SEPRA의 위상과 대외 관계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UFO 탐지를 민·군 우주 감시 시스템의 한 임무로 명시할 것을 제안한다. 이 시스템은 위성과 우주 잔해의 충돌 방지 같은 다른 이유로도 어차피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다.
네 번째 권고는 SEPRA와 협력할 국가 최고위급 단위 조직을 신설하라는 내용이다. 이 조직은 가능한 모든 가설을 정식화하고, 연간 수백만 프랑 규모의 예산으로 과학·기술 활동을 추진하며, 다른 나라들과 분야별 협력 협정을 맺는 일을 맡는다. 다섯 번째로는 미국을 향한 외교적 데마르슈를 시작하자고 권한다. 다른 국가들, 나아가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이 초강대국이 협력에 응하도록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압력을 가해 이 결정적 사안을 해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정치·전략적 동맹의 틀 안에 들어오는 문제라는 판단이다.
여섯 번째 권고는 가장 사변적이다. 이 가능성들이 아무리 추측에 가까워도, 공권력 차원에서 그리고 4번 항에 언급된 조직의 도움을 받아, 누가 봐도 부인할 수 없는 UFO의 화려한 발현이 일어났을 때 어떤 조치를 취할지 미리 숙고하라는 내용이다. 공공연한 접촉 시도, 다수의 목격자 앞에서의 착륙, 그 밖의 실질적 행동 같은 사태가 그 예다. 보고서는 이런 숙고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되, 당연히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같은 페이지 후반부터 부록이 시작된다. 부록 1은 프랑스의 레이더 탐지 체계를 다룬다. 프랑스의 레이더 탐지는 두 개의 레이더망으로 이루어진다. 군용 레이더망은 1차 레이더와 2차 레이더를 모두 갖추고 있고, 민간 레이더망은 거의 전적으로 2차 레이더로만 구성되어 있다. 1차 레이더는 화면 위에 지리적 위치와 고도, 즉 3차원…으로 글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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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9
이 페이지는 프랑스 군 레이더 체계 설명을 마무리한 뒤, 부록 2 — 천문학자 목격담 — 으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저자 장클로드 리브(Jean-Claude Ribes)는 먼저 1차 레이더와 2차 레이더의 차이를 짚는다. 1차 레이더는 비행체 동체에 반사된 전파로 모든 움직이는 물체를 잡아내지만, 2차 레이더는 트랜스폰더가 신호에 응답하는 물체만 화면에 띄운다. 따라서 트랜스폰더가 없는 비행체는 2차 레이더에는 잡히지 않는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군 통제·탐지 센터(CDC)와 공군의 AWACS, 곧 도입될 해군의 호크아이 같은 1차 레이더 장비만이 UFO — 스텔스 기체가 아닌 한 — 를 탐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영토 내 모든 레이더, 공중경보기, 인접국 레이더에서 모은 정보는 STRIDA(방공정보처리망)에 모여 한 변 4,500km 이상 되는 권역을 감시한다.
이어지는 부록 2에서 리브는 천문학자들의 UFO 목격담을 다룬다. 도입부 일부가 검은 띠로 가려져 있는데, 가시 부분만으로는 천문학자들이 천체가 아닌 무언가를 보고도, 직업적 권위를 지키려는 아마추어와 달리 조롱이 두려워 입을 잘 떼지 않는다는 진단으로 읽힌다. 자기가 아는 한 이 집단을 대상으로 한 본격 조사는 없었다고 그는 적는다. 다만 천문학자들이 동료들끼리 비공식적으로 진행한 두 건의 조사가 있다. 1950년대에 J. 앨런 하이넥(Josef Allen Hynek)이 천문학자 약 40명에게 물었더니 그중 10%가 조금 넘는 인원이 실제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답했고, 그 가운데에는 뉴멕시코 대학 운석학연구소 소장 링컨 라파스(Lincoln La Paz)와 명왕성 발견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 1997년 사망)가 포함된다. 1970년대에는 피터 스터록(Peter A. Sturrock)이 미국천문학회 회원 2,611명에게 익명 보장 설문을 돌렸고, 절반이 응답해 60건의 목격이 모였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체계적 조사가 없지만, 마르세유의 천문학자 조르주 쿠르테(Georges Courtès)와 모리스 비통(Maurice Viton)의 목격담이 자주 인용된다. 리브는 동료 한 사람의 사례도 소개한다. 아직 전문 천문학자가 되기 전 잘 훈련된 아마추어 시절, 달과 비슷한 겉보기 지름의 물체가 북에서 남으로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았는데(그날 달도 함께 떠 있었다), 본인은 어떤 설명도 찾지 못했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천문학자 집단의 목격 비율은 일반 인구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들 사이에 입을 다무는 분위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리브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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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0
보고서 본문이 두 개의 부록으로 이어진다. 앞 단락은 천문학자들의 분위기를 정리한다. 익명이 보장되지 않으면 다수가 이 주제를 말하려 하지 않지만, 흔히 알려진 것만큼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합의는 없고 선입견 없는 객관적 연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프랑스 동료들과 사석에서 나눈 대화도 스터록의 결론과 같았다. 기자에게는 입을 닫지만, 진지한 과학 연구라면 동의한다는 쪽이었다.
부록 3은 우주의 생명 문제를 다룬다. 외계 생명 문제는 불과 수십 년 전에 신앙의 영역에서 과학 연구의 영역으로 넘어왔고, 그 뒤로 빠르게 진척돼 왔다. 지구 밖 태양계는 현재로선 생명에 맞지 않지만, 바이킹 탐사선은 약 35억 년 전 화성이 지금보다 훨씬 우호적인 조건, 특히 액체 상태의 물을 가졌음을 보여 줬다. 따라서 그때 박테리아 같은 초보적 생명체가 화성에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구가 그랬듯 말이다. 화석 연구는 무인 탐사를 거쳐 유인 탐사로 이어질 향후 화성 임무의 한 동기다. 미 항공우주국이 발표한, 화성에서 온 운석 속 화석 문제는 학계에서 아직 논쟁 중이지만, 그 논쟁 자체가 현장 확인의 필요를 키운다.
태양계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천문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별들이 행성계를 거느릴 것이라 짐작해 왔다. 이 가설은 최근 몇 년 사이 비로소 관측으로 확인됐다. 지금은 행성을 적어도 하나씩 거느린 별을 여섯 개 안다. 생물학자들도 생명을 일으키는 화학 메커니즘을 빠르게 이해해 가는 중이며, 생명은 우연이라기보다 필연에 가까워 보인다.
지난 20년의 경험은 시베리아부터 심해까지, 한때 생명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온도 차나 환경에도 생명이 적응함을 보여 줬다.
35년째 이어진 전파천문학자들의 SETI, 즉 외계 지적 신호 탐색은 아직 신호를 잡지 못했다. 탐색해야 할 공간과 주파수 영역이 워낙 광대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 의회가 한 번 취소한 미 항공우주국의 대형 프로그램은 민간 자금으로 되살아나, 탐색 감도를 몇 자릿수 끌어올릴 예정이다. 이미 여러 차례 SETI 관측을 진행한 프랑스 낭세 전파망원경도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
부록 4는 우주 식민화 문제로 넘어간다. 20세기 후반은 태양계 탐사의 반세기였다. 사람이 달에 갔고, 화성과 금성에 탐사선이 내렸으며, 명왕성을 뺀 다른 행성들 가까이에도 탐사선이 다녀왔고, 혜성과 소행성에도 다녀왔다. 21세기는 영구 인간 거주지를 두고 다른 항성계로 가는 항해를 준비하는, 이 태양계의 식민화 세기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영구 궤도 정거장 알파가 자리를 잡는다. 러시아 미르 프로그램의 국제 후속이다. 그 다음으로는, 미국 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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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달에 영구 기지를 세우는 일은 원칙적으로 남극 기지처럼 최소 규모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 그 너머 단계에 가면 공기·물·식량 같은 필수 원료를 현지에서 채취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거의 모든 것을 지구에서 비싼 발사 비용으로 실어 올려야 하는 지금 방식을 대규모로 적용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형태의 폐쇄 생태계는 러시아인이 먼저 연구했다(첫 실험이 1961년이다). 미국에서는 면적 1.3헥타르의 온실 〈바이오스피어 2〉가 외부 전원만 받은 채 식물·동물·여덟 명의 사람을 폐쇄 회로 안에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 민간 자금으로 굴러간 이 실험은 언론과 일부 과학자에게 부당한 비판을 받았지만, 〈아마추어 같다〉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1991~1993년의 첫 2년 실험에서 남녀 각 네 명이 거의 완전한 자급 상태로 생활했고, 원리 자체의 타당성을 보여 주었다. 물은 100퍼센트 재순환되었지만 공기 재순환은 불완전해 격리 15개월 시점에 산소를 추가로 공급해야 했고, 식량 생산도 약간 모자라 거주자들은 비축분을 헐며 살이 빠진 채 나왔다.
다시 6개월간의 실험이 이어진 뒤 시설은 컬럼비아 대학으로 넘어갔다. 컬럼비아 쪽은 우주 응용보다 생태학적 측면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이지만, 다음 세기 중반의 자급형 달 기지는 결국 〈바이오스피어 2〉의 후신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달에 정주하는 일은 천문학자들에게는 거의 필수에 가까운 과학적 요구이자, 더 먼 우주로 나아가는 도약대이기도 하다. 우주 정거장과 우주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재는 사실상 모두 달에서 찾을 수 있다. 중력이 작고 대기가 없어, 자원을 캐서 궤도로 쏘아 올리는 비용이 지구보다 훨씬 적게 든다.
화성으로의 유인 탐사는 무인 탐사가 끝난 뒤 따라오는 단계가 된다. 적어도 과거 생명의 흔적이 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사람이 가야 한다. 영구 화성 식민지를 건설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할 수 있지만, 이 단계를 건너뛰고 곧장 인공 행성을 만드는 길도 그릴 수 있다. 미국 물리학자 오닐은 이 발상을 구체화해, 길이 30킬로미터·지름 6킬로미터의 원통형 구조물이 회전하며 인공 중력을 만들고 그 안에 지구형 생태계와 수백만 명의 거주자를 품는 그림을 제시했다.
이런 인공 행성은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 세울 수 있다. 그곳에는 채굴이 쉬운 자원이 풍부하고, 산소·물을 비롯한 다양한 화학 물질을 얻을 수 있다.
반물질을 산업 규모로 제조·저장·사용하는 기술이 손에 들어오는 더 먼 미래에는, 같은 구조의 작은 모델이 태양계를 떠날 수 있게 된다. 수백 년에 걸쳐 다른 별 근처에 도달하는 항해가 가능해지고, 그 〈선박-세계〉 안에서 여러 세대가 차례로 살아간다. 그때까지 인간 동면 기술을 손에 넣지 못한다면 말이다.
이런 이주는 자동 탐사선의 정찰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행성에 진화한 생명이 살고 있을 법한 항성계가 우선 목적지가 된다.
인간 탐사대가 어느 항성계의 소행성대에 자리를 잡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항성계의 문명이 우리보다 기술 수준이 낮을 가능성이 크다(반대 경우라면 이미 통신을 통해 접촉이 이루어졌거나, 더 발전한 문명 쪽이 먼저 우리에게 왔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리적 이유에서도, 진지한 과학적 연구의 관점에서도, 그 문명에 공개적으로 개입할 수는 없다. 잘못 건드리면 치명적인 문화 충격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 연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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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외계 방문자가 지구를 찾을 때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 추론한 뒤 곧바로 로즈웰 사건을 다루는 부록으로 넘어간다. 앞 단락은 방문자가 행성 대기를 빠르고 조용하게 통과하기 위해 MHD(자기유체역학) 추진을 쓰고, 마주친 지구인을 무력화하되 죽이지 않으려고 펄스 마이크로파 같은 비살상 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짚는다. 그러면서 방문 대상 문명이 우주 항해 단계에 들어서면, 외계인의 존재를 충격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 필요가 생기는데, 그 방법으로 거론하는 것이 “계산된 누설(calculated indiscretions)”이다. 인구 전체가 조금씩 외계 방문이라는 관념에 익숙해지도록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는 방식이다.
뒤이어 ‘부록 5 — 로즈웰 사건과 디스인포메이션’이라는 절이 시작된다. 첫 항목은 ‘다툴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제목 아래, 사건의 시간선을 연도별로 정리한다. 항목 옆 (video)는 영상 증언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미리 일러둔다.
시간선은 1947년 여름 뉴멕시코 로즈웰 기지가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탑재한 폭격기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폭격기는 아직 프로펠러기였다. 6월 24일 미국 민간인 케네스 아놀드가 UFO 아홉 기를 목격해 그 소식이 전 세계로 퍼졌고, 7월 8일 아침 로즈웰 기지는 지역 라디오에 “목장에 비행 원반이 추락했고 기지 군인들이 잔해를 회수했다”는 정보를 전한다. 같은 날 오후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는 기지를 지휘하는 8공군 사령관 레이미 장군이 기자들에게 잔해를 검사해보니 기상관측 풍선이라고 발표하고, 일부 잔해를 보여 사진까지 찍게 한다. 사건은 삼십 년 넘게 묻힌다.
1978년 1947년 당시 기지 정보장교로 잔해를 직접 회수한 마르셀 중령이 텔레비전에 나와 잔해는 분명히 외계 기원이라고 증언한다. 레이미가 기자들에게 보여준 잔해는 마르셀이 로즈웰에서 가져온 잔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후 미국 UFO 연구자들이 수많은 조사를 벌여 선서·공증된 증언과 영상 인터뷰를 모은다. 여러 증인은 1947년 7월 군이 입을 열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하고, 일부 증언에서는 잔해 더미에서 “일종의 우주 글라이더 골조”와 작은 휴머노이드 시신이 발견됐다는 진술까지 나온다.
1991년 1947년 당시 레이미의 참모장이던 두 보스(du Bose) 장군이 선서진술서로, 레이미가 기자들에게 보여준 풍선 잔해는 로즈웰 기지가 보낸 진짜 잔해를 바꿔치기한 것이라고 확인한다. 1994년 초에는 뉴멕시코 출신 하원의원 시프가 국방부에 해명을 요청하지만 답을 받지 못하자, 회계감사원(GAO)에 공군이 로즈웰 추락 관련 문서를 어떻게 다뤘는지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다.
1994년 9월 공군 장관실은 로즈웰 보고서를 발표한다. 목장에서 나온 잔해는 항공기나 미사일이 아니며, 비밀 프로젝트 모굴(Mogul)에서 운용하던 풍선 연쇄에서 떨어진 잔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비밀 유지를 위해 레이미가 이를 일반 기상관측 풍선으로 둔갑시켰고, 두 풍선의 본질적 재료(막대와 레이더 반사판)는 같다고 설명한다. 다만 글쓴이는 이 보고서가 일부 증인의 진술서를 짧게 잘라 “기이한 잔해” 묘사가 모굴 풍선 잔해처럼 보이도록 만들었고, 우주 글라이더 골조 이야기는 아예 언급하지 않으며, 휴머노이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증언(bona fide testimonies)”은 “흐릿한 기억(foggy memory)”으로 돌렸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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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3
1995년 7월의 GAO 보고서는 공군의 새 설명을 언급하며 이렇게 적는다. 1쪽에서는 "로즈웰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논쟁은 계속된다"고 했고, 2쪽에서는 "해당 기지의 1945년 3월부터 1949년 12월까지의 행정문서가 전부 파기되었고, 1946년 10월부터 1949년 2월 사이 기지가 발신한 무전 메시지도 모두 파기되었다. 파기 보고서에는 이 폐기가 언제, 누구에 의해, 누구의 명령으로 이뤄졌는지 나와 있지 않다"고 한다. GAO의 조사는 CIA·FBI·국방부·에너지부·NSC 등 여러 기관에 자료를 요청했지만, 로즈웰 사건과 관련해 의미 있는 문서를 사실상 받아내지 못했다.
1995년 여름과 가을에는 1947년의 "인간형 시신"으로 불린 부검 영상이 전 세계 약 서른 개 방송국을 통해 방영되었다. 진위는 의심스럽고, 무엇보다 그 영상에서 시신이 로즈웰 사건과 조금이라도 연결된다는 단서는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상은 신문과 방송 기사를 잡탕처럼 끌어모아, 결과적으로 로즈웰 이야기 자체를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만들었다. GAO의 결론과 프랑스 채널 TF1이 내보낸 핵심 증인들의 영상은 이 부검 영상 속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다. 1996년에는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와 텔레비전 시리즈 <엑스파일>이 로즈웰을 비중 있게 다룬다.
두 번째로 로즈웰을 둘러싼 의견을 정리한다. 인터뷰, 진술서, 영상 증언이 일관되게 묘사하는 물질이 있다. 우리 시대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것으로, 금속처럼 보이지만 매우 강한 저항력을 가지면서도, 공처럼 구겨 뭉친 뒤 손을 떼면 접힘 자국 하나 없이 원래 모양으로 되돌아갈 만큼 탄성이 큰 얇은 시트다. 추락은 1947년 7월 4일 23시 30분경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 날짜와 시각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상징이기에 다음 질문이 따라붙는다. 만약 추락한 것이 실제로 외계 비행체였다면, 그것은 단순한 사고였는가, 아니면 메시지나 진위 증명을 의도한 의도적 추락이었는가?
세 번째로 로즈웰과 역정보의 관계를 본다. 자료의 사라짐과 공군의 어설픈 해명 시도는 미군이 1947년 7월 로즈웰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을 숨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체에 미치는 플루토늄 영향 실험을 결국 인정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양질의 증언이 떠받치는 외계 비행체 가설은 그렇게 쉽게 일축할 수 없다. 비밀을 지키기 위해 로즈웰 사안에는 두 가지 주된 역정보 기법, 즉 축소와 증폭이 함께 동원됐다. 다만 유포되는 정보와 상충되는 분석들이, 가령 UFO 연구자들 쪽에서 나오는 것이, 이 축소형 역정보의 부수 효과로 비칠 수도 있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축소 역정보는 공군 보고서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잔해에 대한 증언은 모굴 풍선 가설에 신빙성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잘려 나갔다. 좀 더 미묘한 형태는 전직 CIA·국방부 직원이자 "UFO 연구자"인 칼 플록의 책 <로즈웰 인 퍼스펙티브>에서도 보인다. 잘 찢기지 않고 구겨지지도 않는 그 물질을 언급한 진술서는 부록에는 전문이 실려 있지만, 본문에서는 무시되거나 짧게 줄여 인용된다. 프랑스에서는 사회학자 피에르 라그랑주가 이 단순화된 역정보의 희생자처럼 보인다. 공군 보고서와 칼 플록의 저서를 비판적으로 자리매김하려 애쓴 끝에 그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심리학 이야기로 마무리하겠다. 왜 많은 사람들이 …을 믿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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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4
프랑스 사회심리학자들의 UFO 회의론을 비판하며 시작한다. 이들은 로스웰에서 떨어진 것이 모굴 풍선이나 V2 로켓이 아니라 비행접시였다고 믿는 사람들을 두고, 그저 대중 공상과학 소설을 너무 많이 본 탓이라고 본다. 베르트랑 메외스트는 학술지 Crémonium 1995년 2월호에서 이렇게 짚었다. 군사 기지 근처에 정중하게 추락해 준 화성인 우주선 이야기, 그리고 그 우주선을 만든 초경량·초내구성 소재 이야기 — 이 모든 것이 20세기 초 기술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 단순한 도식을 이렇게 반박한다. 20세기 초 공상과학 소설에는 사람을 죽이거나 치유하는 광선도 등장했지만, 오늘날 군사·의료용 레이저는 실제로 존재한다.
저자는 이어서 UFO 정보 조작을 두 갈래로 나눈다. 하나는 증폭형 조작 이고, 다른 하나는 축소형 조작 이다. 로스웰 외계인 시신 부검 영상이 공개된 사건이 증폭형의 사례다. 이 의심스러운 부검 영상이 로스웰 사건을 자극적으로 키운 결과, 정작 GAO 보고서 공개와 영상 증언 확산은 가려졌다. 잘 짜인 조작이라고 의심할 만하다.
4) UFO에 관한 축소형 조작. 미 공군은 처음부터 이 방식을 써 왔다. 1948년부터 1966년까지 공군 자문을 맡았던 천문학자 하이넥은 자신이 어떻게 수많은 사례를 부당한 천문학적 해석으로 가볍게 처리했는지 직접 밝혔다. 이 정책은 1952년 12월 CIA가 소집한 과학 위원회 — 로버트슨 위원회 — 의 권고로 한층 강화되었다. 위원회는 UFO 현상에서 신비의 후광을 벗겨내라 고 제안했고, 동시에 UFO 연구자 모임을 감시 하라고도 권고했다. 실제로 그 모임들은 주로 CIA에 의해 침투되었다. 여러 주요 인물이 중요한 사건을 무력화하려 시도했다. 당시 Aviation Week and Space Technology의 편집장 필립 클래스는 1956년 레이큰히스, 1957년 RB-47, 1976년 테헤란 같은 항공 사례 세 건을 다뤘는데(2장에서 다룸), 설득력이 떨어진다. 테헤란 사례를 보면 도입부에서는 증언을 정확히 인용하지만, 막상 논의할 때는 일부 측면을 빠뜨린다. 축소형 조작은 외계 가설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다른 방식 — 증폭형 조작 — 이 향한다.
5) UFO에 관한 증폭형 조작. 이 정책은 아주 일찍 시작된 듯하다. 1952년 아담스키가 금성인과 만났다는 주장이 이 범주에 속한다. 70년대 말 로스웰 사건이 다시 떠오른 뒤로 그 규모는 훨씬 커졌다. 출발점은 베네위츠 사건이다. UFO 연구를 하던 물리학자 베네위츠는 뉴멕시코 커틀랜드 공군 기지의 시험장에서 펄스 마이크로파를 녹음했고, 이것이 — 외계인이 피랍자(납치된 인간) 들에게 이식물을 심어 통제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베네위츠의 녹음 자료가 공개될까 우려한 공군 특별수사대(AFOSI), 그리고 같은 기지의 도티 특별요원, 거기에 다른 기관까지 가담해 그를 부추겨 황당한 폭로 를 하게 만들었다. 피랍자 들을 통제하기 위한 다수의 납치와 이식물 설치 이야기가 그것이다. 더 나아가, EBE(외계 생물 개체, Extraterrestrial Biological Entities)라는 이름이 붙은 외계인들과 미 육군이 공동 운영하는 뉴멕시코·네바다의 기지에서 기술 이전이 이뤄졌다는 이야기도 곁들여졌다. 베네위츠는 이 정보를 미국 UFO 연구자들에게 흘렸고, 그들 다수가 이렇게 휘말렸다 —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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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5
이 페이지는 본문 두 갈래로 흐른다. 앞부분은 디스인포메이션 논의의 마무리다. 항공기 제작자의 아들 존 리어가 공군 지인들에게서 얻었다는 디테일을 보탰다는 이야기, 그리고 네바다의 그 기지가 "51구역"의 그룸 레이크라는 점이 나온다 — 그룸 레이크는 실재하는 시설이고, 공군이 공식 인정하지 않을 뿐 1996년 6월호 제인스 디펜스 위클리에도 언급된 사실이라고 짚는다. 이어 2해병사단 출신 전 해군 하사관 빌 쿠퍼가 외교협회(CFR)가 빌더버그와 삼각위원회를 통해 세계를 지배하며, 그것도 EBE와 긴밀히 손잡고 그렇게 한다고 "폭로"한 일화가 따라온다. 필자는 이런 식의 디스인포메이션이 결과적으로 커클랜드의 마이크로웨이브 무기 연구와 그룸 레이크의 신형 항공기 연구를 가려주는 보호막이 되었고, 동시에 잘 속는 일부 UFO 연구자를 비웃는 무기로 쓰이게 했다고 정리한다.
그다음부터는 새 장이 시작된다. 부록 6, UFO 현상의 긴 역사 — 연표를 위한 요소들. 필자는 UFO 현상이 전 세계로 본격 퍼진 출발점을 1947년 6월 24일 미국 북부 레이니어산 일대에서 조종사 케네스 아놀드가 한 목격이라고 본다. 다만 미해명 공중현상 자체는 그보다 훨씬 오래되었다고 덧붙이며, 같은 해 5월부터 7월 사이에 미국 전역에서 850건의 별개 목격이 기록되었고, 1월에는 영국 공군 모스키토 야간 전투기가 북해 상공의 레이더에 잡힌 매우 빠른 물체를 요격하려다 실패했다는 사실을 짚는다.
첫 소절은 1946년 스웨덴 상공의 "유령 로켓"이다. 1946년 2월부터 12월 사이, 다수의 목격자가 스웨덴 하늘에서 대체로 방추형의 — 때로는 구나 원반에 가까운 — 물체가 대부분 수평으로 날다가 어떤 경우에는 빛 꼬리를 남기고, 또 갑자기 솟구치거나 하강하는 모습을 보았다. "고스트 로켓"이라 불린 이 현상은 약 1,000건이 포착되었고, 스칸디나비아·영국·미군 당국이 상당히 긴장하며 조사를 벌였다. 공식적으로는 잔해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고, 한동안은 소련이 독일 공장에서 회수한 기재로 시험비행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이 가설은 이후 완전히 폐기되었다.
다음 소절은 2차 세계대전기의 "푸 파이터"다.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수많은 조종사가 직경 수십 센티미터의 붉거나 푸른 발광 구체 떼, 또는 작은 금속질 원반 무리가 항공기를 따라붙거나 주변을 도는 모습을 보았다. 그 움직임은 지성적인 의도가 있는 듯했다. 당시 레이더에는 거의 잡히지 않았고, "물질적"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 실제로 일부 목격자는 그것이 항공기 날개나 꼬리 부분을 스치고 지나가도 어떤 가시적 손상도 남기지 않는 것을 보았다. 처음에는 "독일 화구"로 불리다 만화 캐릭터에서 따왔다고 추정되는 "푸 파이터"라는 이름으로 굳어졌고, 전쟁 초부터 모든 전구에서 보고되었다. 독일에 대한 첫 대규모 주간 폭격 무렵부터 그 수가 늘기 시작했고, 지상에서도 관측되어 1944년 6월 무렵부터 보고가 쏟아졌다. 연합군 당국은 처음에는 이를 독일의 비밀 무기 공정으로 여겨 크게 우려했지만, 종전 무렵에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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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독일 조종사들은 푸 파이터를 미국의 비밀 무기라고 믿었던 듯하고, 베를린에서는 이 문제를 조사할 위원회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진다. 세인트 엘모의 불 같은 전기 현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관측된 특징의 다양성을 설명하지 못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푸 파이터 관련 문서는 적어도 1949년까지 군사 기밀로 묶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나라 모두 훨씬 더 큰 시가형, 접시형, 구형 물체를 본 사례도 다수 기록되어 있다.
1880년부터 1900년 사이, 미국과 영국 상공의 "비행선". 이 시기 수만 명의 목격자가 현대식 비행선을 닮은 비행체를 보았다고 증언했지만, 정작 그런 비행체가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0년 뒤의 일이다. 대부분은 부피가 상당하고 방추형에, 강력한 탐조등을 갖춘 데다 엔진 소리를 내고, 때로는 프로펠러까지 달린 것처럼 보이는 비행체였다. 미국에서는 1896년과 1897년 사이에 목격이 집중되었고, 스페인·독일·스웨덴·러시아에서도 사례가 보고되었다. 영국에서는 세기 전환기에 두 번째 목격 물결이 일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설명은 진짜 비행선이라는 것 — 그리고 곧장 독일제 비행체를 떠올리게 된다 — 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설명은 잘 버티지 못한다. 실제로 1880년 시점에 비행선 기술은 아직 초보 단계였다. 1852년 지파르 대령이 매우 약한 증기 기관을 단 길쭉한 기구로 첫 시험 비행을 한 것은 사실이고, 1885년에는 르나르가 내연기관을 단 비행선으로 파리 상공을 가로질러 처음으로 수 킬로미터를 비행했지만, 속도는 여전히 매우 느렸고 조종도 쉽지 않았다. 사실상 진짜 효율적인 항공기는 1910년 이후에야 등장했고, 1차 세계대전 중 만들어진 체펠린조차도 목격자들이 묘사한 특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산업혁명 초기까지. 모든 시대의 인간은 옳든 그르든 비정상이라고 여긴 하늘의 현상을 보아 왔다. 우리 시대는 옛 증언의 정확성을 의심하는 경향이 있고, 시간이 더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의심은 더 커진다. 19세기의 첫 4분의 3 동안 연대기 작가들은 오늘날의 UFO와 닮은 구체와 빛나는 바퀴를 본 사례 수십 건을 전했다. 18세기에는 특이한 한 사례가 있다. 괴테는 1768년 청년 시절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 사이를 여행하다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작고 매우 밝은 움직이는 불꽃 무리에 둘러싸인 채 땅 위에 놓인 거대한 빛나는 관 같은 형체를 보았다고 회고했다. 16세기와 17세기에는 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와 일본에서도 수많은 목격담이 기록되었다. 그중에서도 그 광경의 장관과 목격자의 수 때문에 눈길을 끄는 사례가 몇 있다. 1561년 4월 뉘른베르크 상공에서는 형형색색의 구체와 원반, "시가"가 일종의 전투를 벌이는 듯한 광경이 펼쳐져 주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당국을 크게 긴장시켰다. 비슷한 광경이 1566년 8월 바젤에서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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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부터 1500년 사이 연대기 작가들은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르는 빛나는 구체, 바퀴, 창, 막대 같은 다양한 목격담을 남겼다. 1327년에서 1335년 사이 유고슬라비아에 세워진 데차니 수도원에는 천사들이 일종의 비행체에 들어 있는 모습을 묘사한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샤를마뉴 대제 시절 리옹의 주교 아고바르가 화형대에서 남자 셋과 여자 한 명을 구해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들은 천상의 존재들에게 납치당해 경이로운 광경을 본 뒤 비행선을 타고 지상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 인물들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특히 중세에 현대 UFO와 비슷한 빛나는 천체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라틴 작가들 — 디오 카시우스, 대 플리니우스, 티투스 리비우스, 율리우스 옵세퀜스, 그리고 키케로까지 — 도 하늘의 빛, 빛나는 방패, 여러 개의 달과 태양, 금빛 비행 구체 따위의 출현을 적어두었다. 그리스 연대기 작가들의 증언은 그보다 적다. 다이마스코스는 78회 올림피아드 기간 중 불의 구체가 하늘을 여러 차례 가로질렀다고 적었고, 아낙사고라스는 거대한 들보 크기의 천상의 빛을 보았다고 전한다. 호메로스를 비롯한 여러 작가들이 불의 들보와 방패의 출현을 묘사한다.
부록 7은 'UFO 현상의 다양한 심리적·사회적·정치적 측면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다. 작성자는 이 고찰이 주로 미국에 적용되지만 상당 부분은 다른 나라에도 옮겨 적용할 수 있다고 단서를 단다.
많은 미국인은 UFO가 물리적으로 실재하며 외계에서 왔고, 미국 정부가 거짓말과 역정보로 진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관련 저작 대부분이 이런 결론으로 끝나며, 거의 모두가 공식 비밀의 부분 혹은 전면 해제를 요구한다. 30년 넘는 침묵을 깨고 1970년대 말 다시 떠오른 뒤 15년간 새 폭로가 끊이지 않은 로즈웰 사건 — 부록 5 참조 — 의 미디어 광풍이 그 전형이다. 작성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외계 가설이 옳다고 인정해 버리면, 일부의 말처럼 정부는 패닉 반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숨기는 셈이 된다. 이들은 1938년 오슨 웰스가 미국에서 방송한 라디오극 '우주 전쟁' — 로즈웰 9년 전 — 의 불행한 사례가 그런 패닉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작성자는 이 설명을 굳이 기각할 필요는 없으나 다소 협소해 보인다고 본다. 사안의 뿌리는 더 깊고, 사회심리적 동기는 더 복잡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어 7.1절 'UFO 패러독스'가 시작된다. 작성자는 미국인 다수가 지적인 외계 존재의 실재 가능성을 지지하는 듯 보이지만, 그 존재들이 — 정체가 무엇이든 — 우리 행성을 방문하거나 태양계를 여행해 왔거나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발상에 대해서는 과학계, 지도층, 그리고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매우 강한 저항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미디어 상당수가 그 발상 자체를 조롱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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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8
보고서는 정치인과 지식인 대다수가 "인류는 그런 무지개를 쫓는 것보다 더 할 일이 많다"고 본다고 정리한 뒤, 왜 이런 저항이 나오는지 7.2절에서 두 부류 — 과학자와 정치인 — 로 나눠 짚는다.
먼저 과학자들 쪽이다. 공식적으로는 경멸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고, '비행접시 광신도'나 '미친 변두리' 부류와 한데 묶일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다수의 과학자들조차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를 꺼린다. 평판, 경력, 연구비를 한꺼번에 위협받기 때문이다(부록 2 "천문학자들의 목격담" 참고). 다만 분석해 보면 더 깊은 이유들이 따로 있다.
근 2세기 동안 지구의 현상이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거부하는 학풍이 자리잡아 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고대의 신앙에 대한 긍정적이고 합리적이며 창조적인 반작용이었다. 근대 과학은 신들을 제거하면서 진보했고, 그렇게 쫓아낸 신들을 다른 형태로 다시 끌어들이는 일은 비생산적이고 어색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인간이 지구의, 나아가 가까운 우주 영역의 주인이며, 은하의 이 작은 모퉁이에서 자연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존재이고, 자기 운명을 통제하는 유일한 주체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여러 철학자들은 이 사고를 "인간중심적 휴머니즘(anthropocentric humanism)"이라 부른다.
그런데 우리 행성 바깥에 있을 뿐 아니라 과학기술 면에서 우리보다 우월한 지적 존재들이 우리 일에, 우리 영역에, 또는 그 근처에 개입했거나 지금도 개입하고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이 인간중심적 휴머니즘의 안락한 사고 틀이 무너지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그 가능성은 두렵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 나아가 물리학 같은 일부 분과에서는, 자기네보다 수 세기, 수 천 년, 혹은 그 이상 앞선 과학과 마주하게 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네가 쓰는 개념이 유아 수준으로 보일 수 있고, 그것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사기가 완전히 꺾일 수 있다.
UFO가 외계 기원이라는 가설이 사실로 입증된다면, 지적 권위자들의 위상뿐 아니라 과학 엘리트의 사회적 지위 자체가 크게 흔들리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더 발달한 인류 문명과 마주쳤던 집단이나 국가들이 매번 겪어온 일이며, 메이지 시기의 일본만이 그 주목할 예외로, 따로 들여다볼 만하다고 보고서는 덧붙인다.
결국 UFO 현상에 대한 지식을 진전시키는 일이 — 성공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 — 상당수 과학자들에게는 그리 신나는 전망이 아니며, 그래서 그들이 이 작업에 손을 보태고 싶어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할 만하다.
다음 7.2.2절은 정치인 쪽으로 넘어간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나 배리 M. 골드워터 상원의원처럼 드문 예외를 빼면, 정치인 다수는 이 문제에 대해 거의 늘 매우 회의적이고, 흔히 비꼬는 태도를 보여 왔다. 다만 좀 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한 이들도 있었다고 단서를 단다. 외계 존재의 가능성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언급들은 —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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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9
이 페이지는 보고서가 미국 정치 지도부의 UFO·외계지능 인식을 다루며 맥아더 장군과 레이건 대통령의 발언을 잇따라 인용한다. 보고서는 우선 맥아더가 1955년 나폴리 시장 아킬레 라우로와의 대화에서 이미 이 문제를 언급했다고 짚은 뒤, 1962년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연설을 옮긴다. 거기서 맥아더는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세계, 변화의 세계를 마주한다. 우주를 향한 도약은 인류의 긴 역사에서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제 이 세계의 사물만이 아니라, 무한한 거리와 아직 풀리지 않은 우주의 신비, 그리고 단일한 인류와 다른 행성계의 사악한 힘 사이의 궁극적 충돌을 다룬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1985년 정상회담의 비공개 대화에서 밝혔다는 일화를 옮긴다. 레이건이 그에게 "지구가 외계인의 침공을 받게 된다면 미국과 소련은 힘을 합쳐 그 침공을 격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또 1987년 9월 21일 제42차 유엔 총회 연설 말미에서 레이건은 "우리는 순간의 적대에 사로잡혀, 인류 구성원 모두를 묶는 공통점을 자주 잊는다. 어쩌면 우리는 이 공통의 유대를 자각하기 위해 외부에서 오는 보편적 위협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가끔 나는 우리가 이 세계 바깥에서 온 외계의 위협에 직면한다면 전 세계의 차이가 얼마나 빨리 사라질지 생각해 본다"고 단언했다.
다음으로 7.2.2.2 항부터는 분석으로 옮겨 간다. 정치인이 과학자와 마찬가지로 UFO·외계지능에 공식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일은 무엇보다 누락·파괴적 아이러니·거짓말까지 일삼는 평론가와 언론 앞에서 조롱당할 위험을 진다. 7.2.2.3 항은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 시민 상당수가 UFO 의 외계 기원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부 정치 지도자는 가장 위험한 주제 중 하나에 예산을 쓴다는 비난을 살까 봐 연구 자원을 요청하기를 주저할 수 있다.
7.2.3.1 항은 이런 상황에서 미국 최고위 정치 지도자들이 외계 존재를 입증하는 명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그들의 처지는 특히 불편해진다고 짚는다. 군은 50년간 이 현상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되풀이해 왔지만, 그것이 곧 현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비밀 시설과 미사일 기지 상공의 출현, 강한 전자기 효과, RB-47 사건처럼 군용기를 미행한 사례, 모의 요격의 대상이 된 사례 같은 우려스러운 목격이 있어 왔다. 보고서는 이런 종류의 위협에 대응할 방법이 없는 현실 앞에서, 당국이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길로 끌렸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직접적 위협이 없고 과거에 실제 공격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잠재적 위협 자체가 당국, 특히 군의 눈에는 압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페이지 끝부분은 그 인식을 풀어 쓴다. "그들"은 별에서 오고, "그들"의 기체는 우리를 관찰하며 우리를 놀리는 듯 보이며, "그들"은 어쩌면 수천 년간 지구에 머물러 왔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의도를 알지 못한다. "그들"의 과학과 기술, 그리고 "그들"의 힘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 우리의 것에)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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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0
보고서는 미국이 무장 해제 상태가 아니고 지구의 막대한 자원과 빠른 학습 능력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 앞에서는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적는다. 이를 공론화해 필요한 연구 인력과 예산을 요구하려면 결국 세계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위치를 주장해야 한다는 점도 짚는다. 이어 7.2.2.3.2 항은 미군이 이미 이 위협의 공식 증거, 가령 지상에 추락한 외계 함선 같은 것을 확보하고 있다는 추가 가설을 놓는다. 그렇다면 외국 기술에 대한 집중 연구는 오래전부터 최고 등급 비밀 보호 아래 시작됐어야 하며, 7.3.3 항에서 보겠지만 이런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완전히 논외라고 말한다. 보고서는 충격적이고 새로운 상황을 너무 빨리 드러내면 사회적 동요, 공황, 의욕 상실, 종말론 종파 확산, 종교 근본주의로의 대규모 도피 같은 위험을 부른다고 본다. 권력자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 그들이 빠르게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정상적 대응은 부인을 계속하면서 비밀리에 작업을 이어가고,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의 책임을 후임자에게 떠넘기길 바라며 시간을 최대한 버는 것이라고 적는다.
7.3 미국 지도부와 비밀의 정치라는 절이 이어진다. 7.3.1 미군과 UFO 항은 미군이 2차대전 이후 이 현상에 직접 부딪쳐 왔으며, 상당한 자원을 들여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다룬 유일한 군대로 보인다고 정리한다. 7.3.2 UFO 연구의 파급 효과 항은 미군이 가장 신뢰할 만한 목격자들이 묘사한 특성을 보이는 항공기를 실제로 설계해 왔으며, 추진, 소재와 구조, 스텔스 기술, 무기 분야에서 그 파급 효과가 상당할 수 있다고 본다. 7.3.3 그래서 왜 비밀인가 항에서는 미국 군 인력이 목격 사례나 일부 글에 등장하는 회수된 물체 자료를 토대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 어디까지 알아냈는지 외부는 모른다고 인정한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펜타곤이 이 연구 전체를 가능한 한 감추는 데 가장 큰 이해를 가져 왔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이며, 그 결과 미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상 적국들에 대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우주에서 올 수 있는 위협에 대해서도 상당한 대응 역량을 확보하게 된다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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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1
보고서는 이런 맥락에서 미국 군 지도부가 연구의 출처와 목적을 공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출처를 드러내면 잠재적 경쟁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길을 곧바로 알려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가설 아래에서는 은폐와 허위정보 유포가 —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 절대적으로 필요한 수단으로 남는다. 결국 미군 지도부의 머릿속에서 비밀유지는 가능한 한 오래 이어져야 할 자연스러운 원칙이 된다. 이 입장을 바꾸게 만들 만한 요인은 여론의 압박이 커지거나, 독립 연구자들의 성과가 그 압박을 뒷받침하거나, 의도적 공개가 잇따르거나, 또는 UFO 출현이 갑자기 늘어나는 경우 정도다. 보고서는 아직 그런 시점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본다. 본문 뒤에는 약어 풀이가 이어진다. AFB(공군기지), AFOSI(공군 특별조사실), AIAA(미국 항공우주연구소), CIA, FOIA(정보자유법), NASA, MUFON 같은 미국·국제 기관 약어와, EMAA(프랑스 공군참모총장), GEPAN(프랑스 미확인 항공우주현상 연구반), CEA(프랑스 원자력청), IHEDN(프랑스 고등국방연구원) 등 프랑스 측 군·연구기관 약어가 함께 정리된다. 미국의 블루북 계획, UFO 연구 기금 FUFOR, 영국 국방부(MOD)도 같은 목록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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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2
페이지 윗부분은 본문에 등장하는 약어 풀이다. CNES (프랑스 국립우주연구센터), NORAD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 CNRS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NSC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CODA (프랑스 방공작전센터), ONERA (프랑스 국립항공우주연구원), 콜로라도 대학에서 미 공군 의뢰 UFO 보고서에 서명한 물리학자 콘던, RAF (영국 공군), CRNA (프랑스 지역 항공항법센터), SEPRA (프랑스 대기권 재진입 현상 평가부), CUFOS (UFO 연구센터), SETI (외계 지성체 탐사), DGA (프랑스 무장 총국), SIRPA (프랑스 군 공보국), DGAC (프랑스 민간항공국), SPOC (프랑스 천공 관측 탐사 시스템), DIA (미 국방정보국), STRIDA (프랑스 방공정보처리센터), DICOD (프랑스 국방커뮤니케이션국), UAP (미확인 항공우주현상), DoD (미 국방부), UAP D (D범주 미확인 항공우주현상), DoE (미 에너지부), UFO (미확인 비행체), EBE (외계 생물학적 존재), VLT (초거대 망원경) 등이다.
약어 목록 아래로 보고서 서문이 이어진다. 1947년 이래 이 주제는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매혹시키고, 거리로 불러냈다. 격렬한 논쟁 속에서 문제는 과학·기술·항공·전략·정치·종교·언론 등 다양한 시각으로 매우 꼼꼼하게 검토되어 왔는데, 그 작업을 맡은 곳이 바로 프랑스 국방고등연구원 (Institut des Hautes Etudes de Defense Nationale) 의 전직 청강생들과 각계 전문가들로 꾸려진 위원회 COMETA, 곧 심층연구위원회였다.
서문은 이어 말한다. 사상 처음으로, 그 가운데 일부는 매우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UFO 문제에만 오롯이 할애한 보고서를 함께 쓰기로 합의했다. 지금까지 쌓인 지식에 비추어, 국가 차원에서 다룰 만한 질문들이 충분히 제기되었고 따라서 대통령과 총리에게도 이 정보가 전달되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보고서에서 COMETA 는 미설명 상태로 남아 있는 프랑스와 해외의 여러 UFO 사례를 검토한다. 매우 잘 기록된 이 목격들은 지상의 흔적이나 레이더에 잡힌 항적으로 뒷받침되는 경우가 잦다. 이것들이 지구상의 비밀 비행체인가? 어떤 사례에서는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밖에서 온 비행체 앞에 서 있는 것인가? 이 가설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그것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국방에 미치는 결과는 막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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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3
책의 참고문헌 페이지다. 「수많은 책과 논문의 가치가 들쭉날쭉하지만, 다음 자료들을 특히 인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짧은 머리말로 시작한 뒤, 장(章)별로 출처를 정리해 둔다.
2장은 영국 레이큰히스 레이더·시각 사건 (1956) 부터 시작한다. 콘던 보고서 (Condon·Gilmor, 『미확인 비행물체 과학 연구』, Bantam Books, 1969), 제임스 맥도널드가 1956년 레이큰히스 사건을 다룬 글의 프랑스어 번역 (Gepa 회보, 1994년 3월호 — 원문은 1970년 3·4월호 Flying Saucer Review), 고든 D. 세이어가 AIAA UFO 소위원회의 표본 사례로 1956년 8월 13~14일 레이큰히스 사건을 분석한 논문 (Aeronautics and Aeronautics, 1971년 9월), 필립 J. 클래스의 회의론적 반론 (『UFOs Explained』 중 「영국 상공의 UFO」 장, Random House 1974 / Vintage 1976), J. 앨런 하이넥의 『새 UFO 보고서』 프랑스어판 (Belfond, 1979) 154쪽 이하 (원서: Dell, 1977) 가 정리되어 있다.
같은 장의 미국 RB-47 사건은 콘던 보고서 외에 맥도널드가 1957년 7월 17일 미 중남부 상공에서 공군이 관측한 미확인 물체를 AIAA 표본으로 분석한 논문 (Aeronautics and Aeronautics, 1971년 7월), 클래스의 「유명한 RB-47 사건」 (『UFOs Explained』), 그리고 브래드 스파크스의 미발표 저작권 자료 「RB-47 전자 감시: 검증된 UFO 과학 증거」 (1997) 를 든다.
테헤란 사건은 클래스의 『UFOs, the Public Deceived』 (Prometheus Books, 1977) 「이란 상공의 UFO」 장과, 로런스 포셋·배리 그린우드의 『Clear Intent — UFO 경험 정부 은폐』 (Prentice Hall, 1984) 81쪽 이하를 인용한다. 러시아 항목은 1990년 4월 19일자 Rabocheya Tribuna 기사 「공군 방공 레이더에 잡힌 UFO」 (FBIS 영역본, 베를리너·갤브레이스·우네우스의 『UFO Briefing Document』 1995년 12월 예비판이 재인용) 와, 보리스 슈리노프가 같은 기사를 자세히 옮긴 『Ovnis en Russie』 (Guy Trédaniel, 1995) 230쪽 이하를 든다.
3장 「러시아 미사일 기지 다중 목격 사례」 는 1991년 공개된 KGB UFO 자료 (모스크바 Aura Z 1호, 1993년 3월) 를 원자료로 쓰며, 앞서 언급한 『UFO Briefing Document』 와 『Ovnis en Russie』 319쪽 이하에서 더 자세히 다룬다고 적었다.
6장은 GEPAN 의 정보·기술 노트를 거의 통째로 나열한다. 정보 노트(Notes d'informations) 1번 「소련의 비정상 대기 현상 관측 — 통계 분석」, 2~4번 「미국의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 연구」 1~3부. 기술 노트(Notes techniques) 는 1번 「데이터 전처리 문제 분석」, 2번 「미확인 항공·우주 현상 관측 잔차의 기초 통계 비교 연구」, 3번 「식별 방법론」, 4번 「미확인 대기 현상 기술의 통계적 유형 연구」, 5~8번 GEPAN 79/02·79/07·79/03·79/06 각 사례 보고, 9번 「자기유체역학 — 기술 현황과 첫 실험」, 10번 「미식별 사건의 지각 심리학」, 11~12번 GEPAN 81/02·81/07·81/09, 13번 13번 노트의 후속 연구, 14번 1981~1982년 소규모 조사, 15번 「고정관념 연구 — 가짜 UFO 가려내기」, 16번 GEPAN 79/03 의 물 흔적 분석, 17번 「아마랑트」, 18번 「수집·분석 시스템 — 회절격자망 활용 현황」 까지 이어진다.
같은 장의 외부 자료로는 장클로드 부레·장자크 벨라스코의 『Ovnis, la science avance』 (Robert Laffont, 1993), MUFON 에 제출된 도미니크 와인스타인의 보고서 『Rencontres dans le ciel』 (1996), 다시 콘던 보고서, 그리고 1947년 9월 23일자 트와이닝 장군이 육군 항공군 사령관에게 보낸 편지 (콘던 보고서 부록 R) 가 마지막에 붙는다.
페이지 하단 가운데에 -87- 쪽수가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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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4
책의 88쪽으로, 7장·8장·13장의 참고문헌 목록만 모은 페이지다. 7장은 추진 기술을 다섯 갈래로 나눠 각각 자료를 붙여 놓는다. MHD 추진은 장-피에르 프티의 단행본과 1988년 ENSTA 소책자, 리브와 모네의 라루스 책, 부레와 벨라스코의 『Ovni, la science avance』 171쪽 이하, 그리고 1996년 New Scientist 의 마이크 로스 기사 「Rider on the shock wave」가 들어간다. 반중력 추진은 닉 쿡이 1996년 6월 Jane's Defence Weekly 에 쓴 「Turning science fiction into fact」 한 편으로 단출하다. 우주 추진 항목은 맬러브와 매틀로프의 Starflight Handbook, 포워드와 데이비스의 Mirror Matter, 그리고 에드워즈 공군기지 소속 W.B. 스콧이 1988년 3월 Aviation Week 에 실은 USAF 반물질 추진제 전망 기사를 묶었다. 차량 고장 항목에는 제임스 맥캠벨이 1983년 MUFON 회보에 발표한 「Self starting engines」가, 목격자 마비 항목에는 키스 플로잉의 IEE Spectrum 기사 「The future battlefield, à l'heure du gigawatt?」와 부레·벨라스코 책의 185쪽 이하가 올라간다. 8장 자료는 콘던 보고서, 포셋과 그린우드의 『Clear Intent』, 베를리너·갤브레이스·우네우스가 1995년 사적으로 낸 UFO Briefing Document, 코르소의 『The Day After Roswell』, 미 공군 본부의 로스웰 보고서, 닉 포프의 『Open Skies, Closed Minds』, 티모시 굿의 『Above Top Secret』(원판은 1987년 Sidgwick & Jackson), 그리고 1979년 7월 La Recherche 에 실린 V. 미굴리나의 소련 미확인 대기현상 연구 기사 등 UFO 정부 문서·폭로 계열로 채워진다. 13장 주석 (1)부터 (9)까지는 성서·고대 문헌·인류학 자료다. 에제키엘서, 아베드 아즈리에가 옮긴 길가메시 서사시와 장 보테로의 바빌론·성서 비교 주석, 창세기 6장 1-4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보고…" 대목과 같은 책 14장 5절·민수기 13장 32-33절·신명기 2장 10-11절을 함께 묶고, 갈리마르 플레이아드판 『외경 (Écrits intertestamentaires)』에서 에녹의 비밀의 책 6-8장과 10장을 길게 인용한다. 천사들이 인간 딸들에게서 거인을 낳고, 약초·점술·무기·화장술·금속 가공을 가르쳐 세상을 타락시켰다는 부분이다. 이어서 폴티에가 1852년에 옮긴 『동방 성전 (서경)』, 토인비의 『시련의 문명 (La civilisation à l'épreuve)』 89쪽, 마르두크·이슈타르·헤라클레스부터 멤논 거상·기자 스핑크스·이스터섬 모아이·스칸디나비아 에다의 거인까지 "하늘의 아들" 모티프 모음, 피터 로런스의 『화물 신앙 (Le culte du cargo)』과 파푸아인 화물 신앙 일화, 그리고 다시 토인비 88-89쪽으로 마무리한다. 7-8장이 현대 항공·UFO 자료라면 13장은 거인·신·하늘에서 내려온 존재 모티프를 고대 문헌에서 끌어 온다는 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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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5
프랑스어 서지 페이지다. 위쪽은 앞 본문에 달린 각주 (10)~(13) 의 끝부분으로, 푸티에가 옮긴 마누법전, 1984년 12월 La Recherche 의 남극 발견사 기사, 찰스 햅굿의 고대 항해도 책, 그리고 출애굽기·에녹의 비밀서·희년서에서 인용한 종말과 감시자(Veilleurs)·네필림 관련 구절들이 줄지어 나오고, 마지막으로 그레이엄 그린의 《조용한 미국인》(Robert Laffont, 1956)이 붙는다. 그 아래로는 부록 2부터 6까지의 참고문헌 목록이 이어진다. 부록 2는 UFO 연구자에 대한 설문 조사 자료 — 브래드 스타이거가 옴니에 실은 그러지 프로젝트 보고와 하인엑이 천문학자들과 나눈 대화, 하인엑 본인의 신간, 그리고 1977년 스탠퍼드 플라즈마 연구소의 피터 스터록이 미국 천문학회 회원을 상대로 진행한 UFO 설문 보고(보고서 n°681)이다. 부록 3은 리브와 모네의 《외계 생명》 한 권으로 끝난다. 부록 4는 우주 식민지·우주 정책 관련 — 오닐의 《우주 도시》, 앙드레 르보의 《우주라는 유산》, 미국 국가우주위원회(페인 등)의 《Pioneering the Space Frontier》, 다시 리브·모네, 티에리 고댕 외 《2100, 다음 세기 이야기》, 부레와 벨라스코의 《Ovni, la science avance》가 묶인다. 부록 5는 로즈웰 단독 섹션으로, 윌리엄 무어의 《The Roswell Incident》(1980, 불역 1981)부터 케빈 랜들이 슈미트와 함께 낸 1991·93·95년의 세 권, 칼 플록의 1994년 보고서(객관적이지는 않지만 부록의 진술서가 흥미롭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미 공군 리처드 위버 대령의 1994년 7월 공식 보고서, 미 회계감사원이 1995년 7월에 의원 스티븐 시프 앞으로 낸 1947년 뉴멕시코 추락 관련 기록 조사 보고서, 그리고 영국 채널4의 비디오 증언집 《Roswell Recollections, part II》(1992)까지 일차 자료급 문헌이 한자리에 모인다. 같은 부록 안에서 저자는 로즈웰 담론을 두 갈래로 나눈다 — 사건을 축소하는 "환원적 역정보(désinformation réductrice)" 쪽에는 다시 칼 플록, 콘던 보고서 부록 L(1953년 로버트슨 패널 회의록), 1974년 벨퐁이 펴낸 하인엑의 《미확인 비행 물체》(1972년 The UFO Experience 의 번역)가 들어가고, 사건을 부풀리는 "증폭적 역정보(désinformation amplificatrice)" 쪽에는 밀턴 윌리엄 쿠퍼가 1989년 직접 펴낸 《The Secret Government — MJ-12 의 기원·정체·목적》과 1990년 디트로이트 옴니그래픽스에서 나온 제롬 클라크의 《UFO 백과사전》 "UFO's in the 80's" 항목이 들어간다. 마지막 부록 6은 1995년 CUFOS·FUFOR·MUFON 합동 brief 인 《Unidentified Flying Objects Briefing Document — The Best Available Evidence》(돈 벌리너·마리 갤브레이스·안토니오 후네우스 공저)와, 1976년 벨기에 SOBEPS 가 펴낸 미셸 부가르 외 《Des soucoupes volantes aux ovnis》 두 권으로 닫힌다. 페이지 하단에는 "-89-" 가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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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6
보고서 도입부는 1947년 이후 미확인 비행 물체 문제가 줄곧 사람들을 동요시키고 사로잡으며 답을 요구해 왔다고 시작한다. 프랑스 고등국방연구소(IHEDN) 출신의 예전 연구원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인 COMETA 위원회가 이 문제를 과학·기술·항공·전략·정치·종교·언론 등 여러 각도에서 매우 꼼꼼하게 검토해 왔다고 밝힌다. 위원회는 그동안 쌓인 자료만으로도 국가 차원의 중요한 질문이 충분히 제기된다고 판단해, 사상 처음으로 고위직 인사들이 UFO 문제만을 다룬 보고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했고, 그 결과를 대통령과 총리에게 직접 전달할 만하다고 본다고 적었다. 보고서 본문에서는 프랑스 안팎의 설명되지 않은 UFO 사례 여러 건을 다루며, 이 목격담들이 종종 지면 흔적이나 레이더 추적으로 뒷받침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비밀리에 개발된 지구 기술의 비행체일 가능성도 일부 사례에서는 있지만, 지구 외 기원의 비행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만약 후자가 사실로 확인된다면 국방에 미칠 파장이 막중할 것이라는 경고로 도입부를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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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
2000년 6월 17일자 아일랜드 인디펜던트(Irish Independent) 주말판 "뉴 프런티어" 섹션에 실린 "Alien Contact" 기사의 도입부다. 리드 카피는 이렇게 시작한다. UFO는 한때 순전히 편집증 환자들의 영역이었지만 이제는 진지하게 다뤄지고 있다. 우주비행사, 장성, 그리고 여러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이 제도권 회의주의의 껍질을 두드리는 중이다. 레슬리 킨(Leslie Kean)이 이 글에서, 프랑스 군이 발표한 보고서가 어째서 마침내 각국 정부를 자세 고쳐 앉게 만들지 모르는지를 설명한다. 본문은 두 단 조판으로 이어지며 우측 하단에는 "THE MESSAGE OF LA…"로 시작하는 소제목이 보인다. 페이지 상단에는 우주 공간과 행성을 담은 일러스트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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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8
잡지 지면 한 장. 상단에 NEW FRONTIERS 섹션 라벨이 박스 안에 들어 있고, 그 아래로 큰 제목의 일부 ncept 만 보인다 — 페이지 왼쪽이 잘려 Concept 의 뒷부분만 남은 형태다. 본문은 페이지 하단 두 단으로 작게 들어가 있는데 해상도가 낮아 단어 단위까지는 식별되지 않는다. 페이지의 시각 중심은 우주 일러스트로, 띠를 두른 행성과 그 주변을 도는 작은 천체들, 그리고 화면 오른쪽 위로 빛나는 성운 같은 영역이 함께 보인다. 우주 탐사 / 행성 탐사 컨셉을 다룬 잡지 기사 면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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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9
잡지 'NEW FRONTIERS' 의 88쪽 기사. 미국 해군 예비역 사령관 윌라드 M. 밀러를 정면 사진과 함께 등장시키고, 미군 측이 UFO 조우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위험한 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그의 경고를 다룬다. 기사는 먼저 미군 전투기들이 UFO 추적에 출동했다는 해군·공군 기록과, UFO 조사가 안토니오 우니우스가 1979~1980년 책 'Pursuit' 에서 정리한 추적 사례들을 언급한다. 아폴로 14호로 달을 밟은 여섯 번째 우주인 에드거 미첼 박사가 국제 협력을 촉구해 왔지만 미국 당국은 이를 무시해 왔다는 점도 짚는다.
다음으로 'THE ASTRONAUT AND THE INVESTIGATION' 라는 소제목 아래, 대통령 자유 훈장과 NASA 공로훈장을 받은 미첼이 정식 조사를 요청했음에도 미국 당국이 응하지 않았다고 적는다. 그럼에도 미주리 대학이 의뢰한 여론조사에서 의회의 전면 조사 요구가 나오는 등 대중의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고 정리한다.
오른쪽 단의 'THE DECADES OF DISTRUST' 항목은 과거에는 더 공개적으로 논의됐던 사안이라고 말한다. 1953년 미 해병대의 한 중장이 공개 보고를 냈고, NATO 출신 프랑스 장군 L.M. 샤신은 "UFO 의 존재 인정을 계속 거부하면, 어느 좋은 날 우리는 UFO 를 적의 유도 미사일로 착각하게 될 것이고, 그 결과는 끔찍할 것" 이라는 유명한 경고를 남겼다 — 이 문장은 본문 한가운데 큰 인용구로도 빠져 있다. 1971년 "UFOs and the Limits of Science" 연구 역시 미·소 양측의 조기경보 시스템이 미확인 물체를 적국의 무기로 오인할 위험을 다뤘다고 적고, 같은 우려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맨 아래 단락은 프랑스 공군이 1999년 보고서에서 UFO 문제를 정식으로 다뤘다는 점, 그리고 미국 대통령조차 정보 접근에 애를 먹은 사례 — 록펠러 상원 다수당 대표가 클린턴 대통령 부부에게 UFO 브리핑 자료를 건넸고, 클린턴이 법무차관 웹스터 허벨에게 조사를 지시했지만 결국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허벨 자신이 회고록에 적었다는 일화 — 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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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0
신문 오피니언 칼럼 한 페이지로, 헤드라인은 "파일럿이 마주친 UFO — 비밀주의 (와 부인) 에 도전하는 연구" 이고 필자는 레슬리 킨이다. 본문은 민항·군 조종사들이 비행 중 목격한 미확인 비행 물체 사례를 다룬 한 보고서를 소개하면서, 미국 정부와 FAA·NASA 가 이런 사건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거나 침묵해 온 관행을 비판하는 논조다. 이미지 해상도가 낮아 문장 단위 verbatim 옮김은 어렵고, 두 단 구성에 본문 끝에는 발행지인 The Providence Journal 의 로고와 날짜가 박스 처리되어 함께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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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1
2000년 5월 21일자 보스턴 선데이 글로브 ‘과학 & 사회’ 면에 실린 레슬리 블레어의 기사로, 제목은 “UFO 이론가들이 해외에서는 지지를 얻지만 미국 내에서는 억압받는다”다. 부제는 프랑스 관료들의 연구, 일상화된 미확인 목격 사례, 미군의 안전 측면이 합쳐져 신봉자들을 늘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지난달 네바다주의 비밀 공군 시설 ‘에어리어 51’ 위성 사진이 처음 공개되자 미국 전역에서 사람들이 비행 물체 단서를 찾으려 웹사이트에 몰려들었다는 일화로 시작한다. 사진을 게시한 에어리얼 이미지스의 마케팅 책임자 데이비드 마운틴은 “관심이 정말 폭발적이었다”고 말했지만, 정작 시설 운영 대부분이 지하에 있어 사진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전한다.
신선한 UFO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출처가 더 유용하다고 기사는 짚는다. 프랑스 국방고등연구원(IHEDN) — 옛 국방부 산하 전략 기관 — 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가 그 사례다. 3년에 걸친 연구를 정리한 이 보고서는 신뢰할 만한 목격자들이 본 “수많은 현상”이 외계 기원 비행체의 작품일 수 있으며, 사실상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 “외계 가설”이라고 결론짓는다. 단정적으로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강한 정황이 있고, 만약 사실이라면 그 함의가 막대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연구진은 약 500건의 미해명 항공 목격 사례와 ‘시가형’ ‘비행접시’ 형태 보고, 정부 우주비행사 진술 등을 검토한 끝에 이 결론에 이르렀다. 96쪽 분량의 보고서 제목은 “UFO와 국방: 우리는 무엇에 대비해야 하는가?”다. 보고서는 “자료의 풍부함과 질에도 불구하고 전혀 설명되지 않는 목격 사례 수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고 적는다. 견고한 자료가 있는 사례 중 약 5%는 비밀 군사훈련 같은 지상 요인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짚는다. 미 공군 조종사들이 미확인 비행체를 워낙 자주 보고해서 조우 시 따라야 할 정식 절차까지 마련돼 있다는 사실 또한 함께 거론된다. UFO가 적대 행위를 보인 적은 없다는 단서도 달았다.
이어 기사는 회의론자들이 외계 가설을 바로 일축하기 쉽지만 보고서를 쓴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고서를 주도한 인물은 프랑스 전술공군 사령관과 총리 군사고문을 지낸 베르나르 노를랭 장군, 전 공군 전투조종사 드니 레티 장군, 프랑스의 NASA 격인 국립우주연구센터를 이끈 앙드레 르보 등이다. 이들은 ‘코메타(Cometa)’라 불리는 13인 ‘심층연구위원회’를 꾸렸고, 위원에는 3성 제독, 국가경찰청장, 정부 산하 연구기관장, 과학자와 무기 엔지니어가 포함됐다.
프랑스 측은 결론에 그치지 않고 국제적 행동을 촉구한다. 이 사안에서 유럽과 외국 사이의 영공 협정이 사실상 비어 있다며, EU가 미국을 향해 외교적으로 압박해 “정치·전략적 동맹의 범위 안에서 다뤄져야 할 이 핵심 사안”을 해명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태도는 정반대라고 기사는 평한다. 미 정부 문서에 따르면 UFO는 전 세계 군사 안전에 도전하는 기술적 능력을 보여 왔다.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기록과 공군 문서에는 미 전투기들이 UFO를 추격한 사례가 남아 있고, 이란과 페루 항공기는 1965년과 1966년 사건에서 미확인 물체를 격추하려 시도했으며, 1968년에는 소련 미사일이 UFO를 추격했다.
프랑스 보고서는 공중 충돌 직전에 구조된 항공기 사례, 쿠바 사건의 군용기 셧다운 사례 등을 함께 거론한다. 아폴로 14호 우주비행사이자 달 표면을 걸은 여섯 번째 인물 에드거 미첼은 이 사안의 조사 필요성에 동의하는 인물 중 하나로 인용된다. 그는 일부 목격이 외계에서 온 방문객이라는 결론이 “결코 무리한 비약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미첼과 함께 벨기에 공군의 빌프리트 브라운 소장, 벨기에 국방부 역시 추가 연구를 촉구한 인물·기관으로 호명된다.
기사는 미국 사회가 UFO 정보를 얻는 통로 대부분이 책임 있는 언론이나 공식 기관이 아니라 과장된 외계인 납치담을 늘어놓는 일부 군상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신뢰할 만한 해외 흐름과 대비된다고 본다. 보스턴 글로브에 글을 실어 온 기자 레슬리 킨은 인터뷰에서 해외에서는 신뢰할 만한 UFO 목격이 “진지하게 다뤄지고 조사된다”고 말한다. 외국 정부 관료들은 시민과 정보를 공유하려 하고, 신뢰받는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는 반면, 미국 정부는 가장 신빙성 있는 사례조차 일축하려 애쓴다는 것이다.
프랑스 보고서는 미국이 “인상적일 정도의 억압 장치”를 가동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허위정보 정책과 군 규정으로 군 종사자가 군 영공에서의 목격을 공개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것이다. 미 공군 규정 200-2 ‘미확인 비행물체 보고’는 “설명되지 않는 물체”에 관한 어떤 자료도 일반과 언론에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며, 합동육군·해군·공군 출판물 146호는 민간 조종사·민간 기관·상선 선장 등이 NORAD에 보고된 목격 정보를 누설할 경우 최대 10년 징역에 1만 달러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이런 비밀주의가 ‘은폐’ 의혹을 부추기고 미국 내 회의론과 결합한다는 것이 기사 후반의 진단이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의학 교수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존 E. 맥은 “프랑스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닦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35년 전부터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본 그는 미 정부의 답이 오랫동안 부인뿐이었다고 평한다.
보고서는 이제 각국이 우주 프로그램을 더 이상 숨길 때가 아니라고 권고한다고 기사는 정리한다. 칠레 공군은 민간 항공 안전과 관련된 UFO 근접 조우를 조사할 위원회를 구성했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할 만한 최근 목격 중 하나로 1997년 3월 사례가 거론된다. 수백 명이 밤하늘을 조용히 가로지르는 특이한 형상의 비행체를 봤고, 공군은 끝내 이를 만족스럽게 설명하지 못했다.
기사 마지막에는 1월 5일 일리노이주 레이크 카운티의 서로 다른 관할 경찰관 네 명이 1,000피트 상공을 자기 차 속도로 미끄러져 가는 거대한 삼각형 조명체를 목격했다는 일화가 등장한다. 한 경관은 안테나처럼 보이는 표지를 보고했지만 무전기에서는 어떤 응답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글의 작성자는 샌프란시스코의 프리랜서 기자 레슬리 킨으로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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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2
이 페이지는 NARCAP — National Aviation Reporting Center for Anomalous Phenomena (항공 이상현상 보고센터) — 의 자기소개 문서 첫 장이다. NARCAP 은 2000년 11월에 설립된 미국 단체로, 미확인 항공현상(UAP)이 항공 안전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는 것이 활동 목적이라고 밝힌다.
NARCAP 은 항공기에 다가오는 빛이나 물체 중에서 알려진 항공기 분류나 자연 현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조사한다. 이런 빛이나 물체는 다양한 색과 모양으로 보고되며, 조종사·관제사·레이더 운용자들이 이것들이 항공기에 근접한다고 보고한다. 이런 조우 사례는 조종사와 승무원, 조종실 규율, 기내 계기에까지 안전상의 영향을 일으킨 것으로 확인된다고 기술한다.
수석 과학자 Richard F. Haines 박사가 지난 50년간의 미국 관제사·조종사 보고를 종합 검토해 3400건 이상의 항공 UAP 사례를 정리했고, 이 작업의 결과물이 "Aviation Safety in America — A Previously Neglected Factor" 라는 논문이다. 이 논문에는 니어미스, 근접 동행, 항공전자장비 교란, 충돌 등에 UAP 가 연루된 사례 100여 건의 분석이 들어 있다. 보고자는 미군 조종사, 민간 항공 종사자, 자가용 조종사, 그리고 미국 영공을 운항한 외국 항공기 승무원들이다.
NARCAP 은 이 빛이나 물체의 정체나 출처에 대해 추측할 근거가 없다고 분명히 밝히면서, 자신들의 입장은 어떤 미확인 항공현상이 항공 안전에 정량화 가능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며, 단체의 목표는 과학적 검증을 견딜 수 있는 데이터를 모아 이 현상을 이해하는 토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끝부분은 항공 종사자들에게 UAP 조우 보고를 NARCAP 에 직접 보내달라는 호소다. 보고자가 비밀 유지를 우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NARCAP 은 FAA나 다른 정부기관·항공사와는 무관한 독립 단체이며 고용주·FAA·언론으로부터 보고자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Executive Director Ted Roe 의 전화번호((831) 338-4783), 이메일(admin@narcap.org), 웹사이트(www.narcap.org), UAP 조우 신고 전화((800) 732-3666) 가 연락처로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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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3
2001년 1월 27일 모스크바발 아장스 프랑스 프레스 기사다. 인테르팍스 통신을 인용해, 시베리아 남부의 한 공항이 활주로 위에 떠 있는 미확인 비행 물체 때문에 금요일 한 시간 반 동안 폐쇄됐다고 전한다. 일류신 Il-76 화물기 승무원들이 시베리아 바르나울 공항 활주로 위에 빛을 내는 물체가 떠 있는 것을 보고 이륙을 거부했다고, 현지 항공사 대표 이반 코마로프가 밝혔다. 같은 이유로 활주로 사용을 거부한 다른 화물기 승무원들은 다른 공항에 착륙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물체는 90분 뒤 공항을 떠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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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4
레슬리 킨이 자신의 이력을 한 장으로 정리한 약력 페이지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샌프란시스코 베이 에어리어 공영방송 KPFA에서 매일 출퇴근 시간대에 방송된 시사 라디오 매거진 〈플래시포인트〉의 어소시에이트·시니어 프로듀서 겸 공동 진행자로 일했다고 적었다. 국내 매체 기고로는 보스턴 글로브, 볼티모어 선, 새크라멘토 비,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더 네이션, 더 프로그레시브, 샌프란시스코 베이 가디언, 프로비던스 저널, 코머셜 어필, 버마 디베이트, 호놀룰루 스타불러틴이 올라 있고, 해외 매체로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캐나다 글로브 앤드 메일, 밴쿠버 선, 호주 시드니 모닝 헤럴드, 일본 교토 저널, 태국 네이션, 이탈리아 인테르나치오날레, 프랑스 CED, 아이리시 인디펜던트가 이어진다. 오피니언 칼럼은 보스턴 글로브,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저널 오브 커머스, 방콕 포스트, 세인트루이스 포스트 디스패치, 프로비던스 저널 불러틴,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더 네이션에 실었다. 신디케이션 채널로는 나이트리더, 스크립스 하워드, 뉴욕 타임스 와이어 서비스, 퍼시픽 뉴스 서비스, NPA를 든다. 단행본·앤솔로지 항목에는 코스와이즈 출판사의 〈Perspectives: Drugs and Society〉(2000), 코나리 프레스의 〈Stone Soup for the World〉(1998), 더쉬킨/맥그로힐의 〈Drugs, Society and Behavior 98/99〉(1998), 그리고 앨런 클레먼츠와 공저로 1996년 어퍼처에서 낸 〈Wishing for Beethoven: Letters of Hope, Reflections on Democratic Freedom and Dignity〉가 있다. 1991년부터 인권·미디어 옹호 단체인 버마 프로젝트 USA의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디오 인터뷰 출연 이력으로는 KQED의 마이클 크라스니 쇼, KPFA의 래리 벤스키 쇼, ABC 계열 방송, 1000만~2000만 청취자 규모의 〈코스트 투 코스트 AM〉, 100만 청취자 규모의 휘틀리 스트리버 방송, 에이미 굿맨의 〈Democracy Now〉, 아일랜드 국영 라디오 채널2의 〈게리 라이언 쇼〉를 꼽았다. 수상·지원 이력은 1996·1997·1998년 탐사보도 기금 지원, 1998년 프로젝트 센서드 명예상, 1997년 더 네이션 인스티튜트 지원, 그리고 더 네이션이 1996년 조지 포크상에 출품한 커버 스토리로 채택된 일을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