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 FBI · PDF (185p)

FBI 사건 파일 62-HQ-83894 단수 1 — 1947년, 비행 원반이 처음 파일에 들어온 방식

페이지별 한국어 번역

185 페이지 중 185 페이지의 한국어 번역. 자료 본문을 페이지 순서대로 옮긴 것이다 —

원문 자료 →

  1. p.1

    FBI 중앙기록센터에서 본부로 보낸 종이 파일 케이스의 표지다. 사건 분류는 62-HQ-68894, 1번 섹션 1~52번 시리얼이 들어 있다는 라벨이 붙어 있고, FOIPA 청구번호 993087에 따라 자동기밀해제 지침(2007년 5월 24일자)으로 해제된 파일이다. 표지 곳곳에 "DO NOT DESTROY(파기 금지)"와 "Transfer - Call 3421", "Use Care in Handling this File(취급 주의)" 같은 보존·취급 지시가 큼직하게 찍혀 있고, 가운데에는 "SECRET" 도장이 한 줄로 그어 무효화된 채 남아 있다. "PICKETT STREET"라는 흐릿한 도장과 손글씨 분류번호도 보인다.

  2. p.2

    1947년 7월 7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사를 FBI 가 오려 붙여 둔 파일 페이지다. 본문은 시카고발 UP 전문으로, 위스콘신주 그래프턴의 한 가톨릭 신부가 자기 집 마당에서 '윙윙거리는 원반' 을 발견해 FBI 에 넘겼다는 내용이다. 신부의 진술에 따르면 그날 아침 들판 위에서 크기가 제각각인 원반들이 윙윙대다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고, 이어 둔탁한 충돌음과 가벼운 폭발음이 들렸다. 직접 찾아가 보니 지름 약 18인치 (약 46cm), 두께 1/8인치 (약 3mm), 무게 4~5파운드 (약 2kg) 의 양철 원반이 떨어져 있었으며, 둥근 톱날과 비슷한 모양이었고 만졌을 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한가운데에는 지름 1인치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장치와 전선' 같은 부품들이 들어 있었다. 신부는 이것이 정교한 장난질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지만, 일단 밀워키 FBI 사무소와 육군 항공대 공보 담당 톰 브라운 대위에게 신고했다고 한다. 페이지 오른쪽에는 후버 국장 산하 주요 간부 16인의 회람 명단 (톨슨·E. A. 탬·클레그 등) 이 정리되어 있고, 'He later furnished material to Mr. Kearney 1949' 라는 손글씨 메모와 함께 'SE 40 INDEXED 98', 사건번호 '62-83894-1', 'NOT RECORDED 82 JUL 10 1947' 도장이 같이 찍혀 있어 이 기사가 워싱턴 포스트 발행 사흘 뒤 FBI 본부로 접수돼 분류·회람된 흔적임을 보여 준다.

  3. p.3

    문서 뒷면 스캔으로, 본문은 없고 앞면 잉크가 비쳐 보이는 누런 종이에 FBI 접수 도장 몇 개만 거꾸로 찍혀 있다. 도장은 1947년 7월 7일 오전 8시 54분과 같은 날 오후 4시 42분에 미 법무부 FBI 가 받았다는 것, 그리고 "MR. JONES" 앞으로 회람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페이지 상단에는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다.

  4. p.4

    1947년 여름 한 신문 기사 스크랩으로, 미 전역에 보고된 "비행 원반(flying saucer)" 목격담을 두고 군·과학자·정신과 의사·언론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정리한 기사다. 육군 무선통신단(Army Airways Communications Service)은 전국 레이더로 미상 비행물체를 잡지 못했다고 보고했고, 태평양 북서부에는 안개와 어둠을 뚫고 200마일 밖 물체까지 잡는 군 레이더가 있다고 전한다. 공군 측은 "뭔가 있긴 하다"고 인정하며 15일째 조사 중이지만, "그게 뭔지는 여전히 전혀 모른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목격담으로는 아이다호의 디시먼에 사는 한 주부가 동료 15명과 함께 세인트메리스 인근 산비탈에 빛나는 원반 여덟 개가 "잎사귀처럼 펄럭이며"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가 실렸다. 그는 원반이 다섯 칸짜리 집만 하고 빨래통에 가깝게 생겼다고 묘사했다. 워싱턴 DC 거주 한스 케네디는 오전 8시 30분경 시 북동부 상공에서 "소켓 없는 길쭉한 전구" 같은 물체가 시속 500~1000마일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고, 메릴랜드 헤이거스타운의 한 주부는 "총알처럼 직선으로 날아갔다"고 진술한다.

    워싱턴 세인트엘리자베스 병원장이자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윈프리드 오버홀저(Winfred Overholser)는 이 현상을 "국민적 히스테리"의 전형으로 진단한다. 누군가가 원반을 봤다고 하면 상상력이 풍부한 다른 이들도 곧 봤다고 믿게 되며, 이는 마녀사냥 시기의 집단 히스테리와 같은 구조라는 것이다. 다만 그는 "요즘 워낙 이상한 일이 많아 단정할 수는 없다"며 농담으로 일축하지는 않는다. 항공기 설계자 알렉산더 P. 더 세버스키(Alexander P. de Seversky) 소령도 오버홀저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목격자들이 본 것은 제트기 배기염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유도 미사일 실험설도 거론하지만, 그는 "정부라면 원자폭탄처럼 외딴 곳에서 통제된 실험을 하지, 무작위로 쏘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한다.

    공군 연구개발 담당 차장 커티스 르메이(Curtis E. LeMay) 소장은 더 단호하다. "이 사람들이 본 것이 무엇이든, 육군 항공대 실험과는 무관하다. 내가 보기엔 이 이야기 전체가 황당무계하다."

    기사 후반은 "기자가 직접 본 사례" 코너로 세인트루이스의 정비공 노라 하트가 약 250피트 상공에서 본 원반을 자세히 묘사한 내용이다. 그는 원반이 갈비뼈 모양 골조에 은회색이며, 중앙에 프로펠러가 달린 모터가 있고, 항공기가 슬로 롤 기동을 하듯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로스앤젤레스 신문은 익명의 핵 과학자를 인용해 "은빛 원반은 원자에너지 전이 실험의 부산물"이라는 가설을 전했지만,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대니얼 처칠과 여러 핵 과학자들이 즉각 부정했다.

    마지막 단락은 정부 측 동향이다. 해외참전용사회(VFW) 사령관 루이스 스타(Louis E. Starr)는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곧 워싱턴에서 원반의 정체를 설명할 정보가 올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공군참모총장 칼 스파츠(Carl Spaatz)는 원반 목격이 가장 많이 보고된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 있었으나, 이 출장은 두 달 전부터 계획된 일이며 다음 날 워싱턴으로 복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캘리포니아의 한 육군 항공기지는 P-80 제트 전투기를 대기시켰고, 오리건 주방위공군은 "유령 물체"가 어디서든 보고되면 출격할 제트기 네 대를 준비해 두었다.

  5. p.5

    1947년 7월 5일 오후 2시, 뉴저지 뉴브런즈윅 우체국 소인이 찍힌 봉투다. 수신지는 워싱턴 D.C. 연방수사국(FBI)으로, 손글씨로 "The F.B.I. / Washington / District of Colombia"라고 적혀 있고 미국 우편 5센트 우표 한 장이 붙어 있다. 좌측에는 파일 편철용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어 FBI 접수 후 사건철에 끼워졌음을 보여준다. 발신인 표시는 보이지 않는다.

  6. p.6

    FBI 앞으로 보낸 익명 손글씨 편지의 첫 장으로, 1947년 7월 초에 접수된 것으로 보인다. 발신인은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켄터키·뉴멕시코·캘리포니아·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콜로라도·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캐나다 동부에서 목격됐다고 보도된 "플라잉 디스크"에 대한 자기 견해를 적었다. 발신인은 어느 유럽 국가가 그 디스크를 이용하고 있으며, 그 안에 세균이나 강력한 폭발물을 채워 보낸 뒤 수천 마일을 날아간 다음 내용물을 떨어뜨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편지 끝부분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며, 발신인은 FBI에 무언가를 계속 해두기를 권한다는 문장을 시작한다. 편지지 상단에는 "익명 통신 — 봉투 첨부 유지"라는 FBI 내부 처리 도장이 찍혀 있고, 본문 위로 접수 번호 83894와 1947년 7월 8일, 7월 1[?]일 자 날짜 도장이 겹쳐 들어가 있어 FBI가 이 편지를 어떻게 정식 기록물로 등록했는지 보여 준다.

  7. p.7

    앞 페이지에서 이어지는 손글씨 편지의 마지막 부분이다. 발신인은 "소독제를 잔뜩 준비해 두라, 그렇지 않으면 미국에서도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하며 글을 맺는다. 서명은 이름 대신 "From: A freind(친구로부터)"라고만 적혀 있어, 익명의 제보자가 보낸 편지임을 드러낸다. 종이 곳곳에 잉크 얼룩이 번져 있다.

  8. p.8

    1947년 7월 8일 오전 11시 22분, FBI 뉴올리언스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송신한 분홍색 텔레타이프다. 송신자 표기는 'WEEKS' 한 줄. 본문은 두 문장으로 짧다 — F. G. Hariston 이 발견했다고 신고한 '플라잉 디스크' 건은 장난으로 판명됐다는 보고다. 여백에는 누군가 '플라잉 소서(Flying Saucers)' 라고 손글씨로 주제를 적어 두었고, 'Reynolds 에게 같은 날 오후 1시 30분에 통보' 라는 메모가 'HB' 이니셜과 함께 남아 있다. 본문 머리의 'FBI NEW ORLEANS' 와 'DIRECTOR ROUTINE' 두 줄에 큰 X 자가 그어져 처리·말소 흔적을 보여준다. 우측 상단에는 본부 회람 명단 — Tolson, E.A. Tamm, Clegg, Glavin, Ladd, Nichols, Rosen, Tracy 외 — 이 인쇄돼 있어, 장난으로 끝난 한 통의 신고가 본부 최고위 회람 라인까지 올라갔음을 보여준다. 하단의 등록 도장 '62-83894-3' 와 '29 JUL 10 1947' 인덱스 도장은 이 전문이 FBI 플라잉 디스크 정식 파일에 편철됐다는 흔적이다.

  9. p.9

    분홍빛 라우팅 표지 뒷면에 FBI 법무부 접수 도장 네 개가 찍혀 있는 페이지다. 1947년 7월 8일 오후 1시 25분에 FBI 텔레타이프 부서가 처음 받았고, 같은 날 오후 2시 37분에 연락 부서가 다시 접수했으며, 다음 날인 7월 9일 오전 9시 13분에 내부 보안 부서가 받았고, 7월 11일 오전 9시 45분에 연락 부서가 마지막으로 접수 처리했다. 본문은 없고, 한 통의 전문이 FBI 내부에서 어느 부서를 거쳐 돌았는지 보여주는 라우팅 흔적만 남아 있다.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바인더 펀치 구멍이 두 개, 아래쪽에는 종이가 찢긴 자국이 보인다.

  10. p.10

    1947년 8월 5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워싱턴 D.C. 펜타곤의 전쟁부 총참모부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특별 전령(by special messenger) 편지다. 수신 담당자는 보안그룹장 L. R. 포니 대령으로 지정되어 있고, 제목란에는 발신인이 다루는 인물의 이름 “FRED R. REIBOLD”가 적혀 있다.

    후버는 위 인물에게서 받은 편지 사본과, 그 편지에 함께 동봉되어 온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cs) 관련 신문 스크랩 사본을 첨부해 정보국 쪽으로 함께 넘긴다고 알린다. 그러면서 라이볼드 본인에게는 이미 편지를 잘 받았다는 회신을 보냈고, 보낸 편지 사본을 정보국에 같이 전달해 검토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까지 통지했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내부 발송 기록(Records Section, 1947년 8월 우편 발송 표시)과, 1975년 10월 28일자 비밀해제 처리 도장(DECLASSIFIED BY 1259 ON 10-28-75)이 함께 남아 있다.

  11. p.11

    워싱턴 D.C. 연방수사국 앞으로 보낸 손편지로, 첫머리에 "Flying Discs (비행 원반)"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발신인은 1947년 7월 7일 밤 10시 30분, 네브래스카 오마하 힘보 거리(Himbaugh ave) 2315번지 자기 집 앞 도로에 불타는 물체가 떨어지는 것을 장모 거트루드 스니펜(Gertrude Sniffen)과 함께 목격했다고 적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그 물체는 단단한 고체로, 둥근 원반 모양에 크기는 은화 1달러 정도, 두께는 4분의 1인치쯤 됐고 극심한 열을 내며 타고 있었다고 한다. 발신인은 곧바로 지역 신문 월드 헤럴드(World Herald)에 알렸고 기자도 현장에 보냈다고 덧붙였다. 편지는 "그러는 사이 한 소년이 (it 을) 집어들었다"라는 문장에서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본문 중앙 아래에는 FBI 내부 처리 표시인 "RECORDED" "INDEXED" 도장과 사건 파일 번호 62-83894로 보이는 손글씨가 찍혀 있어, 이 편지가 실제로 FBI 파일에 정식 등록됐음을 보여 준다.

  12. p.12

    이 페이지는 손글씨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의 잉크가 종이를 통해 비쳐 거꾸로 어슴푸레 보이고, 본문 내용 자체는 읽을 수 없다. 좌측 상단에 1947년 7월 16일 오후 12시 36분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에서 접수했다는 파란 잉크 스탬프가 찍혀 있는 것이 이 페이지에서 유일하게 의미 있는 정보다. 하단에는 잉크 얼룩과 천공으로 보이는 검은 자국 몇 개가 보인다.

  13. p.13

    손글씨로 쓴 진술서의 한 페이지다. 글쓴이는 물체가 머리 위를 지나가다가 산산조각이 났다고 적는다. 기자가 현장에 도착해 파편을 주워 모으고는 분석을 의뢰하겠다고 말했고, 그 분석 결과는 이 진술서에 첨부되어 있다. 물체를 실제로 본 사람은 여섯 명이며, 이들은 그 물체가 얼마나 뜨겁게 타고 있었는지 직접 증언할 수 있다고 한다. 글쓴이는 자신들이 그 물체를 흔히 말하는 "플라잉 소서"라거나 그런 종류의 현상이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고 못박는다. 다만 합리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던 이유는, 만약 이 물체가 지붕 위에 떨어졌다면 분명히 불이 났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적는다. 마지막 줄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문장의 도입부에서 끊긴다.

  14. p.14

    프레드 R. 라이볼드(Fred R. Reibold)가 네브래스카 오마하 자택(킴브로 애비뉴 2315번지)에서 보낸 손편지의 마지막 장이다. 케니 박사가 판단한 담뱃재 가 아니라 포장 도로까지 그을릴 정도로 강한 열을 내며 탔다고 적고, 7월 4일 독립기념일에 쓰고 남은 폭죽 같은 것일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케니 박사가 파이프 재 라고 한 설명은 비웃음거리이며 전혀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이 건을 알린다고 마무리한다. 끝에는 같은 이름이 인쇄 활자체로 한 번 (붉은 잉크), 손글씨 서명으로 한 번 들어가 있고 페이지 하단에 페이지 번호 3 이 적혀 있다.

  15. p.15

    1947년경 네브래스카 오마하의 한 신문 기사 스크랩이 큰 종이에 테이프로 붙어 있고, 그 아래 빨간색 손글씨로 사건 파일 번호 62-83894-4가 적혀 있다. 기사 제목은 「'비행접시'는 누군가의 헛된 꿈일 뿐」. 월요일 저녁 하이마우 애비뉴 2118번지 근처에 떨어졌다는 '비행접시'의 정체는 그저 '누군가의 파이프 꿈에서 나온 재'에 불과했다는 내용이다. 크레이턴 치과대학 화학과장 C. L. 케니 박사가 학생 두 명에게 그 재를 분석하게 했는데, 나트륨·칼륨·철·알루미늄·탄산염·황산염, 그리고 타다 남은 탄소가 검출됐다고 한다. 케니 박사는 "이건 보통 파이프 담배를 분석해도 똑같이 나오는 결과"라고 결론지었다.

  16. p.16

    이름을 밝히지 않은 시민이 손글씨로 보낸 신고 편지의 첫 장이다. 발신인은 7월 4일 저녁 10시 30분 무렵, 미시간 세인트클레어 호수 인근의 군 비행장에서 쏘아 올린 탐조등 두 줄기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비행 접시”를 직접 보았다고 적는다. 자신은 그 시각 자기 집 현관에 앉아 있었고, 탐조등 빛줄기 안에는 분명히 윤곽이 잡힌 밝은 두 덩어리가 같은 높이에 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어 “트럭 몇 대에 적당한 장비를 실으면 누구든 같은 환영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이며, 자신이 본 것이 진짜 비행체가 아닐 가능성을 스스로 의심한다. 두 줄기 빛 가운데 한쪽은 끝부분이 흐릿하게 사라지고 있었다는 묘사까지 적은 뒤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종이 윗부분에는 “익명 / 봉투를 함께 보관할 것” 도장과 “G.I.R.” 라벨이 찍혀 있고, 왼쪽 여백에는 담당자가 분류용으로 적은 굵은 글씨 “FLYING SAUCERS” 가 세로로 흐른다.

  17. p.17

    FBI 가 1947년 7월 22일 접수해 보관 중인 어떤 문서의 한 조각으로, 손글씨 본문이 중간에서 잘려 있다. 글쓴이는 세 번째 광선이 나타나면서 그것이 땅에서 비행접시 쪽으로 사라졌다고 적고, 최근 자신이 언급했던 태평양에서 조난당한 선박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그 사건이 전적으로 자연 현상 때문만은 아니라고 보며, 선박과 폭탄을 함께 묶어 이야기를 이어가려 하지만 문장이 잘려 끊긴다. 종이에는 FBI 접수 도장과 함께 "RECORDED 62-83", "EX-12" 등 내부 파일 분류 표시가 겹쳐 찍혀 있어, 본문 자체보다 이 문서가 FBI 의 정식 기록 체계에 편입되어 관리됐다는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18. p.18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에게 워싱턴 D.C. 주소로 보낸 봉투의 앞면이다. 손글씨로 수신인 이름과 도시가 적혀 있고, 왼쪽 아래 모서리에는 "Personal attention"(본인이 직접 열어볼 것) 이라는 표시가 같은 필체로 덧붙어 있다. 봉투 상단에는 우표나 인지가 떼인 자리로 보이는 흔적이 남아 있다.

  19. p.19

    1947년 7월 8일 낮 12시 30분, 뉴욕 그랜드센트럴역 우체국에서 3센트 우표가 붙은 봉투 하나가 소인을 받았다. 수신인은 워싱턴 D.C. 법무부 청사에 있는 연방수사국장 J. 에드거 후버였다. 발신인 표시 없이 타자로 친 주소만 적힌 평범한 사무용 봉투다.

  20. p.20

    1947년 7월 11일자 익명 편지로, 발신인은 "하늘 관측자·디스크 해독가·신제품 소개인 연합 합동 위원회"라는 가상의 단체 이름을 댔다. 수신자에게 "신비한 사우서를 본 적이 있는가, 어떤 모양이었는가, 이 이상한 천체 현상이 더 나은 시대의 전조라고 생각하는가, 새롭고 혁명적인 진보가 오고 있다는 뜻으로 믿는가, 당신의 삶을 더 밝고 행복하고 유용하게 만들겠는가"라고 연달아 물은 뒤, "우리는 이 놀라운 디스크 중 하나가 당신에게로 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면 비밀이 드러날 것이다"라고 맺는다. 1947년 여름 플라잉 디스크 소동이 한창이던 시기 FBI 본부에 흘러든 농담조·홍보조의 발신물로 보이며, FBI 는 1947년 7월 14일자 RECORDED 62-83894-6 번호로 접수해 보관 파일에 넣었다. 왼쪽 여백에 푸른 손글씨로 "Flying Saucers"라는 분류 메모를, 오른쪽 여백에 "G.I.R. 5" 라우팅 표시를 더해 일반 정보 파일 계열로 분류했다.

  21. p.21

    타자된 문서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글자가 종이를 통해 비쳐 거꾸로 보일 뿐, 이 면에 새로 적힌 본문은 없다. 오른쪽 아래에 1947년 7월 4일 FBI 접수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문서가 그 날짜에 FBI 본부에 접수됐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22. p.22

    1947년 7월 14일 보스턴에서 한 시민이 FBI 앞으로 보낸 손편지의 첫 장이다. 발신인은 신문들이 비행 원반을 목격했다고 보고한 사람들을 "매정하게" 비판하는 기사들, 특히 최근 보스턴 글로브에 린든이라는 필자가 쓴 글을 거론하며 FBI의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고 운을 뗀다. 페이지 가장자리에는 접수 도장 "G.I.R.5"와 FBI 내부 분류 도장 "RECORDED & INDEXED", 사건번호 "EX-74" 및 "63-1404-7"이 함께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일반조사파일 (General Investigative Files) 로 정식 접수·색인 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23. p.23

    보스턴 포스트가 이번 주 사과문을 실었다는 이야기로 페이지가 시작된다. 글쓴이는 비행접시 목격을 신고한 사람들을 두고 안과의부터 정신과의까지 너나없이 기사에서 공개적으로 깎아내린 것은 매우 부당하다고 적었다. 보답이라기에는 형편없는 방식이며, 정말 그 사람들이 필요한 일이 언젠가 벌어졌을 때 이들은 더는 신고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로 이어진다. 마지막 줄에는 발신자의 이름이 손글씨 서명으로 들어가 있다. 페이지 전체가 펜으로 쓴 편지 손글씨이며, 오른쪽 여백에는 접수 도장과 "UNCLASSIFIED" 표시, 본문 위에는 수신자 이름을 가린 빨간 차단 표시가 겹쳐 있다.

  24. p.24

    1947년 7월 7일 자 FBI 내부 메모로, H. B. 플레처가 D. M. 래드 앞으로 보낸 보고다. 같은 날 오전 10시 45분, 플레처는 밀워키 지부의 SAC 존슨과 통화해, 그날 자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UP 통신 기사 — 위스콘신 그래프턴 세인트 조지프 교회의 조지프 크래스키 신부가 밀워키 지부에 비행 원반을 신고했다는 내용 — 에 관해 확인했다.

    존슨의 설명에 따르면, 그날 새벽 1시에서 6시 사이 AP와 UP가 잇따라 밀워키 지부에 같은 건이 접수됐는지 문의했지만 존슨은 답변을 거절했다. 사실 신부는 지부에 직접 연락한 적이 없었고, 존슨은 오히려 AP를 통해 신부가 술에 취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정작 사건의 실체는 둥근 톱 하나뿐이라 AP는 기사를 내보내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을 듣게 됐다고 한다. 존슨은 보도를 밖으로 흘린 곳은 UP 서비스를 받는 밀워키 센티넬로 보인다고 했다.

    그날 아침 센티넬 지면에는 신부가 둥근 톱을 들고 찍은 사진이 실렸는데, 톱이 신부의 한쪽 겨드랑이에서 반대쪽 겨드랑이까지 가릴 정도로 컸다고 한다. 톱에는 전선 몇 가닥과, 길이 약 3인치·지름 1인치쯤 되는 작은 관 두 개가 매달려 있었다. 센티넬 보도는 누가 장난삼아 폭죽까지 묶어 마당에 던져 넣은 것 같다는 쪽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신부는 그날 안에 밀워키 지부에 정식으로 신고할 예정이라고 센티넬이 전했다.

    플레처는 존슨에게 신고가 들어오면 즉시 세부 사항을 보고하되, 지금 들어와 있는 정보의 성격을 보면 별도의 수사는 진행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메모 하단에는 사건 파일 번호 62-83894, 7월 9일 자 접수 도장, 7월 22일 자 정리 도장이 같이 찍혀 있고, 좌측 여백에는 누군가가 세로로 "FLYING SAUCERS"라고 손글씨로 표기를 달아 두었다.

  25. p.25

    어떤 메모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앞면 본문이 종이를 투과해 거꾸로 비쳐 보이고, 맨 위에는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머리글이 흐릿하게 역상으로 드러난다. 본문 자체는 뒷면에 새로 적힌 것이 아니라 비치는 것이라 직접 옮길 만한 내용은 없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미국 법무부 접수 도장이 두 개 정상 방향으로 찍혀 있는데, 둘 다 1947년 7월 7일 같은 날짜이고 시각은 각각 오후 5시 52분, 오후 12시 22분이다. 이는 같은 문서가 법무부 내 두 부서에서 같은 날 따로따로 접수된 흔적이다.

  26. p.26

    1947년 7월 12일 텍사스 요컴(Yoakum)에서 누군가 FBI 앞으로 보낸 손편지다. 발신자는 영어가 서툰 듯 철자가 곳곳에 어긋난 짧은 글로, 텍사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린다며 말을 연다. 팔레스타인(Palestine) 상공에서 "불의 비행체(Flying fire)"가 빙빙 돌고 있어 주민들이 두려워하고 있고, 요컴에서 멀지 않은 쿠에로(Cuero) 부근에서는 비행기 같은 것에서 무언가 빛나는 물체가 떨어졌다고 적었다. 발신자는 이 일이 "적의 손"이나 "나치 무리"의 소행일 수 있으며, 그들이 텍사스를 망치려 한다고 의심한다. 페이지 윗부분에는 1947년 7월 15일 워싱턴 상무부 민간항공국(Civil Aeronautics Adm.) 우편실 도장과 같은 날짜의 "RECEIVED" 빨간 도장이 찍혀 있고, 오른쪽 위 손글씨로 "F.B.I."와 분류 번호가 적혀 있다. 아래쪽에는 FBI 정식 파일 번호 62-93894-9와 1947년 7월 17일자 접수·색인 도장이 남아 있어, 이 편지가 FBI 본부에서 정식 사건철로 분류되었음을 보여 준다. 왼쪽 여백에는 누군가 세로로 "On flying disco"라고 적어 사건의 성격을 한 줄로 요약해 두었다.

  27. p.27

    내용 없는 줄 노트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필기는 없고, 상단과 하단에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 두 개만 남아 있다. 위쪽은 1947년 7월 25일 자 "RECEIVED" 도장이고, 아래쪽은 1947년 7월 21일 오전 9시 24분에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가 접수했다는 도장이다.

  28. p.28

    줄친 노트에 청록색 잉크로 쓴 손글씨 편지의 두 번째 장이다. 작성자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듯 철자가 어긋나 있는데, 텍사스시티에서 공장을 부수기 시작했고 요컴(Yoakum) 공항과 방송국 부지 사유지 구역에 그런 적이 있다고 적는다. 그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그곳에는 비행기는 없고 격납고와 방송탑만 있는데, 회전하는 탑 위에 불빛이 달려 있고 그 빛이 마치 눈을 찌르는 바늘 같다고 묘사한다. 공항 부지 전체에 불빛이 둘려 있고 그 불빛에서 무언가가 흐른다는 문장으로 끝난다. 페이지 상하단에 같은 손글씨로 ‘2’라고 면수가 매겨져 있다.

  29. p.29

    공책 낱장에 연필로 쓴 진술서의 셋째 쪽이다. 글쓴이는 자신이 시달리는 일을 이어서 적고 있다 — 전기가 자신을 아프게 하고, 공기마저 번개로 가득 차 있으며, 가게 안 전화 박스에서 불덩이가 튀어나와 800미터쯤 위로 솟구친다고 한다. 이어서 공항이 샌안토니오의 알라모 레지스터와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이 자신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적는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은 로버트 루시 대주교이며, 방송국과 알라모 레지스터 신문사에서도 이야기가 오간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쪽 아래 가운데에 빨간 색연필로 쪽 번호 3이 적혀 있다.

  30. p.30

    줄 노트 4쪽으로 매겨진 손글씨 진술이다. 글쓴이는 알라모 방송국이 옛 대주교 관저, 그리고 대성당 사제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알라모 방송국은 독일계 노인 두 명이 운영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이미 병이 들었고 전기 때문에 눈이 멀었으며 그럼에도 자신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적는다. 그 밖에 두 명이 더 있어 무언가를 맞추고 짜 맞추는 작업을 함께 하는데, 그 소리까지 들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대주교를 "나쁜 사람이고 부도덕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평하면서, 실제 일은 모두 대성당 위원회가 처리한다고 결론짓는다.

  31. p.31

    손글씨 진술서 5쪽. 옛 대주교 관저에 사제 몇이 살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이 모르코프스키라는 사람이고 못된 사람이다. 대주교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했고 그때 어머니가 죽었다. 그 뒤로 옛 관저에 머물면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다. 형도 할레츠빌에서 사제로 있고, 마찬가지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람들 전부가 어딘가 쓰레기 같은 행색이고, 미국 시민도 아니고 영어도 못한다. 자기들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왔다고 한다.

  32. p.32

    편지 6쪽이자 마지막 쪽으로, 안나·조 베니스 부부가 손으로 서명을 남긴 면이다. 두 사람은 "성당 이사회(Cathedral Board)는 남자들이거나 사제들이며, 모두 독일계이고 독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어 "우리는 텍사스에서 그런 신선한 사람들을 얻었으니, 텍사스 주민에게 성지(聖地)인 알라모를 이름으로 부르자 — 멕시코의 산타 아나에 맞서 싸운 바로 그 장소"라고 적는다. 마지막은 호소조로 맺는다. "나는 다음 말로 끝맺습니다 — 알라모와 텍사스 시티를 기억하라." 본문 아래에 "Mrs. Anna Benys / Mr. Joe Benys" 라는 친필 서명이 있고, 그 밑에 다른 사람의 글씨로 보이는 청색 인쇄체 보조 표기가 같은 이름을 덧대어 적혀 있다. 표기 자체가 누군가 — 아마 수신처의 사무 직원 — 가 발신인 이름을 또박또박 옮겨 둔 흔적임을 보여 준다.

  33. p.33

    FBI 파일 62-83894 시리얼 9의 자료 봉투 표지다. 노란 마닐라 봉투 윗부분 오른쪽에 빨간 손글씨로 케이스 번호와 시리얼 번호만 적혀 있고, 봉투 자체에는 다른 라벨이나 인쇄 정보가 없다. 위아래에 파일 보관용 펀치 구멍이 뚫려 있다.

  34. p.34

    신문 한 부의 좁고 긴 칼럼 조각이다. 상단 제호는 D-TIMES 로 잘려 보이고, 머리기사 자리에 "처음에는 비행 원반이더니, 이제는 '높으신 분들'을 본다"는 식의 헤드라인이 걸려 있다. 같은 지면 안쪽에는 "비행 원반 자료를 다시 다루면 기소될 수 있다"는 기사, "카르소 주민들이 비행 원반을 보다"라는 짧은 목격담 기사가 함께 실려 있고, 그 사이에 동네 청소년 콘테스트 수상 소식, 가스 트럭 사고, 라이언스 클럽의 농민 표창 같은 평범한 지방 단신이 끼어 있다. 한 신문 지면 안에 비행 원반 보도와 일상적인 시골 뉴스가 나란히 놓여 있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35. p.35

    오자크 지역 신문의 좁은 세로 칼럼 한 토막을 스캔한 페이지다. 왼쪽으로는 농가·콘크리트·치과의원(터너 박사) 같은 지역 광고가 작은 박스로 줄지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Most Man Who ... Trade Around ..." 식 헤드라인이 붙은 기사 본문이 흐르며, 아래쪽에는 "Mc-" 로 시작하는 큰 디스플레이 광고 일부가 보인다. 해상도가 낮아 본문 단락은 판독되지 않고, 페이지의 정체는 사건 보도가 아니라 신문 한 단을 통째로 떠낸 컨텍스트 자료에 가깝다.

  36. p.36

    1946년 10월 4일자 텍사스 가톨릭 주간지 《알라모 레지스터》 섹션 투의 제호 부분을 잘라낸 신문 스크랩이다. 제호 위에는 이 신문이 NCWC 워싱턴 뉴스 본부의 전용 회선과 자체 종교 통신·사진 서비스에 연결되어 있다는 안내가 작은 활자로 들어가 있고, 발행처 표시로 미국 특허청에 등록된 제호임을 밝힌다. 가운데 큰 활자로 새겨진 ALAMO REGISTER 글자 뒤에는 날개를 펼친 독수리 도안이 배경처럼 깔려 있다.

  37. p.37

    교황 비오 12세가 여름 별궁 카스텔간돌포에서 행한 연설을 전하는 신문 기사 스크랩이다. 교황은 오늘날의 세계가 교회뿐 아니라 "종교 그 자체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마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악행과 욕정에 깊이 물든 자들, 거룩한 것을 조롱하는 냉소주의자들, 그리고 그런 범죄가 묵과되도록 내버려 두는 약한 자들이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교황은 "이 혼란 속에서도 큰 희망의 빛이 있으며,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해 일하는 이들이 큰 추수밭에서 더 많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참된 체계, 즉 "우리의 거룩한 어머니 교회"를 위해 "준비되고 다듬어진 영혼"을 길러내는 종교의 확산이 강조됐다. 또 다른 연설에서는 도미니코회 총장으로 선출된 에마누엘 수아레즈 신부와 도미니코 수도회를 향해 발언한 내용이 이어지다가 본문이 잘려 있다. 기사 옆에는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바이올린을 켜는 동안 발치에 작은 인물들이 신음하듯 모여 있는 풍자만화가 실려 있고, 그 아래 "WORLD UNREST(세계의 혼란)"라는 캡션이 붙어 있다.

  38. p.38

    1947년 7월 7일 저녁 7시 14분, 텍사스 샌마커스에서 워싱턴 FBI 본부로 들어온 웨스턴유니언 전보다. 발신자는 클리프사이드 홀의 우드슨 C. 코프(Woodson C. Cope). 본문 내용은 이렇다. 발명가위원회(Inventors Council) 파일에서 다중 스프링 캐터펄트 도면을 찾아보라, 자신이 1945년 전쟁부에 보낸 발명품이다, 정보가 새어 나간 듯하며 자신의 장치나 그 변형이라면 원반(disc)을 무성으로 수 마일까지 쏘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FBI 통신과 접수 도장과 함께 톨슨·태머·래드·니콜스 등 고위 간부 회람 표시가 우측 여백에 찍혀 있고, 하단에는 1949년 7월 10일 회신 처리, 호우(Hawe)씨의 지시로 변경이 거부되었다는 손글씨 정리가 따라붙어 있다. 1947년 6~7월 전국을 휩쓴 플라잉 디스크 보도에 일반인이 자기 발명품을 결부시켜 FBI에 직접 타전한 사례다.

  39. p.39

    1947년 7월 FBI 내부로 들어온 텔레타이프 한 통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자체는 앞면에 인쇄되어 있고, 이 페이지에서는 잉크가 종이를 뚫고 비쳐 거울상으로만 보일 뿐 정확한 문장으로 읽히지는 않는다. 비쳐 보이는 글자들로는 후버 FBI 국장을 수신인으로 한 1947년자 전문이라는 정도가 짐작될 뿐, 본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앞면 이미지를 봐야 알 수 있다. 페이지에 실제로 남아 있는 표시는 두 개의 접수 도장이다. 하나는 1947년 7월 7일 밤 10시 42분에 FBI 법무부 텔레타이프실에서 받았다는 도장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 날인 7월 8일에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Section)로 회부되었다는 도장이다. 즉 이 종이는 그날 밤 접수해 이튿날 내부보안 라인으로 넘긴 한 건의 전문이 거쳐 간 흔적을 보여 주는 쪽이다.

  40. p.40

    1947년 7월 10일, FBI 본부의 J. P. 코인이 D. M. 래드 앞으로 보낸 사내 메모랜덤이다. 제목은 정보 제공자 우드슨 C. 코프, 사안은 "플라잉 디스크"다. 코프가 비행 원반에 관한 정보를 담아 보낸 웨스턴 유니언 전보가 이 메모에 첨부되어 있으며, FBI는 이미 그 전보를 수신 확인했다고 한다. 조치 사항으로 코인은 이 전보를 라이슨 섹션에 넘겨, 그쪽에서 내용을 전쟁부에 전달할 수 있게 하자고 건의한다. 손글씨로 적힌 첨부 메모는 정보를 알류산 지역에 회람했고 군 정보부(MID) G. C. 잭슨에게 1947년 7월 14일 전달했다는 기록이다. 우측 여백에는 FBI 고위 간부들로 채워진 회람 목록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어, 비행 원반 정보가 어느 정도의 내부 주목을 받았는지 보여 준다.

  41. p.41

    FBI 내부 접수 표시만 남아 있는 문서 뒷면이다. 1947년 7월 11일 오후 3시 24분 래드(Ladd) 사무실 접수 도장과, 같은 해 7월 23일 오전 9시 51분 법무부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 두 개가 위쪽에 푸른 잉크로 찍혀 있고, 본문 텍스트는 없다.

  42. p.42

    1947년 7월 6일 저녁 6시 56분, 사우스캐롤라이나 달링턴에서 미 법무부 워싱턴 본부로 들어온 웨스턴 유니언 전보다. 발신인은 J. U. 와츠 주니어로, 그날 오후 5시 30분경 달링턴 상공을 "이른바 플라잉 디스크" 약 열두 개가 지나갔다고 알리며, 자세한 내용을 원하면 회신해 달라고 적고 있다. 전보 여백에는 7월 7일자 법무부 접수 도장과 "EX-37" 라우팅 표시, 손글씨로 적은 회신 메모가 함께 보인다.

  43. p.43

    낡은 서류 봉투 또는 폴더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상단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왼쪽 아래에는 "RECORDS / No. 7 / 45 FBI HQ" 로 보이는 사각 도장이 찍혀 있다. 종이 가장자리에는 손글씨 메모와 식별이 어려운 표기 몇 개가 흩어져 있을 뿐, 본문이라 할 만한 텍스트는 없다. 문서 본문이 아니라 보관용 봉투/폴더의 외피로 보인다.

  44. p.44

    FBI 내부 메모란덤이다. 1947년 7월 10일, J. P. 코인이 D. M. 래드 앞으로 보낸 한 쪽짜리 문서이며, 제목란에는 정보 제공자로 표시된 J. U. 와츠 주니어의 이름이 적혀 있고 그 아래 손글씨로 "Flying Disc" 라고 덧붙어 있다. 코인은 위 인물에게서 받은 웨스턴 유니언 전보를 이 메모에 붙여 올린다고 보고하면서, 전보에는 "디스크" 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고 수신은 이미 회신 처리했다고 적는다. 조치란에서는 해당 전보를 연락(Liaison) 부서로 넘겨 거기서 다시 전쟁부(War Department)로 정보가 전달되도록 하자고 건의한다. 여백에는 7월 14일 자 손글씨로 첨부 내용을 G. C. 젠킨스에게 알렸다는 메모가 달려 있고, 우측에는 FBI 고위 간부들에게 회람된 인사 명단이 인쇄돼 있다. 하단에는 7월 24일 자 접수 도장과 사건 정리번호 62-83894 인덱스 도장이 함께 찍혀 그 무렵 사건 파일로 정식 등록됐음을 보여준다.

  45. p.45

    FBI 문서의 뒷면 또는 여백 페이지로, 본문 없이 접수 도장만 세 개 찍혀 있다. 1947년 7월 11일 오후 3시 23분과 같은 날 오후 3시 55분에 FBI 사무처장 직속 라드(LADD) 라인이 두 차례 접수했고, 같은 달 7월 23일 오후 1시 39분에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다시 접수했다. 같은 자료가 FBI 본부 안에서 라드 라인을 거쳐 내부보안 담당으로 이관되는 회람 동선을 보여 준다.

  46. p.46

    FBI 파일 62-83894 에 끼워 둔 1947년 신문 기사 스크랩이다. 표제는 "'접시 (Saucer)' 이야기 — 원반 발견됐다", 부제는 "한 신부가 '쾅' 소리를 듣고 톱니 달린 원형 칼날을 발견 — 다른 원반도 '목격됐다'". 위스콘신주 그래프턴의 성 요셉 가톨릭 성당 신부 조셉 브랜스키가 일요일 새벽 성당 잔디밭에서 "이게 뭐지 (what is it?)" 라고 부르는 물체를 주웠다고 신문에 알린 이야기다.

    브랜스키 신부는 일요일 아침 5시쯤 집 앞문에서 개 산책을 시키려는 참에 "큰 폭죽 같은 '쾅' 소리" 를 들었고, 밖으로 나가 성당 잔디밭에서 톱니 모양 가장자리에 두께 약 1/8인치, 직경 몇 인치의 강철 원반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비에 잔디가 젖어 있었는데도 원반은 너무 뜨거워 맨손으로 들 수 없었고, 성당 피뢰침 한 개의 풀이 떨어져 있어 "피뢰침에 부딪혀 떨어진 모양" 이라고 추측했다. 원반 가운데에는 1과 3/8인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거기서 나온 전선 끝에는 3인치짜리 소형 콘덴서처럼 보이는 부품이 검은 테이프로 감겨 있었으며, 표면에는 "Approved Foster" 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신부는 일요일 중에는 교구민 누구에게도 원반을 보여 주지 않았고, 아는 FBI 요원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짓궂은 장난일 가능성을 묻자 "그럴 수도 있다, 모르겠다" 라고만 대답했다. 기사 뒷부분은 브랜스키 신부가 평소 잡동사니 수집과 낚시를 즐기며 "Fish Tales" 라는 책자를 펴낸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신부는 자신의 발견이 전국에서 보고되는 "플라잉 디스크" 중 하나라고 주장하지 않고 "그냥 '이게 뭐지?' 라고 부르자" 라고 말했다.

    같은 기사는 그 주말 밀워키 일대에서 들어온 다른 "플라잉 소서" 목격담도 함께 묶었다. 사우스 레이턴가 2421번지의 호프만 부부는 일요일 저녁 9시 30분쯤 빌리 미첼 비행장 쪽에서 "작은 금속 접시" 한 개가 비스듬히 날다 방향을 틀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디트로이트의 글렌 크네첸은 같은 밤 10시 35분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빌리 미첼 비행장 상공에서 직경 3.5인치쯤 되는 원반이 30초간 보였다고 진술했다. S. 25번가 5044번지의 윌리엄 험프리는 자기 집 근처 들판으로 약간 빛나는 원반이 떨어지는 것을 봤고, 사진까지 찍었다고 했다. N. 19번가 1326번지의 어윈 호프만은 일요일 오후 4시 북서쪽 하늘에서 세 개의 원반이 주황색에서 금색, 다시 은색으로 색을 바꾸며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위스콘신 제인스빌의 보너트 부부와 코크 부부 네 명은 토요일 밤 11시 35분쯤 시가 형태의 원반이 "보름달 크기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며 10분간 떠 있는 것을 함께 지켜봤고, 한 번은 약 2분 동안 공중에 멈춰 있었다고 진술했다.

    페이지 아래 여백에는 FBI 접수 도장이 여러 개 겹쳐 찍혀 있다. "ENCLOSURE", "RECORDED 4/12 32 JUN 16 1947", 사건 파일 번호 "62-83894" 가 빨간 손글씨로, 그리고 맨 아래에는 "80 OCT 1 1947 273" 도장이 보인다. 이 기사 자체가 별도 사건 메모 없이 FBI 파일에 첨부 자료로 편철되었다는 표시다.

  47. p.47

    1947년 무렵 미국 신문에서 오려낸 세 꼭지 기사로, 한 스크랩북 페이지에 풀로 붙어 있다. 왼쪽 단은 위스콘신 지역의 비행 원반 목격담 모음이다. 1면 2단에서 이어지는 글에서, 신부 한 명이 발견했다는 원반은 결국 원형 톱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제인즈빌 경찰에는 딕 톰슨이라는 사람이 일요일 새벽 12시 15분경 비행 원반을 봤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오슈코시에서는 L. A. 데이비스 부인이 남편과 함께 일요일 오후 6시 45분 도시 상공에서 회전하는 원반을 봤다고 진술한다. 오슈코시 서쪽 10킬로미터 거리 시골길에서 동쪽으로 달리던 중, 빠르고 높이 나는 물체를 처음 발견했고, 처음에는 비행기처럼 보이다가 점점 커져 "태양만 한 크기"로 다가왔다고 한다. 남편이 차를 세우고 내렸을 무렵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린 베이에서는 유진 르 플랜트가 12살 아들 던과 함께 수요일 오후 4시 35분 도시 서쪽 정원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은빛 공 혹은 원반을 3, 4분간 관찰했고, 고도나 거리는 알 수 없지만 "분명 비행기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가운데 단은 AP 통신 과학 편집자 하워드 W. 블레이크슬리의 뉴욕발 해설이다. 비행 원반은 시각의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거리 한계 부근의 물체는 어떤 형태든 둥글어 보이고, 보고된 사례 대부분처럼 반사광으로 보일 경우 더욱 그렇다. 햇빛 반사라면 보고된 크기 또한 먼 거리 광원에서 예상되는 수치와 맞아떨어진다. 둥글고 납작하다는 묘사도 눈이 부리는 착시와 일치하며, 이 착시는 날씨와 조명에 따라 달라진다. 필자 본인 역시 롱아일랜드 해협 상공에서 올해뿐 아니라 이전 해에도 둥글고 밝게 빠르게 움직이는 "비행 원반"을 봤지만, 그것은 항로를 바꾸거나 가까이 다가오며 정체를 드러낸 비행기 동체의 반사광에 불과했다고 적는다.

    오른쪽 아래 꼭지는 필라델피아발 짧은 기사로, 헝가리어 신문 편집자 아우렐 아첼 박사의 견해를 전한다. 그는 비행 원반의 정체가 신기루, 즉 멀리 떨어진 실제 비행기가 원형으로 굴절돼 비친 반사상일 수 있다고 본다. 세계 곳곳을 다닌 그는 이집트 사막과 우크라이나 평원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봤고, 해상에서는 멀리 떨어진 배의 신기루를 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특히 6월부터 8월 사이 대기 조건이 신기루를 만들어내기 쉽다는 설명이다.

  48. p.48

    기록철에 끼워진 신문 사진 한 장이 전부인 페이지다.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이 야외에서 큰 원형 톱날을 두 손으로 들고 들여다보는 장면으로, 배경에는 건물 처마와 전선이 보인다. 사진 아래쪽 여백에 손글씨 서명과 메모가 흐릿하게 남아 있지만 판독은 어렵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사진 그 자체가 페이지의 내용이다.

  49. p.49

    신문 스크랩이 한 장 붙어 있는 페이지다. 윗단에는 "Sharp-Eyed Sight Disks, but Only a Saw Blade Is Found" 라는 헤드라인이 가로로 길게 박혀 있고, 그 아래로 두 장의 흑백 사진이 위아래로 이어진다. 위 사진은 항공기 동체 옆에 한 정비사가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살피는 장면이고, 아래 사진은 젊은 여성 세 명과 남성 한 명이 모여 서서 한 여성이 손을 들어 무엇인가를 가리키며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기사 본문은 잘려 있고 사진과 헤드라인만 남아 있는 클리핑 페이지다. 헤드라인은 1947년 플라잉 디스크 소동을 비꼬는 톤 — 눈 밝은 목격자들이 본 것은 비행 원반이었지만 실제로 회수된 것은 톱날 한 장뿐이었다는 — 으로 읽힌다.

  50. p.50

    밀워키 저널(Milwaukee Journal) 사진 캡션 기사 조각이 페이지 한가운데 붙어 있다. 1947년 "플라잉 디스크" 소동 한복판에 찍힌 일요일 사진들을 설명하는 글로, 그해 최대 미스터리가 무엇이며 어디서 누가 보았는지 묻는 첫 줄로 시작한다. 캡션은 두 장면을 짚는다. 왼쪽 위 사진은 오리건주 포틀랜드 인근에서 발견된 P-51 머스탱 전투기에 디스크 모양 물체가 장착된 모습으로, 오리건 주 방위군이 비행 원반 추적에 나설 준비를 하던 상황을 보여준다. 그 아래 사진에는 워싱턴주 스포캔의 맥스 월터 존슨이 자녀들과 함께 아이다호의 한 산 너머로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증언하는 장면이 담겼다. 두 번째 단락은 위스콘신주 그래프턴 성 요셉 가톨릭 교회 신부 조지프 브래들리가 일요일 새벽 자기 교회를 친 "디스크"라며 들고 나선 물체에 대한 후일담이다 — 알고 보니 톰슨 회전 톱날을 박은 낙하산 조각이었다는 것이다. 캡션은 또 밀워키 시민 다수가 일요일 밤 비행접시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고 신고했다고 덧붙인다. 맨 끝에 "AP 무선사진·저널 자체 취재"라는 출처 표시가 붙는다. 페이지 위쪽 가운데에는 검은 사각형 표시가 하나 찍혀 있고, 아래쪽 여백에는 손으로 쓴 짧은 메모와 작은 낙서가 남아 있다.

  51. p.51

    밀워키 센티넬(Milwaukee Sentinel) 1947년 7월 8일자 「36개 주에서 목격되다 — 제트 전투기 경계 태세」 기사 스크랩이다. AP 통신 샌프란시스코 발로 시작하는 기사는 12일째 미국 전역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비행 원반" 을 군용기가 태평양 연안 상공에서 쫓고 있다고 전한다. 오리건 주방위공군 머스탱 5대가 처음 목격이 나온 워싱턴 케스케이드 산맥 위를 돌았고, 6번째 기체는 포틀랜드 상공을 선회하며 다섯 대와 무선 교신을 유지했다. 모두 촬영 장비를 싣고 있었다. 지휘관 G. R. 도드슨 대령은 이를 "통상 초계" 라고 부르면서도 원반을 살피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머스카틴 비치에서는 A. P. 매킨리가 머스탱을 몰고 반 누이스 상공 9,000여 미터에서 두 시간을 비행했지만 "아무것도 못 봤다" 고 했다. 미 육군 항공대 사령관 칼 스파츠 장군은 태평양 북서부에서 낚시 중이라 며칠간 소식을 끊었다고 밝혔지만, 외국전참전용사회(VFW) 사령관 루이스 E. 스타는 스파츠가 "지금 한 팀" 을 띄워 원반을 찾고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 뮤록 육군비행장에서는 P-80 제트기 한 대가 인근에서 원반이 보이는 즉시 이륙할 수 있도록 대기 중이었다. 공식·과학계 모두 신중한 가운데, 워싱턴 공보장교 톰 브라운 대위는 항공대가 "뭔가 있다" 고 판단해 열흘째 조사 중이라고 인정했다.

    기사는 이어 6월 25일 처음 목격된 뒤로 36개 주에서 매일 보고가 이어졌고 7월 4일에 가장 많이 보였다고 정리한다. 민항기 조종사 같은 신뢰할 만한 관측자들도 항공기보다 크고 고속으로 편대를 이루는 정체불명의 원반을 봤다고 한다. 원자력위원회 위원장 데이비드 릴리엔솔은 원자력 실험과 무관하다고 못 박았고, 육해군 당국도 부인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측은 "원자력 전환 실험" 과 관련될 수 있다는 보도가 잠시 화제가 되자 곧바로 부인했다. 보고를 종합하면 원반은 둥글거나 타원형이며 시속 300~1,200마일, 3,000여 미터 이하 고도에서 출렁이듯 비행했고 빛을 내거나 발광체로 보였다는 묘사도 있었다. 세인트루이스 정비사 노바 하트는 패튼빌 근처에서 90여 미터 고도로 나는 한 대를 보았다고 했고, 갈비뼈 형태의 골격과 은회색 표면, 중앙에 프로펠러가 달린 모터로 천천히 회전했다고 묘사했다. 첫 보도의 출처는 6월 25일 케스케이드 상공에서 시속 1,200마일로 편대 비행하는 원반 아홉 대를 봤다고 알린 아이다호 보이시의 사업가 조종사 케네스 아놀드였다. 그의 진술은 처음엔 "반사광", "잔상", "설맹" 등으로 가볍게 치부되었지만 곧 뉴멕시코·미주리·캘리포니아 등으로 목격담이 번졌고, 7월 4일 아이다호에서는 한 무리 200명이 동시에 봤다고 했으며 같은 날 미시시피 강 동쪽에서도 첫 보고가 들어와 결국 33개 주로 확산됐다고 한다. 마지막 짧은 런던 발 박스 기사는 영국 쪽 분위기를 옮긴다 — 영국인들은 미국의 멀쩡한 시민들이 본다고 해도 누군가가 한 대를 격추해 프랑스 리비에라나 영국 대사, 대법관이 직접 사진을 찍어 보여주기 전까지 믿지 않을 거라며, 일요일자 선데이 디스패치가 "미국판 네스호 괴물" 이라고 비꼬았다는 내용이다.

    스크랩 우측 하단에는 FBI 파일 표식이 함께 찍혀 있다 — ENCLOSURE 도장, RECORDED 도장에 손글씨로 적힌 사건 번호 "62-8 3894", 그리고 "80 OCT 1 - 1947" 처리 일자.

  52. p.52

    1947년 7월 7일자 밀워키 저널에 실린 UP 통신 기사 한 면을 그대로 오려 붙인 페이지로, 헤드라인은 '비행기들이 원반을 쫓았으나 빈 하늘만 발견했다'이다. 기사 본문은 7월 초 미 전역으로 번진 '비행접시' 소동을 정리한다. 육군 조종사들이 망원 카메라를 단 비행기 열한 대로 일요일 태평양 북서부 일대를 수색했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사우스다코타 수폴스에서는 그레고리 스토니어가 짧은 꼬리 달린 은빛 원반이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봤다고 신고해 주방위군 비행기가 공중에서 즉시 출동했지만 역시 허탕이었다. 캐스케이드 산맥 일대 '카메라 순찰'에는 P-51 추격기 여덟 대와 A-26 폭격기 세 대가 동원됐다.

    장난과 착시 정황도 함께 정리된다. 일리노이 이스트세인트루이스 상공을 빙빙 돈 '원반'들은 기관차 기관사 J. T. 하틀리가 주워보니 지름 11인치, 가운데 2인치 구멍이 뚫린 백색 압축 종이로, 철도 노동자들은 기관차 패킹 와셔를 닮았다고 했다. 버밍햄의 한 라디오 방송국은 한 시간 만에 형광빛 공이 도시 위에 떠 있다는 전화를 400통 넘게 받았는데, 인근 앨라배스터의 카니발이 구름에 서치라이트를 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로다이에서는 정전 직전 하늘에서 본 빛과 굉음의 정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졌다.

    버지니아 뉴포트뉴스의 페닌술라 공항은 게시판에 '본 공항 항공기와 비행접시 사이에 수직·수평 2,000피트 이격을 의무화한다'는 공지를 내걸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달링턴의 변호사 J. C. 월리스 주니어는 육군 추격기가 V자 편대의 비행접시를 시속 250마일로 2,000피트 상공에서 쫓는 광경을 봤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추격에 나섰다는 조종사는 없었다.

    신고는 환상에 가까운 영역까지 갔다. 시카고의 한 여성은 다리 달린 비행접시가 자기 현관 앞에서 얼굴을 때리려 달려들었다고 진술했고, 덴버의 조지 쿠거는 성조기가 그려진 원반을 봤다고 했다. 애리조나 템피의 프랜시스 하월은 지름 60센티미터쯤 되는 접시가 집 근처 나무 뒤로 사라졌다고 했고, 아이다호 세인트메리스에서 휴가를 보내고 스포캔으로 돌아온 월터 존슨 부인은 신문 기사를 읽고 나서야 일행과 함께 본 '방 네다섯 개 크기'의 반짝이는 물체가 산속으로 사라진 일을 알아챘다고 했다. 뉴욕주 첫 신고는 로체스터의 L. 케네스 월시 부인 부부의 8시 30분 저녁 뒷마당 목격이었다.

    페이지에는 'ENCLOSURE'(첨부) 도장과 함께 FBI 파일 번호 '62-83894-' 가 손글씨로 추가됐고, '32 JUL 16', '7/7/47', 'OCT 1 - 1947' 등 접수·기록 일자가 도장으로 찍혀 이 신문 스크랩이 FBI 파일에 첨부물로 편철됐음을 보여준다.

  53. p.53

    신문 스크랩 한 조각이 페이지 가운데에 붙어 있다. 1947년 무렵 뉴저지 주민들이 토요일 밤 늦게 팰리세이드파크 상공에서 비행 원반을 보았다고 "생각했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클리블랜드 상공에서 보였다는 "디스크" 목격담을 회의적인 과학자들이 어떻게 설명했는지 정리한 기사다. 하이비라는 인물이 회수한 "글래스 쿨러" 중 하나는 레이더 반사체였고 나머지 목격담은 순전한 상상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식이다.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원반이 보고된 고도인 2만 5천~3만 피트에서 그런 물체가 실재하려면 지름이 50~60피트는 되어야 하고, 상당한 금속 질량이 필요하며, 야간에 더 눈에 띄어야 하고, 아직 관측된 적 없는 급격한 진로 변경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카고 애들러 천문관 관장 J. H. 티너와 클리블랜드 카네기 공대 기상학과 책임자는 보고들이 상상의 산물이라고 보는 쪽으로 기울었다. 워싱턴 육군 항공대의 톰 브라운 대위는 육군이 보고 내용을 끝까지 추적하는 중이라며, 그 정체가 무엇인지 논의하는 단계가 아니라 전체가 한낱 장난일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54. p.54

    1947년 7월 6일 로스앤젤레스발 신문 기사 스크랩으로, 헤드라인은 "미군기, 원반을 추적하다 — 러시아인이 '원자 비행접시' 이야기를 들려주다" 이고, 부제는 "FBI, 소련 선박 장교의 이야기를 조사하다" 다. 기사 본문에 따르면, 익명의 편지 작성자가 로스앤젤레스 항구에 정박한 소련 유조선의 한 장교에게서 들었다며 LA 이그재미너지에 제보한 내용을 연방요원들이 조사 중이고, 이 신문이 자문한 한 일급 원자물리학자는 "전부 헛소리는 아니다"라며 FBI 에 넘기라고 권했다고 한다.

    편지 작성자가 전한 소련 장교의 설명은 이렇다. 소련에는 초음속 원자력 추진 비행체가 있는데, 두께는 18인치에 불과하고 신장 모양의 윤곽에 프로펠러가 없으며, 조종사는 엎드린 자세로 공기 마찰열을 인공 냉각으로 견딘다. 외피는 매끄럽게 광을 냈고 위아래 면이 모두 거대한 렌즈처럼 볼록하다. 양력은 약 18년 전 한 러시아 화학자의 미발표 논문에서 발견된 전혀 다른 원리에서 나오며, 상승할 때만 동력이 필요하고 지구 중력 등고선을 따라 수평으로 날 때는 추가 동력이 필요 없다고 했다.

    같은 장교는 또 북극에서 통제된 방사능 구름으로 실험한 이야기를 했는데, 새와 짐승은 물론 벌레까지 모두 죽었다고 한다. 본인은 바이칼호 근처에서 방사능 구름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죽은 동물을 회수하는 임무를 맡았고 "매우 위험한 작업"의 대가로 18파운드 분량의 무언가를 받았다고 했다. 작은 배 여러 척에 동물을 가득 실은 뒤 구름을 그 위로 흘려보냈는데, 갑작스런 폭풍에 구름이 북쪽 툰드라 지역으로 밀려가 흩어지기 전 지나가는 길의 모든 생명을 죽였다. 구름은 지상이나 비행기, 또는 무인 "선도기"에서 전자기파로 제어할 수 있으며, 운반체와 살상체 두 성분으로 구성된다는 설명이다.

    편지 작성자는 윌밍턴에서 이 장교를 만나 러시아 이야기를 듣고 싶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고 적었다. 페이지 우측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 "RECORDED 62-83894-13" 과 "32 JUL 16 1947", "60 OCT 11 1947" 일자 도장이 찍혔고, 손글씨로 출처가 "Milwaukee Sentinel, Milwaukee, Wis, July 7, 1947" 로 적혀 있어, FBI 가 LA 이그재미너 원본 기사를 밀워키 센티넬 지면 복사본 형태로 보관 처리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55. p.55

    AP 통신 과학 편집자 하워드 블레이크슬리가 1947년 7월 6일 뉴욕발로 송고한 기사로, 미국 전역에서 보고되는 비행 원반 목격담의 상당 부분이 사람의 시각이 가진 특유의 한계로 설명된다는 주장을 펼친다. 시야의 한계 부근에서는 어떤 모양의 물체든 둥글거나 거의 둥글게 보이는데, 비행 원반이 햇빛을 반사하는 빛점으로 멀리서 관찰되는 경우 대부분 둥근 원반처럼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목격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구조가 없고 그저 둥글고 납작했다 는 묘사는 멀리 떨어진 비행기·새의 무리·반사광이 만들어내는 착시와 정확히 들어맞는다고 본다. 필자는 자신이 롱아일랜드 사운드 상공에서 여러 차례 비행 원반을 보았으나 결국 모두 빛을 반사하던 비행기로 밝혀졌다고 적었고, 최근 한 차례는 시애틀 북부에서 프랭크 라이먼이 촬영해 화제가 된 타원형 물체와 똑같이 보이던 형체가 가까이 다가오자 비행기로 드러났다고 회상한다. 다만 시속 1,000마일이 넘는다는 보고된 속도는 유성·얼음 결정 구름으로도 설명되지 않으며, 과학·원자 연구 어디에서도 단서를 찾을 수 없으므로 결국 항공기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결론짓는다. 한 과학자는 나도 봤어 라며 동조하는 암시 효과 역시 상당수 목격을 설명한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의 1947년 10월 접수 도장과 FBI 파일번호 62-83894 표시는 이 신문 스크랩이 FBI 비행 원반 수사 파일에 첨부물(ENCLOSURE)로 편철되었음을 알린다.

  56. p.56

    1947년 7월 무렵 미국 위스콘신주 지역 신문에 실린 기사 스크랩이다. 헤드라인은 "'비행접시'가 여기로 날아왔다 — 그래프턴 디스크 농담"이다.

    위스콘신주 그래프턴의 성 요셉 교회 주임신부 조지프 브래스키가 새벽 다섯시쯤 휙 하는 바람 소리와 지글거리는 소음을 듣고 1초 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교회 피뢰침 끝의 공이 떨어져 있었고, 앞마당에는 지름 약 16인치짜리 원형 톱날이 떨어져 있었다. 톱날에는 전선과 짧은 관 두 개가 붙어 있었고, 신부가 집어들 때까지도 뜨거웠다. 누군가 — 장난꾼이거나 미국 독립기념일을 늦게 즐긴 사람들이 — 톱날에 폭약을 매달아 공중으로 날려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해석이 붙었다. 사진에는 브래스키 신부가 직접 톱날을 들고 피뢰침에 화살표를 그려 가리키는 모습이 실렸다.

    같은 시기에 위스콘신 곳곳에서도 비행접시 목격 신고가 잇따랐다. 한 흥분한 주민이 빌리 미첼 비행장으로 전화를 걸어 밤 10시 5분에 그랜빌 상공에서 비행접시 15대가 편대를 이뤄 북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다고 신고했는데, 이름을 남기지 않고 끊었다. 같은 시각 뉴욕-디트로이트-밀워키 노선 비행기에서 막 내린 한 승객은 노스웨스트 항공 사무실 직원들에게 비행장 근처에서 위아래로 움직이는 비행접시를 보았다고 말했고, 디트로이트의 J. W. 보그던이라고 이름을 밝혔다. 그는 플라자 호텔에 묵고 있다고 했다.

    밀워키의 어윈 로트먼은 19번가와 블리트가 모퉁이에서 꼬리가 달린 비행접시 세 개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했고, 색이 금색에서 다른 색으로, 다시 은색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메릴랜드 호텔의 프랭크 플라르는 어젯밤 8시 20분 미시간 호수 위에서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불덩이 셋을 보았다고 했고, 25번가의 윌리엄 험프리는 발광하는 비행접시가 몰 회사 공장 위를 지그재그로 날다가 인근 숲지대에 내려앉는 것을 봤다고 했다.

    위스콘신주 제인즈빌에서는 토요일 밤 알 시버트 부부와 하워드 로스 부부 등 네 명이 황금색 비행접시가 "엄청난 속도로" 북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20분 동안 함께 지켜봤다고 했다. 색이 가끔 은빛으로 바뀌었고, 꼬리가 나타난 직후 사라졌다는 진술이다. 밀워키의 기계공 존 스노치는 자정 직후 빌리 미첼 비행장 상공으로 번쩍이는 접시 모양 물체 두 개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며, 분명히 별똥별이나 비행기가 아니었다고 못 박았다.

    페이지 오른쪽 아래에는 FBI 접수 도장 "RECORDED 1-62-83894"와 1947년 날짜 손글씨, "DISCLOSURE"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57. p.57

    FBI 파일에 편철된 손글씨 쪽지 한 장이다. 빨간색 굵은 글씨로 "하! 하! 윈첼이 '비행접시' 비밀을 밝혔다. 너희는 우리와 윈첼 같은 우리 요원들에게서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이라고 적은 메모를, 종이 가운데에 그대로 붙여 두었다. 좌측 여백에는 누군가 연필로 "flying disco"라고 분류 메모를 달아 두었고, 하단에는 페이지 번호 166과 파일 식별자 162-RP94, 그리고 "Box" 표시가 보인다.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이 비행접시 관련 발언을 한 뒤 FBI 앞으로 전달된 익명 협박성 쪽지로 보인다.

  58. p.58

    문서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없고, 종이 위쪽에는 바인더 구멍 자국과 갈색 테이프 잔흔이 남아 있다. 아래쪽에는 거꾸로 찍힌 접수 도장이 보이는데, 4월 16일자 중앙 파일 접수 표시로 읽힌다.

  59. p.59

    1947년 7월 8일, 밀워키 지부 SAC(특별 책임자)가 FBI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또는 소서 — 기타: 1947년 7월 7일 오전 8시 30분 본부에서 플레처 씨의 전화 통보"이며, 첨부로 1947년 7월 7일자 밀워키 센티넬과 밀워키 저널 신문 기사 스크랩이 같이 올라갔다.

    발신자는 본부에 다음을 보고한다. 1947년 7월 7일 새벽 1시부터 2시 30분 사이, AP 통신과 UP 통신이 자신의 자택으로 서너 번 전화를 걸어왔다. UP 통신 기자는 조셉 브래스키(Joseph Brasky) 신부가 밀워키 센티넬의 빌 믹스(Bill Meeks, 음차) 기자와 인터뷰를 했고, 본인이 그 "콘트랩션(괴이한 장치)"에 대해 FBI에 직접 전화를 걸 예정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장치는 최근 전국에서 보도되던 플라잉 디스크 중 하나와 동일해 보인다고 한다. UP 측은 FBI가 이에 대해 입장이 있는지 물었고, 발신자는 "노 코멘트" 외에는 공식 입장이 없다고만 답했다.

    발신자는 평소 UP 측과 접촉이 있던 관계로 실제 내용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지만, UP 기자는 자세히는 모르고 다만 신부가 인터뷰에서 어떤 장치가 부착된 원형 톱이 발견됐다는 식으로 말했다고만 답했다.

    곧이어 AP 측에서도 전화가 왔다. 발신자가 같은 사안에 대해 "노 코멘트" 입장을 알리고 실제 사실관계가 무엇이냐고 묻자, AP 기자는 자기들이 파악한 바로는 원형 톱이 발견됐고, 그 이야기를 술이 잔뜩 취해 있던 한 신부에게서 얻은 것뿐이라고 했다. AP 측은 UP가 FBI의 수사 착수 여부를 긍정이든 부정이든 끌어내려는 의도가 있어 보였다고 발신자에게 알렸다. 발신자는 누군가가 자신의 발언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으며, 만약 그 이야기가 통신선을 타고 송고됐다면 어떤 기자가 사실을 과장하는 위치에 서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뒤 발신자는 다시 UP 측에 전화했고, 그 사이 AP가 UP에게 연락해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 한 정황이 있었다. UP는 같은 사안을 1947년 7월 7일자 밀워키 센티넬 기사로 돌렸지만, 발신자가 직접 확인한 밀워키 저널 기사에는 브래스키 신부가 "자기가 아는 FBI 요원에게 직접 연락을 시도했다"는 식의 진술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신부는 밀워키 FBI 사무소나 그 어떤 요원에게도 연락한 사실이 없다. 발신자는 결론적으로 이번 건이 또 다른 장난 기사일 뿐이라고 본다 — 신부가 톱과 함께 찍힌 사진까지 같이 실린 점을 볼 때, FBI 차원에서 별도 조사를 할 근거가 없다는 판단이다.

    하단에는 빨간 도장으로 파일 번호 62-3817-13이 찍혀 있어, 이 메모가 FBI 중앙 파일에 등록됐음을 보여 준다.

  60. p.60

    타이핑된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를 투과해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거의 판독되지 않는다. 하단에는 1947년 7월 14일 오후 3시 57분과 4시 25분에 FBI 법무부 내부보안과 실험실 부서, 그리고 같은 날 4시 25분 연락 부서로 각각 접수되었음을 보여주는 두 개의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고, 왼쪽 가장자리에는 연필로 흘려 쓴 짧은 이니셜과 "7-10"이라는 메모가 보인다. 페이지 자체가 독자적인 내용을 담기보다는 앞면 메모의 사무 처리 흔적을 보여주는 백지 뒷면 역할을 한다.

  61. p.61

    1947년 7월 7일 일리노이주 우드스톡에서 부친, 워싱턴 D.C.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보낸 편지 봉투다. 3센트 우표가 붙어 있고 좌측 상단은 푸른 잉크로 덧칠해 발신인 정보가 가려져 있다. 좌측에는 파일 철용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우측 가장자리는 찢겨 나갔다.

  62. p.62

    1947년 7월 일리노이주 우드스톡 호텔 편지지에 펜으로 쓴 시민 편지로, 수신인은 FBI 국장 후버다. 발신자는 신문에서 비행접시 기사를 더 봤다고 말문을 열며, 이 비행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러시아에서 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러시아가 단 한 번에 미국을 얼마나 완벽히 덮을 수 있는지 시험하고 있는 것 같으니, 비행접시가 목격된 지역을 보고받는 일은 후버 측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본인은 여행 중에 한 영매(spiritualist)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 사람이 어떤 부류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캐내려 했다고 적는다. 그 영매가 한 이야기를 옮긴다 — 러시아가 미국의 원자폭탄에 "독 방패"를 심을 것이고, 그것은 도시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 도시를 동시에 파괴할 것이며, 그 앞에는 비행접시가 "바퀴"처럼 앞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 영매는 이미 러시아가 한 번에 한 나라를 끝낼 수 있는 장치를 완성했다고 말했고, 최근 비행접시 목격담 일부는 뉴올리언스 부근에서 있었다고 덧붙였다고 한다. 발신자는 후버 측이 "감시 임무"를 통해 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가려달라고 요청하며, 우리가 (적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주고 있어 어리석다는 말로 다음 페이지에 이어 쓴다. 좌측 여백과 본문 위로는 FBI 접수 흔적이 겹쳐 찍혀 있다 — "RECORDED", "INDEXED", 그리고 1947년 7월 29일자 접수 도장. 페이지 우상단에는 사본 번호로 보이는 손글씨 표기가 있다.

  63. p.63

    이 페이지는 손글씨 편지의 뒷장으로, 앞장에서 제보한 여성의 신원과 글쓴이의 의견을 이어 적었다. 글쓴이는 먼저 "이 여성이 그저 들이대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고 운을 뗀 뒤, 제보자의 신원으로 미시즈 매 나스(Mrs. Mae Nass), 주소 밀워키 위스콘신 이스트 스테이트 스트리트 811번지(이후 W.로 정정), 전화번호 데일리 3136을 적어 두었다. 그다음에는 본인의 견해를 길게 이어간다. 우리는 왜 거의 파괴되고 나서야 움직이느냐, 3초 안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 전쟁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이며 최근 사건들에서 이미 그 징후가 보인다, 국방부도 이를 알아차려야 하며 지금은 잠들어 있을 때가 아니다, 모든 총기를 한순간에 발사할 수 있도록 정비해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러시아가 우리를 단 한 방에 무너뜨리려 한다면, 우리가 먼저 큰 규모로 한 방 먹이는 것 외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주장으로 마무리하고, 그 아래 'Sincerely'라는 서명 도입어로 편지를 닫는다.

  64. p.64

    일리노이주 우드스톡의 호텔 우드스톡(Hotel Woodstock) 편지지다. 상단에 호텔 이름과 소재지, 전화번호, 위치 안내 같은 letterhead 정보만 인쇄되어 있고, 본문은 비어 있다.

  65. p.65

    문서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로, 본문은 비어 있고 여백 한쪽에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남아 있다. 두 도장 모두 1947년 7월 22일 같은 날 들어온 기록으로, 하나는 오전 10시 35분, 다른 하나는 오후 3시 14분에 접수된 것으로 보인다.

  66. p.66

    1947년 7월 11일 자 FBI 내부 메모. 발신자는 K. C. 하우, 수신자는 D. M. 라드,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Disc)". 그날 밤 10시 45분 워싱턴 현장사무소 직원 피어시가 전화를 걸어, 헨리치의 지시로 방금 막 들어온 첩보를 본부에 전달하고 싶다고 알렸다. 첩보 출처는 메릴랜드 로렐 6번가 200번지에 사는 앨빈 B. 파커라는 인물이고, 내용은 "비행 원반"이 방금 자기 집 마당에 내려앉았고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아직도 윙윙거린다"는 것이었다. 피어시는 파커가 너무 흥분해서 자기 이름조차 제대로 말하기 힘들어했고, 그 이상 자세한 내용은 받아낼 수 없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5분 뒤인 10시 50분, 하우는 이 정보를 G-2 당직사관 웨스트 대위에게 넘겼는데, 웨스트는 같은 정보를 다른 경로로도 이미 받았다며 적절한 육군 부서에 함께 전달하겠다고 답했다. 다시 5분 뒤인 10시 55분에는 AP 통신의 시드 로버츠가 전화를 걸어 "메릴랜드 로렐에서 비행 원반 신고가 들어왔는지" 물어왔고, 니컬스에게 확인한 뒤 그런 신고를 받았으며 이미 육군 당국에 넘겼다고 알려주었다. 메모 아래에는 빨간 글씨로 사건 파일번호 62-83894-15가 적혀 있고 1947년 7월 16일 자 "RECORDED & INDEXED" 도장과 7월 24일 자 접수 도장이 함께 찍혀 있다. 오른쪽 여백에는 톨슨·태머·래드 등 본부 간부진 회람 명단이 인쇄되어 있다.

  67. p.67

    1947년 7월 11일, FBI 내부 메모. 발신은 D. M. 래드, 수신은 E. A. 탬. 밀워키 지국 책임자 존슨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을 그대로 옮긴 보고다. 위스콘신주 블랙리버폴스의 민간항공순찰대 예비역 장교 해리 셰이퍼 대령이 존슨에게 연락했고, 셰이퍼는 7월 10일 오후 3시 30분 블랙리버폴스의 시 엔지니어 시그 핸슨이 17인치 크기의 원반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원반은 은색 항공기용 도료를 칠한 판지로 만든 듯했고, 가운데에는 튜브와 옆면에 프로펠러를 단 작은 모터가 붙어 있었다. 셰이퍼는 이 원반이 자체적으로 비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보았고, 물건은 항공대 본부로 넘길 예정이라고 했다. 다만 핸슨은 FBI의 승인 없이는 원반을 내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래드는 존슨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항공대 장교에게 셰이퍼와 직접 연락하라고 전하고, 이 물건은 FBI가 보관 중이지도 통제할 수 있지도 않으므로 FBI가 나서서 풀어낼 이유가 없다고 알릴 것. 언론도 이 사안을 두고 문의해 오고 있다고 존슨이 전했는데, 래드는 언론에 대해서는 일체 코멘트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문서 우상단에는 톨슨·탬·클레그 등 19명에게 회람된 명단이 인쇄되어 있고, 우측에는 큰 글씨로 Q.I.R.6 도장과 162-83984-16 기록번호가 함께 보인다.

  68. p.68

    1947년 7월 12일 자 미 정부 부처 내부 메모. 발신자는 F. P. 그리핀(F. P. Griffin), 수신자는 래드(Ladd) 씨,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그리핀은 7월 11일 자 호우(Howe)의 메모를 참조하며 다음을 보고한다. 7월 11일 밤 11시 55분에 메릴랜드주 로럴 경찰서의 로니스(Lonis) 경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로니스 경사는 문제의 '플라잉 디스크'를 직접 살펴봤다고 말했다. 그것은 걸프 오일(Gulf Oil) 간판과 쓰레기통 뚜껑으로 만든 물건이었으며, 최근에 알루미늄 페인트로 칠해졌다. 페인트가 아직 마르지 않아 최근 칠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는 건전지, 손전등 전구, 전선 몇 가닥, 부저가 붙어 있었다. 로니스 경사는 FBI에서 직접 와서 볼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리핀은 보내지 않을 것이며 이미 육군에 사건을 넘겼으니 그쪽으로 연락하라고 안내했다. 이어서 그리핀은 G-2(육군 정보부)의 당직 장교 캘버트(Calvert) 대위에게 전화해 로니스 경사가 알려온 내용을 전달했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62-83894-17, 1947년 7월 17일)과 7월 24일 자 접수 도장, 그리고 푸른 잉크 서명이 함께 찍혀 있다.

  69. p.69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에 찍힌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헤더와 타자기 본문이 종이 너머로 희미하게 비쳐 보일 뿐, 이쪽 면 자체에 적힌 내용은 없다. 다만 페이지 아래쪽에 FBI 접수 도장이 두 개 거꾸로 찍혀 있다. 하나는 1947년 7월 23일 오후 3시 21분에 법무부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접수했다는 표시, 다른 하나는 그보다 앞선 1947년 7월 14일 오전 10시 9분에 FBI 연락과(Liaison Section)가 접수했다는 표시다. 이 문서가 FBI 안에서 두 부서를 차례로 거쳐 처리됐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70. p.70

    1947년 7월 8일 오후 6시 17분, FBI 댈러스 사무소가 본부장과 신시내티 SAC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제8공군 본부의 커튼 소령이 전화로 알려온 내용을 그대로 전달한다. 같은 날 뉴멕시코 로즈웰 인근에서 비행 원반이라 일컬어지는 물체가 회수됐고, 모양은 육각형이며 약 20피트 지름의 풍선에 케이블로 매달려 있었다. 커튼 소령은 회수된 물체가 레이더 반사기를 단 고고도 기상 관측 풍선과 닮았다고 덧붙였지만, 자기 사무소와 라이트 필드 사이의 통화는 그 추정을 확정해 주지 못했다고 했다. 원반과 풍선은 검사를 위해 특별기 편으로 라이트 필드로 옮겨지는 중이고, 전국 방송망(NBC)·AP 통신사 등이 발견 장소 기사를 터뜨리려 하고 있어 사안의 전국적 관심을 고려해 FBI에 알려준 것이라고 한다. 커튼 소령은 라이트 필드에 검사 결과를 신시내티 사무소로 통보해 달라고 요청할 예정이며, FBI 자체로는 더 이상 조사하지 않는다고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에는 1947년 7월 28일 자 접수 도장(62-83894-18)과 송수신 확인 코드, 우측 여백의 서명·라우팅 메모가 함께 남아 있다.

  71. p.71

    전문 용지 뒷면이다. 분홍색 종이에 1947년 7월 8일과 9일에 걸쳐 미 법무부 통신실·텔레타이프 접수실 등 여러 부서를 거치며 찍힌 접수 도장이 겹겹이 남아 있다. "RECEIVED TELETYPE UNIT — JUL 8 8 22 PM '47 — U.S. DEPT. OF JUSTICE" 도장이 가장 또렷하고, 그 아래로 통신실(Communications) 도장 등 시각·날짜가 다른 접수 표시가 거꾸로·옆으로 여러 번 찍혀 있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72. p.72

    1947년 7월 7일 오후 3시 2분, FBI 뉴올리언스 지국이 FBI 국장에게 '극히 긴급(WEST URGENT)' 등급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기타'. 루이지애나주 슈리브포트 텍사스 애비뉴 1554번지에 사는 F. M. 해리슨이 같은 날 6시 5분에 자기 방향으로 다가오는 원형 디스크를 목격했다고 신고했고, 디스크는 텍사스 애비뉴 1500번대 블록에 떨어졌다. 헤어스턴이 1554번지에서 디스크를 주웠다. 공중에서는 빙빙 돌고 있었고 디스크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였으며, 착륙하자 불은 꺼졌고 몇 초 뒤 연기가 났다. 주워 보니 뜨겁지 않았다. (이름 한 곳 redacted) 가 곧바로 바크스데일 공군기지에 알렸고, 디스크는 헤니그 특수요원에게 인계됐다. 형태는 지름 16인치의 얇은 알루미늄 원반으로, 지름 끝 양쪽에 지름 2인치·길이 4인치짜리 작은 코일이 달려 있다. 코일은 구리선 두 가닥으로 각 코일의 단자 두 개에 연결되고, 원반 중앙에서 십자로 만나 지름 1인치·길이 2인치의 형광등 스타터처럼 생긴 물체에 이어진다. 그 중앙 물체 윗면에는 'MADE IN USA' 라고 찍혀 있다. 비행 중에는 경찰관 호각 같은 소리를 냈고, 매끄러운 면이 지면을 향해 있었다. 바크스데일 측은 위험하지 않다면 FBI 가 원할 경우 상부 지시에 따라 인계하겠다고 했다. 요원 도착 전에 디스크를 만진 사람들의 이름은 모두 확보했고, 바크스데일 기지에서 사진 촬영 중이며 인화본을 본부로 보낼 예정이다. 마지막 줄에 '언론도 사건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본다' 고 적었다. 분홍색 텔레타이프 용지 오른쪽 여백에는 'SAC', 'Mr. Harvey' 등의 수신 라우팅 메모가 손글씨로 달렸고, 본문 하단에는 빨간색으로 FBI 파일 번호 '62-52294-19' 스탬프가 찍혀 있다.

  73. p.73

    분홍색 라우팅 슬립의 뒷면 스캔이다. 상단과 하단에 미국 법무부(U.S. DEPT. OF JUSTICE)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고, 슬립 번호 칸과 'RECEIVED' 표시가 보이지만 손글씨 부분은 흐려 판독하기 어렵다. 본문 텍스트 없이 행정 처리 흐름만 남긴 페이지다.

  74. p.74

    1947년 7월 10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뉴저지 저지시티 센트럴애비뉴 349번지의 L. C. A. 회르쉬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다. 7월 6일 자 편지를 잘 받았으며 정보를 알려준 것에 감사하고, 관심에 사의를 표한다는 두어 줄짜리 의례적인 답장이다. 좌측 상단에는 문서번호 62-83894-20과 EX-53 정리 표시가, 하단에는 1947년 7월 11일 오후에 발송 처리되었다는 통신과 발송 도장과 같은 해 8월 6일자 접수 표시가 함께 남아 있다.

  75. p.75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자체에는 본문이 없고, 페이지 하단에 거꾸로 찍힌 보라색 FBI 통신과·우편실 접수 도장이 보인다. 도장은 1947년 7월 11일 오후에 FBI 법무부 측이 해당 문서를 우편으로 발송·접수했다는 사실을 기록한다. 종이 앞면의 활자가 뒷면으로 희미하게 비쳐 보이지만 판독은 어렵다.

  76. p.76

    1947년 7월 6일, 뉴저지 애즈베리파크의 매크레이놀즈 호텔 편지지에 손글씨로 적어 워싱턴 D.C. FBI 앞으로 보낸 제보 편지다. 발신인은 저지시티 센트럴애비뉴 349번지에 거주하는 시민으로, 7월 4일에 본 "플라잉 디스크"를 신고하려고 펜을 들었다고 적었다. 처음에는 애즈베리파크의 댄스홀 쪽에서 떠오른 풍선인가 싶었지만, 일정한 속도로 분명한 방향을 잡고 움직였고, 총알이 그리는 궤적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더 가파르게 위로 올라가더니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사라졌다고 묘사한다. 같은 시간 댄스홀에 있던 밀러라는 여성 둘과 테드 보넬도 함께 목격한 것 같다고 덧붙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며 서명으로 편지를 맺는다. 왼쪽 여백의 파란 글씨 "Flying Disc"와 오른쪽 아래 "L.C.H. Hoersch" 메모, 그리고 7월 10일 자 NMC ack 표시는 FBI 접수 직원이 분류·확인 도중 남긴 흔적으로, 이 제보가 일선 시민 편지로 접수되어 사건 파일에 묶였음을 보여 준다.

  77. p.77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힌 빈 종이의 뒷면이다. 도장에는 수신자가 존스(Mr Jones)이며 1947년 4월 8일 오후 1시 50분 법무부 FBI에 접수되었다고 나와 있다. 본문은 없고, 상단 가장자리에 서류 묶음 구멍 두 개가 보인다.

  78. p.78

    시카고 손 거리 1734번지의 M. T. 노리스가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서한의 사본이다. 노리스는 신문 보도를 금지 하라는 건 아니지만, 비행 원반의 정체와 출처가 분명해질 때까지 모든 언론사가 협조해 그 뉴스를 지면에서 빼주도록 요청해달라고 후버에게 권한다. 국경 안팎으로 적이 많은 지금, 그 원반들이 처음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일 수 있다는 게 노리스의 생각이다. 본인은 이번 전쟁에 아들 둘을 보냈고, 한 명은 더 무리해서 미국을 위해 싸웠다고 적는다. 죽거나 다친 사람이 이미 충분하니 이제부터는 정말로 위험에서 보호받았으면 한다고 호소한다. 기자들에게 FBI 외에는 보도하지 않는 편이 훨씬 분별 있다 는 점을 납득시킬 수 있었다면, 신문들이 왜 그 이야기를 실은 거냐고도 묻는다. 어차피 앞으로 닥칠 위험이 너무 많다는 한 줄로 끝맺고, Hastily 라고 서명했다. 좌측 하단의 TRUE COPY 표시는 이것이 FBI 내부에서 만들어진 원본 서한의 사본임을 알려준다.

  79. p.79

    1947년 7월 11일 R. B. 플레처가 D. M. 래드에게 보낸 FBI 내부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뷰트 지국 SAC 배니스터가 정오에 전화로 전달한 보고를 옮긴 내용이다. 아이다호주 트윈폴스 7번가 동쪽 215번지에 사는 이스터브룩 부인이 그날 새벽 2시 45분(산악 표준시) 집 뒤쪽에서 충돌음 같은 소리를 듣고 나가 보니, 옆집 뒷마당에 정체불명의 물체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물체는 지름 30½인치의 원반으로, 접시 모양으로 움푹 패어 있고 마치 심벌즈처럼 접시 안에 또 다른 접시가 포개진 형태였다. 한쪽 면에는 지름 14인치 정도의 플라스틱 돔이 8개의 볼트로 거칠게 고정되어 있었고, 볼트는 일반 스토브 볼트와 비슷했다. 반대쪽 면에는 또 다른 금속 돔이 있었는데, 바깥쪽은 금색이고 안쪽은 양철 같은 은색이었다. 플라스틱 돔 안으로는 라디오 진공관 비슷한 튜브 세 개와 약간의 배선이 보였다. 원반의 두께는 일반적으로 10인치 정도였고, 돔이 붙은 부분은 14인치 정도였다. 그 위에는 전기 코일 비슷한 물체가 달려 있었고 일종의 팔(arm)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Inspected TS"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배선 일부는 타 버린 상태였고, 무언가 빠져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배니스터는 만약 이것이 누군가의 장난이라면 상당히 공들인 장난이라고 말했으며, 이미 언론도 이 사건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원반은 회수되어 트윈폴스 경찰서에 보관 중이며, 그는 지역 육군 당국에도 이 사실을 알리도록 지시받았다.

    오른쪽 여백에는 FBI 내부 회람 명단 체크박스와 "Murray", "Fletcher" 등의 서명·이니셜이 손글씨로 남아 있고, 하단에는 RECORDED 62-83894-21, INDEXED 28, 1947년 7월 28일·30일 접수 도장이 보인다.

  80. p.80

    1947년 7월에 FBI 내부를 돌며 찍힌 수신 도장이 한 페이지에 모여 있는 뒷면 스캔이다. 7월 16일 오후 5시 9분 법무부 연락과 수신, 같은 날 오후 4시 39분 LADD 내부보안과 수신, 7월 17일 오전 9시 25분 LADD 사법부 수신, 같은 날 오전 10시 8분 FBI 수신, 오전 10시 21분 FBI 연구소부서 수신까지 — 문서가 16일 오후 법무부에 도착해 다음 날 오전 연구소까지 내려간 라우팅 흔적이 도장으로 남아 있다. 종이 자체는 비어 있고, 앞면의 "Office Memorandum, United States Government" 헤더와 본문이 비쳐 보이지만 판독할 수 없다.

  81. p.81

    1947년 7월 18일자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시카고의 C. T. 노리스에게 보낸 답장이다. 후버는 7월 7일자 노리스의 편지를 잘 받았으며, 그 안의 정보를 면밀히 검토해 FBI 영구 기록에 보존하고 있다고 알린다. 앞으로도 비슷한 정보가 있으면 시카고 뱅커스 빌딩 1900호의 시카고 지부 특별수사관에게 직접 연락하는 편이 편리할 것이라고 안내한다. 페이지 하단의 시카고 사본 메모에는 편지를 쓴 사람에 대해 FBI 파일에 식별 가능한 정보가 없으며, 이 편지가 "플라잉 디스크"를 언급하긴 하지만 군 당국에 회부할 만큼 중요한 정보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내부 판단이 적혀 있다. 좌측 하단의 1947년 7월 13일 발송 도장과 8월 13일 접수 도장이 이 회신의 처리 경로를 보여준다.

  82. p.82

    문서의 뒷면 스캔. 앞면 타자 본문이 종이를 통해 거울상으로 비쳐 보이지만 판독은 어렵다. 오른쪽 아래에 FBI 통신과 우편실(Communications Section Mail Room)이 1943년 7월 19일 오후 4시 44분에 접수 처리한 수신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상단에는 바인더용 펀치 구멍 두 개가 보인다.

  83. p.83

    두 장에 걸친 손편지의 가운데 부분이다. 발신인은 정체 모를 비행 물체에 대해, 그게 정확히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지 확실해질 때까지 신중해야 한다고 적는다. 미국 안팎으로 적이 그렇게 많은 상황에서, 처음 보기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안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발신인은 자신이 두 아들을 이 전쟁에 보냈고 또 한 아들은 미국을 위해 무리하다 잘못됐다고 밝히며, 우리는 정말로 이 나라가 위험으로부터 지켜지길 바란다고 호소한다. 이미 충분히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는데, 지금 와서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을 또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문들은 왜 기자들에 관한 그 이야기를 실었느냐고 따져 묻는 문장으로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본문은 군데군데 줄을 그어 지운 흔적이 있고, 단어를 고쳐 쓴 부분도 있어 즉흥적으로 써내려간 사적 편지임이 드러난다.

  84. p.84

    시카고 손 거주자 P. 노리스가 1734 손 애비뉴 주소를 적어 워싱턴 D.C. 의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손글씨 결로 보낸 편지다. 봉투 겉면 결로 보이는 면에는 후버의 이름과 워싱턴 주소 옆에 Flying Discs 라는 분류 메모가 따로 적혀 있고, FBI 가 접수 결로 RECEIVED 도장과 RECORDED 도장, 45-83894-43 결로 보이는 파일 번호를 매겨 두었다.

    편지의 본문은 두 가지 부탁으로 짜여 있다. 노리스는 먼저 비행 원반 목격담을 일반에게 신고하기보다 FBI 한 곳에만 알리는 쪽이 훨씬 분별 있는 결로 보인다고 말한다. 앞으로 위험이 너무 많이 닥쳐 오기 결문에 차라리 그렇게 처리하는 쪽이 안전하다는 취지다. 이어 후버에게 한 가지 직접 부탁을 덧붙인다. 신문사들이 비행 원반 관련 보도를 내지 않도록 금지 하는 결까지는 아니더라도, FBI 가 모든 신문사의 협조를 구해 이런 비행체에 관한 소식이 지면에 오르지 않도록 막아 달라는 것이다. 끝은 Hastly (Hastily) 라는 한 단어와 서명, 주소로 닫는다.

    도장 결로 보아 시카고 FBI 결로 접수된 뒤 본부 결로 송부되어 플라잉 디스크 파일에 편철된 일반 시민 제보다.

  85. p.85

    1947년 7월 10일, FBI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장 후드의 보고를 받은 로이 E. 우드 요원이 래드 부장 앞으로 올린 내부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디스크) 관련 정보". 우드는 후드가 새벽 5시 45분에 본부로 전화를 걸어, 전날인 7월 9일 밤 11시 30분쯤 캘리포니아 버뱅크 주재 요원이 받은 신고를 전달했다고 적었다. 신고 내용은, 버뱅크 또는 로스앤젤레스 시 경계 부근에 "비행 원반"이 떨어지면서 불이 붙어 숲에 화재가 났고, 버뱅크 소방서장이 주재 요원에게 직접 연락해 원반을 보관해두겠다고 알렸다는 것이다. 정확한 추락 지점이 버뱅크 안인지 로스앤젤레스 시계 안인지는 후드도 확신하지 못했다. 같은 시각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에는 신문사들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신문 기자들은 미 육군 항공대 정보부에 먼저 문의했는데, 정보부 쪽 답이 "우리는 관심 없다"였다는 것이다. 후드는 이 한마디가 기자들을 자극했고, 신문사들이 이 발언을 그대로 인용해 1면 기사로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전했다. 그래서 후드는 언론에는 "물건을 확보했고 아침에 군 당국에 인계할 예정"이라는 사실 정도만 밝혔고, FBI 쪽 코멘트가 신문에 인용되는 것, 특히 "관심 없다"는 식의 발언이 나가는 것은 막고 싶다고 했다. 후드가 묘사한 물체는 지름 약 2피트, 무게 약 10파운드의 알루미늄 원반으로, 알루미늄 페인트가 칠해져 있고 중앙에 라디오 진공관 비슷한 부품이 박혀 있다. 이 원반은 버뱅크 주재 요원이 보관 중이며, 그날 오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군 정보부(G-2)에 인계될 예정이었다. 후드가 본부에 전화한 목적은 일단 사건의 존재를 본부에 알려두려는 것이었고, 추가 정보는 즉시 보고하겠다고 적혀 있다. 메모 하단의 조치란에는 "별도 지시 없음"으로 마무리되어 있고, 1947년 7월 22일 접수 도장과 "RECORDED 62-83894-23" 사건 번호 도장이 찍혀 있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E.A.탬·클레그 등 본부 고위 간부들에게 회람되는 라우팅 명단이 인쇄되어 있다.

  86. p.86

    타자된 편지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본문이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혀 판독할 수 없다. 페이지 하단부에 FBI 접수 도장 다섯 개가 겹쳐 찍혀 있는데, 모두 1947년 7월 10일부터 17일 사이 워싱턴 본부의 여러 부서 — 법무부 일반 접수, 기술실험실 등 — 를 거쳐 들어온 흔적이다. 본문 텍스트로서의 정보는 없고, 이 문서가 FBI 내부에서 며칠에 걸쳐 회람되었음을 보여주는 라우팅 증거에 해당한다.

  87. p.87

    FBI 사건 파일 62-83894 안에 들어 있던 24번째 첨부물의 누런 봉투 표지다. 봉투 상단에 파란 손글씨로 파일 번호와 일련번호만 적혀 있고, 본문 텍스트는 없다.

  88. p.88

    흑백 사진 한 장이다. 검은 배경 앞에 디스크 또는 원반 형태의 물체가 놓여 있고, 위쪽으로 뾰족한 수직 핀(꼬리날개처럼 보이는 부분)이 솟아 있다. 물체는 측면에서 촬영되어 납작한 렌즈 모양으로 보이며, 하단 가장자리에는 작은 돌출 부속물이 달려 있다. 사진 자체에는 캡션·라벨·도장 같은 텍스트가 보이지 않는다.

  89. p.89

    사진 카드의 뒷면이다. 왼쪽 위 모서리에 타자로 "SIDE VIEW" 라고 적어 측면 사진임을 표시했고,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손글씨로 "4C-746858-(?)" 비슷한 정리 번호를 세로로 써 두었다. 본문은 따로 없다.

  90. p.90

    원반 모양 금속 물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흑백 사진 한 장만 들어 있는 페이지다. 가장자리를 따라 삼각형 톱니가 빙 둘러 있고 가운데에는 작은 원형 구멍이 뚫려 있으며, 한쪽 옆으로는 짧은 손잡이 모양의 돌출부가 나와 있다. 표면은 거칠게 닳은 금속 질감이고 어두운 배경 위에 놓여 조명을 받아 반사되는 모습이다. 텍스트·캡션·도장 등 별도 표기는 없다.

  91. p.91

    사진 한 장 분량의 빈 페이지로, 왼쪽 위 모서리에 "BOTTOM VIEW"라는 라벨만 인쇄되어 있다. 어떤 물체를 아래에서 본 모습을 담은 사진의 자리였을 것으로 보이나, 실제 이미지 영역은 거의 백지로 남아 있고 옅은 얼룩과 흔적만 보인다. 사진이 누락되었거나 스캔 과정에서 흐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92. p.92

    원반 형태의 금속 물체를 위에서 내려다본 흑백 사진이다. 가장자리에 테두리가 둘러져 있고, 중앙에는 작고 둥근 구멍 혹은 돌출부가 있으며 그 위로 무언가 길쭉한 막대 같은 것이 위에서 내려와 닿아 있다. 표면에는 얼룩과 산화 흔적 같은 무늬가 보이고, 원반 한쪽 측면 아래로는 짧은 손잡이 또는 다리 같은 부속물이 튀어나와 있다. 사진 자체에는 캡션·번호·도장 등 텍스트가 보이지 않는다.

  93. p.93

    거의 빈 페이지로, 좌측 상단에 타자로 "TOP VIEW"라는 짧은 라벨 한 줄만 있다. 본문이나 도면은 보이지 않으며, 어떤 대상의 위에서 본 모습을 보여주려던 자리로 추정된다.

  94. p.94

    1947년 7월 17일 로스앤젤레스 FBI 특수요원 책임자가 후버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같은 달 9일 저녁 노스 할리우드에서 회수된 "플라잉 디스크"의 처리 경위를 보고하는 내용이다. 그날 저녁 로스앤젤레스 사무소에는 노스 할리우드 래드포드 가와 매그놀리아 가 인근에 플라잉 디스크가 떨어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그 물체를 지름 약 30인치, 전체가 금속, 원반 모양에 라디오 안테나가 달린 장치로 묘사했고, 착륙과 동시에 불길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신고 접수 시점에 물체는 밴나이스의 밸리 소방서가 보관 중이었다. 특수요원 리처드 D. 아우어바흐가 곧바로 소방서로 갔을 때 이미 신문기자와 사진사들이 몰려 사진을 찍고 있었다. 대대장 월리스 E. 뉴컴 소방대장은 그날 오후 10시 30분경 한 여성이 전화로 "디스크가 정원에 떨어져 불이 붙었다"고 흥분된 목소리로 알려왔다고 설명했다. 신고 주소는 노스 할리우드 매그놀리아 대로 11858번지였다. 소방차가 출동해 호스로 불을 끈 뒤 물체를 소방서로 옮겼고, 아우어바흐 요원이 다시 사무실로 가져왔다. 장치 자체는 지름 약 2피트의 볼록한 강철 원반 두 장을 바깥 모서리에서 용접하고 중앙은 속이 빈 원통으로 연결한 구조였다. 윗면에는 아연도금 철판 지느러미가 수직으로 박혀 있었고, 한쪽이 막힌 짧은 파이프가 바깥 둘레에서 내부로 이어졌으며, 윗면 한가운데에는 진공관처럼 보이는 부품이 끼워져 있었다. 무게는 약 20파운드. 사무실에서는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 한 세트를 본부에 함께 보낸다. 이후 물체는 샌페드로 포트 맥아더의 G-2 정보참모부 소속 코트니 W. 헴프스테드 소령에게 인계됐고, 헴프스테드 소령은 "확실한 가짜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체 동력으로 비행할 수 없는 물체"라고 회신했다. 하단에는 1964년 10월·11월 일자의 사본 폐기 도장과 색인 번호 62-83098, EX-64 등이 함께 찍혀 있다.

  95. p.95

    문서의 뒷면 스캔으로, 본문 글자는 앞면에서 비쳐 보일 뿐 따로 적힌 내용은 없다. 아래쪽 여백에는 1947년 3월 31일 오후 12시 35분과 같은 날 오후 3시 6분 두 차례에 걸쳐 FBI 내부 보안 부서와 법무부가 이 문서를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파란 잉크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96. p.96

    1947년 7월 17일 FBI 국장 앞으로 올라간 보고서 두 번째 장이다. 제목은 노스할리우드 비행 원반 회수 건, 1947년 7월 9일. 다음 날인 7월 10일, 노스할리우드 티스데일 애비뉴 6552번지에 사는 프랭크 V.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그날 아침 노스할리우드 주유소에서 식사를 하던 중에 인근에서 비행 원반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한창 오갔다고 진술한다. 그 자리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여러 명이 있었고, 원반 발견 소동을 두고 꽤 웃고 떠들었다고 한다. 브라운은 이 학생들이 직접 또는 지인을 통해 지난 2주 동안 그 비행 원반을 만들어 왔다는 인상을 분명히 받았다고 진술한다. 학생들의 이름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중 발언하던 한 명이 빅토리 불러바드와 휘셋 스트리트 모퉁이의 셰브런 주유소에서 일하는 열여섯 살 가량의 청소년이라고 신원을 좁힌다. 같은 정보는 캘리포니아 샌페드로의 미군 G-2 사무소에도 전달되었다고 덧붙인다. 페이지 하단에는 작성자 약어 LBB:MGM, 파일 번호 100-9099, 첨부 3건 표기가 함께 남는다.

  97. p.97

    1947년 7월 3일 부트 지부 특수요원장(SAC)이 FBI 국장에게 보낸 "플라잉 디스크" 건 사무용 메모다. 아이다호 보이시의 일간지 아이다호 데일리 스테이츠먼 기자 데이브 존슨이 부트 사무소에 전화를 걸어, FBI가 시민 다수가 목격했다고 신고한 플라잉 디스크 건을 조사 중인지 물었다고 적었다. 존슨은 너무 많은 시민이 같은 것을 봤다고 신고한 만큼 단순한 착각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고, 1947년 7월 1일 아이다호 선밸리 인근 트레일 크릭 일대에서 신뢰할 만한 시민들이 디스크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메모 작성자는 존슨에게 부트 사무소는 별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알린 뒤, 육군과 해군에도 문의했느냐고 되물었고 존슨은 두 기관에도 문의 중이라고 답했다. 좌측 여백에 "이 건은 불필요"라는 취지의 수기 메모와 서명, 우측 상단에 또 다른 결재자 이름이 적혀 있어 FBI 내부에서 추가 조치를 하지 않기로 정리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하단에는 사건 번호 62-83894-25와 1947년 7월 23일·8월 5일자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98. p.98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텍스트는 보이지 않고, 오른쪽 상단에 FBI 내부보안과 (Internal Security, Department of Justice) 의 7월 7일 오전 10시 54분 접수 도장이 푸른 잉크로 남아 있다. 그 옆 여백에는 손글씨로 "Cooper / No 7" 과 동그라미 친 숫자 6 이 적혀 있어, 접수 담당자가 분류 번호를 매긴 흔적으로 보인다. 왼쪽 가장자리에는 갈색 테이프 자국이 길게 붙어 있고, 종이 하단에는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99. p.99

    1947년 7월 16일 오전 10시 15분, FBI 시애틀 지부가 본부장에게 보낸 긴급 전문이다. 시애틀 웨스트 3번가에 사는 페이셸 부인이 전날 밤 9시 42분경 자기 집 지붕에 비행 원반이 떨어졌고 떨어진 직후 불이 붙어 곧바로 진화했다고 신고했다. 부인은 같은 사실을 해군 정보국(ONI)에도 알렸고, 원반은 해군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 출동한 요원들은 원반을 회수했고, 해군 폭발물·전자장비 담당자와 함께 검사했다. 원반은 지름 28인치 정도의 원형 합판 조각이었고 두께는 3/16인치, 양쪽이 살짝 위로 휘어 있어 중심부를 가로지른 철사로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겉면은 밝은색, 안쪽은 빨간색으로 새로 칠해져 있었고 안쪽에는 흰 페인트로 "U S S R"이라는 글자와 "I Y B", 그리고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었다. 중앙에는 베이클라이트 판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라디오 진공관 두 개가 배선된 채 고정되어 있었다. 짧은 원통형 기름통도 함께 부착되어 있었고, 그 통에서 구리관이 짧게 빠져 나와 길이 14인치짜리 1인치 관으로 이어졌다. 이 관은 원반을 관통해 반대편으로 빠져 있었다. 관 끝에는 6인치 길이의 천이 감겨 있었는데, 천은 어떤 액체에 적셔져 있었고 끝부분이 타들어간 흔적이 있었다. 페이지 상단에는 1947년 7월 16일자 통신부 접수 도장과 함께 여러 손글씨 서명·재확인 표시가 남아 있고, 좌측 여백에는 "flying discs"라고 적어둔 손글씨가 보인다.

  100. p.100

    분홍빛 문서 뒷면을 찍은 스캔으로, 본문은 없고 1947년 7월 16일부터 24일 사이 FBI 각 부서가 이 문서를 접수하면서 여러 방향으로 찍은 접수 도장만 모여 있다. 같은 "RECEIVED — F.B.I., U.S. DEPT. OF JUSTICE" 도장이 본부 접수, Liaison Section 접수 등 부서별로 여러 번 찍혀 있어, 한 장의 보고서가 FBI 내부에서 며칠에 걸쳐 여러 책상을 거쳤음을 보여 준다.

  101. p.101

    전문 2쪽 — 발신자 메이너(Maynor). 디스크 표면 물질은 테레빈유로 추정되며,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이 디스크는 비행이 불가능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디스크는 현재 해군정보국(ONI) 시애틀 지부가 가지고 있고, 별도 조사는 진행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언론에 새어 나간 정보는 없으며, 만약 기자들이 문의해 오더라도 일절 입장을 내지 않을 방침이다. 전문은 "END" 와 함께 오후 2시 22분 FBI 측이 수신 확인한 표시로 마무리된다. 여백에는 푸른 잉크로 정보 출처로 보이는 인물들의 이름 — E.C. 젠킨스 M.D., 호퍼(Hofer) 등 — 이 손으로 적혀 있다.

  102. p.102

    FBI 내부에서 한 통신문이 부서를 옮겨 다닌 흔적만 남은 접수 기록면이다. 1947년 7월 16일 오후 2시 26분 텔레타이프 유닛이 처음 접수했고, 같은 날 저녁 7시에 라이슨 부서, 다음 날 17일 오후 3시 12분 라이슨 섹션, 그리고 17일 오전 9시 8분 내부보안과로 차례차례 도장이 옮겨 갔다. 본문이 없는 뒷면 또는 라우팅 슬립 성격의 페이지로, 한 문서가 FBI 내 여러 부서를 거쳐 처리됐다는 사실을 도장 네 개가 보여 준다.

  103. p.103

    1947년 7월 18일, FBI 뉴헤이븐 SAC가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사무 메모다. 제목은 "비행 원반(Flying Saucers) — 코네티컷 스탬퍼드 거주 정보원 에드윈 M. 베일리 주니어, 원자력법 관련"이다. 메모는 7월 7일 베일리가 스탬퍼드 상주 요원 사무실에 자진 출두해 진술한 내용을 보고한다. 베일리는 스탬퍼드 웨스트메인가의 American Cyanamid 연구소 물리부 소속 과학자라고 자신을 소개했고, 전쟁 중에는 MIT 케임브리지의 방사선연구소(맨해튼 프로젝트 연계)에서 일했다고 밝혔다. 나이 30세, 애리조나 대학 졸업자라고 진술했다. 그는 비행 원반이라는 화제가 당대 과학자들 사이에 상당한 논평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만의 가설을 내놓았다. 가설을 풀어놓기 전에 베일리는 2차 대전 직후 자기 친구 레나토 프루세티가 이탈리아 밀라노와 볼로냐의 천문대에서 비행 원반을 목격했다는 일화를 꺼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잠깐 화제가 됐다가 곧 잠잠해졌다고 한다. 베일리 본인의 가설은 이렇다 — 비행 원반의 정체는 사실 지구 궤도를 도는 원격 조종형 세균탄 또는 원자탄일 수 있다. 특정 국가나 기관이 무선으로 조종해 임의의 표적에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주목한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비행 원반이 멕시코시티·뉴올리언스·필라델피아·뉴욕·보스턴·핼리팩스·뉴펀들랜드·파리·밀라노·볼로냐·유고슬라비아·알바니아 등지에서 관측됐다는 것이고, 지구본 위에 이 도시들을 끈으로 이어보면 무언가 패턴이 드러난다는 식의 운을 띄우며 본문은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에는 사건 번호 62-83894-27, 1947년 7월 22일 접수 도장, 1964년 11월 18일자 "COPIES DESTROYED 270" 처리 표시가 남아 있다.

  104. p.104

    FBI 문서의 뒷면 또는 라우팅 페이지로, 본문 텍스트 대신 접수 도장 세 개가 찍힌 면이다. 모두 1947년 7월 FBI 법무부 산하 원자력 섹션(Atomic Energy Section)이 받은 기록으로, 7월 23일 오후 4시 26분, 7월 24일 오전 9시 3분, 7월 28일 오전 9시 20분 순서로 접수되었고 두 번째 도장 위에는 '내부보안(Internal Security)' 라벨이 함께 찍혀 있다. 우상단에는 손글씨로 '7월 23일 벨몬트(Belmont)에게 전달, 7월 29일 재전달'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어, 이 문서가 1947년 7월 말 FBI 내부에서 며칠 사이에 여러 부서로 회람되었음을 보여준다.

  105. p.105

    1947년 7월 18일자로 FBI 국장 앞으로 보낸 "플라잉 소서" 건 — 코네티컷주 스탬퍼드의 정보원 에드윈 M. 베일리 주니어, 원자력법 관련 — 편지의 후속 페이지다. 앞서 언급한 도시들이 지구를 도는 직접적인 궤도 또는 원을 그리며 줄지어 있어, 소서가 돌고 있을 만한 경로와 대체로 일치한다는 점이 눈에 띌 것이라고 적었다. 베일리는 또한 최근 코네티컷주 글렌브룩에 있는 퍼킨-엘머 사의 공동 소유주 중 한 명인 리처드 퍼킨과 이야기를 나눴으며, 퍼킨에게서 자기 회사가 원자폭탄을 찾기 위해 성층권을 탐색하는 데 쓰일 크고 강력한 망원경을 제작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106. p.106

    1947년 7월 18일 보스턴 지부가 후버 국장 앞으로 친 FBI 텔레타입이다. 사건명은 "뉴햄프셔 웨스트린지에서 관찰된 금속 파편, 1947년 7월 7일, 보안 사안-X"로 분류돼 있다.

    MIT 보안 담당관 존 K. 벙커 학과장이 보스턴 지부에 알린 내용은 이렇다. 같은 날 벙커는 웨스트린지에 사는 찰스 [이름 가림] — 뉴잉글랜드 전화전신회사 부사장을 지내고 은퇴한 인물 — 과 연락이 닿았다. 터커(보고서 후반의 표기)에 따르면, 7월 7일 오후 3시쯤 웨스트린지 222번 도로변 [이름 가림] 에스테반 댁 잔디밭에서 포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작은 연기 한 줄기를 봤다. 가까이 가 살펴보니 푸른 잔디 위에 지름 1.5인치쯤 되는 작은 탄 자국이 여러 개 나 있었다. 도로 양쪽 잔디로도 지름 약 200피트짜리 원을 그리며 작은 불씨가 번지기 시작했고, 결국 소방서가 출동했다.

    불은 그 자리에서 발견된 금속 파편 때문에 난 것으로 보였다. 파편은 전화 회사 소속 파크 스토퍼 씨를 통해 MIT 벤틀리 교수에게 넘어갔다. 벤틀리는 벙커 학과장에게 "외관상 뉴멕시코에서 본 V-2 로켓 내부 라이닝과 닮았다"고 말했다. MIT의 고고학자 I. A. [이름 가림] 헤일 교수는 "제트기에서 떨어진 부품일 가능성"을 거론하면서, 그 시점 두 조각을 분석 중이라고 했다. 두 과학자는 거칠게나마 원래 금속 물체의 형태를 복원해 본 결과 지름 14인치에 두께 3인치쯤 되리라 본다고 보고했다 — 본문은 "END PAGE ONE"으로 끊긴다.

    상단에는 "JUL 18 1947" FBI 통신과 접수 도장과, 본부 간부들에게 회람할 수신자 체크리스트가 인쇄돼 있다. 하단에는 "RECORDED" 도장과 "EX-64" 표시, 그리고 1964년 11월 18일자 "COPIES DESTROYED 270" 처분 도장이 같이 찍혀 있다 — 이 사본이 본부 기록 처분 절차까지 거쳐 살아남은 사본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107. p.107

    분홍색 파일 폴더의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본문은 없고, 가장자리에 미 법무부 우편·파일과 (Mail & Files Section) 접수 도장이 여러 번 겹쳐 찍혀 있다. 도장은 모두 1966년 7월 21일 오전 11시 53분에 접수된 것으로 같은 시간을 가리킨다. 상단에는 두 개의 펀치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옆에 흐릿한 라벨 흔적이 남아 있다.

  108. p.108

    전문 두 번째 면이다. 파편은 두께가 16분의 몇 인치 정도이고 기계로 가공된 흔적이 있으며, 일부는 불에 탔거나 엄청난 열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다. 이 과학자들은 이 사안을 기밀 정보로 다루고 있다. 뉴햄프셔 웨스트린지에 사는 태스커 씨도 추가 파편을 수집하려 애쓰고 있고, 웨스트린지 소방서장도 파편 몇 점을 갖고 있다고 진술했다. 태스커 씨는 화이트헤드 자택이 철도에서 동쪽으로 700~800피트 떨어진 위치라고 알려 왔다. 딘 벙커는 MIT 연구 결과가 의미 있게 나오면 공유하겠다고 했다. 과학자들의 위 의견을 종합하면 군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으로 판단되지만, 보스턴의 군 당국에는 아직 통보하지 않았다. 발신은 수시(SOUCY), 처리 지시는 "HOLD"이며, 하단에 사본 수신처로 래드(Ladd) 씨가 표기되어 있고 손글씨 메모와 서명이 곁들여 있다.

  109. p.109

    분홍빛이 도는 종이 위에 FBI 내부의 여러 접수 도장이 여기저기 찍힌 라우팅 표지로, 본문은 없고 도장 자국만 남아 있다. 가운데 위쪽에는 1947년 7월 18일 밤 11시 6분에 법무부 FBI 전신실에서 처음 받았다는 도장이, 그 아래에는 7월 19일 오후 1시 1분에 FBI 실험실(Lab)이 접수했다는 도장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같은 날 오후 5시 54분에 미 법무부가 접수했다는 도장이 두 번 찍혀 있고, 왼쪽 아래에는 7월 21일 오전 9시 39분에 FBI 내부보안(Internal Security) 부서가 받았다는 도장이 남아 있다. 종이 윗부분에는 보존철에 끼우면서 뚫린 둥근 구멍 자국도 함께 보인다.

  110. p.110

    1947년 7월 23일자로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코네티컷 웨스트포트의 클라크 부인(Mrs. John Maurice Clark)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다. 본문은 "7월 17일자로 보내신 편지와 동봉 자료를 잘 받았습니다. 말씀하신 편지를 제출해주신 데 감사드립니다" 정도의 한 단락 사례 응답이다. 좌측 상단의 빨간 "RECORDED / INDEXED 62-83926-29 / EX-57" 표시와 하단의 "COMMUNICATIONS SECTION — MAILED — JUL 23 1947 P.M." 발송 도장은 이 편지가 그날 오후에 실제로 발송되어 FBI 중앙 파일에 등록되었음을 보여준다. 본문 자체는 사실상 형식적인 수신 확인일 뿐, 클라크 부인이 보낸 편지나 동봉물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111. p.111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 텍스트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고, 아래쪽에는 FBI 우편실 접수 도장 두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 하나는 1947년 7월 23일 오후 5시 2분, 다른 하나는 1947년 7월 25일 오전 10시 50분 접수로 읽힌다. 본문은 없으며 페이지 자체가 별도 정보를 담지 않는다.

  112. p.112

    1947년 7월 17일,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에 사는 위니프레드 G. 클라크 여사가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에게 보낸 편지다. 컬럼비아대 경제학자인 남편 존 모리스 클라크 박사 앞으로 어떤 인쇄물이 도착했는데, 남편은 가족 앞에서 큰 소리로 읽어 본 뒤 "전형적인 괴짜 짓 아니면 광고"라며 휴지통에 버렸다. 클라크 여사는 그 인쇄물을 다시 꺼내 들면서, 자기 휴지통보다는 후버 국장의 휴지통이 더 어울리겠다고 판단해 FBI로 부쳤다. 똑같은 우편물이 수천 통 발송된 모양이라 FBI도 발신인 이름 없는 사본을 따로 받았을 수 있고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면서, 컬럼비아대 경제학자 앞으로는 원래 별별 이상한 우편물이 다 오지만 이번 것은 "한동안 본 중에 가장 이상"하고 "지금 시국에 아주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편지 오른쪽 위 여백에 누군가 "Flying Disc"라고 손으로 적어 두었고, 아래쪽에는 FBI 접수·색인 도장과 사건번호 62-83574-29가 찍혀 있어, 1947년 비행 원반 소동 와중에 시민이 보낸 자료가 FBI 본부 문서 체계에 정식 등록된 흐름을 보여 준다.

  113. p.113

    문서의 빈 뒷면을 스캔한 페이지다. 종이 반대편에 찍힌 국무부 접수 도장과 텍스트가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드러나는데, 1994년 11월 14일 오전 10시 49분에 국무부 A/RPS/IPS 부서가 접수했다는 표시가 읽힌다. 본문 텍스트는 없다.

  114. p.114

    1947년 7월 11일자로 어느 "선생님" 앞으로 보내진 짧은 편지다. 발신자는 "하늘 관측·원반 해독·신제품 소개를 위한 통합 합동 위원회(The Combined and Amalgamated Committee of Sky-Scanners, Disc Decipherers and New-Product Introducers)"라는 장난스러운 이름을 쓴다. 편지는 수신인에게 묻는다 — 그 수수께끼의 "원반"을 본 적이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이 이상한 천체 현상이 더 나은 시대의 전조라고 보는지, 새롭고 혁명적인 진보가 다가오는 신호라고 믿는지, 그것이 당신의 삶을 더 밝고 행복하고 쓸모 있게 만들어줄지.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 놀라운 원반 하나가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면 비밀은 드러날 것입니다." 하고 맺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빨간 펜으로 FBI 파일 번호 62-83894-29 가 적혀 있고, 그 아래 빨간 도장으로 ENCLOSURE 라벨이 찍혀 있어 이 편지가 다른 FBI 문서에 첨부된 자료임을 알려준다.

  115. p.115

    1947년 7월 10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텍사스 샌마르코스 클리프사이드 홀의 우드슨 D. 코프 앞으로 보낸 한 쪽짜리 답신이다. 후버는 코프가 7월 7일에 보낸 웨스턴유니언 전보를 받았다고 알리면서, 그런 정보를 자신에게 알려준 관심에 깊이 감사한다고 적는다. 이어 전보의 내용은 전쟁부의 소관 사안으로 보이기에, 코프가 제공한 정보를 자신이 임의로 전쟁부에 넘겼다고 밝힌다. 서명은 "진심을 담아, 존 에드거 후버 국장"으로 마무리된다. 본문 아래에는 샌안토니오 지부 사본 통지와 함께, 해당 전보가 "플라잉 디스크(flying discs)"를 언급한 것이었다는 짧은 메모가 붙어 있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7월 14일 발송 도장과 7월 23일 FBI 접수 인덱싱 표시, 8월 11일 후속 표기가 남아 있어 이 답신이 실제로 발송·기록 처리된 흔적을 보여 준다.

  116. p.116

    타자기로 작성한 편지의 뒷면이다. 앞면 텍스트가 종이 너머로 비쳐 글자가 좌우 반전된 채로 흐릿하게 보이지만, 뒷면 자체에는 본문이 없다. 오른쪽에 FBI 통신과의 1947년 7월 4일 오후 발송 도장이 찍혀 있고, 가운데에는 1947년 7월 3일 오후 5시 17분 접수 도장이 남아 있다. 종이 위쪽 가장자리에는 파일 바인더에 끼웠던 펀치 구멍 두 개가 보인다.

  117. p.117

    1947년 7월 10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달링턴에 사는 J. U. 와츠 주니어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와츠가 7월 6일에 보낸 웨스턴유니언 전보를 잘 받았다며 정보를 알려준 데 감사를 전하고, 전보 내용이 전쟁부 소관 사안으로 보여 그쪽으로 정보를 넘겼다고 알린다. 편지 하단 메모에는 와츠의 전보가 다룬 주제가 "플라잉 디스크"였다고 적어 두었고, 사본은 서배너 지국으로 회람되었다. 페이지 아래쪽에는 1947년 7월 14일자 FBI 통신과 발송 도장과 7월 23일자 색인·접수 표시가 보인다.

  118. p.118

    FBI 내부 서한 한 통의 뒷면이다. 종이 반대편에 찍힌 7월 10일 자 본문이 비쳐 보이지만 좌우가 뒤집힌 채라 문장 단위로 읽기는 어렵다. 페이지 자체의 정보는 하단에 보라색 잉크로 찍힌 발송 스탬프 한 개 — 1947년 7월 11일 오후 3시 17분, FBI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 에서 발송 처리되었다는 표시 — 가 거의 전부다. 즉 이 페이지는 앞면 서한이 본부 통신과를 거쳐 외부로 실제 발송된 시각을 기록해 두는 라우팅 표시 면에 해당한다.

  119. p.119

    1947년 8월 14일 오후 5시 15분, FBI 시애틀 지부가 본부에 보낸 일상 등급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워싱턴주 타코마에서 프레드 크리스만과 해럴드 A. 달이 목격했다고 진술한 비행 원반 건을 다룬다. 시애틀 지부는 본부의 같은 날짜 회신 전문에 답해, 달이 스미스 요원에게 이야기 자체가 거짓말이었다고 시인한 적은 없으며 단지 당국이 추궁할 경우 더 이상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니 거짓말이었다고 답할 작정이라고만 말했다고 보고한다. 본부로 송부 중인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크리스만 또는 달 본인이 익명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이 크며, 그 목적은 이야기에 언론 주목을 끌어 시카고 일리노이의 잡지 《판타지 매거진》과 수익성 있는 거래를 성사시킬 정도까지 키우려는 데 있었다고 본다. 시애틀 지부는 본부의 별도 지시가 없는 한 달과 크리스만을 다시 면담하지 않겠다고 알린다. 발신자는 윌콕스이며, 본부 통신과 도장과 함께 8월 14일 접수, 8월 21일 정식 등록·색인 처리를 마쳤다는 표시가 남아 있다. 우측 여백에는 톨슨·태움·니콜스 등 후버 직속 라인의 회람 명단이 인쇄돼 있고, 플레처라는 손글씨 서명이 별도로 적혔다.

  120. p.120

    분홍색 종이에 흐릿한 타자 본문과 접수 도장이 보인다. 도장에는 “RECEIVED”, “AUG 15 9:31 AM ’47”, “INTERNAL SECURITY F.B.I.” 등이 보이지만, 본문은 너무 희미해 판독하기 어렵다.

  121. p.121

    1947년 7월 30일자 FBI 본부 회람 제42호의 두 번째 면이다. 본부는 육군 항공대 정보부의 요청을 받아 비행 원반 조사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알린다. 항공대 측이 비공식으로 전한 바에 따르면, 비행기에서 원반 서너 개를 철사로 묶어 고공에서 떨어뜨리면 하강 중에 엄청난 속도가 붙어 호를 그리며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다고 한다. 항공대 정보부는 또한 일부 목격담이 대중 히스테리를 일으키려는 반체제 인물의 소행일 가능성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회람은 각 지부 요원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한다. 접수되는 모든 원반 목격담은 진짜 목격인지, 착각인지, 장난인지 가려내야 한다. 개인 명성을 얻거나 히스테리를 부추기거나 단순히 장난을 치려고 신고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목격 신고와 조사 결과는 즉시 전신으로 본부에 보고하고, 보고에 무게가 있다고 판단되면 전신 뒤에 조사 내역을 상세히 적은 서한을 추가로 보내야 한다. 육군 항공대는 본부에 전면적인 협조를 약속했으므로, 자료 제공이나 회수된 원반의 검사 의뢰가 거절되는 경우가 생기면 즉시 본부에 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비행 원반과 관련해 얻는 모든 정보는 평소의 연락 통로를 통해 신속히 육군 측에도 전달해야 한다고 못박는다. 페이지 하단에는 문서철 번호 162-83894와 1947년 8월 4일·18일자 접수 도장이 남아 있다.

  122. p.122

    캘리포니아 데일리시티 미션가 6512번지에서 워싱턴 D.C. FBI 후버 국장 앞으로 보낸 편지 봉투다. 3센트 우표가 붙어 있고, 1947년 7월 21일 오후 1시 샌프란시스코 소인이 찍혀 있다. 우표 옆에는 미국 저축채권을 권하는 표어가 들어간 소인이 함께 찍혔다. 발신인 칸 위에는 5일 안에 수취인을 찾지 못하면 반송하라는 우체국 안내 문구가 인쇄돼 있다.

  123. p.123

    1947년 7월 20일, 캘리포니아 데일리시티에서 판금 가게(Daly City Sheet Metal Works, 미션가 6312번지)를 운영하는 F. 헨네만으로 보이는 한 시민이 워싱턴 D.C.의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 앞으로 직접 편지를 띄웠다. 가게 레터헤드 위에 손글씨로 쓴 짧은 편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 케네스 아놀드가 비행 원반을 봤다는 기사를 읽다가 갑자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원격조종으로 띄울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그것을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사용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페이지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이 두 개 찍혀 있다. 하나는 1947년 7월 31일자 접수(58 JUL 31 1947), 다른 하나는 1947년 9월 30일자 기록·색인(50 SEP 30 1947 179) 도장이며, 사건번호 62-73794-34가 함께 부여되어 있다. 왼쪽 여백에는 "회신 완료, 관련 회신문 첨부" 취지의 행정 메모가 세로로 적혀 있다.

  124. p.124

    편지지 뒷면이다. 원래 앞면에는 "Eby City Steel Metal Works"라는 철강 회사 레터헤드가 찍힌 종이가 쓰였고, 이 스캔은 그 뒷면을 보여 준다. 오른쪽 아래 모서리에 FBI 접수 도장이 1947년 9월 8일 오후 8시 50분 자로 찍혀 있고, 그 위에 "MR JONES"라는 라우팅 표기가 손으로 적혀 있다. 왼쪽 여백에도 짧은 손글씨 메모가 보이지만 판독이 어렵다. 본문은 없는 페이지로, 앞장에 실린 민간 제보 편지가 FBI 내부로 접수·전달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행정 흔적이다.

  125. p.125

    1947년 7월 10일 미 연방수사국 내부 문서로, 핏치(E. G. Fitch)가 래드(D. M. Ladd)에게 보낸 "플라잉 디스크" 관련 사무 메모다. 핏치는 7월 9일 특수요원 레이놀즈가 육군 항공대 정보국 요구정보지부장인 슐겐 준장과 이 사안을 논의한 내용을 정리해 보고한다.

    슐겐은 항공대가 플라잉 디스크의 실재 여부를 확인하고, 실재한다면 그 정체를 끝까지 추적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알렸다. 항공대 정보국은 소속 과학자 전원을 투입해 이런 현상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지 검토 중이며, 두 가지 가설 — 천체 현상이거나, 외부에서 기계적으로 설계·통제된 물체 — 을 함께 두고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슐겐은 항공대 산하 모든 시설에 경계령을 내려, 보고된 목격담 하나하나를 끝까지 추적해 조사에 도움이 될 자료를 모으도록 했다. 디스크를 봤다고 주장한 항공대 조종사 한 명은 슐겐 본인과 과학자, 심리학자가 함께 철저히 신문했지만, 자신이 플라잉 디스크를 봤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슐겐은 다른 가능성도 함께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 목격담이 거짓이었거나, 개인의 유명세나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후의 목격담은 일종의 집단 히스테리의 결과일 수 있고, 더 나아가 공산주의 동조자들이 소련의 비밀 병기에 대한 공포와 혼란을 퍼뜨리기 위해 처음 목격담을 만들어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슐겐은 모든 각도를 다 살펴보고 싶다며, 과학자 보고서와 항공대 시설의 조사 결과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열람할 수 있게 해두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을 완성하려면 FBI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부탁했다 — 최초 목격자들을 직접 찾아내 신문해, 그들의 진술이 진심인지, 아니면 유명세나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것인지 가려달라는 요청이다. 슐겐은 또한 현재 육군성이나 해군성에서 진행 중인 어떤 연구 프로젝트도 플라잉 디스크와 엮일 수 없다고 단언했고, FBI가 협조한다면 자신의 사무실 시설을 전부 열어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약속했다.

    레이놀즈는 이 요청을 국(局)에 보고하고 가능한 한 빨리 답을 주겠다고 했다. 문서 하단에는 FBI 파일번호 62-83894-33과 1947년 8월 7일 접수 표시가 남아 있다.

  126. p.126

    어느 문서의 뒷면이다. 자체 본문은 없고, 앞면 활자가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대신 FBI 와 미 법무부의 접수 도장이 사방으로 여섯 군데 찍혀 있다. 날짜는 1947년 7월 11일 오전 8시 51분부터 같은 달 15일 오후, 그리고 8월 1일까지 흩어져 있고, 모두 "RECEIVED-TAHM, U.S. DEPT. OF JUSTICE" 라는 같은 양식이다. 한 통의 문서가 법무부 안에서 여러 부서를 거치며 차례로 접수 처리된 흔적이다. 종이 오른쪽 가장자리는 찢겨 나갔다.

  127. p.127

    FBI 부국장 래드(Ladd)에게 올린 메모 2쪽이다. 레이놀즈가 군 정보참모부(MID)의 포니(L. R. Forney) 대령과도 이 사안을 논의했는데, 포니 대령은 비행 원반이 육군이나 해군의 실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이미 확인된 만큼 이제는 FBI가 다뤄야 할 사안이라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포니 대령은 가능하다면 FBI가 슐겐(Schulgen) 장군의 요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부기(ADDENDUM)에는 다른 의견이 적혀 있다. 작성자 DML은 FBI가 이 조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육군에 통보할 것을 권한다. 보고된 원반의 상당수가 장난으로 드러났고, FBI가 조사에 뛰어들어 얻을 게 없다는 판단이다.

    그 아래로 결재 라인을 따라 손글씨 코멘트가 이어진다. 한 사람은 빨간 잉크로 머리글자 "E.J."를 남겼고, 그 옆에 다른 서명이 있다. 그 아래 "I think we should do this 7-15" — 이 건은 진행해야 한다고 본다, 7월 15일자.

    맨 아래 H.의 손글씨 코멘트가 가장 길다. 자기도 그렇게 할 생각이지만, 동의하기 전에 회수된 원반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을 반드시 요구해야 한다고 적었다. 타코마 사건을 예로 들며, 그때 육군이 원반을 가져가 버려서 FBI는 간단한 검사조차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128. p.128

    1947년 7월 30일 J.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뉴욕 브루클린의 조지 J. 플러스캣에게 보낸 회신이다. 후버는 플러스캣이 7월 14일 보낸 편지를 잘 받았다고 알리며, 이 문제를 자신에게 알려준 데 감사의 뜻을 전한다. 편지에 담긴 정보는 신중히 검토했고, FBI 내부 기록으로 보관하고 있다는 짧은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본문 아래 사무용 NOTE 에는 플러스캣이 FBI 와 이미 주고받은 적이 있는 인물 (Bu file 62-0-34750) 이고, 범죄기록 부서에서 별도 기록을 찾지 못했으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인물일 수 있다 는 내부 의견이 적혀 있다. 즉, 후버 본인 명의의 정중한 회신이지만, FBI 내부적으로는 제보자를 진지한 정보원으로 다루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페이지다.

  129. p.129

    1947년 7월 14일, 브루클린에 사는 조지 J. 플러스캣이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 앞으로 보낸 사신이다. 본인은 군이 다룰 문제라는 점을 알면서도 동부에서 서부까지 온 나라가 떠들썩한 것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한마디 보태려 한다고 말문을 연다.

    신문은 며칠째 비행접시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27개 주에서 목격 신고가 들어왔다는 기사, 40개 주가 참여한 빗속의 비행접시 사냥, 시각의 착각이라는 해명, 기상관측 연이라는 해명, 신기루 조각이라는 해명, 소련의 신형 적기가 비행접시와 닮았다는 보도, 여객기 승무원이 15분간 9개의 원반을 목격했다는 증언까지 — 며칠 내내 그렇게 흘러갔다고 그는 적는다.

    이것이 군의 문제라고 일러주지 말아 달라고 그는 덧붙인다. 군인은 적이 보이는 곳, 가능하면 본토 바깥에서 싸우지만, 무명의 영웅인 연방요원은 본토에서 정체를 숨긴 적과 싸운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후버에게 글을 쓰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연이라는 설명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그는 적는다. 신고된 물체는 펄럭이거나 떠다니지 않고 직선으로 미끄러져 갔다. 연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목격된 모든 물체가 한 방향, 서에서 동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포상금이 걸려도 회수한 사람이 없었고, 비행기가 추격했지만 잡지 못했으며, 어딘가에 착륙했을 텐데도 발견자가 없었다. 군, 과학자, 민간인이 모두 책임을 부인한다면 결론은 적국밖에 남지 않는다. 얼마 전 어디선가 소련이 다음 전쟁용으로 무음 장치 — 개에게만 들리는 호각 같은 — 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고 그는 회상한다. 적이 진짜 그런 무기를 시험하고 있다면, 겁을 먹지 않은 미국인의 반응은 오히려 적에게 자기 무기의 성공을 알려준 셈이 된다.

    착시일 수도 있고, 불편한 사람들을 조용히 처리하려고 잘 고른 단어 몇 개를 흘려놓은 뒤 나머지는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상상에 맡긴 공작일 수도 있다고 그는 추측한다. 사람들이 본 현상은 그래서 무고하게 신고된 것이다.

    그를 결정적으로 의심하게 만든 것은, 정체를 알아내려는 시민들의 호기심이 너무 거세지자 그 물체가 사라지고 대신 연이라는 대체물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진짜에 가장 가깝게 묘사된 대체물. 진짜라면 왜 전서구처럼 다시 출발지로 돌려보내지 못했겠느냐고 그는 따진다.

    이 일을 농담거리로 만드는 건 지나친 일이다. 양치기 소년이 떠오른다. 진짜 늑대가 왔을 때 "그놈은 농담꾼이었지" 하고 넘어가는 식이다. 이런 농담이나 실험에는 처벌법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적는다. 사소하거나 우스워 보이는 농담이라도 반역죄로 다뤄야 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 자신의 시대도 이미 저물었고, 이 형편없는 짓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기 나름의 가설을 덧붙인다. 미시시피, 미주리, 플랫, 컬럼비아, 오하이오 강의 홍수, 동에서 서로 가는 태양, 동부 북쪽의 캐츠킬, 동부의 블루리지, 서부의 로키 산맥이 만들어낸 신기루 — 그 움직임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갔고, 그래서 원반이 보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끝을 맺으며 "부디 그러길 바란다(I hope)"고 적었다.

    페이지 본문 한가운데에는 FBI 접수 도장 RECORDED 가 찍혀 있고, 아래쪽 여백에는 서명 위에 다시 한 번 접수번호와 라우팅 표시가 겹쳐 있다.

  130. p.130

    1947년 7월 23일 D. M. 래드 앞으로 보낸 메모의 두 번째 장이다. 권고 항목 아래에는 이 사안 처리를 도울 수 있도록 일선 지부에 보낼 국 회람문을 첨부한다는 한 문장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첨부"라는 표시가 따로 붙어 있다. 본문은 이 한 줄이 전부이고 나머지는 빈 면이다.

  131. p.131

    1947년 7월 24일 FBI 내부 메모. 발신은 E. G. 피치(E. G. Fitch), 수신은 D. M. 래드(D. M. Ladd),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피치는 7월 10일자 자기 메모를 다시 꺼내며 시작한다. 그 메모는 육군 항공대 정보부의 조지 F. 슐겐 준장이 같은 사안으로 FBI에 협조를 요청했다는 보고였다. 그때 후버 국장은 메모 여백에 한마디 적어두었다 — 협조는 하겠지만, 회수된 디스크에는 우리도 전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로스앤젤레스 건에서 육군이 디스크를 가져가놓고 잠깐 살펴보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은 사례를 짚어두었다.

    그 지시에 따라 특별요원 레이놀즈가 슐겐을 다시 찾아갔다. 슐겐은 후버 국장에게 전면 협조의 뜻을 전해달라고 했다. 현장에 지시를 내려, 회수한 디스크는 모두 FBI 요원이 검사할 수 있도록 넘기겠다고 약속했다. 자기 휘하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도 그때그때 FBI 현장사무소에 도움이 되도록 공유하겠다고 했다. 다만 디스크 목격 신고는 최근 줄어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화제성이 식어가는 탓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디스크가 있었는지, 있다면 어디서 온 것인지는 끝까지 파헤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슐겐은 FBI가 조사로 얻은 정보를 항공대 현장과 전쟁부 본부에 어떻게 전달할 생각인지 물었다. 레이놀즈는 기존 체계를 그대로 쓰는 편이 낫다고 답했다. FBI 현장사무소가 각 군 사령부 정보부와도, 전쟁부 정보부와도 평소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짚었다. 슐겐은 그 경로로 정보를 받으면 충분하다고 했다 — 구체적 경로명은 가려져 있다.

    메모 마지막 단락에서 슐겐은 한 가지 가능성을 새로 꺼냈다. 디스크 소동 전체가 어떤 불순한 개인들이 대중적 패닉을 일으키려고 시작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FBI가 목격자 면담을 할 때 그 관점도 함께 염두에 두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신고된 사례들에 대해 항공대가 가진 자료를 FBI에 넘길 테니, 신고자들의 동기를 조사해달라는 제안이었다. 자료가 도착하는 대로 곧바로 보고하겠다고 피치는 메모를 맺는다.

    문서 하단에는 '기록됨 62-83894', 1947년 9월 30일 접수 도장, 그리고 1964년 11월 19일 사본 270부 폐기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32. p.132

    1947년 7월 22일 엘파소 특별수사관 책임자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정보제공자 그윈 M. 머천트 부인과 공중의 비행 물체에 관한 건이다. 머천트 부인은 산타페 주재 사무소를 여러 차례 찾아와 하늘을 가르는 비행 물체에 관한 정보를 전달해 왔다. 그가 받은 제보 중 일부는 밤하늘에 보이는 빛나는 물체가 폭발음을 동반했다는 내용으로, 뉴멕시코주 칸힐론 근처에서 일하는 산림 감시원 프랭크 더럼이 신고한 사례가 거기에 든다. 머천트 부인은 파크뷰와 티에라 아마릴라 인근에서도 비슷한 물체가 목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뉴멕시코를 비롯해 미국 여러 곳에서 보고된 원반 모양 물체에 관한 신문 기사도 함께 가져왔고, 자신이 라디오파와 광선 형태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며 이 물체가 얼마 전 스웨덴 상공에 나타난 미사일과 비슷한 종류일 수 있다고 보았다. 머천트 부인은 같은 내용을 원자력위원회 관계자들과도 논의했고 전쟁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정부 인사에게도 자기 이론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원자력위원회 보안정보 책임자 시드니 뉴버거는 로스앨러모스 측이 그를 신뢰하기 어렵고 정신적으로 안정돼 있지 않다고 본다고 알렸다. 머천트 부인 본인도 어린 시절 벼락을 맞은 적이 있다고 사무소 요원에게 말했다. 7월 15일에는 다시 산타페 사무소를 찾아와 칼럼니스트 월터 윈첼에게 편지를 보내 비행 원반에 관한 기사 거리를 약속했다고 알렸다. 메모는 머천트 부인이 여러 정부 관계자와 윈첼에게까지 편지를 보낸 만큼 그 내용을 본부에 보고한다고 마무리한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8월 7일 색인 처리와 7월 30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고, 좌측 여백에는 손글씨 메모 몇 줄이 더해져 있다.

  133. p.133

    타이핑된 메모의 뒷면 스캔이다. 잉크가 종이를 통해 비쳐 글자가 거꾸로 흐릿하게 보이고, 본문 자체는 읽을 수 없다. 페이지 아래쪽 (스캔 방향 기준으로는 위아래가 뒤집힌 상태) 에는 FBI 접수 도장 여러 개가 찍혀 있고, 그 옆에 "RECEIVED — LIAISON SECTION — MR JONES", "AUG 18 11 44 AM '47", "AUG 15 4 59 PM '47", "AUG 18 9 47 AM '47 DEPT. OF JUSTICE INTERNAL SECURITY", "AUG 15 5 09 PM '47" 같은 시각·일자 표시가 남아 있다. 1947년 8월 15일과 18일 사이에 FBI 내부, 특히 연락과(Liaison Section) 와 내부보안(Internal Security) 라인으로 같은 문서가 여러 번 접수·전달됐다는 흔적이다. 왼쪽 여백에는 손글씨 이니셜 같은 표시가 보인다.

  134. p.134

    1947년 7월 7일 밤 9시 50분, FBI 본부의 K. C. 호우가 D. M. 래드 앞으로 올린 사내 메모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 잡건". 내용은 이렇다. 뉴올리언스 지부장(SAC) 웍스가 본부로 전화를 걸어, 첨부 텔레타이프에 적힌 사안과 관련해 "플라잉 디스크" 보고가 들어올 때 본국이 어떤 방침을 따르고 있는지 물었다. 호우는 웍스에게, 별도 지시가 없으면 이번 건은 G-2(육군 정보)가 처리하도록 두고 FBI는 관할권을 갖지 말라고 답했다. 다만 진행 상황은 계속 통보받고, G-2가 발견된 물체를 촬영하면 그 사진 사본을 받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 만약 수사 책임이 따른다면 그 부담이 FBI 쪽으로 떨어지는 자리에 결코 끌려 들어가지 말라고 못 박았다. 웍스는 호우가 다시 연락해 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는 한 그렇게 처리하겠다고 답했고, 호우는 메모 끝에 "이 건에 대해 당신에게 전화로 보고했음을 기억할 것"이라고 적어 두었다. 우측 여백의 회람 명단에는 톨슨, E. A. 탬, 클레그, 글래빈, 래드, 니콜스, 로즌 등 후버 직속 라인이 줄지어 있어, 이 결정이 본부 핵심부에 곧장 공유되었음을 보여준다. 하단에는 "RECORDED" 도장과 파일번호 162-83894-38, 1947년 8월 6일·10월 2일 접수 도장, "Harvey" 서명이 함께 남아 있다.

  135. p.135

    문서 뒷면 스캔. 앞면 본문이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이지만 글자 자체는 읽히지 않는다. 대신 여백 곳곳에 1947년 FBI 내부 라우팅 수령 도장이 여러 각도로 찍혀 있는데, 법무부 산하 FBI 의 기술연구실, 연락 부서, 내부보안 부서를 차례로 거쳐 접수된 흔적이 남아 있다. 페이지 자체가 전달하는 내용은 없고, 이 문건이 1947년 한 해 동안 FBI 내부 여러 부서를 돌며 처리된 행정 동선을 보여주는 셈이다.

  136. p.136

    1947년 7월 7일자 미 공군 방첩대(CIC) 메모로, 애리조나 챈들러의 윌리엄스 비행장 책임 장교 앞으로 작성된 보고서다. 두 명의 조종사 진술이 정리되어 있다.

    첫 진술자는 윌리엄스 비행장의 P-80 훈련생 윌리엄 G. 매긴티 해군 중위다. 그는 1947년 6월 30일 오전 9시 10분경 P-80 제트기를 몰고 애리조나 그랜드 캐니언 상공 2만 5천 피트에서 윌리엄스 비행장 방향으로 남행 중이었다. 그때 둥근 물체 두 개가 믿기지 않는 속도로 수직 하강하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물체를 피하려 기수를 돌렸고, 한 물체가 다른 물체를 몇 초 간격으로 뒤따랐다고 했다. 속도가 워낙 빨라 형태는 원형이라는 것과 색이 옅은 회색으로 보인다는 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직경은 약 8피트로 추정했고, 결국 물체들은 그랜드 캐니언 사우스림 남쪽 25마일 지점쯤에서 지면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상시 주소는 캘리포니아 포트 휴니미의 해군 항공 정비 훈련센터(N.A.M.T.C.)로 적어 두었다.

    두 번째 진술자는 같은 비행장의 단발기 교관 맬컴 G. 암스트롱 대위다. 본인의 직접 목격담은 아니고, 텍사스 브룩스 육군 비행장 제10공군 사령부에 근무하는 그의 동생 암스트롱 중위가 네바다 미드 호 근처에서 정체불명의 비행체 편대를 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한다. 동생의 말로는 그 물체들은 남쪽으로 약 1만 피트 고도에서 이동 중이었다. 대위 본인은 더 자세한 정보를 알지 못해, 추가 확인을 원할 경우 동생인 E. B. 암스트롱 중위에게 직접 연락할 것을 권한다고 적었다.

    작성자는 육군 항공대(AAF) 방첩대 특수요원 린 C. 올드리치이며, 문서 하단에는 "이 사본이 원본과 일치한다"는 확인과 함께 소령 존 K. 오어의 서명이 있다. 좌·우 여백에는 'FLeTcHeR 38 x' 라우팅 메모와 여러 접수 도장이 남아 있다.

  137. p.137

    1947년 8월 1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 전쟁부 일반참모본부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인적·기밀" 표시 통신문이다. 수신처에는 보안과장 L. R. 포니 대령이 명시되어 있고, 제목은 "아서 더글러스 앤더슨 부인"이다. 본문은 두 문단으로, 표제 인물이 보내온 "비행접시" 관련 편지 사본을 동봉해 송부하며, 앤더슨 부인에게는 편지 수령을 통보하고 사본이 전쟁부 측 검토용으로 전달되었음을 알렸다고 짧게 보고한다. 좌측 여백에는 FBI 내부 회람자 명단(태머·클레그·글래빈·래드·니컬스·로젠 등)이 길게 적혀 있고, 우측 상단에는 1977년 8월 21일자 비밀해제 표시와 담당자 이니셜이 덧붙어 있다. 하단에는 FBI 사건번호 62-83890-39과 1947년 8월 7일 등재, 8월 13일 접수 도장이 찍혀 있다.

  138. p.138

    이 페이지는 앞면 문서가 종이 뒤로 비쳐 좌우 반전 그림자만 남은 뒷면 스캔이다. 1947년 8월 5일자, 펜타곤 정보국장(Director of Intelligence)에게 보내는 메모 형식이 비쳐 보이고, 발신자 자리에는 슐겐 준장(Brig. General Schulgen)으로 보이는 이름과 FBI 관련 문구가 어렴풋이 잡힌다. 본문은 한 통의 편지 사본을 첨부한다는 정도의 문장이 거꾸로 비치고, 우측 하단에는 1948년 8월 13일로 보이는 접수 도장이 거울상으로 남아 있다. 가장자리는 종이가 너덜너덜 찢겼고, 손글씨 서명과 붉은 도장도 모두 반전 상태라 정보 가치는 거의 없다. 실제 텍스트 판독은 같은 사건의 앞면(원본)을 봐야 한다.

  139. p.139

    1947년 8월 5일 오후 5시 50분 포틀랜드 FBI 지국이 후버 국장과 시애틀·샌프란시스코 SAC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다. 표제는 "플라잉 디스크, SP-X". 본부 래드(Ladd) 차장의 전화 지시에 따라, 최근 포틀랜드 지역의 플라잉 디스크 신문 보도와 군 당국의 기자 회견 내용을 요약한다는 취지로 시작한다.

    오리거니언지 항공 담당 에디터 레버럿 G. 리처즈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제4공군 사령부 소속 윌리엄 L. 데이비드슨 대위와 프랭크 M. 브라운 중위가 7월 27일 포틀랜드에 와서 베테랑 조종사 릭 랭킨을 면담했다고 한다. 랭킨은 6월 14일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상공에서 플라잉 디스크 10대가 편대 비행하는 모습을 봤다고 보고한 인물이다. 리처즈는 두 장교가 그 외에도 디스크를 처음 목격해 보도된 베테랑 조종사 네 명 — 아이다호 보이시의 사업가 케네스 아놀드, 유나이티드 항공의 E. J. 스미스 기장과 부기장 랠프 스티븐스, 아이다호 스테이츠먼지 항공 담당 에디터 데이브 존슨 — 도 면담했다고 전했다.

    리처즈는 라이트 필드의 트와이닝 소장에게 앨버커키로 전화를 걸어 직접 통화했고, 그 통화에서 "공군이 이번 조사를 벌이는 까닭은 디스크가 분명히 공군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보고를 정리하려는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금요일인 8월 1일, 그 공군 조사관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탄 비행기가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했고, 두 사람 모두… (문장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위쪽에는 FBI 본부 통신과 접수 도장(1947년 8월 6일)과 회람 명단이 있고, 명단 가운데 래드 항목에 체크 표시가 있다. 좌측 여백에 손글씨로 "CARSON COPY"가, 우측 본문 위쪽에 "Fletcher"라는 서명이 들어가 있다.

  140. p.140

    분홍색 종이 한 장의 뒷면 스캔이다. 글자가 거의 없고, 앞면의 잉크가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읽히는 정도다. 위쪽에는 "TRANSMITTED VIA AIR MAIL", "AUG 15 1947", "SECRET" 자국이 거꾸로 비쳐 보이고, 아래쪽에는 FBI 내부보안과 접수 도장 두 개가 같은 식으로 비친다. 한쪽은 오전 9시 1분, 다른 한쪽은 9시 35분에 찍힌 접수 시각이다. 본문 페이지가 아니라 앞면 문서가 비쳐 보이는 뒷면이다.

  141. p.141

    FBI 포틀랜드 사무소장 보빗(BOBBITT)이 1947년 8월 6일 본부로 올린 전문의 둘째 면이다. 본문은 사고기 잔해 처리와 타코마 디스크 이야기의 뒤집힌 사정을 이어 쓴다. 사망자가 있었고, 잔해는 매코드 비행장의 미 육군 항공대 정보부가 직접 수거해 검사했다고 보고한다. 타코마 뉴스 트리뷴은 유나이티드 프레스를 통해, 추락한 비행기가 해럴드 달과 프레드 크리스먼이 가지고 있던 배에 부딪힌 디스크의 파편을 싣고 있었다는 기사를 풀었다고 적었다. 그러나 리처즈가 알려온 바로는, 오늘자 오리거니언(The Oregonian)이 받은 유나이티드 프레스 후속 기사에서 달이 자신이 건넨 금속 조각이 디스크에서 나왔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고, 그 조각을 분석한 결과 타코마의 한 제철소 슬래그로 판명됐다고 한다. 포틀랜드 현지에는 응답할 만한 육군 항공대 정보 요원이 없고, 포틀랜드 권역에서 최근 비행 원반에 관한 의미 있는 보고도 없다고 덧붙인다. 시애틀 사무소는 매코드 비행장 측, 샌프란시스코 사무소는 육군 항공대 본부 측에 사실 확인을 요청하고, 샌프란시스코는 텔레타이프 요약을 본부에 따로 올리기로 정리한다. 포틀랜드는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는다고 끝맺는다. 아래 회선 끝에는 통신 종료 표시와 각 지부 호출 부호가 줄을 잇고, 여백에는 8/6/47 일자와 손글씨 서명, 그리고 본부 부국장 래드(Ladd)에게 사본을 돌리라는 손글씨 지시가 더해져 있다.

  142. p.142

    전문 용지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앞장의 잉크가 비쳐 흐릿하게 거꾸로 읽히는 정도로만 남아 있어 그대로 옮길 수 없고, 페이지의 실질적 정보는 윗쪽과 왼쪽 여백에 찍힌 FBI 접수 도장 세 개다. 상단에는 텔레타이프 수신반에서 1947년 7월 1일 오전 9시에 받았다는 "RECEIVED TELETYPE UNIT" 도장이 있고, 옆으로 90도 돌려 찍힌 다른 두 도장은 같은 날짜의 오전 9시 1분과 오후 2시 26분에 미 법무부 FBI 내사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차례로 접수했음을 알린다. 이 면은 통신 경로를 보여주는 라우팅 뒷면이다.

  143. p.143

    FBI 통신과가 1947년 8월 6일 접수한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FBI 포틀랜드 지국이 8월 5일 저녁 8시 50분, 본부 국장과 시애틀·샌프란시스코 특별수사책임자(SAC)에게 '긴급'으로 보낸 보고였다. 사건 코드는 비행 원반 사건, 'SM 대시 K'. 같은 날 오후 1시 래드 차장이 전화로 요청한 텔레타이프 요약에 답한 형식이다.

    포틀랜드 지역에서 잇따른 비행 원반 목격 보도와, 이 사안을 두고 포틀랜드에 모인 육군 관계자들의 비공식 회동에 관한 정보를 정리했다. 포틀랜드 일간지 '오레고니언'의 항공 담당 편집자 르베릿 G. 리처즈는, 제4육군항공대(AAF) 사령부 소속 윌리엄 L. 데이비드슨 대위와 프랭크 M. 브라운 중위가 7월 27일 포틀랜드에 와서 베테랑 조종사 딕 랭킨을 면담했다고 알렸다. 랭킨은 6월 14일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상공에서 비행 원반 열 대가 편대를 이뤄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신고한 인물이었다.

    리처즈에 따르면 두 장교는 '원반을 처음 신고한' 베테랑 조종사 네 명도 같이 면담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케네스 아놀드(아이다호 보이시의 사업가), E. J. 스미스 기장과 부기장 랠프 스티븐스(유나이티드 항공), 데이브 존슨(아이다호 스테이츠먼 항공 담당 편집자).

    이 면담의 진짜 목적이 궁금했던 리처즈는, 오하이오 라이트 필드 사령부의 트와이닝 소장에게 뉴멕시코 앨버커키 경유로 전화를 걸어 직접 확인했다. 통화 끝에 그가 받은 인상은 이랬다. 육군항공대는 이 원반 신고들이 자기네 기체에서 나온 것이 절대 아님을 확인하고, 보도를 '씻어내려'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8월 1일 금요일, 조사를 맡았던 데이비드슨 대위와 브라운 중위가 탑승한 비행기가 워싱턴주 켈소에서 추락했고, 두 사람 모두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수신 시각 도장에는 1947년 8월 6일, 옆 라우팅 명단의 'Fletcher'에 손글씨 표시가 들어 있고, 본문 하단에는 FBI 사건 번호 162-1-3894로 기록·색인되었음을 보이는 도장이 같이 찍혀 있다.

  144. p.144

    분홍색 문서의 뒷면. 본문 텍스트 없이, 앞면에 찍힌 FBI 접수 도장과 통신과 헤더가 얇은 종이를 통해 거꾸로 비쳐 보인다. 비쳐 보이는 흔적은 1947년 6월 15일 오전 9시 1분과 오후 2시 26분에 FBI 내부보안과가 접수했다는 표시, 그리고 같은 해 8월 6일자 미 법무부 FBI 접수 도장이다. 상단에는 통신과(Communications Section) 헤더와 1947년 6월 날짜의 텔레타이프 표시가 희미하게 묻어 있다. 페이지 자체의 정보 가치는 거의 없고, 앞면 문서가 FBI 내부보안과를 두 차례 거쳐 법무부로 넘어간 접수 경로를 확인해 주는 보조 면이다.

  145. p.145

    1947년 8월 6일 E. G. 피치가 FBI 부국장 D. M. 래드에게 올린 사내 메모로, 제목은 '비행접시'다. 연락 담당 특별요원 S. W. 레이놀즈가 미 육군항공대 정보부의 C. P. 마틴 중령에게 연락해, 최근 서부 해안 신문에 실린 기사 — 회수된 비행접시를 싣고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비행기가 도중에 추락했다는 내용 — 에 관해 문의했다고 적었다. 마틴 중령은 레이놀즈에게, 육군항공대 본부가 받은 정보는 단 하나, 샌프란시스코 해밀턴 필드에 있는 제4공군사령부 소속 방첩대(CIC) 요원이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는 사실뿐이라고 답했다. 항공대 본부는 그가 일급비밀 임무 중이었다고 통보받았고, 마틴은 그 CIC 요원이 비행접시를 처음 목격한 인물 중 한 명인 아놀드 씨와의 인터뷰를 오가던 길이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마틴은 이어서, 항공대는 추가 정보가 없으며 제4공군 보고서가 들어와야 그제야 알 수 있을 것이라 했고, 샌프란시스코 현장 사무소가 해밀턴 필드 제4공군사령부의 스프링거 대령과 직접 접촉할 것을 권했다. 다만 마틴은 자신의 견해로는 실제로 회수된 비행접시는 없으며, 이 사건은 단지 비행접시를 봤다고 신고했던 인물을 다시 인터뷰하려는 시도였을 뿐이라고 레이놀즈에게 못 박았다. 우측 여백에는 FBI 내부 회람 명단이 길게 따라 붙고, 아래쪽에는 'AUG 19 1947 263' 접수 도장과 '16-2-3894' 기록번호, 그리고 마지막 두 문장에 손으로 그어진 밑줄이 남아 있다.

  146. p.146

    문서 뒷면에 찍힌 FBI 내부 회람 도장만 남은 페이지다. 앞면 본문 글자가 종이를 통해 비쳐 보이고, 그 위에 파란 잉크 도장 세 개가 거꾸로 찍혀 있다. 첫 도장은 런던 디비전이 1947년 8월 9일 오전에, 두 번째 도장은 인터널 시큐리티 섹션이 8월 15일 오후 4시 38분에, 세 번째 도장은 라틴 아메리카 담당 섹션으로 보이는 부서가 8월 16일 오전 11시 7분에 받았다는 접수 기록이다. 모두 미 법무부 FBI 도장이고, 문서가 며칠에 걸쳐 FBI 부서 사이를 옮겨 다닌 회람 경로를 보여 준다. 상단에는 파일링용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다.

  147. p.147

    위스콘신주 워키쇼에 사는 로버트 J. 브로카가 연방수사국 앞으로 보낸 편지다. 그는 최근 서부 지역에서 보고되는 원반 모양 비행체 이야기를 듣고, 종전 직후 독일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떠올려 알릴 만하다고 판단했다고 적었다. 어느 저녁, 동료의 친구를 만나러 셋이 지프로 시골길을 달리던 중 전방 8~10마일, 고도 약 5,000피트 상공에서 이상한 물체를 보았다고 한다. 지프를 세우고 살펴보니 물체는 빠르게 다가오며 천천히 내려왔고, 1마일쯤 떨어진 지점에서 수평 이동을 멈춘 뒤 낙하산처럼 천천히 진동하며 하강하다가 갑자기 나선형으로 떨어졌다. 곧장 떨어진 지점으로 차를 몰아 5분 만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10분 동안 주변을 돌다가 어두워져 마을로 돌아갔다고 한다. 동승자들이 같은 장면을 봤는지는 확실치 않다 — 너무 순식간이어서 놓치기 쉬웠겠지만, 자신의 묘사를 듣고 그들도 흥분했다고 덧붙였다.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지만 바람과 직각 방향으로 움직이는 점이 달랐다. 그는 사건 장소를 하베르비숍스하임에서 북서쪽으로 약 20마일 떨어진 곳이라고 적고, 필요하면 진위와 물체의 형태를 선서로 증언하겠다고 끝맺었다. 편지 여백에는 'Flying Discs'라고 손글씨로 써 둔 메모와 'B-29' 관련 짧은 메모가 보이는데, FBI 측이 사후에 분류·처리하면서 남긴 흔적으로 보인다.

  148. p.148

    페이지 본문은 비어 있고, 얇은 종이 너머로 앞면 타자기 글이 비쳐 거꾸로 보일 뿐이다. 우측 하단 모서리에 FBI 접수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어, 이 문서가 1947년 7월 11일 오후 5시 10분 FBI 내부 보안과에 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종이 윗부분은 여러 군데 찢기고 구멍이 나 있다.

  149. p.149

    1947년 9월 10일자로 FBI 워싱턴 본부가 작성한 발송 내역서다. 사건 분류는 "Flying Saucer"이며, 수신인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에스틸의 J. H. Mixon 부인. 발송 품목은 단 한 줄, "가루로 만든 동석(soap stone)". 우측에는 회람 대상자 다섯 명 (Harbo, Conrad, Downing, Sizoo, Baughman) 의 이름과 내선 번호가 적혀 있고, 통신과 도장은 9월 13일 오후 등기 우편으로 발송되었음을 보여준다. 등기번호 497251, 사건철 번호 62-83894.

  150. p.150

    1947년 9월 13일 오후, 미 연방수사국 통신과가 한 등기 우편물을 발송하며 찍은 발송 도장이 남은 봉투의 뒷면이다. 종이 너머로 앞면에 인쇄된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WASHINGTON, D.C." 양식과 사건 참조 번호, 분류, 내용물 목록 칸이 좌우가 뒤집힌 채 비쳐 보이고, 그 옆에는 "REGISTERED" (등기) 도장 자국이 함께 비친다. 오른쪽 아래 빨간 직인은 "COMMUNICATIONS SECTION / MAILED 7 / SEP 13 1947 P.M." 으로 또렷이 읽히며, 이 봉투가 1947년 9월 13일 오후 7시 FBI 통신과에서 정식으로 발송 처리되었음을 보여 준다. 페이지 자체에 새로 기재된 본문은 없고, 봉투 표면이 전부다.

  151. p.151

    1947년 8월 5일, FBI 국장 J. 에드거 후버가 워싱턴 D.C. 펜타곤 육군부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메모다. 특별 전령 편으로 전달됐고, 수신처 주의 표기는 보안그룹장 L. R. 포니 대령. 제목은 "로버트 J. 스로카"라는 인물의 이름.

    후버는 위 인물이 "비행 원반(flying discs)"에 관해 보낸 편지의 사본을 동봉한다고 알린다. 스로카 본인에게는 편지를 잘 받았다고 회신했으며, 사본은 군 정보부 측에서 참고할 수 있도록 넘긴다고 통보했다는 내용이다.

    문서 좌측 하단에는 1947년 8월 7일자 FBI 통신과 접수 도장이, 우측에는 8월 6일 12시 28분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우측 여백에는 1977년 8월 31일자로 기밀해제했음을 알리는 손글씨도 보인다.

  152. p.152

    1949년 8월 3일자로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펜타곤 정보국장 (육군 항공국 정보참모부, 보안과장 L. R. 포니 대령 앞)에게 보낸 짧은 전달 공문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은 '플라잉 디스크' 관련 제보 편지의 사본을 동봉해 보낸다는 한 문단과, 발신자에게는 사본을 펜타곤으로 넘겼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단서로 이뤄져 있다. 페이지는 거꾸로 뒤집힌 채 비쳐 보이는 상태이며, 하단에는 FBI 우편실 1949년 8월 5일 오후 4시 20분 접수 도장이 빨갛게 찍혀 있다.

  153. p.153

    1947년 8월 7일, FBI 본부 통신과가 디트로이트 지부장(SAC)에게 "긴급"으로 보낸 후버 국장 명의의 전문이다. 본문은 레이먼드 에드워드 레인 부부 관련 "플라잉 디스크" 사건 정보원 자료를 다룬다. 디트로이트 지부가 8월 5일자 전문으로 보고한 자료를 FBI 연구소(Laboratory)로 보내 검사하지 말고, 육군 항공대 정보부(Army Airforce Intelligence)에 직접 넘기라고 지시한다. 하단에는 1947년 8월 7일 통신과 접수 도장, 같은 달 11일 FBI 기록·색인 도장(문서번호 62-83894), 1954년 11월 18일 사본 폐기 표시가 함께 남아 있어, 같은 시기 FBI가 플라잉 디스크 사건 처리 라인을 자체 감식이 아닌 군 정보부로 정리해 두었음을 보여 준다.

  154. p.154

    문서의 뒷면이다. 앞면 글자가 종이 너머로 비쳐 거꾸로 흐릿하게 보이고, 페이지 아래쪽에는 1947년 8월 14일자 접수 도장과 'INITIAL' 표시가 남아 있다. 펀치 구멍 두 개와 손글씨 메모 자국도 함께 보이지만 독자적인 본문은 없다.

  155. p.155

    1947년 8월 4일 오후 5시 36분 동부 표준시, 뉴어크 FBI 지부가 워싱턴 본부 디렉터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한 장이다. 전문은 8월 3일 뉴저지 핵켄색에서 비행 원반이 목격됐다는 보고를 전한다. 정보 제공자는 핵켄색 유클리드 애비뉴 287번지에 사는 찰스 카셀라 주니어와, 또 한 명 (이름은 가려져 있다), 그리고 뉴저지 포트 딕스 소속 미 육군 윌리엄 트룩스다. 세 사람은 8월 3일 늦은 오후 지상에서 비행 원반 으로 묘사되는 물체를 목격했다. 카셀라는 물체가 200야드 상공에 있었고 천천히 회전하면서 빠르게 이동했으며, 연도 풍선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카셀라가 핵켄색 경찰서에 직접 전화로 신고했고, 조사 중이며 추가 사항은 본부에 계속 보고하겠다는 말로 전문이 끝난다. 페이지에는 FBI 통신과의 1947년 8월 4일 접수 도장과 등록번호 62-83894 가 함께 찍혀 있고, 여백에는 No charge / Mr. Casella / G. C. Casella, Jr / 8/6/47 같은 손글씨 메모가 남아 있어 이후 처리 흔적을 보여준다.

  156. p.156

    본문 없이 라우팅 슬립으로만 쓰인 분홍색 시트의 뒷면 스캔이다. 1947년 8월 4일부터 8일 사이 FBI 내부 여러 부서 — 래드(Ladd) 사무실, 텔레타이프 접수실, 연락과(Liaison Section),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 — 가 같은 전문을 차례로 접수하면서 찍은 도장이 위아래로 어지럽게 겹쳐 있다. 본문 글자는 잉크가 비치는 정도로만 보일 뿐 읽을 수 없고, 페이지의 정체는 한 통의 전문이 FBI 본부 안에서 어떻게 회람됐는지를 보여주는 처리 기록이다.

  157. p.157

    1947년 8월 8일, 노퍽 지부 특별수사관 책임자(SAC)가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다. 1947년 7월 30일자 본부 회보 42호에 따라 비행 원반 관련 정보를 보고한다는 취지로 시작한다.

    노퍽의 학생 빌리 터렌타인이 작은 카메라로 비행 원반을 촬영했다고 주장하며, 그 사진이 실린 1947년 7월 9일자 노퍽 레저-디스패치 신문 기사가 이 편지에 첨부되어 있다. 1947년 8월 8일 토머스 J. 코너 특별수사관이 빌리를 면담했다. 빌리는 원판 음화를 포토 크래프츠맨 서비스의 브라운 씨에게 넘겼고, 브라운이 다시 인터내셔널 뉴스 서비스에 음화를 제공했다고 진술했다. 빌리는 브라운과 약정을 맺어, 상업 회사나 신문사가 이 음화를 사용해 발생한 수익은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다만 8월 8일 현재까지 빌리는 보수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빌리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1947년 7월 8일 정오 무렵 버지니아 노퍽 웨스트 14번가 410번지 아파트 3층 앞 현관에 앉아 있었다. 그는 비행 원반에 관한 신문 기사를 많이 읽었고, 직접 한 번 보고 사진까지 찍어보려는 마음으로 현관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날 그는 크고 검은 물체 하나가 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고, 그 뒤를 더 작은 물체 두 개가 같은 방향으로 따라가더라고 말했다. 속도는 비행기보다 훨씬 빨라 보였고, 고도도 노퍽 상공을 다니는 보통 비행기보다 한참 높아 구름 위쪽이었다고 했다. 세 물체 뒤로는 각각 흰 안개 같은 것이 따라왔는데, 빌리는 그 "안개"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설명하지 못했고 큰 풍선이었을 가능성도 인정했다. 평소에 작은 장난감 풍선이 떠다니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그런 종류는 분명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처음 봤을 때 물체들은 약 6인치 정도 크기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3층 현관에서 머리를 들지 않고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빌리는 곧바로 몸을 돌려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페이지 하단과 여백에는 "COPIES DESTROYED" 도장, 1962년·1964년 일자 도장, RECORDED·INDEXED 표시, 손글씨 파일 번호와 수사관 머리글자가 남아 있어 FBI 내부 처리 흔적을 보여준다.

  158. p.158

    스캔이 거꾸로 들어가 있어 본문 한 줄 한 줄을 읽어내기 어려운 한 페이지짜리 타자 편지다. 상단 (원본 기준) 에는 "Free Manchuria" 단체명이 박힌 미국 정부 양식 편지지가 보이고, 1947년 11월의 날짜와 함께 워싱턴 D.C. 의 FBI 앞으로 보낸 수신처가 적혀 있다. 본문은 단락 몇 개로 이어지는 산문 형식이지만, 거꾸로 찍힌 상태와 종이 누런 색·번진 잉크 때문에 문장 단위 판독이 어렵다. 페이지 가운데에는 FBI Liaison Section, Internal Security 라우팅 도장과 수신 일자 도장이 겹쳐 찍혀 있어, 이 편지가 FBI 내부 부서를 거쳐 접수·회람된 외부 제보 또는 청원성 서신이라는 사실 정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159. p.159

    1947년 8월 8일 FBI 국장에게 보낸 "플라잉 디스크" 보고 서한의 두 번째 장이다. 앞 장에서 이어지는 본문은, 목격자 빌리(BILLY)가 사진을 찍을 당시의 상황을 정리한 대목이다. 빌리는 카메라를 준비해 셔터를 누르기까지 대략 20~30초가 걸렸다고 진술했고, 그 시점에 디스크들은 거의 자기 아파트 바로 위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몸을 숙여 거의 수직으로 위를 올려다봐야 했고, 그 자세 때문에 신문에 실린 사진 한쪽에 베란다 난간이 같이 찍혔다고 설명했다. 빌리는 사진을 찍은 그 날 날씨가 흐릿하고 다소 구름이 있었으며, 남서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가벼운 산들바람이 불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에 잡힌 검은 형체가 이동한 방향도 같은 남서→북동이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타이드워터 지역의 육군 측이 이 사안을 이미 알고 있으므로 자신들(이 사무소)은 추가 조사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적는다. 마지막 줄의 "Enclosure"는 동봉물이 있다는 표시이고, 그 아래 TJC:lab / 62-182는 작성자 이니셜·타이피스트·사건번호 표기다.

  160. p.160

    노퍽 레저-디스패치(Norfolk Ledger-Dispatch) 1947년 7월 9일자 기사 스크랩이다. 표제는 "자동차보다 큰 비행 원반을 소년이 찍었다 — 아무도 못 봤다는 사실에 놀란"이고, 기자는 조지 허버트(George Herbert). 노퍽 웨스트 14번가 416번지에 사는 15세 빌 토어셋(Bill Toersettae) 소년이 화요일 정오 무렵 자기 집 앞 베란다에서 회색의 큰 물체가 "팽이처럼 비틀리며 돌면서" 북동쪽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는 내용이다. 소년은 신문사에 사진을 들고 와서 "왜 신문이 먼저 찍지 않았느냐, 사진기자들은 빠른 줄 알았다"고 따졌다고 한다. 소년은 그 물체가 원반이라기보다는 풋볼 공처럼 둥글면서 약간 길쭉했고, 색깔은 "녹색에 가까운 검정", "태운 비스킷" 같은 모습이었으며, 고도는 약 1000피트 정도로 구름 바로 아래였다고 진술한다. 셔터는 f/8, 1/200초로 맞춰 세 컷을 찍었지만 현상 결과 한 컷만 사용 가능했다고 한다. 함께 본 16세 누나 제럴딘(Geraldine)은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진관 Photo Craftsmen이 원본 네거티브를 확대해 신문에 실었고, 사진관 측은 "필름이 다소 약했지만 낡은 카메라로 찍은 것 치고는 잘 찍었다, 최근 비행 원반 보도가 시작된 이후로는 이만한 사진이 가장 좋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기사 사진에는 허버트 기자가 토어셋 소년에게 사진을 받아보는 장면과, 소년이 찍었다는 원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스크랩 상단에는 출처 표시 "From Norfolk Ledger-Dispatch / Date 7-9-47"가 도장으로 찍혀 있고, 오른쪽 여백에는 손글씨로 보이는 문서번호 "65 83 894-95"가, 오른쪽 아래에는 "ENCLOSURE" 도장이 찍혀 있어 이 스크랩이 어떤 문서의 동봉 자료로 편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161. p.161

    1947년 7월 8일,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N. 미드 레인이 “저명한 과학자, 항공·군 당국자, 공직자, 일부 출판물” 앞으로 보낸 “중요 각서(A Memorandum of Importance)”다. 발신처는 “The Flying Roll / 3615 Alexia Place, San Diego 4, Calif.”로 적혀 있고, 매체명 “The Round Robin / The Flying Roll”이 머리에 함께 박혀 있다.

    레인은 서두에서 이 글로 무언가 큰 성과가 나리라는 기대는 거의 없다고 인정한다. 본인이 정리한 자료가 “이른바 초상적(supernormal) 수단”으로 얻은 것인 이상, 받는 사람 대부분이 그 사실만으로 무시하리라는 점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알리는 것이 공적 의무라고 본다며, 자신은 여러 대학 학위 소지자이고 과거 대학 학과장이었다는 점을 덧붙인다.

    그는 “하늘을 나는 원반(flying saucers)”과 관련해 곧 매우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그 원반 중 하나를 공격하면, 공격한 비행기는 거의 확실히 파괴될 것이며, 그 소식이 대중에게 알려지면 공황과 국제적 의심을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손에 들어온 핵심 자료를, 사고 훈련이 안 된 사람에게 아무리 황당해 보이더라도 내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정리한 핵심 주장은 아홉 항이다.

    첫째, 원반 일부에는 승무원이 타고 있고, 나머지는 원격으로 조종된다. 둘째, 그들의 임무는 평화적이며, 방문자들은 지구에 정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셋째, 방문자들의 외형은 인간과 비슷하지만 체구가 훨씬 크다. 넷째, 이들은 지구에서 분리돼 떠도는 영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자기 세계에서 온 별개의 존재다. 다섯째, 우리가 쓰는 뜻의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 세계와 겹쳐 존재하면서도 우리에게는 지각되지 않는 “에테르 행성”에서 온다. 여섯째, 방문자의 몸과 그 비행체는 우리 물질계의 진동수에 들어올 때 자동으로 물질화한다(레인은 신지학에서 쓰는 “아포트(apport)” 개념을 빗댄다). 일곱째, 원반은 방사형 에너지 혹은 빔을 갖고 있어, 공격해 오는 비행체를 손쉽게 분해할 수 있다. 또 그들은 마음대로 다시 에테르 상태로 들어가 우리 시야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여덟째, 그들이 오는 영역은 신지학에서 말하는 “아스트랄계”가 아니라 “로카(Lokas)” 또는 “탈라(Talas)”에 해당하며, 비교(秘敎) 전통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용어를 알 것이라고 말한다. 아홉째, 무선통신으로는 닿기 어렵지만 신호 체계만 설계하면 레이더로는 닿을 가능성이 있다(이 줄 옆에는 “INDEED!”라는 짧은 자필성 표시가 끼어 있다).

    그는 마지막에 “우리는 정보를 주고 경고할 뿐, 그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적는다. 회의론자에게는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대하라고 권한 뒤, 만일 원반의 정체가 (한 단어 가려진 채) 다른 무엇이라면 지금의 문화와 과학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사안을 이해할 수 있는 소수의 권한자에게 무거운 책임이 놓여 있다”는 문장으로 본문을 닫는다. 서명은 N. 미드 레인(N. Meade Layne), 주소는 동일하게 샌디에이고 알렉시아 플레이스 3615번지로 다시 적혀 있다.

    본문 아래에는 부기(Addendum)가 잘려 있는데, “로카(Lokas) 비행체”는 타원형이고, 외피는 인간이 아직 모르는 내열성 금속이나 합금이며, 앞부분은 조종부, 가운데는 동력 장치, 뒤쪽은 무장 영역이라는 설명이 단편적으로 남아 있다. 페이지 상단에는 누군가 손글씨로 “6751”, “Parsons” 같은 이름을 적어 두었고, 좌측 여백에는 또 다른 자필로 “Mr Belmont”라는 수신자명이 보인다. 우측 하단에는 FBI 파일 번호로 보이는 “162-83894-46”이 손글씨로 적혀 있어, 이 등사물이 FBI 내부에서 회람·편철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162. p.162

    타이핑된 문서의 뒷면 스캔이다. 앞면에서 비쳐 보이는 글자들이 거꾸로 뒤집힌 채 흐릿하게 드러나며, 본문은 읽을 수 없다. 페이지 하단에는 1947년 3월 31일 오전 9시 9분과 9시 37분에 FBI 기술연구소와 연구소 부서에서 접수했다는 도장 두 개가 옆으로 누운 채 찍혀 있어, 이 문서가 본부의 수신·분류 절차를 거쳤음을 보여 준다.

  163. p.163

    1947년 8월 9일 오후 2시 50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워싱턴 FBI 본부와 시애틀·포틀랜드 지부장 앞으로 보낸 긴급 텔레타이프 디코드본이다. 'FLYING DISKS, SECURITY MATTER-X' 사안에 관해, 샌프란시스코 G2 소속 도널드 C. 스프링거 중령이 오늘 더 이상의 정보가 없다고 알려왔으며,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는 FBI 시애틀 지부가 보유하고 있고 사건은 워싱턴주 터코마에서 처리 중이라고 밝혔다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킴볼, 본부 접수 시각은 같은 날 오전 8시 15분(동부 일광절약시), 시애틀·포틀랜드 지부에도 동일 내용이 전달됐다. 하단에는 '본 메시지의 정보를 국 외부로 전파할 경우 FBI 암호체계 보호를 위해 적절히 의역하라'는 표준 경고가 따라붙어 있고, 우상단에는 톨슨·E. A. 탬·클레그·래드·니콜스 등 본부 간부 회람 명단이 인쇄돼 있다. 문서번호 162-13874, 1947년 8월 11일 본부 정식 기록 도장이 찍혔다.

  164. p.164

    1947년 8월 9일 자 텔레타이프 한 통이 FBI 내부 처리 과정에서 받은 접수·발신 도장 자국을 모은 면이다. 분홍빛 종이 윗부분에는 "수신 텔레타이프부, 8월 9일 오후 11시 26분" 도장이 똑바로 찍혔고, 아래쪽에는 같은 날 오후 11시 23분 "발신 — 무선통신부" 도장과 오전 11시 32분 "수신 — 내부보안 / FBI" 도장이 거꾸로 찍혀 있다. 본문은 없고, 같은 한 통이 부서 간을 오간 시간 기록만 남은 라우팅 면이다.

  165. p.165

    1947년 8월 1일자로 FBI 내부에서 돌린 사무 메모다. J. P. 코인이 D. M. 래드에게 보냈고, 제보자 "앤더슨 부인(Mrs. Arthur Douglas Anderson)" 건을 다룬다. 코인은 앤더슨 부인이 1947년 7월 12일 소인으로 보낸 "플라잉 소서"에 관한 편지가 이 메모에 첨부돼 있고, 앤더슨 부인에게 보낼 회신 편지와 육군부(War Department)로 넘기기 위한 승인용 편지도 함께 붙였다고 알린다. 결론은 한 줄이다 — 육군부에 보낼 편지를 연락과(Liaison Section)로 돌려 해당 기관에 전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백에는 손글씨로 "Done"이라 적힌 처리 표시와 "handled separately"가 보이고, 하단에는 FBI 접수 도장(AUG 12 1947)과 파일 번호 162-83894, 그리고 1947년 9월 30일자 또 다른 접수 도장이 찍혀 있어, 이 메모가 실제 FBI 시스템에 정식 등록·관리됐음을 보여 준다.

  166. p.166

    FBI 내부보안과(Internal Security)가 1947년 8월 8일 오전 11시 24분에 접수한 "Office Memorandum — United States Government" 양식의 뒷면 스캔이다. 본문 글자는 앞면에서 비쳐 보일 뿐 읽을 수 없고, 페이지의 의미는 좌측 하단의 접수 도장과 "AUG 8 1947" 날짜 도장 두 개가 겹쳐 찍힌 데에 있다. 본문 페이지가 8월 8일 FBI 내부보안과에 도착해 접수 처리되었다는 사실만 이 페이지가 증언한다.

  167. p.167

    1947년 8월 11일 오후 1시 17분 태평양 표준시, FBI 포틀랜드 사무소가 본부장에게 "긴급"으로 보낸 텔레타이프 전문이다. 안건은 "플라잉 디스크 — 보안 사안 X". 전직 해군 조종사이자 현재 오리건주 머틀크릭 공항 관리인으로 일하는 레드 햇필드가 8월 6일 저녁 머틀크릭 상공 약 5,000피트 고도에서 비행하던 중 두 차례에 걸쳐 정체불명의 물체를 목격했다고 신고했다는 내용이다. 햇필드는 추후 면담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발신은 보비트(BOBBITT), 워싱턴 본부 수신 확인은 같은 날 오후 5시 18분. 상단에는 통신과 접수 도장(AUG 11 1947)이, 하단에는 사건번호 62-83894-49가 적혀 있다. 우측 여백의 라우팅 슬립에는 톨슨·태머·클레그 등 본부 고위 간부들이 회람 대상으로 올라 있어, 이 시기 FBI 본부가 비행 원반 신고를 어느 선까지 띄워 보고했는지를 보여준다.

  168. p.168

    분홍빛 전문 용지의 뒷면 스캔이다. 종이 위쪽에 펀치 구멍 두 개가 뚫려 있고, 뒷면을 통해 앞면의 타자 본문이 거꾸로 비쳐 보인다. 하단 가장자리에 1947년 8월 11일과 12일에 찍힌 FBI 접수 도장이 세 개 보인다. 하나는 8월 12일 오전 9시 55분 FBI 내부보안과 수사부 접수, 다른 하나는 8월 11일 오후 5시 21분 미 법무부 텔레타이프부 접수, 마지막은 8월 11일 오후 5시 30분 FBI 텔레타이프 처리 도장이다. 본문 텍스트는 없고 라우팅 도장만 남은 페이지로, 이 전문이 FBI 내부에서 어떤 경로로 흘러갔는지 보여주는 행정 흔적이다.

  169. p.169

    1947년 8월 12일 밀워키 지부장(SAC)이 FBI 국장에게 보낸 사무 메모로, 제목은 '비행 원반 / 사보타지'다. 메모는 먼저 1947년 7월 30일 본부 회람 42호 3항을 인용한다. 모든 비행 원반 관련 보고는 현장 지부가 직접 조사하라는 지시다.

    그 지시가 내려오기 전에도 밀워키 지부는 이미 두 건의 신고를 접수한 상태였다. 첫 번째는 7월 7일 새벽 8시 반에 본부의 플레처(Fletcher)라는 사람이 전화로 알려온 건이며, 7월 8일 자 본부 보고서에 자세히 적혀 있다. 이 건은 조사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7월 11일 오후 1시 20분, 위스콘신 민간항공순찰대(육군항공대 보조 조직) 책임자 해리 W. 셰퍼 중령이 블랙리버폴스에서 전화로 알려온 건이다. 셰퍼의 보고에 따르면, 7월 10일 오후 3시 반쯤 위스콘신 잭슨카운티 박람회장 근처에서 시 전기기사 시그 핸슨이 지름 19인치짜리 원반 모양 물체를 발견했다. 셰퍼는 이 물체가 은색 비행기 도료를 입힌 판지 같은 재질로 보이고, 뒤쪽에는 방향타 비슷한 작은 나무 꼬리가 달려 있으며, 안쪽에는 RCA 광전지나 광전관처럼 보이는 부품, 그리고 작은 전동기가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전동기 축은 원반 중심까지 이어졌고 축 한쪽 끝에는 아주 작은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셰퍼는 이 장치를 청소년이 만든 장난감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는 물체를 밀워키로 가져왔다가 결국 육군항공대에 넘기고 싶어 했지만, 발견자 핸슨이 자기 발견 건으로 언론에 알리고 싶어 했고 물체도 돌려받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 내용은 본부의 부국장보 D. M. 래드에게도 전화로 보고됐다. 이후 밀워키 지부장 E. K. 존슨이 시카고 제5군 사령부 방첩 책임자 프레드 지버트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고, 지버트는 직접 셰퍼에게 연락해보겠다고 답했다.

    메모는 '이 건에 대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는 한 문장으로 끝난다. 문서 하단에는 '사본 파기 270부 / 1954년 11월 18일' 스탬프가 찍혀 있어, 본부에서 일부 사본을 1954년에 파기했다는 사실이 함께 남아 있다.

  170. p.170

    1947년 8월 13일 FBI 본부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의 두 번째 장이다. 작성자는 자기 사무소가 비행 원반 건으로 연락받은 사례는 앞서 언급한 두 건이 전부라고 정리한다. 본부에서 다른 지시가 내려오지 않는 한, 이 두 건에 대해 추가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으며, 다만 앞으로 들어올 비행 원반 관련 신고는 모두 충실히 조사하겠다고 덧붙인다. 좌측 하단에 작성자 이니셜 JGF/ddc 와 파일 번호 96-0 이 남아 있다.

  171. p.171

    1947년 8월 5일, FBI 국장 존 에드거 후버가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프레드 R. 라이볼드에게 보낸 짧은 회신이다. 후버는 라이볼드가 7월 10일자 소인으로 부친 편지와 동봉물을 잘 받았다고 알리며, 그 안에 담긴 정보가 전쟁부의 관심사에 해당하므로 자신이 그 자료를 전쟁부로 넘겨 검토받게 했다고 통보한다. 마무리는 의례적인 서명 — 'Sincerely yours, John Edgar Hoover, Director'. 수신인 이름 옆 여백에는 누군가 펜으로 'Flying Discs' 라고 휘갈겨, 이 편지가 비행 원반 제보 처리 건임을 한눈에 표시해 두었다. 좌하단의 통신과 발송 도장과 우측 여백의 8월 6일 접수 도장, 그리고 사건 번호 62-83894 가 함께 찍혀 있어 FBI 내부에서 정식 사건 파일로 등록·발송된 문건임을 알 수 있다.

  172. p.172

    1947년 7월 14일, 애리조나주 챈들러 윌리엄스 비행장에서 작성된 FBI 사본 메모로, 담당 책임관에게 보내는 보고서다. 작성자는 특별요원 린 C. 올드리치(Lynn C. Aldrich)다. 요원은 1947년 7월 8일 애리조나 리퍼블릭 신문 편집국장으로부터 미확인 물체 사진 두 장(증거물 1, 2)을 입수했다. 사진은 1947년 7월 7일 해질 무렵 피닉스 14번가 북 4333번지에 사는 윌리엄 로즈(William Rhoads)가 촬영했다. 보고에 따르면 문제의 물체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로즈의 집 주변을 세 바퀴 돌았다. 증거물 1은 620 사이즈 박스 카메라로 물체가 로즈 앞을 지나갈 때 찍었고, 증거물 2는 물체가 로즈 쪽으로 방향을 틀 때 찍었다. 물체의 고도는 약 1,000피트로 추정됐다. 요원 비고란에는 두 사진이 약 20배 확대본이며, 군 인력이 목격한 물체에 관한 추가 보고는 사무소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적었다. 우측 상단 'FBI' 손글씨와 좌측 상단 'DECLASSIFIED / NND 90986' 라벨, 하단 1947년 8월 8일자 FBI 샌프란시스코 접수 도장이 함께 보인다.

  173. p.173

    1947년 8월 4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미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 부참모장 윌리엄 R. 그레이엄 소령이 샌프란시스코 서터가 111번지 426호실의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에게 보낸 "비행 원반(Flying Discs)" 조사 관련 공문이다. 본문은 한 단락 분량으로, 해당 사안에 관한 MOIC(군 정보장교) 보고서와 신문 기사 사본을 함께 동봉한다는 내용이다. 첨부 자료는 두 건으로, 1947년 7월 7일자 소렌슨(Sorensen) MOIC 보고서와 같은 해 7월 5일자 신문 기사다. 문서는 상하단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힌 기밀 등급 공문이며, 우측 하단에는 1947년 8월 7일 샌프란시스코 FBI 지부에서 접수했음을 보여주는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74. p.174

    본문은 없는 빈 페이지로, 상단에 붉은색으로 적힌 문서 일련번호 62-81994-52 만 남아 있다. 하단의 검은 점들은 바인더 클립 자국으로 보인다.

  175. p.175

    1947년 8월 6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에 자리한 미 제4공군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서터가 111번지 426호실에 있는 미 법무부 FBI 특별수사관 책임자 앞으로 보낸 공문이다. 제목은 "플라잉 디스크 조사"이며, 본문은 단 한 줄로 "첨부된 MOIC를 참고용으로 보낸다"고만 알린다. 첨부물은 7월 14일자 올드리치 MOIC 한 건. 발신자는 항공단 소령이자 정보참모 부참모 윌리엄 R. 그레이엄이고, 그의 친필 서명이 들어가 있다. 문서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표시가, 우측 하단에는 1947년 8월 8일 샌프란시스코 FBI 접수 도장이 함께 남아 있다.

  176. p.176

    1947년 8월 4일, 캘리포니아 해밀턴 필드의 제4공군 사령부 정보참모부(A-2)가 샌프란시스코 서터가 111번지 426호에 있는 미 법무부 특별수사관 책임자 앞으로 보낸 "비행 원반" 조사 관련 회람 문서다. 발신부서는 4AFDA, 문서번호는 333.5 ID, 분류는 기밀(CONFIDENTIAL). 본문은 한 문단으로 짧다. 첨부한 진술서와 신문 스크랩 사본을 참고용으로 함께 보낸다는 내용이다. 첨부 자료는 두 건으로, 7월 30일자 RANKIN의 진술서와 7월 2일자 신문 스크랩이다. 발신자는 항공대 소령이자 A-2 부참모장 윌리엄 R. 그레이엄(William R. Graham). 페이지 하단에는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1947년 8월 7일 이 문서를 접수했음을 알리는 수신 도장이 찍혀 있어, 군 정보부와 FBI 사이에 비행 원반 목격 자료가 실제로 오갔음을 보여준다.

  177. p.177

    오리건 저널 기사 발췌가 이어지는 페이지로, 위아래에 CONFIDENTIAL 표시가 찍혀 있다. "이후 더 많은 목격" 항목은 금요일 오후 포틀랜드 상공에서 잇따른 비행 물체 목격담을 모았다. NE 매캐덤가 5425번지에 사는 S. A. 에번스는 오후 2시쯤 로스아일랜드 다리 부근에서 윌래밋 강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날아가는 물체 세 개를 봤다고 했다. 그리 높지 않았고 속도가 빨라 와시 방향에서 나타났다가 동쪽으로 사라지기까지 2~4초밖에 걸리지 않았으며, 햇빛에 번쩍이는 금속 원반처럼 보였다. 잠시 후에는 이웃과 함께 북쪽 멀리 아주 높은 상공에서 원반 하나가 더 지나가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오후 4시 30분에는 NE 21번가 6126번지의 로런스 J. 헤이워드 부인이 "새 다임 동전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원반이 샌디 지구 상공을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신고했다.

    "종이 회수" 항목은 비슷한 시각의 추가 목격담과 한 가지 물증을 다룬다. NE 59번가 1232번지의 토머스 W. 드와이어는 오후 5시 직전 포틀랜드 상공 높은 곳을 남동쪽으로 날아가는 흰색 또는 은빛 물체 두 개를 봤고, 5시 30분에는 자기 집 위로 북동쪽으로 향하는 또 다른 물체가 지나갔다고 했다. 타이가드의 C. J. 마인은 자신이 레드먼드 인근을 운전하던 오전 11시쯤 원반 네 개가 마운트 제퍼슨을 스쳐 가는 것을 봤다고 신고했다. NE 25번가 5000번지의 셔먼 쿡은 베어 시티 골프장에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종이 한 장을 주웠는데, 떨어진 시각이 다른 비행 원반 목격담과 겹쳤다. 23½ × 26인치 크기에 품질이 낮은 종이였다.

    마지막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은빛 원반"은 AP 통신을 인용해 7월 5일자 유진발 짧은 후속 기사로 이어진다. 유진의 한 철도 회사 출납원이 금요일에 도시 상공을 지나가던 경비행기에서 은빛 원반이 떨어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서던퍼시픽 철도의 보조 출납원 S. F. 스미스는 유진의 어느 거리에서 운전하던 중 그 장면을 목격했다고 말했으나, 본문은 "when --"에서 끊겨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178. p.178

    1947년 7월 5일 포틀랜드 오리건 저널 기사를 옮긴 회람 자료다. 표제는 "항공사 승무원이 비행 원반 목격을 확인 — 다섯 개 포착". 기사 본문은 7월 4일 금요일 하늘에서 비행 원반을 보았다는 보고가 보이시 상공의 유나이티드 항공기 승무원, 시애틀 인근 해안경비대원, 포틀랜드 지역 경찰과 시민들로부터 동시에 들어왔다고 정리한다.

    유나이티드 여객기의 기장 E. J. 스미스는 UP 통신에 "바닥은 얇고 매끈하며 윗면은 거칠어 보이는" 다섯 개의 무언가를 보았다고 말했다. 비행기가 오후 9시 4분에 이륙한 직후, 노을을 배경으로 그 물체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스미스는 "우리는 분명히 보았다. 약 45마일을 북서쪽으로 따라갔지만 결국 사라졌다. 우리보다 빠르게 앞질러 갔는지, 흩어져버린 건지는 알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기사는 "항공기는 아니다" 소제목 아래 스미스의 추가 진술을 싣는다. "그것이 원반 모양인지, 타원인지, 다른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다른 항공기는 아니었고, 연기나 구름도 아니었다."

    시애틀에서는 27세 해안경비대원 프랭크 라이먼이 자기 집 앞 현관에서 워싱턴호 북쪽 끝을 지나가는 "흰색 원반"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UP 통신에 알렸다. 뉴욕의 애크미 뉴스픽처스는 그 사진의 7x9인치 인화본에 작은 점 두 개가 찍혔으며 그중 하나는 사진의 흠집이라고 전했다. 19세 오크스 놀이공원 직원 돈 메트칼프는 금요일 하늘에서 "빙글빙글 도는 원반 같은" 물체 여러 개를 보았다고 보고했고, 여성 비행사를 포함한 소풍객들도 함께 목격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 밴쿠버에서는 보안관보 존 설리번, 클래런스 매케이, 프레드 크림스가 포틀랜드 경찰의 무전 방송을 듣고 보안관 사무실 밖으로 뛰어나가 하늘을 보았다. 3~5마일 떨어진 포틀랜드 상공에 "기러기 떼처럼" 20~30개의 물체가 떠 있었고, 낮게 윙윙거리는 소리도 들렸다고 설리번은 말했다.

    기사는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제목 아래 반론도 정리한다. 오리건 주방위군 사령관 G. R. 다드슨 대령은 보고 후 직접 항공기로 일대를 살펴봤지만 "수상한 것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보고 시점에 군용기로 확인된 것은 애스토리아 인근의 B-29 폭격기 23대뿐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두 사람은 원반의 존재 자체를 믿지 않았다. 홀게이트 정박장의 알 P. 스탠퍼드는 그 물체가 미루나무 솜털이라고 보았고, 노스버리지가 8804번지의 64세 얼 불록은 신문사가 거짓 소동을 퍼뜨린다며 항의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자기 집 위로 비행기가 지나간 직후 알루미늄 호일 조각이나 담배 포장지 같은 것이 떠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페이지 상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어, 이 신문 기사 자체가 군 정보 회람 자료로 보관되었음을 보여준다.

  179. p.179

    1947년 7월 3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한 FBI 요원이 포틀랜드 시내 사우스이스트 심슨가 814번지에 사는 리처드 랭킨을 직접 만나 면담했고, 그가 진술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비밀(CONFIDENTIAL) 등급 면담 기록이다.

    랭킨은 마흔일곱 살이고 열아홉 살 때부터 비행을 시작해, 1919년 처음으로 단독 비행에 올랐다고 했다. 전쟁 이전 여러 해 동안 미 산림청 일로 미국 서부 거의 전 지역을 비행하며 지도를 만들었고, 그래서 서부 하늘에 대해서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안다고 했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에어쇼 곡예비행과 각종 항공 시범에 썼고, 형 '텍스' 랭킨은 민·군 비행계에 두루 알려진 인물로, 전쟁 중에는 본인이 운영한 1차 비행 훈련 학교에서 수천 명의 비행 생도를 길러냈다고 했다. 본인은 민·군 항공기 조종으로 누적 7000시간을 채웠고, 하늘에서 마주치는 거의 모든 물체를 가려낼 만한 자격은 있다고 본다고 했다 — 다만 자기가 완전무결하다거나, 하늘에 떠 있는 무엇이든 다 알아본다고 단언하지는 않겠다고 덧붙였다.

    그가 진술한 사건은 1947년 6월 14일 캘리포니아주 베이커스필드 사우스 4번가 102번지 자기 집 마당에서 본 것이다. 그날 정오 무렵, 한 청년이 마당에서 잔디를 깎고 있었고 랭킨은 마당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때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물체 열 개가 보였다. 고도는 약 8500피트, 속도는 시속 350마일쯤으로 가늠했다. 산림청 지도 작업 경험으로 그 정도 추산은 익숙하다고 했다. 랭킨은 옆에 있던 청년에게 그것이 보이느냐 말하면서, 아마 캘리포니아 남부 사막에 있는 군 시험장에서 띄운 육군이나 해군의 시험기일 거라고, 어느 쪽이든 훈련 임무 중일 거라고 설명해 줬다. 그 순간 그는 정부 시험기 말고 다른 가능성은 떠올리지 않았다고 했다. 물체의 모양은 1950년대에 본 적 있는, 흔히 '플라잉 플랩잭'으로 불리던 해군 시험용 원반과 닮았다고 했다.

    물체가 사라진 뒤 랭킨은 집 안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고, 오후 4시 15분쯤 다시 마당으로 나와 그늘에 앉으려 했다. 그때 같은 물체들이 다시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갔다. 다만 이번엔 일곱 개였다. 처음 본 열 개는 'V' 대형으로 날고 있었고 그중 하나가 뒤로 처져 따라가는 모양이었는데, 두 번째도 같은 'V' 대형이었지만 일곱 개로 줄어 있었다. 랭킨은 아직 잔디를 깎고 있던 청년에게, 나머지 셋은 아마 다른 항로로 베이커스필드 너머 산맥 반대편 기지로 돌아간 것 같다고 말했다 — 본인도 정말 그런 줄로 알았다고 했다.

    그러고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그는 사막 산악지대 상공에서 비슷한 물체를 봤다는 한 사람의 보도를 읽었다고 했고, 진술은 그 대목에서 다음 장으로 이어진다.

    페이지 상단에는 'CONFIDENTIAL', 'PORTLAND, OREGON', '30 July 1947'이 표시되어 있고, 우상단 여백에는 손글씨로 보이는 'F61' 같은 식별 표기가 보인다. 하단에는 1947년 8월 7일자 접수 도장과 'SAN FRANCISCO'로 회람된 흔적이 함께 남아 있어, 이 면담 기록이 곧바로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로 올라간 문서임을 알 수 있다.

  180. p.180

    1947년 7월 3일 목요일자 오리거니언 신문 기사 클리핑이다. 제목은 "파일럿이 디스크 목격을 떠올리다 — 딕 랭킨이 이상한 비행체 이야기를 하다." 사본 상단과 하단에 CONFIDENTIAL 도장, 우측에 COPY 도장이 찍혀 있고, 1947년 8월 7일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 접수 도장이 함께 보인다.

    기사는 수요일 또 한 건의 "플라잉 플랩잭" 목격담이 나왔다고 시작한다. 목격자는 비행시간 7000시간이 넘는 베테랑 파일럿 딕 랭킨으로, 작고한 텍스 랭킨의 동생이다. 자동차 사고로 입은 옛 척추 부상을 회복 중이던 그는 여름을 보내려 주말에 포틀랜드에 왔고, 6월 23일 캘리포니아 베이커스필드 상공에서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하다가 "하늘에 깔린 접시들"을 봤다고 오리거니언에 전했다.

    랭킨은 처음에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고 말한다. "신문들이 시끄러워지는 걸 본 다음에야 얘기를 꺼냈다. 한참 그 이상한 모양을 곱씹어 보다가, 결국 해군의 신형 XF5U-1 플라잉 플랩잭이라고 결론지었다. 그 기종이 얇고 둥글며 프로펠러가 두 개에 꼬리가 짧기 때문이다."

    다음 단락의 소제목은 "XF5U-1은 한 대만 제작됐다." 해군과 제작사는 그 기체가 단 한 대만 만들어졌고 코네티컷주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는 내용이 이어진다. 랭킨은 자신이 본 비행체들은 약 8000피트 상공을 시속 450~500마일로 꽤 빠르게 날았으며, 처음에는 열 대가 편대를 이뤄 북쪽으로 향했다고 말한다. 오후 2시 15분쯤 같은 비행체들이 방향을 바꿔 남쪽으로 돌아왔는데, 이때는 일곱 대만 남아 있었다.

    "편대 안에서 흔들리거나 출렁이지 않았고, 프로펠러의 방식이나 위치도 알아볼 수 없었으며, 날개나 꼬리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거의 원반에 가까운 모양이었다. 해군의 플라잉 플랩잭 사진과 똑같이 보였다." 랭킨은 여름을 포틀랜드의 834 N. E. 심슨가에서 보낼 계획이며, 상업 비행은 아니지만 취미 비행은 다시 할 수 있게 됐고, 지금은 자동차 모텔 체인을 운영하며 겨울은 팜스프링스에서 보낸다고 덧붙인다.

    마지막 소제목은 "두 진술이 일치한다." 랭킨의 묘사는 워싱턴주 상공에서 디스크를 처음 보고한 아이다호 보이시의 사업가 케네스 아놀드의 진술과 일치한다고 기사는 정리한다. 다만 아놀드는 그 속도를 시속 1200마일 정도로 추정했다는 차이가 있다.

    수요일에는 애스토리아에서도 추가 목격담이 들어왔다. 그곳 세인트메리 병원 환자인 잭 헤이즈는 월요일에 빠른 속도로 남서쪽으로 날아가던 디스크 두 대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걸 봤다고 진술했다. 포트스티븐스의 카를 스케이드 부인은 화요일 정오 무렵 포트스티븐스 상공을 북쪽으로 가로지르는 디스크 한 대를 봤고, 다른 목격자들도 같은 물체를 봤다고 말했다. 다만 포트스티븐스 주둔 육군과 인근 포인트애덤스의 해안경비대는 디스크를 보지 못했다.

    워싱턴주 센트레일리아의 한 남자가 수요일에 보고한 목격담은 아놀드의 최초 보고와 시간대가 맞아떨어졌다. 센트레일리아의 시드니 B. 갤러거는 6월 24일 오후 3시 알루미늄 빛깔의 물체 아홉 개가 북쪽으로 날아가는 걸 봤다고 말했는데, 그때 그는 워싱턴주 미네럴에서 남서쪽으로 11마일 떨어진 곳에서 작업 중이었다.

    사본 상단에는 총상처럼 보이는 구멍 자국 두 개가 종이를 관통해 있다.

  181. p.181

    1947년 7월 30일,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작성한 켄네스 아놀드의 서명 진술서 두 번째 장이다. 그는 워싱턴에서 자신이 본 물체들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적었다.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한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다가, 얼마 뒤 포틀랜드 신문 《오리고니언》의 편집장에게 이 일을 털어놓았다. 그가 포틀랜드에 머무는 동안 있었던 이 대화의 결과는 함께 첨부한 신문 기사에 실려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어서 아놀드는, 전국의 신문이 이 사안을 워낙 크게 다뤘기에 자신의 진술이 광범위하게 들릴 수 있음을 안다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은 모든 면에서 정신이 멀쩡하며 자신이 본 물체들이 실제로 어떤 형태의 비행 기계라는 확신이 굳다고 못 박는다. 다만 그 기계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갔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마지막 줄에서 그는 자신의 말이 명성이나 개인적 이득을 노린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본문 위·아래에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상단에는 두 번째 장임을 알리는 (2) 표시가 보인다.

  182. p.182

    1947년 7월 5일 포틀랜드 오리건 저널 기사 스크랩으로, FBI 샌프란시스코 지부가 1947년 8월 7일 접수한 confidential 자료다. 헤드라인은 "순찰차들이 이곳 하늘에서 원반을 포착하다"이다.

    기사는 정체가 무엇이든 원반 형태의 물체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다고 운을 뗀다. 그렇지 않다면 금요일에 물체를 목격한 포틀랜드 일대 경찰관과 부보안관 여덟 명, 일반 시민들, 아이다호 보이시 상공의 유나이티드 항공기 승무원, 시애틀 인근에서 사진까지 찍었다고 주장하는 해안경비대원 모두가 틀린 셈이 된다고 짚는다.

    포틀랜드에서는 금요일 오후 1시 5분, 동부 지구대가 원반이 머리 위에 있다는 신고 전화를 수십 통 받은 뒤 경찰 무전으로 경보가 발령됐다. 몇 초 안에 순찰차 두 대가 정체불명의 비행체를 목격했다고 보고했다.

    섬광은 보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장 먼저 보고한 사람은 오크스 공원 근처에 정차했던 82호차의 월터 리시 순경과 로버트 엘리스 순경이었다. 두 사람 모두 2차대전 참전 군인이자 민간 조종사였다. 이들은 20초 안에 공원 상공을 매우 높고 빠르게 지나가는 물체 세 개를 봤다고 했다. 엔진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섬광만 보였으며, 물체들은 비행 방향을 불규칙하게 바꿨다고 진술했다. 두 순경은 물체의 크기를 모르는 이상 속도나 고도를 판단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13호차의 얼 패터슨 순경은 원반이 보고된 동쪽을 살피려고 SE 52번가와 포스터 로드에 정차했다. 전화 신고는 동쪽에서 오고 있다고 했지만, 패터슨은 몇 초 뒤 서쪽에서 나와 남동쪽으로 향하는 물체 하나를 보았다. 비행체는 알루미늄이나 달걀껍질 빛깔이었고, 빛을 반사하거나 번쩍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물체의 정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옛 항공대 출신인 패터슨은 자기가 본 어떤 비행기와도 다르다고 말했다. 원반이 90도로 어렵지 않게 방향을 꺾었기 때문에 무선 조종 같다고 생각했다고도 덧붙였다.

    NW 어빙 가 끝자락에 있던 항만경비대원들도 전 차량 경보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K. A. 프렘 대위, 항만 도선사 A. T. 오스테드, K. C. 호프 순경이 모두 물체를 보았고, 글로브 제분소 상공을 무서운 속도로 남쪽으로 지나갔다고 진술했다. 프렘 대위는 섬광 때문에 물체가 세 개인지 여섯 개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프렘은 원반이 진동하면서 어느 순간 온전한 원반으로 보이다가 반달 모양이 되었다가 아예 사라지기를 반복했다고 보고했다. 자동차에서 떼어낸 반짝이는 크롬 휠캡이 흔들리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는 묘사였다.

    당시 하늘에는 비행기 한 대가 있었지만, 목격자 모두는 원반은 비행기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183. p.183

    1947년 7월 7일자 "미확인 비행 원반" 보고서의 5항. 작성자는 제6군 방첩대(CIC) 특수요원 키스 A. 소렌슨이다. 소렌슨 요원은 포틀랜드 시경 순찰관 W. A. 리시와 D. W. 엘리스 — 둘 다 자가용 조종사 면허 소지자다 — 를 직접 면담했다. 두 사람은 라디오 경보를 듣고 하늘을 본 순간 흰색을 띤 납작한 원형 원반 세 개를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원반은 포틀랜드 상공에서 남쪽 방향으로 엄청난 속도로 날아갔고, 일직선 편대 대형을 유지한 채 등간격으로 비행했다. 다만 맨 뒤의 원반 하나만 옆으로 빠르게 호를 그리며 떨렸다. 두 순찰관은 원반의 고도를 약 4만 피트로 추정했고, 추진 장치나 수증기 꼬리, 연기 흔적은 전혀 보지 못했다. 너무 빨라서 자세히 관찰할 틈도, 소리를 들을 틈도 없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요원 주석에는 면담 대상이 모두 환각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매우 신뢰할 만한 경관들이라고 못 박았다. 당시 포틀랜드 날씨는 맑았고 지상에서 보이는 구름이 거의 없었으며 지상 기온은 화씨 82도였다.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어 작성 당시 기밀 등급으로 분류됐음을 알 수 있다.

  184. p.184

    1947년 7월 7일자 〈해명되지 않은 비행 원반〉 메모. 키스 A. 소렌슨(Keith A. Sorensen) 6군 방첩대(CIC) 특수요원이 책임 장교 앞으로 보낸 보고서다.

    1947년 7월 4일 낮 12시 6분, 포틀랜드 시 경찰 무전망에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물체가 포틀랜드 상공에 떠 있다는 경보가 모든 순찰차와 청취자에게 전파되었다. 무전 담당관에게 확인한 결과, 처음 신고를 한 사람은 포틀랜드 시경 1관할(사우스웨스트 모리슨 10번가) 소속 순찰관 케네스 A. 맥다월(Kenneth A. McDowell)이었다. 그는 노스이스트 부시 가 916번지에 거주 중이다.

    맥다월 순찰관 인터뷰. 7월 4일 12시 8분경 1관할 경찰서 뒤편 주차장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비둘기들이 일제히 흥분해 사방으로 날아올랐다. 무엇이 비둘기를 놀라게 했는지 돌아보니, 포틀랜드 동쪽 상공에 큰 원반 다섯 개가 떠 있었다. 두 개는 남쪽, 세 개는 동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색은 알 수 없었지만 위아래로 진동하듯 출렁이면서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다. 자세히 관측하기 전에 시야에서 사라져 속도나 고도는 가늠하지 못했다. 그는 곧바로 경찰 무전실에 알려 경보를 띄우게 했고, 추진 장치의 흔적이나 소리는 전혀 듣지 못했으며 둥글다는 점 외에 더 설명할 것이 없다고 진술했다.

    오리건 주경찰 1구역 밀워키 분서 근무 중이던 클로드 크로스(Claude Cross) 경사 인터뷰. 무전 경보를 듣고 밖으로 나가 동쪽을 살펴보니 원반 세 개가 일렬로 줄지어 알 수 없는 고도에서 북서쪽으로 무서운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다. 햇빛이 반사되며 희끄무레한 갈색 빛이 났다. 속도나 고도는 추정하지 못했고, 물체에서 나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포틀랜드 시경 순찰관 얼 K. 패터슨(Earl K. Patterson) 인터뷰. 사우스이스트 15번가 124번지 거주, 전쟁 중 미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 무전 경보가 울렸을 때 그는 사우스이스트 92번가와 포스터 로드에 있었고, 차에서 내리자 포틀랜드 상공 남서쪽으로 원반 한 개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알루미늄 색이었고 비행운이나 연기 자국 없이 자신이 본 어떤 비행체보다도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정확한 크기는 모르지만 고도는 약 3만 피트(약 9천 미터)로 추정했다.

    패터슨은 그 비행 원반이 어떤 종류의 항공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속도가 너무 빨라 더는 묘사할 수 없으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상단에는 "CONFIDENTIAL" 도장이 찍혀 있고, 하단에는 샌프란시스코 경유(SAN FRANCISCO / ROUTED TO) 라우팅 도장이 남아 있다.

  185. p.185

    CONFIDENTIAL 도장이 찍힌 사진 증거 페이지로, 위아래 두 장의 흑백 사진이 'EXHIBIT B'와 'EXHIBIT II' 라벨과 함께 붙어 있다. 두 사진 모두 밝은 배경 위에 어두운 타원형 또는 시가형 물체가 한 가운데 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으며, 위쪽은 가로로 길쭉한 막대 형태, 아래쪽은 약간 기울어진 잎사귀 형태에 가깝다. 페이지 하단 여백에는 손글씨로 'EXHIBIT #1—2'라는 표시가 적혀 있어 보고서 본문에 첨부된 사진 자료임을 알려 준다.